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최상국 목사)
2019-01-2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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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7일 주일 2부 예배 최상국 목사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롬7:19~8:2)


롬7: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20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아멘.  롬7:19~8:2

■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의 박수를 올려드리겠습니다. 옆 사람과 인사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만민을 위하여 기를 드십시다. 아멘. 담임목사님께서는 지금 에디오피아 사역 중에 계십니다. 어제 문자가 왔는데요, 목사님 사역하고 있는 지역이 아와샤 지역에 쌰세마네에서 내일까지 사역을 하시고, 이름이 어렵습니다. 짐바와 아디사바바 사역 후에 귀국하신다고 하십니다. 정말 절대제자, 절대시스템을 찾고 세우고 돌아오는 그러한 사역이 될 수 있도록, 우리가 잘 알잖아요. 아프리카 환경이 얼마나 열악한지, 목사님 걸음 가운데 정말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보내셔서 또 주의 천군천사를 보내셔서 무사히 사역을 잘 마치고 돌아올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또 대만 단기 선교팀들이 사역 중에 있습니다. 대만의 귀중한 제자를 찾고, 세우고, 대만의 모든 우상의 문화를 무너뜨리는 그러한 역사가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주신 본문을 가지고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도록 합니다.
2019년도도 벌써 한 달이 다 지나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얼마나 성공된 한 해의 시작을 보내고 계십니까? 아마 많은 계획을 세우고, 또 많은 결단을 하고, 또 많은 다짐을 했었으리라 생각되어집니다. 그런데 이쯤 되면 이제 마음에 낙심과 절망도 좀 오지요. 계획대로 잘 안되어지고 또 작심삼일로 끝나버리는 그러한 일들이 있다 보니까 마음에 낙심도 되어집니다. 세상의 일도 우리의 마음대로 잘 되어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 내가 사는 삶인데도 불구하고 내 뜻대로 잘 되어지지 않지요. 하물며 신앙생활이 그렇게 녹록하겠습니까?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 것도 우리 안에
많은 갈등과 또 번민과 또 괴로움들이 따라오게 되어 있는 것이지요. 올 한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옛 틀을 깨어버리고 새 틀을 갖추라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옛 것을 버리고 새 것을 입는다 참 좋은데 뜻대로 잘 안되어지지요. 예전에 가지고 있던 우리의 틀, 예수 믿기 전에 우리 안에 있던 그러한 틀들을 다 내어버리고 이제 새로운 시작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고린도후서 5:17절 말씀에 우리가 예수 믿고 난 다음에 우리는 거듭나게 되어졌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저와 여러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새 삶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그에 맞는 삶이 따라와야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의 뜻대로 잘 되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주 안에서 산다는 삶은 어떤 삶입니까? 갈2:20절 말씀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 신분을 가지고 육체 안에 사는 것은 어떤 삶이냐?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
그게 우리가 살아야 될 삶입니다. 믿음 안에서 살고 계십니까? 24시 믿음 안에 거하십니까? 저는 그러지 못하는 것 같아요. 시시각각 제 안에 불신앙과 염려와 두려움이 저를 엄습하는 것을 느낍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엡4:22~24절에 우리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을 따라서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으신 새사람을 입으라 말씀합니다. 늘 우리의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그러한 삶을 우리는 살았지요. 그러한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우리의 심령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되어져서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새로운 삶, 이 삶을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되겠습니까? 알지만 잘 안되어지지요. 오늘 이 시간 짧은 시간이지만, 또 우리가 왜 안 되어지는지, 또 어떻게 하면 되어질 수 있는지 중요한 답을 알고 2019년 한 해 새로운 틀을, 하나님이 주실 그 응답의 자리로 들어가는 복된 은혜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사망의 몸 – 전적타락
첫 번째입니다. 우리가 왜 새로운 삶을 살지 못하느냐?
우리에게 아직 구습이 남아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전에 우리의 모습, 우리의 몸은 어떤 몸이냐? 사망의 몸인 것이지요.
전적타락한 우리의 의로는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칭함을 받을 수 없고, 우리의 힘으로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그러한 사망의 몸이 우리의 몸이었습니다.
롬3:10~12절 말씀에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말씀했습니다. 그리고 의인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이들이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깨닫는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들의 삶은 어떤 삶이냐? 다 치우쳐서 모든 것이 무익하고 이 땅의 부귀영화를 위해서, 자리와 명예를 위해서 열심히 살아가는데 다 썩어져 없어지는 무익한 것입니다.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우리의 의로는 절대 선을 행할 수도 없고, 하나님 앞에 의롭다 칭함을 받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롬3:23절 말씀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는 삶입니다. 우리의 의로는,,,그래서 롬3:20절 말씀에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율법의 행위로는 하나님 앞에 의롭다 칭함을 받을 육체가 없습니다. 우리의 힘과 우리의 노력으로는 안 된다라는 말이지요.
갈2:16절 말씀에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무익한 몸입니다. 사망의 몸입니다. 전적타락하고 전적 부패되어지고, 전적 무능력한 우리의 육신이라는 뜻이지요. 그래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 앞에 두려움 가운데 이렇게 말씀합니다.
시143:2절에“주의 종에게 심판을 행하지 마소서 주의 눈 앞에는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나이다 ”
하나님 앞에 의로운 인생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 심판 주 하나님이 우리를 심판하신다면 그 앞에서 나는 죄 없다라고 당당하게 고백할 사람들이 누가 있겠습니까? 전적 부패하고, 전적 무능력한 존재가 우리였습니다. 우리의 이전의 상태였지요. 이런 우리가 예수님을 마음속에 믿고 영접함으로 신분이 바뀌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지요. 하지만 신분은 한 순간에 바뀌지만 체질은 우리 안에 오래된 각인과 뿌리와 체질은 여전히 남아 있다라는 것입니다.

2. 내 지체 속에 있는 두 개의 법 – 계속되는 갈등
그래서 두 번째로 우리 지체 속에는 두 개의 법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과 죄의 법이지요. 이것이 우리 안에 계속 갈등을 가져 다 주는 것이지요. 우리 안에서의 갈등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 속에서도 이러한 갈등이 올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왜냐? 이 세상의 주관자가 바로 악의 세력인 마귀와 사탄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요.
요16:11절에 세상 임금이라고 표현하고 있고요, 고후4:4절에는 세상 신이라 표현합니다. 엡2:2절에는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르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그러한 삶, 그 삶 가운데 우리의 삶이 놓여 져 있는 것이지요. 우리 안에, 우리에게 아직 남아 있는 죄의 법, 법의 체질들, 그리고 밖에서는 우리를 유혹하고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사탄의 간계들, 그러다 보니까 우리 안에는 계속되어지는 갈등이 지속되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육신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언제나 육신의 정욕과의 싸움이고, 영적인 싸움이 우리에게 계속되어진다 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있는 이러한 갈등은 믿음이 적어서라기 보다 당연히 있는 것입니다. 물론 믿음이 있으면 쉽게 그것을 넘어설 수 있겠지요. 믿음이 있다고 이러한 갈등이 없느냐? 아닙니다. 우리는 육신을 가지고 있는 한
이 갈등은 계속되어지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이 갈등을 겪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말씀하고 있지요. 대 전도자 바울입니다. 바울이 이 로마서를 기록하던 당시는 언제냐? 예수 믿고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이 아닙니다. 바울이 이 고백을 한, 이 로마서를 기록한 시기는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바울이 이제 내가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말하고는 고린도를 거쳤다가 예루살렘으로 내려가게 되지요. 그때 고린도에서 썼는 편지가 바로 이 로마서입니다. 그렇다면 수십 년, 예수 믿고 수십년이 지난 시간에, 이 바울이 1차, 2차, 3차 전도여행을 성공적으로 마친 이후에 바울이 한 고백입니다. 뭐라고 이야기합니까? 롬7:19절에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대 전도자 바울이 하는 고백입니다. 이 바울도 늘 이 싸움이 계속 되어지는 것입니다. 마음으로는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선을 행하기를 원하는데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이 악을 행하며 내가 살아가는 구나.
롬7:21절 말씀에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그렇게 선을 행하고 싶은데 내게 여전히 악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라는 것.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지만 23절에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우리 안에 이러한 갈등이 여전히 있지요. 사도바울이 이 고백을 하면서 롬7:24절에 이렇게 외칩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날마다 우리가 고백되어지는 고백이지요. 우리가 죄 앞에서, 또 우리의 실수와 우리 인간의, 또 내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함 앞에서 우리는 날마다 쓰러지고, 낙심하고, 좌절하게 됩니다. 그게 당연한 겁니다. 그것은 당연한 거예요. 육신을 가지고 있는 한, 육신의 한계 속에 우리는 이 삶을 살 수 밖에 없어요. 어찌 보면 하나님이 그 상태를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요 날마다 고백해야 되어요.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바울만 그러했습니까? 예수님도 문제와 고통과 또 두려움 앞에서 예수님도 갈등하셨음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이 기도하시면서 내일 십자가를 져야 될 그 죽음 앞에서 예수님이 두려워하시는데 누가복음에 보니까 그 눈물이 핏방울이 되어졌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만큼 간절하게, 그만큼 마음을 담아서 예수님이 기도하시는데 뭐라고 이야기 합니까? ‘아버지 하실 수 있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예수님도 두려움 앞에서 이러한 갈등을 겪으셨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이 그러했습니다. 엘리야,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들과의 대결에서 승리하고 그들을 다 죽이고 승리했잖아요. 그런데 그 이세벨의 죽음의 위협 가운데 이 엘리야가 완전히 마음이 녹았습니다. 그래서 뭐라고 이야기합니까? 과연 이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이 맞나 라고 생각되어질 그러한 고백을 하지요. ‘주여 나만 홀로 남았거늘 이 생명을 거두어가 주옵소서’ 그만큼 이 승리 후에, 응답 후에 오는 갈등은 크다 라는 겁니다. 우리 안에 찾아오는 이러한 갈등들, 우리 안에 한없이 우리가 부족하고 연약해서 쓰러지고 넘어지고, 정말 절망 가운데 있을 수밖에 없는 그 상태, 그 상태 속에서 우리가 해야 될 고백입니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랴”

3.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세 번째입니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전적 타락한 인생,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생, 우리의 의로는 하나님 앞에 의롭다 칭함을 받을 수 없는 완전 무능력한 상태, 그 상태에 있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찾아오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에 대한 모든 죄에 대한 저주와 재앙을 완전히 해결하셨습니다. 죄 아래 살면서 당하는 모든 저주와 재앙의 문제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죄의 대가를 다 지불하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자유함을 얻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밖의 외적인 환경에서 또 우리 안에서 공격하는 이 사탄, 이 악한 사탄의 권세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 사탄의 권세,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를 완전히 멸하신 것이지요. 그리고 이 주님은 승천하셔서 하늘나라로 가시면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 영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보혜사 성령이지요. 하나님이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어 주셨습니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를 번역한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겠다 하심이라”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비밀, 임마누엘의 비밀, 그 임마누엘이 성립되어지기 위해서는 영이신 하나님이 우리 안에 오셔야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늘나라로 가시고 우리에게 보혜사 성령을 보내어 주신 것입니다.
참 제사장, 참 왕, 참 선지자 되시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는 전적 무능한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 앞에 의롭다 칭함을 받을 수 없는 우리의 인생이,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아 의롭다 칭함을 받게 되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진 것이지요. 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옮겨졌습니다. 우리에게 적용되어지는 법이 바뀌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한국 시민으로 있다가 미국시민권을 얻으면 미국의 법의 지배를 받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가 죄의 권세아래, 사탄의 권세아래 마귀자녀로 살던 우리의 인생이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 하나님의 자녀로, 저 마귀 사탄의 왕국에 있던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신분이 바뀌어진 것입니다.
마귀의 자녀로 있을 때는 죄와 사망의 법의 지배를 받았다면 이제는 생명의 성령의 법의 지배를 받게 되어진 것이지요. 이게 놀랍습니다. 같은 일, 같은 문제를 당하더라도 법의 적용이 달라지니까 결과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우리는 연약합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것이 너무나 적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러 가지 문제와 사건 앞에서 우리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고, 우리는 좌절하고, 낙심하고 절망가운데 처해지게 되지요. 그런데 이 절망 가운데 있는 자가 죄와 사망의 범 아래에 있다면 죽음이 그 인생을 장악하게 됩니다. 그런데 아무리 절망 가운데 있더라도 생명의 성령의 법 아래에 있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생명의 성령의 법의 지배를 받는 그러한 신분으로 바뀌어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우리의 삶을 나 자신의 힘과 능력과 내 의를 주장하고 그것을 의지하고 살아가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이제는 하나님의 성령을 의지하고 살아가야 됩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최고의 기도가 있다면 바로 성령충만입니다. 왜냐?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도 성령을 의지해서 사셨습니다. 인간으로 오셨기 때문에, 하나님이시지만, 인간으로서 사시는 동안에 예수님은 철저하게 성령의 후원 속에 산 그러한 인생이었습니다.
성령으로 잉태되셨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공생애를 처음 시작하시는 그 시간표에 마태복음3장에 예수님이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게 되지요.
그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그 장면을 마3:16절에 이렇게 표현합니다.“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렸다. 성령충만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예수님도 그 그리스도의 사역을 감당 하기 앞서서 성령충만을 받으시고 예수님은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모든 인간은 똑 같아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뭐냐?
성령충만입니다. 그리고 그 사역을 함에 있어서 자기의 계획과 자기의 생각대로 움직였느냐 아닙니다. 철저하게 성령인도 받으셨습니다.
마4:1절에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성령에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가셨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3년의 사역은 예수님의 계산과 생각 따라 행한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성령의 인도받는 그러한 사역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다니시면서 일으키신 모든 역사는 성령의 역사였습니다. 귀신을 내어 쫓는 것도 마찬가지였지요. 마12:28절에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 예수님도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귀신을 내어 쫓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전도사역은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0:20을 봅시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0장에서 제자들을 둘씩 짝지어서 현장으로 보내십니다. 그러면서 제자들은 가서 무슨 말을 할까, 혹 우리가 잡히면 핍박 가운데서, 박해 가운데서 뭐라 말할까. 두려움에 떠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0:20에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복음 증거, 전도는 성령의 감동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 귀한 공생애 사역을 감당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더할 나위가 없습니다. 우리도 이 성령의 충만함으로 이 사역을 감당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전도자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통해서 237개 나라를 살릴 선교사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이 모든 사역을 감당함에 있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령 충만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방법, 예수님이 남기신 마지막 방법, 그것은 성령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전날 밤에 제자들에게 집중해서 가르친 것도 성령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4:16~17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16:7에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보혜사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게 우리에게는 더 유익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영이 개개인 속에 들어오는 것이 더 유익입니다. 성령의 내주, 성령의 충만, 성령의 인도, 성령의 역사, 그것이 우리에게는 최고의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그게 우리의 능력입니다. 오늘 우리 찬양대 찬양처럼 성령이 우리에게 임함으로 우리에게 권능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대사로서 복음 증거해야 할 전도자인 저와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성령충만입니다. 때로는 우리에게 갈등과, 또 두려움 앞에서 마음이 무너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은 성령 충만입니다. 우리가 구하게 될 때 하나님의 성령은 우리를 반드시 도우신다 약속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26에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우리가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게 될 때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를 도우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로마서 8장에는 7장에서 바울이 이 고백을 하고 8장에 넘어가서 바울이 8장을 기록하는데 이 8장에 성령이라는 단어가, 또 하나님의 영, 이런 단어가 스무 번 이상 나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답이 없는 인생이구나, 내가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나, 내가 여기서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나, 바울이 그렇게 외치면서 우리에게 내가 이런 갈등 속에 있다, 그런 말을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 갈등 속에도 답이 있다, 그러면서 바울이 이야기하는 것이 성령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8:16에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많은 부분 속는 게 뭐냐 하니 내 모습, 내가 어떻게 되어간 것들, 내가 받는 응답들, 내가 하고 있는 사역들을 가지고, 또 내가 하고 있는 그러한 행위들을 가지고, 종교 행위를 가지고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거를 찾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자신이 무너졌을 때는 어떻습니까?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는 어찌합니까? 내가 나도 모르게, 내 마음은 선을 행하고자 하지만 나도 모르게 악을 행하고 쓰러져 있을 때는 어떡합니까? 그때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때에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를 도우시는 것입니다. 그가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서, 우리의 영은 의롭다 할 수 없고 우리의 영은 완전히 절망 가운데 있고 죄악 가운데 있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할 수 없는 그러한 상태 속에 있는 우리의 영과 더불어서 성령께서 친히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성령충만을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8:26~27절에 우리가 너무 중한 일을 겪게 되고 또 너무나 중한 고통 가운데 처하게 될 때는 기도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때에 8:26~27에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완전히 마음이 무너진 그때, 정말 기도조차 나올 수 없는 절망 가운데 있을 그때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대신, 성령께서 우리를 위하여 대신 간구하십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조그만 환경의 변화 앞에서도 굴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작은 문제 앞에서도 우리는 두려워 떨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마음에 찾아오는 두려움 우리 마음에 찾아오는 절망 이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승리 할 수 있겠습니까? 에베소서 3장 16절에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우리의 속사람이 강건케 되어지는 비밀 그것은 성령충만인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최고의 기도제목은 성령충만인 것이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사도행전 1장 4절에서 5절에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약속 성령 충만 이것을 두고 우리는 간절히 기도해야 됩니다. 누가복음 11장 9절에서 13절 말씀 보면 은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이 말씀 가지고 우리가 얼마나 나무뿌리 많이 뽑았습니까 이 말씀 가지고 하나님 내가 응답 안주면 죽겠노라 하면서 얼마나 많이 금식하셨습니까 근데 성경을 읽어보면 은 우리가 무엇이든지 네 마음에 원하는 대로 네 마음에 욕심을 동기를 구하면 응답 하신다 그 의미가 아니에요 11장 11절부터 13절 말씀에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구하라 주실 것이고 찾으라 찾아낼 것이고 두드리라 열릴 것이라는 말은 성령을 주시겠다란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기도제목은 성령충만이어야해요 아침에 눈을 뜨면 하나님 오늘 이 한날도 성령의 충만함을 주옵시사 가는 모든 현장 속에 오력으로 현장 살리는 증인되게 하옵소서. 그게 우리의 기도제목이어야 됩니다. 올 한해 옛 틀을 깨뜨리고 새 틀을 갖추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내 뜻대로 잘 안되어지죠.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우리의 마음은 녹아버립니다. 조금만 문제가 생겨도 절망가운데 빠져버립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령의 능력으로 되어질 수 있습니다. 오늘 바울이 했던 이 고백 이 고백을 여러분 절망 앞에서 계속 하시길 바랍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이것은 절망 앞에서 한탄하는 고백이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고 이 고백은 능력을 주는 고백인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무너졌을 때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생각 되어질 그때에 일어설 힘조차 없을 그때에 진짜 내가 아무것도 할수 없기 때문에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이 고백을 하는데 세상 사람들은 그걸로 끝이지만 우리는 그 고백과 동시에 25절에 고백이 나오는 거예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생명의 성령의 법을 주신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그 하나님이 오늘 내 마음속에 주인으로 들어와 계십니다. 성령의 충만함 절망의 순간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그때에 또 다시 범죄 함으로 내 마음이 하나님 앞에 부끄러워서 나아갈 수 없는 그 상태가 왔다 할지라도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이것을 외칠 때에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감사하고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케 되어지는 그 은혜가 임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정말 이 믿음의 고백이 되어지게 될 때 그 시간은 우리에게 엘리야가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나 엘리사를 세우고 왕을 세웠던 로뎀 나무 아래 그 시간이 될 것입니다. 또 우리가 이 고백하는 시간이 언제냐 야곱이 쫓겨서 도망가면서 아버지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있고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은 있는데 내 하나님은 어디에 있는가 불안과 두려움 가운데 있을 그때에 벧엘에 하나님을 만났던 것처럼 절망가운데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그 고백할 때에 하나님은 비로소 우리에게 능력을 우리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날마다 나의 무능과 한계와 절망 속에서 그리스도 성령의 충만함을 구하고 성령의 지배하심과 성령의 인도함 속에 정말 되어지는 복된 인생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9년 1월 27일 주일 2부 예배 최상국 목사
이 사망의 법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롬7:19-8:2)

서론: 예수를 믿는 순간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게 됩니다(고후5:17). 그렇다면 새로운 삶이 시작 되어야 합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된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갈2:20). 그리고 옛 것을 벗어 버리고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엡4:22-24).
1. 사망의 몸 - 전적타락
가. 세상에 의인은 하나도 없음(롬3:10-12)
1)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인생을 살아감
2) 하나님을 찾는 자가 없고, 자기의 마음, 생각대로 살아감
3)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 함(롬3:23)
나.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하나님을 만날 수 없음
1)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음(롬3:20, 갈2:16)
2) 하나님의 눈 앞에서는 의로운 인생이 없음(시143:2)
2. 내 지체 속에 있는 두 개의 법 – 계속 되는 갈등
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오래 된 각인, 뿌리, 체질은 남아 있음
1)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갈등을 가져다 줄 수 밖에 없음
2) 세상의 신이 사단(요16:11, 고후4:4, 엡2:2)
나. 육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날마다 갈등 할 수 밖에 없음 – 바울의 고백
1) 선을 행하지 않고 원하지 않는 악을 행함(롬7:19), 악이 함께 있음(롬7:21)
2) 나의 자랑은 날마다 죽음(고전15:31)
다. 하나님 앞에 서는 그 날까지 영적싸움을 싸워야 함
3.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가. 하나님을 만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를 찾아 오심
1)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
2) 성령으로 우리 안에 오셔서 인도, 마음과 생각을 지키심
3)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체질은 남아 있지만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롬8:2)
나. 우리의 기도 – 성령의 법 안에서 살 수 있도록(성령충만)
1) 예수님도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한 삶을 살아감(마3:16)
2) 성령의 인도 받는 발걸음(마4:1)
3) 성령의 역사하심을 구함(마12:28)
4) 전도, 선교를 위해 성령을 구함(마10:20)
5)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부탁하신 것도 성령(요14:16, 요14:26, 요16:7, 요20:22, 마28:19)
다. 그리스도의 대사로 부르심 –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
1) 성령으로 늘 함께 하심(요14:26)
2)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언(롬8:16)
3)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롬8:26-27)
4) 속사람이 강건하게 되는 비밀도 성령 속에 있음(엡3:16)

결론: 우리에게 최고의 기도제목은 성령충만입니다. 성령충만을 받을 때 땅 끝까지 증인이 되어집니다(행1:8).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은 성령입니다(눅11:9-13). 옛 틀을 깨고 새 틀을 갖춰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야 합니다. 그래서 약속 된 성령의 충만함을 구해야 합니다. 낙심 되는 일 앞에서 고백(사망의 법에서 누가 건져내랴?) 하시길 바랍니다. 사망의 법에서 건져 낼 이름을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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