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2018-02-25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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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5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히5:11~6:3)
5:11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가 듣는 것이 둔하므로 설명하기 어려우니라
12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13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14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6:1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2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3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
히5:11~6:3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예수를 바라보십시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은혜 받은 사람들만이 찬양할 수 있는 부분들입니다. 오늘 이 엄청난 축복된 은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이 자리에 참석한 모든 분들이 정말 하나님의 그 은혜의 풍성함 속에 들어가는 최고의 축복된 시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특별히 우리 교회에서 중남미 40일 집중훈련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 이 예배에도 우리 중남미 분들이 참석하셨는데요, 사실 그렇게 썩 좋지 않은 환경들 속에서 지금 계속해서 훈련이 되고 있습니다. 새벽5시부터 이 분들이 자체적으로 모여서 기도회를 하고요, 아침에 빵으로 식사를 대신하고, 9시 반부터 모여서 찬양하고 메시지를 시작해서 12시까지 오전 강의가 진행되어지고, 또 점심시간 12시부터 2시간 점심 시간 지나고 나서 2시부터 5시까지 또 집중해서 강의가 되어지고, 5시부터 잠시 식사하고 난 후에 7시 반까지 그날 받은 메시지들을 같이 포럼하고, 또 각각 미션홈으로 흩어져서 잠자리에 들고 또 다시 모여지고 이런 훈련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너무나 귀중한 분들입니다. 이 자리에 참석하신 분들, 우리 목사님들도 많이 계시고, 사역자들, 신학생들 같이 많이 참석하셨는데 정말 우리가 이 분들 통해서 중남미 37개 나라가 살아나고, 또 전 세계 237개 나라가 살아나는 그 응답의 주역들이 될 수 있도록 여러분 위해서 기도해 주시고, 특별히 이분들이 정말로 집중해서 말씀받는 시간 시간들 하나님께서 귀중한 축복된 역사들, 예비하신 축복된 역사들을 준비하시고 또 강사들이 세워져서 말씀 주고 계시는데 세우신 강사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고 이분들 모두를 위해서 기도해 주셔서, 여러분의 기도로 말미암아 중남미 현장이 살아나는 그런 응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특별히 이번에 선교대회를 통해서 우리가 말씀 받은 부분들이지요. 이 분들 통해서 중남미 현장에 중직자들이 일어나고 사실 중남미 현장에는 거의 침례교 신학에 영향을 받아서 중직자들이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힘이 전도운동에 쓰임 받는 중직자들로 세워질 수 있도록, 그래서 중직자들이 일어나고 정말로 미래이지요. 중남미 현장에 렘런트들이 일어나서 한 시대의 재앙을 막는 이 일에 이들이 쓰임 받고, 그 힘을 가지고 237개 나라를 살리는 그런 축복된 응답을 누리는 그런 증인들 되도록 여러분 기도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3. 12일까지 훈련이 계속 되어지는데 이 훈련을 위해서 여러분 계속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우리 교회 강단을 통해서 히브리서를 계속해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큰 대제사장 예수를 바라보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오늘은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이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히브리 기자가 이 히브리서를 통해서 사실은 이들에게 지적하고 있는 부분들이 있다면 복음을 받은 유대교에서 돌아온 기독교인들이 그 당시에 핍박과 어려움이 계속되어지니까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놓쳐버리고 자꾸 옛날로 돌아가고자 하는 그런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은 이 당시에 유대교에서 있다가 복음을 받고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시작하면서 핍박과 어려움이 닥쳐오니까 자기도 모르게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놓쳐버리고 자꾸 과거의 영적상태로 돌아가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그러지 말고 오직 그리스도로 들어가라 그게 바로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이 말씀입니다. 자꾸 과거로 돌아가지 말고,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놓치지 말고, 오직 그리스도 붙잡고 그 속으로 들어가라는 그 말씀에 대한 제목이 오늘 제목인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이 말씀입니다. 여러분 특별히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여러가지 문제와 사건들을 주시지요.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온갖 많은 문제와 사건들을 당합니다. 왜냐하면 창세기3장 현장 속에 있는 모든 인생은 문제와 사건들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각각 문제를 당하는 천차만별의 문제들이 많이 있습니다. 각각의 영적상태가 다 다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있는 그 문제와 사건들, 어려움들을 모르겠습니까? 그리고 그 문제와 사건들을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허락하셨겠습니까? 우리의 문제와 사건들 하나님이 모르시는 하나님이 아니시잖아요. 그리고 그 문제와 사건들을 왜 하나님께서 허락하셨겠습니까? 하나님은 예레미야29:11절에 보면 우리를 향한 생각은 재앙이 아니라고 했어요. 축복이요 평안이요 장래에 소망을 주기 위함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문제와 사건을 주신 것은, 축복받을 사람인데 세계복음화 할 사람인데 거기에 방향이 안 맞기 때문에 문제와 사건과 어려움을 통해서 방향 잡으라는 겁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진짜 복음에 뿌리내리고 복음에 체질되라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문제와 사건을 당할 때 보면 결국은 우리가 하나님의 이 귀중한 계획을 알지 못하니까 우리 자신의 노력과 애씀으로 해결하려고 해요. 중요한 세계복음화에 방향 맞추고 복음에 뿌리내리라고 우리에게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서 허락하셨는데, 이 부분에 대한 답이 없으니까 문제와 사건과 어려움을 당하면 우리가 어디로 돌아가느냐? 우리도 모르게 우리 자신의 노력과 애씀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에게 당하는 거예요. 물론 우리에게 일어나는 문제들, 우리가 스스로 해결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분명히 아셔야 할 것은 아무리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복음으로 해석하지 아니하고, 복음으로 해결되지 아니하면 그 해결된 것은 완전히 해결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진짜 우리의 문제를 제대로 본다면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모든 문제 해결자로 그리스도 복음을 준 것이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문제를 당하면, 이야기를 해 보면 문제와 사건 속에서 이미 자기가 결정들을 다 해놓고 이야기 하는 것을 봐요. 자기 일들에 자기가 결단들을 다 내려놓고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하는 것을 봅니다.
그러면 결국 어디로 빠지느냐? 여러분, 사람 중심으로 빠져요. 그리고 문제와 사건이 있게 될 때에 그 생각에 사로잡혀서 거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부분들을 보게 됩니다. 결국은 여러분 생각을 많이 하면 할수록 어디로 빠지느냐? 나 중심으로 빠지게 되어 있어요. 우리는 문제와 사건이 일어날 때 그 문제와 사건을 놓고 복음으로 해석해야 하고, 복음 안에 들어가야 되고, 기도 속에서 그 사실에 대한 답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우리의 노력으로 애씀으로 우리의 문제와 사건과 어려움을 해결하려고 했기 때문에 날마다 우리의 신앙이 자라지를 않는 것입니다. 믿음이 자라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 본문에 보면, 11절에서부터 쭉 보면 젖 먹는 어린아이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고, 또 밥을 먹는 단단한 음식을 먹는 장성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들 보게 됩니다. 여러분 저와 여러분의 신앙은 어떤 신앙 속에 속해 있습니까?
1. 젖을 먹는 자
먼저 첫 번째입니다. 젖 먹는 어린아이의 신앙입니다. 다시 말하면 영적인 초보에 있는 어린아이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다라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오늘 특별히 5:11~12절에 보면 이렇게 말하고 있지요.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가 듣는 것이 둔하므로 설명하기 어려우니라”이 멜기세덱에 대해서 설명하려고 하다가 듣는 것이 둔하기 때문에 내가 너희에게 설명하기 어렵다 그러면 여기서 설명을 안 하느냐 하면 아닙니다. 7장에 가면 멜기세덱에 대해서 설명이 나와요. 그러면 강조하기 위해서 이 부분들을 지금 이야기 하고 있는 거예요. 사실은 6장, 7장을 통해서 결국은 아론제사장 보다도, 멜기세덱보다도 더 뛰어난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는 것인데 그러면서 여기에 멜기세덱에 관하여서 너희가 알아듣지 못함으로, 이렇게 이야기하면서 그 다음에 12절에 보면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요.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즉 너희가 다시 하나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을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신앙생활 하고 있으면서도 젖 먹는 수준의, 영적인 초보의 그런 신앙생활을 하고 있음을 히브리 기자가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고린도전서3:1~3절에 보시면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향해서 편지를 보면서 고린도 교회안의 수준이 그러했던 것 같아요. 날마다 분쟁하고 시기하고 그러니까 바울이 지적한 것이 뭐냐 하면 ‘너희는 육신에 속한 자다 밥을 먹지 못하는 젖을 먹어야 되는 육신에 속한 자다. 그러니까 늘 분쟁하고 시기하는 것이 아니냐?’ 이것이 고린도 교회를 향한 바울의 지적입니다. 특별히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도 우리도 모르게 우리의 신앙이 장성한 자의 신앙이 되어야 하는데 젖 먹는 어린아이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 자신들을 점검해 봐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젖 먹는 어린아이의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 그러한 사람들은 어떤 수준에 머물러 있는가? 거기에 대한 부분들을 오늘 두 가지로 말씀하고 있는데 먼저 11절에 보면 너희가 듣는 것이 둔하므로.. 했습니다. 이 말은 영적인 감각이 없다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은 그냥 우리가 영적인 감각이 없다, 둔하다 할 때에 뭔가 시대에 대한 감각이 없음을 가지고 둔하다 이야기 하지요. 그런 말이 아닙니다. 영적인 상태를 이야기 해요. 하나님의 말씀 듣는 일에 게으르다는 거예요. 이게 말씀 듣는 것이 둔하다는 말이예요. 다시 말하면 말씀의 맛을 모르고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가장 힘든 것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또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이 부분이고요, 여러분 똑같이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또 이 자리에 예배드린다고 앉아 있지만 정말로 우리가 말씀이 들려지지 않을 때 가장 힘들고 어렵습니다. 예배시간에 은혜 받지 못하고 말씀이 들려지지 않으면 신경질이 나요. 말씀이 깨달아지지 않으면 그런데 그러한 가운데서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봐요. 듣는 것이 둔하다. 말씀의 맛을 모르고 신앙생활 하고 있는 분들이 많이 있다는 거예요. 우리에게서 가장 큰 축복은 말씀이 들려지는 것이지요. 우리교회 새 가족부 5주 과정이 지나고 나면 수료가 되어집니다. 그러면 5주 과정을 마친 새 가족부 그 분들을 우리 새 가족부 국장되시는 장로님이 제 방으로 모셔 와요. 그러면 잠시 제가 말씀에 대해서 같이 나누고 기도하고 인사합니다. 그런데 늘 제 방에 올 때마다 제가 빠트리지 않고 묻는 것이 있습니다. 말씀이 들려집니까? 새 가족부 통해서 말씀 들었던 부분들, 또 마치고 나면 예배에 참여하는데 예배에 참여하면서 이 말씀이 들리어집니까? 하고 이렇게 물어봅니다. 그러면 많은 분들이 말씀에 은혜를 받습니다. 들려집니다 하는 사람들이 있고 가끔 들립니다, 또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신앙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있다면, 참된 모든 축복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말씀이 들려지고 그 말씀이 마음에 담기고 우리 영혼 속에 심기게 될 때 그 때부터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된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그래서 말씀 듣는 일에 인생을 걸어야 합니다. 어떤 젊은 친구를, 우리 교회 다니는 젊은 친구를 만나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 친구가 서울의 대학을 다니는데 대구에 집이 있어서 공익 근무를 하기 위해서 잠시 대구에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를 만나서 이야기하는 가운데 예배가 되느냐, 말씀이 들리느냐 물어보니까 말씀을 모르겠다는 겁니다. 안 믿어진다는 겁니다. 그런데 왜 교회에 오느냐 물으니까 여자친구 때문에, 그래서 교회에 왔다는 것입니다. 여자친구 때문에.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났습니다. 어느 날 제가 이렇게 보면 다 보이거든요, 여러분. 딴 짓하는 것 다 보입니다. 조시는 분들도 다 보이고, 제 눈에 다 들어옵니다. 그런데 이 친구가 예배 드리는 것이 달라졌습니다. 무슨 일일까? 어떻게 저렇게, 아니, 들리지도 않고 믿어지지도 않는데 어떻게 저렇게 예배 드리는 게 달라질까? 자리도 앞자리에 앉기 시작하고. 예배 드리는 것을 보면 알지 않습니까?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물어보았습니다. 무슨 일이 있느냐 물으니까 아니라는 겁니다. 요즘 와서 믿어진다고, 그냥 믿어진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들리고. 여러분, 우리 신앙 생활에서 가장 힘든 부분이 있다면 말씀 듣는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도 말씀이 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늘 신앙 생활이 늘 젖 먹는 어린아이 신앙을 못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이 들리는 축복은 다인데, 사실 모든 것인데 여러분, 말씀을 어떻게 받느냐, 그 말씀 받는 것 따라서 응답이 나오지 않습니까? 이상하게 말씀 받으면 이상하게 응답이 옵니다. 특별히 여러분,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 시대를 향해서 주신 복음의 말씀이고 이 말씀을 받게 되면 이 속에서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발견하게 되고 이 말씀 속에서 결국 지금 살아서 역사하는 것이라는 사실에 답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면서 전체와 강단과 현장의 메시지의 흐름을 보게 되고 그 흐름이 보이니까 응답이 오게 되고 응답 속에서 말씀의 성취가 이루어짐으로 증인 되는 축복이 말씀이 들리는 것을 시작으로 오게 되거든요. 그래서 이 말씀을 듣는 것이, 들려지는 것이 모든 것인데 이것은 어떤 면에서 우리가 육신적인 똑똑하다, 지적인 능력을 갖추고 있다, 많이 배웠다, 그것과는 다릅니다. 물론 그런 것들을 배제하지 못하지만 똑똑하지 않다고 해서, 무식하다고 해서 말씀을 못 깨닫느냐? 말씀을 못 듣느냐? 아닙니다. 영적인 부분입니다. 말씀 듣는 것은 영적인 부분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지 악한 사단은 말씀 듣지 못하도록. 왜냐? 말씀 들으면 영이 사니까. 믿음이 생기고 영이 사니까, 힘을 얻으니까 사단은 말씀 듣지 못하도록 총공격을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로마서 10장 17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 들을 때, 이 말씀을 들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믿음이 생긴다 했습니다. 성도들의 삶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통해서 힘을 얻고 은혜 받으면 그것이 모든 삶의 현장에 연결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게 성도들의 삶입니다. 간단한 승리의 삶입니다. 말씀이 들려지고 말씀을 통해서 힘을 얻게 되면 그 속에서 그냥 단순히 내가 말씀에 힘을 얻었다,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가정으로 산업으로 자녀에게 학업에, 직장에 다 연결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 듣는 일에 여러분의 인생을 걸라는 말입니다. 말씀이 안 들려지면 기도하십시오, 여러분. 주일날 교회 와서 예배 드리기 위해 기도하지 않습니까? 들어오자마자 여러분, 어떤 기도를 합니까? 물론 목사님 위해서 기도를 할 것입니다. 예배를 위해서 기도를 할 것입니다. 많은 기도가 있겠지만 그 이전에 하나님, 오늘도 내게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게 하옵소서. 내 귀에 하나님의 말씀이, 설교가 설교가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리게 하여 주옵소서. 시편 40편 6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내게 열린 귀를 열어 주옵소서. 하나님이여 내게 열린 귀를 열어 주옵소서.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여, 내가 하나님의 말씀 듣는 귀를 내게 열어 주옵소서 이 말입니다. 여러분이 예배 드리기 위해서 주일날 나올 때마다 가장 먼저 여러분이 기도되어야 할 부분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말씀 들을 때 이 말씀이 하나님의 음성으로, 하나님의 소리로 들려질 때 내 영이 살게 되고 그 때부터 우리의 믿음이 장성한 수준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안 되니까 마음이 굳어서, 또 귀가 둔하여서 말씀이 안 들리니까 결국은 교회에 유익을 주고 전도 운동 속에 유익을 주어야 할 우리 인생이 나만 아는, 나 중심에 빠지게 됩니다. 창세기 3장과 6장과 11장에 믿는 사람들도 빠지게 됩니다. 왜냐? 내 귀가 둔하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못 들으니까. 결국은 어떻게 되느냐? 나 중심으로 빠집니다. 신앙 생활하면서도 나 중심으로 빠집니다. 그러한 자를 일컬어서 오늘 성경에 보면 13절입니까? 예, 13절 마지막에 보면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라 했습니다.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 생활하면서도 정말로 교회 일에 유익을 주고 전도운동 속에 쓰임 받아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 말씀에 대한 맛을 모르니까 나도 모르게 신앙 생활, 이 모든 것이 나 중심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한 자를 일컬어서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라 했습니다. 여러분, 여기서 의는 무엇을 말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의는 복음을 말합니다. 의의 말씀을 경험했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예수가 바로 그리스도이심을 체험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장성하지 못한 젖먹이의, 어린아이의 신앙을 가진 사람은 일단 듣기가 둔하고 말씀을 듣는 부분이 안 되어 있고 그러니까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가 그리스도 되심을 체험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늘 신앙이 자라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바로 예수가 그리스도로서 구약의 모든 제사를 완성했습니다. 모든 구약의 율법을 완성했습니다. 모든 언약의 성취를 그리스도께서 이루셨습니다. 이 사실을 날마다 날마다 체험해야 합니다. 그래서 완전한 대로 나아갈지니라 이 말은 이 오직 그리스도 이 비밀 속으로 들어가라는 말입니다. 특별히 유대교를 믿다가 복음 받아들여서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율법에 자꾸 빠지고 전통에 빠지니까 바울이 고린도전서 13장 11절~13절에도 말했습니다. 사실은 자기의 과거의 율법에, 전통에, 규례에, 각종 의식에 매여 있는 삶을 이야기하면서 이게 바로 젖 먹는 어린아이의 신앙이었구나, 밥을 먹지 못하고 젖만 먹는 어린아이의 신앙이었구나, 단단한 음식을 먹지 못하는, 젖먹이의 신앙이었구나, 그 고백을 바울이 했습니다. 이 율법 속에 가두어져서 율법을 지킴으로, 행함으로 말미암아 구원 받는 줄 알고 거기에 가두어져서 내가 어린아이의 신앙을 벗어버리지 못했구나. 그런데 그리스도를 만나고 나니까, 다메섹에서 바울이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만나고 나니까 모든 율법의 성취, 그리스도로 이루어졌고 모든 언약의 성취가 그리스도로 이루어졌고 구약에서 말한 모든 제사가 그리스도로 완성된 사실을 알고 아, 바로 율법에서 벗어난 이 참된 자유함이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고백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체험하지 못하면 우리도 모르게 자꾸 어디로 돌아가느냐? 과거로 돌아갑니다. 율법으로 돌아갑니다. 워낙 우리 체질 자체가, 타고난 체질 자체가 종교적인 체질이고 율법적인 체질입니다. 복음적인 체질이 아닙니다. 타고난 체질 자체가 종교적인 체질이고 복음적인 체질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체험하지 못하니까 나도 모르게 자꾸 과거로 돌아가는데 율법으로 돌아가고 행위로 돌아가고. 그들의 기준이 그것 아닙니까? 행위로 구원받는 줄 알고, 그래서 율법을 지킴으로 말미암아 구원받는 줄 알고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해왔는데, 그것을 으뜸으로 생각해왔는데 오늘 12절에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뭐냐? 왜 아직 어린아이의 신앙을 벗어버리지 못하느냐, 진작 너희들이 선생이 되어야 하는데 왜 어린아이의 신앙을 벗어버리지 못하느냐. 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12절을 한번 봅시다.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벌써 오래 전에 선생이 되어야 했는데 왜 아직 어린아이의 수준에 머물러 있어서 단단한 것을 못 먹고 젖을 먹는 수준에 머물러 있느냐 이 말입니다. 그러면 왜 이들이 이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까? 다른 것이 아닙니다.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함으로써, 예수가 그리스도 되심을 체험하지 못함으로써. 그래서 날마다 여러분, 예수가 그리스도 되심을 여러분의 현장에서 체험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해결하셨습니다. 사실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죄, 죄로 인한 저주와 재앙, 우리가 해결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가진 지옥의 배경, 태어날 때부터 가진 지옥의 배경, 우리가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 배후에 있는 사단의 운명 가운데 빠진 인생, 우리가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리스도로 오셔서 재앙과 지옥 권세와 지옥의 배경과 모든 사단의 운명을 십자가에서 완전히 끝내신 것입니다. 이 사실을 날마다 날마다 체험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로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체험함으로 여러분이 장성한 신앙의 축복을 누리게 되는 그런 응답이 저와 여러분에게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장성한자 – 그리스도를 누리는 제자
두 번째입니다. 그러면 장성한 자는 어떠한 자인가? 장성한 자는 그리스도를 누리는 제자가 장성한 자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어려움과 환란을 이기는 사람이 바로 장성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젖을 먹는 어린아이가 아니라 단단한 음식을 먹는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여러분, 장성한 자의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기 단단한 것이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단단한 것이라고 이야기했는데 여기 단단한 음식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장성한 자의 특징을 말씀하고 있는데 14절입니다.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장성한 자는 어떠한 자인가? 여기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가 장성한 자라 했습니다. 이 말은 한 마디로 말하면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장성하지 못한 자는 어떠한 자인가? 성경에 에베소서 4장 13절~14절에 말씀하고 있는데,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여기 사람의 속임수, 간사한 유혹,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는 것, 어린아이같은 것이라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장성하지 못한 자의 신앙이 이러한 사람입니다. 온갖 세상 소리에, 사소한 소리에, 사람들의 소리에 흔들리고 이리저리 무너지는 것입니다. 세상 풍조를 따라가고. 이게 어린아이의 신앙입니다. 그런데, 장성한 자는, 지각을 사용해서 선악을 분별할 수 있는, 여러분 우리가 지각을 사용해서 선악을 분별할 수 있는 힘이 어디서 나옵니까? 성령의 인도를 받는 데서 나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2장 10절에 보면,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진짜 우리가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될 때 하나님 안에 깊은 것들을 가게 되는 이 축복을 누리게 되요 이게 장성한 자의 축복입니다. 요한복음 14:26절에 보면,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정말로 우리가 성령충만 함 속에 들어가게 될 때 여러분 우리의 지각을 사용해서 선악을 분별하는 그 은혜를 입게 됩니다. 왜냐, 성령께서 가르쳐 주시니깐, 요한일서 2장 27절에도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이 있게 되면 은, 더 이상 너희에게 가르칠 필요가 없다 했어요. 왜냐, 성령의 기름 부으심으로 가르치시니깐, 여러분 정말 성령의 충만함 속에 들어가서 여러분, 지각을 사용해서 선악을 분별하는 그 지혜를 얻는 그런 축복된 장성한 자의 축복을 누리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은 이 장성한 자의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여기에 말씀하고 있죠, 히브리서 6장 1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그리스도 도의 초보라는 것은 1절과 2절에 설명하고 있는데요. 한마디로 말하면은 율법과, 전통과, 규례와, 각종 의식에 빠져 있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 율법이나, 규례나, 각종 의식들 유대인들이 갖고 있는 전통은, 그림자요, 모형입니다. 실제가 아닙니다. 원형이 아닙니다. 무엇의 그림자 입니까? 그리스도에 대한 그림자가 율법입니다. 모형입니다. 사실은, 이런 그리스도 도의 초보들을 벚어버려라 율법 속에 빠져있든, 또 전통 속에 빠져있든, 사실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돌아온 사람들이 복음 받았지만, 뭔가 모르고 흔들리고 있으니깐, 그 사실 속에서 벚어버리고, 진짜 완전한 대로 나아가라 오직 그리스도 복음 속으로 나가라 이 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버려라는 말은 무슨 말이냐, 여러분 갱신하라는 말이에요. 어떻게 하던지 사단은 옛날 것으로 돌아가게 만들고요 하나님의자녀된 신분과 권세 다인데 그게 다인데, 그것 놓쳐 버리게 만들고 결국 세상 풍조 따라 가도록 만드는 것이 사탄의 전략이에요 이 모든 것들로부터 갱신하라는 말이에요 그게 바로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라는 겁니다. 그리고 또 여기에 버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버리는 것도 중요한 것이지만 더 중요한 것들을 붙잡으라는 거예요. 그림자 붙잡고 모형 붙잡고 살아가지 말고 실제인 원형인 진짜 원형인 그리스도를 붙잡으란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림자 붙잡고 돌아와요. 그림자 붙잡고 신앙생활한다고 해요 여러분 성경에 보면 말씀 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약속의 자손이 오시기까지 필요한것이라 했어요. 갈라디아서 3장 19절에 보면은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하므로 더하여진 것이라 천사들을 통하여 한 중보자의 손으로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그 중보자는 한 편만 위한 자가 아니나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갈라디아서3장 24절에 보면 은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율법은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는 수준입니다. 그래서 초등 선생이라 이야기 했어요. 그리스도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율법이고요 이 율법은 장차 오는 일에 그림자입니다. 히브리서 10장 1절에 보면 은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히브리서 7장 19절, 9장 9절, 10장 1절에 보면 은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다시 말하면 은 율법으로는 우리를 온전하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이에요. 율법으로 할수 없는 것을 실제이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더 중요한 이 그리스도를 붙잡으라 이 말입니다. 여러분 정말로 우리가 실제를 붙잡게 되면 은, 원형을 붙잡게 되면 은, 그림자 원형은 사라지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를 붙잡게 되면 은 다른 모든 것들의 다른 답이 내려지게 되어있어요 바울이 이야기 했잖아요. 여러분, 아니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은 모세의 이야기를 하면서 이야기 한 부분들이 11장 25절 26절에 나오는데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더 좋아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여기에 하나님 백성과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했어요 그러면서 26절에 보면 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더 좋아하는 것, 더 큰 재물이 있기 때문에 자기에게 있는 것들을 버릴 수 있는 겁니다. 우리가 우리의 가진 것 못 버립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좋은 것 발견하면 버리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오늘 여기 보면 은, 중요한 것은 버리라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을 붙잡으라는 겁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날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에게 주신 제목이죠, 완전한 데로 나아갈 찌니라 날마다 날마다 그리스도의 비밀을 체험하고 누리는 것, 이것보다 더 귀한 것 없어요.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 없어요.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축복이요 최고의 발견이라면 은 예수가 그리스도 되심입니다. 그리스도만이 죄의 문제, 재앙의 문제 지옥 배경 문제 사탄의 문제 해결할 수 있어요. 그리고 우리에게 있는 최고의 누림이 있다면, 그 그리스도 이름으로 주시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리고 최고의 축복과 최고의 성공이 있다면 오직 성령충만 가운데서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되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완전한 데로 나아갈 지니라 날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신 이 비밀을 체험하고, 누리는 그 속으로 들어가라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여러분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까? 어떤 어려움들이 있습니까? 천차만별 각기 어려움들 다를 겁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거기에 대한 답은 오직 한가지입니다. 창세기 3,6,11장의 흑암 가득한 세상 속에서 우리에게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귀중한 문제와 사건과 일들을 이길 수 있는, 승리할 수 있는 귀중한 답들을 주셨는데, 완전한 데로 나아갈 찌니라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 나라, 오직 성령입니다. 이 사실 붙잡으시고, 날마다 새 힘 얻으시고요 날마다 장성한 신앙인으로써 세계복음화 속에 쓰임 받는 우리 하나교회 모든 성도들 되기를 무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8년 2월 25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히5:11-6:3)
서론: 히브리서에는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이 핍박과 어려움을 겪게 되니깐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놓치고 과거로 돌아가려는 부분이 있지만 그렇게 하지 말고 오직 그리스도로 돌아갈 것을 말씀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완전한 데로 돌아갈 것을 말씀 하고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천차만별의 문제를 겪지만 하나님은 모든 문제를 알고 계십니다. 문제와 사건을 주신 이유는 세계복음화에 방향이 맞추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리고 복음으로 각인, 뿌리, 체질 되도록 문제를 주고 계십니다. 문제 앞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알지 못하니깐 내 열심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단에게 당합니다. 하는 일들을 정해 놓고 기도하게 되면 사람 중심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문제와 사건 앞에서 생각을 많이 하면 나 중심이 되어집니다.
1. 젖을 먹는 자(히5:11-12)
가. 듣는 것이 둔하므로(11)
1) 말씀 듣는 일에 게으름 - 말씀의 맛을 모름
2) 말씀 들리는 것이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
3) 말씀을 들음으로 힘, 은혜를 받고 모든 삶과 연결 됨
나. 안 되어지면 자기 중심으로 빠지게 됨 -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 한자(13)
1) 의 = 예수 그리스도, 복음
2)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 하지 못 함(12)
다. 그리스도에 대한 정확한 체험
2. 장성한 자 - 그리스도를 누리는 제자(히5:14)
가. 장성한 그리스도인 -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어려움, 환난을 이기는 자
1) 단단한 음식 - 예수 그리스도
2) 지각을 사용,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성령의 인도를 받음) - 고전2:10, 요14:26, 요일2:27
나. 어떻게 장성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가?(히6:1-2)
1)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림(율법, 전통, 규례, 의식을 버림)
2) 실체 되신 그리스도를 붙잡음(갈3:19)
결론: 어려움이 많이 있지만 답은 한 가지입니다. 창3, 6, 11장 속에서 이길 수 있는 답을 주셨습니다. 완전한 데로 나가라 하셨습니다.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나라, 오직 성령을 붙잡음으로 장성한 자의 축복 누리시길 바랍니다.
● 기도제목
● 말씀실현(실천사항)
● 전도대상자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히5:11~6:3)
5:11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가 듣는 것이 둔하므로 설명하기 어려우니라
12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13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14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6:1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2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3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
히5:11~6:3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예수를 바라보십시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은혜 받은 사람들만이 찬양할 수 있는 부분들입니다. 오늘 이 엄청난 축복된 은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이 자리에 참석한 모든 분들이 정말 하나님의 그 은혜의 풍성함 속에 들어가는 최고의 축복된 시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특별히 우리 교회에서 중남미 40일 집중훈련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 이 예배에도 우리 중남미 분들이 참석하셨는데요, 사실 그렇게 썩 좋지 않은 환경들 속에서 지금 계속해서 훈련이 되고 있습니다. 새벽5시부터 이 분들이 자체적으로 모여서 기도회를 하고요, 아침에 빵으로 식사를 대신하고, 9시 반부터 모여서 찬양하고 메시지를 시작해서 12시까지 오전 강의가 진행되어지고, 또 점심시간 12시부터 2시간 점심 시간 지나고 나서 2시부터 5시까지 또 집중해서 강의가 되어지고, 5시부터 잠시 식사하고 난 후에 7시 반까지 그날 받은 메시지들을 같이 포럼하고, 또 각각 미션홈으로 흩어져서 잠자리에 들고 또 다시 모여지고 이런 훈련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너무나 귀중한 분들입니다. 이 자리에 참석하신 분들, 우리 목사님들도 많이 계시고, 사역자들, 신학생들 같이 많이 참석하셨는데 정말 우리가 이 분들 통해서 중남미 37개 나라가 살아나고, 또 전 세계 237개 나라가 살아나는 그 응답의 주역들이 될 수 있도록 여러분 위해서 기도해 주시고, 특별히 이분들이 정말로 집중해서 말씀받는 시간 시간들 하나님께서 귀중한 축복된 역사들, 예비하신 축복된 역사들을 준비하시고 또 강사들이 세워져서 말씀 주고 계시는데 세우신 강사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고 이분들 모두를 위해서 기도해 주셔서, 여러분의 기도로 말미암아 중남미 현장이 살아나는 그런 응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특별히 이번에 선교대회를 통해서 우리가 말씀 받은 부분들이지요. 이 분들 통해서 중남미 현장에 중직자들이 일어나고 사실 중남미 현장에는 거의 침례교 신학에 영향을 받아서 중직자들이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힘이 전도운동에 쓰임 받는 중직자들로 세워질 수 있도록, 그래서 중직자들이 일어나고 정말로 미래이지요. 중남미 현장에 렘런트들이 일어나서 한 시대의 재앙을 막는 이 일에 이들이 쓰임 받고, 그 힘을 가지고 237개 나라를 살리는 그런 축복된 응답을 누리는 그런 증인들 되도록 여러분 기도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3. 12일까지 훈련이 계속 되어지는데 이 훈련을 위해서 여러분 계속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우리 교회 강단을 통해서 히브리서를 계속해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큰 대제사장 예수를 바라보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오늘은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이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히브리 기자가 이 히브리서를 통해서 사실은 이들에게 지적하고 있는 부분들이 있다면 복음을 받은 유대교에서 돌아온 기독교인들이 그 당시에 핍박과 어려움이 계속되어지니까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놓쳐버리고 자꾸 옛날로 돌아가고자 하는 그런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은 이 당시에 유대교에서 있다가 복음을 받고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시작하면서 핍박과 어려움이 닥쳐오니까 자기도 모르게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놓쳐버리고 자꾸 과거의 영적상태로 돌아가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그러지 말고 오직 그리스도로 들어가라 그게 바로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이 말씀입니다. 자꾸 과거로 돌아가지 말고,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놓치지 말고, 오직 그리스도 붙잡고 그 속으로 들어가라는 그 말씀에 대한 제목이 오늘 제목인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이 말씀입니다. 여러분 특별히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여러가지 문제와 사건들을 주시지요.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온갖 많은 문제와 사건들을 당합니다. 왜냐하면 창세기3장 현장 속에 있는 모든 인생은 문제와 사건들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각각 문제를 당하는 천차만별의 문제들이 많이 있습니다. 각각의 영적상태가 다 다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있는 그 문제와 사건들, 어려움들을 모르겠습니까? 그리고 그 문제와 사건들을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허락하셨겠습니까? 우리의 문제와 사건들 하나님이 모르시는 하나님이 아니시잖아요. 그리고 그 문제와 사건들을 왜 하나님께서 허락하셨겠습니까? 하나님은 예레미야29:11절에 보면 우리를 향한 생각은 재앙이 아니라고 했어요. 축복이요 평안이요 장래에 소망을 주기 위함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문제와 사건을 주신 것은, 축복받을 사람인데 세계복음화 할 사람인데 거기에 방향이 안 맞기 때문에 문제와 사건과 어려움을 통해서 방향 잡으라는 겁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진짜 복음에 뿌리내리고 복음에 체질되라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문제와 사건을 당할 때 보면 결국은 우리가 하나님의 이 귀중한 계획을 알지 못하니까 우리 자신의 노력과 애씀으로 해결하려고 해요. 중요한 세계복음화에 방향 맞추고 복음에 뿌리내리라고 우리에게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서 허락하셨는데, 이 부분에 대한 답이 없으니까 문제와 사건과 어려움을 당하면 우리가 어디로 돌아가느냐? 우리도 모르게 우리 자신의 노력과 애씀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에게 당하는 거예요. 물론 우리에게 일어나는 문제들, 우리가 스스로 해결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분명히 아셔야 할 것은 아무리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복음으로 해석하지 아니하고, 복음으로 해결되지 아니하면 그 해결된 것은 완전히 해결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진짜 우리의 문제를 제대로 본다면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모든 문제 해결자로 그리스도 복음을 준 것이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문제를 당하면, 이야기를 해 보면 문제와 사건 속에서 이미 자기가 결정들을 다 해놓고 이야기 하는 것을 봐요. 자기 일들에 자기가 결단들을 다 내려놓고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하는 것을 봅니다.
그러면 결국 어디로 빠지느냐? 여러분, 사람 중심으로 빠져요. 그리고 문제와 사건이 있게 될 때에 그 생각에 사로잡혀서 거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부분들을 보게 됩니다. 결국은 여러분 생각을 많이 하면 할수록 어디로 빠지느냐? 나 중심으로 빠지게 되어 있어요. 우리는 문제와 사건이 일어날 때 그 문제와 사건을 놓고 복음으로 해석해야 하고, 복음 안에 들어가야 되고, 기도 속에서 그 사실에 대한 답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우리의 노력으로 애씀으로 우리의 문제와 사건과 어려움을 해결하려고 했기 때문에 날마다 우리의 신앙이 자라지를 않는 것입니다. 믿음이 자라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 본문에 보면, 11절에서부터 쭉 보면 젖 먹는 어린아이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고, 또 밥을 먹는 단단한 음식을 먹는 장성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들 보게 됩니다. 여러분 저와 여러분의 신앙은 어떤 신앙 속에 속해 있습니까?
1. 젖을 먹는 자
먼저 첫 번째입니다. 젖 먹는 어린아이의 신앙입니다. 다시 말하면 영적인 초보에 있는 어린아이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다라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오늘 특별히 5:11~12절에 보면 이렇게 말하고 있지요.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가 듣는 것이 둔하므로 설명하기 어려우니라”이 멜기세덱에 대해서 설명하려고 하다가 듣는 것이 둔하기 때문에 내가 너희에게 설명하기 어렵다 그러면 여기서 설명을 안 하느냐 하면 아닙니다. 7장에 가면 멜기세덱에 대해서 설명이 나와요. 그러면 강조하기 위해서 이 부분들을 지금 이야기 하고 있는 거예요. 사실은 6장, 7장을 통해서 결국은 아론제사장 보다도, 멜기세덱보다도 더 뛰어난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는 것인데 그러면서 여기에 멜기세덱에 관하여서 너희가 알아듣지 못함으로, 이렇게 이야기하면서 그 다음에 12절에 보면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요.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즉 너희가 다시 하나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을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신앙생활 하고 있으면서도 젖 먹는 수준의, 영적인 초보의 그런 신앙생활을 하고 있음을 히브리 기자가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고린도전서3:1~3절에 보시면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향해서 편지를 보면서 고린도 교회안의 수준이 그러했던 것 같아요. 날마다 분쟁하고 시기하고 그러니까 바울이 지적한 것이 뭐냐 하면 ‘너희는 육신에 속한 자다 밥을 먹지 못하는 젖을 먹어야 되는 육신에 속한 자다. 그러니까 늘 분쟁하고 시기하는 것이 아니냐?’ 이것이 고린도 교회를 향한 바울의 지적입니다. 특별히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도 우리도 모르게 우리의 신앙이 장성한 자의 신앙이 되어야 하는데 젖 먹는 어린아이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 자신들을 점검해 봐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젖 먹는 어린아이의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 그러한 사람들은 어떤 수준에 머물러 있는가? 거기에 대한 부분들을 오늘 두 가지로 말씀하고 있는데 먼저 11절에 보면 너희가 듣는 것이 둔하므로.. 했습니다. 이 말은 영적인 감각이 없다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은 그냥 우리가 영적인 감각이 없다, 둔하다 할 때에 뭔가 시대에 대한 감각이 없음을 가지고 둔하다 이야기 하지요. 그런 말이 아닙니다. 영적인 상태를 이야기 해요. 하나님의 말씀 듣는 일에 게으르다는 거예요. 이게 말씀 듣는 것이 둔하다는 말이예요. 다시 말하면 말씀의 맛을 모르고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가장 힘든 것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또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이 부분이고요, 여러분 똑같이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또 이 자리에 예배드린다고 앉아 있지만 정말로 우리가 말씀이 들려지지 않을 때 가장 힘들고 어렵습니다. 예배시간에 은혜 받지 못하고 말씀이 들려지지 않으면 신경질이 나요. 말씀이 깨달아지지 않으면 그런데 그러한 가운데서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봐요. 듣는 것이 둔하다. 말씀의 맛을 모르고 신앙생활 하고 있는 분들이 많이 있다는 거예요. 우리에게서 가장 큰 축복은 말씀이 들려지는 것이지요. 우리교회 새 가족부 5주 과정이 지나고 나면 수료가 되어집니다. 그러면 5주 과정을 마친 새 가족부 그 분들을 우리 새 가족부 국장되시는 장로님이 제 방으로 모셔 와요. 그러면 잠시 제가 말씀에 대해서 같이 나누고 기도하고 인사합니다. 그런데 늘 제 방에 올 때마다 제가 빠트리지 않고 묻는 것이 있습니다. 말씀이 들려집니까? 새 가족부 통해서 말씀 들었던 부분들, 또 마치고 나면 예배에 참여하는데 예배에 참여하면서 이 말씀이 들리어집니까? 하고 이렇게 물어봅니다. 그러면 많은 분들이 말씀에 은혜를 받습니다. 들려집니다 하는 사람들이 있고 가끔 들립니다, 또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신앙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있다면, 참된 모든 축복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말씀이 들려지고 그 말씀이 마음에 담기고 우리 영혼 속에 심기게 될 때 그 때부터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된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그래서 말씀 듣는 일에 인생을 걸어야 합니다. 어떤 젊은 친구를, 우리 교회 다니는 젊은 친구를 만나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 친구가 서울의 대학을 다니는데 대구에 집이 있어서 공익 근무를 하기 위해서 잠시 대구에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를 만나서 이야기하는 가운데 예배가 되느냐, 말씀이 들리느냐 물어보니까 말씀을 모르겠다는 겁니다. 안 믿어진다는 겁니다. 그런데 왜 교회에 오느냐 물으니까 여자친구 때문에, 그래서 교회에 왔다는 것입니다. 여자친구 때문에.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났습니다. 어느 날 제가 이렇게 보면 다 보이거든요, 여러분. 딴 짓하는 것 다 보입니다. 조시는 분들도 다 보이고, 제 눈에 다 들어옵니다. 그런데 이 친구가 예배 드리는 것이 달라졌습니다. 무슨 일일까? 어떻게 저렇게, 아니, 들리지도 않고 믿어지지도 않는데 어떻게 저렇게 예배 드리는 게 달라질까? 자리도 앞자리에 앉기 시작하고. 예배 드리는 것을 보면 알지 않습니까?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물어보았습니다. 무슨 일이 있느냐 물으니까 아니라는 겁니다. 요즘 와서 믿어진다고, 그냥 믿어진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들리고. 여러분, 우리 신앙 생활에서 가장 힘든 부분이 있다면 말씀 듣는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도 말씀이 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늘 신앙 생활이 늘 젖 먹는 어린아이 신앙을 못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이 들리는 축복은 다인데, 사실 모든 것인데 여러분, 말씀을 어떻게 받느냐, 그 말씀 받는 것 따라서 응답이 나오지 않습니까? 이상하게 말씀 받으면 이상하게 응답이 옵니다. 특별히 여러분,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 시대를 향해서 주신 복음의 말씀이고 이 말씀을 받게 되면 이 속에서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발견하게 되고 이 말씀 속에서 결국 지금 살아서 역사하는 것이라는 사실에 답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면서 전체와 강단과 현장의 메시지의 흐름을 보게 되고 그 흐름이 보이니까 응답이 오게 되고 응답 속에서 말씀의 성취가 이루어짐으로 증인 되는 축복이 말씀이 들리는 것을 시작으로 오게 되거든요. 그래서 이 말씀을 듣는 것이, 들려지는 것이 모든 것인데 이것은 어떤 면에서 우리가 육신적인 똑똑하다, 지적인 능력을 갖추고 있다, 많이 배웠다, 그것과는 다릅니다. 물론 그런 것들을 배제하지 못하지만 똑똑하지 않다고 해서, 무식하다고 해서 말씀을 못 깨닫느냐? 말씀을 못 듣느냐? 아닙니다. 영적인 부분입니다. 말씀 듣는 것은 영적인 부분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지 악한 사단은 말씀 듣지 못하도록. 왜냐? 말씀 들으면 영이 사니까. 믿음이 생기고 영이 사니까, 힘을 얻으니까 사단은 말씀 듣지 못하도록 총공격을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로마서 10장 17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 들을 때, 이 말씀을 들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믿음이 생긴다 했습니다. 성도들의 삶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통해서 힘을 얻고 은혜 받으면 그것이 모든 삶의 현장에 연결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게 성도들의 삶입니다. 간단한 승리의 삶입니다. 말씀이 들려지고 말씀을 통해서 힘을 얻게 되면 그 속에서 그냥 단순히 내가 말씀에 힘을 얻었다,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가정으로 산업으로 자녀에게 학업에, 직장에 다 연결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 듣는 일에 여러분의 인생을 걸라는 말입니다. 말씀이 안 들려지면 기도하십시오, 여러분. 주일날 교회 와서 예배 드리기 위해 기도하지 않습니까? 들어오자마자 여러분, 어떤 기도를 합니까? 물론 목사님 위해서 기도를 할 것입니다. 예배를 위해서 기도를 할 것입니다. 많은 기도가 있겠지만 그 이전에 하나님, 오늘도 내게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게 하옵소서. 내 귀에 하나님의 말씀이, 설교가 설교가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리게 하여 주옵소서. 시편 40편 6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내게 열린 귀를 열어 주옵소서. 하나님이여 내게 열린 귀를 열어 주옵소서.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여, 내가 하나님의 말씀 듣는 귀를 내게 열어 주옵소서 이 말입니다. 여러분이 예배 드리기 위해서 주일날 나올 때마다 가장 먼저 여러분이 기도되어야 할 부분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말씀 들을 때 이 말씀이 하나님의 음성으로, 하나님의 소리로 들려질 때 내 영이 살게 되고 그 때부터 우리의 믿음이 장성한 수준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안 되니까 마음이 굳어서, 또 귀가 둔하여서 말씀이 안 들리니까 결국은 교회에 유익을 주고 전도 운동 속에 유익을 주어야 할 우리 인생이 나만 아는, 나 중심에 빠지게 됩니다. 창세기 3장과 6장과 11장에 믿는 사람들도 빠지게 됩니다. 왜냐? 내 귀가 둔하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못 들으니까. 결국은 어떻게 되느냐? 나 중심으로 빠집니다. 신앙 생활하면서도 나 중심으로 빠집니다. 그러한 자를 일컬어서 오늘 성경에 보면 13절입니까? 예, 13절 마지막에 보면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라 했습니다.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 생활하면서도 정말로 교회 일에 유익을 주고 전도운동 속에 쓰임 받아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 말씀에 대한 맛을 모르니까 나도 모르게 신앙 생활, 이 모든 것이 나 중심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한 자를 일컬어서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라 했습니다. 여러분, 여기서 의는 무엇을 말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의는 복음을 말합니다. 의의 말씀을 경험했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예수가 바로 그리스도이심을 체험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장성하지 못한 젖먹이의, 어린아이의 신앙을 가진 사람은 일단 듣기가 둔하고 말씀을 듣는 부분이 안 되어 있고 그러니까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가 그리스도 되심을 체험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늘 신앙이 자라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바로 예수가 그리스도로서 구약의 모든 제사를 완성했습니다. 모든 구약의 율법을 완성했습니다. 모든 언약의 성취를 그리스도께서 이루셨습니다. 이 사실을 날마다 날마다 체험해야 합니다. 그래서 완전한 대로 나아갈지니라 이 말은 이 오직 그리스도 이 비밀 속으로 들어가라는 말입니다. 특별히 유대교를 믿다가 복음 받아들여서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율법에 자꾸 빠지고 전통에 빠지니까 바울이 고린도전서 13장 11절~13절에도 말했습니다. 사실은 자기의 과거의 율법에, 전통에, 규례에, 각종 의식에 매여 있는 삶을 이야기하면서 이게 바로 젖 먹는 어린아이의 신앙이었구나, 밥을 먹지 못하고 젖만 먹는 어린아이의 신앙이었구나, 단단한 음식을 먹지 못하는, 젖먹이의 신앙이었구나, 그 고백을 바울이 했습니다. 이 율법 속에 가두어져서 율법을 지킴으로, 행함으로 말미암아 구원 받는 줄 알고 거기에 가두어져서 내가 어린아이의 신앙을 벗어버리지 못했구나. 그런데 그리스도를 만나고 나니까, 다메섹에서 바울이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만나고 나니까 모든 율법의 성취, 그리스도로 이루어졌고 모든 언약의 성취가 그리스도로 이루어졌고 구약에서 말한 모든 제사가 그리스도로 완성된 사실을 알고 아, 바로 율법에서 벗어난 이 참된 자유함이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고백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체험하지 못하면 우리도 모르게 자꾸 어디로 돌아가느냐? 과거로 돌아갑니다. 율법으로 돌아갑니다. 워낙 우리 체질 자체가, 타고난 체질 자체가 종교적인 체질이고 율법적인 체질입니다. 복음적인 체질이 아닙니다. 타고난 체질 자체가 종교적인 체질이고 복음적인 체질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체험하지 못하니까 나도 모르게 자꾸 과거로 돌아가는데 율법으로 돌아가고 행위로 돌아가고. 그들의 기준이 그것 아닙니까? 행위로 구원받는 줄 알고, 그래서 율법을 지킴으로 말미암아 구원받는 줄 알고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해왔는데, 그것을 으뜸으로 생각해왔는데 오늘 12절에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뭐냐? 왜 아직 어린아이의 신앙을 벗어버리지 못하느냐, 진작 너희들이 선생이 되어야 하는데 왜 어린아이의 신앙을 벗어버리지 못하느냐. 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12절을 한번 봅시다.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벌써 오래 전에 선생이 되어야 했는데 왜 아직 어린아이의 수준에 머물러 있어서 단단한 것을 못 먹고 젖을 먹는 수준에 머물러 있느냐 이 말입니다. 그러면 왜 이들이 이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까? 다른 것이 아닙니다.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함으로써, 예수가 그리스도 되심을 체험하지 못함으로써. 그래서 날마다 여러분, 예수가 그리스도 되심을 여러분의 현장에서 체험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해결하셨습니다. 사실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죄, 죄로 인한 저주와 재앙, 우리가 해결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가진 지옥의 배경, 태어날 때부터 가진 지옥의 배경, 우리가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 배후에 있는 사단의 운명 가운데 빠진 인생, 우리가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리스도로 오셔서 재앙과 지옥 권세와 지옥의 배경과 모든 사단의 운명을 십자가에서 완전히 끝내신 것입니다. 이 사실을 날마다 날마다 체험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로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체험함으로 여러분이 장성한 신앙의 축복을 누리게 되는 그런 응답이 저와 여러분에게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장성한자 – 그리스도를 누리는 제자
두 번째입니다. 그러면 장성한 자는 어떠한 자인가? 장성한 자는 그리스도를 누리는 제자가 장성한 자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어려움과 환란을 이기는 사람이 바로 장성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젖을 먹는 어린아이가 아니라 단단한 음식을 먹는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여러분, 장성한 자의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기 단단한 것이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단단한 것이라고 이야기했는데 여기 단단한 음식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장성한 자의 특징을 말씀하고 있는데 14절입니다.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장성한 자는 어떠한 자인가? 여기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가 장성한 자라 했습니다. 이 말은 한 마디로 말하면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장성하지 못한 자는 어떠한 자인가? 성경에 에베소서 4장 13절~14절에 말씀하고 있는데,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여기 사람의 속임수, 간사한 유혹,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는 것, 어린아이같은 것이라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장성하지 못한 자의 신앙이 이러한 사람입니다. 온갖 세상 소리에, 사소한 소리에, 사람들의 소리에 흔들리고 이리저리 무너지는 것입니다. 세상 풍조를 따라가고. 이게 어린아이의 신앙입니다. 그런데, 장성한 자는, 지각을 사용해서 선악을 분별할 수 있는, 여러분 우리가 지각을 사용해서 선악을 분별할 수 있는 힘이 어디서 나옵니까? 성령의 인도를 받는 데서 나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2장 10절에 보면,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진짜 우리가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될 때 하나님 안에 깊은 것들을 가게 되는 이 축복을 누리게 되요 이게 장성한 자의 축복입니다. 요한복음 14:26절에 보면,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정말로 우리가 성령충만 함 속에 들어가게 될 때 여러분 우리의 지각을 사용해서 선악을 분별하는 그 은혜를 입게 됩니다. 왜냐, 성령께서 가르쳐 주시니깐, 요한일서 2장 27절에도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이 있게 되면 은, 더 이상 너희에게 가르칠 필요가 없다 했어요. 왜냐, 성령의 기름 부으심으로 가르치시니깐, 여러분 정말 성령의 충만함 속에 들어가서 여러분, 지각을 사용해서 선악을 분별하는 그 지혜를 얻는 그런 축복된 장성한 자의 축복을 누리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은 이 장성한 자의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여기에 말씀하고 있죠, 히브리서 6장 1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그리스도 도의 초보라는 것은 1절과 2절에 설명하고 있는데요. 한마디로 말하면은 율법과, 전통과, 규례와, 각종 의식에 빠져 있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 율법이나, 규례나, 각종 의식들 유대인들이 갖고 있는 전통은, 그림자요, 모형입니다. 실제가 아닙니다. 원형이 아닙니다. 무엇의 그림자 입니까? 그리스도에 대한 그림자가 율법입니다. 모형입니다. 사실은, 이런 그리스도 도의 초보들을 벚어버려라 율법 속에 빠져있든, 또 전통 속에 빠져있든, 사실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돌아온 사람들이 복음 받았지만, 뭔가 모르고 흔들리고 있으니깐, 그 사실 속에서 벚어버리고, 진짜 완전한 대로 나아가라 오직 그리스도 복음 속으로 나가라 이 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버려라는 말은 무슨 말이냐, 여러분 갱신하라는 말이에요. 어떻게 하던지 사단은 옛날 것으로 돌아가게 만들고요 하나님의자녀된 신분과 권세 다인데 그게 다인데, 그것 놓쳐 버리게 만들고 결국 세상 풍조 따라 가도록 만드는 것이 사탄의 전략이에요 이 모든 것들로부터 갱신하라는 말이에요 그게 바로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라는 겁니다. 그리고 또 여기에 버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버리는 것도 중요한 것이지만 더 중요한 것들을 붙잡으라는 거예요. 그림자 붙잡고 모형 붙잡고 살아가지 말고 실제인 원형인 진짜 원형인 그리스도를 붙잡으란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림자 붙잡고 돌아와요. 그림자 붙잡고 신앙생활한다고 해요 여러분 성경에 보면 말씀 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약속의 자손이 오시기까지 필요한것이라 했어요. 갈라디아서 3장 19절에 보면은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하므로 더하여진 것이라 천사들을 통하여 한 중보자의 손으로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그 중보자는 한 편만 위한 자가 아니나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갈라디아서3장 24절에 보면 은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율법은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는 수준입니다. 그래서 초등 선생이라 이야기 했어요. 그리스도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율법이고요 이 율법은 장차 오는 일에 그림자입니다. 히브리서 10장 1절에 보면 은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히브리서 7장 19절, 9장 9절, 10장 1절에 보면 은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다시 말하면 은 율법으로는 우리를 온전하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이에요. 율법으로 할수 없는 것을 실제이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더 중요한 이 그리스도를 붙잡으라 이 말입니다. 여러분 정말로 우리가 실제를 붙잡게 되면 은, 원형을 붙잡게 되면 은, 그림자 원형은 사라지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를 붙잡게 되면 은 다른 모든 것들의 다른 답이 내려지게 되어있어요 바울이 이야기 했잖아요. 여러분, 아니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은 모세의 이야기를 하면서 이야기 한 부분들이 11장 25절 26절에 나오는데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더 좋아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여기에 하나님 백성과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했어요 그러면서 26절에 보면 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더 좋아하는 것, 더 큰 재물이 있기 때문에 자기에게 있는 것들을 버릴 수 있는 겁니다. 우리가 우리의 가진 것 못 버립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좋은 것 발견하면 버리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오늘 여기 보면 은, 중요한 것은 버리라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을 붙잡으라는 겁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날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에게 주신 제목이죠, 완전한 데로 나아갈 찌니라 날마다 날마다 그리스도의 비밀을 체험하고 누리는 것, 이것보다 더 귀한 것 없어요.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 없어요.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축복이요 최고의 발견이라면 은 예수가 그리스도 되심입니다. 그리스도만이 죄의 문제, 재앙의 문제 지옥 배경 문제 사탄의 문제 해결할 수 있어요. 그리고 우리에게 있는 최고의 누림이 있다면, 그 그리스도 이름으로 주시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리고 최고의 축복과 최고의 성공이 있다면 오직 성령충만 가운데서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되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완전한 데로 나아갈 지니라 날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신 이 비밀을 체험하고, 누리는 그 속으로 들어가라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여러분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까? 어떤 어려움들이 있습니까? 천차만별 각기 어려움들 다를 겁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거기에 대한 답은 오직 한가지입니다. 창세기 3,6,11장의 흑암 가득한 세상 속에서 우리에게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귀중한 문제와 사건과 일들을 이길 수 있는, 승리할 수 있는 귀중한 답들을 주셨는데, 완전한 데로 나아갈 찌니라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 나라, 오직 성령입니다. 이 사실 붙잡으시고, 날마다 새 힘 얻으시고요 날마다 장성한 신앙인으로써 세계복음화 속에 쓰임 받는 우리 하나교회 모든 성도들 되기를 무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8년 2월 25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히5:11-6:3)
서론: 히브리서에는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이 핍박과 어려움을 겪게 되니깐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놓치고 과거로 돌아가려는 부분이 있지만 그렇게 하지 말고 오직 그리스도로 돌아갈 것을 말씀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완전한 데로 돌아갈 것을 말씀 하고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천차만별의 문제를 겪지만 하나님은 모든 문제를 알고 계십니다. 문제와 사건을 주신 이유는 세계복음화에 방향이 맞추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리고 복음으로 각인, 뿌리, 체질 되도록 문제를 주고 계십니다. 문제 앞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알지 못하니깐 내 열심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단에게 당합니다. 하는 일들을 정해 놓고 기도하게 되면 사람 중심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문제와 사건 앞에서 생각을 많이 하면 나 중심이 되어집니다.
1. 젖을 먹는 자(히5:11-12)
가. 듣는 것이 둔하므로(11)
1) 말씀 듣는 일에 게으름 - 말씀의 맛을 모름
2) 말씀 들리는 것이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
3) 말씀을 들음으로 힘, 은혜를 받고 모든 삶과 연결 됨
나. 안 되어지면 자기 중심으로 빠지게 됨 -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 한자(13)
1) 의 = 예수 그리스도, 복음
2)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 하지 못 함(12)
다. 그리스도에 대한 정확한 체험
2. 장성한 자 - 그리스도를 누리는 제자(히5:14)
가. 장성한 그리스도인 -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어려움, 환난을 이기는 자
1) 단단한 음식 - 예수 그리스도
2) 지각을 사용,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성령의 인도를 받음) - 고전2:10, 요14:26, 요일2:27
나. 어떻게 장성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가?(히6:1-2)
1)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림(율법, 전통, 규례, 의식을 버림)
2) 실체 되신 그리스도를 붙잡음(갈3:19)
결론: 어려움이 많이 있지만 답은 한 가지입니다. 창3, 6, 11장 속에서 이길 수 있는 답을 주셨습니다. 완전한 데로 나가라 하셨습니다.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나라, 오직 성령을 붙잡음으로 장성한 자의 축복 누리시길 바랍니다.
● 기도제목
● 말씀실현(실천사항)
● 전도대상자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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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4 | 전환점을 이룬 안디옥 선교 | 행11:19-30 | 2025-04-27 | |
1483 | 우리에게 주시는 영원한 메시지 | 고전15:1-11 | 2025-04-20 | |
1482 | 새로운 싸움을 위하여 | 삿7:9-18 | 2025-04-13 | |
1481 | 날마다 영적싸움에 승리하라 | 삿7:1-8 | 2025-04-06 | |
1480 | 이 시대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해답 | 삿4:1-10 | 2025-03-30 | |
1479 | 하나님이 쓰시는 기준 | 삿3:12-23 | 2025-03-23 | |
1478 |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 삿3:7-11 | 2025-03-16 | |
1477 |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 삿2:6-10 | 2025-03-09 | |
1476 |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 삿1:1-7 | 2025-03-02 | |
1475 |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 단12:1-4 | 2025-02-23 | |
1474 |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 단11:28-39 | 2025-02-16 | |
1473 |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 단10:10-21 | 2025-02-09 | |
1472 |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 단9:20-24 | 2025-02-02 | |
1471 |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 단8:15-27 | 2025-01-26 | |
1470 |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 단7:9-14 | 2025-0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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