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권세
2015-08-1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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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6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권세”
(롬10:11~15)

11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12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14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15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 롬10:11~15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예수 이름 권세 누립시다! 오늘 이 한날도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과 깊은 영적인 소통 누리시고 이번 한 주간 현장에서 예수 이름, 그 이름 찬양함으로 모든 흑암이 꺾이고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사실을 체험하는 축복된 한 주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금 우리가 주일 낮 예배 이 시간에 로마서를 계속해서 보고 있습니다. 지난 주간에 우리가 살펴보았던 것은 바울은 자기 동족이 열심은 있으나 올바른 지식이 없음에 대해서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바울 자신도 예전에 그러했습니다. 어느 정도로 바울이 종교적 열심히 있었느냐?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예수 믿는 사람들을, 또 예수 믿는 성도들을 잡아 죽이는 일에 앞설 만큼, 그만큼 종교적 열심이 있었던 사람이 바로 바울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이 올바른 지식, 그리스도 복음을 깨닫고 나니까, 그것이 오히려 복음을 방해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지난 주에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로마서 10장 3절에 보면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이고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 유대인, 자기 동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두 가지 의가 있습니다. 바로 자기의 의가 있고 하나님의 의가 있습니다. 두 종류의 의가 있는데 자기의 의가 있고 하나님의 의가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의 의를 내려놓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의를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자기의 의인 종교, 이 부분을 내려놓지 않고서는 결국 하나님의 의인, 올바른 지식인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 사실을 제대로 알고 나서 아, 내가 갖고 있는 율법, 하나님에 대한 열심, 이것이 바로 복음을 막는 방해였구나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순간 어느 정도로 답을 내렸느냐? 자기의 모든 것을 빌립보 3장 6절, 7절, 8절, 9절에 보면 배설물로 여긴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열심도 중요합니다만 우리 신앙 생활에서 우리의 내용이 무엇을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열심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의 내용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셨다, 그것이 우리의 내용입니다. 그 분이 하나님이시고 그 분이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 이 사실을 우리가 누리지 못한다면 우리의 현장, 우리의 현실, 우리의 많은 문제들 속에서 날마다 일어나는 어려움과 문제와 사건과 일들, 그 가운데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무너뜨리는 방법이 있는데 흑암이 무너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흑암이 무너지는 유일한 이름이 바로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그 그리스도의 비밀을 나의 것으로, 나의 그리스도로 깨닫고 누리게 될 때에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내게 임하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여기에 성령께서 역사하시고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가르치시고 이때 비로소 나를 넘어설 수 있고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릴 수 있는 것이며 이때 오는 것이 바로 예전에 맛보지 못한 참된 행복을 누리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되어져야 제대로 우리 신앙 생활이 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세상에 끌려가게 되어 있고 돈에, 사람에 끌려가게 되어 있는 것이 우리의 자리라는 것입니다. 예전에 맛보지 못한 다른 맛을 봐야 하는데 그게 바로 그리스도가 나의 그리스도가 될 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함으로 성령이 역사하고 그 속에 일어나는 참된 나를 뛰어넘고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그 맛을 봐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여러분, 죽어서 천국 간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이미 보장된 것입니다. 기독교는 죽어서 천국 가는 것뿐만 아니라 현실 문제, 모든 문제의 답이 바로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현실 속에서 가장 잘 알고 가장 잘 누리고 가장 잘 사용해야 할 것이 있다면 다른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의 권세인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 본문에 보면 로마서 10장 13절에 보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여러분, 오늘 11절부터 15절까지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한 절 한 절을 다시 한 번 보시면 그 한 구절 한 구절 속에 그리스도 그 이름이 모두가 함축되어 있는 본문이 오늘 본문입니다. 오늘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의 권세가 어떤 것인가, 그 부분을 오늘 본문에서 가장 잘 말씀하고 있는 것인데 오늘 이 한날 예배드리는 여러분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의 권세, 잃어버렸고 빼앗겨버린, 놓쳐버린 그 이름의 권세를 회복함으로 말미암아 현장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전도자로 쓰임 받는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믿는자 -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음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의 권세가 어떤 권세인가? 먼저 첫 번째입니다. 11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 그렇습니다.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는 것, 이게 바로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 안에 있는 권세인 것입니다. 이것은, 이 말씀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누구에게나 구원의 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강조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본문에 보면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하고 말씀했습니다. 이 본문을 어디서 인용한 것인가 하면 여러분, 성경의 구약 성경 중에서 복음서라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사야서입니다. 이사야서를 보면 가장 복음의 핵심적인 부분을 가장 많이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들인데 그 이사야서 28장 16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촛돌이라 그것을 믿는 이는 다급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 옛날 성경에는 급절하게 되지 않는다, 지금 성경에는 다급하게 되지 않는다, 오늘 로마서 10장 11절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이 로마서 9장 33절에도 똑같이 나오고 있는 말씀인데 그를 믿는 자, 성경에 이르되, 그 성경은 바로 이사야 28장에서 말씀하신 것이고 그 성경에 이르되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 그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시온에 기촛돌을 두셨는데, 한 돌을 두셨는데 그 돌이 기촛돌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시온에 둔 한 돌이 누구를 말하느냐,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나라의 기촛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사야 28장에 보면 거기에 예수 그리스도 한 돌, 바로 기촛돌, 바로 시험한 돌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귀하고 견고한 돌이라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시험에 성공함으로 인정받은 돌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귀하고 견고한 돌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는 세상에서 여러 가지 시험과 연단을 받으셨습니다만 바로 성공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그리스도를 붙잡은 자에게 결국은 실망시키지 않고 멸망 받지 않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 축복된 역사를 주시겠다는 사실이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고 있는 내용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 그 이름의 비밀을 모르게 될 때에 인간은, 인생은 비참하게 되어 있습니다. 부끄러움을 당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무엇으로 말미암아? 죄의 영향력 속에 있기 때문에, 그 죄의 영향력이 얼마나 비참하게 우리 인생을 만드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특히 원죄 문제, 그리고 우상 숭배함으로 말미암아 삼사 대가 망하는 그 죄의 문제, 그 모든 것들을 그리스도 그 이름을 붙잡고 영적인 싸움을 싸우면 죄로 말미암은 모든 저주는 끝이 나는데, 그런데 그 이름의 비밀을 모르고 그 이름의 비밀을 사용하지 못하면 결국은 죄의 영향력 속에 있으면서 마귀에게 끌리는 바 되어 자기도 괴롭고 다른 사람도 어렵게 만드는 비참함 속에 빠지는 것이 바로 죄의 영향력입니다. 그 어느 누구도 이 죄의 영향력 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인생이 이 땅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죄로 말미암아 결국 인생에 비참함이, 부끄러움이 오게 되었지 않습니까? 성경에 보면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기 이전에는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움을 몰랐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범죄한 이후에, 죄를 범함으로 말미암아, 죄가 인간 세상에 들어옴으로 말미암아 인간들이 결국은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었는데 그 죄의 문제, 그 죄의 문제의 배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악한 사단이 있는 것이고 그래서 결국 죄로 말미암아 사단의 말을 듣고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잃어버림으로 말미암아 인생 자체가 이 땅에서 열심히 살아갑니다만 비참하고 부끄러운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인생인 것입니다.
여러분, 어느 누가, 세상의 그 어떤 아름으로, 세상의 명예나 세상의 권력이나 세상의 제물이나 그 어떤 것으로도 죄, 죄로 인한 저주와 재앙, 그 배후에 있는 사단의 역사, 그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잃어버린 그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인생은 나무도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원죄가 어떤 것입니까? 바로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떠난 사건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모든 인간 속에 바로 죄와 타락의 본성이 심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3장 10절에 보면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하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 죄로 말미암아, 원죄로 말미암아 이 땅에 계속해서 저주와 재앙이 만들어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죄를 짓게 만든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존재인 사단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죄를 짓게 만들고 죄 가운데 있게 하고 계속적인 실패 가운데 범죄하게 만듭니다. 여러분, 계속적인 실패 가운데 범죄하고 죄 가운데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은 그 배후에 다른 힘이 있습니다. 그 힘이 바로 사단이라는 존재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결국은 인생이 모든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도록 창조되었는데 하나님을 잃어버림으로 말미암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무엇을 하며 살아가는지 알지 못하고 행복을 위해서, 성공을 위해서 달려갑니다만 열심히 살아가는데 마지막 결론은 허무함이 찾아오고 결국은 우울함이 찾아오고 정신적인 문제가 오고 자살하게 되는 인간의 비참함, 부끄러움을 당하는 이러한 것이 바로 인간 세상 속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여기서 빠져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바로 이사야서 53장 3절~6절에서 말씀하고 있는데 특히 4절에 보면 “우리의 질고를”, 우리의 슬픔을 담당하신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 인생에 사단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사단의 권세에서 우리를 건져내신 것이고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형상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회복하게 하시고 그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는 축복하셨다는 것, 여러분,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모든 인생은 지금 부끄러움을 당하고 있고, 설령 깨닫지 못한다 할지라도, 지금은 깨닫지 못한다 할지라도 마지막날에 장차 반드시 부끄러움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지 않는 자들이 당할 부끄러움에 대한 부분을 이야기할 때 고린도후서 5장 10절에 보면 “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각각...” 서게 된다 했습니다. 한 사람도 예외 없습니다.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각각 서게 되는데 마지막날 믿지 않는 자들은 어떤 부끄러움을 당하느냐, 계시록 6장 15절~17절에 보면 “굴과 산들의 바위 틈에 숨어 산들과 바위에게 말하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 너무나 부끄러움이 드러나니까 그 보좌에 앉으신 어린 양의 그 자리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그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무슨 말입니까? 믿지 않는 자는 이 땅에서 지금 부끄러움을 당하고 있고요, 지금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모르고 있을 뿐이지 장차 앞으로 반드시 부끄러움을 당하게 되어 있다라는 사실입니다. 그와 반대로 믿는 자는 어떻습니까? 믿는 자는 하나님이 지금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죄 없다 의롭다 함을 받은 자가 되었습니다. 로마서8:33절에 보면 아무로 우리를 고발할 자가 없다 했습니다. 마지막 날에 주님 앞에 서게 될 때에 고발할 자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33~34절 이어서 말씀하고 있는 것인데 의롭다 하신이는 하나님이니 누가 우리를 정죄하리요 했습니다. 아무도 우리를 정죄할 자가 없다 했습니다. 지금 설령 우리가 불신자들 앞에 조롱을 받고 부끄러움을 당한다 할지라도 반드시 믿는자는 반드시 마지막 날에는 하나님이 승리토록 되어 있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데 고린도후서6:8~10절입니다. 거기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광과 욕됨으로 말미암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말미암으며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사람들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며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며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며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할렐루야! 반드시 앞으로 장차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마지막 날 심판대 앞에 서게 될 때에도 하나님의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구원의 역사를 막는 그 어떤 것도 우리에겐 없습니다. 예수그리스도 그 이름 가지고 있는 저와 여러분에게는 구원의 역사를 막는 그 어떤 것도 없다라는 사실. 율법이 정죄하는 그 자리 속에서도, 마귀가 공격하는 그 자리 속에서도, 죽음의 권세가 지옥의 권세가 우리를 공격하는 그 자리 속에서도 그리스도 그 이름을 가지고 있는 자들은 안전하다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뿐만 아니라 영원까지 안전함으로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시고 지키시고 인도해 나가신다는 사실이예요. 여러분 그렇습니다. 누구든지 주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세상의 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지 모릅니다. 우리 인생자체도 쉬운 게 아닙니다. 세상살이도 쉬운 게 아니고요, 우리 인생조차도 쉬운 게 아닙니다. 어렵고 힘들고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날마다 일어나고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세상가운데 일어나고, 우리 인생 속에 일어나요. 어떤 때는 가만히 보면 진짜 개 팔자가 상팔자다 그런 생각들을 하게 됩니다. 우리 집에도 개가 있는데요. 먹을 것만 주면 얼마나 꼬리를 흔드는지 몰라요. 그런데 사람은 먹는 것만으로 만족합니까? 아니잖아요. 정말로 영적인 자그마한 문제들 때문에 개인이, 온 집안이 어려움 당하는 부분을 보면 어떤 면에서 개 팔자가 더 좋은 게 아닌가 이런 생각들 하게 되어요. 그만큼 인생 속에서 예측할 수 없는, 상상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예측할 수 없는, 상상할 수 없는 일들, 세상에 일어나는, 우리 인생에 일어나는 일들을 무엇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까? 우리 인생을 우리 인생이 스스로가 보장할 수 있나요? 책임질 수 있나요? 그럴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특별히 우리가 갖고 있는 인품들, 우리가 갖고 있는 자질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실력들, 우리가 갖고 있는 나름대로의 미래에 대한 비젼들, 아무리 미래에 대한 비젼을 갖고 있다 할지라도 어느 날 우리 인생에 닥치는 상상할 수 없는, 예측할 수 없는 인생의 문제들, 어느 날 세상 속에 일어나는 재앙의 문제들 그 누가 해결할 수 있습니까? 그로 말미암아 결국 모든 인생이 부끄러움을 당하는데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누구든지 주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을 부르는 자는 반드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 했습니다. 그게 바로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 안에 있는 권세인 것입니다. 요한복음6:37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할렐루야!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승리자가 되셨기 때문에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 해결한 승리자가 되셨기 때문에 그 그리스도를 나의 답으로 내 인생의 답으로 모신 자는 분명히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 했습니다. 내게로 온 자는 다 결코 내 쫓지 아니한다 말씀 했습니다. 이 그리스도 그 이름 안에 있는 권세를 누리심으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부르는 모든 사람 - 부요하심
두 번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의 권세 안에 있는 축복이 어떤 것인가? 롬19:12절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은요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했어요. 이 말은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의 역사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차별 없이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고요, 여기에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다는 이 말씀 속에는 이 부요함은 구원의 역사와, 생명의 역사와 관계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다음에 나오는 13절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우리에게 주신 부요함중에 최고의 부요함이 무엇이냐 구원의 축복이예요. 생명의 축복이예요. 그런데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오늘 누구든지 주를 부르는 자에게는 부요하심이로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원래 우리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은 이 지구상에 피조된 피조물 가운데 최고의 축복으로 창조된 것이 바로 우리 인간이었습니다. 창1:26절에 보면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인간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있음을 말씀하고 있지요. 우리가 우리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땅에 기는 모든 것과 공중의 새와 바다의 모든 것들을 다스리게 하자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창조하기 전에 우리 인간을 위해서 우리 인간이 해야 될 일들을 계획하셨어요. 창1:27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1:28절에 보시면 복을 주시며 가라사대 생육하고 번성하라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 ..그러면서 그 하나님의 형상따라 창조된 인간을 어디에 두셨습니까? 아무 부족하고 모자람이 없는 에덴동산에 두셨어요. 그냥 하나님이 인생을 창조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대신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피조세계를 다스리는 그 자리에 우리 인간을 위임하셨어요. 최고의 축복된 것들을 우리에게 주셨다라는 거에요. 모든 이 땅의 하나님이 만든 피조물을 우리가 다스리고 누릴 수 있도록 우리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위임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에게 어떤 문제가 생겼습니까?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그 사건이 바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지요. 그로 말미암아 결국은 우리 인간에게 죄가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들어왔는데 하나님 떠난 그 사건 때문에 결국은 영적인 죽음이 왔고, 창세기2:17절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따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그 말씀대로 결국은 영적인 죽음이 왔고, 영적인 죽음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육신적인 죽음이 왔고 그와 더불어 땅까지도 저주를 받게 된 것입니다. 그게 바로 창세기3:16절부터 19절까지 나오는 내용이지요. 바로 땅 까지도 저주받았는데 가시와 엉겅퀴를 내고 아무리 수고하고 땀을 흘려도 만족함을 누리지 못하는 그런 가운데 빠지게 된 것이 바로 범죄한 사건이었어요. 하나님 떠나는 사건이었어요. 그래서 무엇을 하든지 간에 만족함을 모르고 행복을 모르는 존재가 된 것이 인생이예요. 원래는 그렇지 않았는데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죄가 들어옴으로 말미암아 그 배후의 사탄의 역사로 말미암아 가져도 만족함을 얻지 못하고, 여러분 그렇잖아요. 세상에 많은 물질을 가져도 그 물질 때문에 만족하는 사람 봤습니까? 많은 지식들 때문에 만족하는 사람 봤습니까? 오히려 물질 가진 자는 더 욕심을 내고요, 많은 지식 가진 자는 더 욕심을 내고요. 더 가지면 가질수록 만족함이 없는 것을 고백해요. 마치 무엇을 하든지간에 모자랄 수밖에 없는 인생인 것을 보여주고 있어요. 요한복음 2장에 보면 가나혼인 잔치에 손님을 초청해 놓았는데 잔치 집에서 가장 귀중한 것이 포도주입니다. 그런데 잔치가 한창 진행 중에 포도주가 떨어졌어요. 그런데 그 말씀이 우리에게 말씀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아무리 최선을 다해서 준비한다 할지라도 결국은 모자랄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인생인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우리 인생에겐 참된 만족이 있을 수 없어요. 그래서 파스칼이 그런 이야기를 했잖아요. 우리 인간에게는 가슴 속에 뭔가 뻥 뚫린 구멍이 있는데 그것은 다른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고, 오직 하나님만이 채울 수있다라는것. 그렇습니다. 하나님 만나기 전에는 그 어떤 것도 만족할 수 없는 것입니다. 늘 항상 모자랄 수 밖에 없어요. 그게 왜 그럴까요?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그런 거예요. 이런 인생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셨는데 바로 예수그리스도께서 가난케 되심으로 말미암아 가난한 저와 여러분이 부요케 되셨다 말씀하셨어요. 고린도후서 8:9절에 보면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우리에게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어떤 은혜인가를 말씀하고 있는데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누가요? 예수그리스도께서 부요하신 이로서 우리를 위해서 가난케 하셨다 말씀하셨어요. 하늘과 땅의 주인이 누구시냐?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가난케 되셨다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다음에 나오는 말씀이 무엇이냐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할렐루야! 여기에 그의 가난함이 무엇입니까? 하늘과 땅의 모든 주인 되시는 그분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가난함. 단순히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 거기에 끝난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죄와 저주와 재앙의 문제 하나님 떠난 문제 사단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친히 고난당하신 것, 십자가 지신 것, 우리를 위해서 가난케 되신 것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저와 여러분은 부요한 자가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난케 되심으로 말미암아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렇습니다. 모든 문제 해결자 되시는 이 예수 그리스도 부르는 자는 결국은 부요해 지게 된다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말씀했어요.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 부르는 곳마다 역사 속에 한번 보세요. 영국에 이 예수그리스도 이름이 들어갔어요. 미국에 이 예수그리스도 이름이 들어갔어요. 한국에 이 예수그리스도 이름이 불려지기 시작했어요. 하나님께서 축복하셨잖아요.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개인도, 가정도, 이 예수 그리스도 이름이 들어가는 곳 마다 개인이 살아나고 가정이, 가문이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났어요. 그리스도 그 이름 부른 자에게 하나님께서 부요함을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 안에도 보면 거의 1/3분 정도가 남자 분들이예요. 여자들이 2/3정도 됩니다. 그런데 한 가정에 남편이 신앙생활 하는 것을 보면 남편이 신앙생활해서 여자를 교회에 데리고 오는 경우는 극히 많지는 않아요. 여자 분들이 신앙생활을 시작해서 남편까지도 신앙생활 잘하고 있는 부분들을 보게 되어요. 그런데 결국은 여자들이 신앙생활해서 남편을 교회 안에 데리고 온 사람들이 60~70%입니다. 그런데 남편들이 신앙생활 시작하면서 여자들을 따라가려고 하니까 가만히 보니까 이래도 그리스도 저래도 그리스도 남편들이 보면 현실성이 없는 여자처럼 보이잖아요. 문제 생기면 그 문제에 대한 해결할 생각은 안하고 그리스도 하고 앉았으니까 답답한 것처럼 보이지요. 남자들 잘 아셔야 합니다. 이래도 저래도 그리스도 하는 그 아내들 때문에 여러분의 가정이 지금 이나마도 하나님의 축복 속에 있다라는 것. 이것을 아셔야 합니다. 여러분 가만 보면, 진짜 가정에 축복 받을 것이 없는데 이상하게 하나님이 축복을 주시는 것을 봅니다. 가만히 보면 그 가정에 기도하는 한 사람의 여자가 있어요. 세상이 보기에는 좀 무식해보이고 안 그런 것처럼 보이는데 뭐든지 그리스도, 그리스도 그 사실 놓고 기도하는 그 한 사람 때문에 하나님이 그 가정과 산업을 축복하시는 것을 봅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부요케 하신다고 했어요. 한 집안에 어린아이 하나가 예수 믿고 교회에 왔는데 그 아이를 통해서 부모님들이, 그 가정과 가문이 복음 앞에 돌아오는 역사,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부요하심이로다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의 가정과 가문이 축복을 받은 이유가 거기에 있잖아요. 우리의 선조들, 어른들이 어렵고 너무나 힘든 가운데서, 그때는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 할 데도 없기 때문에 그래서 그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고 교회에 나오고 보니까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알고 그래서 예수를 믿게 되었는데 어렵고 힘들 때마다 교회에 가서 무릎 꿇고 기도하고 밤이 새도록 기도한 우리들의 부모님들.. 비록 세상적으로는 무식하고 멸시받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리스도 그 이름 가지고 기도하고 교회 앞에 엎드려서 기도하고 그 기도 때문에 오늘 저와 여러분이 이 자리에 서 있다는 사실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부요함을 얻으리라 말씀했습니다.
저는 저 자신을 생각해봐도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이유가 하나도 없어요. 가정을 보고 가문을 봐도 축복 받을 이유가 하나도 없어요. 오히려 영적인 문제들 가운데서 멸망 받을 수밖에 없었던 제 자신을 압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 그 이름 붙잡게 하시고 그 이름 때문에 부요함을 주셨어요.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부요함을 주시리로다 했어요. 여러분 이 부요함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구원과 생명에 대한 가치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장 12~13절에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여러분 그렇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다시 말해서 예수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끝입니다. 그 배후에 성령께서 역사하는 것이고 거기에 하늘 군대가 동원되는 것이고 성경 66권의 모든 약속이 내게 계약서로 주어진 것입니다. 왜냐? 나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그래서 이 땅의 최고 축복은 내가 하나님의 자녀된 것입니다. 영접 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고린도전서 2장 12절을 오늘 묵상기도 때 제가 읽었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함이라 했어요. 여러분 요한일서 5장 13절에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그렇습니다. 그리스도 그 이름 속에 주어지는 참된 부요함, 그 이름 부름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지는 부요함입니다. 그래서 골로새서 1장 26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 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이 비밀이 뭐냐? 그리스도라 했습니다. 이 비밀이 우리 안에 있는 영광의 소망이라고 했습니다. ‘영광의 소망’ 이라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 잡고 있는 모든 것들은 그대로 성취된다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그 안에 골로새서 2장 3절에 보면 “모든 지혜와 지식과 보화가 감추어졌다” 고 했습니다.
여러분 그리스도 그 이름 부르십니까? 그 이름 부르는 자에게 분명히 하나님은 부요하심의 축복을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 고린도전서 3장 21절에 바울이 이 사실을 알고 고백했어요. “만물이 다 너희의 것이로다”
여러분 어렵고 힘든 일이 있습니까? 그리스도 이름을 부르세요. 영적인 축복과 함께 육신적인 축복도 주시게 되어 있어요. 시편 81편 11절에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할렐루야!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가 그리스도 이름을 부르는 자에게 부요함을 주시는 축복을 안다면 우리의 입을 넓게 벌려야 합니다. 우리의 한 가정이 한 선교사를 파송할 만큼 그런 축복을 받아야 될 것 아닙니까! 분명히 하나님은 영적인 축복과 함께 육신적인 축복도 주시게 되어 있다라는 겁니다.
신명기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모세가 마지막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설교한 내용입니다. 그런데 신명기서 1장 10절에 보면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야기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백성들을 번성케 하셨다. 어느 정도 번성케 하셨느냐?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케 하셨다. 그러면서 11절에 중요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여호와 하나님께서 현재보다도 천배나 많게 하실 것이다. 여러분 정말로 천배의 축복을 받아 누리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그리스도 그 이름 부르는 자에게 부요함을 주신다했어요. 그 약속 붙잡고 그리스도 그 이름의 권세를 사용하세요. 그 이름을 부르세요. 분명히 하나님은 육신적으로 영적으로 축복하시게 되어 있다라는 겁니다. 빌립보서 4장 1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죠. 바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의 영광 가운데 그의 풍성한대로” 누구의 풍성한대로? 우리에게 있다 없다가 아닙니다. 그의 풍성한대로. 그 다음에 “우리의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그냥이 아니라 나의 모든 쓸 것을 채운다고 말씀했습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가운데 그의 풍성한대로 여러분 우리는 없어도 괜찮아요. 우리는 부족해도 괜찮아요. 거기에 매이지 말고 묶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그의 풍성하신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말씀했습니다. 예수그리스도 그 이름 부름으로 말미암아 부요케 되어지는 이 축복의 역사들을 누리는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주님이 마태복음 28장 20절에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항상 함께 있겠다고 했습니다. 그 주님이 어떤 주님입니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주님입니다. 그리스도 그 이름을 부르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부요하심으로 축복하신다고 말씀했습니다.

3. 예수그리스도 이름 - 권세
마지막 세 번째입니다. 그리스도 그 이름 자체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응답하시고 축복하십니다. 예수그리스도 그 이름 자체로. 내가 기도했기 때문에, 내가 열심히 했기 때문에 그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그 이름 자체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 주시게 되어 있어요. 우리도 알지 못하게 하나님을 떠나서 결국 죄 가운데 빠져서 저주와 재앙 가운데 지옥으로 끌려가고 있잖아요. 그게 지난날의 우리의 모습들이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거기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한 이름을 주셨어요. 그 이름이 ‘예수’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4장 12절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서 저주와 재앙 가운데서 지옥에 끌려갈 수밖에 없는 우리의 과거, 그 속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한 이름을 주셨는데 바로 ‘예수’라는 이름을 주셨다는 사실. 그래서 그 이름, 바로 요한복음 14장 6절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 고 했어요.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갈 자가 없어요 아무도. 그 이름이에요. 그래서 그 이름은 어떤 이름이냐?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신 대속의 이름입니다. 그래서 마가복음 10장 45절에 보면 “자기 백성들을 위해서 대속물로 주기 위함이라” 했어요. 바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하신 대속의 이름이 그리스도 그 이름이에요. 그리고 그 이름 알면 마귀에게 속해서 마귀가 우리를 속이고 마귀가 공격해 와서 실패 시키는 그 사실을 알고 우리가 예수그리스도 그 이름을 안다면 바로 그 이름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시는데 요한복음 14장 14절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했어요. 요한복음 16장 24절에도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여러분 기도 많이 해야 되죠. 열심히 철야기도하고 산기도 하고 열심히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게 아닙니다. 우리의 기도가 얼마만큼 양이 채워져야 합니까? 얼마만큼 그릇 들이 채워져야 합니까? 그래서 응답 받는 것 보다도 진짜 그리스도 그 이름의 비밀을 알면, 그 이름 자체만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응답하시는데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현장의 삶 속에서 응답하시는 더 큰 역사들을 보게 되는 것이 그리스도 그 이름 때문에 오는 응답이에요. 여러분 우리가 산기도하고 금식기도 하고 그리스도 그 이름 자체를 안 믿으니까 그렇게 기도하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세상 사람들과 종교인들이 말하는 기도를 열심히 함으로 양을 채워야지, 기도의 그릇을 채워야지.. 좋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받는 응답보다도 그 이름의 비밀을 사실적으로 진짜 알면 그냥 내가 살아가는 삶 속에서 주시는 더 큰 응답의 역사, 그 하나님의 역사들을 체험하는 그 이름의 비밀이 그리스도 그 이름 안에 있는 권세에요. 그래서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들을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주시는 응답들을 누려야 다른 사람도 살리게 되어 있어요. 마태복음 16장 16절에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그때 예수님께서 바요나 시몬에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네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하면서 어떻게 축복하셨습니까? 네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그러면서 중요한 말씀을 했습니다. 네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네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여러분 그리스도 그 이름 사용함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이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는 응답, 여러분이 그리스도 그 이름을 사용함으로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는 그 엄청난 이름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사실. 그 이름 사용함으로 말미암아 그 이름 자체로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시는 이 응답 받아 누림으로 여러분 때문에 세상이 사는 그런 축복된 응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바울은 율법에 정통한 사람입니다. 또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박사 중 박사입니다. 그냥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아니라 현장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확인한 사람입니다. 그 바울이 율법으로 정통하고 신학자 중에 신학자요 현장에서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확인한 이 바울이 그의 사역 마무리에서 쓴 편지가 로마서입니다. 이 로마서를 누구에게? 로마에 사는 유대인들에게 편지를 보냈어요. 이 로마서 안에 오늘 읽은 본문에 보면 그리스도 그 이름의 비밀, 엑기스가 다 들어 있어요. 그리스도 그 이름 때문에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 그리스도 그 이름 부르는 자는 부요함을 얻게 된다. 그리스도 그 이름 부르는 자는 영생의 축복, 구원의 축복을 얻게 된다. 이 비밀들을 이야기 하면서 이 그리스도 그 이름이 너무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 보면 이 그리스도를 전하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했어요. 그래서 오늘 내용을 넘어갑니다만, 사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어떻게 부르느냐? 믿어야 부를 것 아닙니까? 믿기 위해서는 들어야 될 것 아닙니까? 듣기 위해서는 누군가 전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될 것 아닙니까? 그게 14절 15절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그리스도 이름의 비밀을 위해서 보내심을 받은 그 사람이 복이 있다고 말씀했습니다. 바울은 이 비밀을 어떻게 알았느냐? 바울이 자기 인생을 놓고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깨달은 결론입니다. 이 결론을 로마에 사는 유대인들에게, 그들은 로마에 이민 가서 성공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나라의 훌륭한 교수님들이나 나름대로 직장에 있는 분들이 초기에 미국에 이민 가서 할게 없으니까 세탁소를 하고 남의 집 청소를 하고 이래서 다 성공한 사람들이 지금 미국에 이민 간 분들 아닙니까! 그런 것처럼 그 당시에 로마 안의 유대인들은 성공한 자리에 있었고 그 후손들이 성공한 자리에 있었어요. 그들에게 바울이 오늘 본문에 그리스도 엑기스에 대한 부분들을 편지를 통해 보냈어요. 바울은 이 비밀들을 어려움의 과정을 겪으면서 깨닫고 이 비밀들을 이야기 했지만, 저와 여러분은 어려움을 겪지 않아도 됩니다. 바울이 기록한 이 사실 그대로 받고 믿음으로 ‘아멘’하면 됩니다. 이번 한 주간 그리스도 그 이름의 권세,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부요함의 축복으로 역사하시며 구원을 주시고 영생의 축복을 주시는 그 이름의 비밀을 누림으로 현장에서 승리하시고 그 이름의 권세를 사용하심으로 만방 가운데 그리스도 그 이름의 역사를 나타내는 그런 축복의 증인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5년 8월 16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권세
(롬10:11-15)


서론: 자기의 의(종교)를 내려놓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의(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드릴 수 없습니다. 이 사실을 안 바울은 자기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빌3:6-9) 이처럼 신앙생활은 내용이 무엇인지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셨다, 그분이 하나님이시고 지금 나와 함께하고 계신다’는 내용을 가지고 있습니다. 흑암이 무너지는 유일한 이름, 그 이름의 비밀을 나의 그리스도로 깨닫고 누리게 될 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됩니다. 여기에 성령께서 역사(인도, 가르치심)하심으로 자신을 넘어서고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릴 수 있습니다. 이때 참된 행복을 누리게 되어있고 제대로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됩니다.

1. 믿는 자 -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음
가. 그리스도(시온의 한 돌)는 하나님의 나라의 기촛돌이 되셨습니다. (사28:16, 롬9:33)
1) 불신자들은 죄(롬3:10)의 영향력에 있기 때문에 비참하고 부끄러움을 당할 수 밖에 없음(고전5:10, 계6:15)
2) 믿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말미암아(사53:4) 의롭다함을 받고(롬8:33) 승리함(고후6:8-10)
나. 믿는 자는 율법이 정죄하고 마귀와 지옥과 죽음의 권세가 공격해도 안전합니다. (요6:37)

2. 부르는 모든 사람 - 부요하심
가. 원래 인간은 모든 부요함을 누리는 자로 창조되었습니다. (창1:27-28)
1) 하나님을 떠남으로 영적으로 육신적으로 죽음이 임하고 환경에도 저주도 찾아옴 (창3:17-19)
2) 그 결과로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만족과 행복을 얻지 못하는 존재가 됨 (요2장 모자랄 수밖에 없는 인생)
나. 그리스도께서 가난하게 되심으로(성육신하셔서 십자가 지심) 우리는 부요하게 되었습니다.
1)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최고 부요함(요1:12-13) 가운데, 주신 은혜(고전2:12)와 영생(요일5:13)을 알게 됨
2) 그리스도의 영광의 소망(골1:16-17)가운데, 지식과 지혜의 보화(골2:3)와 만물(고전3:21)을 주심
3) 천 배의 축복 가운데(신1:11) 번성케 하시며(신1:10), 모든 쓸 것을 채우심(빌4:19, 시편81:10)

3. 예수 그리스도 이름 - 권세
가.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 자체로 우리에게 복을 주십니다.
1) 그 이름만으로 아버지께로 갈 수 있고(요14:6) 모든 죄를 대속할 수 있음(막10:45)
2) 그 이름만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시행하시고(요14:14) 기쁨이 충만하게 됨(요16:24)
나. 그 이름의 권세(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는)를 사용하라!! (마16:19)


결론: 바울은 율법에 정통하고 신학적으로도 박사 중의 박사이며, 현장을 통해 그리스도를 확인한 사람입니다.
그는 그리스도 이름의 비밀에 대하여 깨달았기에 그리스도를 전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깨달은 결론이지만, 우리는 어려움을 겪지 않고 그대로 받고 믿음으로 나아가면 됩니다. 한주간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부요함과 구원의 영생을 주시는 이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누리고 권세를 사용함으로 만방에 그 이름을 나타내시길 기도드립니다.

< 기 도 문 >
하나님 아버지, 흑암이 무너지는 유일한 이름, 그 이름의 비밀을 깨닫고 누리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저주와 재앙의 시대에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하시고, 주의 이름을 부름으로 영적으로 육신적으로 부요함 가운데 참된 행복과 만족을 누리길 원합니다. 한주간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 자체만으로 허락하신 최고의 권세를 사용함으로 전 세계와 시대를 살리는 제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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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본문 설교일
1484 전환점을 이룬 안디옥 선교 행11:19-30 2025-04-27
1483 우리에게 주시는 영원한 메시지 고전15:1-11 2025-04-20
1482 새로운 싸움을 위하여 삿7:9-18 2025-04-13
1481 날마다 영적싸움에 승리하라 삿7:1-8 2025-04-06
1480 이 시대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해답 삿4:1-10 2025-03-30
1479 하나님이 쓰시는 기준 삿3:12-23 2025-03-23
1478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삿3:7-11 2025-03-16
1477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삿2:6-10 2025-03-09
1476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삿1:1-7 2025-03-02
1475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단12:1-4 2025-02-23
1474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단11:28-39 2025-02-16
1473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단10:10-21 2025-02-09
1472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단9:20-24 2025-02-02
1471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단8:15-27 2025-01-26
1470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단7:9-14 2025-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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