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영적세계를 보는 눈
2026-06-07 15: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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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7일  주일 1부 예배   신봉준 담임목사
영적세계를 보는 눈
(히11:1-3)

  
서론: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이 땅의 삶의 원리와 성경에서 말씀하는 삶의 원리가 있으며, 두 원리는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 땅의 삶의 원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것이고, 하나님 없는 것으로 각인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살고, 철저하게 살고, 잘하고 못하는 것이 이 땅의 삶의 원리입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삶의 논리를 모르면 우리도 이 땅의 삶의 원리를 따라 가게 되며, 유대인이 실패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삶의 원리는 보이지 않는 영적인 부분이며,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를 중심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에 성공하려면 보이는 것도 잘해야 하지만 영적 사실과 영적 축복에 대해 잘 알아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 이 땅에서 우리 신앙의 포인트와 중심을 어디에 두고 살아가느냐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합니다.
  
 1. 속기 쉬운 것
  가. 눈에 보이는 잘 되는 것과 응답에 빠져서 착각하거나 속지 않고, 보이지 않는 영적인 축복 앞에 서게 하옵소서(히11:38).
  나. 잘 되는 것이 전부라는 것이 사실이 아니고 현실임을 알고, 하나님이 주신 축복과 응답 속에 또 다른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하옵소서(행19:20-21).
  다. 영적인 세계의 비밀을 보는 눈을 열어주셔서, 보이는 것과 문제, 현실에 속지 않고 전체를 바라보고 실상을 보게 하옵소서.
  
 2.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
  가. 믿음을 선택할 때 오는 증거를 실상으로 붙잡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선택할 때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되고, 나라의 일로 이루어지는 축복 누리게 하옵소서.
  나. 눈앞에 응답이 아닌 그 속에 하나님의 계획과 축복이 숨어 있음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붙잡게 하옵소서(엡3:19-20).
  다. 그리스도 그 이름의 비밀을 붙잡게 될 때, 보좌의 능력이 시공간을 초월해 우리의 모든 현장에 임하는 성삼위 하나님의 역사를 누리게 하옵소서.
  
결론: 교회의 사명은 이 땅의 재앙의 역사를 막고, 네피림 문화를 바꾸는 것이 교회의 영적인 사명입니다. 우리가 축복을 받을 이유가 있다면 바로 전도와 선교가 교회의 사명임을 붙잡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재앙의 문제를 해결하고, 네피림 문화를 꺽을 수 있는 것은 영적인 사실과 영적 세계를 보는 눈이 열려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의 두려워하지 않게 되고, 성공했다고 교만하지 않으며, 안 된다고 낙심하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영적인 세계를 보는 눈이 열리면 삶이 사실적으로 되어지고, 증거 있는 증인이 됩니다. 이 축복을 가지고 우리의 모든 현장 살리는 절대 제자로 쓰임 받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6월 7일 주일 1부 예배 신봉준 목사
“영적세계를 보는 눈”
(히11:1-3)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아멘.
         히11:1-3

  ■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당신은 대로를 여는 자입니다.’, 이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은 우리는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또 때에 따라서 주님의 뜻이 무엇일까? 그 부분들도 헤아리기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 안에 거함으로 말미암아 정말로 주님께서 오늘도 주 안에 있음이 여러분 개개인에게 확인되어지는 시간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 안에 있는 자에게 결국은 하나님은 승리토록 주님께서 축복하시고, 인도하시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특별히 이번 한 주간 여러분 모든 현장에서 주 안에 있음을 확인하며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들을 날마다 누리는 우리 하나교회 모든 성도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이 땅의 삶의 원리가 있습니다. 또 성경에서 말씀하고 계시는 삶의 원리 또한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도 성경을 보면은 ‘아, 이 말씀이구나!’라는 이해하는 말씀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구원받은 사람들만 이해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먼저 전제해서 여러분 아셔야 될 것이 있습니다. 이 땅의 삶의 원리와 성경에서 말하는 삶의 원리는 다르다 라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이 땅에서 삶의 원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진 것이고, 하나님이 없는 것으로 각인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열심히 살고, 철저하게 살고, 잘하고 못하고의 논리가 이 땅에서의 삶의 원리고, 논리인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말하는 삶의 논리를 모른다면 우리 또한 이 땅의 삶의 원리를 그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는 것을 보게 되어집니다. 이미 우리 안에 하나님 없는 것으로 오랫동안 각인되어 있었기 때문에 우리도 모르게 그것이 옳은 양 따라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삶의 원리는 열심히 살고, 부지런하게 살고, 또 최선을 다해서 노력해서 살고, 그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을 알고 있느냐, 모르고 있느냐? 그것이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중요한 삶의 원리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실패했던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그들은 이 땅의 삶의 논리를 따라 철저하고, 부지런하게 열심 있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성경의 원리를 놓쳐버린 것이죠.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은 중요한 것을 아느냐, 모르느냐? 인데 그 중요한 것들을 놓쳐버리고, 열심을 내고, 최선을 다해서 부지런하게, 착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삶의 원리는 보이지 않는 영적인 부분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시면 눈에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를 중심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신앙생활에 성공하려면 보이는 것도 잘해야 되겠죠. 중요합니다, 필요치 않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영적인 사실과 영적인 축복에 대해서 잘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의 장이라고도 할 수 있죠. 구약에 성공한, 승리한 인물들을 쭉 나열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보이는 현실적인 부분들에 승리한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붙잡고, 믿음으로 승리했다 라는 사실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1절에 말씀하고 있죠. 믿음이 뭐냐? 보이지 않는 것이다 라는 것. 그런데 그게 증거가 된다 말씀 했어요. 3절에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다 했습니다. 사실은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 영적 사실과 영적인 축복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면서 신앙생활 하는 동안에 어디에 우리 신앙의 포인트를 두고 살아가느냐? 그게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예배하며 말씀 듣는 가운데서 여러분 신앙의 중심을 어디에 둬야 될 것인가? 중요한 답을 찾는 그런 축복의 시간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속기 쉬운 것
 먼저 영적인 사실을 깨닫기 위해서는 우리가 속기 쉬운 것이 있다 라는 사실을 먼저 아셔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축복과 눈에 보이는 문제들 앞에서 우리는 속기가 쉽습니다. 우리가 문제가 잘 해결될 수도 있죠. 또 우리의 일들이 계획대로 잘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일이 잘 되고, 문제가 해결되고, 눈에 보이는 뭔가가 잘될 때에 모든 것이 응답받는 것 같습니다. 나의 영적인 생활이 잘 되는 양 착각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영적으로 건강할 때, 영적으로 살아 있을 때 눈에 보이는 사실적인 응답과 축복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문제 앞에 우리는 쉽게 낙심하고, 좌절하고, 어려움에 빠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영적인 사실을 알지 못하고, 보이는 현실 앞에 서기 때문에 사실은 눈에 보이는 문제 앞에 우리도 모르게 자포자기하고, 은혜를 놓치고, 사명까지 놓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모든 믿음에 승리한 사람들은 하나의 공통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보이는 현실 앞에 선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귀중한 영적인 축복 앞에 섰던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을 히브리서 11장 38절에 보면은 세상이 감당치 못할 사람이다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일이 잘 되고, 물질이 우리 손에 잡히고, 건강과 인간관계가 잘될 때 다른 면에서 생각을 해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 자체가 어떤 면에서 허상일 수가 있다 라는 사실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의 구약에 나오는 요나, 하나님의 사명을 놓쳐버렸습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전혀 상관없이 엉뚱한 길로 도망갔습니다. 그렇다면 요나 앞에 당장 어려움이 당해야 될 것 아닙니까? 그런데 성경에는 요나가 하나님의 계획과 상관없이 가게 된 걸음 속에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가 있었더라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전혀 상관없이 살아가는데 마침 길이 잘 열려요. 그게 길이 잘 열리는 것입니까? 그게 일이 잘 되는 것입니까?
 사도행전 27장에 보면 바울이 항해를 하지 말라고 그렇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믿었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항해를 한 것이죠. 그런데 성경에 보시면 남풍이 순하게 불매 그들이 뜻을 이룬 줄 알았다 말씀했습니다. 전도자 바울은 항해를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백부장은 선장과 선주의 말을 듣고 항해를 시작했습니다. 그때 어떤 환경들이 주어졌습니까? 남풍이 순하게 불었다, 그리고 그들의 뜻이 이루어진 줄 알았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 나름대로 순풍 부는 것을 보면서 우리가 결정을 잘했구나! 라고 생각했겠죠. 그러나 얼마 안 가서 결국 유라굴로 강풍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잘 되는 것이 좋다?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그것이 사실이 아니고, 현실일 수 있다 라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응답과 축복을 받으면 그다음 그 축복과 함께 또 다른 하나님의 역사를 생각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속에 자그마한 응답을 받고 그것이 전부인 양, 부분적인 응답을 받고 그것이 전부인 양 신앙생활 하는 것들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사도행전 19장 8절부터 20절에 보면 에베소 지역에 바울이 복음 증거하는 사역에 대한 내용들이 나옵니다. 어느 정도로 엄청난 역사가 일어났느냐?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얹으면은 병이 떠나고, 악귀도 떠났다 했습니다. 그리고 마술사도 돌아오게 되어지는 엄청난 역사들이 일어났습니다. 그 에베소 지역의 복음 증거의 역사들을 한 단어로 말씀하고 있는 것이 19장 20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었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하나님이 내게 응답하셨다고, 축복하셨다 라고 거기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바울은 그 응답 속에 또 다른 하나님의 계획들을 본 것입니다. 우리의 눈은 일부분을 봅니다마는 바울은 또 다른 하나님의 계획을 보고, 전체를 바라보고 나아간 것입니다. 그 바울의 고백이 19장 21절에 “내가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그 당시에 가장 강대국이 로마입니다. 강대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재앙의 역사들이 전 세계로 수출되고 있는 그런 현장이 바로 로마에서 나오는 겁니다.
 그런데 16장에 보면은 바울이 마게도냐의 환상을 바라보게 된 거죠.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기를 원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시아에 복음 전하는 것을 막으시고, 마게도냐 한 사람이 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환상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인도를 따라서 마게도냐로 복음이 증거되어지고, 그래서 16장, 17장, 18장에 보면은 로마를 살릴 수 있는 시스템들이 다 준비되어 집니다. 그 당시에 강대국인 로마, 재앙의 역사들이 수출하는 그 로마를 살릴 수 있는 역사들, 시스템이 이미 준비되어지는 것을 바울은 보았습니다. 그래서 에베소 지역에 일어난 증거를 가지고 거기에 머문 것이 아니라 내가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라고 나간 사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받고 있는 축복과 응답은 전부가 아니라 부분일 수가 있다 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 실상이 아니라, 현실일 수 있다 라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오늘 말씀하고 있는 히브리서 11장 1절에서 3절을 한마디로 말하면 어떤 말씀입니까? 보이는 것이 전부인 양 착각하는데 거기에 속지 말라는 겁니다. 사실이 무엇이냐를 말하면서 너희들이 지금 보이는 것, 보는 문제가 다가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거기에 착각하며 속지 말라는 것입니다. 영적인 세계의 비밀을 보는 눈이 열린 자는 부분을 보지 않습니다. 현실을 보지 않습니다, 전체를 바라보고, 실상을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속지 않는 겁니다. 우리 하나교회 모든 성도들, 영적 세계를 보는 눈이 열려지는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
 그렇다면 두 번째, 무엇이 사실 실상인가? 오늘 1절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죠. 믿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다.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다 했습니다. 믿음이란 뭐냐? 여러분 바라는 것이라 했어요. 지금 있는 것이란 말입니까? 없는 것이란 말입니까? 지금 없는 것이란 말이에요. 그런데 그것이 바로 실상이란 말입니다. 분명히 지금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데 그게 사실이고, 그게 실상이란 말이에요. 그런데 반드시 증거가 나타나는 사실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실상 반대로 허상이죠. 허상은 무엇입니까? 지금 대단해 보입니다. 대단한 것을 붙잡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없는 것을 가지고 허상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여러분 지금 실상을 붙잡고 있습니까? 허상을 붙잡고 있습니까?
 믿음은 바라는 것인데 아직 내게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잡은 것이 없습니다. 바랄 뿐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우리에게 증거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들이라 말씀하고 있죠. 지금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란 말이에요. 그렇습니다, 지금 내 손에 없지만 그것이 내게 증거로 나타난다는 말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믿음이라 하고, 그것이 바로 실상이고, 사실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내게 지금 없지만은, 지금 보이지 않지만은 믿음을 선택할 때에 그게 증거고, 그게 실상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어요. 오늘 내가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무엇을 선택하게 될 때 그게 하나님의 나라로 나중에 임하게 되고, 나라의 일로 이루어지는 축복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많은 어려움과 문제와 고난과 핍박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한 사람, 한 사람은 그런 가운데 하나같이 응답받고, 승리했다 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승리했습니까? 실상을 바라봤다는 말이에요. 바라볼 것을 붙잡고, 보이지 않지만 믿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응답받고, 승리했음을 오늘 히브리서 11장에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표적인 증거로 믿음의 선진들을 이야기하고 있죠.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지 않느냐? 보이지 않는 것을 믿고 있었고, 또 실제로 바라는 것들을 붙잡고 있었는데 그들이 결국 승리했지 않느냐? 라고 믿음의 선진들을 증인으로 내세우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모든 믿음의 선진들이 누렸던 그 증거들이 어디서 왔느냐? 3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안다 했습니다. 그러면서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했습니다. 믿음의 선진들이 누렸던 참된 승리와 축복은 바라는 것들 붙잡고 있었고, 보이지 않는 것을 믿고 있었는데, 그 축복 가운데 승리했는데 그것은 어디서 나왔느냐? 라는 겁니다.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나왔다 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믿음의 선진들이 누린 기적과 응답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말씀을 통해서 말씀하고 계신다 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말씀을 붙잡는다 이야기를 하잖아요. 그런데 그 말씀을 붙잡고 있는 것이 보여집니까? 때에 따라 안 보여집니다. 제가 말씀을 붙잡고 있는지, 안 붙잡고 있는지 여러분 알 수 없어요. 우리 성도님들 중직자들도 한 사람, 한 사람 말씀을 붙잡고 있는지, 저분이 정말 말씀을 붙잡고, 기도 속에 있는지 잘 모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알고, 하나님이 알고, 마귀도 압니다. 설령 내가 모른다 할지라도 분명히 하나님은 알고 계시고, 마귀도 분명히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잘 되는 것이 잘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시길 바랍니다. 복음 안에 있는 자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엄청난 축복과 응답이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증거도 주십니다. 그 응답 받으면 그것이 전부인 양 거기에 빠지지 말기를 바랍니다. 더 큰 응답과 축복을 준비해 놓으셨어요. 바울이 이 사실을 알고, 에베소 교회에 편지를 보내면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지금 눈앞에 있는 눈에 보이는 축복, 그 수준이 그리스도 안에 주시는 그 축복의 역사와 그 수준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말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3장 19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했습니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지금 우리 눈앞에 응답이라고 생각하는 그 수준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20절에 말씀하고 있죠.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시리다.” 했습니다.
 여러분 구하는 것이 있죠. 생각하는 것이 응답되면 좋겠죠. 그러나 우리에게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욱 넘치도록 하시리란 말입니다. 우리 수준으로, 우리의 기준으로 응답받았다 할 수 있지만 하나님은 더 큰 계획과 축복을 갖고 계시다 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분명한 계획과 축복은 그 속에서도 숨어 있는 겁니다.
 요셉 한번 보십시다. 현실은 너무 어려웠습니다. 노예로 가는 가슴 아픈 일이 일어나고, 누명을 써서 감옥에 가는 억울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그 배후에, 그 후에 숨어 있는 부분들이 무엇입니까? 그 과정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중요한 일들을 진행해 나가시는 준비하시는 과정 속에 있음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현실은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 속에서도 하나님은 그것을 가지고 세계복음화를 위해서 하나님이 준비하신 축복을 누리게 하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어떤 면에서 숨겨진 부분들 속에 더 큰 축복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영적 세계를 보는 눈을 가진 자는 이 축복을 놓치지 않아요. 성경에 나오는 응답받은 모델인 렘넌트 7명들은 하나같이 문제와 환경과 현실 속에, 그 배후에 하나님의 더 큰 계획과 축복이 있음을 알았기 때문에 속지 않고, 흔들리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일을 행하실 때 눈에 비록 안 보이지만은, 또 현실은 어렵지만은 그 속에서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가신다 라는 사실입니다. 어떤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 가시느냐?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약속의 말씀을 붙잡은 사람을 통해서 결국은 승리케 하신다 라는 사실을 히브리서 11장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3절에 중요한 말씀이 나옵니다.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진짜 약속을 붙잡는 사람이 승리한다 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중요한 것은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데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능력이 보이는 것을 만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능력과 약속을 붙잡은 자가 참된 축복과 참된 영적인 축복을 받은 자입니다.
 이 비밀을 가지지 않으면 세상에서 불신자와 전혀 다를 바가 없이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불신자를 이기기는커녕 오히려 불신자들에게 짓밟히고,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인생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하루하루 고통 가운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생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눈에 보이는 세상을 정복하고, 참된 축복을 누려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불신자들에게 있지 않은 다른 비밀이 있어야 합니다. 다른 힘이 있고, 다른 눈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그 다른 것이 바로 영적인 비밀과 영적인 축복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 붙잡게 될 때 구원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 붙잡게 될 때 성삼위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말씀을 성취하고 계시고,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고 계시고, 정확하게 전도의 문을 여시게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구원의 역사를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시게 되어 있습니다. 그 성삼위 하나님의 역사를 우리가 어떻게 누리느냐? 그리스도 그 비밀을 깨닫게 될 때에 성삼위 하나님의 역사를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그 이름의 비밀을 붙잡게 될 때 보좌의 능력이 시공간을 초월해서 우리 안에 우리와 관계된 모든 현장에 임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의미의 축복은 영적인 축복입니다.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했습니다. 우리가 영적인 축복과 영적인 힘을 얻게 되면은 세상을 정복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하나교회 모든 성도들 영적인 세계를 보는 눈들이 열려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교회의 사명은 육신적인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영적인 것이 교회의 사명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의 사명은 이 땅의 재앙의 역사를 막는 것이고, 교회의 사명은 이 땅의 문화를 네피림 문화를 바꾸는 것이 바로 교회의 사명인 것입니다. 교회의 사명이 무엇입니까? 전도와 선교가 교회의 사명인 것입니다.
 우리가 축복받을 이유가 있다면은 전도와 선교 때문에 축복받을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우리가 재앙의 문제를 해결하고, 세상을 살릴 수 있습니까? 어떻게 네피림 문화를 꺾을 수 있습니까? 영적인 사실에 눈이 열려지고, 영적 세계를 보는 눈이 열려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고, 정말로 영적 비밀을 알면 조금 성공했다고 교만하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안 된다고 해서 낙심하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큰 세상 앞에도 두려워 떨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영적 세계를 보는 눈이 열리면 삶이 사실적이 됩니다. 그래서 증거 있는 삶으로 증인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했어요. 영적 세계를 보는 눈이 열려지므로 한 시대를 살리는 사실적인 삶, 증거 가진 삶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의 모든 현장을 살리는 절대 제자로 저와 여러분 쓰임 받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영적 세계를 보는 전도자의 기도
1.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인 것처럼 착각, 속지 않게 하옵소서. 
2. 눈에 안 보이지만 약속 붙잡고 승리를 누리게 하옵소서.
3. 영적 세계를 보는 것으로 삶이 사실적, 증거 있는 삶, 증인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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