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리지 않는 방향-예수를 바라보라
2018-01-07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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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7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틀리지 않는 방향-예수를 바라보라”
(히12:1~2)
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12:1~2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예수를 바라보십시다. 영신예배 때 우리가 새해 인사를 나누었습니다마는 오늘 1월 첫 주일입니다. 영신예배 못 나오신 분들도 계시고 또 인사는 나누면 나눌수록 좋잖아요. 그래서 새해 인사 한번 하십시다. 받은 축복을 누리십시요. 새해 복 많이 누리십시오. 이 한해 하나님이 주신 복들을 많이 찾아 누리는 그런 축복된 한 해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 나그네가 길을 가다가 너무 피곤해서 지나가는 마차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마차를 타고 마부에게 물었습니다. 여기에서 예루살렘까지 얼마나 걸립니까? 마부가 30분이면 됩니다. 이야기를 했어요. 그래서 타고 가다가 이 나그네가 너무 피곤해서 잠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왔겠다 싶어 눈을 떴는데 한 30분은 지났겠다 싶어서 다시 마부에게 물었습니다. 예루살렘 다 왔지 않습니까? 얼마 남았습니까? 이야기 하니까 한 시간 남았습니다. 아니 30분이면 간다고 했는데 어떻게 한 시간 남았습니까? 이 마차는 예루살렘 반대로 가는 마차입니다.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 합니다. 우리 신앙생활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우리 인생도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여러분 시중에 외국인 저자로 나오는 책 제목입니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라는 책 제목이 나와 았습니다. 여러분 어떤 면에서 우리 현실에 상황과는 모순되어지는 그런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시간 전쟁의 시대이지요. 그래서 특별히 속도가 곧 삶의 살아가는 모든 부분의 중심에 서있는 그런 시대가 지금 우리의 시대입니다. 그래서 빌게이츠는 이렇게 이야기 했어요. 큰 것이 작은 것을 잡아먹는 시대가 아니라 빠른 것이 느린 것을 잡아먹는 시대이다. 그만큼 속도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정말로 우리의 인생을 놓고 보고 우리의 신앙을 놓고 본다면 속도 이전에 중요한 것이 있다면 방향입니다. 특별히 우리 신앙생활에 어떻게 우리가 방향을 가지고 살아가느냐 너무나 중요합니다. 틀린 방향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아무리 열심을 내고 아무리 부지런하게 살아도 결국은 아닌 겁니다. 그러나 방향만 제대로 잡으면 늦게 가도 가게 되어 있고, 돌아가도 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한해를 시작하면서 우리가 틀리지 않는 방향을 붙잡아야 합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를 바라보는 겁니다. 특별히 우리가 방향을 어떻게 잡느냐? 여러분 복음 안에 있으면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어지고 날마다 복음 안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어지면 그 속에서 방향들이 나오게 되어 있어요. 그러면 그 다음부터 우리의 신앙생활은 수월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이 이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해서 방황하고 갈등하고 몸부림치게 되는 것을 보게 되어요. 오늘 1월 첫 주일인데 1월 첫 주일부터 복음의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길 바라고요, 그러면 그 속에서 매일 매일 매주간 살아가야 될 방향들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그 속에서의 우리의 신앙생활은 그 다음부터는 수월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시간들이 매 주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특별히 이번 한해는 히브리서를 중심으로 해서 먼저 말씀을 같이 나누어보고자 합니다. 특별히 히브리서는 저자가 누구다 라고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자를 미상으로 이야기하는데 그러나 많은 신학자들이 이 히브리서를 기록한 저자는 바울이다 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신학자들 10명중에 8명은 이 히브리서는 바울이 기록했다라고 많은 분들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히브리서는 언제 기록되었느냐하면 AD65년경에서 1세기이지요. AD65년경에서 70년 사이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 히브리서의 주제가 무엇이냐 하면은 여러분 어느 책이든 주제가 있잖아요. 그 주제가 무엇이냐 하면 그리스도의 우월성입니다. 그리스도가 모든 것에서 뛰어나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 히브리서입니다. 이런 부분들 가지고 매주 말씀을 정리해 나가시고요. 특별히 히브리서의 주제성구가 있다면 우리가 히브리서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히브리서 11장을 잘 압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이렇게 하면서 줄줄 외우기도 하고요, 믿음의 장이다 라고 이야기하면서 잘 알고 있는데 그러나 히브리서의 주제성구는 히브리서 11장이 아니라 히브리서12:1~2절 오늘 읽은 본문의 말씀이 히브리서의 주제성구입니다. 그러면 히브리서 기자가 왜 이 성경을 기록했느냐 기록 목적에 대해서 우리가 먼저 좀 정리를 해야 합니다. 그 당시에 유대교에서 개신교로 돌아온 개종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복음이 증거 되어지면서 유대교에서 개신교로 돌아온 사람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 사람들이 실제로 개종하고 나서 많은 핍박과 어려움을 받게 되니까 편지를 써서 그들에게 위로하기 위해서 보낸 편지가 히브리서입니다. 그리고 또한 개종하고 돌아왔지만 사실 또 옛날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어요. 몸은 돌아가지 않지만 생각과 모든 사상들이 옛날로 자꾸 돌아가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이 복음이 참된 우월한 것이 아니냐 이 복음만큼 우월한 것이 어디 있느냐? 그래서 히브리서 전체를 살펴보면 13번이나 되는 곳에서 복음의 우월성에 대한, 그리스도의 우월성에 대한 부분들을 계속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복음이, 참된 이 복음이 우월한 것이다라는 것을 계속 강조하고 있어요. 왜 자꾸 옛날로 돌아가려고 하느냐 이 복음보다 더 귀한 것이 어디 있느냐? 복음의 우월성에 대한 부분들을 이야기하면서 그러면서 또 사실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뭔가 모르게 시간가면 갈수록 자기도 모르게 다른 것들을 자꾸 누리려고 하니까 거기에 대해서 진짜 그리스도만이 우리가 누려야 될 부분들이라는 부분들을 이야기하면서 사실은 예수를 잘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보내진 편지가 히브리서예요. 이 부분들을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어야 앞으로 히브리서 13장까지 한 장 한 장 정리해 나갈 때에 그 배경들을 가지고 있으면 말씀들을 이해하기가 더욱더 쉬워지지요. 그래서 나름대로 예수를 잘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보내진 편지이고, 핍박받고 환란 받는 사람들에게 위로의 편지를 보낸 것이 바로 히브리서입니다. 특별히 지금 이 시대가 어떤 시대입니까? 오늘 우리에게 히브리서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왜냐? 지금 현장에는 복음 필요없다 라고 하는 시대입니다. 기독교 필요없다라고 이야기 하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대체 종교가 나와야 된다라고 이야기 하고 있어요. 그게 뉴에이지 운동입니다. 아니 왜 사람을 그렇게 나약하게 만드느냐 그래서 니가 하나님이고 니가 신이 될 수 있다 기독교는 사회악이다 필요없는 것이다 대체종교가 나와야 된다 그러면서 들고 나온 것이 뉴 에이지 운동입니다. 니가 스스로 하나님 될 수 있고, 니가 얼마나 위대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아라 이게 바로 뉴에이지 운동입니다. 그리고 또한 보십시오. 교회 안에서 세상은 그렇다치고 교회 안에서 복음이 증거 되어야 하는데 복음의 가치를 모르니까 교회 속에서 자꾸 다른 것을 말해요. 그러한 시대 아닙니까? 지금.. 여러분 진짜 복음 알면 복음만 말하게 되어 있고 복음 알면 복음만 전하게 되어 있습니다. 복음을 모르니까 알지 못하니까 자꾸 다른 것을 바라보는데요, 진짜 복음을 알면 복음만 말하게 되어 있어요. 저와 여러분, 우리 하나교회는 이 시대 속에서 진짜 복음의 가치를 깨닫고 세상을 향해서 복음만 말하는 그런 교회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저는 이 한 해 시작하면서 제가 가진 기도제목 중의 하나가 뭐냐 하면 정말로 강단을 통해서 정확한 복음을 선포하게 하옵소서. 제 기도제목으로 잡았어요. 그리고 우리 모든 부교역자들도 이 강단을 통해서 누구든지 하나교회에 들어오면 정확한 복음을 듣고 돌아갈 수 있도록 정확한 복음이 전달되어지는 강단이 되게 하옵소서.이 기도제목을 잡았어요. 여러분 가면 갈수록 이 시대 속에서 복음이 복음됨을 놓쳐버리고요, 복음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 있는 양 그것들을 주장하는 시대가 지금 시대가 되어버린 겁니다. 그러니까 사회를 책임질 수 없는 것이고요, 이 땅에 일어나는 재앙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은 이 시대 속에 진짜 복음의 비밀을 맛봄으로 말미암아 복음의 우월함을 증거 하는 증인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스도가 우월한 것인 것을 증거하는 그런 증인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틀리지 않는 방향을 잡아야 합니다. 그게 뭐냐? “틀리지 않는 방향 - 예수를 바라보라”입니다.
1. 믿음의 경주를 하라
그래서 먼저 우리가 붙잡을 것은 정말 우리가 예수를 바라봄으로 말미암아 믿음의 경주를 해야 합니다. 믿음의 경주를 해야 합니다. 특별히 여러분 히브리서12:1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지요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은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그러면서 1절을 시작할 때 이러므로 라고 시작했어요. 여기에 이러므로 라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앞의 11장의 내용을 그대로 받으면서 하는 말이예요. 그러면 11장의 내용은 무엇이냐? 사실은 구약의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가지고 승리한 사실을 체험한 증인이라는 사실을 딱 내 놓고 있어요. 히브리서 11장의 구약의 믿음의 선진들을 쭉 이야기 하면서 이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붙잡고 현장에서 승리한 증인들이다 그 사실을 딱 내어놓으면서 그러므로,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이미 그들이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되어 있으니까 그 사실을 붙잡고 우리가 믿음의 경주를 해야 될 것이 아니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구약 시대에 승리했던 그 구약의 믿음의 선진들과 1세기에, 지금 이 성경이 기록된 1세기에 신약시대의 사람들 또 오늘까지 차이가 무엇일까요? 환란 받고 핍박받는 모든 환경들, 그 조건은 같은 조건입니다. 그런데 분명히 차이가 있는데 그 차이는 뭐냐 하면 믿음에는 차이가 나요. 믿음에는 구약시대에 승리했던 믿음의 선진들, 그들이 가진 믿음과 함께 오늘 우리는, 또 1세기를 살았던 성도들의 믿음은 차이가 나요. 어떤 데서 차이가 나느냐? 구약시대의 승리했던 믿음의 선진들은 오실 메시야를 붙잡고 오실 그리스도를 약속으로 붙잡고 승리한 사람들이예요. 오실 메시야를 약속으로 붙잡고 그 믿음 가지고 승리한 사람들이 구약시대 사람들이예요. 그렇다면 신약시대와 지금 오늘 우리는 오실 메시야가 아니라 오신 그리스도를 보고, 듣고, 만진 사람들입니다. 그러면서 이 히브리서 기자가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는 것은 누가 더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느냐 입니다. 여러분 환난 받고 핍박받는 모든 환경들은 같아요. 그러나 믿음에는 차이가 있는데 구약시대에는 약속을 잡고 믿음으로 승리했던 사람들이고 그 약속의 실재가 오셨잖아요. 신약에, 그 오신 그 그리스도를 붙잡고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 어느 사람들이, 어디에 사람들이 더 훌륭한 조건들을 가지고 있느냐 이 말이예요. 여러분 모세가 율법에서 말한 그 율법의 실재이신 그리스도가 오셨어요. 그래서 여기에 히브리서 성경 쭉 읽어보면 더 나은 제사 그리스도다. 더 나은 제사장 그리스도다. 더 나은 제물 그리스도다.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있어요. 구약의 제사, 제물, 제사장 나오잖아요. 그 제물, 제사장, 제사에 대한 부분들을 이야기 하면서 계속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비교해서 이야기하면서 그렇다면 너희들이 구약시대의 사람들과 지금 여러분이 어느 시대 사람들이 더 복 받았느냐? 이 말입니다. 여러분 어느 시대의 사람들이 더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까? 네. 맞습니다. 신약시대와 지금 오늘 우리가 더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미 허다한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 약속만 잡고도 승리한 그 사람들이 증인으로 둘러서 있는 그 속에서 우리가 오신 그리스도를 붙잡고 무엇을 해야 되느냐? 믿음의 경주를 해야 한다 이 말을 하는 겁니다. 여러분 정말로 오신 그리스도를 만나고 체험하고 정말로 그 사실을 누리는 그런 축복 속에 들어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서 거기에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라. 믿음의 경주를 하기 위해서는 걸림돌이 되는 모든 부분을 벗어 버리라는 것이예요. 여러분 경기를 하기 위해서 운동선수들은 될 수 있는 대로 공기의 저항력을 받지 않기 위해서 모든 것 다 벗어버립니다. 수영 선수들을 보세요. 수영복과 더불어 수영모를 쓰잖아요. 그것이 그냥 쓰는 것이 아닙니다. 공기의 저항력을 받지 않기 위해서, 물의 저항력을 받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마라톤 선수, 육상 선수들을 보면 털까지 다 민다고 합니다. 털이 뭐 그리 중요한 영향을 주느냐? 아닙니다. 그것이 공기의 저항력을 받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공기의 저항력을 막기 위해서 모든 털까지 다 밀어버린다는 거예요.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경기를 하기 위해서 모든 무거운 것과 또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라. 이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우리 안에 나도 모르게 자기를 합리화 시키는 부분들, 그 죄 된 부분들을 벗어버리라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는 창세기3장과 6장과 11장의 배경 그 영향 속에 있기 때문에 문제와 사건들 생기면 어디로 돌아가느냐 전부다 자기를 합리화 시켜 나가요. 나 중심이 되어있기 때문에, 자기를 합리화 시키면서 나와요. 이런 모든 것들을 벗어버리라는 거예요. 특별히 여기에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라.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참 제사장으로 오셔서 저와 여러분이 해결할 수 없는 죄의 문제를 십자가에서 완전히 해결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그래서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켰습니다. 단순히 해방시켰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이제는 죄의 권세아래 예전에는 끌려갔는데 죄가 힘이 있어서 우리도 모르게 원치 않지만 죄의 권세아래 끌려갔는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제는 죄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어마어마한 권세가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보면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라 했잖아요. 무슨 말입니까? 우리에게는 죄를 이길 수 있는 권세가 그리스도 이름으로 주어졌기 때문에 그 부분들을 떨쳐버리고 영적인 싸움을 싸우고 거기에 믿음의 경주를 하라 이 말입니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뭐라고 했느냐?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라, 경주하되 인내로써 여기에서 인내는 뭐냐 하면 끝까지 견디고 참는 것을 이야기해요. 버티는 것을 이야기해요. 3절에 오늘 읽지는 않았습니다마는 자기에게 거역한 이를,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여기에 참다 라는 말과 같은 말이 인내라는 말입니다. 다른 표현에 의하면 바울의 서신 서에 보면 너희가 믿음에 굳게 서서 이런 말이 있지요. 굳게 서다 이 말과 참다라는 말과 인내라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 어떤 목사님은 신앙생활은 뭐냐? 버티고 견디는 것이다 했어요. 우리는 문제만 당하면 좌절하고 실망하고 넘어지고요, 포기하고 나가잖아요. 신앙생활은 뭐냐? 버티고 견디는 것이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그 자리에서 믿음의 역사를 지금 당장 증거가 일어나지 않는다할지라도 그것을 붙잡고 견디고, 그것을 붙잡고 버티는 겁니다. 그게 승리하는 길인 것을 경주 속에서 가장 중요한 승리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어요. 여러분 로마서1:17절에 보면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이렇게 말씀하셨지요. 그 말씀도 원래는 오직 의인은 버팀으로 견딤으로 말미암아 산다 라는 사실을, 결국은 승리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한해 정말로 믿음의 경주를 하십시다. 그 믿음의 경주를 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분 정말로 이미 주신 증거를 예수가 바로 그리스도라는 증거를 붙잡고요, 그리고 모든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자기 합리화 시키는 모든 것들을 벗어버리고 그러면서 우리의 주어진 자리에서 약속 붙잡고 미련하다 말한다 할지라도 그 자리에서 버티고 견딤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주시는 승리의 축복을 누리게 되시길 주의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예수를 바라보라 - 올바른 방향(승리, 응답)
그 다음 두 번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음의 경주를 함에 있어서 방향이 올발라야 합니다. 틀린 방향을 가지고 경주를 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올바른 방향을 잡게 되면 승리와 그에 대한 응답들이 오게 되어 있는데 여러분, 실패했다 할지라도 넘어졌다 할지라도 그 자리에서 예수를 바라봅시다. 그리스도를 바라봅시다. 왜냐? 그리스도는 승리했습니다. 그리스도는 사단의, 흑암의 권세를 꺾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날마다 우리가 있는 모든 자리에서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누구를 바라보라고요? 예수를 바라보라고요. 다른 말로 하면 그리스도를 바라봅시다. 그러면 넘어졌다 할지라도 무너졌다 할지라도 실패했다 할지라도 진짜 그리스도 바라보면 새 힘을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 외에 다른 것을 바라보면 잠시 잠깐 새 힘을 얻는 것 같고 잠시 잠깐 우리에게 유익함을 주는 것 같고 잠시 잠깐 우리에게 행복을 주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결국은 한계가 오고 한계 이후에 다른 문제들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힘을 얻어야 하는 존재입니다. 물고기는 물 속에 살아야 합니다. 나무는 땅에 뿌리를 내리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 형상 따라 지음 받았기 때문에 오직 하나님 바라보며 살아갈 때 하나님 주신 힘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살아가면서 무언가 힘이 빠졌다, 좌절하고 뭔가 연약하고 힘이 빠졌다,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될 때 환경이 어떻든지간에 하나님은 사람들이 알 수 없는 새 힘을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왜 우리가 자꾸 다른 것을 바라보느냐? 힘 빠진 것을 알면서, 체험하면서도 또 그것을 바라봅니다. 또 바라봅니다. 왜 그러냐? 우리 안에 이미 각인되어버렸습니다. 여러분, 사람에게 무엇이 담겨 있느냐에 따라서 그에 따라 보게 됩니다. 무엇에 관심 있느냐에 따라서 보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 안에 있는 각인된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 까지고 보거든요. 그러니까 세상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창세기 3장, 6장, 11장, 나를 보고 돈 바라보고 물질 보고 성공 바라보고 자식 바라보고 사람 바라보고 그러니까 가면 갈수록 다른 것을 쳐다보니까 힘이 빠질 수밖에요. 이번 한 주간, 또 올 한 해 진짜 올바른 방향, 그리스도만 바라봅시다. 이 그리스도만 바라볼 이유가 뭐냐? 무엇 때문에 이 그리스도만 바라보아야 하느냐? 여러분, 2절에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신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 믿음의 주란 말은 믿음의 시작이란 말입니다. 믿음의 창시자란 말입니다. 그리고 온전케 하신다는 말은 믿음의 끝이란 말입니다. 믿음을 시작하신 이, 주님이시고 믿음을 끝내시는 것이 주님이시라는 것. 믿음의 창시자가 주님이시고 믿음을 끝내시는 것이 주님이시라는 것. 신약 성경의 빌립보 1장 6절에서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했습니다. 누가 이루십니까? 누가 시작하셨습니까? 하나님이 시작하시고 하나님이 끝낸다는 사실입니다. 이게 믿음입니다. 우리가 그 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잘하고 못하고, 내가 뭔가 힘 있고, 아닙니다. 연약해도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이 이루시는 그 속에 있으면 하나님이 열심히 나를 만들어 가시게 되어 있습니다. 그게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이 말입니다. 여러분, 한 예를 들어봅시다. 아브라함. 믿음의 조상이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원래 아브라함이 불신앙하는 이방인이었습니다. 갈대아 우르에서 우상숭배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불러내셨습니다. 그리고 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의 흔적들을 한 번 살펴 봅시다. 넘어지고 무너지고 거짓말하고 속이고. 아내를 속이고, 누이라고 속였지 않습니까? 또 아내를 팔아버리고. 기다리지 못하고 그래서 이스마엘을 낳고. 기다리지 못하고. 거짓말하고 속이고. 그러면서 또 불신앙하고. 그게 아브라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2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네 사랑하는 네 독자 네 아들 이삭을 바치라 할 때에, 번제로 바치라 할 때에 그 때 아브라함은 모든 이유, 조건 다 버리고 하나님 앞에 이삭을 바쳤습니다. 누가 하신 것입니까? 누가 하신 겁니까?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거예요. 그렇습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이 믿음이 좋아서 믿음의 조상이 아니라 믿음이 얼마나 하나님의 작품인가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아브라함이기 때문에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이 실재적으로 무엇인가를 아브라함만큼 잘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하나부터 끝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게 하신 것입니다. 모세를 봅시다. 모세는 40년 동안 애굽의 왕궁에서 문무를 겸비했습니다. 그래서 뭔가 자기가 해보겠다고 칼을 들고 나와서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게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모세는 저 미디안 광야에 던져지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한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소 치고 양 치는 일이었습니다.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 없고 대화할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사실은 모세가 모국어도 잊어버렸습니다. 어디서 알 수 있느냐?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셔서 바로 왕 앞에 가라 했을 때 모세가 변명했던 것이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하나이다, 모세가 변명했습니다. 이 말은 사실은 저 미디안 광야에서 양 치고 소 치면서 대화할 상대도 없는 그 가운데서 사실 말조차 잊어버린 그런 상황 속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모세를 하나님께서 불러내셔서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타지 않는 나무를 보여주시면서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면서 모세의 손에 지팡이를 가지고 나가는 그 걸음에 하나님께서 결국은 네가 이 마른 막대기 같지만 내가 너를 들어서 이렇게 쓰시겠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입니다. 결국은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해내는 이 엄청난 축복의 역사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바로 하나님이 시작하시고 하나님이 끝내신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라 했습니다. 우리가 왜 예수를 바라보느냐?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믿음을 시작하시고 또 끝내시는 이시니까. 여러분의 수준, 상황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다음에 나오는 것이 뭡니까? 그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했다, 왜 예수를 바라보아야 하는가, 두 번째 이유입니다. 첫 번째는 믿음을 시작하게 하시는 이고 또 믿음을 끝내시는 이시기 때문에. 두 번째 이유는 뭐냐? 그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이 뭡니까? 바로 구원의 역사와 함께 구원 속에 있는 어마어마한 생명의 축복입니다. 그 기쁨. 그 앞에 있는 기쁨이 뭐냐? 구원과 함께 구원 속에 있는 생명 안에 있는 풍성한 비밀, 그것을 위해서 하신 일이 뭐냐?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했다, 여기에 중요한 것은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했다 했습니다. 여러분, 신약 시대에 이 당시에 로마 지배하에 있을 때에 죽음보다도 더 고통스러운 일이 있다면, 더 비참한 일이 있다면 십자가 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구원과 구원 안에 있는 어마어마한 생명의 축복을 누리게 하기 위해서 부끄러운 십자가를 주님께서 지셨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나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대하게 되면 우리의 연약함, 우리의 무능함, 상관없습니다. 넘어졌습니까? 일어나면 됩니다. 열 번 무너졌습니까? 일어나면 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이 우리에 대한 자기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는, 우리에게 구원과 구원 속에 있는 어마어마한 생명의 축복을 주시기 위해서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는, 내가 뭔데, 우리가 무엇인데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서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고 이 구원의 축복을 주셨느냐 이 말입니다. 여러분, 오늘 힘이 빠진 사람들 있습니까? 무너져 있는 사람들 있습니까? 가 모르게 실패한 사람들 있습니까? 예수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 한 해 진짜 우리가 우리의 모든 삶 속에서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제자가 되시고 그 제자의 축복 가운데 모든 현장을 살리는 하나교회 모든 성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경주를 위한 결단 - 세가지
세 번째, 결론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경주를 위한 결단 세 가지입니다. 오늘 청지기 주일입니다. 제가 다른 때는 이 설교를 안 하지만 청지기 주일마다 똑같은 설교를 계속합니다. 그게 뭐냐?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내 자신이 결단되고, 여러분만이 아니라 내 자신이 결단되고 내가 은혜 받아야 할 부분들이기 때문에. 세 가지 결단을 하시기 바랍니다. 청지기로서. 어떤 결단을 하느냐? 먼저, 예배에 대한 결단을 하십시오. 두 번째로 훈련에 대한 결단을 하십시오. 세 번째로 헌금에 대한 결단을 하십시오. 여러분, 우리에게 있어서 예배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사람들에 있어서 예배는 복음의 능력을 덧입는 가장 중요한 시간이 예배 시간입니다. 이 예배의 축복을 놓치지 않기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우리나 우리 후대들이 영적 문제 때문에 실패하지 않아야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형상 따라 지음 받은 하나님의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하나님께 예배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우리도 모르게 일어나는 영적 문제, 재앙 속에서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예배의 축복을 누리게 될 때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하나님의 성령께서 역사하고 우리 배후에 역사하는 모든 재앙이 무너지는 시간이 언제냐? 예배시간입니다. 여러분, 사무엘상 7장에 보면 사무엘을 중심으로 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번제 드릴 때에 불레셋이 공격해왔다가 하나님께서 큰 우레를 발하심으로 말미암아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재앙을 막으신 것입니다. 작년에 우리가 보았지 않습니까? 창세기 35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세겜에 머무르면서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하나님께 결단을 요구합니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올라가라. 그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야곱이 결단합니다. 이방신상 다 버리고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그 때에 하나님이 35장 5절에 보면 사면 고을을 어둡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배가 아무것도 아닌 줄 아는데,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있어서 가장 귀중한 축복이 뭐냐? 예배입니다. 복음의 능력을 힘입는 시간이 언제냐? 예배입니다. 악한 사단이 이 사실을 알고 가장 우리에게 무엇을 빼앗아가기를 원하느냐? 예배의 축복을 빼앗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4장에 보면 예수님이 광야에서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첫시험 받을 때에 시험 중에 뭐라 합니까? 내게 엎드려 절하라, 내가 네게 모든 것을 다 주리라. 무슨 말입니까? 예배의 축복을 빼앗아가기를 원하는 사단의 소원입니다. 여기에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 예배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 주시는 말씀을 붙잡고 그 말씀 붙잡을 때마다 한 주간 현장에 대한 눈이 열리게 됩니다. 그 눈 열리고 현장에 가야 직장 생활, 사업하고, 학교에서 학업하고, 그러니까 눈이 열린 채로 가니까 승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일은 어느 정도 승리하면 되느냐? 한주간 현장이 눈에 들어올 정도로, 눈에 보일 정도로, 그렇게 큰 은혜의 역사를 입는, 그런 예배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제 어떤 집사님 한 분이 목사님, 현장에 나가니까 말씀과 현장이 너무 안 맞아지는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자기는 말씀과 현장에 안 맞아지는데 그 때 열심히 하다가 그냥 하나님 앞에 말씀 속에 숨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잘못된 게 아닙니까, 뭔가 회피하는 것 같고. 그래서 제가 이야기했습니다. 아닙니다, 잘못된 게 아니고 그게 올바른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과 현장이 안 맞다면 그게 정상입니다. 왜냐? 여러분, 영적인 비밀과 영적인 축복을 알면 알수록 말씀과 현장이 맞아지게 됩니다. 말씀과 현장이 맞아지는 것은 영적 비밀과 영적 축복을 누릴수록 말씀과 현장이 맞아집니다. 그리고 말씀 속에서 현장이 다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인도 받는 걸음 속에 실패하지 않는 삶이 됩니다.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이 말씀을 통해서 현장의 눈이 열립니다. 그 눈이 열리고 현장에 가야 속지 않고 문제 속에 빠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행위 중에 가장 귀중한 행위가 무엇이냐? 예배 행위입니다. 특별히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지킨다고 생각하는데 아닙니다. 결국 알고 보면 예베가 나를 지키고 나의 삶을 지키고 나의 모든 것을 보호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배가. 여러분, 그래서 이 한 해, 아니, 우리 교회에 평생 주제로 주신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 주보에 보면 제일 앞에 나와 있는 부분이 있는데, 우리는 잊어버리고 살아갈 수 있는데 예배로 뭐요? 영육이 성공하는 것입니다. 그게 우리 인생의 예배입니다. 그래서 진짜 복음의 능력을 힘입는, 이 예배의 축복을 놓치지 말고 이에 대한 결단이 여러분이 한 해를 시작하면서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입니다. 훈련입니다. 여러분, 훈련. 우리 교회 이런저런 훈련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훈련을 위해서 많은 예산을 투자합니다. 작년에도 결산하면서 우리 재정국장 장로님이 목사님, 훈련비, 전도훈련비, 전도비가 너무 많이 지출되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실컷 웃었습니다. 그만큼 성도들이 많이 훈련 속에 참여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이 훈련은 그냥 훈련이 아닙니다. 우리의 미래를 최고의 것으로 투자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이 훈련입니다. 우리는 훈련이 바로 응답입니다. 우리에게 진짜, 여러분,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구원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구원 받는 사람이 있고 구원 받은 사람 중에 복음의 비밀을 아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복음의 비밀을 아는 사람 중에 또 진짜 전도자의 삶을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제가 지금 구분해서 말씀드렸습니다. 그냥 단순히 예수 믿고 나서 구원 받았다, 거기 그치는 사람이 있고 구원 받은 사람들 중에 복음의 비밀을 아는 사람 있습니다. 그리고 복음의 비밀을 아는 사람 중에 진짜 전도자의 삶으로 참된 축복을 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는 어디에 속하는가? 우리 자신들을 한번 점검해 봅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가장 큰 소원이 뭐냐? 전도자의 삶에 저와 여러분이 있기를 원하십니다.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이 전도하든지 전도하는 것들의 배경이 되든지, 이게 전부 다 전도자의 삶인데 이 삶을 하나님이 가장 귀하게 여기고 가장 축복되게 보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전도자의 삶을 사는데 있어서 가장 큰 장애가 있다면 다른 데 있는 게 아닙니다. 내 안에 복음 외에 다른 것, 틀린 것, 망할 것이 각인되어 있는 것입니다. 뿌리내린 것, 체질된 것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복음 외에 다른 것, 망할 것, 틀린 것들을 치유하고 복음으로 각인, 뿌리, 체질되는 것이 무엇이냐? 훈련입니다. 그리고 훈련 속에 들어갈 때마다 그 속에서 나도 모르게 복음에 각인되므로 각인 된 만큼 응답이 나오고 복음에 뿌리내린 만큼 열매가 맺히고. 마치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뿌리내릴 때 그에 따라 열매가 저절로 나오는 것처럼 복음에 뿌리내릴 때마다 열매가 나오고 복음이 체질도면 그게 바로 전도자의 삶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 축복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날마다 날마다 훈련하는 것이고 이 훈련을 위해서 많은 재정을 투자해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축복되게 인도받을 수 있도록 그렇게 교회 앞에서 인도해 나가시는 것입니다. 이 한 해도 우리가 훈련 속에 있읍시다. 저는 제 마음에 결단한 것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내가 어떤 일이 있다 할지라도, 천재지변, 특별한 상황 외에는 훈련 받는 그 자리에 내가 항상 있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저는 훈련 받는 그 자리 그 자리마다 응답으로 받고 누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훈련에 대한 결단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전도, 선교,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이 일에 있어서 드려지는 예배 행위가 헌금입니다. 그냥 우리가 헌금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전도, 선교, 세계복음화,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여기에 드려지는 예배 행위가 헌금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헌금에 대한 결단들이 여러분에게 이 한 해를 시작하면서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건축헌금과 선교헌금에 대한 작정이 되어져야 합니다만 여러분, 먼저 여러분 헌금에 대한 부분들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드림을 통해서 축복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드리는 만큼 축복하시는 것이 아니라 드리는 그 믿음 가지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 앞에 모든 부와 귀가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축복은, 근본적으로 아셔야 할 것은 위로부터 주시는 축복입니다. 믿습니까? 역대상 29장에 보면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는다고 다윗이 고백했습니다. 우리의 모든 부와 귀는 주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축복을 우리가 누리기 위해서는 먼저 네 가지 헌금에 대한 결단들을 해야 하는데 첫 번째입니다. 여러분, 십일조입니다. 십일조를 여러분의 언약으로 붙잡고 십일조 하십시오.그냥 십일조 하지 마시고 어떤 언약을 붙잡느냐? 나와 우리 자녀들이 드리는 십일조로 말미암아 우리 교회가 주의 종들이 마음껏 복음 증거 하는 일에 쓰임 받도록 그 언약을 가지고 헌금 하세요 특별히 십일조 헌금은 특권입니다. 하나님 자녀에게 주신 특권이에요. 당연한 것이고요 특별한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니에요 모든 성도들 당연히 해야 되는 것이에요 여러분 어떤 분은 그렇게 이야기해요 십일조를 통해서 받는 축복 아니고는 다른 축복은 다 헛것이다 했어요. 진정한 축복이 아니다 했어요. 십일조를 통해서 받는 축복 아니고는 다른 모든 축복은 다 참된 축복이 아니다 했어요. 무슨 말입니까? 십일조 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삶을 책임지시고 축복하신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물질, 우리의 모든 생명의 주인이 바로 주님이시다 라는 고백이 십일조의 개념 속에 담겨져 있어요. 그래서 이 십일조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영육 간에 번성한 축복을 주시길 원하시는데 여러분 이 십일조만큼은 하나님께서 시험해 보라 했어요. 말라기 3장 10절에서 12절에 보면 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죠.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모든 이방인들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여러분 여기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세 번 나와요 한절 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러면서 시험해 보라 십일조로 시험해 보라했어요 여러분 그렇습니다. 특별히 십일조를 통해서 여러분 우리가 당장 갖게 되는 축복이 있다면 모든 물질 속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겁니다. 가면 갈수록 물질이 전부잖아요. 돈이 전부잖아요 그 돈에 노예 되느냐 돈을 다스리느냐? 그 축복이 어디서 나타나느냐? 십일조의 축복 속에 나타나게 되어있어요 이 한해 여러분 십일조에 대한 부분들 하나님 앞에 결단하시고 정말 하나님 앞에 설수 있는 그런 시간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다음에 선교헌금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의 역사를 바라보면 은 선교에 축복을 놓침으로 말미암아 노예 되고 속국 되고 포로 되었어요. 선교에 축복을 받은 안디옥 교회는 선교 때문에 세워진 안디옥 교회는 주의 손이 함께 하시고 주의 은혜가 보이고 날마다 많은 구원 받는 사람들을 더 하게 하시고 그 당시에 흉년이 들어 어려움 당했을 때 안디옥 교회만큼은 하나님께서 축복 하셔가지고 그 물질가지고 초대교회를 돕는 일에 예루살렘 교회를 돕는 일에 쓰임 받았어요.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선교 헌금 단순한 선교헌금이 아닙니다. 자그마하게 드리는 헌금이 그게 모여가지고 세계 복음화 운동이 일어나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기도하세요. 정말로 나와 나의 가정과 나의 산업이 드려지는 그 선교헌금을 통해서 237개 나라 한나라를 살리는, 한나라를 책임지는 그런 축복이 내게 있게 하여주옵소서. 오늘부터 여러분 광고시간에 영상이 나갑니다. 여러분 매주 237개 나라 한나라씩 짧게 짧게 광고 마지막 부분에 소개를 할 겁니다 그리고 매 주에 메시지 방에도 올려놓을 것이고 한 달씩 정리해가지고 한 달에 방송된 부분들 정리해가지고 주보에 이면에 보면 은 우리 기도제목 놓는 란이 있잖아요 거기에 나라들을 올릴 겁니다. 왜냐 우리가 이제는 237개 나라를 우리 마음에 품으십시다. 그리고 기도 하도록 우리 중직자들도 한나라씩 책임지고요 특별히 이일을 위해서 특별히 선교헌금 여러분 작년까지는 선교헌금이 건축헌금으로 넘어갔어요. 올해는 선교헌금을 선교헌금으로 그대로 쓰도록 그렇게 인도 받고 많은 계회들을 세웠어요. 먼저 중요한 것은 여러분 정말로 우리가 선교사님들이 국내 들어와서 힘을 얻을 수 있도록 가만히 보니깐 선교사님들이 다 힘 빠져 있어요. 선교사님들이 훈련받고 다시 힘 얻어서 나갈 수 있도록 그러면서 또, 여러분 특별히 선교 현장에 현지인 제자들 불러들여가지고 이제는 언어 훈련시키고 특별히 복음 훈련시켜가지고 재 파송해야 합니다. 그게 선교에 제일 빠른 길입니다. 그래서 작년에 우리 파나마에서 박요한 전도사 왔잖아요. 올해 또 멕시코에서 젊은 친구 하나 올 겁니다. 그래서 이를 위해서 미션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원룸을 준비해가지고 우리 학비 다 대 가지고 신학조차 시켜가지고 다시 선교사로 파송할겁니다. 여러분 이 부분을 마음에 담고 기도하시고 오늘 우리 필리핀 단기 선교가 이번주간에 12일에 출발합니다만 은 올해부터 단기선교는 그냥 단기 선교가 아니라 모든 현지에 제자 찾는 캠프가 되어지는 그 시스템들로 움직여질 겁니다. 근데 이일에 가장 주역으로 중심된 자리에 누가 서야 되느냐? 중직자입니다. 단기선교에 중직자팀들이 세워질 수 있도록 중직자들 한나라를 나간다 생각하시고 우리 선교국장님 중심해서 중직자들이 다 팀 되어 가지고 나라 나라마다 들어가서 사도행전 13장 1절에서 4절에 나오는 그 중직자 팀들이 단기선교 속에 일어나야 됩니다. 그게 성경적인 선교입니다. 그리고 또 많은 다민족 제자들이 들어와있어요 다민족 제자들 찾아가지고 사도행전 1장 1절부터 8절이 통하는 제자 만들어가지고 보낼 수 있어야 됩니다. 그리고 우리 후대들 차세대 선교사들 일으켜 세워가지고 진짜 이 시대에 재앙을 막는 일에 인도 받아 나가야 될 것입니다 그 외에도 선교에 대한 많은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진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이 선교에 대한 마음을 결단하면서 오늘 작정에 임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건축헌금입니다. 여러분 이 시대는 메이슨(Mason) 전쟁입니다 원래 1세기에 성전을 건축한 사람들, 메이슨이라고 하는데 3세기부터 시작해가지고 이것을 결국은 3단체 프리메이슨이 이용하면서 3단체가 메이슨 전략을 쓰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템플 전략입니다. 우상의 신전이냐 복음 전하는 성전이냐? 한 지역에 올바른 정확한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세워지면은 거기에 대한 축복은 엄청난 것입니다. 반대로 우상 신전 하나 크게 세워지면 은 그것 통해서 영적인 엄청난 저주의 역사가 그 지역 전체를 사로잡게 되어있어요. 그래서 여러분 성전 건축을 놓고 특별히 건축 헌금을 놓고 마음에 결단 하실 것은 진짜 이 시대에 지역에 전도운동에 대표적인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이 언약을 붙잡고 건축헌금에 인도 받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시대 시대마다 보세요. 그냥 싸움이 아닙니다. 애굽에 피라밋 신전, 또 바알과 아세라 신전 그때에 엘리야와 엘리사, 다곤 신전 느보 신전 전부다 제우스 신상들 그 시대에 바울 전부다 시대마다 영적 싸움에 쓰임 받았던 축복 영적 싸움이 뭐냐? 우상 신전이냐 정말로 복음 성전이냐? 우리는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올바른 복음으로 말미암아 전도 운동하는 대표적인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일을 위해서 우리가 건축헌금에 인도 받아야 합니다. 마지막 미래에 대한 언약입니다. 그게 뭐냐? 후대를 위해서 장학헌금 하고 RUTC 헌금입니다. 흑암에 빠진 후대들 영적 서밋, 기능 서밋, 정말로 문화 서밋으로 세워나가야 되잖아요 이제는 우리 후대들 가운데 정치인이 일어나야 되고요 이일을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정말로 우리 후대들 가운데 정치인, 경제인이 일어나야 되고요 한시대 하나님 나라 이루는 일에 우리 중요한 후대들이 요소요소 들어가서 모든 문화를 바꿔나갈 수 있는 이일에 우리가 응답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은 후대와 렘넌트를 위해서 관계된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이 무조건 축복하셨다 라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4가지 헌금에 대한 부분들을 언약으로 붙잡고 헌금에 계획하시고,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청지기 주일에 예배에 대한 결단과 훈련에 대한 결단과 또 전체 헌금에 대한 결단들, 바르게 인도 받음으로 말미암아 이 한 시대 예수를 바라보는 믿음에 싸움 가운데 믿음의 경주가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2018년 1월 7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틀리지 않는 방향 - 예수를 바라보라
(히12:1-2)
서론: 신앙생활에 중요한 것이 속도가 아니라 방향입니다. 예수를 바라보는 것이 올바른 방향입니다. 복음 안에 있으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고, 그 속에서 방향들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서는 바울이 AD65-70년에 기록 했습니다. 히브리서에서 그리스도의 우월성에 대해 말씀하고 있고, 주제 성구가 히12:1-2절입니다. 히브리서는 예수를 잘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 핍박과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에게 쓴 편지입니다. 그리스도가 우월하다는 사실을 증거 하는 증인 되길 바랍니다.
1. 믿음의 경주를 하라
가. 히11장 - 구약에서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붙잡은 자들의 승리를 말씀
나. 믿음의 차이
1) 구약시대 - 메시야를 약속으로 붙잡고 승리
2) 신약시대 - 오신 그리스도를 보고, 듣고, 만진 사람
3) 구약시대보다 우리의 조건이 더 좋기 때문에 믿음의 경주를 시작
다. 믿음의 경주
1)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버림(나도 모르게 합리화 하는 걸림돌)
2) 끝까지 견디고 참으며 경주(주어진 자리에서 말씀 붙잡고 남아 있는 것)
2. 예수를 바라보라 - 올바른 방향(승리, 응답)
가. 믿음을 시작하신이가 모든 것을 끝내심(빌1:6) - 아브라함(믿음을 설명), 모세(이스라엘을 출애굽)
나.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심(히12:2)
1) 구원 안에 있는 생명의 풍성함을 위해
2) 십자가에서 죽으심
결론: 믿음의 경주를 위해 세 가지 결단을 하시길 바랍니다(예배, 훈련, 헌금).
1. 예배 - 복음의 능력을 덧입는 중요한 시간
가. 예배는 모든 재앙이 무너지는 시간(삼상7:10) 나. 말씀 속에서 현장을 보는 눈이 열려짐
다. 예배가 나와 삶, 내 인생을 지켜줌
2. 훈련 - 미래를 최고로 만들 수 있는 투자
가. 전도 속에 내 삶이 있는 것 - 최고 가치
나. 전도자의 축복을 누리지 못 하게 하는 다른 것을 바꾸는 비밀(훈련)
3. 헌금 - 전도와 선교를 위해 드리는 예배 행위
가. 십일조 - 교회를 살리고 주의종이 마음껏 복음 증거
나. 선교헌금 - 세계선교현장에 재앙의 역사를 막고, 237개 나라 살림
다. 건축헌금 - 지역에 전도운동 하는 대표적인 교회
라. 장학헌금, RUTC헌금 - 렘넌트들을 영적, 기능, 문화서밋으로 키우는 응답
“틀리지 않는 방향-예수를 바라보라”
(히12:1~2)
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12:1~2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예수를 바라보십시다. 영신예배 때 우리가 새해 인사를 나누었습니다마는 오늘 1월 첫 주일입니다. 영신예배 못 나오신 분들도 계시고 또 인사는 나누면 나눌수록 좋잖아요. 그래서 새해 인사 한번 하십시다. 받은 축복을 누리십시요. 새해 복 많이 누리십시오. 이 한해 하나님이 주신 복들을 많이 찾아 누리는 그런 축복된 한 해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 나그네가 길을 가다가 너무 피곤해서 지나가는 마차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마차를 타고 마부에게 물었습니다. 여기에서 예루살렘까지 얼마나 걸립니까? 마부가 30분이면 됩니다. 이야기를 했어요. 그래서 타고 가다가 이 나그네가 너무 피곤해서 잠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왔겠다 싶어 눈을 떴는데 한 30분은 지났겠다 싶어서 다시 마부에게 물었습니다. 예루살렘 다 왔지 않습니까? 얼마 남았습니까? 이야기 하니까 한 시간 남았습니다. 아니 30분이면 간다고 했는데 어떻게 한 시간 남았습니까? 이 마차는 예루살렘 반대로 가는 마차입니다.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 합니다. 우리 신앙생활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우리 인생도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여러분 시중에 외국인 저자로 나오는 책 제목입니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라는 책 제목이 나와 았습니다. 여러분 어떤 면에서 우리 현실에 상황과는 모순되어지는 그런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시간 전쟁의 시대이지요. 그래서 특별히 속도가 곧 삶의 살아가는 모든 부분의 중심에 서있는 그런 시대가 지금 우리의 시대입니다. 그래서 빌게이츠는 이렇게 이야기 했어요. 큰 것이 작은 것을 잡아먹는 시대가 아니라 빠른 것이 느린 것을 잡아먹는 시대이다. 그만큼 속도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정말로 우리의 인생을 놓고 보고 우리의 신앙을 놓고 본다면 속도 이전에 중요한 것이 있다면 방향입니다. 특별히 우리 신앙생활에 어떻게 우리가 방향을 가지고 살아가느냐 너무나 중요합니다. 틀린 방향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아무리 열심을 내고 아무리 부지런하게 살아도 결국은 아닌 겁니다. 그러나 방향만 제대로 잡으면 늦게 가도 가게 되어 있고, 돌아가도 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한해를 시작하면서 우리가 틀리지 않는 방향을 붙잡아야 합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를 바라보는 겁니다. 특별히 우리가 방향을 어떻게 잡느냐? 여러분 복음 안에 있으면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어지고 날마다 복음 안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어지면 그 속에서 방향들이 나오게 되어 있어요. 그러면 그 다음부터 우리의 신앙생활은 수월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이 이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해서 방황하고 갈등하고 몸부림치게 되는 것을 보게 되어요. 오늘 1월 첫 주일인데 1월 첫 주일부터 복음의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길 바라고요, 그러면 그 속에서 매일 매일 매주간 살아가야 될 방향들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그 속에서의 우리의 신앙생활은 그 다음부터는 수월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시간들이 매 주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특별히 이번 한해는 히브리서를 중심으로 해서 먼저 말씀을 같이 나누어보고자 합니다. 특별히 히브리서는 저자가 누구다 라고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자를 미상으로 이야기하는데 그러나 많은 신학자들이 이 히브리서를 기록한 저자는 바울이다 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신학자들 10명중에 8명은 이 히브리서는 바울이 기록했다라고 많은 분들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히브리서는 언제 기록되었느냐하면 AD65년경에서 1세기이지요. AD65년경에서 70년 사이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 히브리서의 주제가 무엇이냐 하면은 여러분 어느 책이든 주제가 있잖아요. 그 주제가 무엇이냐 하면 그리스도의 우월성입니다. 그리스도가 모든 것에서 뛰어나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 히브리서입니다. 이런 부분들 가지고 매주 말씀을 정리해 나가시고요. 특별히 히브리서의 주제성구가 있다면 우리가 히브리서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히브리서 11장을 잘 압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이렇게 하면서 줄줄 외우기도 하고요, 믿음의 장이다 라고 이야기하면서 잘 알고 있는데 그러나 히브리서의 주제성구는 히브리서 11장이 아니라 히브리서12:1~2절 오늘 읽은 본문의 말씀이 히브리서의 주제성구입니다. 그러면 히브리서 기자가 왜 이 성경을 기록했느냐 기록 목적에 대해서 우리가 먼저 좀 정리를 해야 합니다. 그 당시에 유대교에서 개신교로 돌아온 개종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복음이 증거 되어지면서 유대교에서 개신교로 돌아온 사람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 사람들이 실제로 개종하고 나서 많은 핍박과 어려움을 받게 되니까 편지를 써서 그들에게 위로하기 위해서 보낸 편지가 히브리서입니다. 그리고 또한 개종하고 돌아왔지만 사실 또 옛날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어요. 몸은 돌아가지 않지만 생각과 모든 사상들이 옛날로 자꾸 돌아가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이 복음이 참된 우월한 것이 아니냐 이 복음만큼 우월한 것이 어디 있느냐? 그래서 히브리서 전체를 살펴보면 13번이나 되는 곳에서 복음의 우월성에 대한, 그리스도의 우월성에 대한 부분들을 계속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복음이, 참된 이 복음이 우월한 것이다라는 것을 계속 강조하고 있어요. 왜 자꾸 옛날로 돌아가려고 하느냐 이 복음보다 더 귀한 것이 어디 있느냐? 복음의 우월성에 대한 부분들을 이야기하면서 그러면서 또 사실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뭔가 모르게 시간가면 갈수록 자기도 모르게 다른 것들을 자꾸 누리려고 하니까 거기에 대해서 진짜 그리스도만이 우리가 누려야 될 부분들이라는 부분들을 이야기하면서 사실은 예수를 잘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보내진 편지가 히브리서예요. 이 부분들을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어야 앞으로 히브리서 13장까지 한 장 한 장 정리해 나갈 때에 그 배경들을 가지고 있으면 말씀들을 이해하기가 더욱더 쉬워지지요. 그래서 나름대로 예수를 잘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보내진 편지이고, 핍박받고 환란 받는 사람들에게 위로의 편지를 보낸 것이 바로 히브리서입니다. 특별히 지금 이 시대가 어떤 시대입니까? 오늘 우리에게 히브리서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왜냐? 지금 현장에는 복음 필요없다 라고 하는 시대입니다. 기독교 필요없다라고 이야기 하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대체 종교가 나와야 된다라고 이야기 하고 있어요. 그게 뉴에이지 운동입니다. 아니 왜 사람을 그렇게 나약하게 만드느냐 그래서 니가 하나님이고 니가 신이 될 수 있다 기독교는 사회악이다 필요없는 것이다 대체종교가 나와야 된다 그러면서 들고 나온 것이 뉴 에이지 운동입니다. 니가 스스로 하나님 될 수 있고, 니가 얼마나 위대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아라 이게 바로 뉴에이지 운동입니다. 그리고 또한 보십시오. 교회 안에서 세상은 그렇다치고 교회 안에서 복음이 증거 되어야 하는데 복음의 가치를 모르니까 교회 속에서 자꾸 다른 것을 말해요. 그러한 시대 아닙니까? 지금.. 여러분 진짜 복음 알면 복음만 말하게 되어 있고 복음 알면 복음만 전하게 되어 있습니다. 복음을 모르니까 알지 못하니까 자꾸 다른 것을 바라보는데요, 진짜 복음을 알면 복음만 말하게 되어 있어요. 저와 여러분, 우리 하나교회는 이 시대 속에서 진짜 복음의 가치를 깨닫고 세상을 향해서 복음만 말하는 그런 교회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저는 이 한 해 시작하면서 제가 가진 기도제목 중의 하나가 뭐냐 하면 정말로 강단을 통해서 정확한 복음을 선포하게 하옵소서. 제 기도제목으로 잡았어요. 그리고 우리 모든 부교역자들도 이 강단을 통해서 누구든지 하나교회에 들어오면 정확한 복음을 듣고 돌아갈 수 있도록 정확한 복음이 전달되어지는 강단이 되게 하옵소서.이 기도제목을 잡았어요. 여러분 가면 갈수록 이 시대 속에서 복음이 복음됨을 놓쳐버리고요, 복음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 있는 양 그것들을 주장하는 시대가 지금 시대가 되어버린 겁니다. 그러니까 사회를 책임질 수 없는 것이고요, 이 땅에 일어나는 재앙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은 이 시대 속에 진짜 복음의 비밀을 맛봄으로 말미암아 복음의 우월함을 증거 하는 증인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스도가 우월한 것인 것을 증거하는 그런 증인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틀리지 않는 방향을 잡아야 합니다. 그게 뭐냐? “틀리지 않는 방향 - 예수를 바라보라”입니다.
1. 믿음의 경주를 하라
그래서 먼저 우리가 붙잡을 것은 정말 우리가 예수를 바라봄으로 말미암아 믿음의 경주를 해야 합니다. 믿음의 경주를 해야 합니다. 특별히 여러분 히브리서12:1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지요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은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그러면서 1절을 시작할 때 이러므로 라고 시작했어요. 여기에 이러므로 라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앞의 11장의 내용을 그대로 받으면서 하는 말이예요. 그러면 11장의 내용은 무엇이냐? 사실은 구약의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가지고 승리한 사실을 체험한 증인이라는 사실을 딱 내 놓고 있어요. 히브리서 11장의 구약의 믿음의 선진들을 쭉 이야기 하면서 이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붙잡고 현장에서 승리한 증인들이다 그 사실을 딱 내어놓으면서 그러므로,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이미 그들이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되어 있으니까 그 사실을 붙잡고 우리가 믿음의 경주를 해야 될 것이 아니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구약 시대에 승리했던 그 구약의 믿음의 선진들과 1세기에, 지금 이 성경이 기록된 1세기에 신약시대의 사람들 또 오늘까지 차이가 무엇일까요? 환란 받고 핍박받는 모든 환경들, 그 조건은 같은 조건입니다. 그런데 분명히 차이가 있는데 그 차이는 뭐냐 하면 믿음에는 차이가 나요. 믿음에는 구약시대에 승리했던 믿음의 선진들, 그들이 가진 믿음과 함께 오늘 우리는, 또 1세기를 살았던 성도들의 믿음은 차이가 나요. 어떤 데서 차이가 나느냐? 구약시대의 승리했던 믿음의 선진들은 오실 메시야를 붙잡고 오실 그리스도를 약속으로 붙잡고 승리한 사람들이예요. 오실 메시야를 약속으로 붙잡고 그 믿음 가지고 승리한 사람들이 구약시대 사람들이예요. 그렇다면 신약시대와 지금 오늘 우리는 오실 메시야가 아니라 오신 그리스도를 보고, 듣고, 만진 사람들입니다. 그러면서 이 히브리서 기자가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는 것은 누가 더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느냐 입니다. 여러분 환난 받고 핍박받는 모든 환경들은 같아요. 그러나 믿음에는 차이가 있는데 구약시대에는 약속을 잡고 믿음으로 승리했던 사람들이고 그 약속의 실재가 오셨잖아요. 신약에, 그 오신 그 그리스도를 붙잡고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 어느 사람들이, 어디에 사람들이 더 훌륭한 조건들을 가지고 있느냐 이 말이예요. 여러분 모세가 율법에서 말한 그 율법의 실재이신 그리스도가 오셨어요. 그래서 여기에 히브리서 성경 쭉 읽어보면 더 나은 제사 그리스도다. 더 나은 제사장 그리스도다. 더 나은 제물 그리스도다.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있어요. 구약의 제사, 제물, 제사장 나오잖아요. 그 제물, 제사장, 제사에 대한 부분들을 이야기 하면서 계속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비교해서 이야기하면서 그렇다면 너희들이 구약시대의 사람들과 지금 여러분이 어느 시대 사람들이 더 복 받았느냐? 이 말입니다. 여러분 어느 시대의 사람들이 더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까? 네. 맞습니다. 신약시대와 지금 오늘 우리가 더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미 허다한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 약속만 잡고도 승리한 그 사람들이 증인으로 둘러서 있는 그 속에서 우리가 오신 그리스도를 붙잡고 무엇을 해야 되느냐? 믿음의 경주를 해야 한다 이 말을 하는 겁니다. 여러분 정말로 오신 그리스도를 만나고 체험하고 정말로 그 사실을 누리는 그런 축복 속에 들어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서 거기에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라. 믿음의 경주를 하기 위해서는 걸림돌이 되는 모든 부분을 벗어 버리라는 것이예요. 여러분 경기를 하기 위해서 운동선수들은 될 수 있는 대로 공기의 저항력을 받지 않기 위해서 모든 것 다 벗어버립니다. 수영 선수들을 보세요. 수영복과 더불어 수영모를 쓰잖아요. 그것이 그냥 쓰는 것이 아닙니다. 공기의 저항력을 받지 않기 위해서, 물의 저항력을 받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마라톤 선수, 육상 선수들을 보면 털까지 다 민다고 합니다. 털이 뭐 그리 중요한 영향을 주느냐? 아닙니다. 그것이 공기의 저항력을 받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공기의 저항력을 막기 위해서 모든 털까지 다 밀어버린다는 거예요.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경기를 하기 위해서 모든 무거운 것과 또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라. 이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우리 안에 나도 모르게 자기를 합리화 시키는 부분들, 그 죄 된 부분들을 벗어버리라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는 창세기3장과 6장과 11장의 배경 그 영향 속에 있기 때문에 문제와 사건들 생기면 어디로 돌아가느냐 전부다 자기를 합리화 시켜 나가요. 나 중심이 되어있기 때문에, 자기를 합리화 시키면서 나와요. 이런 모든 것들을 벗어버리라는 거예요. 특별히 여기에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라.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참 제사장으로 오셔서 저와 여러분이 해결할 수 없는 죄의 문제를 십자가에서 완전히 해결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그래서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켰습니다. 단순히 해방시켰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이제는 죄의 권세아래 예전에는 끌려갔는데 죄가 힘이 있어서 우리도 모르게 원치 않지만 죄의 권세아래 끌려갔는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제는 죄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어마어마한 권세가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보면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라 했잖아요. 무슨 말입니까? 우리에게는 죄를 이길 수 있는 권세가 그리스도 이름으로 주어졌기 때문에 그 부분들을 떨쳐버리고 영적인 싸움을 싸우고 거기에 믿음의 경주를 하라 이 말입니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뭐라고 했느냐?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라, 경주하되 인내로써 여기에서 인내는 뭐냐 하면 끝까지 견디고 참는 것을 이야기해요. 버티는 것을 이야기해요. 3절에 오늘 읽지는 않았습니다마는 자기에게 거역한 이를,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여기에 참다 라는 말과 같은 말이 인내라는 말입니다. 다른 표현에 의하면 바울의 서신 서에 보면 너희가 믿음에 굳게 서서 이런 말이 있지요. 굳게 서다 이 말과 참다라는 말과 인내라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 어떤 목사님은 신앙생활은 뭐냐? 버티고 견디는 것이다 했어요. 우리는 문제만 당하면 좌절하고 실망하고 넘어지고요, 포기하고 나가잖아요. 신앙생활은 뭐냐? 버티고 견디는 것이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그 자리에서 믿음의 역사를 지금 당장 증거가 일어나지 않는다할지라도 그것을 붙잡고 견디고, 그것을 붙잡고 버티는 겁니다. 그게 승리하는 길인 것을 경주 속에서 가장 중요한 승리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어요. 여러분 로마서1:17절에 보면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이렇게 말씀하셨지요. 그 말씀도 원래는 오직 의인은 버팀으로 견딤으로 말미암아 산다 라는 사실을, 결국은 승리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한해 정말로 믿음의 경주를 하십시다. 그 믿음의 경주를 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분 정말로 이미 주신 증거를 예수가 바로 그리스도라는 증거를 붙잡고요, 그리고 모든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자기 합리화 시키는 모든 것들을 벗어버리고 그러면서 우리의 주어진 자리에서 약속 붙잡고 미련하다 말한다 할지라도 그 자리에서 버티고 견딤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주시는 승리의 축복을 누리게 되시길 주의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예수를 바라보라 - 올바른 방향(승리, 응답)
그 다음 두 번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음의 경주를 함에 있어서 방향이 올발라야 합니다. 틀린 방향을 가지고 경주를 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올바른 방향을 잡게 되면 승리와 그에 대한 응답들이 오게 되어 있는데 여러분, 실패했다 할지라도 넘어졌다 할지라도 그 자리에서 예수를 바라봅시다. 그리스도를 바라봅시다. 왜냐? 그리스도는 승리했습니다. 그리스도는 사단의, 흑암의 권세를 꺾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날마다 우리가 있는 모든 자리에서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누구를 바라보라고요? 예수를 바라보라고요. 다른 말로 하면 그리스도를 바라봅시다. 그러면 넘어졌다 할지라도 무너졌다 할지라도 실패했다 할지라도 진짜 그리스도 바라보면 새 힘을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 외에 다른 것을 바라보면 잠시 잠깐 새 힘을 얻는 것 같고 잠시 잠깐 우리에게 유익함을 주는 것 같고 잠시 잠깐 우리에게 행복을 주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결국은 한계가 오고 한계 이후에 다른 문제들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힘을 얻어야 하는 존재입니다. 물고기는 물 속에 살아야 합니다. 나무는 땅에 뿌리를 내리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 형상 따라 지음 받았기 때문에 오직 하나님 바라보며 살아갈 때 하나님 주신 힘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살아가면서 무언가 힘이 빠졌다, 좌절하고 뭔가 연약하고 힘이 빠졌다,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될 때 환경이 어떻든지간에 하나님은 사람들이 알 수 없는 새 힘을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왜 우리가 자꾸 다른 것을 바라보느냐? 힘 빠진 것을 알면서, 체험하면서도 또 그것을 바라봅니다. 또 바라봅니다. 왜 그러냐? 우리 안에 이미 각인되어버렸습니다. 여러분, 사람에게 무엇이 담겨 있느냐에 따라서 그에 따라 보게 됩니다. 무엇에 관심 있느냐에 따라서 보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 안에 있는 각인된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 까지고 보거든요. 그러니까 세상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창세기 3장, 6장, 11장, 나를 보고 돈 바라보고 물질 보고 성공 바라보고 자식 바라보고 사람 바라보고 그러니까 가면 갈수록 다른 것을 쳐다보니까 힘이 빠질 수밖에요. 이번 한 주간, 또 올 한 해 진짜 올바른 방향, 그리스도만 바라봅시다. 이 그리스도만 바라볼 이유가 뭐냐? 무엇 때문에 이 그리스도만 바라보아야 하느냐? 여러분, 2절에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신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 믿음의 주란 말은 믿음의 시작이란 말입니다. 믿음의 창시자란 말입니다. 그리고 온전케 하신다는 말은 믿음의 끝이란 말입니다. 믿음을 시작하신 이, 주님이시고 믿음을 끝내시는 것이 주님이시라는 것. 믿음의 창시자가 주님이시고 믿음을 끝내시는 것이 주님이시라는 것. 신약 성경의 빌립보 1장 6절에서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했습니다. 누가 이루십니까? 누가 시작하셨습니까? 하나님이 시작하시고 하나님이 끝낸다는 사실입니다. 이게 믿음입니다. 우리가 그 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잘하고 못하고, 내가 뭔가 힘 있고, 아닙니다. 연약해도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이 이루시는 그 속에 있으면 하나님이 열심히 나를 만들어 가시게 되어 있습니다. 그게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이 말입니다. 여러분, 한 예를 들어봅시다. 아브라함. 믿음의 조상이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원래 아브라함이 불신앙하는 이방인이었습니다. 갈대아 우르에서 우상숭배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불러내셨습니다. 그리고 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의 흔적들을 한 번 살펴 봅시다. 넘어지고 무너지고 거짓말하고 속이고. 아내를 속이고, 누이라고 속였지 않습니까? 또 아내를 팔아버리고. 기다리지 못하고 그래서 이스마엘을 낳고. 기다리지 못하고. 거짓말하고 속이고. 그러면서 또 불신앙하고. 그게 아브라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2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네 사랑하는 네 독자 네 아들 이삭을 바치라 할 때에, 번제로 바치라 할 때에 그 때 아브라함은 모든 이유, 조건 다 버리고 하나님 앞에 이삭을 바쳤습니다. 누가 하신 것입니까? 누가 하신 겁니까?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거예요. 그렇습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이 믿음이 좋아서 믿음의 조상이 아니라 믿음이 얼마나 하나님의 작품인가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아브라함이기 때문에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이 실재적으로 무엇인가를 아브라함만큼 잘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하나부터 끝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게 하신 것입니다. 모세를 봅시다. 모세는 40년 동안 애굽의 왕궁에서 문무를 겸비했습니다. 그래서 뭔가 자기가 해보겠다고 칼을 들고 나와서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게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모세는 저 미디안 광야에 던져지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한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소 치고 양 치는 일이었습니다.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 없고 대화할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사실은 모세가 모국어도 잊어버렸습니다. 어디서 알 수 있느냐?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셔서 바로 왕 앞에 가라 했을 때 모세가 변명했던 것이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하나이다, 모세가 변명했습니다. 이 말은 사실은 저 미디안 광야에서 양 치고 소 치면서 대화할 상대도 없는 그 가운데서 사실 말조차 잊어버린 그런 상황 속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모세를 하나님께서 불러내셔서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타지 않는 나무를 보여주시면서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면서 모세의 손에 지팡이를 가지고 나가는 그 걸음에 하나님께서 결국은 네가 이 마른 막대기 같지만 내가 너를 들어서 이렇게 쓰시겠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입니다. 결국은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해내는 이 엄청난 축복의 역사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바로 하나님이 시작하시고 하나님이 끝내신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라 했습니다. 우리가 왜 예수를 바라보느냐?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믿음을 시작하시고 또 끝내시는 이시니까. 여러분의 수준, 상황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다음에 나오는 것이 뭡니까? 그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했다, 왜 예수를 바라보아야 하는가, 두 번째 이유입니다. 첫 번째는 믿음을 시작하게 하시는 이고 또 믿음을 끝내시는 이시기 때문에. 두 번째 이유는 뭐냐? 그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이 뭡니까? 바로 구원의 역사와 함께 구원 속에 있는 어마어마한 생명의 축복입니다. 그 기쁨. 그 앞에 있는 기쁨이 뭐냐? 구원과 함께 구원 속에 있는 생명 안에 있는 풍성한 비밀, 그것을 위해서 하신 일이 뭐냐?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했다, 여기에 중요한 것은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했다 했습니다. 여러분, 신약 시대에 이 당시에 로마 지배하에 있을 때에 죽음보다도 더 고통스러운 일이 있다면, 더 비참한 일이 있다면 십자가 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구원과 구원 안에 있는 어마어마한 생명의 축복을 누리게 하기 위해서 부끄러운 십자가를 주님께서 지셨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나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대하게 되면 우리의 연약함, 우리의 무능함, 상관없습니다. 넘어졌습니까? 일어나면 됩니다. 열 번 무너졌습니까? 일어나면 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이 우리에 대한 자기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는, 우리에게 구원과 구원 속에 있는 어마어마한 생명의 축복을 주시기 위해서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는, 내가 뭔데, 우리가 무엇인데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서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고 이 구원의 축복을 주셨느냐 이 말입니다. 여러분, 오늘 힘이 빠진 사람들 있습니까? 무너져 있는 사람들 있습니까? 가 모르게 실패한 사람들 있습니까? 예수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 한 해 진짜 우리가 우리의 모든 삶 속에서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제자가 되시고 그 제자의 축복 가운데 모든 현장을 살리는 하나교회 모든 성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경주를 위한 결단 - 세가지
세 번째, 결론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경주를 위한 결단 세 가지입니다. 오늘 청지기 주일입니다. 제가 다른 때는 이 설교를 안 하지만 청지기 주일마다 똑같은 설교를 계속합니다. 그게 뭐냐?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내 자신이 결단되고, 여러분만이 아니라 내 자신이 결단되고 내가 은혜 받아야 할 부분들이기 때문에. 세 가지 결단을 하시기 바랍니다. 청지기로서. 어떤 결단을 하느냐? 먼저, 예배에 대한 결단을 하십시오. 두 번째로 훈련에 대한 결단을 하십시오. 세 번째로 헌금에 대한 결단을 하십시오. 여러분, 우리에게 있어서 예배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사람들에 있어서 예배는 복음의 능력을 덧입는 가장 중요한 시간이 예배 시간입니다. 이 예배의 축복을 놓치지 않기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우리나 우리 후대들이 영적 문제 때문에 실패하지 않아야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형상 따라 지음 받은 하나님의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하나님께 예배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우리도 모르게 일어나는 영적 문제, 재앙 속에서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예배의 축복을 누리게 될 때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하나님의 성령께서 역사하고 우리 배후에 역사하는 모든 재앙이 무너지는 시간이 언제냐? 예배시간입니다. 여러분, 사무엘상 7장에 보면 사무엘을 중심으로 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번제 드릴 때에 불레셋이 공격해왔다가 하나님께서 큰 우레를 발하심으로 말미암아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재앙을 막으신 것입니다. 작년에 우리가 보았지 않습니까? 창세기 35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세겜에 머무르면서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하나님께 결단을 요구합니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올라가라. 그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야곱이 결단합니다. 이방신상 다 버리고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그 때에 하나님이 35장 5절에 보면 사면 고을을 어둡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배가 아무것도 아닌 줄 아는데,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있어서 가장 귀중한 축복이 뭐냐? 예배입니다. 복음의 능력을 힘입는 시간이 언제냐? 예배입니다. 악한 사단이 이 사실을 알고 가장 우리에게 무엇을 빼앗아가기를 원하느냐? 예배의 축복을 빼앗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4장에 보면 예수님이 광야에서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첫시험 받을 때에 시험 중에 뭐라 합니까? 내게 엎드려 절하라, 내가 네게 모든 것을 다 주리라. 무슨 말입니까? 예배의 축복을 빼앗아가기를 원하는 사단의 소원입니다. 여기에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 예배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 주시는 말씀을 붙잡고 그 말씀 붙잡을 때마다 한 주간 현장에 대한 눈이 열리게 됩니다. 그 눈 열리고 현장에 가야 직장 생활, 사업하고, 학교에서 학업하고, 그러니까 눈이 열린 채로 가니까 승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일은 어느 정도 승리하면 되느냐? 한주간 현장이 눈에 들어올 정도로, 눈에 보일 정도로, 그렇게 큰 은혜의 역사를 입는, 그런 예배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제 어떤 집사님 한 분이 목사님, 현장에 나가니까 말씀과 현장이 너무 안 맞아지는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자기는 말씀과 현장에 안 맞아지는데 그 때 열심히 하다가 그냥 하나님 앞에 말씀 속에 숨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잘못된 게 아닙니까, 뭔가 회피하는 것 같고. 그래서 제가 이야기했습니다. 아닙니다, 잘못된 게 아니고 그게 올바른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과 현장이 안 맞다면 그게 정상입니다. 왜냐? 여러분, 영적인 비밀과 영적인 축복을 알면 알수록 말씀과 현장이 맞아지게 됩니다. 말씀과 현장이 맞아지는 것은 영적 비밀과 영적 축복을 누릴수록 말씀과 현장이 맞아집니다. 그리고 말씀 속에서 현장이 다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인도 받는 걸음 속에 실패하지 않는 삶이 됩니다.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이 말씀을 통해서 현장의 눈이 열립니다. 그 눈이 열리고 현장에 가야 속지 않고 문제 속에 빠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행위 중에 가장 귀중한 행위가 무엇이냐? 예배 행위입니다. 특별히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지킨다고 생각하는데 아닙니다. 결국 알고 보면 예베가 나를 지키고 나의 삶을 지키고 나의 모든 것을 보호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배가. 여러분, 그래서 이 한 해, 아니, 우리 교회에 평생 주제로 주신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 주보에 보면 제일 앞에 나와 있는 부분이 있는데, 우리는 잊어버리고 살아갈 수 있는데 예배로 뭐요? 영육이 성공하는 것입니다. 그게 우리 인생의 예배입니다. 그래서 진짜 복음의 능력을 힘입는, 이 예배의 축복을 놓치지 말고 이에 대한 결단이 여러분이 한 해를 시작하면서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입니다. 훈련입니다. 여러분, 훈련. 우리 교회 이런저런 훈련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훈련을 위해서 많은 예산을 투자합니다. 작년에도 결산하면서 우리 재정국장 장로님이 목사님, 훈련비, 전도훈련비, 전도비가 너무 많이 지출되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실컷 웃었습니다. 그만큼 성도들이 많이 훈련 속에 참여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이 훈련은 그냥 훈련이 아닙니다. 우리의 미래를 최고의 것으로 투자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이 훈련입니다. 우리는 훈련이 바로 응답입니다. 우리에게 진짜, 여러분,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구원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구원 받는 사람이 있고 구원 받은 사람 중에 복음의 비밀을 아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복음의 비밀을 아는 사람 중에 또 진짜 전도자의 삶을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제가 지금 구분해서 말씀드렸습니다. 그냥 단순히 예수 믿고 나서 구원 받았다, 거기 그치는 사람이 있고 구원 받은 사람들 중에 복음의 비밀을 아는 사람 있습니다. 그리고 복음의 비밀을 아는 사람 중에 진짜 전도자의 삶으로 참된 축복을 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는 어디에 속하는가? 우리 자신들을 한번 점검해 봅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가장 큰 소원이 뭐냐? 전도자의 삶에 저와 여러분이 있기를 원하십니다.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이 전도하든지 전도하는 것들의 배경이 되든지, 이게 전부 다 전도자의 삶인데 이 삶을 하나님이 가장 귀하게 여기고 가장 축복되게 보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전도자의 삶을 사는데 있어서 가장 큰 장애가 있다면 다른 데 있는 게 아닙니다. 내 안에 복음 외에 다른 것, 틀린 것, 망할 것이 각인되어 있는 것입니다. 뿌리내린 것, 체질된 것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복음 외에 다른 것, 망할 것, 틀린 것들을 치유하고 복음으로 각인, 뿌리, 체질되는 것이 무엇이냐? 훈련입니다. 그리고 훈련 속에 들어갈 때마다 그 속에서 나도 모르게 복음에 각인되므로 각인 된 만큼 응답이 나오고 복음에 뿌리내린 만큼 열매가 맺히고. 마치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뿌리내릴 때 그에 따라 열매가 저절로 나오는 것처럼 복음에 뿌리내릴 때마다 열매가 나오고 복음이 체질도면 그게 바로 전도자의 삶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 축복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날마다 날마다 훈련하는 것이고 이 훈련을 위해서 많은 재정을 투자해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축복되게 인도받을 수 있도록 그렇게 교회 앞에서 인도해 나가시는 것입니다. 이 한 해도 우리가 훈련 속에 있읍시다. 저는 제 마음에 결단한 것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내가 어떤 일이 있다 할지라도, 천재지변, 특별한 상황 외에는 훈련 받는 그 자리에 내가 항상 있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저는 훈련 받는 그 자리 그 자리마다 응답으로 받고 누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훈련에 대한 결단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전도, 선교,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이 일에 있어서 드려지는 예배 행위가 헌금입니다. 그냥 우리가 헌금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전도, 선교, 세계복음화,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여기에 드려지는 예배 행위가 헌금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헌금에 대한 결단들이 여러분에게 이 한 해를 시작하면서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건축헌금과 선교헌금에 대한 작정이 되어져야 합니다만 여러분, 먼저 여러분 헌금에 대한 부분들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드림을 통해서 축복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드리는 만큼 축복하시는 것이 아니라 드리는 그 믿음 가지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 앞에 모든 부와 귀가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축복은, 근본적으로 아셔야 할 것은 위로부터 주시는 축복입니다. 믿습니까? 역대상 29장에 보면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는다고 다윗이 고백했습니다. 우리의 모든 부와 귀는 주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축복을 우리가 누리기 위해서는 먼저 네 가지 헌금에 대한 결단들을 해야 하는데 첫 번째입니다. 여러분, 십일조입니다. 십일조를 여러분의 언약으로 붙잡고 십일조 하십시오.그냥 십일조 하지 마시고 어떤 언약을 붙잡느냐? 나와 우리 자녀들이 드리는 십일조로 말미암아 우리 교회가 주의 종들이 마음껏 복음 증거 하는 일에 쓰임 받도록 그 언약을 가지고 헌금 하세요 특별히 십일조 헌금은 특권입니다. 하나님 자녀에게 주신 특권이에요. 당연한 것이고요 특별한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니에요 모든 성도들 당연히 해야 되는 것이에요 여러분 어떤 분은 그렇게 이야기해요 십일조를 통해서 받는 축복 아니고는 다른 축복은 다 헛것이다 했어요. 진정한 축복이 아니다 했어요. 십일조를 통해서 받는 축복 아니고는 다른 모든 축복은 다 참된 축복이 아니다 했어요. 무슨 말입니까? 십일조 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삶을 책임지시고 축복하신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물질, 우리의 모든 생명의 주인이 바로 주님이시다 라는 고백이 십일조의 개념 속에 담겨져 있어요. 그래서 이 십일조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영육 간에 번성한 축복을 주시길 원하시는데 여러분 이 십일조만큼은 하나님께서 시험해 보라 했어요. 말라기 3장 10절에서 12절에 보면 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죠.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모든 이방인들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여러분 여기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세 번 나와요 한절 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러면서 시험해 보라 십일조로 시험해 보라했어요 여러분 그렇습니다. 특별히 십일조를 통해서 여러분 우리가 당장 갖게 되는 축복이 있다면 모든 물질 속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겁니다. 가면 갈수록 물질이 전부잖아요. 돈이 전부잖아요 그 돈에 노예 되느냐 돈을 다스리느냐? 그 축복이 어디서 나타나느냐? 십일조의 축복 속에 나타나게 되어있어요 이 한해 여러분 십일조에 대한 부분들 하나님 앞에 결단하시고 정말 하나님 앞에 설수 있는 그런 시간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다음에 선교헌금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의 역사를 바라보면 은 선교에 축복을 놓침으로 말미암아 노예 되고 속국 되고 포로 되었어요. 선교에 축복을 받은 안디옥 교회는 선교 때문에 세워진 안디옥 교회는 주의 손이 함께 하시고 주의 은혜가 보이고 날마다 많은 구원 받는 사람들을 더 하게 하시고 그 당시에 흉년이 들어 어려움 당했을 때 안디옥 교회만큼은 하나님께서 축복 하셔가지고 그 물질가지고 초대교회를 돕는 일에 예루살렘 교회를 돕는 일에 쓰임 받았어요.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선교 헌금 단순한 선교헌금이 아닙니다. 자그마하게 드리는 헌금이 그게 모여가지고 세계 복음화 운동이 일어나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기도하세요. 정말로 나와 나의 가정과 나의 산업이 드려지는 그 선교헌금을 통해서 237개 나라 한나라를 살리는, 한나라를 책임지는 그런 축복이 내게 있게 하여주옵소서. 오늘부터 여러분 광고시간에 영상이 나갑니다. 여러분 매주 237개 나라 한나라씩 짧게 짧게 광고 마지막 부분에 소개를 할 겁니다 그리고 매 주에 메시지 방에도 올려놓을 것이고 한 달씩 정리해가지고 한 달에 방송된 부분들 정리해가지고 주보에 이면에 보면 은 우리 기도제목 놓는 란이 있잖아요 거기에 나라들을 올릴 겁니다. 왜냐 우리가 이제는 237개 나라를 우리 마음에 품으십시다. 그리고 기도 하도록 우리 중직자들도 한나라씩 책임지고요 특별히 이일을 위해서 특별히 선교헌금 여러분 작년까지는 선교헌금이 건축헌금으로 넘어갔어요. 올해는 선교헌금을 선교헌금으로 그대로 쓰도록 그렇게 인도 받고 많은 계회들을 세웠어요. 먼저 중요한 것은 여러분 정말로 우리가 선교사님들이 국내 들어와서 힘을 얻을 수 있도록 가만히 보니깐 선교사님들이 다 힘 빠져 있어요. 선교사님들이 훈련받고 다시 힘 얻어서 나갈 수 있도록 그러면서 또, 여러분 특별히 선교 현장에 현지인 제자들 불러들여가지고 이제는 언어 훈련시키고 특별히 복음 훈련시켜가지고 재 파송해야 합니다. 그게 선교에 제일 빠른 길입니다. 그래서 작년에 우리 파나마에서 박요한 전도사 왔잖아요. 올해 또 멕시코에서 젊은 친구 하나 올 겁니다. 그래서 이를 위해서 미션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원룸을 준비해가지고 우리 학비 다 대 가지고 신학조차 시켜가지고 다시 선교사로 파송할겁니다. 여러분 이 부분을 마음에 담고 기도하시고 오늘 우리 필리핀 단기 선교가 이번주간에 12일에 출발합니다만 은 올해부터 단기선교는 그냥 단기 선교가 아니라 모든 현지에 제자 찾는 캠프가 되어지는 그 시스템들로 움직여질 겁니다. 근데 이일에 가장 주역으로 중심된 자리에 누가 서야 되느냐? 중직자입니다. 단기선교에 중직자팀들이 세워질 수 있도록 중직자들 한나라를 나간다 생각하시고 우리 선교국장님 중심해서 중직자들이 다 팀 되어 가지고 나라 나라마다 들어가서 사도행전 13장 1절에서 4절에 나오는 그 중직자 팀들이 단기선교 속에 일어나야 됩니다. 그게 성경적인 선교입니다. 그리고 또 많은 다민족 제자들이 들어와있어요 다민족 제자들 찾아가지고 사도행전 1장 1절부터 8절이 통하는 제자 만들어가지고 보낼 수 있어야 됩니다. 그리고 우리 후대들 차세대 선교사들 일으켜 세워가지고 진짜 이 시대에 재앙을 막는 일에 인도 받아 나가야 될 것입니다 그 외에도 선교에 대한 많은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진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이 선교에 대한 마음을 결단하면서 오늘 작정에 임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건축헌금입니다. 여러분 이 시대는 메이슨(Mason) 전쟁입니다 원래 1세기에 성전을 건축한 사람들, 메이슨이라고 하는데 3세기부터 시작해가지고 이것을 결국은 3단체 프리메이슨이 이용하면서 3단체가 메이슨 전략을 쓰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템플 전략입니다. 우상의 신전이냐 복음 전하는 성전이냐? 한 지역에 올바른 정확한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세워지면은 거기에 대한 축복은 엄청난 것입니다. 반대로 우상 신전 하나 크게 세워지면 은 그것 통해서 영적인 엄청난 저주의 역사가 그 지역 전체를 사로잡게 되어있어요. 그래서 여러분 성전 건축을 놓고 특별히 건축 헌금을 놓고 마음에 결단 하실 것은 진짜 이 시대에 지역에 전도운동에 대표적인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이 언약을 붙잡고 건축헌금에 인도 받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시대 시대마다 보세요. 그냥 싸움이 아닙니다. 애굽에 피라밋 신전, 또 바알과 아세라 신전 그때에 엘리야와 엘리사, 다곤 신전 느보 신전 전부다 제우스 신상들 그 시대에 바울 전부다 시대마다 영적 싸움에 쓰임 받았던 축복 영적 싸움이 뭐냐? 우상 신전이냐 정말로 복음 성전이냐? 우리는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올바른 복음으로 말미암아 전도 운동하는 대표적인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일을 위해서 우리가 건축헌금에 인도 받아야 합니다. 마지막 미래에 대한 언약입니다. 그게 뭐냐? 후대를 위해서 장학헌금 하고 RUTC 헌금입니다. 흑암에 빠진 후대들 영적 서밋, 기능 서밋, 정말로 문화 서밋으로 세워나가야 되잖아요 이제는 우리 후대들 가운데 정치인이 일어나야 되고요 이일을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정말로 우리 후대들 가운데 정치인, 경제인이 일어나야 되고요 한시대 하나님 나라 이루는 일에 우리 중요한 후대들이 요소요소 들어가서 모든 문화를 바꿔나갈 수 있는 이일에 우리가 응답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은 후대와 렘넌트를 위해서 관계된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이 무조건 축복하셨다 라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4가지 헌금에 대한 부분들을 언약으로 붙잡고 헌금에 계획하시고,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청지기 주일에 예배에 대한 결단과 훈련에 대한 결단과 또 전체 헌금에 대한 결단들, 바르게 인도 받음으로 말미암아 이 한 시대 예수를 바라보는 믿음에 싸움 가운데 믿음의 경주가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2018년 1월 7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틀리지 않는 방향 - 예수를 바라보라
(히12:1-2)
서론: 신앙생활에 중요한 것이 속도가 아니라 방향입니다. 예수를 바라보는 것이 올바른 방향입니다. 복음 안에 있으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고, 그 속에서 방향들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서는 바울이 AD65-70년에 기록 했습니다. 히브리서에서 그리스도의 우월성에 대해 말씀하고 있고, 주제 성구가 히12:1-2절입니다. 히브리서는 예수를 잘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 핍박과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에게 쓴 편지입니다. 그리스도가 우월하다는 사실을 증거 하는 증인 되길 바랍니다.
1. 믿음의 경주를 하라
가. 히11장 - 구약에서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붙잡은 자들의 승리를 말씀
나. 믿음의 차이
1) 구약시대 - 메시야를 약속으로 붙잡고 승리
2) 신약시대 - 오신 그리스도를 보고, 듣고, 만진 사람
3) 구약시대보다 우리의 조건이 더 좋기 때문에 믿음의 경주를 시작
다. 믿음의 경주
1)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버림(나도 모르게 합리화 하는 걸림돌)
2) 끝까지 견디고 참으며 경주(주어진 자리에서 말씀 붙잡고 남아 있는 것)
2. 예수를 바라보라 - 올바른 방향(승리, 응답)
가. 믿음을 시작하신이가 모든 것을 끝내심(빌1:6) - 아브라함(믿음을 설명), 모세(이스라엘을 출애굽)
나.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심(히12:2)
1) 구원 안에 있는 생명의 풍성함을 위해
2) 십자가에서 죽으심
결론: 믿음의 경주를 위해 세 가지 결단을 하시길 바랍니다(예배, 훈련, 헌금).
1. 예배 - 복음의 능력을 덧입는 중요한 시간
가. 예배는 모든 재앙이 무너지는 시간(삼상7:10) 나. 말씀 속에서 현장을 보는 눈이 열려짐
다. 예배가 나와 삶, 내 인생을 지켜줌
2. 훈련 - 미래를 최고로 만들 수 있는 투자
가. 전도 속에 내 삶이 있는 것 - 최고 가치
나. 전도자의 축복을 누리지 못 하게 하는 다른 것을 바꾸는 비밀(훈련)
3. 헌금 - 전도와 선교를 위해 드리는 예배 행위
가. 십일조 - 교회를 살리고 주의종이 마음껏 복음 증거
나. 선교헌금 - 세계선교현장에 재앙의 역사를 막고, 237개 나라 살림
다. 건축헌금 - 지역에 전도운동 하는 대표적인 교회
라. 장학헌금, RUTC헌금 - 렘넌트들을 영적, 기능, 문화서밋으로 키우는 응답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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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4 | 전환점을 이룬 안디옥 선교 | 행11:19-30 | 2025-04-27 | |
1483 | 우리에게 주시는 영원한 메시지 | 고전15:1-11 | 2025-04-20 | |
1482 | 새로운 싸움을 위하여 | 삿7:9-18 | 2025-04-13 | |
1481 | 날마다 영적싸움에 승리하라 | 삿7:1-8 | 2025-04-06 | |
1480 | 이 시대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해답 | 삿4:1-10 | 2025-03-30 | |
1479 | 하나님이 쓰시는 기준 | 삿3:12-23 | 2025-03-23 | |
1478 |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 삿3:7-11 | 2025-03-16 | |
1477 |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 삿2:6-10 | 2025-03-09 | |
1476 |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 삿1:1-7 | 2025-03-02 | |
1475 |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 단12:1-4 | 2025-02-23 | |
1474 |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 단11:28-39 | 2025-02-16 | |
1473 |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 단10:10-21 | 2025-02-09 | |
1472 |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 단9:20-24 | 2025-02-02 | |
1471 |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 단8:15-27 | 2025-01-26 | |
1470 |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 단7:9-14 | 2025-0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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