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번, 마지막, 영원한 기회 렘넌트
2018-07-15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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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5일 주일 2부 예배 최상국 목사
“단 한 번, 마지막, 영원한 기회 렘넌트”
(딤후3:13~17)
13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14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15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딤후13:13~17
■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의 박수를 드리겠습니다. 우리 일생이 하나님의 소원에 메여 온 세상에 그루터기를 세우는, 정말 후대 렘런트를 세우는 그 일에 우리의 생이 들여지는 응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인사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예수를 바라보십시다. 할렐루야! 아멘.
담임목사님께서는 지금 말레이시아에 신학교를 다니면서 신학교 살릴 그러한 사역을 하고 계십니다. 신학교가 복음으로 살지 않으면, 정말 복음 가진 목회자가 나올 수 없습니다. 복음 가진 목회자가 나오지 않는다면 교회는 복음 없는 교회가 됩니다. 복음 없는 교회가 세워지면 성도들은 복음 없이 종교생활 하다가 결국 불신자와 똑같이, 아니 불신자보다 더 못한 삶을 살며, 망하게 되어집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신학교입니다. 우리 목사님 귀한 사역을 통해서 정말 말레이시아를 살리고, 동남아시아를 살리고, 전 세계를 살릴 수 있는 절대제자, 정말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 이 오직의 언약을 붙잡은 절대제자들이 일어나서, 이들을 통해서 무너지지 않는 시스템이 세워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주신 본문을 가지고 “단 한번, 마지막, 영원한 기회 렘런트”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길 원합니다. 이번 주부터 여름 성경학교와 또 수련회, 각종 대회가 시작되어집니다. 이번 주 금요일, 토요일 해서 태영아부 성경학교와, 유년부 성경학교, 그리고 토요일에는 초등부 성경학교가 진행되고요. 그 다음주에는 렘런트 리더 수련회와 또 세계 렘런트대회, 또 나머지 다른 부서들 성경학교, 수련회가 진행되어집니다. 매년 반복되어지는 행사이지만 단 한 번의 기회이고, 마지막 기회이고, 영원한 기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시간을 결코 그냥 또 하는구나 라고 흘려보내서는 안 됩니다. 정말 마음을 담고, 중심을 다해서 이번 이 기회를 통해서 정말 인생의 중요한 답을 얻는 그러한 렘런트들이 되어질 수 있도록 우리가 기도해야 될 것입니다. 후대들에게 언약을 집중해서 심을 기회이고, 그리고 귀로만 듣던 복음, 그 복음이 내게 능력으로 체험되어지는 그러한 기회요, 또 부모님의 언약과 부모님의 믿음이 나의 언약이 되어지고, 나의 믿음이, 나의 신앙생활로 바뀌어지는 그러한 기회가 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3:5절에 “너희가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 우리 기성세대들이 늘 확인하고 확증해야 될 뿐만 아니라, 우리 렘런트들이 정말 이 복음 안에 있느냐? 믿음 안에 있느냐? 그냥 교회 안에 있고, 예배 드린다고 능수가 아니라 정말 이 아이들이 언약 안에 있느냐? 이 아이들이 정말 예수가 그리스도 되시는 이 복음이 나의 복음이 되어져 있느냐? 우리 부모된 자로서, 또 앞선 세대인 우리들이 이것을 점검하고, 정말 이 아이들이 그 복음으로 완전히 증거를 찾아 누릴 수 있도록 확증할 수 있도록 우리가 도와야 될 것입니다. 이번 여름 단 한번, 마지막, 영원한 기회입니다. 진짜 마지막이냐 그 말이 아니라, 그 심정을 가지고, 그 절박함과 시급한 시간표임을 알고 우리 후대들에게 이번에 이 기회에, 정말 이 아이들이 우리 렘런트들이 복음으로 답을 내리고, 정말 상처가 치유되어지고, 하나님이 복음 안에 주신 모든 응답과 축복들을 찾아 누릴 수 있도록 우리가 기도하고, 정말 이들을 도와야 될 것입니다. 2018년 여름, 이번 여름이 우리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는 렘런트들, 또 우리 교회와 전 세계에 속해 있는 렘런트들이 인생을 두고 돌아볼 때에 나의 인생의 최고의 한해였다 라고 고백되어질 수 있는 그 단 한번, 그리고 마지막, 영원한 기회가 되어질 수 있도록 우리가 함께 기도하며, 인도받기를 원합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우리가 함께 이번 여름을 두고 기도해야 될 기도제목들을 함께 나누는 그런 시간을 갖기를 원합니다.
1. 청산해야 할 역사의 반복
먼저, 첫 번째로 우리가 청산해야 될 역사가 있습니다. 계속해서 반복되어지는 그러한 실패의 역사, 그 역사를 우리는 청산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그 이후로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까? 그 역사를 다 기록한다면 어떻게 기록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 역사를 정리해 보면 이 네 가지 흐름으로(“구원-타락(우상숭배)-고통(부르짖음)-구원”)계속 반복되어져 왔던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역사를 보면 이것의 반복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복음을 주시고, 그 복음을 받은 자들이 구원의 축복을 누리다가 이 축복을 후대에게 전달해야 하는데 그것이 제대로 전달되어지지 않아서, 후대들은 교회 안에 있지만 복음 없는 종교생활하게 되고, 교회 안에 있지만 우상숭배와 다를 바가 없고, 하나님의 자녀요 교인이고 성도라고 하지만 불신자보다 더 못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그러한 타락의 시대가 찾아오게 된 것이지요. 이렇게 타락하다보니까 하나님께서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징계를 하시는데 그게 진노이지요. 그러한 진노 가운데 이들이 고통당하고 그 고통 가운데서, 하나님 정말 나를 긍휼히 여기시고, 나를 살피시고 나를 도와주옵소서 기도합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또 들으시고 하나님이 구원의 손길을 베푸시지요.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으면 또 하나님을 떠나게 되고, 이게 계속 되어진 역사의 반복이었습니다. 아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아담이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창세기3장 사건으로 하나님을 떠나게 되어졌지요. 그 사건 때문에 하나님이 회복할 수 있는 구원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창세기3:15절 여자의 후손의 언약이지요. 이 언약을 받은 아담이 그 아들 셋에게 이 언약을 전달하고, 언약이 전달 전달 되어져야 하는데 이 언약이 또 끊어지고, 그래서 일어난 시대가 네피림 시대이지요. 아담 이후에 네피림이었습니다. 네피림 시대에 울부짖음 가운데 하나님이 이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이들에게 방주의 언약을 주셔서 노아 한 가정으로 새롭게 시작하셨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또다시 바벨탑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 없이 우리가 성공해 보자, 하나님 없이 우리가 하늘에 닿자, 우리가 하나님을 대적하자는 겁니다. 그 바벨탑 사건 이후에, 하나님이 다시금 구원의 은혜를 베푸셔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이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이삭이 야곱에게, 야곱이 요셉에게.... 그런데 그 이후에 요셉을 알지 못하는 세 왕이 애굽에서 일어납니다. 애굽의 총리가 되어서 7년 풍년 뒤에, 7년 흉년을 잘 마쳐서 애굽을 강대국으로 만들었던 그 요셉을 알지 못하는, 그 요셉 배경에 역사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알지 못하는 세 왕이 일어나게 되어진 것이지요. 그래서 400년의 노예생활이 시작되어진 겁니다. 그 가운데 울부짖는 그 백성들의 고통을 듣고 하나님이 또다시 복음,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데 모세를 부르신 것이지요.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이 내가 너와 함께한다. 네가 가라, 그래서 이 모세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증거 지팡이를 들고 바로 앞에 가서 담판을 짓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하게 됩니다. 그렇게 어렵게 어렵게 40년의 광야시간을 지나면서 어렵게 어렵게 들어간 곳이 가나안 땅입니다. 그 약속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하나님의 통치하심이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이들이 또다시 하나님을 떠납니다. 그게 사사기의 시대고 역사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구원-타락(우상숭배)-고통(부르짖음)-구원”이것은 성경학자들이 사사기 사이클이라고 합니다. 사사기서에 이 사이클이 14번이나 나옵니다. 14명의 사사를 통해서 하나님이 계속해서 구원의 역사를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계속 반복되어집니다. 왜요? 언약이 전달되지 않아서... 그 이후에 사무엘과 다윗이 일어나게 되지요. 이 다윗과 사무엘을 통해서 하나님이 또 다시 구원의 역사를 일으키시는데 불과 한 대도 지나지 않아서 솔로몬은 우상 숭배하게 됩니다. 그 결과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때에 이 통일왕국 다윗이 통일했던 그 통일왕국이 북이스라엘과 남 유다로 나누어집니다. 그리고 몇 명의 왕들이 있고, 그 이후에 북이스라엘은 우상숭배하는 앗수르에 의해서 완전히 BC722년에 멸망하게 되었지요. 그리고 남 유다는 BC586년에 바벨론에 의해서 완전히 멸망하게 되지요. 그 멸망한 그 상황 속에서 이 백성들이 또다시 하나님께 울부짖지요. 하나님은 다시 또 외면하지 않으시고 구원의 손길을 베푸십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남은 자, 그루터기를 통해서 하나님은 그들을 바벨론에 포로되었던 거기에서 70년 뒤에 다시 예루살렘으로 복귀시키셨습니다. 그것도 잠시였습니다. 그 이후에 말라기 선지자 이후에 예수 그리스도, 세례요한이 나타나기 이전까지 400년의 시간, 하나님의 말씀이 끊어져버린 흑암의 시간, 암흑기가 오게 된 것이지요. 그런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령의 역사로 초대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초대교회가 또 불과 300년, 500년뒤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중세 로마 카톨릭, 그래서 천년 가량, 1,200년 가량 암흑기가 지속되어지는 그러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루터, 칼빈과 같은 종교개혁자들을 택하셔서 그 시대를 또다시 구원하셨습니다. 복음, 그런데 또 채 100년도 지나기 전에 또 하나님을 떠난 자유주의 신학과 인본주의적인 그러한 이성과 또 그러한 학문들을 중시하는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성경을 이성으로 보기 시작하는 그러면서 자유주의 신학이 나오게 되고, 그 속에서 또 모든 종교는 다 똑같다, 모든 종교는 다 구원이 있다고 하는 WCC 종교다원주의가 나오게 되어졌습니다. 계속된 반복의 역사, 왜 이런 역사가 자꾸 반복되어지느냐 복음을 후대에게 전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후대들이 그 언약의 가치를 알지 못하고 또 세상속으로 따라가 버렸기 때문에 오게 되어진 결과이지요. 이번 정부가 시작되어지면서 내건 모토가 적폐청산 아닙니까? 적폐라는 것은 온갖 지금까지 쌓여왔던 폐단들을 청산하겠다라는 겁니다. 우리가 이번, 이 여름에 진짜 창조 때로부터 지금까지 흘러왔던 그 역사, 반복되어지는 실패의 역사를 청산해야 합니다. 마지막 기회, 단 한번의 기회, 영원한 기회, 이 기회를 통해서 우리 후대들에게 언약을 전달해야 되겠습니다. 사사시대에 보면 사사기서2:8~15절 그사이의 말씀을 보면 2:8절에 여호수아가 죽었습니다. 죽고 난 뒤에 삿2:10절에 보니까“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 그 세대의 사람, 여호수아와 동시대에 살았던 사람입니다. 여호수아와 함께 하면서 하나님이 광야 40년 동안 어떻게 이끌어오셨고, 가나안 땅에 어떻게 들어오게 되어졌는지, 정복전쟁 속에 하나님이 하신 역사를 보았던 그 사람들이 다 죽고 난 뒤에,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여호와께서 행하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해서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는 다른 세대가 일어나게 되어진 겁니다. 이 다른 세대들이 어떻게 행했느냐? 사사기서2:13절에 보니까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으며...2:14 그 결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노략하는 자의 손에 넘겨주사, 그들이 노략을 당하게 하시며 또 주위에 있는 모든 대적의 손에 팔아넘기시매, 그들이 다시는 대적을 당하지 못하였으며 또다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게 되었지요. 이 역사가 계속해서 반복되어졌지요. 우리가 복음 때문에, 그리고 전도와 선교 때문에 중대한 결단을 하고 우리가 다락방 전도운동시간 속에 뛰어든지 30년이라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제 한 세대가 가고 한 세대가 오는 중대한 시간표 속에 놓여 있는 우리는 복음 때문에, 우리가 듣지 못한 이야기를 들었고 우리가 받지 않아도 될 핍박과 박해를 우리가 받았습니다. 오직 복음 때문에. 그 복음 때문에 우리가 이 시간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우리에게 얼마나 한이 있습니까? 이 한은, 이 복음이 만약에 우리 다음 세대에, 오늘 사사기서에 나오는 것처럼 여호수아가 죽고 그 뒤에 만약에 이 복음을 알지 못하는 다른 세대가 일어난 것처럼 우리 후대에 이런 아이들이 일어난다면 여러분, 어떠시겠습니까? 정말 우리 후대들에게 이 언약을 전달해야 합니다. 그래서 단 한 번의 기회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다음은 없다, 다음 기회는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단 한 번의 기회라고 생각하시고 우리가 올여름 정말 집중해야 합니다. 마지막 기회입니다. 더 이상은 없습니다. 마지막 기회입니다. 우리 후대에게 정말 이 복음, 언약을 전달해야 합니다. 그 때에 이 언약이 영원한 응답으로 오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 우리의 중심, 정말 우리의 한을 담아서, 우리의 기도를 담아서, 우리의 마음을 담아서, 힘을 다해서 우리가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정말 우리 후대들에게 이 복음이 어머니의 복음으로 끝나지 않도록, 이 한이 어머니의 한으로, 아버지의 한으로, 목사님의 한으로 끝나지 않도록 정말 우리 후대들에게 이 복음이 전달될 수 있도록 우리는 정말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단 한 번입니다. 마지막입니다. 더 이상은 없습니다. 정말 우리 마음을 담고 우리의 중심을 담고 우리가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2. 단 한번의 기회, 마지막 기회, 영원한 기회
두 번째입니다. 단 한 번의 기회, 마지막 기회, 영원한 기회. 올여름 성경학교 주제입니다. 여러분, 주보 안에 보시면 성경학교 일정들이 죽 나와 있지요? 그 일정표 위에 단 한 번의 기회, 마지막 기회, 영원한 기회라고 나와 있습니다. 다락방의 한 세대가 저물고 있습니다. 이제 한 세대가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그 시간표를 보고 우리가 단 한 번 마지막 기회로 우리가 후대에게 언약을 전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첫 번째로 단 한 번의 기회는 어떤 기회입니까? 치유의 기회입니다. 우리 렘넌트들에게 있는 영적 문제, 우리 렘넌트들이 가지고 있지만 깨닫지 못하고 있는, 오랫동안 가지고 있는, 아직 문제가 드러나진 않았을 지라도 이미 그 안에 장약으로 가지고 있는 그 문제, 그것을 해결해줘야 합니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가 어떤 문제가 터지고 나면, 어떤 이상한 행동을 하거나 어떤 문제가 생기면 부모님들은 대부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친구를 잘못 만나서 그래. 자, 여러분, 어떤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떤 사건 때문에 그렇다, 그런데 그 이전에 이미 그 문제가 올 수밖에 없는, 화약으로 치면 장약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장약에는 반드시 뭐가 있어야 합니까? 도화선이 있어야 합니다. 도화선에 불이 붙어서 타들어갈 때 이 장약이 터지는 것입니다. 우리 렘넌트들, 렘넌트들뿐만 아니라 저와 여러분, 이 땅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들은 이것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오래된 문제, 그게 내가 살면서 나오는 문제가 아니라 이미 그 속에 가지고 있는 문제입니다. 병원에 가 보면 희귀병을 앓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 희귀병을 앓는 사람들 가운데 어른이 되어서 희귀병이 오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보면 어린아이들이 희귀병 걸린 아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육신적인 질병뿐만 아니라 영적인 문제, 영적인 질병도 가지고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언제 시작되었습니까? 하나님을 떠나고 시작된 것입니다. 창세기 3장, 하나님을 떠난 사건, 하나님의 언약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언약을 어기고 사단에게 속아서 하나님을 떠나버린 그 사건 때문에 오게 되지요. 창세기 3장 사건 때문에 인생에 질병이 오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3장 사건 때문에 인생에 죽음이란 문제가 오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3장 때문에 인생에 두려움이라는 문제가 오게 되었습니다. 그 이전에는, 하나님과 함께 있을 때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떠나는 순간 모든 문제가 오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 답이 안 나오면 절대 복음의 가치, 복음의 필요성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모든 문제가 오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이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살아가기 시작합니다. 나 중심, 그러면서 온갖 보이는 육신과 물질을 위해서 살아가기 시작하는데 삶의 모든 목적이 뭐냐? 삶의 모든 기준이 뭐냐? 의식주로 충족되는 삶, 그게 행복이고 그게 평안이고 그게 가치 있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자기의 이름을 드러내기 위해서, 자기의 명예를 드러내기 위해서 몸부림칩니다. 아무리 괜찮은 사람도 터질 때가 있습니다. 언제 터지느냐? 자존심이 상할 때. 자기 자존심이 상하면 막 터져 버립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 떠난 결과입니다. 하나님 떠나서 자기 중심, 자기 이름, 자기 명예, 내 이익과 손해, 거기 딱 걸려서 모든 문제가 다 터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틀린 것을 이루려고 사람들이 온갖 열심과 노력을 합니다. 거짓된 성공을 위해서, 정말 썩어지고 없어질 그 의식주를 위해서, 참된 내가 아닌 거짓된 나를 찾고자 사람들이 열심히 애를 쓰고 노력하는데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이 자기 스스로 뭔가 의지할 대상을 찾아서 만들어내는데 그게 우상, 점술, 무속의 문화입니다. 이게 문화가 되어버렸습니다. 인류의 역사, 창세기 3장 이후로 흘러내려오는 역사가 다 뭐냐? 무속의 문화이고 점술의 문화이고, 그리고 우상의 문화입니다. 그 문화 속에서 태어나 살다 보니 전부 다 그 배경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여러분, 성령 인도, 성령 인도가 무엇입니까? 깊이 들어가 보면 점쟁이 찾아가서, 점쳐서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그거 아는 게 성령 인도입니다. 많은 부분 그렇게 생각합니다. 맞냐 틀리냐? 이게 옳으냐 그르냐? 그게 하나님 떠난 문제입니다. 하나님 안에 있으면 옳고 그른 게 필요 없습니다.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믿으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거기에 다. 그 영향이 뭐냐? 다 점술입니다. 무속. 제가 어릴 때 눈에 다래끼가 참 많이 났습니다. 저를 닮아서 저희 큰애도 어릴 때 다래끼가 많이 나고 그랬습니다. 다래끼가 났는데 교회 갔더니, 제가 시골교회, 어릴 때 다녔던 교회인데 거기 권사님들이 손톱 위에다 십자가를 그리라고 합니다. 밥 풀 때 밥주걱으로 십자가를 그리랍니다. 여러분, 많이 안 들어보셨습니까? 저만 들었습니까? 그리고 눈썹을 뽑아서 돌 위에 놓고 거기 또 십자가를 그리래요. 이게 어디서 온 겁니까? 무속 아닙니까?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도 무속의 문화 속에 그대로 있다니까요. 지금 여러분들이 기도하고 있는 기도제목들 한 번 떠올려 보십시오. 거기에 천지신명을 넣어 보십시오. 거기에 부처님을 넣어 보십시오. 기도가 안 됩니까? 되지요? 그게 다 무속, 점술, 우상 배경 속에, 그 문화 속에 태어나서 자라다 보니 그런 기도, 예수 믿는다고 하고 복음 안다고 하면서 각인되고 뿌리내리고 체질된 그것 속에서 신앙 생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유산을 누구에게 물려줍니까? 우리 후대에게 그대로 물려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태어나서 세상에서 배우는 모든 교육은 인본주의 교육입니다. 하나님이 없다는 교육입니다. 세상은 창조된 게 아니라 진화된 것이라고 배우고 있습니다. 세상, 노력해야 한다. 스스로 돕는 자를 하늘이 돕는다고 합니다. 내가 노력하고 애써야 합니다. 그것이 세상의 가르침입니다. 그 가르침을 학교에서 수십 년 동안 배우면서 자랍니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내 속에 체질되는 것이 뭐냐?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세상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아닌 세상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기준이 아닌 세상의 기준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게 좍 깔려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 영향 속에 복음은 자꾸 밀려납니다. 내 속에서 나도 모르게 복음이 자꾸 밀려납니다. 기도하지 못할 만큼 영적인 황폐함이 찾아옵니다. 기도가 안 되니 복음이 안 누려집니다. 복음이 안 누려지니 복음의 능력이 나타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해도 해도 안 되니까, 교회 다녀도 안 되네, 예수 믿어도 안 되네, 그러니까, 교회 안 나올 수는 없고. 나오면서 여전히 우상, 점술, 무속 따라가는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후대들이 이런 문화 속에서 자라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아이들에게 각인되어 있는 이런 뿌리와 체질, 다 바꿔야 합니다. 정말 이번 성경 학교와 또 렘넌트 대회, 합숙 훈련, 이러한 훈련들을 통해서 이 아이들이 말씀에 집중함으로 말미암아, 정말 그 말씀이 살아 역사하고 그 말씀이 영과 혼을,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는 그 능력의 말씀 속에 이 아이들의 인생이 들어가고 이 아이들의 마음과 생각이 들어가게 될 때에 잘못된 각인과 뿌리들이 뽑히게 되는 것입니다. 그 때에 진짜 생명의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번 이 기회, 단 한 번의 기회, 우리 아이들이 치유될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입니다. 두 번은 없습니다. 이번이 단 한 번의 기회입니다. 이 기회를 통해서 이 아이들이 말씀으로 치유되는 응답을 누릴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마지막 기회입니다. 어떤 마지막 기회냐? 렘넌트들이 서밋으로 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입니다. 다시는 없습니다. 마지막입니다. 서밋이 무엇입니까? 서밋은 내가 애쓰고 노력해서 정상에 올라가는 게 서밋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미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실 때 서밋으로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1:5에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했습니다. 무엇으로?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예레미야를 열방의 선지자로. 언제? 하나님이 엄마 뱃속에 잉태되기 이전에, 저와 여러분이 창세 전에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았지 않습니까? 그 때 이미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서밋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서밋은 이미 주신 것입니다. 내가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지난주 강단 말씀에 우리가 믿음을 가져야 한다, 어떤 믿음이요? 하나님이 하나님 됨을 믿고. 두 번째 믿음이 뭡니까? 하나님이 주신 것과 하나님이 주실 것을 믿는 믿음, 그게 서밋입니다. 이미 다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주셨습니다. 우리의 시간에는 과거와 현재, 미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시간에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없습니다. 시공간을 초월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그래서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주실 때에 그 안에 다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 못 누리는 것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못 받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이 다 주셨습니다. 골로새서 2:3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그리스도는 완전합니다. 그리스도는 충분합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것입니다. 다 있습니다. 마태복음 28:18에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그리스도께 주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모든 권세가 있습니다. 그 그리스도가 어디 계십니까? 어디 있습니까? 내 안에.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그리스도가 지금 내 안에 나와 함께 하며 그 이름 부를 때에 하늘 보좌의 축복이 임하고 그 이름 부를 때에 땅의 권세로서 이 땅에 역사하는 모든 저주, 사단, 지옥의 권세는 떠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다 있습니다. 빌립보서 2:9~10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모든 이름 위해 뛰어난 이름. 그 이름은 어떤 이름이냐?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예수 이름 앞에 무릎 꿇을 수밖에 없는 그 능력의 이름, 뛰어난 이름, 그 이름이 그리스도입니다. 그 예수가 지금 내 안에 와 있습니다. 이미 우리 렘넌트들 속에 와 있습니다. 와 있는 이 축복을 확인하고 찾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3:5 나를 시험하고 그래서 나를 확증시키면서 이미 내게 그리스도, 그 안에 모든 것이 다 와 있구나 하는 것을 확증케 하는 것, 그 기회입니다. 그런 마지막 기회라는 것입니다. 이걸 보고 영적인 서밋이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모든 것이 다 있음을 알고 누리는 것이 영적인 서밋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모든 것이 다 있음을 알고 누릴 때에 따라오는 게 기능의, 내 업의, 내 전문성의 응답입니다. 그것을 가리켜 기능서밋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 기능에서도 응답을 받고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영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면 자연스레 모든 흐름은 나 중심으로 바뀝니다. 흐름을 바꾸는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내가 회사에서 직위는 낮고 신분은 낮을지 모르지만 모든 것이 나 중심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게 문화서밋입니다. 영적 서밋, 기능 서밋, 문화 서밋. 그 이전에 영적 서밋의 축복을 누리는 마지막 기회, 그게 이번 여름입니다.
세 번째로 영원한 기회입니다. 영원한 기회. 언약은 반드시 성취됩니다. 이 땅의 그 어떤 것도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남길 수 있는 것은 영원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 외에는, 우리가 남길 수 있는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영원한 것, 언약입니다. 그 언약은 내가 비록 이 땅에 살다가 죽더라도 그 언약은 영원하기에 계속 성취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쌓아 놓으면 그 기도가 쌓여서 나는 죽더라도 내가 쌓아 놓은 기도는 반드시 시대와 역사 속에 응답 되게 되어 있습니다. 영원한 언약, 그 언약의 성취 속에 우리가 있는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의 나라, 오직 성령, 영원한 언약. 이 언약은 영원합니다. 이 언약 속에 우리의 인생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그 영원한 언약 속에 들어가는 영원한 응답, 그 기회가 이번 여름이라는 것입니다. 언약의 성취 속에 우리 인생이 담겨 있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언약의 여정이라 합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우리는 여정 속에 있습니다. 여정이라는 것은 집으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끝이 있다는 것입니다. 동대구역에 여러분, 11시, 12시 쯤 가 보면 동대구역 대합실 의자에 노숙자들이 많이 누워 계십니다. 커다란 짐을 가지고. 왜? 사시사철 다 입고 해야 하니까 옷 다 가지고, 그거 베고 누워 있습니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배낭을 메고 어떤 젊은 친구들이 그냥 아무데나 깔고 침낭 덮고 자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배낭 여행 와서. 똑같이 노숙하는데 한 가지 차이가 있습니다. 뭡니까? 집이 있고 집이 없고. 여정 속에 있는 사람과 그게 인생인 사람. 우리는 문제가 올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려움이 올 수 있습니다. 우리 삶 속에 많은 힘든 고통과 고난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은 여정이라는 것, 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게 우리의 인생은 아닙니다. 그게 우리의 인생이라고 생각하는 그것 자체가 언약 밖에 있는 삶입니다. 우리가 언약 안에 있다는 것은 그게 우리의 인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지나가는 것입니다. 언약을 붙잡아야 합니다. 우리 후대들이 이 언약을 붙잡고 오직의 약속을 붙잡고 있으면, 하나님이 이 아이들을 통해서만 해야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오직의 언약을 붙잡고 언약의 여정 속에 들어가면 하나님이 그걸 통해서 이 아이들에게만 주시는, 우리 렘넌트들에게만 주시는 유일성의 응답이 또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 응답을 가지고 아무도 할 수 없고 아무도 갈 수 없고 아무도 이룰 수 없는 그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게 재창조의 역사입니다. 이게 영원한 응답인 것입니다. 우리 렘넌트들이 이번 여름 행사를 통해서 마지막, 단 한 번, 영원한 기회 속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역사의 고리가 끊어지고 진짜 복음 안에서 하나님 주시는 응답들을 누리는 후대들이 될 수 있도록 우리는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오늘 본문은 디모데후서입니다. 바울이 제일 마지막에 자기 아들과 같이 여기는 디모데에게 쓴 편지입니다. 이 디모데는 자신에게 온 단 한 번의 기회, 마지막 기회, 영원한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디모데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것처럼 어릴 때부터 성경을 잘 알던 인물이었습니다. 디모데후서를 보면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 두 분 다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는 헬라인이었습니다. 헬라인인 아버지 밑에서 헬라 문명을 받아들이고 헬라적인 삶을 산 게 아니라 어머니와, 또 외조모로부터 성경을, 어릴 때부터 각인된 그 성경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 따라가는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안다고 해도 이 디모데는 진짜 성경을 아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디모데가 보았던 성경은 구약 성경입니다. 그런데 이 구약 성경이 무엇을 향하고 있느냐? 이 구약 성경이 왜 쓰였느냐? 그 답을 알지 못한다면 성경은 알아도 아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많이 읽습니다. 성경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압니다. 그런데 성경의 진짜 이유를 모른다면 성경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요한복음 5:39에 예수님에 대해 기록되었습니다. 요한복음 20:31에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기록된 것이 성경입니다. 복음을 모르고 성경을 안다? 그건 성경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차라리 윤리, 도덕책을 보고 자기 계발서를 보는 게 더 나을 수 있습니다. 성경을 오직 그리스도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디모데는 성경을 알았지만 안 게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디모데에게 단 한 번의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어느 날 바울이라는 전도자가 자기가 사는 그 지역, 루스드라를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 루스드라에 들어와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복음을 디모데가 받은 것입니다. 그 단 한 번의 기회, 마지막 기회가 될 수 있는 그 현장에서, 언제 바울을 다시 볼지 모르는 그 기회에 이 디모데가 복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인생의 모든 답이 완전히 나와 버렸습니다. 바울도 이 디모데를 그냥 보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돌에 맞아서 거의 죽었습니다. 이 돌로 친 사람들이 바울이 죽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루스드라 성 밖으로 내보낸 것입니다. 유대인의 율법상 시체를 성 안에 둘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해 지기 전에 시체를 성 밖에 내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을 성 밖에 내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이 바울이 돌에 맞아서, 죽었다고 생각될 만큼 돌에 맞아서 얼마나 몸이 만신창이가 되었겠습니까? 그런데 이 바울이 단 한 번의 기회이고, 마지막 기회이고, 영원한 기회이기 때문에 그 아픈 몸을 이끌고 루스드라 성에 다시 들어갑니다. 왜요? 디모데. 정말 우리가 이 심정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이 마음을 가지고 이번 여름을 두고 우리 렘넌트를 두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단 한 번의 기회, 마지막 기회. 바울이 그 한 번의 기회,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만신창이가 된 그 몸을 이끌고 들어가서 디모데에게 복음을 전했는데 이 디모데가 일차 전도여행이 끝나고 이차 전도 여행 때부터는 바울과 함께 팀을 이루어서 전도하기 시작합니다. 바울의 뒤를 이어서 바울이 필요로 하는, 바울이 가야 하는데 가지 못하는 그 현장마다 바울이 디모데는 보냅니다. 마지막에는 에베소 교회를 감독하고 그렇게 순교를 당했던 것이 디모데입니다.
여러분 인생에 디모데와 같은 후대를 남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정말 이 한을 품고 우리가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정말 우리 이번 여름을 통해서 우리 렘넌트들에게 치유가 되고 정말 하나님이 다 준비해 놓으신 서밋의 응답을 찾아냄으로 말미암아 지금도 성취되고 있는 언약의 여정, 세계복음화 속에 쓰임 받는, 그러한 후대를 세우고 키우는 우리 모든 성도님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8년 7월 15일 주일 2부 예배 최상국 목사
단 한번, 마지막, 영원한 기회 렘넌트
(딤후3:13-17)
서론: 이번 여름 수련회가 언약에 집중 하는 기회가 되고, 복음이 내게 능력으로, 부모님의 신앙이 나의 믿음과 신앙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렘넌트들이 복음으로 답을 내리고, 상처가 치유 되어지는 기회가 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1. 청산 해야 할 역사의 반복
가. 성경을 보면 네 가지를 반복(구원 – 타락 – 고통 – 구원)
나. 후대에게 복음을 전달 하지 않아서 계속 되는 반복
1) 여호수아의 죽음(삿2:8),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삿2:10),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김(삿2:13), 하나님의 진노(삿2:14)
2) 후대들에게 언약을 전달 – 단 한 번의 기회, 마지막 기회, 영원한 기회
2. 단 한 번의 기회, 마지막 기회, 영원한 기회
가. 단 한 번의 기회 – 치유(가지고 있는 영적문제 해결)
1) 하나님을 떠남으로 모든 문제가 오게 됨, 자신을 위해 살아감, 육신과 물질을 위해 살아감, 명예를 위한 몸부림
2) 틀린 성공을 이루기 위해 의지 할 대상을 찾음(우상, 점술, 무속), 하나님이 없는 교육으로 뿌리, 세상의 방법으로 체질
3) 말씀에 집중함으로 잘못된 각인, 뿌리, 체질이 변화되고 치유
나. 마지막 기회 – 서밋(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실 때 이미 서밋으로 세우심)
1) 그리스도 안에 모든 축복을 다 주심 – 골2:3, 마28:18, 빌2:9-10
2) 영적서밋 – 나에게 주신 축복을 확인하며 누리는 것
3) 기능서밋, 문화서밋
다. 영원한 기회 – 하나님으로부터 주신 것(영원한 언약 속으로 들어가는 기회)
1) 영원한 언약(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 나라, 오직 성령)의 성취 속에 우리의 인생이 있음
2) 오직의 약속을 붙잡고 언약의 여정 속에 있으면 나만이 해야 되는 일을 발견(유일성)
3) 아무도 할 수 없고, 이룰 수 없는 일을 하게 됨(재창조)
결론: 디모데는 단 한 번의 기회, 마지막 기회, 영원한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디모데는 어릴 때부터 성경을 배우고 알았던 인물이지만 루스드라에서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 성경을 깨달았습니다. 이번 여름 행사를 통해 오래 된 영적문제가 치유를 받고, 이미 우리에게 주신 서밋의 응답을 찾아내며, 언약의 여정 속에서 영원한 언약 속으로 들어가는 기회가 되길 기도 해야 합니다.
“단 한 번, 마지막, 영원한 기회 렘넌트”
(딤후3:13~17)
13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14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15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딤후13:13~17
■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의 박수를 드리겠습니다. 우리 일생이 하나님의 소원에 메여 온 세상에 그루터기를 세우는, 정말 후대 렘런트를 세우는 그 일에 우리의 생이 들여지는 응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인사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예수를 바라보십시다. 할렐루야! 아멘.
담임목사님께서는 지금 말레이시아에 신학교를 다니면서 신학교 살릴 그러한 사역을 하고 계십니다. 신학교가 복음으로 살지 않으면, 정말 복음 가진 목회자가 나올 수 없습니다. 복음 가진 목회자가 나오지 않는다면 교회는 복음 없는 교회가 됩니다. 복음 없는 교회가 세워지면 성도들은 복음 없이 종교생활 하다가 결국 불신자와 똑같이, 아니 불신자보다 더 못한 삶을 살며, 망하게 되어집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신학교입니다. 우리 목사님 귀한 사역을 통해서 정말 말레이시아를 살리고, 동남아시아를 살리고, 전 세계를 살릴 수 있는 절대제자, 정말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 이 오직의 언약을 붙잡은 절대제자들이 일어나서, 이들을 통해서 무너지지 않는 시스템이 세워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주신 본문을 가지고 “단 한번, 마지막, 영원한 기회 렘런트”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길 원합니다. 이번 주부터 여름 성경학교와 또 수련회, 각종 대회가 시작되어집니다. 이번 주 금요일, 토요일 해서 태영아부 성경학교와, 유년부 성경학교, 그리고 토요일에는 초등부 성경학교가 진행되고요. 그 다음주에는 렘런트 리더 수련회와 또 세계 렘런트대회, 또 나머지 다른 부서들 성경학교, 수련회가 진행되어집니다. 매년 반복되어지는 행사이지만 단 한 번의 기회이고, 마지막 기회이고, 영원한 기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시간을 결코 그냥 또 하는구나 라고 흘려보내서는 안 됩니다. 정말 마음을 담고, 중심을 다해서 이번 이 기회를 통해서 정말 인생의 중요한 답을 얻는 그러한 렘런트들이 되어질 수 있도록 우리가 기도해야 될 것입니다. 후대들에게 언약을 집중해서 심을 기회이고, 그리고 귀로만 듣던 복음, 그 복음이 내게 능력으로 체험되어지는 그러한 기회요, 또 부모님의 언약과 부모님의 믿음이 나의 언약이 되어지고, 나의 믿음이, 나의 신앙생활로 바뀌어지는 그러한 기회가 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3:5절에 “너희가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 우리 기성세대들이 늘 확인하고 확증해야 될 뿐만 아니라, 우리 렘런트들이 정말 이 복음 안에 있느냐? 믿음 안에 있느냐? 그냥 교회 안에 있고, 예배 드린다고 능수가 아니라 정말 이 아이들이 언약 안에 있느냐? 이 아이들이 정말 예수가 그리스도 되시는 이 복음이 나의 복음이 되어져 있느냐? 우리 부모된 자로서, 또 앞선 세대인 우리들이 이것을 점검하고, 정말 이 아이들이 그 복음으로 완전히 증거를 찾아 누릴 수 있도록 확증할 수 있도록 우리가 도와야 될 것입니다. 이번 여름 단 한번, 마지막, 영원한 기회입니다. 진짜 마지막이냐 그 말이 아니라, 그 심정을 가지고, 그 절박함과 시급한 시간표임을 알고 우리 후대들에게 이번에 이 기회에, 정말 이 아이들이 우리 렘런트들이 복음으로 답을 내리고, 정말 상처가 치유되어지고, 하나님이 복음 안에 주신 모든 응답과 축복들을 찾아 누릴 수 있도록 우리가 기도하고, 정말 이들을 도와야 될 것입니다. 2018년 여름, 이번 여름이 우리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는 렘런트들, 또 우리 교회와 전 세계에 속해 있는 렘런트들이 인생을 두고 돌아볼 때에 나의 인생의 최고의 한해였다 라고 고백되어질 수 있는 그 단 한번, 그리고 마지막, 영원한 기회가 되어질 수 있도록 우리가 함께 기도하며, 인도받기를 원합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우리가 함께 이번 여름을 두고 기도해야 될 기도제목들을 함께 나누는 그런 시간을 갖기를 원합니다.
1. 청산해야 할 역사의 반복
먼저, 첫 번째로 우리가 청산해야 될 역사가 있습니다. 계속해서 반복되어지는 그러한 실패의 역사, 그 역사를 우리는 청산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그 이후로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까? 그 역사를 다 기록한다면 어떻게 기록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 역사를 정리해 보면 이 네 가지 흐름으로(“구원-타락(우상숭배)-고통(부르짖음)-구원”)계속 반복되어져 왔던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역사를 보면 이것의 반복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복음을 주시고, 그 복음을 받은 자들이 구원의 축복을 누리다가 이 축복을 후대에게 전달해야 하는데 그것이 제대로 전달되어지지 않아서, 후대들은 교회 안에 있지만 복음 없는 종교생활하게 되고, 교회 안에 있지만 우상숭배와 다를 바가 없고, 하나님의 자녀요 교인이고 성도라고 하지만 불신자보다 더 못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그러한 타락의 시대가 찾아오게 된 것이지요. 이렇게 타락하다보니까 하나님께서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징계를 하시는데 그게 진노이지요. 그러한 진노 가운데 이들이 고통당하고 그 고통 가운데서, 하나님 정말 나를 긍휼히 여기시고, 나를 살피시고 나를 도와주옵소서 기도합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또 들으시고 하나님이 구원의 손길을 베푸시지요.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으면 또 하나님을 떠나게 되고, 이게 계속 되어진 역사의 반복이었습니다. 아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아담이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창세기3장 사건으로 하나님을 떠나게 되어졌지요. 그 사건 때문에 하나님이 회복할 수 있는 구원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창세기3:15절 여자의 후손의 언약이지요. 이 언약을 받은 아담이 그 아들 셋에게 이 언약을 전달하고, 언약이 전달 전달 되어져야 하는데 이 언약이 또 끊어지고, 그래서 일어난 시대가 네피림 시대이지요. 아담 이후에 네피림이었습니다. 네피림 시대에 울부짖음 가운데 하나님이 이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이들에게 방주의 언약을 주셔서 노아 한 가정으로 새롭게 시작하셨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또다시 바벨탑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 없이 우리가 성공해 보자, 하나님 없이 우리가 하늘에 닿자, 우리가 하나님을 대적하자는 겁니다. 그 바벨탑 사건 이후에, 하나님이 다시금 구원의 은혜를 베푸셔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이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이삭이 야곱에게, 야곱이 요셉에게.... 그런데 그 이후에 요셉을 알지 못하는 세 왕이 애굽에서 일어납니다. 애굽의 총리가 되어서 7년 풍년 뒤에, 7년 흉년을 잘 마쳐서 애굽을 강대국으로 만들었던 그 요셉을 알지 못하는, 그 요셉 배경에 역사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알지 못하는 세 왕이 일어나게 되어진 것이지요. 그래서 400년의 노예생활이 시작되어진 겁니다. 그 가운데 울부짖는 그 백성들의 고통을 듣고 하나님이 또다시 복음,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데 모세를 부르신 것이지요.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이 내가 너와 함께한다. 네가 가라, 그래서 이 모세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증거 지팡이를 들고 바로 앞에 가서 담판을 짓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하게 됩니다. 그렇게 어렵게 어렵게 40년의 광야시간을 지나면서 어렵게 어렵게 들어간 곳이 가나안 땅입니다. 그 약속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하나님의 통치하심이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이들이 또다시 하나님을 떠납니다. 그게 사사기의 시대고 역사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구원-타락(우상숭배)-고통(부르짖음)-구원”이것은 성경학자들이 사사기 사이클이라고 합니다. 사사기서에 이 사이클이 14번이나 나옵니다. 14명의 사사를 통해서 하나님이 계속해서 구원의 역사를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계속 반복되어집니다. 왜요? 언약이 전달되지 않아서... 그 이후에 사무엘과 다윗이 일어나게 되지요. 이 다윗과 사무엘을 통해서 하나님이 또 다시 구원의 역사를 일으키시는데 불과 한 대도 지나지 않아서 솔로몬은 우상 숭배하게 됩니다. 그 결과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때에 이 통일왕국 다윗이 통일했던 그 통일왕국이 북이스라엘과 남 유다로 나누어집니다. 그리고 몇 명의 왕들이 있고, 그 이후에 북이스라엘은 우상숭배하는 앗수르에 의해서 완전히 BC722년에 멸망하게 되었지요. 그리고 남 유다는 BC586년에 바벨론에 의해서 완전히 멸망하게 되지요. 그 멸망한 그 상황 속에서 이 백성들이 또다시 하나님께 울부짖지요. 하나님은 다시 또 외면하지 않으시고 구원의 손길을 베푸십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남은 자, 그루터기를 통해서 하나님은 그들을 바벨론에 포로되었던 거기에서 70년 뒤에 다시 예루살렘으로 복귀시키셨습니다. 그것도 잠시였습니다. 그 이후에 말라기 선지자 이후에 예수 그리스도, 세례요한이 나타나기 이전까지 400년의 시간, 하나님의 말씀이 끊어져버린 흑암의 시간, 암흑기가 오게 된 것이지요. 그런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령의 역사로 초대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초대교회가 또 불과 300년, 500년뒤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중세 로마 카톨릭, 그래서 천년 가량, 1,200년 가량 암흑기가 지속되어지는 그러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루터, 칼빈과 같은 종교개혁자들을 택하셔서 그 시대를 또다시 구원하셨습니다. 복음, 그런데 또 채 100년도 지나기 전에 또 하나님을 떠난 자유주의 신학과 인본주의적인 그러한 이성과 또 그러한 학문들을 중시하는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성경을 이성으로 보기 시작하는 그러면서 자유주의 신학이 나오게 되고, 그 속에서 또 모든 종교는 다 똑같다, 모든 종교는 다 구원이 있다고 하는 WCC 종교다원주의가 나오게 되어졌습니다. 계속된 반복의 역사, 왜 이런 역사가 자꾸 반복되어지느냐 복음을 후대에게 전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후대들이 그 언약의 가치를 알지 못하고 또 세상속으로 따라가 버렸기 때문에 오게 되어진 결과이지요. 이번 정부가 시작되어지면서 내건 모토가 적폐청산 아닙니까? 적폐라는 것은 온갖 지금까지 쌓여왔던 폐단들을 청산하겠다라는 겁니다. 우리가 이번, 이 여름에 진짜 창조 때로부터 지금까지 흘러왔던 그 역사, 반복되어지는 실패의 역사를 청산해야 합니다. 마지막 기회, 단 한번의 기회, 영원한 기회, 이 기회를 통해서 우리 후대들에게 언약을 전달해야 되겠습니다. 사사시대에 보면 사사기서2:8~15절 그사이의 말씀을 보면 2:8절에 여호수아가 죽었습니다. 죽고 난 뒤에 삿2:10절에 보니까“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 그 세대의 사람, 여호수아와 동시대에 살았던 사람입니다. 여호수아와 함께 하면서 하나님이 광야 40년 동안 어떻게 이끌어오셨고, 가나안 땅에 어떻게 들어오게 되어졌는지, 정복전쟁 속에 하나님이 하신 역사를 보았던 그 사람들이 다 죽고 난 뒤에,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여호와께서 행하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해서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는 다른 세대가 일어나게 되어진 겁니다. 이 다른 세대들이 어떻게 행했느냐? 사사기서2:13절에 보니까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으며...2:14 그 결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노략하는 자의 손에 넘겨주사, 그들이 노략을 당하게 하시며 또 주위에 있는 모든 대적의 손에 팔아넘기시매, 그들이 다시는 대적을 당하지 못하였으며 또다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게 되었지요. 이 역사가 계속해서 반복되어졌지요. 우리가 복음 때문에, 그리고 전도와 선교 때문에 중대한 결단을 하고 우리가 다락방 전도운동시간 속에 뛰어든지 30년이라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제 한 세대가 가고 한 세대가 오는 중대한 시간표 속에 놓여 있는 우리는 복음 때문에, 우리가 듣지 못한 이야기를 들었고 우리가 받지 않아도 될 핍박과 박해를 우리가 받았습니다. 오직 복음 때문에. 그 복음 때문에 우리가 이 시간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우리에게 얼마나 한이 있습니까? 이 한은, 이 복음이 만약에 우리 다음 세대에, 오늘 사사기서에 나오는 것처럼 여호수아가 죽고 그 뒤에 만약에 이 복음을 알지 못하는 다른 세대가 일어난 것처럼 우리 후대에 이런 아이들이 일어난다면 여러분, 어떠시겠습니까? 정말 우리 후대들에게 이 언약을 전달해야 합니다. 그래서 단 한 번의 기회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다음은 없다, 다음 기회는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단 한 번의 기회라고 생각하시고 우리가 올여름 정말 집중해야 합니다. 마지막 기회입니다. 더 이상은 없습니다. 마지막 기회입니다. 우리 후대에게 정말 이 복음, 언약을 전달해야 합니다. 그 때에 이 언약이 영원한 응답으로 오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 우리의 중심, 정말 우리의 한을 담아서, 우리의 기도를 담아서, 우리의 마음을 담아서, 힘을 다해서 우리가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정말 우리 후대들에게 이 복음이 어머니의 복음으로 끝나지 않도록, 이 한이 어머니의 한으로, 아버지의 한으로, 목사님의 한으로 끝나지 않도록 정말 우리 후대들에게 이 복음이 전달될 수 있도록 우리는 정말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단 한 번입니다. 마지막입니다. 더 이상은 없습니다. 정말 우리 마음을 담고 우리의 중심을 담고 우리가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2. 단 한번의 기회, 마지막 기회, 영원한 기회
두 번째입니다. 단 한 번의 기회, 마지막 기회, 영원한 기회. 올여름 성경학교 주제입니다. 여러분, 주보 안에 보시면 성경학교 일정들이 죽 나와 있지요? 그 일정표 위에 단 한 번의 기회, 마지막 기회, 영원한 기회라고 나와 있습니다. 다락방의 한 세대가 저물고 있습니다. 이제 한 세대가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그 시간표를 보고 우리가 단 한 번 마지막 기회로 우리가 후대에게 언약을 전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첫 번째로 단 한 번의 기회는 어떤 기회입니까? 치유의 기회입니다. 우리 렘넌트들에게 있는 영적 문제, 우리 렘넌트들이 가지고 있지만 깨닫지 못하고 있는, 오랫동안 가지고 있는, 아직 문제가 드러나진 않았을 지라도 이미 그 안에 장약으로 가지고 있는 그 문제, 그것을 해결해줘야 합니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가 어떤 문제가 터지고 나면, 어떤 이상한 행동을 하거나 어떤 문제가 생기면 부모님들은 대부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친구를 잘못 만나서 그래. 자, 여러분, 어떤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떤 사건 때문에 그렇다, 그런데 그 이전에 이미 그 문제가 올 수밖에 없는, 화약으로 치면 장약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장약에는 반드시 뭐가 있어야 합니까? 도화선이 있어야 합니다. 도화선에 불이 붙어서 타들어갈 때 이 장약이 터지는 것입니다. 우리 렘넌트들, 렘넌트들뿐만 아니라 저와 여러분, 이 땅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들은 이것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오래된 문제, 그게 내가 살면서 나오는 문제가 아니라 이미 그 속에 가지고 있는 문제입니다. 병원에 가 보면 희귀병을 앓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 희귀병을 앓는 사람들 가운데 어른이 되어서 희귀병이 오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보면 어린아이들이 희귀병 걸린 아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육신적인 질병뿐만 아니라 영적인 문제, 영적인 질병도 가지고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언제 시작되었습니까? 하나님을 떠나고 시작된 것입니다. 창세기 3장, 하나님을 떠난 사건, 하나님의 언약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언약을 어기고 사단에게 속아서 하나님을 떠나버린 그 사건 때문에 오게 되지요. 창세기 3장 사건 때문에 인생에 질병이 오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3장 사건 때문에 인생에 죽음이란 문제가 오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3장 때문에 인생에 두려움이라는 문제가 오게 되었습니다. 그 이전에는, 하나님과 함께 있을 때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떠나는 순간 모든 문제가 오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 답이 안 나오면 절대 복음의 가치, 복음의 필요성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모든 문제가 오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이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살아가기 시작합니다. 나 중심, 그러면서 온갖 보이는 육신과 물질을 위해서 살아가기 시작하는데 삶의 모든 목적이 뭐냐? 삶의 모든 기준이 뭐냐? 의식주로 충족되는 삶, 그게 행복이고 그게 평안이고 그게 가치 있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자기의 이름을 드러내기 위해서, 자기의 명예를 드러내기 위해서 몸부림칩니다. 아무리 괜찮은 사람도 터질 때가 있습니다. 언제 터지느냐? 자존심이 상할 때. 자기 자존심이 상하면 막 터져 버립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 떠난 결과입니다. 하나님 떠나서 자기 중심, 자기 이름, 자기 명예, 내 이익과 손해, 거기 딱 걸려서 모든 문제가 다 터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틀린 것을 이루려고 사람들이 온갖 열심과 노력을 합니다. 거짓된 성공을 위해서, 정말 썩어지고 없어질 그 의식주를 위해서, 참된 내가 아닌 거짓된 나를 찾고자 사람들이 열심히 애를 쓰고 노력하는데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이 자기 스스로 뭔가 의지할 대상을 찾아서 만들어내는데 그게 우상, 점술, 무속의 문화입니다. 이게 문화가 되어버렸습니다. 인류의 역사, 창세기 3장 이후로 흘러내려오는 역사가 다 뭐냐? 무속의 문화이고 점술의 문화이고, 그리고 우상의 문화입니다. 그 문화 속에서 태어나 살다 보니 전부 다 그 배경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여러분, 성령 인도, 성령 인도가 무엇입니까? 깊이 들어가 보면 점쟁이 찾아가서, 점쳐서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그거 아는 게 성령 인도입니다. 많은 부분 그렇게 생각합니다. 맞냐 틀리냐? 이게 옳으냐 그르냐? 그게 하나님 떠난 문제입니다. 하나님 안에 있으면 옳고 그른 게 필요 없습니다.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믿으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거기에 다. 그 영향이 뭐냐? 다 점술입니다. 무속. 제가 어릴 때 눈에 다래끼가 참 많이 났습니다. 저를 닮아서 저희 큰애도 어릴 때 다래끼가 많이 나고 그랬습니다. 다래끼가 났는데 교회 갔더니, 제가 시골교회, 어릴 때 다녔던 교회인데 거기 권사님들이 손톱 위에다 십자가를 그리라고 합니다. 밥 풀 때 밥주걱으로 십자가를 그리랍니다. 여러분, 많이 안 들어보셨습니까? 저만 들었습니까? 그리고 눈썹을 뽑아서 돌 위에 놓고 거기 또 십자가를 그리래요. 이게 어디서 온 겁니까? 무속 아닙니까?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도 무속의 문화 속에 그대로 있다니까요. 지금 여러분들이 기도하고 있는 기도제목들 한 번 떠올려 보십시오. 거기에 천지신명을 넣어 보십시오. 거기에 부처님을 넣어 보십시오. 기도가 안 됩니까? 되지요? 그게 다 무속, 점술, 우상 배경 속에, 그 문화 속에 태어나서 자라다 보니 그런 기도, 예수 믿는다고 하고 복음 안다고 하면서 각인되고 뿌리내리고 체질된 그것 속에서 신앙 생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유산을 누구에게 물려줍니까? 우리 후대에게 그대로 물려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태어나서 세상에서 배우는 모든 교육은 인본주의 교육입니다. 하나님이 없다는 교육입니다. 세상은 창조된 게 아니라 진화된 것이라고 배우고 있습니다. 세상, 노력해야 한다. 스스로 돕는 자를 하늘이 돕는다고 합니다. 내가 노력하고 애써야 합니다. 그것이 세상의 가르침입니다. 그 가르침을 학교에서 수십 년 동안 배우면서 자랍니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내 속에 체질되는 것이 뭐냐?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세상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아닌 세상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기준이 아닌 세상의 기준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게 좍 깔려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 영향 속에 복음은 자꾸 밀려납니다. 내 속에서 나도 모르게 복음이 자꾸 밀려납니다. 기도하지 못할 만큼 영적인 황폐함이 찾아옵니다. 기도가 안 되니 복음이 안 누려집니다. 복음이 안 누려지니 복음의 능력이 나타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해도 해도 안 되니까, 교회 다녀도 안 되네, 예수 믿어도 안 되네, 그러니까, 교회 안 나올 수는 없고. 나오면서 여전히 우상, 점술, 무속 따라가는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후대들이 이런 문화 속에서 자라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아이들에게 각인되어 있는 이런 뿌리와 체질, 다 바꿔야 합니다. 정말 이번 성경 학교와 또 렘넌트 대회, 합숙 훈련, 이러한 훈련들을 통해서 이 아이들이 말씀에 집중함으로 말미암아, 정말 그 말씀이 살아 역사하고 그 말씀이 영과 혼을,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는 그 능력의 말씀 속에 이 아이들의 인생이 들어가고 이 아이들의 마음과 생각이 들어가게 될 때에 잘못된 각인과 뿌리들이 뽑히게 되는 것입니다. 그 때에 진짜 생명의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번 이 기회, 단 한 번의 기회, 우리 아이들이 치유될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입니다. 두 번은 없습니다. 이번이 단 한 번의 기회입니다. 이 기회를 통해서 이 아이들이 말씀으로 치유되는 응답을 누릴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마지막 기회입니다. 어떤 마지막 기회냐? 렘넌트들이 서밋으로 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입니다. 다시는 없습니다. 마지막입니다. 서밋이 무엇입니까? 서밋은 내가 애쓰고 노력해서 정상에 올라가는 게 서밋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미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실 때 서밋으로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1:5에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했습니다. 무엇으로?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예레미야를 열방의 선지자로. 언제? 하나님이 엄마 뱃속에 잉태되기 이전에, 저와 여러분이 창세 전에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았지 않습니까? 그 때 이미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서밋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서밋은 이미 주신 것입니다. 내가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지난주 강단 말씀에 우리가 믿음을 가져야 한다, 어떤 믿음이요? 하나님이 하나님 됨을 믿고. 두 번째 믿음이 뭡니까? 하나님이 주신 것과 하나님이 주실 것을 믿는 믿음, 그게 서밋입니다. 이미 다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주셨습니다. 우리의 시간에는 과거와 현재, 미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시간에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없습니다. 시공간을 초월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그래서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주실 때에 그 안에 다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 못 누리는 것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못 받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이 다 주셨습니다. 골로새서 2:3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그리스도는 완전합니다. 그리스도는 충분합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것입니다. 다 있습니다. 마태복음 28:18에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그리스도께 주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모든 권세가 있습니다. 그 그리스도가 어디 계십니까? 어디 있습니까? 내 안에.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그리스도가 지금 내 안에 나와 함께 하며 그 이름 부를 때에 하늘 보좌의 축복이 임하고 그 이름 부를 때에 땅의 권세로서 이 땅에 역사하는 모든 저주, 사단, 지옥의 권세는 떠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다 있습니다. 빌립보서 2:9~10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모든 이름 위해 뛰어난 이름. 그 이름은 어떤 이름이냐?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예수 이름 앞에 무릎 꿇을 수밖에 없는 그 능력의 이름, 뛰어난 이름, 그 이름이 그리스도입니다. 그 예수가 지금 내 안에 와 있습니다. 이미 우리 렘넌트들 속에 와 있습니다. 와 있는 이 축복을 확인하고 찾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3:5 나를 시험하고 그래서 나를 확증시키면서 이미 내게 그리스도, 그 안에 모든 것이 다 와 있구나 하는 것을 확증케 하는 것, 그 기회입니다. 그런 마지막 기회라는 것입니다. 이걸 보고 영적인 서밋이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모든 것이 다 있음을 알고 누리는 것이 영적인 서밋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모든 것이 다 있음을 알고 누릴 때에 따라오는 게 기능의, 내 업의, 내 전문성의 응답입니다. 그것을 가리켜 기능서밋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 기능에서도 응답을 받고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영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면 자연스레 모든 흐름은 나 중심으로 바뀝니다. 흐름을 바꾸는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내가 회사에서 직위는 낮고 신분은 낮을지 모르지만 모든 것이 나 중심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게 문화서밋입니다. 영적 서밋, 기능 서밋, 문화 서밋. 그 이전에 영적 서밋의 축복을 누리는 마지막 기회, 그게 이번 여름입니다.
세 번째로 영원한 기회입니다. 영원한 기회. 언약은 반드시 성취됩니다. 이 땅의 그 어떤 것도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남길 수 있는 것은 영원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 외에는, 우리가 남길 수 있는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영원한 것, 언약입니다. 그 언약은 내가 비록 이 땅에 살다가 죽더라도 그 언약은 영원하기에 계속 성취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쌓아 놓으면 그 기도가 쌓여서 나는 죽더라도 내가 쌓아 놓은 기도는 반드시 시대와 역사 속에 응답 되게 되어 있습니다. 영원한 언약, 그 언약의 성취 속에 우리가 있는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의 나라, 오직 성령, 영원한 언약. 이 언약은 영원합니다. 이 언약 속에 우리의 인생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그 영원한 언약 속에 들어가는 영원한 응답, 그 기회가 이번 여름이라는 것입니다. 언약의 성취 속에 우리 인생이 담겨 있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언약의 여정이라 합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우리는 여정 속에 있습니다. 여정이라는 것은 집으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끝이 있다는 것입니다. 동대구역에 여러분, 11시, 12시 쯤 가 보면 동대구역 대합실 의자에 노숙자들이 많이 누워 계십니다. 커다란 짐을 가지고. 왜? 사시사철 다 입고 해야 하니까 옷 다 가지고, 그거 베고 누워 있습니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배낭을 메고 어떤 젊은 친구들이 그냥 아무데나 깔고 침낭 덮고 자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배낭 여행 와서. 똑같이 노숙하는데 한 가지 차이가 있습니다. 뭡니까? 집이 있고 집이 없고. 여정 속에 있는 사람과 그게 인생인 사람. 우리는 문제가 올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려움이 올 수 있습니다. 우리 삶 속에 많은 힘든 고통과 고난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은 여정이라는 것, 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게 우리의 인생은 아닙니다. 그게 우리의 인생이라고 생각하는 그것 자체가 언약 밖에 있는 삶입니다. 우리가 언약 안에 있다는 것은 그게 우리의 인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지나가는 것입니다. 언약을 붙잡아야 합니다. 우리 후대들이 이 언약을 붙잡고 오직의 약속을 붙잡고 있으면, 하나님이 이 아이들을 통해서만 해야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오직의 언약을 붙잡고 언약의 여정 속에 들어가면 하나님이 그걸 통해서 이 아이들에게만 주시는, 우리 렘넌트들에게만 주시는 유일성의 응답이 또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 응답을 가지고 아무도 할 수 없고 아무도 갈 수 없고 아무도 이룰 수 없는 그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게 재창조의 역사입니다. 이게 영원한 응답인 것입니다. 우리 렘넌트들이 이번 여름 행사를 통해서 마지막, 단 한 번, 영원한 기회 속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역사의 고리가 끊어지고 진짜 복음 안에서 하나님 주시는 응답들을 누리는 후대들이 될 수 있도록 우리는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오늘 본문은 디모데후서입니다. 바울이 제일 마지막에 자기 아들과 같이 여기는 디모데에게 쓴 편지입니다. 이 디모데는 자신에게 온 단 한 번의 기회, 마지막 기회, 영원한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디모데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것처럼 어릴 때부터 성경을 잘 알던 인물이었습니다. 디모데후서를 보면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 두 분 다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는 헬라인이었습니다. 헬라인인 아버지 밑에서 헬라 문명을 받아들이고 헬라적인 삶을 산 게 아니라 어머니와, 또 외조모로부터 성경을, 어릴 때부터 각인된 그 성경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 따라가는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안다고 해도 이 디모데는 진짜 성경을 아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디모데가 보았던 성경은 구약 성경입니다. 그런데 이 구약 성경이 무엇을 향하고 있느냐? 이 구약 성경이 왜 쓰였느냐? 그 답을 알지 못한다면 성경은 알아도 아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많이 읽습니다. 성경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압니다. 그런데 성경의 진짜 이유를 모른다면 성경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요한복음 5:39에 예수님에 대해 기록되었습니다. 요한복음 20:31에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기록된 것이 성경입니다. 복음을 모르고 성경을 안다? 그건 성경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차라리 윤리, 도덕책을 보고 자기 계발서를 보는 게 더 나을 수 있습니다. 성경을 오직 그리스도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디모데는 성경을 알았지만 안 게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디모데에게 단 한 번의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어느 날 바울이라는 전도자가 자기가 사는 그 지역, 루스드라를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 루스드라에 들어와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복음을 디모데가 받은 것입니다. 그 단 한 번의 기회, 마지막 기회가 될 수 있는 그 현장에서, 언제 바울을 다시 볼지 모르는 그 기회에 이 디모데가 복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인생의 모든 답이 완전히 나와 버렸습니다. 바울도 이 디모데를 그냥 보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돌에 맞아서 거의 죽었습니다. 이 돌로 친 사람들이 바울이 죽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루스드라 성 밖으로 내보낸 것입니다. 유대인의 율법상 시체를 성 안에 둘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해 지기 전에 시체를 성 밖에 내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을 성 밖에 내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이 바울이 돌에 맞아서, 죽었다고 생각될 만큼 돌에 맞아서 얼마나 몸이 만신창이가 되었겠습니까? 그런데 이 바울이 단 한 번의 기회이고, 마지막 기회이고, 영원한 기회이기 때문에 그 아픈 몸을 이끌고 루스드라 성에 다시 들어갑니다. 왜요? 디모데. 정말 우리가 이 심정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이 마음을 가지고 이번 여름을 두고 우리 렘넌트를 두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단 한 번의 기회, 마지막 기회. 바울이 그 한 번의 기회,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만신창이가 된 그 몸을 이끌고 들어가서 디모데에게 복음을 전했는데 이 디모데가 일차 전도여행이 끝나고 이차 전도 여행 때부터는 바울과 함께 팀을 이루어서 전도하기 시작합니다. 바울의 뒤를 이어서 바울이 필요로 하는, 바울이 가야 하는데 가지 못하는 그 현장마다 바울이 디모데는 보냅니다. 마지막에는 에베소 교회를 감독하고 그렇게 순교를 당했던 것이 디모데입니다.
여러분 인생에 디모데와 같은 후대를 남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정말 이 한을 품고 우리가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정말 우리 이번 여름을 통해서 우리 렘넌트들에게 치유가 되고 정말 하나님이 다 준비해 놓으신 서밋의 응답을 찾아냄으로 말미암아 지금도 성취되고 있는 언약의 여정, 세계복음화 속에 쓰임 받는, 그러한 후대를 세우고 키우는 우리 모든 성도님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8년 7월 15일 주일 2부 예배 최상국 목사
단 한번, 마지막, 영원한 기회 렘넌트
(딤후3:13-17)
서론: 이번 여름 수련회가 언약에 집중 하는 기회가 되고, 복음이 내게 능력으로, 부모님의 신앙이 나의 믿음과 신앙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렘넌트들이 복음으로 답을 내리고, 상처가 치유 되어지는 기회가 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1. 청산 해야 할 역사의 반복
가. 성경을 보면 네 가지를 반복(구원 – 타락 – 고통 – 구원)
나. 후대에게 복음을 전달 하지 않아서 계속 되는 반복
1) 여호수아의 죽음(삿2:8),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삿2:10),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김(삿2:13), 하나님의 진노(삿2:14)
2) 후대들에게 언약을 전달 – 단 한 번의 기회, 마지막 기회, 영원한 기회
2. 단 한 번의 기회, 마지막 기회, 영원한 기회
가. 단 한 번의 기회 – 치유(가지고 있는 영적문제 해결)
1) 하나님을 떠남으로 모든 문제가 오게 됨, 자신을 위해 살아감, 육신과 물질을 위해 살아감, 명예를 위한 몸부림
2) 틀린 성공을 이루기 위해 의지 할 대상을 찾음(우상, 점술, 무속), 하나님이 없는 교육으로 뿌리, 세상의 방법으로 체질
3) 말씀에 집중함으로 잘못된 각인, 뿌리, 체질이 변화되고 치유
나. 마지막 기회 – 서밋(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실 때 이미 서밋으로 세우심)
1) 그리스도 안에 모든 축복을 다 주심 – 골2:3, 마28:18, 빌2:9-10
2) 영적서밋 – 나에게 주신 축복을 확인하며 누리는 것
3) 기능서밋, 문화서밋
다. 영원한 기회 – 하나님으로부터 주신 것(영원한 언약 속으로 들어가는 기회)
1) 영원한 언약(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 나라, 오직 성령)의 성취 속에 우리의 인생이 있음
2) 오직의 약속을 붙잡고 언약의 여정 속에 있으면 나만이 해야 되는 일을 발견(유일성)
3) 아무도 할 수 없고, 이룰 수 없는 일을 하게 됨(재창조)
결론: 디모데는 단 한 번의 기회, 마지막 기회, 영원한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디모데는 어릴 때부터 성경을 배우고 알았던 인물이지만 루스드라에서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 성경을 깨달았습니다. 이번 여름 행사를 통해 오래 된 영적문제가 치유를 받고, 이미 우리에게 주신 서밋의 응답을 찾아내며, 언약의 여정 속에서 영원한 언약 속으로 들어가는 기회가 되길 기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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