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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 26일 주일 1부 예배 신봉준 담임목사
하나님의 뜻에 인생의 초점을 맞추는 자
(삼상20:1-11)
서론: 오늘 다윗이 순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인본주의를 쓰고 말았습니다. 다윗이 선지학교가 있는 라마 나욧으로 도망갔을 때, 하나님은 다윗을 철저하게 보호하셨습니다(삼상19:22-24).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의 보호하심 속에서도 불안하여 기다리지 못하고 도망을 가게 되었습니다. 다윗이 순간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붙잡지 못하고 인본주의 씀으로 온 많은 문제들을 보며 우리는 언약을 붙잡아야 합니다.
1. 기다림 - 최고의 축복으로 만들어라
가. 문제, 어려움 속에서 방법을 찾지 않고, 하나님의 시간과 방법, 때를 기다리게 하옵소서.
• 기다리지 못하면 자신에게 매여 영적 문제에 빠짐을 알고, 나 중심의 생각과 계획에서 벗어나 기도 속으로 들어가게 하옵소서,
• 하나님의 약속이 더딜지라도 흔들리지 않고, 약속 붙잡고 믿음으로 기다릴 수 있게 하옵소서(합2:3).
나. 기다림은 우리의 믿음이 더 깊어지고 견고해지도록 기다리시는 연단의 시간임을 깨닫게 하옵소서.
• 모든 것에 영적인 사실을 보는 눈을 뜨게 하시고, 그 어떤 것도 복음보다 앞서거나 우선되지 않게 하옵소서.
2. 들(광야) -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
가. 누구에게나 피할 수 없는 들(광야)의 시간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임을 깨닫게 하옵소서.
• 매일 하나님과 독대하고 소통하는 시간을 통해 힘을 얻고, 행복한 시간을 가지게 하옵소서.
• 광야와 같은 길에 인본주의를 쓰거나 두려워하여 도망가지 않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옵소서.
나. 아프고, 넘어지고, 실패해 본 다윗을 보며 하나님께 의지함이 가장 완전하고, 그리스도만이 참된 소망임을 고백하게 하옵소서(시34:8-9).
•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피난처가 되시며, 십자가에서 모든 문제 끝내신 그리스도 붙잡고 승리하게 하옵소서(고후4:7-9).
결론: 하나님의 뜻에 초점을 맞추는 사람은 기다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광야 같은 시간들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오늘 다윗이 잠시 잠깐 인본주의 씀으로 실패한 모습을 보며 하나님의 뜻에 나의 인생의 초점을 맞추고 나가야겠다는 언약을 붙잡아야 합니다. 오직 그리스도 언약 굳게 붙잡고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0월 26일 주일 1부 예배 신봉준 목사
“하나님의 뜻에 인생의 초점을 맞추는 자”
(삼상20:1-11)
1. 다윗이 라마 나욧에서 도망하여 요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무엇을 하였으며 내 죄악이 무엇이며 네 아버지 앞에서 내 죄가 무엇이기에 그가 내 생명을 찾느냐
2. 요나단이 그에게 이르되 결단코 아니라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내 아버지께서 크고 작은 일을 내게 알리지 아니하고는 행하지 아니하나니 내 아버지께서 어찌하여 이 일은 내게 숨기리요 그렇지 아니하니라
3. 다윗이 또 맹세하여 이르되 내가 네게 은혜 받은 줄을 네 아버지께서 밝히 알고 스스로 이르기를 요나단이 슬퍼할까 두려운즉 그에게 이것을 알리지 아니하리라 함이니라 그러나 진실로 여호와의 살아 계심과 네 생명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와 죽음의 사이는 한 걸음 뿐이니라
4.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 마음의 소원이 무엇이든지 내가 너를 위하여 그것을 이루리라
5. 다윗이 요나단에게 이르되 내일은 초하루인즉 내가 마땅히 왕을 모시고 앉아 식사를 하여야 할 것이나 나를 보내어 셋째 날 저녁까지 들에 숨게 하고
6. 네 아버지께서 만일 나에 대하여 자세히 묻거든 그 때에 너는 말하기를 다윗이 자기 성읍 베들레헴으로 급히 가기를 내게 허락하라 간청하였사오니 이는 온 가족을 위하여 거기서 매년제를 드릴 때가 됨이니이다 하라
7. 그의 말이 좋다 하면 네 종이 평안하려니와 그가 만일 노하면 나를 해하려고 결심한 줄을 알지니
8. 그런즉 바라건대 네 종에게 인자하게 행하라 네가 네 종에게 여호와 앞에서 너와 맹약하게 하였음이니라 그러나 내게 죄악이 있으면 네가 친히 나를 죽이라 나를 네 아버지에게로 데려갈 이유가 무엇이냐 하니라
9. 요나단이 이르되 이 일이 결코 네게 일어나지 아니하리라 내 아버지께서 너를 해치려 확실히 결심한 줄 알면 내가 네게 와서 그것을 네게 이르지 아니하겠느냐 하니
10. 다윗이 요나단에게 이르되 네 아버지께서 혹 엄하게 네게 대답하면 누가 그것을 내게 알리겠느냐 하더라
11.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오라 우리가 들로 가자 하고 두 사람이 들로 가니라. 아멘.
삼상20:1-11
■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자입니다.’, 은혜로운 찬양 감사합니다. 우리의 가는 길이 헛되지 않는다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나와 함께 하자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결국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지만 우리가 기도하는 모든 기도들, 하나님이 하나님의 열심으로 이루시겠다 말씀했습니다. 오늘 말씀 가운데서 또 귀중한 답을 회복하고, 찬양을 통해서 모든 영적인 힘을 회복하는 그러한 축복의 시간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제목을 ‘하나님의 뜻에 인생의 초점을 맞추는 자’입니다. 오늘 다윗이 순간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붙잡지 못하고 인본주의 씀으로 말미암아 많은 문제들이 오게 된 부분들을 놓고 우리는 언약으로 붙잡아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 속에 서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에 우리의 인생의 초점을 맞추어 나가야 되겠다는 겁니다. 그런 사람에게 있어서 기다림은 그냥 기다림이 아닙니다. 전부 축복으로 바뀌어 질 것이고, 또 광야 같은 그러한 시간들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전부 다 하나님과의 깊은 소통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이 되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한 평생 살아가는 생애 있어서 정말로 여러분의 인생의 초점을 하나님의 뜻에 두는 그런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지난 주에 한번 살펴보았습니다. 다윗이 사무엘의 고향이고, 또 사무엘의 선지학교가 있는 라마 나욧이라는 곳으로 피신했습니다. 사울의 공격을 받아서 라마 나욧으로 피신했는데 그것을 누군가가 사울 왕에게 알려주었습니다. 그러니까 사울 왕이 전령을 보내게 되죠. 다시 군사를 보내어 가지고, 그 다윗을 살피고 잡아올 것을 이야기 한 겁니다. 첫 번째 군사를 보냈는데 하나님의 성령의 임재하심이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언하게 되었습니다.
또 두 번째 군사도 라마 나욧에 보냈는데 역시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성령의 임재하심이 있고, 그곳에 예언하게 되었습니다. 세 번째까지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이 사울이 내가 가리라 했습니다. 직접 사울이 라마 나욧을 향해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참 이상한 것은요, 그 라마 나욧을 향해서 들어가는데 성령이 임하게 되고, 사울도 예언하게 되고 하루 밤낮을 벗은 몸으로 있었다 라고 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생명 싸개 속에 보호해 나가시는 부분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이런 엄청난 경험을 하고서도 불안한 것입니다. 이렇게 그냥 있어서 될 것인가? 무슨 돌파구가 없는 것일까? 그래서 기다리지 못하고 결국은 그곳을 도망하게 되는 것이죠. 여러분 하나님의 뜻에 인생의 초점을 맞추는 자는 기다림을 최고의 축복으로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첫 번째 대지가 기다림을 최고의 축복으로 만들라 입니다.
1. 기다림 - 최고의 축복으로 만들라
사람은 가장 잘 못하는 것이 엎드려서 하나님의 시간과 하나님의 방법과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을 제일 못합니다. 오늘 다윗의 그러한 모습이 본문에 나옵니다. 그래서 1절에 보면 그렇게 말씀하고 있죠. “다윗이 라마 나욧에서 도망하여”, 라고 했습니다. 그냥 떠났다는 말이 아니고 도망쳐 나왔다는 말이에요. 선지자를 떠나서 친구 요나단을 찾아가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잘 아시듯이 요나단은 사울의 아들이고, 요나단은 다윗에게 있어서는 절친 이죠. 그리고 아버지의 속마음을 가장 잘 아는 것이 바로 요나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 아들 요나단과 단판을 지어야 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요나단을 찾아가게 된 것입니다. 이 친구를 찾아가면 무슨 방법이 있겠지 라는 생각들 가지고 가게 된 것이죠. 안 보이는 하나님 보다 보이는 실재에 더 의지가 되어진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 아닙니까? 안 보이는 하나님은 안 믿습니다. 보이는 모든 것들을 우리는 더 잘 믿습니다. 오늘 다윗의 그러한 모습입니다. 뭔가 확실할 것 같고, 방법이 있을 것 같은 유혹들이 계속되어 온 겁니다. 뭔가 요나단에게 찾아가면 방법이 있겠지 라는 생각들을 하게 된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윗을 라마 나욧에, 하나님 곁에 가만히 하나님의 시간표를 보고, 하나님의 방법을,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기를 원하셨는데 그것을 다윗은 기다리지 못한 것이죠. 그래서 다윗은 기다리지 못하고 결국 인간적인 방법을 찾아 나서서 요나단을 찾아 간 것입니다.
여러분 문제 있을 때에 생각들을 너무 많이 하지 마십시오. 문제 있으면 기도 속에 들어가기 바랍니다. 우리는 대부분 문제 있으면 생각들 속에 빠져요. 그러면 결국은 자기에게 메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해야 돼요. 그러나 문제를 당하면 기도 속에 들어가면 결국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너무 생각 속에 있지 말고 문제 당하면 ‘아! 하나님께서 기도하라는 사인이구나.’, 생각하고 기도 속에 들어가기를 바랍니다. 결국은 기도할 때에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다윗은 결국은 자기에게 메이는 부분들을 오늘 본문에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 것 같습니다.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내가 뭔가 움직여야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곳을 떠나서 도망가서 요나단을 찾아가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만나자마자 다윗이 쏟아낸 말이 있습니다. 1절입니다. 같이 한번 읽어볼까요? “다윗이 라마 나욧에서 도망하여 요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무엇을 하였으며 내 죄악이 무엇이며 네 아버지 앞에서 내 죄가 무엇이기에 그가 내 생명을 찾느냐?”, 여기에 어떤 면에서 다윗의 흥분한 모습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어요. 도대체 내가 잘못한 것이 뭔데, 네 아버지가 나한테 왜 그러는데, 그런데 여기에 보면 결국 1절 한 절에 보면 ‘내가’, ‘내’라는 말이 짧은 한 구절 속에 네 번이 나와요. 자기 문제에 몰두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을 많이 하게 되면 결국 자기로 돌아가요. 결국 창세기 3장으로 돌아가요. 나 중심으로 돌아가요. 오늘 다윗이 정말로 기다리지 못하고 결국은 나름대로 요나단을 찾아가서 하는 이야기가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데, 자기에 메이는 부분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영적인 문제에 빠지게 되면은 결국은 항상 자기 문제에만 몰두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지금 영적으로 무너져 있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자를 때려잡던 그 모습이 어디 간지 없어요. 전적으로 요나단에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 친구에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다윗에게 생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라마 나욧을 떠나서 정말로 요나단을 찾아가는 부분들은 다윗이 인간적인 방법들을, 수단들을 찾게 되어진 것을 말하고 있죠. 왕의 아들이니까 당연히 뭔가 방법이 있겠지 라는 생각을 가지고 가서 물어본 것이죠. 하나님은 다윗을 라마 나욧에 밀어넣고, 하나님의 시간과 하나님의 방법과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도록 하셨는데 그것을 못 참은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을 찾게 된 것이죠.
물론 다윗의 지금 상황은 늘 죽음에 짓눌려 있는, 생명에 짓눌려 있는 그런 상황이에요. 얼마만큼 생명의 두려움이 있었느냐? 3절에 보면은 마지막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와 죽음의 사이는 한 걸음 뿐이니라.”, 다윗의 상황들을 정확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늘 생명에 대한 두려움이 다윗을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구차하게 결국은 요나단을 찾아가서 요청하게 되는 것이죠.
여러분 우리가 기다릴 수 있는 귀중한 축복을 누려야 합니다. 어떤 면에서 기다림은 전부 축복의 발판으로, 축복의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기다리지 못하고, 인본주의를 쓰면은 결국은 나중에 나옵니다마는, 마지막 부분에 말씀드리겠습니다마는 인간이 비참해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믿고, 우리가 살아간다는 건 쉽지 않습니다. 그 약속들이 더디게 이루어질 때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기 쉽습니다. 하나님은 도대체 언제 그 약속을 이루시는가? 그런 의구심을 가지고, 우리가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이죠.
히브리서11:1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실상이다 했어요. 그런데 그건 바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다.”, 말하고 있죠. 믿음이 실상이고, 믿음이 증거입니다. 그런데 그건 바라는 것이라고 했어요. 기다려야 된다는 말이에요. 그리고 2절에 보면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11:38절에 보면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할 사람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죠.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고, 기다린 사람들은 모든 것들을 이겨나갔던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기다림 속에서 조급함이 우리에게 엄습해 오게 되어 있고, 기다림 속에서 조급함에 휩싸이게 되면은 하나님의 뜻보다는 내 생각과 내 계획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부분들로 우리 인간은 누구든지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고 있는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세기 15장에 보면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늘의 뭇별을 바라보라 셀 수 있느냐? 네 자손이 이와 같이 많게 하겠다 말씀 했어요. 그런데 그 약속을 아브라함이 믿었다 했어요. 그래서 창세기15:6절에 아브라함이 믿으니 그를 의로 여겼다 말씀하고 있죠.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을 믿긴 믿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자식이 없어요. 약속을 받은 지 한 10년 정도 넘었습니다. 바로 그때 사라는 현실적인 해결책을 제안하게 되죠. 자신의 여종 하갈을 통해서 자식을 얻자는 것입니다. 자신의 계획으로 하나님의 계획들을 이루어 가는 줄 알고 있었죠. 여러분 인간이 자신의 방법을 선택하게 될 때 그 결과는 갈등과 상처와 분열이 오게 됨을 아셔야 합니다. 하갈이 아이를 잉태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오히려 이 하갈이 그 주인 사라를 멸시하게 되죠. 사라는 분노하게 되고, 하갈을 학대하게 됩니다. 결국 하갈과 그의 아들 이스마엘은 집에 있을 수 없어서 쫓겨나게 되는 것이죠.
여러분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자신의 방법을 선택할 때에 그 결과는 갈등과 분열과 상처들이 오게 됨을 아브라함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기다리지 못한 인본주의를 통해서 그 결과로 이스마엘을 통해서 지금까지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계속해서 전쟁 속에 휘말려 들어가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방법과 하나님의 시간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하박국2:3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묵시는 반드시 정한 때가 있다고 했어요. 그리고 반드시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했어요. 그것을 이루리라 했어요. 내가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나님의 시간표에 따라서 하나님이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약속을 기다릴 수 있는 믿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정말로 내 생각과 내 방법이 앞서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기다릴 수 있는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현실에 부딪히면 그 현실을 붙잡아요. 현실에 부딪히면 다른 걸 붙잡아요. 기다리지 못하는 거에요. 초대교회는 어떠했습니까? 사도행전1:3절에 보좌의 축복의 언약을 붙잡았어요. 그리고 사도행전1:14절에 오로지 기도에 힘쓰면서 기다렸어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죠.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말씀했어요. 그 보좌의 축복을 붙잡고, 오로지 기도에 힘씀으로 마가 다락방에서 기다렸습니다. 기다렸더니만 최고의 응답이 쏟아진 겁니다. 그게 바로 사도행전2:1절에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리고 사도행전2:9-11절에 보면 15개 나라의 문들을 준비해 놓고,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 사실들을 보게 됩니다. 기다렸더니만 최고의 응답이 임한 거에요.
하나님께서 광야 길 40년 동안에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셨죠. 결론적으로 광야 길 40년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적과 능력의 역사들을 보여준 겁니다. 그 사실을 바라보면서 주변의 가나안 7족속들이 간담이 녹았다고 했습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하나님께서 40년 동안의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그 길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길입니다. 기다리지 못해서 원망하고, 불평했던 사람들은 하나님의 역사를 보지 못하고, 결국 광야에서 다 죽게 되었어요. 그러나 약속을 붙잡았던 사람은 가나안에 하나님이 귀한 축복된 역사, 결론을 놓고, 이루시는 역사들을 보게 된 것입니다.
때에 따라서 너무나 긴 시간이기 때문에 너무나 답답하고, 뭔가 어려울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로마 250년 만에 결국 초대교회가 승리했던 사실을 아십니까? 250년이라는 긴 시간 후에 결국은 초대교회가 로마를 정복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어떤 기다림이 여러분에게 오늘 있습니까? 그 기다림을 전부 축복으로 붙들고, 만드시길 바랍니다. 기다리지 못하면 결국은 뭐냐? 자기 중심한 생활 속에서 모든 것들을 분별하지 못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은 요나단과 다윗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도 모르게 우리를 파고드는 신앙의 실패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틈을 우리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요나단이 다윗을 너무나 사랑했어요. 그래서 다윗에 대한 우정들이 너무나 깊었던 것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로 다윗을 사랑했느냐? 사무엘상18:4절에 한번 보세요. 요나단이 자기가 입었던 겉옷을 벗어 다윗에게 주었다 했어요. 그리고 자기의 군복과 칼과 활과 띠도 그리하였다 했습니다. 다 준 거죠, 그만큼 다윗을 요나단은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다 주면서 마지막 하나 주지 않았습니다. 그게 뭔 줄 아십니까? 신발을 주지 않았어요. 반드시 신발도 벗어줘야 합니다.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신발은 신분을 상징하는 겁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보면은 집 나간 둘째 아들 탕자의 비유가 나오죠. 그 탕자가 집에 돌아올 때에 아버지가 나가서 맞이하면서 종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온 내 아들이니까 새 옷을 갖다 입히고, 손가락에 반지를 끼우고, 그러면서 발에 신을 신기라 했습니다.
여러분 신분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신발입니다. 그런데 이 요나단은 결국은 다윗을 우정으로 사랑했지만은, 그 가는 길은 달랐음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상26:25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에 이야기를 하고 있죠. “다윗은 자기 길로 가고 사울은 자기 곳으로 돌아갔다.”, 했어요. 두 집안은 절대로 함께할 수 없는 집안입니다. 다윗의 집은 그리스도가 오시는 집이죠. 늘 거기에 대척점에 섰던 사람이 사울의 집입니다. 결국 요나단조차도 결국 사울의 길을 따라가서 마지막 사무엘상 31장에 보면 한날, 한시, 한 장소에서 그 자리에서 요나단조차도 죽게 되어지는 부분들을 보게 됩니다.
어떤 면에서 우리의 신앙의 요소들 가운데 요나단 같은 요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고백하고, 충성한다 라고 이야기하고, 그런데 마지막 신발은 안 벗어줍니다. 단순히 요나단과 다윗의 관계를 우정의 관계로만 봐서는 안 된다 라는 사실입니다. 영적으로 보면 반드시 다른 두 얼굴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 속에 은근히 파고든, 파고 들어온 그림이기도 합니다.
교회에서 여러 사람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좋은 게 좋은 것 아니냐?’, 라고 말을 하죠. 여러분 정말 좋은 게 좋은 겁니까?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복음 우선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아무리 도덕적이고, 윤리적이라 할지라도 복음 우선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모습들을 한번 보세요. 교회 안에 조용히 파고 들어온 부분들이 뭡니까? 도덕적인 것, 윤리적인 것을 가지고, 교회를 평가하고, 판단하는 부분들을 보게 돼요. 우리도 모르게 영적인 눈을 뜨지 못하면 여기에 속게 되는 것을 봅니다.
물론 도덕적이고, 윤리적이지 말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아무리 도덕적이고, 윤리적이라 할지라도 복음 앞서서는 안 된다 라는 것, 우선 되어야 될 부분들은 복음이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로 우리 하나교회가 복음보다 앞서는 그 어떤 것도 없는 그런 축복된 교회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들(광야) -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
두 번째입니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 들, 광야는 늘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피할 수 없는 들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광야의 시간들이 있습니다. 그 시간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입니다. 정말로 하나님의 뜻에, 인생에 초점을 맞추고 가는 자는 들과 광야의 시간일수록 오히려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은 요나단과 다윗이 들에 나가서 약속을 합니다. 오늘 11절에도 그렇게 말씀하고 있죠. “두 사람이 들로 나가니라.”, 했습니다.
어떤 약속을 하느냐? 좋다. 내가 집에 매월 초하루에는 회의가 있으니까 그 회의에 참석할 것이다. 월삭이라고 해서 매월 초 음력 초하루에는 가족회의로 모여집니다. 그게 3일 동안 진행되는데요. 거기에서 모든 의논들이 다 되어져요. 그러면 사울이 가족회의로 모집하면 거기에 요나단은 아들이기 때문에 당연히 참석해야 되잖아요? 그런데 다윗도 참석해야 합니다. 왜입니까? 사위이기 때문에 참석해야 돼요.
그런데 요나단이 이야기합니다. 너는 들로 나가 있거라. 내가 아버지의 심정을 한번 알아보겠다. 심정을 알아보고, 아버지의 마음이 영 불편하면 내가 활을 쏠 것이다. 들에 나가 네가 숨어 있는 그 자리를 향해서 활을 쏠 테니까 그 활이 네 앞에 이르거든 너는 그 길로, 활을 쏜 쪽으로 도망가라 했어요. 네 앞에 떨어지면 그 활을 집으로 종을 보내서 들고 들어오게 할 테니까 ‘아, 아버지가 나를 용납하지 못하는구나!’, 생각하고, 그 길로 도망가라 했어요. 만약에 내가 활을 쏴서 네가 숨어 있는 그 들을 넘어가면 아버지가 너를 받아들이는 걸로 생각하고, 들어오면 된다 라고 사인을 한 겁니다.
그래서 3일 동안에 에셀 바위라고 오늘 성경 읽지는 않았습니다마는 19절에 보세요. “너는 사흘 동안 있다가 빨리 내려가서 그 일이 있던 날에 숨었던 곳에 이르러 에셀 바위 곁에 있으라.”, 했습니다. 거기에 숨어 있는데 이 요나단이 아버지의 마음을 살피고, 결국 활을 쏘게 되는데 결국 다윗의 앞에 떨어지게 되었어요. 그 길로 말미암아 사실은 다윗은 떠나가게 된 것이죠. 그래서 들로, 광야 길로 가게 된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3일 동안에 중요한 인생의 기로가 다윗에게 온 것이었습니다. 궁중 생활을 계속할 것인가, 떠나갈 것인가? 기로의 순간이 온 겁니다, 운명의 순간이 온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누구에게나 이 들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모세에게도 이 시간이 있었죠. 모세가 40년 동안에 미디안 광야의 삶이 있었습니다. 궁궐에서 떠날 수밖에 없었고, 40년 동안의 미디안 광야에 있었습니다.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는 하나도 없습니다. 얼마나 황량하고, 얼마나 절박한 그런 마음들이었겠습니까? 물론 장인 이드로의 집에서 양을 치면서 40년 동안에 미디안 생활을 했지만 어떤 면에서 마음 놓고 대할 사람도 없었습니다. 사람이 말을 이렇게 자주 해야 말도 트이잖아요? 그런데 말을 너무 안 하면 사람들 앞에 가가지고 말도 제대로 못 하잖아요.
모세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기 위해서 바로 왕 앞에 보내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모세가 뭐라고 이야기합니까? 나는 입이 뻣뻣해서 말도 못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말 잘하는 아론이 있지 않느냐? 이야기했어요. 어떤 면에서 광야, 미디안 40년 동안에 대화할 사람도 없이 생활한 그 삶 속에 말조차 잃어버린 그런 모세의 모습이 아닌가 라고도 볼 수 있어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미디안에서 하나님과 함께하는 귀중한 축복의 비밀들을 누리는 시간이었음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미디안 에서는 사람과는 대화가 안 된다 할지라도 하나님과 교제함을 누리는 가장 중요한 시간이었음을, 가르쳐주는 그런 시간이었음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답답한 사건이 있습니까? 광야의 사건이 있습니까? 나중에 그것이 전부 다 은혜였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엘리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합과 이세벨의 공격을 받았죠. 도망해서 로뎀나무 아래에 있었습니다. 열왕기상19:4절에 보면 거기서 자기를 죽여달라고 했습니다. 내가 열심으로 하나님을 섬겼는데 이게 뭡니까? 나만 혼자 남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사십 주, 사십 야를 갈 수 있도록 힘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굴에 들어가서 거기서 머물게 된 겁니다. 그 광야 인생길에서 엘리야는 거기서 하나님이 엘리야를 통해서 하고자 하는 새 시대를 향한 귀중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 사실을 보게 됩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광야의 시간은 하나님과 독대할 수 있는 교제의 시간임을 아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힘의 원천은 바로 여기서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얼마나 일을 열심히 하고, 잘하느냐?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매 순간 순간마다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얻는 그 시간이 내게 있느냐, 없느냐? 그게 중요한 겁니다. 아무리 일들을 잘한다 할지라도 매시간 하나님과 교제하며 주시는 힘이 없다면은 결국은 인생은 더 큰 무너짐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매일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과 독대할 수 있는 소통의 시간들이 여러분에게 확보되기를 바랍니다. 매일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얻는 시간들을 가지시고,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한 시간들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광야 시간이 그냥 광야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그런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도 광야 생활이 있었어요. 40일 동안에 광야에서 금식하면서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사탄의 공격을 받았죠. 누구에게나 있는 이 광야, 들을 우리는 어떻게 누릴 것인가? 하나님과의 교제 속에서 정말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국 이 다윗은 그 광야 길에 도망가서, 들판을 도망가서 어떻게 되었는가 보십시오. 왕궁 생활을 못하고, 처절하게 내몰려져서 나중에 보면 별짓을 다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어느 자리까지 가게 되는가?
사무엘상 21장에 한번 보세요. 10절에 보면은 “그 날에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여 일어나 도망하여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갔다.”, 했어요. 여러분 이 본문 여러분 아시죠? 블레셋 지역 안에 있는 가드 왕 아기스에게 도망갔어요. 그러니까 두려움이 생긴 거죠. 혹시나 이 사람들 또한 나를 알아보고 죽일 것이 아니냐? 그래서 거기에서 이상한 짓을 합니다. 13절에 한번 보세요. “그들 앞에서 그의 행동을 변하여 미친 체하고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리매”, 침을 질질 흘리면서 미친 사람처럼 그렇게 행동을 합니다. 결국은 광야 길에 인본주의를 씀으로 말미암아 도망가서 다윗의 모습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이것을 훗날 다윗이 어떻게 기록하고 있습니까? 결론으로 가장 중요한 부분들입니다. 시편 34편을 한번 보세요. 그 아기스 왕에게 미친 척하면서 그때 상황들을 놓고 기록한 부분들인데요. 34:1절 위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시’라고 했어요. 사무엘상 21장에는 아기스 왕이라고 했는데 아비멜렉이라고 나오죠.
그러면 이게 성경이 잘못된 것인가? 그게 아니라 사실은 여러분 바로 왕 할 때 그게 이름이 아니고 직함이죠. 그런 것처럼 아비멜렉 할 때 어떤 면에서 이게 직함이라면 그때 아비멜렉 왕국 속에서라는 부분들이에요. 그런데 그 속에서 다윗이 고백했습니다. 8절입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여러분 이것은 아파보고, 넘어지고, 실패한 사람만이 고백할 수 있는 겁니다. 결국 하나님께 의지함이 가장 안전함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하면서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했어요. 어떤 면에서 이것은 다윗이 자기 인생을 놓고 쓴 겁니다, 몸으로 쓴 것입니다. 그제서야 하나님이 유일한 소망인 것임을 깨닫게 되었고, 그리스도가 참된 소망임을 다윗은 고백한 겁니다.
실수했습니까? 혹시나 넘어져 있습니까? 상관없습니다. 우리의 참된 피난처 되시는 그리스도를 붙잡으시길 바랍니다. 구약에 보면 도피성에 대한 부분을 이야기하고 있죠. 그 도피성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습니다. 부지 중에 살인한 자가 그것을 피해서, 죽음의 위기를 피해서 도망하는 것이 도피성입니다. 그곳에 들어가는 자는 다 살게 되었습니다. 그 도피성의 주인은 누구십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여러분 어떤 일이 있다 할지라도 괜찮습니다, 어떤 문제가 있다 할지라도 괜찮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피난처 되시는 그리스도 앞에 나가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 앞에 나아갈 때 어떤 역사가 일어납니까? 시편91:7절입니다. 천인이 내 옆에서, 만인이 내 옆에서 엎드러져나 재앙이 내게 미치지 못한다 했어요. 우리가 그리스도를 피난처로 삼고 나갈 때에 그 어떤 재앙도 우리를 미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지난주에 우리가 살펴보았죠. 고린도후서4:7-9절입니다. 8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방으로 우겨싸임을 당해도 싸이지 않는다 했습니다. 우리가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치 않는다 했습니다.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고,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는다 했습니다.
왜냐? 우리에게 피난처 되신 그리스도가 있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재앙의 문제를 십자가에서 완전히 끝내신 그리스도가 있기 때문에 오늘도 우리는 그리스도 붙잡고 나가는 겁니다.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이것은 다윗의 고백입니다마는 하나님께 피하는 것이 가장 안전함을 고백한 겁니다. 이 시대에 끊임없는, 막을 수 없는 영적인 문제들이, 재앙의 문제들이 우리에게 공격해 오고 있는데, 거기서 가장 안전한 것이 바로 그리스도입니다.
빌립보서3:1절에 바울이 고백했죠. 내가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쓴다. 그게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다.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같은 말 무엇을 말합니까? 바울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만 증거했습니다. 그게 우리에게 안전함이라 말씀했어요. 우리는 오늘도 그리스도 붙잡으면 되는 것입니다. 이 한날 정말로 그리스도로 충만한 시간들 되시고, 여러분 현장에서 어떤 문제와 사건과 일들이 있다 할지라도 그 광야 같은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 붙잡음으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붙들고, 인도해 나가시는 사실을 체험하는 축복의 시간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초점을 맞추는 자, 기다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인생의 초점을 맞추는 자는 기다릴 수 있어요. 그리고 광야 같은 시간들이 있다 할지라도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잠시 잠깐에 다윗이 하나님의 뜻에 인생의 방향을 맞추지 못하고, 인본주의 씀으로 말미암아 실패하는 자리에 빠진 다윗을 보면서 나는 순간순간마다 하나님의 뜻에 우리의 인생에 초점을 맞추고 나가야 되겠다는 그 언약을 붙잡는 그런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인생의 초점을 하나님께 맞추는 전도제자의 기도
1. 기도로써 기다림을 최고의 축복으로 만들게 하옵소서.
2. 광야의 시간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 되게 하옵소서.
3. 오직 그리스도로 결론 내게 하옵소서.
|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
| 1510 | 하나님의 뜻에 인생의 초점을 맞추는 자 | 삼상20:1-11 | 2025-10-26 | |
| 1509 | 하나님의 보호하심 | 삼상19:1-7 | 2025-10-19 | |
| 1508 | 지속되어야 할 하나님의 축복 | 삼상18:6-16 | 2025-10-12 | |
| 1507 |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 삼상17:41-49 | 2025-10-05 | |
| 1506 | 캠프 인생 | 삼상16:13-23 | 2025-09-28 | |
| 1505 | 끝나지 않은 싸움 | 삼상15:1-9 | 2025-09-21 | |
| 1504 | 누구를 섬기며 살아가는가? | 삼상11:1-5 | 2025-09-14 | |
| 1503 | 나에게서 나와서 하나님께로 | 삼상9:15-21 | 2025-09-07 | |
| 1502 | 누구의 통치를 받고 사는가? | 삼상8:1-9 | 2025-08-31 | |
| 1501 | 믿음을 바꾸는 기도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 | 삼상7:11-17 | 2025-08-24 | |
| 1500 | 세상의 틀을 바꾸는 남은 자 - 사무엘 | 삼상7:10-14 | 2025-08-17 | |
| 1499 | 하나님의 이상을 보는 사람 | 삼상 3:15-20 | 2025-08-10 | |
| 1498 | 먼저 갖추어야 할 것 | 삼상3:19 | 2025-08-03 | |
| 1497 | 하나님이 준비하신 렘넌트 시대 | 삼상3:18-21 | 2025-07-27 | |
| 1496 | 말씀 앞에 나를 세워라 | 삼상3:1-9 | 2025-07-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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