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너는 하나님의 성민이라
2016-04-03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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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3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너는 하나님의 성민이라”
(신7:6~11)


6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7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8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또는 너희의 조상들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
9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그의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
10 그를 미워하는 자에게는 당장에 보응하여 멸하시나니 여호와는 자기를 미워하는 자에게 지체하지 아니하시고 당장에 그에게 보응하시느니라
11 그런즉 너는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할지니라
 신7:6~11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예수는 그리스도 이십니다! 오늘도 오직 예수그리스도 그 이름만이 선포되어지고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병든 부분이 치유되어지고 응답되어지는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일반 의사들과 정신과 의사들 앞에 가면 묻는 질문이 다르다고 합니다. 일반 의사들은 환자를 맞이할 때에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습니까? 어디가 아파서 오셨습니까?” 라고 묻고요. 정신과 의사들은 “이름이 무엇입니까? 어디에서 왔습니까?” 라고 묻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는 대통령입니다. 나는 청와대에서 왔습니다.” 라고 하면 정신이 돈 겁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사실은 정체성을 아는 것이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들고 계시는데, 우리를 향한 하나님께서 정체성을 주셨습니다. 흔들릴 수 없는 정체성이 나에게 있느냐? 그것은 바로 우리의 응답과 연결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신앙생활에 깊은 응답과 연결되어지는 것이 내가 누구인가를 아는 것이고, 교회가 무슨 교회고, 어떤 교회인가를 아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정체성을 아는 것 자체가 바로 우리의 응답과 연결되어지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내가 누구입니까? 내가 어떤 존재입니까? 우리 교회는 어떠한 교회고 우리 교회는 왜 존재합니까? 하나님이 일으키는 복음운동 속에 있는 한 교회와 한 사람으로서 그 현장에 있는 사람, 그게 우리의 정체성인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에 보시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정체성에 대한 부분을 확립시켜주고 있는 부분들입니다. 오늘 본문은 모세가 가나안 정복을 앞두고 있으면서 사실 유언처럼 남긴 여러 가지 말들 가운데 한부분입니다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엇을 각인시켜 나갑니까? 너희들이 어떤 백성인가에 대한 정체성을 확인시켜나가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실 지금 모세와 함께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할 때에 있었던 1세대들이 아닙니다. 거의 1세대들은 광야에서 죽어나갔고, 지금 가나안 정복을 앞두고 있는 모세와 함께 있던 사람들은 광야에서 태어난 출애굽의 2세대들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자 그렇다면 모세가 볼 때에 이들이 듣기는 들었지만 애굽에 내려진 하나님의 10가지 기적, 홍해를 가른 능력을 직접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뭔가 모르게 지도자 모세의 마음에 자기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을 바라보면서 미덥지 않은 마음이 있었겠죠. 그리고 이들이 들어가야 할 가나안 땅을 바라보면서 그 가나안 땅은 7족속이 기다리고 있는 땅입니다. 1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보다 더 많고 힘이 센 민족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민족인 가나안 땅의 7족속이 기다리고 있다면 과연 이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들의 신앙과 믿음들을 지켜나갈 것인가? 아니면 우상숭배가 심한 그 가나안 땅 속에 동화되어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놓쳐버리고 오히려 그들과 함께 동화되어서 우상숭배에 빠져들 것이라는 염려의 마음이 있었겠지요. 그래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중요한 말씀을 하고 있는데 그게 바로 6절입니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출애굽 2세대의 가나안을 정복할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모세가 바로 너는 하나님께서 택한 하나님의 성민이다. 그리고 지상 만민 가운데 너희들이 택함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정체성을 확인시켜주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것이 있다면 우리 자신에 대한 정체성, 우리 교회에 대한 정체성을 발견하게 될 때에 거기에 당연한 응답은 따라오는 것입니다. 정체성을 알지 못하면 기도도 안 되게 되어 있고, 응답도 받지 못하고 승리도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체성을 제대로 깨달으면 기도도 바른 기도가 나오게 되어 있고, 거기에 바른 응답이 나오고 그 증인으로써 반드시 승리가 나오게 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이 있다면 정체성에 대한 부분입니다. 읽지는 않았지만 5절에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를 통해서 요구하고 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모든 우상을 깨버리고 멸하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이것 또한 너희들은 가나안 땅에 우상숭배를 하는 자들과 다른 구별된 백성이라는 그 정체성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불신자와 우상숭배를 하는 자들이 아니라 너희들은 하나님께서 구별하신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 5절입니다.
오늘 제가 묵상기도 때에 마태복음5:13~16절을 읽었습니다. 거기에 보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열심히 살아서 소금같이 빛같이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신분이고,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소금으로 빛으로 부르셨다는 정체성에 대한 것입니다. 이 사실을 놓치게 될 때 소금이 만일 맛을 잃으면 어떻게 됩니까? 성경 본문에 보면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짓밟히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정체성을 놓쳐 버리게 되면 우리 자신들이 응답을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세상도 멸망 받게 되어 있습니다. 소금이 맛을 냄으로 세상이 살아나게 되어 있는데, 소금이 맛을 잃음으로 말미암아 밖에 버려져서 짓밟히게 되고 오히려 세상도 하나님의 사람도 응답을 받지 못하고 멸망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신분, 정체성을 회복하게 될 때에 나만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도 살아날 줄 믿습니다. 그게 우리의 자리입니다.

1. 거룩한 백성
그러면 오늘 본문에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정체성을 말씀하고 있는데, 너는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말은 구별된 백성이라는 말이고, 거룩한 백성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부분을 출애굽기19:6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구별된 백성과 하나님의 성민, 거룩한 백성은 같은 말입니다. 베드로전서2:9절에 보면 베드로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거룩한 나라로 구별해서 하나님께서 따로 세운 택하신 족속으로 우리를 부르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하나님께서 거룩한 백성으로 부르셨습니다. 왜 거룩한 백성으로 부르셨습니까? 어떻게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거룩한 백성으로 부르셨고, 지상 만민 가운데 택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지상에 많은 민족과 사람들이 있는데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지상 만민 가운데서 택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그 택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늘 성경본문에 보면 우리의 조건과 노력, 애씀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선택함을 받은 것이 아니고 거룩한 백성으로 구별된 것이 아닙니다. 7절에 보면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그냥 기뻐하심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거룩한 백성으로 삼은 것입니다. 그들이 바르게 살고, 착하게 살고, 노력하고 애쓰고 거룩한 백성이 되기 위해서 힘쓰고 애써서 거룩한 백성이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기뻐하셔서 그냥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이 택한 민족으로 부르셨다는 겁니다. 이것을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의 절대주권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이에요. 우리의 노력과 애씀이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 속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거룩한 백성으로 만드셨다고 했습니다.
8절에도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유가 없습니다.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이런 이유, 저런 이유를 이야기합니다만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일방적으로, 조건 없이, 무조건적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입니다. 언제든지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실 때 조건 가지고 부른 것이 아닙니다. 일방적으로. 그래서 로마서 5장 8절에 보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말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조건 내세울 것이 없습니다. 보탤 것이 없습니다. 왜냐? 에베소서 2장 1절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이기 때문입니다. 전적 타락과 전적 무능력 속에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 무언가 보태고 무언가 해 주어야 하고, 아닙니다. 우리는 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셨는데 로마서 5장 6절에 보면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5장 8절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5장 10절에 보면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이 땅이 모든 문제 가운데 빠졌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것을 죄라고 합니다. 그 죄로 말미암아 저주와 재앙이 계속해서 이 땅에 밀어닥치게 되었습니다. 그 죄의 값이 사망입니다. 그 죄에서 아무도 빠져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 죄의 권세가 계속해서 우리와 우리 후대에게 밀어닥치는데 그래서 이것을 가지고 운명이라 이야기합니다. 결국은 운명 가운데, 죄 가운데, 그 배경에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단의 역사입니다. 이것을 우리 스스로 사단을 이길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다 이루었다” 선언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선언하신 것은 주님께서 우리가 보탤 것 없고 우리가 무언가 해야 할 것 없이 주님이 다 해결해 놓고 믿기만 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구원의 역사입니다. 믿기만 하면 된다는 것. 여러분, 세상의 모든 지식과 학문과 이론, 종교들은 내가 무언가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무언가를 보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은 그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그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다 끝내 놓고 그 사실을 믿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게 구원의 역사입니다. 믿습니까? 그래서 요한일서 4장 10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줄 알았는데 성경에서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그 사랑은 조건 없는 일방적인 사랑입니다. 우리 모든 인간들은 조건 있는 사랑이고 우리 모든 인간들은 무언가를 바라보는 사랑이고 우리 인간들은 무언가 여러분, 해 놓고도 무언가 바라보면서 무언가 대가를 요구하는 사랑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은 조건 없는 무조건적인 사랑이고 일방적인 사랑입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5장 11절에 보면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우리와 상관 없이 먼저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조건 없는 일방적인 사랑을 받은 자가 바로 저와 여러분입니다. 그런데 이 축복이 어떻게 이루어졌느냐? 구체적으로 오늘 8절에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데 이 하나님의 성취가, 하나님의 사랑의 성취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8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무 중요한 부분인데 거기 보시면 8절 마지막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다. 하나님께서 사랑의 역사를 성취하셨는데 어떻게 그 사랑을 성취하셨느냐?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단어가 ‘속량’이라는 단어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속량이란 단어는 나 대신해서 값을 치른다는 말입니다. 그게 속량이란 단어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 속량이란 단어는 무슨 단어입니까?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10가지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만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못 빠져나왔습니다. 그런데 언제 빠져나왔습니까?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발랐을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아나게 되었고 애굽에서의 430년 노예살이에서 해방된 축복을 누렸습니다. 언제요?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발랐을 때. 그 사건을 일컬어서 속량이라 이야기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구원 받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보혈의 피 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보혈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속량입니다. 여러분, 구약의 모든 사람들이 한 가지, 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를 의지하고 구원 받았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하나님을 떠나자마자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 받는 길을 말씀하시는데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창세기 3장 15절에서 말씀하시면서 그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는 그 방법이 무엇이냐? 창세기 3장 21절에 보면 가죽옷을 지어 입혔다 했습니다. 피흘림으로 말미암아. 구약의 모든 인물들이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를 받은, 일방적으로 하나님이 택하신 이 사실을 받을 수 있는 그 축복을 어떻게 누렸느냐? 한 가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신앙의 선조들도 오랜 동안의 신앙의 모든 선조들도 다른 것으로 구원 받은 것이 아닙니다. 출애굽기 3장 18절에 희생 제사, 이사야 7장 14절에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 지금도, 오늘도, 앞으로 오는 모든 미래의 성도들도 하나님의 사랑의 성취를 누릴 수 있는,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일방적인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그 축복이 무엇으로 되어지느냐? 한 가지입니다. 오직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래서 사도행전 4장 12절에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했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이 아닙니다. 구약의 모든 선진들, 또 우리 신앙의 모든 선조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앞으로 미래를 당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구원 얻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 그 한 가지라는 사실입니다. 히브리서 13장 8절에 보면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말씀했습니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들을 그리스도의 피로 이루셨다면 오늘 우리에게도 그리스도 피로 구원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앞으로 오는 세대, 우리의 미래도 구원의 길을 뭐로 이루시느냐?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이루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를 붙잡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남과 죄 가운데, 사단의 운명 가운데 빠진 인생, 오직 그리스도로만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오직 그리스도로만 거룩한 백성이 되고 오직 그리스도로만 하나님의 성민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사실을 붙잡는 것이 가나안 땅을 살리는 비밀입니다. 우리가 가나안 땅 같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 속에서 우리가 승리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이 세상을 바꾸기를 원하십니까? 정말로 나에 대한 정체성이 무엇인가, 그 사실을 붙잡게 될 때에 가나안 땅을 바꿀 수 있는 축복이 누려지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오직 그리스도 이 언약을 놓쳐버리면, 이 언약이 희미해지면 나오는 것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인간의 공로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오직 그리스도가 안 되면 분명히 나오는 것이 무엇이냐? 인간의 공로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중요한 것은 우리 스스로 열심히 노력해서, 애써서, 또 몸부림쳐서 어떻게 하든지 간에 하나님께 잘 보여서 그렇게 구원 받은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정말로 전적 타락함과 전적 무능력 속에서 그 한계 속에 갇혀서 결국은 영원한 멸망 가운데 있어야 할 저와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사 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저와 여러분을 의롭다고 칭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거룩한 백성, 하나님의 성민이 된 것입니다.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가장 능력의 역사를 누릴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내가 누구인가, 나에 대한 정체성을 가지고 세상의 여러 가지 현장에 일어나는 문제들 속에 흔들리지 않고 살아가게 될 때에 참된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축복된 응답을 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만 붙잡기를 바랍니다.

2. 거룩한 백성의 삶의 기준 - 오직 복음의 말씀
두 번째입니다. 그러면 거룩한 백성이 이 땅에 살아가는 삶의 기준은 무엇이냐? 거룩한 백성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는데 거룩한 백성으로서 이 땅에 살아가는 삶의 기준은 무엇이냐? 오늘 본문 9절에서 11절에 말씀하고 있는데, 9절에 보면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 “그를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그의 계명을 지킨다는 말과 동격으로 쓰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우리가 어떻게 사랑합니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그 증거는 약속하신 말씀을 붙잡는 것입니다. 오직 복음의 말씀을 붙잡는 것,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입니다. 그렇다면 거룩한 백성으로서 살아가는 삶의 기준은 무엇이냐? 오직 우리에게 주신 복음의 말씀만 붙잡는 것, 그것이 우리의 모든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11절에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너는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할지니라.” 여기에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할지니라”는 무슨 말입니까?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의 명령이 무엇이며 규례가 무엇이며 법도가 무엇입니까? 복음의 말씀입니다. 이 복음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으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동일하게 이 땅에 살아가고 있지만 살아가는 삶의 기준은 다릅니다. 우리에게 오직 유일한 기준은 약속으로 주신 복음의 말씀만이 우리 모든 삶의 기준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있어 이 말씀을 붙잡지 못하게 하는 것이 있다면 과감하게 내려 놓으십시오. 말씀보다 더 귀중한 것이 있다면 결국은 그게 여러분의 올무가 되어서 그것 때문에 여러분이 실패하는, 응답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 됩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할지라도 약속의 말씀과 멀어지게 하는 것이 있다면 언제든지 “No.”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사실 가나안 땅, 모세가 지금 말씀하고 있는 가나안 땅은 남자들이 얼마나 멋있게 생겼고 여자들이 얼마나 아름답게 생겼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좋은 것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결국 그것이 전부 다 올무가 된다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눈에는 좋게 보인다 할지라도 말씀과 멀어져 있는 것, 하나님의 복음의 말씀과 약속의 말씀과 멀어져 있는 것은 그 어느 것이라도 반드시 우리에게 올무가 되어서 그것 때문에 걸려서 넘어지는 역사를 감당하게 됩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길을 가는 동안 그들이 무엇으로 살았습니까? 성경에 보면 40년 동안 광야길을 이스라엘 백성이 갔습니다.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알게 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이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길을 가는 동안 결국 배운 것이 무엇이냐? 한 가지입니다. 사람은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이다, 이걸 광야길 가는 동안에 배웠습니다. 신명기 8장 2절, 3절을 한번 봅시다. 8장 2절, 3절. 같이 한번 읽어 봅시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광야길을 걸어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 그들이 배운 것이 있다면 아, 사람은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구나,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이구나, 약속하신 그 말씀 붙잡으니까 승리하는 것이구나, 이 사실을 알게 하기 위해서 광야 걸음을 인도하셨다 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모습은 어떠해야 합니까? 마찬가지입니다. 광야길을 말씀으로 살게 하는 것을 알게 하셨다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는 그 말씀을 실제적으로 적용하고 그 말씀을 실천함으로 말미암아 살아가는 것이 가나안 땅에서의 삶입니다. 다시 말해서 복음으로 주어진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살아가는 삶이 가나안 땅의 삶입니다. 그래서 그 약속의 말씀을 이야기하면서 하나님께서 무어라고 말씀하셨느냐? 그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있는 자에게는 9절에 보면 천대까지 복을 내리겠다 했습니다. 이 약속의 말씀을 놓치게 될 때 바로 하나님은 진노로써 보응하시지만 이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있을 때 천대까지 복을 내리겠다고 말씀하시면서 13절에 보면 가나안땅을 너희들이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13절 마지막에 보면 경제적인 축복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네 소와 양을 번식하게 하시리니..” 14절에는 “생육하지 못함이 없을것이며” 생육의 축복을 말씀하고 있고 15절에는 건강의 축복을 말씀하고 있는데 “여호와께서 또 모든 질병을 네게서 멀리 하사”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게 될 때에 하나님은 거기에 모든 축복을 다 주시겠다라는 거예요.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이 있어요. 17절부터 21절을 보면 그 두려운 백성 가나안 땅을 대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심중에 두려움이 생기면 어떻게 합니까? 거기에 중요한 답을 주셨는데 21절입니다. 같이 읽읍시다. “너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곧 크고 두려운 하나님이 너희 중에 계심이니라” 할렐루야! 세상을 이기는 비밀입니다. 뭡니까? 임마누엘이에요. 복음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게 될 때 크고 두려운 하나님이 우리 중에 계시겠다고 했어요. 임마누엘의 축복입니다. 세상 모든 현장을 살리는 비밀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들로써 살아가는 삶의 기준은 오직 약속의 말씀만 잡아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세상 윤리와 도덕들을 따라가게 되어 있어요. 오직 예수 안 붙잡으면 인간의 공로가 나오고, 오직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놓쳐버리면 어쩔 수 없이 세상 윤리와 도덕을 따라가야 됩니다. 여러분 지금 교회의 모습이 그런 모습 아닙니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다 놓쳐 버리고 세상의 기준이 교회에 와서 기준이 되었는데 착하게 사는 것, 바르게 사는 것, 선하게 사는 것, 그게 기준이 되어 버렸어요.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착하게 선하게 살아야죠. 그런데 그렇게 교회가 그걸(도덕, 윤리) 붙잡고 나오는 바람에 불신자와 거의 다를 바 없는 전혀 영적인 힘이 없는 사람들을 만들어놨어요. 진짜 성도들에게 있어서 참된 힘은 어디 있는 줄 아십니까? 오직 약속의 말씀, 복음으로 주신 말씀을 붙잡는 거기에 힘이 있는 것입니다. 물론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나빠야 된다, 바르게 살지 말아야 된다는 그런 말이 아닙니다. 그런 차원이 아니에요. 우리의 모든 기준은 윤리와 도덕을 앞서서 오직 복음으로 주신 약속의 말씀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에요. 교회 안에 전통과 제도도 중요합니다. 교회 안에 뭔가 사상, 이념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들도 복음 보다 앞서면 안되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보다 앞서면 안된다는 말입니다. 유대인들이 왜 망했습니까? 그렇게 좋은, 훌륭한 전통과 제도와 사상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모든 것들이 복음으로 주신 약속의 말씀을 놓쳐버리는 것이 되었어요. 그러니까 역사 속에 유대인들이 철저하게 망한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잖아요. 또 교회 안에 민주주의 그것도 아니에요. 그러면 교회는 독재냐? 그것도 아닙니다. 교회는 오직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기준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 기준이 거룩한 백성으로서 삶의 기준이 있다면 하나님이 약속으로 주신 복음의 말씀, 이 사실을 제대로 붙잡는 한 사람만 나와도 이 한 사람 때문에 우리교회는 살아날 줄로 믿습니다. 우리 모든 현장에 약속의 말씀, 복음의 말씀 붙잡는 한 사람만 나와도 그 현장에 모든 분위기는 바뀔 줄로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가나안 땅 같은 세상 현장 속에서 그 현장을 바꿀 수 있는 비밀이 있다면, 우리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것이고 복음으로 주신 약속의 말씀이 우리의 기준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여러분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습니까? 그리스도가 나의 모든 문제 해결자 이심을 정말 믿습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만나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만나니까 하나님 안에서 나에 대한 바른 정체성이 나오게 되어 있어요. 우리는 다른 것으로 우리가 정체성을 깨닫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 가진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 누리고 하나님 안에 들어가야 나에 대한 바른 정체성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만나고 하나님 누릴 수 있는 길은 다른 길이 없어요. 그리스도가 나의 구주요, 나의 주인되시고 나의 모든 문제 해결자라는 사실이 고백 되어 질 때, 하나님 만나고 하나님 누리게 되고 그 속에서 나에 대한 올바른 정체성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 현장 속에 살아가면서 현장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복음으로 주신 약속의 말씀만이 현장을 바꿀 수 있어요. 이 사실을 붙잡음으로 말미암아 가나안 땅 같은 세상 현장 속에서 세상을 바꾸며 세상을 살리는 전도자로 증인으로 쓰임 받는 그런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와 영광을 주 앞에 드립니다. 이 땅에 발을 디디고 살고 있지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원히 변하지 않는 흔들릴 수 없는 하나님의 자녀, 거룩한 백성으로 우리를 불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이 정체성을 놓치지 않게 하시고 우리의 모든 기도와 응답과 축복이 정체성 속에 나옴을 알게 하여 주시사 날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축복이 있도록 역사하여 주옵소서. 또 이 땅에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 삶의 기준인 오직 복음으로 주신 약속의 말씀만 기준 삼게 하시고 약속의 말씀 붙잡고 모든 세상 현장을 바꾸어 가는 증인들 되도록 우리 하나교회 모든 성도들을 축복하여 주옵소서.
살아계신 우리구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2016년 4월 3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너는 하나님의 성민이라
(신7:6-11)


서론: 정체성을 아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내가 누구이며, 우리 교회가 어떤 교회인 줄 아는 것이 응답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일으키시는 복음 운동 속에 우리 교회가 있고, 한사람 한사람이 그 현장에 부름 받은 것입니다. 오늘 본문도 이스라엘 민족의 정체성을 확인시켜 나가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출애굽의 기적, 홍해를 가른 능력을 보지 못한 2세대들에게 만만치 않은 가나안 땅 앞에서 믿음을 지키도록 하기위해 정체성을 확인시켰습니다(6절). 정체성을 깨닫지 못하면 기도도 안되고 응답도 승리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으로 우상들을 깨뜨리고(5절)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부름받은(마5:13~16) 하나님의 성민(출19:6, 벧전2:9, 구별된 거룩한 백성)입니다.

1. 거룩한 백성 (6-8)
가. 우리는 자신의 노력이 아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거룩한 백성입니다.
1) 하나님의 절대주권: 다른 이유가 없이 기뻐하심으로 거룩한 백성으로 택하신 것임
2) 전적타락과 무능력 속에 있는 우리(엡2:1, 롬5:6,8,10)를 일방적으로 사랑하심으로 조건도 없음(요4:10, 요일5:11)
나. 그 사랑의 구원을 성취하시기 위해 하신 일
1) 하나님께서 직접 우리를 대신하여 값을 치르심으로 속량(신7:8)하셨음
2) 오직 그리스도의 피(창3:15, 출3:17, 사7:14, 마16:16)로 말미암아(행4:12, 히13:8)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임
☞ 정체성을 가지고, 흔들리지 말고 가나안 정복을 하라!


2. 거룩한 백성의 삶의 기준 - 오직 복음의 말씀 (9-11)
가. 약속하신 말씀을 붙잡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1) 말씀만이 모든 삶의 기준이 되어야 함(신7:11): 나머지는 다 내려놓아라 - 아니면 올무가 됨
2)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신8:3):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길 가는 가운데 배운 유일한 것
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지키는 자는 천대까지 복을 받습니다.
1) 가나안땅을 얻게 되고 경제의 축복(13), 생육의 축복(14), 건강의 약속(15)까지 받음
2) 크고 두려운 하나님께서 우리 중에 계심(17~21): 세상을 이기는 비밀인 임마누엘의 축복
☞ 가나안 땅을 바꿀 수 있는 비밀, 정체성을 회복한 한 사람이면 된다!



결론: 정말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습니까? 나의 모든 문제 해결자이심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 안에서 나의 정체성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다른 것이 아닌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이제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모든 문제의 해결자라고 고백되어질 때, 하나님 만나고 올바른 정체성이 나옵니다. 현장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복음, 곧 약속의 말씀만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한주간 가나안 땅 같은 현장 속에 세상을 바꾸고 살리는 축복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 기 도 문 >
하나님 아버지, 이유도 조건도 없이 전적타락과 무능력 속에 있는 우리를 일방적으로 사랑하심으로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심을 감사드립니다. 말씀만이 모든 삶의 기준이 되고, 다른 것은 다 내려놓고 약속하신 말씀을 붙잡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길 원합니다. 한주간 세상을 이기는 비밀인 임마누엘의 축복을 누림으로 가나안 땅 같은 현장 속에 세상을 바꾸고 살리는 축복을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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