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자로서의 본분
2021-01-31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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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31일 주일 오후 예배 신봉준 목사
“전도자로서의 본분”
(전12:13-14)
1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14.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아멘.
전12:13-14
■ 감사드린다. 오늘 특송으로 찬양하는 부분들 속에 우리 렘넌트들도 나왔는데 아마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음은 잘 잡지 못하지만 함께 찬양했던 것은 제 나름대로 잠시 앉아서 생각하는 동안에 오늘 우리 은퇴하는 분들 하나같이 가장 교회가 어려운 속에서 복음을 지켜주셨고 그 복음을 전달해주셔서 우리 렘넌트들까지 이 복음이 전달되어지는 이 축복을 보라고 아마 하나님께서 우리 렘넌트들을 세우신 것 같다. 너무 감사드리고 은혜로운 찬양, 중심에 정말로 마음을 담고 함께 찬양을 해주심에 너무나 감사드린다. 오늘 제목이 전도자로서의 본분이다. 특별히 오늘 원로장로 추대가 있고, 은퇴장로, 은퇴집사, 은퇴권사, 은퇴여전도사 추대가 함께 또 진행되어진다. 여러분 직분은 교회법에 의해서 70세로 그만두게 되지만 오늘 제목이 뭔가? 전도자로서의 본분이다. 전도자로서의 은퇴는 없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 가시는 그날까지 여러분 전도자로서 귀중한 축복된 사명들을 감당해야 할 것인데, 제가 바라고 또 기도하옵기는 정말로 신언에 강건함을 얻어서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전도자로서의 귀한 사명이 새롭게 시작되는, 그런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모세의 사역을 보면 120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는데 신명기 34장 마지막 부분에 모세의 마지막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가? 기력이 쇠해지지 아니하고, 눈이 흐려지지 아니했다고 했다. 무슨 말인가? 하나님께서 모세로 말미암아 사명 감당하시다가 그대로 불러가셨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다. 오늘 기도 중에도 장로님 말씀했습니다만 갈렙은 85세임에도 불구하고 아낙 산지를 자신에게 달라고 기도하면서 나왔다. 가장 어려운 때에, 85세라는 나이에 갈렙은 아낙산지를 달라고 기도하고 나왔다. 그 마음 중심에 물론 갈렙의 보고 가운데 들어보면 내가 옛날과 같이 건강이 여전하다 했는데, 여러분 건강이 여전하겠는가? 저는 그 말씀을 읽으면서 그 마음 중심에 있는 하나님을 향한, 전도자로서의 사명을 향한 그 열정들이 식어지지 않았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된다. 진짜 전도자로서 여러분 성령의 충만함을 입게되면 연세 상관없다. 여러분 젊은이들이 꾸지 못한 꿈을 꾸게 되고, 요엘서 2장에 말씀하고 있다. 성령의 충만함이 임하게 될 때에 늙은 이들은 꿈을 꾸며 말씀했다. 여러분 젊은 사람들도 꿈이 없어서 살아가는 이러한 시대 속에서 여러분 전도자로서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은퇴하는 자리에 있지만 더욱 더 성령의 충만함 속에 들어가면 젊은이들이 갖지 못한 꿈들이 여러분에게 일어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정말로 복음 사랑하는 그 마음 중심들이 우리 후대들에게 계속해서 전달되어지고, 많은 열매들이 이제까지도 있었지만 더 큰 응답의 열매들이 여러분 생애속에 열려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바울도 마지막에 보면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모든 사역을 마무리 할 수 있을 것인데 바울은 거기에 머무르지 않았다. 전도자로서 내가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연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마음 중심에 복음을 사랑하는 그 마음들을 우리가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오늘 한 분, 한 분 정말로 그동안 교회를 위해서 기도해주시고, 주의 종을 위해 기도해주시고, 우리 후대들의 발판 되어주신 것을 너무나 감사한다. 여러분은 이제 직분은 그만 두지만 전도자로서의 사역은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계속 되어진다는 사실을 아시고, 더욱 더 강건함의 축복이 여러분 개개인에게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특별히 오늘 본문의 전도서는 너무나 잘 아는 부분들이다. 솔로몬을 통해서 인생의 모든 것들이 헛됨을 고백하게 하고, 결국 오늘 본문의 마지막에 보면 인생의 결론을 다 들었으니 말씀하고 있다. 무슨 말인가? 우리 인생의 결론을 놓고 다시 시작하라는 말씀이다. 세상에 그 어떤 것도 결국 헛되고 헛되고 헛되니까 헛되지 않은 것들을 붙잡고 남은 생애 새롭게 시작하고 새로운 축복으로 서 있으라고 오늘 솔로몬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메시지인 것이다. 여러분 이 전도서를 기록한 솔로몬은 정말로 영원한 것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깨달았다는 말이다. 없어지지 않는 것들을 위해서 생명을 걸라는 메시지다. 그게 오늘 본문에 13절, 14절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오늘 은퇴하는 모든 분들, 또 함께 은퇴를 축하하기 위해서 참여한 모든 하나교회 성도들이 먼저 영원한 것이 무엇인가? 전도자로서 본분이 무엇인가?
1. 예배자
먼저는 첫 번째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가 되는 것인데 평생 잊지 말라. 우리 성도들과 특별히 오늘 은퇴하시는 분들도 마찬가지고 절대로 평생 잊지 말아야 할 본분 중의 본분이 있다면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로 서 있는 것이다. 예배는 무엇인가? 보좌에 앉으신 그 하나님의 영광에 함께하는 시간이 바로 예배인 것이다. 우리 인간에게는 영광이 없다. 그래서 로마서3:23절에도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 했다. 원래 우리 인간에게는 영광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 영광의 시간이, 바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예배의 시간이 우리에게 영광이 임하는 그런 축복의 시간인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찬송가 27장 1절 가사에 보면 이런 내용이 있다. “빛나고 높은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주 예수 얼굴 영광이 해 같이 빛나네” 우리 인생에는 영광이 없는데 예배함으로 주께 나아가는 자에게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영광이 해 같이 빛난다라고 말씀하고 했다. 찬송가 27장 5절에 보면 “주님의 보좌 있는데 천한 몸 이르러 그 영광 몸소 뵈올 때 내 기쁨 넘치리” 여러분 예배를 통해서 날마다 날마다 하나님의 영광에 들어감으로 말미암아 참된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이 여러분 가운데 넘쳐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느헤미야8:10절에 보면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나님의 영광의 시간이 바로 최고의 힘을 얻는 시간인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계시록4:10절에도 보면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이르되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우리의 모든 영광과 권능과 존경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은 바로 그리스도 뿐인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베드로전서3:22절에도 “그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에게 복종하느니라” 보좌에 앉으신 그리스도 앞에 천사들도 능력들도 권세들도 복종하신다 말씀했다. 그렇다면 영광스러운 그 자리에 계신 주님께서 인생을 찾으시는데 어떠한 사람을 찾으시는가? 보좌에 앉으신 그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능력을 공급해주시는데 어떠한 자에게 능력을 공급해주시고 어떠한 자를 찾으시는가? 요한복음4:23절이다.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 말씀했다. 영광 가운데 계시는 주님께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는 것이다. 여러분 이 하나님의 눈에 발견되어지는 시간이 바로 예배 시간인 것이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시간 그게 바로 예배 시간이요, 이 영광을 갖고 계시는 그 하나님의 눈에 발견되어지는 시간이 바로 예배 시간인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눈에 발견되어지면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고, 하나님께서 만들어가시는 것이다. 이 예배의 영광 속에 우리 은퇴하시는 모든 분들, 지금까지도 이 예배의 영광을 아시고 살아왔습니다만 남은 생애 더욱 더 이 예배의 영광 속에 거하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여러분 우리 신앙생활의 핵심이 뭔가? 예배다. 아니 예배만 바르게 드리면 되느냐? 그건 예배의 영광스러움을 몰라서 그렇다. 아니 삶도 바르게 살아야 하고, 생활도 바르게 해야지 무슨 예배만 바르게 드리면 되느냐? 여러분 어거스틴은 이렇게 말했다.“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마음대로 사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무엇에도 잘못되지 않는다라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진정으로 예배하십시오. 그리고 마음대로 하십시오 라고 했다. 하나님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의 삶은 결단코 진리를 벗어나지 않는다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다. 다시 한 번 말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면 이 세상 가운데 악을 이기며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이 평생에 있어서 정말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예배자로 사시길 바란다. 이게 전도자로서의 본분 중의 본분이다.
특별히 예배하는 자의 삶을 사시길 바란다. 무슨 말인가? 예배자로 사시는데 예배하는 자의 삶이 뭐냐하면 여러분 매일매일 삶 속에서 하루에 한 번 만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놓고 깊이 묵상하는, 집중하는 시간들이 여러분에게 있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주일날 받은 말씀이나 또 여러분 특별히 현장에 말씀들 붙잡고 매일매일 하나님과의 1:1의 관계 속에 서서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시간들, 그 시간들이 여러분에게 있어져야 한다. 그것이 바로 예배하는 자의 삶이다. 특별히 우리가 언약 붙잡고, 강단의 말씀 붙잡고 기도해서 힘을 얻고, 미션을 얻는 시간, 그 집중할 수 있는 시간들이 내게 있다면 여러분이 아무리 연세 들어도 상관없다. 어떤 환경이 앞으로 여러분에게 주어진다 할지라도 상관없다. 많은 분들이 연세 들면 들수록 결국 나 중심으로 빠져들고, 또 연세 들면 들수록 이상해지는데 그러나 여러분 정말로 하나님과의 1:1관계 속에서 말씀 붙잡고 조금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들이 여러분에게 있다면 그 어떤 것도 문제될 수 없다라는 사실이다. 나만의 조용한 시간들을 만들어야 한다. 평안하면서도 여유있는 시간들이다. 평상시에 많은 문제와 또 중요한 일들을 놓고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누리는, 실제적인 깊은 집중의 시간들이 여러분에게 회복되어져야 한다. 그렇게 되어지면 여러분 문제 있어도 그게 문제가 안 된다. 왜냐?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문제가 문제 안 될 뿐만 아니라 문제 있어도 괜찮다. 왜냐면 그 문제 속에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실을 누리기 때문에 그렇다. 가면 갈수록 이 땅의 앞으로의 시대는 예배하고 싶어도 예배할 수 없는 시대고, 말씀을 듣고 싶어도 말씀을 들을 수 없는 시대가 오고있다. 어떤 면에서 우리 후대들에게는 예배에 목숨걸지 않으면 올바른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시대가 이미 왔다. 히브리서10:25절에 “마지막 날에 폐하기를 즐겨하는 자의 어떤 습관과 같이 하지말라”고 했는데 지금 어떤 면에서 모이는 그 자체가 힘든 시대요, 말씀을 붙잡는 그 자체가 힘든 시대다. 특별히 여러분 예배에 목숨 걸지 않으면 악한 사단의 공격들이 계속해서 우리를 공격하게 되어있다. 마태복음 4장에 있는 말씀처럼 예수님 앞에도 나와서 경배의 대상을 바꾸라고 시험을 했다. 여러분 예배를 놓쳐버리게 되면 마지막에 여러분의 인생은 어떻게 되는가? 나 자신의 우상에 갇히게 된다. 그래서 여러분이 평생에 전도자로서 지금까지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잘 인도받아서 승리하는 삶을 사셨는데 남은 생애도 정말로 주님 앞에 서는 그 날까지 예배자로 서는 그런 축복된 응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2. 전도자
두 번째로 예배자를 일으키는 전도자로 서시길 바란다. 예배자를 일으키는 전도자로서 서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전도자로서의 본분이다. 여러분 전도의 시간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생명의 시간이다. 그래서 고린도전서1:21절에도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은 “전도의 미련한 것을 통해서 사람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신다” 말씀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전도하는 그 시간이 생명의 시간인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데 내가 있는 현장에서 예수가 그리스도 되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증거할 때에 일어나는 일이 바로 생명의 시간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있다. 그 때 일어나는 일이 바로 어떤 일인가? 하나님이 가장 눈여겨보는 시간이 바로 그 시간이다. 여러분의 현장에서 전도자로서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며 그 사실 앞에 서게 될 때에 그 때 하나님이 여러분의 모든 걸음들을 세밀하게 눈여겨보시게 되어있다. 마치 여러분 빌립이 가는 걸음 속에 정확하게 에디오피아에 복음을 증거할 내시를 준비해두셨던 것처럼, 또 빌립이 가는 걸음 속에 사마리아를 준비해 놓았을 뿐만 아니라 그 내시를 만나게 했던 것처럼, 또 다메섹에 기도하는 아니니아에게 하나님은 정확하게 바울을 거기에서 꺾고 연결시켰던 것처럼 여러분 전도자의 마음을 가지고 서는 그 현장에 하나님의 최고의 관심이 있는 눈길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전도하는 그 순간에 반역자가 예배자로 바뀌는 시간이고, 전도하는 그 때가 바로 그 사람의 지옥의 미래가 천국의 미래로 바뀌는 시간이다. 이 전도자로서의 본분, 내가 평생에 하나님 앞에 서는 그 날까지 예배자로 서야 되겠다, 두 번째로 전도자로 서야 되겠다, 이 사실들을 기억하시고 이것을 놓치지 말기를 바란다.
특별히 전도자로 서되 우리에게 원하는 전도자의 삶이 있다. 예배자에게는 예배자의 삶이 있는 것처럼 전도자에게는 전도자의 삶이 있는데 나를 만나는 사람이 생명 안으로 딱 들어오도록, 그리고 나를 만나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이 교회화 되고, 주님이 가장 원하시는 전도와 선교의 마인드가 그들 마음에 주어지도록, 전도자의 삶이다. 그러한 삶을 살아가게 될 때에 하나님은 어떤 축복을 허락하시는가? 바로 보좌의 문을 여시고 보좌의 축복이 전도자의 삶을 사는 자들에게 임하게 되어있다. 사도행전3:1-12절에 보면 나면서 못 걷게 된 앉은뱅이를 향해서 전도자인 베드로와 요한이 정시예배를 통해서 복음을 선포하게 된다. 그 선포하는 현장에 운명 가운데 빠졌던 자들이 주께로 나아오게 되는 이런 어마어머한 역사가 일어난다. 그 앉은뱅이가 일어나면서 하나님을 찬송했다 말씀했다. 무슨 말인가? 운명 가운데 빠졌던 앉은뱅이에게 보좌화의 축복이 임했던 사실을 말씀하고 있다. 전도자의 걸음걸음 속에 주시는 축복된 응답이 있다면 바로 하늘보좌의 축복이 임하게 되어있는 것이다. 사도행전 7장에도 보면 스데반이 복음 증거하는 현장 속에 많은 기득권 가진 자들이 돌을 던져서 스데반을 돌에 맞아 순교하도록 만들었다. 그런데 그 현장에서 전도자 스데반은 정확하게 복음을 선포했다. 그 때에 전도자 스데반에게 하늘 보좌의 문이 열려지면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 스데반은 자기를 향해서 돌을 던지는 자들을 위해서 기도하게 된다. 어떤 기도를 했는가? “주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여러분 스데반이 보좌의 그 영광을 봤기 때문에 그 돌을 맞는 그 핍박들을 이길 수 있었고, 오히려 원수 조차도 위해서 기도할 수 있었던 비밀이 보좌화의 축복을 봤기 때문이다. 여러분 바울의 사역은 사도행전13:5-12절, 16:16-18절, 19:8-20절에 바울 사역의 중심이 나온다. 한마디로 미신의 현장에, 점술의 현장에, 우상숭배의 현장에 거기에 모든 정치하는 사람도 매여있고, 흑암문화로 매여있고, 귀신문화로 매여있는 그 현장에 바울로 말미암아 여러분 하나님 나라가 선포 되어지고, 거기에서 매인 바 된 자리에서 해방되어지는 역사가 일어나게 된 사실을 말하고 있다. 무슨 말인가? 전도자의 삶을 사는 바울의 모든 사역 속에 보좌화의 축복이 임한 사실을 말씀하고 있다. 우리가 전도자로서 평생에 잊지 말아야 할 본분이 있다면 먼저 예배자가 되는 것이고, 예배자의 삶을 사는 것이고, 두 번째로 전도자가 되는 것이고, 전도자의 삶을 사는 것이다. 거기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좌의 축복을 허락하시게 되어있는 것이다. 여러분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하늘 보좌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면 절대 세상을 이길 수 없다. 우리가 가진 것으로 세상임금, 악한 사단을 이길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 보좌의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 전도자의 삶 속에 들어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3. 동역자
세 번째다. 우리가 평생에 전도자로서 가져야 할 본분이 뭔가? 예배자와 전도자를 계속해서 일으키는 동역자의 축복을 누리게 되기를 바란다. 여러분 동역은 큰 힘을 얻는 시간이다. 특별히 반역자가 아니라 동역자를 말하고 있고, 방관자가 아니라 동역자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나 혼자는 적은 힘이지만 동역하면 큰 힘이 된다. 우리에게는 두 가지 힘이 있다. 눈에 보이는 힘이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이 있다. 눈에 보이는 힘은 전문성에 관한 것인데 지력과 체력과 경제력과 인력은 눈에 보이는 힘이라면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영력이고, 영성인 것이다. 특별히 눈에 보이지 않는 이 힘에 의해서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주어지는데 저와 여러분이 동역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눈에 보이지 않는 힘, 영적인 힘이 우리에게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시편118:7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 중에 계신다”고 했다. 가장 큰 우리의 동역자가 있다면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이다. 우리 하나님은 도와주시는 분이시다. 이 힘을 내가 먼저 가져야 한다. 내가 동역자로서의 축복을 가지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힘을 가져야 하는데 바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을 여러분 날마다 가져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의 기준이 뭔가? 로마서 16장, 또 골로새서 4장, 고린도전서 16장에 나오는 것이 바로 우리의 기준이다. 그러면서 누구를 도우라고 이런 기준을 우리에게 주셨는가? 그것은 바로 주의 교회와 주의 일을 하는 주의 종과 또 많은 후대들을 제대로 키우고 도우라고 이런 동역자의 귀중한 축복을 우리에게 허락하신다는 사실이다.
여러분 동역자의 삶이 중요하다. 나는 경쟁자가 아니라 돕는 자다. 그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영광이 돕는 자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내가 정말로 저 사람을 예배자로 도와야 하겠다. 그러면 그 어느 누구도 시기하거나 질투하지 않는다. 내가 정말로 전도자로서 도와야 하겠다 그러면 가서 경쟁하고 그러지 않는다. 여러분 우리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마음 중에 한 가지는 바로 동역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성경에 보면 시대적인 동역자 한 사람을 들 수 있다면 바로 갈렙이다. 아낙 산지는 아무도 못 빼앗은 산지다. 그러나 여호수아 마지막 부분에 보면 이 갈렙이 아낙 산지를 차지해서 레위인에게 선물로 주게된다. 그것은 바로 동역했다는 말이다. 왜 그렇게 철옹성 같은 아낙 산지를 레위인에게 주었을까? 그것은 레위인이 성을 빼앗겨 버리면 예배자, 전도자를 키워낼 수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레위인들만큼은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는 그런 성에 살아야 한다, 그게 갈렙의 중심에 있었던 것이다. 진정한 동역의 축복이 무엇인가를 아는 갈렙이었다. 그렇다. 우리는 사람을 살리는 자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말로 하나님 주시는 힘을 먼저 우리 자신들이 얻어야 하겠고, 또 우리 자신들이 동역자의 축복 속에서 모든 현장들을 살려나가야 한다. 우리 전도자로서의 가져야 할 본분이 있다면 바로 예배자요, 전도자요, 동역자가 되어지는 것이다.
마지막 말씀의 결론을 맺겠다. 오늘 14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마지막에 대한 부분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다. 우리는 한 길을 가는 순례자다. 그렇기 때문에 저와 여러분은 이 땅이 고향이 아니다. 우리는 한 길을 가는 순례자로 마지막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분명히 서게 되는데, 그렇다면 여러분 날마다 날마다 순례자로서 나를 넘어서는 훈련들을 하시길 바란다. 많은 경우 신앙생활 하면서도 나를 넘지 못해가지고 어마어마한 축복된 역사들을 다 놓치고 살아가는 것을 본다. 나를 넘어서는 그런 신앙의 훈련들이 되어져야 한다. 그러면서 절대로 어떤 것에도 매이지 말기를 바란다. 왜냐면 우리는 이 땅이 고향이 아니다. 영원한 것을 향해서 나아가는 순례자이기 때문에 이 땅의 그 어떤 것에도 여러분 매이지 말기를 바란다. 그리스도께만 매이면 된다. 그러면 모든 것 다 이길 수 있다. 세상의 그 어떤 명예와 세상의 그 어떤 가치관과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악한 사단은 자꾸 우리를 맬려고 하지만 여러분 우리는 그 어떤 것에도 매이지 말아야 한다. 왜냐? 우리의 고향이 이 땅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순례자의 길을 가는, 저 천국을 바라보면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자이기 때문에 이 땅의 그 어떤 것도 저와 여러분을 매이게 할 수 없다라는 사실이다.
그러면서 순례자의 삶, 참된 만족이 어디 있을까요? 우리 모두가 가져야 할 참된 만족이 있다면 그리스도가 다다라는 것이다. 시편16:2절에 보면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고 했다. 여러분 많이 가져도 그리스도가 여러분에게 복으로 안 보인다면 많이 가진 그게 저주고, 실패고, 위기다. 그러나 정말 부족하고, 연약하고, 모자라지만 그리스도가 다로 보인다면 그게 진짜 복인 것이다. 노예도 괜찮고, 총리가 되어도 괜찮다. 왜냐면 그리스도가 다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누군가? 바로 요셉이다.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했다. 그렇다. 순례자의 길을 가는 우리에게 진짜 그리스도가 다이기에 그리스도로 만족하길 바란다. 그리고 말씀이 우리의 참 만족이다. 그 어떤 경우에도 말씀을 놓치지 마시고, 또한 기도, 사실은 응답이 아니라 주님과의 교통함 그 속에 있는 것이 참된 복인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이 정말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에 과거는 이미 다 지났다.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에 미래를 놓고, 여러분 정말로 우리가 순례자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으로서 그리스도가 참된 만족이고, 말씀이 만족이고, 하나님과 소통하는 기도가 우리의 참 만족이라면 미래를 놓고 전도에 대한 계획을 세우라. 그리고 237 나라 선교에 대한 계획을 세우시고, 후대들 앞에 내가 마지막까지 어떠한 모습으로 설 것인가? 거기에 대한 계획들을 세워나감으로 말미암아 이제까지도 하나님이 여러분을 들어 쓰셔서 귀하게, 복되게 사용하셨는데 남은 생애가 더 큰 축복 가운데 쓰임받는 귀한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전도자로서의 본분”
(전12:13-14)
1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14.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아멘.
전12:13-14
■ 감사드린다. 오늘 특송으로 찬양하는 부분들 속에 우리 렘넌트들도 나왔는데 아마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음은 잘 잡지 못하지만 함께 찬양했던 것은 제 나름대로 잠시 앉아서 생각하는 동안에 오늘 우리 은퇴하는 분들 하나같이 가장 교회가 어려운 속에서 복음을 지켜주셨고 그 복음을 전달해주셔서 우리 렘넌트들까지 이 복음이 전달되어지는 이 축복을 보라고 아마 하나님께서 우리 렘넌트들을 세우신 것 같다. 너무 감사드리고 은혜로운 찬양, 중심에 정말로 마음을 담고 함께 찬양을 해주심에 너무나 감사드린다. 오늘 제목이 전도자로서의 본분이다. 특별히 오늘 원로장로 추대가 있고, 은퇴장로, 은퇴집사, 은퇴권사, 은퇴여전도사 추대가 함께 또 진행되어진다. 여러분 직분은 교회법에 의해서 70세로 그만두게 되지만 오늘 제목이 뭔가? 전도자로서의 본분이다. 전도자로서의 은퇴는 없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 가시는 그날까지 여러분 전도자로서 귀중한 축복된 사명들을 감당해야 할 것인데, 제가 바라고 또 기도하옵기는 정말로 신언에 강건함을 얻어서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전도자로서의 귀한 사명이 새롭게 시작되는, 그런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모세의 사역을 보면 120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는데 신명기 34장 마지막 부분에 모세의 마지막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가? 기력이 쇠해지지 아니하고, 눈이 흐려지지 아니했다고 했다. 무슨 말인가? 하나님께서 모세로 말미암아 사명 감당하시다가 그대로 불러가셨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다. 오늘 기도 중에도 장로님 말씀했습니다만 갈렙은 85세임에도 불구하고 아낙 산지를 자신에게 달라고 기도하면서 나왔다. 가장 어려운 때에, 85세라는 나이에 갈렙은 아낙산지를 달라고 기도하고 나왔다. 그 마음 중심에 물론 갈렙의 보고 가운데 들어보면 내가 옛날과 같이 건강이 여전하다 했는데, 여러분 건강이 여전하겠는가? 저는 그 말씀을 읽으면서 그 마음 중심에 있는 하나님을 향한, 전도자로서의 사명을 향한 그 열정들이 식어지지 않았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된다. 진짜 전도자로서 여러분 성령의 충만함을 입게되면 연세 상관없다. 여러분 젊은이들이 꾸지 못한 꿈을 꾸게 되고, 요엘서 2장에 말씀하고 있다. 성령의 충만함이 임하게 될 때에 늙은 이들은 꿈을 꾸며 말씀했다. 여러분 젊은 사람들도 꿈이 없어서 살아가는 이러한 시대 속에서 여러분 전도자로서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은퇴하는 자리에 있지만 더욱 더 성령의 충만함 속에 들어가면 젊은이들이 갖지 못한 꿈들이 여러분에게 일어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정말로 복음 사랑하는 그 마음 중심들이 우리 후대들에게 계속해서 전달되어지고, 많은 열매들이 이제까지도 있었지만 더 큰 응답의 열매들이 여러분 생애속에 열려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바울도 마지막에 보면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모든 사역을 마무리 할 수 있을 것인데 바울은 거기에 머무르지 않았다. 전도자로서 내가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연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마음 중심에 복음을 사랑하는 그 마음들을 우리가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오늘 한 분, 한 분 정말로 그동안 교회를 위해서 기도해주시고, 주의 종을 위해 기도해주시고, 우리 후대들의 발판 되어주신 것을 너무나 감사한다. 여러분은 이제 직분은 그만 두지만 전도자로서의 사역은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계속 되어진다는 사실을 아시고, 더욱 더 강건함의 축복이 여러분 개개인에게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특별히 오늘 본문의 전도서는 너무나 잘 아는 부분들이다. 솔로몬을 통해서 인생의 모든 것들이 헛됨을 고백하게 하고, 결국 오늘 본문의 마지막에 보면 인생의 결론을 다 들었으니 말씀하고 있다. 무슨 말인가? 우리 인생의 결론을 놓고 다시 시작하라는 말씀이다. 세상에 그 어떤 것도 결국 헛되고 헛되고 헛되니까 헛되지 않은 것들을 붙잡고 남은 생애 새롭게 시작하고 새로운 축복으로 서 있으라고 오늘 솔로몬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메시지인 것이다. 여러분 이 전도서를 기록한 솔로몬은 정말로 영원한 것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깨달았다는 말이다. 없어지지 않는 것들을 위해서 생명을 걸라는 메시지다. 그게 오늘 본문에 13절, 14절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오늘 은퇴하는 모든 분들, 또 함께 은퇴를 축하하기 위해서 참여한 모든 하나교회 성도들이 먼저 영원한 것이 무엇인가? 전도자로서 본분이 무엇인가?
1. 예배자
먼저는 첫 번째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가 되는 것인데 평생 잊지 말라. 우리 성도들과 특별히 오늘 은퇴하시는 분들도 마찬가지고 절대로 평생 잊지 말아야 할 본분 중의 본분이 있다면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로 서 있는 것이다. 예배는 무엇인가? 보좌에 앉으신 그 하나님의 영광에 함께하는 시간이 바로 예배인 것이다. 우리 인간에게는 영광이 없다. 그래서 로마서3:23절에도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 했다. 원래 우리 인간에게는 영광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 영광의 시간이, 바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예배의 시간이 우리에게 영광이 임하는 그런 축복의 시간인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찬송가 27장 1절 가사에 보면 이런 내용이 있다. “빛나고 높은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주 예수 얼굴 영광이 해 같이 빛나네” 우리 인생에는 영광이 없는데 예배함으로 주께 나아가는 자에게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영광이 해 같이 빛난다라고 말씀하고 했다. 찬송가 27장 5절에 보면 “주님의 보좌 있는데 천한 몸 이르러 그 영광 몸소 뵈올 때 내 기쁨 넘치리” 여러분 예배를 통해서 날마다 날마다 하나님의 영광에 들어감으로 말미암아 참된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이 여러분 가운데 넘쳐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느헤미야8:10절에 보면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나님의 영광의 시간이 바로 최고의 힘을 얻는 시간인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계시록4:10절에도 보면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이르되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우리의 모든 영광과 권능과 존경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은 바로 그리스도 뿐인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베드로전서3:22절에도 “그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에게 복종하느니라” 보좌에 앉으신 그리스도 앞에 천사들도 능력들도 권세들도 복종하신다 말씀했다. 그렇다면 영광스러운 그 자리에 계신 주님께서 인생을 찾으시는데 어떠한 사람을 찾으시는가? 보좌에 앉으신 그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능력을 공급해주시는데 어떠한 자에게 능력을 공급해주시고 어떠한 자를 찾으시는가? 요한복음4:23절이다.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 말씀했다. 영광 가운데 계시는 주님께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는 것이다. 여러분 이 하나님의 눈에 발견되어지는 시간이 바로 예배 시간인 것이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시간 그게 바로 예배 시간이요, 이 영광을 갖고 계시는 그 하나님의 눈에 발견되어지는 시간이 바로 예배 시간인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눈에 발견되어지면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고, 하나님께서 만들어가시는 것이다. 이 예배의 영광 속에 우리 은퇴하시는 모든 분들, 지금까지도 이 예배의 영광을 아시고 살아왔습니다만 남은 생애 더욱 더 이 예배의 영광 속에 거하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여러분 우리 신앙생활의 핵심이 뭔가? 예배다. 아니 예배만 바르게 드리면 되느냐? 그건 예배의 영광스러움을 몰라서 그렇다. 아니 삶도 바르게 살아야 하고, 생활도 바르게 해야지 무슨 예배만 바르게 드리면 되느냐? 여러분 어거스틴은 이렇게 말했다.“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마음대로 사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무엇에도 잘못되지 않는다라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진정으로 예배하십시오. 그리고 마음대로 하십시오 라고 했다. 하나님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의 삶은 결단코 진리를 벗어나지 않는다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다. 다시 한 번 말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면 이 세상 가운데 악을 이기며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이 평생에 있어서 정말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예배자로 사시길 바란다. 이게 전도자로서의 본분 중의 본분이다.
특별히 예배하는 자의 삶을 사시길 바란다. 무슨 말인가? 예배자로 사시는데 예배하는 자의 삶이 뭐냐하면 여러분 매일매일 삶 속에서 하루에 한 번 만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놓고 깊이 묵상하는, 집중하는 시간들이 여러분에게 있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주일날 받은 말씀이나 또 여러분 특별히 현장에 말씀들 붙잡고 매일매일 하나님과의 1:1의 관계 속에 서서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시간들, 그 시간들이 여러분에게 있어져야 한다. 그것이 바로 예배하는 자의 삶이다. 특별히 우리가 언약 붙잡고, 강단의 말씀 붙잡고 기도해서 힘을 얻고, 미션을 얻는 시간, 그 집중할 수 있는 시간들이 내게 있다면 여러분이 아무리 연세 들어도 상관없다. 어떤 환경이 앞으로 여러분에게 주어진다 할지라도 상관없다. 많은 분들이 연세 들면 들수록 결국 나 중심으로 빠져들고, 또 연세 들면 들수록 이상해지는데 그러나 여러분 정말로 하나님과의 1:1관계 속에서 말씀 붙잡고 조금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들이 여러분에게 있다면 그 어떤 것도 문제될 수 없다라는 사실이다. 나만의 조용한 시간들을 만들어야 한다. 평안하면서도 여유있는 시간들이다. 평상시에 많은 문제와 또 중요한 일들을 놓고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누리는, 실제적인 깊은 집중의 시간들이 여러분에게 회복되어져야 한다. 그렇게 되어지면 여러분 문제 있어도 그게 문제가 안 된다. 왜냐?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문제가 문제 안 될 뿐만 아니라 문제 있어도 괜찮다. 왜냐면 그 문제 속에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실을 누리기 때문에 그렇다. 가면 갈수록 이 땅의 앞으로의 시대는 예배하고 싶어도 예배할 수 없는 시대고, 말씀을 듣고 싶어도 말씀을 들을 수 없는 시대가 오고있다. 어떤 면에서 우리 후대들에게는 예배에 목숨걸지 않으면 올바른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시대가 이미 왔다. 히브리서10:25절에 “마지막 날에 폐하기를 즐겨하는 자의 어떤 습관과 같이 하지말라”고 했는데 지금 어떤 면에서 모이는 그 자체가 힘든 시대요, 말씀을 붙잡는 그 자체가 힘든 시대다. 특별히 여러분 예배에 목숨 걸지 않으면 악한 사단의 공격들이 계속해서 우리를 공격하게 되어있다. 마태복음 4장에 있는 말씀처럼 예수님 앞에도 나와서 경배의 대상을 바꾸라고 시험을 했다. 여러분 예배를 놓쳐버리게 되면 마지막에 여러분의 인생은 어떻게 되는가? 나 자신의 우상에 갇히게 된다. 그래서 여러분이 평생에 전도자로서 지금까지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잘 인도받아서 승리하는 삶을 사셨는데 남은 생애도 정말로 주님 앞에 서는 그 날까지 예배자로 서는 그런 축복된 응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2. 전도자
두 번째로 예배자를 일으키는 전도자로 서시길 바란다. 예배자를 일으키는 전도자로서 서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전도자로서의 본분이다. 여러분 전도의 시간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생명의 시간이다. 그래서 고린도전서1:21절에도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은 “전도의 미련한 것을 통해서 사람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신다” 말씀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전도하는 그 시간이 생명의 시간인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데 내가 있는 현장에서 예수가 그리스도 되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증거할 때에 일어나는 일이 바로 생명의 시간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있다. 그 때 일어나는 일이 바로 어떤 일인가? 하나님이 가장 눈여겨보는 시간이 바로 그 시간이다. 여러분의 현장에서 전도자로서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며 그 사실 앞에 서게 될 때에 그 때 하나님이 여러분의 모든 걸음들을 세밀하게 눈여겨보시게 되어있다. 마치 여러분 빌립이 가는 걸음 속에 정확하게 에디오피아에 복음을 증거할 내시를 준비해두셨던 것처럼, 또 빌립이 가는 걸음 속에 사마리아를 준비해 놓았을 뿐만 아니라 그 내시를 만나게 했던 것처럼, 또 다메섹에 기도하는 아니니아에게 하나님은 정확하게 바울을 거기에서 꺾고 연결시켰던 것처럼 여러분 전도자의 마음을 가지고 서는 그 현장에 하나님의 최고의 관심이 있는 눈길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전도하는 그 순간에 반역자가 예배자로 바뀌는 시간이고, 전도하는 그 때가 바로 그 사람의 지옥의 미래가 천국의 미래로 바뀌는 시간이다. 이 전도자로서의 본분, 내가 평생에 하나님 앞에 서는 그 날까지 예배자로 서야 되겠다, 두 번째로 전도자로 서야 되겠다, 이 사실들을 기억하시고 이것을 놓치지 말기를 바란다.
특별히 전도자로 서되 우리에게 원하는 전도자의 삶이 있다. 예배자에게는 예배자의 삶이 있는 것처럼 전도자에게는 전도자의 삶이 있는데 나를 만나는 사람이 생명 안으로 딱 들어오도록, 그리고 나를 만나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이 교회화 되고, 주님이 가장 원하시는 전도와 선교의 마인드가 그들 마음에 주어지도록, 전도자의 삶이다. 그러한 삶을 살아가게 될 때에 하나님은 어떤 축복을 허락하시는가? 바로 보좌의 문을 여시고 보좌의 축복이 전도자의 삶을 사는 자들에게 임하게 되어있다. 사도행전3:1-12절에 보면 나면서 못 걷게 된 앉은뱅이를 향해서 전도자인 베드로와 요한이 정시예배를 통해서 복음을 선포하게 된다. 그 선포하는 현장에 운명 가운데 빠졌던 자들이 주께로 나아오게 되는 이런 어마어머한 역사가 일어난다. 그 앉은뱅이가 일어나면서 하나님을 찬송했다 말씀했다. 무슨 말인가? 운명 가운데 빠졌던 앉은뱅이에게 보좌화의 축복이 임했던 사실을 말씀하고 있다. 전도자의 걸음걸음 속에 주시는 축복된 응답이 있다면 바로 하늘보좌의 축복이 임하게 되어있는 것이다. 사도행전 7장에도 보면 스데반이 복음 증거하는 현장 속에 많은 기득권 가진 자들이 돌을 던져서 스데반을 돌에 맞아 순교하도록 만들었다. 그런데 그 현장에서 전도자 스데반은 정확하게 복음을 선포했다. 그 때에 전도자 스데반에게 하늘 보좌의 문이 열려지면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 스데반은 자기를 향해서 돌을 던지는 자들을 위해서 기도하게 된다. 어떤 기도를 했는가? “주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여러분 스데반이 보좌의 그 영광을 봤기 때문에 그 돌을 맞는 그 핍박들을 이길 수 있었고, 오히려 원수 조차도 위해서 기도할 수 있었던 비밀이 보좌화의 축복을 봤기 때문이다. 여러분 바울의 사역은 사도행전13:5-12절, 16:16-18절, 19:8-20절에 바울 사역의 중심이 나온다. 한마디로 미신의 현장에, 점술의 현장에, 우상숭배의 현장에 거기에 모든 정치하는 사람도 매여있고, 흑암문화로 매여있고, 귀신문화로 매여있는 그 현장에 바울로 말미암아 여러분 하나님 나라가 선포 되어지고, 거기에서 매인 바 된 자리에서 해방되어지는 역사가 일어나게 된 사실을 말하고 있다. 무슨 말인가? 전도자의 삶을 사는 바울의 모든 사역 속에 보좌화의 축복이 임한 사실을 말씀하고 있다. 우리가 전도자로서 평생에 잊지 말아야 할 본분이 있다면 먼저 예배자가 되는 것이고, 예배자의 삶을 사는 것이고, 두 번째로 전도자가 되는 것이고, 전도자의 삶을 사는 것이다. 거기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좌의 축복을 허락하시게 되어있는 것이다. 여러분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하늘 보좌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면 절대 세상을 이길 수 없다. 우리가 가진 것으로 세상임금, 악한 사단을 이길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 보좌의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 전도자의 삶 속에 들어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3. 동역자
세 번째다. 우리가 평생에 전도자로서 가져야 할 본분이 뭔가? 예배자와 전도자를 계속해서 일으키는 동역자의 축복을 누리게 되기를 바란다. 여러분 동역은 큰 힘을 얻는 시간이다. 특별히 반역자가 아니라 동역자를 말하고 있고, 방관자가 아니라 동역자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나 혼자는 적은 힘이지만 동역하면 큰 힘이 된다. 우리에게는 두 가지 힘이 있다. 눈에 보이는 힘이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이 있다. 눈에 보이는 힘은 전문성에 관한 것인데 지력과 체력과 경제력과 인력은 눈에 보이는 힘이라면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영력이고, 영성인 것이다. 특별히 눈에 보이지 않는 이 힘에 의해서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주어지는데 저와 여러분이 동역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눈에 보이지 않는 힘, 영적인 힘이 우리에게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시편118:7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 중에 계신다”고 했다. 가장 큰 우리의 동역자가 있다면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이다. 우리 하나님은 도와주시는 분이시다. 이 힘을 내가 먼저 가져야 한다. 내가 동역자로서의 축복을 가지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힘을 가져야 하는데 바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을 여러분 날마다 가져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의 기준이 뭔가? 로마서 16장, 또 골로새서 4장, 고린도전서 16장에 나오는 것이 바로 우리의 기준이다. 그러면서 누구를 도우라고 이런 기준을 우리에게 주셨는가? 그것은 바로 주의 교회와 주의 일을 하는 주의 종과 또 많은 후대들을 제대로 키우고 도우라고 이런 동역자의 귀중한 축복을 우리에게 허락하신다는 사실이다.
여러분 동역자의 삶이 중요하다. 나는 경쟁자가 아니라 돕는 자다. 그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영광이 돕는 자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내가 정말로 저 사람을 예배자로 도와야 하겠다. 그러면 그 어느 누구도 시기하거나 질투하지 않는다. 내가 정말로 전도자로서 도와야 하겠다 그러면 가서 경쟁하고 그러지 않는다. 여러분 우리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마음 중에 한 가지는 바로 동역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성경에 보면 시대적인 동역자 한 사람을 들 수 있다면 바로 갈렙이다. 아낙 산지는 아무도 못 빼앗은 산지다. 그러나 여호수아 마지막 부분에 보면 이 갈렙이 아낙 산지를 차지해서 레위인에게 선물로 주게된다. 그것은 바로 동역했다는 말이다. 왜 그렇게 철옹성 같은 아낙 산지를 레위인에게 주었을까? 그것은 레위인이 성을 빼앗겨 버리면 예배자, 전도자를 키워낼 수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레위인들만큼은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는 그런 성에 살아야 한다, 그게 갈렙의 중심에 있었던 것이다. 진정한 동역의 축복이 무엇인가를 아는 갈렙이었다. 그렇다. 우리는 사람을 살리는 자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말로 하나님 주시는 힘을 먼저 우리 자신들이 얻어야 하겠고, 또 우리 자신들이 동역자의 축복 속에서 모든 현장들을 살려나가야 한다. 우리 전도자로서의 가져야 할 본분이 있다면 바로 예배자요, 전도자요, 동역자가 되어지는 것이다.
마지막 말씀의 결론을 맺겠다. 오늘 14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마지막에 대한 부분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다. 우리는 한 길을 가는 순례자다. 그렇기 때문에 저와 여러분은 이 땅이 고향이 아니다. 우리는 한 길을 가는 순례자로 마지막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분명히 서게 되는데, 그렇다면 여러분 날마다 날마다 순례자로서 나를 넘어서는 훈련들을 하시길 바란다. 많은 경우 신앙생활 하면서도 나를 넘지 못해가지고 어마어마한 축복된 역사들을 다 놓치고 살아가는 것을 본다. 나를 넘어서는 그런 신앙의 훈련들이 되어져야 한다. 그러면서 절대로 어떤 것에도 매이지 말기를 바란다. 왜냐면 우리는 이 땅이 고향이 아니다. 영원한 것을 향해서 나아가는 순례자이기 때문에 이 땅의 그 어떤 것에도 여러분 매이지 말기를 바란다. 그리스도께만 매이면 된다. 그러면 모든 것 다 이길 수 있다. 세상의 그 어떤 명예와 세상의 그 어떤 가치관과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악한 사단은 자꾸 우리를 맬려고 하지만 여러분 우리는 그 어떤 것에도 매이지 말아야 한다. 왜냐? 우리의 고향이 이 땅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순례자의 길을 가는, 저 천국을 바라보면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자이기 때문에 이 땅의 그 어떤 것도 저와 여러분을 매이게 할 수 없다라는 사실이다.
그러면서 순례자의 삶, 참된 만족이 어디 있을까요? 우리 모두가 가져야 할 참된 만족이 있다면 그리스도가 다다라는 것이다. 시편16:2절에 보면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고 했다. 여러분 많이 가져도 그리스도가 여러분에게 복으로 안 보인다면 많이 가진 그게 저주고, 실패고, 위기다. 그러나 정말 부족하고, 연약하고, 모자라지만 그리스도가 다로 보인다면 그게 진짜 복인 것이다. 노예도 괜찮고, 총리가 되어도 괜찮다. 왜냐면 그리스도가 다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누군가? 바로 요셉이다.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했다. 그렇다. 순례자의 길을 가는 우리에게 진짜 그리스도가 다이기에 그리스도로 만족하길 바란다. 그리고 말씀이 우리의 참 만족이다. 그 어떤 경우에도 말씀을 놓치지 마시고, 또한 기도, 사실은 응답이 아니라 주님과의 교통함 그 속에 있는 것이 참된 복인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이 정말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에 과거는 이미 다 지났다.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에 미래를 놓고, 여러분 정말로 우리가 순례자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으로서 그리스도가 참된 만족이고, 말씀이 만족이고, 하나님과 소통하는 기도가 우리의 참 만족이라면 미래를 놓고 전도에 대한 계획을 세우라. 그리고 237 나라 선교에 대한 계획을 세우시고, 후대들 앞에 내가 마지막까지 어떠한 모습으로 설 것인가? 거기에 대한 계획들을 세워나감으로 말미암아 이제까지도 하나님이 여러분을 들어 쓰셔서 귀하게, 복되게 사용하셨는데 남은 생애가 더 큰 축복 가운데 쓰임받는 귀한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자 | 설교일 |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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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5 | 이정표를 올바르게 잡는 자 | 렘31:21 | 박세광 선교사 | 2025-04-27 | |
354 | 선교 - 하나님께는 먼 곳이 없다 | 마28:18-20 | 홍명식 선교사 | 2025-04-20 | |
353 | 우리는 그리스도의 편지입니다 | 고후3:1-3 | 안영수 선교사 | 2025-04-13 | |
352 | 잃어버린 선교 시대 | 행11:27-30 | 신봉준 목사 | 2025-04-06 | |
351 | 찬양예배 | 2025-03-30 | |||
350 | 내가 파야 할 우물 - 개인 예배 | 창26:12-23 | 홍하람 준목 | 2025-03-23 | |
349 | 날마다의 예배 | 행2:42-47 | 오석진 목사 | 2025-03-16 | |
348 | 산 제사 | 행5:42 | 박래휘 목사 | 2025-03-09 | |
347 | 최우선 순위에 두어야 할 것 | 히4:16 | 신봉준 목사 | 2025-03-02 | |
346 | 성도를 온전케 함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교회 | 엡4:11-16 | 최상국 목사 | 2025-02-23 | |
345 | 훗날에 기억될 교회! | 사61:8-9 | 박승태 전도사 | 2025-02-16 | |
344 | 세상 살리는 교회의 역할 | 마16:16-19 | 김삼현 목사 | 2025-02-09 | |
343 |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 | 마16:13-19 | 신봉준 목사 | 2025-02-02 | |
342 | 삶의 기본 | 고전10:31 | 김진용 목사 | 2025-01-26 | |
341 | 응답의 기본 - 성령충만 | 행1:8 | 김삼현 목사 | 2025-0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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