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참복음이라면 모든 것이 응답
2023-10-08 12: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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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8일  주일 1부 예배   신봉준 목사
참 복음이라면 모든 것이 응답
(빌4:11-13)

  
서론: 하나님은 우리에게 세상에 없는 것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자꾸 세상의 것으로 채우려고 합니다. 세상의 것으로 심는다면 결국 결과는 한계를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한계를 뛰어넘고 모든 것에서 자유할 수 있는 축복으로 복음을 주신 것입니다. 환경, 인간관계, 문제, 나 자신을 보면 다른 사람을 도울 수도 살릴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누릴수록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응답임이 보여지게 됩니다. 모든 문제를 참된 응답으로 바꾸는 길은 참 복음을 누리는 것입니다.
  
 1. 왜 인간에게 한계가?
  가.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창1:27, 고후4:4).
   • 그리스도와 함께 살도록 지음 받았기에 복음을 누리고 임마누엘을 누리게 하옵소서.
   • 바울처럼 그리스도로 모든 한계를 뛰어넘어 세계복음화를 확인하게 하옵소서(빌4:11-13).
  나. 하나님과 분리되면 살 수 없음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요15:5).
   • 예수를 안 믿는 사람은 한계 속에 있으며 만족이 없음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
   • 체험하고 역사 일어나는 것보다 복음을 누리게 하옵소서.
  다. 창세기 3장 문제부터 인간에게 한계가 온 것을 확인하게 하옵소서.
   •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하나님과 분리되어 마귀에게 잡혔음을 확인하게 하옵소서(요8:44).
   • 자기가 기준인 것처럼 자기가 맞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틀린 것이 많은지 확인하게 하옵소서.
   • 상식적으로, 체험적으로 밀어 붙이는 것이 아니라 복음인지 아닌지 점검하게 하옵소서.
  라.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는 믿음을 회복하게 하옵소서.
   •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함으로 늘 한계를 뛰어넘는 자유한 축복을 누리게 하옵소서(대상29:11-12, 마10:29, 롬9:11-13).
  
 2. 한계를 넘는 비밀
  가. 진리 되신 그리스도를 붙잡고 한계에서 벗어나 자유함을 누리게 하옵소서(요8:32).
   • 참된 진리,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 할 수 있음을 확인하게 하옵소서(창3:15, 요14:6, 마16:16).
   • 그리스도 안에서 아무 것도 문제 될 것이 없기에 그 분의 행하심을 확인하게 하옵소서(빌1:6).
   • 하나님이 세계복음화 할 사람으로 만들어 가심을 확인하게 하옵소서(빌4:11-12).
  나. 승천 이전에 감람산에서 주신 영적배경, 영적망대를 누리게 하옵소서.
   • 성삼위 하나님, 보좌의 축복, 3시대 살리는 힘, 공중 권세 이기는 우주의 힘, 땅끝까지 살릴 오력, 미리보는 언약의 여정(CVDIP), 세가지 뜰의 응답을 기도로 세워가게 하옵소서.
   • 가정과 업에 되어지는 축복이 나타나서 모든 것이 응답으로 다가오는 역사를 체험하게 하옵소서. 
  
결론: 벳세다 광야에서 예수님이 말씀을 전하셨습니다(요6:8-9). 해는 저물고 먹을 것이 없기에 그 동네 출신 빌립은 걱정했으나 안드레는 도시락을 가지고 나아갔습니다. 우리의 모든 환경, 문제를 그리스도에게 가지고 나아가면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신다면 모든 것을 넘어설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가? 나인가? 의 싸움입니다. 다른 것 누리지 말고 오직 그리스도만 누리시길 축원합니다.

 

10월 8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참 복음이라면 모든 것이 응답”
(빌4:11-13)

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아멘.
         빌4:11-13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십시다.’, 십자가의 도, 멸망 받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구원을 얻은 저와 여러분에게는 능력입니다. 이번 한 주간 여러분 현장에서 십자가의 도, 그리스도만을 붙잡고 당당하게 이기면서 살아가는 그런 축복된 삶이 되기를 먼저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상에 없는 것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것으로는 세상을 살릴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세상에 없는 것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우리도 모르게 자꾸 세상의 것들을 우리 안에 심으려고 하고요, 세상의 것들을 자꾸 붙잡으려고 해요. 그게 우리 인생의 모습들이에요. 세상에 없는 것을 붙잡았던 초대교회, 영적인 망대를 만들어 감으로 말미암아 세계복음화의 귀한 축복을 누렸던 사실을 보게 됩니다. 세상에 없는 것들을 붙잡았던 안디옥교회, 마찬가지로 전도, 선교의 망대를 만들어 감으로 말미암아 세계복음화의 귀한 축복의 역사를 누렸던 사실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분명히 기억하세요. 세상의 것으로는 세상을 살릴 수가 없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세상에 없는 것들을 주셨는데 문제는, 우리의 문제는 뭐냐? 세상의 것들을 자꾸 잡고 있고, 세상의 것들을 나도 모르게 자꾸 내 안에 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 안에 심어져야 되는데 사람의 말들, 이런 저런 여론의 소리들, 나도 모르게 그것을 우리 마음에 담아요. 우리 마음에 심어요. 그리고 사람의 말들, 여론의 이런 저런 소리들 듣게 되면 그 속에서 나오는 많은 염려와 걱정거리와 근심거리들을 나도 모르게 우리 안에 자꾸 집어넣어요. 여러분 영적 질병이 걸리고, 또 육신의 질병이 오는 이유가 무엇인 줄 아십니까? 자기도 모르게 자꾸 세상의 어려움에 스트레스를 받다보면 그게 우리의 마음속에 집어넣다보면 나도 모르게 육신의 질병까지도 나타나게 돼요.
 그런데 분명히 여러분 결론 내려야 될 것은 세상의 그 어떤 것도 한계가 있다는 것, 세상의 그 무엇도, 아무리 훌륭한 것도, 아무리 보기 좋은 것도 그 모든 것들은, 세상의 것들은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그러면서 이사야40:8절에 말씀하고 있지요.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든다 했어요.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든다 무슨 말입니까? 이 땅의 모든 것 풀과 같이 꽃과 같이 결국 마르고 시드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말하면서 그러면서 8절에 나 여호와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 한계가 없는 하나님의 영원히 성취되는 말씀만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사야40:30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소년이라도 피곤하고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소년도 피곤하고 곤비하고 장정도 넘어지고 쓰러진다 했어요.
 무슨 말입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인생은 한계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서 40:31절에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 새 힘을 주시는데 그 새 힘은 한계가 없는 독수리 날개 치며 올라가는 것과 같은 새 힘을 우리에게 주신다 말씀했습니다. 세상에 아무리 많은 좋은 것들을 가진다 할지라도 분명히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전도서에 보면 모든 세상의 것들을 다 누렸던 솔로몬이지요. 부귀영화 모든 것들을 누렸던 솔로몬의 고백입니다. 전도서1:2절에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며 모든 것이 헛되도다. 아니 거지로 살던 사람이 헛되고 헛되다고 이야기 했다면 말이 안 통할 것입니다마는, 세상의 가장 좋은 것들을 누렸던 솔로몬입니다.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도다.
 그러면서 3절에 보면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해 아래서 수고한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 것이냐? 아무리 여러분이 해 아래서 수고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여러분 인생에 유익함이 안 된다는 거에요. 그러면서 계속해서 뭐라고 하느냐? 한 세대가 지나가고 다음 세대가 오고, 또 해가 지고 또 뜨고, 바람이 불고 강물이 흐르고 흐르고 그러면서 7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했어요.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말할 수 없나니, 한계가 있는 인생을 말하고 있어요. 어느 정도로 한계가 있느냐? 눈은 보지만 족함이 없고, 우리가 보긴 보는 데 족함이 없다고 했어요. 귀로 듣는데 가득 차지 않는다 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꾸 세상의 것들을 추구하고, 세상의 것들을 마음에 담으려고 그렇게 살아갑니다. 그래서 결국은 한계에 부딪히는데 한계 이후에 일어나는 것들이 많은 상처들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한계에 부딪히니까 거기에 오는 것들이 결국은 인생이 피할 수 없는 상처들을 안고 살아가요. 그래서 앞으로 가면 갈수록 한계에 부딪혀서 오는 상처들, 이런 저런 영적 질병들로 말미암아 많은 정신적인 문제, 육신의 문제도 드러나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더 가면 갈수록 어려운 시대가 올 수 밖에 없는 거에요. 최고를 향해서 달리는데 어느 날 한계에 딱 부딪히게 되면서 그로 말미암아 들어오는 한계들 때문에 자신도 피할 수 없는 상처 가운데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는 이 한계 속에 살지 않도록 참된 자유함 속에 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그래서 참된 복음은 모든 것이 응답입니다. 오늘 제목이지요. 참된 복음이라면 모든 것이 응답이라는 것이 무슨 말입니까? 모든 것에서 우리가 자유로울 수 있어야 되는데 그것은 무엇이냐? 참된 복음만이 우리에게 참된 응답으로 주어지기 때문에 자유로울 수 있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참된 복음의 비밀들을 붙잡지 않으면 우리가 어느 누구도 예외 없습니다. 아무리 성공하고 아무리 많은 지식을 갖고 있고, 아무리 가지고 있다 해도 어느 날 한계가 와요.
 그래서 결국은 어떻게 됩니까? 자꾸 세상 것에 영향 받고 넘어지면서 결국은 나중에 보면 아무것도 한계에 부딪혀서 할 수 없도록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처음부터 부르실 때에 세계복음화, 이 엄청난 언약을 가지고 부르셨는데 237 나라, 5천 종족을 살릴 언약 가운데 우리를 부르셨는데 한계에 부딪혀가지고 그 축복의 역사들을 누리지 못하는 거에요. 전 세계 현장에 절대 무너지지 않는 하나님의 망대를 여러분 통해서 세워나가기 위해서 여러분을 불러 주셨는데 우리의 문제는 뭐냐? 세상의 것들로 자꾸 가득 채워지면서 나도 모르게 한계에 부딪혀서 거기에 영향 받아서 그것을 뛰어넘지 못해서 세계복음화는 커녕 내 자신의 문제조차도 해결하지 못하고 살아가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나를 넘어서야 합니다, 문제를 넘어서야 합니다, 환경들을 넘어서야 합니다. 모든 인간관계를 넘어서야 합니다. 넘어설 수 있는 것이 내게는 없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참 복음을 주신 거에요. 오늘 우리가 찬양 불렀잖아요? 진짜 문제가 그날의 답이요. 내가 오늘 외롭다고 느꼈는데 그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답이에요. 어떤 면에서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많은 문제 속에 답을 얻게 되고, 외로움 속에 임마누엘을 누리게 되고, 모든 것에 응답을 찾아낼 수 있는 비밀이 있다면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참된 복음을 누림 속에 들어가면 그 속에 지난날은 인간관계 때문에 무너졌는데 오히려 인간관계가 응답으로 딱 보여져요. 주어진 환경들 때문에 무너졌는데 그 환경이 ‘아! 이럴 수밖에 없는 환경이구나!’ 보여지면서 그 속에 하나님의 계획을 찾아내게 돼요.
 대부분 4가지로 무너지는데 첫 번째로 한계에 딱 부딪히는데 환경입니다. 여러분 환경을 무시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환경을 피하라는 말도 아니에요. 나름대로 각자가 주어진 삶의 현장에 환경들은, 다른 환경들 다 있을 수 있어요. 그런데 그 환경에 영향 받지 말라는 거에요. 영향 받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세계복음화의 언약, 그 축복을 못 누리게 돼요.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뭐냐? 환경에 영향 받아서 거기에 넘어지고, 쓰러집니다.
 그리고 또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면서 많은 인간관계들 있죠. 어디가나 인간관계는 있어요. 그런데 거기에 낙심하고, 좌절하고, 거기에 우리가 속아가지고 하나님의 중요한 계획들을 놓칠 이유는 없잖아요? 여러분 정말로 참된 복음을 알고, 누리면 ‘아, 왜 이 사람을 내게 만나게 하셨는가?’, 예전에는 이 사람 때문에 내가 시험들고, 낙심했는데, 상처 받았는데 ‘하나님이 세계복음화 때문에 꼭 필요하기 때문에 내게 붙여진 사람이 아닌가?’ 이게 보여집니다. 그래서 인간관계의 만남이 응답으로 누려지게 되어 있어요.
 그리고 여러분 문제들, 어디가나 문제는 있는 겁니다. 그렇지 않나요? 이 땅에 살아가는 인생 속에서 문제없는 곳이 없습니다. 그런데 진짜 복음을 누리면 그 문제가 답으로 보여지는데 복음을 누리지 못하니까 문제 속에 빠져가지고 결국 날마다 그 문제 속에 허덕이게 됩니다. 헤메이게 됩니다. 그리고 더더욱이 중요한 것은 환경도 인간관계도 문제도 중요하지만 내 자신을 보면서 한계에 빠지게 돼요.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내 자신, 나는 안 된다. 나는 왜 이럴까 내 자신을 보면서 한계에 딱 부딪히게 돼요. 여러분 오늘 이 한날 정말로 환경과 인간관계와 문제와 내 자신을 참된 복음 안에서 보여지는 눈이 열려지므로 말미암아 사람을 돕고 살리는 그 축복의 문들이 열려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정말로 이 축복을 우리가 누려야 돼요. 영적싸움이에요. 이 사실 놓고 우리가 싸워야 될 영적싸움이에요. 날마다 환경들 바뀌잖아요? 날마다 사람관계 속에서 우리가 시험받잖아요? 날마다 문제 속에 우리가 빠져들잖아요? 나 자신을 보면서 나는 안 된다 생각하잖아요? 그래서 정말로 사람을 살리고 사람을 돕는 자리에 우리를 세워주셨지만 그 축복이 한계에 딱 부딪혀서 그것을 뛰어넘지 못하는 거에요. 오늘 이 한날 하나교회 이 자리에 앉은 모든 성도들, 한계를 뛰어넘는 축복 가운데 사람을 돕고 살리는 전도자로 세워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왜 인간에게 한계가? 
 그러면 먼저 첫 번째입니다. 어떻게 이 한계가 우리에게 오게 되었는가? 왜 인간에게 한계가 오게 되었는가? 먼저 여러분이 아셔야 될 것은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창세기1:27절에 보면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다 했어요. 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 속에는 어마어마한 신학적인 어떤 의미들이 담겨져 있어요. 하나님의 거룩함을 가진 존재로 그게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이고, 하나님이 의를 가진 존재로 우리 인간을, 하나님의 인격을 가진 존재로 우리 인간을 창조하셨다. 전부 다 신학적인 용어로 중요한 의미가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 속에 있어요. 그런데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이 말 속에는 또한 뭐가 있느냐 하면 하나님의 대리자로 우리를 창조하셨다는 말도 들어 있어요. 이 땅에 유일하게 인간만은 하나님을 대신해서 이 땅에 모든 것들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하나님의 대리자로 우리를 만드신 거에요. 그게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 속에 있는 거에요.
 무슨 말입니까? 인간에게는 한계가 없는 엄청난 축복을 처음에 주셨어요. 어마어마한 축복을 하나님께서 하나님 말씀 안에서 이 땅의 모든 것들을 정복하고 다스리도록 주셨다는 사실, 신약에 와서 고린도후서4:4절에 보면 이 하나님의 형상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의 형상이다 말씀하고 있어요. 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의 형상이다 무슨 말입니까? 저와 여러분은 성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도록 지음 받은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의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우리가 사는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그 분과 관계 속에서 살도록 지음 받은 존재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그리스도가 없다? 내가 그리스도를 믿지만 이 그리스도를 못 누린다? 결국 그 인생은 한계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말이에요.
 여러분 어제 핵심 때에 우리 렘넌트 가운데 미국 렘넌트 망대로 서 있는 한 자매의 간증 여러분 보셨습니까? 이미 영상을 통해서 RUTC 방송에 나왔기 때문에 이것은 이야기해도 될 것 같습니다. 해군 사관학교를 나와서 지금 해군 소령으로서 미국의 전 세계 엘리트들이 모여지는 현장에 중요한 참모코스를 밟고 있는 자매 렘넌트로서 그런데 그 자매하는 간증의 내용들을 보면 어릴 때부터 너무 어려운 영적인 문제 속에 시달렸어요. 너무 힘든 영적인 문제 속에, 그래서 늘 죽어야 되겠다는 생각, 그 생각이 자기를 사로잡고 있었어요. 회사에 들어가서도 마찬가지이지요. 그리고 또 자기 동료의 익사사고를 보면서 더 충격을 받아가지고, 그 영적문제들이 자기에게 있는 영적문제와 합쳐져서 늘 시달렸어요.
 그런 가운데서 자기 할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할머니 장례를 치르기 위해 장례식장에 들어갔는데 이모가 복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함께 참여했던 이모가 그 자리에서 복음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그 자리에서 복음을 영접하고, 그때부터 신앙생활 시작하게 되었는데 신앙생활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러 가지 어려운 영적문제에 시달렸던 부분들이 계속해서 공격해 왔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정말로 자기에게 완전히 흑암의 역사들이 떠나가는 것들을 체험하면서 그때부터 자기는 이 말씀 아니면 살 수 없다는 것을 가지고 정말로 오직의 말씀 속에 들어가서 지금도 영적싸움을 싸우고 있는 부분, 그러면서 그 자매가 간증하는 내용 중에 이런 고백을 하셨어요. ‘복음이 없다면 내 존재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 없어도 내가 잘 살고 있잖아요? 그런데 진짜 영적문제를 체험하고, 어떤 면에서 영적문제에 시달려보니까 그 속에서 복음 가지고 해답을 얻고 보니까 진짜 복음 아니고서는 내 존재가 없는 것이다, 그 간증을 하셨어요.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못 누린다는 것은 임마누엘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고요. 반대로 말하면 복음을 못 누린다는 말은 내 존재를 모르고 살아가는 거에요. 내 존재를 모르니까 내가 다인 줄 알고 살아가요, 내 능력으로 되는 줄 알고 살아가요, 내 수준으로 되는 줄 알고 살아가요, 복음을 못 누리니까. 여러분 우리에게는 내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한 거에요. 내 수준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그 말씀 속에 있는 능력이 필요한 거에요. 그런데 복음의 역사를 누리지 못하니까, 임마누엘을 누리지 못하니까 내가 뭔가 한다고 내 능력과 내 수준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거에요. 그래서 결국은 모두가 한계에 부딪혀서 어마어마한 영적인 축복을 가지고 세계복음화 할 귀한 축복된 자녀들이 영적문제에 딱 걸려들어서 한 걸음 나가지를 못하는 거에요, 아니 한 걸음 나가지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인생 자체가 실패하는 인생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우리의 한계를 뛰어넘는 참된 복음의 비밀들이 깨달아지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이 복음의 비밀들을 알고, 고백한 내용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것입니다. 오늘 바울이 뭐라고 했습니까? 11-12절 같이 한번 읽어볼까요? “내가 궁핍함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여기에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다, 그러면서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 말하면서 거기에 대한 답을 말하고 있습니다, 13절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 있기 때문에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라는 것이 강조된 것이 아닙니다. 내가 능력 주시는 자 안에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나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고, 자족하는 은혜를 배웠다 했어요. 그리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라고 했어요.
 바울의 이 복음의 누림이 우리 하나교회 모든 성도들에게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궁핍하면 궁핍한 대로, 풍부하면 풍부해서 타락하고요, 또 궁핍하면 궁핍해서 뭔가 모르게 사람 앞에 비굴하게 살아가고요. 복음의 어마어마한 축복된 역사를 누리면 될 것인데 이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모든 인생 자체가 한계에 딱 갇혀가지고 더 이상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를 누리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요한복음15:5절에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이죠.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 여러분 가지가 나무에서 분리되면 말라 죽는 것입니다. 여러분 잘 아시듯이 요한복음 15장은 포도나무에 대한 비유죠. 예수님이 참 포도나무요, 우리는 그 가지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가지가 분리되면 말라 죽는 것처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누리지 못하면 결국 우리 인생에 결국 영적인 부분들이 다 말라비틀어져서 비참하고, 실패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음을 아셔야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하나님과 분리되면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분리되면 살 수가 없어요. 그래서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은 늘 어디에? 한계 속에 딱 갇혀 있어요.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은 잘 나가는 것 같지만 아닙니다, 한계 속에 딱 갇혀 있어요. 그래서 한계에서 뭔가 몸부림치면서 붙잡는 것이 종교에요. 한계가 딱 오니까 그걸 해결하기 위해서 몸부림치면서 붙잡고, 붙잡고 하는 것이 종교와 우상이에요. 그걸 잘 아셔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절대 만족이 있을 수 있나요? 오직 그리스도 안에만 참된 만족이 있는데 종교생활 한다고 해서, 우상을 가진다고 해서 잠시 잠깐 응답을 주는 것 같지만은 아니에요. 뭔가 잠시 잠깐 즐거움을 주는 것 같지만은 아니에요. 쾌락을 주면서 결국 인생을 망가뜨리는 것이 바로 악한 사탄의 역사에요. 그 어떤 것에도 그리스도 외에는 우리에게 만족감을 줄 수 없다 라는 사실이에요.
 여러분 인생에 있어서 그리스도를 왜 붙잡아야 되느냐? 우리가 그리스도 붙잡지 않으면 우리가 한계 속에 빠지고, 한계 속에서 결국은 많은 것들을 가졌어도 만족함이 없기 때문에, 많은 것을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정말 행복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한계 속에 갇히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 붙잡고 승리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여러분, 우리가 체험하고 역사 일어나는 건 중요합니다마는 그것이 복음을 누리는 것은 아니에요. 체험이 안 일어난다 할지라도, 역사가 없다 할지라도 정말로 그리스도 복음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그 속의 참된 자유함, 조금 이따 말씀드리겠습니다만 그리스도 복음 안에 참된 자유함이 우리에게 오게 되어 있어요.
 그러면 이 한계가 처음 어디에서 시작되었습니까? 창세기 3장으로 말미암아 시작되었어요. 창세기3:1-6절에 마귀에게 속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어요. 그래서 로마서3:23절에 보면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 여기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다, 원죄를 말하죠. 원죄의 저주 가운데 빠지게 되었어요.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과 분리되어 버렸어요. 그러니까 한계가 올 수밖에요. 하나님에게는 한계가 없어요.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니까 날마다 살아가는 모든 삶에 최선을 다해서 살지만은 어느 날 한계가 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단순히 한계에서 빠지는 것이 아니라 요한복음8:44절에 보면은 마귀에게 잡혀가지고 결국은 점점 더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요한복음8:44절에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다.” 했어요. 그러면서 뭐라고 했습니다.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함이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악한 사탄, 마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니라.” 했어요. 거짓말로 계속해서 우리를 속이기 때문에 그 인생이 거짓말장이를 따라가기 때문에 결국은 더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결국 악한 사탄에 붙잡혀서 결국은 뭐냐? 내가 하려고 해요. 모든 것, 내가 기준이 되는 겁니다. 그게 창세기 6장이에요. 내가 높아지려고 합니다, 그게 창세기 11장이에요. 우리에게 있어서 절대적인 기준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여야만 합니다. 자기가 기준 되면 안 돼요. 자기가 맞다 라고 생각하면 안 돼요. 우리에게 있어서 절대적인 기준은 뭐냐? 그리스도만이 우리에게 절대적인 기준입니다. 우리가 맞다고 하는 것이 조금만 지나고 보면 틀린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맞다 라고 고집해요. 여러분 아무리 맞게 보인다 할지라도 정말로 여러분 아셔야 될 것은 ‘이게 정말 복음인가? 아닌가?’, 그걸 봐야 돼요. 왜냐? 우리의 기준은 그리스도만이 기준이기 때문에. 아무리 옳고 바르고 틀림없어도 복음 아니면 아닌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옳은 것 찾아가요, 바른 것 찾아가요, 틀림없는 것 찾아가요. 그런데 복음 아니면 그것도 틀린 거에요 사실은.
 그리고 어떤 경우에 여러분 어떤 일에서 무슨 의견을 내잖아요? 그리고 내가 어떤 일을 시작할 때도 고민해야 합니다. ‘진짜 내가 복음 안에서 하는 것인가? 아닌가?’, 어떤 의견들을 낼 수가 있어요, 어떤 것을 시작할 수 있어요. 그 모든 것에 먼저 뭐냐? ‘정말로 내가 이게 복음 안에서의 선택인가? 아닌가?’, 봐야 합니다. 상식적인 것 나름대로 체험했기 때문에 밀어붙이려는 사람이 있어요. 일들을 놓고, 아니 모든 사람이 똑같이 생각하는 상식적인 것이 아니냐? 그리고 체험했기 때문에 내가 확신 있잖아요? 그 확신 가지고 밀어붙이려고 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것도 아니에요. 여러분 정말로 복음인가, 아닌가를 봐야 돼요. 그렇지 않으면 그 어떤 것도 결국은 내가 열심히 일했는데 거기에 흑암이 역사하고, 하나 되지 못하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지 않고, 결국 자기의 문제들이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 6장에 보면은 네피림 시대의 특징이 뭡니까?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자기 마음에 좋아하는 대로 아내를 삼았다 했어요. 그게 네피림, 결국은 저주 가운데 빠진 노아 시대의 특징이에요. 창세기 11장은 뭡니까? 내가 높아지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벨탑을 쌓아서 우리 이름을 내자, 창세기 11장에 말하고 있죠. 여기서부터 인간의 한계가 오고, 모든 문제가 찾아오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도 살 수 있다 라는 것, 나는 하나님 필요 없다 라는 것,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도 나는 할 수 있다 라는 것, 그게 창세기 6장과 바로 11장입니다. 여러분 내 기준과 내 생각대로 하면 틀림없이 한계가 오고, 그 한계 이후에 인간에게는 어마어마한 영적인 문제와 함께 실패가 찾아옴을 아셔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이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뻔한 얼마 있지 않으면 드러날 결과들을 알지 못해서 내 기준과 내 생각으로 살아가요. 오늘 이 한 날 참된 복음의 비밀을 깨닫고, 내 기준과 내 생각을 내려놓는 축복된 시간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한계를 넘는 비밀
 그러면 두 번째입니다. 한계를 넘는 비밀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한계를 넘을 수 있도록 어떤 면에서인간관계, 우리에게 있는 이런저런 문제들, 현실적인 환경들, 나 자신의 무너짐도 넘어설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비밀을 주셨는데 그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비밀은 바로 그리스도입니다. 요한복음8:32절에 말씀하고 있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여기서 말하는 진리는 누구를 말합니까?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예수님 당신께서 친히 말씀했습니다. 내가 곧 길이다, 진리다, 생명이다. 그 어떤 지구상의 영웅도 내가 길이다 말한 자가 없어요, 내가 진리다 말한 자가 없어요, 내가 생명이다 말한 자가 없어요. 유일하게 오직 그리스도만이 내가 바로 그 진리야, 내가 바로 그 생명이야, 내가 바로 그 길이야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그리스도만이 우리에게 참된 자유케 하는 축복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이미 이 그리스도를 주시기 위해서 구약에 예언하셨잖아요? 창세기3:15절에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성경에 여자의 후손은 내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여자의 후손이 누굽니까? 진리 되신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그 진리 되신 그리스도가 오셔서 너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뱀의, 사탄의 권세를 깨뜨릴 것이다 말했어요. 마태복음16:16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고백했을 때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이 사실을 붙잡고 기도하면 임마누엘의 축복이 누려집니다. 이 사실을 붙잡고 기도하면 임마누엘의 축복이 누려짐으로 말미암아 모든 한계를 뛰어넘는 귀중한 축복이 오게 되어 있어요. 모든 한계를 뛰어넘는 축복이 옴과 더불어 그 어떤 것도 문제가 안 되는 그 응답들이 나오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한 번 따라 합시다. ‘참 복음이라면 모든 것이 응답이다!’
 여러분 이것을 오늘 바울의 고백이에요. 오늘 바울이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나는 모든 것 할 수 있다. 그러면서 그 앞에 고백이 11절에 일체의 비결을 배웠고, 자족하는 비밀을 가졌다. 이게 세계를 정복한 바울의 고백이요, 이 고백을 한 바울에게 사탄도, 세상도, 환경도, 그 어떤 사람도 바울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오늘 바울이 가졌던 이 고백이 여러분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나의 모든 것들은 응답이다 라는 사실들로 붙잡혀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혹이나 여러분 ‘나는 넘어지는데요? 나는 언약 가지고 복음 알고 있다고 누리고 있다고 하는데 어느 날 나도 모르게 또 실패하고 또 무너지고 하는데요?’, 상관없어요. 그건 여러분 수준이에요.
 어제 우리 렘넌트 절대망대들, 군 현장에 있는 절대 망대를 세워 나가죠. 앞으로 토요 핵심 때마다 각 분야 속에 특별히 렘넌트 절대망대의 응답을 누리고 있는 친구들을 세워서 또 메시지를 받게 하고, 기도 인도받게 하는 그런 진행들이 계속 인도받고 있습니다. 되어지고 있는데 이번에 군 선교 현장에 있는 렘넌트들, 정말로 렘넌트 인턴십을 하고 있고, 복음운동 속에 응답받고 있는 렘넌트들 24명을 찾아서 이제 류 목사님과 함께 연결해서 참여하지 못한 일본과 미국의 렘넌트들은 줌으로 들어오고, 또 그 외의 모든 현장 예배에 참여해서 함께 메시지를 받고, 기도 받고, 또 질문에 대한 답을 얻는 그런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금요일 날 우리교회 전도학교 마치고 제가 제 방에 들어가서 먼저 이 친구들을 토요 군선교대회 류 목사님과 면담 이전에 제가 한 분, 한 분을 놓고 좀 포럼이 되어야 되겠다 싶어서 줌을 통해서 들어갔어요. 제 방에서 줌을 통해서 들어갔는데 그 질문 가운데 한 군인이 그 이야기를 해요. 목사님 가만히 보니까 군인들 전부 다 이 프로필을 보니까요, 진짜 훈련이라는 훈련을 많이 받았던 군인들이에요. 합숙, 팀 합숙, 70인, 많은 훈련들을 받았던 그런 친구에요. 그런데 그런 가운데 한 친구가 ‘목사님. 여전히 말씀의 흐름을 쫓아간다 하지만 어떨 때 내가 주저앉아 있고, 나도 모르게 바닥을 치고 있습니다. 낙심되어지고, 시험에 들고, 힘 빠지고,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이야기했습니다. ‘그래도 괜찮다. 하나님이 너를 군 살릴 절대망대로 세웠기 때문에 네 수준이 필요한 게 아니다. 하나님이 만들어 가실 것이다. 중요한 것은 넘어지면 또 시작하는 것이다. 넘어지면 또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시작만 있으면 돼요. 후회하고 거기에 주저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또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왜냐? 빌립보서1:6절에 말씀했습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루신다.” 말씀했어요. 우리 안에서 시작하신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 결국은 절대망대로 만들어 가시게 되어 있어요. 여러분 수준 상관없다니까요? 우리 하나교회 성도들은 아시길 바랍니다. 넘어졌습니까? 괜찮아요, 또 시작하세요. 무너졌습니까? 괜찮아요, 또 시작하세요. 눈물 흘릴 일들이 있습니까? 괜찮아요, 또 시작하세요. 그때그때마다 하나님은 새로운 영적인 힘을 주시면서 그것이 쌓이고 쌓여가지고 영권을 회복하게 되는 겁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시작하도록 우리에게 주신 그 비밀이 그리스도 이름이에요. 모든 것에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그 이름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어떤 자리에 있든지 간에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그 은혜를 주셨는데 그게 그리스도의 이름이에요.
 여러분 그렇습니다. 지금 내가 되었다 안 되었다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 되었다, 그게 응답이라 할 수 있을까요? 렘넌트들 특별히, 지금 여러분이 응답받는다? 지금 잘 된다? 과연 그게 응답이라 생각할 수 있을까요? 지금 되고 안 되고 문제 아니라 과연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가? 그게 중요한 거에요. 과연 그리스도 안에 있는가? 어렵고, 힘들고, 내가 넘어진다 할지라도 그리스도 언약 붙잡고 내가 또다시 일어나고 있는가? 그게 중요한 거에요. 왜냐?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삼위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수 있도록 하셨어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우리의 배경이 되어 주시는 그 축복된 그 어마어마한 영적인 망대는 그리스도 이름으로 우리에게 이루어지게 되어 있어요. 그리고 그 그리스도 이름으로 말미암아 실제로 성삼위 하나님이 내게 역사함과 더불어 우리의 모든 현장에 어디에 있든지 간에 날마다 보좌의 축복이 그리스도 이름으로 내게 임하게 됩니다. 여러분 몰라서 그렇죠, 여러분 성삼위 하나님이 여러분의 영적인 배경이 됨과 더불어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은 보좌의 축복이 여러분에게 날마다 어디서든지 여러분을 통해서 나타나게 되어 있어요.
 그리고 3시대를 살리는 어마어마한 축복된 역사를 그리스도 안에서 주셨어요. 그게 무엇입니까?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과거에 메이는데 과거가 보여져야 합니다. 과거가 보여져야 과거에 매이지 않아요. 과거가 보이지 않으니까 과거에 매이고, 그 과거 때문에 결국 영적문제에 걸려들고, 어마어마한 영적인 축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영적문제 속에 딱 갇혀가지고 더 이상 오늘을 실패하고, 미래를 보지 못해요. 그래서 여러분 과거가 발판되어지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과거와 여러분 상처들 발판되어지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게 보여져야 돼요 사실은. 그런데 그리스도 안에서 그게 보여져야 돼요. 우리의 과거 어떻게 보여집니까? 절대로 세상의 것으로 우리의 과거를 볼 수 없어요. 오직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빛으로 임하게 될 때에 나의 모든 과거, 상처들 보여지게 됩니다.
 그뿐만 아니죠.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공중 권세 잡은 자를 꺾을 수 있는 능력을 우리에게 주셨어요. 그리고 땅끝까지 237 나라를 살릴 수 있는 힘을 우리에게 주셨어요. 그게 위로부터 주어지는 5가지 힘입니다. 영력과 지력과 체력과 경제력과 인력이에요. 이 축복에 대해 힘을 갖고 있으니까 우리의 인생의 길을 미리 보게 됩니다. 그게 CVDIP, 미리 보게 돼요. 그 속에서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세 가지 뜰에 대한 부분들이 보여지게 됩니다. 그 인생은 절대로 한계가 없는 인생으로 전무후무한 하나님의 응답을 누리게 됩니다. 이 축복의 비밀을 붙잡았던 사람들이 초대교회 성도들이었어요.
 오늘 제가 지금 금방 말씀드린 부분들은 7가지 망대인데요. 이 7가지 망대는 어디서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감람산에서 제자들을 불러놓고, 마지막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7가지에요. 마지막 말씀하신 거에요. 여러분 승천하기 직전에 제자들 불러놓고 헛소리 했겠습니까? 아니잖아요? 가장 중요한 것을 말씀했는데 그게 7가지 망대에 대한 부분이에요. 그렇다면 우리가 그것 붙잡고 기도하는 거에요 사실은. 그게 내게 임하도록 기도하는 거에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내게 임하도록 기도하는 거에요. 보좌의 축복을 내가 누리도록 기도하는 거에요. 3가지 힘을 가지고 실제적으로 우리에게 3시대를 살릴 수 있는 그 힘을 놓고 기도하는 거에요. 이렇게 될 때 뭐냐? 한계가 없는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들을 내가 현장에서 누리게 됩니다.
 초대교회 보세요. 핍박이 있었습니다, 시험이 들었어요, 문제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초대교회가 그 핍박 앞에 무너졌나요? 시험들 앞에 무너졌나요?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 교회 안에 있었습니다. 그게 결국은 복음의 역사들을 가로막게 되었습니까? 아니에요. 오히려 핍박과 문제와 어려움이 생기면은 더 복음의 역사들이 확산되어진 것을 보게 됩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에게 주신 복음, 그리스도는 한계가 없는 축복이에요. 그래서 핍박도 막지 못해요, 시험도 막지 못해요, 어떤 문제도 복음의 역사를 막을 수 없어요, 그리스도의 능력을 막을 수 없어요. 그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여러분 누리게 될 때에 모든 한계를 뛰어넘는 축복이 있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게 초대교회가 누렸던 축복이에요. 초대교회는 이 7가지 망대의 축복을 붙잡고 기도 속에 있었기 때문에 핍박도 상관없어요, 문제도 상관없었어요, 시험도 상관없었어요. 오히려 더욱더 복음이 확산되어지는 그 축복된 역사가 나타남을 보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7가지 망대, 제가 말씀드렸던 이 부분을 찾아보시고, 이걸 여러분의 기도 속에 담으세요. 그러면은 여러분 삶에, 산업에, 학업에 되어지는 응답이 와요. 그게 하나님의 응답이에요. 그리고 뭔가 모르게 여러분 한계가 없고, 그 속에서 지치지 않는 힘들이 그 속에서 오게 되어 있어요. 이 7가지 붙잡고 기도하게 될 때 사실은 인간관계 속에서 늘 무너졌고, 환경 속에 늘 불평했고, 시험 들었고, 내 자신을 놓고 늘 낙심했던 부분들이 전부 다 응답으로 보여집니다. 모든 것이 응답으로 보여지게 되어 있어요.
 그리고 더더욱이 시간 가면 갈수록 더 큰 역사가 7가지 망대를 붙잡고 기도하게 될 때 여러분이 알 수 없는 시간 가면 갈수록 더 큰 역사가 여러분 걸음걸음마다 이루어지게 되어 있어요. 요한복음 2장에 보면은 물이 포도주 되는 사건이 나오죠. 그런데 그 포도주가 처음 나온 것보다 더 나중에 나온 것이 더 좋았더라 했어요. 우리 신앙생활에 7가지 망대의 축복을 붙잡고 나가게 될 때 우리에게 오는, 시간 가면 갈수록 중요한 것은 한계를 넘어설 정도가 아니라 더 좋아지는, 더 축복된 역사가 우리 앞에 이루어질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요한복음 6:8-9절에 보면은 벳세다 광야에 예수님이 서셨습니다. 거기서 예수님께서 제자들 무리들에게 말씀을 전달했어요. 그런데 거기에 저녁때가 되었습니다. 모여진 무리들이 이제 식사를 해결해야 될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 동네 벳세다 동네 출신인 빌립이 그 현장에 있었어요. 그런데 그 빌립은 그 동네를 잘 알고 있었어요. 그리고 모여진 무리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거기에 똑같이 그 동네 사람이었던 안드레는, 빌립은 그 현장을 알고 있었음에도 가만히 있었는데 안드레는 사실 자신의 도시락을 예수님께 가지고 나왔어요. 똑같은 그 동네 출신인 안드레였는데 안드레는 도시락을 예수님께 가지고 나왔어요.
 무슨 말이냐? 우리의 모든 환경과 문제들 그리스도께 가져가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직접 해결하려고 하지 마시고, 다른 사람 통해서도 해결하려고 하지 마시고, 안드레처럼 여자의 후손인 그리스도께 직접 들고 나가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내가 직접 해결하려고 하면 해결되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에게 뭔가 힘을 입어서 뭔가 좀 해결해 주십사하고 도움 청하면 그 순간 해결될지 모르지만은 근본적인 것이 해결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인생의 근본문제를 해결한 그리스도 외에는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없어요. 잠시, 잠깐 해결되는 것처럼 보이지만은 더 큰 문제가 또다시 생기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나의 문제, 나의 모든 환경과 문제, 사건 가지고 어디로 들어가느냐? 오직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 해결자 되신 그리스도께 가지고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도우신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넘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모든 것에 자유할 수 있었던 비밀이 있었다면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나는 모든 것 할 수 있다, 그게 바로 바울이 모든 것에 자유로울 수 있는 비밀이에요. 내가 능력 주시는 자 안에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의 싸움은 그리스도 안이냐? 아니면 나 중심이냐? 이 싸움이에요. 결국은 궁극적인 영적싸움은 진짜 그리스도 안이냐? 나 중심이냐? 여러분 다른 것 하지 말고 복음만, 그리스도만 누리시길 바랍니다. 다른 것 자꾸 누리다 보니까 결국 우리 인생에게는 한계가 오는 것입니다. 내가 하려고 하니까 문제가 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로 복음을 누리면 ‘아,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 없구나!’라는 것이 보여지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정말로 복음을 누리는 강단 말씀을 그때그때마다 붙잡고, 여러분 복음의 누림 속에 들어가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진짜 그리스도 복음 안에서 한계가 없는, 자유함을 누리는, 참된 모든 것들을 응답으로 누리는 그 축복된 역사가 여러분에게 시작되기를 바라고, 복음 안에서 모든 것들을 응답으로 누림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도와줘야 될, 살려야 될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그런 사람을 돕고, 살리는 일에 쓰임 받는 전도자로 우리 하나교회 모든 성도들 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참 복음을 누리는 전도자의 기도
1. 복음을 누리는 기도 속에서 삶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응답임을 알게 하소서.
2. 어떤 상황 속에서도 복음 안에 있는 참된 능력을 알고 그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의 고백이 나의 고백되는 전도자로 살게 하소서.
3. 언약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 속에서 현장을 바꾸고 모든 사람을 살리는 하나님 나라의 시작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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