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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 24일 주일 1부 예배 신봉준 담임목사
복음의 능력
(히9:23-28)
서론: 하나님은 세상을 정복하고 살리라고 우리에게 복음을 주셨는데, 복음의 능력과 가치를 먼저 내가 제대로 알고 누리고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그리스도께서 많은 사람을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된 복음의 능력을 말씀하고 있습니다(히9:28, 12, 14).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고 할지라도 복음의 능력과 가치를 확인하지 못하면 세상을 따라 살며, 세상의 종 되어 몸부림치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의 것에는 참된 만족과 행복이 없습니다. 이를 깨달은 바울은 오직 그리스도만 알고 그리스도만 자랑하겠다고 고백했습니다(고전2:2). 그리고 그리스도만이 최고의 자랑이라고 말씀했습니다(빌3:8). 결국 수많은 핍박과 어려움 속에서도 로마를 살리는 축복을 누린 바울을 보며 오늘 예배를 통해 참된 복음의 능력과 가치를 발견해야 합니다.
1. 완전한 능력
가. 십자가에서 단번에 우리의 멸망 받을 죄와 사망, 사주팔자와 운명에서 모든 것을 다 끝내신 그리스도의 능력 속으로 들어가게 하옵소서(요19:30).
나. 복음 앞에 단순해짐으로 삶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며, 완전하고 충분한 복음을 나의 수준으로 보지 않게 하옵소서.
2. 유일한 것
가. 하나님을 떠나 죄로 인한 저주와 재앙에서 해방을 받으며, 세상을 이기는 유일한 이름 오직 그리스도만 붙잡게 하옵소서(요14:6, 행4:12).
나. 시대가 재앙 속에 있고, 율법과 다른 복음이 가득한 이 시대에 보게 하시고, 유일성의 복음을 놓치게 하는 나의 문제가 발견되게 하옵소서(갈1:6-8).
3. 영원한 것
가. 어제 우리를 지키셨고, 오늘 기도할 때 성령으로 역사하시고,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시며 재림주로 오실 그리스도를 기도로 누리게 하옵소서.
나. 기도할 때 시공간 초월의 역사가 일어나고, 보좌와 하나님 나라의 일이 이루어짐을 믿고 영원한 복음의 능력을 회복하게 하옵소서.
결론: 앞으로 복음이 없어지고 전도가 사라지는 시대, 그 결과로 영적 질병의 시대, 재앙의 시대가 옵니다. 여기서 완전히 승리하는 답은 영원하고 완전하고 유일하신 그리스도를 붙잡고 기도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말씀 속에서 문제가 응답의 과정임을, 현실적인 문제는 언약의 여정이며, 하나님이 나의 각인, 뿌리, 체질을 바꾸는 것이 보일 정도로 깊은 묵상에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완전하고 유일하며, 영원한 그리스도 이름 붙잡고 증인의 축복 누리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5월 24일 주일 1부 예배 신봉준 목사
“복음의 능력”
(히9:23-28)
23.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정결하게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지니라
24.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25.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 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지니
26.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한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아멘.
히9:23-28
■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당신은 대로를 여는 자입니다.’, 오늘 이 시간, 이 예배가 내 생각들 내려놓고, 하나님 말씀을 앞세우는 시간 되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능력 있고 힘이 있겠습니다만, 오늘 이 시간 보좌로부터 주시는 하나님의 힘을 덧입는 시간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계획을 붙잡고, 우리 남은 생애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전도와 선교를 놓고 도전되어지는 그런 축복의 예배가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찬양대만 아멘 하는 것 같고, 우리 성도들은 그냥 입만 다물고 있는 것 같아요. 도전되어지는 시간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번은 늘 가던 길인데 네비게이션으로 목표점으로 정해 놓고 도로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속도로를 늘 다니던 길인데 그날따라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전혀 다른 길인 국도로 안내를 해 버려요. 그래서 이게 웬일인가 생각하면서 안내하는 대로 따라갔죠.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가는 길 과정 속에 고속도로에 많은 공사가 있었기 때문에 네비게이션이 국도로 저를 안내 했었습니다. 그런데 국도를 타고 가다가 점심때가 되어서 좀 식사를 하고 가야 되겠다 생각하고 동네에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작은 동네가 아니에요. 그래서 식당에 들어가서 식사하기 위해서 국수를 한 그릇 시켰습니다. 그런데 식당에 보니까 여러분 예수 믿는 사람들은 식당 있는데 보면 네 시작은 미약하였지만 네 나중은 창대하리라 이런 성구들도 적혀 있고, 하나님 말씀들이 액자로 걸려있는 부분들 많잖아요? 그 식당에도 성구가 걸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식당의 주인에게 여쭈어 봤습니다. 교회 다니시냐고? 그렇다고 했습니다. 저는 목사입니다 라고 이야기를 했어요. 그러니까 이분이 그 지역에 있는 교회 상황들을 쭉 이야기해요. 이 지역에서 장로교도 있고, 감리교도 있고, 순복음도 있다고 이야기를 했어요.
그러면서 그 다음 말이 저를 가슴 아프게 했었습니다. 교회들이 하나 되지 못하고 갈리고, 찢겨서 싸워서 10명, 20명, 제일 큰 교회가 50명이 큰 교회로 여겨진다 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이 지역의 사람들은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조차도 교회 다니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있습니다 라고 이야기를 해요.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조차도 교회 다니는 그 자체를 부끄러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불신자들이 교회 다니는 사람들을 볼 때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사실 저는 그 분의 그 한 마디에 많은 생각들과 함께 많은 기도들이 회복되어지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어떤 면에서 정말로 세상을 정복하라고 우리에게 복음을 주셨는데, 복음의 능력과 그 가치를 전혀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이 아닌가 돌이켜 봤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정말로 복음의 능력들, 복음의 그 가치들을 제대로 알고 누리고 있습니까? 오늘 성경 본문에 보면 복음이 얼마만큼 능력 있나?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28절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죠.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다.” 했어요.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다. 복음의 능력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읽지는 않았습니다마는, 히브리서 10장 1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에 말씀하고 있죠.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말씀 했습니다. 율법 시대 속에 제사장들이 드리는 제사는 온전하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온전케 하시는 그리스도, 그 이름의 비밀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12절에 말씀하고 있죠.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 14절에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다.” 복음의 능력과 그 가치를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부분들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한다 할지라도 복음의 능력과 가치를 확인하지 못하면 세상 따라 살게 되어 있고, 세상의 종 되어서 세상의 것으로 채우려고 몸부림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세상의 것으로 채우고, 세상의 것으로 뭔가 만족함을 얻는다고 해서 그것이 진정한 만족과 진정한 행복이 되어질 수 있습니까?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하면 세상의 것으로 채워질 수는 있겠죠. 그러나 그 세상의 것으로는 결국은 소금물을 마시면 계속 갈증을 느끼듯이 참된 만족과 행복을 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참된 복음의 능력과 그 가치를 알고 그 속에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세상에서 줄 수 없는 참된 행복과 참된 기쁨을 누리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로마를 정복했던 바울의 고백입니다. 고린도전서 2장 2절에 말씀하고 있죠. “나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의 못 박힌 것 외에는 말하지 아니하기로 작정했다.” 했습니다. 이 말은 무엇을 말합니까? 오직 그리스도 그만 알고 그만 자랑하겠다는 말 아닙니까? 성경 빌립보서 3장 8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게는 가장 고상한 지식이 그리스도이다.” 얼마나 많은 지식을 가졌던 바울입니까? 그런데 바울은 자기의 입에서의 고백이 내게 있어서 내가 가진 그것이 참 지식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가장 고상한 지식이다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간다 말씀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께 발견되기를 원한다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바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만이 최고의 지식이고, 그 안에서 발견되기를 원한다는 말은 그리스도가 최고의 자랑이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의 마지막 로마서를 기록하면서 뭐라고 고백했습니까? 로마서 1장 16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말씀했어요. 무슨 말입니까? 반대로 말하면 나는 복음만 자랑하겠다는 말이에요. 그 바울이 수많은 핍박과 어려움들이 있었지만 결국은 로마를 살리는 귀중한 축복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오늘 예배드리는 가운데 여러분에게 있어서 참된 복음의 능력, 그 가치를 발견케 되어지고 그 속에 들어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완전한 능력
그러면 복음의 능력과 그 가치는 어떻습니까? 먼저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음은 완전한 복음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하나 줘놓고, 부족해서 또다시 하나 더 주시는 그런 복음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영세 전부터 영원까지 단 하나의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게 바로 그리스도 이름입니다. 오늘 28절에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다, 이 단번에 이 말은 영세 전부터 영원까지 해결한 사실을 말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는 완전한 능력이기 때문에 영세 전의 문제부터 시작해서 영원까지의 문제도 주님께서 완전히 해결하신 능력 있는 이름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 했습니다. 그리고 방주 안에 들어가라 했죠. 방주 안에 들어가면 산다 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노아에게 있어서 이제는 안 되겠다, 다른 곳으로 옮겨 타자?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방주 안에만 구원이 있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옮겨 타자 그렇게 말씀하지 않았다 라는 사실입니다. 어떤 면에서 세상에서는 안 통하는 말입니다. 세상에는 절대적인 것들이 통하지 않습니다. 모든 게 상대적인 것이 기준이 되어 있죠. 그래서 기독교를 향해서도 독선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독선이 아니라 그게 사는 길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길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바르라 말씀했습니다. 그 말씀에 순종해서 모세가 유월절 어린 양을 잡아서 그 피를 문설주 좌우에 발랐습니다. 피를 많이 발랐든, 적게 발랐든 상관없이 그 저주가 피 바른 집들을 넘어가게 된 것입니다. 피를 바르는 순간에 재앙이 넘어가게 되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완전한 자유와 완전한 승리를 얻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바로 왕은 완전히 무릎을 꿇게 되어지는 역사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만 완전한 능력의 역사로 주셨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28절에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다. 완전한 복음의 능력인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단 한 번의 사건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모든 죄를 단번에 끝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갈보리 산상에서 요한복음 19장 30절에 말씀하셨죠. “다 이루었다!” 말씀했습니다. 무엇을 이루셨다는 말입니까? 우리가 멸망받을 죄를 이루셨다는 말이고, 그 죄로 말미암아 온 사망의 문제를 해결했다는 말이고, 사주와 팔자, 운명에서 모든 것 다 끝냈다 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구의 이름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으로.
여러분 그리스도 예수 그 이름 붙잡고 기도하면은 사실적인 응답의 역사들이 일어나게 되어 있어요. 에베소서 1장 22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만물이 무릎 꿇는 이름이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이라고 말씀했어요. 만물이 복종하는 이름이 우리에게 주어진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이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이 시간 이후로 모든 불신앙을 내어 버리시기 바랍니다. 우리도 모르게 우리 안에 다른 것들이 너무나 많이 각인되어 있습니다. 단순하게 복음을 복음으로만 받으면 되는데 말씀을 받기에 너무나 다른 것들이 이미 우리 안에 너무 많이 자리 잡고 있음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살아가면서도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지 못하는 것이죠.
한 번은 제가 어떤 자리에 포럼하는 그 자리에 참석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포럼하는 한 분, 한 분이 영적인 많은 어려움들을 겪었던 사람들이었어요. 그래서 그런지 말씀이 아니고서는 자기가 살아갈 수 없음을 알고, 말씀을 가지고 깊이 기도 속에서 지금까지 인도를 받아온 겁니다. 그런데 말씀 속에서 하나하나 하나님이 치유하시는 은혜의 역사들을 체험하게 되었고요.
그리고 말씀 붙잡은 부분들을 가지고 또 다시 포럼하는데 제 마음에 ‘저분들은 저렇게 단순히 믿는데 왜 나는 안 될까?’ 이런 마음들이 들었어요. 그냥 말씀 잡고, 받았던 은혜의 역사들을 함께 포럼하는데 그게 제게도 많은 은혜가 되어져요. ‘저분들이 붙잡고 있는 복음이나 내가 알고 있는 복음은 전혀 다른 것이 아닌데 저분에게는 어떻게 저게 능력이고, 내게는 힘이 없는 것인가?’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복음은 모든 문제 해결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복음은 완전한 능력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복음은 충분하고 부족함이 없는 것이다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은 진짜 복음이 완전한 능력이요, 충분한 것으로 믿고, 붙잡고 나가고 있습니까? 안 되고 있는 부분들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생각들과 우리의 기준 가지고 우리는 이리 견주고, 저리 견주고 많은 생각들을 가지고 말씀을 받는 것을 보게 됩니다. 무엇이 그리 복잡한지 몰라요. 그냥 단순하게 보고 믿으면 될 것인데, 그냥 아멘하고 끝나면 되는데 뭔가 우리는 거기에 붙어버려요. 뭔가 토가 달린다는 말이에요.
여러분 정말로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를 체험하기를 원하십니까? 복음 앞에 단순해지시길 바랍니다. 강단 말씀을 받을 때 이리저리 생각하지 마시고, 하나님이 주신 음성으로 ‘아멘.’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다,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다 했습니다. 우리가 이 자리에 앉아서 믿음 가지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요. 또 한 가지 말씀을 받으면서도 뭔가 모르게 불신앙 가운데서 말씀을 받는 분들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믿음의 고백을 하게 되면은 당장은 응답이 없다 할지라도 분명히 믿음의 결과인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됩니다. 그리고 시간 지나고 나면은 나도 모르게 믿음 선택한 거기에 하나님 나라의 일이 이루어지게 되어 있어요. 반대로 우리가 불신앙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순간순간 우리도 모르게 불신앙이 각인됩니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불신앙 속에 거기에 흑암의 배경 가운데 있기 때문에 흑암의 나라가 임하게 됩니다. 그래서 흑암의 나라의 일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간단한 것 같지만은 사실은 우리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오늘 이 자리에 앉아 있느냐? 그게 다라는 사실이에요. 여러분 우리에게 응답은 바로 올 수도 있고, 거의 대부분의 응답이 시간이 지나면서 오게 되어 있어요.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역사들을,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들을 체험할 수 있습니까? 오늘 이 자리에 여러분 믿음을 붙잡는 것입니다. 그냥 말씀을 아멘으로 받아들이는 거에요. 계산하지 말고, 따지지 말고, 토 달지 말고, 아멘으로 받아들일 때 그 믿음의 역사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나라로 임하게 됩니다. 뭔가 모르게 우리 안에 너무나 아닌 것들로 가득 차 있어요. 평소에 각인된 것들이 많아요. 그것으로 살았고, 또 그것으로 살아갑니다.
어떤 면에서 평소에 각인된 그것들이 세상 살아가는 삶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나름대로 그것들을 각인시켜 살아 왔어요. 그런데 그것이 틀린 것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다른 것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게 망할 것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런데 대부분이 틀린 것, 다른 것들로 각인되어 왔거든요. 여러분 그것들 때문에 우리는 말씀을 받아도 말씀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가 없는 것이죠.
그리고 말씀 받을 때 여러분 우리의 수준으로 말씀을 이해하려고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말씀 받고 나서 이해되니, 안 되니? 그 말 자체가 교만한 겁니다. 아니 어떻게 연약한 우리의 인생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된다고 할 수 있습니까? 믿게 될 때 이해되는 것들이 더 많아지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오늘 찬양대 찬양했잖아요. 내 생각보다 하나님 말씀을 앞세우시길 바랍니다. 내 수준보다 하나님 말씀을 앞세우시길 바랍니다. 모든 것을 우리의 수준으로 보지 마시고, 하나님이 주신 복음은 완전하고, 충분하시니까 말씀을 기준으로 나를 보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연약할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부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복음은 연약한 것이 아닙니다, 완전한 것입니다. 완전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나의 기준으로 붙잡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수준으로 여러분이 이해되는 것으로 말씀을 붙잡으려고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아무리 수준이 뛰어난다 할지라도 그건 망하는 수준입니다. 그리스도 없으면 아무리 많은 고상한 지식을 갖고 있다 할지라도 그거는 오히려 망하는 지식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완전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나의 기준으로 붙잡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배반한 베드로에게 주님께서 찾아오셨어요.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말씀하셨죠. 내 어린 양을 치라 말씀 했습니다. 그러면서 귀중한 후대에 대한 언약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네가 왜 나를 배반했어, 그럴 수 있어?’, 그렇게 말씀하지 않았어요. 배반하고 떠난 베드로에게 다시 찾아오셔서 묻지 아니하시고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은 베드로처럼 실수할 수 있고,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걸 정당화시키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은 연약해서 실수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자신을 기준 삼지 마시고, 완전하신 하나님의 언약을 기준 삼아서 여러분의 것으로 붙잡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의심 많은 도마, 예수님의 부활을 보고도 믿지 않았잖아요. 나는 당신 확인하지 않고서는 못 믿겠습니다 이야기했어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네 손을 내밀라 하면서 옆구리에 손을 넣어보라 말씀하셨죠. 의심 많은 도마에게도 찾아오셔서 예수님은 그 의심 많은 도마를 꾸짖으신 것이 아니라 사실은 하나님의 믿음의 역사를 확인시켜주는 사실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처럼, 도마처럼 실제로 우리는 연약하고, 넘어질 수 있습니다, 의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 기준으로 복음을 보지 마시고, 하나님이 내게 주신 복음은 완전한 능력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특별히 우리 신앙생활에 가장 많은 어려움들이 있다면 인간관계의 문제입니다. 제일 많이 걸려드는 부분들이죠. 그래서 많은 상처들을 안고 살아가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신 복음은 복음 그 자체가 능력입니다. 인간관계를 넘어서지 못할 만큼 부족한 것이 아니에요. 우리에게 주신 복음, 그 복음 붙잡고 인간관계를 보면 하나님이 주신 답이 보여지게 되어 있어요. ‘아, 그럴 수 있는 것이구나!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구나! 하나님이 해결하시면 충분히 해결될 수 있는 것이구나! 왜 하나님이 그냥 내게 이 분을 붙이셨을까? 나를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릇들로 만들어 가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나를 이 사람에게 붙이신 것 아닌가?’
복음으로 보면 이해가 되게 되어 있어요. 여유가 생기게 되어 있고, 오히려 그 사람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나를 나 되게 만들어 가시는구나! 깨달으면서 감사가 나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복음의 능력들을 여러분, 그 어떤 것도 복음의 능력으로 해결하지 못할 문제가 없다 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단번에 이루신 구원의 역사 완전한 것입니다. 그 복음의 능력 속에 들어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유일한 것
두 번째입니다, 이 복음은 유일한 것입니다. 첫 번째로 완전한 것이고, 유일한 것입니다. 생명 얻는 유일한 이름은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성경에 보면 많은 역사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떠난 저와 여러분이 결국은 영생 얻는 길, 여자의 후손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얻는 길밖에 없음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이 성경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20장 31절에 말씀하고 있죠. 왜 성경을 기록했느냐?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기 위함이다 말씀하셨어요.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 이 성경을 기록했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생명 얻는 유일한 이름은 그리스도 밖에 없다 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만 하나님을 떠난 인생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만 죄로 인한 저주와 재앙에서 해방받게 하십니다. 그리스도로만 세상을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5장 5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세상을 이긴다 라는 말이에요. 그것을 믿지 못할 때 세상을 이길 수 없다 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유일한 길로, 진리요, 생명으로 우리에게 오신 것입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에 말씀하고 있죠.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적이 없다.” 했습니다.
시대의 재앙이 무엇입니까? 유일한 복음을 주셨는데 이 복음을 놓친 것이 바로 시대의 재앙인 것입니다. 다른 복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 시대의 재앙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 4장에 보면은 마지막 때에 고통하는 때가 온다 말씀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말씀을 전파하라 말씀하셨죠. 그러면서 마지막 때의 모습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기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쫓으리라. 그게 재앙입니다. 분명히 우리에게 유일한 진리인 그리스도를 주셨는데, 그 귀를 그리스도에게서 돌이켜서 허탄한 이야기를 쫓는 그 자체가 재앙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율법을 지킴으로 말미암아 구원받는다 라고 강조하기도 합니다. 율법은 좋은 것이고,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을 지킴으로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 그리고 어떤 종교나 가지면 된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시대 자체가 종교 통합주의로 흐르고 있습니다. 종교 다원주의로 흐르고 있죠. 또 어떤 사람은 죄를 꼭 회개해야만 구원받는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전부 다 다른 복음입니다. 갈라디아서 1장 6절, 7절에 바울이 이야기했습니다.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말씀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뒤에 보면은 “다른 복음을 전하면은 저주를 받을지어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일한 복음을 놓쳐버린 그 자체가 저주라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오직 그리스도, 유일한 복음만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그 유일성의 복음을 놓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 부분들을 발견하기를 바랍니다. 정말로 내게 완전한 복음, 유일한 복음을 주셨는데 내가 놓치고 있는 부분들이 어떤 문제 때문인가? 발견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영원한 것
세 번째입니다, 이 복음은 영원한 것입니다. 히브리서 13장 8절에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하시다.” 말씀했습니다. 어제 하나님의 자녀들을 지키셨고, 오늘 하나님의 자녀들이 기도할 때 지금 성령으로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토록 세계복음화하고, 주님이 이 땅에 오는 그날까지 항상 함께 있겠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원하신 이 그리스도를 내가 누릴 수 있는 길이 바로 기도입니다. 어제 역사했던 그 그리스도를 누리는 길이 바로 기도고, 기도할 때마다 성령께서 지금 나와 함께하시고, 세계복음화 한 후에 재림주로 오시는 그날까지 함께하시는 그리스도를 기도로 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마다 시공간을 초월한 역사가 일어나고, 보좌의 능력이 우리의 모든 삶의 현장에 나라로 임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일이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영원한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의 능력을 회복하는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완전하신 그리스도, 또 유일하신 그리스도, 영원하신 그리스도. 왜 완전하고, 유일하고, 영원하신 그리스도를 붙잡아야 되느냐? 결론입니다. 지금 앞으로 새 시대가 반드시 오게 되어 있습니다. 복음이 없어지고, 전도가 사라지는 시대가 옵니다. 복음이 없어지니까 그 결과로 영적 질병이 일어나는 시대가 오고, 그리고 지금까지도 왔고, 앞으로도 계속될 재앙의 시대가 반드시 오게 됩니다. 거기에서 완전히 승리할 수 있는 귀중한 답이 있다면은 영원하신 그리스도, 완전하신 그리스도, 유일한 그리스도를 붙잡고 기도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 복음의 능력과 가치를 잊어버렸기 때문에 우리는 가짜 것들을 붙잡고 살아갈 수밖에 없어요. 진짜 것을 놓쳐버렸기 때문에 가짜 것을 쳐다볼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인생 자체가 가짜 인생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오늘부터 그리스도 그 이름 붙잡고, 기도 속에 들어가는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문제 당할 때 응답의 과정이 보일 만큼의 기도 속에 들어가기를 바랍니다.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 언약의 여정 속에 일어나는 일들이 보일 정도로 그리스도 그 이름 가지고 깊은 기도 속에 들어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내게 각인, 뿌리, 체질 바꿔 주시는 것이구나! 보일 정도로 그리스도 그 이름 붙잡고 깊은 기도 속에 들어가시길 바랍니다. 우리에게 주신 그리스도 그 이름은 완전한 이름입니다. 유일한 이름입니다. 영원한 이름입니다. 그 이름 붙잡고 그 이름의 증인 되어지는 귀한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복음의 능력을 가진 전도 제자의 기도
1. 완전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나의 기준으로 붙잡게 하옵소서.
2. 복음을 놓치게 하는 나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게 하옵소서.
3. 기도로 망대, 여정, 이정표를 누리게 하옵소서.
|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
| 1542 | 복음의 능력 | 히9:23-28 | 2026-05-24 | |
| 1541 |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것 | 히8:6-13 | 2026-05-17 | |
| 1540 | 더 좋은 언약의 보증 | 히7:20-28 | 2026-05-10 | |
| 1539 | 이보다 더 좋은 것 | 히6:4-12 | 2026-05-03 | |
| 1538 |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 행1:8 | 2026-04-26 | |
| 1537 | 오직 그리스도 비밀 속으로 | 히6:1-2 | 2026-04-19 | |
| 1536 | 믿는 도리를 굳게 잡으라 | 히4:14-16 | 2026-04-12 | |
| 1535 |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체험하라 | 행1:3-8 | 2026-04-05 | |
| 1534 |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참된 안식 | 히4:1-11 | 2026-03-29 | |
| 1533 | 우리의 소망의 확신과 자랑 | 히3:1-6 | 2026-03-22 | |
| 1532 | 구원을 귀히 여기라 | 히2:1-4 | 2026-03-15 | |
| 1531 |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하심 | 히1:4-14 | 2026-03-08 | |
| 1530 | 아들을 통하여 말씀하셨으니 | 히1:1-3 | 2026-03-01 | |
| 1529 | 말씀 따라가는 자 | 시119:105-106 | 2026-02-22 | |
| 1528 | 나의 인생과 하나님의 말씀 | 시119:89-104 | 2026-02-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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