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예배

여호와의 이름
2006-08-20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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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찬양을 렘넌트 대회의 주제가 인데 찬양대의 찬양드리는 가운데 정말 우리의 자녀들을 축복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약 가진 전도자의 한을 가지고 이 찬양을 우리들의 자녀에게 늘 불러라. 언약이 전달될 것이다. 찬양대가 거의 중직자의 자리에 있는 분들인데 저들의 품에 아이들을 안고 일어나라 시작하라 일어나라 걸어라, 일어나라 뛰어라 일어나라 정복하라, 너무 축복된 메시지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석한 모든 분들이 자녀를 위해 축복하는 시간이 되길 축원한다. 공동체 시대의 주역입니다.
오늘 우리가 지난주에 광고가 나갔지만 선교대회를 앞두고 헌금을 하는데 중요한 의미를 알고 해야겠다. 의미를 알아야 참된 축복을 받을 수 있다.
오늘 제목을 여호와의 이름으로 잡았다.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를 중심으로 말씀하겠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응답을 받지 못하면 갈등하고 시험에 들게 된다. 결국은 불신자보다 더 못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하나님의 자녀가 응답을 받는다면 모든 사건과 문제 속에서 승리하게 되어있다. 응답받는다면 그 속에서 모두 해결되게 되어있다. 오늘 무엇이 회복되어야 할 것인가를 알아야겠다. 우리의 인생이 가치 있으려면 응답을 받아야한다. 많은 만남이 있지만 축복이 되기 위해서는 응답받는 우리가 되어야한다. 응답을 받아야 하나님의 시간표가 우리의 삶에 나타나게 되어있다.
응답받기 위해서는 첫 번째로 임마누엘의 누림으로 시작해야한다. 이것이 기도응답을 받는 중요한 길이다. 기도가 안된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기도를 해도 응답이 안되는 사람이 있고 기도를 어떻게 해야 되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있다. 모든 사람들이 기도에 대한 부담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기도가 안된다는 사실 속에 어떻게 기도를 해야 할 것인가에 매여 있다. 어떻게 응답받을 것인가 이전에 임마누엘의 누림이 있으면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을 받게 되어있다. 임마누엘은 그리스도를 누리라는 말이다. 시81:1-14에 보면 여호와를 바라보라고 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원하는 것은 나를 청종하기를 바란다고 하셨다. 사40:27-31에 보면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 새 힘을 주시나니. 사41:10에 보면 하나님이 하나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우리를 붙잡고 계신다. 많은 사람들이 시작을 잘못하고 있다. 응답을 어떻게 받아야 될 것인가 이전에 하나님을 누리면 되게 되어있다. 임마누엘 하신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면 되게 되어있다. 사람들이 시작부터 잘못되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응답을 주시는 하나님을 누리는 것이다. 어떻게 그리스도를 누리는가? 우리에게 주신 신분과 권세를 붙잡고 기도하는 것이 임마누엘을 누리고 그리스도를 누리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령이 영접하는 순간 우리 안에 내주하시고 그 상태를 구원이라 한다. 그 성령께서 구체적으로 우리를 인도하신다. 하늘군대를 동원하시고 흑암을 결박하시고 하늘나라에 귀한 축복의 역사가 이 땅에 이루어지게 하시면서 제자를 세우는 축복을 주셨다. 이 사실을 붙잡고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을 누리고 복음을 누리는 것이고 그리스도를 누리는 것이다. 그래서 기도응답받기 위해서는 시작을 바로 해야 되는데 임마누엘의 누림으로 시작하라는 것이다.
두 번째로 응답받기 위해서는 특별기도도 중요하지만 특별한 일이 생기면 기도하게 되어있다. 하지만 일상생활 속에서의 기도가 회복되어져야 한다. 평상시 기도가 회복되어야 한다. 영적인 리듬을 잃지 않는 말씀 붙잡고 삶의 현장에 적용하는 정시기도, 전도스케줄, 삶 속에서 어떻게 전도할 것인가에 대한 오늘 만남에서 어떻게 전도할 것인가에 대한 하루의 계획과 만남을 위한 영적인 리듬을 놓치지 않는 정시기도가 바로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승리할 수 있는 요소가 된다. 우리가 정시기도를 해 보면 잘 되지 않는 것을 알고 있다. 그만큼 나를 버리고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이 어려움을 말해주고 있다. 성령이 나를 인도하신다면 그 인도만 받으면 어떤 문제에서도 평안할 수 있는데 정시기도를 해보면 나를 버리기가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된다. 모든 삶의 리듬이 회복되어지고 모든 삶의 축복이 회복되어진다.
세 번째로 우리가 기도응답받기 위해서는 기다릴 줄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응답은 즉각적인 응답도 있지만 기다림 속에서 모든 응답이 나타나게 되어있다. 성경에 보면 응답받는 모든 사람들마다 기다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브라함도 요셉도 모세도 다윗도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고 기다렸다. 이 기다림 속에서 하나님의 중요한 계획들이 다 이루어졌다. 성도들이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께 매달리는 것을 보았다. 가정과 개인의 문제를 가지고 정말로 중심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런데 어떤 사실을 발견하느냐 하면 그 어려움 속에서 어려워하지만 하나님이 그 기다림 속에서 모든 축복된 인격으로 하나하나 응답해나가는 것을 보게 된다. 나를 만들어 가시고 바꾸어 가시면서 그 역사가 순식간에 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기다림 그 자체가 축복인 줄 믿길 축원한다. 그 기다림으로 세상을 이기는 힘을 얻게 되고 세상을 이기는 은혜를 누리게 된다. 그래서 그 기다림 자체가 축복이고 응답이다. 기다리는 가운데 모든 응답을 받게 된다. 고민과 갈등이 있는 분들은 그 기다리는 시간이 우리에게 가장 귀한 것들을 준비하시는 시간임을 깨닫길 바란다. 약속 붙잡고 기도하는 가운데 기다림이 가장 귀한 축복의 발판으로 삼길 바란다. 발판으로 알고 어떤 사건과 문제 속에서도 전부 기회로 붙잡고 기다리길 바란다.
월남전에서 미국의 포로가 되었던 사람들이 포로로 있으면서 그냥 시간을 보낸 것이 아니다. 절박한 가운데 생을 포기하지 않고 그들 나름대로 준비를 하는 것을 보게 된다. 포로 중에서 기타를 잘치는 사람이 있는데 나무를 꺾어서 줄을 매어서 기타를 가르쳤다. 후에 해방되고 나서 엄청난 연주자가 나왔다는 이야기가 있다. 키보드을 치는 사람은 널빤지에 건반을 그려놓고 가르쳤는데 그 중에서 훌륭한 연주자가 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골프를 하는 사람도 막대기를 가지고 골프를 치는 법을 가르쳤는데 그 후에 골프대회에서 우승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문제와 사건을 발판을 삼아야 한다. 성공하고 실패하는 자의 차이는 문제에서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그 현실의 문제를 기회와 발판으로 삼는 사람이 있다. 우리에게 주신 언약을 잡고 모든 문제와 사건을 기회로 발판으로 삼고 기다려야 한다.
네 번째로 기다리면서 때가 되면 도전할 수 있어야 한다. 기도에는 기다림과 도전이 포함되어있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언약을 가지고 미래를 향해 도전할 수 있어야 한다. 말씀 붙잡고 기도하면 말씀이 성취된다. 그 말씀 속에서 비전이 나오게 되어있다. 때에 따라서는 말씀을 붙잡고 도전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될 때에 모든 만남이 축복이 된다. 만남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알아야한다. 축복된 만남이 위해서는 내가 응답받는 사람이 되면 나 때문에 모든 만남이 축복된 만남이 된다. 사람 간에 섭섭한 일이 있더라도 싸우지 말고 나 때문에 네가 사는 줄 알아라 하는 생각을 가지기 바란다. 내가 응답받으면 축복된 만남이 되는 것을 믿길 바란다. 내가 응답을 받으면 하나님의 예비하신 시간표가 맞아지고 참된 가치 있는 인생이 되어진다.
본문으로 들어가서 너는 나 이외의 신을 너에게 두지 말찌니라. 거짓된 행복이 아니라 참된 응답과 축복을 하나님께서 주실테니까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하셨다. 우리를 위해서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위해서 내어주신 하나님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씀하신다. 나와 너 사이에 있는 것, 모든 것들을 물리치라고 하신다. 우리를 위해서 완전한 축복을 주시기 위해서 너 자신을 나에게 달라는 것이다. 너는 나 이외의 신들을 네게 두지 말지니라.
오늘 본문 7절에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두 가지로 말씀드린다. 첫 번째로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복음 속으로 들어 갈수록 복음 이외에는 다른 소망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복음 속에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복음 이외에 다른 소망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두 번째로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어 일컫지 말라. 나의 이름을 아는 자에게 하나님은 모든 축복을 하시겠다는 것이다.
첫 번째로 우리가 복음으로 세상을 바라볼수록 해답을 보는 눈도 열려지게 되어있다. 복음 속에 세상 보는 눈과 세상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보는 눈도 있다. 복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치가 알아지고 사람들이 왜 그렇게 살아가는지를 알 수 있다. 십계명에 대한 부분들을 계속해서 말씀드리고 있는데 세상의 이치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 1-4계명은 영적인 원리에 대해서. 5-10계명은 도덕적인 원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12절부터 보면 도덕적인 원리인데 이것은 다른 종교에서도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것이 이 당시에 지금 십계명을 쓸 당시에도 광야 길을 갈 동안 이런 일이 일어날 것임을 알고 이것을 쓰셨다는 것이다. 계셨다는 것이다. 그 일이 지금에도 일어나고 있다. 이 도덕적인 원리도 중요하지만 영적인 원리가 무너지면 이것도 무너지게 되어있다. 우상숭배를 하면 모든 것이 무너지게 되어있다. 5-10계명은 다른 종교에서도 말하고 있다. 그러나 1-4계명은 종교인과 지식인이 알지 못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 땅의 문제는 이것 때문에 일어나고 있다.
미국의 청소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동부의 아이들은 서부로 대학가기를 소망하고 서부의 아이들은 중부나 동부지역으로 가기를 원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부모의 품을 떠나기 위해서. 어떻게 보면 우리의 자녀들도 똑같이 키워놓으면 부모의 품을 떠나길 원한다. 부모들이 얽어매니까 떠나고 싶어 한다. 유학간 한국 아이들도 학교에 적응하는 아이들이 극소수라고 한다. 거의다가 학교에 적응을 못하고 떠돌아다니고 있다. 이것이 어떻게 보면 영적인 원리 같다. 21세기의 사람들이 사고가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학문조차도 모든 부분이 하나님이 없다고 사고하고 있다. 네가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하는 뉴에이지조차도 일어나고 있다. 다른 신들을, 사단과 귀신의 역사로 우상숭배를 하지 말라. 사단의 일이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고 사단과 귀신은 복음을 듣지 못하게 하고 들었다고 해도 복음을 알아듣지 못하게 한다. 믿는 신자들까지도 엡6:13에 보면 섰다고 할지라도 넘어뜨리는 것이 사단이다. 복음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 사단의 역할이다. 이 악한 사단 마귀의 역사로 사람들이 우상숭배를 하고 있다. 우상숭배를 통해서 귀신이 역사하기 때문에 귀신이 역사를 하면 자자손손 그 귀신의 역사 속에 붙잡혀서 어쩔 수 없이 살아가야 한다. 심각한 질병이 일어나고 영적인 혼란이 일어나고 있다.
통일교가 서울에서 큰 프로필을 찍어서 모금을 하고 다니는데 이름도 그럴싸하게 달고 다닌다고 한다. 어떤 사람이 주소를 확인해보니까 뉴욕의 통일교와 연관되어 있는 확인했다고 한다. 이러한 종교들이 일어나서 문화를 정복하고 있다. 기독교는 힘이 없지만 통일교는 북한이나 미국이나 일본에 엄청난 물질로 문화를 정복하고 있다. 여기에 기독교가 지고 있다. 점점 영적인 혼란이 일어나고 있다. 아무리 귀신의 역사가 강하게 일어난다할지라도 그것을 꺾을 수 있는 유일한 이름 그리스도를 주셨다. 출20:2에 보면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곳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여호와라. 애굽 땅 종 되었던 곳, 우리에게 모든 저주와 재앙에서 빠져나올 복음을 주셨는데 그리스도 그 이름을 우리에게 주셨다. 이러한 축복을 회복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우리가 왜 전도를 해야 되는지 십계명에서 답을 찾아야하겠다. 하나님을 떠난 자들이 어떠한 심령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고 미래에 어떠한 일들이 일어날 것을 알고 바꾸는 것이 전도이다. 지금의 일과 미래를 알고 그들을 바꾸는 것이 전도이다. 한사람 한사람이 불신자에게 답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축복하게 되어있다. 마6:33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시리라. 정말로 불신자들이 답을 알지 못해서 다른 신을 섬기고 우상숭배를 하고 자신도 모르게 자꾸 무너지고 있는데 거기에 대한 답을 주는 것이 전도이다. 다른 문화권에 이 사실을 전하는 것이 선교이다. 전도, 선교가 단순한 것이 아니다. 이러한 것을 바르게 붙잡을 때 전무후무한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소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을 놓치게 되면 지금 우리가 복음을 얼마나 누리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후대가 망하게 된다.
오늘 선교대회의 헌금하는 시간이 있는데 의미를 하는 축복이 있길 축원한다. 우리의 신앙상태에 따라서 그것이 우리의 자녀들에게 전달된다. 5절에 보면 우리와 상관없이 온 원죄문제가 삼사대까지 망한다고 적혀있다. 하나님을 모르는 불신앙의 부분들이 자녀들에게 영적으로 전달되는 것을 말하고 있다. 부모의 신앙상태가 자녀에게 그대로 전달되어진다. 하나님을 떠난 창3장의 원죄의 문제는 상하를 따지지 않고 좌우를 따지지 않고 엄청난 영향력으로 우리 자녀들에게 전달되게 되어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원죄를 해결한 복음의 역사는 더욱더 큰 역사로 일어나게 된다. 본문 6절에 보면 신앙의 비밀을 가진 자에게는 천대까지 하나님의 축복이 임한다고 했다. 부모의 축복의 역사들이 자녀에게 까지 흘러들어간다는 것이다. 복음을 알면 알수록 복음 속에 들어가는 것이 전부임을 알게 된다. 복음은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이다.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두 번째로 여호와의 이름이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 자에게 참된 축복을 하시겠다는 것이다. 이 여호와의 이름 이 엄청난 축복을 누린 사람이 다윗이다. 삼상17:45 여호와의 이름에 성공한 자 중의 한 사람이 바로 다윗이다. 시23:3에 보면 자기 이름을 위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을 의의 길로 인도한다고 다윗이 고백했다.
다윗은 어떻게 하나님께 쓰임 받았는가? 하나님이 어떠한 사람을 쓰는가?
첫 번째로 다윗은 하나님이 모욕하는 데에 대한 거룩한 분노가 있었다. 삼상17:26, 36에 보면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한 사람에 대한 거룩한 분노를 다윗은 가지고 있었다. 현장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이름이 얼마나 짓밟혀있는가 그 이름을 회복해야 한다는 거룩한 분노가 우리 안에 있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쓰신다. 현실에 대한 거룩한 분노는 꿈, 하나님이 주신 비전에서 시작되게 되어있다. 학문과 정치에 그리스도의 이름이 없다. 우리의 자녀의 현장과 사업과 산업의 현장에 그리스도의 이름이 없다. 우리의 중심에 그리스도의 이름을 회복해야겠다는 거룩한 분노가 있는 사람을 쓰신다.
두 번째로 다윗은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했다. 다윗의 생애를 보면 성실성을 가지고 있었다. 성실하다는 말은 착하다는 말도 되지만 사실을 보는데서 성실함이 나온다. 사실을 보는데서 최선이 나오게 되어있다. 영적인 부분을 바르게 보고 사람과 사건에 대해서 사실을 보는 눈이 열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원망과 불평을 하게 된다. 그러면 그 원망과 불평으로 영적이 문제에 걸리게 된다. 사실을 보면 해결되는데 사실을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에. 성실하기 위해서는 영적인 사실과 사실을 보는 눈이 열려져야 한다. 다윗의 생애를 한 구절로 나타내면 시78:70-72이다. 마음의 성실함으로 그 손의 공교함으로 사실을 가졌다는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사실을 가졌고 사람 앞에서 사실을 가졌고 자신 앞에서 사실을 가졌다. 다윗의 생을 보면 양을 칠 때 다윗은 최선을 다했다. 삼상16:11에 모든 형제들이 다 나왔지만 다윗은 여전히 양치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삼상17:33-35에 보면 한 마리의 양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 다윗의 성실함을 볼 수 있다. 골리앗 앞에서도 다윗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실을 알았다. 하나님 앞에 섰다는 것이다. 결국은 돌 하나로 골리앗을 쓰러뜨릴 자신과 확신이 있었다. 자신의 사실 앞에 섰다는 것이다. 골리앗을 넘어뜨리는 성공 속에서도 넘어지지 않았다. 시23:1-6에 사울왕의 공격 속에서도 피해 다니면서 시편23편을 기록하였다. 인간관계 속에서 다윗은 결국 성실함으로 하나님 앞에 섰고 사람 앞에 섰고 자신 앞에 섰다. 충분히 사울 왕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자를 어떻게 해칠 수가 있느냐. 하나님 앞에 섰다는 것이다. 그리고 왕이 되어서도 대상29:10-14에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성전을 짓는 일을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하면서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셨다는 것을 이야기 했다. 자기 자신의 작인 일에 주어진 현장 속에서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고 성실성을 가지고 다윗이 선 것을 보게 된다.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해야 함을 알았다. 삼상17:45에 하나님을 의지해야 함을 다윗은 알았다. 우리에게 있어서 진정한 힘은 하나님의 이름, 그리스도의 그 이름에 있다. 렘8:4에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고전1:18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 받는 자들에게는 미련하게 보이지만 구원받은 우리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 십자가의 도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다. 신자들의 힘은 예수 그리스도의 그 이름에서 나오는 것이다. 왜 교회가 약해지는가? 교회에 왜 문제가 일어나는가? 그리스도의 이름이 증거 되지 않기 때문에 약해지기 때문에 희미해지기 때문에 문제가 일어나는 것이다.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이것을 붙잡으면서 한 주간 결단하길 바란다. 내가 사는 동안에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이리라. 내 사는 삶을 통해서 직장과 산업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이리라. 이럴 때 하나님의 계획과 우리의 삶이 맞아지게 되어있다. 이러한 결단을 내리고 나갈 때 하나님의 시간표와 현장의 시간표와 나의 시간표가 맞아짐으로 응답이 오게 되어있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내 사는 동안 높이리라 결단할 때에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있다. 성령이 역사하는 사람이라면 우리의 무능과 연약함에 상관없이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나타날 것이다. 잘못한 과거라고 할지라도 사람을 살리는 간증이 될 것이다. 쓸모없는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사람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는 내 사는 생애동안에 오직 그리스도의 이름만을 높이리라. 이 사실을 붙잡고 참된 응답을 확인하고 이 응답을 가지고 현장을 정복하는 축복된 여러분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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