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구원의 영광과 축복
2022-08-2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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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1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구원의 영광과 축복”
(수6:22-27)

22. 여호수아가 그 땅을 정탐한 두 사람에게 이르되 그 기생의 집에 들어가서 너희가 그 여인에게 맹세한 대로 그와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어 내라 하매
23. 정탐한 젊은이들이 들어가서 라합과 그의 부모와 그의 형제와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어 내고 또 그의 친족도 다 이끌어 내어 그들을 이스라엘의 진영 밖에 두고
24. 무리가 그 성과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을 불로 사르고 은금과 동철 기구는 여호와의 집 곳간에 두었더라
25. 여호수아가 기생 라합과 그의 아버지의 가족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살렸으므로 그가 오늘까지 이스라엘 중에 거주하였으니 이는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정탐하려고 보낸 사자들을 숨겼음이었더라
26. 여호수아가 그 때에 맹세하게 하여 이르되 누구든지 일어나서 이 여리고 성을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그의 맏아들을 잃을 것이요 그 문을 세울 때에 그의 막내아들을 잃으리라 하였더라
27.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와 함께 하시니 여호수아의 소문이 그 온 땅에 퍼지니라. 아멘.
수6:22-27

■ 축복을 선포하십시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장자의 축복으로 237 시대, 1만 명의 성도를 회복하십시다.’, 오늘 이 예배가 모두가 하나 되어서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보좌가 움직여지는 그런 예배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정말로 보좌를 움직이는 예배, 그 속에서 하나님의 모든 축복이 우리에게 임하게 됩니다. 오늘 이 예배가 우리 모두에게 정말 축복된 예배가 되기를 다시 한 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제목을 ‘구원의 영광과 축복’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의 해답으로 주신 것이 그리스도입니다. 그 그리스도를 가지고 우리는 복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복음인 이 그리스도의 비밀을 정말로 알고 누리면 누릴수록 저와 여러분에게는 완전한 응답과 축복과 열매가 나타나게 됩니다. 지금은 알 수 없을지 모르지만 내가 정말로 복음으로 시작하고 그 시작된 복음으로 말미암아 날마다 그 속에서 내가 살아가고, 그 복음의 비밀을 알고 누릴수록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우리 기준이 아니고요, 하나님이 예비하신 완전한 응답, 완전한 축복, 완전한 열매는 반드시 맺혀지게 됩니다.
정말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참된 행복이 있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찾아 살아갑니다마는 정말로 우리 인생에게 행복이 있는가? 아니 성공한 사람들일수록 정말로 내 인생이 행복이 있는가 한번 점검해 봐야 합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인 저와 여러분에게 참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있는가? 참된 행복이 없고 하나님의 능력이 내게서 나타나지 않는다면 내가 알고 있는 복음이 제대로 된 복음인가를 점검해 봐야 되고요, 또 내가 계속 복음을 듣는 자리에 있다고 해서 복음을 아는 것으로, 누리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지는 않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분명한 것은 복음의 비밀을 알고 누릴수록 우리의 배후에 엄청난 영적인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있어요. 그리고 정말 복음의 비밀을 알고 누리면 누릴수록 영적인 역사와 함께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힘을 그 복음 속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이고요, 영적인 힘뿐만 아니라 참된 치유함도 복음 속에서 주어지는 것이고요, 또 참된 내 자신을 변화시키고, 현장을 변화시키는 귀중한 응답의 역사들이 복음에서만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내가 정말로 예수가 그리스도로 그 복음의 비밀들을 알고 누리고 있는가? 지금은 열매가 없다할지라도 상관없어요. 여러분, 겨자씨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지만 그 속에 생명이 담겨져 있으니까 그게 결국은 자라서 줄기가 되고 나무가 되고 그 나무에 많은 새들이 곁들이게 된다 말씀했습니다. 정말로 내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알고, 그 복음의 비밀을 알고 누리면 반드시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축복 가운데서 많은 열매들이 맺혀지게 되어 있다 라는 사실입니다.
반대로 우리가 복음의 비밀을 알지 못하면 눈에 보이는 세상적인 것들을 기준으로 우리는 살아갈 수밖에 없어요. 나를 기준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고, 세상이 육신, 물질중심으로, 성공중심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나를 중심하고 물질중심하고 성공중심해서 몸부림치면 어느 정도 성공할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복음의 비밀을 알지 못하고 누리지 못하면 결국은 성공한 그것 가지고 세상 심부름하고, 세상 따라가고, 세상 심부름 하면서 그냥 단순히 세상 심부름 하는 것이 아니라 악한 사단의 종노릇 할 수밖에 없는 자리에 빠지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로 복음의 비밀을 알지 못하면 나도 모르게 기준자체가 틀려요. 눈에 보이는 세상 기준으로 모든 것들을 보고 그래서 세상의 좋은 것들, 세상의 훌륭한 것들이 보여지면서 오히려 세상의 것들이 매력 있어 보이지, 교회 다니고 말씀 붙잡고 기도하고 예배하고 이게 별 가치 없는 것처럼 보여지게 됩니다.
그래서 실제로 영적인 축복의 비밀을 알면 알수록, 우리가 모여서 예배하는 이 시간이 엄청난 축복의 시간인데, 이 가치를 알지 못하니까 자연적으로 예배에 대해서 등한히 여기게 되고, 결국은 교회 성도들끼리의 귀중한 만남의 축복도 누리지 못하고, 교회 축복의 비밀들을 누리지 못하니까 결국 교회에 대해서 멀리하게 되고, 교회를 점점 떠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교회를 떠나지 말라는 의미에서 말씀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모르게 영적인 상태가 세상을 좋아하다보면 당연히 결국은 교회와는 등지게 되어 있어요. 교회와는 멀어지게 되어 있어요. 그러면 교회와 멀어지는 만큼 우리에게는 어느 날, 어느 날입니다. 이미 진행되고 있는 줄도 몰라요. 그런데 어느 날 우리 앞에 영적인 문제로 드러나게 되고, 어느 날 우리 앞에 재앙의 문제가 일어나면서 그 속에 무너지고 실패하는 인생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이 시간에 짧은 시간입니다마는 하나님을 생각하고, 정말로 보좌를 생각하고 예배를 드리는 이 시간에 여러분 배후에 어마어마한 영적인 축복의 역사가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정말로 우리가 회복해야 될 부분들이 있다면 복음 그 안에 있는 영광과 축복을 회복해야 합니다. 이 사실을 알지 못하니까 나도 모르게 우리의 모든 관심이 세상으로 향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정말로 복음, 그 안에 있는 영광과 축복, 오늘 제목처럼 구원, 그 안에 있는 영광과 축복, 날마다 매일 매일 삶 속에서 이 사실을 확인하고 나가고, 한 주간 삶의 현장에서 이 사실을 또 확인하게 될 때에 우리의 영적인 배경에는 하나님이 응답할 수밖에 없는 영적 배경이 만들어져요. 그것을 가지고 영적인 시스템이다 라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정말로 우리가 찾아내야 될 축복입니다. 구원 그 속에 담겨진 영광, 그 속에 담겨져 있는 축복, 이것이 어떤 것인가? 특별히 오늘 본문을 통해서 짧은 부분들 가지고 이 본문을 통해서 구원 안에 있는 영광과 축복을 찾아냄으로 우리의 인생이 새로운 축복된 시작이 되어지는 그런 축복의 응답의 시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복음 안에 있는 축복과 영광이 어떤 것인가?
그러면 먼저 복음 안에 있는 축복과 영광이 어떤 것인가? 오늘 성경 본문에 보면 복음 안에 있는 축복과 영광이 어떤 것인가를 한 줄로 표현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25절이에요. “기생 라합이 오늘까지 이스라엘 중에 거주하였다.” 기생 라합입니다. 그런데 그 기생 라합이 오늘까지 이스라엘 중에 거주하였다. 지금 라합이 있는 땅은 여리고 땅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오늘 기생 라합에게 일컬어서 말하기를 그 라합은 오늘까지 이스라엘 중에 거주하였다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구원받은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 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게 오늘까지 이스라엘 중에 거주하였다.
여러분 정말로 우리에게 구원의 그 영광과 축복을 알면 알수록 내가 하나님의 자녀 된 축복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가를 깨닫게 되어 있어요. 오늘 기생 라합, 신분이 기생입니다. 인정받지 못한, 멸시받고 천대받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이스라엘 중에 거하는 축복, 이게 은혜이지요. 이게 구원이에요. 어떤 면에서 이 본문을 보면서 여러분 누구를 생각합니까? 우리 자신들을 돌이켜보시길 바랍니다. 우리 자신의 모습이에요. 저와 여러분이 구원받을 수 있는 어떤 조건이 있나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축복을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누릴 수 있는 그 어떤 조건들이 우리에게 있나요? 모르겠습니다마는 여러분에게는 있을지 모르지만 제게는, 제 자신을 보면 볼수록 정말로 하나님 앞에 내어놓을 것 아무것도 없어요. 죄악 투성이에요. 죄 가운데 있었고, 여전히 죄를 짓고 살아가고,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살아가는 만큼 또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지요.
앞으로 살아가는 만큼 하나님께서 내 자신으로는 안 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그리스도를 보내주시고 하나님의 약속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로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2:12절에 말씀 하고 있습니다. “그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도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누구를 일컬어서 이야기합니까? 라합이에요? 아니에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일컬어서 이야기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약속과는 상관이 없고 하나님의 언약 밖에 있는 외인으로서 실제로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그리스도 밖에 있고, 하나님 나라 밖에 있는 사람들로서 본질 상 진노의 자녀로 멸망당했고, 앞으로도 멸망가운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 신분을 하나님께서 바꾸신 거에요.
소망도 없이 살아가는 우리들 아닙니까? 그리고 하나님도 없이 내가 잘 난 줄 알고 내 노력과 내 열심히 살아가던 우리들의 모습 아닙니까? 하나님의 축복과 전혀 상관없이 살아가던 나를 하나님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주시고 긍휼을 베풀어주셔서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모든 축복을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누릴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축복의 상속자로서 우리를 불러주신 것입니다. 이게 구원의 은혜에요. 구원 속에 있는 영광이고 구원 속에 있는 축복입니다. 성경 베드로전서2:10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믿는 자리에 있는 축복과 영광이 어떤 것인가를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데, 베드로전서2:10절에 보면“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하심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할렐루야!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하심 때문에 오늘 저와 여러분 이 자리에 앉아서 보좌에 앉으신 주님 앞에 찬양할 수 있는 것이고,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그 보좌의 축복을 가지고 모든 생명들을 살릴 수 있는 귀한 자리에 저와 여러분이 세워진 것입니다.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긍휼을 얻지 못하던 우리들이 이제는 하나님의 긍휼을 얻은 자다 했어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따라서 하나님께서 이 자리에 우리를 불러 주셨고, 오늘도 아니 하나님 나라 가는 그날까지 우리에게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우리를 인도해 나가시고 축복하실 것입니다. 이 축복의 비밀들을 날마다 확인하고 누려가세요. 매일매일의 삶 속에서 지난 과거를 돌이켜보면서 내가 오늘 어떻게 이 자리에 앉게 되었는가? 그 사실을 알면 알수록 세상에서 주지 못하는 평안과 함께 감사함이 넘쳐나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정말로 지난 과거에 약속 밖에 있던 사람으로서, 외인으로서, 긍휼을 얻지 못한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사람으로서 저주 가운데 살아갔던 내 인생을 알면 알수록 하나님께서 내 인생에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를 주시고, 왜 이 자리에 앉게 하셔서 오늘 나의 삶을 무엇 때문에 살게 하시는가? 그 이유가 나오게 되어 있어요. 그 하나님의 이유를 가진 자를 일컬어서 전도자라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이유를 가진 자는 그 어떤 세력도 실패시키지 못하고, 망하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정말 우리가 찾아내야 돼요. 구원 안에 있는 그 영광과 축복, 오늘 기생 라합을 ‘오늘까지 이스라엘 중에 거주하였다’, 라합을 통해서 우리에게 구원, 그 속에 있는 영광과 축복이 어떤 것인가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함께 또 구원 그 안에 있는 영광과 축복이 어떤 것인가를 계속해서 말씀하고 있는데요. 지난 주간에 우리가 여호수아서를 통해서 지금 여리고성의 문제를 우리가 같이 살펴보았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리고성을 무너뜨렸는데 그 여리고성을 무너뜨림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뭘까요? 여리고성을 하나님이 무너뜨렸습니다. 그런데 그 무너뜨린 여리고성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게 뭘까요? 그걸 내가 제대로 안다면 내가 받은 구원, 그 속에 있는 영광과 축복이 어떤 것인가를 제대로 알 수 있어요. 여리고성을 하나님께서 무너뜨렸는데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여리고성을 돌 때에 말을 하지 않고 침묵하면서 돌았어요. 물론 오늘 본문에 10절에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지도자 여호수아의 명령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이 여리고성을 놓고 어떻게 하실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침묵하고 돌 수 있었던 이유, 그걸 찾아내야 해요. 그냥 단순히 여호수아가 명령했으니까 그 명령에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성을 그냥 돌았다?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마는, 그러나 그 이전에 여러분 우리가 무슨 이유, 또 무슨 계획을 가지고 있는 걸 알면은 거기에 말없이 돌아다닐 수 있겠죠. 순종할 수 있겠죠.
그런데 여리고성을 놓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실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침묵을 지키고 거기에 명령 따라서 돈다는 그 자체는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침묵하면서 하나님 하실 일들을 모르면서 여리고성을 돌 수 있었던 이유 중에 가장 중요한 이유가 뭘까요? 여리고성 도는 여호수아 6장에 보면은 계속해서 반복적인 단어가 나와요. 뭔 줄 아세요? 그게 바로 6-7절 계속해서 나오는 단어들인데 ‘언약궤’입니다. 다른 말로 여호와의 궤라고도 할 수 있고요. 그리고 또 궤라고도 나오고요, 또 법궤라고도 나옵니다. 여러분 아셔야 될 것은 언약궤나 여호와의 궤나 법궤는 같은 의미입니다, 같은 말이에요.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결국은 요단강을 건널 때도 언약궤를 앞세우고 언약궤를 뒤따라서 요단강에 들어갔고요. 광야 길을 걸어가는 동안에 그들이 그냥 전진한 것이 아닙니다. 광야 길을 걸어가는 한 걸음, 한 걸음을 언약궤 중심으로 돌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언약궤가 멈추었으면은 이스라엘 진영들이 전부 다 그 자리에 멈춥니다. 언약궤가 또 행진하면은 또다시 이스라엘 모든 진영의 12지파가 같이 행진합니다. 그리고 언약궤 중심으로 해서 12지파가 각각 흩어져서 진을 치고, 그 진의 모든 문들을 언약궤를 향해서 열어 놓습니다. 그러면 이 언약궤가 뭐에요? 사실 언약궤 하면 여러분 잘 아시듯이 언약궤 그 안에 담겨진 것이 세 가지죠. 하나님의 말씀을 담은 두 돌비를 언약궤 안에 담았고요. 광야로 가는 길에 먹을 것이 없어서 목말랐을 때 하나님께서 만나를 먹이셔서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인도하신다는 만나 담은 항아리가 그 언약궤 속에 담겨져 있는 것이고, 또 아론의 싹 난 지팡이가 그 언약궤 속에 담겨져 있습니다.
이 언약궤는 한마디로 말하면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 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의 상징으로서, 신앙생활에 모든 상징으로서 언약궤에요. 그 언약궤에 가장 중요한 내용과 뜻은 뭐냐?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 라는 거에요. 그래서 여호수아의 명령이지만은 실제로 하나님이 어떻게 하실 것인가를 모르면서도 그 언약궤를 가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성을 돌았던 이유는 뭐냐? 하나님이 지금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믿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 11절에 보세요. “여호와의 궤가 그 성을 한 번 돌게 하고 그들이 진영으로 돌아와서 진영에서 자니라.”, 중요한 말이죠. 여호와의 궤가 그 성을 한 번 돌게 하고, 무슨 말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는 지난날에 행하신 하나님의 언약궤 중심한 하나님의 역사들, 함께하신 역사들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 불평 없이 침묵하면서 여리고성을 돌 수 있었다는 사실. 우리에게 있어서 구원의 영광과 축복이 뭡니까?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 라는 것,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 라는 것.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불러내셨습니다. 갈대아 우르, 우상 동네에 있는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했어요.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지시한 땅’이 아니라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했어요. 불러내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끝까지 함께 하시겠다 라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지시할 땅으로 가라. 그러면서 창세기12:3절에 보면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축복하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할 것이다.”, 무슨 말입니까? 내가 함께 할 것이다 라는 약속이에요. 아브라함이 당장 우상 동네에서 빠져나왔지만 이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이 사실을 완전히 믿기 전까지는 늘 어려움 가운데 흔들리면서 고난 가운데 살아갔어요.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하신 사실이 믿어지는 순간에 하나님은 그 아브라함에게 모든 것 책임지신 사실을 보게 돼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었다.”, 창세기 39장 2절에 말씀하고 있죠. 그런데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니까 함께하시는 그 축복된 역사가 불신자 보기에도 나타났어요. 그래서 애굽의 왕 바로 왕이 창세기41:38절에 보면은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떻게 얻을 수 있느냐”, 여러분 우리가 누려야 할 축복이 있다면 구원의 영광과 그 축복인데 그 구원의 영광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있다면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라는 것, 여기에 모든 인생의 답이 내려지는 겁니다. 여러분 혹여나 지금까지 어렵고, 힘든 가운데 있었습니까?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 위해서 그걸 하나님께서 주신 거에요, 하나님이 허락하신 거에요.
모세 보십시오. 노인 모세입니다. 인생 팔십, 어떤 면에서 다 살았다 할 수 있는 모세입니다. 그런데 출애굽기 3장에 보면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났습니다. 어디에서? 가시떨기 불꽃 나무로 나타나셔서 모세에게 귀중한 말씀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전달해줘요. 그러면서 ‘내가 너를 통해서 애굽에서 너희 백성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겠다.’, 그 말을 들은 모세가 ‘내가 누군데 그 일을 합니까?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킵니까?’, 그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출애굽기3:12절에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여러분 우리 인생에 이런저런 많은 문제들이 있다면은 ‘아,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라는 사실을 빨리 붙잡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렘넌트 일곱 명들 다 어려움 가운데 그 어려움을 발판 삼고 시대의 재앙을 막는 인물들로 서게 된 축복이 어디에서 왔느냐?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 어려움과 문제들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그 모든 것들을 발판 삼아서 오히려 그들은 한 시대를 살리는 귀한 축복을 누렸다 라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의 모든 답이 어디서 내려져야 되느냐? 하나님이 나와함께 계신다 라는 것, 여러분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지금도 보좌의 능력으로 함께 하십니다. 아멘입니까? 시공간을 초월하는 보좌의 능력으로 지금 나와 함께 하세요. 여기에 인생의 답들이 내려짐으로 말미암아 여러분 정말로 여러분 구원받은 구원의 축복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가를 구원 속에 담겨진 그 영광과 축복을 찾아 누리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로 말미암아 여리고성을 돌게 했죠. 그것도 하루에 1번씩, 마지막 일곱째 날에는 7번을 돌라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마지막 일곱째 날 7번을 돌고 나니까, 일제히 고함을 치니까 여리고성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러면 하루에 1바퀴씩, 일곱째 날에는 7번, 그러면은 총 13번을 돌았죠. 그런데 13번을 돌았던 거기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여리고성을 돌게 하신 것이 뭐냐? 하루에 1바퀴씩 돌게 하고, 마지막 날 7바퀴 돌게 하는 것, 거기에 하나하나 의미를 두는 것은 아닙니다. 거기에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여리고 성을 돌면서 각자의 심령 속에, 마음속에 스스로 ‘아, 이 여리고는 무너질 수 없는 것이구나. 인간의 그 어떤 능력과 그 어떤 방법과 그 어떤 노력으로도 여리고성은 무너질 수 없는 것이구나!’, 그래서 결국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그 여리고성을 돌면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뭐냐?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도록, 이 땅에 일어난 여리고성은 내가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만 바라보게 될 때 하나님이 하신다 라는 것.
여러분, 여러분 인생의 문제가 여러분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입니까? 물론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 많겠죠. 그러나 진정한 문제는 우리 스스로 해결할 수가 없어요. 어느 날 다가오는 영적문제와 이 땅에 우리도 원치 않게 일어나는 재앙의 문제는 우리 스스로 할 수가 없어요. 어떤 면에서 빨리 깨닫는 것이 좋습니다. ‘아, 이 땅에 일어나는 모든 건 내 스스로 할 수 없는 것이구나. 내 노력으로 할 수 없는 것이구나. 내가 애쓴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닌 것이구나.’, 결국은 여리고성을 돌게 하면서 하나님께서 그걸 보도록 한 거에요.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도록, 다시 말하면 오직 그리스도만 바라보도록. 그게 우리 인생의 해답이니까, 우리의 모든 문제의 답이 하나님만 바라보는 데에서 답이 내려지니까, 하나님만 바라보도록.
혹여나 아직까지 여러분의 인생에 있어서 뭔가 모르게 여러분 자랑할 것이 있습니까? 여러분 내세울 것이 있습니까? 물론 있겠죠. 그러나 진짜 역사는 어디서 일어나느냐? ‘아, 하나님만 바라봐야 되겠구나. 정말 그리스도만 오직, 유일하게 그리스도만 우리가 바라보고, 그리스도만 누려야 되겠구나.’, 이 사실을 붙잡는 순간에 흑암의 역사가 무너져 내릴 줄로 믿습니다. 여리고성이 무너져 내릴 줄로 믿습니다. 결국 여리고성을 돌게 하신 이유는 거기에 있어요. 하나님만 바라보도록, ‘아니 우리 인간이 대단한 존재인데 무슨 하나님만 바라보느냐? 아니 네 스스로 대단한 존재가 아니냐?’ 그렇게 세상이 자꾸 부추겨요. 세상에서 모든 이론들이 그렇잖아요? ‘너는 모든 걸 할 수 있다. 네 안에 어마어마한 잠재력이 있다. 그렇게 이야기하잖아요?’ 그리고 뭐라고 합니까? 실제로 ‘네 안에 엄청난 영웅이 네 안에 있다 라는 것, 네가 모든 것들을 할 수 있는 엄청난 존재라는 것’, 그래서 3단체에서 엘리트들을 이용해서 명상이나 요가나 기 운동을 통해서 결국은 모두가 내가 할 수 있다 라는 것들로 빠져들게 만들어요. 하나님 바라보는 것 아니에요.
그러나 진정한 정말로 참된 힘과 참된 행복과 참된 축복은 여러분 오직 그리스도 될 때에 그 속에서 나와요. ‘아니 뭘 오직 그리스도냐? 우리가 대단한 존재인데’, 내가 오직 그리스도 하면은 내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 같고, 내 자신을 포기하는 것 같고, 뭔가 모르게 내가 힘이 없는 것처럼 보여집니까? 그건 잘못 알아서 그래요. 정말로 우리의 힘은 어디서 나오느냐? 오직 하나님, 오직 그리스도 될 때에 그 안에서만 참된 힘이 나오게 되어 있어요. 창조의 원리를 여러분 아시잖아요? 물고기는 물에 있어야 되고, 나무는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야 되고, 하나님의 형상 따라 지음 받은 인간은 어디에? 하나님 안에 있을 때에, 그게 강해지는 거에요. 하나님 안에 있을 때에 약해지는 게 아니라 똑똑한 사람들은 ‘하나님 바라본다? 어리석게도 이 시대에 어떻게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살아가느냐?’ 그렇게 말할지 모르지만은 ‘네가 스스로 약한 존재인 것을 인정하지 않느냐?’ 그렇게 말할지 모르지만은 아닙니다. 진짜 하나님만 바라볼 때 그 속에서 잃어버렸던 나를 회복하게 되고, 나 자신을 찾게 되고, 내가 강해지는 겁니다.
바울이 고백했어요. 빌립보서4:13절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강함이 어디서 나오느냐? 내가 능력 주시는 자 안에 있기 때문에. 시편16:2절에 시편 기자인 다윗이 고백했습니다.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나이다”, 저는 이 본문을 보면서 이 다윗이 제대로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들을 체험하고 고백한 신앙의 고백이다 라는 것,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나이다. 무슨 말입니까? 당신을 제외하면은 내게 좋은 것들이 하나도 없다 라는 거에요. 당신을 멀리하고서는, 당신을 제켜놓고서는 내게 참된 즐거움이나 좋은 것이나 행복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나이다. 반대로 말하면은 ‘주 안에서만 참된 행복이 있고, 주 안에서만 참된 강함이 있고, 주 안에서만 잃어버린 나를 찾는 참된 축복이 있다’라는 사실을 고백한 내용입니다.
혹여나 여러분 갖고 있는 문제를 여러분이 해결하려고 몸부림치십니까? 여러분이 붙잡고 있는 한 진정한 승리를 누릴 수가 없어요.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 나도 모르게 어려우니까 그 문제를 내가 붙잡고 몸부림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확신 가지고 말씀드릴 수 있어요. 여러분이 그걸 붙잡고 있는 한 해결 안 됩니다. 오히려 그 문제 속에 빠지게 돼요. 그러나 정말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시는데 그 그리스도의 손에 맡기게 될 때에 진정한 승리의 축복이 우리에게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만 바라본다? 나를 잃어버린 게 아니에요. 나를 포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약한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가 오직 그리스도 한다? 진정한 나를 찾는 것이고, 잃어버린 나를 회복하는 것이고, 내가 강해지는 비밀입니다. 문제와 사건들 속에서도 여러분이 해결하려고 몸부림치지 마시고, 내 인생의 문제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정말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완전 승리케 하시는 그리스도의 손에 여러분 문제를 맡기시길 바랍니다. 그때에 승리로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역사하시게 됩니다. 그게 구원 안에 있는 영광이요, 축복입니다.

2. 왜 하나님이 여리고를 무너뜨리라 했는가?
두 번째입니다. 왜 하나님이 여리고를 무너뜨리라 했는가? 왜 하나님이 여리고를 무너뜨리라 했는가? 간단하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여리고성은 당연히 무너져야 합니다. 그런데 왜 번거롭게 이스라엘 백성들로 말미암아 여리고성을 정탐하라 하고 그렇게 했습니까? 애굽에서 빠져나온 이스라엘 백성들 가나안 땅을 향해서 나가는 길입니다.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세계복음화를 위해서 나가는 것이죠. 애굽에서 빠져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목표로 삼는 것은 가나안 땅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으니까, 그러면 그 가는 길 여정 속에서 홍해도 일어났고, 요단도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잘 생각하세요. 홍해나 요단은 당연히 갈라질 수밖에 없는 거에요. 가나안 땅을 가야 되기 때문에, 여리고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애쓰지 않고도 사실은 여리고는 당연히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겁니다.
왜 그런데 하나님께서 여리고를 무너뜨리라 했느냐? 여기에는 하나님의 중요한 구원의 축복, 구원의 영광과 그 축복이 담겨져 있는데 무슨 말입니까? 그 여리고성 안에 구원 얻을 하나님의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하나님의 소원은 멸망이 아니라 구원입니다. 왜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고 여리고성을 돌라 했느냐? 왜 여리고성을 정탐하게 하셨느냐? 거기에는 반드시 하나님이 예비하신 하나님의 사람 있기 때문에, 그래서 오늘 22절, 23절에 보면은 거기에 라합과 함께 그의 가족들 모두를 구원하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죠. 여기에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소원은 구원이라는 것, 그리고 중요한 것은 여러분 현장과 세상을 볼 때마다 이 눈으로 현장을 봐야 그 현장을 누리게 되고, 세상을 누리게 됩니다. 현장에는 반드시 하나님이 예비하신 구원의 역사를 이루실 하나님의 사람이 있다 라는 것, 이것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오늘 현장에 보내신다 라는 것, 이것 가지고 현장을 보면은 현장을 누리게 돼요. 세상을 누리게 돼요. 이 구원의 역사를 위해서 하나님은 한 나라를 흥하게도 하고 패하게도 하고요. 이 구원의 역사를 위해서 하나님은 인간의 이 땅의 모든 역사를 총 동원해서 이루신 역사가 바로 구원의 역사에요.
그래서 이 구원의 역사를 일컬어서 디모데후서2:13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할 수 없느니라”, 주의 미쁘심으로 말미암아 오늘 우리가 구원받아 이 자리에 앉았어요.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는 그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오늘 내가 이 자리에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 이 자리에 앉아 있다 라는 사실이에요. 구원은 하나님께서 이 땅의 모든 것들을 총 동원해서 이루신 하나님의 작품이 구원이에요. 이 하나님께서 이루신 구원의 작품을 위해서 심지어 자기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어서 죽게 하시기까지 모든 피와 물을 흘리면서 우리를 구원하신 이 구원의 역사, 이게 바로 하나님의 소원이라는 거에요, 사실은. 그래서 내가 구원받은 한 사람으로 오늘 이 자리에 앉았다? 구원의 그 영광과 축복 속에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이 내게 이루어졌어요.
오늘 본문에 보면은 기생 라합, 전혀 이스라엘 백성 중에 거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아시다시피 이 기생 라합이 마태복음1:1절에 보면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그 계보 가운데 떡하니 딱 서요. 마태복음1:5절에 살몬과 함께 라합이 결혼하고, 거기에 보아스를 낳고, 그 보아스가 나중에 다윗의 조상 아닙니까? 결국은 이 라합이 기생 신분인데 기생 신분으로가 아니라 왕족으로 딱 서게 돼요. 라합 뿐만 아닙니다. 이 라합은 우리를 대표하는 사람입니다. 아니 저와 여러분을 대표하는 사람이에요. 요한복음 4장에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도 마찬가지고요. 또 세리 삭개오도 마찬가지고, 막달라 마리아도 마찬가지고, 하나같이 버려진바 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인데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하나님의 소원을 따라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로 축복을 누린 당당한 하나님의 자녀들, 여기에 오늘 내가 함께 있는 겁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치를 회복하는 그런 축복되는 응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베드로전서2:9절입니다. 한번 보십시다. 같이 한번 읽어볼까요?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상 살리라고 왕 같은 제사장의 축복을 주신 겁니다. 237 나라, 5천 종족을 살리라고 왕 같은 제사장의 축복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염려 있습니까? 걱정이 있습니까? 불안합니까? 뭔가 두려움이 있습니까? 남에게 말 못할 고민 가운데 오늘도 고통하며 눈물 흘리는 부분들이 있습니까? 그래도 여러분은 237 나라, 5천 종족을 살리라고 부름 받은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혹여나 어지러운 세상을 바라보면서 뭔가 짜증이 납니까? 그래도 여러분은 237 나라, 5천 종족을 살리라고 부름 받은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이 축복된 우리의 정체성을 가지고 이번 한 주간 구원, 그 안에 있는 영광과 축복을 찾아냄으로 여러분 걸음걸음마다 여러분 통해서 모든 현장이 살아나는 귀한 응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보좌의 축복으로 237 나라 살릴 전도자의 기도
1.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보좌의 비밀로 모든 사건, 환경, 사람을 보고 말씀이 성취되는 축복을 실제적으로 확인하는 시간이 되게 하소서.
2. 나를 보고 현장을 보며 오직 그리스도만이 필요한 절대 이유를 붙잡게 하소서.
3. 하나님의 소원인 구원의 사역을 위해서 왕 같은 제사장의 축복으로 사람과 현장을 살리는 전도제자 되게 하소서.
2022년 8월 21일 주일 1부 예배 신봉준 목사
구원의 영광과 축복
(수6:22-27)

서론 : 인생의 모든 문제 해결로 주신 복음 안에서 행복과 만족을 누리게 하옵소서. 복음의 참 맛을 알게 하셔서 힘을 얻고 치유 받으며 참된 변화의 역사를 체험하게 하소서. 이를 위해 우리 스스로 복음을 잘 알고 있는지 점검하게 하옵소서. 복음의 역사를 알고 누림으로 능력과 수준 상관없이 영적인 역사가 나타나게 하옵소서.

1. 복음 안에 있는 축복과 영광이 어떤 것인가?
가. 기생 라합과 같이 오늘날까지 이스라엘 중에 거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축복과 상관없는 사람이었으나 긍휼하심을 입어 약속 안에 있는 자로 불러주심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엡2:12, 벧전2:10).
언약궤를 통해 구원 안에 있는 영광과 축복인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나님이 함께하심으로 우리 인생의 모든 답을 내리게 하옵소서(창12:1-3, 창39:2).
나. 여리고는 절대 무너뜨릴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하옵소서.
여리고는 내 힘, 방법, 노력, 능력으로는 할 수 없기에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옵소서.
그리스도의 유일성만 붙잡고 그리스도 안에 내 자신이 있음을 알고 모든 것 할 수 있는 강함을 누리게 하옵소서(빌4:1, 시16:2).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 있음으로 참된 승리가 이루어짐을 보게 하옵소서.

2. 왜 하나님이 여리고를 무너뜨리라 했는가?
가. 하나님의 소원은 멸망이 아닌 구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옵소서.
나. 멸망이 아닌 구원받을 백성이 있기에 여리고성을 정탐하게 하옵소서.
구원받은 하나님 백성의 가나안을 향한 걸음을 통해, 모든 문제(홍해, 요단, 여리고)는 당연히 하나님께서 해결하심을 보게 하옵소서.
하나님이 하나님 자신을 부인할 수 없기에 구원을 주시기 위해서 모든 것을 다 쏟으신 미쁘심을 잊지 않고(딤후2:13) 세상과 현장을 누리게 하옵소서.
다. 지상 최고의 모든 것을 동원해서 이루신 구원의 역사를 깨닫고 누리게 하옵소서.
라합의 인생을 보며, 우리가 받은 은혜가 얼마나 큰 것인지 알게 하옵소서(마1:1, 마1:5).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우리를 위해서 행하시는 은혜의 역사, 구원의 축복을 누리게 하옵소서(사43:1).
날마다 구원의 영광과 축복을 찾아냄으로 하나님께서 보실 때 가장 가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엡1:5).

결론 : 하나님의 자녀로 구원받고 현장과 세상을 살리기 위해 주신 신분을 찾게 하옵소서(벧전2:9). 그 신분을 제대로 누림으로 왕 같은 하나님의 자녀로 세상을 살리게 하옵소서. 문제와 사건을 두고 염려하고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닌 현장을 보고 237 나라, 5천 종족을 살리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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