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새 일
2019-10-20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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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0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하나님의 새 일”
(사43:14~28)
14 너희의 구속자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위하여 내가 바벨론에 사람을 보내어 모든 갈대아 사람에게 자기들이 연락하던 배를 타고 도망하여 내려가게 하리라
15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이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의 왕이니라
16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다 가운데에 길을, 큰 물 가운데에 지름 길을 내고
17 병거와 말과 군대의 용사를 이끌어 내어 그들이 일시에 엎드러져 일어나 지 못하고 소멸하기를 꺼져가는 등불 같게 하였느니라
18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 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20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 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22 그러나 야곱아 너는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고 이스라엘아 너는 나를 괴롭 게 여겼으며
23 네 번제의 양을 내게로 가져오지 아니하였고 네 제물로 나를 공경하지 아 니하였느니라 나는 제물로 말미암아 너를 수고롭게 하지 아니하였고 유향 으로 말미암아 너를 괴롭게 하지 아니하였거늘
24 너는 나를 위하여 돈으로 향품을 사지 아니하며 희생의 기름으로 나를 흡 족하게 하지 아니하고 네 죄짐으로 나를 수고롭게 하며 네 죄악으로 나를 괴롭게 하였느니라
25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 하리라
26 너는 나에게 기억이 나게 하라 우리가 함께 변론하자 너는 말하여 네가 의로움을 나타내라
27 네 시조가 범죄하였고 너의 교사들이 나를 배반하였나니
28 그러므로 내가 성소의 어른들을 욕되게 하며 야곱이 진멸 당하도록 내어 주며 이스라엘이 비방 거리가 되게 하리라. 아멘.
사43:14~28
■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만민을 위하여 기를 드십시다. 우리를 거룩한 성전으로 부르셨습니다. 또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아름다운 교회로 부르셨습니다. 오늘 최고의 응답을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고 여러분을 부르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온 종일 예배하는 가운데서 이 하나님을 만나고 누리는 최고의 귀하고 복된 시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제목을 “하나님의 새 일”입니다. 하나님의 새 일이 우리의 새 일이 되는 그런 날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새 일이 오늘 나의 새 일이 되는 그런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새 일이 무엇일까 이 부분들을 우리가 살펴봐야 되겠지요. 특별히 오늘 본문에 보면 19절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그러면서 광야에 길이 나고 사막에 강이 될 정도로 너희에게 깜짝 놀랄 일을 행할 것이다 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18절에 보면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소망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계속해서 이사야서를 살펴보면서 지난번에 한번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사야서 전체 구조가 66권으로 해서 1장부터 39장까지는 구약에 해당하고요, 또 40장부터 66장까지는 신약에 해당하는 내용들로서 이사야40장 이전에는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우상숭배로 말미암은 심판에 대한 메시지가 계속해서 선포되어지고 있고요, 그리고 40장 이후로 보면 축복과 회복에 관한 말씀이 전달되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오늘 그 중에 본문에 보면 바로 광야에 길이 나는 것 같은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다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 사막에 어떻게 강이 흐를 수 있습니까? 그런데 사막에 강이 흐르는 것 같은 그런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말씀하시면서 그러면서 하신 말씀이 새 일을 행할 것이다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새 일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이 부분을 가지고 오늘 전체를 한번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사실 오늘 읽은 14절부터 쭉 보면 바벨론의 멸망에 대한 부분들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하나님은 난데없이 한 왕을 일으켜 세우는데, 그 왕이 아직 살펴보지도 않았습니다마는 이사야 45장에 나오는 이방인 왕인 고레스 왕이라는 사람입니다. 갑자기 이 고레스 왕이 나타나서 바벨론을 정복하고 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령을 내립니다. 모두가 다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라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성전을 재건하라고 명령을 내리면서 그 성전재건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준비해서 보낸 왕이 바로 고레스 왕 입니다. 사실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일들이 바로 이 왕을 통해서 일어나게 된 것이지요. 이 일을 하나님은 오늘 본문에 보면 새 일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새 일은 성전을 재건하고 언약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의 새 일이예요. 그러면서 19절에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다” 말씀하셨는데 하나님이 이루시는 새 일은 무엇이냐? 성전을 재건하고 언약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늘 새로운 일을 하셨고요, 또 앞으로도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항상 새로운 것 하시는 것이 있는데 그게 바로 언약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하나님께 영원히 새로운 일이라는 사실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새 일은 무엇이냐? 바로 답부터 말씀드립니다. 언약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언약이 새 일입니다. 한번 따라합시다. “언약이 새 일이다” 다시 한번요, “언약이 새 일이다”여러분 언약은 무엇입니까? 넓게는 성경말씀 자체가 언약이예요. 성경 전체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언약으로 주신 것인데, 더 깊이 구분한다면 결국 성경은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바로 구약은 우리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메시야를 보내시겠다는 것이고, 신약은 그 메시야가 오셨는데 그리스도로 오셨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 66권 전체가 그리스도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5:39절입니까? “너희가 성경을 통해서 영생을 얻는 줄을 알고 이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은 내게 대하여 기록한 것이다”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20:31절에도 보면 바로 이 성경을 기록한 목적을 말씀하고 있는데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기 위함이요 그 이름을 힘입어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언약인 성경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그리스도를 말씀하고 있어요. 그래서 언약은 그리스도입니다. 그것이 내게 적용된 것을 가지고 구원이라는 것이지요. 그리스도와 함께 구원이 언약이고요, 그리스도와 함께 전도가 언약이고요, 그리스도와 함께 세계복음화가 언약이고, 이 그리스도를 우리 후대들에게 계속해서 전달하는 그것을 가지고 언약이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한번뿐인 생애 정말로 언약되시는 그리스도 붙잡고 구원의 축복 누리고, 전도와 세계복음화의 축복을 누리고, 이 언약의 역사를 후대에게 전달하는, 인생작품을 남기는 그런 축복된 생애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과거의 구원의 역사를 기억하라
그럼 먼저 언약이 그리스도인데, 이 언약의 역사를 누리기 위해서는 첫 번째로 과거의 구원의 역사를 기억해야 합니다. 과거의 구원의 역사를 기억하라입니다. 오늘 27절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요. “네 시조가 범죄하였고, 너의 교사들이 나를 배반하였나니” 여기에 네 시조가 범죄하였다 무엇을 말합니까? 바로 우리 인간의 근본문제를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네 시조가 범죄하였다라는 말은 아담으로 말미암아 일어난 일들, 아담으로 말미암아 일어난 생긴 문제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2:16~1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든 나무의 실과의 열매를 따먹도록 하면서 2:17절에 보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따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언약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사탄의 속임수에 속아서 결국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그 욕심들 가운데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게 된 것이지요. 그로 말미암아 죄 가운데 빠지게 되었고, 그 결과 우리 인간은 악한 사탄의 손에 장악되어 버린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모든 인생은 결국은 원죄 아래 갇힌 바 되어진 것입니다. 로마서 3:10절에 말씀하고 있지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여기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다는 이 사실은 아담으로부터 시작된 모든 죄가 그 후대에 오는 모든 인간이 같은 죄 가운데 빠지고 있다라는 사실이예요. 그게 바로 원죄에 대한 부분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원죄에 대해서 대표적으로 성경구절에 말씀하고 있는 구절을 든다면 로마서5:12절입니다. “한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들어오고 그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다”그런데 모든 사람에게 사망이 임하였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바로 원죄로 말미암아 우리 인생이 피할 수 없는 문제 가운데 빠지게 된 사실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원죄의 문제들을 다윗도 너무나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시편51:5절에 보면 다윗이 고백했습니다. “내가 죄악 중에 출생 하였음이여 죄 중에 나를, 어머니가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다윗이 이 원죄 사건을 너무 잘 알고서 자기가 죄 중에 어머니가 나를 잉태 하였고,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을 고백한 사실을 보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병든 상태에서 태어납니다. 이것을 가지고 신학적인 용어로 전적인 타락이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고칠 수 없는 근본문제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우리의 인생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 어느 누구도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17:9절에 말씀하고 있지요.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 ”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왜 부패하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원죄 가운데 빠짐으로 그 어느 누구도 그리스도를 만나지 않고서는 그 마음 자체가 모두가 심히 부패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첫 번째 인간 아담 하와를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말씀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어떤 모습이 되었습니까? 창세기3:1~6절에 보면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그냥 하나님을 떠난 것이 아니고요, 하나님을 떠난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문제는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사탄의 손에 장악되어 버렸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인생은 실패할 수밖에 없어요. 악한 사탄이 우리 인생을 주인으로 붙잡고 있으니까 그 속에 아무리 노력하고 아무리 열심을 내도 결국은 사탄은 우리에게 축복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좋은 것을 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좋은 것들을 주는 것처럼 하면서 결국은 인생을 망하게 하고 영혼을 멸망시키는 존재가 사탄의 존재인데, 이 악한 사탄이 우리 인생을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시간가면 갈수록 우리 인생에게 드러나는 열매는 어떤 열매입니까? 창세기3:16절에 있는 말씀처럼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계속해서 나오게 되어 있어요. 인생을 살아가는 데도 뭐가 뭔지도 모르겠고요, 계속적인 문제들이 계속 오게 되어 있고요, 그게 가시덤불과 엉겅퀴에 대한 부분들입니다. 계속된 저주가 오는데 무엇 때문에 오는 줄도 모르고, 무엇이 무엇인줄도 모르고 살아가는 겁니다. 계속적인 어려움과 고통과 고난들이 계속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을 떠나자말자 창세기3:16~19절에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요한 것은요, 그 속에서 아무도 빠져나올 수 없다 라는 겁니다. 그 저주와 운명에서 우리 인생은 빠져나올 수 없다 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지옥 가기 전에, 지옥 같은 삶을 살다가 결국은 지옥에 가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 속에 있는 이상 몸부림 친다고 되는 것이 아니지요. 사람들이 어려움 당하니까 계속해서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생겨지니까 뭔가 모르게 몸부림 칩니다. 그것을 가지고 종교라고 하고요, 뭔가 모르게 어려움들이 계속되어지니까 우상 숭배에 빠져듭니다. 그리고 또 뭔가 좀 잘 보이려고 선행을 행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선행을 행한다고 해서 그 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것입니까? 아무도 빠져나올 수 없는 그 문제 속에 인생은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예 아담에게 말도 안하시고요, 또 아담의 부탁을 들어서가 아니라, 일방적으로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답을 우리에게 주셨어요. 창세기3:15절에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메시야가 오셔서 사탄의 머리를 깨트려버릴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약속대로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2:1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와 허물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여러분 이것이 우리가 구원 받은 것입니다.
첫 번째 구원 받은 것은 뭐냐? 우리의 과거문제가 완전히 그리스도 안에서 끝난 것입니다. 죄와 허물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우리의 과거 문제 끝냈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조상의 죄로 인한 대물림 속에서도 해방 받은 것이 바로 구원받은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모르게 대물림의 저주들이 있어요. 그래서 성경에 보면 예수 믿는 자들에게 천대까지 복을 주겠다 했지요. 그리고 우상 숭배하는 자들에게는 3~4대가 망한다고 말씀했어요. 무슨 말입니까? 계속 대를 이어서 이어지는 것이 있다 라는 것, 내가 믿음의 결단을 하고 예수 믿게 될 때에 그 속에서 예수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축복은 천대까지 복 받는다는 사실이예요. 대를 이어가면 갈수록 자자손손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되어 있고요, 반대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우상숭배하면 그 결과는 3~4대가 망한다고 했어요. 무슨 말입니까? 3~4대가 망한다면 쫄딱 망한다는 말이예요. 대를 이어서 내려지는 대물림의 저주인 것입니다. 여러분 아무도 거역할 수 없는 이 대를 이어가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특별히 우상숭배로 말미암은 죄, 또 조상의 죄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특별히 여러분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살펴보면 출애굽기12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예에서 해방 되어지게 되지요. 사실 430년 동안에 애굽에 노예생활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기에서 모세로 말미암아 빠져나오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30년 동안에 대를 이어서 계속해서 노예 살이 했어요. 이것이 저주 중에 저주이지요. 아이를 낳으면 노예이고요, 그 아이가 성장해서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또 그 아이가 노예입니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낳고, 낳고 하는데 계속된 저주가 대물림되게 되어 있어요.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노예생활하고 있을 때 모습들이었어요. 여러분 그 속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 얼마나 몸부림쳤겠습니까? 그러나 그 속에서 아무도 빠져나오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거기에서 빠져나오는 비밀을 말씀하셨습니다.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바르라 했습니다. 그 어떤 능력을 행해도 되지 않았는데 하나님께서 주신 답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대를 이어서 대물림, 저주 가운데서 빠져나올 수 있는 답을 주셨는데,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바르라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애굽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10가지 재앙을 모세로 말미암아 내리게 했잖아요. 그러나 그 10가지 재앙 속에서도 애굽이 손 들지 않았어요. 내놓지 않았어요. 유월절 어린 양의 피 발랐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대를 이어서 오는 모든 저주, 해방된 것입니다. 해결된 것이 아니라 해방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예 벗어나게 된 것이고요, 아예 상관없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8:2절에 말씀하고 있지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할렐루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라면 과거의 모든 죄, 또 과거의 모든 가문의 대물림, 대대로 내려오는 저주와 상관없게 된 사실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축복이예요. 그리고 오늘 15절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이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의 왕이니라.” 무슨 말입니까? 저와 여러분이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원죄와 자범죄, 조상숭배의 죄들 때문에 우리가 반드시 저주와 재앙을 당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대신 십자가에 죽으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참 제사장 되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의 문제를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끝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9:12에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죄로 인한, 내 자신이 지은 자범죄와 우리 조상들의 우상숭배의 죄들, 또 우리와 상관없이 오게 된 원죄의 문제 때문에 우리가 당해야 할 모든 저주와 재앙, 죄로 인한 모든 저주와 재앙을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담당하심으로 말미암아, 참 제사장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의 문제는 끝난 것입니다. 그리고 또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말씀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참 선지자로서 우리에게 하나님 만나는 길을 여셨을 뿐 아니라 지금 성령으로 우리 안에 거하고 계십니다. 참 선지자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만나고 참 선지자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령이 지금 우리 안에서 우리를 인도해가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너희의 왕이니라” 말씀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구원은 받았지만 하나님 나라 가기까지 이 땅에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당장 구원 받고 곧바로 하나님 나라에 가면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세상 임금이 장악하고 있는 세상 속에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 속에서 영적인 싸움을 싸워야 하기 때문에 참 왕 되신 그리스도께서 사단의 머리를 깨뜨려버리심으로 말미암아 저와 여러분이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도록, 승리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승리를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참된 제사장, 참된 선지자, 참된 왕이신 그리스도, 이 사실을 여러분은 항상 누려야 합니다. 모든 것이 여기서부터 시작되어야 하고 매일 확인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여러분은 모든 것을 확인하면서 거기서 참된 영광의 축복이 시작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과거 문제, 대물림의 모든 죄로 인한 저주와 재앙들, 다 끝냈습니다. 그리고 그 그리스도께서 지금 성령으로, 참 선지자이신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내 안에 거하시고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악한 사단과의 영적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비밀을 이미 가진 자로서 이 땅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날마다 확인할 때마다 저와 여러분의 걸음걸음 속에 참된 승리의 축복이 누려지게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2. 과거를 넘어서 오늘 새 역사를 찾아 누려라.
두 번째입니다. 과거를, 과거의 구원의 역사를 기억해야 하지만 그러나 과거를 넘어서서 오늘 새 역사를 찾아 누려야 합니다. 오늘 새 역사를 찾아 누려야 합니다. 그것이 어디에 나오느냐? 18절~22절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우리의 과거는 완전히 해결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18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했습니다. 우리의 과거 문제는 완전히 해결된 것이니까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고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어마어마한 선물, 은혜가 있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축복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5:24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여기 생명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선물입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는 영원히 우리를 떠나지 않을 성령께서 우리 속에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8:2에 다시 말씀하고 계십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의 선물이 생명인데 생명의 성령의 법이, 성령의 역사, 생명의 역사, 이 법이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켰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신앙생활 속에서 잊어버려야 할 것이 있습니다. 잊어버려야 할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 지난날 과거에 죄 지었던 것, 그 죄책감 속에 시달리고 있는 모든 것들을 그리스도 이름으로 용서함 구하고 나아갔다면 잊어버리면 됩니다. 그것을 기억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경에 시편 103:12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할렐루야! 하나님이 기억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매일 삶 속에서 여러분은 죄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지은 죄를 가지고 그때그때 그리스도 이름으로 용서 구하고 나아가면 됩니다. 그 죄 지은 것 가지고 늘 거기 매여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 죄책감 속에 빠져 있으면 여러분도 모르게 영적 문제에 걸려듭니다. 많은 사람들이 현장에서 죄책감 가운데 영적 문제에 걸려서 못 벗어나는 것을 보게 되는데 분명히 오늘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다고 말씀했습니다. 아니, 하나님이 기억하지 않는다고 하시는데 우리는 자꾸 그것을 기억하면서 거기에 늘 매여 있습니다.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이사야 44:22에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 같이, 네 죄를 안개 같이 없이하였으니.” 빽빽한 구름 같이, 네 죄를 안개 같이 없이하였다. 여러분, 안개가 끼면, 아주 강하게 끼면, 많이 끼면 우리는 10m도 내다보지 못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햇빛이 비추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안개가 사라집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의 모든 죄가 빽빽한 구름 같이, 또 안개 같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이름 가지고 나아갈 때. 히브리서 10:17~19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여러분,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필요가 다시 없도록 그리스도께서 완벽하게, 완전하게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했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잘못한 것 있습니까? 그때그때 잘못했습니다. 하고 나아가면 됩니다. 계속해서 그 속에 매여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악한 사단은 계속해서 속입니다. 네가 그래서 어떻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겠느냐, 네 양심도 있는 거 아니냐, 어떻게 그렇게 죄 지으면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느냐? 예, 여러분, 악한 사단이 우리를 계속해서 자꾸 속이고 정죄한다 할지라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 죄 용서를 구하며 나아갔다면 그 죄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억도 안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죄를 히브리서 10:10~14에 보면 단번에, 영원히, 완전하게 해결했다고 했습니다. 끝냈다는 말입니다. 계속 거기 매여 있지 말고 그 속에서 늘 죽을상하고 있지 말기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의 모든 죄 문제, 용서함 받았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끝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느 정도냐? 미가서 7:18~19, 한번 찾아봅시다. 너무 힘이 되는 말씀입니다. 미가서 7:18~19입니다. 구약성경 미가서 7장 1297쪽입니다. 미가서 7:18~19 같이 한번 읽어 봅시다. 18절 먼저,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과 그 기업에 남은 자의 허물을 사유하시며 인애를 기뻐하시므로 진노를 오래 품지 아니하시나이다.” 할렐루야! 19절입니다. 같이 한번 큰 소리로 읽어 봅시다. “다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할렐루야! 우리의 모든 죄악을 발로 밞으신다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죄를 어디에? 깊은 바다에 던지실 것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 용서함을 주신 사실은 완전하시고 영원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로 세상 속에서 당당함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요한복음 16:33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여기 세상을 이겼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사단과 마귀의 권세를 이겼다는 말입니다. 세상과 사단의 권세 앞에 그리스도 복음의 능력을 드러내시기를 바랍니다. 그 어떤 것도 우리를 무너뜨릴 수가 없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찬송 부른 것처럼 날마다 날마다 십자가 든든히 붙잡고 나아가면 됩니다. 그리스도 그 이름 붙잡고 나아가면 됩니다. 여러분, 악한 사단이 그 어떤 속임수를 우리를 공격한다 할지라도 그 사단의 속임수 앞에, 여러분, 보혈의 능력, 십자가의 그 능력의 역사를 드러내시기 바랍니다. 거기에 사단의 역사가 꺾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날마다 새 오늘을 찾아 누려야 하길 바랍니다. 고린도후서 5:17에서 말씀했습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새 오늘을 찾아 누려야 합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다 했습니다.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여기 “보라”라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 확인하라는 말입니다. 체험하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날마다 날마다 오늘 새로운 축복의 역사를 찾아 누리라 이 말입니다. 히브리서 4:16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여러분, 날마다 새 오늘의 축복을 찾아 누리기 위해서는 은혜의 보좌 앞에 그리스도 이름 가지고 당당하게 나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특히 정말로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망설이는 분들 계십니까? 여러분, 정말 그리스도 이름 붙잡고 뻔뻔하게 나아가면 됩니다. 망설일 필요가 없습니다. 윤리적으로 바르게 살지 못해도, 양심적으로 좀 바르지 못해도,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 윤리적으로 바르게 살지 말라, 또 양심적으로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 그 말은 아닙니다. 성령께서,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나를 주장하게 될 때 바르게 살아가게 되어 있고 양심 이상의 축복을, 양심 이상의 것을 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은혜의 보좌 앞에 그리스도 그 이름 가지고 당당하게 나아가면 됩니다. 여러분이 행한 착한 일들 때문에 하나님이 여러분을 받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양심이 착해서 하나님이 여러분을 받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받으신 것은 그리스도, 그 이름 가지고 왔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용납하시고 우리를 받으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새 오늘을 찾아야 하는데 기도 속에서 말씀을 묵상하면서 새 오늘 속에 있는 새 은혜를 찾으면 됩니다. 그리고 또 전도계획을 세우면서 새로운 하나님의 은혜를 찾으면 되는 것입니다. 왜 새 오늘 속에서 그 축복의 역사를 찾아야 하는 것이냐? 19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왜 새 오늘의 새 은혜를 찾아내야 하느냐? 여기 사막이 나오고 광야가 나옵니다. 19절의 마지막에 보면 사막이 나오고 광야가 나옵니다. 여러분, 사막은 어떤 곳입니까? 광야는 어떤 곳입니까? 아무리 사막에 길을 만들어 놓아도 바람이 한 번 삭 불어오면 길이 어딘지 모르고 없어집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사막 광야에 서 있으면, 모래바람이 불어오고 태풍이 불어오면 순식간에, 아무리 길을 만들어 놓아도 그 길이 어딘가로 사라집니다. 그래서 헤매게 됩니다. 세상 자체가 그러하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새 은혜가 왜 필요하냐? 새 오늘에 새 은혜가 왜 필요하냐? 변화무쌍한 것이 세상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때를 따라 돕는 새 은혜, 새 오늘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새 오늘 속에 새로운 은혜를 구하고 나아가면서 그 속에서 새로운 나를 찾아내야 합니다. 새로운 나를 찾아내야 합니다. 에베소서 4:22~23에 보면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했습니다. 그리고 오직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했습니다.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라. 여러분, 기독교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수양하고 또 노력해서 인격이 훌륭한 사람 만드는 것이 기독교입니까? 물론 훈련받고 또 기도도 하고 합니다. 바로 우리가 훌륭한 인격을 가지기 위해서 그렇게 훈련 받고 또 기도합니까? 아닙니다. 기독교는 훌륭한 인격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예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게 만드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다시 말하면 100% 새 사람을 만드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인테리어하고 리모델링하는 것이 아니라 100% 옛사람을 벗어 버리는 것이고 새 사람을 입는 것이 바로 기독교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말 저와 여러분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새 사람을 입으면 나도 모르게 날마다 내 안에서 기쁨과 감사와 행복이, 즐거움이 넘쳐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 사람을 입게 되면 그 다음에 우리 안에 새로운 싸움이 일어나는데 바울이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7:24~25에 보면 내 안에 두 가지 법이 있다 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고 그 법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내 안에 있다 했습니다. 또 한 가지는 나도 모르게 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기며 살아가기를 원하지만 나도 모르게 죄의 법 안에 자꾸 끌려가는 부분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면서 24절에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했습니다. 자기 안에 옛사람을 따라가고자 하는 마음이 있고 새 사람, 하나님의 의를 따라가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데 이 두 가지가 자기 안에서 싸운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옛사람이 힘을 잃어버리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옛사람이 힘을 잃어버리는 방법이 있습니다. 복음으로 충만해지면 됩니다. 그리스도로 충만해지면 우리를 주장하고 있는 옛사람이 힘을 잃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서 오는, 그것이 계속 누려지는 가운데 오는 결과가 무엇이냐 하면 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갈라디아서 2:20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내 안에 육신의 싸움과 영적인 싸움이 있는 반면에, 영의, 복음의 축복의 역사를 충분하게 누리면 육은 점점 힘을 잃어버리게 되고 줄어들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 누림 가운데서 오는 결과로, 결국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됩니다. 나는 없고 내 안에 그리스도만 나타나는. 바울은 한 단계 더 깊이 들어갔습니다. 고린도전서 15:31에 보면 “나는 날마다 죽노라” 했습니다. 바울은 자기가 없는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날마다 죽노라 한 그 바울에게 세계복음화하는 제자들을 붙여 주셨습니다. 로마복음화하는 제자들을 붙여 주셨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진짜 참된 언약이 언제 회복되고 언제 붙잡히느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복음 충만할 때. 그래서 나는 없어지고 내 안에 온전히 그리스도만 주장하게 될 때. 그게 바로 복음이, 언약이 완전히 회복되는 축복입니다. 그 속에 하나님은 세계복음화할 수 있는 제자들을 여러분에게 붙이시게 되어 있습니다. 이 축복을 회복하고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과거의 구원의 역사를 기억하면서 과거를 넘어서 오늘 새 역사를 찾아내야 하고 오늘 새 은혜를 받고 오늘 새 은혜 속에서 새로운 나를 깨닫게 될 때 온전한 언약이 우리에게 회복되는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21절에서 중요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다. 지난주에 살펴본 것처럼 이사야 43:1에 “너는 내 것이라” 이야기했습니다. 내가 너를 창조하였고 내가 너를 조성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21절에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소유로 삼았는데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나를 위하여 지었다. 여러분,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다, 이 말씀을 제대로 깨닫게 되는 순간 우리는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의 답이 내려지게 됩니다. 내가 나를 위해서 지었다. 나를 내려놓지 못해서 몸부림치는 것이 우리 신앙생활 아닙니까? 복음, 복음, 이야기하면서도 내 속에 각인되어 있습니다. 나, 나, 나 속에 가두어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대로 언약이 붙잡히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오늘 중요한 말씀을 했습니다. 내가 나를 위해서 지었다. 하나님을 위해서 지었다. 그래서 그 지으신 목적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나님의 찬송을 부르게 하기 위해서 지었다 말씀했습니다. 내 인생이 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그 때에 온전한 언약이 붙잡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신앙 생활하는데도 나, 나, 나 속에 가두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언약이 온전한 언약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에 하나님의 새 일, 언약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 언약은 바로 내가 나를 위해서 지었다, 나를 벗어버리지 못하는 우리 신앙생활을 보면서 하나님이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 저와 여러분을 부르셨다는 것, 그러면 그 속에 모든 문제가 다 풀리는 답이 있는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 나를 위한 신앙생활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 부르셨다는 그 사실 앞에 나 자신의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언약이 붙잡힌 바 되고, 그래서 여러분이 승리하는, 모든 것이 회복되는 축복된 걸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9년 10월 20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하나님의 새 일
(사43:14-28)
서론: 하나님의 새 일이 나의 새 일이 되어야 합니다(사43:18-19). 하나님은 고레스왕을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성전 건축 할 준비를 해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도록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새 일입니다. 언약을 회복하고 성전을 재건하는 것이 하나님의 새 일입니다. 하나님께 항상 새롭게 하시는 일 하나가 있습니다. 언약 회복입니다. 언약은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 받는 것이 언약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세계복음화가 언약입니다.
1. 과거의 구원의 역사를 기억하라
가. 네 시조가 범죄, 교사들이 나를 배반(사43:27) - 근본문제
1) 네 시조가 범죄 – 아담 때부터 생긴 문제(한 사람으로부터 죄가 들어오게 되고 사망이 오게 됨 – 롬5:12)
2) 죄악 중에서 출생, 죄 중에 나를 잉태(시51:5 – 원죄)
3)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렘17:9)
4) 하나님을 떠남으로 사단에게 장악 됨(창3:1-6) - 벗어날 수 없는 저주와 운명 가운데 실패할 수 밖에 없음
5) 몸부림 치는 것이 종교, 우상숭배
6) 하나님이 주신 답(창3:15) -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심(엡2:1)
나. 조상의 죄에서 해방
1) 대물림의 저주 속에 살아감 – 하나님을 믿는 자는 천대까지 축복, 우상숭배 하는 자들은 3, 4대까지 망함
2) 유월절 절기 – 이스라엘 백성들이 대물림 받으면서 노예생활을 함(양의 피를 바를 때 완전히 해방)
3)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에서 해방(롬8:2) -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대물림과 저주와 상관 없음
4) 영적으로 죽은 우리를 새생명 얻게 하는 참 선지자(사43:15), 완전히 죄에서 해방 시키신 완전한 제사장(히9:12), 사단의 세력에서 완전히 보호하시고 승리하게 하신 만왕의 왕(사43:15)
다. 그리스도가 나와 함께 하시는 사실을 날마다 누리며 영광 돌려라
2. 과거를 넘어서 오늘 새 역사를 찾아 누려라
가. 완전히 해결 된 과거문제(사43:18)
1)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심(요5:24),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하심(롬8:2)
2) 잊어 버리지 말아야 할 것 – 우리의 죄를 옮기심(시103:12), 죄를 안개 같이 없게 하심(사44:22)
3) 지은 죄로 인해 사단이 양심을 이용해서 공격 – 우리 죄를 기억하지 않음(히10:17-19), 우리의 죄를 발로 밟으심,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심(미7:18-19)
4) 예수님이 세상을 이기심(요16:31)
나. 날마다 새 오늘을 찾아 누림
1)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됨(고후5:17) - 확인하고 체험
2) 그리스도 이름 붙잡고 은혜의 보좌 앞에 당당히 나아가면 됨(히4:16)
3) 날마다 새 오늘을 찾아라 – 기도, 말씀을 묵상, 새 은혜를 찾고, 전도의 계획을 세우며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
4) 변화무쌍한 세상 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안 됨(사43:19)
다. 새로운 나를 찾아야 함
1)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라(엡4:22-24)
2) 복음으로 충만할 때 옛 사람이 힘을 잃게 되어짐(롬7:24-25, 갈2:20)
3) 나는 날마다 죽음(고전15:31) - 이 사람에게 모든 제자를 붙여 주심
결론: 사43:21절에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인생에 대한 답입니다. 세상은 나를 위하여 살아갑니다. 신앙생활을 해도 내 수준에서 못 벗어납니다. 내 인생이 내 것이 아닌 것을 깨닫게 될 때 모든 축복이 오게 됩니다.
“하나님의 새 일”
(사43:14~28)
14 너희의 구속자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위하여 내가 바벨론에 사람을 보내어 모든 갈대아 사람에게 자기들이 연락하던 배를 타고 도망하여 내려가게 하리라
15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이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의 왕이니라
16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다 가운데에 길을, 큰 물 가운데에 지름 길을 내고
17 병거와 말과 군대의 용사를 이끌어 내어 그들이 일시에 엎드러져 일어나 지 못하고 소멸하기를 꺼져가는 등불 같게 하였느니라
18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 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20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 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22 그러나 야곱아 너는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고 이스라엘아 너는 나를 괴롭 게 여겼으며
23 네 번제의 양을 내게로 가져오지 아니하였고 네 제물로 나를 공경하지 아 니하였느니라 나는 제물로 말미암아 너를 수고롭게 하지 아니하였고 유향 으로 말미암아 너를 괴롭게 하지 아니하였거늘
24 너는 나를 위하여 돈으로 향품을 사지 아니하며 희생의 기름으로 나를 흡 족하게 하지 아니하고 네 죄짐으로 나를 수고롭게 하며 네 죄악으로 나를 괴롭게 하였느니라
25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 하리라
26 너는 나에게 기억이 나게 하라 우리가 함께 변론하자 너는 말하여 네가 의로움을 나타내라
27 네 시조가 범죄하였고 너의 교사들이 나를 배반하였나니
28 그러므로 내가 성소의 어른들을 욕되게 하며 야곱이 진멸 당하도록 내어 주며 이스라엘이 비방 거리가 되게 하리라. 아멘.
사43:14~28
■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만민을 위하여 기를 드십시다. 우리를 거룩한 성전으로 부르셨습니다. 또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아름다운 교회로 부르셨습니다. 오늘 최고의 응답을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고 여러분을 부르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온 종일 예배하는 가운데서 이 하나님을 만나고 누리는 최고의 귀하고 복된 시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제목을 “하나님의 새 일”입니다. 하나님의 새 일이 우리의 새 일이 되는 그런 날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새 일이 오늘 나의 새 일이 되는 그런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새 일이 무엇일까 이 부분들을 우리가 살펴봐야 되겠지요. 특별히 오늘 본문에 보면 19절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그러면서 광야에 길이 나고 사막에 강이 될 정도로 너희에게 깜짝 놀랄 일을 행할 것이다 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18절에 보면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소망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계속해서 이사야서를 살펴보면서 지난번에 한번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사야서 전체 구조가 66권으로 해서 1장부터 39장까지는 구약에 해당하고요, 또 40장부터 66장까지는 신약에 해당하는 내용들로서 이사야40장 이전에는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우상숭배로 말미암은 심판에 대한 메시지가 계속해서 선포되어지고 있고요, 그리고 40장 이후로 보면 축복과 회복에 관한 말씀이 전달되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오늘 그 중에 본문에 보면 바로 광야에 길이 나는 것 같은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다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 사막에 어떻게 강이 흐를 수 있습니까? 그런데 사막에 강이 흐르는 것 같은 그런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말씀하시면서 그러면서 하신 말씀이 새 일을 행할 것이다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새 일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이 부분을 가지고 오늘 전체를 한번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사실 오늘 읽은 14절부터 쭉 보면 바벨론의 멸망에 대한 부분들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하나님은 난데없이 한 왕을 일으켜 세우는데, 그 왕이 아직 살펴보지도 않았습니다마는 이사야 45장에 나오는 이방인 왕인 고레스 왕이라는 사람입니다. 갑자기 이 고레스 왕이 나타나서 바벨론을 정복하고 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령을 내립니다. 모두가 다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라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성전을 재건하라고 명령을 내리면서 그 성전재건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준비해서 보낸 왕이 바로 고레스 왕 입니다. 사실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일들이 바로 이 왕을 통해서 일어나게 된 것이지요. 이 일을 하나님은 오늘 본문에 보면 새 일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새 일은 성전을 재건하고 언약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의 새 일이예요. 그러면서 19절에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다” 말씀하셨는데 하나님이 이루시는 새 일은 무엇이냐? 성전을 재건하고 언약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늘 새로운 일을 하셨고요, 또 앞으로도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항상 새로운 것 하시는 것이 있는데 그게 바로 언약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하나님께 영원히 새로운 일이라는 사실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새 일은 무엇이냐? 바로 답부터 말씀드립니다. 언약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언약이 새 일입니다. 한번 따라합시다. “언약이 새 일이다” 다시 한번요, “언약이 새 일이다”여러분 언약은 무엇입니까? 넓게는 성경말씀 자체가 언약이예요. 성경 전체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언약으로 주신 것인데, 더 깊이 구분한다면 결국 성경은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바로 구약은 우리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메시야를 보내시겠다는 것이고, 신약은 그 메시야가 오셨는데 그리스도로 오셨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 66권 전체가 그리스도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5:39절입니까? “너희가 성경을 통해서 영생을 얻는 줄을 알고 이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은 내게 대하여 기록한 것이다”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20:31절에도 보면 바로 이 성경을 기록한 목적을 말씀하고 있는데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기 위함이요 그 이름을 힘입어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언약인 성경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그리스도를 말씀하고 있어요. 그래서 언약은 그리스도입니다. 그것이 내게 적용된 것을 가지고 구원이라는 것이지요. 그리스도와 함께 구원이 언약이고요, 그리스도와 함께 전도가 언약이고요, 그리스도와 함께 세계복음화가 언약이고, 이 그리스도를 우리 후대들에게 계속해서 전달하는 그것을 가지고 언약이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한번뿐인 생애 정말로 언약되시는 그리스도 붙잡고 구원의 축복 누리고, 전도와 세계복음화의 축복을 누리고, 이 언약의 역사를 후대에게 전달하는, 인생작품을 남기는 그런 축복된 생애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과거의 구원의 역사를 기억하라
그럼 먼저 언약이 그리스도인데, 이 언약의 역사를 누리기 위해서는 첫 번째로 과거의 구원의 역사를 기억해야 합니다. 과거의 구원의 역사를 기억하라입니다. 오늘 27절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요. “네 시조가 범죄하였고, 너의 교사들이 나를 배반하였나니” 여기에 네 시조가 범죄하였다 무엇을 말합니까? 바로 우리 인간의 근본문제를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네 시조가 범죄하였다라는 말은 아담으로 말미암아 일어난 일들, 아담으로 말미암아 일어난 생긴 문제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2:16~1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든 나무의 실과의 열매를 따먹도록 하면서 2:17절에 보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따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언약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사탄의 속임수에 속아서 결국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그 욕심들 가운데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게 된 것이지요. 그로 말미암아 죄 가운데 빠지게 되었고, 그 결과 우리 인간은 악한 사탄의 손에 장악되어 버린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모든 인생은 결국은 원죄 아래 갇힌 바 되어진 것입니다. 로마서 3:10절에 말씀하고 있지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여기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다는 이 사실은 아담으로부터 시작된 모든 죄가 그 후대에 오는 모든 인간이 같은 죄 가운데 빠지고 있다라는 사실이예요. 그게 바로 원죄에 대한 부분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원죄에 대해서 대표적으로 성경구절에 말씀하고 있는 구절을 든다면 로마서5:12절입니다. “한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들어오고 그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다”그런데 모든 사람에게 사망이 임하였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바로 원죄로 말미암아 우리 인생이 피할 수 없는 문제 가운데 빠지게 된 사실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원죄의 문제들을 다윗도 너무나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시편51:5절에 보면 다윗이 고백했습니다. “내가 죄악 중에 출생 하였음이여 죄 중에 나를, 어머니가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다윗이 이 원죄 사건을 너무 잘 알고서 자기가 죄 중에 어머니가 나를 잉태 하였고,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을 고백한 사실을 보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병든 상태에서 태어납니다. 이것을 가지고 신학적인 용어로 전적인 타락이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고칠 수 없는 근본문제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우리의 인생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 어느 누구도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17:9절에 말씀하고 있지요.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 ”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왜 부패하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원죄 가운데 빠짐으로 그 어느 누구도 그리스도를 만나지 않고서는 그 마음 자체가 모두가 심히 부패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첫 번째 인간 아담 하와를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말씀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어떤 모습이 되었습니까? 창세기3:1~6절에 보면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그냥 하나님을 떠난 것이 아니고요, 하나님을 떠난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문제는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사탄의 손에 장악되어 버렸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인생은 실패할 수밖에 없어요. 악한 사탄이 우리 인생을 주인으로 붙잡고 있으니까 그 속에 아무리 노력하고 아무리 열심을 내도 결국은 사탄은 우리에게 축복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좋은 것을 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좋은 것들을 주는 것처럼 하면서 결국은 인생을 망하게 하고 영혼을 멸망시키는 존재가 사탄의 존재인데, 이 악한 사탄이 우리 인생을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시간가면 갈수록 우리 인생에게 드러나는 열매는 어떤 열매입니까? 창세기3:16절에 있는 말씀처럼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계속해서 나오게 되어 있어요. 인생을 살아가는 데도 뭐가 뭔지도 모르겠고요, 계속적인 문제들이 계속 오게 되어 있고요, 그게 가시덤불과 엉겅퀴에 대한 부분들입니다. 계속된 저주가 오는데 무엇 때문에 오는 줄도 모르고, 무엇이 무엇인줄도 모르고 살아가는 겁니다. 계속적인 어려움과 고통과 고난들이 계속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을 떠나자말자 창세기3:16~19절에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요한 것은요, 그 속에서 아무도 빠져나올 수 없다 라는 겁니다. 그 저주와 운명에서 우리 인생은 빠져나올 수 없다 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지옥 가기 전에, 지옥 같은 삶을 살다가 결국은 지옥에 가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 속에 있는 이상 몸부림 친다고 되는 것이 아니지요. 사람들이 어려움 당하니까 계속해서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생겨지니까 뭔가 모르게 몸부림 칩니다. 그것을 가지고 종교라고 하고요, 뭔가 모르게 어려움들이 계속되어지니까 우상 숭배에 빠져듭니다. 그리고 또 뭔가 좀 잘 보이려고 선행을 행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선행을 행한다고 해서 그 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것입니까? 아무도 빠져나올 수 없는 그 문제 속에 인생은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예 아담에게 말도 안하시고요, 또 아담의 부탁을 들어서가 아니라, 일방적으로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답을 우리에게 주셨어요. 창세기3:15절에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메시야가 오셔서 사탄의 머리를 깨트려버릴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약속대로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2:1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와 허물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여러분 이것이 우리가 구원 받은 것입니다.
첫 번째 구원 받은 것은 뭐냐? 우리의 과거문제가 완전히 그리스도 안에서 끝난 것입니다. 죄와 허물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우리의 과거 문제 끝냈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조상의 죄로 인한 대물림 속에서도 해방 받은 것이 바로 구원받은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모르게 대물림의 저주들이 있어요. 그래서 성경에 보면 예수 믿는 자들에게 천대까지 복을 주겠다 했지요. 그리고 우상 숭배하는 자들에게는 3~4대가 망한다고 말씀했어요. 무슨 말입니까? 계속 대를 이어서 이어지는 것이 있다 라는 것, 내가 믿음의 결단을 하고 예수 믿게 될 때에 그 속에서 예수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축복은 천대까지 복 받는다는 사실이예요. 대를 이어가면 갈수록 자자손손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되어 있고요, 반대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우상숭배하면 그 결과는 3~4대가 망한다고 했어요. 무슨 말입니까? 3~4대가 망한다면 쫄딱 망한다는 말이예요. 대를 이어서 내려지는 대물림의 저주인 것입니다. 여러분 아무도 거역할 수 없는 이 대를 이어가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특별히 우상숭배로 말미암은 죄, 또 조상의 죄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특별히 여러분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살펴보면 출애굽기12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예에서 해방 되어지게 되지요. 사실 430년 동안에 애굽에 노예생활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기에서 모세로 말미암아 빠져나오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30년 동안에 대를 이어서 계속해서 노예 살이 했어요. 이것이 저주 중에 저주이지요. 아이를 낳으면 노예이고요, 그 아이가 성장해서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또 그 아이가 노예입니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낳고, 낳고 하는데 계속된 저주가 대물림되게 되어 있어요.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노예생활하고 있을 때 모습들이었어요. 여러분 그 속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 얼마나 몸부림쳤겠습니까? 그러나 그 속에서 아무도 빠져나오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거기에서 빠져나오는 비밀을 말씀하셨습니다.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바르라 했습니다. 그 어떤 능력을 행해도 되지 않았는데 하나님께서 주신 답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대를 이어서 대물림, 저주 가운데서 빠져나올 수 있는 답을 주셨는데,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바르라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애굽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10가지 재앙을 모세로 말미암아 내리게 했잖아요. 그러나 그 10가지 재앙 속에서도 애굽이 손 들지 않았어요. 내놓지 않았어요. 유월절 어린 양의 피 발랐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대를 이어서 오는 모든 저주, 해방된 것입니다. 해결된 것이 아니라 해방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예 벗어나게 된 것이고요, 아예 상관없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8:2절에 말씀하고 있지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할렐루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라면 과거의 모든 죄, 또 과거의 모든 가문의 대물림, 대대로 내려오는 저주와 상관없게 된 사실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축복이예요. 그리고 오늘 15절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이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의 왕이니라.” 무슨 말입니까? 저와 여러분이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원죄와 자범죄, 조상숭배의 죄들 때문에 우리가 반드시 저주와 재앙을 당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대신 십자가에 죽으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참 제사장 되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의 문제를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끝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9:12에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죄로 인한, 내 자신이 지은 자범죄와 우리 조상들의 우상숭배의 죄들, 또 우리와 상관없이 오게 된 원죄의 문제 때문에 우리가 당해야 할 모든 저주와 재앙, 죄로 인한 모든 저주와 재앙을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담당하심으로 말미암아, 참 제사장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의 문제는 끝난 것입니다. 그리고 또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말씀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참 선지자로서 우리에게 하나님 만나는 길을 여셨을 뿐 아니라 지금 성령으로 우리 안에 거하고 계십니다. 참 선지자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만나고 참 선지자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령이 지금 우리 안에서 우리를 인도해가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너희의 왕이니라” 말씀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구원은 받았지만 하나님 나라 가기까지 이 땅에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당장 구원 받고 곧바로 하나님 나라에 가면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세상 임금이 장악하고 있는 세상 속에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 속에서 영적인 싸움을 싸워야 하기 때문에 참 왕 되신 그리스도께서 사단의 머리를 깨뜨려버리심으로 말미암아 저와 여러분이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도록, 승리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승리를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참된 제사장, 참된 선지자, 참된 왕이신 그리스도, 이 사실을 여러분은 항상 누려야 합니다. 모든 것이 여기서부터 시작되어야 하고 매일 확인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여러분은 모든 것을 확인하면서 거기서 참된 영광의 축복이 시작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과거 문제, 대물림의 모든 죄로 인한 저주와 재앙들, 다 끝냈습니다. 그리고 그 그리스도께서 지금 성령으로, 참 선지자이신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내 안에 거하시고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악한 사단과의 영적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비밀을 이미 가진 자로서 이 땅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날마다 확인할 때마다 저와 여러분의 걸음걸음 속에 참된 승리의 축복이 누려지게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2. 과거를 넘어서 오늘 새 역사를 찾아 누려라.
두 번째입니다. 과거를, 과거의 구원의 역사를 기억해야 하지만 그러나 과거를 넘어서서 오늘 새 역사를 찾아 누려야 합니다. 오늘 새 역사를 찾아 누려야 합니다. 그것이 어디에 나오느냐? 18절~22절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우리의 과거는 완전히 해결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18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했습니다. 우리의 과거 문제는 완전히 해결된 것이니까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고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어마어마한 선물, 은혜가 있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축복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5:24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여기 생명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선물입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는 영원히 우리를 떠나지 않을 성령께서 우리 속에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8:2에 다시 말씀하고 계십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의 선물이 생명인데 생명의 성령의 법이, 성령의 역사, 생명의 역사, 이 법이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켰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신앙생활 속에서 잊어버려야 할 것이 있습니다. 잊어버려야 할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 지난날 과거에 죄 지었던 것, 그 죄책감 속에 시달리고 있는 모든 것들을 그리스도 이름으로 용서함 구하고 나아갔다면 잊어버리면 됩니다. 그것을 기억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경에 시편 103:12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할렐루야! 하나님이 기억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매일 삶 속에서 여러분은 죄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지은 죄를 가지고 그때그때 그리스도 이름으로 용서 구하고 나아가면 됩니다. 그 죄 지은 것 가지고 늘 거기 매여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 죄책감 속에 빠져 있으면 여러분도 모르게 영적 문제에 걸려듭니다. 많은 사람들이 현장에서 죄책감 가운데 영적 문제에 걸려서 못 벗어나는 것을 보게 되는데 분명히 오늘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다고 말씀했습니다. 아니, 하나님이 기억하지 않는다고 하시는데 우리는 자꾸 그것을 기억하면서 거기에 늘 매여 있습니다.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이사야 44:22에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 같이, 네 죄를 안개 같이 없이하였으니.” 빽빽한 구름 같이, 네 죄를 안개 같이 없이하였다. 여러분, 안개가 끼면, 아주 강하게 끼면, 많이 끼면 우리는 10m도 내다보지 못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햇빛이 비추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안개가 사라집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의 모든 죄가 빽빽한 구름 같이, 또 안개 같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이름 가지고 나아갈 때. 히브리서 10:17~19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여러분,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필요가 다시 없도록 그리스도께서 완벽하게, 완전하게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했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잘못한 것 있습니까? 그때그때 잘못했습니다. 하고 나아가면 됩니다. 계속해서 그 속에 매여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악한 사단은 계속해서 속입니다. 네가 그래서 어떻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겠느냐, 네 양심도 있는 거 아니냐, 어떻게 그렇게 죄 지으면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느냐? 예, 여러분, 악한 사단이 우리를 계속해서 자꾸 속이고 정죄한다 할지라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 죄 용서를 구하며 나아갔다면 그 죄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억도 안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죄를 히브리서 10:10~14에 보면 단번에, 영원히, 완전하게 해결했다고 했습니다. 끝냈다는 말입니다. 계속 거기 매여 있지 말고 그 속에서 늘 죽을상하고 있지 말기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의 모든 죄 문제, 용서함 받았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끝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느 정도냐? 미가서 7:18~19, 한번 찾아봅시다. 너무 힘이 되는 말씀입니다. 미가서 7:18~19입니다. 구약성경 미가서 7장 1297쪽입니다. 미가서 7:18~19 같이 한번 읽어 봅시다. 18절 먼저,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과 그 기업에 남은 자의 허물을 사유하시며 인애를 기뻐하시므로 진노를 오래 품지 아니하시나이다.” 할렐루야! 19절입니다. 같이 한번 큰 소리로 읽어 봅시다. “다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할렐루야! 우리의 모든 죄악을 발로 밞으신다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죄를 어디에? 깊은 바다에 던지실 것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 용서함을 주신 사실은 완전하시고 영원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로 세상 속에서 당당함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요한복음 16:33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여기 세상을 이겼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사단과 마귀의 권세를 이겼다는 말입니다. 세상과 사단의 권세 앞에 그리스도 복음의 능력을 드러내시기를 바랍니다. 그 어떤 것도 우리를 무너뜨릴 수가 없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찬송 부른 것처럼 날마다 날마다 십자가 든든히 붙잡고 나아가면 됩니다. 그리스도 그 이름 붙잡고 나아가면 됩니다. 여러분, 악한 사단이 그 어떤 속임수를 우리를 공격한다 할지라도 그 사단의 속임수 앞에, 여러분, 보혈의 능력, 십자가의 그 능력의 역사를 드러내시기 바랍니다. 거기에 사단의 역사가 꺾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날마다 새 오늘을 찾아 누려야 하길 바랍니다. 고린도후서 5:17에서 말씀했습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새 오늘을 찾아 누려야 합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다 했습니다.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여기 “보라”라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 확인하라는 말입니다. 체험하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날마다 날마다 오늘 새로운 축복의 역사를 찾아 누리라 이 말입니다. 히브리서 4:16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여러분, 날마다 새 오늘의 축복을 찾아 누리기 위해서는 은혜의 보좌 앞에 그리스도 이름 가지고 당당하게 나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특히 정말로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망설이는 분들 계십니까? 여러분, 정말 그리스도 이름 붙잡고 뻔뻔하게 나아가면 됩니다. 망설일 필요가 없습니다. 윤리적으로 바르게 살지 못해도, 양심적으로 좀 바르지 못해도,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 윤리적으로 바르게 살지 말라, 또 양심적으로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 그 말은 아닙니다. 성령께서,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나를 주장하게 될 때 바르게 살아가게 되어 있고 양심 이상의 축복을, 양심 이상의 것을 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은혜의 보좌 앞에 그리스도 그 이름 가지고 당당하게 나아가면 됩니다. 여러분이 행한 착한 일들 때문에 하나님이 여러분을 받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양심이 착해서 하나님이 여러분을 받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받으신 것은 그리스도, 그 이름 가지고 왔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용납하시고 우리를 받으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새 오늘을 찾아야 하는데 기도 속에서 말씀을 묵상하면서 새 오늘 속에 있는 새 은혜를 찾으면 됩니다. 그리고 또 전도계획을 세우면서 새로운 하나님의 은혜를 찾으면 되는 것입니다. 왜 새 오늘 속에서 그 축복의 역사를 찾아야 하는 것이냐? 19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왜 새 오늘의 새 은혜를 찾아내야 하느냐? 여기 사막이 나오고 광야가 나옵니다. 19절의 마지막에 보면 사막이 나오고 광야가 나옵니다. 여러분, 사막은 어떤 곳입니까? 광야는 어떤 곳입니까? 아무리 사막에 길을 만들어 놓아도 바람이 한 번 삭 불어오면 길이 어딘지 모르고 없어집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사막 광야에 서 있으면, 모래바람이 불어오고 태풍이 불어오면 순식간에, 아무리 길을 만들어 놓아도 그 길이 어딘가로 사라집니다. 그래서 헤매게 됩니다. 세상 자체가 그러하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새 은혜가 왜 필요하냐? 새 오늘에 새 은혜가 왜 필요하냐? 변화무쌍한 것이 세상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때를 따라 돕는 새 은혜, 새 오늘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새 오늘 속에 새로운 은혜를 구하고 나아가면서 그 속에서 새로운 나를 찾아내야 합니다. 새로운 나를 찾아내야 합니다. 에베소서 4:22~23에 보면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했습니다. 그리고 오직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했습니다.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라. 여러분, 기독교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수양하고 또 노력해서 인격이 훌륭한 사람 만드는 것이 기독교입니까? 물론 훈련받고 또 기도도 하고 합니다. 바로 우리가 훌륭한 인격을 가지기 위해서 그렇게 훈련 받고 또 기도합니까? 아닙니다. 기독교는 훌륭한 인격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예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게 만드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다시 말하면 100% 새 사람을 만드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인테리어하고 리모델링하는 것이 아니라 100% 옛사람을 벗어 버리는 것이고 새 사람을 입는 것이 바로 기독교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말 저와 여러분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새 사람을 입으면 나도 모르게 날마다 내 안에서 기쁨과 감사와 행복이, 즐거움이 넘쳐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 사람을 입게 되면 그 다음에 우리 안에 새로운 싸움이 일어나는데 바울이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7:24~25에 보면 내 안에 두 가지 법이 있다 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고 그 법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내 안에 있다 했습니다. 또 한 가지는 나도 모르게 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기며 살아가기를 원하지만 나도 모르게 죄의 법 안에 자꾸 끌려가는 부분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면서 24절에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했습니다. 자기 안에 옛사람을 따라가고자 하는 마음이 있고 새 사람, 하나님의 의를 따라가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데 이 두 가지가 자기 안에서 싸운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옛사람이 힘을 잃어버리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옛사람이 힘을 잃어버리는 방법이 있습니다. 복음으로 충만해지면 됩니다. 그리스도로 충만해지면 우리를 주장하고 있는 옛사람이 힘을 잃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서 오는, 그것이 계속 누려지는 가운데 오는 결과가 무엇이냐 하면 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갈라디아서 2:20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내 안에 육신의 싸움과 영적인 싸움이 있는 반면에, 영의, 복음의 축복의 역사를 충분하게 누리면 육은 점점 힘을 잃어버리게 되고 줄어들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 누림 가운데서 오는 결과로, 결국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됩니다. 나는 없고 내 안에 그리스도만 나타나는. 바울은 한 단계 더 깊이 들어갔습니다. 고린도전서 15:31에 보면 “나는 날마다 죽노라” 했습니다. 바울은 자기가 없는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날마다 죽노라 한 그 바울에게 세계복음화하는 제자들을 붙여 주셨습니다. 로마복음화하는 제자들을 붙여 주셨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진짜 참된 언약이 언제 회복되고 언제 붙잡히느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복음 충만할 때. 그래서 나는 없어지고 내 안에 온전히 그리스도만 주장하게 될 때. 그게 바로 복음이, 언약이 완전히 회복되는 축복입니다. 그 속에 하나님은 세계복음화할 수 있는 제자들을 여러분에게 붙이시게 되어 있습니다. 이 축복을 회복하고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과거의 구원의 역사를 기억하면서 과거를 넘어서 오늘 새 역사를 찾아내야 하고 오늘 새 은혜를 받고 오늘 새 은혜 속에서 새로운 나를 깨닫게 될 때 온전한 언약이 우리에게 회복되는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21절에서 중요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다. 지난주에 살펴본 것처럼 이사야 43:1에 “너는 내 것이라” 이야기했습니다. 내가 너를 창조하였고 내가 너를 조성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21절에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소유로 삼았는데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나를 위하여 지었다. 여러분,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다, 이 말씀을 제대로 깨닫게 되는 순간 우리는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의 답이 내려지게 됩니다. 내가 나를 위해서 지었다. 나를 내려놓지 못해서 몸부림치는 것이 우리 신앙생활 아닙니까? 복음, 복음, 이야기하면서도 내 속에 각인되어 있습니다. 나, 나, 나 속에 가두어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대로 언약이 붙잡히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오늘 중요한 말씀을 했습니다. 내가 나를 위해서 지었다. 하나님을 위해서 지었다. 그래서 그 지으신 목적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나님의 찬송을 부르게 하기 위해서 지었다 말씀했습니다. 내 인생이 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그 때에 온전한 언약이 붙잡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신앙 생활하는데도 나, 나, 나 속에 가두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언약이 온전한 언약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에 하나님의 새 일, 언약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 언약은 바로 내가 나를 위해서 지었다, 나를 벗어버리지 못하는 우리 신앙생활을 보면서 하나님이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 저와 여러분을 부르셨다는 것, 그러면 그 속에 모든 문제가 다 풀리는 답이 있는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 나를 위한 신앙생활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 부르셨다는 그 사실 앞에 나 자신의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언약이 붙잡힌 바 되고, 그래서 여러분이 승리하는, 모든 것이 회복되는 축복된 걸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9년 10월 20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하나님의 새 일
(사43:14-28)
서론: 하나님의 새 일이 나의 새 일이 되어야 합니다(사43:18-19). 하나님은 고레스왕을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성전 건축 할 준비를 해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도록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새 일입니다. 언약을 회복하고 성전을 재건하는 것이 하나님의 새 일입니다. 하나님께 항상 새롭게 하시는 일 하나가 있습니다. 언약 회복입니다. 언약은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 받는 것이 언약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세계복음화가 언약입니다.
1. 과거의 구원의 역사를 기억하라
가. 네 시조가 범죄, 교사들이 나를 배반(사43:27) - 근본문제
1) 네 시조가 범죄 – 아담 때부터 생긴 문제(한 사람으로부터 죄가 들어오게 되고 사망이 오게 됨 – 롬5:12)
2) 죄악 중에서 출생, 죄 중에 나를 잉태(시51:5 – 원죄)
3)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렘17:9)
4) 하나님을 떠남으로 사단에게 장악 됨(창3:1-6) - 벗어날 수 없는 저주와 운명 가운데 실패할 수 밖에 없음
5) 몸부림 치는 것이 종교, 우상숭배
6) 하나님이 주신 답(창3:15) -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심(엡2:1)
나. 조상의 죄에서 해방
1) 대물림의 저주 속에 살아감 – 하나님을 믿는 자는 천대까지 축복, 우상숭배 하는 자들은 3, 4대까지 망함
2) 유월절 절기 – 이스라엘 백성들이 대물림 받으면서 노예생활을 함(양의 피를 바를 때 완전히 해방)
3)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에서 해방(롬8:2) -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대물림과 저주와 상관 없음
4) 영적으로 죽은 우리를 새생명 얻게 하는 참 선지자(사43:15), 완전히 죄에서 해방 시키신 완전한 제사장(히9:12), 사단의 세력에서 완전히 보호하시고 승리하게 하신 만왕의 왕(사43:15)
다. 그리스도가 나와 함께 하시는 사실을 날마다 누리며 영광 돌려라
2. 과거를 넘어서 오늘 새 역사를 찾아 누려라
가. 완전히 해결 된 과거문제(사43:18)
1)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심(요5:24),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하심(롬8:2)
2) 잊어 버리지 말아야 할 것 – 우리의 죄를 옮기심(시103:12), 죄를 안개 같이 없게 하심(사44:22)
3) 지은 죄로 인해 사단이 양심을 이용해서 공격 – 우리 죄를 기억하지 않음(히10:17-19), 우리의 죄를 발로 밟으심,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심(미7:18-19)
4) 예수님이 세상을 이기심(요16:31)
나. 날마다 새 오늘을 찾아 누림
1)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됨(고후5:17) - 확인하고 체험
2) 그리스도 이름 붙잡고 은혜의 보좌 앞에 당당히 나아가면 됨(히4:16)
3) 날마다 새 오늘을 찾아라 – 기도, 말씀을 묵상, 새 은혜를 찾고, 전도의 계획을 세우며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
4) 변화무쌍한 세상 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안 됨(사43:19)
다. 새로운 나를 찾아야 함
1)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라(엡4:22-24)
2) 복음으로 충만할 때 옛 사람이 힘을 잃게 되어짐(롬7:24-25, 갈2:20)
3) 나는 날마다 죽음(고전15:31) - 이 사람에게 모든 제자를 붙여 주심
결론: 사43:21절에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인생에 대한 답입니다. 세상은 나를 위하여 살아갑니다. 신앙생활을 해도 내 수준에서 못 벗어납니다. 내 인생이 내 것이 아닌 것을 깨닫게 될 때 모든 축복이 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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