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하나님 나라의 완전함을 누려라
2019-09-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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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하나님 나라의 완전함을 누려라 ”
(사40:1~11)

1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2 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 그것에게 외치라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하시니라
3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4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5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6 말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하니 이르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7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9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 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하 지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게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을 보라 하라
10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의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의 앞에 있으며
11 그는 목자 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아멘.

사40:1~11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만민을 위하여 기를 드십시다. 한 번 더 하십시다. 무엇을 하느냐 하면요, 정말 하세요. 옆에 분들에게 당신은 가장 축복된 자리에 있습니다. 아멘입니까? 가장 축복된 자리에 있다 라는 부분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언약이 선포되어지고, 그 언약이 성취될 것이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에 앉은 이 자체가 가장 최고의 응답이고, 축복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두 주 전인가요? “현장 속에서 먼저 누릴 하나님의 나라”우리가 말씀을 같이 말씀을 나누었잖아요. 그런데 그 주간에 어떤 분을 만났어요. 만나서 인사하는 것이 집에서 권사님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다음 주 목사님 설교제목이 무엇인지 안다 라는 거예요. 제가 무엇입니까? 라고 하니까 오직 성령에 대한 부분들 이야기 할 것 아니냐는 거예요. 왜 그렇냐고 하니까 그 전주가 그리스도 복음으로 누릴 은혜, 그 다음에 “현장 속에서 먼저 누릴 하나님의 나라” 그러면 오직 성령 1,3,8 오직 성령 아닙니까? 제가 그것을 피해갔지요. 그래서 지난 주에는 “더 깊이 누릴 하나님의 나라” 했습니다. 더 깊이 누릴 하나님의 나라, 오늘은 “ 하나님의 나라의 완전함을 누려라”입니다. 사실 그리스도는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고요, 그리스도는 이미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신앙생활 속에서 지금 내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성령께서 역사하고 흑암이 꺽여지는 하나님의 나라 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부활하셔서 승천하시기 전에 여러분, 말이 부활하셔서 승천하셨다 그렇게 이야기하지요. 40일 동안 이 땅에 머무셨잖아요. 말이 40일 동안 이 땅에 머무는 것이지요. 이 땅에 머무는 그 자체가 사실은 곤욕입니다. 왜냐?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하신 몸인데, 이 땅에 머무는 그 자체가 예수님이니까 가능한 것이지 사실 그 자체가 힘들고 어려운 겁니다. 그런데 사십일 동안 머무시면서 하신 일이 있다면 바로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다 했어요. 사도행전1:3절에 나오는 말씀이지요.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다. 왜 하루 이틀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면 다 알아들을 것 아닙니까?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 그것도 무려 40일 동안이나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을까? 여러 가지 이유를 들 수 있겠습니다마는 분명한 것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알아 들을 수 있도록 하셨다라는 것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하셨다 라는 것, 그래서 오늘도 그 하나님의 나라의 완전함을 누려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그냥 신앙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면 그 속에 완전함이 있는데, 그 축복을 누려야 할 것입니다. 특별히 지금 우리가 이사야서를 계속 보고 있잖아요. 이사야서는 총 66권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이사야서를 일컬어서 많은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신·구약 성경의 압축판이 이사야서다 라고 많은 사람들이 말을 해요. 그렇게 보고 있어요. 왜냐하면 이사야서 1장부터 39장까지이지요. 구약이 39권 아닙니까? 그 구약은 무엇을 말합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 땅의 멸망과 심판에 대한, 그래서 회개를 촉구하는 내용이 구약이지요. 그리고 신약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였다라는 것,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로하는 메시지가 신약이거든요. 그러면 구약의 39권에 대한 부분들을 이사야서 1장부터 39장까지 보면 구약의 내용이 그대로 나와요. 열방 가운데 멸망하고 심판하는 이 모습들이 나오고요. 그러면서 오늘 읽은 40장부터 시작해서 66장까지는 27권이지요.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로하고 하나님의 은혜주신 부분들을 이야기하고 있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회복시키는 하나님의 역사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처음 40장을 시작하면서 1절에 보면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요.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복음부터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모든 인류, 모든 민족에게 소통될 수 있는 것은 복음 뿐 입니다. 또 모든 연령과 계층에게 소통될 수 있는 것은 복음 뿐입니다. 그리고 범죄해서 하나님을 떠난 인간에게 하나님께서 복음 만 주셨습니다. 나머지는 그 복음 때문에 오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이 복음을 더 잘 알게 하기 위해서 성경도 주셨고요, 이 복음을 더 잘 알게 하기 위해서 교회도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목표가 무엇이냐 하면 복음을 알고, 복음만 붙잡으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을 기록한 목적에 대해서 요한복음20:31절에 말씀하고 있지요. “내가 이 성경을 기록함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이심을 믿게 하기 위함이고, 그 이름을 힘입어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함이라”무슨 말입니까?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기 위함이다. 다시 말해서 복음 알게 하도록 하기 위해서 이 성경을 주셨다라는 사실이예요. 그래서 저와 여러분이 복음만 제대로 알면, 나머지 모든 것들은 다 살아나는 축복이 있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 다른 것 붙잡지 마시고 복음 속에 깊이 들어가는 그런 축복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이사야서40:1절에 “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무슨 말입니까? 이게 바로 복음에 대해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복음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로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게 복음이예요. 그 위로의 내용이 무엇이냐? 2절입니다. 2절 중간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지요.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그 노역의 때가 끝났다라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이사야서39:6~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서 70년 동안에 노예 살이 할 것을 말씀했습니다. 그러면서 네 자손들 가운데 그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갈 것이고, 그리고 그 자손들 가운데서 왕궁에서 일하는 환관, 환관이라는 것은 왕궁의 일을 맡아서 관리하는 사람이지요. 왕궁에서 일하는 사람도 나오게 될 것이다 말씀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이라는 나라에 70년 동안에 포로로 끌려가서 살게 될 것을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2절에 보면 그 노역의 때가 끝났다, 그 포로의 시간이 끝났다 라는 거예요. 포로에서 자유케 되어지는 그 축복이 이루어진다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면서 그 다음에 나오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여러분 우리의 죄를 사함 받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그 죄 값을 치루어야 합니다. 그렇잖아요. 그냥 시간이 지나가면 우리의 죄가 사해 지는 게 아니예요. 누군가가 그 죄 값을 치우어야 합니다. 그런데 2절 그 다음절 보면 그 죄를 충분하게 해결했다 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어요. 그게 2절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거예요.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우리의 모든 죄, 모든 것을 충분하게 해결했다 라는 말이예요.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완전히 성취되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죄로 말미암아 멀어졌어요.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겁니다. 그 죄로 말미암아 결국 우리 인생은 사탄의 손에 장악되어 버리고 결국 하나님을 떠나버리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은 것이 있는데, 그게 바로 죄라는 것이예요. 이 죄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절대 그 어떤 인생도 하나님께 나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죄로 말미암아 갈라놓았어요. 그 배후에는 악한 사탄이 있는 것이고요, 그 자체를 가지고 하나님을 떠난 상태다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그 죄악의 모든 문제를, 죄 값을 다 갚으신 것입니다. 히브리서9:12절에 보면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여기에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서 피 흘려 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 값을 영원히 끝내신 것입니다. 요한일서2:2절에 보면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함이라”나의 죄 만이 아니라 오고 오는 모든 시대에, 모든 백성들의 죄를 위해서 화목제물로 주님께서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것입니다. 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만나게 되고, 죄 문제 해결 받게 되고, 사탄의 운명 가운데서 빠져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우리가 날마다 복음 알고 복음 속에 들어가야 되어요. 불신자들도 당연히, 반드시, 필연적으로 절대적으로 복음 알아야 되고요, 성도들도 복음 압니까? 복음 알았다면 그 복음 속에 들어가야 되어요. 복음에 집중해야 되어요. 사실 오늘 이사야서40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생활 가운데서 이 메시지를 붙잡고 승리했던 부분들이예요. 여러분이 여러분에게 주어진 환경이 어떠하든지간에 상관없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 붙잡고 여러분 기도 속에 들어간다면 이스라엘 백성들과 동일하게 여러분 모든 삶의 현장에 포로에서 해방될 뿐만 아니라 모든 것에 자유케 되어지는, 승리케 되어지는 그런 축복이 임할 줄로 믿습니다.

1. 복음의 집중으로 세상의 한계를 넘어서라.
그러면 먼저 첫 번째입니다. 복음에 집중함으로 세상의 한계를 넘어서라입니다. 여러분 세상은 다 한계가 있습니다. 마태복음24:14절에 말씀하고 있지요. “이 천국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기 위해서 증언되리라 그 후에야 끝이 오리라” 이 천국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 된 다음에야 끝이 온다 했어요. 여기서 말씀하는 것은 여러분 반드시 끝이 있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이 땅의 모든 것들은 한계가 있어요. 끝이 있어요. 그리고 그 끝이 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9:27절에 보면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이후에는 심판이 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우리 인생은 시한부 인생입니다. 좀 오래살고, 그렇지 못할 뿐이지요. 모두가 다 죽게 되어 있는 시한부 인생입니다. 그래서 로마의 원로가운데 한 사람인 세네카 네로황제의 스승이라고 하는데요, 그 세네카가 한 말이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사형수이다. 모든 인간은 공동묘지다. 한마디로 여러분 전부 다 한계가 있는 것을, 결국은 끝이 있음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읽지는 않았습니다마는 오늘 본문에 마지막 뒤편에 보면 40:30절에 보면 우리 인생은 한계가 있다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부분들이지요.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이 땅의 모든 인생들은 다 한계를 가지고 있다 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 6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지요. 6절 중간에 보면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다. 육신적인 모든 노력, 인간이 하는 육신적인 모든 노력이 한계가 있다 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대단하다 할지라도 모든 육체는 풀이요, 아무리 대단하다 할지라도 무너지는 날이 있다 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의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다. 여러분 꽃이 금방 시들잖아요. 가장 오래가는 꽃이 국화꽃이라고 합니다. 그 국화꽃이 한 20일, 30일 정도 피어있다고 해요. 여러분 장미꽃도 만개하는 그것이 2시간 3시간 동안 만개한다고 해요. 사실 또 꽃이 시들면 그것만큼 지저분한 것이 없지요. 그런데 결국은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 할지라도 그것도 결국은 시들게 되어 있다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인간의 나약함과 무상함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대단하다 싶어도 들의 꽃과 같은 그런 존재에 불과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짧은 생애를 사는 거예요. 아무리 아름다워도 짧은 생애를 살아요. 여러분 모르겠어요. 이 자리에 앉은 여러분 가운데 앞으로 100년 이상 살 사람이 있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멋있다 할지라도, 아무리 아름답다 할지라도 짧은 생애를 사는 거예요. 그런 인생이 우리 인생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움을 보고 그래도 처녀총각들이 멋있고 아름다워야지 않느냐 시집가고 장가가는 조건을 그렇게 잡잖아요. 그거 몰라서 하는 소리예요. 아무리 멋있다 할지라도, 아무리 아름답다 할지라도 여러분 장가가고 시집가면 얼굴 쳐다보며 사는 게 아니예요. 그렇잖아요. 그 아름다움도 금방이예요. 사실은...오늘 그게 6절의 말씀이예요. 모든 육신적인 노력도 다 한계가 있다 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세상적인 조건도 한계가 있습니다. 7절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요.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했습니다.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든다, 여기 풀은 세상적인 권위를 말씀하고 권세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오늘 바벨론을 일컬어서 하는 말입니다. 아무리 바벨론이 강성하다 할지라도 결국은 바벨론조차도 무너지는 것이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세상적인 조건도 결국은 다 한계가 있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가장 중요하게, 쉽게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인간이 노력해서 성공한다 할지라도 그게 결국은 바벨탑입니다. 결국 무너지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노력하고 성공합니다만 결국은 무너집니다. 역사 속에도 보십시오. 여러분, 바벨론뿐만 아니라 애굽도 마찬가지이고 역사 속에서 강대국들마다, 로마도 마찬가지이고 강대국들마다 결국은 그 강대국이 계속 갔느냐? 아닙니다. 여러분, 세상적인 모든 권세들은 결국은 한계가 있음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세상적인 권세는 한계가 있고 시들 수밖에 없느냐? 7절에 보면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다스림이 세상의 성공 위에 있기 때문에 세상의 그 어떤 것도 계속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짝하지 말라, 세상과 벗하지 말라. 무슨 말입니까? 야고보서 4:4에 보면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했는데 이 말은 여러분, 세상을 등지라는 말이 아닙니다. 세상을 친구 삼으라는 말도 아닙니다. 우리가 세상을 등지고 어떻게 살아갑니까? 그리고 세상과 짝하고 살아가면, 친구하고 살아가면 세상에 동화되고 세상의 심부름을 하게 되고 결국은 세상의 심부름을 한다는 말은 사단의 종노릇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신분이냐? 세상과 짝하지 말라, 벗하지 말라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우리는 세상을 살릴 신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세상을 정복하고 변화시킬 신분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복음에 집중해야 합니다. 복음에 집중하게 될 때 육신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것이고 복음에 집중하게 될 때 세상적인 조건도 넘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40:31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육신적인 모든 조건을 넘어설 수 있는 새 힘을 주신다는 것, 세상적인 모든 조건을 넘어설 수 있는 새 힘을 주신다는 것. 여러분, 모든 인생들이 붙잡고 있는 종교, 우상도 결국은 한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모든 인생은 우상을 숭배하게 되어 있고 종교를 갖게 되어 있습니다. 그게 본능입니다. 창세기 3:7에 보면 아담과 하와가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부끄러운 부분을 가렸습니다. 벗었음을 두려워했습니다. 부끄러움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무화과나무를 엮어서 치마를 만들어 입었습니다. 그런데 무화과나무는 계속됩니까? 아닙니다. 말라비틀어지고 결국 부서지지 않습니까? 그게 종교입니다, 사실은.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피 묻은 가죽옷을 지어 입히신 것입니다. 종교 생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피 묻은 가죽옷을 집어 입히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잘 아는 가인과 아벨, 둘 다 같이 정성스럽게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아니하시고 아벨의 제사는 받으셨습니다. 가인의 제사가 예의 없이 그냥 아무렇게나 드린 제사가 아닙니다. 얼마나 정성스럽게 드렸는데 왜 내 제사는 안 받느냐, 그래서 화가 나서 아벨을 쳐 죽였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에 대해 성경 히브리서 11:4에서 답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물이 증거한다 했습니다. 가인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피가 없는 제사였고 아벨은 피의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그래서 아벨은 죽었지만 지금도 살아서 계속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벨입니다. 아벨의 믿음입니다. 요한복음 3장에 보면 니고데모라는 인물이 나옵니다. 최고의 종교인입니다. 종교 지도자입니다. 성공한 사람, 아주 성공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종교인, 최고로 성공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지도자임에도 불구하고 니고데모가 구원이 뭔가에 대해서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구원이 뭔가에 대해서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종교는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구원의 역사는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지식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아무리 명예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성공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여러분, 구원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복음의 시작은 바로 구원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종교와 복음은 비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최고의 종교인 중의 종교인 니고데모, 지식인 중의 지식인 니고데모, 구원을 모르고 있는데 복음 받은 우리, 다시 말해 그리스도 영접함으로 구원부터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실은 종교와 복음은 아예 비교도 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인생이 알지 못하니까 종교 생활하고 우상 숭배하고 결국 그 한계에 부딪혀서 멸망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로 복음에 집중함으로 말미암아 모든 한계를 뛰어넘는 응답이 여러분 걸음걸음 속에 누려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입니다. 복음에 집중하는데서 그치지 말고 복음을 누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나라의 완전함을 누려야 합니다. 여러분, 복음을 누린다는 말은 내가 애쓰고 노력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복음에 집중하면 복음이 누려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먼저 제가 복음에 집중함으로 한계를 넘어서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에 집중하면 복음의 누림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진짜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누리는 것이 쉬워져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면 가장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가 무엇이냐? 부족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특징은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의 완전함을 누리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6:9에 보면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말씀했습니다.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 이유가 뭐냐? 바로 뒤에 답이 나옵니다.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누렸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완전한 자, 부족함이 없는 완전한 자라는 사실을, 의인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이 고백했습니다. 시23:1에 보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아니, 왕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 다 해 보고 다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솔로몬은 해 아래 새 것이 없다 했습니다. 그리고 헛되고 헛되고 헛되다 했습니다. 아니, 왕임에도 불구하고. 왕이니까 모든 것 다 해 봤지 않습니까? 그 솔로몬의 고백이 무엇입니까? 해 아래 새 것이 없고 모든 것이 헛되다, 다시 말해서 모든 것이 부족하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쫓겨 다니면서도 다윗은 부족함이 없다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쫓겨 다니는 그 현장에서 완전하신 하나님의 나라를 누렸기 때문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고백한 사실을 보게 됩니다. 다니엘서 6장에 보면 다니엘이 나옵니다. 거기 120명이 다니엘의 결점을 찾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어떻게든지 결점을, 약점을 찾아서 넘어뜨리려고. 여러분, 말이 120명이지, 지금 일어나는 일들, 청문회 같은 경우 준비하는 것 보십시오. 만약 여러분이 저를 날마다, 하루하루 살펴본다면 아마 속에 구역질이 나서 이 자리에 앉아 있을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120명이 눈이 벌겋게 되어 찾아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찾지 못했습니다. 아니, 부족함이 없었기 때문이냐? 다니엘에게 모자람이 없었기 때문이냐? 연약함이 없었기 때문이냐?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눈에는 모자라지 않는 부분들로 보인 것입니다. 그 중의 또 한 가지는 뭐냐? 바로 다니엘이 항상 하나님을 섬겼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불신자 왕이 다니엘을 바라보면서 뭐라고 얘기했습니까? 네가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네가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무슨 말입니까? 다니엘이 모든 환경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누렸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불신자 왕이 네가 항상 네 하나님이라 했지 않습니까?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완전함입니다.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모자람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복음을 누리면 하나님 나라의 완전함을 누리게 되는데 복음을 누린다는 말이 무슨 말이냐?
복음을 누린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영원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영원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믿는 것이 아니고 믿어져야 하는데 사실 어렵습니다. 그래서 복음에 집중하면 집중하는 만큼 말씀이 믿어집니다. 하나님 말씀의 완전함이 믿어집니다. 오늘 본문 8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아, 이 말씀이 영원한 말씀이구나, 이게 믿어지는데 복음에 집중하면 할수록 그 이후에 이 말씀이 영원하다는 사실이 믿어지고 나 자신은 그 말씀 앞에서 너무나 초라하고 부족하고 나는 그럴 수밖에 없는 인생이라는 사실이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말씀의 완전함과 함께, 말씀의 영원함과 함께 말씀 앞에 선 나의 모습은 말씀 속에서, 나는 그럴 수밖에 없는 인생이구나, 이 사실이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이 믿어지면 믿어질수록 사실은 삶의 열매도 커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이 믿어지면 이 말씀이 우리의 모든 것들을 다 세밀하게 분석을 해 줍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잘 알지 못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말씀이 빛으로 우리 가운데 임하면 우리 자신을 세밀하게 잘 분석을 해줍니다. 히브리서 4:12에서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무슨 말입니까? 우리의 모든 것들을 너무나 정확하게 분석해 준다는 말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지면 우리를 붙잡고 있는 흑암의 역사가 밝은 빛의 말씀이 임하기 때문에 물러갈 수밖에 없습니다. 시편 139:12에 보면 “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추이나니”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말씀이 믿어지면 내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것들을 다 아시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부분이 보입니다. 베드로후서 3:8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과거도 알고 현재도 알고 미래도 주님께서 다 아신다는 말입니다. 글서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다 아시고 말씀을 주시고 그 말씀을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은 먼저 복음을 누리는 축복을 누려야 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지는 축복 속에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2. 복음의 누림으로 하나님 나라의 완전함을 누려라.
그 다음에 두 번째로 복음을 누린다는 말은 하나님 말씀이 믿어질 뿐만 아니라 아예 믿어지는 것을 넘어서서 그 말씀 속에 나를 맡기는 것, 그게 복음을 누린다는 것입니다. 말씀에 나를 맡긴다는 것. 왜 말씀에 나를 맡길 수밖에 없느냐? 10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분이 “강한 자”이기 때문에, 또 10절에 보면 그분이 “그의 팔로 다스리실 것”이기 때문에 말씀에 나를 맡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도행전 20:32에 보면 바울이 3년 동안 에베소 지역을 목회하고 나서 이제는 거기를 떠나야 하는 시간표가 왔습니다. 그래서 에베소교회 장로들 다 모아 놓고 울면서 그들에게 메시지를 했습니다. 내가 너희를 주와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한다 했어요.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운다했어요 그래서 그 말씀이 너희에게 기업이 될 것이다 했어요. 마지막 교회를 떠나면서 바울이 훌륭한 지도자에게 너희들을 맡긴다. 누구누구에게 맡기다 한 것이 아니라 주와 그 은혜의 말씀께 너희를 맡긴다 했어요. 그런데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운다. 말씀하시면서 그 말씀이 너희에게 기업이 된다 말씀했어요. 우리가 이 시간에 예배드리는 시간에 언약의 말씀 붙잡는 순간 그게 다예요 아멘입니까? 약속의 말씀 붙잡는 그게 오늘이고요 그게 여러분의 미래입니다. 지금 어떤 언약의 말씀을 붙잡고 있느냐 그게 여러분의 미래입니다. 분명히 말씀대로 우리를 인도하시고 하나님이 성취 시켜 나가게 되어있습니다. 사실은 언약의 말씀 붙잡는 그 말씀 때문에 환경도 삶도 하나님께서 만들어 가시고 이끌어 가실 것입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 앉은 것이 최고의 축복이라는 사실 그 말이에요 여러분 정말로 말씀께 여러분 자신을 맡기는 축복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호하시느냐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고 완벽하게 책임져 주시는데 어느 정도로 11절에 보세요. “그는 목자 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대기업에 회장 되시는 어떤 분이 그 이야기를 했어요. 여러분 앞으로 10년 후 무엇을 먹을 것인가? 먹을거리를 늘 생각하라 여러분 사실 삶의 현장에서 가장 필요한 부분들이 먹는 것 아닙니까? 자녀들 보면 은 답답할 때 그래서 너 뭐먹고 살래 그 얘기하잖아요? 먹는 게 늘 스트레스 받는거에요 사실. 그런데 여러분 정말로 그리스도가 여러분의 주인 되어지고 여러분 모든 삶을 말씀께 맡기고 그리스도께 맡긴다면 먹을 것 걱정 안 해도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먹을 것을 매일매일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그 말이에요 오늘. 그는 목자같이 양떼를 먹이시며 말씀했습니다. 그러면서 두 번째로 “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무슨 말입니까? 어린양들은 모르니깐 천방지축 아닙니까? 흩어지고 낭떠러지 떨어지고 하잖아요. 근데 여기에 어린양을 그 팔로 모아서 품에 안으신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완벽하게 우리를 보호하시고 인도하실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흩어진다 할지라도 또 심지어 신앙생활 하다가 넘어지고 낙오한다 할지라도 세상 속에서는 낙오하는 자들을 우습게 볼 수 있지만은 하나님은 넘어져도 낙오한다 할지라도 또 찾아오셔서 우리를 붙드시고 기어코 우리를 승리토록 하시는 것입니다. 그 부분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주님께서 마지막 말씀했습니다.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겠다. 왜 함께 합니까? 우리를 인도하시기 위해서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완전한 보호하심과 인도하심과 승리가 보장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이걸 확신 가져야 합니다. 성경에 요하복음 10장 28절 29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죠.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저와 여러분은 결국은 승리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복음을 누림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완전함 속에 들어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어디에서 하나님 나라의 완전함을 체험하고 누리느냐 광야에서 하나님의 길을 예비하라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은 광야에서 하나님의 길을 예비하라 여러분 광야 알죠. 사막 알죠? 한번은 페루 사역을 갔는데 사역을 하고 나서 진봇데라는 지역이 있어요. 거기에 제자들이 있어가지고 밤에 한 8시간 밤새도록 버스를 타고 달려갔어요. 그런데 그 길이 사막길이에요 아무것도 안보여요 여러분 광야는 아무것도 안보이고 건물도 없어요. 위만 보고 것이 광야고 사막이에요 무슨 말입니까? 우리의 인생길에서 광야길 사막의 길을 가고 있는 분들 있습니까? 하나님만 바라보는 그래서 광야가 우리에게는 축복입니다. 아멘입니까? 왜냐, 믿는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만 바라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혹여나 내 인생이 광야길을 간다. 사막의 길을 가고 있다 하나님만나고 하나님만 바라보라는 사인입니다. 정말로 광야길에서 하나님 바라봄으로 완전한 부족함이 없는 그 하나님 나라의 축복을 누리면서 승리하는 전도자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9년 9월 1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하나님 나라의 완전함을 누려라
(사40:1-11)

서론: 이 땅에 살아가는 가운데 가장 중요한 축복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리스도는 이미 주어졌습니다. 성령께서 역사하고, 흑암이 꺾여지는 하나님 나라는 중요한 것입니다. 지금 누려야 될 부분이 있다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예수님이 40일 동안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행1:3).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음만을 주셨습니다. 그 외의 모든 것은 복음을 설명하기 위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제대로 아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요20:31). 복음을 제대로 알고 누리면 모든 것이 살아나게 됩니다. 복음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로해 주시는 말씀입니다(사40:1). 노역의 때가 끝났고, 죄악이 사함을 받았습니다(복음의 내용 - 사40:2).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가로 막힌 모든 것을 허물어 주셨습니다.
1. 복음의 집중으로 세상의 한계를 넘어서라
가. 세상은 한계가 있음
1) 세상은 끝이 오게 되어 있음(마24:14)
2) 심판이 기다리고 있음(히9:27)
3)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고 있음, 모든 인생은 한계가 있음(사40:27-31)
나. 육신적인 노력도 한계가 있음(사40:6)
1) 모든 육체는 풀, 무너지는 날이 오게 됨 - 인간의 나약함과 무상함
2) 육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 - 복음
다. 세상적인 조건도 한계가 있음
1) 바벨탑, 강대국이 결국 다 무너짐 - 풀(세상적인 권세)과 같음
2) 왜 시들 수 밖에 없는가?(사40:7) - 하나님의 다스림이 세상 성공 위에 임하기 때문에 망하게 됨
라. 종교, 우상의 한계가 있음
1)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떠난 후 무화과나무로 몸을 가렸지만(종교), 하나님이 가죽옷을 지어 입히심(창3:21)
2) 가인과 아벨의 예배 - 아벨은 피의 제사를 드림
3) 니고데모 - 최고의 성공, 종교인(구원에 대해서 모름)
4) 복음은 구원으로부터 시작
2. 복음의 누림으로 하나님 나라의 완전함을 누려라
가. 복음 집중의 결과로 복음이 누려짐 - 하나님 나라의 완전함을 누림
1)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는 것이 쉬워짐, 부족함이 없음
2) 노아는 의인, 당대에 완전한 자(창6:9) - 하나님과 동행함(하나님 나라를 누림)
3)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부족함이 없음(시23:1) - 쫓겨 다니는 상황 속에 하나님 나라를 누림
4) 다니엘을 죽이려고 허물을 찾음 - 불신자 왕이 봤을 때 항상 하나님을 섬김
나. 복음을 누림 - 하나님의 말씀의 영원하심을 믿음
1) 복음을 집중 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짐(사40:8)
2) 말씀을 믿을수록 삶의 열매가 커지게 됨
3) 말씀을 믿을수록 말씀이 모든 것을 분석해 줌(히4:12)
4) 어둠의 역사가 물러가고(시139:12), 과거, 현재, 미래를 다 아시고 말씀을 주심(벧후3:8)
다. 복음의 말씀에 나를 맡겨라
1) 왜? - 하나님은 강한자이시고, 그의 팔로 다스려주심(사40:10)
2) 바울의 마지막 메시지(주와 그 말씀께 부탁 - 행20:32) - 말씀이 든든하게 세우심, 기업이 있게 하심
3) 말씀 붙잡는 것이 우리의 오늘과 미래 - 말씀을 성취 시키심
4)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완벽하게 보호, 인도, 지키심(사40:11) - 하나님의 손에 있기 때문에 승리(요10:28-29)

결론: 하나님 나라의 완전함을 누려야 합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의 길을 예비해야 합니다. 광야는 아무 것도 없는 현장입니다. 광야길을 걸어가는 인생 속에 하나님만 바라봐야 합니다. 이것이 최고의 축복입니다. 광야와 사막 같은 길을 걷는다면 하나님께 예배하고 집중하는 축복 누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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