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오직 하나님의 방법으로
2017-06-1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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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1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오직 하나님의 방법으로”
(창16:1~6)


1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출산하지 못하였고 그에게 한 여종이 있으니 애굽 사람이요 이름은 하갈이라
2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3 아브람의 아내 사래가 그 여종 애굽 사람 하갈을 데려다가 그 남편 아브람에게 첩으로 준 때는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거주한 지 십 년 후였더라
4 아브람이 하갈과 동침하였더니 하갈이 임신하매 그가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그의 여주인을 멸시한지라
5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내가 받는 모욕은 당신이 받아야 옳도다 내가 나의 여종을 당신의 품에 두었거늘 그가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나를 멸시하니 당신과 나 사이에 여호와께서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
6 아브람이 사래에게 이르되 당신의 여종은 당신의 수중에 있으니 당신의 눈에 좋을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매 사래가 하갈을 학대하였더니 하갈이 사래 앞에서 도망하였더라
 창16:1~6

■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십시다. 오늘 우리 찬양과 함께 연결되어지는 메시지입니다. 한번 같이 새롭게 인사하십시다. 나의 방법을 버리고 하나님의 방법을 붙잡으십시다. 진짜 하나님의 방법을 붙잡게 될 때에 오직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게 되게 되어 있습니다. 이 축복을 확인하고 누리는 그런 축복의 시간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제목을 “오직 하나님의 방법으로” 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에 처음부터 완전한 계획과 완벽한 축복을 예비하시고 부르셨습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내가 너를 복이 되게 하겠다’ 하고 12:2절에 말씀 하셨지요. 그리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축복하셔서 그 아브라함을 중심으로 해서 모든 것들을 축복하시겠다 그게 바로 창세기12:3절에 나오고 있습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축복하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다”말씀했습니다. 이런 어마어마한 축복을 받은 아브라함이 자꾸 여기에 대한 불신앙이 드니까 무너지고 실수하는 부분들이 나와요. 그래서 지금 계속해서 아브라함의 무너짐과 실수함을 성경을 통해서 보고 있는데요 특별히 이 아브라함의 무너짐과 실수함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들을 점검해 봐야 되는 것입니다. 언약에 대한 확신이 없으니까 얼마나 엄청난 축복 가운데 부르셨는지 그 사실을 아브라함이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말이지요. 그러니까 결국은 롯과 함께 동행하게 되고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 했는데 롯과 함께 동행함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통해서 오는 문제들을 많이 당했잖아요. 그리고 또 기근을 통해서 애굽에 내려가게 되고요,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했는데 기근을 당하니까 애굽으로 내려가게 되고 그리고 그 애굽에 내려갔다가 다시 애굽에서 나오면서 여자 하나를 데리고 나오게 되는데 그 여자가 오늘 본문에 나오는 불신앙의 문제에 빠지게 되는 하갈이라는 여자입니다. 이런 문제들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되어요. 중요한 언약의 역사들을 놓치면 우리 또한 그 순간 순간 노예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말은 우리의 모든 문제를 그리스도로 다 해결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또 저주와 재앙 가운데서 해방 받게 하시고, 영원한 사탄의 운명가운데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데 거기서 우리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건져 내셨거든요. 그렇다면 그 그리스도 안에 있는 축복만 누리면 될 것인데 이 사실을 확인하지 못하고, 누리지 못하니까 우리도 모르게 순간 순간 환경과 사건 앞에 거기에 빠져들고, 거기에 노예 되어지는 모습들을 보게 되는 겁니다. 불신자들만 노예되고, 포로되고, 속국되는 것이 아니라 성도라 할지라도 지금 내가 하나님 앞에 서서 행하지 않는 모든 부분들, 그게 바로 노예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정말로 불신앙을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해야 되는데 하나님께서 창세기15장에 보면 아브라함에게 환상 가운데 말씀으로 나타나셨지요.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의 방패가 되겠다 내가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말씀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방패가 되겠다 말씀하시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느냐 창세기14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나가서 연합군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그 걸음 속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부분입니다. 다시 말하면 다시 연합군들이 공격해 온다할지라도 내가 너를 지켜줄게...그러니까 방패라는 말이예요. 그리고 나의 모든 것이 너의 것이다 나를 네게 준다라는 것, 그게 바로 내가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다 라고 말한 겁니다. 그러면서 이 아브라함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하늘의 별들을 보여주면서 저 별들을 바라보라 셀 수 있나 물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네 자녀들을 저 별들과 같이 무수히 많게 하겠다. 그러면서 성경에 보면 그 다음에 짐승을 둘로 가르면서 쪼개어 가지고 너는 지나가지 말라 했습니다. 왜냐? 너는 지킬 능력이 없으니까 내가 지나 가겠다 했어요. 그래서 햇불로 쪼개진 집승 사이를 지나가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너와 나를 대신해서 내가 이 언약을 지키겠다 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언약을 맺어주신 것이지요. 그런데 본문을 보면 사실은 아브라함의 상태와 전혀 상관없이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쪼개진 그 고기 사이를, 짐승 사이를 하나님이 지나가신 겁니다. 햇불로 지나가셨다는 말은 하나님이 지나가신 겁니다.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맺으신 언약입니다. 여러분 이 사실을 알 때에 우리 자신들에게 대한 하나님의 얼마나 큰 사랑이고 얼마나 큰 하나님의 축복이 있었던 것인가를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은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언약을 지킬 수 없잖아요. 그래서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시사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언약 관계를 세우셨는데 그 언약을 하나님이 지키시겠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어마어마한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16장에 넘어가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잘 섬기고 축복 받고 자녀도 났고 그러했을 것 아닙니까? 예상외의 사건이 오늘 16장에 나옵니다. 그 예상외의 사건이 뭐냐하면 결국은 아브라함이 기다리지 못했다 하고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다시 말하면 자기의 방법대로, 자기의 생각대로 일을 행했다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언약을 놓쳐버리면 그렇게 되어요. 그래서 오늘 이 시간 예배 하는 가운데 진짜 언약 붙잡음으로 말미암아 다시한번 더 우리에게 있는 모든 불신앙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는 그런 축복의 시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언약에 대한 불신앙으로 일어나는 일들
그러면 먼저 첫 번째입니다. 언약에 대한 불신앙으로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시면 사래가 한 가지 꾀를 내게 됩니다. 주시겠다는 자식이 없는 부분들을 보면서 사래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자신의 일로 하나님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이런 부분들을 보게 됩니다. 자기 방법으로 일을 행하려고 하는 부분들을 보게 되는데 16:2절입니다. 제가 읽겠습니다.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하나님이 자녀를 주지 아니하니까 사래가 한 가지 꾀를 냈는데 자기에게 있는 여종을 아브람에게 붙여가지고 그래서 자식을 낳도록 이런 꾀를 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여기게 그렇게 말하고 있지요.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여러분 이 말 속에는 사래가 갖고 있는 깊은 불신앙이 담겨져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말씀을 조금 더 이해하기 위해서는 창세기12장에 보면 아브람이 애굽에 내려갔을 때에 그 애굽의 바로 왕 앞에 자기 아내를 누이라 거짓말해서 보내게 되지요. 그런데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거짓말해서 보내면서 아브라함이 사래에게 한 말이 있습니다. 창12:12~13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원하건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러면 내가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말미암아 보존되리라”여기에 13절에 ‘원하건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러면 내가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말미암아 보존되리라’ 아니 하나님이 우리의 생명을 지켜주셔야 안전하고 보존되어지는 것이지 아내인 사래의 말로 말미암아 안전하고 보존되리라 하는 것은 불신앙이지요. 오늘 16:2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래가 갖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이지요.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로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식을 얻을까 하노라 하매’ 마찬가지로 사래의 불신앙이 깊이 뿌리 내려져 있는 부분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2절 그 앞부분에 보면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거기에 하나님의 이름을 말해요. 여호와의 이름을 가지고 말씀인척 하면서 말을 해요. 자 그럼 한번 물어보십시다. 하나님께서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네 기다려야지요. 정확한 답입니다. 그렇다면 기다려야 되지요. 왜냐? 하나님이 약속을 주시고 그 하나님이 약속을 성취하시고 그 하나님이 모든 것을 이루어가시는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시간표가 아니구나 하고 기다려야 되는데 사래가 뭐라 합니까? 내 여종을 보내서 자식을 잇게 하자 이렇게 나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이름을 가지고 이야기하고 있고요, 그 하나님의 이름을 가지고 이야기 하면서 여기에 깊은 불신앙과 인본주의가 깔려져 있는 부분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우리가 갖고 있는 문제들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보면 그 다음에 보면 결국은 아브라함도 그 이야기를 들었다면 그러면 사래에게 말해야 될 것 아닙니까? 그래도 그렇지 한 번 기다려보자 하나님이 약속하셨으니 하나님이 이루실 것 아니냐 시간표가 있을 것이 아니냐 기다려 보자고 나와야 되는데 그 사래의 말에 덥썩 하갈을 취해버렸어요. 오늘 사래가 아브라함에게 제안한 것은 이해가 되어요. 어느정도 이해가 됩니다. 왜냐? 하나님이 사래에게 내가 너로 말미암아 씨를 주겠다로 말하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사래는 ‘아 내게 여종이 있는데 이 여종을 붙여서 씨를 이어감이 안 좋겠냐’ 이렇게 제안한 겁니다. 왜냐? 하나님이 정확하게 아브라함과 나 사래를 통해서 씨를 잇겠다 말하지 않았으니까,,,그런데 성경에 보면 아브라함과 사래를 통해서 씨를 잇겠다 직접적으로 말한 부분이 그 다음 17장에 나와요. 한번 보십시다. 창17:15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사라라 하라” 인제 사래에게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야기 하는 겁니다. 17절에 같이 보십시다.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 또 넘어가서 한번 보십시다. 19절에 제가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고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그러면서 넘어가서 창 17:21절에 보면 “내 언약은 내가 내년 이 시기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 이전에는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를 통해서 이 언약의 역사를 이어가는 씨를 주겠다고 직접 언급한 부분들이 없어요. 그러니까 당연히 사라는 내 종을 붙여서 씨를 이어가는 것 괜찮지 않느냐 이렇게 나옵니다. 그런데 이 속에는 사래의 인본주의가 나와 있는 것이지요. 불신앙이 나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16:2절에 살펴본 것처럼 그러면서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은 아브라함 자신을 통해서 씨를 남기고 자손을 이어가겠다 했지, 사래를 통해서라는 것 거기에 대한 언약을 받은 적이 없어요. 그러니까 결국은 하갈을 취해서라도 씨를 이어가면 되는 것이 아니냐 그래서 창세기12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애굽에 내려갔을 때에 사래에게 이야기 했잖아요. 나의 누이라고 말해라 안 그러면 저들이 나를 죽일 것이니까 무슨 말입니까? 나는 살아야 된다. 너는 죽어도 상관없다라는 거예요. 왜냐? 내 씨를 통해서 나를 통해서 씨를 이어가니까 나는 살아야 될 것 아니냐 그래서 아마 사래를 설득했지 싶어요. 그러니까 그 말을 듣고 사래가 가서 애굽 왕에게 누이라고 이야기 하면서 죽음을 면하게 되지요. 여러분 여기에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은 그래도 그렇지 하나님의 시간표가 있지 않느냐 기다리라고 했으니까 기다려야 하는 것 아니냐 이렇게 나와야 되는데 이 사래의 말을 듣고 그냥 덥석 사래의 여종 하갈을 취했다라는 사실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분명히 깨달아야 될 것은 겉으로는 맞는 말 같지만, 또 겉으로는 믿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믿지 않는 그래서 결국은 그 믿지 않았다는 대표적인 증거가 어디 있느냐 기다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요합니다. 맞는 말 같지만 그러나 불신앙과 인본주의가 그 속에 깔려져 있다라는 사실입니다. 아니 10년 동안 참았으면 되었지 이렇게 나오는 겁니다. 그래서 못 기다리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사래가 자기의 방법대로 일을 행하려고 나왔던 것입니다. 인본주의를 쓰려고 했던 겁니다. 여러분 교묘하게 하나님 믿지 않는 것들을 말씀을 가지고 합리적으로 논리적으로 합리화 시키는 겁니다. 타당화 시키는 겁니다. 이게 불신앙이요 인본주의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갈을 취해서 아브라함이 곧바로 임신을 하게 되지요. 임신을 한 하갈이 어떻게 됩니까? 사래를 결국은 모함하게 되고 사래를 어렵게 만들었어요. 그러니까 이 사래가 화가 나서 또 아브라함에게 가서 이야기 합니다. 그게 5절에 나옵니다. 임신한 하갈이 사래를 멸시하니까 여기에 화가 난 사래가 남편에게 바가지를 긁는 모습이 나오는데요. 창16:5절입니다.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내가 받는 모욕은 당신이 받아야 옳도다 내가 나의 여종을 당신의 품에 두었거늘 그가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나를 멸시하니 당신과 나 사이에 여호와께서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아니 하갈을 통해서 멸시를 받는다면 사래가 깨달아야지요. 아! 내가 시간표를 기다리지 아니하고 불신앙해서 온 문제구나 하고 깨달아야 되는데 여기에 뭐라고 나오느냐 마지막에 보면 “여호와께서 판단하기를 원하노라.” 뭐가? 여기 여호와란 말이 들어갈 데가 아닌데. 여호와께서 판단하기를 원한다, 자기가 잘못해서 불신앙해서 문제가 온 것인데 여호와께서 판단하기를 원하노라 했습니다. 그러면서 결국은 그 이유를 누구에게 넘겼느냐? 오늘 5절 앞부분에 보면 “내가 받는 모욕은 당신이 받아야 옳도다.” 너 때문이다, 당신 때문이다,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습 아닙니까? 당신만 잘 하면 될 것인데, 당신만 잘 하면 이 문제가 없을 것인데, 우리가 쉽게 하지 않습니까? 핑계 대는 것입니다. 당신 때문에 지금 이런 일들이 일어났다, 당신 때문에. 저는 이 본문을 보면서 창세기 3장의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떠났을 때의 모습이 생각났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고 범죄함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해서 숨었을 때 하나님이 아담에게 찾아오셨습니다. 아담아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그러니까 아담이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서 숨었나이다. 누가 너의 벗었음을 뭐라 하느냐 하면서 왜 이렇게 했느냐 하니까 아담이 무어라 했습니까? 하나님이 주셔서 내게 주신 저 여자가! 아니, 언제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해놓고 핑계를 누구한테 대느냐? 먼저 하나님이 주셔가지고, 하나님께. 그 다음에 내게 주신 여자, 그가. 내게 준 저 여자가. 창세기 3장의 문제입니다. 핑계 대는 것, 원망하면서 핑계 대는 것, 남에게 핑계 대는 것. 그러니까 하와를 불러서 다시 이야기합니다. 너는 왜 그랬느냐 하니까 하와도 또 뭐라 했습니까? 뱀이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자기가 잘못했다 해야 할 것인데 뱀이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여러분, 이게 우리의 삶 속에 그대로 배어 있는 부분 아닙니까? 무슨 일을 당하면 남 핑계를 댑니다. 남을 원망하고 자기 자신은 전혀 잘못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당신만 잘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 그렇습니까? 그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여기에 결국은 아브라함이 사래의 말을 듣고 좋아, 그러면 하갈을 네 마음대로 해라 했습니다. 하도 바가지를 긁으니까 귀찮아서 그러면 아니, 하갈이 네 손에 있지 않느냐, 네 마음대로 해라 했습니다. 그러니까 사래가 결국은 하갈을 쫓아 보냈습니다. 구박하고 쫓아 보내고 그 하갈로 말미암아 누가 났습니까? 이스마엘이 나고 그리하여 나중에 아랍 족속의 조상이 된 것이 바로 이스마엘입니다. 자, 잠시 잠깐은, 당장 앞에는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불신앙을 해도, 인본주의를 써도. 왜냐? 17장에 보면 이스마엘에게도 하나님이 축복하셔서 열두 두령을 허락했습니다. 그래서 큰 고을을 주셨다 했습니다. 17장 7절~9절을 보면. 열두 두령, 큰 고을을 주셨다 했습니다. 그러면서 당장 앞에, 지금 당장 앞에는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또 어디에 나오느냐 하면 25장 7절~9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죽게 되었을 때에 거기에 이삭과 함께 이스마엘이 같이 자기 아버지 아브라함의 장례를 치릅니다. 지금 당장은 결과가 드러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당장 눈앞에는 일들이 벌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이 부분은 반드시 열매 맺게 되는데 그것을 이삭과 이스마엘의 관계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중동에 전쟁이 일어나는 이유가 어디에서 나옵니까? 결국은 기독교와 모슬렘, 정면으로 부딪히고 있습니다. 그 당시는 문제 아닌 것 같습니다. 불신앙하고 인본주의를 써도 당연히 합리적이고 타당하니까 아무 문제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반드시 불신앙은 그 열매가 맺힌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지금 당장은 아무렇지 않은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결국 인본주의를 쓰고 불신앙하는 모든 것들은 결국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그 열매가 맺힌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언약을 믿지 못할 때 제일 먼저 뭐합니까? 기다리지 못합니다. 언약을 믿지 못하니까 기다리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인본주의를 쓰고, 거기에 인본주의를 쓰면서 우리 인간이 너무나 약삭빠르게, 합리적으로, 논리적으로 그것을 변명합니다. 그러면서 결국은 그 불신앙들을 합리적으로, 논리적으로 만들어서 그 불신앙이 행동으로 나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래가 자기 남편에게 여종을 주었다, 속은 불신앙이지만 겉으로 보면 대단한 것 아닙니까? 자칫 잘못 보면 아, 얼마나 언약을 사랑했으면, 그 언약을 성취하고 그 언약을 이루기 위해서 자기의 여종까지 아브라함에게 줄 수 있느냐, 이렇게도 나올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사래는 자신을 속이고 자신도 속으면서 믿음처럼 나온 것입니다, 사실. 여러분, 결국은 우리의 모든 것들, 정말로 하나님의 언약 붙잡고 행하지 않는 모든 것은 불신앙과 인본주의이고 그로 말미암아 큰 문제를 가져오고 영원한 결과를 가져오게 됨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언약은 반드시 성취됩니다. 불신앙은 반드시 열매 맺지만 하나님의 언약도 반드시 성취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는 시간표를 기다려야 합니다. 문제는, 여러분, 하나님의 시간표를 기다리는 것이 느린 것이 아니라 자꾸 잘못된 길을 가는 것이 느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간표를 기다리는 것이 느린 것이 아니라 자꾸 잘못된 길을 가는 그것이 느린 것입니다.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 하나님의 언약은, 우리에게 주신 언약은 반드시 성취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시대는 어떻습니까? 기다리지 못하는 시대입니다. 여러분, 미래학자인 앨빈 토플러라는 사람이, 이미 고인이 되셨습니다만, 그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강한 사람, 약한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빠른 사람과 느린 사람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이 시대는 빠른 사람이 강자가 되고 빠른 사람이 주도하는 리더가 될 것이라 했습니다. 우리 지금 시대를 한번 봅시다. 그게 맞는 말 같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얼마나 시대가 빨라졌습니까? 이미 성경에도 예언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서 12장 “빨리 왕래하며” 했습니다. 지식도 더해집니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 여러분, 빠른 사람이 시대의 강자가 되고 리더가 된다, 맞는 말 같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강한 나라일수록, 강대국일수록, 인터넷이 빠른 나라가 강한 나라가 된다, 그런 말도 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우리나라도 얼마나 인터넷이 빠릅니까? 2g, 3g, 4g까지 나옵니다. 얼마나 빠릅니까? 기다리지 못합니다. 잠시라도 여러분, 기다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스마트폰을 갖고 있으면서 이렇게 하지 않습니까? 기다리지 못해서, 검색을 한다고. 기다리지 못합니다. 엘리베이터 타고도 여러분, 자기가 가는 층을 눌러놓고 기다리지 않습니다. 바로 이어서 무엇을 합니까? 닫기를 누릅니다. 닫히는 것을 누릅니다. 못 기다립니다. 그런데 이런 빠른 삶이 우리의 삶의 체질이 되니까 신앙생활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시간 속에서 하나님의 시간표가 있습니다. 분명히 모든 것은 하나님의 시간 속에서 하나님의 시간표가 있습니다. 너무 빠른 것에 적응되다 보니까 우리도, 우리의 상황도, 우리의 신앙생활도 어떤 면에서 내 나름대로 시간을 정해 놓고 그게 안 되면 하나님께 흥정합니다. 하나님, 이래서 됩니까, 언제까지 이걸 들어주셔야 할 것 아닙니까? 이렇게 우리가 나옵니다. 그게 왜인줄 아십니까? 하나님의 시간 속에 하나님의 시간표가 있는데 너무 빠른 것에 적응되다 보니 내 시간을 가지고, 그래서 하나님의 응답을 어느 때까지 안 주면 내가 하나님 앞에 대들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대든다는 말은 아니지만 하나님께 흥정하는 이런 식으로 나옵니다. 여러분, 진짜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같이, 성경에 나오는 응답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고 기다린 사람들이었습니다. 기다린 사람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해야 하는데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방법은 무엇이냐? 언약 붙잡고 기도 속에서 기다리는 것입니다.그게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모든 일을 하나님이 행하시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우리가 창세기 18장을 살펴보겠습니다만 성도들이 은혜 받을 때 일은 누가 하시느냐? 하나님이 하십니다. 그게 18장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성도들이 은혜 받을 때 일은 누가 하시느냐?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약속 붙잡고 기다리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또 한 번 봅시다. 야곱과 에서, 우리가 잘 알지 않습니까? 야곱이 이미 언약의 백성으로 하나님께서 태중에 있을 때 이야기했습니다.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에서가 야곱을 섬긴다는 말입니다. 그걸 기다리지 못해서 라헬도 마찬가지이고 야곱도 마찬가지입니다.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했지 않습니까? 그래서 안 해도 될 고생을 실컷 하고 나중에 결국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처럼 에서가 야곱을 섬기고 내가 너의 앞잡이가 되리라 하면서 나왔지 않습니까? 그리고 야곱이란 이름으로 전세계를 장악하는, 이스라엘 이름으로 전세계를 장악하는 축복을 야곱이 누렸지 않습니까? 언약 붙잡고 기다리면 되는데 기다리지 못해서 고생들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하나님께서, 예수님께서 말씀했습니다. 사도행전 1장 4절에 보면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뭐요? 뭐라 했습니까? “기다리라” 했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너희에게 주었으나 몇 날이 못 되어서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했습니다. 사도행전 1장 13절, 14절을 보면 초대교회 마가다락방에 성도들이 모여서 전혀 기도하면서 기다렸습니다. 거기에 사도행전 2장 1절~4절에 아무도 막을 수 없는, 오순절날 마가다락방에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귀중한 응답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에게 가장 큰 축복이요, 가장 귀중한 응답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오순절 마가다락방에 임한 사건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시간표를 기다리는 것, 그것이 성령 인도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불신앙입니다. 하나님의 시간표를 기다리는 그것이 성령인도이며 그렇지 않은 모든 것은 불신앙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시간표를 기다리는 성령 인도, 성령의 인도는 어떻게 받습니까? 말씀을 통해서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4장 26절 27절에 보면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 말씀, 가르치고 생각나게 하시겠다 말씀 붙잡는 게 성령인도 받는 것입니다. 사도행전2:42절에 초대교회는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이게 성령인도 받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예배드리는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 받는 이 시간이 최고의 성령인도 받는 시간인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 성령의 인도 받게 되면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가? 여러분 분명히 기억하세요. 하나님이 나에게 딱 맞는 응답을 주세요. 하나님이 오늘 딱 맞는 응답을 주세요. 하나님, 내 현장에 딱 맞는 응답을 주세요. 그걸 다른 단어로 말하면 “최적”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최고, 최선은 불신자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베스트 이야기 하죠 최고다. 그런데 사실은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최고의 최선이 아니라 딱 맞는 최적의 응답을 성령인도 속에서 허락하시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나에게 딱 맞는 응답. 나의 과거 오늘 미래를 알고 나의 오늘을 알고 딱 맞는 응답. 나의 현장을 알고 딱맞는 응답.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령인도 받게 될 때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이 축복 속에 들어가는 우리 하나교회 모든 성도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브엘라헤로이
두 번째입니다. 오늘, 하갈과 이스마엘도 하나님은 외면치 않으시고 축복하셨습니다. 아브라함만 축복하신 것이 아니라 하갈과 이스마엘도 축복하셨는데 그 축복을 받고 깨닫고 하갈이 이름한 곳이 있어요. “브엘라헤로이” 마지막 부분에 나옵니다. 16장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데, 브엘라헤로이의 뜻이 뭐냐 하면은 하나님께서 살아계셔서 보살펴 주신다. 하나님께서 보살피는 우물이라는 말입니다. 생존하시는 하나님이 보살피는 우물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이스마엘이라는 뜻 자체도 하나님이 들으심이라는 뜻이고요. 축복된 이름입니다. 그리고 하갈을 축복하셨는데, 브엘라헤로이, 하나님이 보살펴주시는 생존하시는 하나님의 축복 속에 살아있는 우물이 다는 말이에요. 저와 여러분의 삶속에 브엘라헤로이의 축복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보살펴주시는 산업, 하나님이 보살펴주시는 학업, 하나님이 보살펴 주시는 우리 모든 인간관계 이 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왜 하나님께서 하갈과 이스마엘을 축복하셨을까? 아브라함만 축복하시지 왜 하나님께서 하갈과 이스마엘을 축복하셨을까? 복음과 전도를 이해하면은 하갈과 이스마엘을 축복하신 이유를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우리를 향한 계획이 세계복음화입니다. 그러면 모든 족속으로 가라 만민에게 가라 땅 끝까지 이르라 했습니다. 물론, 아브라함을 축복하셔서 그 아브라함을 통해서 모든 민족이 복을 받게 했지만은 아브라함에게만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못 알았습니다. 우리만 복 받은 민족이다 선민사상입니다. 이스라엘을 선택해서 이스라엘 통해서 세계만민을 살리길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음인데 그 사실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지 못해서 우리만 복 받았다 우리만 선택받았다. 이방인을 개처럼 하고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역사 속에 7번이나 재앙의 역사를 당했습니다.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브라함만 복 주시길 위한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 통해서 세계 살리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에요 그래서 우상 숭배에 빠진 자를 살려야 되는 것이고요 종교 생활하는 자를 살려야 하는 것이고요 점쟁이도 살려야 되는 것이고요 불신자들 살려야 되는 겁니다. 그게 하나님의 계획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보면 하갈과 이스마엘을 왜 축복하셨는가. 이유를 깨닫게 되는 것 아닙니까? 그 축복된 이름이 브엘라헤로이입니다. 저는 이 본문을 보면서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우리의 모든 산업 현장에 우리의 사업에 일터에 모든 관계 속에 하나님이 보호하시고 살피시는 이 축복의 역사가 있어야 하겠다. 이 언약을 제가 붙잡았어요. 브엘라헤로이. 하나님이 여러분을 보살핀다면 누가 여러분을 건드릴 겁니까? 하나님이 여러분을 보살펴야 여러분 모든 것이 안전해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들도 여러분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어요. 오직 하나님만이 여러분의 사업을 지킬 때에 그 사업이 안전해 지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축복된 존재로, 우리는 전혀 가치 없고 그 축복을 누릴 수 없는 자아닙니까? 에베소서 2장 12절에 보면 은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약속의 언약에 대해서는 외인이요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세상의 소망도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였더니 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그러한 자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보내주시사 외인이었던 약속 밖에 있던 우리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축복을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누릴 수 있는 어마어마한 하나님 자녀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12가지 인생의 문제, 우리 자신이 해결할 수 없음을 알고, 그리스도께서 친히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인생의 모든 문제 해결하신 모든 문제 해결자 그리스도가 되셨습니다. 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단의 세력이 꺾여 졌고요 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로 인한 저주와 재앙에서 해방받았고요 그 그리스도 말미암아 하나님을 만나고 지금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누리는 어마어마한 자리에 저와 여러분이 서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연약함과 상관없어요. 우리 부족함과 상관없어요. 하나님이 우리를 그리스도를 주고 우리를 사셨기 때문에 그리스도 때문에 축복받게 되어 있습니다. 승리할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은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 그 이름 붙잡고 나가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 모든 응답과 축복이 “브엘라헤로이의 축복이 우리 현장에 우리 모든 산업에 나타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정말로 하나님이 보살펴주는 하나님이 보호해주는 우물 내 삶에 하나님의 역사가 있는 그런 축복된 하나교회 제자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방법으로 오직 하나님의 방법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언약 붙잡고 기도 속에 들어가는 겁니다. 그 언약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겁니다.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했다는 그 증거로 부활하셔서 예수가 그리스도 되셨습니다.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 그리스도 그 이름 붙잡고 깊은 묵상 속에 그리스도 그 이름 붙잡고 깊은 묵상 속에 들어가면 은 그리스도 그 이름 붙잡고 기다리면 문은 누가 여시느냐? 하나님이 여시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복음 안에서 날마다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세요.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 그 이름 붙잡고 깊은 묵상 속에 들어갈 수 있는 그 방법들을 찾아내세요. 여러분 우리에게 있는 불신앙들, 우리에게 있는 실수들, 우리에게 있는 연약함들 우리가 해결할 수 있나요? 우리가 불신앙 하지 말아야지. 또 내가 불신앙 했구나 또 불신앙 하지 말아야지 내가 생각하지 말아야지 생각하지 말아야지 그 자체가 그 생각 속에 사로잡히는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생각이 없어질 수 있나요? 내가 실수 하지 말아야지 그걸 결단 한다고 실수 안할 것 같으면 은 그리스도가 필요 없는 겁니다. 우리는 또 실수하고 또 불신앙에 빠지고 또 연약해서 넘어집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주신 겁니다. 여러분 문제와 사건 있다 할지라도 그래도 예수는 그리스도!!! 선언하시길 바랍니다. 그게 모든 흑암이 무너지고 불신앙의 세력이 해결되어지고 참된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들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승리하는 우리 하나교회 모든 성도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 그리스도 그 언약 붙잡고 기도함으로 나의 인생에 모든 문제들을 내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으로 해결되어짐으로 하나님 주시는 응답과 축복을 누리는 우리 하나교회 모든 성도들 되게 역사하여 주옵소서. 살아계신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2017년 6월 11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오직 하나님의 방법으로
(창16:1-6)

서론: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 처음부터 완전한 계획과 축복을 예비 하시고 부르셨습니다(창12:3). 아브라함의 불신앙을 보면서 우리의 신앙생활을 확인 해야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축복을 누리지 못 하면 상황, 환경 앞에 노예가 되어집니다. 오늘 본문에 아브람이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기다리지 못 하고 내 생각, 방법대로 했습니다. 언약을 놓치면 내 방법, 생각대로 모든 것을 하게 됩니다.

1. 언약에 대한 불신앙으로 일어나는 일들
가. 사라가 꾀를 냄 – 자기의 방법으로 일을 함
1) 여종에게 가서 자녀를 얻도록 함(창16:2) - 사라의 불신앙
2) 하나님이 출산을 허락 하지 않음(창16:2) - 기다리지 못 하고 인본주의를 사용
3) 하나님과 사라가 언약을 맺음(창17:16-19) - 이삭을 약속
나. 하갈의 임신(창16:4-5)
1) 하갈이 사래를 멸시하고, 사래가 하갈을 쫓아냄
2) 이스마엘(아랍족속의 조상) - 불신앙의 결과
3) 언약을 믿지 못 할 때 - 기다리지 못 함, 인본주의, 합리적, 논리적으로 불신앙
다. 언약은 반드시 성취 – 언약 성취의 시간표를 기다려야 함
1) 초대교회(행1:13-14 언약 붙잡고 기다림 - 성령의 역사)
2) 하나님의 시간표를 기다리는 것 - 성령인도(요14:26-27 말씀, 행2:42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3) 성령인도 받을 때 - 나에게 딱 맞는 응답(최적)
2. 브엘라해로이(하나님이 보살펴 주시는 우물) - 창16:13-14
가. 하나님의 계획 - 모든 민족, 천하만민, 땅 끝(하갈과 이스마엘의 축복 이유 - 아브람을 통해 세계를 살림)
나. 모든 현장 - 하나님이 보살펴 주시는 축복(업, 학업)

결론: 오직 하나님의 방법은 언약 붙잡고 기도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언약의 핵심이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모든 문제를 해결 하셨다는 증거로 부활 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이름 붙잡고 깊은 묵상 속으로 들어가고 기다리면 하나님이 모든 문을 여십니다. 복음 안에서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방법을 찾음으로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 기도제목







● 말씀실현(실천사항)







● 전도대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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