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바나바, 아나니아
2013-09-2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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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9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바나바, 아나니아”
(행4:32~5:2)

4:32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33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34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35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36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 하니 37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5:1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 2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 행4:32~5:2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오늘 우리 찬양대 찬양 드린 것처럼 우리 속에 거하시며 영원히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를 누리는 최고의 축복의 시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많은 교회들이 초대 교회로 돌아가자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기도도 초대 교회를 회복하게 하옵소서하는 기도들을 합니다. 도대체 초대 교회는 어떠한 교회였기에 우리가 초대 교회로 돌아가자, 초대 교회를 회복하자고 말합니까? 그 초대 교회의 아름다운 모습이 오늘 본문에 나오고 있습니다. 32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모든 사람이 하나 되어서 자기 모든 재산을 다 내어 놓고 통용하고 자기 것을 자기 것이라 하지 아니하고 나누어 가졌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게 초대 교회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 모습이 사도행전 2장에도 나오고, 사도행전 4장에도 나옵니다. 우리가 사도행전 2장을 살피고 넘어 왔습니다만, 사도행전 2장에도 마지막 부분에 보면 초대 교회의 아름다운 공동체 모습이 나오고 오늘 본문 사도행전 4장에도 초대 교회의 모습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어떤 사건이 있었습니까? 사도행전 3장에 보면 나면서 못걷게 된 자를 고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면서 못걷게 된 자를 고치는 사건을 통해서 초대 교회에 돌아오게 된 것이 칭찬이 아니라 무서운 핍박이 었습니다. 아니, 못걷게 된 사람을 고쳐 놨는데 칭찬 받아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런데 성경에 보면 무서운 핍박이 일어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무서운 핍박에도 불구하고 사실은 오늘 본문 4장에 보면 초대 교회가 아름다운 모습을 그대로 유지했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엄청난 핍박이 있었지만 여전히 그 아름다운 부분을 초대 교회가 그대로 유지했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가 전혀 흔들리지 아니하고 그 모습 그대로 어떤 일이 일어나도 흔들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나중에 보면 순교까지 당했으면서도 교회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저와 여러분은 초대 교회가 그런 무서운 핍박과 어려움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았던 이유가 무엇일까, 엄청난 핍박 앞에서도 그 핍박을 이긴 메시지가 무엇일까 하는 것을 붙잡아야 합니다. 특히 여러분, 가면 갈수록 지금 교회 바깥에서, 세상에서 기독교를 굉장히 공격하고 있습니다. 작은 교회들은 신천지 같은 이단들이 일어나 교회를 통째로 흔들어 버리고 중형 교회, 대형 교회들은 교회 밖 세상 단체에서 들고 일어나서 교회 안까지 들어와 기독교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엄청난 문제들이 앞으로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무엇이 옳고 그른지도 모르고 이 말하면 이 말 따라가고 저 말하면 저 말 따라가게 되는, 성도들이 답을 전혀 갖지 못하니까 이리저리 흔들릴 수밖에 없는 그런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아니, 지금 왔습니다. 여러분, 서울의 모 중형 교회에서는, 교회가 규모가 아주 큰데 그 교회에서는 있지도 않은 일을 문제 삼아서 사회법정에 고소를 했습니다. 2년 반 동안 싸웠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무혐의로 풀려났습니다. 그런데 그 동안 얼마나 교인들이 상처를 많이 받았겠습니까? 얼마나 많이 심적으로 힘이 들었겠습니까? 그래서 모든 것을 회복하고 나서 그 교회 담임 목사님이 일간지에, 신문에 광고를 냈습니다. 그리고 한국 교계 앞에 광고를 다 우편으로 보내어서 지금 교회를 지켜야 한다, 이렇게 해서 아마 이번 주간에 자기 교회에서 한국 교회가 이 세상의 단체들 앞에 대비할 수 있는 그런 부분들, 특히 헌금이나 이런 모든 부분에 있어서 교회가 너무 모르고 있기 때문에 그냥 마냥 당할 수밖에 없구나, 이런 것을 알고 이런 시험으로부터 교회를 막아야 하겠다는 사명을 가지고 세미나를 개최하고자 광고를 내어 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여러분, 지금 서울이나 도시의 중대형 교회들, 사실 몸살을 앓고 있는 부분들을 보게 됩니다. 엄청난 핍박들, 엄청난 어려움들이 계속해서 닥쳐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어려운 환란들 가운데서 어떻게 교회를 지켜나갈 수 있었을까? 초대 교회도 핍박이 있었는데 어떻게 그 핍박을 이긴 메시지가 무엇일까? 그것을 우리가 답을 찾아내야 하는 것이고, 또 오늘 여러분 말씀 들을 때에 꼭 한 가지 마음에 담고 말씀을 받아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무엇이냐 하면, 우리가 나름대로 열심히 신앙 생활한다고 하면서도 뭔가 모르게 어려움들이 계속되고 있고 실패가 계속되고 있고 고난이 계속되고 있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 속에 답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뭔가 인생을 열심히 살아온다고 살아왔는데 인생의 마지막에 와서 비참한 생애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여러분, 분명히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은혜 입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람이 있습니다. 마지막에 가서 구원 받은 것조차도 부끄러워할 정도로 비참하게 안 되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의 생애가 그런 생애로 끝나 버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오늘 말씀 속에서 귀중한 답들을 여러분이 찾아서 나가야 할 것입니다.

1. 초대교회 메세지
그러면 초대 교회가 그 핍박을 이겼던 메시지가 무엇일까? 그 어려운 환란 가운데서도 살아날 수 있었던 그 메시지가 무엇인가? 바로 다른 것이 아닙니다. 초대 교회의 메시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인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33절을 보십시오.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초대 교회의 메시지는 주 예수의 부활, 그것이 초대 교회의 메시지였고 그것이 핍박을 이긴 메시지였습니다. 흔들리지 아니하고 오는 여러 가지 문제들 앞에 승리할 수 있었던 메시지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주 예수의 부활은 무엇을 말합니까?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예수가 그리스도시라는 증거로 부활 아닙니까? 그래서 여기에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했다는 말은 예수가 바로 그리스도시라는 사실을 붙잡았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에 증인되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 주셨습니까? 우리 모든 인생은 하나님을 떠나 버려서 사탄이 우리 인간을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저주와 재앙 가운데 묶인 바 되었습니다. 모든 인생이,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사탄에 장악되어서 저주와 재앙 가운데 묶여서 원치도 않는 일들이 계속 일어납니다. 바라지도 않고 원치도 않는 일들이 일어나고, 우리가 무엇 때문에 일어나는지도 모르는 문제들이 계속해서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왜 그러냐? 결국은 저주와 재앙 가운데 묶여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더 올라가면 결국은 사탄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결국은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그리스도를 보내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그리스도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가 되는 기준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되는 기준이 무엇입니까? 반드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셔야 합니다. 다시 살아 나셔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말하는 초대 교회가 예수의 부활을 증언했다는 말은 예수가 그리스도시라는 사실을 증거했다는 말입니다. 이게 바로 초대 교회가 붙잡은 메시지입니다. 위기와 핍박 가운데 흔들리지 않았던 메시지였고 오히려 핍박을 이긴 메시지가 다른 메시지가 아니라 예수가 바로 그리스도시라는 메시지였다는 사실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 초대 교회 성도들의 반응이 본문에 나오는데, 33절 마지막에 보면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했습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시라는 사실을 증거했는데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그 다음 34절, 35절에 보면 은혜를 받으니까 가난한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왜 가난한 사람이 하나도 없어졌느냐? 다 내어놓으니까. 그게 34-35절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같이 읽어봅시다. "그 중에 사람이 있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줌이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언,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의 메시지를 듣고 은혜 받음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그들의 모든 것을 내어놓음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이 각각 나누어 가지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이 없었더라. 초대교회 안에 가난의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은 초대교회 성도들이 이 메시지를 듣는 가운데 완전히 답을 나버린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여기에 결론이 나버린 사실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의 있는 것 다 내어놓았습니다. 이것은 그냥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결론이 났기 때문에 자기의 모든 것들을 내어놓았다는 사실. 이 말은 다른 말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것으로 지금껏 살아왔는데 지금부터는 이제는 내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로 내가 살겠다라는 그 결단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 내게 이익 되는 것을 중심으로 내가 살아왔는데 이제부터는 내가 그 중심으로 살지 아니하고 그리스도로 살겠다라는 것. 내 모든 것이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있구나! 여기에 대한 의지의 표현으로 자기의 모든 것들을 다 내어놓고, 그 내어놓는 것을 가지고 서로 팔아서 나누어 가졌다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활의 의미를 이들은 제대로 발견한 것입니다.
이 부활의 의미를 예수가 그리스도시구나! 우리 인생의 모든 근본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신 분이구나! 이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면 내어놓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셔서 지금 살아서 성령으로 역사하시고 우리의 한계와 경험과 능력을 뛰어넘어서 성령으로 우리를 직접 다스리고 계시고 우리의 자는 것, 앉는 것, 일어서는 것, 죽는 것, 사는 것 모두가 주님이 다스리신다는 것. 예수가 그리스도로서 그 그리스도가 부활하셔서 성령으로 지금 주님이 우리를 다스리신다는 것에 결론 났기 때문에 모든 것 다 내어놓으면서 나는 지금부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살겠다! 라는 결단이 이루어졌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내가 주님만 의지하겠다는 것입니다. 그 결단의 메시지가 바로 부활의 메시지였습니다. 그 결론이 나니까 이제는 내 모든 논과 밭을 내어놓게 되고 내 인본주의, 주장했던 것, 경험들이 전혀 쓸데없는 것이구나! 오직 그리스도만 바라보면 되는 것이구나! 여기에 대한 결단들이 부활의 메시지를 듣는 가운데 답이 다 나버린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의 있는 모든 소유를 팔아서 교회 앞에 내어놓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가 그리스도시다. 진짜 그리스도께서 내 인생의 모든 문제를 다 완전히 해결하셨고, 그 분이 지금 성령으로 나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이 깨달아지게 될 때 여기에 따라오는 것이 있습니다. 참된 결단들이 따라오게 되어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예배하는 가운데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이 믿어지고, 깨달아지고,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서 참된 결단이 이루어지는 그런 축복의 시간들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결단이 있어야 됩니다. 오늘 초대교회는 이 결단, 이 결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 이제는 내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살아야겠다. 이제까지 내가 인본주의 쓰고 내 주장, 내 열심으로 살아왔는데 그것이 아니구나. 내가 그리스도로 살아야 되겠구나. 그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지금 나의 모든 것을 다스리고 계시는구나!' 그러니까 내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결단들이 주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정말로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이 깨달아지면 내 인생에 대한 결단들이 와지게 되어있습니다. 여러분, 합숙을 가면 성도들이 많은 은혜를 받고 돌아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합숙을 가서 물론 그 동안 많은 메시지를 들었지만 진짜 집중해서 3박 4일 동안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뤄진 축복을 깨닫고 그 은혜를 받고 나니까 그 앞에서 스스로가 결단합니다. '아, 내가 이러한 엄청난 은혜를 받았구나!' 그래서 합숙을 다녀오신 분들을 보면 완전히 생애가 바뀐 사실들을 봅니다. 모든 생각들을 바뀐 사실을 봅니다. 그만큼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거기에 내 생애 중요한 결단들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2. 결단의 증인 - 요셉(바나바)
두 번째입니다. 오늘 그 결단한 한 사람을 증인으로 세웠는데, 그 사림이 누구인가? 요셉이라는 사람입니다. 결단의 증인 요셉을 하나님께서 오늘 본문에 세워서 우리에게 결단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요셉은 어떠한 사람인가? 다른 이름으로 바나바라고 본문에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36절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 (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 하니" 이 요셉이라는 사람을 그리스도 그 이름 앞에 결단낸 사람의 증인으로 세웠는데 오늘 요셉을 지칭하면서 그 앞에 나온 내용을 보면 요셉이 어떠한 사람이었는가? "구브로에서 온 레위족" 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속이다. 여러분 레위족속은 구약시대에 제사장 족속입니다. 다른 지파, 족속에게는 땅을 기업으로 줬습니다. 그런데 레위족, 즉 제사장 지파에게는 땅을 기업, 유업으로 주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기업이시다라는 것이고 하나님이 책임지시는 지파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 13:33에 보면 "오직 레위지파에게는 모세가 기업을 주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들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의 기업이 되심이었더라." 무슨 말입니까? 레위족의 기업은 하나님이 기업입니다. 하나님이 레위족을 책임지시고 축복하신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땅을 기업으로 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이 레위족인 요셉이라는 사람이 땅을 가지고 있고 그 땅을 내어놓았다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은혜 받고 보니까 내가 그리스도 없이 지난 날 살아왔구나! 이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이것이 회개입니다. 그러면 내가 돌이켜야 되겠다. 진짜 내가 그리스도로 살 사람인데……. 하나님이 나의 기업이고 하나님으로 살 사람인데……. 세상의 것, 육신적인 것, 눈에 보이는 것을 가지고 내가 살아왔구나. 이것이 보여지고 깨달아진 것입니다. 그래서 땅을 내어놓은 것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깨닫는 이것을 보고 회개라고 하는 것이고 결국에는 돌이키게 됩니다. 모든 땅을 다 요셉이라는 사람이 내어놓게 되고 그것 가지고 초대교회에 가난한 사람이 없어지게 되는 경우가 나왔습니다마는, 하나님이 구원받은 저와 여러분을 무엇으로 부르셨는가? 구약 시대에 레위족속을 제사장 지파로 불렀다면 저와 여러분을 이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게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하시고 이 시대에 제사장으로 부르셨다는 사실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했습니다. 저와 여러분을 영적인 레위지파로 부르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모든 힘의 바탕이 어디에서 오는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와야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힘을 얻어야 합니다. 우리의 힘의 근원은 세상의 것이 아닙니다. 육신적인 것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진짜 우리의 힘은 영적인 레위피자인 여러분의 힘은 어디에서 와야 하는가? 위로부터 오시는 하나님의 힘을 힘입어야 된다라는 것. 그리스도의 힘을 힘입어야 된다는 사실. 하나님이 우리의 축복이요, 우리의 상급입니다.
창세기 15장에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중요한 말씀을 했습니다. 뭐냐, 너는 지금부터 나만 믿고 살아라. 그 말씀을 하셨습니다. 창세기 15:1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셔서 "지금부터 나만 믿고 살아라. 내가 너의 방패가 되고, 내가 너의 상급이 되겠다." 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아브라함이 할렐루야 아멘 했습니다. 그런데 그러면 믿고 나아가야 하는데 창세기 16장에 보면 하갈을 취해서 이스마엘을 낳게 됩니다. 그것이 지금도 중동전쟁의 불씨가 되고 있습니다. 불신앙의 뿌리입니다. 그것이 86세 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또 다시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셔서 창세기 17:1- 에 보면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다. 완전함으로 행하라." 무엇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까? 이 말씀을 하신 때가 언제인가? 아브라함 99세 때입니다. 그렇다면 86세 때 불신앙 가운데 이스마엘을 얻고, 다시 17장에 바로 찾아오셔서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다. 완전한 가운데 거하라." 99세 때 말씀하셨다면, 13년 동안 아브라함은 불신앙 속에서 결국 헛된 삶을 살았다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로 만족하고, 그리스도 복음으로 힘을 얻고 살아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살아가는 모든 삶. 결국은 그런 축복된 삶을 살아가게 되어있습니다만은 지금 그 축복을 누리지 못한다면, 지금 여러분의 신앙생활이 아브라함처럼 헛된 삶을 살고 있다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됩니다.
오늘 본문에 요셉이라는 사람, 사실 레위지파이기 때문에 땅을 가질 수 없는 사람입니다. 땅을 가졌다라는 것은 지금 말로하면 비자금을 챙긴 것입니다. 비자금을 가진 것입니다. 땅을 가질 수 없는 사람이 땅을 가졌습니다. 지금 설명을 드린다면 사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야 될 사람인데 눈에 보이는 순간의 이익, 잠시 잠깐 의 이익을 주는 눈에 보이는 것을 의지하고 살아왔다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동안 살아갈 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지한 것보다도 당장에 효력을 발생할 수 있는 보이는 것을 의지하고 살아왔다라는 것을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나니까 내가 이제 은혜로 살아야겠다! 복음으로 살아야 되겠고, 복음의 능력으로만 살아야겠다! 모든 세상으로 살았던 것 다 끊어버려야 되겠다! 는 결단들이 이 바나바에게 요셉이라는 사람에게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로만 살아야 되겠다! 복음으로 살아야 되겠다! 이 결단들이 이루어졌다는 사실. 여러분,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결단하는 그 순간순간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시고 우리의 배후에 하나님이 역사하시게 되어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 정말로 결단하는 축복의 시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요셉이 그 결단한 것입니다. 나는 이제부터 그리스도 그 은혜로만 살겠다! 지난 금요 전도학교 시간에 메시지 이전에 찬양하는 시간이 있는데, 전도사님께서 찬양을 하나 가르쳐주셨습니다. 같이 배웠던 찬양인데 그 가사 제목이 '나는 예수로 살리.'라는 제목입니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오늘 이 바나바 요셉이라는 사람이 결단한 그 결단과 맞아지기 때문에 제가 그냥 읽어보겠습니다. "나는 예수로 살리. 나는 예수로 살리. 그의 십자가의 피로 살리. 나는 예수로 살리. 나는 예수로 살리. 그가 있기에 나도 있고. 나는 예수로 사네. 나는 예수로 사네. 그의 십자가의 피로 사네. 나는 예수로 사네. 나는 예수로 사네. 그가 있기에 나도 있고." 너무 간단한 가사입니다. 어려운 가사가 아닙니다. 이 가사가 반복되고 그러면서 '원수는 넘을 수 없는 보혈의 강' 그렇잖아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보혈 가지고 있으면 악한 원수가 우리를 공격해온다 할지라도 넘을 수 없습니다. 믿습니까? 원수가 넘을 수 없는 보혈의 강 그러면서 '세상은 이길 수 없는 성령의 능력. 나는 예수로 사네. 나는 예수로 사네. 그가 있기에 나도 있네.' 너무 은혜로운 가사이고 찬양입니다. 오늘 바나바가 내가 이제까지 눈에 보이는 것 의지하고 살아왔는데 이제는 복음 그리스도만 꼭 붙잡고 내가 살아가야 되겠다! 이 결단들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여러분, 진짜 무엇으로 사십니까? 정말 중요한 결단들이 오늘 있는 그런 시간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결단하면 누가 책임지시느냐? 하나님이 그 결단을 들으시고 그 마음을 보시고 하나님이 그 결단을 책임지십니다. 우리가 결단할 때 하나님이 우리 배후에 역사하시게 되어있습니다. 아니, 결단하고 또 결단하고 내가 결단하고도 못하는데 너무 염체 없는 것이 아닌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결단하는 그 순간순간마다 우리를 너무 기뻐하시고 우리를 너무 좋아하시고 결단하는 그 순간순간마다 하나님이 속으십니다. 그리고 배후에 하나님이 역사하시게 되어있습니다.
여러분, 자녀들 키우면서 잘못하면 회초리 들고 꾸지람 하잖아요. 그러면 맞는 것이 겁나서 뭐라고 합니까? 잘못했다고 살살 빕니다. 저도 어릴 때 저희 집에서 부모님들이 꾸지람하면 저의 형님을 절대로 잘못했다고 말 안하고 빌지 않습니다. 그런데 저는 조금만 꾸지람하려고 하면 잘못했다고 살살 비는 스타일입니다. 그런데 부모님들이 알면서도 속아줍니다. 잘못했다고 하면 봐줍니다. 그러면 또 그 짓 합니까, 안합니까? 또 합니다. 지나면 또 그 짓하는데 빌 때마다 부모님들이 다 알고 기특하게 여기잖아요 사실. 그런 것처럼 하나님 앞에도 부족하고 모자란 것 다 압니다. 우리의 연약한 것 다 압니다. 우리가 결단하고 못 지킬 것도 다 압니다. 또 넘어질 것도 다 압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결단하는 그 순간순간마다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고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그 결단을 지킬 수 있도록 하나님이 우리 배후에 역사하신다는 사실. 진짜 우리가 무엇으로 살아야 할 것인가.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 했습니다. 이 말은 다른 말로 해서 나는 날마다 결단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뭐라고 했습니까?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자기 안에 있는 육신적인 것, 죄의 모습들을 바라보면서 하나님 앞에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야기하면서 결단했습니다. 바로 이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곤고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또 결단한 것입니다. 그래서 내게는 그리스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또 붙잡은 것입니다. 여러분 백번 천번 결단하면 결단할수록 하나님은 기뻐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진짜 진지한 결단들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여러분, 아브라함 보세요.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갈대아 우르 우상 동네에서 건져내어 가나안 땅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러면 그 축복 붙잡고 어려움 와도 가나안 땅에 있어야 될 것 아닙니까. 그 땅에서 하나님이 축복하시겠다고 했는데……. 그런데 아브라함이 흉년, 기근이 오니까 가나안 땅에 있지 아니하고 애굽 땅에 내려갔습니다. 거기에 실패한 것 아닙니까. 또 아브라함은 빠져나왔다고 생각하는데 그 마음속에는 롯을 항상 데리고 있었습니다. 결단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것 때문에 아브라함에게 계속 어려움들이 왔습니다. 그런데 결단했습니다. 창세기 13:14에 보면 "롯이 아브라함을 떠난 후에" 그 때 하나님께서 본격적으로 축복하시면서 "마므레 상수리나무 수풀에 이르러 거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더라."고 창세기 13:18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이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 가정에 가병 318명 엄청난 축복의 역사들을 허락하셨던 사실들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결단하는 그 때 하나님께서 축복하신다는 사실. 오늘 본문에 이 요셉이 결단하니까, 바나바가 결단하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보는 눈이 열렸습니다. 다시 말하면, 땅의 것을 바라보지 아니하고 순수하게 하나님의 것을 바라보니까 하나님 앞에 설 일꾼을 이 사람에게 붙인 것입니다. 그래서 바나바에게 누가 붙여졌는가? 시대를 살리는 바울이 바나바에게 붙여졌습니다. 오늘 성경을 읽지는 않았습니다만 사도행전 9:26-27에 보면 다메섹에 부활하신 주님을 바울이 만난 후에 사도들과 함께 하고자 예루살렘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사도들이 이 바울을 받지 않았습니다. 왜냐, 누구인지 알기 때문에……. 사울이 예루살렘에 들어가서 사도들과 함께 하고자 했는데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들은 두려워함으로 받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27절에 보면 바나바가 이 사울을 제자들에게 데리고 가서 이 사람이 다메섹에서 예수를 만난 것과 예수님이 이 바울에게 하신 말씀과 담대히 예수의 말을 한 것들을 바나바가 제자들에게 바울을 소개했습니다. 이 축복을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것으로 끝났느냐? 세계를 복음화 하는 안디옥 교회에 사실 당회장이 바나바입니다. 협동 목사가 바울입니다. 그런데 함께 사역을 하게 되고 특별히 사도행전 11:25-26에 보면 이 바나바가 다소에 있는 사울을 데리고 와서 안디옥에서 1년 동안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고 했습니다. 그 결과 얼마나 역사가 일어났는가? "큰 무리가 주께 돌아왔고 거기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칭함을 받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 만남의 축복이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는가? 바나바가 결단하는 그 때 하나님께서 세계 살릴 일꾼을 붙이셨고, 세계복음화 할 수 있도록 교회를 붙이셨다는 사실. 나중에 바나바와 바울이 세계선교사로 팀이 되어 나가게 된 사실들을 보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결단할 때 역사는 누가 하시느냐?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단할수록 유익입니다. 백번 천번 만번 할수록 유익입니다. 진정한 참된 결단들이 오늘 이 시간 이루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신앙생활도 들러리로 그냥 따라서 하지 말고,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 개인이 정말 하나님 앞에서 결단하는 신앙생활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남편 따라, 아내 따라 신앙생활하면 아내 따라, 아내 치맛자락 붙잡고 천국갈 것 같습니까? 천만예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남편 따라, 아내 따라 신앙생활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또 어떤 분들은 우리 단체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를 '뭐 그렇게 매달마다 모이느냐. 꼭 그렇게 모일 필요가 있느냐. 뭘 그렇게 따라가느냐' 하는데 아닙니다. 따라가는 것 아닙니다. 내 돈 내고 가는데 무엇을 따라갑니까? 우리가 결단해서 가는 것 아닙니까. 함께 세계복음화위해서 가는 것 아닙니까. 결단해서 가는 것입니다. 따라가는 것과 다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에 보면 바나바는 결단함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이지만 그러나 불행하게도 따라갔던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누구냐. 오늘 5장을 그냥 읽은 것이 아닙니다. 아나니아라는 사람이 따라갔던 사람입니다. 바나바를 보고 '아, 저러면 교회에서 인정받겠네.' 인정받고 싶어서 결단함으로 나아간 것이 아니라 따라갔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나중에 비참한 일을 당했습니다. 여러분, 따라가는 것과 결단하는 것 처음에는 모르지만 문제와 사건 당하면 들통 나게 됩니다. 결과는 분명히 달라지게 되어있습니다. 특별히 본분에 나오는 아나니아는 체질적인 부분들, 다시 말해서 자기 마음속에 있는 동기들을 버리지 아니하고 나아왔던 사실들을 보게 됩니다. 바나바가 재산을 바침으로 말미암아 칭찬 듣는 것을 보면서 '아, 나도 하면 칭찬받겠네.' 사실 바나바는 칭찬받기 위해서 판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아나니아는 칭찬이라는 동기 때문에 팔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비참하게 부부가 멸망당하고 실패하는 사실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내가 복음 안에서 중요한 참된 결단들을 내릴 때 누가 축복하시는가? 하나님이 여러분의 생애를 축복하시고 책임지게 되어있습니다. 왜 많은 사람 중에 오늘 바나바라는 사람을 세웠는가? 오늘 바나바 요셉이라는 사람을 세웠습니다. 다른 말이 아니라 복음 안에 모든 것이 다 있다라는 그 증인으로 바나바를 세운 것입니다. 여러분이 결단함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을 보는 모든 사람들이 복음 안에 모든 것이 다 있구나! 이 축복된 일에 증인되어지는 그 축복을 누리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유대인 작가 중 한 사람이 신을 찾아서 40년 동안 방황을 했습니다. 그런데 40년 동안 방황했는데도 불구하고 신을 찾지 못해서 집에 들어가서 엎드렸는데 그 순간에 뭔가 자기를 휘감는 것이 있어서 그것을 확 던져버렸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신이 있었습니다. 그 휘감는 것을 던졌는데 그것이 뭐냐, 자기가 평생 걸치고 다녔던 헌 낡아빠진 두루마리 이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참된 신을 못 본 것입니다.
이것은 이야기입니다만 우리 안에 있는 체질들, 우리 안에 있는 동기들 때문에 오직이 안 되고 있습니다. 오직 되면 유일성의 응답과 영적인 정상에 서게 되는데 우리 안에 있는 동기들, 체질들. 아나니아가 가지고 있는 설명 안 되지만, 밖으로 보이지 않지만 중심에 가지고 있던 동기들, 체질들 때문에 결국에는 중요한 축복을 놓쳐버린 것과 같이 우리 안에 있는 동기들, 체질들 때문에 뭔가 모르게 열심히 하면서도 시간 가면 갈수록 어려움과 고난들이 계속 되고 있고 그것을 버리지 않고 정리되지 않으면 인생의 마지막에 가서 비참한 생애가 되어진다라는 사실. 그렇다면 우리 안에 있는 동기, 체질들을 어떻게 치유 받을 수 있는가? 바로 24시 기도로 행복함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WITH라는 복음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는 그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것을 붙잡고 24시 기도 속으로 들어가서 행복하게 될 때 우리의 동기와 체질들이 치유되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바나바가 있고, 아나니아가 있습니다. 여러분, 진짜 우리가 오직 그리스도만 의지하고 살아야겠다고 바나바가 결단한 것처럼 바나바의 결단이 우리의 결단이 되어짐으로 이 한 시대를 승리하는 그런 전도자의 삶이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3년 9월 29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바나바, 아나니아
(행4:32∼5:2)


서론: 초대교회는 모든 사람이 하나되어 재산을 내어놓고 통용하며 나누어 가졌습니다(행2장, 행4장). 그 가운데 나면서 못 걷게 된 자를 고치는 사건(행3장)이 있었는데, 이후 칭찬이 아니라 무서운 핍박이 돌아왔습니다. 그런데도 초대교회는 여전히 아름다운 부분들을 그대로 유지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심지어 순교를 당해도 초대교회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지금의 한국교회에 대해서도 이와 같은 많은 핍박과 어려움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성도들 가운데서도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다고 했는데, 여전히 어려움과 실패, 고난이 계속 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어려운 환란과 엄청난 핍박을 이긴 초대교회가 가진 메시지는 과연 무엇일까요?

1. 초대교회 메시지
(1) 초대교회는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였습니다.
1) 초대교회가 가진 그리스도에 대한 기준은 죽으시고 부활하심임 (초대교회의 메시지)
2) 부활을 증언할 때, 교회의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았고(33절) 가난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음(34-35절)
(2) 초대교회는 그리스도에 대한 ‘부활의 의미’를 제대로 발견했습니다.
1)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셨음
2)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지금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생사화복을 직접 다스리심
(3) 초대교회처럼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참된 결단을 내려라!!
1) 정말 그리스도를 깨달으면 우리의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결단을 할 수 밖에 없음
2) 이제 그리스도 중심으로 그리스도만 의지하고 살겠다는 참된 결단을 내리면 됨

2. 결단의 증인 - 요셉 (바나바)
(1) 요셉(바나바)은 그리스도를 깨닫고 결단을 내렸습니다.
1) 요셉은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속(제사장 족속)으로, 땅을 가질 수 없는 사람(여호와께서 그의 기업)이었음
2) 은혜 받고 결단한 뒤, 그리스도 없이 살아온 지난날을 회개하고 땅(우리의 경험.체질,인기,명예)을 내어놓은 것임
(2)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 시대의 제사장으로 부르셨습니다. (영적인 레위 지파)
1)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보다, 당장 눈 앞에 보이는 것만 의지한다면 헛된 삶을 살고 있는 것임
2)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힘의 바탕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얻을 수 있음 (위로부터 오는 힘)
(3) 우리가 결단할 때, 하나님께서 그 결단을 지킬 수 있도록 책임지시고 축복하십니다.
1) 하나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곳을 보는 눈이 열림 (행9:26-27, 행11:25-26 바울과의 만남의 축복)
2) 따라다니는 신앙생활로 멸망(행5장의 아나니아)당하지 말고, 복음 안에서 참된 결단하는 신앙생활을 하라


결론: 우리 안의 체질과 동기들 때문에 ‘오직’이 안되고 있습니다. 오직이 되면 ‘유일성’의 응답과 함께 ‘영적인 정상’에 설수 있습니다. 오늘 본분의 아나니아를 보면, 비록 설명이 안되고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체질과 동기들 때문에 어려움과 고난을 당하다가 인생 마지막에 가서 비참해짐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잘못된 동기와 체질을 버리고, 24시 기도로 행복함 속에 들어가야 합니다(With의 축복). 이렇게 될 때 치유가 일어납니다. 오늘도 우리 안에는 바나바와 아나니아가 있습니다. 한주간 오직 그리스도를 붙잡고, 바나바의 결단이 우리의 결단이 되어 한 시대를 살리는 참된 축복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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