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의 간구
2016-01-31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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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31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모세의 간구”
(신3:23~29)
23 그 때에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기를
24 주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크심과 주의 권능을 주의 종에게 나타내시기를 시작하셨사오니 천지간에 어떤 신이 능히 주께서 행하신 일 곧 주의 큰 능력으로 행하신 일 같이 행할 수 있으리이까
25 구하옵나니 나를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쪽에 있는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 하되
26 여호와께서 너희 때문에 내게 진노하사 내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내게 이르시기를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
27 너는 비스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고 네 눈으로 그 땅을 바라보라 너는 이 요단을 건너지 못할 것임이니라
28 너는 여호수아에게 명령하고 그를 담대하게 하며 그를 강하게 하라 그는 이 백성을 거느리고 건너가서 네가 볼 땅을 그들이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29 그 때에 우리가 벳브올 맞은편 골짜기에 거주하였느니라
신3:23~29
■ 할렐루야, 모든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나라들을 차지하리라! 오늘 2부 예배 참여한 여러분 모두가 오늘 예배를 통해서 복음만이 필요한 이유를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참된 최고의 응답을 누리게 되는 축복의 시작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제목을 “모세의 간구.” “모세의 간구”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모세가 비스가 산에서 가나안 땅을 바라보며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는 내용이 나와 있는 부분입니다. 25절에 이렇게 나옵니다. “구하옵나니 나를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쪽에 있는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 하되.” 꿈에도 그리던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해 달라고 간청을 했습니다만 하나님께서 응답을 주셨는데 그 응답은 26절입니다. 같이 한 번 읽어 봅시다. “여호와께서 너희 때문에 내게 진노하사 내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내게 이르시기를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 간절하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를 요청했습니다만 하나님이 주신 응답은 정반대의 응답입니다. 그만해도 족하다, 이제 됐다, 너는 그것까지다. 그렇게 하시면서 다시는 그것 때문에 그 말로 나에게 기도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가나안 땅을 바라볼 수만 있도록 하셨고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하셨을까? 하나님께서 왜 모세에게, 어떤 면에서 모세라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로서 가나안 땅에 당연히 들어가야 할 사람인데 왜 바라보도록만 하시고 그 땅을 모세에게는 허락하지 아니하셨는가? 그 부분에 대해 오늘 말씀을 통해 대답을 찾아내시고 특별히 오늘 이 부분을 놓고 모세의 기도와 그 기도의 간구의 내용, 또 간구의 내용에 대한 응답과 함께 우리가 어떤 기도로써 하나님께 나아가야 할 것이며 기도를 통해 누려야 할 축복이 무엇인가를 말씀을 통해서 확인하면서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1. 거절당한 모세
먼저, 성경에 보면 모세는 자신도 약속의 땅, 가나안 땅을 밟게 되기를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만 하나님 앞에 거절당하는 모습이 오늘 본문에 나오고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모세는 생명을 걸고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켜서 오늘 가나안 땅의 입구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런 모세에게 다른 소원은 없었습니다. 사실 40년 동안의 광야 생활로 말미암아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해 왔는데 모세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한 번이라도 밟는 것이 모세의 소원 중의 소원이었던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모세는 당연히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 할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대면해서 본 유일한 선지자이고 또 가나안 땅을 향해 나아가는 광야길에 있어서 모세만큼 성경에서 이적을 행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가나안 땅을 밟아야 하는 사람이 모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왜 모세에게 가나안 땅을 허락하지 않았는가? 사실 가나안 땅을 보기 위해서 오늘 본문에 보면 모세가 간절하게 하나님께 기도하는 부분이 나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간절한 기도를 하게 하시고 그 땅을 모세에게는 허락하지 않았는가? 여러분,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민수기 20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걸음 속에, 아마 마지막 단계입니다. 므리바라는 지역에 이르렀습니다. 거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먹을 물이 없으니 지도자인 모세와 아론를 향해 원망하고 불평하며 우리를 위해 마실 물을 내어 놓으라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가지고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없다는 불신앙까지 심어졌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때 그들의 요구 앞에 모세가 민수기 20장 10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모세가 그의 손을 들어 그의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니,” 했습니다. 예전에 우리가 어릴 때 이 말씀에 대한 부분을 성경공부를 통해 듣게 된 것은, 배우게 된 것은 이것입니다. 왜 모세가 충분히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가나안 땅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들여보내지 않았느냐? 반석을 한 번 쳐야 하는데 두 번 쳐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아닙니다. 한 번 치고 두 번 치는 것이 아니라, 그게 문제가 아니라, 사실은 두 번 친 그 속에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은 모세의 마음을 하나님이 읽고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가나안 땅을 허락하지 않은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12절에 보면 그에 대한 답을 하고 있습니다. 민수기 20장 12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결국은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은 그 행동으로 말미암아 결국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일을 당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혹시나 하고 모세의 마음에는 혹시나 하나님의 마음을 돌이킬까 싶어 오늘 본문에 간절하게 하나님께 기도했던 부분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이 26절, 27절에 나오는데 오늘 저와 여러분이 읽은 부분입니다. “여호와께서 너희 때문에 내게 진노하사 내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내게 이르시기를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 그러면서 27절에 보면 “너는 비스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고 네 눈으로 그 땅을 바라보라 너는 이 요단을 건너지 못할 것임이니라.” 결국은 모세의 그 요청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일언지하에 “No.”하고 대답한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언지하에. 그 하나님의 대답 앞에 모세는 다른 변명을 하지 아니하고, 왜 나는 못 들어갑니까, 내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수고했습니까, 왜 나는 가나안 땅을 밟지 못합니까, 그렇게 변명하지 아니하고 그대로 말씀에 순종하면서 토를 달지 아니한 부분을 부여주고 있습니다. 참으로 기도의 사람이었던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모세는 안 것입니다. 아, 나의 사역이 이것까지이구나. 하나님의 마음을, 하나님의 뜻을 돌이키기 위해 기도를 했지만 그러나 결국은 나에 대한 하나님의 사역이 이것까지이구나. 내가 원하는 것이라고 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아니구나. 이 사실을 바르게 깨달은 기도의 사람이었던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기도에 대해서 많은 분들이 오해를 하는데 여러분, 기도는 내 욕심과 내 동기를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은 자칫 잘못하면 인본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기도라는 것은 뭐냐? 여러분, 불신자에게도 하나님의 귀한 계획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인 저와 여러분에게는 당연히 하나님의 중요한 계획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도를 통해서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하나하나 찾아 나가는 것을 가지고 기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의 목표를 가지고 기도하고 나의 동기를 가지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만 그러나 그렇게 기도하고 나아가면 결국은 가면 갈수록 영적인 사실에 대한 엄청난, 많은 것들이 닫히게 됩니다. 막연해 보일지 모르지만 모든 문제와 사건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 이 부분을 찾기 위해 기도하며 나아갈 때 그것이 바로 영적으로 열리게 되어 있고 영적으로 우리의 삶이 바르게 인도받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를 할 수 있는 가장 축복된 통로가 기도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자녀에게만 허락하신 축복 중의 축복이 있다면 바로 기도인데 그 기도는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뜻을 찾아내는 것을 가지고 기도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뜻을 기도로 찾아내는데 특히 어떤 기도를 통해 찾아내야 하느냐?
여러분, 특별히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은 여러분, 예배를 통해서 주어지는 말씀, 그 말씀을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말씀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있으면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부분들이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특히 여러분, 말씀의 흐름을 보면 아, 복음이 없어지는 시대구나, 그래서 결국은 재앙이 임하게 되고 재앙이 임할 때마다 다시 하나님께서 그 재앙의 역사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주시는데 복음을 주시고 그 복음을 통해서 또 다시 회복하시는구나, 이 말씀의 흐름을 제대로 보게 되면 모든 것 속에서 하나님의 응답을 찾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혹여나 여러분, 여러분이 갖고 있는 생각들 있지 않습니까? 내가 갖고 있는 생각이 하나님의 말씀과 안 맞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내가 갖고 있는 생각이 하나님의 계획과 안 맞다, 말씀과 안 맞다 할지라도 정말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일까, 그 말씀을 붙잡게 될 때에 결국 시간이 지나고 나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되는 그런 응답으로 우리에게 오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분명히 하나님의 자녀들의 모든 기도는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 응답받는 부분을 보면 어떤 형태가 있느냐 하면 기도하면 즉각적으로 우리에게 응답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특히 믿은 지 얼마 안 되는 사람들, 기도하면 신비하리만큼 정말 응답되는 것을 봅니다. 그와 더불어 또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 맞는데 응답이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왜인줄 아십니까? 시간표를 하나님이 아시고 계시기 때문에 나를 나보다 더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나에 대한 시간표를 하나님께서 갖고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라 할지라도 시간표에 따라 우리에게 가장 적절하게 최선으로 우리에게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붙잡고 기도하는데 이상하게 우리의 기도를 바꾸어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정말로 말씀을 붙잡고 계속해서 기도 속에 들어가게 되면 분명히 그 속에서 하나님의 중요한 계획과 하나님의 뜻을 찾아내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하나님의 사람을 말씀으로 인도하시게 되어 있습니다. 그냥 성경공부가 아니라, 설교를 그냥 듣는 것이 아니라 진짜 하나님의 복음의 말씀을 듣게 될 때 그 말씀의 흐름 속에서 정확한 응답들을 하나하나 찾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모세에게 있어 이 모세는 바로 이러한 기도의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욕심 가지고, 자기의 동기 가지고 끝까지 하나님께 떼쓰고 애쓰면서, 여러분, 예전에 우리가 했던 것처럼 금식하고 기도하면서, 구걸하면서 하나님, 이것 안 해주면 안 됩니다, 그렇게 간절하게 기도하고 나아간 그런 것이 아니라 아, 내가 이것까지구나, 내가 원하는 것이라고 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아니구나, 기도할 것을 제대로 할 줄 알았고 그만두어야 할 것을 제대로 알았다는 사실입니다. 이 모세가 가진 기도, 이 축복된 하나님의 뜻을 찾는 기도로 말미암아 여러분, 정말로 하나님의 인도 받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더 큰 하나님의 이유가 있으신 것
그러면 우리가 두 번째로 한번 살펴볼 것은 왜 하나님께서 모세의 기도를, 그런 간절한 간구를 거절하셨는가? 왜 하나님께서 모세의 기도, 모세의 간절한 간청을 거절하셨는가? 거기에는 더 큰 하나님의 깊으신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더 큰 하나님의 깊고 오묘한 이유가 거기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를 거절한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세’하면 무엇이 떠오릅니까? 하나님 앞에 십계명을 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십계명을 받은 사람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받은 사람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그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달한 사람입니다. 그러면 왜 모세를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에 들여보내지 아니하셨느냐? 모세는 자기의 삶을 통해서 율법을 나타내는 삶을 산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결국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있느냐 하면 우리 인간이 행하고 있는 율법으로 구원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 받지 못한다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심지어 모세까지도 그러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구원은 인간의 노력과 행위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모세만큼 가나안땅에 들어가기 위해서 노력한 사람이 없지요.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 할 1순위가 있다면 어떤 면에서는 모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는데 이 사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내가 노력한다고 해서 주어지는 구원의 역사가 아니라는 사실이예요. 기도 많이 한다고 해서 구원받고 내가 다른 사람보다 죄를 덜 짓는다고 해서 구원받고 그런 것이 아니라는 사실. 아무것도 한 것 없다할지라도 주 예수 그리스도 믿기만 하면 구원 받는다는 사실들을 오늘 모세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우리의 행위로 되는 것이 아니예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우리의 행위를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행위로 그 누가 창세기3장의 인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까? 아담 하와가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모든 인생은 창세기3장속에 묶인바 되었어요. 그 창세기3장 문제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떠난 문제이고 원죄 문제입니다. 그 창세기3장의 문제가 가정으로 파고들었어요. 그래서 결국은 창세기6장의 네피림 문화가 되어졌어요. 그런데 결국 창세기3장이 가정에 파고드니까 그 가정이 홍수심판을 받게 된 거예요. 이 창세기3장의 문제가 성공한 자들 속에 파고들었고 국가들 속에 파고들었어요. 그것이 바로 창세기11장의 바벨탑 사건이지요. 그 바벨탑이 결국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결국은 무너졌습니다. 무엇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여러분 우리에게 있는 창세기3장 이 원죄 문제 하나님을 떠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아무리 성공한다 할지라도 우리 인간에게는 결국은 오는 영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어떤 행위로도 창세기3장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요. 율법으로도 창세기3장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일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율법을 지킴으로 말미암아 구원받는다고 생각했어요. 천만에요. 착각이지요.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은 실제로 그리스도가 필요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멸망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여러분 이 유대인들, 이스라엘 백성들이 놓친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 인류가 당하고 있는 창세기3장의 원죄문제, 이 문제는 행위로, 율법으로 해결될 수 없다라는 사실을 이 유대인들은 모른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신의 노력과 자신의 애씀으로 어떻게 바르게 살 것인가 그것을 가지고 구원 받으려고 몸부림쳤던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이요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여러분 한번 물어보십시다. 율법으로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 여러분 행위로 구원 받을 수 있습니까? 구원 받을 수 없어요. 그러면 율법은 우리에게 무엇 때문에 주어진 것입니까? 여러분 율법은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거룩한 삶의 기준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른 삶의 기준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면서 결국은 우리 인간은 그 율법대로 살아갈 수 없는 절대적인 구원이 필요한 존재인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 바로 율법이었습니다. 우리 인간은 죄인인 것을 가르쳐 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그리스도 붙잡지 않고서는 멸망 받을 수밖에 없다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는 것이 바로 율법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 갈라디아3:24절에 보면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가 초등학교 교사가 있고, 중등학교 교사가 있고 대학교수가 있고 이렇게 되잖아요. 여기 율법은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라고 했어요. 그것을 지킴으로 말미암아 구원받는 것이 안된다라는 사실이예요. 단지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역할만 하는 거예요. 로마서3:22절에 보면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함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그 율법으로는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함이라..”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율법으로는 우리가 죄인됨을 깨닫게 하고 오직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구원자이고 그래서 내게 지금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리스도가 필요한 존재이구나 이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것이 바로 율법이라는 사실이예요. 그래서 사실은 하나님께서 이 모세를 그토록 사랑하셨지만은 모세를 가나안 땅으로 들여보내지 않으신 이유가 여기 있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율법 가지고는 가나안땅에 들어갈 수 없다라는 것, 우리의 행함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을 수 없다라는 것, 이것을 모세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의 사명은 결국은 여호수아를 담대하게 하고 그를 강하게 하는 그것 까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사실들을 보여주고 가나안땅의 정복은 누구로 말미암아 되어졌습니까? 여호수아로 말미암아 이루어졌습니다. 여러분 여호수아 그 이름이 원래는 예수입니다. 예수는 이름의 뜻이 무엇입니까? 구원자입니다. 가나안 땅의 축복은 바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루어짐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구원이라는 이름이 여호수아라는 이름입니다. 그 여호수아로 말미암아 모세가 아니예요. 여호수아로 말미암아 가나안 땅의 축복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누리게 된 것입니다. 이 사실을 통해서 우리가 무엇을 붙잡아야 되느냐 결국은 우리 인간의 모든 구원의 길은 오직 그리스도뿐이라는 것, 우리 인류는 결국은 우리 인간이 구원 받을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로만이 구원받을 수 있다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율법은 방향을 제시하고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 까지만 필요한 것이 율법입니다. 방향을 제시하고 그리스도로 인도하기 까지..그 다음의 우리의 모든 문제 해결자는 바로 그리스도라는 사실들을 모세의 사건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죽어버렸던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을 떠난 그 죄로 말미암아 저주, 재앙 가운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대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죄로 인한 저주와 재앙의 문제를 십자가에서 다 끝냈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제사장이신 그리스도이시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제사장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자기 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단번에 영원히 완전히 해결했습니다. 그 그리스도께서 지금도 보좌 우편에 계시면서 저와 여러분의 죄를 중보하고 계세요. 지금도 보좌 우편에 계시면서 성도들을 위해서 중보기도하고 계십니다. 그것이 제사장으로서의 그리스도의 축복입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모든 문제가 왔어요. 그 하나님을 만나야 되는데 하나님 만나는 길이 우리 인간에게는 없어요.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선지자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 만날 수 있는 길을 내신 것입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말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진리의 근본을 갖게 된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선지자로서 하나님 만날 수 있는 길을 여신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원수가 있어요. 그것을 우리 인간이 해결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원수가 누구입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 악한 사탄의 존재, 그래서 예수께서 그리스도께서 왕으로 이 땅에 오셔서 여러분 왕은 무엇입니까? 통치하고 다스리고 대적들을 정복하는 것이 왕 아닙니까? 그렇다면 진짜 그리스도는 왕 중의 왕으로서 사탄의 세력을 멸하셨습니다. 그와 더불어 우리를 천국 가는 그 날까지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참된 왕 중의 왕으로서.. 여러분 죄의 문제, 우리 인류의 숙제 중에 숙제이지요. 그 죄로 말미암아 저주와 재앙을 당하고 있어요. 하나님을 떠난 문제 그것 때문에 모든 사람이 문제 가운데 빠져 있습니다. 그 배경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탄이 있어요. 그 문제를 우리의 행위로, 우리의 율법으로 해결 할 수 있습니까? 해결할 수 없어요. 오직 그리스도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여야 되는 것이고, 절대 그리스도여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 우리 인생의 문제가 사탄과 하나님을 떠남과 죄의 문제 절대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절대 복음 아니고서는 해결되지 않는다라는 사실이예요. 여러분 예배를 통해서 이 복음의 풍성한 비밀 속에 날마다 들어가게 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복음, 그리스도 구원 받고 그리스도를 알고 있는데 거의 살아가는 삶은 복음으로 구원 받아 놓고 살아가는 삶은 율법으로 살아가요. 우리의 체질 때문에, 많은 교회들이 복음을 이야기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가지고 구원 받는다. 그리스도 믿어서 구원 받는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보면 율법을 가르치고 율법을 강조해요. 왜 그런 줄 아십니까? 창세기3장의 문제를 제대로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안다 할지라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복음보다도 삶을 강조하고 율법을 강조해요. 그리고 그 배후에 역사하는 흑암의 세력 이 악한 사탄의 세력이 온 인류를 흑암으로 끌고 가는 이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복음을 강조하지 않아요. 여러분 정말로 창세기3장의 현장의 문제를 제대로 안다면 오늘 우리 찬양대가 불렀던 것처럼 애통한 마음으로 오직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길임을 말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온 인류가 사탄의 역사로 말미암아 멸망 가운데빠지고 있는 현장을 제대로 안다면은 그리스도 강조하지 말라고 해도 강조하게 되어 있어요. 왜 그리스도를 이야기 하지 않느냐? 왜 자꾸 행위를 이야기 하고, 율법을 이야기하고 있느냐? 제대로 창세기3장의 문제를 모르는 것이고, 온 인류를 멸망시키는 사탄의 역사를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감사하게도 이 자리에 달서구 을에 예비 국회의원 후보로 나오신 새누리당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 함께 참여했습니다. 여러분 정말로 우리가 이 땅에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고 애쓰고 힘쓰고 성공하기 위해서 달려갑니다마는 결국은 영적문제로 무너지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 사실을 제대로 알아야 정치하는 사람들이 제대로 힘을 얻게 되고 진짜 이 땅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위해서 기도해 주시고요, 특별히 이 땅의 정치인들이 정말로 창세기3장 문제, 흑암의 역사들로 말미암아 모든 인류가 멸망으로 빠져드는 이 사실을 제대로 안다면 진짜 애국자가 되는 것이고, 진짜 나라를 살릴 수 있는 사람들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문제는 우리가 성공해 놓고도 무너지잖아요. 많은 성공한 사람들이 영적인 문제 가운데 드러내지 못하고 나름대로 직분이 있고, 지위가 있기 때문에 나타내지 않아서 그렇지 심각한 정신적인 문제, 영적인 문제, 육신의 문제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당하고 있습니까? 뭔가 되어지는 것 같은데 어느 날 덜컥 걸려지는 우리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영적인 문제, 그렇게 노력하고 애써왔습니다마는 그러나 어느 날 빠져있는 영적인 문제, 개인과 가정과 후대들에게 일어나는 영적인 문제, 그 문제를 무엇으로 해석을 할 것입니까? 그것을 해석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눈에 보이지 않는 악한 사탄으로 말미암아 흑암의 역사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라는 사실. 그래서 정말 우리가 이 사실을 제대로 안다면 오직 그리스도 말할 수밖에 없어요. 우리는 구원받는 것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 받습니다. 구원받은 이후의 삶도 오직 그리스도 만이어야 합니다. 모든 생각과 판단과 인간관계 모든 일에 복음을 누림 속에서 되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영원한 성공, 참된 성공을 누릴 수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항상 그리스도만 생각하고, 그리스도만 말하고, 그리스도만 누리고, 그리스도만 전달하고... 마태복음17:8절에 있는 말씀처럼 모세도 사라지고 엘리야도 사라지고 오직 예수만 남았더라 했어요. 여러분 정말 오직 그리스도만 붙잡고 오직 그리스도, 항상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승리하는 축복된 삶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모세가 120년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모세의 삶을 보면 3단계로 구분지어질 수 있어요. 여러분 모세의 삶을 보면서 내가 어떻게 남은 생을 살아갈 것인가 중요한 결단들을 하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힘을 주실 것입니다. 모세는 먼저 40년은 애굽의 왕궁에서 호의호식하면서 찬란한 삶을 살았어요. 한 마디로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잘 나가던 삶을 살았어요. 그런데 그 애굽의 왕궁에 있을 때 40년은 사람들이 배경이었어요. 사람의 배경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배경이었어요. 그런데 결국은 모세가 애굽의 왕궁에서 나와서 살인자, 도망자로서 40년을 살게 됩니다. 그 도망자로서의 40년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시간들이었지만 그러나 그 40년은 하나님 앞에 서는 시간이었어요. 하나님을 배경으로 삼는 시간들이었어요. 그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80세의 노인 모세에게 사명 앞에 서는 시간들을 허락하셨어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찾아오셔서 너의 선 곳은 거룩한 곳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내가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았다. 너로 말미암아 고통하는 내 백성들을 애굽에서 출애굽 시키겠다. 그러니까 모세가 그 부분에 대한 변명도 있었습니다만, 그러나 그 약속 가지고 사명 가지고 나갔던 모세의 걸음에 지팡이 하나 들었는데 거기에 모든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어요. 아니, 애굽의 좋은 배경과 실력이 있을때는 아무 능력이 없었어요. 그런데 사명 앞에 서 가지고 지팡이 하나 들고 나간 광야 걸음속에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엄청난 능력들을 행하게 하시면서 결국 그 모세로 말미암아 가나안땅을 정복하는 여호수아 같은 귀중한 제자들을 세워놓는 그런 축복을 누리게 하셨다는 겁니다. 여러분, 지금 어떤 시간표 속에 있습니까? 사람 배경, 세상배경 가운데 있습니까? 여러분 거기에서는 아무리 잘 먹고 잘 살아도 결국 실패하는 인생입니다. 배경을 바꾸셔야 합니다. 혹시 여러분, 나는 지금 도망자로 살아가고 있다. 나는 아무것도 얻은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고 모든 것을 잃어버린 자리에 있다면, 하나님 바라보라는 싸인입니다. 그리스도 복음 속에 들어가고 복음을 배경삼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어느 날 하나님 앞에 서는, 사명 앞에 서는 그런 축복을 주시면서 그로 말미암아 여호수아 같은 그런 제자를 남기는 축복된 생애를 우리에게 허락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이 모든 축복 속에 들어오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6년 1월 31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모세의 간구
(신3:23-29)
서론: 오늘 본문은 모세가 비스가 산에서 가나안땅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모습입니다(25절).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는 말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26절).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가나안 땅을 바라볼 수만 있게 하셨고 들어가지는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도를 오해하고 있는 이때에 우리는 모세의 간구와 그 결과, 그리고 그것에 대한 모세의 반응들을 살피면서 기도가 무엇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1. 거절 당한 모세
가. 모세는 자신도 약속의 땅, 가나안 땅을 밟게 되기를 간구하였습니다.
1) 모세는 출애굽의 사명을 감당하고 40년간의 광야생활 가운데 이스라엘을 인도한 사람이었으나,
2) 므리바 지역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않은 사건이 있었음(민20:1~12)
나. 모세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
1) 하나님께서는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는 말하지 말라고 하셨음(26절)
2) 모세는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그대로 깨닫고 순종하는 기도의 사람이었음 “나의 사역이 여기까지구나”
다. 기도는 하나님의 자녀에게만 허락하신 축복 중의 축복입니다.
1)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하나하나 찾아내는 것이 기도(예배 통한 말씀의 흐름을 통해 찾을 수 있음)
2) 방향을 맞추면 결국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심(즉각 응답, 적절한 시간표에 응답, 기도제목이 바뀜)
2. 더 큰 하나님의 이유가 있으신 것
가. 모세는 자기의 삶을 통해 율법을 나타내는 삶을 산 사람입니다.
1) 모세를 통해 우리 인간의 행위나 율법으로는 구원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임
2) 율법으로는 창3장(원죄)으로 인한 창6장(가정으로) 창9장(성공, 국가 속에)에 파고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
율법 우리가 죄인인 것을 깨달아(롬3:19-20) 그리스도로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초등교사(갈3:24)
나. 우리에게는 그리스도께서 구원의 모든 것임
1) 율법은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일 뿐임
2) 제사장(죄,저주,재앙문제를 해결), 선지자(십자가 사건으로 하나님 만나는 길), 왕(사탄의 세력을 멸하고 천국까지 인도)
다.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이야기하면서 율법으로 돌아갑니다.
1) 그것은 창3장의 이유를 모르고 인정하지 않으며 배후의 흑암세력을 모르기 때문임
2) 이제부터 항상 오직 그리스도만 생각하고 말하며, 누리고 전달하라!! (마17:8)
결론: 모세는 120년(3단계로 구분할 수 있음)을 살았습니다. 우리는 모세를 보며 어떻게 살지 중요한 결단해야 합니다.
왕궁 40년: 애굽의 왕궁에서 호의호식하며 잘나가는 삶을 살았음(사람들의 배경) / 도망자 40년: 살인 누명을 쓰고 도망자의 삶 가운데 하나님 앞에 서는 시간표(하나님의 배경) / 사명자 40년: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고 여호수아 같은 제자를 세움
지금 어떤 배경 속에 있습니까? 사람배경, 세상배경은 결국은 실패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배경을 바꿔야 합니다. 혹시 도망자의 삶이라면 하나님 앞에 서는 시간표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사명자로서 여호수아와 같은 제자를 세우는 축복을 받으시길 기도드립니다.
< 기 도 문 >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자녀에게만 허락하신 축복 중의 축복인,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발견하는 기도를 누릴 수 있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방향 맞춤으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응답을 주옵소서. 우리가 죄인 것과 오직 그리스도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도록 율법을 주셨으니, 남은 삶이 오직 그리스도만 생각하고 말하며, 누리고 전달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모세의 간구”
(신3:23~29)
23 그 때에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기를
24 주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크심과 주의 권능을 주의 종에게 나타내시기를 시작하셨사오니 천지간에 어떤 신이 능히 주께서 행하신 일 곧 주의 큰 능력으로 행하신 일 같이 행할 수 있으리이까
25 구하옵나니 나를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쪽에 있는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 하되
26 여호와께서 너희 때문에 내게 진노하사 내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내게 이르시기를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
27 너는 비스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고 네 눈으로 그 땅을 바라보라 너는 이 요단을 건너지 못할 것임이니라
28 너는 여호수아에게 명령하고 그를 담대하게 하며 그를 강하게 하라 그는 이 백성을 거느리고 건너가서 네가 볼 땅을 그들이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29 그 때에 우리가 벳브올 맞은편 골짜기에 거주하였느니라
신3:23~29
■ 할렐루야, 모든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나라들을 차지하리라! 오늘 2부 예배 참여한 여러분 모두가 오늘 예배를 통해서 복음만이 필요한 이유를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참된 최고의 응답을 누리게 되는 축복의 시작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제목을 “모세의 간구.” “모세의 간구”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모세가 비스가 산에서 가나안 땅을 바라보며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는 내용이 나와 있는 부분입니다. 25절에 이렇게 나옵니다. “구하옵나니 나를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쪽에 있는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 하되.” 꿈에도 그리던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해 달라고 간청을 했습니다만 하나님께서 응답을 주셨는데 그 응답은 26절입니다. 같이 한 번 읽어 봅시다. “여호와께서 너희 때문에 내게 진노하사 내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내게 이르시기를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 간절하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를 요청했습니다만 하나님이 주신 응답은 정반대의 응답입니다. 그만해도 족하다, 이제 됐다, 너는 그것까지다. 그렇게 하시면서 다시는 그것 때문에 그 말로 나에게 기도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가나안 땅을 바라볼 수만 있도록 하셨고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하셨을까? 하나님께서 왜 모세에게, 어떤 면에서 모세라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로서 가나안 땅에 당연히 들어가야 할 사람인데 왜 바라보도록만 하시고 그 땅을 모세에게는 허락하지 아니하셨는가? 그 부분에 대해 오늘 말씀을 통해 대답을 찾아내시고 특별히 오늘 이 부분을 놓고 모세의 기도와 그 기도의 간구의 내용, 또 간구의 내용에 대한 응답과 함께 우리가 어떤 기도로써 하나님께 나아가야 할 것이며 기도를 통해 누려야 할 축복이 무엇인가를 말씀을 통해서 확인하면서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1. 거절당한 모세
먼저, 성경에 보면 모세는 자신도 약속의 땅, 가나안 땅을 밟게 되기를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만 하나님 앞에 거절당하는 모습이 오늘 본문에 나오고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모세는 생명을 걸고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켜서 오늘 가나안 땅의 입구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런 모세에게 다른 소원은 없었습니다. 사실 40년 동안의 광야 생활로 말미암아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해 왔는데 모세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한 번이라도 밟는 것이 모세의 소원 중의 소원이었던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모세는 당연히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 할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대면해서 본 유일한 선지자이고 또 가나안 땅을 향해 나아가는 광야길에 있어서 모세만큼 성경에서 이적을 행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가나안 땅을 밟아야 하는 사람이 모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왜 모세에게 가나안 땅을 허락하지 않았는가? 사실 가나안 땅을 보기 위해서 오늘 본문에 보면 모세가 간절하게 하나님께 기도하는 부분이 나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간절한 기도를 하게 하시고 그 땅을 모세에게는 허락하지 않았는가? 여러분,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민수기 20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걸음 속에, 아마 마지막 단계입니다. 므리바라는 지역에 이르렀습니다. 거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먹을 물이 없으니 지도자인 모세와 아론를 향해 원망하고 불평하며 우리를 위해 마실 물을 내어 놓으라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가지고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없다는 불신앙까지 심어졌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때 그들의 요구 앞에 모세가 민수기 20장 10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모세가 그의 손을 들어 그의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니,” 했습니다. 예전에 우리가 어릴 때 이 말씀에 대한 부분을 성경공부를 통해 듣게 된 것은, 배우게 된 것은 이것입니다. 왜 모세가 충분히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가나안 땅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들여보내지 않았느냐? 반석을 한 번 쳐야 하는데 두 번 쳐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아닙니다. 한 번 치고 두 번 치는 것이 아니라, 그게 문제가 아니라, 사실은 두 번 친 그 속에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은 모세의 마음을 하나님이 읽고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가나안 땅을 허락하지 않은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12절에 보면 그에 대한 답을 하고 있습니다. 민수기 20장 12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결국은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은 그 행동으로 말미암아 결국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일을 당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혹시나 하고 모세의 마음에는 혹시나 하나님의 마음을 돌이킬까 싶어 오늘 본문에 간절하게 하나님께 기도했던 부분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이 26절, 27절에 나오는데 오늘 저와 여러분이 읽은 부분입니다. “여호와께서 너희 때문에 내게 진노하사 내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내게 이르시기를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 그러면서 27절에 보면 “너는 비스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고 네 눈으로 그 땅을 바라보라 너는 이 요단을 건너지 못할 것임이니라.” 결국은 모세의 그 요청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일언지하에 “No.”하고 대답한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언지하에. 그 하나님의 대답 앞에 모세는 다른 변명을 하지 아니하고, 왜 나는 못 들어갑니까, 내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수고했습니까, 왜 나는 가나안 땅을 밟지 못합니까, 그렇게 변명하지 아니하고 그대로 말씀에 순종하면서 토를 달지 아니한 부분을 부여주고 있습니다. 참으로 기도의 사람이었던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모세는 안 것입니다. 아, 나의 사역이 이것까지이구나. 하나님의 마음을, 하나님의 뜻을 돌이키기 위해 기도를 했지만 그러나 결국은 나에 대한 하나님의 사역이 이것까지이구나. 내가 원하는 것이라고 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아니구나. 이 사실을 바르게 깨달은 기도의 사람이었던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기도에 대해서 많은 분들이 오해를 하는데 여러분, 기도는 내 욕심과 내 동기를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은 자칫 잘못하면 인본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기도라는 것은 뭐냐? 여러분, 불신자에게도 하나님의 귀한 계획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인 저와 여러분에게는 당연히 하나님의 중요한 계획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도를 통해서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하나하나 찾아 나가는 것을 가지고 기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의 목표를 가지고 기도하고 나의 동기를 가지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만 그러나 그렇게 기도하고 나아가면 결국은 가면 갈수록 영적인 사실에 대한 엄청난, 많은 것들이 닫히게 됩니다. 막연해 보일지 모르지만 모든 문제와 사건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 이 부분을 찾기 위해 기도하며 나아갈 때 그것이 바로 영적으로 열리게 되어 있고 영적으로 우리의 삶이 바르게 인도받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를 할 수 있는 가장 축복된 통로가 기도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자녀에게만 허락하신 축복 중의 축복이 있다면 바로 기도인데 그 기도는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뜻을 찾아내는 것을 가지고 기도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뜻을 기도로 찾아내는데 특히 어떤 기도를 통해 찾아내야 하느냐?
여러분, 특별히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은 여러분, 예배를 통해서 주어지는 말씀, 그 말씀을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말씀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있으면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부분들이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특히 여러분, 말씀의 흐름을 보면 아, 복음이 없어지는 시대구나, 그래서 결국은 재앙이 임하게 되고 재앙이 임할 때마다 다시 하나님께서 그 재앙의 역사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주시는데 복음을 주시고 그 복음을 통해서 또 다시 회복하시는구나, 이 말씀의 흐름을 제대로 보게 되면 모든 것 속에서 하나님의 응답을 찾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혹여나 여러분, 여러분이 갖고 있는 생각들 있지 않습니까? 내가 갖고 있는 생각이 하나님의 말씀과 안 맞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내가 갖고 있는 생각이 하나님의 계획과 안 맞다, 말씀과 안 맞다 할지라도 정말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일까, 그 말씀을 붙잡게 될 때에 결국 시간이 지나고 나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되는 그런 응답으로 우리에게 오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분명히 하나님의 자녀들의 모든 기도는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 응답받는 부분을 보면 어떤 형태가 있느냐 하면 기도하면 즉각적으로 우리에게 응답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특히 믿은 지 얼마 안 되는 사람들, 기도하면 신비하리만큼 정말 응답되는 것을 봅니다. 그와 더불어 또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 맞는데 응답이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왜인줄 아십니까? 시간표를 하나님이 아시고 계시기 때문에 나를 나보다 더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나에 대한 시간표를 하나님께서 갖고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라 할지라도 시간표에 따라 우리에게 가장 적절하게 최선으로 우리에게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붙잡고 기도하는데 이상하게 우리의 기도를 바꾸어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정말로 말씀을 붙잡고 계속해서 기도 속에 들어가게 되면 분명히 그 속에서 하나님의 중요한 계획과 하나님의 뜻을 찾아내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하나님의 사람을 말씀으로 인도하시게 되어 있습니다. 그냥 성경공부가 아니라, 설교를 그냥 듣는 것이 아니라 진짜 하나님의 복음의 말씀을 듣게 될 때 그 말씀의 흐름 속에서 정확한 응답들을 하나하나 찾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모세에게 있어 이 모세는 바로 이러한 기도의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욕심 가지고, 자기의 동기 가지고 끝까지 하나님께 떼쓰고 애쓰면서, 여러분, 예전에 우리가 했던 것처럼 금식하고 기도하면서, 구걸하면서 하나님, 이것 안 해주면 안 됩니다, 그렇게 간절하게 기도하고 나아간 그런 것이 아니라 아, 내가 이것까지구나, 내가 원하는 것이라고 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아니구나, 기도할 것을 제대로 할 줄 알았고 그만두어야 할 것을 제대로 알았다는 사실입니다. 이 모세가 가진 기도, 이 축복된 하나님의 뜻을 찾는 기도로 말미암아 여러분, 정말로 하나님의 인도 받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더 큰 하나님의 이유가 있으신 것
그러면 우리가 두 번째로 한번 살펴볼 것은 왜 하나님께서 모세의 기도를, 그런 간절한 간구를 거절하셨는가? 왜 하나님께서 모세의 기도, 모세의 간절한 간청을 거절하셨는가? 거기에는 더 큰 하나님의 깊으신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더 큰 하나님의 깊고 오묘한 이유가 거기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를 거절한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세’하면 무엇이 떠오릅니까? 하나님 앞에 십계명을 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십계명을 받은 사람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받은 사람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그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달한 사람입니다. 그러면 왜 모세를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에 들여보내지 아니하셨느냐? 모세는 자기의 삶을 통해서 율법을 나타내는 삶을 산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결국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있느냐 하면 우리 인간이 행하고 있는 율법으로 구원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 받지 못한다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심지어 모세까지도 그러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구원은 인간의 노력과 행위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모세만큼 가나안땅에 들어가기 위해서 노력한 사람이 없지요.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 할 1순위가 있다면 어떤 면에서는 모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는데 이 사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내가 노력한다고 해서 주어지는 구원의 역사가 아니라는 사실이예요. 기도 많이 한다고 해서 구원받고 내가 다른 사람보다 죄를 덜 짓는다고 해서 구원받고 그런 것이 아니라는 사실. 아무것도 한 것 없다할지라도 주 예수 그리스도 믿기만 하면 구원 받는다는 사실들을 오늘 모세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우리의 행위로 되는 것이 아니예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우리의 행위를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행위로 그 누가 창세기3장의 인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까? 아담 하와가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모든 인생은 창세기3장속에 묶인바 되었어요. 그 창세기3장 문제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떠난 문제이고 원죄 문제입니다. 그 창세기3장의 문제가 가정으로 파고들었어요. 그래서 결국은 창세기6장의 네피림 문화가 되어졌어요. 그런데 결국 창세기3장이 가정에 파고드니까 그 가정이 홍수심판을 받게 된 거예요. 이 창세기3장의 문제가 성공한 자들 속에 파고들었고 국가들 속에 파고들었어요. 그것이 바로 창세기11장의 바벨탑 사건이지요. 그 바벨탑이 결국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결국은 무너졌습니다. 무엇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여러분 우리에게 있는 창세기3장 이 원죄 문제 하나님을 떠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아무리 성공한다 할지라도 우리 인간에게는 결국은 오는 영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어떤 행위로도 창세기3장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요. 율법으로도 창세기3장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일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율법을 지킴으로 말미암아 구원받는다고 생각했어요. 천만에요. 착각이지요.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은 실제로 그리스도가 필요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멸망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여러분 이 유대인들, 이스라엘 백성들이 놓친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 인류가 당하고 있는 창세기3장의 원죄문제, 이 문제는 행위로, 율법으로 해결될 수 없다라는 사실을 이 유대인들은 모른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신의 노력과 자신의 애씀으로 어떻게 바르게 살 것인가 그것을 가지고 구원 받으려고 몸부림쳤던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이요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여러분 한번 물어보십시다. 율법으로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 여러분 행위로 구원 받을 수 있습니까? 구원 받을 수 없어요. 그러면 율법은 우리에게 무엇 때문에 주어진 것입니까? 여러분 율법은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거룩한 삶의 기준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른 삶의 기준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면서 결국은 우리 인간은 그 율법대로 살아갈 수 없는 절대적인 구원이 필요한 존재인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 바로 율법이었습니다. 우리 인간은 죄인인 것을 가르쳐 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그리스도 붙잡지 않고서는 멸망 받을 수밖에 없다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는 것이 바로 율법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 갈라디아3:24절에 보면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가 초등학교 교사가 있고, 중등학교 교사가 있고 대학교수가 있고 이렇게 되잖아요. 여기 율법은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라고 했어요. 그것을 지킴으로 말미암아 구원받는 것이 안된다라는 사실이예요. 단지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역할만 하는 거예요. 로마서3:22절에 보면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함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그 율법으로는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함이라..”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율법으로는 우리가 죄인됨을 깨닫게 하고 오직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구원자이고 그래서 내게 지금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리스도가 필요한 존재이구나 이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것이 바로 율법이라는 사실이예요. 그래서 사실은 하나님께서 이 모세를 그토록 사랑하셨지만은 모세를 가나안 땅으로 들여보내지 않으신 이유가 여기 있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율법 가지고는 가나안땅에 들어갈 수 없다라는 것, 우리의 행함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을 수 없다라는 것, 이것을 모세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의 사명은 결국은 여호수아를 담대하게 하고 그를 강하게 하는 그것 까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사실들을 보여주고 가나안땅의 정복은 누구로 말미암아 되어졌습니까? 여호수아로 말미암아 이루어졌습니다. 여러분 여호수아 그 이름이 원래는 예수입니다. 예수는 이름의 뜻이 무엇입니까? 구원자입니다. 가나안 땅의 축복은 바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루어짐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구원이라는 이름이 여호수아라는 이름입니다. 그 여호수아로 말미암아 모세가 아니예요. 여호수아로 말미암아 가나안 땅의 축복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누리게 된 것입니다. 이 사실을 통해서 우리가 무엇을 붙잡아야 되느냐 결국은 우리 인간의 모든 구원의 길은 오직 그리스도뿐이라는 것, 우리 인류는 결국은 우리 인간이 구원 받을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로만이 구원받을 수 있다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율법은 방향을 제시하고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 까지만 필요한 것이 율법입니다. 방향을 제시하고 그리스도로 인도하기 까지..그 다음의 우리의 모든 문제 해결자는 바로 그리스도라는 사실들을 모세의 사건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죽어버렸던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을 떠난 그 죄로 말미암아 저주, 재앙 가운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대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죄로 인한 저주와 재앙의 문제를 십자가에서 다 끝냈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제사장이신 그리스도이시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제사장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자기 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단번에 영원히 완전히 해결했습니다. 그 그리스도께서 지금도 보좌 우편에 계시면서 저와 여러분의 죄를 중보하고 계세요. 지금도 보좌 우편에 계시면서 성도들을 위해서 중보기도하고 계십니다. 그것이 제사장으로서의 그리스도의 축복입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모든 문제가 왔어요. 그 하나님을 만나야 되는데 하나님 만나는 길이 우리 인간에게는 없어요.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선지자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 만날 수 있는 길을 내신 것입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말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진리의 근본을 갖게 된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선지자로서 하나님 만날 수 있는 길을 여신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원수가 있어요. 그것을 우리 인간이 해결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원수가 누구입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 악한 사탄의 존재, 그래서 예수께서 그리스도께서 왕으로 이 땅에 오셔서 여러분 왕은 무엇입니까? 통치하고 다스리고 대적들을 정복하는 것이 왕 아닙니까? 그렇다면 진짜 그리스도는 왕 중의 왕으로서 사탄의 세력을 멸하셨습니다. 그와 더불어 우리를 천국 가는 그 날까지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참된 왕 중의 왕으로서.. 여러분 죄의 문제, 우리 인류의 숙제 중에 숙제이지요. 그 죄로 말미암아 저주와 재앙을 당하고 있어요. 하나님을 떠난 문제 그것 때문에 모든 사람이 문제 가운데 빠져 있습니다. 그 배경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탄이 있어요. 그 문제를 우리의 행위로, 우리의 율법으로 해결 할 수 있습니까? 해결할 수 없어요. 오직 그리스도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여야 되는 것이고, 절대 그리스도여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 우리 인생의 문제가 사탄과 하나님을 떠남과 죄의 문제 절대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절대 복음 아니고서는 해결되지 않는다라는 사실이예요. 여러분 예배를 통해서 이 복음의 풍성한 비밀 속에 날마다 들어가게 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복음, 그리스도 구원 받고 그리스도를 알고 있는데 거의 살아가는 삶은 복음으로 구원 받아 놓고 살아가는 삶은 율법으로 살아가요. 우리의 체질 때문에, 많은 교회들이 복음을 이야기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가지고 구원 받는다. 그리스도 믿어서 구원 받는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보면 율법을 가르치고 율법을 강조해요. 왜 그런 줄 아십니까? 창세기3장의 문제를 제대로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안다 할지라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복음보다도 삶을 강조하고 율법을 강조해요. 그리고 그 배후에 역사하는 흑암의 세력 이 악한 사탄의 세력이 온 인류를 흑암으로 끌고 가는 이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복음을 강조하지 않아요. 여러분 정말로 창세기3장의 현장의 문제를 제대로 안다면 오늘 우리 찬양대가 불렀던 것처럼 애통한 마음으로 오직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길임을 말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온 인류가 사탄의 역사로 말미암아 멸망 가운데빠지고 있는 현장을 제대로 안다면은 그리스도 강조하지 말라고 해도 강조하게 되어 있어요. 왜 그리스도를 이야기 하지 않느냐? 왜 자꾸 행위를 이야기 하고, 율법을 이야기하고 있느냐? 제대로 창세기3장의 문제를 모르는 것이고, 온 인류를 멸망시키는 사탄의 역사를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감사하게도 이 자리에 달서구 을에 예비 국회의원 후보로 나오신 새누리당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 함께 참여했습니다. 여러분 정말로 우리가 이 땅에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고 애쓰고 힘쓰고 성공하기 위해서 달려갑니다마는 결국은 영적문제로 무너지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 사실을 제대로 알아야 정치하는 사람들이 제대로 힘을 얻게 되고 진짜 이 땅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위해서 기도해 주시고요, 특별히 이 땅의 정치인들이 정말로 창세기3장 문제, 흑암의 역사들로 말미암아 모든 인류가 멸망으로 빠져드는 이 사실을 제대로 안다면 진짜 애국자가 되는 것이고, 진짜 나라를 살릴 수 있는 사람들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문제는 우리가 성공해 놓고도 무너지잖아요. 많은 성공한 사람들이 영적인 문제 가운데 드러내지 못하고 나름대로 직분이 있고, 지위가 있기 때문에 나타내지 않아서 그렇지 심각한 정신적인 문제, 영적인 문제, 육신의 문제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당하고 있습니까? 뭔가 되어지는 것 같은데 어느 날 덜컥 걸려지는 우리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영적인 문제, 그렇게 노력하고 애써왔습니다마는 그러나 어느 날 빠져있는 영적인 문제, 개인과 가정과 후대들에게 일어나는 영적인 문제, 그 문제를 무엇으로 해석을 할 것입니까? 그것을 해석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눈에 보이지 않는 악한 사탄으로 말미암아 흑암의 역사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라는 사실. 그래서 정말 우리가 이 사실을 제대로 안다면 오직 그리스도 말할 수밖에 없어요. 우리는 구원받는 것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 받습니다. 구원받은 이후의 삶도 오직 그리스도 만이어야 합니다. 모든 생각과 판단과 인간관계 모든 일에 복음을 누림 속에서 되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영원한 성공, 참된 성공을 누릴 수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항상 그리스도만 생각하고, 그리스도만 말하고, 그리스도만 누리고, 그리스도만 전달하고... 마태복음17:8절에 있는 말씀처럼 모세도 사라지고 엘리야도 사라지고 오직 예수만 남았더라 했어요. 여러분 정말 오직 그리스도만 붙잡고 오직 그리스도, 항상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승리하는 축복된 삶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모세가 120년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모세의 삶을 보면 3단계로 구분지어질 수 있어요. 여러분 모세의 삶을 보면서 내가 어떻게 남은 생을 살아갈 것인가 중요한 결단들을 하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힘을 주실 것입니다. 모세는 먼저 40년은 애굽의 왕궁에서 호의호식하면서 찬란한 삶을 살았어요. 한 마디로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잘 나가던 삶을 살았어요. 그런데 그 애굽의 왕궁에 있을 때 40년은 사람들이 배경이었어요. 사람의 배경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배경이었어요. 그런데 결국은 모세가 애굽의 왕궁에서 나와서 살인자, 도망자로서 40년을 살게 됩니다. 그 도망자로서의 40년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시간들이었지만 그러나 그 40년은 하나님 앞에 서는 시간이었어요. 하나님을 배경으로 삼는 시간들이었어요. 그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80세의 노인 모세에게 사명 앞에 서는 시간들을 허락하셨어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찾아오셔서 너의 선 곳은 거룩한 곳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내가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았다. 너로 말미암아 고통하는 내 백성들을 애굽에서 출애굽 시키겠다. 그러니까 모세가 그 부분에 대한 변명도 있었습니다만, 그러나 그 약속 가지고 사명 가지고 나갔던 모세의 걸음에 지팡이 하나 들었는데 거기에 모든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어요. 아니, 애굽의 좋은 배경과 실력이 있을때는 아무 능력이 없었어요. 그런데 사명 앞에 서 가지고 지팡이 하나 들고 나간 광야 걸음속에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엄청난 능력들을 행하게 하시면서 결국 그 모세로 말미암아 가나안땅을 정복하는 여호수아 같은 귀중한 제자들을 세워놓는 그런 축복을 누리게 하셨다는 겁니다. 여러분, 지금 어떤 시간표 속에 있습니까? 사람 배경, 세상배경 가운데 있습니까? 여러분 거기에서는 아무리 잘 먹고 잘 살아도 결국 실패하는 인생입니다. 배경을 바꾸셔야 합니다. 혹시 여러분, 나는 지금 도망자로 살아가고 있다. 나는 아무것도 얻은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고 모든 것을 잃어버린 자리에 있다면, 하나님 바라보라는 싸인입니다. 그리스도 복음 속에 들어가고 복음을 배경삼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어느 날 하나님 앞에 서는, 사명 앞에 서는 그런 축복을 주시면서 그로 말미암아 여호수아 같은 그런 제자를 남기는 축복된 생애를 우리에게 허락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이 모든 축복 속에 들어오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6년 1월 31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모세의 간구
(신3:23-29)
서론: 오늘 본문은 모세가 비스가 산에서 가나안땅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모습입니다(25절).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는 말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26절).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가나안 땅을 바라볼 수만 있게 하셨고 들어가지는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도를 오해하고 있는 이때에 우리는 모세의 간구와 그 결과, 그리고 그것에 대한 모세의 반응들을 살피면서 기도가 무엇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1. 거절 당한 모세
가. 모세는 자신도 약속의 땅, 가나안 땅을 밟게 되기를 간구하였습니다.
1) 모세는 출애굽의 사명을 감당하고 40년간의 광야생활 가운데 이스라엘을 인도한 사람이었으나,
2) 므리바 지역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않은 사건이 있었음(민20:1~12)
나. 모세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
1) 하나님께서는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는 말하지 말라고 하셨음(26절)
2) 모세는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그대로 깨닫고 순종하는 기도의 사람이었음 “나의 사역이 여기까지구나”
다. 기도는 하나님의 자녀에게만 허락하신 축복 중의 축복입니다.
1)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하나하나 찾아내는 것이 기도(예배 통한 말씀의 흐름을 통해 찾을 수 있음)
2) 방향을 맞추면 결국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심(즉각 응답, 적절한 시간표에 응답, 기도제목이 바뀜)
2. 더 큰 하나님의 이유가 있으신 것
가. 모세는 자기의 삶을 통해 율법을 나타내는 삶을 산 사람입니다.
1) 모세를 통해 우리 인간의 행위나 율법으로는 구원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임
2) 율법으로는 창3장(원죄)으로 인한 창6장(가정으로) 창9장(성공, 국가 속에)에 파고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
율법 우리가 죄인인 것을 깨달아(롬3:19-20) 그리스도로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초등교사(갈3:24)
나. 우리에게는 그리스도께서 구원의 모든 것임
1) 율법은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일 뿐임
2) 제사장(죄,저주,재앙문제를 해결), 선지자(십자가 사건으로 하나님 만나는 길), 왕(사탄의 세력을 멸하고 천국까지 인도)
다.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이야기하면서 율법으로 돌아갑니다.
1) 그것은 창3장의 이유를 모르고 인정하지 않으며 배후의 흑암세력을 모르기 때문임
2) 이제부터 항상 오직 그리스도만 생각하고 말하며, 누리고 전달하라!! (마17:8)
결론: 모세는 120년(3단계로 구분할 수 있음)을 살았습니다. 우리는 모세를 보며 어떻게 살지 중요한 결단해야 합니다.
왕궁 40년: 애굽의 왕궁에서 호의호식하며 잘나가는 삶을 살았음(사람들의 배경) / 도망자 40년: 살인 누명을 쓰고 도망자의 삶 가운데 하나님 앞에 서는 시간표(하나님의 배경) / 사명자 40년: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고 여호수아 같은 제자를 세움
지금 어떤 배경 속에 있습니까? 사람배경, 세상배경은 결국은 실패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배경을 바꿔야 합니다. 혹시 도망자의 삶이라면 하나님 앞에 서는 시간표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사명자로서 여호수아와 같은 제자를 세우는 축복을 받으시길 기도드립니다.
< 기 도 문 >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자녀에게만 허락하신 축복 중의 축복인,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발견하는 기도를 누릴 수 있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방향 맞춤으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응답을 주옵소서. 우리가 죄인 것과 오직 그리스도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도록 율법을 주셨으니, 남은 삶이 오직 그리스도만 생각하고 말하며, 누리고 전달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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