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의 자손
2007-07-08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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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오늘 <요셉의 자손>이라는 제목을 잡았다. 특별히 수16:4에 보면「요셉의 자손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그들의 기업을 받았더라」는 부분이 나온다. 이 부분을 중심으로 해서 <요셉의 자손>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생각고자 한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 안에 세계복음화라는 완벽한 계획 속에서 우주 만물을 움직이고 계신다. 그 하나님이 일하시는 기준이 언약이기 때문에 우리가 오늘 이 시간 언약을 붙잡는다면 우리가 우주의 역사의 주인공이 되어진다. 오늘 온종일 예배드리는 가운데 마음과 생각, 가슴 속에 언약만이 담겨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오늘 요셉의 자손인 므낫세와 에브라임 지파에게 어떻게 기업이 분배 되었는가를 16, 17장에서 설명을 하고 있는데, 이 전에 먼저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기업을 주셨는지 확인을 해야 한다.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기업이 있다면 구원과 임마누엘이다. 다시 말해서 최고의 기업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 모든 것들을 다 주셨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주신 기업인 구원과 임마누엘을 누릴 수 있도록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는데, 그 그리스도 안에 모든 것을 다 주셨다는 본질을 확인하는 시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신앙생활 가운데 힘든 이유가 무엇인가? 이런저런 갈등이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또 우리가 어떤 일을 해 나갈 때에, 우리가 어떤 자리에 있을 때에, 사역을 할 때에 놓치면 안되는 것들이 있다. 바로 본질이다. 본질을 놓치게 될 때 신앙생활에서도 갈등이 일어날 수 있고, 신앙생활 그 자체가 힘들어진다. 계속적인 승리의 축복된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늘 항상 본질을 생각하고 본질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 본질만 제대로 확인을 하면 그 속에서 사실을 보는 눈이 열려지고, 어떤 문제와 사건 앞에서도 흔들리지 아니하고 승리할 수 있다. 신앙생활의 큰 원리가 있다면 본질만 붙잡으면 나머지 모든 것들은 따라오게 되어있다. 그래서 마6:33에도「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우리가 성경을 볼 때도 본질을 가지고 봐야하고, 메시지를 들을 때도 본질을 가지고 메시지를 들어야 한다. 특별히 어린 렘넌트일수록 어른이 되기 전에 본질을 붙잡고 확인해야 한다.
그러면 먼저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가?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데 그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신앙생활의 본질이 있다면 복음을 알고 누리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면서도 복음을 알지 못해서 종교생활을 하고 그냥 교회를 다니고 있는 것이다. 복음과 구원의 축복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 교회를 다니면서 종교생활을 하게 되어있고, 종교생활의 결과가 우상 숭배하는 자들과 똑같은 저주와 실패와 재앙을 피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교회를 다니는 것, 종교생활을 하는 것과 신앙생활은 다르다. 얼마만큼 복음과 구원의 비밀을 아는가에 따라서 우리의 삶이 종교생활과 실패당하는 것이 아니라 참된 신앙생활, 축복의 역사를 누릴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왜 갈등을 하는가? 다른 것이 아니라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다시 말하면 복음을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참된 신앙이 되는 만큼 갈등한 모든 부분이 하나하나 정리되게 되어있다. 복음을 진짜 알면 그 복음 하나 때문에 다 되게 되어있다. 힘들다고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복음의 본질로 돌아가길 바란다. 우리는 힘든 일을 당하면 우리도 모르게 우왕좌왕하는 것을 보게 된다. 진짜 어렵다고 할수록, 문제가 있다고 할수록 여러분의 생각대로 움직이지 말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복음의 본질로 돌아가면 문제가 해결되게 되어있다.
그러면 신앙생활의 본질이 복음을 알고 누리는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그렇다면 복음이란 무엇인가? 다 알고 있다고 생각을 하지만 그렇지 않다. 지난주에 만난 분은 나름대로 사명도 있고, 헌금에 대한 계획도 가지고 있고, 같이 있는 동료들에게도 예배에 참여하도록 권유를 하는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한 분이었다. 그런데 그 분의 입에서 “목사님 도대체 복음이 무엇입니까?”라는 말이 나왔다. 어떤 면에서 이것이 그 사람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이것이 신앙인의 현주소가 아닌가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복음, 복음 이야기를 하지만 복음이 무엇인지 모르고 헌신하고 봉사하고 수고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헌신, 봉사, 수고가 나중에 가서 헛되게 되어있다. 지금 당장은 나름대로 열심히 해서 자신이 만족을 느낄 수도 있지만 그러나 신앙생활은 그러한 것이 아니다. 결국은 나중에 가서는 실패하게 되어있다.
복음이 무엇인가? Good News, 기쁜 소식, 좋은 소식, 복된 소식이 복음이다. 그러면 정말로 우리 인간에게 복된 소식, 기쁜 소식, 좋은 소식이 무엇인가? 어떤 사람은 열심히 해서 돈을 벌어서 성공하고, 성공을 하면 명예에 눈이 열려지고, 정치하는데 뛰어들고,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남기는 것을 성공, 행복이라고 말을 한다. 그러나 그것이 참된 우리 인생에 행복을 가져다주는가? 만약에 그렇다면 돈 있는 사람이 자살하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름 있는 사람들이 자살을 하고 어려움을 당하는 것은 무엇으로 말을 할 것인가? 물론 돈과 건강과 명예와 성공과 모든 이런 부분이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우리 인생에게 참된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못한다.
그러면 우리에게 참된 복된 소식은 무엇인가? 우리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면 참된 기쁜 소식과 복된 소식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어있다. 우리 인생의 문제가 무엇인가를 알아야 그 속에서 참된 복된 소식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어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다. 인간만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창조의 능력의 범위는 우주만물, 짐승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창조의 원리, 생명의 원리가 있다. 그 창조의 원리대로 창조를 했는데, 나무와 식물은 흙 속에, 물고기는 물 속에, 새는 공중을 살면서 생명을 보존하도록 창조되었고 계획되었다. 그렇다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과 함께 하는 생명의 역사 속에서 참된 행복과 축복을 누리면서 살게 되어있다. 그런데 이 축복을 잃어버렸다. 이를 가지고 창3장 사건이라고 한다. 가장 근본적인 부분은 사단도 아니고 죄도 아니다. 사실은 하나님을 떠난 문제이다. 하나님을 떠난 것이다. 그래서 결국은 하나님을 떠난 상태를 가지고 엡2:1에 보면 죄와 허물로 죽었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이 생명인데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죄와 허물로 죽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저주와 재앙과 멸망이 끊임없이 인간의 세상 속에 일어나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알지 못하니까 사람들이 어려움과 문제를 당하면 우상숭배 앞으로 나아간다. 그런데 우상숭배를 하면 할수록 영적문제, 정신문제, 생활의 문제, 육신의 문제, 후손의 문제가 오고, 분명히 내세까지 연결되어진다. 이 생명의 역사를 놓쳐버린 데서, 하나님을 떠난 데서 모든 문제들이 오게 되어졌다.
그래서 이 생명의 역사를 회복하는 것이 가장 되어져야 하고, 날마다 이 생명의 역사를 확인하는 것이 신앙생활의 축복이다. 하나님은 이 생명의 역사를 여자의 후손을 통해서 주실 것을 말씀하셨다. 창3:15에「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사7:14에는「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이를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라」처녀의 몸을 통해서 생명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다. 그 분이 오셨는데 요1:4에 생명의 빛으로 오셨다.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실 것을 말씀하셨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서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생명을 이룰 조건을 완전히 이루셨다. 요19:30에 보면 “다 이루었다”라고 하고 있다. 십자가에서 죄를 대신해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생명을 얻을 조건을 다 이루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3일 만에 생명으로 부활하셨다. 그분이 지금 우리 마음 문을 두드리고 계신다. 그래서 계3:20에 보면「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될 때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회복되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요1:12에「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말씀하셨다.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 속에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재창조의 역사가 일어나게 된 것이다. 이를 가지고 구원이라고 한다. 구원받은 자에게 하나님은 성령으로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 하나님이 세계복음화를 이루어가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이것을 가지고 복음이라고 한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본질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생명이 있고, 그 속에 구원이 있고, 그 속에 세계복음화의 축복이 들어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본질이다.
이 복음에 대한 눈이 열려지는 만큼 세상을 보는 눈이 열려지게 되어있다. 세상을 쳐다보면 세상은 발전하고 있고 경제는 발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들고 어렵다. 이해할 수 없는 문제들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의술 또한 발전을 하고 있다. 라디오 뉴스 가운데서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다른 대학과 공동으로 투자를 해서 약을 개발했다. 보통 사람들이 큰 어려움을 당하면 그 고통을 잊지 못한다. 거기에 매여서 인생을 바르게 누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을 보기도 한다. 그런데 큰 사고가 일어났을 때 기억, 의식은 그대로 있지만 그것을 통한 고통을 없애는 약을 개발했다는 것이다. 엄청난 의술과 약들이 발달하고 있다. 그러나 가면 갈수록 또 다른 인간이 해결하지 못하는 질병들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경제가 발달해도 경제가 어렵다. 세상에 열심히 바르게 훌륭하게 살려고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어렵다. 그 사실들이 복음,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무엇 때문인가에 대한 답이 내려지게 되어있다.
그 뿐만 아니라 이 복음의 본질을 아는 만큼 왜 개인에게 문제가 오는지 그 답을 정확하게 얻을 수 있다.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지만 복음 하나가 없어서 개인과 세상이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 그와 더불어 복음의 비밀을 알면 알수록 지금 사람들을 흑암의 역사로 이끌어가는 그 배후에 역사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단에 대해서 알게 되어진다. 불신자들이 무언가 가지고 있고, 많이 배우고, 성공한 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의 마음에 절대적인 평안이 없다. 중요한 것은 분명히 사람들의 마음에 흑암의 역사, 어둠의 역사를 가지고 오는 존재가 있는데 그 존재가 바로 사단이다. 그리스도 본질적인 복음을 알면 알수록 사단의 존재가 보여지고, 진짜 복음의 본질을 아는 만큼 복음가진 내가 누구인가, 나에 대한 정체성이 발견되게 되어있다. 참된 응답과 참된 축복은 복음 안에서 내가 누구인가를 알 때부터 누려지게 되어있다. 오늘 참된 복음의 본질을 붙잡는 여러분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두 번째로 오늘 본문에 보면 4절에 요셉의 자손 므낫세와 에브라임이라고 말하고 있다. 다른 지파에는 한 지파에만 축복을 했는데 요셉에게서는 두 지파가 나왔다. 요셉이 두 손을 들어서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축복하는 것을 보게 된다. 본문에 보면 요셉의 자손이라고 했다. 요셉에게 주신 축복이 무엇이었기에 요셉의 자손이라는 말을 붙였겠는가? 요셉이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요셉은 본질과 사실을 붙잡은 사람이었다. 창37:1-11에 보면 요셉은 세계복음화의 비전을 붙잡았는데 다시 말해서 본질과 사실을 제대로 알았다는 말이다. 요셉은 이 복음의 본질과 세계복음화의 본질을 알았던 것이다. 그래서 흔들리지 않았다. 본질을 안다는 말은 사실을 사실대로 본다는 말이다. 본질을 알아야 그 속에서 사실을 보는 눈이 열려지게 되어있는 것이다. 우리가 일을 많이 하는 것도 중요하고 그렇지 못한 것도 괜찮다. 그러나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이 있다면 본질을 붙잡아야 한다. 열심히 한다 하더라도 본질을 놓치면 결국은 안되게 되어있다.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사를 드리는데도 하나님이 그 제사를 받지 않겠다고 하셨는가? 매일 양과 소를 잡았는데도 하나님은 왜 싫다고 하셨는가? 본질을 놓쳤기 때문이다. 바리새인들은 모범적인 삶을 살았다. 그들 나름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지켜야할 613가지의 계명을 세워놓고 어떻게 해서든 그 계명을 지키려고 노력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강도요 절도하고, 멸망시키는 자들이라고 말을 했다. 마12장에 보면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하고, 23장에 보면 독사의 새끼들이라고 말을 했다. 바로 바리새인들이 본질을 놓쳐버렸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교회를 위해서 옳은 말을 하고, 좋은 일을 한다고 하지만 본질을 놓쳐버리면 결국은 안되게 되어있다. 조금 늦더라도, 어떤 때는 조금 기다려서라도 본질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창39:1-6에 보면 요셉이 노예로 가게 되었다. 여기에서 요셉은 경제를 배우게 되었다. 본질을 놓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노예 속에서도 흔들리지 아니하고 가장 최고의 경제를 배우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본질을 붙잡을 때 거기에 모든 것들이 따라오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본질을 제외하면 되다가도 일이 되어지지 않는다. 창40:1-20에 요셉은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 속에서도 요셉은 인간관계, 정치에 대해서 배우게 되었다. 45:1-5에 보면 비로소 요셉이 총리가 되었다. 여기에서 바로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높였다. 요셉 앞에 서있는 요셉의 형제들이 벌벌 떨 때에 당신들이 나를 팔아서 내가 여기에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당신들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서 나를 먼저 이 곳에 보내셨다고 우리가 이 세계를 장악해야 한다고 말을 했다. 본질을 붙잡고 있는 요셉이었다. 그와 더불어 창47:1-12에 보면 야곱과 함께 나중에 이 요셉의 형제들이 고센 땅에 자리를 잡게 된다. 바로 하나님이 선교의 현장으로 보내신 것을 보게 된다. 이것을 위해 요셉을 존재케 했고, 이를 위해서 요셉을 감옥으로, 노예살이로 보디발의 집에 간 것을 알았다. 이 요셉은 본질과 사실을 붙잡고 있었다. 그래서 사실은 갈등하지 않았고 당황하지 않았고, 좌절하지 않았고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성공 앞에서 교만하지 않았고 낮은 자리에 있다고 할지라도 비굴하지 않았다. 본질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본질을 알고 있으면 그 어떤 문제 앞에서도 좌절하거나 당황하지 않는다. 그 어떤 유혹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게 된다. 진짜 본질을 알면 높은 자리에 있다 할지라도 교만하지 않고, 낮은 자리에 있다고 할지라도 비굴하지 않는 것이다. 이 본질 속에서 요셉은 자신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전도와 많은 일을 하는 것 중에서 중요한 것은 본질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단의 전략 중의 전략은 너무 아름답고 좋은 것들을 주면서 단 한 가지 본질을 놓치게 만드는 것이다. 고후11:14의 말씀처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해서 모든 좋은 것들을 다 주지만 단 한 가지 본질을 놓치게 만든다. 왜 한국교회와 세계교회가 어려움에 빠져있는가? 교회로서 놓치지 말아야할 본질을 놓쳤기 때문에 한국교회와 세계교회가 어려움에 빠져있고 알맹이는 빠지고 껍데기만 붙잡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은 문제가 계속해서 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속에 노예, 포로, 속국 되어있는 것이다. 우리가 본질을 놓치게 될 때 우리도 모르게 노예, 포로, 속국이 되고 우리의 후대들도 노예가 되는 것이다. 참된 본질을 하나님 안에서 발견하고 찾고 누리는 여러분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세 번째로 오늘 본문에 읽지는 않았지만 5-10절에 에브라임 지파에게 준 축복이 있었다. 6절에 보면 실로라는 지역을 이 에브라임 지파에게 주었다. 이 에브라임 지파가 분배받은 지역이 실로라는 지역인데 그 실로에 성막이 세워졌다. 성막은 나중에 성전을 이야기 한다. 그 성전이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교회로 이어진다. 이 축복을 에브라임 지파가 받았다. 요4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 성전을 헐라 그러면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세우리라 약속하셨다. 왜 그러셨는가? 성전의 실체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기 때문에 이제는 이 보이는 성전이 필요 없다는 말이다. 그 성전에 온갖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면서 나중에 예수님이 성전을 청소하는 것도 나오지만 성전의 실체가 예수 그리스도 인 것을 말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서 이 땅에 참된 교회가 세워질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참된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다. 참된 교회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증거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가 그리스도 되심을 말하는 것이 교회의 본질이다. 하나님이 우리와 우리 가정을 축복하시는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다. 교회를 예수가 그리스도 되심을 증거 해야 하기 때문에 축복하실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그리스도의 일을 이루신 사건이다. 윤리나 구제나 선행을 이루는 사건이 아니다. 물론 그것이 중요하고 좋은 것이지만 그러나 그것이 복음보다 그리스도보다 앞서면 안 된다. 개인과 교회가 어려워지는 이유가 있다면 교회와 신앙생활의 본질인 예수가 그리스도 되심, 죽으심과 부활하심이 중심이 되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에 마지막 10절에 보면 에브라임 지파가 실수한 것이 있다. 가나안 땅의 거민들을 다 쫓아내지 못했다. 우리가 예수가 그리스도 되신다는 이 복음에 방해되는 모든 것을 다 빼내어야 하는데 그래서 완전 복음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그것이 안 되어서 복음보다 다른 것들이 앞서게 되고 그것 때문에 결국 실패를 가져온 것이다. 분명히 기억할 것은 복음 외의 것은 모든 것이 아무리 좋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결국은 무너지게 되어있다.
말씀을 맺는다. 하나님은 우리를 한 시대의 전도자로 부르셨다. 계속적인 응답과 축복을 누려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본질을 붙잡아야 한다. 그러면 사실이 보여 지고, 어려움이 와도 괜찮다. 형들이 뭐라고 하든지 간에 집을 나오는 것이 비밀이고, 보디발의 집에 가서 노예살이를 하고 감옥에 간 것들이 다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이루는 방법들이었다. 본질을 사실을 알고 있는 요셉에게 주신 축복은 여리고 땅, 요단 땅, 벧엘, 길르앗을 주었다. 한 지명, 한 지명이 다 의미가 있지만 요단을 중심으로 해서 모든 것이 움직여졌고, 벧엘은 야곱이 하나님 앞에 은혜를 받은 장소이다. 그것을 요셉의 자손에게 주었다. 그 뿐만 아니라 길르앗은 엘리야라는 큰 인물을 나온 곳이다. 이런 엄청난 응답들이 요셉의 자손에게 주어졌다. 본질을 회복하길 바란다. 그 속에 놀라운 축복과 전도운동이 지속되게 되어있다. 이 한 주간에도 본질을 붙잡고 기도하면서 참된 복음의 본질을 가지고 승리하는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오늘 <요셉의 자손>이라는 제목을 잡았다. 특별히 수16:4에 보면「요셉의 자손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그들의 기업을 받았더라」는 부분이 나온다. 이 부분을 중심으로 해서 <요셉의 자손>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생각고자 한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 안에 세계복음화라는 완벽한 계획 속에서 우주 만물을 움직이고 계신다. 그 하나님이 일하시는 기준이 언약이기 때문에 우리가 오늘 이 시간 언약을 붙잡는다면 우리가 우주의 역사의 주인공이 되어진다. 오늘 온종일 예배드리는 가운데 마음과 생각, 가슴 속에 언약만이 담겨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오늘 요셉의 자손인 므낫세와 에브라임 지파에게 어떻게 기업이 분배 되었는가를 16, 17장에서 설명을 하고 있는데, 이 전에 먼저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기업을 주셨는지 확인을 해야 한다.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기업이 있다면 구원과 임마누엘이다. 다시 말해서 최고의 기업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 모든 것들을 다 주셨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주신 기업인 구원과 임마누엘을 누릴 수 있도록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는데, 그 그리스도 안에 모든 것을 다 주셨다는 본질을 확인하는 시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신앙생활 가운데 힘든 이유가 무엇인가? 이런저런 갈등이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또 우리가 어떤 일을 해 나갈 때에, 우리가 어떤 자리에 있을 때에, 사역을 할 때에 놓치면 안되는 것들이 있다. 바로 본질이다. 본질을 놓치게 될 때 신앙생활에서도 갈등이 일어날 수 있고, 신앙생활 그 자체가 힘들어진다. 계속적인 승리의 축복된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늘 항상 본질을 생각하고 본질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 본질만 제대로 확인을 하면 그 속에서 사실을 보는 눈이 열려지고, 어떤 문제와 사건 앞에서도 흔들리지 아니하고 승리할 수 있다. 신앙생활의 큰 원리가 있다면 본질만 붙잡으면 나머지 모든 것들은 따라오게 되어있다. 그래서 마6:33에도「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우리가 성경을 볼 때도 본질을 가지고 봐야하고, 메시지를 들을 때도 본질을 가지고 메시지를 들어야 한다. 특별히 어린 렘넌트일수록 어른이 되기 전에 본질을 붙잡고 확인해야 한다.
그러면 먼저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가?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데 그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신앙생활의 본질이 있다면 복음을 알고 누리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면서도 복음을 알지 못해서 종교생활을 하고 그냥 교회를 다니고 있는 것이다. 복음과 구원의 축복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 교회를 다니면서 종교생활을 하게 되어있고, 종교생활의 결과가 우상 숭배하는 자들과 똑같은 저주와 실패와 재앙을 피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교회를 다니는 것, 종교생활을 하는 것과 신앙생활은 다르다. 얼마만큼 복음과 구원의 비밀을 아는가에 따라서 우리의 삶이 종교생활과 실패당하는 것이 아니라 참된 신앙생활, 축복의 역사를 누릴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왜 갈등을 하는가? 다른 것이 아니라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다시 말하면 복음을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참된 신앙이 되는 만큼 갈등한 모든 부분이 하나하나 정리되게 되어있다. 복음을 진짜 알면 그 복음 하나 때문에 다 되게 되어있다. 힘들다고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복음의 본질로 돌아가길 바란다. 우리는 힘든 일을 당하면 우리도 모르게 우왕좌왕하는 것을 보게 된다. 진짜 어렵다고 할수록, 문제가 있다고 할수록 여러분의 생각대로 움직이지 말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복음의 본질로 돌아가면 문제가 해결되게 되어있다.
그러면 신앙생활의 본질이 복음을 알고 누리는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그렇다면 복음이란 무엇인가? 다 알고 있다고 생각을 하지만 그렇지 않다. 지난주에 만난 분은 나름대로 사명도 있고, 헌금에 대한 계획도 가지고 있고, 같이 있는 동료들에게도 예배에 참여하도록 권유를 하는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한 분이었다. 그런데 그 분의 입에서 “목사님 도대체 복음이 무엇입니까?”라는 말이 나왔다. 어떤 면에서 이것이 그 사람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이것이 신앙인의 현주소가 아닌가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복음, 복음 이야기를 하지만 복음이 무엇인지 모르고 헌신하고 봉사하고 수고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헌신, 봉사, 수고가 나중에 가서 헛되게 되어있다. 지금 당장은 나름대로 열심히 해서 자신이 만족을 느낄 수도 있지만 그러나 신앙생활은 그러한 것이 아니다. 결국은 나중에 가서는 실패하게 되어있다.
복음이 무엇인가? Good News, 기쁜 소식, 좋은 소식, 복된 소식이 복음이다. 그러면 정말로 우리 인간에게 복된 소식, 기쁜 소식, 좋은 소식이 무엇인가? 어떤 사람은 열심히 해서 돈을 벌어서 성공하고, 성공을 하면 명예에 눈이 열려지고, 정치하는데 뛰어들고,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남기는 것을 성공, 행복이라고 말을 한다. 그러나 그것이 참된 우리 인생에 행복을 가져다주는가? 만약에 그렇다면 돈 있는 사람이 자살하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름 있는 사람들이 자살을 하고 어려움을 당하는 것은 무엇으로 말을 할 것인가? 물론 돈과 건강과 명예와 성공과 모든 이런 부분이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우리 인생에게 참된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못한다.
그러면 우리에게 참된 복된 소식은 무엇인가? 우리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면 참된 기쁜 소식과 복된 소식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어있다. 우리 인생의 문제가 무엇인가를 알아야 그 속에서 참된 복된 소식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어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다. 인간만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창조의 능력의 범위는 우주만물, 짐승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창조의 원리, 생명의 원리가 있다. 그 창조의 원리대로 창조를 했는데, 나무와 식물은 흙 속에, 물고기는 물 속에, 새는 공중을 살면서 생명을 보존하도록 창조되었고 계획되었다. 그렇다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과 함께 하는 생명의 역사 속에서 참된 행복과 축복을 누리면서 살게 되어있다. 그런데 이 축복을 잃어버렸다. 이를 가지고 창3장 사건이라고 한다. 가장 근본적인 부분은 사단도 아니고 죄도 아니다. 사실은 하나님을 떠난 문제이다. 하나님을 떠난 것이다. 그래서 결국은 하나님을 떠난 상태를 가지고 엡2:1에 보면 죄와 허물로 죽었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이 생명인데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죄와 허물로 죽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저주와 재앙과 멸망이 끊임없이 인간의 세상 속에 일어나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알지 못하니까 사람들이 어려움과 문제를 당하면 우상숭배 앞으로 나아간다. 그런데 우상숭배를 하면 할수록 영적문제, 정신문제, 생활의 문제, 육신의 문제, 후손의 문제가 오고, 분명히 내세까지 연결되어진다. 이 생명의 역사를 놓쳐버린 데서, 하나님을 떠난 데서 모든 문제들이 오게 되어졌다.
그래서 이 생명의 역사를 회복하는 것이 가장 되어져야 하고, 날마다 이 생명의 역사를 확인하는 것이 신앙생활의 축복이다. 하나님은 이 생명의 역사를 여자의 후손을 통해서 주실 것을 말씀하셨다. 창3:15에「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사7:14에는「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이를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라」처녀의 몸을 통해서 생명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다. 그 분이 오셨는데 요1:4에 생명의 빛으로 오셨다.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실 것을 말씀하셨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서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생명을 이룰 조건을 완전히 이루셨다. 요19:30에 보면 “다 이루었다”라고 하고 있다. 십자가에서 죄를 대신해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생명을 얻을 조건을 다 이루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3일 만에 생명으로 부활하셨다. 그분이 지금 우리 마음 문을 두드리고 계신다. 그래서 계3:20에 보면「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될 때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회복되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요1:12에「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말씀하셨다.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 속에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재창조의 역사가 일어나게 된 것이다. 이를 가지고 구원이라고 한다. 구원받은 자에게 하나님은 성령으로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 하나님이 세계복음화를 이루어가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이것을 가지고 복음이라고 한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본질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생명이 있고, 그 속에 구원이 있고, 그 속에 세계복음화의 축복이 들어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본질이다.
이 복음에 대한 눈이 열려지는 만큼 세상을 보는 눈이 열려지게 되어있다. 세상을 쳐다보면 세상은 발전하고 있고 경제는 발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들고 어렵다. 이해할 수 없는 문제들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의술 또한 발전을 하고 있다. 라디오 뉴스 가운데서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다른 대학과 공동으로 투자를 해서 약을 개발했다. 보통 사람들이 큰 어려움을 당하면 그 고통을 잊지 못한다. 거기에 매여서 인생을 바르게 누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을 보기도 한다. 그런데 큰 사고가 일어났을 때 기억, 의식은 그대로 있지만 그것을 통한 고통을 없애는 약을 개발했다는 것이다. 엄청난 의술과 약들이 발달하고 있다. 그러나 가면 갈수록 또 다른 인간이 해결하지 못하는 질병들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경제가 발달해도 경제가 어렵다. 세상에 열심히 바르게 훌륭하게 살려고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어렵다. 그 사실들이 복음,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무엇 때문인가에 대한 답이 내려지게 되어있다.
그 뿐만 아니라 이 복음의 본질을 아는 만큼 왜 개인에게 문제가 오는지 그 답을 정확하게 얻을 수 있다.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지만 복음 하나가 없어서 개인과 세상이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 그와 더불어 복음의 비밀을 알면 알수록 지금 사람들을 흑암의 역사로 이끌어가는 그 배후에 역사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단에 대해서 알게 되어진다. 불신자들이 무언가 가지고 있고, 많이 배우고, 성공한 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의 마음에 절대적인 평안이 없다. 중요한 것은 분명히 사람들의 마음에 흑암의 역사, 어둠의 역사를 가지고 오는 존재가 있는데 그 존재가 바로 사단이다. 그리스도 본질적인 복음을 알면 알수록 사단의 존재가 보여지고, 진짜 복음의 본질을 아는 만큼 복음가진 내가 누구인가, 나에 대한 정체성이 발견되게 되어있다. 참된 응답과 참된 축복은 복음 안에서 내가 누구인가를 알 때부터 누려지게 되어있다. 오늘 참된 복음의 본질을 붙잡는 여러분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두 번째로 오늘 본문에 보면 4절에 요셉의 자손 므낫세와 에브라임이라고 말하고 있다. 다른 지파에는 한 지파에만 축복을 했는데 요셉에게서는 두 지파가 나왔다. 요셉이 두 손을 들어서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축복하는 것을 보게 된다. 본문에 보면 요셉의 자손이라고 했다. 요셉에게 주신 축복이 무엇이었기에 요셉의 자손이라는 말을 붙였겠는가? 요셉이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요셉은 본질과 사실을 붙잡은 사람이었다. 창37:1-11에 보면 요셉은 세계복음화의 비전을 붙잡았는데 다시 말해서 본질과 사실을 제대로 알았다는 말이다. 요셉은 이 복음의 본질과 세계복음화의 본질을 알았던 것이다. 그래서 흔들리지 않았다. 본질을 안다는 말은 사실을 사실대로 본다는 말이다. 본질을 알아야 그 속에서 사실을 보는 눈이 열려지게 되어있는 것이다. 우리가 일을 많이 하는 것도 중요하고 그렇지 못한 것도 괜찮다. 그러나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이 있다면 본질을 붙잡아야 한다. 열심히 한다 하더라도 본질을 놓치면 결국은 안되게 되어있다.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사를 드리는데도 하나님이 그 제사를 받지 않겠다고 하셨는가? 매일 양과 소를 잡았는데도 하나님은 왜 싫다고 하셨는가? 본질을 놓쳤기 때문이다. 바리새인들은 모범적인 삶을 살았다. 그들 나름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지켜야할 613가지의 계명을 세워놓고 어떻게 해서든 그 계명을 지키려고 노력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강도요 절도하고, 멸망시키는 자들이라고 말을 했다. 마12장에 보면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하고, 23장에 보면 독사의 새끼들이라고 말을 했다. 바로 바리새인들이 본질을 놓쳐버렸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교회를 위해서 옳은 말을 하고, 좋은 일을 한다고 하지만 본질을 놓쳐버리면 결국은 안되게 되어있다. 조금 늦더라도, 어떤 때는 조금 기다려서라도 본질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창39:1-6에 보면 요셉이 노예로 가게 되었다. 여기에서 요셉은 경제를 배우게 되었다. 본질을 놓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노예 속에서도 흔들리지 아니하고 가장 최고의 경제를 배우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본질을 붙잡을 때 거기에 모든 것들이 따라오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본질을 제외하면 되다가도 일이 되어지지 않는다. 창40:1-20에 요셉은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 속에서도 요셉은 인간관계, 정치에 대해서 배우게 되었다. 45:1-5에 보면 비로소 요셉이 총리가 되었다. 여기에서 바로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높였다. 요셉 앞에 서있는 요셉의 형제들이 벌벌 떨 때에 당신들이 나를 팔아서 내가 여기에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당신들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서 나를 먼저 이 곳에 보내셨다고 우리가 이 세계를 장악해야 한다고 말을 했다. 본질을 붙잡고 있는 요셉이었다. 그와 더불어 창47:1-12에 보면 야곱과 함께 나중에 이 요셉의 형제들이 고센 땅에 자리를 잡게 된다. 바로 하나님이 선교의 현장으로 보내신 것을 보게 된다. 이것을 위해 요셉을 존재케 했고, 이를 위해서 요셉을 감옥으로, 노예살이로 보디발의 집에 간 것을 알았다. 이 요셉은 본질과 사실을 붙잡고 있었다. 그래서 사실은 갈등하지 않았고 당황하지 않았고, 좌절하지 않았고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성공 앞에서 교만하지 않았고 낮은 자리에 있다고 할지라도 비굴하지 않았다. 본질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본질을 알고 있으면 그 어떤 문제 앞에서도 좌절하거나 당황하지 않는다. 그 어떤 유혹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게 된다. 진짜 본질을 알면 높은 자리에 있다 할지라도 교만하지 않고, 낮은 자리에 있다고 할지라도 비굴하지 않는 것이다. 이 본질 속에서 요셉은 자신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전도와 많은 일을 하는 것 중에서 중요한 것은 본질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단의 전략 중의 전략은 너무 아름답고 좋은 것들을 주면서 단 한 가지 본질을 놓치게 만드는 것이다. 고후11:14의 말씀처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해서 모든 좋은 것들을 다 주지만 단 한 가지 본질을 놓치게 만든다. 왜 한국교회와 세계교회가 어려움에 빠져있는가? 교회로서 놓치지 말아야할 본질을 놓쳤기 때문에 한국교회와 세계교회가 어려움에 빠져있고 알맹이는 빠지고 껍데기만 붙잡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은 문제가 계속해서 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속에 노예, 포로, 속국 되어있는 것이다. 우리가 본질을 놓치게 될 때 우리도 모르게 노예, 포로, 속국이 되고 우리의 후대들도 노예가 되는 것이다. 참된 본질을 하나님 안에서 발견하고 찾고 누리는 여러분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세 번째로 오늘 본문에 읽지는 않았지만 5-10절에 에브라임 지파에게 준 축복이 있었다. 6절에 보면 실로라는 지역을 이 에브라임 지파에게 주었다. 이 에브라임 지파가 분배받은 지역이 실로라는 지역인데 그 실로에 성막이 세워졌다. 성막은 나중에 성전을 이야기 한다. 그 성전이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교회로 이어진다. 이 축복을 에브라임 지파가 받았다. 요4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 성전을 헐라 그러면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세우리라 약속하셨다. 왜 그러셨는가? 성전의 실체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기 때문에 이제는 이 보이는 성전이 필요 없다는 말이다. 그 성전에 온갖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면서 나중에 예수님이 성전을 청소하는 것도 나오지만 성전의 실체가 예수 그리스도 인 것을 말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서 이 땅에 참된 교회가 세워질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참된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다. 참된 교회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증거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가 그리스도 되심을 말하는 것이 교회의 본질이다. 하나님이 우리와 우리 가정을 축복하시는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다. 교회를 예수가 그리스도 되심을 증거 해야 하기 때문에 축복하실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그리스도의 일을 이루신 사건이다. 윤리나 구제나 선행을 이루는 사건이 아니다. 물론 그것이 중요하고 좋은 것이지만 그러나 그것이 복음보다 그리스도보다 앞서면 안 된다. 개인과 교회가 어려워지는 이유가 있다면 교회와 신앙생활의 본질인 예수가 그리스도 되심, 죽으심과 부활하심이 중심이 되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에 마지막 10절에 보면 에브라임 지파가 실수한 것이 있다. 가나안 땅의 거민들을 다 쫓아내지 못했다. 우리가 예수가 그리스도 되신다는 이 복음에 방해되는 모든 것을 다 빼내어야 하는데 그래서 완전 복음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그것이 안 되어서 복음보다 다른 것들이 앞서게 되고 그것 때문에 결국 실패를 가져온 것이다. 분명히 기억할 것은 복음 외의 것은 모든 것이 아무리 좋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결국은 무너지게 되어있다.
말씀을 맺는다. 하나님은 우리를 한 시대의 전도자로 부르셨다. 계속적인 응답과 축복을 누려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본질을 붙잡아야 한다. 그러면 사실이 보여 지고, 어려움이 와도 괜찮다. 형들이 뭐라고 하든지 간에 집을 나오는 것이 비밀이고, 보디발의 집에 가서 노예살이를 하고 감옥에 간 것들이 다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이루는 방법들이었다. 본질을 사실을 알고 있는 요셉에게 주신 축복은 여리고 땅, 요단 땅, 벧엘, 길르앗을 주었다. 한 지명, 한 지명이 다 의미가 있지만 요단을 중심으로 해서 모든 것이 움직여졌고, 벧엘은 야곱이 하나님 앞에 은혜를 받은 장소이다. 그것을 요셉의 자손에게 주었다. 그 뿐만 아니라 길르앗은 엘리야라는 큰 인물을 나온 곳이다. 이런 엄청난 응답들이 요셉의 자손에게 주어졌다. 본질을 회복하길 바란다. 그 속에 놀라운 축복과 전도운동이 지속되게 되어있다. 이 한 주간에도 본질을 붙잡고 기도하면서 참된 복음의 본질을 가지고 승리하는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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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1 |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 고전 9:18-27 | 2025-04-27 | |
1150 | 우리에게 주시는 영원한 메시지 | 고전15:1-11 | 2025-04-20 | |
1149 | 새로운 싸움을 위하여 | 삿7:9-18 | 2025-04-13 | |
1148 | 날마다 영적싸움에 승리하라 | 삿7:1-8 | 2025-04-06 | |
1147 | 이 시대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해답 | 삿4:1-10 | 2025-03-30 | |
1146 | 하나님이 쓰시는 기준 | 삿3:12-23 | 2025-03-23 | |
1145 |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 삿3:7-11 | 2025-03-16 | |
1144 |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 삿2:6-10 | 2025-03-09 | |
1143 |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 삿1:1-7 | 2025-03-02 | |
1142 |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 단12:1-4 | 2025-02-23 | |
1141 |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 단11:28-39 | 2025-02-16 | |
1140 |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 단10:10-21 | 2025-02-09 | |
1139 |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 단9:20-24 | 2025-02-02 | |
1138 |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 단8:15-27 | 2025-01-26 | |
1137 |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 단7:9-14 | 2025-0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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