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우리의 소망의 확신과 자랑
2026-03-22 13:37:58
관리자
조회수   6

유튜브

저화질

다운

MP3

녹취

요약

2026년 3월 22일  주일 1부 예배   신봉준 담임목사
우리의 소망의 확신과 자랑
(히3:1-6)

   
서론: 우리의 소망의 확신과 자랑은 어디에 있습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참 소망이요 우리의 자랑입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천사보다 탁월하시고, 모세보다 위대하신 분입니다.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셔서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해결하시고 구원하셨습니다. 구원의 확신을 놓치면 옛날, 옛 체질로 돌아가 자신의 노력과 공로로 구원을 얻는 것으로 착각해 구원을 등한히 여기게 됩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구원을 주실 수 있기에 예수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히3:1). 그리스도께 집중하고, 24 바라보며, 그리스도가 체질화 되어야 합니다. 여기에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있으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되고, 반대로 다른 것을 늘 생각하면, 흑암의 나라로 가득 차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생애의 참된 소망과 확신과 자랑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되어야 합니다.   
 1.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
  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부르심 받은 자의 정체성을 놓치지 않고, 하나님 자녀의 신분과 권세, 보좌의 배경을 날마다 누리게 하옵소서(히3:1).
  나. 세상의 것인 가짜 성공(창세기 3장 - 나), 틀린 성공(창세기 6장 - 물질), 실패할 수밖에 없는 성공(창세기 11장 - 성공)으로 속이는 사탄의 속임수에 속지 않게 하옵소서.
  다.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인 나를 그리스도께서 계획을 가지고 인도하시며(요1:12), 나를 만들어 가심에 감사하게 하옵소서(빌1:6).
  라. 죄인이었던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마9:13), 십자가에서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신 그리스도만 붙잡고, 그 언약 안에 있게 하옵소서(히9:12).
   
 2. 모세보다 뛰어나신 유일하신 그리스도
  가. 모세와 그리스도의 비교를 통해 그리스도만이 나의 주인이시며, 그리스도만이 유일하심을 붙잡고 승리하게 하옵소서.
  나. 지어진 집(피조물)보다 집을 지으신 이(창조주 하나님)가 더욱 존귀함을 알고, 그 집을 맡은 신실하신 그리스도만 자랑하는 전도자로 서게 하옵소서.
  다. 그리스도만 말하는 교회와 사람을 통해 이 땅의 재앙이 해결됨을 알고, 그리스도만 말하는 교회를 통해 그리스도만 말하는 증인 되게 하옵소서.
   
결론: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는 사람들의 삶은 소망의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히3:6). 하나님은 이 확신을 가지고 우리의 모든 현장에 그리스도만 높이고 자랑하기를 원하십니다.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리스도 이름이 짓밟힌 현장에 십자가를 자랑함으로 현장의 모든 재앙이 물러가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축복 누리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월 22일 주일 1부 예배 신봉준 목사
“우리의 소망의 확신과 자랑”
(히3:1-6)

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2. 그는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신실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이 하셨으니
3. 그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 만한 것이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
4.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5.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언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으로서 신실하였고
6.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 아멘.
         히3:1-6

  ■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를 살릴 선교사입니다. 당신은 대로를 여는 자입니다.’, 할렐루야! 은혜로운 찬양 감사합니다. 정말로 여러분 통해서 주의 이름만 높여지고, 주의 이름만 찬양하는 그런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의 평생에 그 이름을 세상에 전하는 그런 증인들로 나아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제목은 6절에 있는 말씀이죠.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소망의 확신과 자랑’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결론부터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의 자랑은 어디에 있습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참 소망이심을 믿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가 끝까지 그 이름을 높여야 될 자랑인 줄로 믿습니다.
 사실 히브리서 전체 내용을 통해서 예수만이 우월하고, 유일하고, 탁월하신 분이라는 사실들을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들까지 살펴보았죠. 그리스도는 천사보다 더 우월하신 분이다 라는 것들을 1장, 2장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3장부터 4장까지는 예수님을 모세와 비교하면서 모세보다 훨씬 위대하신 예수님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천사보다 탁월하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죽으셨죠. 그때는 천사보다 못하게 보였습니다. 그러나 살아나시고 승천하심으로 말미암아 ‘아, 예수는 우리와 같은 인생이 아니시구나!’, 깨닫게 되었고요.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이심을 증명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완전하신 대제사장이 되셔서 우리가 지은 과거의 죄, 오늘 짓고 있는 죄, 미래의 죄까지도 한꺼번에 다 해결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만 하면 우리의 모든 죄가 해결됨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 구원의 확신들을 가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구원의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가 무엇일까요? 옛날 것, 옛날 체질로 자꾸 돌아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옛날 것, 옛날 체질의 가장 중심은 무엇입니까? 자신의 노력과 공로가 구원 얻는 것에 뭔가 보탠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옛날의 것이고, 옛날의 체질들입니다.
 우리 자신의 노력과 공로가 구원 얻는 일에 있어서 뭔가 보탬이 될 수 있습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그 자체가 구원을 귀하게 여기지 못하는 겁니다. 구원을 등한히 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난주에 말씀을 받았습니다. 구원을 귀히 여기라 말씀했습니다. 오직 우리의 그리스도만이 구원을 주실 수 있는 분이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오늘 3장에는 그리스도께서는 모세보다 훨씬 위대하시고, 더 충성된 분이심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3장 1절 마지막 부분을 보면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말씀하고 있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께 집중하라는 말입니다. 골똘하게 생각하면서 바라보라는 말씀이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는 말씀입니다. 24시 그리스도를 바라보라는 말씀이 예수를 생각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로 완전 체질화되라는 말씀이 예수를 생각하라는 말입니다. 계속해서, 착실하게 우리의 마음에 두라는 것이 바로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생애 속에서 우리의 가장 중요한 것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 아닙니까? 여러분 어떠한 마음과 어떤 생각으로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고 있습니까? 그게 여러분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마음과 생각 속에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게 될 때에 어느 날 나와 관계된 모든 현장에 조용하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역사들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엉뚱한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른 것들을 늘 항상 생각하고, 틀린 것들을 생각하고 있고, 우리의 생각 속에 불신앙이 가득 찼다면 시간 가서 어느 날 보면 여러분 주위는 흑암의 나라로 완전히 가득 차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정말로 여러분 예수를 깊이 생각하는 오늘 이 예배가 되기를 바라고, 우리 생애에 정말로 참된 소망의 확신과 자랑이 예수 그리스도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
 그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1절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죠.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주님으로부터 도움을 받은 우리의 위치가 바로 하나님의 자녀 된 거룩함을 받은 형제들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보좌의 배경을 가지고 있다 라는 말이에요. 그리고 마지막에 들어가야 될 배경이 바로 보좌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 따라 지음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살도록 지음 받았기 때문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로 서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하나님을 바라보고, 예수를 깊이 생각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로서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여러분 지금 세상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다 라는 사실을 알고, 지금 세상이 어떠한 세상인가를 알게 될 때에 정말로 우리가 부르심을 받은 그 자체가 어마어마한 축복 가운데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심을 받은 자로 살아가고 있지만 지금 세상은 어떠합니까? 요한복음 16장 11절에 보면 세상 임금이 악한 사탄, 마귀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또 고린도후서 4장 4절, 5절에 보면 세상에 신이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세상 임금, 세상 신은 누구를 말합니까? 바로 사탄, 마귀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탄, 마귀가 사망의 권세를 가지고, 이 세상을 사로잡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것이 다라고 세상 사람들은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 임금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물질이 최고고, 물질이 다라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 신에게 붙잡혀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이 악한 사탄, 마귀가 결국 이 땅에 우리에게 가짜 성공을 심었고, 틀린 성공을 심었고, 결국 실패한 성공을 심은 것입니다. 우리도 모르게 우리 안에 바로 가짜 성공, 틀린 성공, 실패한 성공을 심어서 거기에 속아 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가짜 성공이 무엇입니까? 창세기 3장 사건이 바로 가짜 성공입니다. 하나님 없어도 네가 성공할 수 있다 라는 것, 하나님 없어도 네가 행복할 수 있다 라는 것. 여러분 정말 하나님 없이 성공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 없이 행복할 수 있습니까?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 따라 지음 받았습니다. 하나님 안에 있어야 될 존재입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그 자체가 행복입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그 자체가 성공입니다. 내가 뭔가를 해서 이룬 것이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 있는 그 자체가 성공이에요. 그런데 악한 사탄은 하나님 없이도 성공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다 라고 우리를 속였습니다. 여기에 모든 인생들이 속고, 거짓말에 속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정말로 살펴보면 가짜 성공에 모든 사람이 속고 지금도 살아가요. 그래서 내가 주인 되어 있어요. 나를 넘어서지 못해요.
 틀린 성공은 무엇입니까? 기준이 달라져 버린 거에요. 바로 물질 기준, 세상 기준, 육신 기준 가지고 모든 성공의 기준을 삼고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6장에 보면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봤다 했어요. 그리고 장가 갔다 했죠. 그러면서 창세기 6장에 보면 사람들이 육신이 된지라 말씀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보고, 느끼고, 판단하는 모든 것들이 세상 기준으로, 육신 기준으로, 물질 기준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들보다 좀 더 좋은 위치에 있어야 되고, 좀 더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으면 축복받았다고 합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틀린 성공입니다. 악한 사탄이 심어놓은 틀린 성공으로 말미암아 우리도 모르게 기준 자체가 흐트러진 것입니다.
 그리고 가짜 성공과 틀린 성공의 결과로 온 것이 바로 실패할 수밖에 없는 성공입니다. 그게 창세기 11장의 바벨탑 사건이죠.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는 바벨탑을 쌓고 있는 것입니다. 그게 우리 인생의 모습이고, 지금 모든 세상의 모습이 성공이면 된다 라고 바벨탑을 쌓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공에 미쳐 있어요. 정말로 성공이면 됩니까? 그 후에 일어나는 영적인 문제를 모르니까 성공이면 된다 라고 거기에 모든 사람의 생각들이 집중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어느 누구도 예외가 될 수가 없죠. 그래서 성공하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것입니다. 경쟁하고 살아남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는 결과는 무엇입니까? 우울증에 빠지고, 정신분열에 빠지고, 공황증과 환청에 빠지는 것입니다. 설명할 수 없는 영적인 문제들이 가득 차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잘못된 것이 지금 우리 안에 숨겨져 있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인 것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실 그것만큼 어리석은 것이 없어요. 정말로 여러분 인생의 주인이 여러분이 될 수 있나요? 내 인생의 주인이 내가 될 수 있나요? 뭔가 몰라도 한참 모르는 겁니다. 내 인생뿐만 아니라 또한 내 자녀들의 역사도, 내 자녀들의 인생도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없고, 우리의 가족의 역사들도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착각 가운데 살아가는 것이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인 것처럼 착각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정말로 우리 인생의 주인이 누구십니까? 여러분 두 가지 중에 하나입니다. 하나님인가, 사탄인가?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어요. 악한 사탄이 인생의 주인 되어 있으니까 운명 가운데 사람들이 빠지는 것입니다. 그 운명을 해결하기 위해서 몸부림치면서 우상숭배하게 되고, 종교를 갖기도 하고요. 그러면 그럴수록 결국은 정신적인 문제들이 오게 되어 있고, 육신의 문제도 오게 되어 있고, 우리의 후대, 내세 문제까지 오게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보내시사 그 속에서 우리를 건져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붙여진 이름이 1절에 “거룩한 형제들아.”,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저와 여러분을 구별하였습니다. 더러움과 분리된 상태로 우리를 건져내신 것입니다. 거룩한 형제들아, 이 말은 구별된 사람이란 말이에요. 바로 이것을 가지고 쉽게 말하면 성도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여러분 성도만큼 얼마나 엄청난 축복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인생 문제 속에서 저와 여러분을 완전히 구별하여 쓰신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2장 9절에 말씀하고 있죠.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다.”, 왜 그러한 축복을 주셨느냐?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귀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기 위함이라.”, 말씀했어요.
 왕 같은 제사장이라 했습니다. 인생을 멸망으로, 고통으로 끌고 가는 사탄의 머리를 깨뜨린 왕 같은 제사장이라는 말씀입니다. 모든 인생들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만나는 길을 여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면서 지은 죄들 때문에 저주와 재앙이 이 땅에 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원죄도 있고, 우리가 짓는 자범죄도 있는 것입니다. 우상숭배하는 우리 조상들의 죄도 있는 것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저주와 재앙이 이 땅에 계속 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기에서 우리를 완전히 해방시키신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건져내셨다.”, 했어요. 그렇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별하시고, 거룩한 형제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로 우리를 불러내신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 속에 하나님의 계획을 가지고 우리를 인도해 나가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 말씀하고 있죠.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 되는 권세를 주었다.”, 했어요.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순간에 내 인생 속에 하나님의 계획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래서 내 인생을 누가 붙잡고 가느냐? 여러분의 인생을 누가 붙잡고 가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을 붙잡고 계시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3장 12절에 말씀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되었다.”, 했어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인생 속에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는데,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를 만들어 가고 계시는 것입니다. 나를 만들어 갈 뿐만 아니라 끝까지 우리 인생을 책임지시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1장 6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신다.”, 말씀했습니다. 여러분은 성공 위해 몸부림칠 필요가 없습니다. 구별된 자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봐야 될 세상은 오직 그리스도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1절에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1절 마지막에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냐? 다시 설명하고 있죠. “사도시며 대제사장이 되신다.”, 했어요. 사도라는 말은 무슨 말이에요?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는 이 땅에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자입니다. 왜 보내심을 받았습니까? 마태복음 9장 13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느니라.”, 말씀했어요. 왜 하나님께로부터 예수님이 보냄을 받았습니까? 죄인 되었던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죄인 되어서 심판 당할 수밖에 없는데 그 심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것입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 말씀하고 있죠.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다. 그 이후에는 심판이 있다.”, 그리스도께서 이 심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 땅에 하나님께로부터 보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대제사장이 되신다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구약 시대에 죄를 지을 때마다 짐승을 잡아서 피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가 있습니다. 일 년에 한 번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이 짐승을 잡아서 피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가서 피를 뿌립니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가 해결받게 되는 그 예식들을 행한 것입니다. 구약의 제사는 불완전하고 반복되어지는 제사였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완전히, 영원히 해결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속죄물로 오셨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자신을 드리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9장 11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셨다.”, 했어요. 12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다.”, 말씀했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그리스도 붙잡으면 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자리에 있든지 상관하지 않습니다. 너희들이 어떻게 살다가 돌아왔는지 묻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붙잡으면 된다 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오늘 새벽에도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가 복음 안에 있느냐, 복음 밖에 있느냐? 언약 안에 있느냐, 언약 밖에 있느냐? 복음 밖에 있다면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아무리 부지런하고, 착하게 산다 할지라도 재앙의 문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부지런하고 착하게 살지 말고, 열심히 살지 말라는 말이 아니죠. 그러나 복음 밖에 있다면 결국 멸망 당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복음의 대열 속에 서야 합니다. 종교의 대열 속에 서면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유대인들을 들 수 있죠. 그들은 성경을 갖고 있으면서도 종교적인 대열에 서 있었습니다. 그들의 노력과 그들의 열심과 그들의 수고들, 그들의 삶 얼마나 철저했습니까? 그러나 결과는 어땠습니까? 그러나 좀 못하다 할지라도 복음의 대열 속에 있고, 언약 안에 있는 자들은 무조건 살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수준과 능력이 아닙니다. 복음 안에 있다면 하나님께서 복음 안에 있는 여러분을 통해서 결코 그 복음 안에 있는 귀한 축복된 역사를 통해서 자손만대에 그 축복의 증거의 역사를 드러낼 수 있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 하나교회 모든 성도들 우리에게 참된 소망의 확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가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모세보다 뛰어나신 유일하신 그리스도
 두 번째 입니다. 2절에서 6절까지 보면 모세보다 뛰어나신 유일하신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세와 그리스도를 비교하고 있죠. 그러면서 그리스도는 유일하신 그리스도이심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이 히브리 기자가 모세와 그리스도를 비교하면서 유대교에서 개종한 사람들을 유대교로 돌아오라는 회유 앞에 오직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자이심을 말하기 위해서 모세와 그리스도를 비교했어요.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돌아온, 그 개종된 자들에게 유대인들이 압력을 가했죠. 너희들이 믿는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한 구원자가 될 수 없다 라고 압력을 가한 겁니다. 그런데 히브리 기자가 모세와 그리스도를 비교하면서 너희가 받아들인 이 복음이, 이 그리스도가 진짜 구주 되심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유대교에서 복음을 받아들였지만 시간 가면 갈수록 로마 속국 상황 속에 있었기 때문에 로마의 핍박이 말할 수가 없었어요. 사람들을 잡아 가두고, 돌로 쳐죽이고 그런 핍박들이 계속되었죠. 그런 일들이 계속되어지다 보니까 믿는 사람들이 그 자리를 자꾸 이탈하려고 하는 부분들, 로마 속국 속에서 받는 핍박들이 너무나 힘들다 보니까 자기의 자리를 자꾸 이탈하려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오직 그리스도 붙잡고 끝까지 승리할 것을 말씀하면서 모세와 그리스도를 비교한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잘 알듯이 모세는 어떤 사람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지도자 중의 지도자였습니다. 어떤 면에서 어느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추앙받는 지도자가 바로 모세였죠. 신앙생활의 롤 모델이기도 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활의 근거가 율법 아닙니까? 그 율법을 시내 산에서 직접 받은 사람이 누구에요? 모세입니다. 그러니까 그 어느 누구도 모세 앞에 감히 말할 수가 없는 거에요. 그래서 신명기 34장 10절에 보면은 이 모세를 하나님과 대면한 자다 했어요. 그만큼 모세는 훌륭하고 위대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출애굽 시킨 민족 지도자였고요.
 그런데 그 모세보다도 그리스도가 더 우월하다는 것을 오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2절에 보면은 유대인들에게 불쾌감을 주지 아니하면서 모세보다도 그리스도가 위대하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신실하다 라는 것을 가지고 모세를 띄워줍니다. 여러분 우리는 내가 맞다 라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서 남을 무시하잖아요? 무조건 남의 의견들을 뭉개버리잖아요?
 그런데 오늘 히브리 기자는 유대인을 띄워주면서 신실함에는 모세도, 그리스도도 다 신실하다고 이야기했어요. 그러면서 본 의도가 나오는데 그게 3절입니다, 한번 읽어보십시다. “그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 만한 것이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 여기에 모세를 이야기하면서 집이다 했습니다.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한, 여기에 그 집은 모세를 말하고 있습니다.
 집 지은 자는 누구를 말하고 있습니까? 바로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집이란 말은 피조물이라는 뜻이고, 집 지은 자란 말은 창조주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신실함에서는 모세와 그리스도 다 신실하지만, 아무리 모세가 신실하다 할지라도 피조물이라는 사실이에요. 그러나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고, 천지 만물을 창조하실 때부터 함께 주관하셨던 그 그리스도가 창조주라는 사실을 오늘 본문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만이 유일하신 분이심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5절, 6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종으로 신실하였다. 그런데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 신실하였다.”, 여러분 종으로 신실하였다, 모세를 그렇게 말하고 있고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 신실하였다. 유대인 가운데 아들은 어떤 개념을 갖고 있습니까? 상속자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축복을 누릴 상속의 개념이 바로 아들이라는 개념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종으로 신실하였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 신실하였다고 말씀했어요.
 자, 정리를 하십시다. 집과 집 지은 자가 있고, 종과 모든 것을 상속받은 아들이 있고, 피조물과 창조주가 있다 라는 것, 그게 바로 모세와 그리스도를 비교하면서 오늘 히브리 기자가 유대인들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당시에 현장을 놓고 그리스도의 유일성이 선포된 메시지였습니다.
 어떤 면에서 지금은 어떻습니까? 복음이 없어져 가고 있습니다. 현장에 복음이 없어져 감으로 말미암아 재앙의 역사가 세계화 되어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살아날 것인데, 그리스도 유일성을 말하는 교회가 있다면 이 땅의 재앙의 문제는 해결될 것인데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붙잡은 사람이 없어요.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말하는 교회가 없다 라는 사실이에요.
 미안하지만 이러한 시대 속에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그리스도 그 유일성을 말하라고 우리를 불러주신 줄로 믿습니다. 재앙의 역사가 세계화 되어지는 현장 속에 오직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답인 것을 말하라고 우리교회를 세워주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정말로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고,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붙잡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는 사람들의 삶의 방법입니다. 6절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는 사람들의 삶의 방법은 소망의 확신을 가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소망하고 있는 그 내용에 대한 확신을 가지라는 말이에요.
 우리의 참된 소망은 어디 있습니까? 우리의 바라봄의 실체는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에 대해서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참된 소망의 확신, 그리스도에 대한 확신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거기에 머물지 말고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으라 했어요. 우리의 소망의 내용인 그리스도를 굳게 확신하고, 자랑을 끝까지 붙잡고 있으면 말씀했죠. 우리의 현장에서 그리스도만 높이고, 그리스도만 자랑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셔서 그리스도의 이름이 짓밟히는 현장 속에서 그리스도를 자랑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바울이 고백했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여기에서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라고 이야기했죠. 이것은 복음에 대한 소극적인 부분을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그 당시에 복음, 십자가는 모든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혐오의 대상이었습니다. 저주의 상징, 재앙의 상징이 바로 십자가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내가 복음, 십자가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했습니다. 그 말은 복음, 십자가를 자랑한다는 말이에요. 그리스도의 이름이 짓밟힌 현장에 사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여러분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이름을 끝까지 자랑함으로 말미암아 현장의 모든 재앙의 역사들이 물러가고,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그 축복된 역사를 세워나가는 주역으로 쓰임 받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참된 소망의 비밀 가진 전도제자의 기도
1. 그리스도로 우리를 구별하시고 불러주신 그 축복을 날마다 확인케 하옵소서.
2. 참 소망이 되신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전하는 자 되게 하옵소서. 
3. 그리스도 이름이 짓밟히는 현장에 그리스도만 자랑하는 전도자로 서게 하옵소서.

댓글

댓글쓰기 권한이 없습니다.
번호 제목 본문 설교일
1533 우리의 소망의 확신과 자랑 히3:1-6 2026-03-22
1532 구원을 귀히 여기라 히2:1-4 2026-03-15
1531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하심 히1:4-14 2026-03-08
1530 아들을 통하여 말씀하셨으니 히1:1-3 2026-03-01
1529 말씀 따라가는 자 시119:105-106 2026-02-22
1528 나의 인생과 하나님의 말씀 시119:89-104 2026-02-15
1527 말씀만이 절대적 기준이다 딤후3:13-15 2026-02-08
1526 하나님의 말씀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 시119:9-16 2026-02-01
1525 말씀에 깊은 뿌리를 내려라 출14:13-14 2026-01-25
1524 하나님의 말씀이 최고다! 눅5:1-11 2026-01-18
1523 모든 것을 넘어서 삼하16:5-14 2026-01-11
1522 대로를 열라 사62:6-12 2026-01-04
1521 송구영신예배 - 대로를 열라 사62:6-12 2025-12-31
1520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삼하6:12-23 2025-12-28
1519 성탄감사예배-임마누엘 하시려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 마1:18-23 2025-12-25
1 2 3 4 5 6 7 8 9 10 ... 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