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말을 들으라
2007-01-07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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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강하십시오. 안녕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제목을 “저의 말을 들으라.”로 했는데 곧 언약을 잡으라는 뜻입니다. 강단의 메시지 통해서 언약 잡으라는 말입니다. 지난 해 상당히 힘들고 고통스러운 한 해를 보내면서 많은 사람이 동물에게 위로를 받습니다. 교인들도 한 번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늦게 들어갈 때 반기는 게 고양이와 개 뿐이라서 거기에 위로를 받으려 하는데 진짜로 생각해봐야 하겠습니다.
자기가 기르던 고양이를 죽인 남편 앞에서 고양이를 따라 죽은 아내의 기사를 보면서 진짜 당황하게 됩니다. 어떻게 이렇게 타락하게 됐는가 싶습니다. 남편이 고양이를 죽였는데 아마 상당히 귀찮았겠지요. 제가 고양이를 좀 길러봤는데 꼭 밤이 되면 집사람과 제 사이에 자리를 잡습니다. 보통 미운 짓을 하는 게 아닙니다. 집사람은 너무 좋아하고 저는 반대로 너무 싫어합니다. 고양이를 안고 어르고 하다보면 대화가 다른 데로 뺏겨버립니다. 저는 이 남편의 심정이 이해가 됩니다. 그런다고 따라서 죽는 아내도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얼마나 위로를 얻을 데가 없었으면 여기다가 의지 하다가 영원한 멸망으로 갔겠습니까. 가치 기준이 없이 흔들리고 있는 이 땅의 모습을 말하고 있습니다. 개, 고양이를 싫어하라는 내용이 아니라 정말 교제하고 사랑해야 할 절대적인 대상을 놓치면 이 모양으로 빠집니다.
자녀들이 너무 개를 좋아해서 못살게 하는 걸 보았습니다. 우습게도 개를 너무 좋아하는 세광이 목소리가 현관에서 들리면 개가 도망을 치기도 했습니다. 결국 남을 줬습니다만 개, 고양이를 길러보면서 가치기준을 바로 하지 않으면 오늘날 세상이 이처럼 될 수 있겠다 싶어 말씀을 드립니다.
그래서 올해는 진정한 가치기준을 잡고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하신 한 해 주제대로 응답 받아야 하겠습니다. 이것은 내가 노력하고 애쓴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을 잡고 내 개인이 그 임마누엘의 역사를 누리면 성령의 인도로 이루어집니다. 우리 생활과 삶에 이런 역사가 나오게 됩니다.
금년도 원단 메시지가 “현장을 정복하라, 경제를 정복하라, 문화를 정복하라”입니다. 이것은 여러분 스스로 하는 일이 아닙니다. 임마누엘의 약속 잡으면 성령이 인도하십니다. 우리 마음과 생각이 주권 속으로 들어가면 하나님이 성취하십니다.
올해도 기도제목을 다 제출했습니다. 가정에 반드시 성령인도 받고 나가면, 여러분 소원을 이룬다면 좀 이상합니다만 그렇게 이루실 수 있도록 하나님이 계획하실 것입니다. 영원 전부터 내 모든 인생을 준비하시고 지금 이 시점에서 나를 하나님 자녀로 만드시고, 영원 후까지 나를 완벽하게 준비하시고 인도하심 속에,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모심으로 말미암아 그 속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게 주권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있으면 모든 문제를 하나님이 해결하실 것을 약속해주시고 있습니다.
수1:5에 보면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6절에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 할렐루야! 말씀 붙잡고 하나님의 언약잡고 강하고 담대한 마음으로 나가라하십니다. 매번 주저하고 말씀 들어도 염려하는 게 전부 막히는 문제입니다. 우리를 완벽하게 계획하시고 지금도 성령으로 인도하십니다. 이를 위해 성령을 각 개개인에게 보내셨습니다. 말세에 어려운 세상인 줄 아시고 물 붓듯이 부어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성령임재입니다.
이것은 한 마디로 말해서, 형통하게 하신다는 배경이 모세와 함께 했던 것처럼 너의 평생에 함께 하리라는 임마누엘입니다. 이걸 가지고 복음이라 합니다. 이걸 가지고 생명이라 합니다. 그래서 언약을 잡고 생명 잡고 담대히 나가면 하나님이 승리하게 하십니다. 금년도도 축복과 은혜로 모든 것 준비해 놓으셨다는 말씀입니다. 이 사실 붙잡는 동시에 하나님은 미래에 역사하실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먼저 복음으로 생명으로 임마누엘로 시작하셔야 합니다. 오늘 청지기 주일인데, 청지기는 근본적인 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따라 올 수 없습니다. 옛날에 집사라는 말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몸도 마음도 물질도 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게 맡겨 주셨습니다. 나는 그것을 담당해서 관리할 뿐입니다. 잘 아셔야 합니다. 저는 건강 문제로 이 문제에 대해 큰 소리 못 치겠습니다만, 그래도 하나님 앞에 감사함으로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몸도 여러분이 하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이 몸을 상하게 한다면 죄악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몸을 강건하도록 인도하고 관리해 나가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그래서 렘넌트 때부터 운동의 습관을 기르라 합니다. 제 경우에는 운동기구 사다놓고도 안 합니다. 몇 번 하다가 금방 안 하게 됩니다. 요번에도 자전거 운동기구를 사놨는데 이번에는 시도해볼 생각입니다. 집사람도 운동을 꼭 해야 될 형편입니다. 그런데 어려서부터 이게 습관이 안 되어 있습니다. 몸이 내 것인 줄로 압니다. 몸도 하나님의 것이기에 관리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갖고 있는 재물, 경제력도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다윗이 대상29장에 말씀했지요. 모든 것을 하나님이 주셨고, 하나님이 주신 것 가지고 하나님께 헌금하니 너무 감사하다 했습니다. 재물을 내가 열심히 해서 버는 것 같지만 오늘부터 그런 생각 다 버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은혜 주셔야 재물도 붙습니다. 지금까지 재물을 얻으려고 많이 애썼습니다만 은혜 주시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은혜 주셔야 하는데 그 바탕이 하나님이 내게 주신 재물을 언약 따라, 언약 붙잡고 관리하면 됩니다. 자기가 모았다고 생각하니까 언약과 상관없이 마음대로 쓰는데 그러면 안 됩니다.
요즘은 완전히 초월하고 누리고 있습니다만, 제가 자동차를 타고 갈 때에 이게 교회 것이라고 생각할 때는 사적인 볼일에 제 돈으로 기름을 넣었습니다. 요즘은 그런 생각 없이 내가 사는 삶이 곧 교회의 삶이라고 생각하고 (편안하게) 쓰고 다닙니다만, 이것이 교회 것이라 생각할 때는 내가 가지고 있어도 함부로 못했습니다. 너무 철저히 율법주의라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부흥회 갈 때도 이것 때문에 고통 받았습니다. 부흥회 올라가면 내 와이셔츠, 속내의하고 전부 새 것으로 갈아입고 올라갑니다. 거기서 강사비를 받으면 내가 교회에서 일할 것인데 여기서 받았다고 다 내 것이 아니라 생각해서 그 돈을 쓰는 게 마음대로 안 됩니다. 꼭 십일조를 계산해서 옷 값 등을 계산하고 다 떼어버리면 막말로 내게 경제적으로 남는 게 없습니다. 부흥회를 초청해도 잘 못 갔는데 사실 안 갔습니다. 부흥회 사례 받으면 가져와서, 내가 교회에서 일할 때나 다른 교회에서 일할 때나 다 마찬가지인데, 다른 교회에서 일했다고 사례비를 주셨는데 내가 마음대로 쓸 수 있나 싶어서 전부 헌금을 드렸습니다. 그러면 오히려 손해가 되었습니다.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저도 돈을 벌려고 생각했다면 집을 몇 채 사둘만큼 많이 벌었을 겁니다. 다만 마음속에 지금까지 생각하는 것이 하나님이 주실 것이라는 겁니다. 저는 제 몸보다도 경제적인 문제를 특별히 그렇게 생각을 하고서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은혜 주실 것입니다.
건강문제도 보시면 알잖아요. 하나님이 은혜 안 주시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건강입니다. 오늘도 은혜 주심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세상이 점점 어려워지는데, 호흡하기도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서울에는 지리산 공기를 산소탱크에 넣어 와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공급해 준다고 합니다. 나쁜 공기를 마시다가 그 공기를 마시면 그렇게 시원하고 좋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저 같이 건강이 안 좋으면 공기가 나쁘면 금방 느끼게 됩니다. 제 방 책꽂이에 책이 가득 꽂혀 있는데 책이 썩어서 냄새도 나고 공기가 탁합니다. 연약한 사람은 공기에 대해 아주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집사람도 총신을 다니면서 덕평을 가면 그렇게 공기가 좋고 달다고 합니다. 세상이 점점 어렵게 되어 공기도 험악해져서 모든 지병들이 찾아옵니다. 더 큰 문제는 지구상에 신선한 공기를 공급하던 빙산이 자꾸 무너진다고 합니다. 얼마 전 TV에 보니까 북극의 백곰이 기후온난화로 점점 멸종해간다고 합니다. 금년도도 지구온난화 때문에 별로 춥지 않다고 합니다.
또 말세 시대에 어려운 문제는 내가 선하고 착하고 잘 사는 것만이 다가 아니라 내 주변 전체가 오염으로 둘러싸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진짜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이 뭡니까? 지난 시간에 하나님이 하신 일을 보라고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2007년 첫 주 청지기 주일입니다. 내가 과연 어떻게 살아가야 될 것인가 할 때 청지기로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근본 뜻이 이해되지 않으면 도저히 청지기로 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 몸도 경제도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주셨다는 사실에 확인이 없으면 청지기적인 삶, 신앙이 될 수 없습니다.
지난주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삶과 생명에 대한 인식이 안 되어서 우리 삶은 율법적이고 신비적이고 종교적이다가 삶과 행동 자체에 역점을 둘 때가 많게 됩니다. 여러분 눈이 생명으로 가야 합니다. 참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냐? 없냐? 에 따라 된다, 안 된다가 결정됩니다. 생명의 근원 되신 생명의 주로 말미암은 삶이 아니면 나도 모르게 다른 것으로 빠질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설명이 안 되니 비유로 설명을 했습니다. 마13:43에 보면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했습니다. 의미심장한 말씀입니다. 귀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성령으로 이 말씀이 들려야 합니다. 44~46절에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 할렐루야. 제가 지교회 감사예배로 창녕에 갔을 때에 이 메시지를 드렸습니다만, 금년도에 정말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축복의 언약을 잡고 갈 수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저는 30여 년 동안, 지금까지 송현교회를 비롯해 하나교회까지 오면서 교인들이 축복 받고 망하는 사실을 생생히 똑똑히 지금까지 보아왔습니다. 예를 들어 누구를 구체적으로 말하면 실감이 나지만 그렇게 할 수 없어 빙 둘러서 늘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중직자이든 평신도든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자세가 어떠한 것인지 말하고 싶습니다. 약속을 따라 한 번 살펴보려 합니다.
복음이라고 그러면 언약입니다. 보화라고 할 때에 언약을 말합니다. 이 당시에 은행도 발달하지 못해서 금은보화를 모으면 자기만 아는 곳에 독에 넣어 묻었습니다. 더구나 유대사회는 외부 침입이 많아서 이런 문화가 만연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문제가 생겨서 땅 주인이 자기 자녀들에게 유언도 못하고 죽어버렸습니다. 유대사회는 이런 일이 많습니다. 땅은 자손들이 가지고 있지만 보화가 있는지는 모르는 겁니다. 땅 속에 묻어놓은 보화는 땅 주인이 갖도록 유대 법에 되어 있습니다. 한 날은 땅을 임대한 농부가 밭을 갈다가 뭔가 걸려서 보니 독이 묻혀있는데 열어보니 찬란한 은금보화가 가득한 겁니다. 가슴이 두근거리는데 다시 뚜껑을 덮고 흙으로 덮었습니다. 그리고서는 돌아와서 이 농부가 어떻게 했습니까? 자기 밭이 아니기 때문에 법적으로 내 소유가 되기 위해서는 밭이 자기 소유가 되어야 하는 겁니다. 돌아와서는 아무 소리 않고 자기 소유를 다 팔아서 그 땅을 사려하는 겁니다. 그런데 안 사려 할 때는 문제되지 않지만 어떤 사람이 굳이 땅을 사려하면 땅 주인이 괜히 값을 올립니다. 가문의 땅이라서 팔 수 없다하면서 사천만, 오천만 원을 주려해도 안파는 겁니다. 일억 원을 주겠다. 하니까 비로소 팔겠다. 하는데, 구매자가 그 돈을 장만하려면 자기에게 있는 것 없는 것 다 팔아야 합니다. 그러면 옆에 있던 부인이 미쳤냐고 할 겁니다. 우리도 똑같을 것입니다. 아주 중요한 예화입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의 가치가 인식되는 그 때부터 하나님 앞에 여러분에게 있는 것을 진정으로 드릴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이게 안 되면 아까워서 못 드립니다.
예전에는 주일헌금 낼 때에 제가 교역자이기도 해서 (돈을 밖으로 꺼내어 보지 않고) 포켓에 손을 넣어 돈을 꺼내 냅니다. 만지다가 만 원이나 오천 원짜리가 나오면 다시 넣어버리고 천 원짜리를 열심히 골라서 내던 기억이 납니다. 요즘은 일단 주일헌금도 십의 삼조를 내는 계획 아래 십의 일조로 나누어 냅니다. 이제는 아예 구별해서 내는 것이 머리에 박혔습니다만, 이렇게까지 오기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구원의 감격과 임마누엘의 은혜가 체험되는 만큼 이 사실을 누립니다. 왜요? 주님은 나를 위해 모든 것 주셨는데 내가 가지고 있는 적은 것도 주님께 드릴 수 없겠습니까?당연히 드릴 수 있지요. (다윗은) 기쁨으로 헌금을 한다고 했습니다.
헌금 할 때에 찬송 부르는 자세부터 좀 달라야 하겠습니다. 헌금 찬송은 좀 즐겁고 기쁜 찬송으로 해야 되겠어요. 꼭 “내게 있는 모든 것을…”이라고 하는데 아주 조금 찢어 드리면서 모든 것을 드린다고 하는 게 가증스러워요. 하나님이 보시면 “자슥아 고마 치아라” 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번 근본적으로 생각해보십시오. 우리 주님께서 생명까지 다 주셔서 내가 참 생명을 얻었습니다. 이 구원이 내가 확인된다면 감추인 보화를 덮어놓고 즐겁게 모든 것을 다 팔았던 농부처럼 내 것을 다 내어놓습니다. 내게 있는 분량이 문제가 아닙니다. 묻혀 있는 것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여자에게 절대 말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얘기했다하면 들통이 나기 때문입니다. 하루에 삼천 마디씩 말해야 몸이 풀린다고 하는 교인도 있다고 합니다. 안 그러면 스트레스가 쌓여서 안 된다고 합니다. 어쨌든 알고 있는 것은 가만히 잊지 못하는 성격이기 때문입니다. 이게 진짜 보화를 발견한 자의 고민입니다. 진짜 이 기쁨이 있고 감격이 내 안에 있습니까? 모든 문제가 여기서 다 해결됩니다. 이 생명 가지게 되면 하나님 앞에 드린다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청지기 주일 때마다 돈을 강조한다고 싶을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진짜로 붙잡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헌금을 작정할 때에 이것이 정말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것으로 하나님께 드립니다.”라고 했던 다윗처럼 여기에 모든 축복이 누려지는 하나님의 약속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하나교회 통해서 (성도들의) 흥망성쇠를 보면서 구체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오늘 성경말씀을 통해서 말씀드립니다. 진짜로 복 받는 것은 다른 게 아닙니다. 예수 믿고 복 받게 해주옵소서! 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기본,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은 복음은 생명, 언약을 말하는데, 이 언약을 잡은 사람은 반드시 모든 사건과 일을 당했을 때 언약으로 재해석해야 합니다. 이걸 복음으로 재해석한다는 말이지요. 생명의 눈으로 재해석해야 합니다. 이걸 가지고 신학이라고 교리라고 합니다.
나름대로 적용하려고 하는데 복음의 눈이 없으니까 다른 데로 가버립니다. 그래서 신학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계획을 거기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이길 힘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성취됩니다. 그리고 이 계획에 대한 마음의 눈이 확실히 열려야 합니다.
열 가지 발판과 하나님의 주권을 많이 말씀드렸는데 여기에 마음을 가지고 눈을 떠야 합니다. 모든 문제를 복음으로 해석할 수 있는 눈이 열리면 망하는 자리에 들어갔다가도 성공을 하고 돌아옵니다. 이것이 안 되면 성공한 자리에 섰다가도 떨어집니다. 축복 받는 것 간단하다고 하는데 물론 간단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듣고 눈을 뜨면 정말 간단합니다.
나오미와 룻의 이야기를 어제 핵심에서 말씀했습니다만, 망할 자리에 갔어도 복음으로 그 문제를 재해석할 때 달라집니다. 나오미가 축복의 자리에 있었습니다. 룻1:1에 보면 “사사들의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우거하였는데”, 여기는 살아있는 남편의 이야기입니다. 남편이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으로 갔습니다. 여기에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꼭 축복의 땅 가나안 땅, 가난하고 굶더라도 언약 속에 있을 때에 반드시 회복되는 날이 옵니다. 그런데 잘 살려고 (옮긴 것입니다).
한국이 축복의 땅 가나안인데 모두들 잘살고 자녀교육 잘 시키려고 보따리 싸서 미국을 가는데 잘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저도 아들이 미국에 가서 공부하고 있습니다만, 진짜 축복의 땅에서 축복을 기다리며 언약적인 약속을 기다리며 있는 것과 그것을 박차고 (다른 땅으로 가는 것이 결과가 완전히 다릅니다). 나오미의 경우에는 언약적 약속을 박차고 완전히 이방 저주의 땅인 모압땅에 갔습니다. 그래서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냐하면, 2절에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그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요 그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니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더라 그들이 모압 지방에 들어가서 거기 유하더니”라고 합니다. 이걸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가난이라는 문제가 생겼어도 복음으로 재해석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자신의 육신적인 생각으로 가난을 피해 모압으로 가자해서 옮긴 결과가 4절에, “그들은 모압 여자 중에서 아내를 취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요 하나의 이름은 룻이더라 거기 거한지 십년 즈음에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그가 모압 지방에 있어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권고하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들었으므로 이에 두 자부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라고 했습니다. 잘 알아야 합니다. 완전히 망했습니다. 어떤 환경이든지 복음으로 생명으로 재해석하십시오. 내 환경도 언약이 있는 내용인지 아닌지 재해석 하십시오.
예를 들어서 축복의 땅 가나안은 가난해도 가나안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욕심으로 해석한 것이 빨리 모압으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모압으로 갔는데 십 년 즈음되어서 다 망했습니다. 남편과 두 아들이 죽고 세 과부만 남았습니다. 시어머니 나오미, 며느리인 오르바와 나오미가 남았습니다. 그래서 나오미가 늦게라도 내 살던 땅, 축복의 땅으로 가야겠다 하면서 언약을 잡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돌아오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있던 곳을 떠나고 두 자부도 그와 함께 하여 유다 땅으로 돌아오려고 길을 행하다가 나오미가 두 자부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각 어미의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와 나를 선대한 것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여호와께서 너희로 각각 남편의 집에서 평안함을 얻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그들에게 입 맞추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울며”(룻1:7-9). 그런데 맏며느리인 오르바는 입 맞추며 가버렸습니다. 그런데 둘째 며느리인 룻은 절대 안 가려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배경을 좀 알아야 합니다. 형이 아내를 취해서 있다가 죽으면 동생이 그 형수에게로 장가듭니다. 그들은 씨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씨 없이 죽으면 안 됩니다. 동생이 죽으면 또 셋째가 형수에게 장가갑니다.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질문한 것이 이것에 관한 겁니다. 일곱이 다 그랬는데 하늘나라 가면 누구의 아내가 되냐고 물었습니다. 대답하기 곤란하지요. 예수님의 대답이 하늘나라는 시집가고 장가감이 없으며 천사와 같다고 했습니다. 거기에 가면 예수 그리스도를 맏형님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두 한 형제가 되어서 정말 즐거운 역사를 누리게 됩니다.
이런 배경으로 나오미에게 룻이 청할 때, “나오미가 가로되 내 딸들아 돌아가라 너희가 어찌 나와 함께 가려느냐 나의 태중에 너희 남편 될 아들들이 오히려 있느냐 내 딸들아 돌이켜 너희 길로 가라 나는 늙었으니 남편을 두지 못할지라 가령 내가 소망이 있다고 말한다든지 오늘 밤에 남편을 두어서 아들들을 생산한다 하자 너희가 어찌 그것을 인하여 그들의 자라기를 기다리겠느냐 어찌 그것을 인하여 남편 두기를 멈추겠느냐 내 딸들아 그렇지 아니하니라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인하여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룻1:11-13). 이스라엘의 전통에 대한 배경이 여기서 나오지요. 오늘 내가 아들을 낳는다고 해도 어찌 너희가 그 아이가 자라서 남편 구실을 할 때까지 기다리겠느냐 합니다. 그 때에 오르바는 돌아갔습니다. 그대신 모든 문제를 언약을 붙잡고 해석하면 하나님의 축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축복을 받는 것이 룻의 선택입니다.
하나님은 특별히 모압을 싫어하시는데 룻이 그런 망할 자리에 있어도 오직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고 나오미를 따라갔을 때에 룻에게 오는 축복이 영영합니다. 룻1:15에 보면 “나오미가 또 가로되 보라 네 동서는 그 백성과 그 신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하며 룻에게 권고합니다. 그러자 “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하며 중요한 약속을 합니다.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할렐루야! 모압 땅에서 영원히 망해야 할 자리에 있습니다만 자기의 처신을 언약과 연결시켜서 선택했을 때, 그 후에 하나님이 룻을 축복하십니다. 17절에 보면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합니다. 원래 모압 여인이 아닙니다. 모압 신이 따로 있습니다만 어머니의 신을 나의 신으로 붙잡고 유대 땅으로 가겠다고 합니다. 그 후에 룻이 돌아와서 보아스를 만나고 결혼하게 되고 그로 통해 하나님이 엄청나게 축복하셔서 후대에 다윗이 탄생합니다. 얼마 후에 예수 그리스도의 가계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오늘 중요한 결단을 내리시기 바랍니다. 현실이 어렵고 힘들고 무겁지만 성경대로 한 번 약속을 잡으십시오.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랍니다. 정말 여러분들이 말씀처럼 경제회복을 원한다면 성경대로 언약 잡고 기다려야 합니다. 이와 상관없이 기다린다면 안 됩니다. 그래서 산업인들이 실패하고 어렵게 됩니다.
저는 십일조, 십이조를 내는 사람들의 고백을 많이 듣습니다. 한 번 체험하면 안 놓치고 계속하더라고요. 십의 이조를 드리는 게 간단한 게 아닙니다. 새삼스럽게 말씀드립니다만 우리가 앉아 있는 이 축복된 감사의 예배당이 선교의 열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옛날 교인들이 다 똑같은데 우리에게 줄 별다른 게 없습니다. 어떻게 해서 주셨느냐? 하나님이 선교의 역사를 이루기 위해서 십이조를 결단해서 하나님께 드렸던 겁니다.
예전에 처음 결정에는 못하는 사람, 예를 들어 남편이 불신자면 십의 이조가 결단이 안 되잖아요? 생활비를 받아서 생활비를 내고 그 액수가 대략 얼마라고 적어서 내고 했습니다. 그래서 처음 작정 때 보면 얼마 안 나와요. 전부 십의 이조라고 적어놓으니까 얼마 나올지 결정이 없잖아요. 올해도 여러분이 결정이 없을지라도 복음을 붙잡고 결단하십시오. 하나님이 그 언약을 이루실 것입니다. 이 약속이 성취될 것입니다. 선교헌금은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는 지를, 여러분에게 주실 축복의 통로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돈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한 해 동안 하나님이 언약대로 축복하신 사실을 체험합시다. 현실을 정복하고 경제를 정복하고 문화를 정복하는 게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걸 떠나서 언약 없는데서 무얼 붙잡고 현실과 경제, 문명을 정복하려 합니까. 이 언약을 잡고 조금만 주님 앞에 나가면 주님께서 이미 이 한해에 모든 것 준비하고 계시다가 하나님이 우리 가는 길에 여호와 이레로 축복하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기도)
전능하신 아버지여, 은혜를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우리가 작정한다는 뜻이 아니라 정말 하나님 앞에 십이조로 선교헌금을 작정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온 땅에 이루는 일에 저들을 사용하시고 쓰시옵소서. 오늘 이 시간에 하나님, 저들이 참여하는 손길 손길마다 은혜 주시고 온 성도들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축복으로 복을 주신 사실을 체험하도록 복을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힘들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면서 동물에게 위로를 받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진정한 가치 기준을 갖지 않으면 개나 고양이 때문에 정말 교제하고 사랑해야 할 절대적인 대상을 놓치게 됩니다.
1. “내가 네게 주는 땅으로 가라”(수1:2)는 주제대로 응답 받아야 하겠습니다.
1) 내 노력이 아니라 나 자신이 임마누엘의 역사를 누리면 성령 인도로 응답받게 됩니다.
2) 본부의 원단 메시지가 “현장을 정복하라, 경제를 정복하라, 문화를 정복하라”인데 이것도 임마누엘 약속 잡을 때 성령인도로 되게 하십니다.
3) 하나님의 주권 안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 자녀의 모든 문제를 하나님이 해결하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4) 성령임재와 임마누엘이 우리가 형통케 되는 배경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2. 몸도 마음도 물질도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1) 하나님이 내게 맡겨 주신 것으로 우리는 그것을 담당해서 관리할 뿐입니다.
2) 다윗의 고백처럼 내가 갖고 있는 재물, 경제력도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대상29:14).
3) 나의 몸과 경제조차도 하나님이 주셨다는 사실이 확인되지 않으면 청지기적인 삶과 신앙을 살 수 없습니다.
4) 우리 눈이 삶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생명에 갈 때 이런 삶이 가능합니다.
5)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의 가치가 확인될 때 밭에 감추인 보화를 덮어놓고 즐겁게 모든 것을 다 팔았던 농부처럼 내 것을 진정으로 다 내어놓을 수 있게 됩니다(마13:44).
3. 언약을 잡은 사람은 반드시 모든 사건과 일을 당할 때 언약으로 재해석해야 합니다.
1) 망할 자리에 갔어도 복음으로 그 문제를 재해석 할 때 응답이 달라집니다.
2) 축복의 땅인 가나안 땅에서는 가난하고 굶더라도 언약 속에 있기 때문에 반드시 회복되는 날이 옵니다.
3) 나오미의 가정은 육신적인 생각으로 가난을 피해 모압땅으로 갔지만 완전히 망하고 말았습니다.
4) 룻은 모압 땅이라는 망할 자리에 있었지만 언약적 선택을 하여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오늘 중요한 결단을 내리시기 바랍니다. 현실이 어렵고 힘들지만 성경대로 한 번 약속을 잡으시기 바랍니다. 언약이 말씀을 잡고 기다릴 때 하나님은 약속대로 현실을 정복하고 경제를 정복하고 문화를 정복하도록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 다 준비하셨습니다.
자기가 기르던 고양이를 죽인 남편 앞에서 고양이를 따라 죽은 아내의 기사를 보면서 진짜 당황하게 됩니다. 어떻게 이렇게 타락하게 됐는가 싶습니다. 남편이 고양이를 죽였는데 아마 상당히 귀찮았겠지요. 제가 고양이를 좀 길러봤는데 꼭 밤이 되면 집사람과 제 사이에 자리를 잡습니다. 보통 미운 짓을 하는 게 아닙니다. 집사람은 너무 좋아하고 저는 반대로 너무 싫어합니다. 고양이를 안고 어르고 하다보면 대화가 다른 데로 뺏겨버립니다. 저는 이 남편의 심정이 이해가 됩니다. 그런다고 따라서 죽는 아내도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얼마나 위로를 얻을 데가 없었으면 여기다가 의지 하다가 영원한 멸망으로 갔겠습니까. 가치 기준이 없이 흔들리고 있는 이 땅의 모습을 말하고 있습니다. 개, 고양이를 싫어하라는 내용이 아니라 정말 교제하고 사랑해야 할 절대적인 대상을 놓치면 이 모양으로 빠집니다.
자녀들이 너무 개를 좋아해서 못살게 하는 걸 보았습니다. 우습게도 개를 너무 좋아하는 세광이 목소리가 현관에서 들리면 개가 도망을 치기도 했습니다. 결국 남을 줬습니다만 개, 고양이를 길러보면서 가치기준을 바로 하지 않으면 오늘날 세상이 이처럼 될 수 있겠다 싶어 말씀을 드립니다.
그래서 올해는 진정한 가치기준을 잡고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하신 한 해 주제대로 응답 받아야 하겠습니다. 이것은 내가 노력하고 애쓴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을 잡고 내 개인이 그 임마누엘의 역사를 누리면 성령의 인도로 이루어집니다. 우리 생활과 삶에 이런 역사가 나오게 됩니다.
금년도 원단 메시지가 “현장을 정복하라, 경제를 정복하라, 문화를 정복하라”입니다. 이것은 여러분 스스로 하는 일이 아닙니다. 임마누엘의 약속 잡으면 성령이 인도하십니다. 우리 마음과 생각이 주권 속으로 들어가면 하나님이 성취하십니다.
올해도 기도제목을 다 제출했습니다. 가정에 반드시 성령인도 받고 나가면, 여러분 소원을 이룬다면 좀 이상합니다만 그렇게 이루실 수 있도록 하나님이 계획하실 것입니다. 영원 전부터 내 모든 인생을 준비하시고 지금 이 시점에서 나를 하나님 자녀로 만드시고, 영원 후까지 나를 완벽하게 준비하시고 인도하심 속에,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모심으로 말미암아 그 속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게 주권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있으면 모든 문제를 하나님이 해결하실 것을 약속해주시고 있습니다.
수1:5에 보면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6절에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 할렐루야! 말씀 붙잡고 하나님의 언약잡고 강하고 담대한 마음으로 나가라하십니다. 매번 주저하고 말씀 들어도 염려하는 게 전부 막히는 문제입니다. 우리를 완벽하게 계획하시고 지금도 성령으로 인도하십니다. 이를 위해 성령을 각 개개인에게 보내셨습니다. 말세에 어려운 세상인 줄 아시고 물 붓듯이 부어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성령임재입니다.
이것은 한 마디로 말해서, 형통하게 하신다는 배경이 모세와 함께 했던 것처럼 너의 평생에 함께 하리라는 임마누엘입니다. 이걸 가지고 복음이라 합니다. 이걸 가지고 생명이라 합니다. 그래서 언약을 잡고 생명 잡고 담대히 나가면 하나님이 승리하게 하십니다. 금년도도 축복과 은혜로 모든 것 준비해 놓으셨다는 말씀입니다. 이 사실 붙잡는 동시에 하나님은 미래에 역사하실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먼저 복음으로 생명으로 임마누엘로 시작하셔야 합니다. 오늘 청지기 주일인데, 청지기는 근본적인 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따라 올 수 없습니다. 옛날에 집사라는 말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몸도 마음도 물질도 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게 맡겨 주셨습니다. 나는 그것을 담당해서 관리할 뿐입니다. 잘 아셔야 합니다. 저는 건강 문제로 이 문제에 대해 큰 소리 못 치겠습니다만, 그래도 하나님 앞에 감사함으로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몸도 여러분이 하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이 몸을 상하게 한다면 죄악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몸을 강건하도록 인도하고 관리해 나가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그래서 렘넌트 때부터 운동의 습관을 기르라 합니다. 제 경우에는 운동기구 사다놓고도 안 합니다. 몇 번 하다가 금방 안 하게 됩니다. 요번에도 자전거 운동기구를 사놨는데 이번에는 시도해볼 생각입니다. 집사람도 운동을 꼭 해야 될 형편입니다. 그런데 어려서부터 이게 습관이 안 되어 있습니다. 몸이 내 것인 줄로 압니다. 몸도 하나님의 것이기에 관리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갖고 있는 재물, 경제력도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다윗이 대상29장에 말씀했지요. 모든 것을 하나님이 주셨고, 하나님이 주신 것 가지고 하나님께 헌금하니 너무 감사하다 했습니다. 재물을 내가 열심히 해서 버는 것 같지만 오늘부터 그런 생각 다 버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은혜 주셔야 재물도 붙습니다. 지금까지 재물을 얻으려고 많이 애썼습니다만 은혜 주시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은혜 주셔야 하는데 그 바탕이 하나님이 내게 주신 재물을 언약 따라, 언약 붙잡고 관리하면 됩니다. 자기가 모았다고 생각하니까 언약과 상관없이 마음대로 쓰는데 그러면 안 됩니다.
요즘은 완전히 초월하고 누리고 있습니다만, 제가 자동차를 타고 갈 때에 이게 교회 것이라고 생각할 때는 사적인 볼일에 제 돈으로 기름을 넣었습니다. 요즘은 그런 생각 없이 내가 사는 삶이 곧 교회의 삶이라고 생각하고 (편안하게) 쓰고 다닙니다만, 이것이 교회 것이라 생각할 때는 내가 가지고 있어도 함부로 못했습니다. 너무 철저히 율법주의라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부흥회 갈 때도 이것 때문에 고통 받았습니다. 부흥회 올라가면 내 와이셔츠, 속내의하고 전부 새 것으로 갈아입고 올라갑니다. 거기서 강사비를 받으면 내가 교회에서 일할 것인데 여기서 받았다고 다 내 것이 아니라 생각해서 그 돈을 쓰는 게 마음대로 안 됩니다. 꼭 십일조를 계산해서 옷 값 등을 계산하고 다 떼어버리면 막말로 내게 경제적으로 남는 게 없습니다. 부흥회를 초청해도 잘 못 갔는데 사실 안 갔습니다. 부흥회 사례 받으면 가져와서, 내가 교회에서 일할 때나 다른 교회에서 일할 때나 다 마찬가지인데, 다른 교회에서 일했다고 사례비를 주셨는데 내가 마음대로 쓸 수 있나 싶어서 전부 헌금을 드렸습니다. 그러면 오히려 손해가 되었습니다.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저도 돈을 벌려고 생각했다면 집을 몇 채 사둘만큼 많이 벌었을 겁니다. 다만 마음속에 지금까지 생각하는 것이 하나님이 주실 것이라는 겁니다. 저는 제 몸보다도 경제적인 문제를 특별히 그렇게 생각을 하고서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은혜 주실 것입니다.
건강문제도 보시면 알잖아요. 하나님이 은혜 안 주시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건강입니다. 오늘도 은혜 주심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세상이 점점 어려워지는데, 호흡하기도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서울에는 지리산 공기를 산소탱크에 넣어 와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공급해 준다고 합니다. 나쁜 공기를 마시다가 그 공기를 마시면 그렇게 시원하고 좋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저 같이 건강이 안 좋으면 공기가 나쁘면 금방 느끼게 됩니다. 제 방 책꽂이에 책이 가득 꽂혀 있는데 책이 썩어서 냄새도 나고 공기가 탁합니다. 연약한 사람은 공기에 대해 아주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집사람도 총신을 다니면서 덕평을 가면 그렇게 공기가 좋고 달다고 합니다. 세상이 점점 어렵게 되어 공기도 험악해져서 모든 지병들이 찾아옵니다. 더 큰 문제는 지구상에 신선한 공기를 공급하던 빙산이 자꾸 무너진다고 합니다. 얼마 전 TV에 보니까 북극의 백곰이 기후온난화로 점점 멸종해간다고 합니다. 금년도도 지구온난화 때문에 별로 춥지 않다고 합니다.
또 말세 시대에 어려운 문제는 내가 선하고 착하고 잘 사는 것만이 다가 아니라 내 주변 전체가 오염으로 둘러싸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진짜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이 뭡니까? 지난 시간에 하나님이 하신 일을 보라고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2007년 첫 주 청지기 주일입니다. 내가 과연 어떻게 살아가야 될 것인가 할 때 청지기로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근본 뜻이 이해되지 않으면 도저히 청지기로 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 몸도 경제도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주셨다는 사실에 확인이 없으면 청지기적인 삶, 신앙이 될 수 없습니다.
지난주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삶과 생명에 대한 인식이 안 되어서 우리 삶은 율법적이고 신비적이고 종교적이다가 삶과 행동 자체에 역점을 둘 때가 많게 됩니다. 여러분 눈이 생명으로 가야 합니다. 참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냐? 없냐? 에 따라 된다, 안 된다가 결정됩니다. 생명의 근원 되신 생명의 주로 말미암은 삶이 아니면 나도 모르게 다른 것으로 빠질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설명이 안 되니 비유로 설명을 했습니다. 마13:43에 보면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했습니다. 의미심장한 말씀입니다. 귀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성령으로 이 말씀이 들려야 합니다. 44~46절에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 할렐루야. 제가 지교회 감사예배로 창녕에 갔을 때에 이 메시지를 드렸습니다만, 금년도에 정말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축복의 언약을 잡고 갈 수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저는 30여 년 동안, 지금까지 송현교회를 비롯해 하나교회까지 오면서 교인들이 축복 받고 망하는 사실을 생생히 똑똑히 지금까지 보아왔습니다. 예를 들어 누구를 구체적으로 말하면 실감이 나지만 그렇게 할 수 없어 빙 둘러서 늘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중직자이든 평신도든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자세가 어떠한 것인지 말하고 싶습니다. 약속을 따라 한 번 살펴보려 합니다.
복음이라고 그러면 언약입니다. 보화라고 할 때에 언약을 말합니다. 이 당시에 은행도 발달하지 못해서 금은보화를 모으면 자기만 아는 곳에 독에 넣어 묻었습니다. 더구나 유대사회는 외부 침입이 많아서 이런 문화가 만연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문제가 생겨서 땅 주인이 자기 자녀들에게 유언도 못하고 죽어버렸습니다. 유대사회는 이런 일이 많습니다. 땅은 자손들이 가지고 있지만 보화가 있는지는 모르는 겁니다. 땅 속에 묻어놓은 보화는 땅 주인이 갖도록 유대 법에 되어 있습니다. 한 날은 땅을 임대한 농부가 밭을 갈다가 뭔가 걸려서 보니 독이 묻혀있는데 열어보니 찬란한 은금보화가 가득한 겁니다. 가슴이 두근거리는데 다시 뚜껑을 덮고 흙으로 덮었습니다. 그리고서는 돌아와서 이 농부가 어떻게 했습니까? 자기 밭이 아니기 때문에 법적으로 내 소유가 되기 위해서는 밭이 자기 소유가 되어야 하는 겁니다. 돌아와서는 아무 소리 않고 자기 소유를 다 팔아서 그 땅을 사려하는 겁니다. 그런데 안 사려 할 때는 문제되지 않지만 어떤 사람이 굳이 땅을 사려하면 땅 주인이 괜히 값을 올립니다. 가문의 땅이라서 팔 수 없다하면서 사천만, 오천만 원을 주려해도 안파는 겁니다. 일억 원을 주겠다. 하니까 비로소 팔겠다. 하는데, 구매자가 그 돈을 장만하려면 자기에게 있는 것 없는 것 다 팔아야 합니다. 그러면 옆에 있던 부인이 미쳤냐고 할 겁니다. 우리도 똑같을 것입니다. 아주 중요한 예화입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의 가치가 인식되는 그 때부터 하나님 앞에 여러분에게 있는 것을 진정으로 드릴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이게 안 되면 아까워서 못 드립니다.
예전에는 주일헌금 낼 때에 제가 교역자이기도 해서 (돈을 밖으로 꺼내어 보지 않고) 포켓에 손을 넣어 돈을 꺼내 냅니다. 만지다가 만 원이나 오천 원짜리가 나오면 다시 넣어버리고 천 원짜리를 열심히 골라서 내던 기억이 납니다. 요즘은 일단 주일헌금도 십의 삼조를 내는 계획 아래 십의 일조로 나누어 냅니다. 이제는 아예 구별해서 내는 것이 머리에 박혔습니다만, 이렇게까지 오기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구원의 감격과 임마누엘의 은혜가 체험되는 만큼 이 사실을 누립니다. 왜요? 주님은 나를 위해 모든 것 주셨는데 내가 가지고 있는 적은 것도 주님께 드릴 수 없겠습니까?당연히 드릴 수 있지요. (다윗은) 기쁨으로 헌금을 한다고 했습니다.
헌금 할 때에 찬송 부르는 자세부터 좀 달라야 하겠습니다. 헌금 찬송은 좀 즐겁고 기쁜 찬송으로 해야 되겠어요. 꼭 “내게 있는 모든 것을…”이라고 하는데 아주 조금 찢어 드리면서 모든 것을 드린다고 하는 게 가증스러워요. 하나님이 보시면 “자슥아 고마 치아라” 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번 근본적으로 생각해보십시오. 우리 주님께서 생명까지 다 주셔서 내가 참 생명을 얻었습니다. 이 구원이 내가 확인된다면 감추인 보화를 덮어놓고 즐겁게 모든 것을 다 팔았던 농부처럼 내 것을 다 내어놓습니다. 내게 있는 분량이 문제가 아닙니다. 묻혀 있는 것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여자에게 절대 말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얘기했다하면 들통이 나기 때문입니다. 하루에 삼천 마디씩 말해야 몸이 풀린다고 하는 교인도 있다고 합니다. 안 그러면 스트레스가 쌓여서 안 된다고 합니다. 어쨌든 알고 있는 것은 가만히 잊지 못하는 성격이기 때문입니다. 이게 진짜 보화를 발견한 자의 고민입니다. 진짜 이 기쁨이 있고 감격이 내 안에 있습니까? 모든 문제가 여기서 다 해결됩니다. 이 생명 가지게 되면 하나님 앞에 드린다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청지기 주일 때마다 돈을 강조한다고 싶을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진짜로 붙잡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헌금을 작정할 때에 이것이 정말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것으로 하나님께 드립니다.”라고 했던 다윗처럼 여기에 모든 축복이 누려지는 하나님의 약속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하나교회 통해서 (성도들의) 흥망성쇠를 보면서 구체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오늘 성경말씀을 통해서 말씀드립니다. 진짜로 복 받는 것은 다른 게 아닙니다. 예수 믿고 복 받게 해주옵소서! 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기본,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은 복음은 생명, 언약을 말하는데, 이 언약을 잡은 사람은 반드시 모든 사건과 일을 당했을 때 언약으로 재해석해야 합니다. 이걸 복음으로 재해석한다는 말이지요. 생명의 눈으로 재해석해야 합니다. 이걸 가지고 신학이라고 교리라고 합니다.
나름대로 적용하려고 하는데 복음의 눈이 없으니까 다른 데로 가버립니다. 그래서 신학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계획을 거기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이길 힘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성취됩니다. 그리고 이 계획에 대한 마음의 눈이 확실히 열려야 합니다.
열 가지 발판과 하나님의 주권을 많이 말씀드렸는데 여기에 마음을 가지고 눈을 떠야 합니다. 모든 문제를 복음으로 해석할 수 있는 눈이 열리면 망하는 자리에 들어갔다가도 성공을 하고 돌아옵니다. 이것이 안 되면 성공한 자리에 섰다가도 떨어집니다. 축복 받는 것 간단하다고 하는데 물론 간단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듣고 눈을 뜨면 정말 간단합니다.
나오미와 룻의 이야기를 어제 핵심에서 말씀했습니다만, 망할 자리에 갔어도 복음으로 그 문제를 재해석할 때 달라집니다. 나오미가 축복의 자리에 있었습니다. 룻1:1에 보면 “사사들의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우거하였는데”, 여기는 살아있는 남편의 이야기입니다. 남편이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으로 갔습니다. 여기에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꼭 축복의 땅 가나안 땅, 가난하고 굶더라도 언약 속에 있을 때에 반드시 회복되는 날이 옵니다. 그런데 잘 살려고 (옮긴 것입니다).
한국이 축복의 땅 가나안인데 모두들 잘살고 자녀교육 잘 시키려고 보따리 싸서 미국을 가는데 잘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저도 아들이 미국에 가서 공부하고 있습니다만, 진짜 축복의 땅에서 축복을 기다리며 언약적인 약속을 기다리며 있는 것과 그것을 박차고 (다른 땅으로 가는 것이 결과가 완전히 다릅니다). 나오미의 경우에는 언약적 약속을 박차고 완전히 이방 저주의 땅인 모압땅에 갔습니다. 그래서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냐하면, 2절에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그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요 그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니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더라 그들이 모압 지방에 들어가서 거기 유하더니”라고 합니다. 이걸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가난이라는 문제가 생겼어도 복음으로 재해석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자신의 육신적인 생각으로 가난을 피해 모압으로 가자해서 옮긴 결과가 4절에, “그들은 모압 여자 중에서 아내를 취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요 하나의 이름은 룻이더라 거기 거한지 십년 즈음에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그가 모압 지방에 있어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권고하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들었으므로 이에 두 자부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라고 했습니다. 잘 알아야 합니다. 완전히 망했습니다. 어떤 환경이든지 복음으로 생명으로 재해석하십시오. 내 환경도 언약이 있는 내용인지 아닌지 재해석 하십시오.
예를 들어서 축복의 땅 가나안은 가난해도 가나안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욕심으로 해석한 것이 빨리 모압으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모압으로 갔는데 십 년 즈음되어서 다 망했습니다. 남편과 두 아들이 죽고 세 과부만 남았습니다. 시어머니 나오미, 며느리인 오르바와 나오미가 남았습니다. 그래서 나오미가 늦게라도 내 살던 땅, 축복의 땅으로 가야겠다 하면서 언약을 잡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돌아오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있던 곳을 떠나고 두 자부도 그와 함께 하여 유다 땅으로 돌아오려고 길을 행하다가 나오미가 두 자부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각 어미의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와 나를 선대한 것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여호와께서 너희로 각각 남편의 집에서 평안함을 얻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그들에게 입 맞추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울며”(룻1:7-9). 그런데 맏며느리인 오르바는 입 맞추며 가버렸습니다. 그런데 둘째 며느리인 룻은 절대 안 가려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배경을 좀 알아야 합니다. 형이 아내를 취해서 있다가 죽으면 동생이 그 형수에게로 장가듭니다. 그들은 씨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씨 없이 죽으면 안 됩니다. 동생이 죽으면 또 셋째가 형수에게 장가갑니다.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질문한 것이 이것에 관한 겁니다. 일곱이 다 그랬는데 하늘나라 가면 누구의 아내가 되냐고 물었습니다. 대답하기 곤란하지요. 예수님의 대답이 하늘나라는 시집가고 장가감이 없으며 천사와 같다고 했습니다. 거기에 가면 예수 그리스도를 맏형님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두 한 형제가 되어서 정말 즐거운 역사를 누리게 됩니다.
이런 배경으로 나오미에게 룻이 청할 때, “나오미가 가로되 내 딸들아 돌아가라 너희가 어찌 나와 함께 가려느냐 나의 태중에 너희 남편 될 아들들이 오히려 있느냐 내 딸들아 돌이켜 너희 길로 가라 나는 늙었으니 남편을 두지 못할지라 가령 내가 소망이 있다고 말한다든지 오늘 밤에 남편을 두어서 아들들을 생산한다 하자 너희가 어찌 그것을 인하여 그들의 자라기를 기다리겠느냐 어찌 그것을 인하여 남편 두기를 멈추겠느냐 내 딸들아 그렇지 아니하니라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인하여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룻1:11-13). 이스라엘의 전통에 대한 배경이 여기서 나오지요. 오늘 내가 아들을 낳는다고 해도 어찌 너희가 그 아이가 자라서 남편 구실을 할 때까지 기다리겠느냐 합니다. 그 때에 오르바는 돌아갔습니다. 그대신 모든 문제를 언약을 붙잡고 해석하면 하나님의 축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축복을 받는 것이 룻의 선택입니다.
하나님은 특별히 모압을 싫어하시는데 룻이 그런 망할 자리에 있어도 오직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고 나오미를 따라갔을 때에 룻에게 오는 축복이 영영합니다. 룻1:15에 보면 “나오미가 또 가로되 보라 네 동서는 그 백성과 그 신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하며 룻에게 권고합니다. 그러자 “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하며 중요한 약속을 합니다.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할렐루야! 모압 땅에서 영원히 망해야 할 자리에 있습니다만 자기의 처신을 언약과 연결시켜서 선택했을 때, 그 후에 하나님이 룻을 축복하십니다. 17절에 보면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합니다. 원래 모압 여인이 아닙니다. 모압 신이 따로 있습니다만 어머니의 신을 나의 신으로 붙잡고 유대 땅으로 가겠다고 합니다. 그 후에 룻이 돌아와서 보아스를 만나고 결혼하게 되고 그로 통해 하나님이 엄청나게 축복하셔서 후대에 다윗이 탄생합니다. 얼마 후에 예수 그리스도의 가계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오늘 중요한 결단을 내리시기 바랍니다. 현실이 어렵고 힘들고 무겁지만 성경대로 한 번 약속을 잡으십시오.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랍니다. 정말 여러분들이 말씀처럼 경제회복을 원한다면 성경대로 언약 잡고 기다려야 합니다. 이와 상관없이 기다린다면 안 됩니다. 그래서 산업인들이 실패하고 어렵게 됩니다.
저는 십일조, 십이조를 내는 사람들의 고백을 많이 듣습니다. 한 번 체험하면 안 놓치고 계속하더라고요. 십의 이조를 드리는 게 간단한 게 아닙니다. 새삼스럽게 말씀드립니다만 우리가 앉아 있는 이 축복된 감사의 예배당이 선교의 열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옛날 교인들이 다 똑같은데 우리에게 줄 별다른 게 없습니다. 어떻게 해서 주셨느냐? 하나님이 선교의 역사를 이루기 위해서 십이조를 결단해서 하나님께 드렸던 겁니다.
예전에 처음 결정에는 못하는 사람, 예를 들어 남편이 불신자면 십의 이조가 결단이 안 되잖아요? 생활비를 받아서 생활비를 내고 그 액수가 대략 얼마라고 적어서 내고 했습니다. 그래서 처음 작정 때 보면 얼마 안 나와요. 전부 십의 이조라고 적어놓으니까 얼마 나올지 결정이 없잖아요. 올해도 여러분이 결정이 없을지라도 복음을 붙잡고 결단하십시오. 하나님이 그 언약을 이루실 것입니다. 이 약속이 성취될 것입니다. 선교헌금은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는 지를, 여러분에게 주실 축복의 통로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돈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한 해 동안 하나님이 언약대로 축복하신 사실을 체험합시다. 현실을 정복하고 경제를 정복하고 문화를 정복하는 게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걸 떠나서 언약 없는데서 무얼 붙잡고 현실과 경제, 문명을 정복하려 합니까. 이 언약을 잡고 조금만 주님 앞에 나가면 주님께서 이미 이 한해에 모든 것 준비하고 계시다가 하나님이 우리 가는 길에 여호와 이레로 축복하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기도)
전능하신 아버지여, 은혜를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우리가 작정한다는 뜻이 아니라 정말 하나님 앞에 십이조로 선교헌금을 작정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온 땅에 이루는 일에 저들을 사용하시고 쓰시옵소서. 오늘 이 시간에 하나님, 저들이 참여하는 손길 손길마다 은혜 주시고 온 성도들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축복으로 복을 주신 사실을 체험하도록 복을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힘들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면서 동물에게 위로를 받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진정한 가치 기준을 갖지 않으면 개나 고양이 때문에 정말 교제하고 사랑해야 할 절대적인 대상을 놓치게 됩니다.
1. “내가 네게 주는 땅으로 가라”(수1:2)는 주제대로 응답 받아야 하겠습니다.
1) 내 노력이 아니라 나 자신이 임마누엘의 역사를 누리면 성령 인도로 응답받게 됩니다.
2) 본부의 원단 메시지가 “현장을 정복하라, 경제를 정복하라, 문화를 정복하라”인데 이것도 임마누엘 약속 잡을 때 성령인도로 되게 하십니다.
3) 하나님의 주권 안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 자녀의 모든 문제를 하나님이 해결하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4) 성령임재와 임마누엘이 우리가 형통케 되는 배경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2. 몸도 마음도 물질도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1) 하나님이 내게 맡겨 주신 것으로 우리는 그것을 담당해서 관리할 뿐입니다.
2) 다윗의 고백처럼 내가 갖고 있는 재물, 경제력도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대상29:14).
3) 나의 몸과 경제조차도 하나님이 주셨다는 사실이 확인되지 않으면 청지기적인 삶과 신앙을 살 수 없습니다.
4) 우리 눈이 삶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생명에 갈 때 이런 삶이 가능합니다.
5)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의 가치가 확인될 때 밭에 감추인 보화를 덮어놓고 즐겁게 모든 것을 다 팔았던 농부처럼 내 것을 진정으로 다 내어놓을 수 있게 됩니다(마13:44).
3. 언약을 잡은 사람은 반드시 모든 사건과 일을 당할 때 언약으로 재해석해야 합니다.
1) 망할 자리에 갔어도 복음으로 그 문제를 재해석 할 때 응답이 달라집니다.
2) 축복의 땅인 가나안 땅에서는 가난하고 굶더라도 언약 속에 있기 때문에 반드시 회복되는 날이 옵니다.
3) 나오미의 가정은 육신적인 생각으로 가난을 피해 모압땅으로 갔지만 완전히 망하고 말았습니다.
4) 룻은 모압 땅이라는 망할 자리에 있었지만 언약적 선택을 하여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오늘 중요한 결단을 내리시기 바랍니다. 현실이 어렵고 힘들지만 성경대로 한 번 약속을 잡으시기 바랍니다. 언약이 말씀을 잡고 기다릴 때 하나님은 약속대로 현실을 정복하고 경제를 정복하고 문화를 정복하도록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 다 준비하셨습니다.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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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4 | 전환점을 이룬 안디옥 선교 | 행11:19-30 | 2025-04-27 | |
1483 | 우리에게 주시는 영원한 메시지 | 고전15:1-11 | 2025-04-20 | |
1482 | 새로운 싸움을 위하여 | 삿7:9-18 | 2025-04-13 | |
1481 | 날마다 영적싸움에 승리하라 | 삿7:1-8 | 2025-04-06 | |
1480 | 이 시대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해답 | 삿4:1-10 | 2025-03-30 | |
1479 | 하나님이 쓰시는 기준 | 삿3:12-23 | 2025-03-23 | |
1478 |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 삿3:7-11 | 2025-03-16 | |
1477 |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 삿2:6-10 | 2025-03-09 | |
1476 |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 삿1:1-7 | 2025-03-02 | |
1475 |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 단12:1-4 | 2025-02-23 | |
1474 |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 단11:28-39 | 2025-02-16 | |
1473 |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 단10:10-21 | 2025-02-09 | |
1472 |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 단9:20-24 | 2025-02-02 | |
1471 |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 단8:15-27 | 2025-01-26 | |
1470 |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 단7:9-14 | 2025-0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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