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여 보게 하소서
2008-05-04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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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렐루야! 기도하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오늘도 완벽하게 개개인을 인도하시며 주의 성령으로 역사하심을 믿습니다. 오늘 이 축복된 자리에 않게 하시고 은혜주시기로 약속된 자들에게 주의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시며 말씀의 언약을 잡고 한 주간도 성취될 말씀으로 우리의 삶을 뿌리 내리는 축복된 역사 있게 하심을 믿습니다. 주의 종들에게 확신과 감사로 인도해 주옵소서. 모든 성도들 어디에 있든지 주께서 오늘도 하나님이 말씀하셔서 개개인에게 말씀이 임할 때마다 연약한 부분이 치료되고 부족한 부분이 채워지는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모든 부분이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말씀으로 확실히 변화되는 축복을 주심을 믿습니다. 주의 종들에게 은혜 입혀 주심을 찬양을 드리며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동행하시는 역사가 체험되도록 축복해 주옵소서. 부족한 종을 붙들어 주시고 주님이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성도들 혹은 참석하지 못한 성도들 사정 따라서 어디에 있든지 말씀 들을 기회를 주시고 축복해 주옵소서. 군문으로 직장으로 학창으로 해외에 나가 있는 자들에게도 오늘도 같은 은혜로 실시간 말씀을 듣는 모든 성도들에게도 축복해 주심을 믿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인사하겠습니다. 평강하십시오. 안녕하십시오. 감사합니다. 제가 요즘은 언제부터인가, 뒤에 앉아서 성도들의 교회 출석하는 경향을 살펴보니 11시에는 자리에 차지를 않아요. TV를 보는지, 아니면 게으름을 피우는지 성도들이 많이 안 보이다가 11시가 넘으면 모여들기 시작하는데, 그것도 11시 10분이 넘어 조금씩 성도들이 오고, 지금까지도 계속 들어옵니다. 늦게 와서는 자리에 앉았다가 시원찮으면 다른 자리에 앉고 왔다 갔다 하는데, “늘 일찍 나오셔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립시다”라고 제가 광고를 한번 해야 하겠다 생각을 했습니다.
록펠러가 세계적인 축복 받은 이유가 돈만 낸 것 때문이 아니라, 아무리 바빠도 40분 전에 교회 앞자리에 앉아서 예배드린 것이 축복의 기회였습니다. 매주 놓치지 않고 그렇게 예배를 드렸습니다. 십일조 헌금을 많이 드렸다는 것 보다 예배를 사모하는 그의 마음 중심으로 그를 축복하신 것입니다. 정말 십일조를 드린 그에게 복음의 배경을 바로 알고 교회 앞자리에 40분 전에 앉아서 놓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말씀 묵상하고 주실 말씀을 생각함으로 큰 축복과 은혜를 받았고 또한, 세계적 축복의 모델로 하나님이 세우셨습니다.
나는 우리 교인들이 축복 받기를 원합니다. 주일날 하나님의 축복 받을 자리에 여러분이 서길 원합니다. 율법이다 뭐다 할 것 없이 늦게 오는 성도들조차도 축복받길 원합니다. 교회서 늘 광고하는 것을 기억하시고, 교회에 왔다 간다 하는 배경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사모하는 자들로 서게 되면 하나님이 축복하십니다.
특별히 렘넌트들이 왔다 갔다 많이 하는데, 축복하실 분들이 바로 렘넌트들 입니다. 렘넌트들이 회복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앞으로의 계획입니다만 훈련이 되면, 문을 잠글 생각입니다. 일차적으로 하층만 잠그고 2층에는 문을 열어놓겠습니다. 2층도 시간되면 잠글 생각입니다. 그러면 성도들의 예배에 대한 생각이 좀 바꿔질 것 같습니다.
옛날에는 예배 시간을 엄격히 생각하고 예배시간 늦게 온다는 것은 성도로써 자격미달입니다. 예전에는 예배에 좌석이 다 차면 잠그기도 했는데 그래도 문 두드리는 사람이 있기도 했습니다. 문이 잠기었다면 눈치 채고 2층 조용히 올라가든지 해야지 2층에 올라가서도 여기 저기 옮겨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특히, 렘넌트들 중에 그런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은 제가 일차적으로 정신문제 있는 사람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나는 정신문제가 아니다 라고 확신하는 사람들은 알아서 교회 예배에 제 시간에 참석하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어린이 날, 연휴인데도 이 자리에 어린이들과 놀러 가지 않고 이 자리에 오셨다는 것이 큰 축복입니다. 할렐루야! 보통축복이 아닙니다. 오늘 말씀 붙잡고 갈 때, 하나님이 개인과 후손들에게 큰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받아합시다. “주여 보게 하소서” 이것이 오늘 드릴 말씀입니다.
제가 늘 강단에 서면 메시지 시간이 길다고 해요. 오늘은 작심하고 짧은 시간에 메시지를 전하려 합니다. “오늘 박 목사가 강단에 섰으니 죽었구나”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한번 받아합시다. “나는 오늘부터 살았구나” 할렐루야! 어쨌든 오늘, 말씀 들을 수 있다는 자체가 큰 축복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실제로 볼 것을 보는 것입니다. 진짜 실상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려야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볼 것을 볼 때에, 비로소 축복이 시작됩니다. 본문 누가복음 18:36에 보면, “무리가 지나감을 듣고 이 무슨 일이냐고 물은대 그들이 나사렛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하니 맹인이 외쳐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앞서 가는 자들이 그를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상당히 재미있는 내용입니다. 새로운 번역에는 ‘맹인’이라 번역되어 있는데, 옛날 번역에는 ‘소경’이라 했습니다. 눈을 감았든지 떴든지 못 보는 사람을 소경이다 합니다. 눈뜬 자 중에도 앞을 보지 못하는 소경이 많습니다. 눈을 뜨고 볼 것을 볼 수 있다는 축복이 가장 축복된 것입니다. 눈이 감겨 못 보는 사람과 뜨고도 못 보는 사람이 가장 큰 장애라고 생각이 듭니다.
제가 사는 아파트 같은 라인(동)에 소경된 분이 계시는데, 교회에 나가시더라고요. 늘 인사도 하고 때에 따라 만나서 이런 저런 이야기도 주고받는데, 저는 그분을 볼 때마다 하나님의 긍휼을 받을 자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크로스비의 찬송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찬송이 된 것을 잘 알지 않습니까? 크로스비 여사가 복음을 깨닫고는 그렇게 원하는 눈뜨는 일을 포기 했습니다. “앞을 못 봐도 좋습니다. 다만, 하나님을 더 볼 수 있는 축복을 주옵소서”라고 기도한 내용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그의 복입니다. 눈뜬 자마다 더 행복하게 살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저희 아파트 같은 동에 사는 소경 분을 보면 절대 혼자 아파트를 오르고 내려가는 하는 일이 없습니다. 늘 옆에 자기 부인을 대동하고 이동합니다. 부인과 대동할 때도 부인이 일일이 손잡고 다닙니다. 어떤 면에서는 눈감았다는 것이 참 행복하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곁에 부인과 손잡고 다니니까요. 부인과 손잡고 다닌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저는 저희 집사람과 손잡고 다녀 본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이 분은 늘 손잡고 다닙니다. 손 안 잡으면 안 되니까요. 한편으로 보면, “이 분이 나보다 더 행복하구나”하는 생각을 할 때도 있습니다. 저의 집사람은 혹시나 제게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으려나 하는 차원에서 함께 차를 타고 다닙니다만, 손잡고는 다니지 않습니다. 그 부부가 손을 잡고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소곤소곤하며 가는데, 참 행복해 보인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한번은 옛날 생각이 문득 났습니다. 저희 집 사람의 눈에 핏줄이 파열되어서 앞이 안 보였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는 제가 손을 잡고 다니면서 “여기는 계단이다, 여기는 웅덩이가 있다 여기에는 물이 고여 있다”는 등의 이야기를 해주곤 했는데, 어떤 사람들의 눈에는 참 다정하게 보였나 봐요. 제게 묻기를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부부간에 참 다정하게 나누느냐고 하더라고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오해하는 것이 쉬운 일이구나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정말 볼 것을 못 보고 자기들 생각으로 생각하는구나 싶었습니다. 그 나이에 뭐 그렇게 다정하게 이야기 할 것이 있겠습니까? 제게 묻는 사람에게 웃으며 대답하길, 다정하게 이야기 한 것이 아니라, 앞을 보지 못하니까 위험 할 수가 있으니, “계단이다, 웅덩이다 피해라”라고 말한 것이라고 답변 해줬습니다. 옆에서 보기에는 굉장히 다정하게 보였나봐요. 제가 이렇게 보여도 굉장히 인정스럽게 보이는 가봐요. 우리 집에서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그렇게 보였나 봅니다.
어쨌든 제게도 그런 행복스러운 시간이 있었다는 것 감사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오셨다는 것을 감사하십시오. 누가복음 18:37에 무엇으로 맹인이 예수님을 찾아오게 되었느냐? 나사렛 예수가 지나간다 하는 그 소문을 들은 것입니다. 이 소문은 맹인이 기다리던 유일한 기회였습니다. 이 맹인은 볼 수 있는 사람도 아니고, 앞 못 보는 것을 도와주는 가족이 있는 그런 행복한 사람도 아닙니다. 가정도 다 떠난 자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가 지나신다는 소문에 38절에 보니“소경이 외쳐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외쳐 가로되 예수가 지나간다 하시니 그렇게 기다리던 기회였기 때문에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쳤다 했습니다. 음성이 얼마나 컸던지 39절에 보면, 앞을 지나가던 제자들과 무리들이 꾸짖습니다. “앞서 가는 자들이 그를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역시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라고 소리를 높입니다. 놓치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 신앙의 모본입니다. 우리가 주일날마다 예수를 만나기 위해, 하나님의 은혜 받기 위해 교회에 찾아옵니다. 갈급한 심령으로 먼저 와서 그날 주실 말씀을 묵상하고 그렇게 예배를 준비할 때, 반드시 하나님은 반드시 은혜로 임하여 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세계에서 유래 없이 물질로 복을 받은 록펠러의 본입니다. 그렇게 바쁜 록펠러도 주일날만큼은 40분 앞서 교회 제 앞자리에 앉아서 예배시간에 주실 말씀을 생각하면서 예배를 준비했다 했습니다.
나는 우리 교인들이 축복받길 원합니다. 그리고 목사 혹은, 말씀 전하는 분이 누구든지 상관없이 말씀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준비하는 자에게 성령으로 임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실 것이 확실합니다. 믿는 자에게 축복하실 것입니다. 이 축복을 소경은 확실히 누렸습니다. 얼마나 소리를 크게 질렀든지, 앞서가는 자들이 “잠잠하라” 할 정도로 외쳤는데 예수님은 그 간절한 맹인의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가시던 길을 멈추고 말씀하셨습니다. “앞서 가는 자들이 그를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명하여 데려오라 하셨더니 그가 가까이 오매 물어 이르시되”
여러분, 이미 이 맹인은 일생에서 단 한번뿐인 기회를 생명 걸고 붙잡았습니다. 한 주간 한 번씩 지나는 주일이지만, 이 시간이 지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이 시간에 확실히 말씀 붙잡을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내게 머물러 설 수 있도록 말입니다. 여기에 모든 축복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41절에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명하여 데려오라 하셨더니 그가 가까이 오매 물어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그럴 때에 볼 것을 보게 하신 예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매 곧 보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를 따르니
신앙생활의 과정을 이야기 하시는 것 같아요. 예수님이 축복하시는데, 믿음의 눈이 열려 보는 순간부터 “믿음대로 될 지어다” 했습니다. 그리고 이 맹인을 예수님을 쫓게 하시고, 볼 것을 보는 순간부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렸습니다. 이것이 성도의 신앙생활의 과정입니다. 어디까지 가야하느냐? 볼 것을 본다는 것은 믿음의 눈이 열릴 때, 말씀이 하나하나 응답된 사실을 보는 순간부터 감사함이 회복됩니다. 그때부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이 시작됩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축복으로 이때부터 준비하신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생각하고 축복의 말씀을 잡을 것은, 예수님의 질문입니다. 하나님도 아담에게 하신 첫 번째 질문이, “네가 어디에 있느냐?” 질문하셨습니다. 오늘도 여러분은 어디에 있다가 오셨습니까? 누구나 상관없이 죄와 허물 속에 갇혔습니다. 창세기 3:1~6과 16절에서 마지막 절까지 나와 있습니다. 나는 아니라 해도 저주와 죽음 속에 빠져 있습니다. 거기에 다 빠져 있습니다. 예수 믿어도 거기에 빠져있습니다.
주일날만이라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와 허물로 인해, 성령의 역사로 사실을 체험하시길 원합니다. 한번 두 번 체험하는 것을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체험하는 동안, 말씀에 뿌리를 내리게 됩니다. 왜 우리가 자꾸 문제 속에 빠지느냐? 다른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문제 속에서 나왔다 싶은데, 말씀에 뿌리 내리지 못하니까 죽음과 멸망, 사단의 손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나도 모르게 욕심과 정욕과 체질을 통해 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주일날 말씀의 성취가 내안에 실현되는 순간마다 해방의 축복과 기쁨이 체험되는 만큼 그곳에서 영원히 빠져 나올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이미 체험된 사람도 있지만, 지금도 체험되고 있습니다. 체험되는 것으로 끝나지 말고 계속 말씀에 뿌리 내려서 사단과 흑암과 공허가 나와 상관없도록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도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무엇을 원하느냐?”란 질문에 “주여 보기를 원합니다” 맹인의 평생소원이요 오늘도 주님을 찾아온 이 사람의 이유이며 소원입니다. 그리고 오늘도 죽음과 멸망 속에서 허덕이다가 찾아온 여러분들의 소원입니다. 주일날 마치 아침부터 와서 준비하는 것은 맹인같이“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호소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호소하는 맹인에게 하나님이 축복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무엇을 하여주길 원하느냐?” 오늘 여러분에게 말씀이 요구하는 것을 확실히 붙잡으시길 바랍니다. 무슨 말씀이 임하길 원합니까? 내게 어떤 말씀이 성취되길 원합니까? 조금만 눈이 열리면 됩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오늘도 이 축복의 언약을 붙잡고 돌아가게 될 때에 모든 일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믿음이 여러분의 삶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에 있어서 불신앙만큼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한번 불신앙 한 것 때문에 모든 것이 흩뜨려 집니다. 믿음만 가지면 해결되게 되어 있습니다. 말씀에 뿌리 내리고 응답받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의 질문입니다. 여러분에게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을 요구하는 축복된 대열에 서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보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보기를 원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저는 보기를 원하는 여러분에게 볼 수 있는 대상을 말하고자 합니다. 렘넌트를 보세요. 여러분, 모든 축복이 이 안에 있습니다. 류 목사님이 계속 말씀하시면서, 강조하는 부분이 이 부분입니다. 보이지 않는다면 기도해야 합니다. 보여져야 합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축복이 약속되고 부어주십니다. 여러분의 아들과 딸들, 그리고 손자, 손녀가 보여져야 합니다.
원래 유대인들은 어린 아이들을 언제 교육을 시키냐 하면, 젖먹일 때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아이들 젖먹이는 연수가 상당히 깁니다. 적어도 3살까지 젖을 먹입니다. 저도 젖 먹던 시간이 길었다고 합니다. 고집이 세서 떨어지지 않더라고 합니다. 제가 기억을 할 정도 까지 젖을 먹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젖 먹는 시간에 유대인들은 교육을 합니다. 유대인은 결혼했을 때, 부인이 유대인이면 유대인으로 들어올 수 있으나, 부인이 이방인이면 남편이 유대인이라도 귀화가 안 됩니다. 그 배경이 바로 유대인의 교육 때문입니다. 후손들을 젖 먹이며 유대인으로 만듭니다. 유대인의 교육으로 완성시킵니다.
모세를 낳자 모세 어머니가 석 달 간 몰래 숨겼지만 음성 커지고 아이가 점점 커가니 숨길 수 없어서 광주리에 담아 강물에 던졌습니다. 중요한 것은 요게벳이 자기 아들을 숨길 때에 그냥 숨긴 것이 아니라, 이 아이를 유대인으로 키우기 위해 시간을 벌었습니다. 그러면서 석 달 이상은 어려우니 아이를 광주리에 넣어 강물에 던지면서 강물에 띄우는데, 얼마나 기도하면서 띄었겠습니까. 그렇게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인도를 벌써 받습니다. 이것이 렘넌트를 키우는 부모의 지혜입니다. 갈대 상자를 만들어서 역청으로 바르고 물이 안 들어오도록 강물에 띄웁니다. 지혜롭게 계획해서 공주가 나와서 목욕하는 시간에 맞춰 갈대상자를 띄었습니다. 모세를 키울 준비를 마음으로 다 했습니다. 하나님이 이 아이를 축복하실 것을 봤으니까요.
그러니 공주가 갈대 상자 안에 있는 아이를 건져보니 유대인인 것입니다. 자기 아들을 삼아서 바로왕의 실세가 공주였습니다. 모세가 양자로 들어가면서 어떻게 권력의 힘이 있었느냐? 실세였기에 그렇습니다. 애굽을 이어받을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를 어머니 요게벳이 갈대 상자에 띄우며 하나님이 인도하실 것을 확실히 믿었습니다. 왜? 렘넌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분명히 키우실 것을 믿었습니다. 왜 이스라엘을 구원할 사명자이기 때문입니다. 흑암세력을 꺾고 선교의 역사로 이끌어갈 사람이기에 하나님이 키우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딸을 보냈습니다. 기도대로 응답하여 주셨습니다. 공주가 젖먹일 사람을 찾았습니다. 유모로 추천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요게벳이 궁중에 들어가서 모세를 젖먹이며 유대인으로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유대인의 교육이 오게벳을 통해 모세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여러분, 부모들에게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하나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릴 때, 품안에 있을 때에, 렘넌트 때 하나님의 자녀로 키우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의 역사로 키우십시오. 하나님은 반드시 역사하실 것입니다.
일본에 있는 저희 딸 세염이의 딸 아이 서희가 3살이 되는데, 할머니가 전화하면, 받기 전부터 “싫어 싫어” 라고해요. 어른과 통화하면 재미없거든요. 전화하면 “네 마음속에 하나님이 계시냐?” 물으면 대답은 하지만 지겨워하는 것을 봅니다. “싫어 싫어”하면 엄마한테 꾸중 들으니까, 요즘은 지혜가 생겨서 “싫어”를 일본말로 대답합니다. 일본 말로 대답을 하면 할머니가 엄마 바꿔 달라 하지요. 하나님계시냐 마음에 계시냐? 하면 일본말로 대답합니다. 제가 무슨 생각을 했느냐, 벌써 이때만 해도 시간이 이미 지났습니다. 무슨 말하든지 받아들일 때, 젖 먹일 때 하나님의 중심 사상에 심어줘야 합니다. 조금만 시간 지나면 늦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자녀가 품속에 있습니까? 혹시 여러분과 함께 성장하는 과정에서 품속에 있을 때에 놀라운 일이 일어나도록, 참 하나님이 역사하실 하나님의 렘넌트로 이 기회에 완전한 자녀로 키우십시오. 응답받는 자로 키우면 크면 반드시 그로 통해 하나님이 축복하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키울 때에, 이미 지혜를 주십니다. 길을 열어 주십니다. 기도 응답을 해 주실 것입니다. 이 재미를 맛보지 못하면 불행한 부모가 됩니다. 이 재미를 확인하시고 비로소 축복의 자녀로 키우는 일에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축복이 시간된 순간부터 믿음대로 구하면 됩니다. 믿음대로 구하면 응답하시고 축복하십니다. 이때는 여러분들이 자녀를 위해, 렘넌트를 향해 눈을 열 때 24기간 기도가 저절로 됩니다. 왜? 우리 자녀들이 이 험악한 세상 속에 빠지지 않도록 하나님의 손길로 인도해 달라는 기도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 축복된 기도가 시작되는 동안에, 하나님은 자녀뿐 아니라 여러분 개인에게 축복하십니다. 요게벳이 모세를 갈대 상자에 담아 기도할 때부터 기도한 대로 되었습니다. 이것은 보통일이 아닙니다. 그 과정에 교묘하게 하나님이 시간을 맞춰서 믿음의 기도대로 응답하셨습니다. 요게벳의 기도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를 바로 키우려고 생각만 해도 기도대로, 믿음대로 응답하실 것입니다. 미리 응답하실 것입니다. 렘넌트를 키우는 일에 정말 승리하는 축복된 여러분들로 하나님의 승리의 자녀로 세워지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아버지여,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실 렘넌트가 필요합니다. 이 렘넌트를 키울 하나님의 백성들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우리 자녀들을 하나님이 눈을 열어주셔서 믿음대로 성령이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축복과 역사로 키울 수 있도록 복을 주시고, 이들이 커서 세계를 바꾸는 렘넌트들로 축복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서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실제로 볼 것을 보는 것입니다. 실상을 보는 눈이 열려야 합니다. 볼 것을 볼 때에 비로소 축복이 시작됩니다. 눈을 뜨고도 못 보는 사람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래서 눈을 뜨고 볼 것을 볼 수 있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1. 맹인이 보인 신앙생활의 모본
1) 맹인은 일생동안 기다려온 유일한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예수님을 크게 소리쳐 불렀습니다.
2) 여러분도 정말 갈급한 심정으로 주실 말씀을 생각하며 예배를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3) 성도의 신앙생활 과정
① 믿음의 눈이 열리는 순간부터 감사가 회복됨
②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이 시작됨
③ 이때부터 하나님이 모든 것을 축복으로 준비하심
2. 예수님의 질문
1) 아담의 범죄 후에 하나님께서 “네가 어디 있느냐?” 하셨습니다.
① 오늘도 여러분은 어디에 있다가 오셨습니까?
② 인간은 누구나 상관없이 죄와 허물, 저주와 죽음 속에 갇혀 있음(창3:1-6, 16-24).
③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와 허물에서 성령의 역사로 해방 받는 사실을 체험하시기 바람
④ 계속해서 체험하는 동안 말씀에 뿌리를 내리게 되고 죽음과 멸망 속에서 영원히 빠져나옴
⑤ 말씀에 뿌리내리지 못하면 또다시 죽음과 멸망, 사단의 손에 빠지게 됨
2) 예수님께서는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물으셨습니다.
① 맹인은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하고 평생의 소원을 호소하였음
② 이는 오늘도 주님을 찾아온 죽음과 멸망 속에서 허덕이다 찾아온 여러분의 소원임
③ 내게 어떤 말씀이 성취되길 원합니까?(41)
④ 믿음이 여러분의 삶을 열어주실 것임(42)
3. 우리는 이 시대에서 무엇을 보기 원합니까?
1) 렘넌트를 보아야 합니다.
① 모든 축복이 이 안에 있음
② 유대인들은 젖먹이 때에 유대인으로 교육함
③ 요게벳은 애굽 궁중에 아들 모세의 유모로 들어가 젖먹이며 유대인으로 키웠음
④ 젖먹일 때에, 품안에 있을 때에 아이의 중심 속에 사상으로 심어야 함
2) 축복의 자녀를 키우는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① 믿음대로 구하면 축복하심
② 렘넌트 향해 눈 열면 24시간 기도가 저절로 나옴
③ 기도대로 응답될 것이며 이 때 기도하는 부모도 축복하심(요게벳)
④ 자녀를 바로 키우려고 생각만 해도 응답하실 것임
인사하겠습니다. 평강하십시오. 안녕하십시오. 감사합니다. 제가 요즘은 언제부터인가, 뒤에 앉아서 성도들의 교회 출석하는 경향을 살펴보니 11시에는 자리에 차지를 않아요. TV를 보는지, 아니면 게으름을 피우는지 성도들이 많이 안 보이다가 11시가 넘으면 모여들기 시작하는데, 그것도 11시 10분이 넘어 조금씩 성도들이 오고, 지금까지도 계속 들어옵니다. 늦게 와서는 자리에 앉았다가 시원찮으면 다른 자리에 앉고 왔다 갔다 하는데, “늘 일찍 나오셔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립시다”라고 제가 광고를 한번 해야 하겠다 생각을 했습니다.
록펠러가 세계적인 축복 받은 이유가 돈만 낸 것 때문이 아니라, 아무리 바빠도 40분 전에 교회 앞자리에 앉아서 예배드린 것이 축복의 기회였습니다. 매주 놓치지 않고 그렇게 예배를 드렸습니다. 십일조 헌금을 많이 드렸다는 것 보다 예배를 사모하는 그의 마음 중심으로 그를 축복하신 것입니다. 정말 십일조를 드린 그에게 복음의 배경을 바로 알고 교회 앞자리에 40분 전에 앉아서 놓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말씀 묵상하고 주실 말씀을 생각함으로 큰 축복과 은혜를 받았고 또한, 세계적 축복의 모델로 하나님이 세우셨습니다.
나는 우리 교인들이 축복 받기를 원합니다. 주일날 하나님의 축복 받을 자리에 여러분이 서길 원합니다. 율법이다 뭐다 할 것 없이 늦게 오는 성도들조차도 축복받길 원합니다. 교회서 늘 광고하는 것을 기억하시고, 교회에 왔다 간다 하는 배경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사모하는 자들로 서게 되면 하나님이 축복하십니다.
특별히 렘넌트들이 왔다 갔다 많이 하는데, 축복하실 분들이 바로 렘넌트들 입니다. 렘넌트들이 회복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앞으로의 계획입니다만 훈련이 되면, 문을 잠글 생각입니다. 일차적으로 하층만 잠그고 2층에는 문을 열어놓겠습니다. 2층도 시간되면 잠글 생각입니다. 그러면 성도들의 예배에 대한 생각이 좀 바꿔질 것 같습니다.
옛날에는 예배 시간을 엄격히 생각하고 예배시간 늦게 온다는 것은 성도로써 자격미달입니다. 예전에는 예배에 좌석이 다 차면 잠그기도 했는데 그래도 문 두드리는 사람이 있기도 했습니다. 문이 잠기었다면 눈치 채고 2층 조용히 올라가든지 해야지 2층에 올라가서도 여기 저기 옮겨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특히, 렘넌트들 중에 그런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은 제가 일차적으로 정신문제 있는 사람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나는 정신문제가 아니다 라고 확신하는 사람들은 알아서 교회 예배에 제 시간에 참석하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어린이 날, 연휴인데도 이 자리에 어린이들과 놀러 가지 않고 이 자리에 오셨다는 것이 큰 축복입니다. 할렐루야! 보통축복이 아닙니다. 오늘 말씀 붙잡고 갈 때, 하나님이 개인과 후손들에게 큰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받아합시다. “주여 보게 하소서” 이것이 오늘 드릴 말씀입니다.
제가 늘 강단에 서면 메시지 시간이 길다고 해요. 오늘은 작심하고 짧은 시간에 메시지를 전하려 합니다. “오늘 박 목사가 강단에 섰으니 죽었구나”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한번 받아합시다. “나는 오늘부터 살았구나” 할렐루야! 어쨌든 오늘, 말씀 들을 수 있다는 자체가 큰 축복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실제로 볼 것을 보는 것입니다. 진짜 실상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려야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볼 것을 볼 때에, 비로소 축복이 시작됩니다. 본문 누가복음 18:36에 보면, “무리가 지나감을 듣고 이 무슨 일이냐고 물은대 그들이 나사렛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하니 맹인이 외쳐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앞서 가는 자들이 그를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상당히 재미있는 내용입니다. 새로운 번역에는 ‘맹인’이라 번역되어 있는데, 옛날 번역에는 ‘소경’이라 했습니다. 눈을 감았든지 떴든지 못 보는 사람을 소경이다 합니다. 눈뜬 자 중에도 앞을 보지 못하는 소경이 많습니다. 눈을 뜨고 볼 것을 볼 수 있다는 축복이 가장 축복된 것입니다. 눈이 감겨 못 보는 사람과 뜨고도 못 보는 사람이 가장 큰 장애라고 생각이 듭니다.
제가 사는 아파트 같은 라인(동)에 소경된 분이 계시는데, 교회에 나가시더라고요. 늘 인사도 하고 때에 따라 만나서 이런 저런 이야기도 주고받는데, 저는 그분을 볼 때마다 하나님의 긍휼을 받을 자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크로스비의 찬송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찬송이 된 것을 잘 알지 않습니까? 크로스비 여사가 복음을 깨닫고는 그렇게 원하는 눈뜨는 일을 포기 했습니다. “앞을 못 봐도 좋습니다. 다만, 하나님을 더 볼 수 있는 축복을 주옵소서”라고 기도한 내용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그의 복입니다. 눈뜬 자마다 더 행복하게 살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저희 아파트 같은 동에 사는 소경 분을 보면 절대 혼자 아파트를 오르고 내려가는 하는 일이 없습니다. 늘 옆에 자기 부인을 대동하고 이동합니다. 부인과 대동할 때도 부인이 일일이 손잡고 다닙니다. 어떤 면에서는 눈감았다는 것이 참 행복하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곁에 부인과 손잡고 다니니까요. 부인과 손잡고 다닌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저는 저희 집사람과 손잡고 다녀 본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이 분은 늘 손잡고 다닙니다. 손 안 잡으면 안 되니까요. 한편으로 보면, “이 분이 나보다 더 행복하구나”하는 생각을 할 때도 있습니다. 저의 집사람은 혹시나 제게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으려나 하는 차원에서 함께 차를 타고 다닙니다만, 손잡고는 다니지 않습니다. 그 부부가 손을 잡고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소곤소곤하며 가는데, 참 행복해 보인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한번은 옛날 생각이 문득 났습니다. 저희 집 사람의 눈에 핏줄이 파열되어서 앞이 안 보였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는 제가 손을 잡고 다니면서 “여기는 계단이다, 여기는 웅덩이가 있다 여기에는 물이 고여 있다”는 등의 이야기를 해주곤 했는데, 어떤 사람들의 눈에는 참 다정하게 보였나 봐요. 제게 묻기를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부부간에 참 다정하게 나누느냐고 하더라고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오해하는 것이 쉬운 일이구나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정말 볼 것을 못 보고 자기들 생각으로 생각하는구나 싶었습니다. 그 나이에 뭐 그렇게 다정하게 이야기 할 것이 있겠습니까? 제게 묻는 사람에게 웃으며 대답하길, 다정하게 이야기 한 것이 아니라, 앞을 보지 못하니까 위험 할 수가 있으니, “계단이다, 웅덩이다 피해라”라고 말한 것이라고 답변 해줬습니다. 옆에서 보기에는 굉장히 다정하게 보였나봐요. 제가 이렇게 보여도 굉장히 인정스럽게 보이는 가봐요. 우리 집에서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그렇게 보였나 봅니다.
어쨌든 제게도 그런 행복스러운 시간이 있었다는 것 감사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오셨다는 것을 감사하십시오. 누가복음 18:37에 무엇으로 맹인이 예수님을 찾아오게 되었느냐? 나사렛 예수가 지나간다 하는 그 소문을 들은 것입니다. 이 소문은 맹인이 기다리던 유일한 기회였습니다. 이 맹인은 볼 수 있는 사람도 아니고, 앞 못 보는 것을 도와주는 가족이 있는 그런 행복한 사람도 아닙니다. 가정도 다 떠난 자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가 지나신다는 소문에 38절에 보니“소경이 외쳐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외쳐 가로되 예수가 지나간다 하시니 그렇게 기다리던 기회였기 때문에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쳤다 했습니다. 음성이 얼마나 컸던지 39절에 보면, 앞을 지나가던 제자들과 무리들이 꾸짖습니다. “앞서 가는 자들이 그를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역시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라고 소리를 높입니다. 놓치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 신앙의 모본입니다. 우리가 주일날마다 예수를 만나기 위해, 하나님의 은혜 받기 위해 교회에 찾아옵니다. 갈급한 심령으로 먼저 와서 그날 주실 말씀을 묵상하고 그렇게 예배를 준비할 때, 반드시 하나님은 반드시 은혜로 임하여 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세계에서 유래 없이 물질로 복을 받은 록펠러의 본입니다. 그렇게 바쁜 록펠러도 주일날만큼은 40분 앞서 교회 제 앞자리에 앉아서 예배시간에 주실 말씀을 생각하면서 예배를 준비했다 했습니다.
나는 우리 교인들이 축복받길 원합니다. 그리고 목사 혹은, 말씀 전하는 분이 누구든지 상관없이 말씀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준비하는 자에게 성령으로 임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실 것이 확실합니다. 믿는 자에게 축복하실 것입니다. 이 축복을 소경은 확실히 누렸습니다. 얼마나 소리를 크게 질렀든지, 앞서가는 자들이 “잠잠하라” 할 정도로 외쳤는데 예수님은 그 간절한 맹인의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가시던 길을 멈추고 말씀하셨습니다. “앞서 가는 자들이 그를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명하여 데려오라 하셨더니 그가 가까이 오매 물어 이르시되”
여러분, 이미 이 맹인은 일생에서 단 한번뿐인 기회를 생명 걸고 붙잡았습니다. 한 주간 한 번씩 지나는 주일이지만, 이 시간이 지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이 시간에 확실히 말씀 붙잡을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내게 머물러 설 수 있도록 말입니다. 여기에 모든 축복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41절에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명하여 데려오라 하셨더니 그가 가까이 오매 물어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그럴 때에 볼 것을 보게 하신 예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매 곧 보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를 따르니
신앙생활의 과정을 이야기 하시는 것 같아요. 예수님이 축복하시는데, 믿음의 눈이 열려 보는 순간부터 “믿음대로 될 지어다” 했습니다. 그리고 이 맹인을 예수님을 쫓게 하시고, 볼 것을 보는 순간부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렸습니다. 이것이 성도의 신앙생활의 과정입니다. 어디까지 가야하느냐? 볼 것을 본다는 것은 믿음의 눈이 열릴 때, 말씀이 하나하나 응답된 사실을 보는 순간부터 감사함이 회복됩니다. 그때부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이 시작됩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축복으로 이때부터 준비하신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생각하고 축복의 말씀을 잡을 것은, 예수님의 질문입니다. 하나님도 아담에게 하신 첫 번째 질문이, “네가 어디에 있느냐?” 질문하셨습니다. 오늘도 여러분은 어디에 있다가 오셨습니까? 누구나 상관없이 죄와 허물 속에 갇혔습니다. 창세기 3:1~6과 16절에서 마지막 절까지 나와 있습니다. 나는 아니라 해도 저주와 죽음 속에 빠져 있습니다. 거기에 다 빠져 있습니다. 예수 믿어도 거기에 빠져있습니다.
주일날만이라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와 허물로 인해, 성령의 역사로 사실을 체험하시길 원합니다. 한번 두 번 체험하는 것을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체험하는 동안, 말씀에 뿌리를 내리게 됩니다. 왜 우리가 자꾸 문제 속에 빠지느냐? 다른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문제 속에서 나왔다 싶은데, 말씀에 뿌리 내리지 못하니까 죽음과 멸망, 사단의 손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나도 모르게 욕심과 정욕과 체질을 통해 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주일날 말씀의 성취가 내안에 실현되는 순간마다 해방의 축복과 기쁨이 체험되는 만큼 그곳에서 영원히 빠져 나올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이미 체험된 사람도 있지만, 지금도 체험되고 있습니다. 체험되는 것으로 끝나지 말고 계속 말씀에 뿌리 내려서 사단과 흑암과 공허가 나와 상관없도록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도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무엇을 원하느냐?”란 질문에 “주여 보기를 원합니다” 맹인의 평생소원이요 오늘도 주님을 찾아온 이 사람의 이유이며 소원입니다. 그리고 오늘도 죽음과 멸망 속에서 허덕이다가 찾아온 여러분들의 소원입니다. 주일날 마치 아침부터 와서 준비하는 것은 맹인같이“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호소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호소하는 맹인에게 하나님이 축복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무엇을 하여주길 원하느냐?” 오늘 여러분에게 말씀이 요구하는 것을 확실히 붙잡으시길 바랍니다. 무슨 말씀이 임하길 원합니까? 내게 어떤 말씀이 성취되길 원합니까? 조금만 눈이 열리면 됩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오늘도 이 축복의 언약을 붙잡고 돌아가게 될 때에 모든 일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믿음이 여러분의 삶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에 있어서 불신앙만큼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한번 불신앙 한 것 때문에 모든 것이 흩뜨려 집니다. 믿음만 가지면 해결되게 되어 있습니다. 말씀에 뿌리 내리고 응답받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의 질문입니다. 여러분에게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을 요구하는 축복된 대열에 서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보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보기를 원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저는 보기를 원하는 여러분에게 볼 수 있는 대상을 말하고자 합니다. 렘넌트를 보세요. 여러분, 모든 축복이 이 안에 있습니다. 류 목사님이 계속 말씀하시면서, 강조하는 부분이 이 부분입니다. 보이지 않는다면 기도해야 합니다. 보여져야 합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축복이 약속되고 부어주십니다. 여러분의 아들과 딸들, 그리고 손자, 손녀가 보여져야 합니다.
원래 유대인들은 어린 아이들을 언제 교육을 시키냐 하면, 젖먹일 때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아이들 젖먹이는 연수가 상당히 깁니다. 적어도 3살까지 젖을 먹입니다. 저도 젖 먹던 시간이 길었다고 합니다. 고집이 세서 떨어지지 않더라고 합니다. 제가 기억을 할 정도 까지 젖을 먹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젖 먹는 시간에 유대인들은 교육을 합니다. 유대인은 결혼했을 때, 부인이 유대인이면 유대인으로 들어올 수 있으나, 부인이 이방인이면 남편이 유대인이라도 귀화가 안 됩니다. 그 배경이 바로 유대인의 교육 때문입니다. 후손들을 젖 먹이며 유대인으로 만듭니다. 유대인의 교육으로 완성시킵니다.
모세를 낳자 모세 어머니가 석 달 간 몰래 숨겼지만 음성 커지고 아이가 점점 커가니 숨길 수 없어서 광주리에 담아 강물에 던졌습니다. 중요한 것은 요게벳이 자기 아들을 숨길 때에 그냥 숨긴 것이 아니라, 이 아이를 유대인으로 키우기 위해 시간을 벌었습니다. 그러면서 석 달 이상은 어려우니 아이를 광주리에 넣어 강물에 던지면서 강물에 띄우는데, 얼마나 기도하면서 띄었겠습니까. 그렇게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인도를 벌써 받습니다. 이것이 렘넌트를 키우는 부모의 지혜입니다. 갈대 상자를 만들어서 역청으로 바르고 물이 안 들어오도록 강물에 띄웁니다. 지혜롭게 계획해서 공주가 나와서 목욕하는 시간에 맞춰 갈대상자를 띄었습니다. 모세를 키울 준비를 마음으로 다 했습니다. 하나님이 이 아이를 축복하실 것을 봤으니까요.
그러니 공주가 갈대 상자 안에 있는 아이를 건져보니 유대인인 것입니다. 자기 아들을 삼아서 바로왕의 실세가 공주였습니다. 모세가 양자로 들어가면서 어떻게 권력의 힘이 있었느냐? 실세였기에 그렇습니다. 애굽을 이어받을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를 어머니 요게벳이 갈대 상자에 띄우며 하나님이 인도하실 것을 확실히 믿었습니다. 왜? 렘넌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분명히 키우실 것을 믿었습니다. 왜 이스라엘을 구원할 사명자이기 때문입니다. 흑암세력을 꺾고 선교의 역사로 이끌어갈 사람이기에 하나님이 키우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딸을 보냈습니다. 기도대로 응답하여 주셨습니다. 공주가 젖먹일 사람을 찾았습니다. 유모로 추천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요게벳이 궁중에 들어가서 모세를 젖먹이며 유대인으로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유대인의 교육이 오게벳을 통해 모세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여러분, 부모들에게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하나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릴 때, 품안에 있을 때에, 렘넌트 때 하나님의 자녀로 키우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의 역사로 키우십시오. 하나님은 반드시 역사하실 것입니다.
일본에 있는 저희 딸 세염이의 딸 아이 서희가 3살이 되는데, 할머니가 전화하면, 받기 전부터 “싫어 싫어” 라고해요. 어른과 통화하면 재미없거든요. 전화하면 “네 마음속에 하나님이 계시냐?” 물으면 대답은 하지만 지겨워하는 것을 봅니다. “싫어 싫어”하면 엄마한테 꾸중 들으니까, 요즘은 지혜가 생겨서 “싫어”를 일본말로 대답합니다. 일본 말로 대답을 하면 할머니가 엄마 바꿔 달라 하지요. 하나님계시냐 마음에 계시냐? 하면 일본말로 대답합니다. 제가 무슨 생각을 했느냐, 벌써 이때만 해도 시간이 이미 지났습니다. 무슨 말하든지 받아들일 때, 젖 먹일 때 하나님의 중심 사상에 심어줘야 합니다. 조금만 시간 지나면 늦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자녀가 품속에 있습니까? 혹시 여러분과 함께 성장하는 과정에서 품속에 있을 때에 놀라운 일이 일어나도록, 참 하나님이 역사하실 하나님의 렘넌트로 이 기회에 완전한 자녀로 키우십시오. 응답받는 자로 키우면 크면 반드시 그로 통해 하나님이 축복하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키울 때에, 이미 지혜를 주십니다. 길을 열어 주십니다. 기도 응답을 해 주실 것입니다. 이 재미를 맛보지 못하면 불행한 부모가 됩니다. 이 재미를 확인하시고 비로소 축복의 자녀로 키우는 일에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축복이 시간된 순간부터 믿음대로 구하면 됩니다. 믿음대로 구하면 응답하시고 축복하십니다. 이때는 여러분들이 자녀를 위해, 렘넌트를 향해 눈을 열 때 24기간 기도가 저절로 됩니다. 왜? 우리 자녀들이 이 험악한 세상 속에 빠지지 않도록 하나님의 손길로 인도해 달라는 기도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 축복된 기도가 시작되는 동안에, 하나님은 자녀뿐 아니라 여러분 개인에게 축복하십니다. 요게벳이 모세를 갈대 상자에 담아 기도할 때부터 기도한 대로 되었습니다. 이것은 보통일이 아닙니다. 그 과정에 교묘하게 하나님이 시간을 맞춰서 믿음의 기도대로 응답하셨습니다. 요게벳의 기도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를 바로 키우려고 생각만 해도 기도대로, 믿음대로 응답하실 것입니다. 미리 응답하실 것입니다. 렘넌트를 키우는 일에 정말 승리하는 축복된 여러분들로 하나님의 승리의 자녀로 세워지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아버지여,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실 렘넌트가 필요합니다. 이 렘넌트를 키울 하나님의 백성들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우리 자녀들을 하나님이 눈을 열어주셔서 믿음대로 성령이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축복과 역사로 키울 수 있도록 복을 주시고, 이들이 커서 세계를 바꾸는 렘넌트들로 축복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서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실제로 볼 것을 보는 것입니다. 실상을 보는 눈이 열려야 합니다. 볼 것을 볼 때에 비로소 축복이 시작됩니다. 눈을 뜨고도 못 보는 사람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래서 눈을 뜨고 볼 것을 볼 수 있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1. 맹인이 보인 신앙생활의 모본
1) 맹인은 일생동안 기다려온 유일한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예수님을 크게 소리쳐 불렀습니다.
2) 여러분도 정말 갈급한 심정으로 주실 말씀을 생각하며 예배를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3) 성도의 신앙생활 과정
① 믿음의 눈이 열리는 순간부터 감사가 회복됨
②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이 시작됨
③ 이때부터 하나님이 모든 것을 축복으로 준비하심
2. 예수님의 질문
1) 아담의 범죄 후에 하나님께서 “네가 어디 있느냐?” 하셨습니다.
① 오늘도 여러분은 어디에 있다가 오셨습니까?
② 인간은 누구나 상관없이 죄와 허물, 저주와 죽음 속에 갇혀 있음(창3:1-6, 16-24).
③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와 허물에서 성령의 역사로 해방 받는 사실을 체험하시기 바람
④ 계속해서 체험하는 동안 말씀에 뿌리를 내리게 되고 죽음과 멸망 속에서 영원히 빠져나옴
⑤ 말씀에 뿌리내리지 못하면 또다시 죽음과 멸망, 사단의 손에 빠지게 됨
2) 예수님께서는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물으셨습니다.
① 맹인은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하고 평생의 소원을 호소하였음
② 이는 오늘도 주님을 찾아온 죽음과 멸망 속에서 허덕이다 찾아온 여러분의 소원임
③ 내게 어떤 말씀이 성취되길 원합니까?(41)
④ 믿음이 여러분의 삶을 열어주실 것임(42)
3. 우리는 이 시대에서 무엇을 보기 원합니까?
1) 렘넌트를 보아야 합니다.
① 모든 축복이 이 안에 있음
② 유대인들은 젖먹이 때에 유대인으로 교육함
③ 요게벳은 애굽 궁중에 아들 모세의 유모로 들어가 젖먹이며 유대인으로 키웠음
④ 젖먹일 때에, 품안에 있을 때에 아이의 중심 속에 사상으로 심어야 함
2) 축복의 자녀를 키우는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① 믿음대로 구하면 축복하심
② 렘넌트 향해 눈 열면 24시간 기도가 저절로 나옴
③ 기도대로 응답될 것이며 이 때 기도하는 부모도 축복하심(요게벳)
④ 자녀를 바로 키우려고 생각만 해도 응답하실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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