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소망-그리스도
2018-03-25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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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5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유일한 소망 - 그리스도”
(히9:1~10)
1 첫 언약에도 섬기는 예법과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더라
2 예비한 첫 장막이 있고 그 안에 등잔대와 상과 진설병이 있으니 이는 성소라 일컫고
3 또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장막을 지성소라 일컫나니
4 금 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판들이 있고
5 그 위에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으니 이것들에 관하여는 이제 낱낱이 말할 수 없노라
6 이 모든 것을 이같이 예비하였으니 제사장들이 항상 첫 장막에 들어가 섬기는 예식을 행하고
7 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 년에 한 번 들어가되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
8 성령이 이로써 보이신 것은 첫 장막이 서 있을 동안에는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
9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따라 드리는 예물과 제사는 섬기는 자를 그 양심상 온전하게 할 수 없나니
10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일 뿐이며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
히9:1~10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예수를 바라보십시다. 오늘 세례 받고 또 입교하고 유아 세례 받은 모든 분들이 찬양대 찬양한 것처럼 정말로 하나님 나라 가는 그날까지 인도받고 쓰임 받을 수 있도록 계속해서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머물며 쓰임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어제 우리 장로님들과 함께 문답을 지켜보면서 비록 소수의 인원이었지만 한분 한분을 대하면서 마음이 기뻤습니다. 입교 받는 우리 아이들도 그 어느 때보다도 믿음에 대한 확신가운데 인도받고 있는 부분들을 보았고요, 세례 받으시는 분들도 마찬가지이고 유아세례를 받는 우리 아이들 부모님들도 보면서 정말 하나님께 감사하면서정말로 든든한 마음들이 생겨졌습니다. 이 한 분 한 분이 너무나 중요하게 그리스도를 주인 삼고 귀중한 생애를 시작했는데 끝까지 하나님 나라 가는 그날까지 정말 가장 귀하게 인도받고 쓰임 받는 그런 축복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제목을 “유일한 소망 – 그리스도”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르게 살고, 열심히 살면 된다 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럴까요 정말 그럴까요? 우리가 바르게 살고, 열심히 살면 될까요? 여러분 우리가 아셔야 될 것은 우리가 아무리 바르게 살고, 열심히 산다할지라도 중요한 하나님이 주신 눈을 열지 않으면 우리의 인생이 도둑질 당하고, 우리의 인생이 사기당하는 인생이 되어집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열심히 사는 것도 중요하고 바르게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복음의 눈이 열려지는 것입니다. 영적인 눈이 열려지는 것입니다. 이 복음의 눈을 가지고 자신을 봐야 되고 복음의 눈을 가지고 세상을 봐야 되고 복음의 눈을 가지고 현실을 봐야 됩니다. 그래야 속지 아니하고요 우리의 인생이 도둑질 당하지 않게 됩니다. 우리가 조금만 복음의 눈을 가지고 자신과 세상과 현실을 바라보면 답이 내려지게 되어 있습니다. 오직 우리에게 소망은 그리스도 뿐이다 라는 이 사실에 답이 내려지게 됩니다. 그래서 먼저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눈들이 열려져야 합니다. 오늘 예배가 그러한 시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제 문답 하는 가운데 어떤 분은 어릴 때에 교회에 몇 번 가보셨어요. 그런데 성장하면서 교회하고 멀리 생활하고 직장 생활하면서 차를 같이 타고 다니는 집사님 한분이 계속해서 전도를 하신 것 같아요. 복음이야기 하고...그런 가운데서 이 집사님이 이 분을 전도한 집사님이 차 안에서 우리교회 메시지를 휴대폰을 통해서 메시지를 듣는 부분을 들으면서 결단하게 되었다고 해요. 그래서 어제도 문답 가운데 말씀을 나누면서 이 말씀이 들려집니까?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 말씀이 들려지면 그 말씀을 통해서 영적인 힘을 얻게 되고 그 영적인 힘을 얻게 되면 그것이 모든 삶의 현장에 나타나게 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님 말씀이 들려지는 것인데 정말로 하나님 말씀이 들려집니까? 하고 물어보니까 말씀이 깨달아지고 들려진다는 거예요. 그러면 끝난 거예요 사실은.. 여러분 그 하나님이 말씀이 들려지고 깨달아진다는 것은 믿어진다라는 것은 그냥 되어지는 것이 아니지요. 사실은 복음의 능력 아니고서는, 하나님의 성령이 내 안에 거하지 않고서는 말씀을 들어도 듣지 못하고, 말씀을 읽어도 깨닫지 못하는 그러한 것인데 이 말씀이 들려진다는 이 축복이 가장 귀중한 축복이고 모든 것이 바로 우리 신앙생활의 시작이 말씀이 들려지는 것에서 시작된다라는 것, 이 말씀이 들려지는 축복은 복음의 눈이, 영적인 눈이 열려져야 되는 것입니다. 지식이 있다고요 세상 적인 똑똑함 가지고, 세상적인 배경가지고 말씀이 들려지고 믿어지는 것이 아니지요. 그래서 우리가 영적인 눈들이 열려져야 진짜 말씀도 믿어지고 말씀을 통해 힘을 얻게 되는데 어떤 영적인 눈들이 열려져야 되느냐?
1. 세례의 의미
먼저,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바로 세례를 받는다는 말과 같은 말인데요,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그냥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신앙생활 하고 있는 것을 봐요. 교회를 종교중의 하나로 나가는 사람들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종교생활이라고 하지요. 또 예수 믿는 것을 취미로 믿는 사람도 또한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 할 때는 그리스도를 나의 주인으로 모시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 찬양대 찬양한 것처럼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에게는 그리스도께서 주인되신다 말씀했습니다. 나의 삶의 근본이 바뀌어지는 것을 가지고 예수 믿는다. 세례 받았다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냥 종교적인 행위를 하는 것, 어떤 그냥 취미로 교회 다니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에, 우리의 인생의 근본이 변화되어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조금 예수 믿음으로 말미암아 착한 사람이 되고 사람이 좀 변했다 그것도 아니예요. 삶의 근본이 바뀌어지는 것이 바로 예수 믿는 것이고, 세례 받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내 인생의 주인이 내가 주인 되어 있었고, 물질이 주인 되어 있었고, 돈이 주인 되어 있었고, 성공이 주인 되어 있었는데 그리스도께서 내 인생의 주인이십니다 이 사실을 의식적으로 결단하고 선포하고 선언하는 것이 바로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들은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나름대로 그들의 인생을 이끌어가는 주인이 있어요. 어떤 사람은 물질이고, 어떤 사람은 꿈이예요. 꿈, 어떤 꿈을 가지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온 생을 다 노력하며 살아가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내 기준, 내 입장들을 가지고 그것이 주인 되어서 살아가고요, 또 어떤 사람은 환경이 주인 되어서 살아가고 또 어떤 사람은 자녀들이 주인 되어 있는 부분들을 봅니다. 어떻든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모든 사람들은 나름대로 주인 되어 있는 것이 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 세례를 받는다 하는 것은 의식적으로 우리가 결단하면서 이제부터 나의 모든 삶의 주인은 그리스도이십니다 라는 사실을 선언하고 선포하는 것이 바로 세례 받는 것입니다. 지난 날 내가 생각했던 것들, 내가 옳다고 믿었던 것들을 다 내려놓고요 내 지식과 내 경험들을 다 내려놓고 그리스도께 그리스도가 주인이니까 이제는 그리스도가 기뻐하시는 그 일을 위해서, 그리스도가 기뻐하시는 그 뜻을 위해서 나의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나아가는 삶이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왜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응답 없는 삶을 살아가느냐? 간단해요. 그리스도가 주인 되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10:5절에 중요한 말씀을 했습니다.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한다 ”했습니다.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서 그리스도에게 복종한다 했어요. 여러분 아직까지 내가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도 내가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고 있다고 하면서도 내 생각, 내 기준들 그대로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내 경험과 내가 가졌던 지식들 그것 가지고 그리스도를 섬기고 나가고 있지 않습니까? 주님은 우리에게 그리스도가 주인 되시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 정말로 그리스도가 여러분 주인 되시도록 우리의 주인됨을 내려놓는 그런 축복의 시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갈 때에 삶의 방법은 달라요.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고 갈 때 다시 말하면 세례를 받은 사람들의 삶의 방법은 따로 있습니다. 그 삶의 방법이 무엇이냐? 로마서6:3~4절에 보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으므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여기에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한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구원받은, 세례 받은 자의 삶이 따로 있다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내 생의 주인 되어질 때에 그때에 내게 눈들이 열려지는데 어떤 눈이 열려지느냐? 먼저 자기 인생에 대한 눈들이 새롭게 열려져요. 아! 나는 하나님의 자녀구나. 내가 믿음으로 담대하게 하나님께 나아가면 되는 것이구나 이 사실에 대한 눈들이 열려지게 되어 있어요. 엡2:1절에 보면 “그는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셨도다”했어요. 여기에서 그는 누구를 말합니까? 바로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이 그리스도는 죄와 허물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말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죄와 허물로 죽은 우리를 살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 하나님의 자녀라는 그 축복가지고 오늘도 담대함으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세례 받은 자에게 주신 삶의 가장 귀한 축복이예요. 나는 비록 연약할 수 있고, 부족할 수 있고, 모자랄 수 있지만 아니예요.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셨어요. 최고의 축복 중에 축복이 무엇이냐?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이예요. 그것 가지고 우리는 담대함으로 믿음의 역사 가운데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가치, 내가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가에 대한 부분들이 열려지는 것입니다. 어떻게 될 때에? 그리스도를 내 주인 삼게 될 때에, 그리스도가 주인 되지 않으니까요 사실은 내 인생에 내가 살려고 몸부림치고 그러니까 내 연약함과 내 부족함 가지고 내가 되니 마니 그렇게 나가고요, 내 자신의 가치들을 놓쳐버리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요, 믿음으로 하나님께 담대함으로 나아갈 수 있는 그 축복 가운데 저와 여러분을 세우신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구원 받은자, 세례 받은 자의 삶이 무엇이냐 ? 오늘 로마서6:4절에 보면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었다”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무엇에 장사되었습니까? 우리의 과거, 죄, 원죄에 대한 부분들, 그로 말미암아 사탄의 운명 가운데 빠졌던 부분, 결국은 지옥 배경 속에 빠졌던 부분들, 그 모든 것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힌 사건과 함께 우리도 함께 거기에서 장사되었습니다. 우리의 모든 원죄와 사탄과 지옥의 모든 배경들이 십자가에서 다 장사되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저와 여러분은 이제는 다른 삶이 약속되어 있는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 생명 가운데 살아갈 수 있는 그 축복된 삶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가지고 생명이라고 말씀하고 있지요. 요한복음 1장에 보면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바로 예수그리스도를 우리의 생명이라고 말씀하고 있어요.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라는 것은 생명을 가진 것을 말하고요, 생명을 가졌다라는 말은 성령이 내 안에 거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그래서 롬8:2절에 보면 “생명의 성령의 법이 ”내가 성령을 소유함으로 말미암아 내 안에 생명이 들어왔고, 그로 말미암아 우리의 삶은, 신앙생활은 뭐냐 바로 그 성령의 인도받는 것이 우리의 삶이예요. 그리고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그 성령께서 정확하게 우리의 모든 현장에 역사하시게 되어있어요. 그것을 가지고 성령의 역사라고 하지요. 이게 우리의 삶이예요. 우리의 모든 과거, 죄, 사단, 지옥배경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바 되었고, 우리의 새로운 생명을 그리스도와 함께 주신 거예요. 그 생명 안에 있는 축복의 비밀을 누리는 것이 바로 저와 여러분의 삶인 것입니다. 이 축복의 비밀이 어디에서 열려지느냐? 그리스도가 주인 되어질 때에 열려지게 되어 있어요. 그 뿐만 아니라 세상에 대한 우리가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날마다 세상 사람들이 죄의 권세아래 어느 누구도 해방되지 못하고 끌려 다니는 부분들 보지요. 그런데 로마서6:6절에 보면 죄의 종으로 살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의의 종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이게 바로 세례 받은 자에게 주신 축복입니다. 지난날에는 우리가 죄에게 끌려 다니고 죄의 종노릇 했는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제는 죄를 이길 수 있는 권세를 주신 거예요. 그래서 의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우리에게 주신 거예요. 그게 바로 구원 받은 자에게,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신 자에게, 세례 받은 자에게 주신 축복이예요. 내 자신이 그렇게 바뀌어졌다는 사실, 이 사실을 기억하고 이 사실을 누리게 되는 우리 모든 하나교회 성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와 더불어 그리스도께서 내게 임함으로 내 자신에 대한 가치만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 보는 눈도 다르게 열려지게 되어 있어요. 우리가 그리스도를 알지 못할 때는 세상이 물질 따라 움직이는 것 같고, 그래서 돈이 다인 줄 알고 돈을 벌기 위해 악착같이 노력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성공하기 위해서. 왜냐? 성공이 다인 줄 알고 살아가기 때문에. 그래서 어떤 면에서 교회 안의 사람들도 보면 물질과 성공에 배여서, 힘, 거기 매여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여러분, 정말 그리스도가 주인 되면 세상 보는 눈이 열리는데 물질이 다가 아니구나, 권력이, 힘이 다가 아니구나. 여러분, 우리가 물질이 다이고 권력이 다이고 힘이 다이면 그것을 따라가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게 다인 줄 알고 오직 돈, 오직 성공 아닙니까? 그래서 결과적으로 큰 영적 문제로 무너지는 것인데 그 미래를 알지 못하고 오직 돈, 지금 눈 앞에 있는 오직 성공을 위해서 달려갑니다. 왜냐? 그게 다인 줄 알기 때문에. 그러나 우리에게는 세상 보는 눈이 다릅니다. 그게 다가 아닙니다. 그 배후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높이고 그리스도를 드러내고 그리스도만 나타내는 것입니다. 왜냐? 모든 역사의 배후에는 돈과 물질이 아니라, 성공과 힘이 아니라 그 배후에 하나님의 역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 붙잡고 그 하나님의 역사를 누리며 살아가는 인생이 바로 구원 받은 자, 세례 받은 자의 삶인 것입니다. 세상 보는 눈만 열릴 뿐만 아니라 삶의 방향도 달라집니다. 그리스도가 주인 될 때 먼저 나 자신의 가치가 새롭게 보이고 세상 보는 눈이 열리고 그와 더불어 우리 삶의 방향이 열리는데 아, 내가 이제까지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노력해왔지만, 달려왔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이구나. 마6:33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해 대해서 가르치면서 주기도문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옵시며.” 나라가 임하도록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의 방향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게 될 때 나 자신에 대한 가치와 세상 보는 눈이 열림과 더불어 우리의 삶의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가 무엇인가에 대한 삶의 방향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누리지 못하니까 성도들이 불신자들에게 종노릇하고 세상에 끌려 다니고 세상의 종노릇합니다. 궁극적으로 말한다면 그리스도가 주인 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가 주인 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정말로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한 가치를 새롭게 보고 세상 보는 눈을 가지고 우리 삶의 방향을 바르게, 우선순위를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데 두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삼는, 그런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왜 매일 그리스도여야만 하는가?
그러면 두 번째로, 왜 그러면 그리스도여야만 하는가? 우리의 모든 매일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여야만 하는가 입니다. 그것을 오늘 본문을 통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여러분, 오늘 그렇게 많은 시간이 없습니다. 짧게 설명을 드릴 텐데 말씀을 듣고 오늘이 지나기 전에 반드시 집에 가셔서 히브리서 9장 오늘 읽은 본문을 다시 한 번 읽어 보십시오. 오늘 히브리서 9장에 보면 성소에 대해 나옵니다. 성소에 대한 부분이 나오는데 거기 사실은 성소가 있고 지성소가 있습니다. 그리고 성소와 지성소, 그것을 가로막고 있는 휘장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성소 안에 언약궤가 있는데 그 언약궤는 금으로 만들어져서 그 언약궤 안에 세 가지가 담겨 있고 그 언약궤에 뚜껑이 있고 그 언약궤를 보면 그룹이, 천사를 말합니다, 두 천사가 서 있는데 두 천사가 언약궤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천사들의 날개, 그 사이를 가리켜서 속죄소라 이야기하고 다른 말로 이야기하면 ‘시은소’라 이야기하고 ‘시은자’라고도 이야기합니다. 잘 들으십시오. 여러분, 언약궤를 다른 말로 하면 증거궤라 하고 법궤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고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법을 받게 되고 그 때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약궤 중심으로 움직여졌습니다. 다시 말해서 성막 중심으로 움직여졌습니다. 그 성막 안에 성소가 있고 지성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지성소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언약궤인데 그 언약궤를 천사들이 지켜보고 있고 그 천사들의 그룹, 날개 사이를 가지고 속죄소, 죄가 속해지는 장소란 말입니다. 시은소라는 말은 베풀 시, 은혜 은 자, 자리 자 자 해서 은혜가 베풀어지는 자리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대제사장들이 1년에 한 번씩 백성들의 죄를 대신해서 짐승을 잡아 피를 담아 가지고 지성소 안에 들어가서 그 언약궤 위에 피를 붓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은혜와 긍휼을 구하며 죄를 용서함을 받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오늘 제가 말씀드리려고 하는 것은 이 언약궤 안에 세 가지가 들어가 있는데 이 세 가지가 무엇이냐 입니다. 이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느냐 입니다. 이 사실을 제대로 안다면 우리는, 우리의 유일한 소망은 그리스도여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있습니다. 이 언약궤 안에 세 가지가 들어있습니다. 뭐가 들어있습니까? 첫 번째로 만나를 담은 항아리입니다. 두 번째로 아론의 싹난 지팡이입니다. 세 번째는 무엇입니까? 두 돌비입니다. 이 세 가지를 하나님께서 넣으라 해서 넣어 놨는데 이것은 광야길을 가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기적을 보이신 하나님이 은혜의 상징입니다만 은혜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인간은 전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의가 없다는 것, 죄뿐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 이 세 가지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속죄소에서 두 천사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가, 긍휼하심이, 자비하심이 넘쳐나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만나 담은 항아리.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면서 먹을 것을 가지고 나오고 물품들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한 달 정도 지나고 나니 신 광야를 거치면서 그들이 원망하고 불평했던 것이 있습니다. 왜 우리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느냐? 먹을 것을 주고 마실 것을 잘 주면 목이 갈하지 않고, 먹을 것을 주면 우리가 하나님을 잘 섬길 것인데 왜 우리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느냐, 모세와 아론을 향해서 원망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를 줍니다. 매일매일 만나를 내리고 또 안식일 전날에는 안식일 것까지 합쳐서 만나를 주었습니다. 그러한 생활이 몇 년 되었느냐? 사십 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그래서 광야길 가는 동안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이 주시는 만나를 가지고 살아오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만나를 통해서 결국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만 그러나 나중에 어떻게 되었느냐?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이 처음에는 만나를 받고 꿀 섞은 과자 같다고 하면서 너무나 기뻐하고 감사했는데 시간이 가면서 그 만나가 질린다고 했습니다. 어느 정도로 이야기했느냐? 민수기 11:5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애굽에 있을 때 값없이 모든 것을 먹었다 했습니다. 여러분, 값없이 아무리 먹어도 그들의 신분은 무엇입니까? 노예입니다. 그런데 그 부분을 이야기하면서 6절에 보면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불평하고 원망하며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이 불신앙으로 가득 차고 있는 부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11:8에 보면 “백성이 두루 다니며 그것을 거두어 맷돌에 갈기도 하며 절구에 찧기도 하고 가마에 삶기도 하여.” 온갖 것을 다 만들어 먹은 것입니다. 그러면서 “ 과자를 만들었으니 그 맛이 기름 섞은 과자 맛 같았더라.” 언제는 꿀 섞은 과자와 같다 해 놓고 지금은 뭐라 합니까? 기름 섞은 과자와 같다 했습니다. 이게 이스라엘 백성이었습니다. 만나를 주면, 먹을 것을 주면 우리가 하나님을 잘 섬길 터인데. 정말 하나님을 잘 섬겼습니까? 아닙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하나님께 대한 불신앙, 불순종에 대한 부분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요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입니다. 우리에게는 뭔가 선한 것이 없습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하나님께서 우리의 의식주 문제를 책임지신다면 내가 하나님을 잘 섬길 것인데. 정말 그럴까요? 아닙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하나님을 향해 악함만 남아 있습니다. 전적인 타락입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축복하셔도 우리 인간은 하나님 앞에 의를 드러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또 한 가지는 아론의 싹난 지팡이입니다. 여러분, 아론의 지팡이에 싹이 났습니다. 이것은 기적입니다. 그런데 왜 아론의 싹난 지팡이에 기적을 행하는 그 역사를 행했느냐, 하나님께서? 성경의 민수기 16장을 보면 레위 지파인 고라와 함께 르우벤 지파의 일당이 다단과, 또 아비람과 온, 이런 사람들이 모세와 아론, 하나님의 사람을 대적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고라 자녀들을, 성경에 보면 17장입니까, 거기 보면 고라 자녀들을 땅을 벌려서 다 삼켜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따르던 지휘관 250명을 불태워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이야기하셨습니다. 너희들 각 지파마다 지팡이 다 내어놓으라. 그래서 지팡이를 다 내어 놓았는데 그 이튿날이 되었습니다. 지팡이를 내어놓으면서 그 지팡이에 이름을 다 썼습니다. 열두 지파가 지팡이를 내어놓으면서 이름을 다 썼는데 그 지팡이에 이름을 다 쓰고 그 이튿날 보니 다른 지팡이에는 싹이 돋지 않았는데 아론의 지팡이에는 싹이 돋았습니다. 그래서 민17:8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튿날 모세가 증거의 장막에 들어가 본즉 레위 집을 위하여 낸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열렸더라.” 여러분,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은 사건, 순이 난 사건도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가 무엇인가를 지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두 돌비, 여러분, 이 돌비는 하나님께로부터 두 번째 받은 돌비에요 하나님의 은혜 주셔가지고. 그런데 첫 번째 받은 돌비를 어떻게 했습니까? 모세가 시내 산에서 돌비를 받아서 내려 올때에 모세가 내려옴을 더딤을 보고 산 아래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론 중심으로 해서 뭐했습니까? 그들이 애굽에서 가지고 나온 금, 고리 이런 것들 가지고 금 송아지 만들어가지고 이것이 애굽에서 너를 인도한 여호와다 그래서 애굽에서 너희를 인도한 신이다. 이것이 여호와의 절일이다.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 숭배에 빠지게 되었죠. 그 모습을 보고 모세가 화가 나가지고 하나님의 분노하심을 가지고 두 돌비를 깨뜨려 버렸어요 그리고 또 다시 은혜로 두 번째 돌비를 주었는데 이 돌비를 바라 볼 때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리는 우상 숭배로 말미암아 불신앙했던 백성들이구나. 깨닫게 되는 것이지요 무엇을 말하느냐 한마디로 말하면 이 세 가지는 광야길을 가는 동안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은혜로 기적을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만은 그러나 인간이 얼마나 의가 없고 하나님 앞에 악한 것인가를, 전적인 타락한 것이 인간 이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속죄소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들을 받는 그런 축복으로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그 내용들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은혜 앞에 아무도 나갈 수 없는데 이 대속의 역사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누구를 보내주셨는가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입니다. 그리스도 오시기 전까지는 제사장들이 날마다 제사 드리기 위해서 짐승을 잡아서 그 피를 가지고 들어가야 합니다. 그중에 특별히 대제사장은 일 년에 한번 대속죄일에 자기의 죄와 백성들의 죄를 속하기 위해서 지성소 안에 들어갑니다. 사실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까지는 하나님께로 나갈 수 있는 길들이 온전하게 열려지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 부분을 일컬어서 8절에 보면, 그렇게 말씀하고 있죠 “성령이 이로써 보이신 것은 첫 장막이 서 있을 동안에는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기 전까지는 하나님께 나갈 수 있는 온전한 길이 열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성소와 지성소를 마고 있는 휘장. 그게 너무 두껍고요 그 휘장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교회사가 들이 이야기하기를 장정 한 300여명이 움직여야 그 휘장들이 움직여 질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휘장이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던 순간에 위에서 아래로 잘라진 겁니다. 찢어진 겁니다. 누가 찢으신 것입니까? 하나님이 찢으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27장 51절에 보면,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날에 이 성소와 지성소에 가로막혀 있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진 겁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하나님께로 나갈수 있는 길을 여신업니다. 히브리서 10장 19-20절에 보십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심으로 말미암아 십자가에 죽인 사건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찢으신 사건이에요. 그로 말미암아 휘장, 하나님께로 나갈 수 있는 길을 여신 것입니다. 우리는 의가 없어요. 전적으로 타락한 인생 그 어떤 인생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어요. 언약궤 안에 있는 세가지를 통해서 우리에게는 전혀 악함만 남아 있다는 것.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근거는 없다 라는 것. 우리는 죄와 허물로 죽어야 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보내시사 그 육체를 십자가에 찢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직접적인 길을 하나님이 여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매일 우리의 소망은 오직 그리스도여야 합니다. 어떤 상황과 어떤 환경 속에서든지 어느 시대 속에서든지 우리의 소망은 유일한 소망은 그리스도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그리스도께서 이사야 53:5절을 성취 했는데요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할렐루야! 여러분 우리에게 유일한 소망은 우리에게 있는 뭐 어떤 근거가 아니고요 우리의 의가 아니고, 우리의 의는 없어요. 오직 그리스도만이 나의 의가 되시는 것입니다. 오늘 세례 받는 분들 꼭 이 부분들 기억하시고요 모든 성도들 또한 날마다 매일의 사건 속에서 왜 그리스도여야만 되는가 이 사실 붙잡고 소망 없는 세상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참 소망 되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현장을 살리는 전도자들로 쓰임 받는 귀한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8년 3월 25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유일한 소망 - 그리스도
(히9:1-10)
서론: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르게 살고, 열심히 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복음의 눈, 영적인 눈이 먼저 열려져야 합니다(세상, 현장, 현실을 봐야). 그 눈을 가지고 볼 때 유일한 소망이 그리스도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신앙생활의 시작은 말씀이 들려지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지식으로 말씀이 들려지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눈이 열려져야 들려지게 됩니다.
1. 세례의 의미
가. 예수를 믿는다 - 인생의 주인을 바꾸는 것
1) 예수를 믿는 것 - 종교 행위나 취미가 아님, 근본이 변화
2) 모든 사람은 섬기는 주인이 있음 - 물질, 꿈, 기준, 입장, 환경
3) 그리스도가 나의 주인 - 모든 생각, 기준을 내려 놓아야 함(고후10:5)
나. 세례 받은 자의 삶(롬6:3-4)
1) 하나님 자녀라는 사실에 대한 눈이 열려짐(엡2:1) -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담대하게 나아가면 됨
2) 죄, 사단, 지옥의 배경들을 십자가에서 해결
3) 성령의 내주, 인도, 역사를 누림
4) 죄를 이김으로 의의 사람으로 살아감(롬6:6)
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
1) 돈, 권력, 성공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감 - 모든 것이 아니다는 것을 보게 됨
2) 삶의 방향 - 그리스도를 드러내고 나타냄(마6:33)
2. 왜 매일 그리스도여야만 하는가?
가. 언약궤 - 모든 인생은 하나님을 섬기고 바라 봐야함
1) 만나 담은 항아리 - 광야길 가운데 은혜를 주셨지만 날마다 불평, 불만 속에 살아감(인간 속에는 의가 없음을 말씀)
2) 아론의 싹난 지팡이(민17:8) - 기적의 상징이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말씀
3) 두 돌비 - 불신앙 할 수 밖에 없는 민족임을 깨닫도록 함
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심
1) 대제사장이 날마다 짐승을 잡아서 제사를 지냄
2) 하나님께 나갈 온전한 길이 열려지지 않음(히9:8)
3)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그 날에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짐(마27:51) - 직접 길을 여심(히10:19-20)
결론: 날마다 우리의 소망은 그리스도여야만 합니다.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의가 됩니다. 매순간 왜 그리스도여야만 하는가?를 붙잡고 참 소망 되신 그리스도를 붙잡고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 기도제목
● 말씀실현(실천사항)
● 전도대상자
“유일한 소망 - 그리스도”
(히9:1~10)
1 첫 언약에도 섬기는 예법과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더라
2 예비한 첫 장막이 있고 그 안에 등잔대와 상과 진설병이 있으니 이는 성소라 일컫고
3 또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장막을 지성소라 일컫나니
4 금 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판들이 있고
5 그 위에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으니 이것들에 관하여는 이제 낱낱이 말할 수 없노라
6 이 모든 것을 이같이 예비하였으니 제사장들이 항상 첫 장막에 들어가 섬기는 예식을 행하고
7 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 년에 한 번 들어가되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
8 성령이 이로써 보이신 것은 첫 장막이 서 있을 동안에는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
9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따라 드리는 예물과 제사는 섬기는 자를 그 양심상 온전하게 할 수 없나니
10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일 뿐이며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
히9:1~10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예수를 바라보십시다. 오늘 세례 받고 또 입교하고 유아 세례 받은 모든 분들이 찬양대 찬양한 것처럼 정말로 하나님 나라 가는 그날까지 인도받고 쓰임 받을 수 있도록 계속해서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머물며 쓰임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어제 우리 장로님들과 함께 문답을 지켜보면서 비록 소수의 인원이었지만 한분 한분을 대하면서 마음이 기뻤습니다. 입교 받는 우리 아이들도 그 어느 때보다도 믿음에 대한 확신가운데 인도받고 있는 부분들을 보았고요, 세례 받으시는 분들도 마찬가지이고 유아세례를 받는 우리 아이들 부모님들도 보면서 정말 하나님께 감사하면서정말로 든든한 마음들이 생겨졌습니다. 이 한 분 한 분이 너무나 중요하게 그리스도를 주인 삼고 귀중한 생애를 시작했는데 끝까지 하나님 나라 가는 그날까지 정말 가장 귀하게 인도받고 쓰임 받는 그런 축복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제목을 “유일한 소망 – 그리스도”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르게 살고, 열심히 살면 된다 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럴까요 정말 그럴까요? 우리가 바르게 살고, 열심히 살면 될까요? 여러분 우리가 아셔야 될 것은 우리가 아무리 바르게 살고, 열심히 산다할지라도 중요한 하나님이 주신 눈을 열지 않으면 우리의 인생이 도둑질 당하고, 우리의 인생이 사기당하는 인생이 되어집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열심히 사는 것도 중요하고 바르게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복음의 눈이 열려지는 것입니다. 영적인 눈이 열려지는 것입니다. 이 복음의 눈을 가지고 자신을 봐야 되고 복음의 눈을 가지고 세상을 봐야 되고 복음의 눈을 가지고 현실을 봐야 됩니다. 그래야 속지 아니하고요 우리의 인생이 도둑질 당하지 않게 됩니다. 우리가 조금만 복음의 눈을 가지고 자신과 세상과 현실을 바라보면 답이 내려지게 되어 있습니다. 오직 우리에게 소망은 그리스도 뿐이다 라는 이 사실에 답이 내려지게 됩니다. 그래서 먼저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눈들이 열려져야 합니다. 오늘 예배가 그러한 시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제 문답 하는 가운데 어떤 분은 어릴 때에 교회에 몇 번 가보셨어요. 그런데 성장하면서 교회하고 멀리 생활하고 직장 생활하면서 차를 같이 타고 다니는 집사님 한분이 계속해서 전도를 하신 것 같아요. 복음이야기 하고...그런 가운데서 이 집사님이 이 분을 전도한 집사님이 차 안에서 우리교회 메시지를 휴대폰을 통해서 메시지를 듣는 부분을 들으면서 결단하게 되었다고 해요. 그래서 어제도 문답 가운데 말씀을 나누면서 이 말씀이 들려집니까?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 말씀이 들려지면 그 말씀을 통해서 영적인 힘을 얻게 되고 그 영적인 힘을 얻게 되면 그것이 모든 삶의 현장에 나타나게 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님 말씀이 들려지는 것인데 정말로 하나님 말씀이 들려집니까? 하고 물어보니까 말씀이 깨달아지고 들려진다는 거예요. 그러면 끝난 거예요 사실은.. 여러분 그 하나님이 말씀이 들려지고 깨달아진다는 것은 믿어진다라는 것은 그냥 되어지는 것이 아니지요. 사실은 복음의 능력 아니고서는, 하나님의 성령이 내 안에 거하지 않고서는 말씀을 들어도 듣지 못하고, 말씀을 읽어도 깨닫지 못하는 그러한 것인데 이 말씀이 들려진다는 이 축복이 가장 귀중한 축복이고 모든 것이 바로 우리 신앙생활의 시작이 말씀이 들려지는 것에서 시작된다라는 것, 이 말씀이 들려지는 축복은 복음의 눈이, 영적인 눈이 열려져야 되는 것입니다. 지식이 있다고요 세상 적인 똑똑함 가지고, 세상적인 배경가지고 말씀이 들려지고 믿어지는 것이 아니지요. 그래서 우리가 영적인 눈들이 열려져야 진짜 말씀도 믿어지고 말씀을 통해 힘을 얻게 되는데 어떤 영적인 눈들이 열려져야 되느냐?
1. 세례의 의미
먼저,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바로 세례를 받는다는 말과 같은 말인데요,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그냥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신앙생활 하고 있는 것을 봐요. 교회를 종교중의 하나로 나가는 사람들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종교생활이라고 하지요. 또 예수 믿는 것을 취미로 믿는 사람도 또한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 할 때는 그리스도를 나의 주인으로 모시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 찬양대 찬양한 것처럼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에게는 그리스도께서 주인되신다 말씀했습니다. 나의 삶의 근본이 바뀌어지는 것을 가지고 예수 믿는다. 세례 받았다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냥 종교적인 행위를 하는 것, 어떤 그냥 취미로 교회 다니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에, 우리의 인생의 근본이 변화되어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조금 예수 믿음으로 말미암아 착한 사람이 되고 사람이 좀 변했다 그것도 아니예요. 삶의 근본이 바뀌어지는 것이 바로 예수 믿는 것이고, 세례 받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내 인생의 주인이 내가 주인 되어 있었고, 물질이 주인 되어 있었고, 돈이 주인 되어 있었고, 성공이 주인 되어 있었는데 그리스도께서 내 인생의 주인이십니다 이 사실을 의식적으로 결단하고 선포하고 선언하는 것이 바로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들은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나름대로 그들의 인생을 이끌어가는 주인이 있어요. 어떤 사람은 물질이고, 어떤 사람은 꿈이예요. 꿈, 어떤 꿈을 가지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온 생을 다 노력하며 살아가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내 기준, 내 입장들을 가지고 그것이 주인 되어서 살아가고요, 또 어떤 사람은 환경이 주인 되어서 살아가고 또 어떤 사람은 자녀들이 주인 되어 있는 부분들을 봅니다. 어떻든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모든 사람들은 나름대로 주인 되어 있는 것이 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 세례를 받는다 하는 것은 의식적으로 우리가 결단하면서 이제부터 나의 모든 삶의 주인은 그리스도이십니다 라는 사실을 선언하고 선포하는 것이 바로 세례 받는 것입니다. 지난 날 내가 생각했던 것들, 내가 옳다고 믿었던 것들을 다 내려놓고요 내 지식과 내 경험들을 다 내려놓고 그리스도께 그리스도가 주인이니까 이제는 그리스도가 기뻐하시는 그 일을 위해서, 그리스도가 기뻐하시는 그 뜻을 위해서 나의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나아가는 삶이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왜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응답 없는 삶을 살아가느냐? 간단해요. 그리스도가 주인 되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10:5절에 중요한 말씀을 했습니다.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한다 ”했습니다.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서 그리스도에게 복종한다 했어요. 여러분 아직까지 내가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도 내가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고 있다고 하면서도 내 생각, 내 기준들 그대로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내 경험과 내가 가졌던 지식들 그것 가지고 그리스도를 섬기고 나가고 있지 않습니까? 주님은 우리에게 그리스도가 주인 되시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 정말로 그리스도가 여러분 주인 되시도록 우리의 주인됨을 내려놓는 그런 축복의 시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갈 때에 삶의 방법은 달라요.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고 갈 때 다시 말하면 세례를 받은 사람들의 삶의 방법은 따로 있습니다. 그 삶의 방법이 무엇이냐? 로마서6:3~4절에 보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으므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여기에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한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구원받은, 세례 받은 자의 삶이 따로 있다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내 생의 주인 되어질 때에 그때에 내게 눈들이 열려지는데 어떤 눈이 열려지느냐? 먼저 자기 인생에 대한 눈들이 새롭게 열려져요. 아! 나는 하나님의 자녀구나. 내가 믿음으로 담대하게 하나님께 나아가면 되는 것이구나 이 사실에 대한 눈들이 열려지게 되어 있어요. 엡2:1절에 보면 “그는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셨도다”했어요. 여기에서 그는 누구를 말합니까? 바로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이 그리스도는 죄와 허물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말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죄와 허물로 죽은 우리를 살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 하나님의 자녀라는 그 축복가지고 오늘도 담대함으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세례 받은 자에게 주신 삶의 가장 귀한 축복이예요. 나는 비록 연약할 수 있고, 부족할 수 있고, 모자랄 수 있지만 아니예요.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셨어요. 최고의 축복 중에 축복이 무엇이냐?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이예요. 그것 가지고 우리는 담대함으로 믿음의 역사 가운데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가치, 내가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가에 대한 부분들이 열려지는 것입니다. 어떻게 될 때에? 그리스도를 내 주인 삼게 될 때에, 그리스도가 주인 되지 않으니까요 사실은 내 인생에 내가 살려고 몸부림치고 그러니까 내 연약함과 내 부족함 가지고 내가 되니 마니 그렇게 나가고요, 내 자신의 가치들을 놓쳐버리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요, 믿음으로 하나님께 담대함으로 나아갈 수 있는 그 축복 가운데 저와 여러분을 세우신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구원 받은자, 세례 받은 자의 삶이 무엇이냐 ? 오늘 로마서6:4절에 보면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었다”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무엇에 장사되었습니까? 우리의 과거, 죄, 원죄에 대한 부분들, 그로 말미암아 사탄의 운명 가운데 빠졌던 부분, 결국은 지옥 배경 속에 빠졌던 부분들, 그 모든 것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힌 사건과 함께 우리도 함께 거기에서 장사되었습니다. 우리의 모든 원죄와 사탄과 지옥의 모든 배경들이 십자가에서 다 장사되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저와 여러분은 이제는 다른 삶이 약속되어 있는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 생명 가운데 살아갈 수 있는 그 축복된 삶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가지고 생명이라고 말씀하고 있지요. 요한복음 1장에 보면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바로 예수그리스도를 우리의 생명이라고 말씀하고 있어요.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라는 것은 생명을 가진 것을 말하고요, 생명을 가졌다라는 말은 성령이 내 안에 거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그래서 롬8:2절에 보면 “생명의 성령의 법이 ”내가 성령을 소유함으로 말미암아 내 안에 생명이 들어왔고, 그로 말미암아 우리의 삶은, 신앙생활은 뭐냐 바로 그 성령의 인도받는 것이 우리의 삶이예요. 그리고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그 성령께서 정확하게 우리의 모든 현장에 역사하시게 되어있어요. 그것을 가지고 성령의 역사라고 하지요. 이게 우리의 삶이예요. 우리의 모든 과거, 죄, 사단, 지옥배경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바 되었고, 우리의 새로운 생명을 그리스도와 함께 주신 거예요. 그 생명 안에 있는 축복의 비밀을 누리는 것이 바로 저와 여러분의 삶인 것입니다. 이 축복의 비밀이 어디에서 열려지느냐? 그리스도가 주인 되어질 때에 열려지게 되어 있어요. 그 뿐만 아니라 세상에 대한 우리가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날마다 세상 사람들이 죄의 권세아래 어느 누구도 해방되지 못하고 끌려 다니는 부분들 보지요. 그런데 로마서6:6절에 보면 죄의 종으로 살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의의 종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이게 바로 세례 받은 자에게 주신 축복입니다. 지난날에는 우리가 죄에게 끌려 다니고 죄의 종노릇 했는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제는 죄를 이길 수 있는 권세를 주신 거예요. 그래서 의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우리에게 주신 거예요. 그게 바로 구원 받은 자에게,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신 자에게, 세례 받은 자에게 주신 축복이예요. 내 자신이 그렇게 바뀌어졌다는 사실, 이 사실을 기억하고 이 사실을 누리게 되는 우리 모든 하나교회 성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와 더불어 그리스도께서 내게 임함으로 내 자신에 대한 가치만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 보는 눈도 다르게 열려지게 되어 있어요. 우리가 그리스도를 알지 못할 때는 세상이 물질 따라 움직이는 것 같고, 그래서 돈이 다인 줄 알고 돈을 벌기 위해 악착같이 노력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성공하기 위해서. 왜냐? 성공이 다인 줄 알고 살아가기 때문에. 그래서 어떤 면에서 교회 안의 사람들도 보면 물질과 성공에 배여서, 힘, 거기 매여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여러분, 정말 그리스도가 주인 되면 세상 보는 눈이 열리는데 물질이 다가 아니구나, 권력이, 힘이 다가 아니구나. 여러분, 우리가 물질이 다이고 권력이 다이고 힘이 다이면 그것을 따라가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게 다인 줄 알고 오직 돈, 오직 성공 아닙니까? 그래서 결과적으로 큰 영적 문제로 무너지는 것인데 그 미래를 알지 못하고 오직 돈, 지금 눈 앞에 있는 오직 성공을 위해서 달려갑니다. 왜냐? 그게 다인 줄 알기 때문에. 그러나 우리에게는 세상 보는 눈이 다릅니다. 그게 다가 아닙니다. 그 배후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높이고 그리스도를 드러내고 그리스도만 나타내는 것입니다. 왜냐? 모든 역사의 배후에는 돈과 물질이 아니라, 성공과 힘이 아니라 그 배후에 하나님의 역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 붙잡고 그 하나님의 역사를 누리며 살아가는 인생이 바로 구원 받은 자, 세례 받은 자의 삶인 것입니다. 세상 보는 눈만 열릴 뿐만 아니라 삶의 방향도 달라집니다. 그리스도가 주인 될 때 먼저 나 자신의 가치가 새롭게 보이고 세상 보는 눈이 열리고 그와 더불어 우리 삶의 방향이 열리는데 아, 내가 이제까지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노력해왔지만, 달려왔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이구나. 마6:33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해 대해서 가르치면서 주기도문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옵시며.” 나라가 임하도록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의 방향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게 될 때 나 자신에 대한 가치와 세상 보는 눈이 열림과 더불어 우리의 삶의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가 무엇인가에 대한 삶의 방향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누리지 못하니까 성도들이 불신자들에게 종노릇하고 세상에 끌려 다니고 세상의 종노릇합니다. 궁극적으로 말한다면 그리스도가 주인 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가 주인 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정말로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한 가치를 새롭게 보고 세상 보는 눈을 가지고 우리 삶의 방향을 바르게, 우선순위를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데 두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삼는, 그런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왜 매일 그리스도여야만 하는가?
그러면 두 번째로, 왜 그러면 그리스도여야만 하는가? 우리의 모든 매일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여야만 하는가 입니다. 그것을 오늘 본문을 통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여러분, 오늘 그렇게 많은 시간이 없습니다. 짧게 설명을 드릴 텐데 말씀을 듣고 오늘이 지나기 전에 반드시 집에 가셔서 히브리서 9장 오늘 읽은 본문을 다시 한 번 읽어 보십시오. 오늘 히브리서 9장에 보면 성소에 대해 나옵니다. 성소에 대한 부분이 나오는데 거기 사실은 성소가 있고 지성소가 있습니다. 그리고 성소와 지성소, 그것을 가로막고 있는 휘장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성소 안에 언약궤가 있는데 그 언약궤는 금으로 만들어져서 그 언약궤 안에 세 가지가 담겨 있고 그 언약궤에 뚜껑이 있고 그 언약궤를 보면 그룹이, 천사를 말합니다, 두 천사가 서 있는데 두 천사가 언약궤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천사들의 날개, 그 사이를 가리켜서 속죄소라 이야기하고 다른 말로 이야기하면 ‘시은소’라 이야기하고 ‘시은자’라고도 이야기합니다. 잘 들으십시오. 여러분, 언약궤를 다른 말로 하면 증거궤라 하고 법궤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고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법을 받게 되고 그 때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약궤 중심으로 움직여졌습니다. 다시 말해서 성막 중심으로 움직여졌습니다. 그 성막 안에 성소가 있고 지성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지성소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언약궤인데 그 언약궤를 천사들이 지켜보고 있고 그 천사들의 그룹, 날개 사이를 가지고 속죄소, 죄가 속해지는 장소란 말입니다. 시은소라는 말은 베풀 시, 은혜 은 자, 자리 자 자 해서 은혜가 베풀어지는 자리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대제사장들이 1년에 한 번씩 백성들의 죄를 대신해서 짐승을 잡아 피를 담아 가지고 지성소 안에 들어가서 그 언약궤 위에 피를 붓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은혜와 긍휼을 구하며 죄를 용서함을 받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오늘 제가 말씀드리려고 하는 것은 이 언약궤 안에 세 가지가 들어가 있는데 이 세 가지가 무엇이냐 입니다. 이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느냐 입니다. 이 사실을 제대로 안다면 우리는, 우리의 유일한 소망은 그리스도여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있습니다. 이 언약궤 안에 세 가지가 들어있습니다. 뭐가 들어있습니까? 첫 번째로 만나를 담은 항아리입니다. 두 번째로 아론의 싹난 지팡이입니다. 세 번째는 무엇입니까? 두 돌비입니다. 이 세 가지를 하나님께서 넣으라 해서 넣어 놨는데 이것은 광야길을 가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기적을 보이신 하나님이 은혜의 상징입니다만 은혜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인간은 전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의가 없다는 것, 죄뿐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 이 세 가지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속죄소에서 두 천사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가, 긍휼하심이, 자비하심이 넘쳐나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만나 담은 항아리.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면서 먹을 것을 가지고 나오고 물품들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한 달 정도 지나고 나니 신 광야를 거치면서 그들이 원망하고 불평했던 것이 있습니다. 왜 우리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느냐? 먹을 것을 주고 마실 것을 잘 주면 목이 갈하지 않고, 먹을 것을 주면 우리가 하나님을 잘 섬길 것인데 왜 우리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느냐, 모세와 아론을 향해서 원망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를 줍니다. 매일매일 만나를 내리고 또 안식일 전날에는 안식일 것까지 합쳐서 만나를 주었습니다. 그러한 생활이 몇 년 되었느냐? 사십 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그래서 광야길 가는 동안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이 주시는 만나를 가지고 살아오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만나를 통해서 결국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만 그러나 나중에 어떻게 되었느냐?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이 처음에는 만나를 받고 꿀 섞은 과자 같다고 하면서 너무나 기뻐하고 감사했는데 시간이 가면서 그 만나가 질린다고 했습니다. 어느 정도로 이야기했느냐? 민수기 11:5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애굽에 있을 때 값없이 모든 것을 먹었다 했습니다. 여러분, 값없이 아무리 먹어도 그들의 신분은 무엇입니까? 노예입니다. 그런데 그 부분을 이야기하면서 6절에 보면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불평하고 원망하며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이 불신앙으로 가득 차고 있는 부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11:8에 보면 “백성이 두루 다니며 그것을 거두어 맷돌에 갈기도 하며 절구에 찧기도 하고 가마에 삶기도 하여.” 온갖 것을 다 만들어 먹은 것입니다. 그러면서 “ 과자를 만들었으니 그 맛이 기름 섞은 과자 맛 같았더라.” 언제는 꿀 섞은 과자와 같다 해 놓고 지금은 뭐라 합니까? 기름 섞은 과자와 같다 했습니다. 이게 이스라엘 백성이었습니다. 만나를 주면, 먹을 것을 주면 우리가 하나님을 잘 섬길 터인데. 정말 하나님을 잘 섬겼습니까? 아닙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하나님께 대한 불신앙, 불순종에 대한 부분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요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입니다. 우리에게는 뭔가 선한 것이 없습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하나님께서 우리의 의식주 문제를 책임지신다면 내가 하나님을 잘 섬길 것인데. 정말 그럴까요? 아닙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하나님을 향해 악함만 남아 있습니다. 전적인 타락입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축복하셔도 우리 인간은 하나님 앞에 의를 드러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또 한 가지는 아론의 싹난 지팡이입니다. 여러분, 아론의 지팡이에 싹이 났습니다. 이것은 기적입니다. 그런데 왜 아론의 싹난 지팡이에 기적을 행하는 그 역사를 행했느냐, 하나님께서? 성경의 민수기 16장을 보면 레위 지파인 고라와 함께 르우벤 지파의 일당이 다단과, 또 아비람과 온, 이런 사람들이 모세와 아론, 하나님의 사람을 대적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고라 자녀들을, 성경에 보면 17장입니까, 거기 보면 고라 자녀들을 땅을 벌려서 다 삼켜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따르던 지휘관 250명을 불태워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이야기하셨습니다. 너희들 각 지파마다 지팡이 다 내어놓으라. 그래서 지팡이를 다 내어 놓았는데 그 이튿날이 되었습니다. 지팡이를 내어놓으면서 그 지팡이에 이름을 다 썼습니다. 열두 지파가 지팡이를 내어놓으면서 이름을 다 썼는데 그 지팡이에 이름을 다 쓰고 그 이튿날 보니 다른 지팡이에는 싹이 돋지 않았는데 아론의 지팡이에는 싹이 돋았습니다. 그래서 민17:8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튿날 모세가 증거의 장막에 들어가 본즉 레위 집을 위하여 낸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열렸더라.” 여러분,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은 사건, 순이 난 사건도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가 무엇인가를 지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두 돌비, 여러분, 이 돌비는 하나님께로부터 두 번째 받은 돌비에요 하나님의 은혜 주셔가지고. 그런데 첫 번째 받은 돌비를 어떻게 했습니까? 모세가 시내 산에서 돌비를 받아서 내려 올때에 모세가 내려옴을 더딤을 보고 산 아래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론 중심으로 해서 뭐했습니까? 그들이 애굽에서 가지고 나온 금, 고리 이런 것들 가지고 금 송아지 만들어가지고 이것이 애굽에서 너를 인도한 여호와다 그래서 애굽에서 너희를 인도한 신이다. 이것이 여호와의 절일이다.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 숭배에 빠지게 되었죠. 그 모습을 보고 모세가 화가 나가지고 하나님의 분노하심을 가지고 두 돌비를 깨뜨려 버렸어요 그리고 또 다시 은혜로 두 번째 돌비를 주었는데 이 돌비를 바라 볼 때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리는 우상 숭배로 말미암아 불신앙했던 백성들이구나. 깨닫게 되는 것이지요 무엇을 말하느냐 한마디로 말하면 이 세 가지는 광야길을 가는 동안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은혜로 기적을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만은 그러나 인간이 얼마나 의가 없고 하나님 앞에 악한 것인가를, 전적인 타락한 것이 인간 이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속죄소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들을 받는 그런 축복으로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그 내용들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은혜 앞에 아무도 나갈 수 없는데 이 대속의 역사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누구를 보내주셨는가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입니다. 그리스도 오시기 전까지는 제사장들이 날마다 제사 드리기 위해서 짐승을 잡아서 그 피를 가지고 들어가야 합니다. 그중에 특별히 대제사장은 일 년에 한번 대속죄일에 자기의 죄와 백성들의 죄를 속하기 위해서 지성소 안에 들어갑니다. 사실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까지는 하나님께로 나갈 수 있는 길들이 온전하게 열려지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 부분을 일컬어서 8절에 보면, 그렇게 말씀하고 있죠 “성령이 이로써 보이신 것은 첫 장막이 서 있을 동안에는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기 전까지는 하나님께 나갈 수 있는 온전한 길이 열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성소와 지성소를 마고 있는 휘장. 그게 너무 두껍고요 그 휘장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교회사가 들이 이야기하기를 장정 한 300여명이 움직여야 그 휘장들이 움직여 질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휘장이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던 순간에 위에서 아래로 잘라진 겁니다. 찢어진 겁니다. 누가 찢으신 것입니까? 하나님이 찢으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27장 51절에 보면,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날에 이 성소와 지성소에 가로막혀 있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진 겁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하나님께로 나갈수 있는 길을 여신업니다. 히브리서 10장 19-20절에 보십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심으로 말미암아 십자가에 죽인 사건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찢으신 사건이에요. 그로 말미암아 휘장, 하나님께로 나갈 수 있는 길을 여신 것입니다. 우리는 의가 없어요. 전적으로 타락한 인생 그 어떤 인생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어요. 언약궤 안에 있는 세가지를 통해서 우리에게는 전혀 악함만 남아 있다는 것.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근거는 없다 라는 것. 우리는 죄와 허물로 죽어야 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보내시사 그 육체를 십자가에 찢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직접적인 길을 하나님이 여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매일 우리의 소망은 오직 그리스도여야 합니다. 어떤 상황과 어떤 환경 속에서든지 어느 시대 속에서든지 우리의 소망은 유일한 소망은 그리스도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그리스도께서 이사야 53:5절을 성취 했는데요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할렐루야! 여러분 우리에게 유일한 소망은 우리에게 있는 뭐 어떤 근거가 아니고요 우리의 의가 아니고, 우리의 의는 없어요. 오직 그리스도만이 나의 의가 되시는 것입니다. 오늘 세례 받는 분들 꼭 이 부분들 기억하시고요 모든 성도들 또한 날마다 매일의 사건 속에서 왜 그리스도여야만 되는가 이 사실 붙잡고 소망 없는 세상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참 소망 되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현장을 살리는 전도자들로 쓰임 받는 귀한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8년 3월 25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유일한 소망 - 그리스도
(히9:1-10)
서론: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르게 살고, 열심히 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복음의 눈, 영적인 눈이 먼저 열려져야 합니다(세상, 현장, 현실을 봐야). 그 눈을 가지고 볼 때 유일한 소망이 그리스도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신앙생활의 시작은 말씀이 들려지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지식으로 말씀이 들려지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눈이 열려져야 들려지게 됩니다.
1. 세례의 의미
가. 예수를 믿는다 - 인생의 주인을 바꾸는 것
1) 예수를 믿는 것 - 종교 행위나 취미가 아님, 근본이 변화
2) 모든 사람은 섬기는 주인이 있음 - 물질, 꿈, 기준, 입장, 환경
3) 그리스도가 나의 주인 - 모든 생각, 기준을 내려 놓아야 함(고후10:5)
나. 세례 받은 자의 삶(롬6:3-4)
1) 하나님 자녀라는 사실에 대한 눈이 열려짐(엡2:1) -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담대하게 나아가면 됨
2) 죄, 사단, 지옥의 배경들을 십자가에서 해결
3) 성령의 내주, 인도, 역사를 누림
4) 죄를 이김으로 의의 사람으로 살아감(롬6:6)
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
1) 돈, 권력, 성공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감 - 모든 것이 아니다는 것을 보게 됨
2) 삶의 방향 - 그리스도를 드러내고 나타냄(마6:33)
2. 왜 매일 그리스도여야만 하는가?
가. 언약궤 - 모든 인생은 하나님을 섬기고 바라 봐야함
1) 만나 담은 항아리 - 광야길 가운데 은혜를 주셨지만 날마다 불평, 불만 속에 살아감(인간 속에는 의가 없음을 말씀)
2) 아론의 싹난 지팡이(민17:8) - 기적의 상징이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말씀
3) 두 돌비 - 불신앙 할 수 밖에 없는 민족임을 깨닫도록 함
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심
1) 대제사장이 날마다 짐승을 잡아서 제사를 지냄
2) 하나님께 나갈 온전한 길이 열려지지 않음(히9:8)
3)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그 날에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짐(마27:51) - 직접 길을 여심(히10:19-20)
결론: 날마다 우리의 소망은 그리스도여야만 합니다.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의가 됩니다. 매순간 왜 그리스도여야만 하는가?를 붙잡고 참 소망 되신 그리스도를 붙잡고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 기도제목
● 말씀실현(실천사항)
● 전도대상자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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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4 | 전환점을 이룬 안디옥 선교 | 행11:19-30 | 2025-04-27 | |
1483 | 우리에게 주시는 영원한 메시지 | 고전15:1-11 | 2025-04-20 | |
1482 | 새로운 싸움을 위하여 | 삿7:9-18 | 2025-04-13 | |
1481 | 날마다 영적싸움에 승리하라 | 삿7:1-8 | 2025-04-06 | |
1480 | 이 시대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해답 | 삿4:1-10 | 2025-03-30 | |
1479 | 하나님이 쓰시는 기준 | 삿3:12-23 | 2025-03-23 | |
1478 |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 삿3:7-11 | 2025-03-16 | |
1477 |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 삿2:6-10 | 2025-03-09 | |
1476 |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 삿1:1-7 | 2025-03-02 | |
1475 |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 단12:1-4 | 2025-02-23 | |
1474 |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 단11:28-39 | 2025-02-16 | |
1473 |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 단10:10-21 | 2025-02-09 | |
1472 |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 단9:20-24 | 2025-02-02 | |
1471 |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 단8:15-27 | 2025-01-26 | |
1470 |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 단7:9-14 | 2025-0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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