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삼정을 통하는 기도
2026-11-01 15:3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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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1월 1일  주일 1부 예배   신봉준 담임목사
심정을 통하는 기도
(삼상1:9-16)

  
서론: 기도 속에서 예배한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 속에서 말씀이 들려지고, 기도 속에서 우리의 모든 시선을 하나님께 고정하는 시간임을 말합니다. 그러면 모든 근심은 사라지고,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기쁨으로 충만한 은혜를 입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말씀을 성취하시고,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며,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고 계십니다. 우리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음으로 구원받았고, 응답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오늘 한나가 올바른 기도를 하게 된 부분들을 붙잡음으로 분명한 응답을 받아야 합니다.
  
 1. 기도 응답 이전에
  가. 기도 응답이 없다고 조급해하며 기다리지 못하는 나의 불신앙이 치유되게 하옵소서.
  나. 문제와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계획을 볼 수 있는 눈을 열어주시고, 여유를 가지고 바르게 하며, 기본으로 돌아가게 하옵소서, 
  다. 하나님은 분명히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불신앙을 버리고, 믿음으로 기도로 주님 앞에 나아가게 하옵소서.
  
 2. 어떤 기도에 응답하시는가?
  가. 시대의 영적 상태를 보는 눈을 열어주셔서, 세상의 것들과 기준에 끌려가지 않고 올바른 기도를 회복하게 하옵소서.
  나. 모든 것에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음을 알고, 깊은 기도 속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고 그 음성을 듣게 하옵소서.
  다. 재앙의 시대에 다른 것 의지하도록 속이는 사단의 속임수에 속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의지하고 바라보는 자 되게 하옵소서.
  
결론: 하나님은 그리스도 언약 붙잡는 한 시대에 하나님의 소원을 가진 나실인의 응답을 예배해 놓고 한나에게 응답의 문을 막으셨습니다. 한나에게 그 괴로움의 고통이 없었다면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없었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문제 속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계획이 있으며, 안 될 때에도 안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중요한 응답을 준비해 놓고 계시는 것입니다. 지금 이 땅에는 양식이 없어서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서 갈함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해서 기갈 중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현장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문들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현장에 그리스도 말씀 운동, 그리스도 회복 운동을 일으키길 원하십니다. 이 일에 쓰임 받는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1월 1일 주일 1부 예배 신봉준 목사
“심정을 통하는 기도”
(삼상1:9-16)

9. 그들이 실로에서 먹고 마신 후에 한나가 일어나니 그 때에 제사장 엘리는 여호와의 전 문설주 곁 의자에 앉아 있었더라
10.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11.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12. 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엘리가 그의 입을 주목한즉
13.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움직이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엘리는 그가 취한 줄로 생각한지라
14. 엘리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 하니
15. 한나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16. 당신의 여종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옵소서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분됨이 많기 때문이니이다 하는지라. 아멘.
         삼상1:9-16

  ■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를 살릴 선교사입니다. 당신은 대로를 여는 자입니다.’, 오늘도 기도 속에서 예배가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말씀 들으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 속에서 말씀이 들려지고, 기도 속에서 우리의 모든 시선을 하나님께 고정하는 시간들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은 확신할 수 있습니다. 모든 근심은 사라질 것이고,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기쁨으로 충만하는 은혜를 입게 될 것입니다. 오늘 이 날이 여러분에게 최고의 응답의 시간들 되기를 다시 한번 더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난주 제목이 뭐였습니까? ‘우리가 찾아야 할 기도’입니다. 오늘 제목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찾아야 할 기도가 무엇인가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서 말씀을 성취시키고 계시고,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지금도 구원의 역사를 하나님은 이루어 가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우리는 응답을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인 것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을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분명한 응답을 받아야 되는데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한나가 깨닫고, 올바른 기도를 하게 된 부분들을 붙잡음으로 우리에게 응답의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1. 기도 응답 이전에
 먼저 첫 번째입니다. 기도 응답 이전에 우리가 해결해야 될 가장 중요한 문제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셨죠. 그래서 구원에 대한 축복이 성경 전체에 가장 많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의 축복 다음으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약속이 있습니다. 바로 기도의 축복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기도 응답 받기 이전에 우리가 해결해야 될 부분들이 무엇일까요? 우리가 빨리 기도 응답이 없다 보면은 우리도 모르게 우리 마음속에 불신앙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완벽한 것을 준비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빨리 응답이 없다고 해서 실수를 거듭하고 있는 모습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부터 완전한 축복을 예비해 놓고 부르셨죠. 그런데 당장 응답이 없고, 눈앞에 보이는 현실은 문제되어 지니까 애굽으로 피신을 가게 된 겁니다. 거기서 죽을 뻔한 일들을 당하게 되죠. 분명히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에 75세였습니다.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하겠다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그것을 붙잡고 기다려야 되는데 기다리지 못했어요. 그래서 하갈을 데리고 하갈을 취해서 그 아들 이스마엘을 낳게 된 것이죠. 그게 지금 중동 문제까지 가지고 온 부분들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결국은 100세에 하나님이 약속하신 아들을 낳게 된 것입니다. 75세에 부름 받았으니까 100세에 아들을 낳았으니까 25년 기다린 것이죠. 어떤 면에서 우리가 기도 응답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응답이 있다면 기다림의 응답입니다. 우리가 자칫 기다림의 축복을 놓쳐버리면은 불신앙에 빠져들 수 있는 것입니다. 이삭도 40세에 결혼했습니다. 이삭은 정말로 기도하는 사람이었어요. 자기 아내를 받아들이게 될 때도 기도하는 가운데 아내를 맞이하게 되었고, 20년 동안에 아들이 없었습니다. 결혼한 지가 20년 지났는데도 아들이 없었어요. 아버지와 똑같이 행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삭은 그러지 않았어요. 결국 60세 때에 바로 아들을 얻게 된 것입니다. 20년이나 기다리게 된 거죠.
 요셉은 어릴 때 세계복음화의 언약을 붙잡았습니다.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13년을 기다렸습니다. 우리는 기도 응답받기 이전에 정말로 우리의 불신앙을 해결해야 되는 것입니다. 응답받기 이전에 조급함들 때문에 생기는 불신앙의 문제가 우리에게 있는데 이것을 주의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특별히 한국 사람들의 특징이 있지 않습니까? 어디 가도 알아듣는 단어가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알아듣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어디 가도 알아들어요. 그런 조급함을 우리가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실수가 많은 것입니다. 말에도 실수가 많고, 행동에도 실수가 많은 것입니다. 조급하니까, 조금만 생각을 하면은 이익이 될 텐데 기다리지 못하는 겁니다. 
 어떤 면에서 정신이 약할수록 기다리지 못하고, 또 나이가 어릴수록 생각을 깊이 안 하고, 금방 조급함으로 행동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삶 속에 굉장한 손해가 기다리지 못해서 오고 있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우리에게 커피가 주어지면 식지도 않았는데 커피를 숭늉처럼 마시는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이에요. 아니 다 그런 게 아닌데 저 같은 경우에는 식지도 않았는데 그냥 그걸 뜨거운 줄도 모르고 마셔요. 여러분 식당에 가면 식사하고 나가면서 사탕 하나 물고 나가라고, 빨며 나가라고 사탕을 주잖아요? 그걸 끝까지 빨아먹는 사람이 있나요? 입 안에 들어가자마자 깨물어 먹습니다. 그만큼 조급하다는 말이에요. 거기서 많은 실수들을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탕을 깨물어 먹든, 커피를 빨리 마시든 그건 별로 중요치 않아요. 그런데 기도 응답이 안 온다고 해서 불신앙에 빠지는 그것 정말로 주의해야 되는 것입니다. 문제가 생겨도 조급하지 않아야 되고, 문제가 생길수록 여유 있게 되어야 합니다.
 또 하나가 있습니다. 내 생각과 성격이 전혀 바꾸지 않고, 응답만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한나가 밤낮 기도했던 것이 먼저 그런 부분들이었죠. 하나님의 큰 계획이 있는데 그건 생각지 않아요. 눈앞에 있는 작은 것만 생각하고, ‘왜 내게는 응답이 없느냐?’라고 불평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려움이 있을수록 여유 있게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어려움이 있을수록 바르게 해야 돼요. 어려움이 있을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 해요. 어려움이 있을수록 나를 돌아봐야 되고, 하나님의 큰 계획이 무엇일까? 생각하면서 나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당연히 응답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응답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기도가 계시록 8장 3절에서 5절에 보면은 하늘의 보좌에 쌓인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1장 5절부터 13절에 보면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 했습니다. 한마디로 기도하란 말이죠. 그때 하나님께서 좋은 것을 주시는데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8장 1절부터 보면은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가 나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재판관이에요. 여러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데 사람을 두려워합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재판관입니다. 그런데 한 과부가 와서 밤낮 부르짖습니다. 나의 원한을 풀어달라고 부르짖습니다. 그런데 그 원한을 결국은 이 재판관이 풀어준다 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여러분 성경에 보면은 이 과부의 원한을 들어주지 않겠느냐? 라고 말씀했습니다. 불의한 재판관이라도 그 밤낮 부르짖는 그 번거로움, 그 수고로움 때문에 그 원한을 풀어준다 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다가 포기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다 응답을 받지만 우리가 믿음으로 기도하면은 빠르게 하나님의 역사가 체험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기도에 대해서 야고보서 5장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15절에 보면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한다 했어요. 분명히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한다. 그리고 15절 마지막에 주께서 그들을 일으키시리라 말씀했어요. 그리고 16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있느니라.”, 저와 여러분의 기도가 역사하는 힘이 크다 라고 말씀하고 있어요. 그리고 17절에 말씀하고 있죠. 엘리야의 기도를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다.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말이에요. 그런데 얼마나 기도가 힘 있느냐? 안 오는 비를 오도록 기도했는데 3년 6개월 동안에 오지 않던 비가 오게 되는 역사가 일어났다 했어요. 비를 오게도 하고, 안 오게도 하는 그 엄청난 능력의 기도를 엘리야가 누렸던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정말로 불신앙을 버리고, 믿음으로 기도로 나가게 될 때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2. 어떤 기도에 응답하시는가?
 더 중요한 것은 그러면 어떤 기도를 하는 것인가? 어떤 기도에 하나님은 응답하시는가? 어떤 면에서 오늘 본론이라고도 말씀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한나를 통해서 우리에게 붙잡아야 될 기도에 대한 부분들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한나, 그 시대 영적인 상태가 어떠한 상태였는가? 지난주에 우리가 말씀을 나누었었습니다. 사사 시대에서 왕정 시대로 접어드는 그 시간 속에서 가장 암흑기 중의 암흑기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읽지는 않았습니다마는 2절에 보면은 얼마나 그 시대가 암흑기였음을 우리에게 한 단면으로 보여주는 부분이 나와요. 한나의 남편이 엘가나입니다. 사무엘의 아버지죠. 그런데 그 엘가나는 지난주에 말씀드렸습니다. 역대상에 보면은 제사장 가문입니다. 제사장 가문으로 찬양하는 가문이에요. 우리가 그냥 제사장 가문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들으니까 아 그런 것 같다 라고 생각하는데 그 당시에는 어마어마한 굉장한 배경을 가진 가문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2절에 보면은 첫째 아내가 있고, 둘째 아내가 있습니다. 그리고 한나는 아들이 없었고, 브닌나는 자식이 있었더라 했어요. 첫째 아내 한나는 자식이 없었고, 둘째 아내 브닌나는 자식이 있었더라 했습니다. 그런데 거기 보면은 한나 이름이 먼저 나오고, 브닌나의 이름이 나오죠. 2절 마지막에 보면 은근슬쩍 브닌나가 앞서게 됩니다. 브닌나는 자식이 있고, 한나는 자식이 없었더라. 우리가 그냥 볼 수 있는 성경 구절입니다. ‘엘가나가 제사장이라 할지라도 두 아내 가질 수 있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있고 없고, 있는 사람이 먼저 나오고, 없는 사람이 나중에 나오는데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게 지금 세상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거에요. 교회 안에 들어오지 말아야 될 부분들이 교회 안에 들어와 있고, 세상을 끌어가야 되는 것이 교회입니다. 세상에 끌려가는 것이 교회가 아니에요. 그와 더불어 있고 없고,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세상의 기준이 있느냐 없느냐, 그게 전부 다 기준이죠. 그리고 많이 가진 사람들, 또 많이 배운 사람들, 뭔가 성공한 사람들을 인정해 주고, 그게 세상의 기준입니다. 그런데 교회조차도 그건 기준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는 어떻습니까? 오늘날 교회도 세상 기준과 똑같은 경우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만큼 타락한 시대임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구절에 대해서 성경학자가 이런 해석을 했어요. 열매가 있어야 될 여자에게는 열매가 없고, 열매를 맺지 말아야 될 여인에게는 열매가 있게 되었다. 여러분 무슨 말입니까? 지금 많은 백성들이 열매가 맺혀야 될 삶의 자리에 있는 사람은 열매가 없고, 맺지 말아야 될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 더럽고 추한, 악한 열매로 가득 차 있는 영적 문제가 심각한 현장의 모습들을 우리에게 이 부분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라는 사실이에요. 그 시대의 영적인 상태가 어떠한 상태인가를 2절 한 절 통해서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부분들입니다.
 그런 가운데 오늘 한나는 심령의 고통함을 가지고 기도로 나아간 것입니다. 한나가 심령의 고통을 가진 부분들이 무엇 때문인가? 오늘 5절에 보면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셨다 라고 나오죠. 6절 앞에도 보면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셨다.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냥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서 이 말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같은 말을 반복한 것은 강조하는 부분들입니다. 여러분 집 안에서 우리 부모들이 자녀들 놓고 잔소리 하잖아요? 똑같은 소리들을 계속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똑같은 소리를 계속하면 자녀들은 그 말을 잔소리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부모들은 어떤 마음을 가지고 합니까? 그 부분이 중요하기 때문에 똑같은 말을 계속하는 거죠. 오늘 본문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셨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아셔야 될 것은 그 시대에 아이를 가지지 못했다 라는 것은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의 하나님 앞에 징계를 받아서 그렇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기 때문에 그렇다. 결국 첩인 브닌나가 한나를 격분하게 하고, 괴롭게 한 것이 무엇입니까? 이 두 가지 이유 때문에 한나를 공격한 겁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지 않느냐? 네가 하나님께 징계 받은 것이다. 그게 한나에게는 견디지 못하는 슬픔이었습니다. 그냥 단순히 자식이 없어서, 아들을 낳지 못해서 그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다 라는 것과 하나님께 징계받았다 라는 그 사실 때문에 그 고통이 참지 못한 거에요. 
 남편이 위로합니다. 갑절로 위로합니다. 브닌나에게 하는 것보다 갑절로 사랑합니다. 그 말도 안 먹힙니다. 그러면서 이 남편이 이야기합니다. 오늘 성경 8절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죠. 네가 내게 있어서 여러 아들보다 더 낫다 라고 이야기했어요. 남편의 간절한 그런 어떤 사랑 앞에도 한나의 영혼 깊숙한 곳에 있는 그 고독함과 외로움과 그 슬픔은 채워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한나의 깊은 곳에 단순히 자식이 없어서 어떤 면에서 외로움 가운데 빠진 것이 아닙니다. 아니 자식이 없어서라면은 왜 자식을 주면 내가 돌려주겠다 라고 했습니까? 단순히 자식이 없어서 외로움과 고통 가운데 빠진 사실이 아니라는 사실이에요. 하나님 앞에 징계받았다는 생각,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다는 생각 때문에, 그래서 견디지 못하는 슬픔으로 성전에 들어가서 통곡하면서 기도하고 나간 겁니다. 그게 오늘 본문에 나오고 있죠. 
 그런데 영적으로 무딘 엘리가 그것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이 한나에게 꾸지람을 하게 됩니다. 13절, 14절에 그 내용이 나오고 있습니다. 왜 술 취해가지고 낮부터 술 먹고 술 주정하느냐? 이렇게 나온 겁니다. 아마 그렇게 기도하다가 사실은 한나가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된 겁니다. 깊은 기도 속에 외로움과 괴로움과 고통 가운데, 슬픔 가운데 깊은 기도 속에서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가를 깨달은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계획을 깨달았던 단어가 15절에 나와 있습니다. 15절 마지막에 보면은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이다 했어요.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이니이다. 
 여러분 심정을 통한다 라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심정을 통한다. 네 마음을 내가 알고, 내 마음을 네가 안다는 말이에요. 그게 여기서 말하는 심정을 통한다는 말이에요. 다시 말하면 한나가 기도하는 가운데서 하나님의 마음을 정말로 꿰뚫게 되고, 그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 심정을 통했다 라는 기도는 무엇입니까? 그 답이 11절에 나와요. 한번 읽어보십시다.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아멘. 
 여기에 심정을 통했다는 그 기도가 11절에 나오고 있습니다. 이 어두움의 시대, 그 어둠을 끝낼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한나가 자기의 전 운명을 걸었습니다. 전 존재를 걸었습니다. 괴로움을 끌어안고, 세상의 조롱을 다 끌어안고 성소에 들어갔습니다. 개인의 처절한 아픔을 통해서 고통을 안고 기도하다가 어느 날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말씀이 끊어진 캄캄한 이 시대에 내 마음과 내 심정을 전할 말씀의 사람이 없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사람이 없어서 이 말씀이 끊어져 있구나! 이 사실을 이 한나가 깨닫게 된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이 음성이 들려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하나교회가 이 시대를 놓고 가져야 될 마음들입니다. 모든 것이 다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이 사라져서 세상은 가면 갈수록 어두움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 말씀을 전달해 줄 사람들이 없습니다. 빛 되신 그리스도만 말하면 되는데 그 말해 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문을 닫고 있고, 갈수록 교회는 결국은 힘을 잃어버리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정말로 현장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탄식하심이 여러분 있기를 바랍니다.
 마태복음 9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죠. 들과 산에 온 동네에 나가 보면서 무엇을 보았습니까? 주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모든 사람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유리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민망히 여기신다 했어요.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말씀했습니다. 저 니느웨에 가서 복음을 말하라 말씀했습니다. 한나는 니느웨가 복음 듣고 돌아오는 게 싫었어요. 그래서 다시스로 가기 위해서 욥바라는 지역에 갔습니다. 그런데 마침 이게 기회다 싶을 정도로 다시스로 가는 배가 있는 거에요. 우리는 어떤 면에서 그렇게 되어지면 ‘아, 이게 응답이다.’ 생각하겠죠. 그래서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큰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게 되었어요. 나중에 그 물고기가 토해낸 땅이 니느웨 땅입니다. 싫지만은 요나가 그 니누웨를 향해서 하나님의 복음을 말했습니다. 기쁘게 말한 게 아닙니다. 짜증스럽게 싫어하는 마음으로 이 니느웨 백성이 구원받으면 안 되는데 이런 마음을 가지고 복음을 말했어요. 하나님이 역사하신 것이죠. 왕부터 시작해서 짐승까지 굵은 베옷을 입고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어요. 하나님께서 니느웨에게 말씀했습니다. 
 요나서 4장 11절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좌우를 분별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 명이요 가축도 많다.”라고 했습니다. 그 뒤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현장을 향한 여러분의 눈이 열려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현장을 향해서 가지고 계신 마음들이 여러분 마음에 담아지기를 바랍니다. 한나 기도 속에서 아들을 주시면 이 어두운 세상과 시대에 말씀을 밝히는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내놓겠습니다 라는 말이에요. 그저 자식이 없기 때문에 자식 하나 달라고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내놓을 아기인데 뭘 달라고 합니까? 하나님의 계획을 붙잡은 겁니다.
 여러분 재앙 시대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말씀이 희귀한 것입니다. 사무엘상 3장 1절에 나오는 내용이죠. 말씀이 희귀했다는 말은 말씀을 놓친다는 말이에요. 말씀을 놓치니까 기도할 수가 없습니다. 기도할 힘도 없는 겁니다. 그러니 당연히 기도 응답도 없는 것이죠. 그리고 말씀이 희귀해서 이상이 보이지 않더라 했습니다. 이상이 보이지 않다는 말은 기도 응답이 없었다는 말이에요. 말씀이 희귀해지니까 거기에 따라오는 결과가 무엇입니까? 이상이 보이지 않는 기도 응답이 없는 것이 나오게 되고, 그 결과로 결국은 우상과 종교에서 빠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악한 사탄은 인간의 본능을 이용해요. 원래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 따라 지음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살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속에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떠나버렸습니다. 그러나 본능을 의지하는 이 부분들을 가지고 하나님 대신 다른 것을 의지하도록 했어요. 의지하는 그 본능을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 의지하게 했고, 틀린 것 의지하게 만들었고, 결국 망할 것을 의지하게 만든 것입니다. 우리 속에 우리가 하나님 속에 있어야 되는데 결국은 내 속에 하나님이 계신 것이 아니라 내 속에 내가 갇혀 있습니다. 나라는 틀 속에 내가 갇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나의 생각으로 살아가요, 창세기 3장이죠. 나의 입장으로 살아가요, 창세기 6장입니다. 나의 주장으로 살아가요. 나의 주장 가지고 힘을 냅니다. 
 여러분 진짜 내가 중요하다면은 나의 생각도, 나의 입장도, 나의 주장도 넘어서야죠. 정말로 내가 중요하다면 나의 생각과 입장과 주장 넘어서야 돼요. 그런데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니까 나를 믿는 것입니다. 나를 의지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환경을 의지하고 붙잡도록 만드는 겁니다. 누가요? 눈에 보이지 않는 악한 사탄이, 그래서 흑암의 환경과 흑암의 문화 속에 살아가게 하고, 그것을 의지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귀신 문화에 완전히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결국은 우상숭배에 빠지는 것이죠. 그 결과로 끊임없는 저주와 재앙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땅에 진짜 필요한 것이 무얼까요? 오직 그리스도만 바라보는 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 붙잡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여러분이 되셔야 합니다. 그게 이 시대를 살릴 수 있는 답입니다. 우리 후대 가운데 그리스도 붙잡고 하나님만 바라보는 그런 후대들이 일어나야 되는 것입니다. 흑암 시대를 살릴 수 있는 길은 훌륭한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니에요. 유식한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많은 종교들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정말 복음 가진 사람이 필요해요. 정말 복음 가지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한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국 한나를 통해서 그것을 원하셨어요. 그래서 심정에 고통함을 주어서 심정이 통하는 기도를 하게 된 것입니다. 거기에 하나님이 주신 답이 무엇입니까? 바로 나실인이었습니다.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그리스도 언약 붙잡는 한 시대의 하나님의 소원을 가진 나실인의 응답을 예비해 놓고 한나에게 응답의 문을 막으신 것이었어요. 안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문제 속에 하나님의 계획을 찾아내시기를 바랍니다. 한나에게 그 괴로움의 고통이 없었더라면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었겠습니까? 여러분 마음 아파 본 사람이 아파 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다 라고 하잖아요? 그 괴로움의 고통이 한나에게 없었더라면 죽어도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 문제 속에 하나님의 메시지가 숨겨져 있음을 아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안 될 때 안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때 중요한 응답을 준비해 놓고 계시는 것입니다.
 안디옥교회 혼란 때 생겨진 교회입니다. 스데반의 환란을 통해서 흩어졌습니다. 그래서 세워진 교회가 안디옥 교회입니다. 그것이 응답의 시작이었습니다. 되는 게 안 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모세, 40년 동안 미디안 광야에서 있었습니다. 그 자리가 서밋의 자리였습니다. 엘리야, 하나님의 일 속에서 낙심된 일들이 찾아왔습니다. 로뎀나무 아래에 앉아서 죽여주옵소서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하나님의 사자를 보내셨습니다. 40주, 40야를 달려갈 수 있는 힘을 엘리야에게 주었습니다. 새로운 시작이 남아 있기 때문에.
 여러분 이 땅에 양식이 없어서 주림이 아닙니다. 물이 없어서 갈함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해서 기갈 중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현장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여러분 가지시고, 기도만 하시면 하나님께서 문들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 때문에 우리를 통해서는 그리스도 말씀 운동, 그리스도 회복 운동을 일으키기를 하나님이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 일에 저와 여러분이 쓰임 받고, 우리교회가 쓰임 받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하나님과 통하는 전도 제자의 기도
1. 문제 앞에서 본질로 돌아가서 하나님을 붙잡는 믿음을 회복하게 하옵소서.
2. 시대를 정확히 보고 오직 그리스도 붙잡고 하나님 바라보는 자로 서게 하옵소서.
3. 나의 지금의 문제 속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찾아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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