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의 축복
2020-03-22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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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2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의 축복”
(사66:10~14)
10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들이여 다 그 성읍과 함께 기뻐하라 다 그 성읍과 함께 즐거워하라 그 성을 위하여 슬퍼하는 자들이여 다 그 성의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성과 함께 기뻐하라
11 너희가 젖을 빠는 것 같이 그 위로하는 품에서 만족하겠고 젖을 넉넉히 빤 것 같이 그 영광의 풍성함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라
12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그에게 평강을 강 같이, 그에게 뭇 나라의 영광을 넘치는 시내 같이 주리니 너희가 그 성읍의 젖을 빨 것이며 너희가 옆에 안기며 그 무릎에서 놀 것이라
13 어머니가 자식을 위로함 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니
14 너희가 이를 보고 마음이 기뻐서 너희 뼈가 연한 풀의 무성함 같으리라 여호와의 손은 그의 종들에게 나타나겠고 그의 진노는 그의 원수에게 더하리라. 아멘.
사66:10~14
■ 하나님께 영광의 박수를 드리겠습니다. 다 같이 축복을 선언하십시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나중 영광이 크리라. 우리의 믿음의 고백을 가지고 다시 한번 더 선포하십시다. 나중 영광이 크리라. 네, 감사합니다. 우리가 수 많은 예배들이 드려졌습니다마는 오늘 여러분 있는 처소에서 드리는 예배가 처음 드리는 예배처럼 최고의 축복된 은혜의 예배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금 계속해서 우리가 코로나19로 많은 세계적인 어려움들을 당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전세계로 확산되어지면서 급하게 세계가 바뀌어져 가는 부분들을 보게 됩니다. 하루가 다르게 세계가 경직되어지고 있고요, 또 여러 상황들이 좋지 않은 쪽으로 계속해서 흘러가고 있는 부분들을 보게 됩니다. 각 나라마다 국가 비상사태를 선언하게 되고, 또 WHO에서는 팬데믹해서 세계 대유행을 선포하게 되고, 그러니까 나라들마다 사실은 문을 걸어 잠그면서 이동하는 것을 제한시키고 그래서 통행금지까지 일어나는 나라들이 있더라고요, 그런 가운데서 그렇게 환경들이 되어지니까 모든 운동 경기들도 스톱 되어지고, 또 공연들도 스톱되어지고, 심지어 박물관들 조차도 문을 닫게 되는 부분들을 보게 됩니다. 결과로 또한 세계 경제에 엄청난 위기를 당하고 있는 이런 부분들을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 어려움의 시기에 우리는 그냥 어렵다, 이것이 지나가겠지 그렇게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유익한 부분들을 찾아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되고 승승장구할 때보다도 때로는 우리가 너무 힘들고 어려울때에 그때 오히려 하나님의 더 큰 은혜의 역사들을 누릴 수 있게 되는 사실들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재앙이라 하지만 분명히 그 배후에는 하나님의 일하심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배후에 하나님이 여전히 일 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안다면 결국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결국은 우리에게 유익함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어떤 환경 속에서도 환란이나 기근이나 전쟁이나 재난이나 지금 전염병 같은 그런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은 유효한 것이고요, 그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은 지금도 이어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절대로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야 합니다. 그래서 요한복음16:33 절의 말씀처럼 이러한 환경 속에서도 우리는 담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너희가 세상에서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분명히 이 땅에 하나님의 귀중한 계획들이 있는 것인데, 특별히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가 하나님의 그 계획들을 알기 위해서는 지금 이 땅에 일어나는 전염병의 문제가 단순한 부분들이 아니라 사실은 영적인 싸움인 것을 여러분 아셔야 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볼 때 한국 교회가 공격을 받은 것입니다. 교회도 아닌 것이 교회의 탈을 쓰고 이단 사이비 단체인 신천지가 바이러스를 퍼트리는 그 중심에 있게 되는 부분들을 우리가 보고 있잖아요. 사실 교회도 아닙니다. 그런데 예수교회라는 이름의 탈을 쓰고 완전 사이비 단체인데 그 단체가 지금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에 그 중심에 있는 부분들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잘 알 듯이 이 신천지는 어떠한 단체입니까? 결국 자세히 알고 보면 우리의 책임이예요. 교회 안에 그리스도면 모든 문제 해결이고 그리스도면 모든 것이 답인데 끝난 것인데, 거기에 대해서 답을 얻지 못하니까 많은 사람들이 갈등하고 낙심하게 되니까 그들을 유혹해서, 그들을 중심으로 공격해서 결국은 많은 확신 없는 신자들을 빼앗아 나간 겁니다. 그뿐만이 아니지요. 한국의 많은 성도들이 복음, 하나님의 말씀위에 굳게 세워지면 그 어떤 이단 사이비 단체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인데, 그렇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결국은 복음으로 올바로 무장되지 못한 성도들을 유혹해서 거기에 많은 성도들이 넘어가 있다라는 사실입니다. 심지어 여러분, 목사들도 거기에 넘어가 있는 사람들이 있고요, 교회 중직자들도 거기에 넘어가 있는 사람들이 많고요, 또, 교회 목사나 중직자의 자녀들이 거기에 넘어가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보고를 들으면서 정말로 우리 이 한 시대에 복음 가진 교회들이 무엇을 했나라는 이런 마음들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죄송스러움으로 설 수 있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물론 하나님께서 이단 사이비들의 거짓됨을 드러내는, 청소하는 그래서 새롭게 하나님의 백성들을 복음 앞에 세워나가는 하나님의 작업입니다마는 어떻든 영적인 싸움이예요. 한국교회 엄청난 영적인 공격을 받은 것이 이번 사건을 통해서 우리가 깨닫게 되어지는 부분들입니다. 더더욱이 보세요. 지금 신천지를 넘어서 이제는 교회에 그 타켓이 넘어가서 모여서 예배 드릴 수도 없는, 그래서 교회에 대해서 이래라 저래라 정부가, 사회가 이야기하고 있는 이런 실정들이 지금 우리가 당하고 있는 문제들입니다. 예배를 드려라 드리지말라, 또 긴급 명령권을 발동해서 예배드리는 것을 막아야 된다. 또 행정조치를 취해서 예배로 모여지는 이런 부분들을 막아야 된다 여러 가지 이런저런 말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또 예배 드리는 것도 허가를 맡고 예배드릴 수 있도록 그렇게 해야 되지 않겠느냐 그런 이야기들도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단순히 물론 교회로서 이 땅의 질서를 유지하고 그 전염병 같은 부분들을 확산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먼저 앞서서 발 벗고 나서서 그 부분에 대한 사회에 대한 책임을 가지고 앞서서 나가야 되는 부분들은 맞습니다. 그러나 신앙에 대한 부분들을 이렇게 저렇게 이야기 할 수 있다라는 것은 아니예요. 이것은 분명히 그 배후에 단지 드러난 어떤 정부의 그런 권고다 그게 아니라, 그 배후에 악한 사탄의 역사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영적인 싸움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의 인생 여정 자체가 이번에 이 사건을 통해서 우리가 처절하게 깨닫잖아요. 그냥 우리의 삶이 놀이터가 아니라 영적인 싸움의 현장이구나, 순간 순간 우리의 인생의 여정에서 영적싸움을 싸우지 않고는 안되는 것이구나 이 사실을 더더욱 보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물론 영적인 싸움의 본질은 여러분 악한 사탄, 이 세상의 어둠의 주관자, 거기에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성경에 보면 결국은 이 복음에 대한 부분들을 이야기할 때에 결국은 영적인 싸움인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어요. 그래서 에베소서6장에 보면 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향해서 뭐라고 이야기를 했습니까? 너희가 복음을 이해하고 거기에 대한 옷을 입고 전신갑주를 취해서 영적인 싸움을 싸우라 한 것을 보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분명히 지금 우리가 당하는 문제는 단순한 코로나19 전염병에 대한 확산이다 거기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이것이 바로 영적인 싸움인 것을 알아야 되고, 그 영적인 싸움 그 속에는 또 한가지는 분명히 하나님의 중요한 계획들이 그 속에 있음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땅에 일어나는 작은 일 하나도 하나님의 계획이 아닌 것이 없지요.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나와서 예배드릴 수 없는 이러한 상황들로 되어 버렸어요. 그리고 전도의 문들이 막혀지는 것은 아니지만 일시적으로 전도문이 막혀지는 것 같은 이런 환경들이 되어 버렸어요. 그렇다면 여기에 하나님의 이유와 하나님의 계획이 없겠느냐 이 말입니다. 여러분,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이유가 분명히 있습니다. 어느 시대나 있었고요, 지금도 그 하나님의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한가지입니다. 바로 사탄의 세력을 꺽어버리고 그리스도 그 이름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복음 막는 자들을 깨트려 버리고 복음 전하는 자들을 높이 세우셔서 하나님께서 세계 만방에 이 복음이 증거케 되어지는 그 역사를 위해서 이러한 일들을 지금도 하나님이 계획 속에서 이루어가고 계시다라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하나님의 계획은, 하나님의 이유는 한가지입니다. 복음이 복음됨을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복음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나타내기 위해서고요, 본질을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그게 하나님의 이유요, 하나님의 계획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본질로 돌아가고, 본질을 회복해야 되는 부분들이 많이 있습니다마는 특별히 예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고, 또 실제로 우리가 지금 당하는 상황들이 매일 우리가 그냥 당연한 것처럼 예배드리고 누리다 보니까 그 예배의 귀중함을 몰랐잖아요. 그런데 이런 기회를 통해서 다시 한번 더 예배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깨닫게 되면서 예배의 본질을 회복하는 그 이유가 있는 것이고요, 또 교회에 대한 본질이 무엇인가를 회복케하는 그런 중요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특별히 본문에 보면 10절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요.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들이여” 여기서 예루살렘은 무엇을 말하느냐? 교회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예루살렘을 다른 이름으로 성경에 보면 ‘시온’이라는 이름도 나오는데, 동일하게 교회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들이여”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교회 본질을 회복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같이 모여서 예배드리지 못하는 안타까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냥 같이 모여서 예배드리지 못하는 안타까움 가직 참 안타깝다 예배가 중요하다 거기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배드릴 수 없는, 같이 모여서 예배드릴 수 없는 이 시간들을 통해서 우리가 바뀌어져야 돼요. 우리가 변화되어져야 돼요. 그래서 다시 모여서 예배드릴 때는 바뀌어진 모습을 가지고 나와서 예배드려야 해요. 변화된 모습을 가지고, 그냥 옛날 예배드렸던 그 삶으로 와서 예배드리는 것이 아니라, 바뀌어지고 변화된 모습을 가지고 와서 예배드리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교회가 어떻게 바뀌어져야 되느냐?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이사야66장 전체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데 먼저 첫 번째입니다.
1.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이 가득한 교회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이 가득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나타나는 교회가 되어야 된다라는 사실이예요. 교회가 다른 것을 가지고 힘쓰고 힘 얻으면 안 되어요. 교회 안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만 나타나야 합니다. 복음의 역사만 나타나야 합니다. 그게 하나님이 교회를 향해서 요구하시는 부분들입니다. 다른 것들은 세상에 많아요. 그런데 세상에 없는 것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 찬양대 찬양 드렸던 것처럼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그 생명만 세상의 현장에 없는 거예요. 그래서 교회 만에게 주신 축복이 있다면 오직 예수 그리스도 생명만 나타나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이예요. 이 복음의 역사만 가득차고, 복음의 역사만 교회를 통해서 나타나야 된다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민족,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명의 역사를 놓쳐버리니까 그들이 잘한 것이 뭡니까? 모이고, 또 시설 준비하고 또 날짜 중요하게 여기고 이런 모든 생명 외에 다른 것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게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들이었습니다. 그것을 오늘도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지적하고 있어요. 하늘이 나의 보좌이고 땅이 나의 발판 아니냐 그게 1절에 말씀하고 있어요. 하늘이 나의 보좌이고 땅이 나의 발판인데 너희가 무슨 일을 해서 하나님을 기쁘게 한다고 하느냐 이스라엘 백성들은 생명의 역사를 누리지 못하니까 내가 무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모든 건물들 준비하고, 시설들 준비하고, 예배의식들 중요하게 여기고 그런데 하나님은 오늘 본문에 그게 아니라는 사실이예요. 하늘 보좌를 내가 지었고, 모든 세상의 발판, 내 발판이 아니냐 너희가 무엇을 한다고 하느냐? 그러면서 2절에 보면 하나님의 마음을 말씀하고 있는데 상한 마음을 찾고 말씀에 떠는 자를 하나님이 찾고 계신다는 사실이예요. 이 생명의 역사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놓쳐버리니까 결국은 생명 외에 다른 것에 관심이 있었던 거예요. 그러니까 그 예배 자체가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가 될 수가 없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가장 귀중한 것들을 놓친 이스라엡 백성들의 예배를 틀린 예배라는 사실을 오늘 3절에 말씀하고 있는데요. 거기 보세요. “소를 잡아 드리는 것은 살인함과 다름이 없다. 개의 목을 꺽음 같고 돼지의 피와 다름이 없다. ”너희들이 지금 예배 드린다고 예배 드리는데 생명의 비밀을 놓쳐버린, 하나님의 마음과 중심을 놓쳐버린 그 예배는 개의 목을 꺽음 같다, 돼지의 피를 드림과 같다고 했어요.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부정한 짐승에 속하는 것이 개이고 돼지의 피입니다. 그 제사를 안 받으신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너희가 생명의 비밀, 하나님의 중요한 마음 중심을 놓쳐버리고 예배 드릴 때에 예배를 드린다고 하지만 그 제물은 하나님께서 받지 아니하신다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예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들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생명을 가지고 그 생명이 나타나는 예배가 되어져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사야 1장에도 보면 11~14절에 말씀하고 있는데 1장 딱 열자 말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들의 예배 한마디로 말하면 내가 신물난다 했어요. 그 예배를, 너희들이 드리는 예배를 내가 싫어한다 너희들이 드리는 예배 내가 역겹다 했어요. 그리고 그것이 예배 드리면 드릴수록 오히려 내가 짐이 된다 했어요. 그게 이사야1:11~14절에 나오는 말씀이예요. 왜냐? 중요한 하나님의 귀한 계획, 생명이 나타나야 되는데, 복음의 역사가 일어나야 되는데 그것을 놓치고 예배드리는 모든 것들, 형식에 메여있고, 의식에 메여있는 모든 것들, 그것들 그 예배를 하나님이 신물나도록 싫어한다 라고 말을 했어요. 여러분 우리의 예배가 그런 예배가 되지 않는가 살펴봐야 합니다. 늘 항상 예배드린다고 나오지만 정말로 우리의 마음과 중심에 하나님을 향하고, 우리의 마음과 중심에 생명에 대한 복음의 역사에 대한 감사와 감격을 가지고 나와서 드리는 예배인가? 그렇지 않다면 지금 우리에게 이러한 시간을 주신 것은 그 예배를 회복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일날 나와서 예배를 드리잖아요. 이 예배를 드리는 부분들 중요하지요. 정말 우리의 마음과 중심을 가지고 생명 가운데서 예배드려져야 해요. 그리고 주일 예배 드리고 다음 주일 예배에 나오기 까지 우리의 삶의 예배도 있잖아요. 그 삶의 예배 속에서도 가장 먼저 중요한 것이 있다면 생명의 역사와 복음의 역사를 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6일 간의 현장에서 이 복음의 역사와 생명의 역사를 누리다가 또 예배 시간에 나오고, 그러면 그 예배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올려지게 되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에게는 그 예배로 말미암아 엄청난 기쁨이 회복어질 것인데 이 예배의 축복을 놓쳐버리니까 형식적으로 의식적으로 폼만 살아있는.. 그래서 그것을 이사야 1장에 보면 11~14절 너희가 예배를 드리되 마당만 밟고 나가는 자와 같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정말로 기도하십시다. 우리 하나교회에 정말로 복음의 역사만 가득찬 교회가 되도록 기도하십시다. 오직 생명의 역사만 나타나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하십시다. 그만큼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다른 것 교회 안에 중요한 것 없습니다. 그 생명의 역사에 따라서 일들은 해나가면 되는 겁니다. 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행정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고 복음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 교회는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가 안 되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과의 생명관계가 놓치지니까 예배관계가 삐뚤어집니다. 생명 관계가 삐뚤어지까 예배 관계가 무너지는 겁니다. 그게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고 오늘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살펴보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나누는 부분들이 나옵니다. 그 당시에 유다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북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루살렘과 똑같은 성전을 예루살렘에 못 가니까.. 아예 사마리아인들이 이방인 취급 받으면서 예루살렘 성전에 못 가니까 사마리아 성에 예루살렘 성전과 똑같은 성전을 세웠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인들은 그 곳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여자가 예수님께 나와서 이야기했습니다. 당신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고 우리는 이 산에서 예배 드리는데 어디에서 예배 드리는 것이 맞습니까 라고 묻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뭐라고 했습니까? 이 산에서도 말고 저 산에서 말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천지에 충만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장소가 중요하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이 건물이나 예배 의식에 치우쳐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에 여기에 빠져드는데 왜 그렇습니까? 생명의 비밀을 놓치니까 그렇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마태복음24: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을 바라보면서 저주했습니다.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무서운 저주입니다. 그게 지금까지도 회복되지 않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복음의 역사가 나타나야 될 교회가 이 복음의 역사를 놓쳐버리니까 그렇게 되어진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교회는 생명 그 복음의 역사만 나타나는 일에 집중해야 하는 것입니다. 생명과 복음의 빛이 가득하게 되면 사람들은 하나님이 붙이시게 되어 있습니다. 7절 8절을 보세요. 시온은 진통을 하기 전에 해산하며 고통을 당하기 전에 남아를 낳았으니 8절 마지막에 시온은 진통하는 즉시 그 아들을 순산하였도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생명의 비밀만 누리고 복음의 역사만 교회 안에 가득차면 사람은 누가? 하나님이 붙이신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 안에 모든 중심과 표준이 복음이어야 되고 생명이어야 합니다. 여러분 복음이어야 되고 생명이어야 하는데 이 사실이 안 되면 다시 말하면 생명이지 않고 복음의 역사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됩니까? 3절 마지막에 보면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의 길을 택하며 그들의 마음은 가증한 것이다. 여러분 우리가 복음이 안 되어지고 생명의 역사가 우리의 모든 것의 기준이 안 되어지면 결국 예배 드린다고 하는 것이 자기의 고집 그대로 가지고 예배를 드립니다. 그리고 자기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 앞에 떠는 자가 되어야 되는데 자기의 것을 그대로 나가면서 말씀을 농담으로 여기는 그런 일들을 하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기 것을 못 버리니까.. 그것은 다른 이유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고 복음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으니까 그렇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 은혜받고 정말로 하나님의 역사 속에, 복음의 역사 속에 서면 설 수록 내 고집이 없어지잖아요. 나는 죽게 됩니다. 내가 죽어야 한다고 죽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정말로 생명의 역사를 확인하면 할 수록 복음의 역사 속에 서면 설 수록 내가 필요없는 것입니다. 내가 살아있다는 것, 자기의 길을 고집하고 자기의 길을 간다는 그 자체가 생명의 역사들과 복음의 역사들을 못 누리고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정말로 생명의 역사가 나타나고 복음의 역사가 나타남으로 말미암아 정말로 은혜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그 축복된 역사들을 하면서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에 2절에 보면 뭡니까? 하나님 앞에 서면 결국 내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 떠는 자가 되어지고 생명의 역사들이, 복음의 역사들이 표준이 되어지면 하나님의 말씀 앞에 떠는 자가 되어지고 마음이 상한 심령이 되어서 시편34:18절입니까? 하나님은 상한 심령을 원하시는데 그 상한 심령이 되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내가 힘을 얻고 그 말씀을 통해서 치유 받으면서 걸음걸음마다 하나님의 말씀에 정확한 인도 속에 승리하게 되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서서 하나님 말씀에 떠는 자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내게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주는가?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내게 주신 기도제목이 무엇인가를 붙잡고 그냥 양심대로 살아가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내 양심의 인도를 받아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부분 그냥 양심에 따라 살아가는데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양심에 말씀하시는대로 나가는 것입니다. 그게 하나님의 말씀 앞에 떠는 자들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떠는가? 진짜 복음의 역사가 나타나고, 생명의 역사가 나타나면 나의 심령이 상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서게있고, 그 상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뿐만 아니라 내 마음 중심에 말씀 앞에 서는 그런 축복된 응답이 있게 되어있습니다.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만 가득찬 교회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넘치는 교회
두 번째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넘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냥 단순히 생명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생명 가진 자에게 주어지는 그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넘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게 10절에서 14절을 통해서 우리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잘 보십시다. 10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 그 성읍과 함께 기뻐하라 다 그 성읍과 함께 즐거워하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다 그 성읍과 함께 기뻐하고 다 그 성읍과 함께 즐거워하라”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까? 평화로운 관계가 되어지니까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원래 우리 인간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만은 그러나 하나님을 떠남으로 성경에 보면 하나님과 원수된 우리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편지하면서 고린도후서5:20절에 보면 “하나님과 화목하라” 말씀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과 원수되었던 너희들이 하나님과 화목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될 때에 거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성도들과도 화목하게 되어있고 그것을 통해서 불신자들 하고도 화목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속에서 오는 것이 무엇입니까? 평화로운 관계가 되어지니까 기뻐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그 축복 속에서 기쁨이 오는데 다시 말하면 우리가 정말로 복음으로 충만하면 모든 것 다 살아난다는 사실입니다. 사람과의 관계도 살아나고, 불신자와의 관계도, 성도와의 관계도 다 살아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10절 그 후반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성을 위하여 슬퍼하는 자들이여 다 그 성의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성과 함께 기뻐하라” 무슨 말입니까? 그 성을 위해서 슬퍼한다는 말은 복음 때문에 당하는 어려움과 고난과 역경들을 안다는 말입니다. 진짜 교회를 위해서 슬퍼할 수 있는 자들은 교회를 사랑하는 자입니다. 복음, 생명의 역사들을 놓고 기도하는 자들은 정말로 교회를 사랑하는 자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그것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참된 기뻐하게 되는 복음으로 승리하고 반드시 복음으로 기뻐하게 된다는 그 사실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은혜 안에서 나타나는 축복입니다. 그러면서 11절에 보면 만족과 평강이 현장에 넘치는 그 축복된 역사로 나타나는데 11절을 보십시다. 특별히 복음을 사랑하는 자들이 얻는 은혜입니다. 11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위로하는 품에서 만족하겠고” 11절에 “너희가 젖을 빠는 것 같이” 갓난아기가 어머니의 젖을 빠는 부분들을 지금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젖 먹는 갓난아이들이 젖을 빨다가 부모들이 배도 안 찼는데 젖을 떼려고 하면 더 앙탈지게 달려들어서 젖을 깨물잖아요. 그러나 젖을 빨다가 이제 배가 든든하고 부르면 아이들이 어떻습니까? 그냥 떼려고 안 해도 젖을 놓게 되고 싱긋이 웃으며 잡니다. 지금 그 부분들을 이야기하면서 여기에 그 위로하는 품에서 만족할 것이다.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 우리의 어려운 형편과 상황을 하나님이 위로해주신다는 사실입니다. 단순히 해결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만족함도 주신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만족함을 주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11절 그 뒷 부분에 보면 “그 영광의 풍성함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라”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과 권능은 진정으로 교회를 사랑하는 자들에 의해서 체험되어지는 부분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가 나타나게 될 때에 교회를 사랑하게 되고 그 교회를 사랑하게 될 때에 하나님의 권능과 그 사랑이 체험되어 진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은혜가 교회에 넘치니까 현장이 살아나는 증거가 일어나는데 그게 바로 12~14절에서 하고있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11절을 더 확대시킨 것이 12절인데 12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뭇 나라의 영광을 넘치는 시내 같이 주리니”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교회와 사랑하는 자들을 통해서 열방에게 믿음이 전파되게 하시겠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하면 세계를 향한 선교의 문이 열려지고 그 결과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많은 사람들이 있게 되는 세계선교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영광이 넘치는 시내 같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 12절 마지막에 보면 “젖을 빨며 옆에 안기며 그 무릎에서 놀 것이다” 마지막에 보면 “젖을 빨고 옆에 안기고 그 무릎에서 놀 것이다” 무슨 말입니까? 교회를 통해서 풍성한 은혜를 누리게 된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가 변할 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고, 그것을 통해 순수하게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그런 축복된 응답이 있을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13절에 보면 교회를 통해서 은혜를 주시는 부분들을 말씀하고 있는데 “어머니가 자식을 위로함 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니” 교회를 통해 위로를 받는 그런 축복된 응답들이 교회가 은혜로 가득차게 될 때에 그런 축복된 응답들이 일어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강단을 통해 주어진 말씀을 통해서 이 말씀이 여러분의 현장에 흘러내려 가도록.. 그래서 주어진 말씀을 통해서 모든 성도들이 교회를 통한 위로하심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은혜 입은 성도들, 은혜 입은 교회의 모습들입니다. 그러면서 14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위로와 사랑이 교회를 통해서 성도들에게 임하는 것을 어떻게 이야기 하고 있는가 하면 성도들의 마음이 너무 기쁠 것이라고 이야기 하는데 14절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이를 보고 마음이 기뻐서” 했습니다. 성도들이 교회를 통해서 은혜를 받게 되고, 위로를 받게 되니까 성도들의 마음이 기쁘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로 기쁩니까? “뼈가 연한 풀의 무성함 같으리라” 여러분 연한 풀이라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 연한 풀 같지만 눈에 안 보이는 순간에 비가 오면 어느 순간에 그게 무성해집니다. 돌아보지 않았는데 갑자기 무성해집니다. 그게 연한 풀의 무성함 같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뼈가 그 연한 풀의 무성함 같다는 말은 무슨 말이냐면 교회의 내용이 알차지고 모든 것이 속부터 든든하게 알차게 되어진다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은혜가 나타날 때에.. 그리고 또 그 다음에 14절에 말씀하는 것이 “여호와의 손은 그의 종들에게 나타나겠고”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능력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이 늘 나의 배경이 되어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정말로 교회를 통해서 은혜가 풍성하게 나타나면 주님이 늘 나의 배경이 되어짐을 알게됩니다. 로마서8:35절에 있는 말씀처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여러분 무슨 말입니까? 어떤 환경도 어떤 상황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다라는 사실입니다. 이 모든 환경이나 조건이 주의 사랑이 능히 이길 수 있다 라는 사실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환경과 조건을 주의 사랑이 능히 이길 수 있다 라는 사실입니다. 세상에서 어떤 환경과 어떤 조건들이 우리에게 주어진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나를 손댈 수 없다라는 것이 로마서8:35절에 “누가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으리요” 이 말입니다. 여기에 오늘 본문 14절에 말씀하고 있는 부분들이 그것입니다. 여호와의 손은 그의 종들에게 나타나겠고 아무도 끊을 수 없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배경이 되어지는 그런 축복된 역사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언제 입니까? 교회가 은혜가 가득차게 될 때에.. 그 다음에 14절 마지막에 말하고 있습니다. “그의 진노는 그의 원수에게 더하리라”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복음 충만하면 하나님이 간섭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10:33절에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원수를 갚는 것은 내게 있다”고 했습니다. 내가 원수를 갚으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우리가 복음 충만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간섭하시는데 우리는 원수 갚는 것이 하나님께 있음을 알고 오히려 그들을 위해서 복을 빌어주면 됩니다. 그들이 복 받기에 적당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그 빈 복이 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원수 갚으려고 몸부림 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우리는 그들을 축복하면 된다는 사실입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은혜가 가득하고 은혜가 넘치면 넘칠수록 믿는 자에게는 풍성함으로 나타나게 되고, 믿지 않는 자에게는 결국 무너지는 역사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교회가 시간이 가면 갈수록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가득 찬 교회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충만한 교회
세 번째 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교회를 원하시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충만한 교회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스도가 임하시면 분명히 심판도 일어나고, 더불어서 구원의 역사도 일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특별히 오늘 본문에 보면 현장에 복음 증거의 확실한 역사가 나타나는데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충만하게 나타나는데 18~20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18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뭇 나라와 언어가 다른 민족들을 모으리니 그들이 와서 나의 영광을 볼 것이다” 무슨 말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충만한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면서 19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부분에 보면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의 영광을 보지도 못한 먼 섬들로 보내리니 그들이 나의 영광을 뭇 나라에 전파하리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충만하게 될 때에 현장에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는데 여러분 여기에 보면 영광을 보지도 못한 먼 섬들로 보내어져서 그들이 나의 영광을 뭇 나라에 전파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28장에 보면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 삼으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우리가 가는 그 현장 속에 제자가 있다는 말이고, 그 민족 속에 제자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제자 삼아서 그들을 통해서 복음이 증거케 되도록 다시 말해서 현지인들에게 복음으로 답을 주고 그 현지인들에 의해서 그 현장이 살아나도록 그게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 삼으라는 이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 현장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데 바로 복음 증거의 역사들.. 그래서 이것을 가지고 오늘 본문 마지막 20절에 보면 열매라고 했습니다. “여호와께 열매로 드릴 것이요” 마치 바울이 빌립보교회를 향해서 빌립보서4:1절에 보면 “너희가 나의 열매요 나의 면류관이다” 이야기 했습니다. 현장에 하나님의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타남으로 많은 사람들이 돌아오는 237나라가 돌아오고 237나라에 많은 제자들이 세워지고 그 제자들로 말미암아 자기 나라를 살리는 축복, 237나라의 많은 인재들이 들어와서 훈련받고 그 훈련받은 제자들로 말미암아 자기 현지인들을 살리는 그런 축복된 응답이 나타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의 능력이 충만하게 나타나는 그런 교회가 되기를 하나님은 원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조만간 모여져서 예배 드리는 시간들이 오겠지요. 빠른 시일 안에 올 것입니다. 그러나 그냥 모이면 안 됩니다. 새롭게 변화되어져서 모여져야 합니다. 어떤 면에서 하나님께서 그 시간을 위해서 오늘이라는 우리의 시간들을 주신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새롭게 변화되어져서 바뀌어져서 모여져야 되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에게는 아픔으로 지금 우리 마음속에 있지만 그러나 이런 시간들을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되어집니다. 그러면 어떤 교회로 변화되어야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생명으로 충만한 교회, 그래서 평강이 넘치고요. 그리고 그것이 계속되는 중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넘치고, 거기서 모든 성도들이 만족함을 얻고요. 그리고 그 결과로 모든 성도들이 원네스 되어져서 현장을 완전히 복음의 능력으로 정복할 수 있는 그런 축복된 교회로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지금 이 시간들 속에서 준비하고 계시는 줄로 믿습니다. 왜냐면 우리에게 나중 영광이 크도록 해야 되기 때문에, 이대로는 안 되기 때문에.. 나중 영광이 크도록 그 응답을 줘야 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충만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가득차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충만한 교회로 하나님께서 지금 준비시키고 있음을 믿습니다. 이 사실을 붙잡고 이 응답을 놓고 나아가는 우리 하나교회 모든 성도들, 그래서 정말로 나중 영광이 크게 되는 그 사실을 보는 증인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0년 3월 22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의 축복
(사66:10-14)
서론: 어려움의 시간에 하나님이 주시는 유익을 찾아내야 합니다. 지금 일어나는 전염병과의 싸움은 영적싸움입니다. 영적으로 볼 때 한국교회가 공격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단, 사이비의 거짓됨을 드러내시고 새롭게 하나님의 백성을 세워나가는 시간입니다. 복음의 말씀을 이해하고, 전신갑주로 무장해서 싸우라는 것입니다.
세상 모든 일에는 아주 작은 것이라도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한 가지 이유는 항상 같습니다. 사탄의 세력이 깨트려지고 그리스도의 이름이 높여지는 것입니다. 복음의 본질을 회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이유인 것입니다.
회복해야 할 본질 중 매일 당연히 누렸던 것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예배와 교회) 사66:10,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들이여. 예루살렘은 교회를 가르칩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자의 축복은 무엇입니까? 모여서 예배할 때는 변화 되어서 시작 되어져야 합니다. 앞으로 어떻게 새로 시작할 것입니까?
1.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가득한 교회
▶ 예수 생명이 가득한 예배
1) 교회 안에는 다른 조건이 힘을 못 쓰고 – 복음의 역사(생명)만 나타나야 함
(1)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배하는 장소와 건물, 날과 시, 재물만 중요시 – 생명에는 관심이 없었음
(2) 생명을 놓치니 예배 관계가 비뚤어짐(사66:1-3, 사1:11-14) - 진정 하나님이 받으실 예배(주일과 6일)
(3) 신앙생활이 건물이나 예배의식에 치우쳐서는 안 됨(요4:20), 복음 없는 예루살렘 교회를 저주(마24:2)
2) 모든 것의 중심과 표준이 복음(생명)이어야 함
(1) 복음이 없으면 자기 기준이 됨 – 마음에 여전히 고집, 말씀을 농담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구함
(2) 하나님의 말씀 앞에 떠는 자(시34:18) - 오늘 필요한 말씀과 기도제목을 달라고 기도
2.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넘치는 교회
1) 참된 관계 회복(사66:10) - 복음 충만하면 다 살아남
(1) 하나님과 원수관계로 태어남(고후5:20) - 예수 그리스도 영접하는 순간, 자녀 관계가 회복
(2) 그 성을 위하여 슬퍼하는 자들이여 – 복음의 역사를 위하여 슬퍼할 줄 아는 자, 복음으로 승리!
2) 만족과 평강의 현장으로 넘치는 교회(사66:11) - 복음을 사랑하는 자들이 얻는 은혜
: 어려운 형편과 상황을 위로, 해결, 만족함을 주심 / 교회를 진정으로 사랑할 때 사랑과 권능을 체험
3) 현장이 살아나는 증거 있는 교회(사66:12-14) - 복음 붙잡은 사람은 시간 갈수록 확실해짐
(1) 하나님이 교회를 사랑하는 자들 통해 열방에 믿음을 전파, 세계선교의 문을 여심, 많은 자가 돌아옴
(2)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위로와 은혜를 받음 / 성도들의 마음이 너무 기쁨(연한 풀의 무성함)
=>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심으로 어떤 것, 조건, 사람도 나를 손댈 수 없음(롬8:35)
3.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충만한 교회
1) 심판과 구원의 역사가 확실히 나타남(사66:17)
2) 현장에 복음증거의 역사가 확실히 나타남(사66:18-20)
(1)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충만(18) - 다른 민족을 모으리니 그들이 와서 나의 영광을 볼 것
(2) 모든 족속 제자 삼아라, 현지인 제자(19) - 그들이 나의 영광을 뭇 나라에 전파하리라
==> 열매(20) = 바울의 면류관(빌4:1) - 237나라의 제자와 인재가 훈련을 받고 현지 살리는 축복!
결론: 조만간 모여져서 예배를 드리는 시간이 올 것입니다. 그러나 그냥 모이면 안 됩니다. 새롭게 변화 되어져서 모여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시간을 위해서 ‘오늘’이란 시간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교회로 변화 되어져야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충만한 교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넘치고, 현장을 복음의 능력으로 정복할 수 있는 교회로 준비 하시는 것입니다. 왜냐? 나중 영광이 크도록 해야 하기에. 이대로는 안 되기 때문에. 나중 영광이 더 큰 응답을 주시려고 하나님께서 지금 준비시키고 계십니다.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의 축복”
(사66:10~14)
10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들이여 다 그 성읍과 함께 기뻐하라 다 그 성읍과 함께 즐거워하라 그 성을 위하여 슬퍼하는 자들이여 다 그 성의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성과 함께 기뻐하라
11 너희가 젖을 빠는 것 같이 그 위로하는 품에서 만족하겠고 젖을 넉넉히 빤 것 같이 그 영광의 풍성함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라
12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그에게 평강을 강 같이, 그에게 뭇 나라의 영광을 넘치는 시내 같이 주리니 너희가 그 성읍의 젖을 빨 것이며 너희가 옆에 안기며 그 무릎에서 놀 것이라
13 어머니가 자식을 위로함 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니
14 너희가 이를 보고 마음이 기뻐서 너희 뼈가 연한 풀의 무성함 같으리라 여호와의 손은 그의 종들에게 나타나겠고 그의 진노는 그의 원수에게 더하리라. 아멘.
사66:10~14
■ 하나님께 영광의 박수를 드리겠습니다. 다 같이 축복을 선언하십시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나중 영광이 크리라. 우리의 믿음의 고백을 가지고 다시 한번 더 선포하십시다. 나중 영광이 크리라. 네, 감사합니다. 우리가 수 많은 예배들이 드려졌습니다마는 오늘 여러분 있는 처소에서 드리는 예배가 처음 드리는 예배처럼 최고의 축복된 은혜의 예배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금 계속해서 우리가 코로나19로 많은 세계적인 어려움들을 당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전세계로 확산되어지면서 급하게 세계가 바뀌어져 가는 부분들을 보게 됩니다. 하루가 다르게 세계가 경직되어지고 있고요, 또 여러 상황들이 좋지 않은 쪽으로 계속해서 흘러가고 있는 부분들을 보게 됩니다. 각 나라마다 국가 비상사태를 선언하게 되고, 또 WHO에서는 팬데믹해서 세계 대유행을 선포하게 되고, 그러니까 나라들마다 사실은 문을 걸어 잠그면서 이동하는 것을 제한시키고 그래서 통행금지까지 일어나는 나라들이 있더라고요, 그런 가운데서 그렇게 환경들이 되어지니까 모든 운동 경기들도 스톱 되어지고, 또 공연들도 스톱되어지고, 심지어 박물관들 조차도 문을 닫게 되는 부분들을 보게 됩니다. 결과로 또한 세계 경제에 엄청난 위기를 당하고 있는 이런 부분들을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 어려움의 시기에 우리는 그냥 어렵다, 이것이 지나가겠지 그렇게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유익한 부분들을 찾아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되고 승승장구할 때보다도 때로는 우리가 너무 힘들고 어려울때에 그때 오히려 하나님의 더 큰 은혜의 역사들을 누릴 수 있게 되는 사실들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재앙이라 하지만 분명히 그 배후에는 하나님의 일하심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배후에 하나님이 여전히 일 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안다면 결국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결국은 우리에게 유익함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어떤 환경 속에서도 환란이나 기근이나 전쟁이나 재난이나 지금 전염병 같은 그런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은 유효한 것이고요, 그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은 지금도 이어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절대로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야 합니다. 그래서 요한복음16:33 절의 말씀처럼 이러한 환경 속에서도 우리는 담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너희가 세상에서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분명히 이 땅에 하나님의 귀중한 계획들이 있는 것인데, 특별히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가 하나님의 그 계획들을 알기 위해서는 지금 이 땅에 일어나는 전염병의 문제가 단순한 부분들이 아니라 사실은 영적인 싸움인 것을 여러분 아셔야 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볼 때 한국 교회가 공격을 받은 것입니다. 교회도 아닌 것이 교회의 탈을 쓰고 이단 사이비 단체인 신천지가 바이러스를 퍼트리는 그 중심에 있게 되는 부분들을 우리가 보고 있잖아요. 사실 교회도 아닙니다. 그런데 예수교회라는 이름의 탈을 쓰고 완전 사이비 단체인데 그 단체가 지금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에 그 중심에 있는 부분들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잘 알 듯이 이 신천지는 어떠한 단체입니까? 결국 자세히 알고 보면 우리의 책임이예요. 교회 안에 그리스도면 모든 문제 해결이고 그리스도면 모든 것이 답인데 끝난 것인데, 거기에 대해서 답을 얻지 못하니까 많은 사람들이 갈등하고 낙심하게 되니까 그들을 유혹해서, 그들을 중심으로 공격해서 결국은 많은 확신 없는 신자들을 빼앗아 나간 겁니다. 그뿐만이 아니지요. 한국의 많은 성도들이 복음, 하나님의 말씀위에 굳게 세워지면 그 어떤 이단 사이비 단체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인데, 그렇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결국은 복음으로 올바로 무장되지 못한 성도들을 유혹해서 거기에 많은 성도들이 넘어가 있다라는 사실입니다. 심지어 여러분, 목사들도 거기에 넘어가 있는 사람들이 있고요, 교회 중직자들도 거기에 넘어가 있는 사람들이 많고요, 또, 교회 목사나 중직자의 자녀들이 거기에 넘어가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보고를 들으면서 정말로 우리 이 한 시대에 복음 가진 교회들이 무엇을 했나라는 이런 마음들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죄송스러움으로 설 수 있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물론 하나님께서 이단 사이비들의 거짓됨을 드러내는, 청소하는 그래서 새롭게 하나님의 백성들을 복음 앞에 세워나가는 하나님의 작업입니다마는 어떻든 영적인 싸움이예요. 한국교회 엄청난 영적인 공격을 받은 것이 이번 사건을 통해서 우리가 깨닫게 되어지는 부분들입니다. 더더욱이 보세요. 지금 신천지를 넘어서 이제는 교회에 그 타켓이 넘어가서 모여서 예배 드릴 수도 없는, 그래서 교회에 대해서 이래라 저래라 정부가, 사회가 이야기하고 있는 이런 실정들이 지금 우리가 당하고 있는 문제들입니다. 예배를 드려라 드리지말라, 또 긴급 명령권을 발동해서 예배드리는 것을 막아야 된다. 또 행정조치를 취해서 예배로 모여지는 이런 부분들을 막아야 된다 여러 가지 이런저런 말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또 예배 드리는 것도 허가를 맡고 예배드릴 수 있도록 그렇게 해야 되지 않겠느냐 그런 이야기들도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단순히 물론 교회로서 이 땅의 질서를 유지하고 그 전염병 같은 부분들을 확산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먼저 앞서서 발 벗고 나서서 그 부분에 대한 사회에 대한 책임을 가지고 앞서서 나가야 되는 부분들은 맞습니다. 그러나 신앙에 대한 부분들을 이렇게 저렇게 이야기 할 수 있다라는 것은 아니예요. 이것은 분명히 그 배후에 단지 드러난 어떤 정부의 그런 권고다 그게 아니라, 그 배후에 악한 사탄의 역사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영적인 싸움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의 인생 여정 자체가 이번에 이 사건을 통해서 우리가 처절하게 깨닫잖아요. 그냥 우리의 삶이 놀이터가 아니라 영적인 싸움의 현장이구나, 순간 순간 우리의 인생의 여정에서 영적싸움을 싸우지 않고는 안되는 것이구나 이 사실을 더더욱 보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물론 영적인 싸움의 본질은 여러분 악한 사탄, 이 세상의 어둠의 주관자, 거기에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성경에 보면 결국은 이 복음에 대한 부분들을 이야기할 때에 결국은 영적인 싸움인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어요. 그래서 에베소서6장에 보면 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향해서 뭐라고 이야기를 했습니까? 너희가 복음을 이해하고 거기에 대한 옷을 입고 전신갑주를 취해서 영적인 싸움을 싸우라 한 것을 보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분명히 지금 우리가 당하는 문제는 단순한 코로나19 전염병에 대한 확산이다 거기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이것이 바로 영적인 싸움인 것을 알아야 되고, 그 영적인 싸움 그 속에는 또 한가지는 분명히 하나님의 중요한 계획들이 그 속에 있음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땅에 일어나는 작은 일 하나도 하나님의 계획이 아닌 것이 없지요.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나와서 예배드릴 수 없는 이러한 상황들로 되어 버렸어요. 그리고 전도의 문들이 막혀지는 것은 아니지만 일시적으로 전도문이 막혀지는 것 같은 이런 환경들이 되어 버렸어요. 그렇다면 여기에 하나님의 이유와 하나님의 계획이 없겠느냐 이 말입니다. 여러분,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이유가 분명히 있습니다. 어느 시대나 있었고요, 지금도 그 하나님의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한가지입니다. 바로 사탄의 세력을 꺽어버리고 그리스도 그 이름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복음 막는 자들을 깨트려 버리고 복음 전하는 자들을 높이 세우셔서 하나님께서 세계 만방에 이 복음이 증거케 되어지는 그 역사를 위해서 이러한 일들을 지금도 하나님이 계획 속에서 이루어가고 계시다라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하나님의 계획은, 하나님의 이유는 한가지입니다. 복음이 복음됨을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복음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나타내기 위해서고요, 본질을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그게 하나님의 이유요, 하나님의 계획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본질로 돌아가고, 본질을 회복해야 되는 부분들이 많이 있습니다마는 특별히 예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고, 또 실제로 우리가 지금 당하는 상황들이 매일 우리가 그냥 당연한 것처럼 예배드리고 누리다 보니까 그 예배의 귀중함을 몰랐잖아요. 그런데 이런 기회를 통해서 다시 한번 더 예배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깨닫게 되면서 예배의 본질을 회복하는 그 이유가 있는 것이고요, 또 교회에 대한 본질이 무엇인가를 회복케하는 그런 중요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특별히 본문에 보면 10절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요.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들이여” 여기서 예루살렘은 무엇을 말하느냐? 교회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예루살렘을 다른 이름으로 성경에 보면 ‘시온’이라는 이름도 나오는데, 동일하게 교회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들이여”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교회 본질을 회복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같이 모여서 예배드리지 못하는 안타까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냥 같이 모여서 예배드리지 못하는 안타까움 가직 참 안타깝다 예배가 중요하다 거기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배드릴 수 없는, 같이 모여서 예배드릴 수 없는 이 시간들을 통해서 우리가 바뀌어져야 돼요. 우리가 변화되어져야 돼요. 그래서 다시 모여서 예배드릴 때는 바뀌어진 모습을 가지고 나와서 예배드려야 해요. 변화된 모습을 가지고, 그냥 옛날 예배드렸던 그 삶으로 와서 예배드리는 것이 아니라, 바뀌어지고 변화된 모습을 가지고 와서 예배드리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교회가 어떻게 바뀌어져야 되느냐?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이사야66장 전체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데 먼저 첫 번째입니다.
1.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이 가득한 교회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이 가득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나타나는 교회가 되어야 된다라는 사실이예요. 교회가 다른 것을 가지고 힘쓰고 힘 얻으면 안 되어요. 교회 안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만 나타나야 합니다. 복음의 역사만 나타나야 합니다. 그게 하나님이 교회를 향해서 요구하시는 부분들입니다. 다른 것들은 세상에 많아요. 그런데 세상에 없는 것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 찬양대 찬양 드렸던 것처럼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그 생명만 세상의 현장에 없는 거예요. 그래서 교회 만에게 주신 축복이 있다면 오직 예수 그리스도 생명만 나타나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이예요. 이 복음의 역사만 가득차고, 복음의 역사만 교회를 통해서 나타나야 된다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민족,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명의 역사를 놓쳐버리니까 그들이 잘한 것이 뭡니까? 모이고, 또 시설 준비하고 또 날짜 중요하게 여기고 이런 모든 생명 외에 다른 것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게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들이었습니다. 그것을 오늘도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지적하고 있어요. 하늘이 나의 보좌이고 땅이 나의 발판 아니냐 그게 1절에 말씀하고 있어요. 하늘이 나의 보좌이고 땅이 나의 발판인데 너희가 무슨 일을 해서 하나님을 기쁘게 한다고 하느냐 이스라엘 백성들은 생명의 역사를 누리지 못하니까 내가 무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모든 건물들 준비하고, 시설들 준비하고, 예배의식들 중요하게 여기고 그런데 하나님은 오늘 본문에 그게 아니라는 사실이예요. 하늘 보좌를 내가 지었고, 모든 세상의 발판, 내 발판이 아니냐 너희가 무엇을 한다고 하느냐? 그러면서 2절에 보면 하나님의 마음을 말씀하고 있는데 상한 마음을 찾고 말씀에 떠는 자를 하나님이 찾고 계신다는 사실이예요. 이 생명의 역사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놓쳐버리니까 결국은 생명 외에 다른 것에 관심이 있었던 거예요. 그러니까 그 예배 자체가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가 될 수가 없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가장 귀중한 것들을 놓친 이스라엡 백성들의 예배를 틀린 예배라는 사실을 오늘 3절에 말씀하고 있는데요. 거기 보세요. “소를 잡아 드리는 것은 살인함과 다름이 없다. 개의 목을 꺽음 같고 돼지의 피와 다름이 없다. ”너희들이 지금 예배 드린다고 예배 드리는데 생명의 비밀을 놓쳐버린, 하나님의 마음과 중심을 놓쳐버린 그 예배는 개의 목을 꺽음 같다, 돼지의 피를 드림과 같다고 했어요.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부정한 짐승에 속하는 것이 개이고 돼지의 피입니다. 그 제사를 안 받으신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너희가 생명의 비밀, 하나님의 중요한 마음 중심을 놓쳐버리고 예배 드릴 때에 예배를 드린다고 하지만 그 제물은 하나님께서 받지 아니하신다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예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들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생명을 가지고 그 생명이 나타나는 예배가 되어져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사야 1장에도 보면 11~14절에 말씀하고 있는데 1장 딱 열자 말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들의 예배 한마디로 말하면 내가 신물난다 했어요. 그 예배를, 너희들이 드리는 예배를 내가 싫어한다 너희들이 드리는 예배 내가 역겹다 했어요. 그리고 그것이 예배 드리면 드릴수록 오히려 내가 짐이 된다 했어요. 그게 이사야1:11~14절에 나오는 말씀이예요. 왜냐? 중요한 하나님의 귀한 계획, 생명이 나타나야 되는데, 복음의 역사가 일어나야 되는데 그것을 놓치고 예배드리는 모든 것들, 형식에 메여있고, 의식에 메여있는 모든 것들, 그것들 그 예배를 하나님이 신물나도록 싫어한다 라고 말을 했어요. 여러분 우리의 예배가 그런 예배가 되지 않는가 살펴봐야 합니다. 늘 항상 예배드린다고 나오지만 정말로 우리의 마음과 중심에 하나님을 향하고, 우리의 마음과 중심에 생명에 대한 복음의 역사에 대한 감사와 감격을 가지고 나와서 드리는 예배인가? 그렇지 않다면 지금 우리에게 이러한 시간을 주신 것은 그 예배를 회복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일날 나와서 예배를 드리잖아요. 이 예배를 드리는 부분들 중요하지요. 정말 우리의 마음과 중심을 가지고 생명 가운데서 예배드려져야 해요. 그리고 주일 예배 드리고 다음 주일 예배에 나오기 까지 우리의 삶의 예배도 있잖아요. 그 삶의 예배 속에서도 가장 먼저 중요한 것이 있다면 생명의 역사와 복음의 역사를 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6일 간의 현장에서 이 복음의 역사와 생명의 역사를 누리다가 또 예배 시간에 나오고, 그러면 그 예배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올려지게 되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에게는 그 예배로 말미암아 엄청난 기쁨이 회복어질 것인데 이 예배의 축복을 놓쳐버리니까 형식적으로 의식적으로 폼만 살아있는.. 그래서 그것을 이사야 1장에 보면 11~14절 너희가 예배를 드리되 마당만 밟고 나가는 자와 같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정말로 기도하십시다. 우리 하나교회에 정말로 복음의 역사만 가득찬 교회가 되도록 기도하십시다. 오직 생명의 역사만 나타나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하십시다. 그만큼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다른 것 교회 안에 중요한 것 없습니다. 그 생명의 역사에 따라서 일들은 해나가면 되는 겁니다. 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행정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고 복음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 교회는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가 안 되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과의 생명관계가 놓치지니까 예배관계가 삐뚤어집니다. 생명 관계가 삐뚤어지까 예배 관계가 무너지는 겁니다. 그게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고 오늘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살펴보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나누는 부분들이 나옵니다. 그 당시에 유다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북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루살렘과 똑같은 성전을 예루살렘에 못 가니까.. 아예 사마리아인들이 이방인 취급 받으면서 예루살렘 성전에 못 가니까 사마리아 성에 예루살렘 성전과 똑같은 성전을 세웠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인들은 그 곳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여자가 예수님께 나와서 이야기했습니다. 당신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고 우리는 이 산에서 예배 드리는데 어디에서 예배 드리는 것이 맞습니까 라고 묻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뭐라고 했습니까? 이 산에서도 말고 저 산에서 말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천지에 충만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장소가 중요하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이 건물이나 예배 의식에 치우쳐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에 여기에 빠져드는데 왜 그렇습니까? 생명의 비밀을 놓치니까 그렇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마태복음24: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을 바라보면서 저주했습니다.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무서운 저주입니다. 그게 지금까지도 회복되지 않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복음의 역사가 나타나야 될 교회가 이 복음의 역사를 놓쳐버리니까 그렇게 되어진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교회는 생명 그 복음의 역사만 나타나는 일에 집중해야 하는 것입니다. 생명과 복음의 빛이 가득하게 되면 사람들은 하나님이 붙이시게 되어 있습니다. 7절 8절을 보세요. 시온은 진통을 하기 전에 해산하며 고통을 당하기 전에 남아를 낳았으니 8절 마지막에 시온은 진통하는 즉시 그 아들을 순산하였도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생명의 비밀만 누리고 복음의 역사만 교회 안에 가득차면 사람은 누가? 하나님이 붙이신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 안에 모든 중심과 표준이 복음이어야 되고 생명이어야 합니다. 여러분 복음이어야 되고 생명이어야 하는데 이 사실이 안 되면 다시 말하면 생명이지 않고 복음의 역사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됩니까? 3절 마지막에 보면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의 길을 택하며 그들의 마음은 가증한 것이다. 여러분 우리가 복음이 안 되어지고 생명의 역사가 우리의 모든 것의 기준이 안 되어지면 결국 예배 드린다고 하는 것이 자기의 고집 그대로 가지고 예배를 드립니다. 그리고 자기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 앞에 떠는 자가 되어야 되는데 자기의 것을 그대로 나가면서 말씀을 농담으로 여기는 그런 일들을 하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기 것을 못 버리니까.. 그것은 다른 이유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고 복음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으니까 그렇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 은혜받고 정말로 하나님의 역사 속에, 복음의 역사 속에 서면 설 수록 내 고집이 없어지잖아요. 나는 죽게 됩니다. 내가 죽어야 한다고 죽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정말로 생명의 역사를 확인하면 할 수록 복음의 역사 속에 서면 설 수록 내가 필요없는 것입니다. 내가 살아있다는 것, 자기의 길을 고집하고 자기의 길을 간다는 그 자체가 생명의 역사들과 복음의 역사들을 못 누리고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정말로 생명의 역사가 나타나고 복음의 역사가 나타남으로 말미암아 정말로 은혜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그 축복된 역사들을 하면서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에 2절에 보면 뭡니까? 하나님 앞에 서면 결국 내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 떠는 자가 되어지고 생명의 역사들이, 복음의 역사들이 표준이 되어지면 하나님의 말씀 앞에 떠는 자가 되어지고 마음이 상한 심령이 되어서 시편34:18절입니까? 하나님은 상한 심령을 원하시는데 그 상한 심령이 되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내가 힘을 얻고 그 말씀을 통해서 치유 받으면서 걸음걸음마다 하나님의 말씀에 정확한 인도 속에 승리하게 되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서서 하나님 말씀에 떠는 자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내게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주는가?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내게 주신 기도제목이 무엇인가를 붙잡고 그냥 양심대로 살아가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내 양심의 인도를 받아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부분 그냥 양심에 따라 살아가는데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양심에 말씀하시는대로 나가는 것입니다. 그게 하나님의 말씀 앞에 떠는 자들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떠는가? 진짜 복음의 역사가 나타나고, 생명의 역사가 나타나면 나의 심령이 상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서게있고, 그 상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뿐만 아니라 내 마음 중심에 말씀 앞에 서는 그런 축복된 응답이 있게 되어있습니다.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만 가득찬 교회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넘치는 교회
두 번째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넘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냥 단순히 생명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생명 가진 자에게 주어지는 그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넘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게 10절에서 14절을 통해서 우리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잘 보십시다. 10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 그 성읍과 함께 기뻐하라 다 그 성읍과 함께 즐거워하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다 그 성읍과 함께 기뻐하고 다 그 성읍과 함께 즐거워하라”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까? 평화로운 관계가 되어지니까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원래 우리 인간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만은 그러나 하나님을 떠남으로 성경에 보면 하나님과 원수된 우리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편지하면서 고린도후서5:20절에 보면 “하나님과 화목하라” 말씀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과 원수되었던 너희들이 하나님과 화목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될 때에 거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성도들과도 화목하게 되어있고 그것을 통해서 불신자들 하고도 화목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속에서 오는 것이 무엇입니까? 평화로운 관계가 되어지니까 기뻐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그 축복 속에서 기쁨이 오는데 다시 말하면 우리가 정말로 복음으로 충만하면 모든 것 다 살아난다는 사실입니다. 사람과의 관계도 살아나고, 불신자와의 관계도, 성도와의 관계도 다 살아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10절 그 후반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성을 위하여 슬퍼하는 자들이여 다 그 성의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성과 함께 기뻐하라” 무슨 말입니까? 그 성을 위해서 슬퍼한다는 말은 복음 때문에 당하는 어려움과 고난과 역경들을 안다는 말입니다. 진짜 교회를 위해서 슬퍼할 수 있는 자들은 교회를 사랑하는 자입니다. 복음, 생명의 역사들을 놓고 기도하는 자들은 정말로 교회를 사랑하는 자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그것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참된 기뻐하게 되는 복음으로 승리하고 반드시 복음으로 기뻐하게 된다는 그 사실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은혜 안에서 나타나는 축복입니다. 그러면서 11절에 보면 만족과 평강이 현장에 넘치는 그 축복된 역사로 나타나는데 11절을 보십시다. 특별히 복음을 사랑하는 자들이 얻는 은혜입니다. 11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위로하는 품에서 만족하겠고” 11절에 “너희가 젖을 빠는 것 같이” 갓난아기가 어머니의 젖을 빠는 부분들을 지금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젖 먹는 갓난아이들이 젖을 빨다가 부모들이 배도 안 찼는데 젖을 떼려고 하면 더 앙탈지게 달려들어서 젖을 깨물잖아요. 그러나 젖을 빨다가 이제 배가 든든하고 부르면 아이들이 어떻습니까? 그냥 떼려고 안 해도 젖을 놓게 되고 싱긋이 웃으며 잡니다. 지금 그 부분들을 이야기하면서 여기에 그 위로하는 품에서 만족할 것이다.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 우리의 어려운 형편과 상황을 하나님이 위로해주신다는 사실입니다. 단순히 해결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만족함도 주신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만족함을 주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11절 그 뒷 부분에 보면 “그 영광의 풍성함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라”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과 권능은 진정으로 교회를 사랑하는 자들에 의해서 체험되어지는 부분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가 나타나게 될 때에 교회를 사랑하게 되고 그 교회를 사랑하게 될 때에 하나님의 권능과 그 사랑이 체험되어 진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은혜가 교회에 넘치니까 현장이 살아나는 증거가 일어나는데 그게 바로 12~14절에서 하고있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11절을 더 확대시킨 것이 12절인데 12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뭇 나라의 영광을 넘치는 시내 같이 주리니”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교회와 사랑하는 자들을 통해서 열방에게 믿음이 전파되게 하시겠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하면 세계를 향한 선교의 문이 열려지고 그 결과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많은 사람들이 있게 되는 세계선교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영광이 넘치는 시내 같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 12절 마지막에 보면 “젖을 빨며 옆에 안기며 그 무릎에서 놀 것이다” 마지막에 보면 “젖을 빨고 옆에 안기고 그 무릎에서 놀 것이다” 무슨 말입니까? 교회를 통해서 풍성한 은혜를 누리게 된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가 변할 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고, 그것을 통해 순수하게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그런 축복된 응답이 있을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13절에 보면 교회를 통해서 은혜를 주시는 부분들을 말씀하고 있는데 “어머니가 자식을 위로함 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니” 교회를 통해 위로를 받는 그런 축복된 응답들이 교회가 은혜로 가득차게 될 때에 그런 축복된 응답들이 일어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강단을 통해 주어진 말씀을 통해서 이 말씀이 여러분의 현장에 흘러내려 가도록.. 그래서 주어진 말씀을 통해서 모든 성도들이 교회를 통한 위로하심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은혜 입은 성도들, 은혜 입은 교회의 모습들입니다. 그러면서 14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위로와 사랑이 교회를 통해서 성도들에게 임하는 것을 어떻게 이야기 하고 있는가 하면 성도들의 마음이 너무 기쁠 것이라고 이야기 하는데 14절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이를 보고 마음이 기뻐서” 했습니다. 성도들이 교회를 통해서 은혜를 받게 되고, 위로를 받게 되니까 성도들의 마음이 기쁘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로 기쁩니까? “뼈가 연한 풀의 무성함 같으리라” 여러분 연한 풀이라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 연한 풀 같지만 눈에 안 보이는 순간에 비가 오면 어느 순간에 그게 무성해집니다. 돌아보지 않았는데 갑자기 무성해집니다. 그게 연한 풀의 무성함 같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뼈가 그 연한 풀의 무성함 같다는 말은 무슨 말이냐면 교회의 내용이 알차지고 모든 것이 속부터 든든하게 알차게 되어진다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은혜가 나타날 때에.. 그리고 또 그 다음에 14절에 말씀하는 것이 “여호와의 손은 그의 종들에게 나타나겠고”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능력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이 늘 나의 배경이 되어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정말로 교회를 통해서 은혜가 풍성하게 나타나면 주님이 늘 나의 배경이 되어짐을 알게됩니다. 로마서8:35절에 있는 말씀처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여러분 무슨 말입니까? 어떤 환경도 어떤 상황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다라는 사실입니다. 이 모든 환경이나 조건이 주의 사랑이 능히 이길 수 있다 라는 사실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환경과 조건을 주의 사랑이 능히 이길 수 있다 라는 사실입니다. 세상에서 어떤 환경과 어떤 조건들이 우리에게 주어진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나를 손댈 수 없다라는 것이 로마서8:35절에 “누가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으리요” 이 말입니다. 여기에 오늘 본문 14절에 말씀하고 있는 부분들이 그것입니다. 여호와의 손은 그의 종들에게 나타나겠고 아무도 끊을 수 없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배경이 되어지는 그런 축복된 역사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언제 입니까? 교회가 은혜가 가득차게 될 때에.. 그 다음에 14절 마지막에 말하고 있습니다. “그의 진노는 그의 원수에게 더하리라”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복음 충만하면 하나님이 간섭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10:33절에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원수를 갚는 것은 내게 있다”고 했습니다. 내가 원수를 갚으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우리가 복음 충만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간섭하시는데 우리는 원수 갚는 것이 하나님께 있음을 알고 오히려 그들을 위해서 복을 빌어주면 됩니다. 그들이 복 받기에 적당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그 빈 복이 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원수 갚으려고 몸부림 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우리는 그들을 축복하면 된다는 사실입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은혜가 가득하고 은혜가 넘치면 넘칠수록 믿는 자에게는 풍성함으로 나타나게 되고, 믿지 않는 자에게는 결국 무너지는 역사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교회가 시간이 가면 갈수록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가득 찬 교회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충만한 교회
세 번째 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교회를 원하시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충만한 교회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스도가 임하시면 분명히 심판도 일어나고, 더불어서 구원의 역사도 일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특별히 오늘 본문에 보면 현장에 복음 증거의 확실한 역사가 나타나는데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충만하게 나타나는데 18~20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18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뭇 나라와 언어가 다른 민족들을 모으리니 그들이 와서 나의 영광을 볼 것이다” 무슨 말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충만한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면서 19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부분에 보면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의 영광을 보지도 못한 먼 섬들로 보내리니 그들이 나의 영광을 뭇 나라에 전파하리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충만하게 될 때에 현장에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는데 여러분 여기에 보면 영광을 보지도 못한 먼 섬들로 보내어져서 그들이 나의 영광을 뭇 나라에 전파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28장에 보면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 삼으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우리가 가는 그 현장 속에 제자가 있다는 말이고, 그 민족 속에 제자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제자 삼아서 그들을 통해서 복음이 증거케 되도록 다시 말해서 현지인들에게 복음으로 답을 주고 그 현지인들에 의해서 그 현장이 살아나도록 그게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 삼으라는 이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 현장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데 바로 복음 증거의 역사들.. 그래서 이것을 가지고 오늘 본문 마지막 20절에 보면 열매라고 했습니다. “여호와께 열매로 드릴 것이요” 마치 바울이 빌립보교회를 향해서 빌립보서4:1절에 보면 “너희가 나의 열매요 나의 면류관이다” 이야기 했습니다. 현장에 하나님의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타남으로 많은 사람들이 돌아오는 237나라가 돌아오고 237나라에 많은 제자들이 세워지고 그 제자들로 말미암아 자기 나라를 살리는 축복, 237나라의 많은 인재들이 들어와서 훈련받고 그 훈련받은 제자들로 말미암아 자기 현지인들을 살리는 그런 축복된 응답이 나타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의 능력이 충만하게 나타나는 그런 교회가 되기를 하나님은 원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조만간 모여져서 예배 드리는 시간들이 오겠지요. 빠른 시일 안에 올 것입니다. 그러나 그냥 모이면 안 됩니다. 새롭게 변화되어져서 모여져야 합니다. 어떤 면에서 하나님께서 그 시간을 위해서 오늘이라는 우리의 시간들을 주신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새롭게 변화되어져서 바뀌어져서 모여져야 되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에게는 아픔으로 지금 우리 마음속에 있지만 그러나 이런 시간들을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되어집니다. 그러면 어떤 교회로 변화되어야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생명으로 충만한 교회, 그래서 평강이 넘치고요. 그리고 그것이 계속되는 중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넘치고, 거기서 모든 성도들이 만족함을 얻고요. 그리고 그 결과로 모든 성도들이 원네스 되어져서 현장을 완전히 복음의 능력으로 정복할 수 있는 그런 축복된 교회로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지금 이 시간들 속에서 준비하고 계시는 줄로 믿습니다. 왜냐면 우리에게 나중 영광이 크도록 해야 되기 때문에, 이대로는 안 되기 때문에.. 나중 영광이 크도록 그 응답을 줘야 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충만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가득차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충만한 교회로 하나님께서 지금 준비시키고 있음을 믿습니다. 이 사실을 붙잡고 이 응답을 놓고 나아가는 우리 하나교회 모든 성도들, 그래서 정말로 나중 영광이 크게 되는 그 사실을 보는 증인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0년 3월 22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의 축복
(사66:10-14)
서론: 어려움의 시간에 하나님이 주시는 유익을 찾아내야 합니다. 지금 일어나는 전염병과의 싸움은 영적싸움입니다. 영적으로 볼 때 한국교회가 공격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단, 사이비의 거짓됨을 드러내시고 새롭게 하나님의 백성을 세워나가는 시간입니다. 복음의 말씀을 이해하고, 전신갑주로 무장해서 싸우라는 것입니다.
세상 모든 일에는 아주 작은 것이라도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한 가지 이유는 항상 같습니다. 사탄의 세력이 깨트려지고 그리스도의 이름이 높여지는 것입니다. 복음의 본질을 회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이유인 것입니다.
회복해야 할 본질 중 매일 당연히 누렸던 것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예배와 교회) 사66:10,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들이여. 예루살렘은 교회를 가르칩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자의 축복은 무엇입니까? 모여서 예배할 때는 변화 되어서 시작 되어져야 합니다. 앞으로 어떻게 새로 시작할 것입니까?
1.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가득한 교회
▶ 예수 생명이 가득한 예배
1) 교회 안에는 다른 조건이 힘을 못 쓰고 – 복음의 역사(생명)만 나타나야 함
(1)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배하는 장소와 건물, 날과 시, 재물만 중요시 – 생명에는 관심이 없었음
(2) 생명을 놓치니 예배 관계가 비뚤어짐(사66:1-3, 사1:11-14) - 진정 하나님이 받으실 예배(주일과 6일)
(3) 신앙생활이 건물이나 예배의식에 치우쳐서는 안 됨(요4:20), 복음 없는 예루살렘 교회를 저주(마24:2)
2) 모든 것의 중심과 표준이 복음(생명)이어야 함
(1) 복음이 없으면 자기 기준이 됨 – 마음에 여전히 고집, 말씀을 농담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구함
(2) 하나님의 말씀 앞에 떠는 자(시34:18) - 오늘 필요한 말씀과 기도제목을 달라고 기도
2.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넘치는 교회
1) 참된 관계 회복(사66:10) - 복음 충만하면 다 살아남
(1) 하나님과 원수관계로 태어남(고후5:20) - 예수 그리스도 영접하는 순간, 자녀 관계가 회복
(2) 그 성을 위하여 슬퍼하는 자들이여 – 복음의 역사를 위하여 슬퍼할 줄 아는 자, 복음으로 승리!
2) 만족과 평강의 현장으로 넘치는 교회(사66:11) - 복음을 사랑하는 자들이 얻는 은혜
: 어려운 형편과 상황을 위로, 해결, 만족함을 주심 / 교회를 진정으로 사랑할 때 사랑과 권능을 체험
3) 현장이 살아나는 증거 있는 교회(사66:12-14) - 복음 붙잡은 사람은 시간 갈수록 확실해짐
(1) 하나님이 교회를 사랑하는 자들 통해 열방에 믿음을 전파, 세계선교의 문을 여심, 많은 자가 돌아옴
(2)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위로와 은혜를 받음 / 성도들의 마음이 너무 기쁨(연한 풀의 무성함)
=>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심으로 어떤 것, 조건, 사람도 나를 손댈 수 없음(롬8:35)
3.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충만한 교회
1) 심판과 구원의 역사가 확실히 나타남(사66:17)
2) 현장에 복음증거의 역사가 확실히 나타남(사66:18-20)
(1)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충만(18) - 다른 민족을 모으리니 그들이 와서 나의 영광을 볼 것
(2) 모든 족속 제자 삼아라, 현지인 제자(19) - 그들이 나의 영광을 뭇 나라에 전파하리라
==> 열매(20) = 바울의 면류관(빌4:1) - 237나라의 제자와 인재가 훈련을 받고 현지 살리는 축복!
결론: 조만간 모여져서 예배를 드리는 시간이 올 것입니다. 그러나 그냥 모이면 안 됩니다. 새롭게 변화 되어져서 모여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시간을 위해서 ‘오늘’이란 시간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교회로 변화 되어져야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충만한 교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넘치고, 현장을 복음의 능력으로 정복할 수 있는 교회로 준비 하시는 것입니다. 왜냐? 나중 영광이 크도록 해야 하기에. 이대로는 안 되기 때문에. 나중 영광이 더 큰 응답을 주시려고 하나님께서 지금 준비시키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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