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꾼이 될 것인가?
2018-12-09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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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9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어떤 일꾼이 될 것인가? ”
(골4:7~8)
7 두기고가 내 사정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니 그는 사랑 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이요 주 안에서 함께 종이 된 자니라
8 내가 그를 특별히 너희에게 보내는 것은 너희로 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려 함이라. 아멘.
골4:7~8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예수를 바라보십시다.
오늘 우리 예배 이 시간 메시지 이후에 직원 임명과 함께 차세대 선교사 임명장 수여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 찬양대 찬양 너무나 은혜로운 찬양인데요, 정말로 주의 영으로 충만함을 가지고 어둠 가득한 현장에 빛을 가지고, 절망의 현장에 소망을 가지고, 현실만 있는 곳에 미래 가지고 귀중한 현장으로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제목은“어떤 일꾼이 될 것인가?”라는 부분들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매 년마다 12월 둘째 주가 되면 직원 임명하는 시간을 미리 가집니다.
2019년 함께 교회 헌신할 귀한 일꾼들을 세우는 시간인데요, 먼저 미리, 기도로서 각 기관마다 준비할 수 있도록 둘째 주에 가지고 있고요, 또 오늘은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차세대 선교사 임명장을 수여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1987년 선교사를 파송한 이래로, 31년 지났지요. 그런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교회 선교역사 가운데 새로운 응답으로 또 인도해 주셨습니다. 이사야60장에 보면 복음이 회복됨과 더불어 무리들이 나올 것이고, 그 가운데서 많은 아들들이 먼 곳에서 오고, 또 딸들은 안기어 올 것이다 했어요.
그런 축복된 응답 가운데 오늘 우리 하나교회에서는 6명의 차세대 선교사를 임명하게 됩니다. 앞으로 교회를 통해서 훈련시키고 또 신학도 시키고, 준비하게 해서 정말 선교현장에 필요한 곳에 귀중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곳에 가지고 나갈 수 있도록 준비케 되어지는 그런 축복된 자리입니다. 저는 가만히 생각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교회에 귀중한 선교를 놓고 온 교회가 기도하는 그 중심을 보시고, 우리에게 주신 응답 중의 응답이 차세대 선교사들이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들을 하게 됩니다.
특별히 많이 여러분 기도해 주시고, 또 오늘 2019년 직원으로 임명되어지는 여러분 모든 한 분 한 분이, 정말로 어둠 가득한 현장에 빛을 가지고, 절망 가득한 세상 속에 소망가지고, 정말로 현실만 있는 현장에 우리가 미래를 가지고 나갈 수 있는 그런 축복된 주의 영으로 충만함을 입는 그런 축복의 예배가 되시기를 다시 한번 더 축원합니다.
골로새서1:25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직분 주신 이유를 말씀하고 있지요. 직분 주신 목적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함이라 했습니다. 이 방향과 이 목적이 맞다면 우리가 방황할 필요가 없는 것이고, 갈등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직분들은 왜 주셨느냐? 그 직분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게 하기 위해서 주셨다 라는 사실입니다.
특별히 교사 분들은 교사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 세우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일학교 교사로서, 내게 주신, 교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일까? 그 말씀을 찾아내야 되는 것이고, 그 말씀 속에서 인도받아 나가야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오늘 우리 아름다운 찬양으로 찬양을 드렸습니다마는 찬양대원들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말씀을 이루라고 찬양대 세우셨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말씀을 이루라고 찬양하게 하시는구나!
이 사실을 가지고 서야 되는 것입니다. 교회 이런저런 여러 곳에서 일하시는 모든 분들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 청소하는 분들조차도 하나님께서 왜 그 자리에 우리를 세우셨느냐?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 세우셨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이 깨달아지고, 이 사실을 붙잡게 될 때에 갈등이 있을 수가 없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내게 말씀을 이루라고 이 자리에 세워주셨구나 사실은 여기에 감격하게 될 때에, 교회 일을 하면 할수록 힘이 나는 것이고요, 병든 자들이 치유되어지고, 실제로 피곤한 자들이 또 힘을 얻는 그런 축복된 역사가 교회 일인 것입니다.
혹이나 내가 교회 일을 하면 할수록 힘 빠지고, 뭔가 어렵다, 불편하다 그것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말씀을 이루라고 하신 그 방향이 안 맞기 때문에 그렇다는 사실을 아시고, 우리의 모든 삶의 방향을 제대로 재점검해야 할 필요가 있다라는 사실입니다. 구약에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성전 맡은 일을 하기 위해서 브살렐과 오홀리압을 세웁니다. 성전에 봉사하고, 청소하고, 성전 맡은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 브살렐과 오홀리압을 세워서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지혜와 총명을 주시고 기름을 부어주셨어요. 하나님의 지혜와 총명을 주시고 기름을 부으셔서 하나님의 성전 맡은 일들을 감당케 하시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우리가 주의 일에 헌신하게 될 때에, 먼저는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이 없이는,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지 않고서는 귀중한 직분을 감당할 수가 없다라는 사실이예요.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한다 할지라도, 아무리 뭔가 모르게 남다르게 열심히 일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주시는 귀중한 은혜가 없이는 일을 하면 할수록 시험에 빠져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의 직분 자체가, 일하는 자체가 그렇잖아요. 사람들이 알아주는 것도 아니예요. 또 그 자리에 섰기 때문에 일하다보면 사람들에게 이런저런 말들을 들을 수도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이 없이는 주의 성전을 맡은 자로서,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총명으로 일 하지 않고서는 그 어떤 자라도 그 일을 감당할 수 없다라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여러분 기도하세요.
하나님 2019년 나를 하나님 교회에 충성된 자로 여겨서 일꾼으로 세우셨는데 이 일에 주의 신으로 충만케 하옵소서. 정말로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내게 있게 하여 주옵소서. 그 힘 가지고 교회를 섬겨야 되는 겁니다.
그 때에 모든 것들이 살아나는 축복을 누리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공동의회도 있고, 예·결산 공동의회도 있고, 원로장로 추대를 위한 공동의회가 같이 진행되어지기 때문에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짧은 시간에 함께 말씀의 기도제목들을 좀 잡기를 원하는데, 어떤 일꾼이 되어야 할 것인가? 오늘 특별히 골로새서4:7~8절 우리가 잘 아는 말씀이지요. 두기고 라는 인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일꾼이 되기를 원하시는가 이 제목들을 좀 붙잡을 수 있어야 됩니다.
특별히 이 두기고를 바울이 추천하면서 이 두기고가 어떤 인물이었는가를 4:7~8절에 이야기하고 있는데,
1. 사정을 알려주는 사람 – 소통
먼저, 바울이 자기에게 있는 모든 사정을 골로새 교회에 알리기 위해서 이 두기고를 보낸다 했어요.
사정을 알리는 자, 사실은 골로새 교회는 바울에 의해서 세워진 교회가 아니라, 그의 제자 에바브로와 빌레몬의 전도운동을 통해서 세워진 교회가 골로새 교회입니다. 바울도 골로새 교인들을 보지 못했고, 골로새 교인들도 바울을 보지 못했어요. 그것이 바로 골로새서2:1절에 나오지요. “내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무릇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얼마나 힘쓰는지를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전도자 바울은 사실은 골로새교회 성도들을 보지 못하였고, 골로새 교회 성도들도 바울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바울이 갖고 있는 모든 환경들, 사정들을 그것을 골로새 교회에 알리기 위해서 바로 두기고라는 인물을 세웠고, 우리의 사정을, 나의 사정을, 우리의 사정을 너희에게 알리기를 원한다. 그러면서 이 바울은 또 성경 골로새서3장에 보면 “너희들끼리도 서로 사정을 아는, 소통케 되어지는 그런 축복을 누리기를 원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나와 우리의 사정을 너에게 알리기 위해서 두기고를 보낸다고 이야기 하고, 또 골로새서3:13~14절 보세요.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메는 띠니라”
너희끼리도 서로 소통하라 이 말입니다. 너희끼리도
사정을 서로 알고 소통하라 이 말입니다. 사정을 알려 주는 자, 소통케 하는 자라는 말이예요.
여러분 성경에 보면 사실은 이 두기고가 어떤 인물인가 성경에 다섯 번에 걸쳐서 나오는데요, 사실 골로새 교인들에게 바울이 쓴 편지를 전달하고 에베소지역에 잠시 머물다가 로마에 내려와서 바울과 함께 감옥에 들어갔어요. 바울과 함께 감옥에 갇혔어요. 아니 이 두기고는 자원해서 바울과 함께 감옥에 들어간 겁니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 바울이 가장 어려울 때에 손과 발이 되어준 사람이 이 두기고 라는 사람이예요. 바울에게 있어서 신뢰할 수 있는 신실한 종이고, 전도자의 마음을 유쾌하게 만드는 종이었지요.
여러분이 그런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실 사람들이 어려움을 당하면 모두가 피하고 도망가잖아요. 오늘 골로새 4:7절부터 읽었는데 그 뒤편까지 보면 바울의 전도단에 대한 인물들이 나와요, 한 10명 정도 나오는데, 그 10명의 인물들 가운데도 바울이 어려움을 당할 때에 결국 바울 곁을 떠났던 사람 한 사람이 나오는데 그 사람이 데마라는 사람입니다.
세상을 사랑하여서 세상으로 나갔다 했어요. 바울을 따라다니다가 세상을 사랑하여서 세상으로 향하였다. 세상으로 나갔다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어려움 당하면 피하고 도망하는 그런 때도 두기고는 오히려 바울과 함께 로마 감옥에 들어가서 바울의 손과 발이 되었던 사실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이
이 두기고를 추천하면서 7절에 보면 중요한 말씀을 하고 있지요. 7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두기고가 어떤 사람이냐? “사랑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이요 주 안에서 함께 종이 된 자니라”완전히 바울이 두기고를 신뢰하는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이 두기고를 추천하면서 이 두기고는 사정을 알려 주는 자, 사정을 알게 하는 자다, 소통케 하는 자다. 이 말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 모임들을 보면, 교회안의 구성들을 보고, 사회 모임들도 보면 어떤 한 사람이 그곳에 들어가면 이상하게 소통케 하는 것이 아니라,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 사람은 사실은 그 인생이 복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지요. 그런데 진짜 중요한 현장에 들어갈 때마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 때문에 그 현장의 모든 오해들이 풀어지고 소통케 되어지는, 하나 되어지는 이런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복 받은 사람입니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저와 우리는 어떤 사람인가? 내가 들어가는 곳마다 오히려 분쟁을 일으키고 오해를 일으키는 사람인가?
소통치 못해서 뭔가 말들을 만들어내고, 일들을 만들어내는 사람인가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두기고는 사정을 알게 하고, 소통케 하는 자가 바로 두기고였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원래 우리 인간은 하나님과 소통함이 단절되었어요.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떠나게 되어버렸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보내시사 하나님과 우리를, 담을 쌓고 있는 우리 인생을 향해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통할 수 있도록, 소통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골로새서1:20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기를 기뻐하심이로다” 21절에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 되었던 너희를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말씀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과 화목할 수 없는 우리들을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소통하는 축복을 누릴 수 있도록 길을 여신 것입니다. 아멘입니까? 에베소2:14절에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는 사건을 이야기하면서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의 육체로 허셨다 이야기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과 우리가 소통할 수 있도록 축복의 길을 여셨다는 말입니다. 그 이름이 그리스도입니다. 더 깊이,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히브리서 10:19입니다.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 가운데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라 말씀했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우리가 통할 수 있도록, 원수 되었던 우리가 절대로 하나님 앞에 스스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통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오늘도 그 그리스도 이름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그런 축복된 시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정말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누리면 교인들끼리도 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교인들끼리도 원네스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축복된 응답을 이 한 시대에 우리가 누려야 합니다. 특히 마지막 시대에 가면 갈수록 모이기를 폐하는 시대인데 이러한 시대에 온 교회가 하나 되어서 소통함으로 원네스 되어나가야 하는데 그럼으로써 모든 흑암의 세력들이 무너져 내릴 줄로 믿습니다. 특히 그러면 무엇으로 소통해야 하는가? 진짜 소통이 무엇인가에 대한 부분입니다. 무엇으로 소통해야 합니까? 골로새서 1:24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우노라.”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우노라.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그 고난이 모자란다는 말이냐? 부족하다는 말이냐? 그 말이 아닙니다.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맡기신 사역을 제자들이 감당하다가 복음과 교회 때문에 고난 받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복음과 교회와 현장을 위해서 고난까지 받는 바울이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운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바울이 마지못해서 사명을 감당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억지로 사명을 감당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사실은 그 복음 때문에 받는 고난, 현장과 교회와 복음 때문에 받는 고난, 그 일이 얼마나 기뻤던 것인가 하는 것을 우리에게 고백하고 있는 것이 그것을 내 육체에 채운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무엇으로 소통해야 하느냐? 현장에 대한 복음과 교회와 후대에 대한 안타까움, 하나님의 마음으로 소통해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정말로 우리 마음에 현장을 향한 안타까움이 있습니까? 목자 없는 양과 같이 유리하고 방황하는 현장을 향한, 지금도 인생의 열두 가지 문제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그 인생을 향한, 그 현장을 향한 안타까움이, 그것 때문에 고난 받고 그것 때문에 어려움 당할 수 있는, 그런 마음의 중심이 있느냐 이 말입니다. 그것 때문에 통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 다음에는 무엇으로 소통해야 하느냐? 골로새서 1:26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여기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무슨 말입니까? 무엇으로 소통해야 하느냐? 그리스도, 이 비밀인 그리스도로 소통해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감추어졌던 것이 나타났는데 그게 뭡니까?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중요한 비밀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 그리스도의 비밀입니다. 여러분, 이 땅에 살아가면서 우리의 인생관과 어떤 면에서 우리의 모든 삶의 현장에서 취미가 같다 할지라도 이 복음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면 여러분, 하나 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 되자, 하나 되자 해서 하나 되는 것이 아니라 진짜 그리스도의 비밀을 안다면 하나 되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에 와도 하나 되게 되어 있고 성도들끼리도 하나 되는 축복을 누리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취미가 같고 우리 인생의 모든 삶의 방법이 같다 할지라도 복음의 비밀인, 영적인 축복인 그리스도의 비밀을 모른다면 하나 되려고 아무리 몸부림쳐도 하나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짜 그리스도의 비밀을 알면 만세와 만대로 감추어졌던, 지금 나타나신 바 된 그 그리스도의 비밀을 알면 하나 되지 말라고 해도 저절로 소통되고 원네스 되고 하나 되는 축복을 누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정말 그리스도의 비밀을 아는 사람은 오래 전에 만났던 사람인데 오늘 만나도 그 만남이 이상하지 않습니다. 방금 만난 사람처럼, 어제 만났던 사람처럼 뭔가 통하게 됩니다. 말을 하지 않아도 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그리스도의 비밀 속에서 주어진 축복입니다. 그래서 저는 기도하고 있습니다. 정말 우리 하나교회가 어른부터 어린 아이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소통 되는, 원네스 되는 그 축복이 있게 하여 주옵소서. 당회로부터 어린 아이에 이르기까지 정말 그리스도 복음 안에서 하나 되는, 복음으로 소통 죄는, 그런 축복을 누리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그것을 두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성경에 에베소서입니까? 교회의 머리를 그리스도로 이야기했지 않습니까? 우리는 거기에 붙어 있는 지체입니다. 여러분 옆에 앉아 계시는 한 분 한 분이 지체입니다. 나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여러분 한 분 한 분, 옆에 앉아 있는 분들도 지체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지체입니다. 아멘입니까? 그래서 지체가 서로 하나 되어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우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 지체 가운데 한 곳이라도 어디 아프게 되면 모든 신경이 거기에 가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그것이 하나됨의 축복입니다. 그런데 진짜 그리스도를 머리고 모시고 사는 사람들이 뭔가 성도끼리 하나 되지 못한다? 골로새 교회 안에 사실은 그런 일이 있었던 사실을 골로새서 3장에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악한 사단이 어디서 무릎 꿇느냐? 모든 성도들이 교회에서 하나 되고 모든 성도들끼리도 하나 되게 될 때 거기에 하나님은 기적의 역사를 일으키고 거기에 사단이 무릎 꿇는 역사가 일어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이 들어가는 모든 현장들마다 여러분 때문에 소통케 되는 축복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관에 들어가면 기관이 여러분 때문에 소통하는 역사, 주일학교에 들어가면 주일학교가 여러분 때문에 소통하는 역사, 그래서 정말로 하나님의 귀한 계획과 뜻이 여러분 걸음 속에 이루어지는 응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우리 몸에 혈관이 있지 않습니까? 어느 한 곳이 막히게 되면 그 한 곳 막힌 것 때문에 건강에 모든 문제가 오지 않습니까? 피가 다 통해야 합니다. 소통해야 합니다. 이 일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것으로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고 복음 전하는 이 일을 위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는 그 마음으로 소통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이 한 시대에 시대 살리는 귀한 교회로 축복하실 줄로 믿습니다.
2. 함께 종된 사람
두 번째로 어떤 일꾼이 되어야 하느냐? 함께 종 된 사람이다, 7절에 말하고 있습니다. “두기고가 내 사정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니 그는 사랑 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이요 주 안에서 함께 종이 된 자니라.” 함께 종이 된 사람이다. 여러분, 중요한 말입니다. 여기 함께 종이 되었다는 말은 그 이전에 중요한 전제를 하고 있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주 안에서.” 함께 종 된 사람이다. 반드시 뺄 수 없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종 된 사람이다. 여러분, 그리스도가 주인 되지 아니하면 어느 누구도 함께 종 될 수가 없습니다. 특히 교회는 더합니다. 세상보다도 교회가 더합니다. 그리스도가 주인 되지 않으면 함께 종 된 사람이라고 나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내 인생의 주인이 나라면 종이 될 수가 없습니다. 종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가 주인 될 때 거기서 나오는 것이 뭐냐? 함께 종 된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모르겠습니다만 나는 내 인생을 내가 책임지라 하면 저는 자신 없습니다. 저는 자신 없습니다. 여러분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네 인생에 네가 주인 되고 네가 책임져라, 그러면 나는 자신 없습니다. 왜냐? 제 모습을 제가 알기 때문입니다. 흔들리고 연약하고 부족하고 넘어지고 상처 받고, 그런 모습이 제 모습입니다. 저는 제 인생을 제가 책임지라 하면 저는 자신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나는 부족하고 연약하고 모자라지만 왕 되신 그리스도가 나의 주인입니다. 그 분이 나를 이끌고 인도해 나가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 안에서 함께 종 된 자, 그리스도가 나의 주인으로, 그 분이 나를 인도하시고 이끌어 가신다는 사실을 알 때 이 사실에 감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다음에 나오는 것이 무엇입니까? 중요한 것은, 함께 종 되었다는 말은 바울도 종 되었고 두기고도 종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다른 말로 하면 생각이 통하고 말씀이 통하고 방향이 통하고 기도제목이 통하고 중요한 사명이 통하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인생에 그러한 축복의 응답을 누리는 전도자의 만남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생각과 마음과 말씀과 기도제목과 방향과 사명이 통하는 사람. 로마서 16장에서 바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 모든 제자들과 함께 하나님과의 이면계약 안에서 통하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두기고를 통해서 이야기하기를 함께 종 된 사람이다, 무슨 말입니까? 통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이런 사람을 얻는 것은 천천만만을 얻는 것보다 더 귀한 축복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이 축복 가운데 세우시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 함께 종 된 자다. 우리 인생의 이유와 목적이 뭐냐? 그리스도가 나의 주인으로서 우리는 그리스도만 말하고 그리스도의 종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의 이유와 목적이 무엇이냐? 여러분, 정말로 사명이 통하고 뭔가 방향이 통하고 기도제목이 통하는 그런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게 우리의 인생의 이유와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두기고를 일컬어서 함께 종 된 자라 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주 안에서 함께 종 된 자, 이 축복된 응답이 회복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위로하는 사람
세 번째입니다. 위로하는 사람이다, 8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를 특별히 너희에게 보내는 것은 너희로 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려 함이라.” 여러분, 이 세상에서 모든 사람이 위로 받아야 할 대상입니다. 모든 사람이 사실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물론 마태복음 11:28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종교 생활에 빠진 바리새인을 향해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지만 어떤 면에서 세상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저와 여러분조차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갑니다. 악한 사단이 함정과 틀과 올무를 가지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게 만들었습니다. 여러분, 이런 세상 속에서 세상의 그 어떤 사람들의 말로도 사실은 위로할 수가 없습니다. 위로를 줄 수도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한 가정에서 한 이불을 덮고 자고 있으면서도 남편의 문제를 남편의 문제를 아내가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고 아내의 문제를 남편이 이해하지 못할 때도 많습니다. 그게 현실 아닙니까? 그런데 어떻게 사람이 사람의 말들을 가지고 사람을 위로할 수가 있습니까? 특히 인생에서 당하는 문제가 진짜 무엇인가를 알면 그 어떤 사람의 말로도 위로할 수 없는 것이 이 땅의 문제입니다. 그러면 우리를 위로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뿐인 줄로 믿습니다. 아니,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위로할 수 있습니다. 왜냐? 히브리서 4:15입니다. 히브리서 4:15 같이 한 번 읽어 봅시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여러분,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위로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를 정말로 위로하시기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우리 사람의 모습을 입고 그대로 인간 세상에 들어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당하는 모든 것들을 주님께서 친히, 오늘 본문에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했는데 체휼하셨습니다, 체휼. 예전 성경에서는 “체휼”하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인간 세상 속에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재앙 받는 세상, 인간 세상 속에 들어오셔서 우리의 모든 모습을 그대로 체험하셨습니다. 체휼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모든 연약함을 담당하시고 우리를 위로할 수 있는 진정한 분이십니다. 우리에게 참된 위로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떠난 인생이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참된 위로 아닙니까? 여러분, 하나님 떠난 가운데서 모든 문제가 왔지 않습니까? 그러면 하나님 떠난 인생이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참된 위로이고 죄로 인한 저주와 재앙 가운데 지금도 고통 가운데 살아가지 않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죄책감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참 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거기서 우리를 해방하셨다고 말씀했습니다. 그게 참된 위로 아닙니까? 그리고 사단의 운명 가운데서 모든 인생이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참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사단의 머리를 깨뜨려버리신 것입니다. 이게 우리에게 참된 위로가 아닙니까? 오직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위로하실 수 있는 분이시고 지금도 우리에게 위로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특히 여러분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면서 모든 모임들을 보면 뭔가 나의 눈으로 보면 사람들을 판단하고 비판하고 정죄해 버립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에게는 사람이 붙지 않습니다. 그런데 내게 그리스도가 충만하게 될 때 그리스도의 눈으로 보면 비판하고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이해하고 용납하고 수용하고 넘어서게 됩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에게는 사람들이 많이 붙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위로를 받은 자라면 이제는 저와 여러분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정말 우리 주위에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위로를 전달하기를 원하십니다. 이 일에 충성된 종들로 쓰임 받는 축복된 응답이 저와 여러분에게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오늘 두기고는 작은 일에 헌신했습니다. 그런데 그 헌신으로 교회를 세우는 귀한 축복을 누리게 된 사실을 보게 됩니다. 지금 우리의 작은 일, 하나님께서 앞으로 어떻게 역사하실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 요셉은 노예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 작은 일에 노예로서 최선을 다했는데 하나님은 요셉을 총리 자리에 세우셨습니다. 총리 되어야 하겠다, 그런 생각 가지고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노예로 갈 수밖에 없었으니까 노예로 간 것이고 거기서 작은 일에, 자기에게 주어진 것이 헌신하고 최선을 다했는데 하나님은 요셉을 어디에? 총리로 세우셨습니다. 다윗은 자기 아버지의 양을 치는 양 우리에서 양 한 마리도 잃지 않기 위해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에 헌신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윗을 들어서 한 나라를 다스리는 왕의 자리를 허락하셨습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주어진 자리, 사람들이 시시하게 여기고 우습게 여기는 자리라 할지라도 그 일에 내가 그리스도 이름으로 헌신하고 그리스도 이름으로 나아가게 될 때 고린도전서 15:58에 “주 안에서” 하는 것들은 하나도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했습니다. 할렐루야! 특히 누가복음 19:17을 보면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 뭐냐?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기 위해서 충성하는 것이 아닙니다. 요셉이 총리 되기 위해서, 다윗이 왕 되기 위해서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작은 일에 헌신하는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열 고을 군세로 축복하시는 그 엄청난 응답으로 역사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내게 주어진 작은 일을 놓치지 않는 축복된 응답으로 여러분, 이 한 시대에 우리 하나교회를 세워나가고 하나교회의 모든 렘넌트들을 세워나가는 축복된 응답, 특히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어나가는 일에 귀하게 쓰임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8년 12월 9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어떤 일꾼이 될 것인가?
(골4:7-8)
서론: 하나님이 우리에게 직분을 주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 주신 것입니다(골1:24-25). 이 목적에 맞으면 갈등, 방황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사실을 알면 감격하게 되고 교회 일을 할수록 힘이 나고 치유 되어집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않으면 직분을 감당 할 수 없습니다. 두기고를 통해서 어떤 일꾼이 되어야 할지 붙잡아야 합니다.
1. 사정을 알려주는 사람들 - 소통
가. 두기고를 보낸 이유
1) 골로새교회는 에바브라와 빌레몬의 전도운동을 통해 세워진 교회 - 골로새교회와 바울이 한 번도 보지 않음
2) 사정을 알리기를 원해 두기고를 보냄(골4:7-8), 교인들끼리도 소통 되기를 원함(골3:13-14)
3) 그리스도는 우리를 통하게 해 주는 역할을 하심(골1:20-22),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통하는 길을 열어 놓으심(엡2:14), 새로운 살 길을 여심(히10:19)
4) 하나님과 통하면 사람들과도 통하게 되어 있음
나. 무엇으로 소통 하여야 하는가?
1)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골1:24) - 현장을 보고 안타까워하는 마음으로 통함
2) 감추어 있다가 나타난 것(골1:26) - 그리스도의 비밀로 소통
3) 그리스도의 비밀로 소통 되면 하나 되어짐
2. 함께 종 된 사람
가. 주 안에서 함께 종 된 사람
1) 그리스도가 주인 되지 않으면 함께 종이 될 수 없음
2) 그리스도께서 나의 주인, 인도하시고 이끌어 나가심 - 감사
나. 그리스도의 종
1) 생각, 말씀, 방향, 기도제목, 사명이 통하는 사람
2) 내 인생의 이유 - 그리스도의 다스림 속에 그리스도를 말하는 그리스도의 종
3) 똑같은 인생의 목적과 방향을 가지고 사는 자와의 만남
3. 위로하는 사람들
가. 모든 사람들 - 위로를 받아야 할 대상(그 누구도 위로를 줄 수 없음)
나. 그리스도만이 참된 위로를 할 수 있음(히4:15)
1)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참된 위로
2) 죄, 저주에서 해방 되는 것이 참된 위로
3) 사단의 운명 가운데서 빠져 나오는 것이 참된 위로
결론: 두기고는 작은 일에 헌신 했습니다. 그런데 그 헌신이 교회를 세우는 축복으로 연결 되어졌습니다. 지금 나의 작은 일이 앞으로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실지 아무도 모릅니다. 지금 우리가 있는 자리에서 그리스도 이름으로 헌신 할 때 하나도 헛된 것이 없습니다.
“어떤 일꾼이 될 것인가? ”
(골4:7~8)
7 두기고가 내 사정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니 그는 사랑 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이요 주 안에서 함께 종이 된 자니라
8 내가 그를 특별히 너희에게 보내는 것은 너희로 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려 함이라. 아멘.
골4:7~8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예수를 바라보십시다.
오늘 우리 예배 이 시간 메시지 이후에 직원 임명과 함께 차세대 선교사 임명장 수여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 찬양대 찬양 너무나 은혜로운 찬양인데요, 정말로 주의 영으로 충만함을 가지고 어둠 가득한 현장에 빛을 가지고, 절망의 현장에 소망을 가지고, 현실만 있는 곳에 미래 가지고 귀중한 현장으로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제목은“어떤 일꾼이 될 것인가?”라는 부분들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매 년마다 12월 둘째 주가 되면 직원 임명하는 시간을 미리 가집니다.
2019년 함께 교회 헌신할 귀한 일꾼들을 세우는 시간인데요, 먼저 미리, 기도로서 각 기관마다 준비할 수 있도록 둘째 주에 가지고 있고요, 또 오늘은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차세대 선교사 임명장을 수여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1987년 선교사를 파송한 이래로, 31년 지났지요. 그런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교회 선교역사 가운데 새로운 응답으로 또 인도해 주셨습니다. 이사야60장에 보면 복음이 회복됨과 더불어 무리들이 나올 것이고, 그 가운데서 많은 아들들이 먼 곳에서 오고, 또 딸들은 안기어 올 것이다 했어요.
그런 축복된 응답 가운데 오늘 우리 하나교회에서는 6명의 차세대 선교사를 임명하게 됩니다. 앞으로 교회를 통해서 훈련시키고 또 신학도 시키고, 준비하게 해서 정말 선교현장에 필요한 곳에 귀중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곳에 가지고 나갈 수 있도록 준비케 되어지는 그런 축복된 자리입니다. 저는 가만히 생각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교회에 귀중한 선교를 놓고 온 교회가 기도하는 그 중심을 보시고, 우리에게 주신 응답 중의 응답이 차세대 선교사들이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들을 하게 됩니다.
특별히 많이 여러분 기도해 주시고, 또 오늘 2019년 직원으로 임명되어지는 여러분 모든 한 분 한 분이, 정말로 어둠 가득한 현장에 빛을 가지고, 절망 가득한 세상 속에 소망가지고, 정말로 현실만 있는 현장에 우리가 미래를 가지고 나갈 수 있는 그런 축복된 주의 영으로 충만함을 입는 그런 축복의 예배가 되시기를 다시 한번 더 축원합니다.
골로새서1:25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직분 주신 이유를 말씀하고 있지요. 직분 주신 목적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함이라 했습니다. 이 방향과 이 목적이 맞다면 우리가 방황할 필요가 없는 것이고, 갈등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직분들은 왜 주셨느냐? 그 직분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게 하기 위해서 주셨다 라는 사실입니다.
특별히 교사 분들은 교사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 세우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일학교 교사로서, 내게 주신, 교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일까? 그 말씀을 찾아내야 되는 것이고, 그 말씀 속에서 인도받아 나가야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오늘 우리 아름다운 찬양으로 찬양을 드렸습니다마는 찬양대원들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말씀을 이루라고 찬양대 세우셨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말씀을 이루라고 찬양하게 하시는구나!
이 사실을 가지고 서야 되는 것입니다. 교회 이런저런 여러 곳에서 일하시는 모든 분들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 청소하는 분들조차도 하나님께서 왜 그 자리에 우리를 세우셨느냐?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 세우셨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이 깨달아지고, 이 사실을 붙잡게 될 때에 갈등이 있을 수가 없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내게 말씀을 이루라고 이 자리에 세워주셨구나 사실은 여기에 감격하게 될 때에, 교회 일을 하면 할수록 힘이 나는 것이고요, 병든 자들이 치유되어지고, 실제로 피곤한 자들이 또 힘을 얻는 그런 축복된 역사가 교회 일인 것입니다.
혹이나 내가 교회 일을 하면 할수록 힘 빠지고, 뭔가 어렵다, 불편하다 그것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말씀을 이루라고 하신 그 방향이 안 맞기 때문에 그렇다는 사실을 아시고, 우리의 모든 삶의 방향을 제대로 재점검해야 할 필요가 있다라는 사실입니다. 구약에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성전 맡은 일을 하기 위해서 브살렐과 오홀리압을 세웁니다. 성전에 봉사하고, 청소하고, 성전 맡은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 브살렐과 오홀리압을 세워서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지혜와 총명을 주시고 기름을 부어주셨어요. 하나님의 지혜와 총명을 주시고 기름을 부으셔서 하나님의 성전 맡은 일들을 감당케 하시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우리가 주의 일에 헌신하게 될 때에, 먼저는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이 없이는,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지 않고서는 귀중한 직분을 감당할 수가 없다라는 사실이예요.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한다 할지라도, 아무리 뭔가 모르게 남다르게 열심히 일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주시는 귀중한 은혜가 없이는 일을 하면 할수록 시험에 빠져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의 직분 자체가, 일하는 자체가 그렇잖아요. 사람들이 알아주는 것도 아니예요. 또 그 자리에 섰기 때문에 일하다보면 사람들에게 이런저런 말들을 들을 수도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이 없이는 주의 성전을 맡은 자로서,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총명으로 일 하지 않고서는 그 어떤 자라도 그 일을 감당할 수 없다라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여러분 기도하세요.
하나님 2019년 나를 하나님 교회에 충성된 자로 여겨서 일꾼으로 세우셨는데 이 일에 주의 신으로 충만케 하옵소서. 정말로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내게 있게 하여 주옵소서. 그 힘 가지고 교회를 섬겨야 되는 겁니다.
그 때에 모든 것들이 살아나는 축복을 누리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공동의회도 있고, 예·결산 공동의회도 있고, 원로장로 추대를 위한 공동의회가 같이 진행되어지기 때문에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짧은 시간에 함께 말씀의 기도제목들을 좀 잡기를 원하는데, 어떤 일꾼이 되어야 할 것인가? 오늘 특별히 골로새서4:7~8절 우리가 잘 아는 말씀이지요. 두기고 라는 인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일꾼이 되기를 원하시는가 이 제목들을 좀 붙잡을 수 있어야 됩니다.
특별히 이 두기고를 바울이 추천하면서 이 두기고가 어떤 인물이었는가를 4:7~8절에 이야기하고 있는데,
1. 사정을 알려주는 사람 – 소통
먼저, 바울이 자기에게 있는 모든 사정을 골로새 교회에 알리기 위해서 이 두기고를 보낸다 했어요.
사정을 알리는 자, 사실은 골로새 교회는 바울에 의해서 세워진 교회가 아니라, 그의 제자 에바브로와 빌레몬의 전도운동을 통해서 세워진 교회가 골로새 교회입니다. 바울도 골로새 교인들을 보지 못했고, 골로새 교인들도 바울을 보지 못했어요. 그것이 바로 골로새서2:1절에 나오지요. “내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무릇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얼마나 힘쓰는지를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전도자 바울은 사실은 골로새교회 성도들을 보지 못하였고, 골로새 교회 성도들도 바울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바울이 갖고 있는 모든 환경들, 사정들을 그것을 골로새 교회에 알리기 위해서 바로 두기고라는 인물을 세웠고, 우리의 사정을, 나의 사정을, 우리의 사정을 너희에게 알리기를 원한다. 그러면서 이 바울은 또 성경 골로새서3장에 보면 “너희들끼리도 서로 사정을 아는, 소통케 되어지는 그런 축복을 누리기를 원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나와 우리의 사정을 너에게 알리기 위해서 두기고를 보낸다고 이야기 하고, 또 골로새서3:13~14절 보세요.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메는 띠니라”
너희끼리도 서로 소통하라 이 말입니다. 너희끼리도
사정을 서로 알고 소통하라 이 말입니다. 사정을 알려 주는 자, 소통케 하는 자라는 말이예요.
여러분 성경에 보면 사실은 이 두기고가 어떤 인물인가 성경에 다섯 번에 걸쳐서 나오는데요, 사실 골로새 교인들에게 바울이 쓴 편지를 전달하고 에베소지역에 잠시 머물다가 로마에 내려와서 바울과 함께 감옥에 들어갔어요. 바울과 함께 감옥에 갇혔어요. 아니 이 두기고는 자원해서 바울과 함께 감옥에 들어간 겁니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 바울이 가장 어려울 때에 손과 발이 되어준 사람이 이 두기고 라는 사람이예요. 바울에게 있어서 신뢰할 수 있는 신실한 종이고, 전도자의 마음을 유쾌하게 만드는 종이었지요.
여러분이 그런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실 사람들이 어려움을 당하면 모두가 피하고 도망가잖아요. 오늘 골로새 4:7절부터 읽었는데 그 뒤편까지 보면 바울의 전도단에 대한 인물들이 나와요, 한 10명 정도 나오는데, 그 10명의 인물들 가운데도 바울이 어려움을 당할 때에 결국 바울 곁을 떠났던 사람 한 사람이 나오는데 그 사람이 데마라는 사람입니다.
세상을 사랑하여서 세상으로 나갔다 했어요. 바울을 따라다니다가 세상을 사랑하여서 세상으로 향하였다. 세상으로 나갔다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어려움 당하면 피하고 도망하는 그런 때도 두기고는 오히려 바울과 함께 로마 감옥에 들어가서 바울의 손과 발이 되었던 사실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이
이 두기고를 추천하면서 7절에 보면 중요한 말씀을 하고 있지요. 7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두기고가 어떤 사람이냐? “사랑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이요 주 안에서 함께 종이 된 자니라”완전히 바울이 두기고를 신뢰하는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이 두기고를 추천하면서 이 두기고는 사정을 알려 주는 자, 사정을 알게 하는 자다, 소통케 하는 자다. 이 말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 모임들을 보면, 교회안의 구성들을 보고, 사회 모임들도 보면 어떤 한 사람이 그곳에 들어가면 이상하게 소통케 하는 것이 아니라,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 사람은 사실은 그 인생이 복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지요. 그런데 진짜 중요한 현장에 들어갈 때마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 때문에 그 현장의 모든 오해들이 풀어지고 소통케 되어지는, 하나 되어지는 이런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복 받은 사람입니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저와 우리는 어떤 사람인가? 내가 들어가는 곳마다 오히려 분쟁을 일으키고 오해를 일으키는 사람인가?
소통치 못해서 뭔가 말들을 만들어내고, 일들을 만들어내는 사람인가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두기고는 사정을 알게 하고, 소통케 하는 자가 바로 두기고였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원래 우리 인간은 하나님과 소통함이 단절되었어요.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떠나게 되어버렸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보내시사 하나님과 우리를, 담을 쌓고 있는 우리 인생을 향해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통할 수 있도록, 소통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골로새서1:20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기를 기뻐하심이로다” 21절에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 되었던 너희를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말씀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과 화목할 수 없는 우리들을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소통하는 축복을 누릴 수 있도록 길을 여신 것입니다. 아멘입니까? 에베소2:14절에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는 사건을 이야기하면서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의 육체로 허셨다 이야기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과 우리가 소통할 수 있도록 축복의 길을 여셨다는 말입니다. 그 이름이 그리스도입니다. 더 깊이,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히브리서 10:19입니다.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 가운데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라 말씀했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우리가 통할 수 있도록, 원수 되었던 우리가 절대로 하나님 앞에 스스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통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오늘도 그 그리스도 이름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그런 축복된 시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정말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누리면 교인들끼리도 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교인들끼리도 원네스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축복된 응답을 이 한 시대에 우리가 누려야 합니다. 특히 마지막 시대에 가면 갈수록 모이기를 폐하는 시대인데 이러한 시대에 온 교회가 하나 되어서 소통함으로 원네스 되어나가야 하는데 그럼으로써 모든 흑암의 세력들이 무너져 내릴 줄로 믿습니다. 특히 그러면 무엇으로 소통해야 하는가? 진짜 소통이 무엇인가에 대한 부분입니다. 무엇으로 소통해야 합니까? 골로새서 1:24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우노라.”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우노라.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그 고난이 모자란다는 말이냐? 부족하다는 말이냐? 그 말이 아닙니다.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맡기신 사역을 제자들이 감당하다가 복음과 교회 때문에 고난 받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복음과 교회와 현장을 위해서 고난까지 받는 바울이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운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바울이 마지못해서 사명을 감당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억지로 사명을 감당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사실은 그 복음 때문에 받는 고난, 현장과 교회와 복음 때문에 받는 고난, 그 일이 얼마나 기뻤던 것인가 하는 것을 우리에게 고백하고 있는 것이 그것을 내 육체에 채운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무엇으로 소통해야 하느냐? 현장에 대한 복음과 교회와 후대에 대한 안타까움, 하나님의 마음으로 소통해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정말로 우리 마음에 현장을 향한 안타까움이 있습니까? 목자 없는 양과 같이 유리하고 방황하는 현장을 향한, 지금도 인생의 열두 가지 문제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그 인생을 향한, 그 현장을 향한 안타까움이, 그것 때문에 고난 받고 그것 때문에 어려움 당할 수 있는, 그런 마음의 중심이 있느냐 이 말입니다. 그것 때문에 통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 다음에는 무엇으로 소통해야 하느냐? 골로새서 1:26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여기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무슨 말입니까? 무엇으로 소통해야 하느냐? 그리스도, 이 비밀인 그리스도로 소통해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감추어졌던 것이 나타났는데 그게 뭡니까?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중요한 비밀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 그리스도의 비밀입니다. 여러분, 이 땅에 살아가면서 우리의 인생관과 어떤 면에서 우리의 모든 삶의 현장에서 취미가 같다 할지라도 이 복음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면 여러분, 하나 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 되자, 하나 되자 해서 하나 되는 것이 아니라 진짜 그리스도의 비밀을 안다면 하나 되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에 와도 하나 되게 되어 있고 성도들끼리도 하나 되는 축복을 누리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취미가 같고 우리 인생의 모든 삶의 방법이 같다 할지라도 복음의 비밀인, 영적인 축복인 그리스도의 비밀을 모른다면 하나 되려고 아무리 몸부림쳐도 하나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짜 그리스도의 비밀을 알면 만세와 만대로 감추어졌던, 지금 나타나신 바 된 그 그리스도의 비밀을 알면 하나 되지 말라고 해도 저절로 소통되고 원네스 되고 하나 되는 축복을 누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정말 그리스도의 비밀을 아는 사람은 오래 전에 만났던 사람인데 오늘 만나도 그 만남이 이상하지 않습니다. 방금 만난 사람처럼, 어제 만났던 사람처럼 뭔가 통하게 됩니다. 말을 하지 않아도 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그리스도의 비밀 속에서 주어진 축복입니다. 그래서 저는 기도하고 있습니다. 정말 우리 하나교회가 어른부터 어린 아이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소통 되는, 원네스 되는 그 축복이 있게 하여 주옵소서. 당회로부터 어린 아이에 이르기까지 정말 그리스도 복음 안에서 하나 되는, 복음으로 소통 죄는, 그런 축복을 누리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그것을 두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성경에 에베소서입니까? 교회의 머리를 그리스도로 이야기했지 않습니까? 우리는 거기에 붙어 있는 지체입니다. 여러분 옆에 앉아 계시는 한 분 한 분이 지체입니다. 나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여러분 한 분 한 분, 옆에 앉아 있는 분들도 지체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지체입니다. 아멘입니까? 그래서 지체가 서로 하나 되어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우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 지체 가운데 한 곳이라도 어디 아프게 되면 모든 신경이 거기에 가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그것이 하나됨의 축복입니다. 그런데 진짜 그리스도를 머리고 모시고 사는 사람들이 뭔가 성도끼리 하나 되지 못한다? 골로새 교회 안에 사실은 그런 일이 있었던 사실을 골로새서 3장에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악한 사단이 어디서 무릎 꿇느냐? 모든 성도들이 교회에서 하나 되고 모든 성도들끼리도 하나 되게 될 때 거기에 하나님은 기적의 역사를 일으키고 거기에 사단이 무릎 꿇는 역사가 일어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이 들어가는 모든 현장들마다 여러분 때문에 소통케 되는 축복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관에 들어가면 기관이 여러분 때문에 소통하는 역사, 주일학교에 들어가면 주일학교가 여러분 때문에 소통하는 역사, 그래서 정말로 하나님의 귀한 계획과 뜻이 여러분 걸음 속에 이루어지는 응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우리 몸에 혈관이 있지 않습니까? 어느 한 곳이 막히게 되면 그 한 곳 막힌 것 때문에 건강에 모든 문제가 오지 않습니까? 피가 다 통해야 합니다. 소통해야 합니다. 이 일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것으로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고 복음 전하는 이 일을 위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는 그 마음으로 소통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이 한 시대에 시대 살리는 귀한 교회로 축복하실 줄로 믿습니다.
2. 함께 종된 사람
두 번째로 어떤 일꾼이 되어야 하느냐? 함께 종 된 사람이다, 7절에 말하고 있습니다. “두기고가 내 사정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니 그는 사랑 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이요 주 안에서 함께 종이 된 자니라.” 함께 종이 된 사람이다. 여러분, 중요한 말입니다. 여기 함께 종이 되었다는 말은 그 이전에 중요한 전제를 하고 있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주 안에서.” 함께 종 된 사람이다. 반드시 뺄 수 없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종 된 사람이다. 여러분, 그리스도가 주인 되지 아니하면 어느 누구도 함께 종 될 수가 없습니다. 특히 교회는 더합니다. 세상보다도 교회가 더합니다. 그리스도가 주인 되지 않으면 함께 종 된 사람이라고 나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내 인생의 주인이 나라면 종이 될 수가 없습니다. 종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가 주인 될 때 거기서 나오는 것이 뭐냐? 함께 종 된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모르겠습니다만 나는 내 인생을 내가 책임지라 하면 저는 자신 없습니다. 저는 자신 없습니다. 여러분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네 인생에 네가 주인 되고 네가 책임져라, 그러면 나는 자신 없습니다. 왜냐? 제 모습을 제가 알기 때문입니다. 흔들리고 연약하고 부족하고 넘어지고 상처 받고, 그런 모습이 제 모습입니다. 저는 제 인생을 제가 책임지라 하면 저는 자신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나는 부족하고 연약하고 모자라지만 왕 되신 그리스도가 나의 주인입니다. 그 분이 나를 이끌고 인도해 나가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 안에서 함께 종 된 자, 그리스도가 나의 주인으로, 그 분이 나를 인도하시고 이끌어 가신다는 사실을 알 때 이 사실에 감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다음에 나오는 것이 무엇입니까? 중요한 것은, 함께 종 되었다는 말은 바울도 종 되었고 두기고도 종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다른 말로 하면 생각이 통하고 말씀이 통하고 방향이 통하고 기도제목이 통하고 중요한 사명이 통하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인생에 그러한 축복의 응답을 누리는 전도자의 만남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생각과 마음과 말씀과 기도제목과 방향과 사명이 통하는 사람. 로마서 16장에서 바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 모든 제자들과 함께 하나님과의 이면계약 안에서 통하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두기고를 통해서 이야기하기를 함께 종 된 사람이다, 무슨 말입니까? 통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이런 사람을 얻는 것은 천천만만을 얻는 것보다 더 귀한 축복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이 축복 가운데 세우시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 함께 종 된 자다. 우리 인생의 이유와 목적이 뭐냐? 그리스도가 나의 주인으로서 우리는 그리스도만 말하고 그리스도의 종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의 이유와 목적이 무엇이냐? 여러분, 정말로 사명이 통하고 뭔가 방향이 통하고 기도제목이 통하는 그런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게 우리의 인생의 이유와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두기고를 일컬어서 함께 종 된 자라 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주 안에서 함께 종 된 자, 이 축복된 응답이 회복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위로하는 사람
세 번째입니다. 위로하는 사람이다, 8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를 특별히 너희에게 보내는 것은 너희로 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려 함이라.” 여러분, 이 세상에서 모든 사람이 위로 받아야 할 대상입니다. 모든 사람이 사실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물론 마태복음 11:28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종교 생활에 빠진 바리새인을 향해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지만 어떤 면에서 세상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저와 여러분조차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갑니다. 악한 사단이 함정과 틀과 올무를 가지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게 만들었습니다. 여러분, 이런 세상 속에서 세상의 그 어떤 사람들의 말로도 사실은 위로할 수가 없습니다. 위로를 줄 수도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한 가정에서 한 이불을 덮고 자고 있으면서도 남편의 문제를 남편의 문제를 아내가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고 아내의 문제를 남편이 이해하지 못할 때도 많습니다. 그게 현실 아닙니까? 그런데 어떻게 사람이 사람의 말들을 가지고 사람을 위로할 수가 있습니까? 특히 인생에서 당하는 문제가 진짜 무엇인가를 알면 그 어떤 사람의 말로도 위로할 수 없는 것이 이 땅의 문제입니다. 그러면 우리를 위로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뿐인 줄로 믿습니다. 아니,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위로할 수 있습니다. 왜냐? 히브리서 4:15입니다. 히브리서 4:15 같이 한 번 읽어 봅시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여러분,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위로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를 정말로 위로하시기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우리 사람의 모습을 입고 그대로 인간 세상에 들어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당하는 모든 것들을 주님께서 친히, 오늘 본문에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했는데 체휼하셨습니다, 체휼. 예전 성경에서는 “체휼”하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인간 세상 속에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재앙 받는 세상, 인간 세상 속에 들어오셔서 우리의 모든 모습을 그대로 체험하셨습니다. 체휼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모든 연약함을 담당하시고 우리를 위로할 수 있는 진정한 분이십니다. 우리에게 참된 위로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떠난 인생이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참된 위로 아닙니까? 여러분, 하나님 떠난 가운데서 모든 문제가 왔지 않습니까? 그러면 하나님 떠난 인생이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참된 위로이고 죄로 인한 저주와 재앙 가운데 지금도 고통 가운데 살아가지 않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죄책감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참 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거기서 우리를 해방하셨다고 말씀했습니다. 그게 참된 위로 아닙니까? 그리고 사단의 운명 가운데서 모든 인생이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참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사단의 머리를 깨뜨려버리신 것입니다. 이게 우리에게 참된 위로가 아닙니까? 오직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위로하실 수 있는 분이시고 지금도 우리에게 위로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특히 여러분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면서 모든 모임들을 보면 뭔가 나의 눈으로 보면 사람들을 판단하고 비판하고 정죄해 버립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에게는 사람이 붙지 않습니다. 그런데 내게 그리스도가 충만하게 될 때 그리스도의 눈으로 보면 비판하고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이해하고 용납하고 수용하고 넘어서게 됩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에게는 사람들이 많이 붙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위로를 받은 자라면 이제는 저와 여러분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정말 우리 주위에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위로를 전달하기를 원하십니다. 이 일에 충성된 종들로 쓰임 받는 축복된 응답이 저와 여러분에게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오늘 두기고는 작은 일에 헌신했습니다. 그런데 그 헌신으로 교회를 세우는 귀한 축복을 누리게 된 사실을 보게 됩니다. 지금 우리의 작은 일, 하나님께서 앞으로 어떻게 역사하실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 요셉은 노예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 작은 일에 노예로서 최선을 다했는데 하나님은 요셉을 총리 자리에 세우셨습니다. 총리 되어야 하겠다, 그런 생각 가지고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노예로 갈 수밖에 없었으니까 노예로 간 것이고 거기서 작은 일에, 자기에게 주어진 것이 헌신하고 최선을 다했는데 하나님은 요셉을 어디에? 총리로 세우셨습니다. 다윗은 자기 아버지의 양을 치는 양 우리에서 양 한 마리도 잃지 않기 위해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에 헌신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윗을 들어서 한 나라를 다스리는 왕의 자리를 허락하셨습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주어진 자리, 사람들이 시시하게 여기고 우습게 여기는 자리라 할지라도 그 일에 내가 그리스도 이름으로 헌신하고 그리스도 이름으로 나아가게 될 때 고린도전서 15:58에 “주 안에서” 하는 것들은 하나도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했습니다. 할렐루야! 특히 누가복음 19:17을 보면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 뭐냐?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기 위해서 충성하는 것이 아닙니다. 요셉이 총리 되기 위해서, 다윗이 왕 되기 위해서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작은 일에 헌신하는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열 고을 군세로 축복하시는 그 엄청난 응답으로 역사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내게 주어진 작은 일을 놓치지 않는 축복된 응답으로 여러분, 이 한 시대에 우리 하나교회를 세워나가고 하나교회의 모든 렘넌트들을 세워나가는 축복된 응답, 특히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어나가는 일에 귀하게 쓰임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8년 12월 9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어떤 일꾼이 될 것인가?
(골4:7-8)
서론: 하나님이 우리에게 직분을 주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 주신 것입니다(골1:24-25). 이 목적에 맞으면 갈등, 방황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사실을 알면 감격하게 되고 교회 일을 할수록 힘이 나고 치유 되어집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않으면 직분을 감당 할 수 없습니다. 두기고를 통해서 어떤 일꾼이 되어야 할지 붙잡아야 합니다.
1. 사정을 알려주는 사람들 - 소통
가. 두기고를 보낸 이유
1) 골로새교회는 에바브라와 빌레몬의 전도운동을 통해 세워진 교회 - 골로새교회와 바울이 한 번도 보지 않음
2) 사정을 알리기를 원해 두기고를 보냄(골4:7-8), 교인들끼리도 소통 되기를 원함(골3:13-14)
3) 그리스도는 우리를 통하게 해 주는 역할을 하심(골1:20-22),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통하는 길을 열어 놓으심(엡2:14), 새로운 살 길을 여심(히10:19)
4) 하나님과 통하면 사람들과도 통하게 되어 있음
나. 무엇으로 소통 하여야 하는가?
1)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골1:24) - 현장을 보고 안타까워하는 마음으로 통함
2) 감추어 있다가 나타난 것(골1:26) - 그리스도의 비밀로 소통
3) 그리스도의 비밀로 소통 되면 하나 되어짐
2. 함께 종 된 사람
가. 주 안에서 함께 종 된 사람
1) 그리스도가 주인 되지 않으면 함께 종이 될 수 없음
2) 그리스도께서 나의 주인, 인도하시고 이끌어 나가심 - 감사
나. 그리스도의 종
1) 생각, 말씀, 방향, 기도제목, 사명이 통하는 사람
2) 내 인생의 이유 - 그리스도의 다스림 속에 그리스도를 말하는 그리스도의 종
3) 똑같은 인생의 목적과 방향을 가지고 사는 자와의 만남
3. 위로하는 사람들
가. 모든 사람들 - 위로를 받아야 할 대상(그 누구도 위로를 줄 수 없음)
나. 그리스도만이 참된 위로를 할 수 있음(히4:15)
1)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참된 위로
2) 죄, 저주에서 해방 되는 것이 참된 위로
3) 사단의 운명 가운데서 빠져 나오는 것이 참된 위로
결론: 두기고는 작은 일에 헌신 했습니다. 그런데 그 헌신이 교회를 세우는 축복으로 연결 되어졌습니다. 지금 나의 작은 일이 앞으로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실지 아무도 모릅니다. 지금 우리가 있는 자리에서 그리스도 이름으로 헌신 할 때 하나도 헛된 것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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