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이사께 상소하노라
2014-11-02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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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내가 가이사께 상소하노라”
(행25:1-12)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성곽 없는 성읍의 축복을 누리십시오! 당신은 언약의 백성입니다! 할렐루야! 예, 감사합니다. 지난 주간에 우리 교회에서는 목요일에 이용팀, 미용팀이 청도 지역에서 이․미용 캠프를 진행하였고, 어제는 성서공단에서 다민족 중심으로 해서 `1월 말로 계획되어 있는 방글라데시 캠프를 앞두고 우리 팀들이 같이 캠프로 인도를 받게 되었습니다. 또 지난 주간에 각 지역 속에서 다락방으로, 미션홈으로, 지교회로 말씀의 성취와 기도응답과 구원을 쉬지 않고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사들을 체험하고 오늘 이 자리에 증인들이 모였습니다. 오늘 이 한 날도 또 한 주간을 위해 주실 하나님의 말씀을 언약으로 붙잡는 최고의 축복의 시간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제목을 “내가 가이사께 상소하노라.” “내가 가이사께 상소하노라” 이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25장에서는 벨릭스 총독이 2년 임기를 마친 후, 그 후임으로 베스도 총독이 가이사랴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3일 후에, 가이사랴에 오게 된 베스도 총독이 예루살렘에 올라갔습니다. 그러니까 그곳에 있는 유대인들, 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바울에 대해서 또 다시 고발을 한 겁니다. 그러니 베스도가 거기의 유대인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며칠 있으면 다시 가이사랴로 내려갈 것이니까 너희 가운데 유력한 자들을 세워서 나와 함께 가이사랴에 내려가서 바울을 고발하라, 그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그 말 대로 결국은 유대인들이 베스도와 함께 가이사랴에 내려오게 되고 가이사랴에서 바울을 법정에 세우게 됩니다. 그리고 거기서 유대인들이 고발을 하되, 거기에 보면 증거를 대지 못했다, 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바울이 변명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 때 베스도가 바울에게 제안을 했습니다. 네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심문을 받지 아니하려느냐. 바로 이 베스도는 유대인들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에게 제안을 한 겁니다. 네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심문을 받지 아니하겠느냐. 사실 유대인들의 요청하는 바입니다. 바로 예루살렘에 옮겨가는 과정에서 바울을 죽이기 위해서 이미 계획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유대인들의 요청하는 그 마음을 읽고 아마 베스도 총독이 바울에게 제안을 한 겁니다. 그 때 바울이 나는 아니다, 나는 가이사께 상소하노라, 그렇게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그래서 베스도가 그 자리에서 그러면 네가 가이사에게 상소했으니까 가이사에게 갈 것이니라, 그렇게 끝냈습니다. 그런데 며칠 있다가 아그립바 왕이 그의 아내 브니게와 함께, 아마 베스도가 총독으로 왔으니 축하하기 위해 방문을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가이사랴에 방문해서 베스도로 말미암아 죄수인 바울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내가 전임자 벨릭스로 말미암아 한 사람의 구류자를 지금 보호하고 있는데 유대인들이 이 사람을 고발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고발한 내용을 보니까 예수님이 죽었다 다시 살아났다는 그 내용이지 이 사람이 살인사건을 저지르거나 강도 사건을 저지르거나 데모를 한, 반란을 일으킨 사람이 아니다, 도저히 내가 이 사람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겠다, 저들 가운데 있는 종교적인 문제로 저들이 이야기를 하는 것인데 죄를 찾지 못하겠다, 그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자 이 아그립바 왕이 베스도 총독에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면 그 바울을 내가 좀 볼 수 있겠느냐. 아마 베스도 총독이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아그립바 왕의 마음에, 나중에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만, 도대체 예수가 누구인가에 대한 궁금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러면 이튿날, 이 자리에 바울을 세우겠다, 그렇게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이튿날, 로마의 천부장과 그 때 시의원, 23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천부장들과 시중의 높은 사람들과,” 지금식으로 말하면 시의원입니다, 시중의 높은 사람들과 함께 아그립바, 베니게, 또 베스도가 함께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결국은 유대인들을 로마에 보내기 위해서는 로마 황제에게 고소장을 써야 하니까 그 고소장을 쓰기 위해서 바울을 다시 아그립바 왕과 베니게, 또 유대인들 보는 앞에서 세우게 된 것입니다. 재판관은 총독인 베스도입니다.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고소자는 누구냐? 유대 장로들과 유대 지도자들입니다. 그리고 재판의 동기는 무엇이냐? 딱 한 가지, 다른 이유가 아니라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났다는 것,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고 죽은 자인데 다시 살아났다는 것, 그것이 바로 재판의 동기였습니다. 이 본문을 보면서 그렇게 막으려고 하는 유대인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결국은 하나님께서 가이사에게 가게 하시는, 바울의 걸음. 여러분, 아무리 복음을 막으려고 해도 복음의 역사는 막을 수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우리 찬양대 찬양드린 것처럼, 여러분, 이 생명의 복음을 막을 자가 없습니다. 이 복음의 역사를 막기 위해서 악한 사단이 배후에 성경 시대나 교회 역사를 보면 그렇게 끈질기게 공격해왔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이 복음의 역사가 막힌 적이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이미 우리가 잘 알다시피 모세가 태어날 때에 바로왕이 다 죽이라고, 남자아이는 다 죽이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태어날 때도 헤롯왕이 두 살 이하의 아이는 다 죽이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또 복음 가진 다윗을 삼천 명의 결사대를 조직해서 끝까지 따라가 죽이려고 했던 사울, 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게 만든 가룟 유다, 전부 그 배후에는 악한 사단이 복음의 역사를 막고자 하는 공격이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단 한 번도 그 복음의 역사, 복음 가진 자를 막을 수 없었다는 것, 어떤 문제와 사건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이 오히려 복음 전하는 데 있어서 문이 되었지, 그 복음의 역사가 막히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복음 가진 자가 맞다면 우리에게 있는 그 어떤 문제도 전부 다 하나님의 복음의 역사를 증거하는 문이 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담대함으로 두려움 가지지 마시고 담대함으로 하나님 앞에, 말씀 앞에 서서 인도받아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통해서 두 가지만 말씀을 정리를 하고자 합니다.
먼저, 첫 번째로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부분들인데, 세상 성공자의 내면입니다. 세상의 성공자의 내면을 오늘 본문을 통해서 읽어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땅의 모든 인간은 어느 누구나 예외없이 다 성공을 위해서 달려갑니다. 다 성공에 대한 욕망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우리 인간을 하나님께서 만드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기 때문에 모두가 성공하고자 하는 마음을 다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다 하는 말은, 하나님의 형상이란 그 자체가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축복과 하나님의 모든 것이 담겨져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누구나 다 성공을 위해서 달려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것이 하나님 안에 있느냐 하나님 밖에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하나님 밖에 있기 때문에, 결국은 사람들이 교만하게 되고 욕망에 빠지게 되고 이기주의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밖에 있게 된 것이 바로 타락을 통해서, 타락이 무엇이냐, 본래의 자리에서 떠나게 된 것을 가지고 타락이라 이야기합니다.하나님 안에 있어야 할 인간이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타락하게 되었고 그로 말미암아 모든 인간에게 욕망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욕망을 가지고 성공을 위해서 달려가는 인생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다,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축복, 하나님의 모든 것이 담겨 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토록 어마어마한 존재로 우리를 창조하셨는데, 하나님의 능력을 가지고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도록 우리 인간을 창조하셨는데 결국은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그 방향이 하나님이 아니라 나를 향한 것이 되었습니다. 주인이 바뀐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내가 주인된 것입니다. 그래서 욕심과 욕망과 교만과 이기주의로 빠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면 갈수록, 디모데후서 3장에 보면 말세 때 고통하는 때가 오는데 모든 사람이 성공을 위해 달려가지만 더욱더 악해진다고 말씀했습니다. 왜냐?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교만하기 때문에. 그게 하나님을 떠나서 나오는 결과입니다. 성공을 위해서 달려갑니다만 결국은 더 악해지는 것입니다. 그 배후에는 누가 있느냐? 창세기 3장의 악한 사단, 마귀가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4장에 보면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에 악한 사단, 마귀가 와서 시험을 하게 됩니다. 세 가지 시험을 던졌습니다. 그 가운데 마지막 세 번째 시험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성공에 대한 시험입니다. 마태복음 4장 8절에 보면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했습니다.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며 내게 엎드려 절하라, 이 말은 무엇이냐?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성공된 사실을 보여주면서 악한 사단은, 여러분, 영광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천하만국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그만큼 능력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성공을 이용해서 시험을 걸어 왔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예수님께서 말씀을 통해서 물리친 사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인생은 성공을 위해서 달려가는데 결국 하나님을 떠나 버리니까 하나님처럼 되고자, 창세기 3장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우상숭배, 창세기 6장 네피림. 우상숭배가 무엇이냐? 자기를 위해서, 자신을 위해서 우상숭배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주인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창세기 11장의 바벨탑. 창세기 11장 4절에 보면 “우리 이름을 내고,” 했습니다. 자기의 성공을 위해서, 이름을 내자, 그래서 바벨탑을 지은 것 아닙니까? 그러나 결국은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류 성공의 역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3장, 창세기 6장, 창세기 11장은 인류 성공의, 인간의 성공의 역사를 말씀하고 있는데 결국은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인데 그것을 위해서 모든 인생이 달려간다는 사실입니다. 이 말은 성공한 자를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공한 자가 중요합니다. 귀중합니다. 존경스럽습니다. 여러분, 성공한 자를 우리가 함부로 말하면 안 됩니다. 나름대로 그 사람들이 성공하기까지 그 자리에 있기까지는 다른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자리에 서게 되고 그런 자리에 앉게 된 것 아닙니까? 그런데 복음 없이 성공한 것은 반드시 문제가 오게 되어 있습니다. 결국은 복음 없이 성공하면 인간은 욕망에 사로잡히게 되고 그래서 그 욕망을 이루기 위해서 몸부림치고 무언가를 소유하기 위해서 몸부림치고 자기 자신의 공간을 더 확장시키기 위해서, 더 넓히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것입니다. 그게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게 되자, 복음을 놓쳐버리자 나오는 결과입니다. 결국은 이런 모습이 인간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도 복음을 놓쳐 버리면, 여러분, 세상 사람들이 요즘 다 내려놓자 하는데, 교회는 세상 사람들이 내려놓자 하는 것을 오히려 더 챙기려고 세상 사람들과 더 욕심있게 살아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복음 놓쳐 버리면 그렇습니다. 결국 복음 놓쳐 버리면 아무리 성공한다 할지라도, 성공할 수도 없고 성공한다 할지라도 여러분, 영적인 충만함이, 영적인 성장이 있고 거기에 지적인 성장이 따라와야 하는데 복음을 놓치면 영적인 성장이 멈추고 지적인 성장을 하면 할수록 허무함에 빠집니다. 공허함 속에 빠집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오는 것이, 무언가 한 가지에 집착하고, 또한 중독에 빠지고 그리고 이상한 행동을 하면서 그 이상한 행동이 습관화되어서 일반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고질적인 부분을 성공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1. 성공자의 내면
그리고 그 속에서 나오는 것이 뭔가 한 가지에 집착하고 또한 중독에 빠지고요 그리고 이상한 행동을 하면서 그 이상한 행동이 습관화 되어져서 일반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고질적인 부분들이 성공한 사람들에게 가지고 있다 라는 거예요. 그것이 그냥 있어지는 게 아닙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마는 성공한 자들을 멸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참된 복음 안에서의 성공이냐 이 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은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영적인 문제로 무너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시면 밸릭스 총독이 24장에 나오고, 베스도 총독이 25장에 나오고 아그립바 왕이 나옵니다. 그 당시에 로마 황제가 주변의 나라들을 속국으로 삼아서 그 속국 된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서 왕을 세우고 총독을 세웠어요.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도록 만들었어요. 그런데 베스도 총독이 나오고 아그립바 왕이 여기에 또 왔잖아요. 이 부분들 보면서 오늘 우리가 중요한 것 붙잡아야 합니다.
먼저 밸릭스 총독은 24:24~25절을 보면 바울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도에 대해서 들었어요. 그리고 몇 번 불렀어요. 그 도를 듣기 위해서 그리고 또 한편의 마음으로는 26절에 보면 이 바울에게 돈을 얻을까 싶어서 계속 바울을 더 부른 겁니다. 한번 보십시오. 24:26절, 24절에는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를 들었다 말씀하면서 26절에 보면 동시에 또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바라는 고로 더 자주 불러 같이 이야기 하더라 지금 우리 정치 현장들 하고 같은 내용들 아닙니까? 뭔가 부르긴 부르는데 거기에 다른 배경을 가지고 돈 좀 받기 위해서 저는 이 본문을 보면서 과연 이 밸릭스 총독이 돈이 없는 사람인가? 아니 총독이라면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엄청난 힘 있는 사람입니다. 돈이 없는 사람인가? 그게 아닐 것이라는 것. 그렇다면 이 사람의 뿌리가 그런 뿌리를 가지고 있는 것인가? 물론 그렇게도 볼 수 있지요. 또한 더불어서 아! 가지고 있으면서도 가진 것을 만족할 줄 모르는 것...여러분 세상의 것이 그렇잖아요. 우리가 가지고 있으면서도 가진 것을 만족 할 줄 모르는 것. 그게 세상의 것입니다. 그런데 가진 것을 만족 할 줄 모른다..그것만큼 불행한 일이 있을 수가 없지요. 그 자체가 불행한 겁니다. 그런데 오늘 밸릭스 총독이 그러한 사람이었어요. 그러면서 또한 2년 동안에 지난주에 살펴 봤잖아요. 그냥 바울을 구류해 두었어요. 왜냐? 유대인들의 마음을 얻고자 해서. 이게 정치인들의 마음이지요. 오늘 본문에 보면 베스도 총독이 나오는데 베스도 총독 또한 마찬가지로 9절에 보면 베스도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더러 물어 무슨 말입니까? 정치인들은 여론 따라 움직이는 것 아닙니까? 아무리 옳은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행함으로 옮길 수 없는 것은 여론 따라 움직이는 것입니다. 여론 따라서 움직일 수 밖에 없는 비참한 현실들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또 여기에 베스도 총독에게 찾아온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 여러분 이 아그립바왕과 버니게에 대한 설명을 이해를 하셔야 되는데 여기에 아그립바 왕은 아그립바 2세입니다.그의 증조부가 누구냐? 예수님이 태어났을 때에 유아학살 정책이 있었잖아요. 거기에 주인공이 헤롯입니다. 그가 바로 이 아그립바 왕의 증조부입니다. 그리고 세례요한의 목을 잘라버린 사람이 바로 이 헤롯입니다. 그리고 자기의 선친은 누구냐? 아그립바 1세인데 야고보를 죽이고, 베드로를 옥에 가둔 사람입니다.
그래서 자기 증조부와 선친이 비참한 말로를 맞이했거든요. 자기 선친은 여러분이 잘 알듯이 벌레에 물려서 비참하게 죽어갔습니다. 자 이런 상황이 되니까 베스도가 예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바울을 잡아두고 있다고 하니까 그 예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있는 바울을 만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그게 아그립바의 마음이었어요. 그리고 이 아그립바와 함께 같이 따라 나왔던 버니게라는 여자는 누구냐? 성경에 보면 앞에 나오는 밸릭스 총독의 아내 두루실라가 나오지요. 그와 함께 자매지간이었다해요. 그런데 이 여자가 시대의 요부입니다. 무슨 말이냐? 친 삼촌과 결혼해서 다시 이혼하고, 둘러찼어요. 또 길리기아 왕. 그 당시에 길리기아를 로마가 장악하고 있었는데 그 길리기아 왕에 폴린 왕이라고 있었는데 그 왕과 결혼했다가 또 다시 둘러차고 아마 힘도 있었지요 여자가 남자를 둘러찼으니까...그리고 지금 이 아그립바 2세는 자기의 친 오빠입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불륜관계를 하고 있어요. 이 아그립바 2세,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 이 사람을 보면서 오늘 23절에 그렇게 말씀 하고 있어요. 이튿날 아그립바와 버니게가 크게 위엄을 갖추고 와서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겉모습은 위엄스럽고 대단하고 힘 있는 것처럼 보이고 화려한 것처럼 보이지만은 그 내면에는 온갖 부정부패와 온갖 음란과, 온갖 우상숭배로 가득 차 있는 이 아그립바와 버니게 그러나 그 앞에선 전도자 바울은 초라하고 보잘 것 없어 보이지만은 그러나 그 내면에는 복음이면 모든 사람을 살리고 바꿀 수 있다는 그 복음의 능력을 알고 있는 한 사람.
여러분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 지금 우리 세상의 모습 아닙니까? 겉모습은 대단하고 화려합니다. 엄청납니다. 뭔가 한 손으로 모든 나라를 쥐고 흔들 수 있는 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내면에는 하나님을 떠나서 철저하게 부정부패 속에, 우상 속에, 교만 속에 완전히
사로잡혀 있는 것과 함께 그 앞에 서 있는 바울은 힘없어 보이고 초라해 보이지만. 죄수의 신분으로서 서 있는 모습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세계를 복음화 할 수 있다는 다시 말해서 그 어떤 두려움과 핍박 속에서도 당당할 수 있는 복음의 능력을 가진 바울, 여러분 누가 성공자 입니까? 지금 우리 세상을 말씀하고 있는데요. 과연 도대체 누가 성공한 자입니까? 아그립바 왕이나 버니게, 또 베스도 총독까지 올랐습니다마는 사람들의 눈치를 봐야하고 인기가 어떻게 될까? 명예가 어떻게 될까? 자기 자리가 어떻게 될까? 늘 거기에 노심초사하는 이런 부분들.
여러분 우리가 정치인들 보면서 보잖아요. 한마디로 중독입니다. 중독. 참 안타까와요. 뻔히 안될 줄 알면서도 또 나가는 부분들 보면은요, 너무 참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도해야 되겠구나 하는 마음들이 있고, 그들의 내면들 보면 얼마나 힘들까 뭔가 나름대로 드러내기 위해서, 명예를 위해서 나서지만 그러나 그 마음에는 얼마나 허전함이, 공허함들이 있을까? 참 안타까운 주위에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서 기도가 되어집니다마는 실제로 그래요. 정치인들이나 경제인들이나 선거철 되면 점쟁이 집에 가서 문전성시를 이루고요. 왜 그렇습니까? 여론에 대해서 앞으로 어떻게 될까 그 부분에 대해서 알기 위해서. 점쟁이들 찾아가는 것 아닙니까? 경제인들도 마찬가지이고요. 참 불쌍한 겁니다. 그런데 겉으로는 보잘 것 없어 보이지만 그러나 거기에는 핍박과 두려움에도 당당할 수 있는 복음의 능력을 아는 사람. 이 사람이 바울이었어요. 중요한 것은 내 안에 무엇이 있느냐 입니다. 물론 높은 사람들이 악하다는 그 말이 아닙니다.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좋다. 그런 극한 말이 아닙니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도 복음의 능력을 아는 좋은 사람들이 있을 수 있고요, 또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도 더 악한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무엇이 있느냐 입니다. 바울은 세계를 변화 시킬 수 있는 오늘 뒤에 나옵니다마는 죽은 자의 부활. 복음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어요. 이게 참된 성공자입니다. 여러분 복음 가지고 있다..그 자체가 성공자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제가 2부예배전에 고3 기도회가 있어서 잠시 말씀을 가지고 나누었습니다. 제가 그 자리에서 우리 고3들에게 이야기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다른 자의 인생으로 가도록 만드셨다. 지난 주의 제목을 가지고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주의 제목이 “내가 가이사께 상소하리라”하나님이 여러분을 세계복음화 하기 위해서 다른 자의 인생으로 부르신 것이다. 그 일을 위해서 수능이 한 과정의 과정을 거칠 뿐이다. 이미 여러분의 인생은 하나님께서 분명한 여러분을 향한 계획과 목적을 가지고 여러분 전체 인생을 놓고 인도해 나가신다 라는것. 말씀을 같이 나누었습니다. 그러면서 진짜 참된 성공자는 복음 가진 자가 성공자이고, 지금 모든 현장에 렘런트들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무너지고 성공한 자들이 무너지는데 그 성공자들을 살리는 성공자가 되어야 된다라는 것. 그렇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참된 복음가진 성공자가 되었기 때문에 현장에서 성공자를 살리는 성공자로 살아가는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열왕기하 5장에 보면 아람나라 장군인 나아만. 왕 앞에 크고 존귀한 자로, 왕이 볼 때 크고 존귀한 자로 인정했어요. 그런데 그 나아만에 대해서 이야기 하기를 큰 용사다 했어요. 그리고 바로 이어서 큰 용사나 문둥병자였더라. 이게 지금 세상이고 이게 지금 세상의 성공자 들입니다. 큰 용사나 문둥병자 였더라. 그런데 거기에 포로로 끌려온 계집아이 하나로 말미암아 결국 나아만이 살게 되어 졌어요. 복음가진 계집아이..비록 신분은 노예신분, 포로 신분이었지만. 계집아이 하나로 말미암아 결국 나아만이 살게 되었어요.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에게 복음 주신 이유는 바로 저와 여러분의 현장에 성공자들을 살리는 참된 성공자의 응답을 누리게 하기 위해서 복음의 축복을 주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성공자를 살리는 것은 우리의 삶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규모를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돈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삶에 대해서, 규모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면 유대인들 절대 못 살립니다. 그들은 철저합니다. 삶 자체가 철저해요. 얼마나 규모적입니까? 절대 유대인들을 복음 못 전합니다. 돈 가지고요? 여러분 재벌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복음 전할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2. 죽은 자의 부활
그들을 살릴 수 있는 것은 성공자를 살릴 수 있는 것은 두 번째 생각해야 될 부분들인데 죽은 자를 살리는 부활의 역사. 죽은 자의 부활. 이 자체가 성공자를 살리는 것입니다. 죽은 자의 부활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예수 생명을 말하는 것입니다.복음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복음 때문에 자기는 나는 가이사께 상소하노라 고백 했어요.
무슨 말이냐? 하나님의 소원을 바울은 마음에 간직했어요. 그 당시에 로마가 수도로서 전 세계의 정치, 경제, 문화가 총 집결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딱 한 가지 죽은 자의 부활. 이 복음의 역사가 없어서 망하고 있는 그 현장을 본, 하나님의 마음을 바울이 가진 겁니다. 그러니까 나는 가이사 앞에 상소하노라 모든 것 다 가졌지만 복음 하나 없는 이 로마를 향해서 나는 죽어도 살아도 상관없다라는 것, 이 복음이 저 로마에 증거될 수 있다면 이게 사실 바울의 마음 이전에 하나님이 로마를 향한 마음이었지요. 복음이 없는 로마를 향한 마음 모든 것 다 있지만 복음 없는 로마를 향한 마음이었어요. 이 고백을 바울이 하게 됩니다. 그리고 여기에 이 말씀의 고백 속에는 바울은 복음이면 로마를 바꿀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어요. 복음이면 로마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 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복음보다 이 땅에 더 강하고 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여러분 가정에 문제가 있습니까? 여러분 자녀들에게 문제가 있습니까?여러분 사업장에 기가 막힌 문제가 있습니까? 복음이면 됩니다. 이 확신 있고, 이 능력 믿는 믿음이 있다면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나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내 자녀의 모습은 이래서 안된다. 내 산업 현장을 보면서 이 환경들이 너무 어려운데 이 불신앙의 말 때문에 그 자체 때문에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어떤 환경과 사건들이 있다 해도 복음이면 된다라는 그 믿음 고백하는 그 순간부터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나는 가이사께 상소하노라 이 말의 중요한 의미중의 하나는 그 어떤 로마의 막강한 힘이라 할 지라도 이 복음으로는 바꿀 수 있다는 그 확신이 있었어요. 흘러온 로마의 모든 흐름들을 복음으로면 하루아침에 완전히 바꿀 수 있다라는 그 복음의 능력에 대한 확신이 있었어요. 이 축복의 능력을 가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왜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셔야 했습니까? 죽은 자의 부활이지요. 바울이 증거 한 복음의 핵심. 죽은 자의 부활. 바울이 사도행전 23:6절에 보면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요. 자기가 바리새인으로서 자기가 심문받는 것은 23:6절에 보면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로 말미암아 내가 심문을 받는다 했습니다. 안 된다는 그 불신앙의 말 그 자체 때문에 안 되는 겁니다. 그러나 그 어떤 환경과 사건이 있다 할지라도 복음이면 된다는 그 믿음 고백하는 그 순간부터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나는 가이사께 상소하노라 이 말의 중요한 의미 중에 하나는 그 어떤 로마의 막강한 힘이라 할지라도 이 복음으로는 바꿀수 있다라는 그 확신이 있었어요. 흘러온 로마의 모든 흐름들을 복음으로 하루아침에 완전히 바꿀 수 있다는 그 복음의 능력에 대한 확신이 있었어요. 이 축복을 가지는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왜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야 했습니까? 죽은 자의 부활이죠. 바울이 증거한 복음의 핵심, 죽은자의 부활. 바울이 사도행전 23장 6절에 보면 그렇게 말씀하고 있죠. 자기가 바리새인으로서 자기가 심문 받는 것은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로 말미암아 내가 심문을 받노라” 했습니다.
왜 바울이 죽은 자의 부활, 이 비밀들을 증거 했느냐? 다른게 아닙니다. 이것만이 인간에게서 하나님 만나는 길이 되시고 이것만이 죄의 권세 아래 사로잡혀 있는 인간이 해방 받는 길이 되고 이것만이 인간이 사탄의 운명 가운데서 빠져 나올 수 있는 길이 되고 그래서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한 그리스도, 그 증거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기 때문에 바울은 죽은 자의 부활, 여기에 생을 건 사실들을 보게 됩니다.
로마서 5장 8절에 보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정하셨느니라” 여러분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 했다는 그 증거로 죄와 저주와 재앙의 문제, 사탄의 문제, 하나님을 떠난 문제를 해결했다는 그 증거로 죽은 자 가운데 있지 않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생명으로 주셨습니다. 이 죽은 자의 부활로 말미암아 저와 여러분이 마귀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어요. 이 죽은 자의 부활로 말미암아 죄의 종에서 의의 종이 되어진 것입니다. 이 죽은 자의 부활로 말미암아 멸망의 자리에서 영생의 자리에 이르는 것입니다. 죽은 자의 부활, 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수생명, 이 죽은 자의 부활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루신 이 역사를 알고 누리는 귀한 전도자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구원 받았다는 것은, 우리가 예수생명 가졌다는 말이죠. 죽은 자의 부활이 무엇을 말합니까? “예수생명” 이라는 말이에요. 그 생명 가졌다는 것, 그게 구원 받은 자라는 것이고 예수생명 가진 자는 바로 그 안에 성령이 임한 자를 말합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 2절에 보면 “생명의 성령의 법”이라고 했어요. 바로 성령이 임한 그 자체를 가지고 생명을 가졌다라는 거예요. 생명을 가졌다는 자체가 하나님의 성령이 내안에 임했다는 말이에요. 그래서 생명의 성령의 법이라는 말입니다. 이 하나님의 생명 가진 자는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자녀의 축복을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이 생명의 역사를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그게 우리가 받은 축복입니다. 이 예수생명 가진 자, 죽은 자의 부활의 비밀을 가진 자는 그 어떤 것으로도 정죄 받지 않습니다. 정죄할 자가 없어요. 그래서 로마서 8장 1절에 보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말씀했어요. 이 죽은 자의 부활, 이 복음의 비밀, 예수생명의 비밀 아는 자가 기도하면 흑암의 권세가 꺾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흑암의 권세가 꺾이는 거기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감옥에 있었지만 감옥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자리가 되었어요. 바로 생명의 비밀 가지고 흑암 꺾는 역사 속에 있었으니까.. 그리고 정말 예수생명 이 비밀 가진 자는 이 땅의 그 어떤 문제와 어려움이 있다할지라도 결코 망하지 않고 승리하게 되어 있다라는 사실들이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로마서 8장 31-39절을 한번 찾아서 읽어봅시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고 흑암의 세력과 죄의 저주와 지옥의 배경을 완전히 해결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에 이런 일, 저런 일을 당할 수 있어요. 그러나 상관없습니다.
왜냐?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승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8장 31-39절을 한번 교독하겠습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이미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문제를 끝냈기 때문에 죄의 저주의 권세, 사탄의 운명, 모든 지옥의 권세를 끝냈기 때문에 이런 일, 저런 일을 당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자녀, 예수생명가진 자는 반드시 승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비밀들을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이야기 하니까 유대인들이 자기들이 믿고 있는 유대교, 그 믿는 유대교에서 많은 사람들이 빠져 나가거든요.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많이 세워지거든요. 그러니까 위기를 당한 겁니다. 그리고 또한 유대인들이 율법을 행해야 구원 받는다고 했는데 바울과 성도들이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 받는게 아니라 예수 믿어야 구원 받는다고 하니까 자기들의 종교가 무너지는 위기가 온겁니다. 그러니까 생을 걸고 복음의 역사를 막는 이 사실들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이 복음의 역사들은 아무도 막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 하나님께서 진행하고 계시는 것이 복음의 역사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그 속에 있음을 확신하시고 세상의 그 어떤 일들과 문제와 사건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고 우리를 세상에서 넉넉히 이기는 존재로 우리를 세워주셨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의 최고의 약속. 사탄을 꺾으시고 운명을 바꾸시고 지옥 배경을 바꾸신 그리스도를 하나님이 우리에게 생명으로 주셨습니다. 죽은 자의 부활, 생명으로 주셨어요. 그렇다면, 이 복음의 역사를 가지고 복음이면 된다라는 이 확신 가지고 “내가 가이사께 상소하노라.” 여러분의 가정에 도전하시고 사업에 도전하시고 자녀의 현장에 도전하시고 여러분의 문제 있는 현장에 도전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증거를 누리는 전도자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4년 11월 2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내가 가이사께 상소하노라
(행25:1-12)
서론: 오늘 본문은 벨릭스 총독이 임기 2년을 마친 후 베스도 총독이 가이샤라에 오게 되는 배경입니다. 베스도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 그곳의 유대인과 제사장들이 바울에 대해 또 고발하였고, 가이샤라에까지 함께 내려와 바울을 법정에 세웠습니다. 그리고 베스도 총독의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심문을 받지 않겠느냐?’는 제안에 바울은 가이사께 상소를 한다고 했습니다. 재판의 동기는 딱 한가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한 문제뿐이었습니다. 이처럼 배후에는 악한 사탄이 복음을 막고자하는 공격을 계속 해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단 한번도 복음 가진 자를 막지 못하고 사탄의 공격은 오히려 전도의 문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가진 자가 맞다면 우리에게 있는 어떤 문제라도 복음 전하는 문이 될 것입니다.
1. 성공자의 내면
(1) 모든 사람들은 성공을 위해 달려갑니다
1)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지혜,축복)으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정복하고 다스리도록 되어있음
2) 그러나 창3,6,11장의 배후 가운데(마4:8 예수님도 시험), 인류의 성공은 말세로 갈수록(딤후3장) 결국은 무너짐
3) 그래서 복음 없이 성공하면 욕망에 사로잡히고(창11:4) 공허함과 집착, 중독 가운데 고질적 영적문제로 실패함
(2) 복음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 참된 성공자입니다.
1) 복음을 모르면 성공해도 돈(벨릭스), 여론(베스도), 부정부패와 음란, 우상숭배(아그립바왕, 버니게)에 빠지게 됨
2) 바울은 초라하고 보잘것 없는 겉모습이었지만, 모든 것을 살릴 수 있는 복음의 능력을 알고 있는 사람
3)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오직 복음으로 성공자를 살리는 성공자임(나아만 장군을 살린 포로로 끌려온 계집아이)
2. 죽은 자의 부활
(1) 바울은 하나님의 소원을 마음에 담고 있었기에 가이사에게 상소했습니다.
1) 모든 것이 있지만 단 한가지, 복음이 없는 로마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바울은 알고 있었음
2) 바울은 복음이라면 로마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는 복음의 능력에 대한 확신이 있었음
(2) 죽은 자의 부활로 말미암아 = 오직 예수 생명
1)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롬5:8)
2) 오직 예수 생명만으로만 - 하나님 만나는 길, 죄와 저주에서 해방, 사탄의 권세에서 빠져나옴
(3) 구원 받은 자는 생명을 가진 것입니다. (성령이 함께하심)
1)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이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하심(롬8:2)
2) 흑암권세는 꺾이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여, 어떤 환란에서도 망하지 않고 결국 넉넉히 승리함(롬8:31-39)
결론: 하나님의 최고 약속은, 사탄을 꺾고 운명을 바꾸며 지옥배경을 깨뜨린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생명으로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죽은 자의 부활’의 증인으로서, 오직 복음의 확신만 가지고 가이사 앞에 서면 됩니다. 한주간 가정과 사업, 자녀현장과 모든 문제에 도전함으로 하나님의 증거를 누리시길 바랍니다.
< 기 도 문 >
하나님 아버지, 말세의 재앙시대를 맞이하여 악한 사탄이 복음 막는 공격을 하는 것을 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전도의 문으로 열어주실 것을 믿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성공을 향해 달려가는 이때에, 오직 복음으로만 성공자를 살리는 성공자가 되길 원합니다. 한주간 하나님의 소원을 마음에 담고 죽은 자의 부활, 오직 예수 생명으로 가이사 앞에 서고, 시대와 현장에 도전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내가 가이사께 상소하노라”
(행25:1-12)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성곽 없는 성읍의 축복을 누리십시오! 당신은 언약의 백성입니다! 할렐루야! 예, 감사합니다. 지난 주간에 우리 교회에서는 목요일에 이용팀, 미용팀이 청도 지역에서 이․미용 캠프를 진행하였고, 어제는 성서공단에서 다민족 중심으로 해서 `1월 말로 계획되어 있는 방글라데시 캠프를 앞두고 우리 팀들이 같이 캠프로 인도를 받게 되었습니다. 또 지난 주간에 각 지역 속에서 다락방으로, 미션홈으로, 지교회로 말씀의 성취와 기도응답과 구원을 쉬지 않고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사들을 체험하고 오늘 이 자리에 증인들이 모였습니다. 오늘 이 한 날도 또 한 주간을 위해 주실 하나님의 말씀을 언약으로 붙잡는 최고의 축복의 시간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제목을 “내가 가이사께 상소하노라.” “내가 가이사께 상소하노라” 이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25장에서는 벨릭스 총독이 2년 임기를 마친 후, 그 후임으로 베스도 총독이 가이사랴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3일 후에, 가이사랴에 오게 된 베스도 총독이 예루살렘에 올라갔습니다. 그러니까 그곳에 있는 유대인들, 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바울에 대해서 또 다시 고발을 한 겁니다. 그러니 베스도가 거기의 유대인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며칠 있으면 다시 가이사랴로 내려갈 것이니까 너희 가운데 유력한 자들을 세워서 나와 함께 가이사랴에 내려가서 바울을 고발하라, 그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그 말 대로 결국은 유대인들이 베스도와 함께 가이사랴에 내려오게 되고 가이사랴에서 바울을 법정에 세우게 됩니다. 그리고 거기서 유대인들이 고발을 하되, 거기에 보면 증거를 대지 못했다, 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바울이 변명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 때 베스도가 바울에게 제안을 했습니다. 네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심문을 받지 아니하려느냐. 바로 이 베스도는 유대인들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에게 제안을 한 겁니다. 네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심문을 받지 아니하겠느냐. 사실 유대인들의 요청하는 바입니다. 바로 예루살렘에 옮겨가는 과정에서 바울을 죽이기 위해서 이미 계획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유대인들의 요청하는 그 마음을 읽고 아마 베스도 총독이 바울에게 제안을 한 겁니다. 그 때 바울이 나는 아니다, 나는 가이사께 상소하노라, 그렇게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그래서 베스도가 그 자리에서 그러면 네가 가이사에게 상소했으니까 가이사에게 갈 것이니라, 그렇게 끝냈습니다. 그런데 며칠 있다가 아그립바 왕이 그의 아내 브니게와 함께, 아마 베스도가 총독으로 왔으니 축하하기 위해 방문을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가이사랴에 방문해서 베스도로 말미암아 죄수인 바울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내가 전임자 벨릭스로 말미암아 한 사람의 구류자를 지금 보호하고 있는데 유대인들이 이 사람을 고발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고발한 내용을 보니까 예수님이 죽었다 다시 살아났다는 그 내용이지 이 사람이 살인사건을 저지르거나 강도 사건을 저지르거나 데모를 한, 반란을 일으킨 사람이 아니다, 도저히 내가 이 사람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겠다, 저들 가운데 있는 종교적인 문제로 저들이 이야기를 하는 것인데 죄를 찾지 못하겠다, 그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자 이 아그립바 왕이 베스도 총독에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면 그 바울을 내가 좀 볼 수 있겠느냐. 아마 베스도 총독이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아그립바 왕의 마음에, 나중에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만, 도대체 예수가 누구인가에 대한 궁금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러면 이튿날, 이 자리에 바울을 세우겠다, 그렇게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이튿날, 로마의 천부장과 그 때 시의원, 23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천부장들과 시중의 높은 사람들과,” 지금식으로 말하면 시의원입니다, 시중의 높은 사람들과 함께 아그립바, 베니게, 또 베스도가 함께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결국은 유대인들을 로마에 보내기 위해서는 로마 황제에게 고소장을 써야 하니까 그 고소장을 쓰기 위해서 바울을 다시 아그립바 왕과 베니게, 또 유대인들 보는 앞에서 세우게 된 것입니다. 재판관은 총독인 베스도입니다.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고소자는 누구냐? 유대 장로들과 유대 지도자들입니다. 그리고 재판의 동기는 무엇이냐? 딱 한 가지, 다른 이유가 아니라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났다는 것,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고 죽은 자인데 다시 살아났다는 것, 그것이 바로 재판의 동기였습니다. 이 본문을 보면서 그렇게 막으려고 하는 유대인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결국은 하나님께서 가이사에게 가게 하시는, 바울의 걸음. 여러분, 아무리 복음을 막으려고 해도 복음의 역사는 막을 수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우리 찬양대 찬양드린 것처럼, 여러분, 이 생명의 복음을 막을 자가 없습니다. 이 복음의 역사를 막기 위해서 악한 사단이 배후에 성경 시대나 교회 역사를 보면 그렇게 끈질기게 공격해왔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이 복음의 역사가 막힌 적이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이미 우리가 잘 알다시피 모세가 태어날 때에 바로왕이 다 죽이라고, 남자아이는 다 죽이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태어날 때도 헤롯왕이 두 살 이하의 아이는 다 죽이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또 복음 가진 다윗을 삼천 명의 결사대를 조직해서 끝까지 따라가 죽이려고 했던 사울, 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게 만든 가룟 유다, 전부 그 배후에는 악한 사단이 복음의 역사를 막고자 하는 공격이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단 한 번도 그 복음의 역사, 복음 가진 자를 막을 수 없었다는 것, 어떤 문제와 사건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이 오히려 복음 전하는 데 있어서 문이 되었지, 그 복음의 역사가 막히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복음 가진 자가 맞다면 우리에게 있는 그 어떤 문제도 전부 다 하나님의 복음의 역사를 증거하는 문이 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담대함으로 두려움 가지지 마시고 담대함으로 하나님 앞에, 말씀 앞에 서서 인도받아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통해서 두 가지만 말씀을 정리를 하고자 합니다.
먼저, 첫 번째로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부분들인데, 세상 성공자의 내면입니다. 세상의 성공자의 내면을 오늘 본문을 통해서 읽어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땅의 모든 인간은 어느 누구나 예외없이 다 성공을 위해서 달려갑니다. 다 성공에 대한 욕망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우리 인간을 하나님께서 만드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기 때문에 모두가 성공하고자 하는 마음을 다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다 하는 말은, 하나님의 형상이란 그 자체가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축복과 하나님의 모든 것이 담겨져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누구나 다 성공을 위해서 달려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것이 하나님 안에 있느냐 하나님 밖에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하나님 밖에 있기 때문에, 결국은 사람들이 교만하게 되고 욕망에 빠지게 되고 이기주의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밖에 있게 된 것이 바로 타락을 통해서, 타락이 무엇이냐, 본래의 자리에서 떠나게 된 것을 가지고 타락이라 이야기합니다.하나님 안에 있어야 할 인간이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타락하게 되었고 그로 말미암아 모든 인간에게 욕망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욕망을 가지고 성공을 위해서 달려가는 인생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다,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축복, 하나님의 모든 것이 담겨 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토록 어마어마한 존재로 우리를 창조하셨는데, 하나님의 능력을 가지고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도록 우리 인간을 창조하셨는데 결국은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그 방향이 하나님이 아니라 나를 향한 것이 되었습니다. 주인이 바뀐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내가 주인된 것입니다. 그래서 욕심과 욕망과 교만과 이기주의로 빠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면 갈수록, 디모데후서 3장에 보면 말세 때 고통하는 때가 오는데 모든 사람이 성공을 위해 달려가지만 더욱더 악해진다고 말씀했습니다. 왜냐?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교만하기 때문에. 그게 하나님을 떠나서 나오는 결과입니다. 성공을 위해서 달려갑니다만 결국은 더 악해지는 것입니다. 그 배후에는 누가 있느냐? 창세기 3장의 악한 사단, 마귀가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4장에 보면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에 악한 사단, 마귀가 와서 시험을 하게 됩니다. 세 가지 시험을 던졌습니다. 그 가운데 마지막 세 번째 시험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성공에 대한 시험입니다. 마태복음 4장 8절에 보면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했습니다.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며 내게 엎드려 절하라, 이 말은 무엇이냐?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성공된 사실을 보여주면서 악한 사단은, 여러분, 영광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천하만국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그만큼 능력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성공을 이용해서 시험을 걸어 왔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예수님께서 말씀을 통해서 물리친 사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인생은 성공을 위해서 달려가는데 결국 하나님을 떠나 버리니까 하나님처럼 되고자, 창세기 3장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우상숭배, 창세기 6장 네피림. 우상숭배가 무엇이냐? 자기를 위해서, 자신을 위해서 우상숭배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주인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창세기 11장의 바벨탑. 창세기 11장 4절에 보면 “우리 이름을 내고,” 했습니다. 자기의 성공을 위해서, 이름을 내자, 그래서 바벨탑을 지은 것 아닙니까? 그러나 결국은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류 성공의 역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3장, 창세기 6장, 창세기 11장은 인류 성공의, 인간의 성공의 역사를 말씀하고 있는데 결국은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인데 그것을 위해서 모든 인생이 달려간다는 사실입니다. 이 말은 성공한 자를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공한 자가 중요합니다. 귀중합니다. 존경스럽습니다. 여러분, 성공한 자를 우리가 함부로 말하면 안 됩니다. 나름대로 그 사람들이 성공하기까지 그 자리에 있기까지는 다른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자리에 서게 되고 그런 자리에 앉게 된 것 아닙니까? 그런데 복음 없이 성공한 것은 반드시 문제가 오게 되어 있습니다. 결국은 복음 없이 성공하면 인간은 욕망에 사로잡히게 되고 그래서 그 욕망을 이루기 위해서 몸부림치고 무언가를 소유하기 위해서 몸부림치고 자기 자신의 공간을 더 확장시키기 위해서, 더 넓히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것입니다. 그게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게 되자, 복음을 놓쳐버리자 나오는 결과입니다. 결국은 이런 모습이 인간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도 복음을 놓쳐 버리면, 여러분, 세상 사람들이 요즘 다 내려놓자 하는데, 교회는 세상 사람들이 내려놓자 하는 것을 오히려 더 챙기려고 세상 사람들과 더 욕심있게 살아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복음 놓쳐 버리면 그렇습니다. 결국 복음 놓쳐 버리면 아무리 성공한다 할지라도, 성공할 수도 없고 성공한다 할지라도 여러분, 영적인 충만함이, 영적인 성장이 있고 거기에 지적인 성장이 따라와야 하는데 복음을 놓치면 영적인 성장이 멈추고 지적인 성장을 하면 할수록 허무함에 빠집니다. 공허함 속에 빠집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오는 것이, 무언가 한 가지에 집착하고, 또한 중독에 빠지고 그리고 이상한 행동을 하면서 그 이상한 행동이 습관화되어서 일반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고질적인 부분을 성공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1. 성공자의 내면
그리고 그 속에서 나오는 것이 뭔가 한 가지에 집착하고 또한 중독에 빠지고요 그리고 이상한 행동을 하면서 그 이상한 행동이 습관화 되어져서 일반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고질적인 부분들이 성공한 사람들에게 가지고 있다 라는 거예요. 그것이 그냥 있어지는 게 아닙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마는 성공한 자들을 멸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참된 복음 안에서의 성공이냐 이 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은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영적인 문제로 무너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시면 밸릭스 총독이 24장에 나오고, 베스도 총독이 25장에 나오고 아그립바 왕이 나옵니다. 그 당시에 로마 황제가 주변의 나라들을 속국으로 삼아서 그 속국 된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서 왕을 세우고 총독을 세웠어요.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도록 만들었어요. 그런데 베스도 총독이 나오고 아그립바 왕이 여기에 또 왔잖아요. 이 부분들 보면서 오늘 우리가 중요한 것 붙잡아야 합니다.
먼저 밸릭스 총독은 24:24~25절을 보면 바울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도에 대해서 들었어요. 그리고 몇 번 불렀어요. 그 도를 듣기 위해서 그리고 또 한편의 마음으로는 26절에 보면 이 바울에게 돈을 얻을까 싶어서 계속 바울을 더 부른 겁니다. 한번 보십시오. 24:26절, 24절에는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를 들었다 말씀하면서 26절에 보면 동시에 또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바라는 고로 더 자주 불러 같이 이야기 하더라 지금 우리 정치 현장들 하고 같은 내용들 아닙니까? 뭔가 부르긴 부르는데 거기에 다른 배경을 가지고 돈 좀 받기 위해서 저는 이 본문을 보면서 과연 이 밸릭스 총독이 돈이 없는 사람인가? 아니 총독이라면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엄청난 힘 있는 사람입니다. 돈이 없는 사람인가? 그게 아닐 것이라는 것. 그렇다면 이 사람의 뿌리가 그런 뿌리를 가지고 있는 것인가? 물론 그렇게도 볼 수 있지요. 또한 더불어서 아! 가지고 있으면서도 가진 것을 만족할 줄 모르는 것...여러분 세상의 것이 그렇잖아요. 우리가 가지고 있으면서도 가진 것을 만족 할 줄 모르는 것. 그게 세상의 것입니다. 그런데 가진 것을 만족 할 줄 모른다..그것만큼 불행한 일이 있을 수가 없지요. 그 자체가 불행한 겁니다. 그런데 오늘 밸릭스 총독이 그러한 사람이었어요. 그러면서 또한 2년 동안에 지난주에 살펴 봤잖아요. 그냥 바울을 구류해 두었어요. 왜냐? 유대인들의 마음을 얻고자 해서. 이게 정치인들의 마음이지요. 오늘 본문에 보면 베스도 총독이 나오는데 베스도 총독 또한 마찬가지로 9절에 보면 베스도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더러 물어 무슨 말입니까? 정치인들은 여론 따라 움직이는 것 아닙니까? 아무리 옳은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행함으로 옮길 수 없는 것은 여론 따라 움직이는 것입니다. 여론 따라서 움직일 수 밖에 없는 비참한 현실들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또 여기에 베스도 총독에게 찾아온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 여러분 이 아그립바왕과 버니게에 대한 설명을 이해를 하셔야 되는데 여기에 아그립바 왕은 아그립바 2세입니다.그의 증조부가 누구냐? 예수님이 태어났을 때에 유아학살 정책이 있었잖아요. 거기에 주인공이 헤롯입니다. 그가 바로 이 아그립바 왕의 증조부입니다. 그리고 세례요한의 목을 잘라버린 사람이 바로 이 헤롯입니다. 그리고 자기의 선친은 누구냐? 아그립바 1세인데 야고보를 죽이고, 베드로를 옥에 가둔 사람입니다.
그래서 자기 증조부와 선친이 비참한 말로를 맞이했거든요. 자기 선친은 여러분이 잘 알듯이 벌레에 물려서 비참하게 죽어갔습니다. 자 이런 상황이 되니까 베스도가 예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바울을 잡아두고 있다고 하니까 그 예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있는 바울을 만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그게 아그립바의 마음이었어요. 그리고 이 아그립바와 함께 같이 따라 나왔던 버니게라는 여자는 누구냐? 성경에 보면 앞에 나오는 밸릭스 총독의 아내 두루실라가 나오지요. 그와 함께 자매지간이었다해요. 그런데 이 여자가 시대의 요부입니다. 무슨 말이냐? 친 삼촌과 결혼해서 다시 이혼하고, 둘러찼어요. 또 길리기아 왕. 그 당시에 길리기아를 로마가 장악하고 있었는데 그 길리기아 왕에 폴린 왕이라고 있었는데 그 왕과 결혼했다가 또 다시 둘러차고 아마 힘도 있었지요 여자가 남자를 둘러찼으니까...그리고 지금 이 아그립바 2세는 자기의 친 오빠입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불륜관계를 하고 있어요. 이 아그립바 2세,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 이 사람을 보면서 오늘 23절에 그렇게 말씀 하고 있어요. 이튿날 아그립바와 버니게가 크게 위엄을 갖추고 와서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겉모습은 위엄스럽고 대단하고 힘 있는 것처럼 보이고 화려한 것처럼 보이지만은 그 내면에는 온갖 부정부패와 온갖 음란과, 온갖 우상숭배로 가득 차 있는 이 아그립바와 버니게 그러나 그 앞에선 전도자 바울은 초라하고 보잘 것 없어 보이지만은 그러나 그 내면에는 복음이면 모든 사람을 살리고 바꿀 수 있다는 그 복음의 능력을 알고 있는 한 사람.
여러분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 지금 우리 세상의 모습 아닙니까? 겉모습은 대단하고 화려합니다. 엄청납니다. 뭔가 한 손으로 모든 나라를 쥐고 흔들 수 있는 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내면에는 하나님을 떠나서 철저하게 부정부패 속에, 우상 속에, 교만 속에 완전히
사로잡혀 있는 것과 함께 그 앞에 서 있는 바울은 힘없어 보이고 초라해 보이지만. 죄수의 신분으로서 서 있는 모습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세계를 복음화 할 수 있다는 다시 말해서 그 어떤 두려움과 핍박 속에서도 당당할 수 있는 복음의 능력을 가진 바울, 여러분 누가 성공자 입니까? 지금 우리 세상을 말씀하고 있는데요. 과연 도대체 누가 성공한 자입니까? 아그립바 왕이나 버니게, 또 베스도 총독까지 올랐습니다마는 사람들의 눈치를 봐야하고 인기가 어떻게 될까? 명예가 어떻게 될까? 자기 자리가 어떻게 될까? 늘 거기에 노심초사하는 이런 부분들.
여러분 우리가 정치인들 보면서 보잖아요. 한마디로 중독입니다. 중독. 참 안타까와요. 뻔히 안될 줄 알면서도 또 나가는 부분들 보면은요, 너무 참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도해야 되겠구나 하는 마음들이 있고, 그들의 내면들 보면 얼마나 힘들까 뭔가 나름대로 드러내기 위해서, 명예를 위해서 나서지만 그러나 그 마음에는 얼마나 허전함이, 공허함들이 있을까? 참 안타까운 주위에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서 기도가 되어집니다마는 실제로 그래요. 정치인들이나 경제인들이나 선거철 되면 점쟁이 집에 가서 문전성시를 이루고요. 왜 그렇습니까? 여론에 대해서 앞으로 어떻게 될까 그 부분에 대해서 알기 위해서. 점쟁이들 찾아가는 것 아닙니까? 경제인들도 마찬가지이고요. 참 불쌍한 겁니다. 그런데 겉으로는 보잘 것 없어 보이지만 그러나 거기에는 핍박과 두려움에도 당당할 수 있는 복음의 능력을 아는 사람. 이 사람이 바울이었어요. 중요한 것은 내 안에 무엇이 있느냐 입니다. 물론 높은 사람들이 악하다는 그 말이 아닙니다.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좋다. 그런 극한 말이 아닙니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도 복음의 능력을 아는 좋은 사람들이 있을 수 있고요, 또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도 더 악한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무엇이 있느냐 입니다. 바울은 세계를 변화 시킬 수 있는 오늘 뒤에 나옵니다마는 죽은 자의 부활. 복음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어요. 이게 참된 성공자입니다. 여러분 복음 가지고 있다..그 자체가 성공자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제가 2부예배전에 고3 기도회가 있어서 잠시 말씀을 가지고 나누었습니다. 제가 그 자리에서 우리 고3들에게 이야기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다른 자의 인생으로 가도록 만드셨다. 지난 주의 제목을 가지고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주의 제목이 “내가 가이사께 상소하리라”하나님이 여러분을 세계복음화 하기 위해서 다른 자의 인생으로 부르신 것이다. 그 일을 위해서 수능이 한 과정의 과정을 거칠 뿐이다. 이미 여러분의 인생은 하나님께서 분명한 여러분을 향한 계획과 목적을 가지고 여러분 전체 인생을 놓고 인도해 나가신다 라는것. 말씀을 같이 나누었습니다. 그러면서 진짜 참된 성공자는 복음 가진 자가 성공자이고, 지금 모든 현장에 렘런트들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무너지고 성공한 자들이 무너지는데 그 성공자들을 살리는 성공자가 되어야 된다라는 것. 그렇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참된 복음가진 성공자가 되었기 때문에 현장에서 성공자를 살리는 성공자로 살아가는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열왕기하 5장에 보면 아람나라 장군인 나아만. 왕 앞에 크고 존귀한 자로, 왕이 볼 때 크고 존귀한 자로 인정했어요. 그런데 그 나아만에 대해서 이야기 하기를 큰 용사다 했어요. 그리고 바로 이어서 큰 용사나 문둥병자였더라. 이게 지금 세상이고 이게 지금 세상의 성공자 들입니다. 큰 용사나 문둥병자 였더라. 그런데 거기에 포로로 끌려온 계집아이 하나로 말미암아 결국 나아만이 살게 되어 졌어요. 복음가진 계집아이..비록 신분은 노예신분, 포로 신분이었지만. 계집아이 하나로 말미암아 결국 나아만이 살게 되었어요.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에게 복음 주신 이유는 바로 저와 여러분의 현장에 성공자들을 살리는 참된 성공자의 응답을 누리게 하기 위해서 복음의 축복을 주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성공자를 살리는 것은 우리의 삶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규모를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돈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삶에 대해서, 규모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면 유대인들 절대 못 살립니다. 그들은 철저합니다. 삶 자체가 철저해요. 얼마나 규모적입니까? 절대 유대인들을 복음 못 전합니다. 돈 가지고요? 여러분 재벌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복음 전할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2. 죽은 자의 부활
그들을 살릴 수 있는 것은 성공자를 살릴 수 있는 것은 두 번째 생각해야 될 부분들인데 죽은 자를 살리는 부활의 역사. 죽은 자의 부활. 이 자체가 성공자를 살리는 것입니다. 죽은 자의 부활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예수 생명을 말하는 것입니다.복음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복음 때문에 자기는 나는 가이사께 상소하노라 고백 했어요.
무슨 말이냐? 하나님의 소원을 바울은 마음에 간직했어요. 그 당시에 로마가 수도로서 전 세계의 정치, 경제, 문화가 총 집결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딱 한 가지 죽은 자의 부활. 이 복음의 역사가 없어서 망하고 있는 그 현장을 본, 하나님의 마음을 바울이 가진 겁니다. 그러니까 나는 가이사 앞에 상소하노라 모든 것 다 가졌지만 복음 하나 없는 이 로마를 향해서 나는 죽어도 살아도 상관없다라는 것, 이 복음이 저 로마에 증거될 수 있다면 이게 사실 바울의 마음 이전에 하나님이 로마를 향한 마음이었지요. 복음이 없는 로마를 향한 마음 모든 것 다 있지만 복음 없는 로마를 향한 마음이었어요. 이 고백을 바울이 하게 됩니다. 그리고 여기에 이 말씀의 고백 속에는 바울은 복음이면 로마를 바꿀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어요. 복음이면 로마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 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복음보다 이 땅에 더 강하고 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여러분 가정에 문제가 있습니까? 여러분 자녀들에게 문제가 있습니까?여러분 사업장에 기가 막힌 문제가 있습니까? 복음이면 됩니다. 이 확신 있고, 이 능력 믿는 믿음이 있다면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나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내 자녀의 모습은 이래서 안된다. 내 산업 현장을 보면서 이 환경들이 너무 어려운데 이 불신앙의 말 때문에 그 자체 때문에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어떤 환경과 사건들이 있다 해도 복음이면 된다라는 그 믿음 고백하는 그 순간부터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나는 가이사께 상소하노라 이 말의 중요한 의미중의 하나는 그 어떤 로마의 막강한 힘이라 할 지라도 이 복음으로는 바꿀 수 있다는 그 확신이 있었어요. 흘러온 로마의 모든 흐름들을 복음으로면 하루아침에 완전히 바꿀 수 있다라는 그 복음의 능력에 대한 확신이 있었어요. 이 축복의 능력을 가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왜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셔야 했습니까? 죽은 자의 부활이지요. 바울이 증거 한 복음의 핵심. 죽은 자의 부활. 바울이 사도행전 23:6절에 보면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요. 자기가 바리새인으로서 자기가 심문받는 것은 23:6절에 보면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로 말미암아 내가 심문을 받는다 했습니다. 안 된다는 그 불신앙의 말 그 자체 때문에 안 되는 겁니다. 그러나 그 어떤 환경과 사건이 있다 할지라도 복음이면 된다는 그 믿음 고백하는 그 순간부터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나는 가이사께 상소하노라 이 말의 중요한 의미 중에 하나는 그 어떤 로마의 막강한 힘이라 할지라도 이 복음으로는 바꿀수 있다라는 그 확신이 있었어요. 흘러온 로마의 모든 흐름들을 복음으로 하루아침에 완전히 바꿀 수 있다는 그 복음의 능력에 대한 확신이 있었어요. 이 축복을 가지는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왜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야 했습니까? 죽은 자의 부활이죠. 바울이 증거한 복음의 핵심, 죽은자의 부활. 바울이 사도행전 23장 6절에 보면 그렇게 말씀하고 있죠. 자기가 바리새인으로서 자기가 심문 받는 것은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로 말미암아 내가 심문을 받노라” 했습니다.
왜 바울이 죽은 자의 부활, 이 비밀들을 증거 했느냐? 다른게 아닙니다. 이것만이 인간에게서 하나님 만나는 길이 되시고 이것만이 죄의 권세 아래 사로잡혀 있는 인간이 해방 받는 길이 되고 이것만이 인간이 사탄의 운명 가운데서 빠져 나올 수 있는 길이 되고 그래서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한 그리스도, 그 증거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기 때문에 바울은 죽은 자의 부활, 여기에 생을 건 사실들을 보게 됩니다.
로마서 5장 8절에 보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정하셨느니라” 여러분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 했다는 그 증거로 죄와 저주와 재앙의 문제, 사탄의 문제, 하나님을 떠난 문제를 해결했다는 그 증거로 죽은 자 가운데 있지 않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생명으로 주셨습니다. 이 죽은 자의 부활로 말미암아 저와 여러분이 마귀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어요. 이 죽은 자의 부활로 말미암아 죄의 종에서 의의 종이 되어진 것입니다. 이 죽은 자의 부활로 말미암아 멸망의 자리에서 영생의 자리에 이르는 것입니다. 죽은 자의 부활, 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수생명, 이 죽은 자의 부활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루신 이 역사를 알고 누리는 귀한 전도자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구원 받았다는 것은, 우리가 예수생명 가졌다는 말이죠. 죽은 자의 부활이 무엇을 말합니까? “예수생명” 이라는 말이에요. 그 생명 가졌다는 것, 그게 구원 받은 자라는 것이고 예수생명 가진 자는 바로 그 안에 성령이 임한 자를 말합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 2절에 보면 “생명의 성령의 법”이라고 했어요. 바로 성령이 임한 그 자체를 가지고 생명을 가졌다라는 거예요. 생명을 가졌다는 자체가 하나님의 성령이 내안에 임했다는 말이에요. 그래서 생명의 성령의 법이라는 말입니다. 이 하나님의 생명 가진 자는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자녀의 축복을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이 생명의 역사를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그게 우리가 받은 축복입니다. 이 예수생명 가진 자, 죽은 자의 부활의 비밀을 가진 자는 그 어떤 것으로도 정죄 받지 않습니다. 정죄할 자가 없어요. 그래서 로마서 8장 1절에 보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말씀했어요. 이 죽은 자의 부활, 이 복음의 비밀, 예수생명의 비밀 아는 자가 기도하면 흑암의 권세가 꺾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흑암의 권세가 꺾이는 거기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감옥에 있었지만 감옥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자리가 되었어요. 바로 생명의 비밀 가지고 흑암 꺾는 역사 속에 있었으니까.. 그리고 정말 예수생명 이 비밀 가진 자는 이 땅의 그 어떤 문제와 어려움이 있다할지라도 결코 망하지 않고 승리하게 되어 있다라는 사실들이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로마서 8장 31-39절을 한번 찾아서 읽어봅시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고 흑암의 세력과 죄의 저주와 지옥의 배경을 완전히 해결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에 이런 일, 저런 일을 당할 수 있어요. 그러나 상관없습니다.
왜냐?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승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8장 31-39절을 한번 교독하겠습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이미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문제를 끝냈기 때문에 죄의 저주의 권세, 사탄의 운명, 모든 지옥의 권세를 끝냈기 때문에 이런 일, 저런 일을 당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자녀, 예수생명가진 자는 반드시 승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비밀들을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이야기 하니까 유대인들이 자기들이 믿고 있는 유대교, 그 믿는 유대교에서 많은 사람들이 빠져 나가거든요.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많이 세워지거든요. 그러니까 위기를 당한 겁니다. 그리고 또한 유대인들이 율법을 행해야 구원 받는다고 했는데 바울과 성도들이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 받는게 아니라 예수 믿어야 구원 받는다고 하니까 자기들의 종교가 무너지는 위기가 온겁니다. 그러니까 생을 걸고 복음의 역사를 막는 이 사실들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이 복음의 역사들은 아무도 막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 하나님께서 진행하고 계시는 것이 복음의 역사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그 속에 있음을 확신하시고 세상의 그 어떤 일들과 문제와 사건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고 우리를 세상에서 넉넉히 이기는 존재로 우리를 세워주셨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의 최고의 약속. 사탄을 꺾으시고 운명을 바꾸시고 지옥 배경을 바꾸신 그리스도를 하나님이 우리에게 생명으로 주셨습니다. 죽은 자의 부활, 생명으로 주셨어요. 그렇다면, 이 복음의 역사를 가지고 복음이면 된다라는 이 확신 가지고 “내가 가이사께 상소하노라.” 여러분의 가정에 도전하시고 사업에 도전하시고 자녀의 현장에 도전하시고 여러분의 문제 있는 현장에 도전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증거를 누리는 전도자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4년 11월 2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내가 가이사께 상소하노라
(행25:1-12)
서론: 오늘 본문은 벨릭스 총독이 임기 2년을 마친 후 베스도 총독이 가이샤라에 오게 되는 배경입니다. 베스도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 그곳의 유대인과 제사장들이 바울에 대해 또 고발하였고, 가이샤라에까지 함께 내려와 바울을 법정에 세웠습니다. 그리고 베스도 총독의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심문을 받지 않겠느냐?’는 제안에 바울은 가이사께 상소를 한다고 했습니다. 재판의 동기는 딱 한가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한 문제뿐이었습니다. 이처럼 배후에는 악한 사탄이 복음을 막고자하는 공격을 계속 해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단 한번도 복음 가진 자를 막지 못하고 사탄의 공격은 오히려 전도의 문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가진 자가 맞다면 우리에게 있는 어떤 문제라도 복음 전하는 문이 될 것입니다.
1. 성공자의 내면
(1) 모든 사람들은 성공을 위해 달려갑니다
1)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지혜,축복)으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정복하고 다스리도록 되어있음
2) 그러나 창3,6,11장의 배후 가운데(마4:8 예수님도 시험), 인류의 성공은 말세로 갈수록(딤후3장) 결국은 무너짐
3) 그래서 복음 없이 성공하면 욕망에 사로잡히고(창11:4) 공허함과 집착, 중독 가운데 고질적 영적문제로 실패함
(2) 복음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 참된 성공자입니다.
1) 복음을 모르면 성공해도 돈(벨릭스), 여론(베스도), 부정부패와 음란, 우상숭배(아그립바왕, 버니게)에 빠지게 됨
2) 바울은 초라하고 보잘것 없는 겉모습이었지만, 모든 것을 살릴 수 있는 복음의 능력을 알고 있는 사람
3)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오직 복음으로 성공자를 살리는 성공자임(나아만 장군을 살린 포로로 끌려온 계집아이)
2. 죽은 자의 부활
(1) 바울은 하나님의 소원을 마음에 담고 있었기에 가이사에게 상소했습니다.
1) 모든 것이 있지만 단 한가지, 복음이 없는 로마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바울은 알고 있었음
2) 바울은 복음이라면 로마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는 복음의 능력에 대한 확신이 있었음
(2) 죽은 자의 부활로 말미암아 = 오직 예수 생명
1)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롬5:8)
2) 오직 예수 생명만으로만 - 하나님 만나는 길, 죄와 저주에서 해방, 사탄의 권세에서 빠져나옴
(3) 구원 받은 자는 생명을 가진 것입니다. (성령이 함께하심)
1)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이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하심(롬8:2)
2) 흑암권세는 꺾이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여, 어떤 환란에서도 망하지 않고 결국 넉넉히 승리함(롬8:31-39)
결론: 하나님의 최고 약속은, 사탄을 꺾고 운명을 바꾸며 지옥배경을 깨뜨린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생명으로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죽은 자의 부활’의 증인으로서, 오직 복음의 확신만 가지고 가이사 앞에 서면 됩니다. 한주간 가정과 사업, 자녀현장과 모든 문제에 도전함으로 하나님의 증거를 누리시길 바랍니다.
< 기 도 문 >
하나님 아버지, 말세의 재앙시대를 맞이하여 악한 사탄이 복음 막는 공격을 하는 것을 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전도의 문으로 열어주실 것을 믿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성공을 향해 달려가는 이때에, 오직 복음으로만 성공자를 살리는 성공자가 되길 원합니다. 한주간 하나님의 소원을 마음에 담고 죽은 자의 부활, 오직 예수 생명으로 가이사 앞에 서고, 시대와 현장에 도전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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