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다 그를 보고 주께로
2013-12-2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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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2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행9:32~35)

32 그 때에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다니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갔더니 34 거기서 애니아라 하는 사람을 만나매 그는 중풍병으로 침상 위에 누운 지 여덟 해라 34 베드로가 이르되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한 대 곧 일어나니 35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오니라  행9:32~35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우리 찬송만 하고 찬송만 들으면 좋겠지요?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참된 성탄의 축복이 여러분 개인과 가정과 모든 산업 현장에 나타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은 ‘다 그를 보고 주께로’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영국의 어느 대학에 부속으로 있는 병원에서 실험을 했습니다. 사람이 화를 낼 때의 콧김을 받아서, 그러니까 화를 낸 홧김이죠, 코에서 나오는 홧김을 받아 액체를 만들어 쥐에게 주사를 했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즉사해 버렸습니다. 그만큼 사람이 화를 낸다는 것은 독을 품는다는 말입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그렇다면은 반대로 우리가 정말로 그리스도 그 이름을 찬양하고 기뻐하고, 또 그 이름을 말하게 될 때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나타나는 역사는 어마어마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최고의 선물로 주신 것이 그리스도입니다. 그게 바로 성탄의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 그리스도인데 그 그리스도 이름이 우리의 가정 현장에, 우리의 남편과 아내, 우리의 자녀들의 현장에 끊임없이 중단되지 아니하고 증거된진다면, 눈에 보이지 않지만 거기에는 엄청난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가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특히 여러분 개인과 가정 속에 그리스도 그 이름의 역사들이 중단되지 않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스도 그 이름의 역사들이 중단되지 않을 때에 그 속에서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것들의 응답들이 우리도 모르는 가운데 오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특히 우리가 모르도록 오는 응답이 있고, 우리가 모르도록 오는 저주가 있습니다. 그 기준이 어디에 있느냐? 딴게 아닙니다. 복음, 그리스도에 기준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날마다 확인하고 그 이름을 증거하고 전달하게 될 때에 우리도 모르도록 오는 응답들, 축복들이 있습니다. 많은 응답과 축복들이 오게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 그리스도 이름이 전달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실제로 우리 지금 현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방황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방황하는 결과들이 어떻게 드러납니까? 사람들이 방황하다 보니 얼굴에 화장을 더덕더덕, 죄송하지만 떡칠을 하고, 그래서 누구 얼굴인지 모르잖습니까, 사실? 또 남에게 보이는 부분들, 실례된다 해서 오히려 얼굴을 뜯어고치는 것이 예의라 해서 얼굴도 막 뜯어고칩니다. 또 옷을 그냥 바꿔 입는 것은 괜찮습니다만 방황하다 보니 옷도 사서 쌓아 놓고 이 옷 저 옷 막 바꿔 입어 보기도 하고 그리고 술에 빠지기도 하고 마약에 빠지기도 합니다. 전부 다 왜 그러냐? 방황하다 보니까 그런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현장들에 어떻게 우리가 그리스도 복음을 전달할 것인가? 그게 바로 성탄이 성탄되어지는 길입니다. 많은 인생들이 지금 방황하고 있습니다. 그럴 듯하게 폼 잡고 다녀서 그렇지, 실제로 많은 인생들이 방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인생들에 어떻게 이 복음을 전할 것인가? 이게 바로 성탄이 성탄되어지는 길이라는 사실입니다. 특히 오늘 본문에 보시면 8년 동안 중풍병자로 누워 있는 애니아라는 사람을 베드로가 치유하는 사건이 나옵니다. 이 치유가 이루어진 것은 베드로가 내가 저 사람을 치유해야 되겠다고 해서 치유한 것이 아니라 복음이 증거되니까, 그리스도 그 이름이 선포되니까, 그리스도 그 이름과 함께 동반되어 나타난 것이 치유인 것입니다. 치유를 목적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복음을 전하다 보니 그 복음과 함께 일어난 일들이 8년 동안 몸져 누워 있던, 침상에 누워 있던, 8년 된 중풍병자가 육신적인 질병이 치유되는, 그런 일어나는 기적들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오늘 우리에게 본문을 통해서 보여 주고 있습니다. 복음 역사와 함께 일어나는 치유의 역사, 이게 바로 올바른 치유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저와 여러분에게 복음과 함께, 보이지 않지만 우리 안에 영육 간의 많은 병든 부분이 치유되어 지는 그런 은혜를 우리에게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특히 우리가 복음을 모르고도, 복음 메시지가 아니고도 치유는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더 심각한 문제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많은 의사분들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악령 충만함 속에서 의사로서 수술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밤새 잠 못 이루고 새벽까지 돌아다니다가 악령 충만한 가운데 병원에 출근해서 의사로서 수술하고 진료하는 의사들이 있고, 또 시술하는 사람들도 보면 귀신 들려서, 완전히 귀신 충만해서 여러 가지 이런 저런 시술하는 사람들도 있고 또 굿을 해서 치유 받는 것도 있고, 무당들도 병을 고치기도 합니다. 심지어 사람들이 얼마만큼 능력이 있느냐? 심리적인 방법입니다만 초능력을 가지고도 사람을 치유합니다. 그런데 그 뒤의 배후의 역사들이 결국은 사단의 역사, 흑암의 세력인 것을 우리가 아셔야 합니다. 이 사실을 놓쳐 버리고 어디 가서 치유 받는다 생각하고 무조건 우리가 고개를 내밀고 치유받기 위해 기도 받고 하는데 자칫 잘못하다 보면 그 배후에 역사하는 흑암 세력에 완전히 사로잡힐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보니 어떤 의사분들은 일부러 자기가 수술이나 이런 진료를 잘 하기 위해서 명상이나 요가나 기 운동과 연결해서 자기 진료를 해 나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의사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정상적인 치유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중요한 것은 아무리 의사가 우리의 육신의 몸들을 치유한다 할지라도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의 근본은 치유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1. 복음이 정확하게 증거가 되면 하나님이 치유하시는 그런 시간이 옴.
그래서 저와 여러분이 오늘 붙잡아야 할 것이 무엇이냐 하면 먼저 복음이 정확하게 증거될 때 거기에 하나님께서 치유하시는 치유의 시간표가 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복음이 정확하게 증거되면 하나님의 시간표가, 치유하시는 하나님의 시간표가 우리에게 정확하게 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특히 복음이 계속 증거되면 병자만 낫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몰라서 경제 문제, 현장의 고통, 질병이 찾아 오고 사람들이 이상해지는데, 복음 그리스도를 계속해서 말하는 가운데 질병만 떠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경제 문제도 해결되고 인간관계도 해결되고 또한 사업도 회복되는 그 축복된 증거의 역사가 어디에서 나오느냐? 복음이 계속 증거되어지면 그 속에서 당연하게 동반되어서 따라나오는 축복된 역사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현장에서든 치유 이전에 중요한 것은 정확한 복음이 선포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역사가 일어나도 잘못 판단하지 아니하고 잘못된 것에 빠지지 않게 됩니다. 사도행전 3장에 보면 나면서 못걷게 된 자를 베드로와 요한이 치유하게 됩니다. 그 치유 받은 사건 때문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베드로와 요한 곁으로 모여 들었습니다. 그때 베드로와 요한이 무어라 했습니까?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우리 개인의 경건과 권능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그렇게 이야기 하면서 베드로와 요한은 오직 복음, 그리스도만 높였던 사실을 보게 됩니다. 사도행전 14장에도 보시면 바울이 나가는 걸음 속에 엄청난 치유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그 사건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바울 곁에 몰려와서 당신이 우리의 신화라.. 신으로 삼고자 했습니다. 그때 바울이 옷을 찢고 회개하면서 당신들이나 나나 성정이 같은 사람이다. 이 일로 인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당신들이 모든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려 함이 아니냐? 복음을 증거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정확한 복음으로 말미암아 치유된 사실을 아니까 이 베드로, 바울조차도 기적의 역사 앞에서 오직 복음만 드러냈다는 사실을 고백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여러분 어떤 현장이든지 간에 그리스도, 복음만 말해야 합니다. 그때 치유, 기적이 일어날 수 있어요. 그러면 그것으로 교만하지 않고 딴 곳으로 빠지지 않게 됩니다. 왜냐 아 이건 내 능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된것임을 알기 때문에 잘못된 판단과 잘못된 곳으로 빠지지 않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특별히 여러분 초창기에 예수를 믿고 나면 많은 갈등과 문제들 속에서 하나님께서 믿음의 확신들을 주시기 위해서 응답들을 줍니다. 그리고 또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현장에서 현장을 바꿀 수 있는 더 큰 응답들을 그리스도 그 이름을 누리게 될 때에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더 큰 응답을 받을 때 우리는 자칫 잘못하다보면 우리도 모르게 복음만 전하므로 일어난 기적을 놓쳐버린다면 그 문제, 역사 앞에서 우리가 인간인지라 잘못된 판단을 할 수가 있어요. 내가 잘해서 그런 줄 알고 그런 사람들이 딴살림 차리고 딴 곳으로 가잖아요. 목소리도 그럴듯하게 쇳 소리 나도록 믿습니까? 하면서 폼도 그렇게 잡잖아요. 모양도 그렇게 잡으면서요. 그것이 복음으로 치유되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니까 자기가 뭔가 해서 된 것으로 알고 있으니까...그런 모양이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딴게 아닙니다. 우리는 어떤 현장에서든지 복음만 증거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이루시는 역사를 봐야 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무엇보다도 복음이 증거 되어질 때에 하나님의 응답이 일어나잖아요. 그러면 여러분 빨리 눈이 열려져야 할 부분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이 복음의 역사와 함께 응답의 문들을 여셨을 때는 하나님이 왜 이 응답을 주셨는가? 또 다른 전도의 문을 여시는구나. 빨리 이 사실을 봐야 합니다. 그래야 다른 응답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만약에 나면서 못 걷게 된 사람들을 치유하면서 “이야 저사람 다리가 일어났네” 그러면 사람들이 다리만 쳐다봅니다. 그러면 다른 응답을 못 받아요. 그런데 보세요. 베드로는 나면서 못 걷게 된 자를 일으킨 그 사건을 보면서 사람을 본 것이 아니라 사도행전 4장에 보면 종교재판, 제사장, 유대인들, 지도자들 모인 앞에서 또 다른 하나님의 역사를 봤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도 바울은 복음을 이야기한 사실을 보게 됩니다. 앞으로 돌아오게 될 오천명이나 되는 제자들이 돌아올 그 사실을 봤기 때문에, 복음의 역사들, 하나님의 문들을 보았기 때문에 증거한 사실들을 보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응답받으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과 더불어 우리의 배후에 더 큰 응답을 준비해 두고 계시는데 그 응답이 전도의 문을 여시는 응답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이 보여져야 우리가 계속적인 응답을 받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정말로 복음과 함께 당연히 하나님의 치유가 따라온다는 사실을 아시고 치유가 일어나고 기적이 일어나고 기적이 일어나면 거기에 머물러 있지 마시고 더 큰 하나님께서 전도의 문들을 여시기 위함이 아닌가 눈들이 열려짐으로 말미암아 계속적인 축복과 응답 가운데 있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34)
두 번째입니다. 참된 축복된 응답이 어떻게 오느냐?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주어진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34절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요. 베드로가 이르되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수그리스도를 얼마만큼 아십니까? 베드로는 사도행전 3장 6절에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 이야기 했습니다. 훌륭한 사람들이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말. 종교지도자들이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말. 가졌다고 하는 사람들이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말들. 그리스도 그 이름을 여러분은 어떻게 알고 계시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그 이름은 “여호와의 구원”이라는 말입니다. 왜 여호와의 구원이냐? 왜 구원이냐 ? 마1:21에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니라 했습니다. 예수그리스도 그 이름은 여호와의 구원이라는 이름인데 왜 구원인가? 모든 인생은 멸망 가운데에 빠져있고, 지금도 인생은 멸망 가운데 빠져가고 있기 때문에 구원의 이름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어떻게 멸망 받고 있습니까? 멸망 받는 상태가 어떻습니까? 처음부터 있었던 일이고 지금까지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멸망은 창세기 3장부터 시작되었고, 창세기 6장, 11장으로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창세기 3장에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왜 하나님을 왜 떠났습니까? 하나님처럼 되고자 해서 하나님을 떠난 것입니다. 창세기 2장에 보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따먹지 말라 했습니다. 선악과는 하나님이 나의 주인 되심을 고백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이 주인 아니잖아요. 하나님이 주인되어있지 않고 내 자신이 나의 주인 아닙니까? 하나님이 주인 아닙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안 받으려고 합니다. 이것이 선악과를 따먹은 하나님이 주인 되심을 거부하는 것이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내 나름대로 "나는 내 인생을 내가 산다." 라고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그것이 나를 주인 된 자리에 올려놓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면서 살아가야 우리에게 참된 행복과 만족이 있는데 내가 내 인생의 주인 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3장 사건이에요. 선악과를 따먹은 사건이에요. 그리고 발전하는 것 같고 뭔가 번성하는 것 같지만 가면 갈수록 거기에 또한 저주가 계속해서, 타락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어요. 옛날보다는 오늘, 오늘보다는 미래가 더욱더 타락이 일어나게 되어있습니다.
창세기 6장에 온 동네가 네피림 우상의 문화 속에서 결국은 타락할 수밖에 없는 것 속에 빠지는 멸망. 그리고 열심히 살아갑니다만은 모든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결국은 바벨탑을 쌓는 것입니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고 바벨탑을 쌓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멸망 상태에 있는 모습이에요. 처음부터 있었고 지금까지도 계속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 인간에게 문화로 깊이 뿌리내려있는데 어떻게 문화로 뿌리내렸습니까? 미신과 점술과 우상의 문화로 깊이 뿌리내려져있습니다. 그래서 문제와 사건생기면 금방 우상 쫓아갑니다. 미신 따라갑니다. 그것이 우리 인생이 멸망가운데 있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개인에게는 망할 수밖에 없는 불신자 상태 6가지 시간표가 있지 않습니까? 그것이 멸망상태에 있는 우리 인생의 모습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멸망 받지 않도록 구원자로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은 여호와의 구원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은 무엇입니까?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이죠. 임마누엘의 뜻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함이라. 그렇습니다. 원래 우리 인간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존재로 창조하셨는데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우리 인생에게 모든 저주와 재앙이 왔죠. 그래서 하나님이 즉각적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 그리스도를 보내 주실 것을 말씀하시고 그 그리스도를 말미암아 우리에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는 새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새 생명 가졌다는 것은 임마누엘 한다는 말이에요.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이 임마누엘이에요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은 여호와의 이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4:9에 보면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 고 이야기하고 있죠. 요한복음 10:30에 보면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다." 빌립보서 2:6에 보면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본체다 즉 하나님이시라는 말입니다. 그분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성탄이라 이야기 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성육신하신 것이죠. 그것을 가지고 성탄이라 합니다. 그래서 성탄절은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 땅에 오신 날입니다. 마리아의 몸을 빌어서 하나님이 이 땅에 오신 날입니다. 왜냐, 우리 인생의 죄와 죄로 인한 저주와 고통은 하나님만이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그 하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바로 그리스도로 오신 것이죠.
여러분, 유대인들이 제일 싫어하는 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예수가 그리스도시라는 것입니다. 종교인과 바리새인이 가장 싫어하는 말, 지금도 믿지 않는 불신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리스도를 싫어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우리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는 이름, 그 어느 것으로도 인생의 12가지 문제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데 그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이름을 주셨는데 그 이름이 바로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기도할 때 어떤 역사가 일어나는지 아십니까? 요한복음 14:14에 보면 중요한 말씀을 하고 있는데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요한복음 15:16에 보면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리스도 이름을 주시면서 그 이름 붙잡게 될 때, 그 이름 부르게 될 때 하나님이 시행하시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 이름을 저와 여러분에게 어떤 축복으로 주셨는가? 모든 문을 여는 마스터 키로 주셨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시골에 할머니가 아들이 카드를 하나 가져다 줬어요. 어머니 너무 고생하는데 이 카드로 어머니 필요한 것 사시고 먹을 것 드시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할머니가 하시는 이야기가 이놈아 내가 돈을 몰라서 그러냐. 왜 이런 장난감 같은 것을 가져다주느냐. 내가 무식해도 이런 것을 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카드는 그으면 되는데 카드를 모르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떤 면에서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하나님은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모든 문제 해결할 수 있는 마스터 키를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했어요. 요한복음 16:24에 보면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을 얼마만큼 아십니까? 그리스도 그 이름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오늘 새벽에 말씀 드렸습니다마는 이사야 9:1-7에 보면 예수님께서 나시기 전 2700-2800년 전에 예수님에 대해서 가장 잘 기록한 것이 이사야서 아닙니까. 42장에도 나오고 특별히 9장에도 나오는데 한 아기를 우리에게 주셨는데 왜 주셨는가? 모든 인생들이 멍에를 메고 있고 어깨에 채찍을 당하고 있고 압제자의 막대기를 막고 있기 때문에. 이것이 9장 4절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한 아기를 우리에게 주셨다고 했습니다. 이 아기가 누구십니까? 그리스도를 말씀하고 있는 것이죠. 왜 주셨는가? 멍에를 메고 있고, 또 어깨에 채찍을 당하고 있고, 압제자의 막대기를 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현장이 그렇잖아요. 많은 사람들이 저주 재앙 사주팔자 운명에 묶여있고 눌려있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10:38에 있는 말씀처럼 모든 사람이 눌려있다고 했습니다. 그것도 마귀에게 눌려있다고 했습니다. 거기에 참 해방과 우리 인생을 참 해결하기 위해서 한 아기를 우리에게 주셨는데 그 한 아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이 어떤 것인가를 1-4절에 말씀하고 있는데 1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통가운데 있는 자들의 고통이 없어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멸시를 당하는 자들이 영화롭게 된다고 했습니다. 누구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뿐만 아니라 2절에 보면 모든 인생이 하나님을 떠나서 어둠에 행하고 있잖아요. 거짓과 죄 인줄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잖아요. 어둠에 행하던 자들에게 큰 빛이 임한다고 했어요. 예수 그리스도 오신 사건을 가지고 큰 빛이 임한 사건이라 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찬송케 하시고 즐거움을 주실 것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그 분의 이름을 말씀하면서 그 분은 바로 다른 것이 아니고 정사를 가지고 있고, 권세를 가지신 분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 분을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영원하시는 하나님이라 하시면서 평강의 왕이라 했습니다. 여러분,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에 우리에게서 실제적인 참된 힘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주시는 참된 평안함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자마자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너희에게 평안이 있을지어다." 선언했잖아요. 요한복음 14:27에도 내가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않다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육신적으로는 건강하지만 평안이 없어서 불안합니다. 모든 것 가진 것 같지만 평안이 없어서 이상한 습관과 이상한 취미에 빠져서 인생을 망하고 있습니다. 평안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권력도 가지고 성공도 했지만 평안이 없어서 물질, 권력, 건강가진 것으로 귀신 섬기는 자들을 쫓아가요. 왜 그렇습니까? 평안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평강의 왕이라 했습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얼마만큼 아십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런 참된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의 비밀을 깨닫고 누리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고쳐 낫게 하시기 일어나라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 믿는 순간에 우리의 영적인 문제가 해결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 체질을 통해서 오는 부분들 있잖아요. 물론 그것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어요. 그런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리스도 복음을 한 순간 한 순간 들으면 들을수록 하나하나 해결되도록 하셨습니다. 왜냐? 한꺼번에 할 수 없는 분이 아니신데 왜 그렇게 하셨는가? 우리가 감당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복음을 계속 듣는 가운데 우리도 모르는 치유되어야 될 한 부분 한 부분을 정확하게 치유해나가시게 되어있다는 사실. 정말 복음 붙잡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치유하시는 시간표가 언젠가 오게 되어있고 진자 복음 붙잡고 기도하면 그 치유하시는 시간표를 알게 되어있어요. 사도행전 3:6에 보면 베드로가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을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했는데 베드로와 요한이 늘 성전을 왔다가면서 늘 봤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날에 이 베드로와 요한이 이 앉은뱅이를 바라보면서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을 선포했어요. 하나님의 시간표를 봤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일으킬 시간표를 봤다는 것입니다. 진짜 그리스도 그 이름 붙잡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분명히 우리의 모든 부문을 치유해나가시고 그 치유해나가시는 시간표들을 보게 되어있다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가 치유받는데만 목적을 두면 안 됩니다. 육신의 질병이 있다면 중요한 것은 육신 질병이전에 먼저 온 부분이 있어요.
먼저 해결해야 될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단순히 육신의 질병이 왔다면 그것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무슨 말이냐, 이미 그것은 먼저 와있는 문제가 있는데 창세기 3장으로 말미암아 와졌다는 것. 먼저 창세기 3장이 해결되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창세기 3장이 해결되어져야 거기에 마음의 병들도 거기에 정신의 병들도 치유되어지고 거기에 따라서 육신의 질병도 치유되어지게 됩니다. 여러분, 마음과 정신의 병과 영적인 병이 치유되어지지 않았는데 육신의 질병이 나았다면 올바른 치유가 안 됩니다. 올바른 치유는 영적인 부분들이 먼저 치유되어지고 마음과 생각이 치유되어지면서 거기에 따라오는 육신의 치유가 일어나야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리스도 이름은 그 세상에 어떤 것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우리 인생의 창세기 3장 문제 영적인 문제를 해결한 유일한 이름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그 이름증거 되어지면서 치유되어지고, 그리스도 그 이름 증거되면서 질병도 낫고, 그리스도 그 이름 증거되면서 지역도 바뀌어진 사실을 보게 됩니다. 그것이 성경의 역사들 아닙니까? 그리스도 이야기되어지는데 치유가 되어지고 질병도 낫고 그리스도 그 이름 증거되는데 지역도 바뀌어졌어요.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우리 인생의 노력으로 열심으로 해결할 수 없는 근본적인 영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그 부분들이 먼저 되어져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서 흑암의 역사 속에서 먼저 빠져나와야 된다는 것 그리고 하나님을 만나야 된다는 것. 이것이 바로 영적인 문제가 치유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주신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은 단순히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육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 뿐 아니라 우리가 절대 해결할 수 없는 영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영적인 문제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흑암 가운데 빠져나오게 되면 육신의 문제는 치유되어져도 되고 안 되어져도 괜찮습니다. 바울이 누렸던 것 아닙니까. 고린도전서 2:12에 보면 자기 안에 있는 육신의 질고 때문에 바울이 깊은 기도 속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바울은 거기에서 영적인 하나님의 계획을 깨닫게 되었어요. 그러니까 바울이 자기 몸에 있었던 육신의 질고가 치유되어도 괜찮고 치유 안 되어도 괜찮았어요. 우리가 무조건 육신의 질고가 치유되어야 한다? 이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먼저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적인 문제를 해결 받고 영적인 축복을 주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성탄하셨다라는 사실입니다. 특별히 우리에게 있는 영적인 문제들은 예수 그리스도 믿는 순간에 해결되어지지만 그리스도 그 이름의 비밀을 알면 알수록 우리 자신이 바뀌어지고 새로운 응답과 함께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있어요.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을 믿는 순간에 영적인 부분에서 해방되지만 우리 자신이 복음을 누려가는 부분에 있어서 체질적인 부분들은 그리스도 그 이름의 비밀을 알면 알수록 우리 자신들이 서서히 바뀌어져가고 응답받고 변화되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늘 항상 들어야 될 메시지가 뭐냐? 그리스도 그 이름의 비밀입니다. 내가 10년 정도 그리스도 메시지를 들었는데도 그리스도 메시지 들을 때마다 힘을 얻는다는 사람이 정상적인 사람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변화가 일어나요. 치유되고 응답되게 되어있어요. 한 3년 그리스도 들었더니 이제 들을게 없네. 또 시시하게 그리스도냐. 병든 사람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 그 이름은 우리 자신의 근본을 바꿀 뿐 아니라 오늘도 우리를 변화시키고 새로운 응답으로 우리를 바꿔가시는 그 이름이 바로 그리스도 그 이름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그 이름이 증거되어질 때 단순히 치유가 일어나는 것 뿐 아니라 오늘 중요한 결론은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참된 응답이 무엇인가? 이것이 성탄의 축복인데요. 35절입니다.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오니라." 할렐루야 우리는 치유하면 치유에만 목적을 두는데 아닙니다. 애니아라는 그 한 사람 8년간 일어나지 못하고 침상에 누워있던 중풍병자가 치유되어지니까 35절에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오니라." 한 사람이 일어남으로 말미암아 그 증거가 그 지역 전체에 나타났다라는 것.
여러분, 그리스도 그 이름의 비밀을 가지고 체험하게 되면 여러분이 작은 부분에 응답받는 것 같지만 그것이 아닙니다. 교회 전체를 살리고 지역 전체를 살리는 귀한 축복된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있습니다. 여러분, 남은 생애 이 축복 누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내가 교회를 통해서 한 부분에 응답을 받았는데 이 응답이 내 가정과 가문을 살리고 우리의 모든 지역을 바꿔가는 응답. 이 축복의 역사들을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탄 하셨어요. 그래서 이번 한주간도 남은 생애도 그리스도 그 이름의 비밀을 체험함으로 그리스도 그 이름의 비밀을 체험한 여러분을 통해서 가정과 가문과 지역과 민족과 세계가 돌아오는 그 축복된 일에 증인되는 그런 축복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3년 12월 22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다 그를 보고 주께로
(행9:32-35)

서론: 우리가 화를 낼 때 실제로 독을 품듯이(영국병원의 흰 쥐 실험) 우리가 기뻐 찬양할 때, 특히 그리스도의 이름이 선포될 때에는 더욱더 큰 역사들이 진행됩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은 우리에게 최고로 주신 선물입니다. 그 이름이 가정현장과 자녀현장에 중단되지 않고 끊임없이 증거된다면 엄청난 축복(우리가 모르는 축복까지)이 임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현장에는 그리스도 이름이 전달되지 않음으로 많은 사람들은 방황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베드로의 애니아 치유장면을 보면 그리스도 이름이 선포되니 치유가 동반되어 나타남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복음이 아니고도 치유할 수 있습니다.(악령충만한 의사, 귀신들린 시술, 무당을 통한 굿, 심리적 방법, 초능력, 기, 명상, 요가 등) 하지만 이것들은 잠시 해결되는 것 같지만 나중에 더 큰 문제를 가져옵니다. 그렇다면 복음 증거와 함께 일어나는 올바른 치유의 역사를 체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복음이 정확하게 증거가 되면 하나님이 치유하시는 시간표가 옵니다.
(1) 어떤 현장이던지 치유 이전에 정확한 복음이 선포되어져야 합니다.
1) 베드로(행3장)의 고백 :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 오직 그리스도만 높임
2) 바울(행14장)의 고백 : “우리도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이 일은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
(2) 치유의 역사가 일어날 때, 그 배후에 더 큰 축복을 준비하고 계심을 보아야 합니다.
1)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확신과 믿음을 심어주기 위해, 많은 증거와 현장의 더 큰 응답을 주심
2) 많은 증거와 응답을 받으면 또 다른 전도의 문을 여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찾아라!! (하나님 역사의 시간표를 알게 됨)
2.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34절)
(1)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또 얼마나 아십니까?
1) 예수 그리스도 이름은 여호와의 구원(마1:21), 즉 구원자임 (지금도 멸망가운데 빠져가고 있기 때문)a. 창3장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다가 하나님을 떠남 b. 창6장 : 발전, 번성 같지만 더불어 저주와 타락이 계속 일어남
c. 창11장 열심히 살지만 결국 무너질 바벨탑을 세워감 d. 이것이 미신, 점술, 우상으로 문화 가운데 깊이 뿌리내림
d. 결국 개인에게는 불신자의 시간표 6가지가 임함 (사탄의 종, 우상숭배, 정신문제, 육신문제, 내세문제, 후대문제)
2)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임마누엘의 이름임 (사7:14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3)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여호와의 이름임 (요14:9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봄, 요10:30 나와 아버지는 하나, 빌2:6 하나님의 본체)
4)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우리가 부르게 될 때 모든 문을 여는 마스터키(master key)가 됨
a. 무엇이든지 행하시고 (요14:14),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시며(요15:16), 받음으로 기쁨이 충만해짐(요16:24)
b. 한 아기(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심으로, 모든 인생의 멍에와 어깨에 채찍, 압제자의 막대기를 꺾으심(사9:4)
c.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들(행10:38)을 위해 정사와 권세를 가지고, 기묘자와 모사로,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평강의 왕으로 오심
5) 성탄이란,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을 말함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속에 거하심)
(2) 그리스도의 비밀을 깊이 아는 만큼 변화가 됩니다.
1) 무엇보다 근본적인 영적인 병이 먼저 해결되어야 함 (흑암에서 빠져나와 하나님을 만나야 함)
2) 영적인 문제가 해결되면 육신의 문제가 해결됨 (심지어 바울은 육신의 병이 치유 안되었음에도 감사함)
(3) 복음 증거 후, 치유되는 역사와 함께 세계복음화의 문이 열리는 것이 보라!!
1) 우리가 늘 항상 들어야 할 메시지는 그리스도 이름의 비밀임 (고후12장 바울의 깊은 기도)
2) 그리스도의 이름이 증거되니 치유가 일어나고 지역도 바뀌어짐 (행9:35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오니라)

결론: 한 사람이 일어남으로 말미암아 그 증거가 그 지역 전체에 나타났습니다. 우리의 남은 생애가 이 축복과 응답 가운데, 가정과 가문을 살리고 지역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이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성탄하셨습니다. 한주간 이 축복을 누림으로 가정과 가문, 민족과 세계가 돌아오는 증인의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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