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예배

그들의 주위에 안식을 주셨으되
2007-08-12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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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오늘 <그들의 주위에 안식을 주셨으되>라는 제목입니다. 매주 하는 인사이지만 진짜 의미를 가지고 인사하시길 바랍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지난 주간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일산 킨텍스에서 세계 선교 대회가 진행되었다. 특별히 그리스도의 복음의 능력이 전 세계 현장에 어떻게 확산되어지는가를 확인하는 응답의 축복의 자리였다. 세계 복음화를 위해서는 일천만 요원이 일어나야 한다. 그 일천만 요원의 주역으로 세워진 사람들 중에 한사람이 있다면 선교사이다. 우리로는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전 세계 선교사, 렘넌트들이 세워질 때에 일천만 요원들이 세워지게 되고, 그 일천만 요원을 통해서 세계 복음화는 진행되어지는 것이다. 이 일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선교사님들에게 관심을 갖고 계시고, 중요한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는가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이번 메시지를 통해서 선교사님들이 중요한 선교에 대한 방향을 잡게 되고, 새로운 기도제목을 붙잡게 되는 축복의 시간이었다. 감사한 것은 하나님이 어느 정도로 전도총회를 축복하셨는가하면, 지난날까지는 세계 선교 총국에서 모든 선교사님들과 선교나라들을 관리하고 섬겨왔다. 그런데 너무 많이 하나님이 축복을 하셔서 이제는 선교총국에서 감당할 수 없어서 동일한 문화권과 비슷한 나라들로 묶어 10개 권역으로 나누어 권역별로 새로운 조직들이 세워지는 축복의 시간이었다. 하나님께서 말씀 따라서 우리 교단을 축복하시고 인도해 나가시고, 그리고 특별히 기뻐하시는 것이 선교 현장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하는 기회였다. 선교사님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하나도 헛되지 않음을 기억하시기 바란다. 제가 참여를 하면서 느낀 것은 다 차려놓은 밥상을 우리가 챙겨먹지 못한다면 바보가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이 이미 모든 선교 현장을 다 준비해 놓으시고, 선교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과 선교를 위해 직접 나가서 몸으로 선교사역을 감당하는 분들이 하나가 되어서 귀중한 응답을 현장 속에서 준비하시는 것을 보고 정말 우리가 제대로 기도하면서 인도를 받고 응답으로 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히 권역별 모임에서 선교사님들이 물질을 가지고 지원을 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이름만이라도 주보에 올려서 계속해서 기도해 주시면 고맙겠다고 보고를 하셨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또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무기가 있다면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다. 그 기도가 그대로 선교현지가 응답됨을 기억하시고 이 한 시대에 세계복음화와 선교역사 속에 제대로 인도받고 쓰임받는 여러분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특별히 선교사님을 위해서 기도하실 때에 힘을 얻고, 답이 없어서 방황하는 현장과 답을 줄 수 없는 현장인 선교현장에 선교사님들이 돌아가서 참된 선교사님을 통해서 참된 안식이 임해지는 축복의 역사가 있기를 계속 기도해 주시기 바란다.
그리고 이번 주간에 또한 기도할 제목들이 있다. 이 한날도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의 안식이 필요한 것이고, 이번 한 주간 우리의 걸음 속에 참된 그리스도의 안식이 나타나는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그래서 오늘 제목이 <그들의 주위에 안식을 주셨으되>이다. 이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인도를 받길 바란다. 구 성경에 보면 “그들의 사방에 안식을 주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이 안식의 축복을 우리가 어떻게 누릴 것인가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서 함께 말씀을 생각고자 한다.
먼저 이 안식의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언약을 붙잡길 바란다.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법, 원리는 언약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시는 이유도 언약 때문이다. 언약이라고 하면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이 곧 언약이다. 성경 66권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주셨다. 이 약속의 말씀이 언약이다. 이 언약을 중심으로 하나님은 모든 것들을 다스리시고, 운행해 나가신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언약만 붙잡으면 그 언약의 백성을 중심으로 하나님은 모든 것을 움직이시게 되어있다. 신명기서에 보면 가나안땅을 정복하라는 말이 69번이 나온다. 그 말씀 그대로 오늘 본문 43절에 보면「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사 주리라 하신 온 땅을 이와 같이 이스라엘에게 다 주셨으므로 그들이 그것을 차지하여 거기에 거주하였으니」결국은 하나님이 그 땅을 다 주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땅에 거주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언약을 붙잡게 될 때 하나님은 그 언약을 성취시켜 나가신다. 민23:19에 보면「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우리가 경건하게, 바르게, 열심히 살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언약 붙잡으면 하나님은 그 언약을 성취시켜 나가신다. 창1:1-13에 보면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다. 요1:1-14에 보면 그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래서 히4:12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지금도 살아있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 말씀이 성취되는 일에 있어서 하늘군대, 천군과 천사들이 동원되어진다고 말씀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붙잡게 될 때 우리의 인격과 수준, 모양과 상관없이 하나님은 그 언약의 말씀을 성취시키시게 되어있다.
그래서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말씀과 내가 맞아야 한다. 진실하게 하나님 앞에 서면 말씀과 내가 맞게 되어있다. 내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함에도 불구하고 말씀과 내가 맞지 않는다면 내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인가를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축복과 상관없는 자라고 생각을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당하는 모든 문제, 어려움, 사건들 가운데 답을 말씀 가운데서 발견해야 한다. 성경에 보면 렘넌트 7명을 보면 하나같이 어려움과 사건 속에서 그 문제를 하나님이 주시는 답으로 붙잡았다. 가령 예를 들면 가정의 문제를 가지고 요셉은 그것을 언약으로 붙잡았다. 절망의 문제 가운데 모세는 그것을 답으로 가졌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성공한 인물은 말씀과 자신이 맞았을 뿐만 아니라 문제와 사건 속에서도 그 문제, 사건 속에서 답을 찾아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이 이 한날 하나님 앞에 예배하면서 말씀 듣는 이 순간에 가장 중요한 축복이 이루어지는 시간임을 믿길 바란다.
그래서 다른 것이 아니라 오늘 내게 주시는 하나님이 말씀이 무엇인가를 붙잡아야 한다. 오늘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한마디로 하면 복음이다. 그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힘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오늘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문제를 볼 수 있어야 하고, 우리가 절망했던 자리 속에서도 오늘 내게 주시는 말씀을 붙잡을 때에 그 절망 속에서도 승리할 수 있는 비밀을 붙잡게 되어있다. 요셉이 낙심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가 오늘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았기 때문이다. 오늘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게 될 때 우리 인생 전체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어느 날 붙잡히게 되어있고, 그때부터 비로소 말씀에 이끌려가는 삶이 되게 되어있다. 내가 말씀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인생 전체를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가 우리에게 붙잡히게 될 때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우리의 생애가 말씀에 이끌려가는 삶이 되어지고, 그때부터 강단과 모든 훈련들이 살아나게 되어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언약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들을 이루어 가시는데, 그 언약을 붙잡은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역사들을 진행시켜 나가신다.
그런데 그 언약의 특징이 있다면 그 당대만 잘 먹고 잘사는 것이 아니다. 결국은 그것이 자손들에게 전달되어지고 자손들로 말미암아 현장이 정복되어지는 것이 언약의 특징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에「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겠고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내가 축복을 하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 내가 저주하리라」그렇게 말씀하시면서「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을 것이라」처음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이 메시지를 주셨다. 창26:2-3을 보면 이삭을 부르실 때에도 주신 메시지가 바로 이것이다.「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야곱이 형 에서와 함께 있을 수가 없어서 지팡이와 기름 한 병을 들고 집을 뛰쳐나왔다. 벧엘에서 사닥다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자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았다. 그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피난길에 서있는 야곱에게 중요한 말씀을 주셨다. 창28:14-15에 보면「14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15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언약의 중심에 나만 잘 먹고 잘사는, 당대만 축복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손에게 약속하신 땅, 현장정복을 주시겠다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언약이다. 그래서 전도와 선교, 후대가 바로 언약이 모든 핵심이다. 이 사실을 붙잡게 될 때에 하나님은 우리의 수준과 우리의 언약함과 모자란 인격에 상관없이 하나님은 축복하시게 되어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45절에「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씀하신 선한 말씀이 하나도 남음이 없이 다 응하였더라」반드시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은 성취되어짐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의 언약의 역사에서 오는 것이 있다면 44절의 말씀처럼 참된 안식이다. 언약이 확실한 만큼, 언약이 붙잡혀지는 만큼 내게서 빼앗아갈 수 없는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이 있다면 안식이다. 그래서 두 번째로 생각할 것은 우리 인간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안식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안식 없이 돈, 지식, 명예, 성공을 가지면 오히려 더 갈급하게 된다. 진짜 우리가 눈을 떠서 보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안식이다. 이어령씨에 대한 부분이 계속 강단을 통해 전달되었지만, 그 분이 자기 자녀의 문제를 가지고 돈으로 해결해보려고 했고 자신의 지식으로도 해결하지 못한 것을 고백했다. 그러면서 그 따님에게 “내가 주 안에서 평안함을 얻었고 주 안에서 새 생명을 얻었다면 내가 갖고 있는 돈, 지식이 무력한 것이 아니냐. 그런데 나는 그것도 모르고 그 무력한 것에 매달려서 평생을 살아왔다. 네가 임한 그 빛을 나에게도 비출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우리에게 지식이, 물질이 참된 안식을 가져다주지 못한다.
우리에게 참된 안식은 하나님 안에만 있다. 어떤 안식인가? 창1:1-13에 보면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말씀을 하고 있고, 창2:2에 보면「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하나님이 먼저 안식을 하셨다. 그리고 완벽한 축복을 주신 것이다. 그 완벽한 축복이 어떤 것인가? 창1:27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셨다. 그리고 인간에게 28절에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고 땅을 다스리도록 하셨다. 그리고 인간을 네 강이 흐르는 에덴동산에 두사, 참된 안식과 행복을 누리면 살도록 하나님이 인도하셨다.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서 죄를 범했다. 그것을 가지고 원죄라고 한다. 여기에서 참된 안식을 놓쳐버린 것이다. 이 상태를 가지고 엡2:1에 보면 죄와 허물로 죽었다고 말하고 있고, 엡2:2에 보면 그래서 세상 풍속을 좇아가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른다고 했고, 엡2:3에 보면 본질상 진노의 자녀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본질상 진노의 자녀라는 것은 참된 안식이 없다는 것이다. 저주가 우리 머리 위에 있으니까 참된 안식이 없는 것이다.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기 때문에 위장된 안식을 가지고 거짓말을 해서 그렇지, 하나님을 떠난 모든 인생은 안식이 없다.
그래서 하나님이 참된 안식을 회복하기 위해서 길을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여자의 후손이다. 창3:15에「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이스라엘이 못 깨달았을 때에 또 다시 희생제사와 예배를 통해서 이 참된 안식을 회복할 것을 말씀하셨다. 출3:18의 희생제사, 참된 안식을 회복하는 길이다. 참된 안식을 누리는 길이다. 또 잊어버리니까 포로로 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신 안식이 오늘 여러분의 삶의 현장에 회복되는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이 그리스도 안에서 주시는 참된 안식은 이스라엘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전 세계를 위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를 잘못 알아들어서 결국 가나안땅의 우상에 빠지고 종교생활에 빠졌다. 자기들에게 주신 것이라고 잘못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11:28에 보면「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이 말씀은 사실 불신자보다도 그 당시의 율법에 매여서 참된 안식과 자유함을 누리지 못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향해서 하신 말씀이다. 종교 가운데 빠진 자들을 향해서 주님이 외치신 말씀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에게만 주신 축복이라고 생각해서 결국 선민의식과 민족주의에 빠졌다. 성경에서 말하는 주님의 계획은 땅 끝까지 너로 말미암아 만민이 복을 받겠다고 하신 것인데 우리만 복 받는다는 주장을 함으로 말미암아 선민의식과 민족주의에 빠진 것이고, 복음보다도 그들이 갖고 있는 사상, 토라와 율법과 쉐마, 탈무드에 빠져서 참된 축복을 놓쳐버렸다. 그리스도 안에서 주시는 안식은 우리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전 세계를 위한 것이다. 이를 알아들을 때 선교의 역사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깨달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안식은 오늘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영원한 것이다. 우리가 준비할 수 없는 영생을 하나님께서는 준비해 놓으시고 우리를 부르셨다. 그래서 “너희는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하면서 “내가 너희가 있을 처소를 예비했다” 영생을 예비하신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지금 내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게 될 때 영원한 안식의 축복에 들어가는 것이다. 요5:24에「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앞으로가 아니라 지금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에, 오늘이 아니라 영원의 것을 준비해놓고 하나님은 그 축복을 우리에게 허락하신다는 것이다.
성도들의 실패, 성도들의 비참함이 있다면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사실을 알지 모하고 누리지 못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에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말씀하시고, 막3:14에 내가 너희를 부른 것은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고 말씀하셨다. 우리와 함께 있게 하시고. 창1:28에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도록 우리를 축복하셨는데 이 사실을 누리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성도들에게 비참함과 실패의 역사가 찾아오고 있다. 불신자들은 그들이 참된 안식없이 실패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들은 소속이 마귀에 소속되어있다. 그래서 요8:44에「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기분 나쁜 소리일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자들은 마귀에게 소속된 것이다. 그 때문에 계속해서 우상숭배를 하고, 점하고 굿하고 미신과 중교에 빠지는 것이다. 그리고 정확한 답이 없으니까 열심히 한다고 하는 것이 할수록 영적인 문제, 정신적인 문제, 육신의 문제, 후손의 문제, 내세의 문제가 오게 되어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참된 안식을 누리게 하셨는데 이 사실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실패요 성도의 비참함이라는 것이다. 남은 생애에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안식을 누리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분명히 말씀하셨다. 다른 것을 쳐다봐서 그렇지 정말 주님을 바라보고 나갈 때 세상에서 줄 수 없는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안식을 누리게 되어있다. 우리의 눈을 다른 것을 보지 말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바라보고 나갈 때,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안식을 가지고 세상을 정복해 나가는 것이 성도들의 자리이다.
성경에 보면 이 안식이 잠시나마 나타난 시기가 있었다. 창41장에 보면 요셉의 시대에 이 안식의 시기가 잠시 회복되었다. 창41:37에 바로왕이 요셉에 대해서 신하들에게 “내가 하나님의 신에 감동된 사람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느냐”고 말을 할 정도였다. 그러면서 40절에「너는 내 집을 다스리라 내 백성이 다 네 명령에 복종하리니 내가 너보다 높은 것은 내 왕좌뿐이니라」구 성경에는 내 보좌뿐이라고 했다. 요셉시대에 이 안식이 잠시 회복되었다. 창45장에 요셉의 모든 가정이 이 안식 안에 들어오게 되고, 이 요셉 한사람이 서게 되니까 애굽의 모든 사람들도 이 안식 속에 들어오는 것을 보게 된다. 시간이 흘러서 출12장부터 14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장자가 죽는 재앙 속에서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름으로 말미암아 빠져나오는 축복을 임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모세로 말미암아 잠시 주어졌던 안식일의 축복이다. 또 시간이 흘러서 본문에 보면 43-45절에 중요한 말씀이다. 온 땅에 하나님의 언약이 증거되니까 대적들이 무너지고 말씀이 성취되어지고 안식이 임했다.「43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사 주리라 하신 온 땅을 이와 같이 이스라엘에게 다 주셨으므로 그들이 그것을 차지하여 거기에 거주하였으니 44여호와께서 그들의 주위에 안식을 주셨으되 그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하셨으므로 그들의 모든 원수들 중에 그들과 맞선 자가 하나도 없었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의 모든 원수들을 그들의 손에 넘겨 주셨음이니라 45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씀하신 선한 말씀이 하나도 남음이 없이 다 응하였더라」이 축복이 여러분에게 그대로 이루어지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44절에 보면 온 땅에 언약이 임하게 되니까 대적이 무너지게 되었다. 그 결과로 온 땅에 하나님의 말씀이 다 성취되어지는 응답되어지는 축복이 있게 되었다. 나에게 참된 안식이 있는가? 이 질문을 던지고 조금 늦더라도 이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안식이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
이 안식 없이 일부터 하면 결국 문제를 가져오게 되어있다. 일부터 하지 말고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안식이 필요하다. 일부터 하려고 하니까 문제다. 어떤 사모님으로부터 전화온 내용을 들었다. 교회가 작다보니까 교인들이 많지 않다. 그래서 교회의 일꾼들이 많이 필요한데 그렇지 못해서 참된 안식과 답 속에서 일을 하게 해야 하는데, 일부터 맡기니까 그것 때문에 성도들이 떠나갔다고 고백을 했다. 그러면서 떠나온 성도들이 우리교회에 왔다고 한다. 그러면서 사모님이 교회 안에 참된 안식이 필요한 자들에게 답과 안식을 주고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원하시는 시스템을 깔아야 하는데 이 부분이 안되고 무조건 현장 사역을 한다고 쫓아다니다 보니까 이 놓친 부분들이 발견되면서 하나님이 주신 참된 응답을 이번 기회를 통해 보게 되었다고 고백을 하셨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주시는 안식이 있는가? 그 안식 속에서 일이 되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닌 것이다. 먼저 하나님이 주시는 답부터 가져야 한다. 오히려 답이 없는 상태에서 몸부림을 칠수록 다른 결과를 갖고 올 수 있다.
이 참된 안식이 전 세계에 언제, 어떻게 올 것인가? 중요한 것은 전 세계 선교사들이 일어나는 날, 세계 복음화가 되어지는 날 전 세계에 참된 안식이 임하게 된다. 그래서 선교대회가 지났지만, 우리가 선교사님을 위해서 기도해야 할 제목들을 붙잡아야 한다. 여러분이 선교사를 위해서 하는 기도가 헛되지 않고 그 선교사님을 통해서 전 세계에 일천만 제자가 일어나게 된다. 그 때에 전 세계에 안식이 임하게 된다. 그 뿐만 아니라 우리가 후대를 위해서 기도를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 후대, 렘넌트가 세워지는 날 전 세계에 안식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단의 문화가 꺾어져야 전 세계 현장에 하나님의 안식이 나타나게 되어있다. 그래서 성령이 임하게 될 때, 흑암이 꺾어지고, 그 속에서 참된 안식이 나타나게 되어있다.
말씀을 맺는다. 성경에서 말하는 안식은 육신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참된 안식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완전한 해방과 자유, 누림의 안식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후에 안식하셨고, 인간에게 그 안식을 주셨다. 그런데 이 안식이 창3장 문제 때문에 깨뜨려졌다.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하나님이 회복시키셨다. 이 안식을 먼저 여러분이 회복하시고, 누리시고, 여러분 걸음이 닿는 곳마다 모든 저주와 수고하고 무거운 짐과 사단의 사망의 짐을 지고 있는 자들이 여러분 때문에 참된 안식 속으로 들어오는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여러분 때문에 전 세계 현장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참된 하나님의 안식 속으로 들어오는 그런 역사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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