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와 서밋의 응답
2018-04-29 00:00:00
관리자
조회수 59
유튜브 저화질 다운 MP3 녹취 요약 |
4월 29일 주일 2부 예배 김철연 선교사
“치유와 서밋의 응답”
(마16:16~20)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20 이에 제자들에게 경고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
마16:16~20
■ 담임목사님께서는 파나마에서 사역을 하시고 오늘 이동을 하셔서 페루에서 5월2일까지 또 사역을 하시게 됩니다. 5월 2일 이후에 칠레로 건너가셔서 사역을 인도받으십니다. 목사님 사역을 위해서 계속적으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목사님은 선교하러 가셨고, 오늘 이 시간에는 너무 귀하신 선교사님을 모셨습니다. RU학장으로 계시는 김철연 선교사님 나오셔서 오늘 이 시간 주신 본문 가지고 “치유와 서밋의 응답”이라는 제목으로 말씀 주실 때에 큰 은혜 누리시기 바랍니다. 박수로 환영하겠습니다.
지난 4월16일 저희 어머님이 91세로 하나님의 품으로 가셨습니다. 어머니는 마음의 고향이라는 말을 비로소 가슴으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외국에 산지가 거의 40년이 되어 가는데 어머니는 마음의 고향일 뿐만 아니라, 어머니는 마음의 조국이다. 어머니가 계시니까 한국에 더 오고 싶고, 어머니가 안 계시면 한국에 오고 싶을지...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지금 여기 어머님이 살아계시고 아버님이 살아계시는 여러 성도님들, 떠나가신 뒤에 느끼면 무엇 합니까? 살아계실 때 아! 어머니가 마음의 고향, 그렇게 소중한 분이구나, 아버지, 살아있는 내 조국이구나. 살아있는 어머니 아버지께 잘 하는 것, 하나님이 기뻐하신다고 성경에 말씀하십니다. 특별히 하나교회 담임목사님과 여러 부교역자들과 장로님들, 이번에 저희 어머님의 장례식에 참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고, 또 사랑을 베풀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담임 목사님, 신목사님께서 광고하신 대로 남미 여러 나라를 순회하시는데 귀한 발걸음이 될 줄로 믿습니다. 제가 남미에서 10년 가까이 여러 나라를 다녀봤기 때문에 남미는 황금어장이고, 남미는 정말 할 일이 많은 곳입니다. 담임목사님 다녀오시면 많은 간증이 있을 줄로 압니다. 특별히 파나마에서 박요한 전도사님이 와서 하나교회에서 지금 사역을 하고 있고, 또 올 2월에 멕시코에서 우발도라는 청년이 왔는데 하나교회에서 이렇게 남미 살릴 귀한 일꾼들을 키우시고 도와주시니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오늘 이 본문 말씀은 우리가 처음부터 지금까지 수십년동안 이 말씀을 본문처럼 늘 들어온 말씀인데 제가 오늘 또 이 말씀을 선택한 이유는 과연 우리는 이 본문의 내용을 얼마나 과연 깊이 이해하고 있는가 한번 좀 같이 점검을 해 봤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으로 오늘 이 말씀을 보았습니다. 우리 전도자의 삶의 과정이 있는데 그 첫 번째 과정은 치유의 과정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상처를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왜? 우리 안에 죄의 속성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죄의 속성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자체가 이미 상처를 가지고 울면서 태어나더라고요. 점점점점 그 상처가 증가되는데 전도자가 전도자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있어야 될 과정은 치유의 과정이있어야 됩니다. 이 치유가 되는 만큼 응답이 오고 응답을 받는 만큼 서밋의 위치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서밋이 되어야지, 많은 사람들이 혹시, 여기 오늘 보니까 어린 렘런트들이 여기 참석했는데 아! 나는 앞으로 영적 서밋이 되어야 되겠다 그런 생각을 가지겠지요. 내가 영적 서밋이 되어야 되겠다고 결심한다고 되어지고 결심 안한다고 안 되어지는 것이 아니고 영적 서밋은 우리 성경의 7렘런트들을 보니까 그들은 그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서밋의 응답을 받았어요. 그 이유는 계속해서 응답을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응답을 받았기 때문에 응답이 계속적으로 오면 모든 사람들에게 있는 위치에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됩니다. 그 사람이 바로 서밋인 거예요. 여기 우리 중학생들 이상은 영어공부를 하니까 서밋이 무슨 의미인줄 알지요? 서밋이 무엇입니까? 쉽게 말해서 정상, 산으로 말하자면 산 중턱이 아니고 산 위, 정상, 그것이 서밋이잖아요. 그러면 우리가 공부를 잘 해서 서울대학을 나와서 지식적으로 우리 위치가 서밋에 올라간다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성경의 7렘런트들은 명문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아니잖아요. 합숙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그들이 어떻게 서밋이 되었을까요? 그들은 어느 위치에 있든지 간에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응답을 받았어요. 그러니까 어떤 위치에 있든지 많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끼친 사람들입니다. 그사람들을 서밋이라고 하는 겁니다. 우리가 목표를 세운다고 서밋에 이르는 것이 아니예요. 응답을 받으면 서밋의 위치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은 우리가 늘 외우던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누가 고백을 했지요? 베드로가 했지요. 베드로는 정말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서 정말 귀하게 쓰임 받은 제자입니다. 우리 베드로를 한 번 따져 볼까요? 공부 좀 했을까요? 못했지요. 초등학교 나왔을까요? 못했을거예요. 그러면 베드로가 인품이 아주 훌륭한 분일까요? 그렇지 못하지요. 베드로는 다듬어진 인품의 소유자가 결코 아닙니다. 그는 터프가이, 그는 터프한 어부였어요. 굉장히 터프한 어부였어요. 성격도 아주 과격한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귀한 인물로 쓰임 받았을까요? 여기서 오늘 본문 말씀에서 답을 찾으면 우리에게도 답이 될 것입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다는 고백을 했을 때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보면 압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고백 했을 때에 17절에 예수님께서 대답하여 바욘아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첫째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이것을 네게 알게 하신 이는 혈육이 아니요 지식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네 아버지시니라. 지식으로 깨달아지는게 아니예요.
여러분들이 혹시 지금까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다라는 사실을 지식으로 깨달았습니까? 그러면 아직까지 제대로 깨달은 것 아닐거예요. 성령님을 통해서 그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하실 때에 우리가 깨달아지는 거예요. 그 다음에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셨지요? 18절에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여기에 중요한 키가 있어요. 우리를 무너지게 한 자가 누구이지요? 사탄이지요. 음부의 권세예요. 음부의 세력이예요. 우리 부모님을 괴롭히는 자가 누구이지요? 우리 민족을 괴롭히는 자가 누구이지요? 교회를 어지럽히는 자가 누구이지요? 부부사이를 힘들게 하는 자가 누구이지요? 우리는 다 성격이 안 맞아서 그럽니다. 아 성격 안 맞는 것도 사실이예요. 성격 안 맞는 것을 틈타서 갈라놓는 게 누구이지요? 갈라지려고 만났습니까? 그거 아니잖아요. 누가 이 짓을 하지요. 성경에 보니까 음부의 세력, 아담 때부터 지금까지 인간을 무너지게 하고, 인간을 실패케 하고, 인간을 슬프게 하고, 인간을 괴롭히고, 인간을 처절하게 만들고, 가정을 쑥대밭이 되게 하고 이것을 누가 하는 짓이지요. 사탄이요 음부의 세력이예요. 그런데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이 고백이 있을 때에만 음부의 세력이 너를 이기지 못한다. 음부의 세력이 이겨버리면 쑥대밭이 되어요. 시끄러워져요. 복잡해져요, 이간이 벌어져요. 갈등이 생겨요. 가정에 갈등이 와요. 그런데 이 모든 눈에 안 보이지만 인간을 무너지게 하는 것은 음부의 세력인데 오늘 성경 말씀에 보니까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한다. 다른 말로 하면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이 고백을 할 때에 음부의 세력을 이기는 어떤 권세가 내게 임하는 거예요. 능력이 임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거예요. 빛이 임하는 거예요. 어두움의 세력이, 음부의 세력이 같이 공존할 수 없는 거예요. 떠나는 겁니다. 거기에 놀라운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는데 내 인간의 영적문제, 근본 문제가 치유되는 거예요. 뿌리가 치유되어야 해요. 내 병의 근본이 치유가 되어야 시간이 지날수록 병줄기가 없어지는 거예요. 우리 가정을 괴롭히는 그 뿌리가 없어져야 되는 거예요. 그것이 무엇입니까? 음부의 세력이예요. 우리의 인격으로,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지요.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고백이 얼마나 위대한 고백인가를 우리가 이해하고 신앙생활 하는 것과, 이해를 잘 못하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 차이가 있어요.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이 고백 했을 때에 다듬어지지 못한 인품의 베드로, 학벌이 없는 베드로, 터프가이 같은 베드로 귀하게 쓰임 받았어요. 여기에 놀라운 치유가 일어나는데 근본치유가 되니까 그 다음부터 다른 놀라운 치유들이 일어납니다. 어떤 치유가 일어납니까? 상한 감정이 치유가 되고, 여러 가지 치유들이 일어나요. 근본 문제가 해결되니까 ... 우리에게 속여서 왕 노릇하는 가짜 왕 노릇하는 음부의 권세가 이제 나를 떠나고, 우리 가정을 떠나고,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이 권세를 사용해요. 우리가 처음에는 충격적으로 신분 권세를 받아들였는데 몇 십년이 지났어요. 여러분 혹시 지금도 권세를 잘 사용하시나요? 혹시 영적전투를 지금도 잘 하고 계시나요? 여러분 올해 하나교회 표어가 무엇이지요? “예수를 바라보자” 날마다 순간마다 예수님 바라보아지십니까? 예수를 바라본다고 하는 것은 놀라운 의미가 있어요.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 놀라운 의미가 있어요. 의미를 아는 사람은 바라보게 되어요. 의미를 모르는 사람은 입으로 외우는데 바라보게는 안 되어요. 삶 속에서 예수님를 바라보는 사람은 의미를 아는 사람이예요. 의미를 모르면 바라보게 안 되어요. 여기에 놀라운 의미가 이 안에 있는 거예요. “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했어요. 여러분 복음 때문에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습니까? 여러분 복음의 유익을 위해서 자존심 개의치 않습니까? 복음을 위해서 나 희생 하는 것 별 문제 안 됩니까? 우리가 의미를 알면 실제로 우리의 삶 속에서 그것이 적용이 되는 겁니다. 우리가 수십년 동안 언약을 들어왔습니다. 여러분 언약을 얼마나 이해를 하십니까? 언약은 하나님의 약속이잖아요. 말씀으로 약속하신 거지요. 언약이잖아요. 여러분 성경책을 읽을 때 구구절절이 하나님의 약속으로 받습니까? 그냥 읽습니까? 이것은 우리를 향한 약속이예요. 구약도 약속이고 신약도 약속입니다. 여러분 신실한 친구의 약속을 신뢰합니까 안합니까? 하지요. 그 친구를 믿기 때문에 그 친구의 약속을 철저하게 믿습니다.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이 성경이예요. 여러분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약속으로 받습니까?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면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고 말씀했어요.
여러분 정말 그 약속을 약속으로 믿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기쁨으로 온전히 십일조를 하십니까? 약속이잖아요. 하나님이 우리 약속을 지킬 수 있는 분일까요? 당연히 지키지요. 100%지키지요. 아니 200%라도 지키지요. 그것을 우리는 알아요. 지식적으로도 압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성경 말씀을 읽을 때마다 하나님이 내게 약속하신 약속인데 100%, 200% 지킬 수 있는 또 내게 이루어지는 약속으로 받습니까? 언약이라고 하는 것은 놀라운 것입니다. 그런데 그 놀라운 것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놀라운 응답으로, 어떤 사람들에게는 일생동안 놀라운 응답으로 체험되어 지잖아요. 왜 그렇습니까? 내가 안 믿어요. 내가 약속으로 안 받아요. 그 차이인 거예요. 어떤 사람들에겐 놀라운 간증들이 있어요.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약속으로 받으니까 놀라운 응답들이 오지요. 어떤 사람들은 성경을 잘 알아요. 그런데 놀라우신 하나님에 대한, 어메이징 그레이스,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에 대한 간증이 없어요. 왜 그럴까요? 내게 체험이 없으니까요... 왜 어떤 사람들은 똑 같은 하나님에 대한 체험이 있는데 어떤 사람들은 왜 없을까요? 어떤 사람들에게는 감격이 있고 왜 어떤 사람들에게는 감격이 없을까요?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다른 분인가요? 무슨 차이일까요? 하나님에 대한 나의 믿음입니다. 내가 내 아버지에 대한 믿음, 내가 내 어머니에 대한 믿음이 있고, 내가 내 친구에 대한 믿음이 있듯이 내가 믿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차이가 있는 거예요. 약속으로 받느냐, 위대한 하나님에 대한 모든 말씀을 내가 주님께서 우리 집에 오시지 않으셔도 내 하인이 나을 줄로 믿습니다. 백부장의 고백이었어요. 나중에 백부장 밑에 있는 종들이 달려왔어요. 살아 났나이다. 몇 시쯤 살아났느냐 어제 예수님께서 나았다고 말씀하신 그 순간 그 시간과 맞는 시간이예요. 그는 믿었어요. 우리 집에 오실 필요가 없어요. 말씀만 해도 우리 아이가 살아 날 줄로 믿었어요. 나는 과연 그 하나님을 100%, 200% 믿고 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때에 나에게 약속하신 약속으로 받느냐 그것이 언약에 대한 이해입니다. 언약에 대한 신앙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직접 약속을 들었어요. 그런데 그것을 믿지를 못했어요. 그러니깐 안 믿으면 어쩔 수 없이 갈등이 옵니다. 어쩔 수 없이 불신앙하게 됩니다. 어쩔 수 없이 인본주의를 동원해서 하갈을 통해서 이스마엘이라도 얻어서 후손을 이으려고 했습니다. 오늘 제가 어린 렘런트들이 여기 앞에 앉아 있으니까 아! 우리 2부 예배에 렘런트들도 같이 예배를 드리는구나. 아! 이시간이 굉장히 중요한 시간이구나 제가 생각을 했어요. 오늘 렘런트들 김철연 선교사가 말씀 전하는 것, 이해가 되십니까? 잘 들립니까? 너무 고마워요. 맨 앞줄에 앉은 렘런트가 그렇다는 거예요. 예스, 예스...얼마나 고마워요. 반응을 해 주니까.... 우리 미국이나 외국에 가 보면 말을 해 보면 그 사람들은 문화 자체가 반응을 잘 해요. 그런데 우리 한국은 문화 자체가 잘 반응을 안 해요. 그렇게 듣는지 안 듣는지 상당히 궁금해요. 아멘으로 반응하든지 아니면 고개를 끄덕이면서 반응을 하든지, 반응을 잘 하는 건 굉장히 좋은 문화입니다. 그런데 오늘 고맙게도 3번 줄에 앉아 있는, 맨 가운데 앉아 있는 렘넌트가 계속 반응을 해주었습니다. Thank you so much. 지금도 무어라고 해 주었습니다, 나는 못 들었지만. 얼마나 고맙습니까? 그런데 아브라함이 언제 언약을 이해했습니까? 이삭이 태어난 후. 이삭의 어머니 사라, 임신할 수 있는 몸입니까, 아닙니까? 임신할 수 없는 몸, 생리가 없어졌습니다. 임신이 안 되는 몸입니다. 그런데 태어났습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이제 언약이 무엇인지를 이해했습니다. 자기는 과학적으로 생리적으로, 과학적으로 상식적으로 안 되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언약은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왜? 이미 상식적으로 안 되는 몸입니다. 보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우리가 100% 믿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상식적으로 우리 가정에 이런이런 일은 일어날 수 없어, 하면 어떻게 됩니까? 언약이 나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게 우리의 수준이라니까요. 그럼 언약을 이해한 것일까요? 언약을 이해 못한 것입니다. 충분히 이해 못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제 상식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언약, 하나님은 상식을 무시하는 분이 아니라 상식을 초월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과학을 무시하는 분이 아니라 과학을 초월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는 일에 어떤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 비로소 알았습니다. 우리는 문제라 생각하면 믿는다 하고도 안 믿지 않습니까? 왜? 벌써 안 돼, 환경적으로 이것은 이루어질 수 없어, 이건 상식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어. 그러니까 언약은 언약이고 나는 안 믿어. 그러면 언약은 어디 간 겁니까? 아브라함이 비로소 언약을 이해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다음에 그 아들, 언약의 성취로 이제 이삭이 났는데, 낳을 수 없는, 죽은 몸과 같은 여인에게서 아기가 났는데 그걸 또 죽이라고 합니다. 모리아 산에 가서 제물로 드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흔들렸을까요? 갈등했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죽여도 살릴 줄로 믿는다고 했습니다. 히브리서에 보면. 그게 이제 언약이 이해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언약이라는 것을 수십 년간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언약을 정말 이해했는가는 각자가 다 다른 것입니다. 언약이 이해되면 불신앙이 내게 있을 수가 없습니다. 약속대로 될 거니까. 내 능력대로 됩니까? 많은 사람들은 내 능력대로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 언약은 어디 갔습니까? 언약은 내 능력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언약대로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 때문에 하나님이 약속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안 믿었습니다. 그러면 언약이 이해되었다고 하는 것은 놀라운 것입니다. 보십시오. 가나안 땅을 정탐하러 열두 명이 갔는데 언약을 이해하지 못했던 열 정탐꾼의 보고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완전히 멸망했습니다. 불신앙에 빠졌습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열 정탐꾼인데. 그런데 언약을 이해했던 여호수아와 갈렙은 전혀 다른 보고를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언약을 이해하고 언약이 사실이라고 보고했던 여호수아와 갈렙으로 하여금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가나안 땅의 주인공이 되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오늘도 우리가 정말 이 언약에 대한 이해가 되면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신 다음에 첫 번째로 주신 메시지가 창세기 1장 27절, 28절입니다. 무슨 말씀이지요?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 그리고 만물을 다스리고 정복하라. 하나님이 첫 번째 주신 메시지입니다. 왜?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녀들이 이 땅을 정복하지 않으면 또 누가 정복할까요? 마귀가 또 정복한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첫 번째 주신 메시지가 하나님의 피조물인, 하나님의 창조물인, 하나님과 동일한 인격적인 존재로 만든 아담과 하와와 그 후손들이 이 땅에 번성하고 충만해서 이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가 다스림 받는 게 하나님의 뜻일까요, 다스리는 게 하나님의 뜻일까요? 우리가 세상에 정복을 당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요, 우리가 세상을 정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요? 우리는 육신적인 개념으로의 정복이 아니라 하나님은 마귀의 세력들이 손대기 전에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왜? 그곳이 곧 하나님의 나라이니까요. 언약이 이해 된 요셉, 엄청난 상처, 어릴 때부터 상처가 있었지만 상처 치유 받았을까요, 못 받았을까요? 치유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여기에 보냈다는데 형님들 두려워하지 마소서. 나를 죽이려고 했지만 형님들 두려워하지 마소서. 이곳에 보낸 자는 형님들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보내셨다고 했습니다. 언약을 이해한 사람은 치유 받습니다. 상한 감정 남아있지 않습니다. 치유 받습니다. 언약을 이해한 사람은 전인 치유, 정서가 치유되고 삶이 치유됩니다. 다윗을 죽이려고 했던 두 대표적인 사람, 사울 왕, 아들 압살롬. 그들이 죽었을 때에 일반인들 같으면 그 미친 영감 잘 죽었다, 그놈의, 뭐라고 해야 합니까, 그 아들, 쿠데타 일으켰던, 잘 죽었다고 생각해야 정상이지 않습니까? 어떻게 했지요? 다윗은 자기를 죽이려고 쏘다니던 사울 왕이 죽었을 때에 슬퍼 울었습니다. 자기 아들을 잡으러 장군들이 나갈 때에 죽이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얼마나 울었습니까? 얼마나 슬퍼했습니까? 치유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가 정말 언약을 이해하면 치유를 받습니다. 원수, 크게 문제 안 됩니다. 나를 죽이려고 했던 사람들까지, 그들의 죽음에 대해서 슬퍼하는데 무엇이 문제 되겠습니까? 내 뒤에서 나를 좀 씹는다고요? 나를 좀 비방한다고요? 그것 때문에 내가 밤잠을 못 자야 합니까? 밤잠을 편히 자야 합니다.
여러분, 정말 이 복음을 들은 사람, 복음을 이해한 사람은 치유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정말 언약이 이해 된 사람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셨다, 하나님이 하셨다, 하나님이 하셨다, 하나님이 하셨다. 무슨 이유가 있습니까, 하나님이 허락하셨다는데? 내게 고난? 하나님이 허락하셨다. 내게 아픔? 하나님이 허락하셨다. 우리 가정의 갈등? 하나님이 허락하셨다. 하나님이 허락하셨다면 나쁜 이유일까요, 좋은 이유일까요? 100% 좋은 이유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갈등 때문에 고민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이유를 물어야 할까요? 당연히 하나님의 이유를 물어야 합니다. 계속 갈등할 것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이유를 묻겠습니까? 계속 고민할 것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이유를 물을 것입니까? 하나님의 이유를 물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셨는데. 하나님, 왜 내게 이 고난이 계속 있어야 합니까? 하나님, 왜 이 아픔이 내게 계속 있어야 합니까? 하나님, 우리 가정에 왜 이 갈등이 계속 있어야 합니까?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물어봐야 할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허락하셨는데. 그 사람이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이해한 신앙인입니다. 그러면 곧 답을 얻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문제를 다루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다루신다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내게 신앙의 성숙을 위해서, 내게 영적인 성숙을 주시기 위해서 훈련하시는구나, 나를 다루시는구나, 하나님이 나를 다루시는구나. 왜 문제에 포커스를 둡니까? 초점을 둡니까? 하나님 앞에 그 이유에 초점을 두어야 합니다. 그 사람은 계속해서 성장합니다. 계속 성장합니다. 어떤 문제가 와도 괜찮습니다. 왜? 하나님의 계획은 선한 계획뿐이니까. 이렇게 되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될까요? 응답은 오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부모님이 우리가 요구하는 것만 주시고 오늘 우리 중학생, 우리 예쁜 저 여학생들, 엄마아빠가 엄마아빠한테 요구하는 것만 주실까요, 요구 안 한 것도 주실까요? 예? 달라는 것만 주세요, 안 달라는 것도 주세요? 안 달라는 것도 주시지요? 그대의 엄마는 달라는 것만 주십니까? 네, 안 달라는 것도 주십니다. 예, 필요를 아시니까요. 언제 아기가 엄마, 시간 맞춰 젖 줘, 그래서 주시는 엄마가 있습니까? 아닙니다. 엄마가 알아서 줍니다. 왜? 그 아이에게는 인식 능력이 없으니까요. 우리가 인식 능력이 없어요,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 그러면 하나님이 안 주실까요? 그러면 아버지 아닙니다. 하나님이 안 주실 리가 없습니다. 우리는 정말 하나님에 대한 깊은, 더 많은 이해가 필요합니다. 안 주신다면 안 주시는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 그것 받아서 탈 나지 않을까, 교만해지지 않을까, 넘어지지 않을까. 하나님이 아무리 많이 주셔도 그것 때문에 전혀 탈 날 이유가 없다, 그러면 하나님이 주시겠지요. 우리의 믿음의 분량이 감당할 수 있는가? 이제 오늘 19절 말씀을 보니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자, 치유 받았습니다. 이제 언약이 이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사명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응답을 주시는 것입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어떤 위치에서도 하나님이 계속해서 응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일곱 렘넌트들이 그 모델입니다. 롤모델입니다. 자, 그러면 치유를 받았습니다. 오늘 우리 중고등학생들도 치유 받았어요? 치유 받았습니다. 여러분들, 상처 있어요, 없어요? 상처 있습니다. 상처 치유 됩니다. 그런데 치유 받고 나면 어떤 변화가 옵니까? 놀라운 변화가 옵니다. 이제 우리가 치유 받았나 안 받았나를 이렇게 알 수가 있습니다. 전에는 문제가 크게 보이더니 이제 문제가 크게 안 보입니다. 전에는 문제가 문제로 보이더니 지금은 문제로 안 보입니다. 지금은 고민하지 않습니다. 기도합니다. 염려하지 아니하고 기도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6).” 전에는 모든 일들이 벌어지면, 내 마음대로 안 되면 다 고민거리였습니다. 갈등거리였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갈등에 붙잡혀 있습니다. 고민에 붙잡혀 있습니다. 고민에 붙잡혀 있습니다. 자기 자신이 무언가에 묶여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유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제는 감사함으로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하나님의 선하신 이유를 발견하게 됩니다. 눈물 속에서도 찬양이 나옵니다. 아픔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왜? 하나님의 더 좋은 의미가, 이유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우리가 치유 받으면 어떤 변화가 오는가? 하나님의 절대주권이 인정이 됩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셨다. 이유 없습니다. 불평의 대상이 아닙니다. 감사의 대상입니다. 이제 우리가 치유 받았으면 진짜 성령 인도 받는 것, 영적 싸움에 승리합니다. 우리가 복음 처음 들을 때 영적 싸움 열심히 했는데 요즘 영적 싸움 혹시 잊어버리지 않으셨나요? 영적 싸움 잘 하시나요? 날마다 하시나요? 하기만 하면 백전백승할 텐데 안 합니다. 많이 얻어터졌습니다. 증거는 시험 들었습니다. 시험 들었다는 것은 내가 마귀에게 많이 당했다는 열매입니다. 시험 들어야 할 형편인데 시험 안 들었다면 영적 싸움에서 승리한 것입니다. 성령 인도 받는 삶입니다.
제가 이제 말씀, 결론을 지어야겠습니다. 도전하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은 차이가 있습니다. 결단하는 사람과 결단하지 않는 사람은 차이가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 오늘의 기도, 오늘의 전도, 3오늘은 우리가 전도자로 살아가는데 아주 필수적입니다. 이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왜? 오래 전부터 들어왔으니까. 그런데 실제로 실천이 되는 사람은 얼마나 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 아시겠지요? 해 봐도 안 되더라입니까? 그러면 내가 하는 것입니까, 내 안에 계시는 성령님이 하시는 것입니까? 그것도 진단해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 이제 언약도 알았어요, 복음도 알았어요, 영적 전투도 알았어요, 거의 다 알고 있어요. 한 가지 질문할게요. 여러분의 주인은 누구신가요? 여러분이 여러분의 인생의 주인이신가요? 십자가에서 내 모든,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몸부림쳐도 해결할 수 없는, 죽었다 깨어나도 해결할 수 없는, 인간이 저주와 재앙으로 갈 수밖에 없는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내가 믿고 영접할 때 내 안에 오신 예수님, 그 성령님이 주인이신가요? 여러분, 문제가 오면 지금도 염려하십니까? 얼마나 하십니까? 잠깐 하십니까? 염려한다는 것은 주인이 바뀌었다는 것입니까, 안 바뀌었다는 것입니까? 안 바뀌었습니다. 내 안에 주인이 그 분이시라면 그 분이 염려가 있을까요? 염려 안 하시겠지요. 어떻게 여러분, 우주를 창조하신 그 분이 무얼 염려하겠습니까? 내가 주인이 바뀌었나 안 바뀌었나 진단해 보는 것은 내가 염려 있나 없나, 갈등하나 안 하나, 고민하나 안 하나, 그거 보면 압니다. 주인이 바뀌었나 안 바뀌었나. 아, 어떡해, 고민하다가 갈등하다가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내가 또 주인 노릇하네, 이렇게 놀라야 합니다. 아니, 내가 왜 주인 노릇해? 내가 내 인생 주인 노릇한다고 뭐 책임질 수 있는 것 하나라도 있어? 내 생명을 일분 연장할 수 있어? 하루 연장할 수 있어? 나는 못 해요. 그런데 내가 왜 내 인생의 주인 노릇합니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마11:28).” 그리고 그 짐을 내게 맡기라고 말씀하셨는데. 언제까지 복음도 알고 다 아는데 주인은 여전하게 내가 주인 노릇할 겁니까? 내가 있는, 소속된 그 단체 안에서, 그 구역이면 구역 안에서, 선교부 안에서 내가 갈등합니까? 주님이시라면 갈등할까요? 양보하시겠지요. 복음을 위해서. 오늘 우리는 꼭 오늘 메시지 마지막 부분을 꼭 확인해야 합니다. 복음도 알고 언약도 알고 치유도 받았고 다 뭐가 된 것 같은데 누가 주인인가요? 내 인생의 주인이 누구인가요?
여러분, 주인이 바뀌면 제일 먼저 내가 느끼는 것이 마음의 평안입니다. 문제가 없어서 평안한 게 아니라 문제가 있는데 평안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자유를 끼치노니. 예, 갈라디아서 5장 1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다고 말씀했습니다.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말씀했습니다. 이미 자유를 주셨으니까. 자유는 어떤 것에도 매이지 않는 게 자유이지 않습니까? 자유가 와야 평안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문제를 이미 다 해결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어떤 것에도 매이지 않기를 원합니다. 인간 관계에도, 물질에도, 자존심에도. 어떤 것에도 매이지 않기를 원합니다. 자유를 주셨으니까요. 주인이 바뀐 증거입니다. 참 자유, 참 평안. 혹시 여러분들 중에 우리 하나교회에 부채가 얼마나 남아있는지 모르지만 그것 내가 그냥 한 번에 그냥, 원 타임에 끝내야겠다, 복권 사자. 복권 한 번 당첨되면 원 타임에 끝낸다. 혹시 아마 사실 분, 사고 계시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좋은 믿음으로. 예, 우리 하나교회를 위해서 내가 기도하면서 복권을 사자,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으실 것이다. 혹시 그러시는 분, 그런 믿음을 가지고 계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교회 교인이 그 기도하는 것은, 기도내용이 다른데 하나님 안 믿는 어떤, 유년주일학교를 잘 다녔던 어떤 사람이 노인이 되어서 아무래도 곧 죽을 것 같았습니다. 올해를 못 넘길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복권에 당첨이 되었네요. 백억이 아니라 천억이 넘는 복권에 당첨이 되었습니다. 이제 죽음을 얼마 앞에 두고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이 분이 유년주일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또 압니다. 이제 죽음의 날짜가 가까워 오니깐 내가 죽으면 지옥갈텐데, 유년주일학교 다닐 때 들은 대로 안 믿었으니깐 이 천억이 자식들 줘봐야 아무 소용도 없잖아 내가 지옥가면 자식들에게 천억 남기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 이것 가지고 목사님 찾아가서 지옥 문제를 해결해야 되겠네. 그래 가지고 하나교회를 찾아 왔어요. 담임 목사님 만났어요. 목사님 제가 유년 주일 학교부터 교회를 다니다가 지금 오랜 세월 교회를 안다녔는데, 이거 뜻밖에 복권이 당첨되서 아직 자녀들한테 안 알렸어요. 이거 내가 교회 드릴테니깐, 목사님 저를 천국가게 해주세요. 그래서 그분이 메시지를 잘 듣고 예수님을 영접 하면은, 천국 가시게 되겠지만, 그 복권 당첨된 천억을 가지고 천국 갈수 있는 구원 티켓을 살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확실히 없죠. 그러면 우리가 받은 이 구원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요? 무한데, 그것을 가지고 미국에서는 priceless 상품을 살 때는 price 라고 하는데, 상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값이라는 의미가 있어요 그런데 값을 매길 수 없는 무한대를 priceless 라고 그래요 우리가 받은 구원은요, 어떤 노벨상, 복권 당첨, 대통령 직 어떤거 하고도 바꿀 수가 없는 priceless에요 우리는 그것을 이미 소유했어요. 왜 시시껍질한 돈 때문에 내 마음이 상해야 됩니까? 성공과 자리 때문에 내 마음이 상해야 됩니까? 나는 정말 구원의 가치를 아는 사람일까요? 우리가 소유한 이 구원의 가치라고 하는 것은 말로 할수 없는 거예요. 이것이 이해되면 이해 될수록 감격스러운 거예요 이번에 제가 어머님 이제 곧 돌아가신다는 소식을 듣고 비행기를 타고 오는데, 휠체어 서비스를 받고 비행기를 타고 비행기를 내렸어요. 무릎을 심히 왼쪽 무릎에 손상이 와가지고 걸을 수가 없었어요 제가 이제 칠십 평생 살아온 제가 한 가지 깨달은게 있어요. 아무 고통 없이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라는 것을, 아무 부자유함이 없이 걸을 수 있다는 것만도 해도 하나님의 얼마나 놀라운 은혜라는 것을. 여러분 우리는 모든 것이 감사의 대상이잖아요.
여러분 병원에 가보세요 숨 못 쉬어요 인공으로 숨쉬게 해줘요 숨쉬는 것 때문에 감사해본 적 있나요? 음식을 먹을 수 없으니 목에 구멍을 따서 영양분을 넣어 줘요 가족들은 와서 안타까워해요 그렇게라도 그 생명이 연장되기를 소원해요. 여러분 목구멍 따서 영양분 줘 본적 있습니까? 우리는 마음껏 음식을 즐기며 먹을 수 있잖아요 아니 지금 내가 육신적인 얘기만 했습니다만, 우리가 영원한 저주, 영원한 지옥에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보혈의 은혜로 구원 받은 구원의 이 가치라고 하는 것은 그 세상것 껍질한 시시 껍질한 그 어떤 것 하고도 비교할 수 없는 거라니까요 왜 소소한 것 때문에 마음 상해야 됩니까? 왜 소소한 것 때문에 감사를 잃어버려야 됩니까? 왜 소소한 것 때문에 불평해야 됩니까? 왜 소소한 것 때문에 내가 슬프게 살아야 합니까? 왜 고민하며 살아야 됩니까? 내 인생은 구름 속에 산다고 생각합니까? 어떻게 산다고 생각 합니까?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날마다 우리의 하나님 앞에 보이는 나의 모습이 이대로 좋은가요? 부끄러운가요?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날마다 감사해야 되는데,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이 세 가지의 말씀은 선택형이 아닌 명령형이에요. 놀라운 은혜에요. 정말 어메이징 그레이스에요. 오늘 이 소중한 시간에, 하나교회 귀한 성도님들, 예배 하는 이 시간에 부족한 종이 간증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말씀을 같이 나누었습니다.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살아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예수가 그리스도다라는 이 고백을 할 수 있는 이 교회에 저희들이 몸담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이 고백이 얼마나 놀라운 고백이라는 사실을 오늘도 다시금 더 깊이 깨닫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하나님, 우리는 정말 언약이 이해되고, 이제는 우리가 치유받은 참 자유인으로써, 이제 이 세상에 잡다한 일에 우리 마음 빼앗기기 않게 하시고, 우린 늘 감사하며, 늘 감격해야 하며, 늘 기뻐하며, 늘 주님을 찬양하며, 진정한 전도자의 삶을 값진 승리하는 전도자의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우상으로 가득 찬 남미 현장을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전파하기 위해서 가신 우리 담임 목사님 발걸음 마다 함께 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남미에 귀한 인재들을 키우기 위해서 헌신하시는 하나교회가 앞으로 남미뿐만 아니라, 세계를 살리는 응답 받는 교회와 성도님들 다 되게 해 주시옵소서. 날마다 간증이 있게 하시고, 날마다 고백이 있게 하시고 날마다 우리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 영광 받아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18년 4월 29일 주일 2부 예배 김철연 목사
치유와 서밋의 응답
(마16:16-20)
서론: 모든 사람들은 태어날 때 상처를 가지고 태어난다. 우리 안에 죄의 속성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이미 상처를 가지고 울면서 태어난다. 점점 그 상처가 증가된다. 우리가 전도자의 삶을 사는데 있어서 반드시 있어야 될 것이 치유의 과정이다. 치유가 되는 만큼 응답이 오고 응답을 받는 만큼 서밋의 위치에 있게 된다. 성경의
일곱 렘넌트들은 그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서밋의 응답을 받았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계속적인 응답을 받았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있는 위치에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된다. 그 사람이 바로 서밋(산위의 정상)이다.
1. 치유의 응답
가. 베드로
1) 공부 못했을 것, 다듬어진 인품의 소유자가 아님. 터프한 어부, 성격도 과격한 사람
2) 마16:16을 고백함으로 귀하게 쓰임받은 예수님의 제자
3) 네게 알게 한 이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 성령님을 통해 그리스도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음. (마16:17)
나.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마16:18)
1) 음부의 세력(사탄) - 개인, 부부, 부모, 민족, 교회를 무너뜨리는 자
2)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고백이 있을때만, 음부의 세력을 이기는 권세, 능력, 하나님나라, 빛이 임한다.
3) 거기에 놀라운 치유의 역사가 일어난다 - 인간의 상한 감정과 영적문제의 뿌리인 근본문제가 치유된다.
4) 음부의 권세가 나를, 우리 가정을 떠난다. 이 사실 아는 자가 영적전투하며 권세를 사용한다.
5) 치유가 되니까 인품이 다듬어지지 않고 학벌이 없어도 쓰임을 받게 된다.
2. 서밋의 응답
가. 언약에 대한 이해 (하나님의 절대주권)
1) 언약은 하나님의 약속, 말씀으로 약속하신 것.(구약, 신약) - 말씀을 내게 꼭 지키시는 약속으로 받아야 한다.
2) 놀라운 간증과 감격이 있고 없음의 차이는 위대한 하나님께 대한 나의 믿음이다. (백부장의 믿음)
3) 언약을 이해하고 치유받은 사람들(아브라함, 여호수아와 갈렙, 요셉, 다윗) - 전인치유, 정서, 상한감정, 삶이 치유된다.
4) 우리에게 일어난 고난, 문제, 어려움을 하나님께 질문하라 - 내 신앙성숙을 위해 허락하신 것.
5)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알고 주시며 감당치 못할 것은 안주기도 하신다.
나. 치유받고 언약 이해된 사명자
1) 사명 감당을 위해 어떤 환경, 상황에서도 응답을 주심. (렘넌트 7명)
2) 상처 치유 받은 후 놀라운 변화 – 문제가 크게 안보임, 고민×, 염려×, 갈등×, 감사함으로 기도(빌4:6-7), 하나님의 선하신 이유발견, 아픔속에도 찬양하게 됨, 하나님의 절대주권 인정됨, 불평×, 감사회복, 성령인도받게되고 영적싸움하게된다.
결론: 도전하는 자와 도전하지 않는 자와 차이가 있다. 결단하는 자와 결단하지 않는 자와 차이가 있다.
3오늘은 전도자의 삶을 사는데 필수다. 다 알지만 실천이 잘 안 된다. 복음, 언약, 영적전투 다 안다. 그러나 여러분의 주인은 누구신가? 십자가에서 모든 인간의 저주와 재앙의 문제를 다 해결하시고 영접할 때 내 안에 오신 그리스도가 주인 되어 계시는가? 주인이 바뀌면 제일 먼저 마음에 평안이 온다. 갈5:1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자유가 와야 평안이 임한다. 주인이 바뀐 증거가 참 자유, 참 평안이다. 구원의 가치가 이해될 때 참된 감사, 감격이 온다. 살전5:16-18의 말씀은 선택형이 아닌 명령형이다. 주인되신 그리스도안에서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치유와 서밋의 응답”
(마16:16~20)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20 이에 제자들에게 경고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
마16:16~20
■ 담임목사님께서는 파나마에서 사역을 하시고 오늘 이동을 하셔서 페루에서 5월2일까지 또 사역을 하시게 됩니다. 5월 2일 이후에 칠레로 건너가셔서 사역을 인도받으십니다. 목사님 사역을 위해서 계속적으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목사님은 선교하러 가셨고, 오늘 이 시간에는 너무 귀하신 선교사님을 모셨습니다. RU학장으로 계시는 김철연 선교사님 나오셔서 오늘 이 시간 주신 본문 가지고 “치유와 서밋의 응답”이라는 제목으로 말씀 주실 때에 큰 은혜 누리시기 바랍니다. 박수로 환영하겠습니다.
지난 4월16일 저희 어머님이 91세로 하나님의 품으로 가셨습니다. 어머니는 마음의 고향이라는 말을 비로소 가슴으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외국에 산지가 거의 40년이 되어 가는데 어머니는 마음의 고향일 뿐만 아니라, 어머니는 마음의 조국이다. 어머니가 계시니까 한국에 더 오고 싶고, 어머니가 안 계시면 한국에 오고 싶을지...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지금 여기 어머님이 살아계시고 아버님이 살아계시는 여러 성도님들, 떠나가신 뒤에 느끼면 무엇 합니까? 살아계실 때 아! 어머니가 마음의 고향, 그렇게 소중한 분이구나, 아버지, 살아있는 내 조국이구나. 살아있는 어머니 아버지께 잘 하는 것, 하나님이 기뻐하신다고 성경에 말씀하십니다. 특별히 하나교회 담임목사님과 여러 부교역자들과 장로님들, 이번에 저희 어머님의 장례식에 참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고, 또 사랑을 베풀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담임 목사님, 신목사님께서 광고하신 대로 남미 여러 나라를 순회하시는데 귀한 발걸음이 될 줄로 믿습니다. 제가 남미에서 10년 가까이 여러 나라를 다녀봤기 때문에 남미는 황금어장이고, 남미는 정말 할 일이 많은 곳입니다. 담임목사님 다녀오시면 많은 간증이 있을 줄로 압니다. 특별히 파나마에서 박요한 전도사님이 와서 하나교회에서 지금 사역을 하고 있고, 또 올 2월에 멕시코에서 우발도라는 청년이 왔는데 하나교회에서 이렇게 남미 살릴 귀한 일꾼들을 키우시고 도와주시니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오늘 이 본문 말씀은 우리가 처음부터 지금까지 수십년동안 이 말씀을 본문처럼 늘 들어온 말씀인데 제가 오늘 또 이 말씀을 선택한 이유는 과연 우리는 이 본문의 내용을 얼마나 과연 깊이 이해하고 있는가 한번 좀 같이 점검을 해 봤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으로 오늘 이 말씀을 보았습니다. 우리 전도자의 삶의 과정이 있는데 그 첫 번째 과정은 치유의 과정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상처를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왜? 우리 안에 죄의 속성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죄의 속성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자체가 이미 상처를 가지고 울면서 태어나더라고요. 점점점점 그 상처가 증가되는데 전도자가 전도자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있어야 될 과정은 치유의 과정이있어야 됩니다. 이 치유가 되는 만큼 응답이 오고 응답을 받는 만큼 서밋의 위치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서밋이 되어야지, 많은 사람들이 혹시, 여기 오늘 보니까 어린 렘런트들이 여기 참석했는데 아! 나는 앞으로 영적 서밋이 되어야 되겠다 그런 생각을 가지겠지요. 내가 영적 서밋이 되어야 되겠다고 결심한다고 되어지고 결심 안한다고 안 되어지는 것이 아니고 영적 서밋은 우리 성경의 7렘런트들을 보니까 그들은 그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서밋의 응답을 받았어요. 그 이유는 계속해서 응답을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응답을 받았기 때문에 응답이 계속적으로 오면 모든 사람들에게 있는 위치에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됩니다. 그 사람이 바로 서밋인 거예요. 여기 우리 중학생들 이상은 영어공부를 하니까 서밋이 무슨 의미인줄 알지요? 서밋이 무엇입니까? 쉽게 말해서 정상, 산으로 말하자면 산 중턱이 아니고 산 위, 정상, 그것이 서밋이잖아요. 그러면 우리가 공부를 잘 해서 서울대학을 나와서 지식적으로 우리 위치가 서밋에 올라간다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성경의 7렘런트들은 명문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아니잖아요. 합숙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그들이 어떻게 서밋이 되었을까요? 그들은 어느 위치에 있든지 간에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응답을 받았어요. 그러니까 어떤 위치에 있든지 많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끼친 사람들입니다. 그사람들을 서밋이라고 하는 겁니다. 우리가 목표를 세운다고 서밋에 이르는 것이 아니예요. 응답을 받으면 서밋의 위치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은 우리가 늘 외우던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누가 고백을 했지요? 베드로가 했지요. 베드로는 정말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서 정말 귀하게 쓰임 받은 제자입니다. 우리 베드로를 한 번 따져 볼까요? 공부 좀 했을까요? 못했지요. 초등학교 나왔을까요? 못했을거예요. 그러면 베드로가 인품이 아주 훌륭한 분일까요? 그렇지 못하지요. 베드로는 다듬어진 인품의 소유자가 결코 아닙니다. 그는 터프가이, 그는 터프한 어부였어요. 굉장히 터프한 어부였어요. 성격도 아주 과격한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귀한 인물로 쓰임 받았을까요? 여기서 오늘 본문 말씀에서 답을 찾으면 우리에게도 답이 될 것입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다는 고백을 했을 때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보면 압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고백 했을 때에 17절에 예수님께서 대답하여 바욘아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첫째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이것을 네게 알게 하신 이는 혈육이 아니요 지식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네 아버지시니라. 지식으로 깨달아지는게 아니예요.
여러분들이 혹시 지금까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다라는 사실을 지식으로 깨달았습니까? 그러면 아직까지 제대로 깨달은 것 아닐거예요. 성령님을 통해서 그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하실 때에 우리가 깨달아지는 거예요. 그 다음에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셨지요? 18절에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여기에 중요한 키가 있어요. 우리를 무너지게 한 자가 누구이지요? 사탄이지요. 음부의 권세예요. 음부의 세력이예요. 우리 부모님을 괴롭히는 자가 누구이지요? 우리 민족을 괴롭히는 자가 누구이지요? 교회를 어지럽히는 자가 누구이지요? 부부사이를 힘들게 하는 자가 누구이지요? 우리는 다 성격이 안 맞아서 그럽니다. 아 성격 안 맞는 것도 사실이예요. 성격 안 맞는 것을 틈타서 갈라놓는 게 누구이지요? 갈라지려고 만났습니까? 그거 아니잖아요. 누가 이 짓을 하지요. 성경에 보니까 음부의 세력, 아담 때부터 지금까지 인간을 무너지게 하고, 인간을 실패케 하고, 인간을 슬프게 하고, 인간을 괴롭히고, 인간을 처절하게 만들고, 가정을 쑥대밭이 되게 하고 이것을 누가 하는 짓이지요. 사탄이요 음부의 세력이예요. 그런데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이 고백이 있을 때에만 음부의 세력이 너를 이기지 못한다. 음부의 세력이 이겨버리면 쑥대밭이 되어요. 시끄러워져요. 복잡해져요, 이간이 벌어져요. 갈등이 생겨요. 가정에 갈등이 와요. 그런데 이 모든 눈에 안 보이지만 인간을 무너지게 하는 것은 음부의 세력인데 오늘 성경 말씀에 보니까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한다. 다른 말로 하면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이 고백을 할 때에 음부의 세력을 이기는 어떤 권세가 내게 임하는 거예요. 능력이 임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거예요. 빛이 임하는 거예요. 어두움의 세력이, 음부의 세력이 같이 공존할 수 없는 거예요. 떠나는 겁니다. 거기에 놀라운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는데 내 인간의 영적문제, 근본 문제가 치유되는 거예요. 뿌리가 치유되어야 해요. 내 병의 근본이 치유가 되어야 시간이 지날수록 병줄기가 없어지는 거예요. 우리 가정을 괴롭히는 그 뿌리가 없어져야 되는 거예요. 그것이 무엇입니까? 음부의 세력이예요. 우리의 인격으로,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지요.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고백이 얼마나 위대한 고백인가를 우리가 이해하고 신앙생활 하는 것과, 이해를 잘 못하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 차이가 있어요.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이 고백 했을 때에 다듬어지지 못한 인품의 베드로, 학벌이 없는 베드로, 터프가이 같은 베드로 귀하게 쓰임 받았어요. 여기에 놀라운 치유가 일어나는데 근본치유가 되니까 그 다음부터 다른 놀라운 치유들이 일어납니다. 어떤 치유가 일어납니까? 상한 감정이 치유가 되고, 여러 가지 치유들이 일어나요. 근본 문제가 해결되니까 ... 우리에게 속여서 왕 노릇하는 가짜 왕 노릇하는 음부의 권세가 이제 나를 떠나고, 우리 가정을 떠나고,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이 권세를 사용해요. 우리가 처음에는 충격적으로 신분 권세를 받아들였는데 몇 십년이 지났어요. 여러분 혹시 지금도 권세를 잘 사용하시나요? 혹시 영적전투를 지금도 잘 하고 계시나요? 여러분 올해 하나교회 표어가 무엇이지요? “예수를 바라보자” 날마다 순간마다 예수님 바라보아지십니까? 예수를 바라본다고 하는 것은 놀라운 의미가 있어요.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 놀라운 의미가 있어요. 의미를 아는 사람은 바라보게 되어요. 의미를 모르는 사람은 입으로 외우는데 바라보게는 안 되어요. 삶 속에서 예수님를 바라보는 사람은 의미를 아는 사람이예요. 의미를 모르면 바라보게 안 되어요. 여기에 놀라운 의미가 이 안에 있는 거예요. “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했어요. 여러분 복음 때문에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습니까? 여러분 복음의 유익을 위해서 자존심 개의치 않습니까? 복음을 위해서 나 희생 하는 것 별 문제 안 됩니까? 우리가 의미를 알면 실제로 우리의 삶 속에서 그것이 적용이 되는 겁니다. 우리가 수십년 동안 언약을 들어왔습니다. 여러분 언약을 얼마나 이해를 하십니까? 언약은 하나님의 약속이잖아요. 말씀으로 약속하신 거지요. 언약이잖아요. 여러분 성경책을 읽을 때 구구절절이 하나님의 약속으로 받습니까? 그냥 읽습니까? 이것은 우리를 향한 약속이예요. 구약도 약속이고 신약도 약속입니다. 여러분 신실한 친구의 약속을 신뢰합니까 안합니까? 하지요. 그 친구를 믿기 때문에 그 친구의 약속을 철저하게 믿습니다.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이 성경이예요. 여러분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약속으로 받습니까?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면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고 말씀했어요.
여러분 정말 그 약속을 약속으로 믿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기쁨으로 온전히 십일조를 하십니까? 약속이잖아요. 하나님이 우리 약속을 지킬 수 있는 분일까요? 당연히 지키지요. 100%지키지요. 아니 200%라도 지키지요. 그것을 우리는 알아요. 지식적으로도 압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성경 말씀을 읽을 때마다 하나님이 내게 약속하신 약속인데 100%, 200% 지킬 수 있는 또 내게 이루어지는 약속으로 받습니까? 언약이라고 하는 것은 놀라운 것입니다. 그런데 그 놀라운 것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놀라운 응답으로, 어떤 사람들에게는 일생동안 놀라운 응답으로 체험되어 지잖아요. 왜 그렇습니까? 내가 안 믿어요. 내가 약속으로 안 받아요. 그 차이인 거예요. 어떤 사람들에겐 놀라운 간증들이 있어요.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약속으로 받으니까 놀라운 응답들이 오지요. 어떤 사람들은 성경을 잘 알아요. 그런데 놀라우신 하나님에 대한, 어메이징 그레이스,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에 대한 간증이 없어요. 왜 그럴까요? 내게 체험이 없으니까요... 왜 어떤 사람들은 똑 같은 하나님에 대한 체험이 있는데 어떤 사람들은 왜 없을까요? 어떤 사람들에게는 감격이 있고 왜 어떤 사람들에게는 감격이 없을까요?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다른 분인가요? 무슨 차이일까요? 하나님에 대한 나의 믿음입니다. 내가 내 아버지에 대한 믿음, 내가 내 어머니에 대한 믿음이 있고, 내가 내 친구에 대한 믿음이 있듯이 내가 믿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차이가 있는 거예요. 약속으로 받느냐, 위대한 하나님에 대한 모든 말씀을 내가 주님께서 우리 집에 오시지 않으셔도 내 하인이 나을 줄로 믿습니다. 백부장의 고백이었어요. 나중에 백부장 밑에 있는 종들이 달려왔어요. 살아 났나이다. 몇 시쯤 살아났느냐 어제 예수님께서 나았다고 말씀하신 그 순간 그 시간과 맞는 시간이예요. 그는 믿었어요. 우리 집에 오실 필요가 없어요. 말씀만 해도 우리 아이가 살아 날 줄로 믿었어요. 나는 과연 그 하나님을 100%, 200% 믿고 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때에 나에게 약속하신 약속으로 받느냐 그것이 언약에 대한 이해입니다. 언약에 대한 신앙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직접 약속을 들었어요. 그런데 그것을 믿지를 못했어요. 그러니깐 안 믿으면 어쩔 수 없이 갈등이 옵니다. 어쩔 수 없이 불신앙하게 됩니다. 어쩔 수 없이 인본주의를 동원해서 하갈을 통해서 이스마엘이라도 얻어서 후손을 이으려고 했습니다. 오늘 제가 어린 렘런트들이 여기 앞에 앉아 있으니까 아! 우리 2부 예배에 렘런트들도 같이 예배를 드리는구나. 아! 이시간이 굉장히 중요한 시간이구나 제가 생각을 했어요. 오늘 렘런트들 김철연 선교사가 말씀 전하는 것, 이해가 되십니까? 잘 들립니까? 너무 고마워요. 맨 앞줄에 앉은 렘런트가 그렇다는 거예요. 예스, 예스...얼마나 고마워요. 반응을 해 주니까.... 우리 미국이나 외국에 가 보면 말을 해 보면 그 사람들은 문화 자체가 반응을 잘 해요. 그런데 우리 한국은 문화 자체가 잘 반응을 안 해요. 그렇게 듣는지 안 듣는지 상당히 궁금해요. 아멘으로 반응하든지 아니면 고개를 끄덕이면서 반응을 하든지, 반응을 잘 하는 건 굉장히 좋은 문화입니다. 그런데 오늘 고맙게도 3번 줄에 앉아 있는, 맨 가운데 앉아 있는 렘넌트가 계속 반응을 해주었습니다. Thank you so much. 지금도 무어라고 해 주었습니다, 나는 못 들었지만. 얼마나 고맙습니까? 그런데 아브라함이 언제 언약을 이해했습니까? 이삭이 태어난 후. 이삭의 어머니 사라, 임신할 수 있는 몸입니까, 아닙니까? 임신할 수 없는 몸, 생리가 없어졌습니다. 임신이 안 되는 몸입니다. 그런데 태어났습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이제 언약이 무엇인지를 이해했습니다. 자기는 과학적으로 생리적으로, 과학적으로 상식적으로 안 되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언약은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왜? 이미 상식적으로 안 되는 몸입니다. 보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우리가 100% 믿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상식적으로 우리 가정에 이런이런 일은 일어날 수 없어, 하면 어떻게 됩니까? 언약이 나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게 우리의 수준이라니까요. 그럼 언약을 이해한 것일까요? 언약을 이해 못한 것입니다. 충분히 이해 못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제 상식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언약, 하나님은 상식을 무시하는 분이 아니라 상식을 초월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과학을 무시하는 분이 아니라 과학을 초월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는 일에 어떤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 비로소 알았습니다. 우리는 문제라 생각하면 믿는다 하고도 안 믿지 않습니까? 왜? 벌써 안 돼, 환경적으로 이것은 이루어질 수 없어, 이건 상식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어. 그러니까 언약은 언약이고 나는 안 믿어. 그러면 언약은 어디 간 겁니까? 아브라함이 비로소 언약을 이해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다음에 그 아들, 언약의 성취로 이제 이삭이 났는데, 낳을 수 없는, 죽은 몸과 같은 여인에게서 아기가 났는데 그걸 또 죽이라고 합니다. 모리아 산에 가서 제물로 드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흔들렸을까요? 갈등했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죽여도 살릴 줄로 믿는다고 했습니다. 히브리서에 보면. 그게 이제 언약이 이해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언약이라는 것을 수십 년간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언약을 정말 이해했는가는 각자가 다 다른 것입니다. 언약이 이해되면 불신앙이 내게 있을 수가 없습니다. 약속대로 될 거니까. 내 능력대로 됩니까? 많은 사람들은 내 능력대로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 언약은 어디 갔습니까? 언약은 내 능력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언약대로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 때문에 하나님이 약속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안 믿었습니다. 그러면 언약이 이해되었다고 하는 것은 놀라운 것입니다. 보십시오. 가나안 땅을 정탐하러 열두 명이 갔는데 언약을 이해하지 못했던 열 정탐꾼의 보고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완전히 멸망했습니다. 불신앙에 빠졌습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열 정탐꾼인데. 그런데 언약을 이해했던 여호수아와 갈렙은 전혀 다른 보고를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언약을 이해하고 언약이 사실이라고 보고했던 여호수아와 갈렙으로 하여금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가나안 땅의 주인공이 되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오늘도 우리가 정말 이 언약에 대한 이해가 되면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신 다음에 첫 번째로 주신 메시지가 창세기 1장 27절, 28절입니다. 무슨 말씀이지요?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 그리고 만물을 다스리고 정복하라. 하나님이 첫 번째 주신 메시지입니다. 왜?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녀들이 이 땅을 정복하지 않으면 또 누가 정복할까요? 마귀가 또 정복한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첫 번째 주신 메시지가 하나님의 피조물인, 하나님의 창조물인, 하나님과 동일한 인격적인 존재로 만든 아담과 하와와 그 후손들이 이 땅에 번성하고 충만해서 이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가 다스림 받는 게 하나님의 뜻일까요, 다스리는 게 하나님의 뜻일까요? 우리가 세상에 정복을 당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요, 우리가 세상을 정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요? 우리는 육신적인 개념으로의 정복이 아니라 하나님은 마귀의 세력들이 손대기 전에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왜? 그곳이 곧 하나님의 나라이니까요. 언약이 이해 된 요셉, 엄청난 상처, 어릴 때부터 상처가 있었지만 상처 치유 받았을까요, 못 받았을까요? 치유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여기에 보냈다는데 형님들 두려워하지 마소서. 나를 죽이려고 했지만 형님들 두려워하지 마소서. 이곳에 보낸 자는 형님들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보내셨다고 했습니다. 언약을 이해한 사람은 치유 받습니다. 상한 감정 남아있지 않습니다. 치유 받습니다. 언약을 이해한 사람은 전인 치유, 정서가 치유되고 삶이 치유됩니다. 다윗을 죽이려고 했던 두 대표적인 사람, 사울 왕, 아들 압살롬. 그들이 죽었을 때에 일반인들 같으면 그 미친 영감 잘 죽었다, 그놈의, 뭐라고 해야 합니까, 그 아들, 쿠데타 일으켰던, 잘 죽었다고 생각해야 정상이지 않습니까? 어떻게 했지요? 다윗은 자기를 죽이려고 쏘다니던 사울 왕이 죽었을 때에 슬퍼 울었습니다. 자기 아들을 잡으러 장군들이 나갈 때에 죽이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얼마나 울었습니까? 얼마나 슬퍼했습니까? 치유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가 정말 언약을 이해하면 치유를 받습니다. 원수, 크게 문제 안 됩니다. 나를 죽이려고 했던 사람들까지, 그들의 죽음에 대해서 슬퍼하는데 무엇이 문제 되겠습니까? 내 뒤에서 나를 좀 씹는다고요? 나를 좀 비방한다고요? 그것 때문에 내가 밤잠을 못 자야 합니까? 밤잠을 편히 자야 합니다.
여러분, 정말 이 복음을 들은 사람, 복음을 이해한 사람은 치유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정말 언약이 이해 된 사람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셨다, 하나님이 하셨다, 하나님이 하셨다, 하나님이 하셨다. 무슨 이유가 있습니까, 하나님이 허락하셨다는데? 내게 고난? 하나님이 허락하셨다. 내게 아픔? 하나님이 허락하셨다. 우리 가정의 갈등? 하나님이 허락하셨다. 하나님이 허락하셨다면 나쁜 이유일까요, 좋은 이유일까요? 100% 좋은 이유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갈등 때문에 고민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이유를 물어야 할까요? 당연히 하나님의 이유를 물어야 합니다. 계속 갈등할 것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이유를 묻겠습니까? 계속 고민할 것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이유를 물을 것입니까? 하나님의 이유를 물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셨는데. 하나님, 왜 내게 이 고난이 계속 있어야 합니까? 하나님, 왜 이 아픔이 내게 계속 있어야 합니까? 하나님, 우리 가정에 왜 이 갈등이 계속 있어야 합니까?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물어봐야 할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허락하셨는데. 그 사람이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이해한 신앙인입니다. 그러면 곧 답을 얻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문제를 다루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다루신다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내게 신앙의 성숙을 위해서, 내게 영적인 성숙을 주시기 위해서 훈련하시는구나, 나를 다루시는구나, 하나님이 나를 다루시는구나. 왜 문제에 포커스를 둡니까? 초점을 둡니까? 하나님 앞에 그 이유에 초점을 두어야 합니다. 그 사람은 계속해서 성장합니다. 계속 성장합니다. 어떤 문제가 와도 괜찮습니다. 왜? 하나님의 계획은 선한 계획뿐이니까. 이렇게 되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될까요? 응답은 오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부모님이 우리가 요구하는 것만 주시고 오늘 우리 중학생, 우리 예쁜 저 여학생들, 엄마아빠가 엄마아빠한테 요구하는 것만 주실까요, 요구 안 한 것도 주실까요? 예? 달라는 것만 주세요, 안 달라는 것도 주세요? 안 달라는 것도 주시지요? 그대의 엄마는 달라는 것만 주십니까? 네, 안 달라는 것도 주십니다. 예, 필요를 아시니까요. 언제 아기가 엄마, 시간 맞춰 젖 줘, 그래서 주시는 엄마가 있습니까? 아닙니다. 엄마가 알아서 줍니다. 왜? 그 아이에게는 인식 능력이 없으니까요. 우리가 인식 능력이 없어요,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 그러면 하나님이 안 주실까요? 그러면 아버지 아닙니다. 하나님이 안 주실 리가 없습니다. 우리는 정말 하나님에 대한 깊은, 더 많은 이해가 필요합니다. 안 주신다면 안 주시는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 그것 받아서 탈 나지 않을까, 교만해지지 않을까, 넘어지지 않을까. 하나님이 아무리 많이 주셔도 그것 때문에 전혀 탈 날 이유가 없다, 그러면 하나님이 주시겠지요. 우리의 믿음의 분량이 감당할 수 있는가? 이제 오늘 19절 말씀을 보니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자, 치유 받았습니다. 이제 언약이 이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사명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응답을 주시는 것입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어떤 위치에서도 하나님이 계속해서 응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일곱 렘넌트들이 그 모델입니다. 롤모델입니다. 자, 그러면 치유를 받았습니다. 오늘 우리 중고등학생들도 치유 받았어요? 치유 받았습니다. 여러분들, 상처 있어요, 없어요? 상처 있습니다. 상처 치유 됩니다. 그런데 치유 받고 나면 어떤 변화가 옵니까? 놀라운 변화가 옵니다. 이제 우리가 치유 받았나 안 받았나를 이렇게 알 수가 있습니다. 전에는 문제가 크게 보이더니 이제 문제가 크게 안 보입니다. 전에는 문제가 문제로 보이더니 지금은 문제로 안 보입니다. 지금은 고민하지 않습니다. 기도합니다. 염려하지 아니하고 기도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6).” 전에는 모든 일들이 벌어지면, 내 마음대로 안 되면 다 고민거리였습니다. 갈등거리였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갈등에 붙잡혀 있습니다. 고민에 붙잡혀 있습니다. 고민에 붙잡혀 있습니다. 자기 자신이 무언가에 묶여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유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제는 감사함으로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하나님의 선하신 이유를 발견하게 됩니다. 눈물 속에서도 찬양이 나옵니다. 아픔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왜? 하나님의 더 좋은 의미가, 이유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우리가 치유 받으면 어떤 변화가 오는가? 하나님의 절대주권이 인정이 됩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셨다. 이유 없습니다. 불평의 대상이 아닙니다. 감사의 대상입니다. 이제 우리가 치유 받았으면 진짜 성령 인도 받는 것, 영적 싸움에 승리합니다. 우리가 복음 처음 들을 때 영적 싸움 열심히 했는데 요즘 영적 싸움 혹시 잊어버리지 않으셨나요? 영적 싸움 잘 하시나요? 날마다 하시나요? 하기만 하면 백전백승할 텐데 안 합니다. 많이 얻어터졌습니다. 증거는 시험 들었습니다. 시험 들었다는 것은 내가 마귀에게 많이 당했다는 열매입니다. 시험 들어야 할 형편인데 시험 안 들었다면 영적 싸움에서 승리한 것입니다. 성령 인도 받는 삶입니다.
제가 이제 말씀, 결론을 지어야겠습니다. 도전하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은 차이가 있습니다. 결단하는 사람과 결단하지 않는 사람은 차이가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 오늘의 기도, 오늘의 전도, 3오늘은 우리가 전도자로 살아가는데 아주 필수적입니다. 이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왜? 오래 전부터 들어왔으니까. 그런데 실제로 실천이 되는 사람은 얼마나 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 아시겠지요? 해 봐도 안 되더라입니까? 그러면 내가 하는 것입니까, 내 안에 계시는 성령님이 하시는 것입니까? 그것도 진단해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 이제 언약도 알았어요, 복음도 알았어요, 영적 전투도 알았어요, 거의 다 알고 있어요. 한 가지 질문할게요. 여러분의 주인은 누구신가요? 여러분이 여러분의 인생의 주인이신가요? 십자가에서 내 모든,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몸부림쳐도 해결할 수 없는, 죽었다 깨어나도 해결할 수 없는, 인간이 저주와 재앙으로 갈 수밖에 없는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내가 믿고 영접할 때 내 안에 오신 예수님, 그 성령님이 주인이신가요? 여러분, 문제가 오면 지금도 염려하십니까? 얼마나 하십니까? 잠깐 하십니까? 염려한다는 것은 주인이 바뀌었다는 것입니까, 안 바뀌었다는 것입니까? 안 바뀌었습니다. 내 안에 주인이 그 분이시라면 그 분이 염려가 있을까요? 염려 안 하시겠지요. 어떻게 여러분, 우주를 창조하신 그 분이 무얼 염려하겠습니까? 내가 주인이 바뀌었나 안 바뀌었나 진단해 보는 것은 내가 염려 있나 없나, 갈등하나 안 하나, 고민하나 안 하나, 그거 보면 압니다. 주인이 바뀌었나 안 바뀌었나. 아, 어떡해, 고민하다가 갈등하다가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내가 또 주인 노릇하네, 이렇게 놀라야 합니다. 아니, 내가 왜 주인 노릇해? 내가 내 인생 주인 노릇한다고 뭐 책임질 수 있는 것 하나라도 있어? 내 생명을 일분 연장할 수 있어? 하루 연장할 수 있어? 나는 못 해요. 그런데 내가 왜 내 인생의 주인 노릇합니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마11:28).” 그리고 그 짐을 내게 맡기라고 말씀하셨는데. 언제까지 복음도 알고 다 아는데 주인은 여전하게 내가 주인 노릇할 겁니까? 내가 있는, 소속된 그 단체 안에서, 그 구역이면 구역 안에서, 선교부 안에서 내가 갈등합니까? 주님이시라면 갈등할까요? 양보하시겠지요. 복음을 위해서. 오늘 우리는 꼭 오늘 메시지 마지막 부분을 꼭 확인해야 합니다. 복음도 알고 언약도 알고 치유도 받았고 다 뭐가 된 것 같은데 누가 주인인가요? 내 인생의 주인이 누구인가요?
여러분, 주인이 바뀌면 제일 먼저 내가 느끼는 것이 마음의 평안입니다. 문제가 없어서 평안한 게 아니라 문제가 있는데 평안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자유를 끼치노니. 예, 갈라디아서 5장 1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다고 말씀했습니다.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말씀했습니다. 이미 자유를 주셨으니까. 자유는 어떤 것에도 매이지 않는 게 자유이지 않습니까? 자유가 와야 평안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문제를 이미 다 해결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어떤 것에도 매이지 않기를 원합니다. 인간 관계에도, 물질에도, 자존심에도. 어떤 것에도 매이지 않기를 원합니다. 자유를 주셨으니까요. 주인이 바뀐 증거입니다. 참 자유, 참 평안. 혹시 여러분들 중에 우리 하나교회에 부채가 얼마나 남아있는지 모르지만 그것 내가 그냥 한 번에 그냥, 원 타임에 끝내야겠다, 복권 사자. 복권 한 번 당첨되면 원 타임에 끝낸다. 혹시 아마 사실 분, 사고 계시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좋은 믿음으로. 예, 우리 하나교회를 위해서 내가 기도하면서 복권을 사자,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으실 것이다. 혹시 그러시는 분, 그런 믿음을 가지고 계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교회 교인이 그 기도하는 것은, 기도내용이 다른데 하나님 안 믿는 어떤, 유년주일학교를 잘 다녔던 어떤 사람이 노인이 되어서 아무래도 곧 죽을 것 같았습니다. 올해를 못 넘길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복권에 당첨이 되었네요. 백억이 아니라 천억이 넘는 복권에 당첨이 되었습니다. 이제 죽음을 얼마 앞에 두고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이 분이 유년주일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또 압니다. 이제 죽음의 날짜가 가까워 오니깐 내가 죽으면 지옥갈텐데, 유년주일학교 다닐 때 들은 대로 안 믿었으니깐 이 천억이 자식들 줘봐야 아무 소용도 없잖아 내가 지옥가면 자식들에게 천억 남기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 이것 가지고 목사님 찾아가서 지옥 문제를 해결해야 되겠네. 그래 가지고 하나교회를 찾아 왔어요. 담임 목사님 만났어요. 목사님 제가 유년 주일 학교부터 교회를 다니다가 지금 오랜 세월 교회를 안다녔는데, 이거 뜻밖에 복권이 당첨되서 아직 자녀들한테 안 알렸어요. 이거 내가 교회 드릴테니깐, 목사님 저를 천국가게 해주세요. 그래서 그분이 메시지를 잘 듣고 예수님을 영접 하면은, 천국 가시게 되겠지만, 그 복권 당첨된 천억을 가지고 천국 갈수 있는 구원 티켓을 살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확실히 없죠. 그러면 우리가 받은 이 구원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요? 무한데, 그것을 가지고 미국에서는 priceless 상품을 살 때는 price 라고 하는데, 상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값이라는 의미가 있어요 그런데 값을 매길 수 없는 무한대를 priceless 라고 그래요 우리가 받은 구원은요, 어떤 노벨상, 복권 당첨, 대통령 직 어떤거 하고도 바꿀 수가 없는 priceless에요 우리는 그것을 이미 소유했어요. 왜 시시껍질한 돈 때문에 내 마음이 상해야 됩니까? 성공과 자리 때문에 내 마음이 상해야 됩니까? 나는 정말 구원의 가치를 아는 사람일까요? 우리가 소유한 이 구원의 가치라고 하는 것은 말로 할수 없는 거예요. 이것이 이해되면 이해 될수록 감격스러운 거예요 이번에 제가 어머님 이제 곧 돌아가신다는 소식을 듣고 비행기를 타고 오는데, 휠체어 서비스를 받고 비행기를 타고 비행기를 내렸어요. 무릎을 심히 왼쪽 무릎에 손상이 와가지고 걸을 수가 없었어요 제가 이제 칠십 평생 살아온 제가 한 가지 깨달은게 있어요. 아무 고통 없이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라는 것을, 아무 부자유함이 없이 걸을 수 있다는 것만도 해도 하나님의 얼마나 놀라운 은혜라는 것을. 여러분 우리는 모든 것이 감사의 대상이잖아요.
여러분 병원에 가보세요 숨 못 쉬어요 인공으로 숨쉬게 해줘요 숨쉬는 것 때문에 감사해본 적 있나요? 음식을 먹을 수 없으니 목에 구멍을 따서 영양분을 넣어 줘요 가족들은 와서 안타까워해요 그렇게라도 그 생명이 연장되기를 소원해요. 여러분 목구멍 따서 영양분 줘 본적 있습니까? 우리는 마음껏 음식을 즐기며 먹을 수 있잖아요 아니 지금 내가 육신적인 얘기만 했습니다만, 우리가 영원한 저주, 영원한 지옥에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보혈의 은혜로 구원 받은 구원의 이 가치라고 하는 것은 그 세상것 껍질한 시시 껍질한 그 어떤 것 하고도 비교할 수 없는 거라니까요 왜 소소한 것 때문에 마음 상해야 됩니까? 왜 소소한 것 때문에 감사를 잃어버려야 됩니까? 왜 소소한 것 때문에 불평해야 됩니까? 왜 소소한 것 때문에 내가 슬프게 살아야 합니까? 왜 고민하며 살아야 됩니까? 내 인생은 구름 속에 산다고 생각합니까? 어떻게 산다고 생각 합니까?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날마다 우리의 하나님 앞에 보이는 나의 모습이 이대로 좋은가요? 부끄러운가요?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날마다 감사해야 되는데,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이 세 가지의 말씀은 선택형이 아닌 명령형이에요. 놀라운 은혜에요. 정말 어메이징 그레이스에요. 오늘 이 소중한 시간에, 하나교회 귀한 성도님들, 예배 하는 이 시간에 부족한 종이 간증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말씀을 같이 나누었습니다.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살아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예수가 그리스도다라는 이 고백을 할 수 있는 이 교회에 저희들이 몸담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이 고백이 얼마나 놀라운 고백이라는 사실을 오늘도 다시금 더 깊이 깨닫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하나님, 우리는 정말 언약이 이해되고, 이제는 우리가 치유받은 참 자유인으로써, 이제 이 세상에 잡다한 일에 우리 마음 빼앗기기 않게 하시고, 우린 늘 감사하며, 늘 감격해야 하며, 늘 기뻐하며, 늘 주님을 찬양하며, 진정한 전도자의 삶을 값진 승리하는 전도자의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우상으로 가득 찬 남미 현장을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전파하기 위해서 가신 우리 담임 목사님 발걸음 마다 함께 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남미에 귀한 인재들을 키우기 위해서 헌신하시는 하나교회가 앞으로 남미뿐만 아니라, 세계를 살리는 응답 받는 교회와 성도님들 다 되게 해 주시옵소서. 날마다 간증이 있게 하시고, 날마다 고백이 있게 하시고 날마다 우리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 영광 받아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18년 4월 29일 주일 2부 예배 김철연 목사
치유와 서밋의 응답
(마16:16-20)
서론: 모든 사람들은 태어날 때 상처를 가지고 태어난다. 우리 안에 죄의 속성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이미 상처를 가지고 울면서 태어난다. 점점 그 상처가 증가된다. 우리가 전도자의 삶을 사는데 있어서 반드시 있어야 될 것이 치유의 과정이다. 치유가 되는 만큼 응답이 오고 응답을 받는 만큼 서밋의 위치에 있게 된다. 성경의
일곱 렘넌트들은 그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서밋의 응답을 받았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계속적인 응답을 받았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있는 위치에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된다. 그 사람이 바로 서밋(산위의 정상)이다.
1. 치유의 응답
가. 베드로
1) 공부 못했을 것, 다듬어진 인품의 소유자가 아님. 터프한 어부, 성격도 과격한 사람
2) 마16:16을 고백함으로 귀하게 쓰임받은 예수님의 제자
3) 네게 알게 한 이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 성령님을 통해 그리스도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음. (마16:17)
나.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마16:18)
1) 음부의 세력(사탄) - 개인, 부부, 부모, 민족, 교회를 무너뜨리는 자
2)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고백이 있을때만, 음부의 세력을 이기는 권세, 능력, 하나님나라, 빛이 임한다.
3) 거기에 놀라운 치유의 역사가 일어난다 - 인간의 상한 감정과 영적문제의 뿌리인 근본문제가 치유된다.
4) 음부의 권세가 나를, 우리 가정을 떠난다. 이 사실 아는 자가 영적전투하며 권세를 사용한다.
5) 치유가 되니까 인품이 다듬어지지 않고 학벌이 없어도 쓰임을 받게 된다.
2. 서밋의 응답
가. 언약에 대한 이해 (하나님의 절대주권)
1) 언약은 하나님의 약속, 말씀으로 약속하신 것.(구약, 신약) - 말씀을 내게 꼭 지키시는 약속으로 받아야 한다.
2) 놀라운 간증과 감격이 있고 없음의 차이는 위대한 하나님께 대한 나의 믿음이다. (백부장의 믿음)
3) 언약을 이해하고 치유받은 사람들(아브라함, 여호수아와 갈렙, 요셉, 다윗) - 전인치유, 정서, 상한감정, 삶이 치유된다.
4) 우리에게 일어난 고난, 문제, 어려움을 하나님께 질문하라 - 내 신앙성숙을 위해 허락하신 것.
5)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알고 주시며 감당치 못할 것은 안주기도 하신다.
나. 치유받고 언약 이해된 사명자
1) 사명 감당을 위해 어떤 환경, 상황에서도 응답을 주심. (렘넌트 7명)
2) 상처 치유 받은 후 놀라운 변화 – 문제가 크게 안보임, 고민×, 염려×, 갈등×, 감사함으로 기도(빌4:6-7), 하나님의 선하신 이유발견, 아픔속에도 찬양하게 됨, 하나님의 절대주권 인정됨, 불평×, 감사회복, 성령인도받게되고 영적싸움하게된다.
결론: 도전하는 자와 도전하지 않는 자와 차이가 있다. 결단하는 자와 결단하지 않는 자와 차이가 있다.
3오늘은 전도자의 삶을 사는데 필수다. 다 알지만 실천이 잘 안 된다. 복음, 언약, 영적전투 다 안다. 그러나 여러분의 주인은 누구신가? 십자가에서 모든 인간의 저주와 재앙의 문제를 다 해결하시고 영접할 때 내 안에 오신 그리스도가 주인 되어 계시는가? 주인이 바뀌면 제일 먼저 마음에 평안이 온다. 갈5:1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자유가 와야 평안이 임한다. 주인이 바뀐 증거가 참 자유, 참 평안이다. 구원의 가치가 이해될 때 참된 감사, 감격이 온다. 살전5:16-18의 말씀은 선택형이 아닌 명령형이다. 주인되신 그리스도안에서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
1484 | 전환점을 이룬 안디옥 선교 | 행11:19-30 | 2025-04-27 | |
1483 | 우리에게 주시는 영원한 메시지 | 고전15:1-11 | 2025-04-20 | |
1482 | 새로운 싸움을 위하여 | 삿7:9-18 | 2025-04-13 | |
1481 | 날마다 영적싸움에 승리하라 | 삿7:1-8 | 2025-04-06 | |
1480 | 이 시대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해답 | 삿4:1-10 | 2025-03-30 | |
1479 | 하나님이 쓰시는 기준 | 삿3:12-23 | 2025-03-23 | |
1478 |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 삿3:7-11 | 2025-03-16 | |
1477 |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 삿2:6-10 | 2025-03-09 | |
1476 |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 삿1:1-7 | 2025-03-02 | |
1475 |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 단12:1-4 | 2025-02-23 | |
1474 |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 단11:28-39 | 2025-02-16 | |
1473 |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 단10:10-21 | 2025-02-09 | |
1472 |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 단9:20-24 | 2025-02-02 | |
1471 |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 단8:15-27 | 2025-01-26 | |
1470 |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 단7:9-14 | 2025-01-19 |
1
2
3
4
5
6
7
8
9
10
...
99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