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성령이 아시아에서
2014-07-1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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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3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성령이 아시아에서”
(행16:6-10)

6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7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8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9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10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 행16:6~10

■ 할렐루야, 모든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성곽 없는 성읍의 축복을 누리십시오! 오늘 2부 예배 참여한 여러분 모두 지난 한 주간 어떤 삶을 사시다 오셨든지, 또 어떤 문제와 상황 가운데 계시다가 여기 오셨든지 상관없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한 가지만 집중하시면 됩니다. 성령충만. 여러분, 모든 것 가지고 성령충만 속에 들어가는 가장 귀하고 복된 시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이 승리하려면 기도 속에서 자신의 것을 찾아야 합니다. 기도 속에서 자신의 것을 찾아내야 하는데 우리가 기도에 집중하게 되면 말씀에 집중하게 되고, 또 말씀에 집중하게 되면 이상하게 여러분 하는 일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나는 말씀에 은혜 받고 말씀에 집중하는데 하나님은 내가 관계된 현장에, 일에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키시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하루를 시작하면서 반드시 여러분이 회복해야 할 부분들이 있다면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얻는 깊은 기도의 시간이 여러분에게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로 말미암아 힘을 얻고 답을 얻고, 행복한 시간이,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는 그런 시간이 내게 있게 될 때, 그 때부터 참된 하나님의 역사가 여러분이 관계된 모든 현장에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주위에 있는 분들이 여러분을 바라보면서 참 대단하다, 존경한다 할지라도 여러분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찾는 기도의 비밀이 없다면 결국에 가서는, 나중에 가서는 무너지고 실패하는 인생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정말로 주님이 주시는 힘을 얻는 그런 깊은 기도의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사실은 여러분, 돈도 나의 것이 아닙니다. 나를 위한 것이지, 나의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 사업도 나의 것이 아닙니다. 나를 위한 것이지. 그런데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에게만 주신 것이 있습니다. 내게 주신 것이 있는데 그게 바로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성령께서 우리 안에 함께 하시고 우리를 인도하시는 사건입니다. 그래서 지난 주간에 본부 메시지 가운데서도 말씀 나왔습니다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인치시고, 도장 찍었다는 말씀입니다. 인치신 자들에게 보증으로 무엇을 주셨느냐, 성령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상황과 문제와 일들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전부 응답으로 바뀌게 되어 있습니다. 어려움도 있을 수 있습니다. 문제와 사건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또 예수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핍박과 환란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신 그 분은 우리를 우리보다 더 잘 아시는 하나님이시고,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될 때 우리의 모든 것들이 전부 다 응답으로 바뀐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여러분 잘 아시는 내용입니다. 바울의 2차 전도여행 가운데 하나님께서 원했던 성령의 역사를 주심으로 말미암아 바울이 원했던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고 그 길을 막으시고 새로운 길로 인도하시는 사건이 오늘 본문에 나오고 있습니다. 그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새로운 인도를 받아 나갔는데 그 걸음이 바울이 어떻게 그렇게 될 줄 알았습니까? 유럽을 바꾸는, 세계사를 바꾸는 전환점이 되는 그런 걸음들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인도를 받을 때 하나님께서 길을 막으시기도 합니다. 왜냐?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가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될 때 새로운 현장의 응답의 문을 여시기도 합니다. 왜냐? 오늘 본문 같은 경우에는 하나님의 성령께서 바울의 걸음을 막으신 사건입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8장 같은 곳은 새로운 현장으로, 광야로 하나님의 성령께서 빌립을 이끌어 간 사건이 나옵니다. 그렇습니다. 새로운 문을 여시기도 하고 막으시기도 합니다. 그런데 성령의 역사를 받게 되면 바울의 걸음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 있습니다. 1차 전도여행을 통해서 소아시아만 생각했는데 2차 전도여행을 나서는 이 바울의 걸음 속에 유럽을 준비해 주시고 그리고 3차 전도여행 속에서는 결국은 로마와 저 스페인까지 보게 하시는, 그 지경을 넓혀가시는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신앙 생활이라고 하면 여러 가지, 이것도 신앙 생활, 저것도 신앙 생활, 말씀을 많이 들을 수 있지만 신앙 생활이라는 것은 한 마디로 말하면 무엇이냐? 성령의 인도 받는 것. 성령의 인도 받는 것이 신앙 생활입니다. 지금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를 받느냐? 그것이 모든 것들을 좌우합니다. 지난 주간에 우리가 말씀을 받았습니다. 맥추감사주일을 지내면서 맥추절, 다른 말로 오순절, 또 칠칠절이라고도 합니다. 그 앞에 오순절의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축복이 유월절의 축복이고, 또 오순절의 축복을 누리는 자들이 당연히 누려야 할 수장절에 대한 축복, 이 세 절기, 유월절, 오순절, 수장절에 대한 부분을 잠시 살펴보았습니다만 사실 유월절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순간에 이미 우리에게 끝난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구주로, 주인으로 영접하는 순간 여러분은 과거의 운명과 저주와 재앙과 팔자 속에서 완전 해방 받았습니다. 그게 유월절의 축복입니다.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 앉은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유월절의 축복이 이미 다 임한 것입니다. 그리고 수장절은 무엇입니까? 결국은 세계복음화하는 것이고 결국은 우리가 천국 가는 것인데 그것은 나중에 당연히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인도를 받느냐?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를 받느냐? 그래서 맥추절은 마가다락방의 응답이고 오순절의 응답입니다. 그래서 맥추절을 다른 말로 일컬어서 오순절이라고도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지금 내가 성령의 인도를 받느냐, 그게 모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목사가 여러분을 섬기고 또 심방도 하고 병든 자를 찾아가서 기도도 하고 위로하고 어려움 당하는 자들에게 힘도 주고 합니다. 그런데 목회라는 것은 무엇이냐? 물론 심방 열심히 하고 또 어렵고 힘든 자들 찾아서 위로하고 힘주고, 또 기도해 주고, 목회 맞습니다. 잘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한계가 있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심방하고 어려운 자들을 살핀다 할지라도 뭔가 모르게 섭섭한 마음을 가질 수 있고 뭔가 왜 여러분들을 안 돌아보느냐, 교회에 대해 불평스런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사실 아무리 잘 해준다 할지라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물론 그것도 목회이지만, 그렇게도 해야 하지만 목회란 무엇이냐,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정확한 성령의 인도를 받도록 하는 것, 그것이 바로 목회인 것입니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되면 그 성령의 인도는 완벽한, 완전한 인도이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성도들로 말미암아 성령의 인도를 받도록 하는 것이냐, 그 중심에서 이것도 계획해 보고 저것도 계획해 보고, 또 때에 따라 밀어 붙여 보기도 하고 때에 따라 느슨하게 그냥 놔둬 보기도 하고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왜냐? 성령 인도가 우리 신앙 생활에 가장 중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한다 할지라도 성령 인도를 받지 않으면 오히려 그 열심히 신앙 생활하는 것이 도리어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것이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에베소 4장 30절에 보면 성령을 근심케 하지 말라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때에 따라서 진짜 성령의 인도 받도록 밀어붙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그냥 가만히 있다 보면 나도 모르게 성령을 소멸하게 되니까, 데살로니가전서 5장 19절에는 성령을 소멸치 말고 했습니다. 정확하게 성령께서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시고 역사하시는데 어떻게 그 성령의 인도를 받도록 하는 것이냐, 그게 목회인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 생활이 무어라고 생각하십니까? 성령 인도 받는 것입니다. 혹여나 신앙 생활 열심히 해야지, 네, 물론 게으르라는 말이 아닙니다. 열심히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열심히 하는 것이 신앙 생활이 아닙니다. 착각하지 마십시오. 열심히 하는 것을 신앙 생활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오히려 기독교에 교회 다니는 사람보다 다른 일반 종교에서 훨씬 더 열심히 믿는 사람이 많습니다. 지난 주간에 우리 대학부에서 자체 수련회 1박 2일로 현장 중심에서 무속 사역 현장들을 보고 또 무속 가운데 있던 분들의 간증도 듣고 메시지도 나누고 포럼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우리 대학생들이 팔공산 갓바위에도 가 봤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우리 대학생들이 가서 본 현장이 이것 아닙니까? 부모가 아이를 데리고 와서, 기도하는 곳이 이곳이고 너는 기도 이곳에서 해야 하고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 아이에게 가르치는 겁니다. 여러분, 팔공산 올라가 보셨지 않습니까? 갓바위 올라가 보셨지 않습니까? 거기에 여간한 정성 가지고는 올라가지 못합니다. 우리는 새벽기도 나오라 하는데도 그렇게 힘들어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무당이나 실제로 신 받아서 점술하는 사람들 보면 다른 사람들보다 부지런합니다. 새벽에 가서 기도하고 냉수목욕하고 여러분, 다른 사람들보다 더 부지런합니다. 오히려 기독교만큼, 훨씬 더 부지런한 것이 일반 종교입니다. 열심히 믿는 것이 일반 종교입니다. 그런데 열심이 신앙 생활이 아니고 성령의 인도 받는 것이 신앙 생활입니다. 또 어떤 분은 그래도 착해야지, 교회 다니면서 착해야지, 물론 착해야 합니다. 또 우리 주일학교 보내는 부모님 가운데 어떤 분들은 세상이 워낙 좀 이상하니까 교회 보내면 그래도 아이들이 바르게, 반듯하게 자랄 수 있지 않겠나 이런 마음에서 주일학교를 보내는 부모도 있습니다. 물론 착해야 합니다. 반듯하게 자라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착하게 사는 삶이 우리 신앙의 목표는 아닙니다. 성령의 인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의를 드러내는 것, 그게 신앙 생활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은연 중에 자신의 의를 드러내는데, 자신의 의를 드러내게 되면 결국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 악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의를 드러낸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종교를 말하는 것입니다. 종교는 자기 의를 드러내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종교에 빠지면 결국 마태복음 12장 43절~45절에 있는 말씀처럼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어서 그 가운데 “더 악한 귀신 일곱”이 들어온다 했습니다. 자기의 의를 드러내는 것, 그것은 신앙 생활이 아닙니다. 성령의 인도 받는 것이 신앙 생활입니다. 그리고 또 반대로 말해서 우리가 구원 받았으니까 됐다, 마음대로 살자, 내 맘대로 살아간다, 모든 것 끝났다, 내 맘대로 살아간다, 그것은 반율법주의입니다. 지금 구원파가 사회적인 부분에 많은 문제를 가져오고 있는데, 구원파가 주장하는 것이 반율법주의입니다. 구원받았으니 끝난 것이다, 내 삶은 아무렇게나 살아가도 괜찮은 것이다, 정말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다 끝난 것이지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 끝난 것이지만, 그러나 지금 내가 어떻게 신앙 생활, 성령의 인도 받는 것이냐 그게 신앙 생활입니다.
그러면 성령의 인도 받는 것이 모든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에게 전부인데 우리가 어떻게 하면 신앙 생활의 전부인 성령의 인도를 받느냐?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분, 먼저 잘 알아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와 역사는 그냥 우리가 느낌으로 우리의 감정을 따라서 하는 어떤 힘과 어떤 능력이 아닙니다. 정확하게 알아야 거기에 성령의 인도와 역사가 정확하게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로마서 10장 2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께 열심은 있는데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라 했습니다. 하나님께 열심히 있는데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있다고 해서 성령의 인도받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이예요. 올바른 지식을 가져야 합니다. 제대로 알아야 된다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저와 여러분이 성경을 읽었습니다. 6절에 “성령이 아시아에서”7절에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는지라” 그러면서 9절에도 보면 중반쯤부터 보면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여러분 우리가 제대로 정확하게 올바르게 알아야 되는데 바로 성령은 예수의 영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영화롭게 하는 그 영이 성령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의 영”이다.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신지라 ..성령이 아시아에서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7절 마지막에는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신지라” 바로 예수의 영,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제대로 성령의 인도를 받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거기에 성령의 정확한 인도하심과 역사가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먼저, 우리가 먼저 성령인도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1. 복음의 색깔(시작)
우리의 복음의 색깔이 무엇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가진 복음의 색깔이 무엇인가? 이것이 바로 성령의 인도받는 시작이 되어 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복음의 색깔이 어떤 것입니까? 여러분 우리가 복음을 안다, 모른다 그렇게 쉽게 말들을 합니다. 여러분 복음을 알면 얼마만큼 알고, 모르면 얼마만큼 모릅니까? 그리고 우리가 복음을 많이 알아야 구원 받습니까? 또, 복음을 적게 안다고 구원받지 못하는 것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빠져나오게 될 때에 유월절 양의 피를 문설주 좌우에 발랐잖습니까? 그 문설주 좌우에 바른 피가 많든 적든 상관없이 바른 집은 재앙이 넘어 갔어요. 우리가 많이 안다 적게 안다 그 부분이 아닙니다. 그러면 중요한 것은 뭐냐? 왜 역사가 일어나지 않느냐? 다른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알긴 아는데 우리의 복음의 색깔이 오직 그리스도, 오직 복음이 안 되어서 그렇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 곳이 있습니다. 마태복음17:7절에 보면 “너희가 무엇을 보러 광야에 나갔더냐? ”했습니다. 복음에 대한 색깔을 지금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16:13~1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었지요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복음의 색깔을 이야기 한 것입니다. 또 요한복음21:15~18절에 보면 실패해서 고기 잡으러 자기 고향으로 떠난 베드로에게 주님께서 찾아오셔서 네가 무엇을 하느냐 어떻게 하느냐 그것을 묻지 않았습니다.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물었습니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복음의 색깔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유대인들이 왜 일곱 번이나 역사 속에서 재앙가운데 반복해서 실패했느냐? 원색적인 복음이 아닌 다른 복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복음을 모른다는 말이 아닙니다. 복음의 색깔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현대교회가 위기 가운데 빠졌습니까? 교역자들이 왜 무기력 가운데 빠졌고, 성도들이 현장에서 왜 방황합니까? 거기에 대한 답이 어디에 있느냐? 복음에 대한 색깔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냥 아무렇게나 복음, 복음 이야기하잖아요. 누구나 복음, 복음 다 안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정말로 우리에게 복음이 오직 그리스도, 오직 복음이냐? 우리는 그냥 복음이 아닙니다. 오직 복음이어야 합니다. 오직 그리스도여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색깔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지난주에도 말씀 드렸습니다마는 신앙생활 하면서도 우리의 기준과 배경이 세상적인 보이는 것, 육신적인 것들을 우리의 배경과 기준으로 갖고 있어요. 그래서 보이는 것을 따라 가고요, 악한 사탄이 그것을 가지고 속이는 것 아닙니까? 사탄이 하와에게 와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게 할 때 뭐라고 했습니까? 선악과를 보여주면서 그것이 사탄의 말을 듣고 하와가 그 열매를 보니까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탐스럽기도 한 열매인지라 했어요. 악한 사탄이 보는 것 가지고, 육신적인 것을 가지고 세상 사람들을 어디로? 멸망 가운데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보이는 것, 세상적인, 육신적인 것, 돈, 권력, 물질 그 어떤 것도 우리의 배경과 기준이 되면 안 됩니다. 오직 복음, 오직 그리스도가 우리의 배경과 기준이 되고 우리의 색깔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들을 한번 보십시오. 결국은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세상 보이는 것 기준해서, 또 내 기준으로, 내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잖아요. 누가 나에게 잘해주면 좋은 것이고, 누가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나를 섭섭하게 하면 나에게 싫은 것이고, 전부 기준이 내 중심 이예요. 그것도 아닙니다. 오직 나의 기준은 뭐여야 되느냐? 그리스도, 오직 복음, 오직 그리스도가 나의 기준과 배경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특별히 우리가 우리 자신들을 바라보면서 왜 오직 그리스도여야 하느냐? 진짜 우리 자신과 현장을 제대로 안다면 오직 그리스도, 오직 복음이라는 답이 내려질 수밖에 없는데 이것을 잘 모르고 있다는 말이지요. 그러면 왜 오직 복음이어야 하느냐? 우리의 색깔이 왜 오직 그리스도여야 하느냐? 오직 복음이어야 하느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전에 성경 구약에 하신 말씀을 보시면 됩니다. 창세기3:15절에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창세기3장에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자 말자 하나님께서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답을 주셨는데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했어요. 이 말들을 유대인들이 못 알아 들었어요. 구약시대의 사람들이 거의 못 알아 들었어요. 지금도 사람들이 이 말을 못 알아 듣고 있어요.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이 말을 알아듣는 순간에 모든 흑암과 저주의 역사들이 무너져 내리고, 모든 축복의 응답의 문들이 열려지게 되어 있는데 이 말을 못 알아 들어요. 유대인들도 지금 사람들도 그래서 천주교에서는 못 알아 들었다는 증거가 뭐냐? 여자를 높혀요. 그래서 마리아 이름으로 기도해도 된다고 나와요. 그리고 마리아 무태설을 주장함으로 마리아도 원죄가 없다고 주장하고 나와요. 뭔가 잘못 본 것이지요. 이번 8월 달에 로마 카토릭 교황이 우리 한국에 방문한다고 합니다마는 정말 기도해야 됩니다. 모든 종교 개혁자들이 이 마지막시대에 적 그리스도 중에 적 그리스도가 누구냐? 교황으로 잡고 있어요. 그리고 실제로 성경을 봐도 그렇고요, 마지막 시대에 모든 종교를 일치 통합 시키면서 WCC운동 그 근간, 배경에도 있고요, 전부 그 배후에는 카토릭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카토릭 교황이 뭐라 했습니까? 오직 천주교에만 이 땅에서 유일한 교회라고 했어요. 그러면서 뭐라고 한 줄 아십니까? 예수 믿음으로만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착한 선한 일을 행해도 구원받는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것이 지금 천주교에서 들고 나온 내용입니다. 무엇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입니다.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이 원시복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입니다. 여자의 후손이 무슨 말입니까? 사람으로는 우리를 구원할 자가 없다라는 사실. 김씨로도, 이씨로도, 최씨로도 안 된다는 사실 이예요. 오직 “여자의 후손” 그리스도로만이 우리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 해야 합니다. 오직 그리스도만 뱀의 머리를, 사탄의 머리를 깨트릴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주일 예배 드릴 때마다 신앙고백을 하잖아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같은 말입니다. 여자의 후손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은 분명히 살아서 역사하는 악한 사탄이 여러분 교회들마다 11시 되면 물론 다른 시간들도 있지만은 신앙고백을 하잖아요. 전부다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사탄이 벌벌 떠는 시간입니다. 여자의 후손,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창세기4장에 보면 우리의 복음의 색깔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말씀하고 있는데 아벨과 가인 둘 다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벨의 예배를 받으시고, 가인의 예배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가인이 예배를 안 드린 것이 아닙니다. 곡식을 가지고 드렸어요. 곡식 가지고 드리는 것도 예배입니다. 감사의 예물이지요. 그런데 그때 필요한 것은 그 예물이 아니었습니다. 창세기4:7절에 보면 “죄가 너희 문 앞에 엎드려져 있느니라” 했어요. 무슨 말입니까?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피의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피 흘림이 없은즉 죄 사함이 없다” 했습니다. 아벨이 드린 제사가 뭐냐? 피의 제사였어요. 그래서 히브리서11:4절에 “예물이 증거 하심이라” 했어요. 복음의 색깔이 어떤 색깔이냐? 똑같이 복음 복음 하지마는 어떤 복음을 가지고 있느냐? 진짜 오직 그리스도, 오직 복음 뿐이냐? 그런 고백 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모든 축복의 문들을 여시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복음이 복음 되도록, 복음을 복음으로 누리는, 그런데 대부분이 내 고집과 내 체질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 복음 누린다고 합니다. 어떤 면에서 비유를 든다면 그냥 복음을 덮어 쓰는 것이지요. 내안에 전혀 바뀌지 않고 그래서 고집 부릴 것 다 부리고, 체질대로 살 것 다 살면서 세상적인 체질로 그대로 살면서 복음 이야기 하면서 그 복음 그냥 덮어 쓰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사탄이 무너질 수가 없고 역사가 일어날 수가 없는 것이지요. 창세기 6:14절에 방주 안에 들어가는 자는 다 산다고 했습니다. 방주 안에 들어가는 자는 좋은 짐승이든지 흠 있는 짐승이든지 상관없이 다 살았습니다. 그길 밖에 없기 때문에, 출애굽기3:18절에 보면 모세에게 희생 제사를 드리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에 모세는 단번에 알아차렸습니다. 왜냐? 이미 각인되어서 오래전부터 부모를 통해서 들었던 내용입니다. 질문할 필요가 없었어요. 왜냐? 이미 모세는 희생제사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바로왕은 왕이지만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지 못해 그래서 결국 그 막강한 애굽도, 바로왕도 왕이지만 무너질 수 밖에 없다라는 사실입니다. 모세와 아론이 바로 왕 앞에 가서 이야기 했잖아요. 내 백성을 내어 보내라 사흘 길 쯤 가서 희생을 드리려 한다. 그러니까 출애굽기 5장에 보면 바로 왕이 뭐라 했는가? 여호와가 도대체 누군데..나는 그를 알지 못 한다 그러니까 너희 백성도 내 보내지 않겠다 했어요. 왕이지만 피의 비밀을 모르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무너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성공해도 피의 비밀을 모르면 무너질 수 밖에 없는 거예요. 오직 그리스도 안 되면 무너질 수 밖에 없는 거예요. 바로 왕에게 재앙이 임하니까 나중에 그러잖아요. 그러면 가지 말고 여기서 드려라 합니다. 아니다 사흘 길 쯤 가서 드려야 한다.. 여기서 드리라는 것은 모르고 한 소리지요. 나중에 내어놓게 되지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가진 복음의 색깔이 어떤 것이냐?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난 가운데 있을 때 주신 답입니다. 이사야7:14절에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그 이름을 번역한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우리가 왜 오직 그리스도, 왜 오직 복음 이야기 하느냐? 그 사실이 정확한 만큼 거기에 성령께서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이고 그리스도 이름 붙잡는 거기에 성령께서 역사하시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보세요. 마태가 예수님이 오신 사건을 기록하였는데 마태복음1:23절에 보면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똑같이 이사야 7:14을 그대로 기록했어요. 그런데 이사야7:14절은 이미 700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마태가 하나님께로 받아서 성경을 기록하는데 똑같은 내용을 기록했어요. 지금 우리는 성경을 같이 나와 있는 내용을 들고 다니잖아요. 그 당시에는 이렇게 같이 묶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태가 7백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했던 그 성경을 그대로 기록했어요. 이게 어떻게 이렇게 맞아질 수가 있습니까? 마태복음 16장에 보면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하고 베드로가 고백했습니다. 여기에 반석의 축복과 함께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그러면서 천국 열쇠를 주신다고 했는데 우리가 제대로 그리스도를 알면 엄청난 축복의 역사가,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모든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그 축복의 역사가 나타나게 되어있는데 거의 많은 경우 복음을 깨닫지 못하는 걸림돌이 뭐냐?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거기에 대한 대답이 무엇이었습니까? 예레미야와 세례요한과 엘리야와 선지자 중 하나라 하나이다. 예레미야는 박애주의, 금욕주의, 엘리야는 신비주의를 대표하고, 세례요한은 사회운동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선지자는 종교, 율법주의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안그런척 하고 있지만, 이 네가지 중에 다 걸려있어요. 오직 그리스도가 아니라 이 네가지가 걸림돌이 되어가지고 오직 그리스도가 안되는 겁니다. 내가 어느 부분에 걸려있다, 나에게 있어서 걸림돌이 뭔가? 깨닫기만 해도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 깨닫는 은혜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스도를 고백한 이 제자들 중심으로 또,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7장에 보면 변화산으로 데려 가셨습니다. 거기에서 제자들이 무엇을 봤습니까? 모세도 보고 엘리야도 보고 예수님도 봤죠. 그러니까 베드로가 돈도 없는 주제에 당장 모세와 엘리야와 예수님을 위해서 집 세 채를 짓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게 우리가 가진 복음의 색깔이 아닌가! 베드로가 고백했던 것처럼, 우리 안에 모세나 엘리야 같이 은근히 그런 부분들이 있어요. 그런데 거기에서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결국 우리의 구원자는 모세도 될 수 없고 엘리야도 될 수 없다는 것. 오직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구원자가 될 수 있다라는 사실을 말한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 가지고 있는 근본문제를 해결 한 분은 오직그리스도만 이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 그리스도로 오신 분이 누구시냐? 예수입니다. 만약 그리스도로 오신 분이 석가라면 석가모니를 믿어야 하고 그리스도로 오신 분이 공자라면 공자를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로 오신 분이 예수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만 보이더라 했습니다. 오직그리스도!
결국은 이 그리스도께서 요한복음 19장 30절에 다 이루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서 제자들에게 무엇했습니까? 가서 모든족속으로 만민에게 땅끝까지 복음을 증거하라 말씀하시면서 이 일을 하기 위해서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했습니다. 이 약속 붙잡고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마가 다락방에 모였는데 그곳에 오순절 날에 성령께서 임한 것입니다. 정확한 오직그리스도의 복음을 붙잡으니까 그 모인 자리에, (저 다른 곳에 예루살렘 성전에 모인 것이 아니고 잘 지어진 헤롯 성전에 하나님의 성령이 임한 것이 아니라) 그 보잘 것 없는 마가다락방에, 약속 붙잡은 초대교회 성도들이 모인 그 자리에 오순절 성령이 임했습니다. 약속 붙잡은 초대교회 성도들 모인 그 자리에 오순절 성령이 임했습니다. 사도행전 2장 1절 ~4절에 바람같은 불같은 성령이 임하므로 거기에 전도의 문이 열려지고 말씀이 성취되어지고 제자들이 세워지고 그 제자들로 말미암아 날마다 현장에 역사가 일어나는 엄청난 응답이 일어났습니다.
여러분 중요한 것은 얼마만큼 내가 오직그리스도냐? 우리의 색깔이 오직그리스도냐? 여러분 분명한 것은 오직그리스도 안되면 아무리 몸부림쳐도 결국은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신약성경의 전도자 가운데 오직그리스도의 복음색깔을 가진 사람을 예로 든다면, 바울을 소개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나서 빌립보서 3장 8-20절 보묜 부활의 주님을 누림으로 말미암아 고백한 내용이죠. 나의 지난날 가진 모든 것들을 다 배설물로 여긴다고 했습니다. 오지그리스도밖에 없다라는 거에요. 다 모든 것 배설물로 여긴다. 그러면서 내가 그리스도께 발견 되기를 원한다. 아니 발견됐는데 뭘 또 발견됩니까? 계속 쓰임받기를 원한다는 말이죠. 진짜 오직그리스도의 복음색깔 가진자의 고백입니다. 그러면서 내가 그리스도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쫓아간다고 말씀하면서 그 다음에 말씀하는게 뭡니까?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해서 (지난날에는 이 땅의 세상의 것을 위해 살았는데) 이제는 하늘 보좌의 그 축복을 위해서 살아간다고 말씀하면서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그 고백을 한 자에게 주어지는 축복이 만물이 그 발아래에 복종하는 그 축복을 주셨다고 말씀했습니다. 오직그리스도, 그것이 여러분의 색깔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성령의 정확한 인도하심과 역사하심이 누려지게 되어 있습니다.

2. 각인을 바꾸어야 함(행1:3)
두 번째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성령의 인도를 받느냐? 우리의 각인된 것이 바뀌어 져야 합니다. 우리가 오직 그리스도가 안 되어짐으로 말미암아 우리도 모르게 다른 것들이 우리 안에 들어와서 그게 우리 안에 각인되어 있어요. 성경에 보면 많은 경우 산이 나오고 강이 나오고 바다가 나옵니다. 그런데 그냥 이야기가 아니라 그것은 하나님께서 중요한 각인을 바꾸실 때마다 산으로 부르셨고 바다로 부르셨어요. 중요한 각인을 바꿀때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도 마태복음 5장에 보면 산에 올라가 앉으니 제자들이 나아왔습니다. 그 가운데 무리가 나왔는데 그 무리 가운데 제자들을 따로 불렀습니다. 요한복음 6장에 보면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니까 거기에 많은 사람이 따라 붙었습니다. 무리들이 따라붙었습니다. 거기에서 예수님은 제자를 따로 불러가지고 그 먹는 것 그게 다가 아니다. 내가 생명의 떡이고 나의 주는 음료가 참된 음료라고 말씀하시면서 요한복음 6장 63절에 보면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지난날의 보여진 모든 기적, 먹는 모든 그것은 전부 다 육이라는 것, 필요없다, 무익하다고 했어요. 그러면서 제자들에게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함이라. 중요한 것들을 제자들에게 말씀했어요. 각인을 바꾼 겁니다. 그리고 주는 그리스도시오 고백한 제자들을 불러다가 변화산으로 오게 했습니다. 그 변화산에 왜 부르셨습니까? 각인을 바꾸시기 위해서.. 마태복음 26장 41절에 보면 마지막 단계에 가서 예수님이 감람산에서 제자들과 함께 산에 오르사 제자들에게 기도할 것을 부탁했습니다. 마지막 부분에... 왜? 각인된 것을 바꿔야 하니까.. 그러면서 마무리 하면서 사도행전 1장 3절에 보면 부활의 주님께서 40일 동안 집중해서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다고 했어요. 그러면서 이 약속 붙잡고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그 약속 붙잡고 사도행전 1장 14절에 보면 초대교회가 마가다락방에 머물면서 기다리는데 사도행전 2장 1절에 보면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오순절에 성령이 임한 사건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각인들이 무엇입니까? 그것 때문에 성령의 인도를 못 받아요. 첫 번째로 우리 안에 오직복음 아닌 색깔들 때문에.. 그것 결국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두 번째로 우리 안에 다른 것들이 각인되어 있기 때문에.. 바울은 사도행전 17장 18장, 19장에 보면 회당에 들어가서 인재들을 찾았습니다. 왜 회당에 들어갔느냐? 인재들, 그들의 각인을 바꾸기 위해서입니다.
사도행전 19장 8-10절에 보면 두란노 서원에서 2년 동안 제자들을 따로 모아서 집중해서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했습니다. 왜 그랬냐? 각인을 바꾸어야 하기 때문에 교회 안에 집중훈련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정말 이 한 시대에 하나님의 역사 앞에 후회없는 삶을 살기 원하신다면 집중훈련에 인도 받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왜냐? 집중훈련. 우리의 각인을 바꾸는 것입니다. 한번 참여해서 안 되면 두 번, 세 번, 아니 평생에 체질 된 것이 하루아침에 바뀌어 집니까? 각인이 바뀌어 지면 체질이 바뀌어 지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우리 안에 평생 잘못 각인된 부분이, 좋은 건 잘 각인 안 됩니다. 그런데 나쁜 건 쉽게 우리 안에 각인 되어서 우리가 못 빠져 나와요. 그렇잖아요. 그래서 영적문제에 걸려드는 것 아닙니까? 한번 참여해서 안 되면 계속 각인이 바뀔 때까지 참여하세요. 그래서 집중훈련을 계속하는게 아닙니까? 지금 52회까지 왔어요. 그런데 우리 교회 속해 있으면서도 전혀 거기에 관심 없이 ‘나는 모르겠다.’ 여러분, 다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진짜 기도하고 인도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또 특별히 기도하실 것은 우리 교회 안에 올해 새롭게 신설된 위원회가 있습니다. 하나 RUTC 위원회입니다. 기도해주셔야 됩니다. 지금 우리 RUTC 위원회에서 모여서 하나교회 우리 렘넌트들을 어떻게 복음의 정체성을 가진 이 시대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들로 세워나갈 것인가. 지금 모여서 토론하고 그것을 놓고 분기마다 기도회하면서 인도받고 나아가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지금 3단체 종교단체에서는 청소년들의 마음들을 영혼들을 빼앗자! 그리고 그들에게 영상이나 미디어를 통해서 이미 다른 것들을 각인시키고 있어요. 거기에 우리 아이들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각인을 바꿔야 합니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바른 각인이 된 우리 렘넌트들이 자라나야 이 한 시대 영적 서밋의 자리에 서서 시대를 이끌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특별히 여러분, 하나 RUTC위원회를 위해서 기도해주시구요. 지금 RUTC위원회에서 아마 8월 달 정도 지나면 광고가 나갈 것입니다. 우리 교회 렘넌트 중심으로 해서 1차적으로 복음영성캠프를 인도받자. 그렇게 아마 광고가 나갈 것입니다. 참고하시고 기도하시고 또 실제로 렘넌트들을 실제로 지도하기 위해서는 교사들과 부모들이 함께 해야 되죠. 그렇잖아요. 교사들과 부모들이 함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교사들과 부모들을 중심으로 해서 지도자 훈련을 시켜나가는 프로그램도 앞으로 나올 것입니다. 적극적으로 여러분, 묻지 마시고 참여하셔서 그것이 우리 교회가 사는 길이고 우리 후대들이 사는 것이고 저와 여러분이 사는 길입니다. 그래서 특별히 하나 RUTC 위원회를 위해서 여러분이 기도해주시고 전부다 어릴 때부터 어제 단어가 나왔잖아요. 성공DNA를 심어야 합니다. 정복DNA를 심어야 합니다. 각인시켜야 합니다. 성공할 수밖에 없는 DNA, 정복할 수밖에 없는 그 DNA를 각인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이 한 시대 사탄과의 영적싸움에서 승리하는 우리 후대들로 세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각인을 바꾸는 것. 우리에게 다른 각인들이 가득 차있기 때문에 성령의 인도를 못 받아 나아가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하심은 모자람이 없는 완전하고 완벽한 인도하심입니다. 왜냐, 하나님의 성령이 완전하신 분이기 때문에 그분의 인도하심은 완전한 인도하심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하면 성령의 인도를 받을 것인가? 우리 중심에 이번 한 주간에도 우리 자신들을 우리가 점검하시기를 바랍니다. 정말 내가 오직 복음의 색깔이 맞는가? 오직 그리스도, 오직 복음이 맞는가? 여러분, 그 외에 아무것도 결국은 몸부림 쳐도 무너지게 되어있어요. 그리고 우리 안에 각인된 것. 특별히 여러분, 성도들도 렘넌트들도 교회 와서 은혜 받습니다. 그런데 현장에 가면 무너집니다. 교회 와서 그런대로 은혜 받아요. 그런데 현장에서 무너져요. 또 세상 분위기가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그 뿐만 아니죠. 분명히 영적 문제로 무너질 줄로 아는데도 분명히 세상 현장에 가면 일단 보기에 성공한 사람들과 영웅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을 이겨야 하는데 이기지 못합니다. 정복하지 못합니다. 왜냐? 내 안에 각인된 것들 때문에 현장에 가면 무너지고 세상을 이기지 못하고 어렵게 되어있습니다. 내 안에 있는 각인된 것들. 이번 한 주간 바뀌어짐으로 성령의 인도받는 그런 축복된 역사 속에 여러분 체질조차도 바뀌어지는 그 응답을 누리시고 이 한 시대에 전도자로 쓰임 받는 귀한 축복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4년 7월 13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성령이 아시아에서
(행16:6-10)


서론: 무엇보다 모든 것을 가지고 성령충만 속에 들어가는 축복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승리하려면 기도속에서 자신의 것을 찾아야 합니다(기도의 집중 → 말씀 집중이 되어짐 → 하는 일에 하나님 역사가 일어남). 하루를 시작하면서 반드시 회복해야 할 부분은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얻는 깊은 기도의 시간입니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기도의 힘이 없다면 결국은 무너지고 실패합니다(돈이나 사업은 나를 위한 것, 나의 것이 아님).
오늘 바울의 걸음은 유럽과 세계사를 바꾸는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이를 위해 성령께서는 새로운 문을 열기도 하고 막기도 하시면서 그 지경을 넓히셨습니다(전도여행 - 1차: 소아시아만, 2차: 유럽, 3차: 로마,스페인까지 보게하심) 신앙생활은 성령의 인도받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어떻게 성령인도를 받느냐? 이것은 모든 것을 좌우합니다. (목회: 한사람 한사람이 성령인도를 받도록 도와주는 것임, 신앙생활: 열심히만 하는 것도, 무조건 착한 삶도, 자신의 의를 드러내는 것도, 마음대로 살아가는 것도 아님) 성령의 인도와 역사를 위해서는 성령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롬10:2 올바른 지식). 성령은 예수의 영(예수를 영화롭게 하는 영)입니다. 그러기에 성령의 인도를 받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1. 복음의 색깔 (시작)
(1) 복음을 아는 것뿐만 아니라, 복음의 색깔이 중요합니다. (오직 그리스도, 오직 복음)
1) 제자들에게 오직 복음만을 확인하시는 예수님의 질문 (마11:7, 마16:13,16, 요21:15,18)
2) 오직 복음이 안 된 결과: 유대인의 7번 재앙, 현대교회 위기, 교역자의 무기력, 성도의 방황
(2) 왜 오직 복음이어야 하는가?
1)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 약속의 말씀
a. 창3:15 오직 여자의 후손만이 인류를 구원할 수 있음
b. 창4:7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피의 제사(아벨의 제사)가 필요함 (히11:4 예물이 증거하심)
c. 창6:14 방주 안에 들어오면 누구든지 살 수 있음 - 이 길 밖에 없기 때문
d. 출3:18 피제사 - 왕이라도 피의 비밀을 모르면 무너질 수 밖에 없음
e. 사7:14 임마누엘의 약속
2)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시기
a. 마1:23 700년 전의 이사야의 예언(임마누엘)을 그대로 기록
b. 마16:13-20 예레미야(박애주의, 금욕) 엘리야(신비), 세례요한(사회운동), 선지자(율법주의) - 다른 것은 복음의 걸림돌
c. 마17:1-9 변화산에 데려가심 : 오직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근본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음
d. 요19:30 모든 것을 다 이루신 오직 그리스도
e. 부활메시지 - 모든 족속으로, 만민에게, 땅끝까지 가라! &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f. 이 약속 붙잡고 마가다락방에 모였을 때 오순절 성령께서 임하심
3)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이후
a. 빌3:8-20 바울 고백 : 다른것은 배설물, 그리스도께 발견되기 원함, 잡힌바 된 것, 위에서 부르신 상, 천국시민권
b. 만물이 그리스도의 발아래 복종하는 축복
2. 각인을 바꾸어야 함 (행1:3)
(1)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각인을 바꾸셨습니다 - 산, 강, 바다로 부르심
1) 산의 무리 가운데서(마5:1), 오병이어 후 제자들 따로 불러서(요6:63), 변화산에서(마7:1) - 각인을 치유하심
2) 마지막때 산에서도(마26:41), 부활후 40일동안 하나님 나라의 일로(행1:3) - 각인을 치유하심
3) 약속 붙잡고 정시로 기도할 때(행1:14), 드디어 오순절 성령의 응답이 임함(행2:1)
(2) 바울도 회당에서 인재들의 각인을 바꿨습니다(행17,18,19장) - 집중훈련, 하나RUTC위원회
(3) 각인이 바뀌면(성공DNA, 정복DNA) 체질조차도 바뀔 수 있습니다.

결론: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하심은 완전하고 완벽합니다. 성령은 완전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어떻게 하면 인도를 받을 것인가?’ 자신을 점검하셔야 합니다. 오직 복음의 색깔이 아니면 아무리 몸부림쳐도 무너집니다.
교회에서는 은혜를 받지만 현장에 가면 무너지고 정복하지 못하는 것은 내안의 각인 때문입니다. 한주간 각자의 현장에서 각인이 바뀜으로 성령의 인도 받고 체질조차도 바뀌시길 기도드립니다.

< 기 도 문 >
하나님 아버지, 성령충만 가운데 기도속에서 나의 것을 찾을 줄 믿습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신앙생활이 철저히 성령의 인도를 받게 하옵소서. 우리의 복음의 색깔이 오직 그리스도, 오직 복음이 되게 하심으로 모든 각인을 뒤집는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길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체질조차도 바뀌는 기적 가운데, 한주간 현장을 정복하는 응답을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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