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되는 계명
2004-05-18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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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을 통해 첫째되는 계명이라고 제목을 잡았습니다. 첫 계명이 사랑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랑도 그냥 사랑이 아니라, 마음·중심·성품을 다해서 사랑하는것이라고 말합니다.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일이 ‘내 이웃을 섬기는 일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으로 세상에는 사회복음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사회복음이 강조될 때에 종교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기독교가 거의 종교화되어있는 이유가 이것 때문입니다. 근본원칙을 놓쳤을 때에 가장 좋은 것이지만, 사단에게 이용당하는 부분입니다. 고전13:13에 보면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방언을 하고, 별짓을 다해도 사랑이 빠졌다라고 하면 흑암세력의 이용통로밖에 되지 않습니다. 신비의 방언, 예언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것이 빠졌을 때에 사단의 통로가 된다는 것입니다. 좋은 것이 썩으면 더 냄새가 납니다. 바른 것이 바른 것으로 사용되지 못할 때에 흑암이 틈타는 배경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22:37-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마음·뜻·생각과 온 정성을 다해서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38절-이것이 크고 첫째되는 계명이요.-신앙생활의 근원적인 것이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붙잡고 한 주간 구체적으로 기도의 제목을 삼아야겠습니다. 무엇이냐하면? 사랑이라할 때에 제일 흔한 말이 사랑입니다. TV보면 드라마, 유행가들 전부 사랑타령입니다. 사랑이 빠지면 말이 안됩니다. 어떤 면에서 제일 흔한 것이 사랑입니다. 이렇게 흔한 사랑 속에 사랑이 식어가고 있습니다. 찬송 속에서도 곳곳마다 사랑이 없어 탄식뿐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랑을 그렇게 많이 부르짖는데에도 사랑이 없습니다. 성경에서 말하고자하는 것은 사랑한다하면서도 사랑이 식는 것입니다. 이것이 말세의 증상입니다. 사랑을 많이 말하고 있지만, 진짜 사랑할 수 없는 문제가 가장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사랑이라고 할 때의 사랑의 강도를 간단히 정의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관계냐라는 것입니다. 민족을 사랑한다? 전부 거짓말입니다. 역사를 보면 정말로 사랑한다는 말이 얼마나 힘든지 압니다. 다음으로는 한국을 사랑한다고 할 때에 한국과 나와의 바른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미국 사람이 한국사랑한다. 이것은 말이 안되는 것입니다. 또, 내가 너를 사랑한다라고 할 때에 바른 관계가 안되면 이상하게 됩니다. 이상한 남자가 와서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하면 이상한 것입니다. 남편이 와서 사랑한다고 하면 관계가 되어있으니, 괜찮은것입니다. 부모자식간의 사랑에 있어 부모가 내가 너를 사랑한다. 할 때에 그 강도가 잡히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한다 할 때에 거짓말이다! 라고 할 사람은 없습니다. 아들이 아버지 사랑합니다할 때에도 아버지가 이상하지 않는 한 거짓말이다! 라고 말할 사람은 없습니다. 어떤 관계냐에 따라서 사랑의 강도가 잡히고 이해가 됩니다.
이런면에서 하나님을 사랑한다. 교회를 사랑한다. 교인들을 사랑한다. 할 때에 하나님과 어떤 관계가 되어있느냐? 이것이 바로 되지 않으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을 아무리 해도 외식밖에 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 되고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바로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과 나의 관계입니다. 이러한 관계속에서 ‘내가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말해도 이상이 없습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면서도 하나님 아저씨가 되어있다면, 하나님은 그때는 거짓말!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을 주면서 나는 너희를 애굽땅에서 인도하여낸 너희 하나님이다. 라고 관계를 확실히 말씀하신 후에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다는 배경이 관계 속에서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되지 않은 상태에서 여기에 왔다. 기도한다. 전부 외식이 되는 것입니다.
이 관계가 바로되는 가장 기본되는 것이 무엇인지는 조금 정의해야겠습니다.
이번 주에 전도학교를 했습니다. 하면서 기본적인 것을 말하면서 여기에 나와서 기도하고 아멘하고 말씀듣는 가장 기초적인 배경이 구원받았다는 것입니다. 흑암과 사단의 다스림으로부터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해방받았다는 이야기입니다. 롬8:2-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말씀처럼 해방하였습니다. 이것이 개인적으로 와줘야 구원이라고 하였습니다. 다른 이름으로는 천하에 구원주신 적이 없습니다. 구원받았다할 때에 생각과 의식이 어떤 자리에서도 ‘예수는 그리스도시오!’ 이 고백이 나와야 합니다. 의식적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중심으로 주의 이름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 이름이 흑암과 저주에서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이름이다라는 사실이 확인되어야 구원받았다고 말합니다. 성경에서는 이것을 가지고 은혜받았다라고 하는 것이빈다. 신앙생활하면서 제일 중요한 것이 예배시간마다 구원의 사실적인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교회에 나와서 무엇을 한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주로 믿고 날마다 그 은혜를 입어야 합니다. 교회에 나온다 안나온다가 우선적인 문제가 아니라 은혜받아야 합니다. 어디에 가던지 은혜를 입어야 합니다. 정말 말씀 붙잡고 그 말씀이 내 중심 속에 사실과 실제로 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붙잡아야 할 것입니다.
구원받았다할 때에 중요한 것은 우리의 힘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주권적인 은혜라고 합니다 구원이란 말은 어떤 면에서 너무나 엄청나고 큰 것입니다. 구원받았다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조건 주셨다. 이것을 가지고 ‘선물이다’라고 합니다. 구원받은 자들의 문제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너무나 큰 것을 받았기에 인식이 안되는 것입니다. 구원받았지만, 구원에 대해서 너무나 감사하다는 것이 인식이 안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역사가 구체적으로 인식이 안됩니다.
구원의 사실이 인식될 때에 나도 모르게 하나님의 은혜가 감지되는 그 때부터 나도 모르게 감당이 안되더라고요. 박지온 목사인 내가 나도 모르게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돌아다녔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집집마다 두드리며 돌아다녔습니다. 예수믿고 전도는 쉽다? 이것이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가 와 닿으면 저절로 나오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현실적으로 세계복음화가 와 닿으면 가슴에 손을 댈 필요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이 참 생명!이 내게 왔다하면 이 사실이 바로 구원이요. 이것이 구체적으로 와 닿으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인데, 이 것을 받은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마음에 와 닿지 않은 것이 문제입니다. 예배당에 와서 예배를 드릴때에 이 자리에 오신 분들은 확실히 구원을 받았습니다. 구원에 대한 생명의 역사가 없으면 교회에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지만, 구원받은 사실을 못 믿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일 분이라도 호흡을 안하고 있으면 죽는-공기에 대한 감사가 없습니다. 하지만, 밥을 먹으면서는 감사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진 것에 대한 감사와 감각이 없습니다. 정말로 공기에 대한 감사가 생기는 것은 다 죽어갈 때 생기는 것입니다. 건강이 별로 좋지 않을 때에야 공기에 대한 생각이 듭니다.
이처럼 구원을 받았지만, 구원에 대한 기쁨과 감사를 거의 못 느끼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 교회를 사랑한다. 이것이 안되고 있습니다. 공기에 대한 감사를 느낄 때에 공기가 중요하구나. 공기를 사랑해야겠다. 공기가 있어야 하는 환경에 신경을 써야겠구나.는 생각이 와집니다. 이처럼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아무리 말해도 구원에 대한 사실적인 감각이 오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있습니다. 교회를 정말 사랑하고 교회가 정말 사랑스럽습니까? 나와 같이 구원을 받은 사람이 사랑스럽습니까? 그러나 마음과 생각, 중심을 다해서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되면 되게 되어있습니다. 전도한다. 안 한다가 아니라 이것이 되면 저절로 되게 되어있습니다. 이것이 안되니 교회에 나오면 이런 인간들이 여기에 있냐 싶습니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구원의 은혜가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로 오기 때문에 큰 은혜를 받았지만 감각이 안 생길수가 있습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복음의 뿌리를 내려라!입니다 복음의 뿌리 내리는 것이 무엇입니까? 나무가 큰 뿌리를 내리는 것과 잔뿌리를 내리는 것이 있습니다. 큰 뿌리만 내려서는 안됩니다. 잔뿌리가 내려야 합니다. 잔뿌리가 내려야 흡착이 됩니다. 복음의 뿌리를 내려라 할 때에 복음을 체험하자!라고 설명하고 싶습니다. 복음을 체험한다 할 때에 말씀을 체험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구원받았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이 체험되는 그때부터 구원이 내 마음과 심령에 확신으로 옵니다. 지금 예수 믿어도 그리스도에 대한 확신이 없다? 이러면 마음과 정성을 다해 사랑하라는 말은 관계가 없습니다. 성도들의 문제가 교회에 나오지만, 확신이 없는 것입니다. 전도 못한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확신이 없어서입니다. 확신이 없다할 때에는 말씀과 상관이 없어서입니다. 한번만 이것이 체험되면 달라지게 되어있습니다.
체험도 체험 나름입니다. 내가 어떤 체험을 했느냐에 따라서 내 인생의 길이 달라집니다. 신비적인 체험을 하면 신비적인 것을 추구하게 됩니다.
지금도 낚시라고 할 때에 초등학교 때 낚시하던 기억이 납니다. 낚시를 던지자 마자 큰 고기가 걸렸습니다. 그 때에 느꼈던 그 감격이 큽니다. 후에 바다낚시를 통해 훨씬 더 큰 고기를 잡았지만, 낚시라고 하면 초등학교때의 낚시 경험이 더 기억에 남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방언을 하여서 확신이 왔다고 하면 나의 모든 신앙생활을 할 때에 방언과 연결되게 되어있습니다. 자연적으로 신비주의가 됩니다. 그래서 지금 여러분께 말씀하는 것은 그러한 체험이 있다고 해도 좋습니다. 강단을 통해서 오늘 내게 주신 말씀이 붙들려 진다. 그 말씀이 내 삶에서 성취되는 체험이 필요합니다. 강단에서 말씀잡아라. 기도제목 잡아라해도 안되는 줄 압니다. 말씀이 생활 속에서 체험되고 성취되는 사실이 한번만 있으면 교회와서 예배드리는 것이 달라집니다. 피곤한 것과도 상관이 없습니다. 주일날 마다 말씀이 기대가 됩니다. 이런 사람은 문고리 잡고 나가면서 계속 기도가 됩니다. 이것이 안되는 사람은 문고리 잡고 나가는 순간에 제목, 본문도 다 잊어버립니다. 말씀의 성취를 한번만 체험하게 되면 엄청난 변화가 삶과 생활에 오게 되어잇습니다. 이 체험이 한번 두 번 세 번 하는 것이 계속해서 뿌리를 내렸다는 것입니다. 뿌리 중에서도 잔뿌리를 내리는 것입니다. 매 시간 성취되는 말씀을 체험한다고 할 때에 잔뿌리가 내리는 것처럼 되어서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전도한다 안한다가 아니라, 전도받을 사람을 붙여줍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하리라.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리라고 성경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한 주간에 이 시간 말씀이 사실로 체험되는 축복의 역사가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나만 붙잡고 가십시오. 이것을 붙잡고 기도해 보십시오. 체험되지 못하는 배경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는 배경이 아니라면, 지금 나와 함께 하옵소서. 임마누엘 하옵소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의 엄청난 증거로 약속해 주셨습니다. 여러분과 나에게 ‘첫째되는 계명이 무엇인가?“가 이해되는 정도가 아니라, 이웃을 사랑한다는 말이 따라오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제가 목사로서 ’정말로 여러분을 사랑합니다‘는 말이 그냥 나오는 말이 아닙니다. 교인들이 ’정말이다‘ 싶을 수 있는 것이 이것입니다. 이 배경입니다. 가까이 가면 갈수록 가면 냄새가 나지만, 되는 이유는 이 배경입니다. 이것이 되지 않으면 성도로서의 삶이 불행중 불행입니다. 하려는데 안되고, 할려고 하면 거짓말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괴로운 것입니다. 영적으로 사단의 손에 붙잡혀 있다는 것입니다. 전도한다고 아무리 애써도 흑암의 세력에 빠져나오지 못하고 개인, 가정, 가문에 실패가 오게 됩니다. 말로만 아니라, 정말 아버지시구나. 정말 나의 구세주요 모든 것이시구나. 말씀을 통해 한 주간체험하게 될 때에 맞구나. 하면서 고개를 끄덕여지는 것입니다. 진짜 이것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메시지 듣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고개 끄떡이는 것이 와져야 합니다. 그때부터 ’아멘!‘한 말씀이 한 주간 이루어지게 되면 흔들린다 안 흔들린다.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흔들림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사랑이라고 할 때의 사랑의 강도를 간단히 정의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관계냐라는 것입니다. 민족을 사랑한다? 전부 거짓말입니다. 역사를 보면 정말로 사랑한다는 말이 얼마나 힘든지 압니다. 다음으로는 한국을 사랑한다고 할 때에 한국과 나와의 바른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미국 사람이 한국사랑한다. 이것은 말이 안되는 것입니다. 또, 내가 너를 사랑한다라고 할 때에 바른 관계가 안되면 이상하게 됩니다. 이상한 남자가 와서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하면 이상한 것입니다. 남편이 와서 사랑한다고 하면 관계가 되어있으니, 괜찮은것입니다. 부모자식간의 사랑에 있어 부모가 내가 너를 사랑한다. 할 때에 그 강도가 잡히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한다 할 때에 거짓말이다! 라고 할 사람은 없습니다. 아들이 아버지 사랑합니다할 때에도 아버지가 이상하지 않는 한 거짓말이다! 라고 말할 사람은 없습니다. 어떤 관계냐에 따라서 사랑의 강도가 잡히고 이해가 됩니다.
이런면에서 하나님을 사랑한다. 교회를 사랑한다. 교인들을 사랑한다. 할 때에 하나님과 어떤 관계가 되어있느냐? 이것이 바로 되지 않으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을 아무리 해도 외식밖에 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 되고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바로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과 나의 관계입니다. 이러한 관계속에서 ‘내가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말해도 이상이 없습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면서도 하나님 아저씨가 되어있다면, 하나님은 그때는 거짓말!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을 주면서 나는 너희를 애굽땅에서 인도하여낸 너희 하나님이다. 라고 관계를 확실히 말씀하신 후에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다는 배경이 관계 속에서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되지 않은 상태에서 여기에 왔다. 기도한다. 전부 외식이 되는 것입니다.
이 관계가 바로되는 가장 기본되는 것이 무엇인지는 조금 정의해야겠습니다.
이번 주에 전도학교를 했습니다. 하면서 기본적인 것을 말하면서 여기에 나와서 기도하고 아멘하고 말씀듣는 가장 기초적인 배경이 구원받았다는 것입니다. 흑암과 사단의 다스림으로부터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해방받았다는 이야기입니다. 롬8:2-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말씀처럼 해방하였습니다. 이것이 개인적으로 와줘야 구원이라고 하였습니다. 다른 이름으로는 천하에 구원주신 적이 없습니다. 구원받았다할 때에 생각과 의식이 어떤 자리에서도 ‘예수는 그리스도시오!’ 이 고백이 나와야 합니다. 의식적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중심으로 주의 이름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 이름이 흑암과 저주에서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이름이다라는 사실이 확인되어야 구원받았다고 말합니다. 성경에서는 이것을 가지고 은혜받았다라고 하는 것이빈다. 신앙생활하면서 제일 중요한 것이 예배시간마다 구원의 사실적인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교회에 나와서 무엇을 한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주로 믿고 날마다 그 은혜를 입어야 합니다. 교회에 나온다 안나온다가 우선적인 문제가 아니라 은혜받아야 합니다. 어디에 가던지 은혜를 입어야 합니다. 정말 말씀 붙잡고 그 말씀이 내 중심 속에 사실과 실제로 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붙잡아야 할 것입니다.
구원받았다할 때에 중요한 것은 우리의 힘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주권적인 은혜라고 합니다 구원이란 말은 어떤 면에서 너무나 엄청나고 큰 것입니다. 구원받았다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조건 주셨다. 이것을 가지고 ‘선물이다’라고 합니다. 구원받은 자들의 문제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너무나 큰 것을 받았기에 인식이 안되는 것입니다. 구원받았지만, 구원에 대해서 너무나 감사하다는 것이 인식이 안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역사가 구체적으로 인식이 안됩니다.
구원의 사실이 인식될 때에 나도 모르게 하나님의 은혜가 감지되는 그 때부터 나도 모르게 감당이 안되더라고요. 박지온 목사인 내가 나도 모르게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돌아다녔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집집마다 두드리며 돌아다녔습니다. 예수믿고 전도는 쉽다? 이것이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가 와 닿으면 저절로 나오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현실적으로 세계복음화가 와 닿으면 가슴에 손을 댈 필요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이 참 생명!이 내게 왔다하면 이 사실이 바로 구원이요. 이것이 구체적으로 와 닿으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인데, 이 것을 받은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마음에 와 닿지 않은 것이 문제입니다. 예배당에 와서 예배를 드릴때에 이 자리에 오신 분들은 확실히 구원을 받았습니다. 구원에 대한 생명의 역사가 없으면 교회에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지만, 구원받은 사실을 못 믿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일 분이라도 호흡을 안하고 있으면 죽는-공기에 대한 감사가 없습니다. 하지만, 밥을 먹으면서는 감사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진 것에 대한 감사와 감각이 없습니다. 정말로 공기에 대한 감사가 생기는 것은 다 죽어갈 때 생기는 것입니다. 건강이 별로 좋지 않을 때에야 공기에 대한 생각이 듭니다.
이처럼 구원을 받았지만, 구원에 대한 기쁨과 감사를 거의 못 느끼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 교회를 사랑한다. 이것이 안되고 있습니다. 공기에 대한 감사를 느낄 때에 공기가 중요하구나. 공기를 사랑해야겠다. 공기가 있어야 하는 환경에 신경을 써야겠구나.는 생각이 와집니다. 이처럼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아무리 말해도 구원에 대한 사실적인 감각이 오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있습니다. 교회를 정말 사랑하고 교회가 정말 사랑스럽습니까? 나와 같이 구원을 받은 사람이 사랑스럽습니까? 그러나 마음과 생각, 중심을 다해서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되면 되게 되어있습니다. 전도한다. 안 한다가 아니라 이것이 되면 저절로 되게 되어있습니다. 이것이 안되니 교회에 나오면 이런 인간들이 여기에 있냐 싶습니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구원의 은혜가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로 오기 때문에 큰 은혜를 받았지만 감각이 안 생길수가 있습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복음의 뿌리를 내려라!입니다 복음의 뿌리 내리는 것이 무엇입니까? 나무가 큰 뿌리를 내리는 것과 잔뿌리를 내리는 것이 있습니다. 큰 뿌리만 내려서는 안됩니다. 잔뿌리가 내려야 합니다. 잔뿌리가 내려야 흡착이 됩니다. 복음의 뿌리를 내려라 할 때에 복음을 체험하자!라고 설명하고 싶습니다. 복음을 체험한다 할 때에 말씀을 체험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구원받았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이 체험되는 그때부터 구원이 내 마음과 심령에 확신으로 옵니다. 지금 예수 믿어도 그리스도에 대한 확신이 없다? 이러면 마음과 정성을 다해 사랑하라는 말은 관계가 없습니다. 성도들의 문제가 교회에 나오지만, 확신이 없는 것입니다. 전도 못한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확신이 없어서입니다. 확신이 없다할 때에는 말씀과 상관이 없어서입니다. 한번만 이것이 체험되면 달라지게 되어있습니다.
체험도 체험 나름입니다. 내가 어떤 체험을 했느냐에 따라서 내 인생의 길이 달라집니다. 신비적인 체험을 하면 신비적인 것을 추구하게 됩니다.
지금도 낚시라고 할 때에 초등학교 때 낚시하던 기억이 납니다. 낚시를 던지자 마자 큰 고기가 걸렸습니다. 그 때에 느꼈던 그 감격이 큽니다. 후에 바다낚시를 통해 훨씬 더 큰 고기를 잡았지만, 낚시라고 하면 초등학교때의 낚시 경험이 더 기억에 남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방언을 하여서 확신이 왔다고 하면 나의 모든 신앙생활을 할 때에 방언과 연결되게 되어있습니다. 자연적으로 신비주의가 됩니다. 그래서 지금 여러분께 말씀하는 것은 그러한 체험이 있다고 해도 좋습니다. 강단을 통해서 오늘 내게 주신 말씀이 붙들려 진다. 그 말씀이 내 삶에서 성취되는 체험이 필요합니다. 강단에서 말씀잡아라. 기도제목 잡아라해도 안되는 줄 압니다. 말씀이 생활 속에서 체험되고 성취되는 사실이 한번만 있으면 교회와서 예배드리는 것이 달라집니다. 피곤한 것과도 상관이 없습니다. 주일날 마다 말씀이 기대가 됩니다. 이런 사람은 문고리 잡고 나가면서 계속 기도가 됩니다. 이것이 안되는 사람은 문고리 잡고 나가는 순간에 제목, 본문도 다 잊어버립니다. 말씀의 성취를 한번만 체험하게 되면 엄청난 변화가 삶과 생활에 오게 되어잇습니다. 이 체험이 한번 두 번 세 번 하는 것이 계속해서 뿌리를 내렸다는 것입니다. 뿌리 중에서도 잔뿌리를 내리는 것입니다. 매 시간 성취되는 말씀을 체험한다고 할 때에 잔뿌리가 내리는 것처럼 되어서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전도한다 안한다가 아니라, 전도받을 사람을 붙여줍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하리라.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리라고 성경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한 주간에 이 시간 말씀이 사실로 체험되는 축복의 역사가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나만 붙잡고 가십시오. 이것을 붙잡고 기도해 보십시오. 체험되지 못하는 배경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는 배경이 아니라면, 지금 나와 함께 하옵소서. 임마누엘 하옵소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의 엄청난 증거로 약속해 주셨습니다. 여러분과 나에게 ‘첫째되는 계명이 무엇인가?“가 이해되는 정도가 아니라, 이웃을 사랑한다는 말이 따라오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제가 목사로서 ’정말로 여러분을 사랑합니다‘는 말이 그냥 나오는 말이 아닙니다. 교인들이 ’정말이다‘ 싶을 수 있는 것이 이것입니다. 이 배경입니다. 가까이 가면 갈수록 가면 냄새가 나지만, 되는 이유는 이 배경입니다. 이것이 되지 않으면 성도로서의 삶이 불행중 불행입니다. 하려는데 안되고, 할려고 하면 거짓말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괴로운 것입니다. 영적으로 사단의 손에 붙잡혀 있다는 것입니다. 전도한다고 아무리 애써도 흑암의 세력에 빠져나오지 못하고 개인, 가정, 가문에 실패가 오게 됩니다. 말로만 아니라, 정말 아버지시구나. 정말 나의 구세주요 모든 것이시구나. 말씀을 통해 한 주간체험하게 될 때에 맞구나. 하면서 고개를 끄덕여지는 것입니다. 진짜 이것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메시지 듣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고개 끄떡이는 것이 와져야 합니다. 그때부터 ’아멘!‘한 말씀이 한 주간 이루어지게 되면 흔들린다 안 흔들린다.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흔들림이 없습니다.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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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1 |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 고전 9:18-27 | 2025-04-27 | |
1150 | 우리에게 주시는 영원한 메시지 | 고전15:1-11 | 2025-04-20 | |
1149 | 새로운 싸움을 위하여 | 삿7:9-18 | 2025-04-13 | |
1148 | 날마다 영적싸움에 승리하라 | 삿7:1-8 | 2025-04-06 | |
1147 | 이 시대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해답 | 삿4:1-10 | 2025-03-30 | |
1146 | 하나님이 쓰시는 기준 | 삿3:12-23 | 2025-03-23 | |
1145 |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 삿3:7-11 | 2025-03-16 | |
1144 |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 삿2:6-10 | 2025-03-09 | |
1143 |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 삿1:1-7 | 2025-03-02 | |
1142 |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 단12:1-4 | 2025-02-23 | |
1141 |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 단11:28-39 | 2025-02-16 | |
1140 |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 단10:10-21 | 2025-02-09 | |
1139 |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 단9:20-24 | 2025-02-02 | |
1138 |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 단8:15-27 | 2025-01-26 | |
1137 |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 단7:9-14 | 2025-0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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