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예배

아이성에 도전하라
2007-03-04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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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오늘이 최고의 축복의 날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일을 진행하신다. 분명한 것은 우리의 미래를 놓고 하나님이 오늘을 진행해 나가시고 인도해 나가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이 우리에게 최고의 축복이 되어진다. 오늘 아침에 새벽기도를 마치고 기도하는 가운데 이렇게 저렇게 기도하다가 마음속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음성이 있었다. 하나님이 하나님 계심을 나타낸다는 것이었다. 그렇다. 오늘도 이 자리에 그냥 와서 앉아있는 것 같지만 하나님이 친히 하나님이 계심을 나타내신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최고의 음성을 듣는 축복의 시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오늘 제목을 <아이성에 도전하라> 오늘 본문에 내용은 우리가 잘 아는 내용이다. 여리고성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무너뜨리고 아이성 앞에 도달했는데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다. 엄청난 여리고성을 무너뜨렸음에도 불구하고 작은 아이성 앞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패하는 것들 오늘 본문에서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통해서 참된 영적인 싸움에서 우리가 승리하기 위해서 어떻게 준비되어야 할 것인가를 인도받길 원한다.
아이성에 도전하라.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살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 복음이요, 생명을 주셨다. 우리 모두가 살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의 요3:16에 보면「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살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사단은 모두가 함께 망하도록 하는 것이다. 다시 말씀드린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살기를 원하시지만 그러나 지금도 살아서 눈에 보이지 않게 역사하는 사단은 우리 모두가 함께 다 망하기를 원한다는 사실이다. 사14:12-15을 보면 하나님을 찬양하던 천사가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나님을 대적했다. 그래서 겔28:14-18에 보면 결국은 하늘의 있을 곳을 찾기 못해서 하나님께 저주를 받고 땅으로 내어쫓겼다. 땅으로 추방된 것이다. 그래서 계12:1-9에 보면 하늘의 있을 곳을 얻지 못해서 땅으로 내어쫓겼는데 그 땅으로 내어 쫓긴 존재, 사단, 마귀의 존재라고 하면서 이 악한 사단, 마귀가 타락한 천사 삼분의 일이 이 땅으로 내어쫓겼다고 말씀하고 있다. 이 사단의 존재가 인간을 찾아와서 창3:1-20에 보면 같이 망하자는 것이다. 처음에 아담과 하와에게 들어왔다. 이것이 창3장의 문제요, 원죄이다. 그런데 단순히 아담과 하와가 무너진 것이 아니라 인간 전체를 무너뜨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창4장에 보면 악한 사단이 가정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창6장에 보면 완전히 사회와 국가를 우상으로 말미암아 무너뜨리고, 창11장에 보면 한 시대를 완전히 혼란 가운데 집어넣게 되어지는 이런 어마어마한 일을 한 존재가 사단이라는 것을 보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교회사를 보라.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 400년, 바벨론에 70년, 로마에 400년 속국으로 있었고, 그와 더불어 중세시대에 완전히 복음을 잃어버리고 1000년 동안 흑암 가운데 빠졌다. 그것이 모두 그 배후에 역사하는 사단의 전략임을 우리가 볼 수 있다. 왜 이 아침부터 사단이야기를 하는가? 사실은 모든 인생이 현장에 지금 싸움이 바로 사단과의 싸움이요, 지금 현장의 이야기가 악한 사단의 손에 붙잡혀서 영적인 고통 가운데 있는 것이 지금 현장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이 악한 사단의 존재에 대해서 교회에서만이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다. 이 악한 사단의 존재를 교회에서만 가르쳐줄 수 있는데 이 사실을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은 모든 인생들이 그 사단에 속아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 한 시대에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 사단의 손에서 건져내어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도록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귀한 교회를 허락하셨다는 것이다. 분명히 현장의 이야기를 영적인 문제로 말미암아 사단과의 싸움의 이야기라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다. 두 살 난 아이가 “내 마음에 예수님이 들어오는 것이 싫어. 나는 사단의 좋아. 내 마음에 사단이 들어오는 것이 좋아” 그렇게 말하는 배경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어떤 분은 어릴 때부터 계속해서 교회를 다녔지만 복음을 들어보지 못하니까 교회는 다니는데도 그의 삶의 완전 점쟁이를 의존하면서 살아온 삶이다. 그런데 어느 날 경제적인 문제로 어려움이 오니까 그 문제 가지고 깊이 빠지게 되다보니까 자기도 모르게 어느 날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봤다고 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지시하면서 그리고 집에 붙어있지를 못하고 밖으로 돌아다니고 기도원을 찾아다니고, 어떨 때는 하나님이 나를 인도한다고 하고, 어떨 때는 귀신이 내 마음을 인도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다. 중요한 것은 지금 현장의 이야기는 영적인 문제요, 그 배후에 역사하는 사단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우리도 모르게 거기에 속게 되어있다. 중요한 것은 사단은 우리의 영광과 성공을 보고만 있지 않는다.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고, 부흥되는 것을 악한 사단은 축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도 사단이 우리에게 어떻게 역사하는지 잘 말씀하고 있다. 특별히 이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바른 부분을 붙잡게 될 때 진정한 승리를 할 수 있는 것이고, 영원한 끝까지 승리를 할 수 있는 부분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것을 보게 된다. 오늘 본문은 아이성에 정탐꾼을 보내었다. 그 정탐꾼이 와서 보고하는 내용이 성이 작으니까 별것 아니니까 우리 중에 2-3000명만 올라가면 그 성을 정복할 것이다. 그래서 결국 3000명의 군사를 아이성에 보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가? 결국 36명이 사망하고 전쟁에서 대패하는 결과가 나온 것을 보게 된다. 그런데 수9장에 보면 사실은 패하고 나서 여호수아가 3만명을데리고 다시 전쟁에 올라갔다. 이를 통해서 보면 사실 그 성이 작은 것도 아닌데 워낙 큰 응답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받다보니까 이제는 우리의 힘으로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착각이 든 것이다. 아이성에 문제 앞에서 하나님의 능력과 응답으로 그 크고 견고한 성,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고 너무 엄청난 응답을 받다보니까 눈앞에 보이는 작은 문제는 내가 할 수 있다는 착각하는 믿음을 가진 것이다. 내가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것, 내 능력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 여기에서 바로 실패가 오게 된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지난주에 말씀을 드렸듯이 그리스로도 말미암아 승리하기를 원하신다. 갖고 있는 문제가 크든 작든 상관없이 그 문제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응답과 승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승리하기를 원하신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승리를 우리에게 주길 원하신다. 오늘 분문에는 아이성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까지 받은 응답이 너무나 크니까 내 능력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그런 착각이 있는 믿음을 가지고 결국은 실패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 오늘 분문을 통해서 세가지를 말씀드리고자 한다.
첫 번째로, 끝까지 싸워야할 것이 영적인 싸움이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싸우는 영적인 싸움은 한 순간도 방심하면 되어지지 않는다. 끝까지 싸워야할 싸움이 영적인 싸움이다.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 힘으로는 무너뜨릴 수 없는 견고한 여리고성을 무너뜨렸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무너뜨렸다. 그리고 믿음으로 무너뜨린 이스라엘 백성들이 작은 아이성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을 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다 보면 작은 일들 때문에 큰일을 놓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현실적인 것들 때문에 하나님의 영적인 비밀을 놓치는 경우가 있다. 눈에 보이는 것들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엄청난 하나님의 계획을 놓치는 경우가 있다. 왜 그러한가? 종교생활을 하면 그렇게 되어진다. 종교생활을 하면 우리가 교회를 열심히 다닌다고 할지라도 그리스도가 희미해지기 때문에 결국엔 보는 것이 희미해진다. 선택과 판단하는 것이 희미해지고 그 결과로 우리의 신앙생활, 삶 자체가 희미해진다. 분명한 것은 그리스도가 희미해지는 만큼 우리 가운데 문제가 생기게 되어진다. 하나님의 계획을 보지 못하면 하나님의 응답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왜 하나님의 계획이 보여지지 않는가? 그리스도가 희미해지기 때문에. 결국은 교회를 다니면서도 종교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획을 알지 못하고 영적인 비밀을 알지 못하고 작은 것과 큰 것을 동시에 볼 수 있어야 되는데 이 사실을 보는 눈이 희미해진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계속 기도해야할 부분이 있다면 그리스도로 충만해질 수 있기를 기도해야 한다. 정말로 우리 생애에 한을 가지고 기도를 해야할 부분이 있다면 다른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로 충만케 하옵소서. 지속적으로 이 그리스도를 최고로 누리게 하옵소서.” 이 그리스도를 어떤 분이신가? 우리의 참 생명이시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다. 요1장에 보면 생명으로 빛으로 오셨다. 이 그리스도를 깨닫는 만큼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축복이 누려지게 되어있다. 그리스도, 죄로 인한 저주와 재앙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신 분이다. 이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막힌 담을 완전히 헐어버리신 분이다. 이 그리스도는 사단의 일을 멸하신 분이시다. 이 그리스도를 깨닫는 만큼 실질적인 구원의 축복이 누려지게 되어있다. 다시 말씀드리면 그리스도를 깨닫는 만큼 그리스도 그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에게 성령으로 내주하시고 인도하시고 역사하시고 하늘군대를 동원하셔서 주께서 주의 백성을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것에 대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를 깨닫는 만큼 구원의 축복을 누리게 되어있는 것이고 그리스도를 깨닫는 만큼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을 알게 된다. 그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아는 것이 기도이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깨닫는 만큼 구원의 축복을 누리게 되고, 구원의 축복을 누리는 만큼 기도응답이 사실화되고 그 기도응답을 받는 만큼 우리의 삶이 말하지 않고도 저절로 증거되는 전도의 축복이 누려지게 되어있다. 그와 더불어 정말로 그리스도를 깨닫게 될 때에 우리에게는 세상보는 눈이 열려지게 되어있다. 복음 가지고 세상을 봐야 바르게 세상을 보게 되어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지속적으로 그리스도를 최고로 누리게 하옵소서.” 거기에 우리 인생이 성공하는 길이 있고, 신앙생활이 승리하는 길이 있고 모든 삶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길이 있다.
또 한 가지는 영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어제의 승리가 오늘의 우리를 보장해 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특별히 영적인 면에서 더 그러하다. 어제 승리했다고 해서 오늘 내가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제는 어제의 것이요, 오늘은 하나님이 주신 오늘 받아야할 축복이 있고 오늘 받아야할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것이고 오늘의 구원의 축복을 누려야할 것이 있고 오늘 영적인 싸움을 싸워야할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어제의 것을 가지고 평생 우려먹는 것은 안된다는 것이다. 특별히 영적인 싸움이 그러한 것이다. 우리가 한 순간도 영적인 사실에 무뎌지면 우리도 모르게 그 배후에 역사하는 사단의 손에 붙잡혀서 결국은 믿는다고 하면서도 실패하는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바울이 너무 잘 알았기 때문에 엡6:10-20에 영적인 싸움을 싸우기를 말하면서 특별히 6:13에「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모든 일을 행한 후에도 넘어뜨리는 존재가 있는데 그 존재가 바로 사단의 존재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다윗을 보라. 다윗이 온 천하를 통일하고 나서 한가로이 왕궁을 거닐다가 밧세바를 범하는 이런 죄악을 범하는 것을 보게 된다. 엘리야 선지자,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기는 선지자 850명과의 갈멜산에서의 싸움 끝에 엄청난 승리를 거두게 된다. 850명 대 하나님을 믿는 선지자 엘리야 하나, 그 싸움 속에 엘리야가 대승을 거두게 된다. 그런데 바로 이어서 보면 아합왕이 이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나왔다. 그러자 이 엘리야 선지자가 로뎀나무 아래로 도피를 해서 “주여 죽여주옵소서.” 우리가 한순간도 어제 은혜를 받았다고 해서 오늘 그것이 우리를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마16:16에 베드로가 지상 최대의 그리스도를 고백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고백한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축복하시며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알게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이러시면서 반석같은 축복과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그러면서 천국열쇠를 주겠다고 하셨다. 그런데 바로 이어서 예수님께서 고난당하시고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심을 이야기하니까 16:22에 보면 이 베드로가 “주여 그리 마옵소서.” 붙들고 가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런 일이 절대로 주님 앞에 미치지 못하나이다.” 그 때 예수님께서 “사단아 네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무엇을 말하는가? 어제 그리스도로 충만한 축복을 누렸는가? 오늘도 우리에게는 그리스도가 필요한 것이다. 한순간도 영적인 싸움에서 우리가 방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특별히 오늘 분문에도 그 부분을 말씀하고 계신다.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적인 싸움을 싸우지 않으면 우리 후대에 그 축복이 전달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본문에서도 말씀하고 있다. 1절의 짧은 구절 속에 큰 부분을 말씀하고 있다.「이스라엘 자손들이 바친 물건을 인하여 범죄하였으니 이는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이 바친 물건을 취하였음이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시니라」유다 지파, 세라는 아간의 증조부이다. 세라는 뜻은 떡잎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 조부는 삽디이다. 삽디의 뜻은 하나님만을 좋아한다는 뜻이다. 그 다음에 나오는 아버지의 이름은 갈미이다. 갈미는 풍성한 열매이다. 이를 연결해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름은 그 이름에 의미가 있다. 그런데 이를 연결해 보면 새롭게 시작해서 하나님을 좋아함으로 조상들이 풍성할 열매를 맺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아간의 이름의 뜻은 사고뭉치라는 뜻이다. 축복의 대열 속에서 결국은 버림받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 오랜 신앙생활을 했다고 해서 그것이 후대에게 축복으로 물려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신앙의 연조를 자랑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 언약을 붙잡고 영적인 싸움을 하는 비밀이 없이는 후대를 바르게 세울 수가 없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다. 우리가 영적인 싸움을 싸우는 비밀 중의 비밀이 있다면 지금 우리에게 임하신 그리스도의 그 축복을 최고로 누리는 것이다. 우리가 다른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영적인 싸움을 싸우는가? 지금 내가 말씀을 들으면서 그 말씀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실을 누리는 것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누리는 것이다. 지금 내게 임하는 그리스도의 축복을 최고로 누리는 것이 무기가 되어진다.
두 번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실은 아이성 앞에서 실패한 것은 언약에 불순종함에 실패한 것이다. 언약에 불순종했다. 오늘 분문을 보면 아간의 훔친 물건 때문에 벌을 내리신 것이 아니라는 것이 성경에 나와 있다. 성경을 자세히 보면 단순히 아간이 물건을 훔쳤기 때문에 아이성에서 실패를 했다는 것이 아니다. 11절에 보면「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한 나의 언약을 어기었나니 곧 그들이 바친 물건을 취하고 도적하고 사기하여 자기 기구 가운데 두었느니라」15절에「바친 물건을 가진 자로 뽑힌 자를 불사르되 그와 그 모든 소유를 그리하라 이는 여호와의 언약을 어기고 이스라엘 가운데서 망령된 일을 행하였음이라 하셨다 하라」단순히 아간이 물건을 훔쳤기 때문에 이스라엘에 벌을 내리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하신 언약에 대한 불순종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 물어보지도 않고 아이성을 가볍게 여김으로 말미암아 그 아이성을 이길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의 힘으로 무언가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을 하면 착각이다. 사단의 역사를 우리의 힘으로 이길 수는 없는 것이다. 크고 중요한 일, 내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만 내려놓고 하나님께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적고 작은 일도 내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도 하나님께 내려놓고 묻는 믿음, 그것이 바로 올바른 신앙인의 자세이다. 우리가 어떤 문제를 당하면 큰 문제, 큰 사건을 당하면 저절로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하나님 도와주십시오’ 기도하고 나간다. 말하지 않아도 다 애쓰다 애쓰다 안되면 하나님께 내어놓는다. 그런데 우리에게 적은 일,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내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적고 우리가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일도 하나님의 인도받고 하나님 앞에 내려놓기를 원하신다. 그것이 바로 바른 신앙인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 분문을 보면 단순히 물건을 도적질을 했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언약을 어겼다고 말씀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언약에서 이탈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을 붙잡아야 한다. 우리가 아무리 경건하게 산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이탈되면 그 삶의 결과는 실패하게 되어있다. 반대로 조금 부족하고 연약하다고 할지라도 언약 안에 있으면 결국은 축복과 성공으로 우리 앞에 축복이 오게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언약 안에 있느냐? 언약 밖에 있느냐? 요셉과 그 형들을 보라. 야곱과 에서를 보라. 사울과 다윗왕을 보라. 차이가 무엇인가? 언약 안에 있는가? 언약 밖에 있었는가? 언약 안에 있을 때 비록 모자라고 부족해도 하나님은 언약 안에 있는 백성을 축복하시는 것이다. 아무리 훌륭하고 뛰어나다고 해도 언약 밖에 있으면 결국에는 실패하게 되어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이 언약을 어긴 것을 가지고 15절에 보면 망령된 일이라고 했다.「이는 여호와의 언약을 어기고 이스라엘 가운데서 망령된 일을 행하였음이라 하셨다 하라」사울이 전쟁을 앞두고 제사를 드리고 전쟁터에 나가야되는데 사무엘 선지자가 오질 않는다. 그런데 지금 막 나가야하는 시간표 인데 오질 않는다. 그래서 사울이 사무엘 선지자가 드려야 될 제사를 대신해서 드리고 전쟁터에 나갔다. 그것을 가지고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지적을 했다. 망령되이 행했다고 말씀을 했다. 하나님의 언약에 대해서 벗어나는 것이 망령되이 행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언약을 주셨는데 그게 바로 그리스도와 구원과 전도이다. 이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모든 인생들이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망령되이 살아가는 것이다.
세 번째로 오늘 이 아이성 앞의 실패에서 우리가 보아야할 부분이 있다면 이 땅의 실패의 원인과 해답이 무엇인가를 발견해야 한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지구상의 문제가 무엇 때문인가를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한사람 아간의 범죄처럼, 한사람 아담이 범죄함에 따라 이 땅에 문제가 왔다. 그래서 롬5:12에 보면「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한사람이 죄를 지었는데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다고 했다. 대표원리이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음으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루어졌느니라. 한사람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이 땅의 모든 문제들이 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담의 범죄 속에 있는 사람, 아담의 족보 속에 있는 세상에는 이런 문제가 계속해서 생길 수밖에 업다. 결국 이 땅의 모든 문제는 창3장 사건의 주범인 사단과 거기에 속아서 결국 아담과 하와가 속아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이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아무리 세상이 풍요로워진다고 할지라도 더욱더 심각해진다. 아담의 족보 속에 있는 사람이 그 인생 자체가 우상숭배이고 죄악이다. 지옥을 향해서 치닫고 있다는 사실이다. 훌륭한 사람, 열심인 사람, 착한 사람이 많이 있지만 창3장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이 땅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창3장의 문제가 해결되면 이 땅의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모든 응답과 승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보장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스도만이 유일하고 완전하고 영원한 해답이 된다. 그리스도만이 창3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답이 되어지는 것이다. 이 땅의 반복되는 실패의 역사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 오직 유일한 답되신 그리스도만이 이 땅의 모든 실패를 해결하는 유일한 답이 된다는 것이다.
아이성은 누구에게나 다 있다. 그리스도 언약을 붙잡고 도전하길 바란다. 무슨 말인가 하면 교회에 와서 예배를 와서 드리는 곳하고 다른 곳이 있는가? 교회에서 와서 예배를 드릴 때는 은혜를 받는데 집에 가면, 현장에 가면 자식들 앞에 서면, 그것이 바로 아이성이다. 각 지역마다 지교회를 통해서 새신자들을 두고 기도하고, 전도대상자를 두고 기도하고 렘넌트들을 적어놓고 기도하는 것이 아이성이다. 주일날 강단의 메시지를 붙잡고 그 메시지를 정리해서 기도제목을 잡고 그것을 집에 붙여놓고 오며가며 보는 것이 아이성이다. 작은 일 같고 대수롭지 않은 일 같지만 그것이 아이성이다. 차를 타고 가면서 잠시 이동하는 시간에 메시지를 틀어놓고 메시지를 듣는 것이 바로 아이성이다. 거기에 사단의 역사는 기겁을 하고 도망가게 되어있다. 누구에게나 아이성은 다 있다. 이 아이성, 그리스도의 언약을 붙잡고 구석구석 하나하나 정복하는 적인 일조차도 사사로운 일조차도 그리스도 언약을 붙잡고 정복하는 이 한해, 이 주간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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