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2018-04-08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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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8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히10:19~25)
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21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23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히10:19~25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예수를 바라보십시다.
오늘도 하나님의 사랑 힘입어 담대히 하나님 앞에 나왔습니다. 오늘 참된 치유와 서밋의 응답을 찾아 누리는 귀하고 복된 예배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람은 자기에게 각인된 것, 뿌리내린 것, 체질된 것 따라서 살게 되어지고 열매가 맺혀집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릴 때부터 무엇이 각인되고 뿌리내리고 체질되어 지느냐가 너무 중요한 것이지요. 오늘 이 예배에 우리 렘런트들이 앞자리에 앉아있습니다마는 사실 왜 앞자리에 앉아서 예배를 드려야 되는지 그 의미를 잘 모를 렘런트들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한 시대에 미래를 놓고 우리 렘런트들을 준비하고 있는 그런 축복된 가운데서 오늘 말씀을 받으시고요, 특별히 여러분에게 각인되고 뿌리내리고 체질되어진 이 말씀의 능력은 반드시 여러분이 살아가는 생애동안에 삶으로 열매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음을 주시고, 이 복음이 묵상되어짐으로 말미암아 정말로 이 복음이 우리 안에 각인, 뿌리, 체질되어지면 우리 안에 먼저 들어와 있는 다른 것, 틀린 것, 망할 것 각인된 뿌리된 체질들이 바뀌어지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가 가장 중요한 신앙생활에 응답받는 비밀이 있다면 방법이 아니라 복음의 비밀을 깊이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 모든 훈련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 무엇이냐?
복음의 비밀을 깊이 누리는 것입니다. 이것저것 방법이 아닙니다. 얼마만큼 나의 영적인 상태를 최상의 상태로 만들어 가느냐 거기에 따라서 우리 삶의 권능이 나타나고요 결국은 증인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정말 우리가 복음을 깊이 누리면 누릴수록 시간 가면 갈수록 거기에 따라서 경제도, 건강도, 또 거기에 모든 세상의 것들이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여러분에게 붙여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오늘도 여러분 특별히 다른 것보다도 복음의 깊은 비밀들 속에 들어가서 최고의 복음의 비밀들을 누리는 그 예배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특별히 성경 전체가 복음에 대한 부분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 전체를 복음적인 시각으로 아주 간략하게 잘 정리한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누구냐 하면 바로 신학자인 칼빈이라는 사람입니다.
칼빈은 성경 66권을 가지고 복음의 관점으로 정리를 했는데 거기에 다섯 가지로 정리를 했습니다.
그 첫 번째가 무엇이냐 하면 모든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엡2:1절에 보면 죄와 허물로 죽었던 너희라고 말씀하고 있지요.
하나님의 형상 따라 지음 받은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결국 전적으로 타락하고, 전적으로 부패하고, 전적 무능력 속에 우리 인간이 빠져 버렸다는 것, 그것을 칼빈이 전적타락으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두 번째입니다. 전적으로 타락했기 때문에 결국은 하나님이 은혜 주셔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조건 상관없이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우리를 선택하셨는데 그것을 가지고 무조건적인 선택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롬5:8절에 보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말씀하셨습니다.
내게 어떤 조건이 있어서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먼저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우리에게 대한 사랑을 보이셨었는데 조건 없이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선택해 놓고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느냐?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속죄하셨습니다.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제한적 속죄라 이야기 합니다.
요3:16절에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 여기에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아무에게나 죄 용서함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바로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속죄함을 주시는 제한적 속죄를 말씀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하나님의 은혜가 어떻게 우리에게 나타났느냐? 사실은 아무도 하나님이 은혜 주시면 그 은혜를 거절할 자 없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그 어떤 인간도 막을 자가 없다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불가항력적 은혜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성경에 사도행전9장에 보면 핍박자인 사울이 다메섹에서 돌아왔어요. 누가 꺾으신 것입니까? 하나님이 은혜 주시니까 최대의 그 당시에 핍박자인 사울조차도 예수 그리스도 앞에 무릎 꿇게 되는 이런 역사가 일어나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는데 그 은혜를 아무도 막을 자가 없다 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은혜 받은 자로 오늘 이 자리에 앉은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께서 끝까지 승리토록 하시고 책임지신다는 것, 그것을 가지고 성도의 견인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 66권을 아주 간략하게 복음적인 시각으로 압축해서 잘 설명하고 있는 내용들입니다.
그런데 이 칼빈의 다섯 가지 이 부분들이 오늘 본문에 보면 히브리서10장에 그대로 잘 나타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오늘 이 한날도 특별히 말씀 듣는 가운데서 성령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여시사 참된 복음의 깊은 비밀들을 깨닫고 복음으로 각인, 뿌리, 체질이 바뀌어지는 그런 축복된 응답의 시간들 되시기를 다시 한 번 더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하나님께 나아가자
그렇다면 먼저 첫 번째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자입니다. 오늘 22절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요. 오늘 히10:22절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요.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자 이 말은 우리가 듣기에는 당연한 말이지요. 별스럽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어린 아이들도 아는 이야기입니다. 당연히 하나님께 나아가야지..그런데 이 당시에 사실 이 성경이 히브리서가 기록된 이 당시에 하나님께 나아가는 부분들은 상상할 수 없는 부분들입니다. 우리가 오늘 본문에 하나님께 나아가자 말씀했는데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부분들은 사실 상상할 수 없는 그런 부분들이었습니다. 먼저는 자기 스스로 하나님께 나갈 수가 없었어요. 특별히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전제되어져야 될 부분들이 있는데 반드시 제물이 있어야 되는 것이고요, 또 자기를 대신해서 나아가는 제사장들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어느 인간도 스스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인간이 없었어요. 반드시 제물을 가지고 제사장이 대신해서 하나님께 나아감으로 말미암아 백성들의 죄를 사함 받는 그것이 바로 구약시대에 진행되어졌었고, 사실 유대인들이 믿고 있었던 부분들이었습니다. 우리가 이미 메시지를 통해서 들었던 것처럼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배하는 자리가 성막이라고 하지요. 그 성막 안에는 성소가 있고 지성소가 있습니다. 성소와 지성소로 성막이 구분되어 있는데, 그 성소와 지성소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 바로 휘장입니다. 그런데 성소에는 제사장들이 백성들의 죄를 대신해서 짐승을 제물로 잡아서 피를 가지고 들어가서, 죄를 범할 때마다 하나님께 피를 가지고 들어가서 피를 뿌림을 통해서 백성들의 죄를 대신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죄 범할 때마다 짐승을 잡아야 되고, 그 짐승 잡은 피를 가지고 제사장이 직접 피를 들고 들어간 것이 아니라 대신 제사장이 하나님께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성소 안에는 일 년에 한차례씩, 그것도 대제사장이 먼저 자기의 죄를 용서함 받고 그 다음에 백성의 죄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일 년에 한 차례씩, 대 속죄일에, 대 제사장이...
그래서 제사에 대한 부분들을 이야기 할 때에 특별히 제사는 우리 스스로, 그 어느 누구도, 그 어떤 훌륭한 인가도 하나님 앞에 스스로 나갈 수 없다는 것, 그리고 반드시 피를 가지고 나가야 된다라는 것, 그래서 히9:22절에 보면 “피 흘림이 없은즉 죄 사함이 없다” 라고 말씀하고 있잖아요. 그리고 사실은 구약시대의 모든 제사는 완전한 제사가 아니었습니다.
일시적인 제사였고, 반복적으로 죄를 범할 때마다 짐승을 잡아 죽여야 하는 그런 제사였습니다. 그래서 유대인 가운데 교회 유대인 사학자 중의 한 사람인 요세푸스는 뭐라고 이야기 했느냐? 성소에서 강같이 흘러 내렸다고 이야기 했어요. 늘 짐승을 잡아야 하니까,,,죄 지으면 짐승잡고, 죄 지으면 짐승잡고 그 피를 가지고 들어가야 하니까 피가 강같이 흘러 내렸다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 많은 제사장들이 필요했어요. 왜냐하면 제사를 잘못 지내게 되면 대제사장이 죽임을 당합니다. 제물이 흠이 있는 것이면 그 흠 있는 제물을 가지고 대제사장이 지성소 안에 들어가면 대제사장도 죽고 그 밖에 있는 백성들도 죽게 되어 있어요. 흠이 없는 제물을 가지고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대 제사장이 제물을 가지고 지성소 안에 들어가는데 대제사장의 옷을 보면 금방울이 다 달려 있어요. 그리고 거기에 줄이 메여있어요. 대제사장이 들어가서 제사를 지낼 때에 그 방울 소리가 나면 살아서 제사를 지내는 것이고, 방울 소리가 나지 않으면 죽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줄에 연결되어 있는 그 줄에 의해서 끌려나오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아무나 나갈 수 없는 일이었고, 그것도 제물 없이 나갈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하나님께 나아가자 이 말은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이예요. 그 시대에 그 어느 누구도 나갈 수 없는 어려운 일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실 때에 마태복음27:51절에 보면 지성소와 성소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져서 둘로 나누어졌다 말씀했습니다.
마27:51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그렇게 나오지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 그 휘장이 가운데로 찢어진 것입니다. 누가 찢으신 것입니까?
하나님이 찢으신 것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이후로 모든 인간은, 육신을 갖고 있는 모든 인간은 친히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그 어느 누구도 담대하게 나갈 수 있는 길이 열려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20절에 보면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요.
“거기는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 열어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다시 말하면 육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우리를 위해서 몸이 찢겨지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나아감으로 어느 누구든지 하나님을 직접 만날 수 있는 예배할 수 있는 새로운 살길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열어주셨다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엡2:14절에 보면“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엡2:16절에 보면“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말씀했습니다.
롬4:25절에 보면 “예수는 우리가 범죄 한 것 때문에 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5:1절에 보면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함을 누리자”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몸 찢어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만나고 하나님과 화평할 수 있는 새로운 살 길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여신 것입니다.
요한복음14:6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하나님께 그 어느 누구도 나갈 수가 없었는데 이제는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나아가고, 하나님 만나고 누릴 수 있는 그 길이 그리스도 이름으로 말미암아 열려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다시 말하면 참 왕으로 오시고 참 제사장으로 오시고 참 선지자로 오셔서 우리의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하신 그리스도이십니다. 특별히 우리가 히브리서를 통해서 참 왕, 참 제사장, 참 선지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을 밝히 볼 수 있는데 히브리서 2:14에 보면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여러분, 그러면서 15절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이라 했습니다. 악한 사단이 이 죽음을 가지고 모든 인생을 종노릇 시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권세를 잡은 자, 누구라고요? 마귀라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 마귀의 권세를, 마귀의 머리를 깨뜨리신 참 왕이 되십니다. 바로 참 왕이 되신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히9:12절에 지난번에 우리가 살펴보았습니다만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참 제사장이신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단번에 이루심으로 말미암아. 구약시대에는 매번 하나님께 나아갈 때마다 제물을 가지고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정말로 그 구약 시대의 제사는 어떤 면에서 단번에 이루는 부분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제사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히10:1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11절에도 보면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매일 제사를 지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자기 몸을 피로 드림으로 말미암아 단번에 성소에 들어감으로 말미암아 매일 반복적으로 제사 드릴 필요가 없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나아가면 되도록, 영원한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신 참된 제사장이십니다. 그래서 아담으로부터 시작된 원죄 문제, 또 우리가 살아가면서 짓는 자범죄 문제들, 우리 조상들이 지은 조상 숭배의 죄들 때문에 이 땅에 저주와 재앙이 계속해서 임하고 있는데 이 죄로 인한 저주와 재앙을 참 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신 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의 문제는 끝나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19절, 20절에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무슨 말입니까? 참 선지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피 흘려 죽으신 결과로 그 어느 누구든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새로운 살 길이 열린 것입니다. 참선지자이신 그리스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예배드리기 위해서 앉았다, 참 왕이요 참 제사장이요 참 선지자로서 우리 인생을 위해서 새로운 살 길을 열어 놓으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축복된 자리인 줄을 믿습니다. 여러분, 얼마나 예배에 대한 감사와 감격함을 가지고 이 자리에 참여했습니까? 여러분, 정말로 구약 시대의 예배와 비교해서 오늘 우리가 살펴 보면 아무나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데 우리는 그 어느 누구든지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며 나아오는 자들, 하나님을 직접 만나고 하나님께서 직접 은혜 주시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예배의 축복, 이 사실을 회복해야 합니다. 예배에 하나님께 나아올 수 있는 걸음들이 아닙니다. 어느 누구나 예배에 나아올 수 있는 자격이 아닙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축복된 예배 시간, 이 자리에 앉아 있다는 이 자체가 감사한 것이고 이 자체가 축복 중의 축복인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생에, 평생 동안에 예배 회복의 축복을 누리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정말로 하나님의 사람은 예배만 잘 드려도 성공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배에 성공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그러면 그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모든 삶의 현장에 적용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참된 전도자는, 하나님의 사람은 예배에 생을 걸고 그 예배에 은혜를 받고 있는 예배의 자리가 은혜의 자리인 것을 알고 예배에 은혜 받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삶을 변화시키는 사람이 참 전도자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생을 두고 진짜 붙잡아야 할, 회복해야 할 축복이 있다면 예배 회복입니다. 어느 자리에, 어떤 환경에 처하든지간에 정말 그리스도의, 이 언약의 말씀을 붙잡고 예배 드릴 수 있는 자리에 있다면 그 사람은 반드시 성공하게 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유학 가는 자매 친구, 제 방에 1부 예배를 마치고 잠시 들어와서 함께 기도제목을 나누고 또 그 동안 교회를 통해서 받은 은혜를 같이 나누었습니다. 유학 현장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 붙잡고 예배 드릴 수 있는 단을 쌓을 수 있는 그 자리를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그 생애는 누가 책임 지느냐?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오늘 들어왔을 때 물었습니다. 교회에 연결되어 있느냐? 미리 연결하고 그 교회 목사님과 연결되어 있느냐 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모든 삶은 예배 중심한 삶이 되어야 합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 성막 중심으로 해서 성막이 서면 모든 열두 지파가 서게 되었고 성막이 움직이면 열두 지파가 같이 움직였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예배 중심한 삶이 될 때 하나님께서 모든 이스라엘 백성을 축복하신 것처럼 우리의 삶을 책임지신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짜 우리에게 축복으로 주어진 예배 회복, 이 축복된 회복이 여러분 개개인에게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하나님께 나아가는 제자의 삶
두 번째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제자의 삶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에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의 삶을 집중적으로 말씀하고 있는 부분이 23절, 24절에 있는데 거기 보면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여러 가지 삶에 대한,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의, 제자의 삶에 대한 부분을 하나하나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보면 중요한 것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으라 했습니다. 움직이지 말고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굳게 잡으라 했습니다. 여기 믿는 도리가 무엇을 말할까요? 여기서 믿는 도리가 무엇을 말할까요? 그것을 굳게 잡으라고 했는데 이것은 진리를 말하는 것도 맞지만 그 이전에, 진리를 말하는 것도 맞지만 원래 원어상 여기 ‘믿는 도리’라는 말은 우리가 입으로 시인하는 것, 고백하는 것을 말합니다. 무엇을 말하느냐? 예수를 믿게 될 때 내가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주인으로 믿습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주일마다 신앙 고백을 합니다. 사도신경으로. 그 고백을 이야기합니다, 사실은. 신앙 고백하는 그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사실 신앙 고백하는 그 축복, 역사 속에 계속 우리가 삶에서 신앙이 성장해야 하지 않습니까? 신앙의 역사 속에서 우리가 믿을 때, 처음 믿을 때 고백합니다만 그 고백이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계속 우리가 신앙생활 속에서 성장해나가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과연 우리가 신앙은 고백했지만 우리의 신앙이 삶 속에서 계속 성장해나갈 수 있는가? 사실 오늘 히브리 기자가 히브리서를 이야기하면서 많이 흔들리고 있는, 그런 부분에 흔들리고 있기 때문에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으라 했습니다. 고백한 것도 중요하지만 끝까지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뭐요? 끝까지 굳게 잡으라, 흔들리지 말라 했습니다. 이미 히브리 교인들이 흔들리고 있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당시 히브리 기자가 히브리서를 보내면서 어떤 부분이 흔들리고 있는가를 보았는가 하면 이미 우리가 말씀을 통해서 살펴 보았습니다. 먼저 첫 번째는 그들이 전통적으로 조상적부터 믿어오던 종교는 유대교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예수가 그리스도시다, 그 분이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셨다,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문제를 끝냈다, 이 복음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전통적으로 믿어오던 유대교에서, 조상적으로 믿어오던 유대교에서 개종을 해 버렸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이제 응답을 계속 받으면 다행인데 그렇지 못하다 보니, 또 그런 가운데 유대인들이 계속해서 회심하도록, 다시 돌아오도록 회유 정책을 펴는 것입니다. 모세의 율법으로 돌아와야 한다, 아니,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가 어떻게 우리 메시야가 될 수 있느냐,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자꾸 유대교로 돌아올 것을 이야기하면서 회유 정책을 폅니다. 거기에 처음 예수를 믿은 이 사람들이 뭔가 모르게 마음에 요동함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흔들림이 일어납니다. 또 한 가지는 사실 이 시대, 사실 로마 제국 속에 있을 때 아닙니까? 그러니까 내적으로는 유대교, 전통적으로 섬겨오던 유대교에서 자기들에게 자꾸 돌아올 것을 권유하고, 또 외부적으로는 핍박이 임해 오는데 로마 제국 속에서 사실 육신적인 핍박도 오고 경제적인 당장의 손실도 감당해야 하고, 이런 어려움들이 오니까 우리가 잘못 믿는 것이 아닌가
또 한 가지는 분명히 주님께서 부활하셔서 승천하시면서 몇 날이 못 되어 오시겠다고 말씀했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같이 모두가 재림하실 주님을 기다리고 있는데 주님이 오시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들 마음에 우리가 잘못 믿고, 확실히 우리가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들이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 부분들이 히브리서 기자가 기록한 그 당시의 그 사람들 모두 일반적으로 가진 생각들이고 심지어 제자들과 사도들에게도 그런 생각들이 들어왔습니다. 그러니까 사도행전 1장이 보면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했을 때 예수님께서 뭐라 했습니까? 때와 시기는 너희의 알 바 아니요 말씀했지 않습니까? 무슨 말입니까? 사도들과 제자들에게도 이런 흔들림이 있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 내부적인, 유대교에서 돌아오라고, 회심하라고 하는 회유 정책, 그리고 외부적으로 일어나는 핍박들, 또 재림을 기다리고 있지만 주님이 언제 재림하실지 막막합니다. 그런 불안감 속에서 결국 이들이 하나, 둘, 지치게 되고 예배의 자리를 떠나게 됩니다. 정상적인 예배를 통해서 성찬에 참여하고 또 말씀이 선포되는 그 자리에 참여하던 이 기독교인들이 하나, 둘씩 지쳐서 예배 자리를 떠나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25절에 보면 이야기하게 된 겁니다. 25절 마지막에 봅시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여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뭔가 자꾸 시험이 들어오니까, 옆구리에서 누군가 자꾸 말하니까 옆에서 이야기하니까 그 영향 받아서 지쳐서 예배의 자리에 자꾸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히브리서 기자가 뭐라 합니까?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라 했습니다. 그러면서 오늘 중요한 이 모든 부분을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답을 주었습니다. 그게 뭐냐? 오늘 제목입니다. 한번 따라합시다.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답을 준 것입니다. 왜 흔들리지 말아야 하느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여러분, 여기 약속하신 이는 누구를 말합니까? 하나님을 말합니다. 미쁘시니,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미쁘시니, 이 말은 사전적 의미로는 믿음직하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이 말은 우리에게 약속을 주신 그 하나님은 믿음직하다는 말입니다. 우리를 붙잡고 있는 그 하나님은 믿음직스럽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세상의 그 어느 것도 믿을 것은 없습니다. 남편도, 아내도, 심지어 자녀들도. 세상은 믿을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믿음직스럽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여러분이 붙잡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믿음직스러운 것이냐? 어떻게 믿음직스럽다고 이야기하느냐? 바울의 고백을 통해서 우리가 한번 살펴봅시다. 앞에 디모데전서 1장을 한번 봅시다. 디모데전서 1장 12절부터 제가 보겠습니다. 337면입니다. 바울이 자기가 이제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줄 알고 편지를 써 보냈는데 지난 날 걸음걸음마다 미쁘신 하나님이 감사함으로 역사하셨던 그 사실을 고백한 내용입니다. 12절에 보면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전부 다 하나님이 나를 충성되이 여겼다 말씀했고 직분을 내가 했다는 것이 아니라 맡겼다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나를 능하게 하신. 모든 지금까지의 선교 여정, 걸음걸음 속에, 한 걸음 한 걸음을 하나님, 미쁘신 하나님께서 완벽한 축복 속에 인도하셨음을 고백한 내용입니다. 그러면서 13절에 보면 이 사실을 보면서 자기의 지난 과거들을 고백하게 됩니다.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14절에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15절, 16절 같이 봅니다. 시작.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할렐루야! 여기 미쁘신 하나님에 대한 부분을 이야기하면서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세상에 임하셨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그게 하나님의 미쁘심입니다.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떠나서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도 없고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삶이 죄에 뒹굴고 죄를 먹고 사는 삶입니다. 사실 그렇지 않습니까? 나를 중심하고 세상을 중심하고 성공 중심해서 달려가는 우리의 삶. 그래서 결국은 가면 갈수록 아무리 과학과 의술과 모든 문화가 발달한다 할지라도 미신과 점술과 우상은 더욱 더 발전하게 되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나를, 세상을, 성공을 중심해서 살아가니까. 그 속에서 결국은 알고 보니 마귀를 주인 삼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가운데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육신적으로 모든 문제를 다 가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저와 여러분을 위해서 하나님이 이 세상에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디모데전서 15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저와 여러분을 그 세상 속에서 건지시기 위해서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의 미쁘심입니다. 그 다음 두 번째입니다. 하나님의 미쁘심이 뭐냐? 16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 저와 여러분을 지금도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함으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게 하나님의 미쁘심입니다. 죄 지으면 죄 짓는 자리에서, 그 죄 짓는 부분을 보면서 기다리고 계시고 넘어지면 넘어진 그 자리에서 아직까지 못 일어나느냐 주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일체 오래 참으사. 그 오래 참으심 때문에 오늘 우리가 구원 받은 것입니다. 믿습니까?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이 없었다면 저와 여러분은 벌써 멸망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오래 참으시고 참으신 그 은혜 가운데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자리에 앉아서 예배드릴 수 있다는 것, 구원 받았다는 것,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 그리스도의 일체 오래 참고 기다리심. 여러분의 연약함을 아시고 하나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리 넘어지면 이리 넘어지는 대로, 저리 넘어지면 저리 넘어지는 대로 하나님께서 아시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기다리고 계세요. 여러분, 하나님은 강도나 폭행하는 분이 아닙니다.
강압적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게 아니에요 인격적인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기다리고, 기다리고, 넘어지면 또 일어나길 바라면서 기다리고요. 그래서 성경에 말씀하고 있는 것이 말할 수 없는 탄식함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수 없을 때에 하나님 우리 속에 영으로써 말할 수 없는 탄식함으로 우리 대신 기도하신다고 말씀 하셨느니다. 하나님의 미쁘심, 세상 그 어떤 것에도 믿을 바 된 것이 없어요 오직 정말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그 하나님의 미쁘심. 또 지금도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는 오래 참으시는 그 하나님의 미쁘심. 그 뿐만 아닙니다.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에게 기다릴 뿐만 아니라, 우리를 끝까지 책임지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에 보면 은, 시편48편 14절에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의 하나님이시니 그가 우리를 죽을 때 까지 인도 하시리로다” 죽을 때 까지 끝까지 책임지시고 인도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칼빈이 말한 성도의 견인 이죠 그러면서 로마서 8장 39절에 보면 은, “높음이나 깊음이나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 38절에 보면은,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일이나 장래일이나 능력이나 그 어떤 것도 우리 주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자가 있다고 헀어요? 없다고 했어요 끊을 수 없느니라. 우리를 멸망 당할 수가 없어요. 하나님이 우리를 책임지시고 인도 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5장 18절에 하나님께로부터 난자는 다 범죄 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할렐루야! 여러분 우리가 받은 구원은 취소되지 않습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절대 멸망 받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말로 이제는 그리스도 그 이름 붙잡고 영적 싸움에, 일심, 전심, 지속으로 나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영혼을 구원하는 믿음을 가진 자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히브리서10장 39절 보시겠습니다.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할렐루야! 우리는 뒤로 물러가서 멸망 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할 믿음을 가진자다 여러분 영혼을 구원할 믿음을 가진 자로써 끝까지 영적 싸움만 싸우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도 내 힘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이미 승리하신 그리스도 이름으로 요한복음16장 33절에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여러분 그리스도 그 이름에 비밀 붙잡고 하나님의 미쁘심을 붙잡고요 끝까지 영혼을 구원할 믿음을 가진 자로써 영적 싸움에 승리케 되는 저와 여러분 되길 바랍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나의 연약함, 나의 부족함, 내가 넘어짐, 상관없어요.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말씀 했습니다. 우리의 연약함 상관없다는 말이에요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여러분 넘어졌습니까?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범죄한 자리에 있습니까?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말씀 했습니다. 그 약속하신 이 우리의 죄 용서를 하셨고, 오래 참으시고 끝까지 인도 하시고 승리토록 하시는 하나님이 십니다. 그 약속 붙잡고 오늘도 승리하신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혼을 구원할 믿음을 가진 자로써, 승리케 되어지는 우리 하나교회 모든 성도들 되시길 기도 합니다.
2018년 4월 8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히10:19-25)
서론: 사람은 자기에게 각인, 뿌리, 체질 된 것에 따라 살고, 열매 맺혀 집니다. 우리에게 주신 복음을 묵삼함으로 잘못 된 각인, 뿌리, 체질들이 변화 되어집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복음을 깊이 누리는 것입니다. 여기에 따라서 경제, 건강, 모든 축복이 따라 오게 됩니다.
1. 하나님께 나아가자
가.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히10:22)
1)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지만 재물을 가지고 대제사장을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음(히9:22)
2) 성소(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지었을 때 제사장만 들어가서 제사를 지냄), 지성소(대제사장이 1년에 한 번 제사)
3)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휘장이 찢어짐(마27:51) -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림(엡2:14, 16, 롬4:25, 롬5:1, 요14:6)
나. 예수님은 세 가지 근본문제를 해결
1)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권세를 잡은 자 마귀를 멸하심(히2:14) - 참 왕
2) 단 번에 이루심으로 모든 죄 문제를 해결(히9:12) - 참 제사장
3)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하나님 만나는 길이 열림(히10:19-20) - 참 선지자
2. 하나님께 나아가는 제자의 삶
가.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고(히10:23-24)
1) 믿는 도리 - 입으로 시인, 고백
2) 끝까지 지켜 가는데 어려움 - 다시 회심 하라는 회유, 외부적인 핍박, 재림을 기다리는데 예수님이 오시지 않음(예배의 자리를 떠남)
나.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히10:23) - 약속을 주신 하나님은 믿음직스러움
1) 죄인을 구원하심 – 딤전1:15
2) 오래 참고 기다리고 계심 – 딤전1:16
3) 하나님이 끝까지 책임지시고 인도해 주심 - 시48:14, 롬8:39, 요일5:18
다. 영혼을 구원 하는 영적싸움을 일심, 전심, 지속(히10:39, 요16:33)
결론: 나의 연약함, 부족함, 넘어짐과 상관 없습니다. 약속 하신 이는 미쁘신 하나님이십니다. 죄를 용서 하시고 오래 참고, 우리를 끝까지 책임지시고 인도 하십니다. 이 축복을 날마다 누리시길 바랍니다.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히10:19~25)
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21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23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히10:19~25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예수를 바라보십시다.
오늘도 하나님의 사랑 힘입어 담대히 하나님 앞에 나왔습니다. 오늘 참된 치유와 서밋의 응답을 찾아 누리는 귀하고 복된 예배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람은 자기에게 각인된 것, 뿌리내린 것, 체질된 것 따라서 살게 되어지고 열매가 맺혀집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릴 때부터 무엇이 각인되고 뿌리내리고 체질되어 지느냐가 너무 중요한 것이지요. 오늘 이 예배에 우리 렘런트들이 앞자리에 앉아있습니다마는 사실 왜 앞자리에 앉아서 예배를 드려야 되는지 그 의미를 잘 모를 렘런트들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한 시대에 미래를 놓고 우리 렘런트들을 준비하고 있는 그런 축복된 가운데서 오늘 말씀을 받으시고요, 특별히 여러분에게 각인되고 뿌리내리고 체질되어진 이 말씀의 능력은 반드시 여러분이 살아가는 생애동안에 삶으로 열매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음을 주시고, 이 복음이 묵상되어짐으로 말미암아 정말로 이 복음이 우리 안에 각인, 뿌리, 체질되어지면 우리 안에 먼저 들어와 있는 다른 것, 틀린 것, 망할 것 각인된 뿌리된 체질들이 바뀌어지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가 가장 중요한 신앙생활에 응답받는 비밀이 있다면 방법이 아니라 복음의 비밀을 깊이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 모든 훈련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 무엇이냐?
복음의 비밀을 깊이 누리는 것입니다. 이것저것 방법이 아닙니다. 얼마만큼 나의 영적인 상태를 최상의 상태로 만들어 가느냐 거기에 따라서 우리 삶의 권능이 나타나고요 결국은 증인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정말 우리가 복음을 깊이 누리면 누릴수록 시간 가면 갈수록 거기에 따라서 경제도, 건강도, 또 거기에 모든 세상의 것들이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여러분에게 붙여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오늘도 여러분 특별히 다른 것보다도 복음의 깊은 비밀들 속에 들어가서 최고의 복음의 비밀들을 누리는 그 예배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특별히 성경 전체가 복음에 대한 부분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 전체를 복음적인 시각으로 아주 간략하게 잘 정리한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누구냐 하면 바로 신학자인 칼빈이라는 사람입니다.
칼빈은 성경 66권을 가지고 복음의 관점으로 정리를 했는데 거기에 다섯 가지로 정리를 했습니다.
그 첫 번째가 무엇이냐 하면 모든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엡2:1절에 보면 죄와 허물로 죽었던 너희라고 말씀하고 있지요.
하나님의 형상 따라 지음 받은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결국 전적으로 타락하고, 전적으로 부패하고, 전적 무능력 속에 우리 인간이 빠져 버렸다는 것, 그것을 칼빈이 전적타락으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두 번째입니다. 전적으로 타락했기 때문에 결국은 하나님이 은혜 주셔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조건 상관없이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우리를 선택하셨는데 그것을 가지고 무조건적인 선택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롬5:8절에 보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말씀하셨습니다.
내게 어떤 조건이 있어서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먼저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우리에게 대한 사랑을 보이셨었는데 조건 없이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선택해 놓고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느냐?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속죄하셨습니다.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제한적 속죄라 이야기 합니다.
요3:16절에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 여기에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아무에게나 죄 용서함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바로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속죄함을 주시는 제한적 속죄를 말씀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하나님의 은혜가 어떻게 우리에게 나타났느냐? 사실은 아무도 하나님이 은혜 주시면 그 은혜를 거절할 자 없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그 어떤 인간도 막을 자가 없다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불가항력적 은혜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성경에 사도행전9장에 보면 핍박자인 사울이 다메섹에서 돌아왔어요. 누가 꺾으신 것입니까? 하나님이 은혜 주시니까 최대의 그 당시에 핍박자인 사울조차도 예수 그리스도 앞에 무릎 꿇게 되는 이런 역사가 일어나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는데 그 은혜를 아무도 막을 자가 없다 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은혜 받은 자로 오늘 이 자리에 앉은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께서 끝까지 승리토록 하시고 책임지신다는 것, 그것을 가지고 성도의 견인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 66권을 아주 간략하게 복음적인 시각으로 압축해서 잘 설명하고 있는 내용들입니다.
그런데 이 칼빈의 다섯 가지 이 부분들이 오늘 본문에 보면 히브리서10장에 그대로 잘 나타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오늘 이 한날도 특별히 말씀 듣는 가운데서 성령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여시사 참된 복음의 깊은 비밀들을 깨닫고 복음으로 각인, 뿌리, 체질이 바뀌어지는 그런 축복된 응답의 시간들 되시기를 다시 한 번 더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하나님께 나아가자
그렇다면 먼저 첫 번째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자입니다. 오늘 22절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요. 오늘 히10:22절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요.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자 이 말은 우리가 듣기에는 당연한 말이지요. 별스럽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어린 아이들도 아는 이야기입니다. 당연히 하나님께 나아가야지..그런데 이 당시에 사실 이 성경이 히브리서가 기록된 이 당시에 하나님께 나아가는 부분들은 상상할 수 없는 부분들입니다. 우리가 오늘 본문에 하나님께 나아가자 말씀했는데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부분들은 사실 상상할 수 없는 그런 부분들이었습니다. 먼저는 자기 스스로 하나님께 나갈 수가 없었어요. 특별히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전제되어져야 될 부분들이 있는데 반드시 제물이 있어야 되는 것이고요, 또 자기를 대신해서 나아가는 제사장들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어느 인간도 스스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인간이 없었어요. 반드시 제물을 가지고 제사장이 대신해서 하나님께 나아감으로 말미암아 백성들의 죄를 사함 받는 그것이 바로 구약시대에 진행되어졌었고, 사실 유대인들이 믿고 있었던 부분들이었습니다. 우리가 이미 메시지를 통해서 들었던 것처럼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배하는 자리가 성막이라고 하지요. 그 성막 안에는 성소가 있고 지성소가 있습니다. 성소와 지성소로 성막이 구분되어 있는데, 그 성소와 지성소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 바로 휘장입니다. 그런데 성소에는 제사장들이 백성들의 죄를 대신해서 짐승을 제물로 잡아서 피를 가지고 들어가서, 죄를 범할 때마다 하나님께 피를 가지고 들어가서 피를 뿌림을 통해서 백성들의 죄를 대신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죄 범할 때마다 짐승을 잡아야 되고, 그 짐승 잡은 피를 가지고 제사장이 직접 피를 들고 들어간 것이 아니라 대신 제사장이 하나님께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성소 안에는 일 년에 한차례씩, 그것도 대제사장이 먼저 자기의 죄를 용서함 받고 그 다음에 백성의 죄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일 년에 한 차례씩, 대 속죄일에, 대 제사장이...
그래서 제사에 대한 부분들을 이야기 할 때에 특별히 제사는 우리 스스로, 그 어느 누구도, 그 어떤 훌륭한 인가도 하나님 앞에 스스로 나갈 수 없다는 것, 그리고 반드시 피를 가지고 나가야 된다라는 것, 그래서 히9:22절에 보면 “피 흘림이 없은즉 죄 사함이 없다” 라고 말씀하고 있잖아요. 그리고 사실은 구약시대의 모든 제사는 완전한 제사가 아니었습니다.
일시적인 제사였고, 반복적으로 죄를 범할 때마다 짐승을 잡아 죽여야 하는 그런 제사였습니다. 그래서 유대인 가운데 교회 유대인 사학자 중의 한 사람인 요세푸스는 뭐라고 이야기 했느냐? 성소에서 강같이 흘러 내렸다고 이야기 했어요. 늘 짐승을 잡아야 하니까,,,죄 지으면 짐승잡고, 죄 지으면 짐승잡고 그 피를 가지고 들어가야 하니까 피가 강같이 흘러 내렸다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 많은 제사장들이 필요했어요. 왜냐하면 제사를 잘못 지내게 되면 대제사장이 죽임을 당합니다. 제물이 흠이 있는 것이면 그 흠 있는 제물을 가지고 대제사장이 지성소 안에 들어가면 대제사장도 죽고 그 밖에 있는 백성들도 죽게 되어 있어요. 흠이 없는 제물을 가지고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대 제사장이 제물을 가지고 지성소 안에 들어가는데 대제사장의 옷을 보면 금방울이 다 달려 있어요. 그리고 거기에 줄이 메여있어요. 대제사장이 들어가서 제사를 지낼 때에 그 방울 소리가 나면 살아서 제사를 지내는 것이고, 방울 소리가 나지 않으면 죽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줄에 연결되어 있는 그 줄에 의해서 끌려나오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아무나 나갈 수 없는 일이었고, 그것도 제물 없이 나갈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하나님께 나아가자 이 말은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이예요. 그 시대에 그 어느 누구도 나갈 수 없는 어려운 일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실 때에 마태복음27:51절에 보면 지성소와 성소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져서 둘로 나누어졌다 말씀했습니다.
마27:51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그렇게 나오지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 그 휘장이 가운데로 찢어진 것입니다. 누가 찢으신 것입니까?
하나님이 찢으신 것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이후로 모든 인간은, 육신을 갖고 있는 모든 인간은 친히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그 어느 누구도 담대하게 나갈 수 있는 길이 열려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20절에 보면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요.
“거기는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 열어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다시 말하면 육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우리를 위해서 몸이 찢겨지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나아감으로 어느 누구든지 하나님을 직접 만날 수 있는 예배할 수 있는 새로운 살길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열어주셨다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엡2:14절에 보면“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엡2:16절에 보면“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말씀했습니다.
롬4:25절에 보면 “예수는 우리가 범죄 한 것 때문에 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5:1절에 보면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함을 누리자”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몸 찢어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만나고 하나님과 화평할 수 있는 새로운 살 길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여신 것입니다.
요한복음14:6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하나님께 그 어느 누구도 나갈 수가 없었는데 이제는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나아가고, 하나님 만나고 누릴 수 있는 그 길이 그리스도 이름으로 말미암아 열려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다시 말하면 참 왕으로 오시고 참 제사장으로 오시고 참 선지자로 오셔서 우리의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하신 그리스도이십니다. 특별히 우리가 히브리서를 통해서 참 왕, 참 제사장, 참 선지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을 밝히 볼 수 있는데 히브리서 2:14에 보면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여러분, 그러면서 15절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이라 했습니다. 악한 사단이 이 죽음을 가지고 모든 인생을 종노릇 시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권세를 잡은 자, 누구라고요? 마귀라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 마귀의 권세를, 마귀의 머리를 깨뜨리신 참 왕이 되십니다. 바로 참 왕이 되신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히9:12절에 지난번에 우리가 살펴보았습니다만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참 제사장이신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단번에 이루심으로 말미암아. 구약시대에는 매번 하나님께 나아갈 때마다 제물을 가지고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정말로 그 구약 시대의 제사는 어떤 면에서 단번에 이루는 부분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제사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히10:1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11절에도 보면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매일 제사를 지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자기 몸을 피로 드림으로 말미암아 단번에 성소에 들어감으로 말미암아 매일 반복적으로 제사 드릴 필요가 없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나아가면 되도록, 영원한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신 참된 제사장이십니다. 그래서 아담으로부터 시작된 원죄 문제, 또 우리가 살아가면서 짓는 자범죄 문제들, 우리 조상들이 지은 조상 숭배의 죄들 때문에 이 땅에 저주와 재앙이 계속해서 임하고 있는데 이 죄로 인한 저주와 재앙을 참 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신 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의 문제는 끝나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19절, 20절에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무슨 말입니까? 참 선지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피 흘려 죽으신 결과로 그 어느 누구든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새로운 살 길이 열린 것입니다. 참선지자이신 그리스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예배드리기 위해서 앉았다, 참 왕이요 참 제사장이요 참 선지자로서 우리 인생을 위해서 새로운 살 길을 열어 놓으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축복된 자리인 줄을 믿습니다. 여러분, 얼마나 예배에 대한 감사와 감격함을 가지고 이 자리에 참여했습니까? 여러분, 정말로 구약 시대의 예배와 비교해서 오늘 우리가 살펴 보면 아무나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데 우리는 그 어느 누구든지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며 나아오는 자들, 하나님을 직접 만나고 하나님께서 직접 은혜 주시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예배의 축복, 이 사실을 회복해야 합니다. 예배에 하나님께 나아올 수 있는 걸음들이 아닙니다. 어느 누구나 예배에 나아올 수 있는 자격이 아닙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축복된 예배 시간, 이 자리에 앉아 있다는 이 자체가 감사한 것이고 이 자체가 축복 중의 축복인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생에, 평생 동안에 예배 회복의 축복을 누리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정말로 하나님의 사람은 예배만 잘 드려도 성공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배에 성공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그러면 그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모든 삶의 현장에 적용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참된 전도자는, 하나님의 사람은 예배에 생을 걸고 그 예배에 은혜를 받고 있는 예배의 자리가 은혜의 자리인 것을 알고 예배에 은혜 받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삶을 변화시키는 사람이 참 전도자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생을 두고 진짜 붙잡아야 할, 회복해야 할 축복이 있다면 예배 회복입니다. 어느 자리에, 어떤 환경에 처하든지간에 정말 그리스도의, 이 언약의 말씀을 붙잡고 예배 드릴 수 있는 자리에 있다면 그 사람은 반드시 성공하게 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유학 가는 자매 친구, 제 방에 1부 예배를 마치고 잠시 들어와서 함께 기도제목을 나누고 또 그 동안 교회를 통해서 받은 은혜를 같이 나누었습니다. 유학 현장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 붙잡고 예배 드릴 수 있는 단을 쌓을 수 있는 그 자리를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그 생애는 누가 책임 지느냐?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오늘 들어왔을 때 물었습니다. 교회에 연결되어 있느냐? 미리 연결하고 그 교회 목사님과 연결되어 있느냐 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모든 삶은 예배 중심한 삶이 되어야 합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 성막 중심으로 해서 성막이 서면 모든 열두 지파가 서게 되었고 성막이 움직이면 열두 지파가 같이 움직였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예배 중심한 삶이 될 때 하나님께서 모든 이스라엘 백성을 축복하신 것처럼 우리의 삶을 책임지신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짜 우리에게 축복으로 주어진 예배 회복, 이 축복된 회복이 여러분 개개인에게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하나님께 나아가는 제자의 삶
두 번째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제자의 삶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에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의 삶을 집중적으로 말씀하고 있는 부분이 23절, 24절에 있는데 거기 보면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여러 가지 삶에 대한,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의, 제자의 삶에 대한 부분을 하나하나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보면 중요한 것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으라 했습니다. 움직이지 말고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굳게 잡으라 했습니다. 여기 믿는 도리가 무엇을 말할까요? 여기서 믿는 도리가 무엇을 말할까요? 그것을 굳게 잡으라고 했는데 이것은 진리를 말하는 것도 맞지만 그 이전에, 진리를 말하는 것도 맞지만 원래 원어상 여기 ‘믿는 도리’라는 말은 우리가 입으로 시인하는 것, 고백하는 것을 말합니다. 무엇을 말하느냐? 예수를 믿게 될 때 내가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주인으로 믿습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주일마다 신앙 고백을 합니다. 사도신경으로. 그 고백을 이야기합니다, 사실은. 신앙 고백하는 그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사실 신앙 고백하는 그 축복, 역사 속에 계속 우리가 삶에서 신앙이 성장해야 하지 않습니까? 신앙의 역사 속에서 우리가 믿을 때, 처음 믿을 때 고백합니다만 그 고백이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계속 우리가 신앙생활 속에서 성장해나가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과연 우리가 신앙은 고백했지만 우리의 신앙이 삶 속에서 계속 성장해나갈 수 있는가? 사실 오늘 히브리 기자가 히브리서를 이야기하면서 많이 흔들리고 있는, 그런 부분에 흔들리고 있기 때문에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으라 했습니다. 고백한 것도 중요하지만 끝까지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뭐요? 끝까지 굳게 잡으라, 흔들리지 말라 했습니다. 이미 히브리 교인들이 흔들리고 있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당시 히브리 기자가 히브리서를 보내면서 어떤 부분이 흔들리고 있는가를 보았는가 하면 이미 우리가 말씀을 통해서 살펴 보았습니다. 먼저 첫 번째는 그들이 전통적으로 조상적부터 믿어오던 종교는 유대교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예수가 그리스도시다, 그 분이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셨다,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문제를 끝냈다, 이 복음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전통적으로 믿어오던 유대교에서, 조상적으로 믿어오던 유대교에서 개종을 해 버렸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이제 응답을 계속 받으면 다행인데 그렇지 못하다 보니, 또 그런 가운데 유대인들이 계속해서 회심하도록, 다시 돌아오도록 회유 정책을 펴는 것입니다. 모세의 율법으로 돌아와야 한다, 아니,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가 어떻게 우리 메시야가 될 수 있느냐,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자꾸 유대교로 돌아올 것을 이야기하면서 회유 정책을 폅니다. 거기에 처음 예수를 믿은 이 사람들이 뭔가 모르게 마음에 요동함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흔들림이 일어납니다. 또 한 가지는 사실 이 시대, 사실 로마 제국 속에 있을 때 아닙니까? 그러니까 내적으로는 유대교, 전통적으로 섬겨오던 유대교에서 자기들에게 자꾸 돌아올 것을 권유하고, 또 외부적으로는 핍박이 임해 오는데 로마 제국 속에서 사실 육신적인 핍박도 오고 경제적인 당장의 손실도 감당해야 하고, 이런 어려움들이 오니까 우리가 잘못 믿는 것이 아닌가
또 한 가지는 분명히 주님께서 부활하셔서 승천하시면서 몇 날이 못 되어 오시겠다고 말씀했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같이 모두가 재림하실 주님을 기다리고 있는데 주님이 오시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들 마음에 우리가 잘못 믿고, 확실히 우리가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들이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 부분들이 히브리서 기자가 기록한 그 당시의 그 사람들 모두 일반적으로 가진 생각들이고 심지어 제자들과 사도들에게도 그런 생각들이 들어왔습니다. 그러니까 사도행전 1장이 보면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했을 때 예수님께서 뭐라 했습니까? 때와 시기는 너희의 알 바 아니요 말씀했지 않습니까? 무슨 말입니까? 사도들과 제자들에게도 이런 흔들림이 있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 내부적인, 유대교에서 돌아오라고, 회심하라고 하는 회유 정책, 그리고 외부적으로 일어나는 핍박들, 또 재림을 기다리고 있지만 주님이 언제 재림하실지 막막합니다. 그런 불안감 속에서 결국 이들이 하나, 둘, 지치게 되고 예배의 자리를 떠나게 됩니다. 정상적인 예배를 통해서 성찬에 참여하고 또 말씀이 선포되는 그 자리에 참여하던 이 기독교인들이 하나, 둘씩 지쳐서 예배 자리를 떠나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25절에 보면 이야기하게 된 겁니다. 25절 마지막에 봅시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여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뭔가 자꾸 시험이 들어오니까, 옆구리에서 누군가 자꾸 말하니까 옆에서 이야기하니까 그 영향 받아서 지쳐서 예배의 자리에 자꾸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히브리서 기자가 뭐라 합니까?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라 했습니다. 그러면서 오늘 중요한 이 모든 부분을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답을 주었습니다. 그게 뭐냐? 오늘 제목입니다. 한번 따라합시다.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답을 준 것입니다. 왜 흔들리지 말아야 하느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여러분, 여기 약속하신 이는 누구를 말합니까? 하나님을 말합니다. 미쁘시니,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미쁘시니, 이 말은 사전적 의미로는 믿음직하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이 말은 우리에게 약속을 주신 그 하나님은 믿음직하다는 말입니다. 우리를 붙잡고 있는 그 하나님은 믿음직스럽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세상의 그 어느 것도 믿을 것은 없습니다. 남편도, 아내도, 심지어 자녀들도. 세상은 믿을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믿음직스럽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여러분이 붙잡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믿음직스러운 것이냐? 어떻게 믿음직스럽다고 이야기하느냐? 바울의 고백을 통해서 우리가 한번 살펴봅시다. 앞에 디모데전서 1장을 한번 봅시다. 디모데전서 1장 12절부터 제가 보겠습니다. 337면입니다. 바울이 자기가 이제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줄 알고 편지를 써 보냈는데 지난 날 걸음걸음마다 미쁘신 하나님이 감사함으로 역사하셨던 그 사실을 고백한 내용입니다. 12절에 보면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전부 다 하나님이 나를 충성되이 여겼다 말씀했고 직분을 내가 했다는 것이 아니라 맡겼다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나를 능하게 하신. 모든 지금까지의 선교 여정, 걸음걸음 속에, 한 걸음 한 걸음을 하나님, 미쁘신 하나님께서 완벽한 축복 속에 인도하셨음을 고백한 내용입니다. 그러면서 13절에 보면 이 사실을 보면서 자기의 지난 과거들을 고백하게 됩니다.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14절에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15절, 16절 같이 봅니다. 시작.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할렐루야! 여기 미쁘신 하나님에 대한 부분을 이야기하면서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세상에 임하셨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그게 하나님의 미쁘심입니다.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떠나서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도 없고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삶이 죄에 뒹굴고 죄를 먹고 사는 삶입니다. 사실 그렇지 않습니까? 나를 중심하고 세상을 중심하고 성공 중심해서 달려가는 우리의 삶. 그래서 결국은 가면 갈수록 아무리 과학과 의술과 모든 문화가 발달한다 할지라도 미신과 점술과 우상은 더욱 더 발전하게 되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나를, 세상을, 성공을 중심해서 살아가니까. 그 속에서 결국은 알고 보니 마귀를 주인 삼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가운데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육신적으로 모든 문제를 다 가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저와 여러분을 위해서 하나님이 이 세상에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디모데전서 15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저와 여러분을 그 세상 속에서 건지시기 위해서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의 미쁘심입니다. 그 다음 두 번째입니다. 하나님의 미쁘심이 뭐냐? 16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 저와 여러분을 지금도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함으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게 하나님의 미쁘심입니다. 죄 지으면 죄 짓는 자리에서, 그 죄 짓는 부분을 보면서 기다리고 계시고 넘어지면 넘어진 그 자리에서 아직까지 못 일어나느냐 주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일체 오래 참으사. 그 오래 참으심 때문에 오늘 우리가 구원 받은 것입니다. 믿습니까?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이 없었다면 저와 여러분은 벌써 멸망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오래 참으시고 참으신 그 은혜 가운데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자리에 앉아서 예배드릴 수 있다는 것, 구원 받았다는 것,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 그리스도의 일체 오래 참고 기다리심. 여러분의 연약함을 아시고 하나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리 넘어지면 이리 넘어지는 대로, 저리 넘어지면 저리 넘어지는 대로 하나님께서 아시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기다리고 계세요. 여러분, 하나님은 강도나 폭행하는 분이 아닙니다.
강압적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게 아니에요 인격적인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기다리고, 기다리고, 넘어지면 또 일어나길 바라면서 기다리고요. 그래서 성경에 말씀하고 있는 것이 말할 수 없는 탄식함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수 없을 때에 하나님 우리 속에 영으로써 말할 수 없는 탄식함으로 우리 대신 기도하신다고 말씀 하셨느니다. 하나님의 미쁘심, 세상 그 어떤 것에도 믿을 바 된 것이 없어요 오직 정말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그 하나님의 미쁘심. 또 지금도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는 오래 참으시는 그 하나님의 미쁘심. 그 뿐만 아닙니다.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에게 기다릴 뿐만 아니라, 우리를 끝까지 책임지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에 보면 은, 시편48편 14절에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의 하나님이시니 그가 우리를 죽을 때 까지 인도 하시리로다” 죽을 때 까지 끝까지 책임지시고 인도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칼빈이 말한 성도의 견인 이죠 그러면서 로마서 8장 39절에 보면 은, “높음이나 깊음이나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 38절에 보면은,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일이나 장래일이나 능력이나 그 어떤 것도 우리 주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자가 있다고 헀어요? 없다고 했어요 끊을 수 없느니라. 우리를 멸망 당할 수가 없어요. 하나님이 우리를 책임지시고 인도 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5장 18절에 하나님께로부터 난자는 다 범죄 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할렐루야! 여러분 우리가 받은 구원은 취소되지 않습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절대 멸망 받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말로 이제는 그리스도 그 이름 붙잡고 영적 싸움에, 일심, 전심, 지속으로 나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영혼을 구원하는 믿음을 가진 자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히브리서10장 39절 보시겠습니다.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할렐루야! 우리는 뒤로 물러가서 멸망 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할 믿음을 가진자다 여러분 영혼을 구원할 믿음을 가진 자로써 끝까지 영적 싸움만 싸우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도 내 힘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이미 승리하신 그리스도 이름으로 요한복음16장 33절에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여러분 그리스도 그 이름에 비밀 붙잡고 하나님의 미쁘심을 붙잡고요 끝까지 영혼을 구원할 믿음을 가진 자로써 영적 싸움에 승리케 되는 저와 여러분 되길 바랍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나의 연약함, 나의 부족함, 내가 넘어짐, 상관없어요.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말씀 했습니다. 우리의 연약함 상관없다는 말이에요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여러분 넘어졌습니까?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범죄한 자리에 있습니까?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말씀 했습니다. 그 약속하신 이 우리의 죄 용서를 하셨고, 오래 참으시고 끝까지 인도 하시고 승리토록 하시는 하나님이 십니다. 그 약속 붙잡고 오늘도 승리하신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혼을 구원할 믿음을 가진 자로써, 승리케 되어지는 우리 하나교회 모든 성도들 되시길 기도 합니다.
2018년 4월 8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히10:19-25)
서론: 사람은 자기에게 각인, 뿌리, 체질 된 것에 따라 살고, 열매 맺혀 집니다. 우리에게 주신 복음을 묵삼함으로 잘못 된 각인, 뿌리, 체질들이 변화 되어집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복음을 깊이 누리는 것입니다. 여기에 따라서 경제, 건강, 모든 축복이 따라 오게 됩니다.
1. 하나님께 나아가자
가.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히10:22)
1)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지만 재물을 가지고 대제사장을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음(히9:22)
2) 성소(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지었을 때 제사장만 들어가서 제사를 지냄), 지성소(대제사장이 1년에 한 번 제사)
3)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휘장이 찢어짐(마27:51) -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림(엡2:14, 16, 롬4:25, 롬5:1, 요14:6)
나. 예수님은 세 가지 근본문제를 해결
1)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권세를 잡은 자 마귀를 멸하심(히2:14) - 참 왕
2) 단 번에 이루심으로 모든 죄 문제를 해결(히9:12) - 참 제사장
3)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하나님 만나는 길이 열림(히10:19-20) - 참 선지자
2. 하나님께 나아가는 제자의 삶
가.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고(히10:23-24)
1) 믿는 도리 - 입으로 시인, 고백
2) 끝까지 지켜 가는데 어려움 - 다시 회심 하라는 회유, 외부적인 핍박, 재림을 기다리는데 예수님이 오시지 않음(예배의 자리를 떠남)
나.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히10:23) - 약속을 주신 하나님은 믿음직스러움
1) 죄인을 구원하심 – 딤전1:15
2) 오래 참고 기다리고 계심 – 딤전1:16
3) 하나님이 끝까지 책임지시고 인도해 주심 - 시48:14, 롬8:39, 요일5:18
다. 영혼을 구원 하는 영적싸움을 일심, 전심, 지속(히10:39, 요16:33)
결론: 나의 연약함, 부족함, 넘어짐과 상관 없습니다. 약속 하신 이는 미쁘신 하나님이십니다. 죄를 용서 하시고 오래 참고, 우리를 끝까지 책임지시고 인도 하십니다. 이 축복을 날마다 누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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