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2013-10-2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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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0월 20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행6:1~7)

1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2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3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4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5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6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 행6:1~7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오늘도 하나님 나라의 축복을 누립시다! 할렐루야! 예, 감사합니다.
우리 신앙 생활에 있어서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응답을 받고 안 받고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사실 신앙 생활 속에서 응답 받으면, 보고 생각하고 판단하는 모든 것들이 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신앙 생활에 응답을 받기 위해서 우리가 기도합니다만, 또 말씀 붙잡습니다만, 우리가 응답 받는 데는 간단한 비밀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 생활하지만 응답 받지 못해서 신앙 생활에서 몸부림치고, 또 어떤 면에서 열심 내고 몸부림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물론 열심 내고 몸부림치지 말라는 말은 아닙니다만, 응답을 받지 못해서 몸부림치고 또 열심 내는 그런 부분들도 보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신 응답 받는 비밀, 간단한 방법이 있는데 그게 무엇이냐 하면 우리의 사역과 성령의 사역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역이 맞아 떨어지면 거기에 기적이 일어나고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개개인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령의 사역, 그 사실이 맞아 떨어질 때 거기에 참된 하나님의 역사,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아무리 열심히 전도 운동하고 아무리 열심히 주일을 섬긴다 할지라도 우리 개교회가 나아가는 방향과 하나님이 원하시는 부분들이 맞지 않으면 사실 응답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개개인이 아무리 열심히 신앙 생활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성령께서 원하시는 방향과 맞지 않는다면 거기에는 참된 응답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초대 교회는 그 어떤 환경도 상관이 없었습니다. 왜 초대 교회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났느냐? 초대 교회가 가진 방향과 하나님의 성령께서 일하시는 방향이 맞아 떨어졌기 때문에, 거기에 하나님의 역사가 초대 교회 안에 일어났던 사실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보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 지난주 우리가 살펴 보았습니다만 사도행전 5장 32절에 보면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이 말을 그대로 풀이하면 이런 말입니다. “우리는 이 일에 증인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이 모든 일을 확정해 주십니다.” 이런 말입니다. 무슨 말이냐? 사실은 사도들이 하고 있는 일과 성령이 확정해주는 일이 맞았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기적이 일어나고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났던 사실을 보게 됩니다. 특히 여기에 사도들이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하고 말할 때에 ‘이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그 앞에 나오는 사도행전 5장 19절~31절에 나오는 내용에 보면 핍박이 일어나서 사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합니다. 가르치지 말라고 합니다. 그 때 사도들이 무어라 했느냐 하면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이 옳으냐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옳으냐, 사람의 말 듣는 것보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더 옳으니라고 말하면서 그 다음에 바로 사도들이 이야기하기를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셨다고 하면서,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예수를 살리셨는데 그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 사함과 회개함을 얻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오른손을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그래서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라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말을 하면서, 그와 더불어 성경에 보면 성령께서도 이 일을 확정해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초대 교회에서 사도들이 붙잡았던 것들과 하나님의 성령께서 사역하는 것이 방향이 같았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역사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 개인도 교회도 진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 이 부분을 찾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몸부림쳐도 하나님과 상관 없는 교회이고 하나님과 상관 없는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 이 사실을 찾지 못하면.

1. 성령의 사역은?
그러면 먼저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령의 사역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 하는 것을 생각하기 위해서 먼저 첫 번째로, 하나님의 성령의 사역은 어떤 것인가를 한 번 생각을 해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성령의 사역이라 할 때 당장 떠오르는 것이 어떤 생각입니까? 성령의 사역, 능력 행하고 병 고치고 방언하고 은사 자랑하고, 이런 것들이 생각이 나지요? 성령의 사역하면 우리가 대부분 바로 생각하는 것이 뭐냐 하면 능력이 마구 나타나고 방언하고 뭔가 기적이 일어나고 은사가 막 나타나고 이런 것을 이야기하는데, 여러분, 그 부분들이 일부분일 수 있습니다. 그게 전부 다가 아닙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면 방언도 합니다. 능력도 나타나고 기적도 일어납니다. 그런데 그게 다는 아닙니다. 일부분입니다. 그리고 또 아셔야 할 것은 굳이 성령의 역사가 아니더라도 그런 일들이 일어납니다. 일반 종교인들도, 여러분, 귀신 들린 자들도 능력을 행하고 병을 고치고 그런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렇다면 성령의 사역이 무엇이냐,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 요한복음 14장 26절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는 것, 이게 성령의 사역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4장 26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과 말씀을 생각나게 하고 기억나게 하는 것이 바로 성령의 사역입니다. 또한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보면 하반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했습니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라고 시인할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인도하심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들을 생각나게 하고 깨닫게 할 뿐만 아니라 생각나고 깨닫게 하니까 결국 어떻게 됩니까? 요한복음 14장 27절에 있는 말씀처럼 평안함이 당연히 따라옵니다. 요한복음 14장 27절에 내가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평안과 같지 않다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이 우리를 가르치시고 인도하시니까 모든 걸음마다 성령께서 우리를 가르치시고 친히 인도하시니까 우리의 모든 삶이 평안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거기에 당연하게 따라오는 것이 있다면 사도행전 1장 8절에 보면 권능이 따라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성령의 사역이 어떤 사역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특히 사도행전을 일컬어서 다른 말로 하면 성령행전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성령행전이다, 그게 사도행전이다 이야기하는데 사도행전을 죽 읽어 보면 결국은 주체가 사람이 아니고 성령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령의 역사를 말하고 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도 아닙니다. 결국은 무엇을 말하고 있느냐?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말하면 성령이 계신 곳에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요한복음 16장 7절에 보면 내가 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다 했습니다. 내가 가면 또 다른 보혜사 성령을 너희에게 보내사 그 성령으로 말미암아 내가 말한 것을 생각나게 하고 나를 너희가 영화롭게 한다 말씀했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렇습니다. 성령이 오신 목적은 성령 그 자체에 있다기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나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을 위해서 성령께서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함이 무엇이냐? 그리스도 충만함입니다. 한 번 따라합시다. 성령 충만함! 그리스도 충만함이다! 성령이 우리에게 왜 오셨느냐?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기 위해서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에게 임하셨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자세히 보면 사도행전의 사도들의 모든 설교가 어디에 집중되어 있느냐 하면,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증거하는 일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지난주에 살펴본 것처럼 사도행전 5:41에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도들은 그 이름을 ㅡ위하여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앞을 떠나니라"고 했습니다. 사도들은 핍박 속에 있었습니다만 그들의 관심은 핍박이 아니었습니다. 이 사도들의 관심은 감옥에서 빠져나온 게 아니고, 자유롭게 풀어놓아서 다니는 게 아니고, 감옥 안에 있느냐 밖에 있느냐, 핍박 받느냐 받지 않느냐가 사도들의 주 관심이 아니었습니다.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는 일에 합당히 여김을 받는 것을 기뻐하셨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사도들의 주관심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면서 5:42에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리스도가 증거되는 이곳에 그들의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어떤 환경과 어떤 조건과 어떤 문제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 그 이름보다 더 귀한 이름이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축복 받는 길이 열렸고 그 이름 때문에 살만한 가치를 발견했고, 그 이름 때문에 죽을만한 가치도 발견했떤 사람들이 바로 초대교회 사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42절에 날마다 집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였다 했습니다. 오히려 이들은 어느 정도였느냐?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 때문에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겨짐을 기뻐했다 했습니다. 사람들이 알아주는 그 일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축복하는 그 일이 아니라 능욕 받는 일,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예수 이름 때문에 사람들의 욕을 듣고 멸시 받는 자리에 섰다는 그 자체를 이 사도들은 기뻐했습니다. 오직 이들의 모든 관심은 그리스도 그 이름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린도후서 2:2에 보면 "내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하신 것 외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작정하였다"고 했습니다. 빌립보 3:8에 보면 그리스도 깨닫고 난 바울의 고백이, "그리스도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긴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9절에 보면 내가 그 그리스도께 발견되기를 원한다 했습니다. 계속해서 빌립보서 3장에 보면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고 합니다. 얼마만큼 그리스도 그 이름이 가치를 발견했는지를 말씀합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했음을 발견했기 때문에 베드로와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자로 인정받는 사실에 기뻐하고 감격하고 거기에 눈물 흘렸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인생이 해결할 수 없는 유일한 이름을 주셨는데 그 이름이 바로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분명히 깨달은 것은 늘 듣는 말씀처럼 보입니다만 오늘 다시 한 번 더 이 말씀 붙잡고 깊은 묵상을 한 번 해보십시오. 특별히 한 주간 이 말씀 속에서 제가 부탁해보고 싶은 부분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주셨는데 그리스도께서 마가복음 10:45에 보면 "인자가 온 것은 섬기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으르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4:6에 보면 "내가 곧 길이요 진료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올 자가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요한일서 3:8에 보면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이 세 가지 성경구절을 합친 것을 가지고 그리스도라고 이야기합니다. 마가복음 10:45, 요한복음 14:6, 요한일서 3:8. 이게 우리가 늘 듣던 말씀이 아니고 평생 날마다 들어야 될 말씀입니다. 죽을 때까지 들어야 될 말씀입니다. 매일매일 여러분의 현장에서 외치고 전달하고 알려줘야 될 메시지이고, 현장에서 사람들에게 이야기해야 할 메시지가 뭐냐?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대속물이 되시고 하나님 만나는 길이 되시고 사탄 꺾은 왕이 되신 사실을 날마다 이야기해야 합니다. 언제까지? 죽을 때까지 해야 합니다. 여러분 가슴에 사무치도록 현장에서 해야 될 메시지가 다른 이야기가 아니고 바로 그리스도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이번 한 주간 특별히 말씀 묵상하는 가운데에 마가복음 10:45, 요한복음 14:6, 요한일서 3:8을 깊이 묵상하면 그냥 단순한 말씀이 아니라 우리 모든 영혼을 치유하는 능력의 말씀이 될 줄 믿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외칠 때) 우리의 모든 문제를 단번에 영원히 완전히 해결하신 이름이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요한복음 5:24에 "또 내가 진실로진실로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일므은 단순한 이름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보는 순간에 우리의 영원한 문제를 단번에 완전히 영원히 해결하신 이름이 그리스도 이름입니다.
지난주에 제가 교계 신문을 보니까 한국 교계에 젊은층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젊은 층들 신앙생활 하는 것을 파악해놓은 것을 보니까 교회를 다니는데 확신없이 다니는 사람들이 44.6%라고 합니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전체 교회를 떠나고 있는 실증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내가 진실로진실로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할렐루야. 그리스도, 영원히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비록 실수할 수 있고 잘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수하고 잘못한다 할지라도 그 때 또 다시 찾아오시는 분이 그리스도십니다. 우리가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도 찾아오시는 분이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부를 때마다 가정과 가문의 모든 저주가 끝나버린 것입니다. 그리스도 그 이름 부를 때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집니다.
그 이름의 비밀을 알았기 때문에 사도행전 5:41에 보면 "사도들이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는 자로 여김"을 당하는 그 자체를 기뻐했다 하면서, 그래서 52절에 보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였다 했습니다.
성령의 사역,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고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사역입니다.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성령의 인도 받는 사람으로서 그리스도 그 이름의 가치를 깨닫고 누리는 최고의 축복의 사람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문제 - 제자리를 찾으라!
둘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알고 있는데 그렇다면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 분명히 그리스도를 알고 있고 모든 문제 해결되었다고 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 문제를 어떻게 하느냐? 분명히 우리가 이 땅 사는 동안 그리스도가 모든 문제 해결이라고 이야기하는데 문제를 당합니다. 그럴 때일수록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부분들이 있는데 그게 뭐냐하면 제자리를 찾는 것입니다. 문제는 제자리를 찾으라는 싸인입니다. 받아합시다. "제자리를 찾으라!" 그렇습니다. 여러분, 뭐든지 제자리에 있을 때 그것이 아름답습니다. 주의 종들도 주의 종으로서의 자리가 있어요. 성도들도 성도로서의 자리가 있고, 산업인은 산업인으로서, 렘넌트들은 렘넌트로서의 자리가 있습니다. 산업인들은 강단 메시지 잡고 복음 위해서 산업 두고 기도하는 것이 산업인의 자리입니다. 렘넌트들은 강단 메시지 잡고 학업 놓고 기도하는 것이 학생, 후대들의 자리입니다. 나름대로의 자리가 있습니다. 제자리를 잃어버리게 되면 거기에서 모든 문제가 와요. 특별히 여러분, 성경에 보면 결국은 제자리를 찾는 것이 승리의 길인데 제자리를 놓쳐버리니까 죄 가운데 빠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것이 뭐냐? 우리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었다는 말은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어야 되고, 하나님 안에서 참된 축복과 만족과 안식을 누리며 살도록 지음 받았다는 말입니다. 물고기는 물속에, 나무는 땅에 뿌리를 내리고, 새는 공중을 날며 살아야 하는 것처럼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 안에 있을 때 모든 축복이 오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제자리를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처럼 되고자 타락해서 하나님을 떠나버렸습니다. 거기에서 모든 문제가 왔죠. 제자리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것 때문에 이 땅에 모든 저주와 재앙이 임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제자리를 찾아야 하는데 특별히 오늘 초대교회를 보면 문제 가운데 제자리를 찾게 되는 부분들이 나옵니다. 초대교회 안에 문제가 일어났죠. 사도행전 6:1에 보면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날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않는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다고 했습니다. 복음이 증거되어지니까 부흥의 역사들이,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 역사들이 성경에 계속 일어났습니다. 사도행전 1:12-14에 보면 120명이 마가다락방에 모였고, 2:9-11에 보면 15나라가 모여들었고, 2:41에 보면 3천 제자가 세워지고, 4:4에 보면 5천 제자가 세워지고, 5:14에 보면 남녀의 큰 무리가 주께로 돌아오고, 6:1에 제자가 더 많아졌고, 6:7에도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졌습니다. 복음이 증거되어지니까 거기에 많은 제자들이 일어나게 되었어요. 그런데 거기에 또한 악한 사탄이 가만히 있지를 않죠.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잘 될 때, 잘 나갈 때 사탄이 우리를 공격해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초대교회가 너무나 부흥하고 잘되고 있을 때, 제자가 많아지는 그 때에 교회 안에 문제를 가져왔습니다. 어떤 문제냐면, 히브리파 유대인들 헬라파 유대인들이 교회 안에 있었어요. 헬라파 유대인들은 어떤 사람이냐, 한마디로 해외파입니다. 절기를 통해서 국내에 들어와서 절기를 지키는 해외파 중심이 헬라파 유대인들입니다. 히브리파 유대인들은 국내에 있는 본토박이입니다. 헬라파 유대인들이 구제 문제 속에서 늘 항상 소외되고 빠지게 되었어요. 그래서 히브리파 유대인들을 원망했다고 했습니다. 복음 안에서 하나 되어서 한 방향으로 가야될 초대교회 안에 원망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갈라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안에 문제가 들어오고, 그 문제를 통해서 원망하게 되고, 그 원망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갈라지게 되었어요. 그런데 성경에 보면 그 문제 때문에 초대교회가 무너졌느냐? 아닙니다. 오히려 그 문제를 축복의 발판으로 삼아서 더 큰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한 사실을 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일곱 집사를 세움으로 말미암아 6:7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 하니라." 문제가 있었습니다만 그 문제를 발판 삼았던 초대교회에 더 큰 역사가 일어났어요.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 하니라." 는 무슨 말입니까? 지금까지 핍박하고 반대했던 사람들이 복음 앞에 무릎 꿇게 되는 역사가 일어났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이 당하는 문제들 하나님은 분명히 더 큰 응답을 예비해놓고 있습니다. 문제 속에 빠지지 마시고 속지 마세요. 문제 속에 눌리지 마시고 망하지 마시고 분명히 그 문제를 축복의 발판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왜냐, 그리스도 그 이름은 그렇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그 이름은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셨고, 우리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셨고, 우리의 미래까지 완벽하게 준비하신 이름이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어떤 문제가 있다 할지라도 실망하지 말고, 낙심하지 말고, 좌절하지 말고 그 문제를 축복의 발판으로 삼으세요. 왜냐,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그렇게 하실 수 있다는 말이예요.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성령 충만한 사도들이 그 문제의 뿌리를 놓치지 않았죠. 그 문제의 근원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부끄러움 없이 이 문제가 무엇 때문에 왔는지 밝히고 있습니다. 2절에 보면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들을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왜 문제가 생겼느냐?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음으로 말미암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으면 악한 사탄이 정확하게 알고 찾아오게 되어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사도들이 성령 충만한 가운데 그 문제의 원인, 뿌리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부끄럽지만 밝혔습니다. '아, 우리가 말씀을 제쳐놓았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온 것이 아닌가?' 초대교회가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사도행전 2:42에 보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에 전혀 힘쓰니라." 처음에는 어떠했느냐? 사도의 가르침,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말씀을 제쳐놓은 것이 아니라 말씀 중심으로 모든 부분들 속에 하나님의 역사의 인도를 받았다는 것이 초대교회의 처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사도들이 고백한 것처럼 '우리가 말씀을 제쳐놓았구나!' 교회가 말씀을 제쳐놓으면 악한 사탄이 그것을 이용해서 들어와서 어떻게 하느냐? 결국 교회가 인본주의에 빠지도록 만듭니다. 인본주의에 빠지는 가운데 가장 첫째는 뭐냐? 교회가 이상하게 파벌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온 내용이 그 내용입니다. 여러분, 어떤 것이 교회냐? 모든 지체인 저와 여러분이 복음으로 하나 되어서 우리의 구주되시는 그리스도를 한 방향으로 바라보는 것이 교회입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파벌이 생긴다, 교회 안에 라인이 생긴다는 자체가 사실은 악한 사탄이 붙잡고 있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불행스럽게도 한국에 많은 교회들 안에 문제가 바로 교회 안에 파벌문제에요. '누구는 누구라인이다.' 이런 부분들 때문에 교회 안에 많은 문제들을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큰 교회들도 결국은 이런 파벌들 때문에 교회가 갈라지고 안타까운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 사실들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죠. 제가 이 말씀을 준비를 하면서 우리 하나교회에 대해 '하나님의 축복받은 교회이고, 감사한 교회이구나!' 새삼스럽게 또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교회는 제가 모르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파벌이 없어요. 혹시 있다면 오늘부터 다 하나님 그리스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보니까 라인이 없어요. 우리가 복음운동하려고 했을 때 외부에서 공격이 들어왔어요. 그 때에 원로 목사님께서 하신 말씀이 "교회가 그 어떤 이유에서든 갈라진다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은 아니다. 온 교회가 하나 되어서 갈 수 있는 그 길로 인도받아야하지, 교회가 갈라져서 뭔가 되어진다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인도는 아닌 것이다." 그렇게 말씀했던 기억이 났어요. 참으로 감사한 것은, 우리 교회가 이제까지 복음운동을 위해서 달려오면서 온 성도들이 복음으로 하나(원네스)를 이루어서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함께 나갈 수 있다는 것이 축복입니다. 이 축복의 비밀을 발판삼고 누리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것이 사실은 쉽지 않아요. 적은 교회는 적은 교회대로 나름대로 다 있습니다. 제가 듣기 안타까울 정도로 있습니다. 큰 교회는 큰 교회대로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복음운동 때문에 대구를 살리고 전 세계를 살려야 하는 이 언약 때문에 함께 하나 되어서 우리의 주인 되신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나아간다는 것. 우리가 하나 되자 해서 하나 되는 것입니까? 아니잖아요. 우리가 원네스 이루자 해서 원네스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서는 하나 될 수 가 없는 것입니다. 특별히 교회 안에 얼마나 천차만별의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있습니까? 그런데 그들이 하나 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서는 하나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축복 가운데 우리 교회가 세워진 사실이 너무나 감사합니다. 이 중심에는 '우리 교회가 말씀 중심, 강단 중심으로 해서 말씀을 제쳐놓지 않고 어떻게 말씀에 인도받을 것인가?' 그 중심으로 인도받아오는 가운데 하나님이 주신 귀한 하나 되어지는 축복의 역사를 허락하신 줄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을 제쳐놓게 될 때, 교회 안에 모든 다른 사탄의 통로들이 들어오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특별히 인본주의, 인본주의 중에 인본주의는 파벌이 생기는 것. 여러분, 성경에 보세요. 오늘 여기에 사실 말씀을 제쳐놓았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내 삶에 우선순위로 삼아야 되는데 그것을 놓쳐버렸다는 말이죠.
여러분, 성경에 역사를 보면 시대적인 큰 문제나 큰 재앙의 역사들이 언제 일어났느냐? 말씀에 우선순위를 놓쳐버리고 말씀을 제쳐놓고 말씀을 놓쳐버릴 때 큰 재앙의 역사와 시대적인 문제들이 일어났습니다. 노아시대 보십시오. 노아시대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기고,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자기의 욕심 따라 육신의 모습을 따라 살아갔습니다. 시집가고 장가가고 자기 좋은 것 하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그 시대의 모든 사람들은 말씀 붙잡은 노아 가족만 구원받고 다 망했던 사실을 보게 됩니다. 또한 소돔과 고모라는 어마어마하게 잘 사는 나라입니다. 어마어마하게 부를 가진 나라입니다. 유황불로써 심판 당했습니다. 그런데 그 소돔과 고모라가 성경에 보면 말씀을 농담으로 여겼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시대적인 문제나 재앙의 문제가 언제 오느냐?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게 될 때, 분명히 시대마다 큰 저주와 재앙의 문제가 왔던 사실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에 보면 이 사도들이 바로 말씀을 제쳐놓았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온 것을 알고 제자리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사도행전 6:4에 보면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제자리를 찾은 것이죠. '기도하는 일과 말씀전하는 이 일에 힘써야 되겠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언약으로 붙잡고 기도하기 시작하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문제들이 힘이 없어집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말씀 그 자체가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 그 자체가 능력입니다. 말씀 그 자체가 바로 창조의 역사가 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 붙잡은 자에게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있습니다. 이 말씀은 어떤 것이냐?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이 말씀이에요. 디모데후서 3장에 보면 "모든 사람으로 구원 얻게 하는 것이 이 말씀이라 했습니다. 디모데후서 3:17에 보면 이 말씀이 모든 사람을 온전케 하고 또 선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하는 것이 말씀이라 했습니다. 여러분, 예배시간에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말씀을 허락하셨는가? 이 창조의 능력의 말씀이 우리 영혼 속에 각인되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토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히브리서 4:12에 보면 "이 말씀은 살았고 활력이 있어 영과 혼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계시록 1:3에 보면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도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시간이 어떤 시간이냐?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영혼 속에 각인되어지는 시간입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 안에 잘못 각인되었던 부분들이 해결되어지기 시작하고 치유되어지기 시작합니다. 분명한 것은 어제 핵심에서도 말씀이 나왔습니다. 여러분이 아실 것은, 우리 영혼에 영적인 상태는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무조건 받아들이게 되어있습니다. 우리가 구분해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영적인 상태는 무조건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다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그 다음에 어떻게 되느냐? 각인됩니다.
여러분, 실패하는 사람들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무언가가 들어가 있기 때문에 실패하는 것입니다. 자살하는 사람은 마음에 뭔가 어렵다는 부분들이 각인되어서 결국 자살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죽이는 살인하는 사람은 마음에 미움이 가득차서 영혼에 각인되어서 살인하게 됩니다. 우리 안에 잘못 각인된 것들이 바뀌어지지 않으면 아무리 몸부림친다 할지라도 결국은 안 되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잘못 각인된 것들이 언제 바뀌어지고 언제 치유되어지는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영혼 속에 담기게 될 때, 잘못된 모든 각인된 부분들이 치유되어지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왜냐, 말씀 자체가 하나님의 능력이요, 창조의 능력이요, 이 말씀이 구원 얻는 이름이요, 이 말씀이 바로 모든 사람을 온전케하고, 우리를 치유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씀 붙잡고 깊은 기도 속으로 들어가게 될 때 그것이 우리 영혼 속에 각인되어지면서 모든 삶에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조금만 말씀 붙잡고 기도 속에 들어가면, 거기에 하나님께서 모든 역사를 이루시게 되어있습니다. 아브라함이 결국은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복의 근원이라는 축복을 누렸습니다. '나는 나이가 많은데…….' 그럴수록 말씀 붙잡아야 합니다. 모세는 나이 80세였는데 하나님의 약속 붙잡고 출애굽 시키는 주역이 되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과 사도들은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붙잡고 세계복음화의 역사 속에 쓰임 받는 귀한 축복된 일꾼이 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문제 있을 때는 제자리를 찾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제자리가 어디냐? 말씀 붙잡고 기도 속에 들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자리입니다. 이번 한 주간 정말 말씀 붙잡고 기도 속에 들어감으로 말미암아 제자리를 찾읍시다. 받아합시다. "제자리를 찾자!"
말씀을 맺겠습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을 통해서 제자리를 떠났을 때와 제자리를 찾았을 때에 일어나는 하나님의 역사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회복해야할 우리의 자리가 있다면? 정말 하나님이 주시는 언약의 말씀 붙잡고 깊이 기도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혹여나 나에게 계속 문제가 있다면, '내가 말씀을 제쳐놓고 있지 않는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나에게 뭔가 해결 안 되는 문제가 계속해서 있다면, '혹시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있지 않는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가 정말 말씀 붙잡고 깊이 기도 속으로 들어가게 될 때, 그 말씀이 우리 안에 힘을 얻는 역사가 일어나고 그 말씀이 우리 지역과 교회와 모든 현장에 왕성해지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사도행전 6:7에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 하니라." 여기에서 이 도가 무엇입니까? "예수가 그리스도" 라는 이 말씀에 모든 제사장들과 율법인들과 종교인들이 무릎 꿇게 되어졌습니다. 단순히 돌아왔다는 말이 아닙니다.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을 회복하게 되고, 문화까지 바꿔놓는 역사가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말씀 붙잡고 기도 속에 들어가서 먼저 내 안에 이 말씀의 왕성한 축복을 회복하시고, 여러분이 나아가는 모든 현장 속에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지는 이 축복된 응답의 역사들이 나타나는 그런 한 주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3년 10월 20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행6:1-7)

서론: 우리의 신앙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응답을 받느냐, 받지 못하느냐’는 많은 차이를 가져옵니다. 응답을 받지 못하면 아무리 발버둥 쳐도 점점 어려워집니다. 우리교회와 개인이 아무리 전도운동을 하고 주일성수를 할지라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이 맞지 않는다면 응답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받는 간단한 비밀은 우리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령의 사역의 방향이 맞아지면 됩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기적과 역사가 일어나게 되고(초대교회), 우리는 이 일(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에 증인입니다. 초대교회의 사도들이 했던 일과 성령의 확정해주는 일이 방향 맞았던 것처럼, 우리는 ‘개인과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라는 부분에 발버둥 쳐야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을 찾기 위해 해야할 것은 무엇일까요?

1. 성령의 사역은?
(1) 성령이 계신 곳에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가 증거됩니다(요16:7). (성령충만 = 그리스도 충만)
1) 성령께서는 예수그리스도의 하신 일과 말씀 하신 것을 생각나고 깨닫게 하심(요14:16-17)
2) 성령께서 우리로 하여금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게 하심 - 평안(요14:27)과 권능(행1:8)이 따라옴
(2) 그리스도 이름의 가치를 발견하고 그리스도께 집중하라!! (사도행전의 사도들의 모든 설교)
1) 핍박 속에서도 사도들의 관심은 오직 그리스도였음(행5:41) - 바울의 자랑(고전2:2), 가치(빌3:8-9), 목표(14), 배경(20)
2) 환경과 사건이 문제 되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서 삶과 죽음의 가치를 발견함(행5:42)
(3) 그리스도께서는 인생의 3가지 문제(죄, 하나님 떠남, 사탄의 종)를 단번에, 영원히 해결하셨습니다.
1) 3가지 근본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속물(막10:45)이 되시고, 하나님 만나는 길(요14:6)이 되시고, 왕(요일3:8)이 되심
2) 이 사실을 우리가 죽는 날까지 날마다 듣고, 외치고, 전달하라!! (영원히 가슴에 사무칠 메시지)
2. 문제 - 제자리를 찾으라
(1) 우리는 항상 제자리를 찾아야 합니다.
1) 인간의 근본 문제는 제자리(하나님의 안)를 잃어버림으로 모든 저주가 임한 것임
2) 교회 안에서도 성령의 역사로 하나되는 축복을 누려야 함 - 인본주의(특히, 교회안의 파벌)는 결국 망함
3) 제자가 많아지고 역사가 일어나며 부흥될 때(행1:12-14, 2:9-11, 2:41, 4:4, 5:14, 6:1,7)도 제자리를 찾아야함
(2) 우리의 중심에, 말씀의 우선순위를 절대로 놓치지 마라!!
1) 말씀을 놓친 개인과 가문, 사회와 시대는 완전히 망한다는 것을 잊지마라!! (노아시대, 소돔과 고모라)
2) 초대교회도 시작(행2:42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과 달리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을 때, 문제(행6:1 구제문제)가 생김
3) 문제(6:1)를 발판삼고 중직자를 세움으로(행6:5-6) 하나님의 더 큰 역사(행6:7)를 체험함
(3) 초대교회 사도처럼, 우리의 제자리(언약의 말씀 잡고 깊은 기도)를 찾아라!!
1) 말씀에는 역사하는 힘(창조와 구원의 능력, 온전케 하고 선을 행할 능력)이 있음(히4:12, 계1:3)
2) 예배시간은 하나님의 말씀이 내 영혼에 각인되는 시간임(잘못 각인 된 것들이 치유되기 시작)
3) 깊은 기도속에서 말씀이 영혼 속에 각인될 때,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남(아브라함,모세,초대교회,바울)

결론: 제자리를 떠났을 때와 제자리를 찾았을 때에 일어나는 하나님의 역사를 살펴보며, 우리는 우리의 자리 (언약의 말씀 잡고, 깊은 기도속에 들어가는 것)를 회복해야 합니다. 혹시 나에게 문제가 계속 반복된다면 ‘내가 말씀을 제쳐놓고 있지 않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말씀잡고 기도하면 힘을 얻고, 가정과 교회와 현장에 그리스도가 왕성해지며, 현장의 문화까지 바꾸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한주간 내 안에 말씀의 왕성한 축복을 회복함으로, 나가는 모든 현장에 말씀이 점점 왕성해지는 축복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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