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전도자의 자세와 그릇
2021-06-0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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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6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전도자의 자세와 그릇”
(마28:6-10)

6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7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8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빨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음질할새
9 예수께서 그들을 만나 이르시되 평안하냐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10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아멘.
마28:6-10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너희가 그 땅을 차지할 것이라”오늘도 우리 주님께서 이끄셔서 이 자리에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귀중한 말씀을 통해서 이번 한 주간에도 여러분의 현장에서 승리할 수 있는 귀한 답들을 얻는 시간들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또 우리의 현장 속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들 가운데서 실제적으로 말씀을 통해서 귀중한 응답들을 확인하는 그런 축복의 시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전도자의 자세와 그릇”입니다. 지금 현장에서는 많은 일들과 사건과 문제들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당하는 많은 문제들도 있지만 그러나 우리가 알지 못하는 많은 문제들도 우리의 현장 속에 지금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현장 속에서 특별히 더더욱 어려운 것은 성경에 이미 예언하고 있는 것처럼 많은 영적인 혼란들이 우리 현장에 지금 실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24장에 마지막 때를 예언하시면서 내 이름으로 와서 모두가 자기가 그리스도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적그리스도가 많이 일어나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의 현장에는 참된 영적인 혼란들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고, 또 계시록에 이미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때일수록 엄청난 영적인 혼란들이 일어나면서 거기에 많은 사람들이 휩싸여서 넘어질 것을 이미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적인 혼란 가운데서 당하게 되는 문제들이 이상한 영적인 질병 가운데서 빠져나오지 못하고요, 영적인 혼란들이 일어나니까 거기에 가장 영향받는 대상이 있다면 우리의 후대들이 배웠던, 배우지 않았던 상관없이 후대들이 멸망 받는 시대가 왔습니다. 그리고 영적인 혼란 가운데서 결국은 참된 복음을 붙잡지 않으면 결국 다 넘어갈 수밖에 없는 교회를 문 닫는 시대가 지금 와 버린 것입니다. 이러한 시대 속에서 영적인 혼란, 거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그 영적인 혼란과 더불어 삶까지도 무너지는 그런 시대를 지금 우리가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대 속에서 우리가 하나님께 대한 분명한 기준이 없고 또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그 기준 속에 서 있지 아니하면 우리 자신들이 아무리 신앙생활 한다 할지라도 왔다 갔다 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방황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기준과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신 축복 된 계획들이 분명하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신 그 축복 된 계획 속에 내가 서 있다면 오히려 어렵고 힘든 혼란 가운데 있으면 있을수록 더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신 축복 된 역사들이 더 확인되어지고 더 축복 된 기도 응답들이 누려지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짧은 시간입니다마는 정말로 하나님이 우릴 향하신 기준,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신 축복 된 계획, 그것이 무엇인가를 말씀을 통해서 붙잡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제목을 “전도자가 가져야 할 자세와 그릇”입니다. 오늘 특별히 부활 이후에 제자들과 여인들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신 부분들 가지고 정말 이 한 시대에 흔들리지 않는 전도자로서 가져야 할 자세가 무엇이며, 가져야 할 믿음의 그릇이 어떤 것인가를 발견하는 그런 축복 된 응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먼저, 첫 번째입니다. 어떤 면에서 전도자가 가져야 할 자세입니다. 어떠한 자세를 가져야 하느냐? 6절에 보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것은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우연한 일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이루어졌음을 우리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말씀하시던 대로”라는 말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계획하신 바대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신앙생활에 가장 중요한 배경이 되어야 할 부분들이 있다면 모든 것은 하나님의 계획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진다는 것, 이게 우리의 신앙의 배경이 되어질 때에 당장은 우리의 보는 눈들이 달라지고요, 모든 사건들, 일들을 해석하는 것도 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 찬양대 찬양하는데 어떻게 이렇게 성령의 인도가 정확할까 하는 생각이 났어요. 주님 말씀하시면 내가 나아가리라 주의 뜻이 아니면 내가 멈춰 서리라, 이게 전도자가 가져야 할 자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지금도 이루어지기 때문에 주의 말씀대로 움직여야 하는 것이고 주의 뜻 따라서 움직여져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왜 보내졌습니까? 그냥 우연히 내던져진 존재가 아닙니다. 여러분 들풀도 하나님께서 먹이시고 입히신다고 말씀하셨고요, 공중에 나는 새조차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물며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인 저와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뜻이 없겠습니까? 여러분 지금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과 사건이 하나님이 지금 나를 이 땅에 보내신 일들을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문제 생길 때마다 어떤 일을 당할 때마다 하나님의 계획이다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것이 안 되면,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뜻을 찾지 않으면 그 문제와 일들 속에 나도 원하지 않지만, 우리 개인의 감정에 따라서 그 일들과 사건들을 대하게 됩니다. 그럼 우리 개인의 감정에 따라서 일들과 사건을 맞이하게 되면 결국 그것이 흑암이 틈타는, 사탄이 역사하는 통로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복음에 뿌리내린다 할 때에 무엇이 복음에 뿌리내린다는 말입니까?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이 우리의 삶의 기준이 되는 것을 가지고 복음에 뿌리내린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복음에 뿌리내린다는 말은 하나님의 계획이 우리의 삶의 완전한 바탕이 되는 것을 가지고 복음에 뿌리내린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우리의 모든 문제와 사건 있을 때마다 하나님의 계획 속으로 들어가게 되고, 복음에 뿌리를 내리면 내릴수록 문제와 사건과 일들이 있으면 있을수록 하나님의 계획 속에 들어가게 되고, 거기서 흑암이 꺾여지는 역사들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분이 그런 이야기를 해요. ‘저는 지금까지 아무것도 한 것도 없고, 된 것도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절망과 낙심 가운데 한날 한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물론 그럴 수 있겠지요. 지난날에 모든 우리의 삶을 살펴보면 내가 무엇을 했던가 라는 생각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한 것도 없고, 이룬 것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할 줄도 모르고 그러한 가운데 있지는 않습니까? 그럴 때일수록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계획을 붙잡아야 합니다. 내 감정 따라 들어가게 되면 거기에 낙심하게 되고, 절망하게 되고 그게 흑암이 틈타는 통로가 되어서 나도 모르게 구원받아 놓고도 구원의 축복을 다 놓치고 여지없이 무너지게 되는, 환경과 사건과 일들 앞에 무너지게 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하나님께서 새롭게 시작하시라는 것이 아닌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 할지라도, 이룬 것이 없다 할지라도, 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모습이 보인다면, 정말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면서 새롭게 시작하라는 하나님의 귀중한 계획이 그 속에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사실들이 붙잡혀 졌어요.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복음에 뿌리내리지 못하면, 우리도 모르게 순간순간마다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찾기보다는 우리의 감정 속에, 내 개인의 기준과 내 개인의 경험 속에 빠져서 우리에게 주신 그 어마어마한 축복 된 역사들을 다 놓치고, 구원받아 놓고도 불쌍하게, 어리석게도 살아가게 되는 사실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뜻이 분명히 우리에게,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지금 여러분 어떤 상황 속에 있든지 간에 하나님의 계획과 그 뜻이 여러분에게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붙잡고 나가는 겁니다. 우리의 감정을 따라서 신앙생활 하는 것이 아니에요.
예수님께서도 인간이시기 때문에 이 갈등의 부분들을 마지막 십자가 지실 것을 앞두고 많은 고민과 갈등들이 있었던 사실들을 마태복음 26장 예수님의 기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분명히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과정 속에 십자가를 지셔야 하는 사실을 알았어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인간이기 때문에 너무나 힘들어가지고 그런 어려운 고통과 고비를 말씀대로 성취되어가는 과정인 것을 확인하고 또 믿음으로 이 사건을 맞이하기 위해서 마태복음 26장에 보면 겟세마네에서 깊은 기도 속에 들어갔던 사실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기도하시는데 그 첫 번째 기도가 무엇이었습니까? 마태복음26:39절에 보면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 달라”고 기도했어요.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 꼭 십자가를 지셔야 합니다. 십자가를 안 지고는 메시야가 될 수 없습니까? 아니 십자가를 안 지고도 메시야가 될 수 있지 않습니까?’ 이런 갈등들이 예수님에게도 있었던 사실이에요. 그래서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물러가게 하옵소서”. 그런데 마지막에 어떻게 이야기했느냐?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나님의 계획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하옵소서. 이게 예수님의 갈등 속에서 자기의 원하는 대로 자기의 감정에 빠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계획대로 이루어지기를 기도한 사실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현실적인 어려움들을 당하게 되면 당장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기도하게 되지요. 누구나 기도하게 됩니다. 그리고 현실적인 어려운 문제와 고통당하는 사건을 당하면 또 참기도 하고요,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을 고통 속에서 찾으려고 몸부림칩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다가 안 되면 어떻게 합니까? 꼭 이것을 내가 당해야 하는가 그런 생각들조차도 듭니다. 꼭 이렇게 해서라도 하나님이 나를 축복하셔야 하는가 이런 마음들이 없지 않아 있잖아요. 하나님이라면 이런 문제와 고통 없애서 우리에게 그냥 축복 주실 수 있는데, 꼭 이렇게 해서라도 하나님이 나를 축복하셔야 하는가 이런 생각들이 들 때도 있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두 번째도 기도했습니다. 뭐라고 했습니까? 26:42절에 보면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갈 수 없겠습니까?” 무슨 말이에요? 내가 이 잔을 안 마시고, 다시 말해서 십자가를 안 지고 메시야 될 수 있지 않습니까? 이 부분들입니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또 이야기합니다. 꼭 기도 끝에 붙인 것이 있다면,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믿음의 자세에 대한 가장 중요한 열쇠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계획대로 되기를 원하는 것, 이게 전도자가 가져야 할 귀중한 자세인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어떤 자세로, 내가 어떤 그릇으로, 어떤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가느냐 너무나 중요합니다. 문제와 사건을 놓고서 내가 어떻게 그 문제와 사건을 이해하고 해석하느냐? 너무나 중요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복음에 뿌리내리지 아니하면 그런 부분들 통해서 자꾸 사탄이 틈타는 통로가 나도 원치 않지만 열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무엇인가 하나님의 계획보다도 순간순간 내 욕심과 감정과 내 생각과 내 뜻대로 떨어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전혀 다른 생각과 함께 다른 행동으로 바꾸어지게 되어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내 생각과 내 계획 가지고 살아가게 되면 어느 정도까지는 될 수 있겠지요. 세상에서 그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러분 성공해야 한다고 세상에서 가르치고 있어요. 그래서 공부들 하잖아요. 그리고 거기서 좀 똑똑한 사람들은 그래도 내 것을 가져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것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내 것 가지고는 반드시 한계가 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6장을 통해서 우리에게 고민과 갈등들 가운데서, 십자가를 져야만 하는 고민과 갈등들 가운데서 세 번째 기도의 마무리도 그렇습니다.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내 뜻대로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전도자로서 가져야 할 귀중한 자세 중의 자세가 있다면 모든 것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뜻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이게 전도자로서 가져야 할 가장 귀중한 자세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떤 인간의 감정과 느낌과 생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것은 누가 뭐래도 하나님의 뜻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집니다. 내 생각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되는 겁니다. 세상의 여러 여론과 이론과 여러 가지 사상들, 세상의 이런저런 소문들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항상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가?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붙잡는 것이 전도자가 가져야 할 가장 귀중한 자세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하나님의 뜻은 아무도 가로막을 자가 없습니다. 기어코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져요. 내 계획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에요.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어지고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져요. 그렇다면 일찌감치 순종하는 것이 좋습니다. 욥기23:13-14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능히 돌이키라 그의 마음에 하고자 하는 것이면 그것을 행하시나니 그런즉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 욥이 너무나 잘 알았지요. 그가 뜻하신 것은 아무도 돌이킬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그 마음에 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어코 행하신다 라는 것, 욥이 어려움 가운데서 깨달은 부분들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붙잡아야 할 부분들이 있다면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는 것, 이게 바로 전도자가 가져야 할 가장 귀중한 자세인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 말씀하고 있지요. “말씀하신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여러분 예수님께서 고통당하시고 괴로움을 당하셨습니다. 어떤 면에서 십자가에 죽으심 앞에는 사탄에게 조롱받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당할 만큼 당하도록 그대로 두셨습니다. 결국은 죽으셨습니다. 결국은 십자가에서 온갖 수모와 고통을 다 당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가서 다 완성하시고 예수님께서 고백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다 이루었다”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완전히 성취되었다 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당하는 사건과 일들 속에서, 문제들 속에서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계획하신 바들을 끝까지 하나님이 이루십니다. 이루다가 그만두지 않아요. 계획하신 것을 그만두지 않습니다. 기어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과 축복은 하나님이 이루시게 되어있어요. 그래서 빌립보서1:6절에 보면 “너희 속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어렵고 힘들 때에, 분명히 문제 생기고 어려울 때에 하나님은 하나님의 계획하신 바들을 그대로 이루시기 때문에 그 하나님의 계획 하신 바를 말씀 속에서 붙잡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주일이 있는 것이고요, 하나님께서 주의 종들을 왜 세우셨습니까? 여러분이 언약의 백성들로서 문제와 사건과 일들과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말씀 속에서 찾아내라고 하나님께서 주일을 허락하신 것이고, 주의 종들을 세우신 것이고, 강단을 통해서 주의 말씀을 여러분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다면 굳이 여러분, 이 자리에 올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여러분 주일날 와서 주신 약속의 말씀을 붙잡지 않고 돌아간다면 예배 올 필요도 없는 것이고요, 가장 어리석은 일 중에 어리석은 일은 뭐냐? 축복 된 예배 자리에 왔으면서도, 언약의 하나님이 언약의 백성들에게 말씀을 주시는 귀한 자리에 왔음에도 불구하고 말씀을 담지 않고 나가는 것, 어리석은 일 중에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러나 진짜 하나님의 사람들은 문제와 사건과 일들 속에서, 하나님이 주신 말씀 속에서 답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 무엇인가 찾아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어떤 문제와 사건이 있다 할지라도 그 문제 속에서 답을 말씀을 통해서 찾아내기 때문에 그러한 자들은 흔들리지 않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일 날 주시는 말씀 붙잡고 이분들은 현장에서 문제와 사건 당할 때마다 그 말씀의 성취를 확인하기 때문에 그때그때마다 믿음이 자라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카톡을 보내주셨어요. ‘목사님, 지금은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는 시간들입니다. 갑자기 당한 일들 때문에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는 시간들입니다. 또 앞으로 어떻게 이 문제가 해결될 줄도 모르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그런 나에게는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 답이 있기 때문에 오늘도 강단을 통해서 말씀을 기다리겠습니다’ 어저께 저한테 문자가 왔습니다. 오늘도 강단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내가 당하는 이 문제의 답을 어떤 부분들로 주실 것인가, 거기에 대한 답을, 강단을 통해 주신 답을 기다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언약의 말씀을 통해서 한 주간 일어나는 문제와 사건과 어려움과 고통 속에 해결할 수 있는 답을 말씀을 통해서 주시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주일날 올 때마다 여러분 정말로 여러분의 현장을 놓고 말씀을 받으시고, 이 말씀 가지고 미리 일어날 현장에 대한 부분들도 기대하시고, 상상하시고 나가시면 됩니다. 그러면 어떤 문제와 사건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갑작스럽게 일어난 현장의 일이라 할지라도 이미 내게는 말씀이 담겨져있기 때문에 문제와 사건 속에서 흔들리지 않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우리 인생 전체에 대한 귀중한 답을 주시고, 또 한 주간, 한 주간에 대한 답을 주시고, 순간순간에 대한 답을 하나님께서 분명히 우리에게 주시게 되어있습니다.
전도자가 가져야 할 자세가 있다면 “그의 말씀하시는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주님이 말씀하시면 우리는 움직이면 되는 겁니다. 주님께서 멈춰서라면 우리는 멈춰서면 되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되어지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계획대로 되어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생각대로 되는 줄 아십니까? 아닙니다. 아무리 여러분 생각하고, 아무리 여러분 계획한다 할지라도, 여러분 생각과 여러분 계획대로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땅의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계획대로 되어집니다. 그래서 말씀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뜻을 찾아냄으로 이번 한 주간 여러분 걸음걸음마다 이 말씀 성취의 축복을 누리는 귀한 축복 된 응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갈릴리로 가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두 번째입니다. 전도자가 가져야 할 믿음의 그릇이라 할까요? 오늘 10절에 보면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갈릴리로 가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사실 제자들은 두려움과 공포 가운데 빠져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간절히 사모하던 여인들이 먼저 예수님을 뵈었습니다. 그 예수님께서 “평안하냐?” 라고 물으시면서 10절에 보면 “갈릴리로 가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갈릴리로 가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무슨 말입니까? 답부터 말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있는 현장 속에서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만나고, 누리라는 말입니다. 여기에 갈릴리는 제자들의 처음 부름받은 그곳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처음 만나서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역사 속에, 그 축복 된 역사 속에 들어오게 된 배경이 갈릴리입니다. 그런데 이 갈릴리로 가라 하는 것은 현장으로 돌아가라는 그 이야기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들이 죽음과 멸망에 처해있던 현장, 사단의 저주 속에 빠져있던 그 현장으로 돌아가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는 그 어느 누구도 마찬가지입니다. 잘 사는 것 같지만, 아닙니다. 창세기 3장과 6장과 11장 그 현장 속에 빠져있습니다. 행복한 것 같지만, 행복하게 보이는 것뿐이지 모든 사람은 창세기 3장과 6장과 11장 그 속에 빠져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 갈릴리 현장은 어떤 현장입니까? 인생의 12가지 문제, 사단의 전략으로 붙잡고 있는 12가지 문제 속에 빠져있는 그 현장으로 가라 입니다. 그 현장에서 그리스도께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셨음을 확인하고, 그 현장에서 다시 살아나셔서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는 그 부분들을 확인하고, “다 이루었다” 선언하신 그 그리스도를 갈릴리, 다시 말하면 여러분 속한 그 현장에서 확인하고, 체험하고, 누리라는 사실입니다. 갈릴리로 가라 이 말은 옛날로 돌아가라는 말이 아니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원히 만나고, 그분과 함께 임마누엘 하며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삶의 역사는 내 직장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내 산업 현장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내 모든 삶의 현장 속에서, 모든 문제와 사건 속에서 확인 되어진다 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갈릴리로 가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이 말씀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흔히 신앙생활을 잘못 생각하면 예수 믿는 것들을 세상과 동떨어진 그런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현실과 동떨어진, 세상에 담을 쌓고 살아야 하는 그런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착각입니다. 그게 아닙니다. 마태복음 17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변화산 상에서 변화된 모습을 보고 베드로가 뭐라고 했습니까?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습니다” 너무나 영광스러운, 변화된 주님의 모습을 보고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습니다. 베드로가 그 이야기를 하면서 뭐라고 했습니까? ‘여기서 하나는 주님을 위해서 초막집을 짓고, 하나는 모세를 위해서, 하나는 엘리야를 위해서 초막집을 짓고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더 낫습니다’ 이야기했습니다. 어떤 면에서 신앙생활을 여러분 착각하면서 현실 도피적인 신앙생활로 하고 있는 분들, 그게 바로 베드로과에 속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갈릴리로 가라 그 속에서 나를 보리라” 무슨 말입니까? 지금 나의 현장 속에서, 나의 현실 속에서 그리스도가 내 인생의 모든 문제 해결했음을 체험하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모든 문제 해결하고, 그 속에서 이겨나가고 승리하시는 그 사실을 붙잡으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나 우리에게 주신 기도응답이나 우리에게 주신 전도는 여러분 삶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많은 분들이 말씀 따로, 내 삶 따로, 기도 따로, 내 삶 따로 살아가는데 그게 아닙니다. “갈릴리로 가라 그 속에서 나를 보리라” 오늘 부활하신 주님께서 부활 이후에 구체적으로 참 복음의 성격이 무엇인가를 제자들에게 말씀하고 있는 부분들인데 현실, 삶 속에서 말씀, 기도, 전도가 되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현실 속에서, 삶 속에서 말씀과 기도와 삶이 되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오늘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구체적으로 말씀하신 복음의 성격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여러분, 여러분 삶 속에 말씀이 끌어져 들어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로따로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삶 속에 말씀으로, 삶 속에 기도로 끌어져 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생활과 사건 속에서 말씀이 함께 하시는 그 축복 된 역사들을 누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날마다 말씀 받을 때 마다 그냥 말씀을 받는 것이 아니고 여러분 말씀을 기록하는데 왜 기록합니까? 그냥 할 일 없어서 말씀 기록하는 것이 아니잖습니까? 그 말씀을 기록하고 그 말씀 속에서 기도제목들을 찾아내고, 그 말씀을 한 주간 묵상하면서 그 말씀이 나의 삶의 생활 속에 끌어 들어오게 하기 위해서 말씀을 붙잡는 것이 아닙니까? 그게 “갈릴리로 가라 나를 보리라” 그 말씀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갈릴리로 가라, 거기서 누구를 봅니까? 거기서 나를 보리라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복음을 바르게 깨달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체적으로 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본다는 것은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우리의 생활의 현장에서, 사건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체적으로 보는 것입니다. 이 사실이 안 되면 우리 신앙생활은 늘 붕 떠 있는 신앙생활이 되어집니다. 사실화 되어져야 할 신앙생활이고 구체화 되어져야 할 신앙생활인데 우리도 모르게 여러분 어느 날부터인가 모르게 신앙생활이 여러분 사실화 되어지고, 구체화 되어지지 못하니까 다른 종교들에게 모든 것 다 빼앗겨 버렸습니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은 사실화 되어지지 못하고, 구체화 되지 못하니까 모든 힘들을 다 잃어버리고 살아가고 있고, 아무 힘도 없습니다. 여러분 기도만 해도 그렇습니다. 3단체는 아예 구체적으로 접신 시킵니다. 귀신 들리게 만듭니다. 불교에서는 구체화 시키고 사실적으로 시키는데 108배 하도록 만듭니다. 얼마나 구체적입니까? 여러분 묵주 돌리고, 염주 돌리고, 전부 다 한 가지 예로 기도만 봐도 다른 모든 종교는 구체화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교회, 기독교 만은 구체화 되지 못하고, 사실화되지 못하고 붕 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실 중의 사실, 구체화 되어야 할 것이, 또 현실의 삶 속에 가장 실제적인 것이 바로 복음이요, 실제적인 것이 우리 인생의 12가지 문제로 붙잡힌 사단의 현장인데 이 사실을 다 놓치고 있습니다.
여러분 “갈릴리로 가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인생의 12가지 문제 있는 현장이 여러분 그냥 이야기처럼 보여집니까? 우리에게 실제 아닙니까? 우리의 삶의 구체적인 부분들 아닙니까? 그 문제를 해결한 그리스도가 성경에만 나오는 이야기입니까? 아니 동화책에 한 번 나오는 이야기입니까? 옛날 우리가 들었던 이야기입니까? 지금 현장에 가장 필요한 것이, 실제적으로, 구체적으로 필요한 것이 그리스도 아닙니까? 우리 인생에 사단의 12가지 전략 속에 빠진 인생의 문제가 구체적인 것을 알면 알수록 거기서 빠져나오는 유일한 답은 그리스도라는 사실이 구체화 되어야 하는데 여러분, 이 사실을 다 놓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는 참된 제사장으로 오셔서 저와 여러분이 죄로 인해서 저주와 재앙 받을 부분들을 십자가 형벌 받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저주를 십자가에서 끝내셨습니다. 여러분 누리지 못해서 그렇지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저주를 그리스도께서 끝냈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해방입니다. 로마서8:2절에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다”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참 왕으로 오셔서 우리 인생을 끊임없이 저주 가운데 몰고 가는 사단의 머리를 깨뜨려버리신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일서3:8절에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함이라”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지난날 살아온 과거의 상처들, 현실 문제에 속아서 그렇지 제대로 알고 영적인 싸움만 싸우게 되면 여러분 영적으로 승리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15:57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했습니다.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영적 싸움을 싸우게 될 때에 우리에게 승리가 와지게 되어있습니다. 누가복음10:19절에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우리에게 주셨다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어떤 현장의 문제와 사건 속에 있든지 간에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내게 주어진 왕권 가지고 영적 싸움을 싸우게 되면 저와 여러분은 무조건 승리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참 선지자가 되셔서 우리에게 영원한 길이 되시고, 참 선지자가 되셔서 우리에게 영원한 진리가 되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이 되셨습니다.
이 세 가지, 참된 제사장, 참 왕, 참 선지자 이 세 가지를 한목에 일컬어서 그리스도라고 이야기하고, 이 그리스도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유일한 복음으로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4:12절에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했습니다. 이 그리스도를 유일한 복음으로 주셨을 뿐만 아니라 다른 것이 더 필요치 않는 완전한 복음으로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2:2절에 보면 바울이 고백했습니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했습니다. 왜냐면 그리스도가 완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지금 세상에서 어떤 일을 당해도 상관없습니다. 혹여나 가난해도 상관없습니다. 또 넘어져도 상관없습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 해도 상관없습니다. 그 모든 것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증거 주셔서, 증인으로서 승리토록 하시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인생의 현실적인, 구체적인 문제가 인생의 12가지 사단에게 붙잡힌 문제라면 그 문제를 해결한 유일한 이름 그리스도는 참된 왕으로, 참된 제사장으로, 참된 선지자로 지금도 내게 사실적으로, 구체적으로 역사하는 실제적인 이름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모든 사건과 문제 속에서 임마누엘로 함께 하시는 그 축복의 비밀이 아니면, 이 그리스도, 임마누엘의 축복 아니면 그 어떤 인생도 우리의 삶의 의미는 아무 의미 없는 것이고, 이 그리스도 실제적인 역사들을 알지 못하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그 존재가 사실은 아무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문제와 사건 속에서든지 저와 여러분이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리스도가, 그리스도의 역사가 내 안에 있느냐? 입니다. 어떤 어려움과 문제 속에서든지 우리가 먼저 확인해야 할 부분들이 있다면 그리스도의 역사가 내 안에 있느냐? 입니다. 우리가 사람을 보고, 대하고 느끼는 것도 그리스도로 봐야 하고, 문제와 일들을 대하고, 보고, 느끼는 것도 그리스도로 봐야 하고, 어떤 방향을 세울 때에, 또 그 방향에 우리가 따르고자 할 때에도 다른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방향을 세우고, 그리스도로 봐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 우리의 삶의 작은 부분들도 참된 가치 있는 삶으로 하나님의 작품을 남기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모든 것들을 그리스도로 보게 될 때에 거기서 그것이 내게 체질이 되어지면 그때 오는 것이 있다면 바로 누림인데 어떤 누림이 옵니까? 빌립보서4:6-7절입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모든 일들과 사건들 속에서 그리스도의 눈으로 보게 될 때에 모든 삶의 가치가 회복되게 되어있고, 반대로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놓치면 아무 삶의 의미가 없습니다. 존재해도 존재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그리스도를 가지고 모든 것들을 보면 여러분 우리의 삶에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한다 할지라도 그 작은 것이 작은 것이 아니라 참된 삶의 가치 있는 것이 되어지고, 그 속에서 완전히 체질이 되어지면 아무것도 염려하지 않게 됩니다.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뢸 수 있게 되고, 그때 나오는 응답이 마음과 생각을 하나님이 지켜주시는 그 축복 된 응답 속에 들어가게 됩니다. 우리의 참된 믿음의 그릇은 무엇입니까? 현장 속에서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게 전도자가 가져야 할 믿음의 그릇입니다.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여러분, 이 땅의 모든 것들은 나의 생각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획으로 되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게 전도자가 가져야 할 자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가져야 할 믿음의 그릇이 있다면 현장 속에서 그리스도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게 전도자가 가져야 할 믿음의 그릇입니다. 이번 한 주간 여러분 모든 걸음걸음 속에서 참된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짐을 보는, 그런 축복 된 걸음들이 되시고, “갈릴리로 가라 그 속에서 나를 보리라” 우리의 모든 실제적인 삶의 현장 속에서 그리스도가 참 왕이요, 참 제사장이요, 참 선지자로, 지금도 나에게 역사하시는 그 사실을 체험함으로 승리케 되어지는 귀중한 전도자의 걸음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1년 6월 6일 주일 1부 예배 신봉준 목사
전도자의 자세와 그릇
(마28:6-10)

서론: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어려운 사건과 문제들이 계속해서 일어나는 말세시대 입니다. 영적질병 시대, 후대멸망 시대, 교회 문 닫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분명한 기준과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신 분명한 기준이 확실하다면 어려울수록 응답을 누리게 됩니다. 이것이 전도자로서 가져야 할 자세와 믿음의 그릇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부활 이후에 제자들과 여인들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신 부분입니다.

1.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마28:6)
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 – 말씀대로 이루어졌음
(1) 말씀대로 =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계획하신 바대로 => 모든 사건, 일 보는 눈이 달라짐
(2) 왜 이 땅에 보내어졌는가? => 하나님이 나를 이 땅에 보내신 일들을 모든 사건과 일들로 이루고 계심
(3) 문제가 생길 때 ‘하나님의 계획이다’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 안되면 사탄이 틈타는 통로가 됨
(4) 복음에 뿌리내린다 = 하나님의 계획이 우리의 삶에 기둥이 되고, 완전히 바탕이 되는 것
나. 예수님도 인간이시기에 – 갈등이 예수님이 기도하시는 중에 드러남
(1) 분명히 예수님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과정 속에 십자가에 죽으셔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음
(가) 어려운 고통과 고비를 하나님의 말씀대로 성취되어가는 과정임을 알면서도 너무나 힘들었음
(나) 믿음으로 이 사건을 맞이하기 위해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심(마26:39)
(2) 두 번째 기도(마26:42) = 어떤 자세, 어떤 그릇, 어떤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느냐?
(3) 세 번째 기도 = 확실하게 예수님이 어떤 자세로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심
=> 하나님의 계획은 가장 선하고 완전한 계획, 기어코 이루어짐 = 일찌감치 맡기고 순종(빌1:6, 욥23:13-14)
다. 오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마28:6)
(1) 우리가 당하는 일들과 사건 속에서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계획하신 것을 다 이루심(빌1:6)
(2) 어렵고, 힘들 때에 문제가 생길 때에 말씀을 붙잡는 것 = 하나님의 계획을 말씀을 통하여 알려주심
=> 주일날 강단 말씀을 현장에서 확인해보시라! 말씀을 하나님의 계획을 붙잡고 시작하는 한 주간!

2. 갈릴리로 가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마28:10)
가. 하나님이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셔서 하신 말씀이 “갈릴리로 가라 – 거기서 나를 보리라”
(1) 제자들이 예수님을 처음 만나서 예수님의 놀라운 역사, 축복 속에 들어오게 된 배경이 갈릴리
(2) 그런데 이 갈릴리로 가라는 것은 현장으로 돌아가라는 이야기(죽음, 사탄, 저주 속에 빠져있던 현장)
(가) 그리스도께서 모든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심, 다 이루었다 하신 그 예수님을 현장에서 확인하라는 것
(나) 현장으로 돌아가라는 것은 옛날로 돌아가라는 말이 아님 => 내 삶, 직장에서 임마누엘의 역사 확인
(3) 우리가 흔히 신앙생활 잘못하면 현실과 자꾸 멀어짐 = 도피적인 신앙생활(마17:1-9)
(4) 부활 이후에 참 복음의 성격이 무엇이냐? = 말씀, 기도, 전도가 내 삶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
(5) 말씀 들을 때 기록, 일주일 동안 기도제목을 잡고, 현장에서 확인하며 살아가는 것
나. 갈릴리로 가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복음을 바로 깨달을 수 있음)
(1) 예수 그리스도를 본다는 것은 삶, 생활, 사건 속에서 보는 것임 = 기독교만 사실적, 구체적이지 않음
(2) 그래서 부활하신 주님께서 갈릴리로 가라 = 모든 문제 해결자 체험(요19:30, 고전15:57, 눅10:19, 요14:6)
(3) 모든 사건과 문제 속에서 ‘그분과 함께’라는 임마누엘의 사실적인 역사 누리라 = 복음 안에서 사는 삶
(4) 어떤 문제, 사건 속에서 먼저 확인해야 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역사가 내 안에 있느냐?
=> 모든 것을 그리스도로 보고 누리고 깨달아라! 거기에 모든 일, 사건, 삶의 가치가 살아남, 빌4:6-7이 누려짐

결론: 내 생각대로 되지 않습니다. 내 생각, 그것이 사탄이 틈타는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전도자가 가져야 할 자세가 무엇입니까? 그 어떤 일이 일어날지라도 하나님의 뜻과 계획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전도자가 가져야 할 믿음의 그릇은 무엇입니까? 현장 속에서 그리스도를 확인하고 체험하고 누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이야기가 아닌 지금 사실적인 인생 12가지 문제 속에 답으로 누려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전도자가 가져야 할 믿음의 그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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