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
2015-08-30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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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30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
(롬11:1~12)
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2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너희가 성경이 엘리야를 가리켜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고발하되 3 주여 그들이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 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4 그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냐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5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6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 7 그런즉 어떠하냐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우둔하여졌느니라 8 기록된 바 하나님이 오늘까지 그들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 9 또 다윗이 이르되 그들의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시옵고 10 그들의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그들의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하였느니라 1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12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리요
롬11:1~12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렘넌트여 일어나라! 다시 합시다. 렘넌트여 일어나라! 하나님이 우리를 렘넌트, 한 시대의 남은 자로 부르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현장을 살리는 큰 영적인 힘을 회복하는 축복된 시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현장에서 전도를 하다 보면 복음을 쉽게 이야기하고 많이 전달하는데도 불구하고 복음을 잘 받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복음을 많이 이야기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닫아 버리고 복음을 받지 아니하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그럴 때 어떤 마음이 드십니까, 여러분? 참 안타깝다, 이런 마음이 듭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분명히 이 사람의 배경을 보면 믿어야 할 사람인데, 조상 대대로 믿어 왔고 지금 부모님들이 믿고 있고 또 조부모님들이 믿고 있는 그런 상황인데 복음을 받지를 않습니다. 그러면 더더욱 안타까운 것입니다. 아마 바울의 자기 동족에 향한 마음이 그러한 마음이 아니었나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성경을 가지고 있고 나름대로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사람들, 반드시 복음 들으면 받아야 할 사람들인데 복음을 받지 않는 그런 안타까운 부분들을 보면서 바울이 가졌던 그 안타까운 마음이 오늘 성경 본문에도 잘 나와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또 우리 현장에서 같이 복음을 전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이런 이야기를 하십니다. 그래도 복음 깨닫든 못 깨닫든 교회에 붙어 있고 교회에 남아 있는 것, 그것이 은혜라고. 왜냐 하면 현장에서 전도해 보면 어릴 때 교회에 나갔던 사람들이 잘 받지 않습니다, 복음을. 돌아올 만한데 어릴 때 교회를 나가 보고 무언가 신앙 생활을 했던 사람들은 바른 복음이 들어가지 않으니까 그런 사람들은 오히려 교회에 오는 것이 어려운 걸음인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분이 이런 이야기를 지난 주에 하셨습니다. 목사님, 그래도 복음 깨닫든 못 깨닫든, 응답 받든 못 받든 교회에 붙어 있는 것, 그게 은혜입니다. 아마 그런 것 같습니다, 우리가 보면. 그리고 또한 여러분, 이렇게 보면 우리가 복음을 아무리 전해도 받지 않는 현장을 바라보면서 참 안타깝다는 마음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내가 어떻게 이런 복음을 받았을까, 그에 대한 감사함도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잘 설명해도 받지 않는 복음의 역사들, 그런데 내가 그 복음을 받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할수록 내가 어떻게 이 자리에 서 있고 이런 복음의 역사를 깨달았을까, 감사할 수밖에 없는 부분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가 성경에 보면 믿지 않는 사람들 가운데도 있고, 지금 믿는 사람들 가운데도 있는데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진리의 소수의 사람들에 대한, 성경에서 특별하게 말하고 있는 단어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그 소수의 사람, 진리의 사람들을 향한 특별한 단어 한 가지가 오늘 본문에 나오는데 그게 바로 ‘남은 자’라는 단어입니다. 남은 자. 그래서 오늘 제목은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 오늘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 이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나누기를 원합니다.
오늘 특별히 로마서 11장 1절~12절 말씀을 죽 보면 바울이 주장하고 있는 내용 중의 하나가 하나님께서 남은 자들을 마련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본문에 대해서 설명들을 할 때 많은 성경학자들이 아주 중요하게 보고 있습니다. ‘남은 자의 신학’이라는 말을 붙이면서 구원론, 구속사적인 배경 가운데서 구원론에 대해 설명할 때 남은 자의 신학이라는 말로 설명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특히 성경 전체에서 구약에 22번 나오고, 구약에 처음 나오는 단어, 남은 자라는 단어가 어디에 나오느냐 하면 창세기 45장 7절에 보면 요셉이 요셉의 형들 앞에서 자기가 애굽에서 총리가 된 사실을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그래서 하나님이 자기를 애굽에 보내시고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셨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기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에 ‘후손’이라는 단어를 렘넌트라는 단어로 쓰고 남은 자라는 단어로 씁니다. 성경에 보면 스바냐 2장 7절에도 남은 자가 나오고 사도행전 8장 4절~8절, 베드로전서 1장 1절 등을 보면 흩어진 자가 나오고 또 숨겨둔 자라는 단어가 나오고 남은 자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그것을 전체로 묶어서 한 마디로 말하면, 영어로 말하면 렘넌트라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남은 자 렘넌트들을 하나님이 어떤 시대에 일으켰는가? 세상이 타락하고 그래서 저주와 멸망받을 수밖에 없는, 그리고 그 속에서 믿는 성도들조차도 다 무너져서 위기를 만난 그 시대시대마다 하나님은 렘넌트들, 남은 자들을 일으켜 세워서 그 시대를 바꾸어 갔던 사실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약속과 그 약속의 성취를 위해 전체를 다 사용하신 것이 아니라 소수를 사용해서 전체를 바꾸어갔던 사실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역사를 통해서 보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남은 자의 신학입니다. 특히 신약에도 보면 사도행전 15장에 말씀하고 있고 신약에는 세 번 나오고 있는데 사도행전 15장에, 그 다음 로마서 9장 27절에, 오늘 본문인 로마서 11장 5절에 나오고 있는데 신약에 사용할 때는 구약의 성경을 인용해서 남은 자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위기 시대마다, 재앙 시대마다 그 재앙 시대를 살리고 위기 시대를 살릴 수 있는 귀중한 답으로 렘넌트들을 세웠는데 그것도 소수의 렘넌트, 남은 자를 세우셔서 전체를 바꾸어갔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당연한 최고의 관심이 어디에 있느냐? 바로 남은 자 렘넌트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 다음으로 우리에게 가장 귀한 단어가 있다면 남은 자 렘넌트라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오늘 바울을 통해서 이야기했습니다.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했습니다. 그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지금 남아 있는 자가 바로, 저는 확신합니다, 우리 교회인 줄로 믿습니다. 또 저와 여러분을 이 한 시대, 위기를 만난 시대에, 재앙을 만난 시대에 현장을 살리는 참된 남은 자로 부르셨음을 확신합니다. 오늘 예배하는 가운데 이 부분에 대한 정체성을 바르게 깨닫고 새로운 믿음을 회복함으로 말미암아 현장에서 승리하는 참된 증인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이스라엘이 받은 축복
그러면 먼저 첫 번째로 은혜로 남은 자입니다. 은혜로 남은 자. 오늘 본문에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 세상을 향한, 또 우리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멸망 가운데서 구원 받는 것입니다. 멸망이 하나님의 계획이 아닙니다. 멸망 가운데 우리를 그냥 두지 아니하시고 구원의 역사를 베푸는 것인데 그게 바로 은혜로 주신 구원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시대마다 악한 사단이 어떻게 역사했는가를 성경 창세기부터 계시록 20장까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데 창세기 1장 2절에 보면 흑암과 혼돈과 공허함이 있었습니다. 이 흑암의 역사가 창세기 3장에 개인을 무너뜨렸고 창세기 6장에 가정과 사회를 무너뜨렸고 창세기 11장에 보면 국가를 무너뜨렸습니다. 바로 창세기 1장에 나오는 이 흑암의 역사가 개인, 가정, 국가를 무너뜨렸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결국은 애굽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으로 말미암아 피라미드를 만드는, 피라미드를 숭배하게 만들었고, 그래서 선택받은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애굽의 피라미드는 우상 숭배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 우상 숭배하는 피라미드를 만드는 일에 누가? 노예로 가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피라미드를 만드는 일에 동원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사단의 역사입니다. 그리고 또 블레셋 시대에 다곤 신전, 바벨론 시대에 느보 신상, 그리고 로마 시대에 제우스 신전, 악한 사단이 어떻게 시대에, 역사 속에 흘러서 우리를 공격해왔나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복음을 희미하게 만들고 복음을 상실하게 만듦으로 말미암아 결국은 엄청난 영적인 혼란을 가져오고 종교 통합의 역사를 가져옴으로 말미암아 참된 복음을 다 놓쳐버리도록 만드는 역사, 이게 누구의 역사냐, 배후에 역사하는 흑암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러한 시대시대마다 사단의 역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특별히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는데 창세기 3장에 하나님을 떠나자마자 하나님께서 3장 15절에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그냥 멸망 가운데 두지 아니하시고 메시야, 그리스도 언약을 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또 노아 홍수로 말미암아 모두가 다 멸망받게 되었는데 그 때 방주를 만들라 했습니다. 너를 위해서 방주를 만들어라 했습니다. 이스라엘 선택된 백성들이 애굽에서 노예살이하고 있는 그 상황 속에서 출애굽기 3장 18절에 보면 희생 제사의 비밀을 주셨고 포로된 상황 속에서 임마누엘의 축복을 주셨고, 또 속국된 상황 속에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리스도 언약을 주신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멸망 가운데 있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구원의 역사를 베푸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3장 16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멸망받는 세상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이냐? 멸망에 그대로 두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시고 그 구원의 역사를 위해서 메시야, 그리스도의 언약을 주셔서 영원한 저주와 재앙 가운데서 해방 받도록 하시고 하나님을 만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이 축복된 사실. 사실 우리는 받을 자격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이스라엘 백성들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을 선택하셨습니다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선택하심을 잘못 깨닫고 잘못 누림으로 말미암아 엉뚱한 사상을 만들어내고 그로 말미암아 전세계를 어렵게 만들었는데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포기한, 이스라엘이 붙잡지 못한 그 복음의 역사를 이방인인 우리에게 붙잡게 하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셨는데 그들이 복음의 역사를 놓쳐 버림으로 말미암아 그 축복된 역사가 누구에게? 바로 오늘 저와 여러분, 이방인인 우리에게까지 이르렀다는 사실.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은혜로 남은 자의 축복, 이 복음의 역사가 계속되고 있음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 복음의 역사를 누릴 것입니까? 로마서 10장 10절에 말씀했습니다.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했습니다. 그러면서 로마서 10장 13절에 보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선택 받은 유대인들,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련하게 복음을 버렸지만, 신비입니다, 신비스러운 일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무너짐을 통해서 이방인이 저와 여러분이 그 복음을 받게 하셨고 오늘도 그 복음 앞에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하게 될 때 구원얻는 축복을 허락하셨습니다. 이 축복의 역사가 오늘 우리에게까지 왔습니다. 그게 바로 은혜로 주어진 복음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이 은혜로 주어진 복음의 역사를 계속해서 전달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시대시대마다 남겨둔 자가 있는데 그게 바로 렘넌트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성경을 보십시오. 아브라함, 아브라함의 자녀들이 몇 명입니까? 아브라함의 자녀들이 몇 명입니까, 성경 퀴즈입니다. 쉽게 생각하면 두 명이다, 그렇게 많이 대답을 합니다. 왜냐? 그 두 명이 제일 많이 나오기 때문에. 그 두 명이 누구냐, 하갈을 통해 낳은 이스마엘, 사라를 통해 낳은 이삭, 그런데 또 더 있습니다. 후처 그두라를 통해서 낳은 여섯 명의 아들이 더 있습니다. 총 여덟 명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축복하셨습니다. 내가 네 자손을 축복하리라. 그러면 그 자손에 대한 축복이 여덟 명의 아이들에게, 자녀들에게 다 해당되는 것이냐? 아브라함이 86세에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하나님이 약속의 자녀를 주시겠다고 했는데 전혀 생기지 않으니까 하나님 앞에 이스마엘을 데리고 나가서 이스마엘이나 나님 앞에 살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무어라 했습니까? 아니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100세 때에 누구를 주었습니까? 이삭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아브라함의 축복은 누구를 통해서? 남은 자 이삭을 통해서 전달된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모든 축복은 아브라함의 8명의 자녀들에게 그대로 전달된 것이 아니라 이삭을 통해서 전달되도록 하셨어요. 여러분 노아시대에 모든 세계가 죄악이 관영했다 했습니다. 사람의 생각이 모두가 악하다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셨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실 것을 작정하셨어요. 그런데 그 가운데서 모든 사람이 죄악가운데서 타락함으로 타락과 방탕의 시대인데 그런데 거기에 남은 자가 있었습니다. 누구입니까? 창6:8절에 보면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할렐루야! 한번 받아 합시다. 그러나 노아는 은혜를 입었더라...바로 남은 자의 축복입니다. 가나안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정탐꾼 12명이었습니다. 그런데 12명이 다 남은 자가 아니라 그 가운데서 여호수아와 갈렙이 남은 자의 축복. 그로 말미암아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되었구요. 또 바벨론 시대에 포로 되어 있는 그 시대에 다니엘과 다니엘의 세 친구. 그 사람들이 바로 남은 자의 축복가운데 서 있는 사람으로 그들 통해서 하나님이 살아계심과 위기시대에 복음의 역사들을 드러낸 사실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와서 이스라엘 백성들 특별히 바울이 고백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버리신 것이 아니냐 그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이었습니다. 오랫동안에 이스라엘은 역사 속에서 고난당했으니까 그들 스스로가 가졌던 생각이 뭐냐 하면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은 백성이다. 그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갖고 있는 생각이었습니다. 너무나 긴 세월동안 계속되고 반복된 고난 속에 살아왔기 때문에 그들은 스스로가 오해와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버림받은 백성이다. 그런데 바울이 오늘 본문에 중요한 것을 말하고 있어요. 버림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 결코 그럴 수 없다라는 것. 이스라엘 백성들은 개인도 버림받았고 민족조차도 버림받았다고 착각하고 있었는데 바울은 그게 아니라는 사실. 그래서 자기 자신이 구원받은 사실을 이야기 했어요. 나도 골수 이스라엘 사람이요. 베냐민 지파요 아브라함의 씨이지만 나도 구원받았다. 또 이스라엘 민족을 대표해서 오늘 본문에 성경에서 이야기 하고 있는 2~4절에 보면 엘리야를 들어서 이야기 하고 있어요. 그래서 결국 우리 개인도 민족도 버림받지 않았다라는것 그럴 수 없다. 하나님의 버리신 자녀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어요. 먼저 1절에 보면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요. 롬11:1 “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 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내가 구원받은 것. 하나님께서 버리지 않았다라는 사실을 이야기 하고 있어요. 여러분 하나님께서 버리신다면 누굴 먼저 버리시겠습니까? 특별히 유대인 가운데 있었던 바울. 바울도 유대인 아닙니까? 그런데 이 바울이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죽이는 일에 앞섰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을 핍박하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는 일에 먼저 앞섰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버림받아도 먼저 버림받아야 되겠지요. 그런데 본문에 보면 바울이 자신 있게 확신 갖고 대답을 합니다. 나도 골수 이스라엘인이요 베냐민 지파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났는데 버림받지 않았다라는 것..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우리를 버리시는 분이 아니세요. 여러분 나를 버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은 나의 가족도, 나의 남편도 나의 자녀도 하나님은 버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버리지 않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기도해야 할 이유가 거기 있는 것이고요. 계속 전도해야 할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왜냐? 버리지 않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이 바울을 버리지 않고 하나님이 남은 자로 쓰셨어요. 그래서 나중에 보면 이 바울이 사실은 활동하는 시대가 로마황제 시대가 아닙니까? 그 로마 황제 시대에 그 배경 속에 있으면서 결국은 바울은 미세한 먼지보다도 못한 이름도 드러낼 수 없는 그런 사람이었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육신적으로 보면 역사를 움직이는 주인공은 로마황제 같습니다. 그런데 실제적으로 알고 보면 그 역사를 움직이는 그 배후에 중요한 남은 자는 누구이냐 바울이었던 것을 보게 되어요.
여러분 사도행전16:6~10절에 보면 바울이 아세아에서 복음 전하기를 원했지요. 드로아에서 아세아로 가기를 원했어요. 그런데 드로아에서 마게도냐의 환상을 보고 바울의 걸음이 유럽으로 향하게 됩니다. 그로 말미암아 유럽이 먼저 복음이 들어가게 된 것이지요. 그런데 그 사건을 일컬어서 역사가인 아놀드 토인비는 무엇이라고 이야기 했느냐? 바울의 배는 유럽에 문명을 싣고 가는 배였다라는 것. 무슨 말입니까? 육신으로 눈으로 현실적으로 볼때에 로마황제가 로마의 주인공처럼 보였지만 그러나 그게 아니라는 사실... 남은 자 바울이 역사의 중심을 이끌고 있다라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사실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바울을 남은 자로 축복하셨어요. 그리고 또 오늘 본문에 민족조차도 버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야기 하고 있는데 사실 여러분 열왕기상 17:19장에 보면 엘리야가 나오는데 엘리야가 엘리야 시대에 그 땅에 기근이 3년 반이나 하나님께서 비를 땅에 내리지 않는 기근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 이유 중에 하나가 무엇이냐 하면 그들이 우상숭배함으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완전히 타락하고 가장 암울한 암흑기가 바로 아합 왕의 시대, 엘리야가 활동하던 그런 시대였기 때문에 그때 그 재앙으로 기근을 내렸는데 3년 반 동안에 비를 내리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 악한왕인 이스라엘의 아합 왕과 그의 아내가 누구이냐 하면 이방여인입니다. 이스라엘의 아합 왕이 전략적으로 이방여인인 이세벨을 아내로 불러들입니다. 그런데 이 이세벨이 결혼을 통해서 아내로 들어오면서 이방의 모든 우상들을 다 가지고 왕궁으로 들어옵니다. 그러니까 왕궁 안에 전체 나라 속에 우상이 퍼질 수 밖에 없었지요. 그래서 그 당시에 이방인의 제사장들이 얼마나 많이 일어난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에 있어서 가장 영적으로 어두웠던 시대, 가장 암흑기가 언제냐 아합 왕이 통치하던 시대입니다. 그래서 이방 제사장들이 일어나서 영적으로 완전히 타락한 그런 결과가 왔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진노로서, 그 결과로서 이스라엘 땅에 3년 반 동안 비를 내리지 않았는데 아합 왕과 이세벨은 바로 이것이 엘리야 때문에 그렇다고 책임을 전가시켰어요. 그러자 엘리야가 그러면 우리 한번 붙자 그래가지고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 섬기는 선지자 850명과 엘리야와 영적인 싸움이 일어납니다. 거기서 누가 이겼습니까? 엘리야가 이기게 되지요. 하늘의 불을 끌어 내림으로 말미암아 엘리야가 승리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소식을 들은 이세벨이 화가 나서 군대를 총동원해서 내가 저 엘리야를 반드시 죽이겠다. 그래서 엘리야가 그 소리를 듣고 도망을 쳐서 로뎀 나무 아래 앉아서 하나님 앞에 기도한 내용입니다. 그것이 3절 4절입니다. 같이 한번 읽어보십시다. 롬11:3 “ 주여 그들이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그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냐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아멘. 여기 보면 엘리야가 로뎀나무 아래 앉아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이제 저를 죽여주옵소서. 할 때에 아니다 너만 남은 것이 아니다. 엘리야의 육신적인 눈에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알의 우상에 무릎 꿇은 줄 알았어요. 그런데 주님께서 말씀하셨어요. 아니다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칠천 명의 남은 자가 있다 하셨어요. 엘리야는 자기 혼자인줄 알았는데 하나님은 아니다 라는 사실. 바알 우상에게 무릎 꿇지 않은 칠천인의 남은 자가 있다라는 사실입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여러분 우리는 여러 가지 어려움과 문제를 당할 수 있습니다. 사방으로 우겨 싸임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반드시 기억하세요. 여러분 혼자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남은 자를 주님께서 준비하시고 축복하시는 거예요. 여러분 혼자가 아니예요.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싸임을 당하고 어려움을 당하고 문제를 당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때마다 우리가 쉽게 낙심할 수 있겠습니다마는 아니예요. 남은 자로 나를 부르셨고 하나님은 또 남은 자를 현장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또 일으켜 세우신다는 사실. 그 당시에 바로 엘리야 시대에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칠천제자를 하나님께서 준비시켰다면 위기와 재앙을 막을 하나님이 남은 자들을 하나님께서 준비시키시고 일으키신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전도현장에 나갈 때에 낙심할 이유가 없어요. 지난 주간부터 우리가 전도캠프를 현장에 나가게 됩니다마는 참여하신 분들 보면 이미 캠프 현장의 맛을 본 분들이예요. 고정적으로 명단이 나오는데 여러분들 많이 참여하셔서 현장을 체험하시고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 받아야 될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불러내십니다. 그 사실을 알면 낙심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전도 된다 안 된다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아야 될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불러내신다라는 거예요. 바울이 이 사실들을 알고 있었어요. 사실 바울은 사도행전9:15절에 보면 이방인들을 위한 택한 그릇으로 하나님께 부름 받았지요. 그런데 바울의 사역을 보면 이방인도 이방인이지만 유대인들에게 많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몸부림쳤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몸부림 칠 때마다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당한지 모릅니다. 많은 대적들이 일어나고 많은 어려움들을 당했어요. 고린도후서11:23절부터 쭉 보면 바울이 당한 고난이 얼마만큼 어려우냐 하면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다 했어요. 사형에 해당하는 것이 40대 곤장을 때리는 겁니다. 그런데 그건 법적으로 허용이 안 되니까 40에 하나 감한 매 그러면 39대 아닙니까. 그것을 곤장으로 다섯 번 맞았다 했어요. 그리고 3번에 배에서 파선하는 위기를 당하고 일주야를 어려운 가운데 지내는, 깊은 흑암 가운데 지나는 그 사실을 이야기하고 굶고 배고프고 헐벗고 이런 부분들을 이야기 했어요. 그런 수많은 어려운 고난들 있었지만 그러나 전혀 바울은 낙심하지 않았어요. 왜냐?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기로 작정된 자는 하나님께서 부르신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그렇습니다. 사도행전13:48에 있는 말씀처럼 영생 얻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을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불러내시는데 그 일을 우리를 통해 하시는데 이 일을 안다면 저와 여러분은 전도가 된다 안 된다 역사가 일어난다 안 일어난다에 낙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가 전도사역을 하면 할수록 우리의 모든 하는 일들이 헛되냐? 아닙니다. 고린도전서15:58절에 보면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며 더욱 주의 일에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니라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복음 전도라는 것을 가지고 현장에 나가서 전도운동 할 때에 열매 일어난다 안 일어난다 그게 아니라, 역사 일어난다 안 일어난다 그게 아니라 우리의 모든 수고는 결국은 하나도 헛되지 않게 되어 있어요. 그리고 분명히 하나님은 하나님이 남은 자들을 일으켜 세우는 역사를 현장에 하나님께서 하신다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항상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입니다. 소수의 남은 자를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시대의 위기를 막고, 재앙의 역사를 막고 시대를 살렸습니다. 어느 시대나 하나님께서는 남은 자를 부르셔서 복음을 회복시키시고 시대를 살렸습니다. 오늘 바울이 고백했습니다.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저와 여러분 이 한 시대에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로 한 시대의 위기와 재앙과 복음의 회복의 역사를 위해서 막을 자로 저와 여러분을 부르신 줄 믿습니다. 이 축복된 정체성을 가지고 담대함으로 현장에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남은 자의 사명
두 번째입니다. 남은 자의 사명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은혜로 남은 자로 부르셨는데 그렇다면 우리의 사명이 뭐냐? 이 사명은 우리가 나가서 뭔가 해야 될 부분들 보다도 우리가 제대로 누려야 될 부분입니다. 정말로 남은 자의 사명이 무엇이냐 눈을 열어야 될 부분들인데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깨닫게 하셨어요.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음을 깨닫게 하신 것이지요. 왜인 줄 아십니까? 왜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예수가 그리스도이신 이 복음을 깨닫게 하셨느냐 남은 자이기 때문에 이 복음을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에 나가보세요. 현장에 나가보세요. 복음 없어져 가고 있고요, 그로 말미암아 결국 세상은 종교통합으로 갈 수 밖에 없고요, 또 현장에 동성연애 이런 많은 부분들이 일어날 수밖에 없어요. 왜냐? 복음 없어져 가니까 오히려 교회 안에서조차도 복음을 잘 몰라요. 그런데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에게 예수가 그리스도이신 이 복음을 깨닫게 하셨다. 왜인 줄 아십니까?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남은 자로 부르신 증거입니다. 믿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최고로 누려야 될 것이 있다면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예수가 그리스도 이신이 복음을 누려야 합니다. 요한복음19:30절에 말씀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창세기 3장의 원죄와 사단의 문제와 그로 말미암아 지옥배경 가운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우리 인생의 그 모든 문제를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히심으로 말미암아 다 끝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주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선언하신 그 선언 속에서는 저와 여러분이 피를 흘려야 되는데 우리를 대신해서 비참하게 주님께서 피를 흘렸습니다. 우리와 우리 후대가 비참하게 멸망 받아야 되는데 그 일을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대신 짊어지셨어요. 그러면서 ‘다 이루었다’ 선언하신 거예요. 그리고 그리스도 그 안에 하나님께서 모든 것들을 다 담아 주셨어요. 그래서 골로새서 2장 2절에 보면 하나님의 비밀이 그리스도다고 말씀하시면서 2장 3절에 그 안에 지혜와 지식과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고 했어요. 여러분 진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모든 것을 다 해결하셨고 그 사실을 알고 그리스도 그 이름 붙잡고 기도하고 나갈 때 그 안에서 우리는 모든 것 다 찾아 누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왜 안 되느냐? 우리가 ‘그리스도’ 하지만 ‘오직그리스도’가 안 되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나오는 그 축복을 찾아 누리지 못하고 있어요. 그리스도 이야기 하지만 다른 것들이 각인 되고 뿌리 내리고 체질 되어 있는 것이 더 많아요. 오히려 복음 외에 다른 것들이 내 안에 들어와 있는 것이 더 많아요. 그러니까 오직그리스도가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리스도 안에 분명히 다 나오게 되어 있는데 그 축복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그리스도가 누구냐? 바로 ‘예수’이십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4장 12절에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세상에 그 어떤 사람 가운데도 우리에게 구원 얻을 이름이 안되요.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보내신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이신 누구를 믿냐? 예수를 믿는 겁니다. 다른 이는 없어요. 그리스도이신 예수를 믿는 겁니다. 만약에 석가모니가 그리스도라면, 우리는 석가를 믿어야 합니다. 석가가 얼마나 훌륭합니까? 좋은 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석가는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예수가 바로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이신 예수를 믿는 겁니다. 여러분 정말로 놓쳐버린 잃어버렸던 이 복음을 회복하시고 이 복음 속으로 들어가고 이 복음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게 남은 자의 사명입니다. 복음을 다 잃어버리고 살아가는데 저와 여러분을 남은 자로 부르셔서 이 복음을 회복하기를 원하시는 거예요. 그 다음에 남은자의 사명이 뭐냐? 특별히 하나님은 남은 자와 항상 함께 하시는 겁니다. 여러분에게 어떤 문제가 있어도 괜찮아요. 우리교회를 향해서 이렇다, 저렇다고 많은 사람들이 말들을 하잖아요. 또 우리 개인을 향해서도 이렇다, 저렇다 말들을 합니다만, 괜찮아요. 여러분을 누가 보호하시느냐? 하나님이 보호하셔요. 여러분을 두렵게 할 자가 없습니다. 여러분을 해할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셔요. 스바냐서 3장 12~13절을 봅시다. 중요한 말씀입니다. 같이 한 번 읽어 봅시다. “내가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을 네 가운데에 남겨 두리니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여 보호를 받을지라 이스라엘의 남은 자는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며 입에 거짓된 혀가 없으며 먹고 누울지라도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라” 할렐루야! 여기에 보면 내가 곧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을 네 가운데에 남겨 두리니.. 하나님이 남겨 두신 자죠. 이 사람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여 누가 보호하시냐? 하나님이 보호하신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13절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는 악을 해아지 아니하며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며 입에 거짓된 혀가 없으며 먹고 누울지라도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라. 그렇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여러분을 향해서 이렇다, 저렇다 말 한다 할지라도 여러분을 누가 보호하시느냐? 하나님의 남은 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보호하시게 되어 있어요. 아무도 여러분을 두렵게 할 자가 없고 여러분을 해할 자가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는 이 사실을 뭐로 누리느냐? 24시 기도 속에 들어가세요. 정시기도죠. 진짜 기도로 행복한 시간을 날마다 여러분이 가지세요. 25시 기도 속에 들어가고요 무시기도죠. 그리고 깊은기도 속에 들어가면 됩니다. 그러면 그 속에서 내 영적인 상태가 달라지게 되어 있어요. 그리고 그와 함께 응답의 문들이 열려지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남은 자에게 항상 함께 하시는 축복, 이 사실을 복음 언약 가진 자에게 기도하게 될 때 항상 함께 하시는 이 축복을 누리게 된다라는 사실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남은 자의 사명이 뭐냐? 여러분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이 한 시대에 증인으로 세우실 것입니다. 아무리 연약하고 부족할지라도 언약 붙잡은 남은 자, 하나님께서 그러한 자에게 언약 붙잡고 기도하게 될 때 응답을 주시고 그 응답으로 오는 응답이 바로 성령충만함의 응답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고 방법중의 방법이 성령충만인데 시대를 바꾸는 최고의 방법이 성령충만입니다. 그런데 그 성령충만이 어떻게 오느냐? 여러분이 부족하다, 연약하다, 상관없어요. 주어진 현장에서 언약 붙잡고 기도하게 될 때 그 성령충만함이 오게 되고
그 성령충만함을 누리게 될 때 권능을 받게 됩니다. 그 권능은 다섯가지 힘이죠. 영력 - 흑암의 세력 사탄의 세력을 꺾는 영력. 내 지혜에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지력. 내 건강함에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체력, 여러분 우리가 천억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그것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없다면 그 천억이 오히려 우리에게 저주가 됩니다. 물질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그 물질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을 하나님께서 위에서 주실 때 그게 바르게 물질이 쓰여지고 축복이 되게 되어 있어요. 그 경제력. 그와 더불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정말 복음가지고 언약가지고 그 사실을 누리게 될 때 우리의 모든 만남이 이상한 만남, 실패한 만남, 저주의 만남이 아니라 축복된 전도자의 만남, 전도할 사람들, 전도대상자들과의 만남, 이런 만남의 축복. 인력의 축복을 주시는 겁니다. 어디에서? 성령충만함에서 오는 힘이에요. 영력과 지력과 체력과 경제력과 인력. 하나님이 시대를 바꾸는 방법 – 성령충만입니다. 그 축복이 어디에서 오느냐? 복음을 회복하고 그 복음 붙잡고 기도로 말미암아 함께 하는 축복을 누리게 될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증거 주셔서 증인으로서 성령충만함으로 한 시대를 살리는 그런 축복된 응답을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위기 시대입니다. 교회가 힘이 없고 교회가 문을 닫고 교회가 90% 이상이 미자립교회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자칫 잘못 육신적인 눈으로 이런 교회를 바라보면서 우리도 모르게 희망이 없고 소망이 없어서 낙심할 수 있어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 한국을 사랑하셔서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위해서 지금도 하나님은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들을 하나님께서 일으켜 세워 나가고 계십니다. 육신적인 눈으로 한국교회를 바라보면 절망할 수밖에 없고 소망이 없지만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게 지금도 하나님은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해 나가시는데 그게 바로 현장에서 남은 자들을 하나님께서 세워 나가신다는 사실. 그 중에 바로 저와 여러분이 있는 것입니다. 지난 금요일 C국 단기선교사역에 대한 포럼을 들었잖아요. 그 보고 가운데 한 자매가 보고 이렇게 이야기 했어요. 중국 어느 지역에는 선교사님이 1년에 딱 한 번 들어간데요. 우리는 매주 목사 얼굴을 보잖아요. 또 원하면 심방을 요청해서 목사를 불러 예배드릴 수 있잖아요. 그런데 중국 어느 지역에는 1년에 세 번 선교사를 본다고 했어요. 그러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하느냐? 그 다음 주는 MP3로 메시지를 담아서 보내주면 그 메시지 가지고 기도하고 그것 가지고 일주일을 살고 승리해 나간다고 해요. 그 포럼을 듣는 가운데 중국 복음화를 위해서 남은 자들이 아닌가! 이런 마음이 들었어요. 우리가 북한을 놓고도 기도하잖아요. 우리가 정말 기도해야 됩니다. 복음으로 통일될 수 있도록. 그런데 북한 지하교회가 한국교회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다라는 것. 왜냐? 한국의 교회들이 너무 타락하고 복음이 없어져 가는 한국교회를 위해서 오히려 북한의 24만의 지하교회가 한국교회가 타락하지 않도록 눈물 흘려가면서 기도하고 있다라는 것. 그것을 들었을 때 그들이 바로 남은 자가 아닌가!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도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위해서 하나님이 친히 현장에 남은 자들을 하나님께서 일으켜 세워 나가시는데 그 중에 저와 여러분을 부르신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의 남은 자라는 이 정체성을 가지고 여러분 가장 중요한 하나님 원하시는 하나님의 대책으로 이 현장 속에 쓰임 받는 저와 여러분 전도자의 발걸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5년 8월 30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
(롬11:1-12)
서론: 우리가 현장에서 복음을 전하다 보면, 분명히 복음을 받아야 할 사람들인데 받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럴때마다 안타까움과 또 한편으로는 감사가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우리는 남은 자(진리의 소수에 대한 특별한 단어), 바로 하나님의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창45:7, 습2:7, 행8:4-8, 행15장, 롬9:27, 롬11:5)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든지 남은 자, 렘넌트(Renmant: 흩어진 자, 숨겨둔 자, 남겨둔 자)를 세워서 소수를 세워 전체를 바꾸어 가셨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최고의 관심은 남은 자, 렘넌트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는데, 바로 우리와 하나교회입니다.
1. 은혜로 남은 자
가.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멸망 받는 곳에서 은혜로 구원의 역사를 베풀고 계십니다
1) 창1:2(흑암,혼돈,공허)으로 창3장(개인), 6장(가정), 11장(국가)의 문제: 애굽 피라미드, 블레셋 다곤, 바벨론 느보, 로마 제우스
2) 그래서 주신 언약: 여인의 후손(창3장), 노아의 방주(홍수), 피제사(노예), 임마누엘(포로), 그리스도(속국)
3) 누구든지 독생자(요3:16)를 마음으로 믿어 입으로 시인(롬10:10)하고 주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 받음(롬10:13)
4) 성경 속의 은혜 받은 남은 자: 이삭, 노아, 여호수아와 갈렙, 다니엘과 세 친구
나. 지금도 남은 자의 역사는 계속됩니다 - 오늘, 우리에게까지 임함
1) 바울은 이스라엘과 자신이 버림을 받은 것이 아니라고 함(롬11:1) - 역사의 중심이 됨
2) 우리도 버린 바 되지 않고,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남은 자임(롬1:3~4 엘리야와 함께 한 남은 자 7천명)
3) 우리가 기도하고 전도해야 할 이유도, 나와 관계된 자들을 절대 버리지 않으시기 때문임(행13:48 고전15:58)
4) 남은 자로 부르심을 받았으니, 복음을 회복하고 위기 재앙을 막으며 시대를 살려라!!
2. 남은 자의 사명 - 제대로 누릴 부분
가. 오직, 예수가 그리스도이신 복음을 회복하라!! (요19:30, 골2:2-3, 행4:12)
나. 기도로, 하나님의 항상 함께하심과 보호하심을 누려라!! (습3:12-13)
다. 시대 바꾸는 최고의 방법, 성령충만으로 증인되는 능력(영력,지력,체력,경제력,인력)을 받아라!!
결론: 지금은 위기시대입니다. 교회가 힘을 잃고 문을 닫으며, 90% 이상이 미자립으로 가고 있습니다. 육신의 눈으로 보면 낙심할 수 있으나, 하나님께서는 한국을 사랑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을 위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입을 자들을 세워나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현장에서 남은 자를 세워가시는 그 중에 우리가 있는 것입니다. 한주간 “나는 하나님의 남은 자”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하나님의 대책으로 이 현장에 쓰임받는 전도자의 발걸음되고, 남는 자 남길 자를 세워나가시길 기도드립니다.
< 기 도 문 >
하나님 아버지, 복음이 희미해져가는 위기시대에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 렘넌트로 부르심에 감사드립니다. 은혜로 구원의 역사를 베푸시는 언약을 붙잡고, 지금도 계속되는 남은 자의 역사를 감당하길 원합니다. 한주간 남은 자, 렘넌트로서 오직 복음을 회복하고 기도로 함께하심을 누리며, 성령충만의 능력으로 증인이 되어 전도자의 발걸음 가운데 남는 자와 남길 자를 세우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
(롬11:1~12)
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2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너희가 성경이 엘리야를 가리켜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고발하되 3 주여 그들이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 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4 그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냐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5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6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 7 그런즉 어떠하냐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우둔하여졌느니라 8 기록된 바 하나님이 오늘까지 그들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 9 또 다윗이 이르되 그들의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시옵고 10 그들의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그들의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하였느니라 1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12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리요
롬11:1~12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렘넌트여 일어나라! 다시 합시다. 렘넌트여 일어나라! 하나님이 우리를 렘넌트, 한 시대의 남은 자로 부르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현장을 살리는 큰 영적인 힘을 회복하는 축복된 시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현장에서 전도를 하다 보면 복음을 쉽게 이야기하고 많이 전달하는데도 불구하고 복음을 잘 받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복음을 많이 이야기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닫아 버리고 복음을 받지 아니하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그럴 때 어떤 마음이 드십니까, 여러분? 참 안타깝다, 이런 마음이 듭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분명히 이 사람의 배경을 보면 믿어야 할 사람인데, 조상 대대로 믿어 왔고 지금 부모님들이 믿고 있고 또 조부모님들이 믿고 있는 그런 상황인데 복음을 받지를 않습니다. 그러면 더더욱 안타까운 것입니다. 아마 바울의 자기 동족에 향한 마음이 그러한 마음이 아니었나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성경을 가지고 있고 나름대로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사람들, 반드시 복음 들으면 받아야 할 사람들인데 복음을 받지 않는 그런 안타까운 부분들을 보면서 바울이 가졌던 그 안타까운 마음이 오늘 성경 본문에도 잘 나와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또 우리 현장에서 같이 복음을 전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이런 이야기를 하십니다. 그래도 복음 깨닫든 못 깨닫든 교회에 붙어 있고 교회에 남아 있는 것, 그것이 은혜라고. 왜냐 하면 현장에서 전도해 보면 어릴 때 교회에 나갔던 사람들이 잘 받지 않습니다, 복음을. 돌아올 만한데 어릴 때 교회를 나가 보고 무언가 신앙 생활을 했던 사람들은 바른 복음이 들어가지 않으니까 그런 사람들은 오히려 교회에 오는 것이 어려운 걸음인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분이 이런 이야기를 지난 주에 하셨습니다. 목사님, 그래도 복음 깨닫든 못 깨닫든, 응답 받든 못 받든 교회에 붙어 있는 것, 그게 은혜입니다. 아마 그런 것 같습니다, 우리가 보면. 그리고 또한 여러분, 이렇게 보면 우리가 복음을 아무리 전해도 받지 않는 현장을 바라보면서 참 안타깝다는 마음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내가 어떻게 이런 복음을 받았을까, 그에 대한 감사함도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잘 설명해도 받지 않는 복음의 역사들, 그런데 내가 그 복음을 받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할수록 내가 어떻게 이 자리에 서 있고 이런 복음의 역사를 깨달았을까, 감사할 수밖에 없는 부분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가 성경에 보면 믿지 않는 사람들 가운데도 있고, 지금 믿는 사람들 가운데도 있는데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진리의 소수의 사람들에 대한, 성경에서 특별하게 말하고 있는 단어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그 소수의 사람, 진리의 사람들을 향한 특별한 단어 한 가지가 오늘 본문에 나오는데 그게 바로 ‘남은 자’라는 단어입니다. 남은 자. 그래서 오늘 제목은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 오늘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 이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나누기를 원합니다.
오늘 특별히 로마서 11장 1절~12절 말씀을 죽 보면 바울이 주장하고 있는 내용 중의 하나가 하나님께서 남은 자들을 마련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본문에 대해서 설명들을 할 때 많은 성경학자들이 아주 중요하게 보고 있습니다. ‘남은 자의 신학’이라는 말을 붙이면서 구원론, 구속사적인 배경 가운데서 구원론에 대해 설명할 때 남은 자의 신학이라는 말로 설명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특히 성경 전체에서 구약에 22번 나오고, 구약에 처음 나오는 단어, 남은 자라는 단어가 어디에 나오느냐 하면 창세기 45장 7절에 보면 요셉이 요셉의 형들 앞에서 자기가 애굽에서 총리가 된 사실을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그래서 하나님이 자기를 애굽에 보내시고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셨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기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에 ‘후손’이라는 단어를 렘넌트라는 단어로 쓰고 남은 자라는 단어로 씁니다. 성경에 보면 스바냐 2장 7절에도 남은 자가 나오고 사도행전 8장 4절~8절, 베드로전서 1장 1절 등을 보면 흩어진 자가 나오고 또 숨겨둔 자라는 단어가 나오고 남은 자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그것을 전체로 묶어서 한 마디로 말하면, 영어로 말하면 렘넌트라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남은 자 렘넌트들을 하나님이 어떤 시대에 일으켰는가? 세상이 타락하고 그래서 저주와 멸망받을 수밖에 없는, 그리고 그 속에서 믿는 성도들조차도 다 무너져서 위기를 만난 그 시대시대마다 하나님은 렘넌트들, 남은 자들을 일으켜 세워서 그 시대를 바꾸어 갔던 사실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약속과 그 약속의 성취를 위해 전체를 다 사용하신 것이 아니라 소수를 사용해서 전체를 바꾸어갔던 사실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역사를 통해서 보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남은 자의 신학입니다. 특히 신약에도 보면 사도행전 15장에 말씀하고 있고 신약에는 세 번 나오고 있는데 사도행전 15장에, 그 다음 로마서 9장 27절에, 오늘 본문인 로마서 11장 5절에 나오고 있는데 신약에 사용할 때는 구약의 성경을 인용해서 남은 자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위기 시대마다, 재앙 시대마다 그 재앙 시대를 살리고 위기 시대를 살릴 수 있는 귀중한 답으로 렘넌트들을 세웠는데 그것도 소수의 렘넌트, 남은 자를 세우셔서 전체를 바꾸어갔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당연한 최고의 관심이 어디에 있느냐? 바로 남은 자 렘넌트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 다음으로 우리에게 가장 귀한 단어가 있다면 남은 자 렘넌트라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오늘 바울을 통해서 이야기했습니다.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했습니다. 그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지금 남아 있는 자가 바로, 저는 확신합니다, 우리 교회인 줄로 믿습니다. 또 저와 여러분을 이 한 시대, 위기를 만난 시대에, 재앙을 만난 시대에 현장을 살리는 참된 남은 자로 부르셨음을 확신합니다. 오늘 예배하는 가운데 이 부분에 대한 정체성을 바르게 깨닫고 새로운 믿음을 회복함으로 말미암아 현장에서 승리하는 참된 증인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이스라엘이 받은 축복
그러면 먼저 첫 번째로 은혜로 남은 자입니다. 은혜로 남은 자. 오늘 본문에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 세상을 향한, 또 우리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멸망 가운데서 구원 받는 것입니다. 멸망이 하나님의 계획이 아닙니다. 멸망 가운데 우리를 그냥 두지 아니하시고 구원의 역사를 베푸는 것인데 그게 바로 은혜로 주신 구원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시대마다 악한 사단이 어떻게 역사했는가를 성경 창세기부터 계시록 20장까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데 창세기 1장 2절에 보면 흑암과 혼돈과 공허함이 있었습니다. 이 흑암의 역사가 창세기 3장에 개인을 무너뜨렸고 창세기 6장에 가정과 사회를 무너뜨렸고 창세기 11장에 보면 국가를 무너뜨렸습니다. 바로 창세기 1장에 나오는 이 흑암의 역사가 개인, 가정, 국가를 무너뜨렸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결국은 애굽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으로 말미암아 피라미드를 만드는, 피라미드를 숭배하게 만들었고, 그래서 선택받은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애굽의 피라미드는 우상 숭배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 우상 숭배하는 피라미드를 만드는 일에 누가? 노예로 가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피라미드를 만드는 일에 동원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사단의 역사입니다. 그리고 또 블레셋 시대에 다곤 신전, 바벨론 시대에 느보 신상, 그리고 로마 시대에 제우스 신전, 악한 사단이 어떻게 시대에, 역사 속에 흘러서 우리를 공격해왔나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복음을 희미하게 만들고 복음을 상실하게 만듦으로 말미암아 결국은 엄청난 영적인 혼란을 가져오고 종교 통합의 역사를 가져옴으로 말미암아 참된 복음을 다 놓쳐버리도록 만드는 역사, 이게 누구의 역사냐, 배후에 역사하는 흑암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러한 시대시대마다 사단의 역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특별히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는데 창세기 3장에 하나님을 떠나자마자 하나님께서 3장 15절에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그냥 멸망 가운데 두지 아니하시고 메시야, 그리스도 언약을 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또 노아 홍수로 말미암아 모두가 다 멸망받게 되었는데 그 때 방주를 만들라 했습니다. 너를 위해서 방주를 만들어라 했습니다. 이스라엘 선택된 백성들이 애굽에서 노예살이하고 있는 그 상황 속에서 출애굽기 3장 18절에 보면 희생 제사의 비밀을 주셨고 포로된 상황 속에서 임마누엘의 축복을 주셨고, 또 속국된 상황 속에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리스도 언약을 주신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멸망 가운데 있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구원의 역사를 베푸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3장 16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멸망받는 세상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이냐? 멸망에 그대로 두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시고 그 구원의 역사를 위해서 메시야, 그리스도의 언약을 주셔서 영원한 저주와 재앙 가운데서 해방 받도록 하시고 하나님을 만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이 축복된 사실. 사실 우리는 받을 자격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이스라엘 백성들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을 선택하셨습니다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선택하심을 잘못 깨닫고 잘못 누림으로 말미암아 엉뚱한 사상을 만들어내고 그로 말미암아 전세계를 어렵게 만들었는데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포기한, 이스라엘이 붙잡지 못한 그 복음의 역사를 이방인인 우리에게 붙잡게 하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셨는데 그들이 복음의 역사를 놓쳐 버림으로 말미암아 그 축복된 역사가 누구에게? 바로 오늘 저와 여러분, 이방인인 우리에게까지 이르렀다는 사실.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은혜로 남은 자의 축복, 이 복음의 역사가 계속되고 있음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 복음의 역사를 누릴 것입니까? 로마서 10장 10절에 말씀했습니다.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했습니다. 그러면서 로마서 10장 13절에 보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선택 받은 유대인들,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련하게 복음을 버렸지만, 신비입니다, 신비스러운 일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무너짐을 통해서 이방인이 저와 여러분이 그 복음을 받게 하셨고 오늘도 그 복음 앞에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하게 될 때 구원얻는 축복을 허락하셨습니다. 이 축복의 역사가 오늘 우리에게까지 왔습니다. 그게 바로 은혜로 주어진 복음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이 은혜로 주어진 복음의 역사를 계속해서 전달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시대시대마다 남겨둔 자가 있는데 그게 바로 렘넌트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성경을 보십시오. 아브라함, 아브라함의 자녀들이 몇 명입니까? 아브라함의 자녀들이 몇 명입니까, 성경 퀴즈입니다. 쉽게 생각하면 두 명이다, 그렇게 많이 대답을 합니다. 왜냐? 그 두 명이 제일 많이 나오기 때문에. 그 두 명이 누구냐, 하갈을 통해 낳은 이스마엘, 사라를 통해 낳은 이삭, 그런데 또 더 있습니다. 후처 그두라를 통해서 낳은 여섯 명의 아들이 더 있습니다. 총 여덟 명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축복하셨습니다. 내가 네 자손을 축복하리라. 그러면 그 자손에 대한 축복이 여덟 명의 아이들에게, 자녀들에게 다 해당되는 것이냐? 아브라함이 86세에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하나님이 약속의 자녀를 주시겠다고 했는데 전혀 생기지 않으니까 하나님 앞에 이스마엘을 데리고 나가서 이스마엘이나 나님 앞에 살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무어라 했습니까? 아니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100세 때에 누구를 주었습니까? 이삭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아브라함의 축복은 누구를 통해서? 남은 자 이삭을 통해서 전달된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모든 축복은 아브라함의 8명의 자녀들에게 그대로 전달된 것이 아니라 이삭을 통해서 전달되도록 하셨어요. 여러분 노아시대에 모든 세계가 죄악이 관영했다 했습니다. 사람의 생각이 모두가 악하다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셨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실 것을 작정하셨어요. 그런데 그 가운데서 모든 사람이 죄악가운데서 타락함으로 타락과 방탕의 시대인데 그런데 거기에 남은 자가 있었습니다. 누구입니까? 창6:8절에 보면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할렐루야! 한번 받아 합시다. 그러나 노아는 은혜를 입었더라...바로 남은 자의 축복입니다. 가나안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정탐꾼 12명이었습니다. 그런데 12명이 다 남은 자가 아니라 그 가운데서 여호수아와 갈렙이 남은 자의 축복. 그로 말미암아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되었구요. 또 바벨론 시대에 포로 되어 있는 그 시대에 다니엘과 다니엘의 세 친구. 그 사람들이 바로 남은 자의 축복가운데 서 있는 사람으로 그들 통해서 하나님이 살아계심과 위기시대에 복음의 역사들을 드러낸 사실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와서 이스라엘 백성들 특별히 바울이 고백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버리신 것이 아니냐 그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이었습니다. 오랫동안에 이스라엘은 역사 속에서 고난당했으니까 그들 스스로가 가졌던 생각이 뭐냐 하면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은 백성이다. 그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갖고 있는 생각이었습니다. 너무나 긴 세월동안 계속되고 반복된 고난 속에 살아왔기 때문에 그들은 스스로가 오해와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버림받은 백성이다. 그런데 바울이 오늘 본문에 중요한 것을 말하고 있어요. 버림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 결코 그럴 수 없다라는 것. 이스라엘 백성들은 개인도 버림받았고 민족조차도 버림받았다고 착각하고 있었는데 바울은 그게 아니라는 사실. 그래서 자기 자신이 구원받은 사실을 이야기 했어요. 나도 골수 이스라엘 사람이요. 베냐민 지파요 아브라함의 씨이지만 나도 구원받았다. 또 이스라엘 민족을 대표해서 오늘 본문에 성경에서 이야기 하고 있는 2~4절에 보면 엘리야를 들어서 이야기 하고 있어요. 그래서 결국 우리 개인도 민족도 버림받지 않았다라는것 그럴 수 없다. 하나님의 버리신 자녀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어요. 먼저 1절에 보면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요. 롬11:1 “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 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내가 구원받은 것. 하나님께서 버리지 않았다라는 사실을 이야기 하고 있어요. 여러분 하나님께서 버리신다면 누굴 먼저 버리시겠습니까? 특별히 유대인 가운데 있었던 바울. 바울도 유대인 아닙니까? 그런데 이 바울이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죽이는 일에 앞섰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을 핍박하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는 일에 먼저 앞섰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버림받아도 먼저 버림받아야 되겠지요. 그런데 본문에 보면 바울이 자신 있게 확신 갖고 대답을 합니다. 나도 골수 이스라엘인이요 베냐민 지파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났는데 버림받지 않았다라는 것..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우리를 버리시는 분이 아니세요. 여러분 나를 버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은 나의 가족도, 나의 남편도 나의 자녀도 하나님은 버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버리지 않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기도해야 할 이유가 거기 있는 것이고요. 계속 전도해야 할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왜냐? 버리지 않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이 바울을 버리지 않고 하나님이 남은 자로 쓰셨어요. 그래서 나중에 보면 이 바울이 사실은 활동하는 시대가 로마황제 시대가 아닙니까? 그 로마 황제 시대에 그 배경 속에 있으면서 결국은 바울은 미세한 먼지보다도 못한 이름도 드러낼 수 없는 그런 사람이었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육신적으로 보면 역사를 움직이는 주인공은 로마황제 같습니다. 그런데 실제적으로 알고 보면 그 역사를 움직이는 그 배후에 중요한 남은 자는 누구이냐 바울이었던 것을 보게 되어요.
여러분 사도행전16:6~10절에 보면 바울이 아세아에서 복음 전하기를 원했지요. 드로아에서 아세아로 가기를 원했어요. 그런데 드로아에서 마게도냐의 환상을 보고 바울의 걸음이 유럽으로 향하게 됩니다. 그로 말미암아 유럽이 먼저 복음이 들어가게 된 것이지요. 그런데 그 사건을 일컬어서 역사가인 아놀드 토인비는 무엇이라고 이야기 했느냐? 바울의 배는 유럽에 문명을 싣고 가는 배였다라는 것. 무슨 말입니까? 육신으로 눈으로 현실적으로 볼때에 로마황제가 로마의 주인공처럼 보였지만 그러나 그게 아니라는 사실... 남은 자 바울이 역사의 중심을 이끌고 있다라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사실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바울을 남은 자로 축복하셨어요. 그리고 또 오늘 본문에 민족조차도 버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야기 하고 있는데 사실 여러분 열왕기상 17:19장에 보면 엘리야가 나오는데 엘리야가 엘리야 시대에 그 땅에 기근이 3년 반이나 하나님께서 비를 땅에 내리지 않는 기근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 이유 중에 하나가 무엇이냐 하면 그들이 우상숭배함으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완전히 타락하고 가장 암울한 암흑기가 바로 아합 왕의 시대, 엘리야가 활동하던 그런 시대였기 때문에 그때 그 재앙으로 기근을 내렸는데 3년 반 동안에 비를 내리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 악한왕인 이스라엘의 아합 왕과 그의 아내가 누구이냐 하면 이방여인입니다. 이스라엘의 아합 왕이 전략적으로 이방여인인 이세벨을 아내로 불러들입니다. 그런데 이 이세벨이 결혼을 통해서 아내로 들어오면서 이방의 모든 우상들을 다 가지고 왕궁으로 들어옵니다. 그러니까 왕궁 안에 전체 나라 속에 우상이 퍼질 수 밖에 없었지요. 그래서 그 당시에 이방인의 제사장들이 얼마나 많이 일어난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에 있어서 가장 영적으로 어두웠던 시대, 가장 암흑기가 언제냐 아합 왕이 통치하던 시대입니다. 그래서 이방 제사장들이 일어나서 영적으로 완전히 타락한 그런 결과가 왔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진노로서, 그 결과로서 이스라엘 땅에 3년 반 동안 비를 내리지 않았는데 아합 왕과 이세벨은 바로 이것이 엘리야 때문에 그렇다고 책임을 전가시켰어요. 그러자 엘리야가 그러면 우리 한번 붙자 그래가지고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 섬기는 선지자 850명과 엘리야와 영적인 싸움이 일어납니다. 거기서 누가 이겼습니까? 엘리야가 이기게 되지요. 하늘의 불을 끌어 내림으로 말미암아 엘리야가 승리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소식을 들은 이세벨이 화가 나서 군대를 총동원해서 내가 저 엘리야를 반드시 죽이겠다. 그래서 엘리야가 그 소리를 듣고 도망을 쳐서 로뎀 나무 아래 앉아서 하나님 앞에 기도한 내용입니다. 그것이 3절 4절입니다. 같이 한번 읽어보십시다. 롬11:3 “ 주여 그들이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그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냐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아멘. 여기 보면 엘리야가 로뎀나무 아래 앉아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이제 저를 죽여주옵소서. 할 때에 아니다 너만 남은 것이 아니다. 엘리야의 육신적인 눈에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알의 우상에 무릎 꿇은 줄 알았어요. 그런데 주님께서 말씀하셨어요. 아니다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칠천 명의 남은 자가 있다 하셨어요. 엘리야는 자기 혼자인줄 알았는데 하나님은 아니다 라는 사실. 바알 우상에게 무릎 꿇지 않은 칠천인의 남은 자가 있다라는 사실입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여러분 우리는 여러 가지 어려움과 문제를 당할 수 있습니다. 사방으로 우겨 싸임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반드시 기억하세요. 여러분 혼자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남은 자를 주님께서 준비하시고 축복하시는 거예요. 여러분 혼자가 아니예요.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싸임을 당하고 어려움을 당하고 문제를 당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때마다 우리가 쉽게 낙심할 수 있겠습니다마는 아니예요. 남은 자로 나를 부르셨고 하나님은 또 남은 자를 현장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또 일으켜 세우신다는 사실. 그 당시에 바로 엘리야 시대에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칠천제자를 하나님께서 준비시켰다면 위기와 재앙을 막을 하나님이 남은 자들을 하나님께서 준비시키시고 일으키신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전도현장에 나갈 때에 낙심할 이유가 없어요. 지난 주간부터 우리가 전도캠프를 현장에 나가게 됩니다마는 참여하신 분들 보면 이미 캠프 현장의 맛을 본 분들이예요. 고정적으로 명단이 나오는데 여러분들 많이 참여하셔서 현장을 체험하시고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 받아야 될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불러내십니다. 그 사실을 알면 낙심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전도 된다 안 된다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아야 될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불러내신다라는 거예요. 바울이 이 사실들을 알고 있었어요. 사실 바울은 사도행전9:15절에 보면 이방인들을 위한 택한 그릇으로 하나님께 부름 받았지요. 그런데 바울의 사역을 보면 이방인도 이방인이지만 유대인들에게 많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몸부림쳤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몸부림 칠 때마다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당한지 모릅니다. 많은 대적들이 일어나고 많은 어려움들을 당했어요. 고린도후서11:23절부터 쭉 보면 바울이 당한 고난이 얼마만큼 어려우냐 하면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다 했어요. 사형에 해당하는 것이 40대 곤장을 때리는 겁니다. 그런데 그건 법적으로 허용이 안 되니까 40에 하나 감한 매 그러면 39대 아닙니까. 그것을 곤장으로 다섯 번 맞았다 했어요. 그리고 3번에 배에서 파선하는 위기를 당하고 일주야를 어려운 가운데 지내는, 깊은 흑암 가운데 지나는 그 사실을 이야기하고 굶고 배고프고 헐벗고 이런 부분들을 이야기 했어요. 그런 수많은 어려운 고난들 있었지만 그러나 전혀 바울은 낙심하지 않았어요. 왜냐?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기로 작정된 자는 하나님께서 부르신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그렇습니다. 사도행전13:48에 있는 말씀처럼 영생 얻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을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불러내시는데 그 일을 우리를 통해 하시는데 이 일을 안다면 저와 여러분은 전도가 된다 안 된다 역사가 일어난다 안 일어난다에 낙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가 전도사역을 하면 할수록 우리의 모든 하는 일들이 헛되냐? 아닙니다. 고린도전서15:58절에 보면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며 더욱 주의 일에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니라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복음 전도라는 것을 가지고 현장에 나가서 전도운동 할 때에 열매 일어난다 안 일어난다 그게 아니라, 역사 일어난다 안 일어난다 그게 아니라 우리의 모든 수고는 결국은 하나도 헛되지 않게 되어 있어요. 그리고 분명히 하나님은 하나님이 남은 자들을 일으켜 세우는 역사를 현장에 하나님께서 하신다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항상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입니다. 소수의 남은 자를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시대의 위기를 막고, 재앙의 역사를 막고 시대를 살렸습니다. 어느 시대나 하나님께서는 남은 자를 부르셔서 복음을 회복시키시고 시대를 살렸습니다. 오늘 바울이 고백했습니다.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저와 여러분 이 한 시대에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로 한 시대의 위기와 재앙과 복음의 회복의 역사를 위해서 막을 자로 저와 여러분을 부르신 줄 믿습니다. 이 축복된 정체성을 가지고 담대함으로 현장에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남은 자의 사명
두 번째입니다. 남은 자의 사명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은혜로 남은 자로 부르셨는데 그렇다면 우리의 사명이 뭐냐? 이 사명은 우리가 나가서 뭔가 해야 될 부분들 보다도 우리가 제대로 누려야 될 부분입니다. 정말로 남은 자의 사명이 무엇이냐 눈을 열어야 될 부분들인데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깨닫게 하셨어요.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음을 깨닫게 하신 것이지요. 왜인 줄 아십니까? 왜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예수가 그리스도이신 이 복음을 깨닫게 하셨느냐 남은 자이기 때문에 이 복음을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에 나가보세요. 현장에 나가보세요. 복음 없어져 가고 있고요, 그로 말미암아 결국 세상은 종교통합으로 갈 수 밖에 없고요, 또 현장에 동성연애 이런 많은 부분들이 일어날 수밖에 없어요. 왜냐? 복음 없어져 가니까 오히려 교회 안에서조차도 복음을 잘 몰라요. 그런데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에게 예수가 그리스도이신 이 복음을 깨닫게 하셨다. 왜인 줄 아십니까?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남은 자로 부르신 증거입니다. 믿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최고로 누려야 될 것이 있다면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예수가 그리스도 이신이 복음을 누려야 합니다. 요한복음19:30절에 말씀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창세기 3장의 원죄와 사단의 문제와 그로 말미암아 지옥배경 가운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우리 인생의 그 모든 문제를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히심으로 말미암아 다 끝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주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선언하신 그 선언 속에서는 저와 여러분이 피를 흘려야 되는데 우리를 대신해서 비참하게 주님께서 피를 흘렸습니다. 우리와 우리 후대가 비참하게 멸망 받아야 되는데 그 일을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대신 짊어지셨어요. 그러면서 ‘다 이루었다’ 선언하신 거예요. 그리고 그리스도 그 안에 하나님께서 모든 것들을 다 담아 주셨어요. 그래서 골로새서 2장 2절에 보면 하나님의 비밀이 그리스도다고 말씀하시면서 2장 3절에 그 안에 지혜와 지식과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고 했어요. 여러분 진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모든 것을 다 해결하셨고 그 사실을 알고 그리스도 그 이름 붙잡고 기도하고 나갈 때 그 안에서 우리는 모든 것 다 찾아 누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왜 안 되느냐? 우리가 ‘그리스도’ 하지만 ‘오직그리스도’가 안 되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나오는 그 축복을 찾아 누리지 못하고 있어요. 그리스도 이야기 하지만 다른 것들이 각인 되고 뿌리 내리고 체질 되어 있는 것이 더 많아요. 오히려 복음 외에 다른 것들이 내 안에 들어와 있는 것이 더 많아요. 그러니까 오직그리스도가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리스도 안에 분명히 다 나오게 되어 있는데 그 축복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그리스도가 누구냐? 바로 ‘예수’이십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4장 12절에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세상에 그 어떤 사람 가운데도 우리에게 구원 얻을 이름이 안되요.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보내신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이신 누구를 믿냐? 예수를 믿는 겁니다. 다른 이는 없어요. 그리스도이신 예수를 믿는 겁니다. 만약에 석가모니가 그리스도라면, 우리는 석가를 믿어야 합니다. 석가가 얼마나 훌륭합니까? 좋은 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석가는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예수가 바로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이신 예수를 믿는 겁니다. 여러분 정말로 놓쳐버린 잃어버렸던 이 복음을 회복하시고 이 복음 속으로 들어가고 이 복음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게 남은 자의 사명입니다. 복음을 다 잃어버리고 살아가는데 저와 여러분을 남은 자로 부르셔서 이 복음을 회복하기를 원하시는 거예요. 그 다음에 남은자의 사명이 뭐냐? 특별히 하나님은 남은 자와 항상 함께 하시는 겁니다. 여러분에게 어떤 문제가 있어도 괜찮아요. 우리교회를 향해서 이렇다, 저렇다고 많은 사람들이 말들을 하잖아요. 또 우리 개인을 향해서도 이렇다, 저렇다 말들을 합니다만, 괜찮아요. 여러분을 누가 보호하시느냐? 하나님이 보호하셔요. 여러분을 두렵게 할 자가 없습니다. 여러분을 해할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셔요. 스바냐서 3장 12~13절을 봅시다. 중요한 말씀입니다. 같이 한 번 읽어 봅시다. “내가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을 네 가운데에 남겨 두리니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여 보호를 받을지라 이스라엘의 남은 자는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며 입에 거짓된 혀가 없으며 먹고 누울지라도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라” 할렐루야! 여기에 보면 내가 곧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을 네 가운데에 남겨 두리니.. 하나님이 남겨 두신 자죠. 이 사람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여 누가 보호하시냐? 하나님이 보호하신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13절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는 악을 해아지 아니하며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며 입에 거짓된 혀가 없으며 먹고 누울지라도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라. 그렇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여러분을 향해서 이렇다, 저렇다 말 한다 할지라도 여러분을 누가 보호하시느냐? 하나님의 남은 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보호하시게 되어 있어요. 아무도 여러분을 두렵게 할 자가 없고 여러분을 해할 자가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는 이 사실을 뭐로 누리느냐? 24시 기도 속에 들어가세요. 정시기도죠. 진짜 기도로 행복한 시간을 날마다 여러분이 가지세요. 25시 기도 속에 들어가고요 무시기도죠. 그리고 깊은기도 속에 들어가면 됩니다. 그러면 그 속에서 내 영적인 상태가 달라지게 되어 있어요. 그리고 그와 함께 응답의 문들이 열려지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남은 자에게 항상 함께 하시는 축복, 이 사실을 복음 언약 가진 자에게 기도하게 될 때 항상 함께 하시는 이 축복을 누리게 된다라는 사실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남은 자의 사명이 뭐냐? 여러분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이 한 시대에 증인으로 세우실 것입니다. 아무리 연약하고 부족할지라도 언약 붙잡은 남은 자, 하나님께서 그러한 자에게 언약 붙잡고 기도하게 될 때 응답을 주시고 그 응답으로 오는 응답이 바로 성령충만함의 응답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고 방법중의 방법이 성령충만인데 시대를 바꾸는 최고의 방법이 성령충만입니다. 그런데 그 성령충만이 어떻게 오느냐? 여러분이 부족하다, 연약하다, 상관없어요. 주어진 현장에서 언약 붙잡고 기도하게 될 때 그 성령충만함이 오게 되고
그 성령충만함을 누리게 될 때 권능을 받게 됩니다. 그 권능은 다섯가지 힘이죠. 영력 - 흑암의 세력 사탄의 세력을 꺾는 영력. 내 지혜에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지력. 내 건강함에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체력, 여러분 우리가 천억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그것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없다면 그 천억이 오히려 우리에게 저주가 됩니다. 물질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그 물질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을 하나님께서 위에서 주실 때 그게 바르게 물질이 쓰여지고 축복이 되게 되어 있어요. 그 경제력. 그와 더불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정말 복음가지고 언약가지고 그 사실을 누리게 될 때 우리의 모든 만남이 이상한 만남, 실패한 만남, 저주의 만남이 아니라 축복된 전도자의 만남, 전도할 사람들, 전도대상자들과의 만남, 이런 만남의 축복. 인력의 축복을 주시는 겁니다. 어디에서? 성령충만함에서 오는 힘이에요. 영력과 지력과 체력과 경제력과 인력. 하나님이 시대를 바꾸는 방법 – 성령충만입니다. 그 축복이 어디에서 오느냐? 복음을 회복하고 그 복음 붙잡고 기도로 말미암아 함께 하는 축복을 누리게 될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증거 주셔서 증인으로서 성령충만함으로 한 시대를 살리는 그런 축복된 응답을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위기 시대입니다. 교회가 힘이 없고 교회가 문을 닫고 교회가 90% 이상이 미자립교회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자칫 잘못 육신적인 눈으로 이런 교회를 바라보면서 우리도 모르게 희망이 없고 소망이 없어서 낙심할 수 있어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 한국을 사랑하셔서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위해서 지금도 하나님은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들을 하나님께서 일으켜 세워 나가고 계십니다. 육신적인 눈으로 한국교회를 바라보면 절망할 수밖에 없고 소망이 없지만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게 지금도 하나님은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해 나가시는데 그게 바로 현장에서 남은 자들을 하나님께서 세워 나가신다는 사실. 그 중에 바로 저와 여러분이 있는 것입니다. 지난 금요일 C국 단기선교사역에 대한 포럼을 들었잖아요. 그 보고 가운데 한 자매가 보고 이렇게 이야기 했어요. 중국 어느 지역에는 선교사님이 1년에 딱 한 번 들어간데요. 우리는 매주 목사 얼굴을 보잖아요. 또 원하면 심방을 요청해서 목사를 불러 예배드릴 수 있잖아요. 그런데 중국 어느 지역에는 1년에 세 번 선교사를 본다고 했어요. 그러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하느냐? 그 다음 주는 MP3로 메시지를 담아서 보내주면 그 메시지 가지고 기도하고 그것 가지고 일주일을 살고 승리해 나간다고 해요. 그 포럼을 듣는 가운데 중국 복음화를 위해서 남은 자들이 아닌가! 이런 마음이 들었어요. 우리가 북한을 놓고도 기도하잖아요. 우리가 정말 기도해야 됩니다. 복음으로 통일될 수 있도록. 그런데 북한 지하교회가 한국교회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다라는 것. 왜냐? 한국의 교회들이 너무 타락하고 복음이 없어져 가는 한국교회를 위해서 오히려 북한의 24만의 지하교회가 한국교회가 타락하지 않도록 눈물 흘려가면서 기도하고 있다라는 것. 그것을 들었을 때 그들이 바로 남은 자가 아닌가!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도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위해서 하나님이 친히 현장에 남은 자들을 하나님께서 일으켜 세워 나가시는데 그 중에 저와 여러분을 부르신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의 남은 자라는 이 정체성을 가지고 여러분 가장 중요한 하나님 원하시는 하나님의 대책으로 이 현장 속에 쓰임 받는 저와 여러분 전도자의 발걸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5년 8월 30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
(롬11:1-12)
서론: 우리가 현장에서 복음을 전하다 보면, 분명히 복음을 받아야 할 사람들인데 받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럴때마다 안타까움과 또 한편으로는 감사가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우리는 남은 자(진리의 소수에 대한 특별한 단어), 바로 하나님의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창45:7, 습2:7, 행8:4-8, 행15장, 롬9:27, 롬11:5)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든지 남은 자, 렘넌트(Renmant: 흩어진 자, 숨겨둔 자, 남겨둔 자)를 세워서 소수를 세워 전체를 바꾸어 가셨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최고의 관심은 남은 자, 렘넌트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는데, 바로 우리와 하나교회입니다.
1. 은혜로 남은 자
가.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멸망 받는 곳에서 은혜로 구원의 역사를 베풀고 계십니다
1) 창1:2(흑암,혼돈,공허)으로 창3장(개인), 6장(가정), 11장(국가)의 문제: 애굽 피라미드, 블레셋 다곤, 바벨론 느보, 로마 제우스
2) 그래서 주신 언약: 여인의 후손(창3장), 노아의 방주(홍수), 피제사(노예), 임마누엘(포로), 그리스도(속국)
3) 누구든지 독생자(요3:16)를 마음으로 믿어 입으로 시인(롬10:10)하고 주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 받음(롬10:13)
4) 성경 속의 은혜 받은 남은 자: 이삭, 노아, 여호수아와 갈렙, 다니엘과 세 친구
나. 지금도 남은 자의 역사는 계속됩니다 - 오늘, 우리에게까지 임함
1) 바울은 이스라엘과 자신이 버림을 받은 것이 아니라고 함(롬11:1) - 역사의 중심이 됨
2) 우리도 버린 바 되지 않고,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남은 자임(롬1:3~4 엘리야와 함께 한 남은 자 7천명)
3) 우리가 기도하고 전도해야 할 이유도, 나와 관계된 자들을 절대 버리지 않으시기 때문임(행13:48 고전15:58)
4) 남은 자로 부르심을 받았으니, 복음을 회복하고 위기 재앙을 막으며 시대를 살려라!!
2. 남은 자의 사명 - 제대로 누릴 부분
가. 오직, 예수가 그리스도이신 복음을 회복하라!! (요19:30, 골2:2-3, 행4:12)
나. 기도로, 하나님의 항상 함께하심과 보호하심을 누려라!! (습3:12-13)
다. 시대 바꾸는 최고의 방법, 성령충만으로 증인되는 능력(영력,지력,체력,경제력,인력)을 받아라!!
결론: 지금은 위기시대입니다. 교회가 힘을 잃고 문을 닫으며, 90% 이상이 미자립으로 가고 있습니다. 육신의 눈으로 보면 낙심할 수 있으나, 하나님께서는 한국을 사랑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을 위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입을 자들을 세워나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현장에서 남은 자를 세워가시는 그 중에 우리가 있는 것입니다. 한주간 “나는 하나님의 남은 자”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하나님의 대책으로 이 현장에 쓰임받는 전도자의 발걸음되고, 남는 자 남길 자를 세워나가시길 기도드립니다.
< 기 도 문 >
하나님 아버지, 복음이 희미해져가는 위기시대에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 렘넌트로 부르심에 감사드립니다. 은혜로 구원의 역사를 베푸시는 언약을 붙잡고, 지금도 계속되는 남은 자의 역사를 감당하길 원합니다. 한주간 남은 자, 렘넌트로서 오직 복음을 회복하고 기도로 함께하심을 누리며, 성령충만의 능력으로 증인이 되어 전도자의 발걸음 가운데 남는 자와 남길 자를 세우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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