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2011-02-13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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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2월 13일 주일2부 예배 신봉준 목사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출애굽기 15장 22~27절)
22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23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24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25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26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27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에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출15:22~27
■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의 박수를 돌려드립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전도자의 삶의 축복을 누리십시오! 우리는 주님을 떠나서 살 수 없습니다. 주 안에 있는 참된 기쁨을 이 한 날 회복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상에는 두 종료의 사람이 있습니다. 구원받은 사람과 구원받지 못한 사람,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겉으로 봐서는 표가 나지 않고 잘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성령께서 역사하신다는 것과 믿지 않는 자에게는 악령이 역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악령이 세상의 모든 어두움을 주관하면서 우리 인생을 실패로 멸망으로 끌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성공한 많은 사람들과 지식인들 그리고 유명인들이 왜 점술인과 무속인을 찾아가는지 아십니까? 사실 그 배후에 악령이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또, 많은 청소년들이 타락하며 마약에 중독되며 환락에 빠지느냐? 그 또한 배후에 악령이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그와 반대로 하나님의 자녀인 저와 여러분에게는 하나님의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바로 하나님의 자녀 곧 성령의 사람은 기도할 때 최고의 은혜가 성령의 충만함인데 우리는 이 힘을 얻고서 승리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사람은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할 때, 세상을 이기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불신자와 똑같이 어려움을 당하고 오히려 어떤 면에서 이중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날마다 확인하고 누려나가야 할 것입니다.
세상에 두 종류가 있다면 교회 안에도 두 종료의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냐? 기도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속해 있습니까? 어떤 사람에게는 문제가 문제가 안됩니다. 제가 문제라고 생각해서 말씀드렸는데 그 말을 전한 저 자신이 참 부끄럽구나 하는 사실을 느꼈습니다. 문제가 문제가 아닌 이유는 그 사람이 바로 기도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에게는 조그마한 불신앙의 틈도 허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반대로 문제를 당하지 않았는데도 미리 문제를 추측해서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단순히 원망하고 불평하는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배경에는 분명히 불신앙이 자리 잡고 있는 것입니다. 불신앙 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한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있다면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하고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하게 될 때에 그 어떤 문제와 사건과 어려움이 있어도 그 속에 하나님의 계획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된 응답들을 또 찾아내게 되어있습니다.
어느 초등학교 교사분이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세계복음화를 위해서 학교 현장인 내 현장에서 하나님이 나를 쓰고 계시다 라는 사실이 발견되어집니다” 그렇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아무리 전도문이 막혀진다 할지라도 걱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을 통해 이루실 또 다른 응답을 찾아낼 사람이기 때문에 상관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신약성경에 가장 큰 응답을 받은 사람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자마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 인생이 살아야 할 이유와 자기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9장 15절 말씀같이 임금들과 이방인과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을 위해 복음을 증거하기 위한 택한 그릇임을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바울은 붙잡았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19장에 에베소 지역에 하나님의 큰 응답이 일어났고 그 응답 이후에 또 하나님의 계획을 붙잡았는데 바로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는 하나님의 계획을 붙잡고 나가는 걸음 속에 어려움과 문제와 사건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심지어 죽이기 위해 공격해오는 어려움도 있었습니다만 그 어려움과 핍박과 문제들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전도의 문을 열기 위한 계획이었으며 전도의 문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응답을 가지게 되면 보고, 생각하고, 말하는 모든 것들이 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향하신 계획과 우리 교회를 향한 계획을 발견한다면 이런 저런 문제들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시는가 그 계획을 붙잡고 승리토록 되어 있는 것이 저와 여러분인 것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430년간 애굽에서 종살이했습니다. 그것 또한 자칫 실패라고 볼 수 있는 부분인데도 하나님의 계획 속에 보면 애굽 전역에 여호와의 살아계심을 증거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문제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그 능력을 가지고 보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실 원망하고 불평하는 내용들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안다면 원망과 불평이 사라질 것인데, 출애굽기 14장에서 살펴본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넜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계획을 알고 있었기에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너희는 가만히 서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여호와의 구원을 보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말할 수 있었고 그 반면에 하나님의 계획을 알지 못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라는 문제 앞에서 원망하고 불평 했던 사실을 보게 됩니다.
오늘 이 아침에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를 점검하고 진단할 수 있어야합니다. 먼저, “나는 구원받은 자인가? 그렇지 못한 자인가?”점검해보시기 바랍니다. 혹시 구원받지 못한 자가 이 자리에 앉아 계시다면 구원받아야 합니다. 우리 인생은 절대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문제요, 죄의 문제며, 사탄의 문제는 인생이 절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보내주시고 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십자가에서 우리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을 떠난 문제와 죄 문제와 사탄의 문제를 모두 해결하시고 그 사실을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되는 권세를 주신다 약속하셨고 구원받는다 했습니다. 그래서 먼저 “내가 구원받은 자인가 구원받지 못한 자인가?” 질문해보십시오. 미안하지만 구원받지 못한 자는 그 배후에 악한 사탄이 악령이 그 인생을 실패와 멸망으로 끌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피할 길이 없습니다. 거기서 빠져나와야 합니다. 구원받은 자라면 어디에 있습니까? 나는 하나님의 계획을 붙잡고 기도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인가? 우리 안에 있는 믿음은 분명히 역사가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반대로 원망하고 불평하는 불신앙도 어느 날 열매가 맺혀집니다. 믿음의 열매도 맺혀지는 반면에 반대로 불신앙의 열매도 맺혀지게 됩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기도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입니까? 오늘 이 자리에 참여한 여러분 모두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써 기도하는 축복된 응답을 누리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을 읽으며 지금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해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넌 그 기쁨과 감격을 인하여 하나님 앞에 찬송하였습니다. 찬송한 내용이 지난주 살펴보았던 내용입니다. 그런데 홍해를 건너 삼일 길쯤 걸었습니다. 그리고 마라 지역에 이르렀는데, 그 마라 지역에서 도착하여 갈증으로 인해 목이 마른데 물이 쓰기에 마시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또 원망하고 불평하게 된 것입니다. 원래 마라 지역의 물은 수질이 짜고 좋지 않은 것이어서 먹지 못하는 물입니다. 그래서 “마라” 라는 단어자체가 “쓴, 괴롭다” 란 의미입니다. 당시 근방의 모든 지역에서 가장 나쁜 물이 마라 지역의 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삼일 길을 걷고 난 후 물을 마시고자 했지만 물이 쓰기에 마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성이 드러남으로 지도자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고 불평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런데 결국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끄셔서 첫 번째 다다른 지역이 마라지역이며, 두 번째로 다다른 지역이 엘림지역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예비하심이라는 의미가 엘림인데, 그곳에는 물 샘 12곳이 있고 종려나무 70주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 곁에 장막을 쳤다 했습니다. 출15:27“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에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제가 이번주간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참 많은 은혜를 입은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영적으로 이와 같이 축복하시는 것 아닌가? 이것이 전도자의 삶이 아닌가?” 늘 원망하고, 불평하는 삶에서 괴로움밖에 없는 인생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시느냐하면, 12개 오아시스 70개 종려나무가 있는 곳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당시의 물은 곧 생명을 의미합니다.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을 이렇게 축복하실 것이다 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비록 원망하고, 불평하며 괴롭다며 쓰다 하지만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엘림의 축복을 주실 것이 아닌가?! 물 곁에 장막을 치게 되는 이 풍성함의 축복을 허락하실 것이 아닌가?!
여러분, 그렇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전도자의 삶 속에 들어가서 이 축복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붙잡고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때에 따라 하나님이 이 축복을 주시기 위해 어려움과 문제와 사건들을 주실 수 있습니다만 거기에 속지 마십시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우리 생애를 축복하셔서 기어코 엘림의 축복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엘림”이란 의미는 “나무”이지만 “안식처”입니다. 기어코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안식의 추복과 그 풍성함으로 인도하실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안식으로 인도 하실 것인데 그 과정 속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라는 사실이며 그 속에서 속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만 봐도 그렇습니다. 빠져나올 수 없는 애굽에서 빠져나오게 하시고 홍해를 지나게 하셨는데, 광야의 여정 없이 곧바로 가나안 땅에 들여놓으시면 될 것인데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광야길 가는 동안 죽을 고생하도록 허락 하시고 어떤 면에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시기 위한 시험인 것입니다. 여기에 속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출애굽기 15장 25절에 보면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 새…” 창세기 22장에도 아브라함에게 시험하셨습니다. 이 시험은 저와 여러분을 멸망시키기 위한 시험이 아니라 축복주시기 위한 시험인 것입니다. 믿습니까?
다시 말씀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으로 바로 들여놓으셔도 되는데 왜 광야 길로 가게 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에 왜 어려움 당하고 고난당하게 허락하셨느냐와 같은 말입니다. 어떤 때는 응답받지 못하다 보니 정말 하나님이 살아계시는가에 대한 부분이 의심되기도 합니다. 혹시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신지 의심되는 분이 있습니까? 분명한 것은 그 분은 구원받은 자입니다. 왜냐하면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그러한 의심조차 없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내 안에 임하시기 때문에 그러한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속을 수 있습니다. 또, 정말 나의 신앙생활이 늘 성령 충만 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고 믿음이 약해지며 낙심되고 의심되어질 때 우리의 연약함과 나약함 때문에 흔들릴 때에도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들을 해 나가시는데, 전도자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중요한 응답들을 그 때 준비해 나가신다는 사실입니다. 속지 말고 문제와 사건들,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의 응답들을 찾아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도록 하시기 위해(출15:26)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에게 어려움과 시험을 허락하십니까? 그 첫 번째 이유는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 이사야 40:31에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말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며 이런저런 많은 축복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참 복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 복입니다. 우리가 지식을 많이 가지는 이유가 있습니다. 지적인 눈이 열리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세상에는 못 배운 사람보다 배운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실, 지식뿐만 아니라 어떤 면에서는 영적인 부분들도 볼 수 있는 눈들이 열려져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세상 돌아가는 부분들 속에 육신적인 눈도 열려져야 합니다만 특히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아는 영적인 눈이 중요합니다. 이것을 바로 영적인 사실을 볼 수 있는 영안이라고 하죠. 지식적인 눈을 지안이라 하며 육신적인 눈을 육안이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아는 영안. 여러분, 이 사실에 대한 눈이 열려져야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은 인간이 하나님을 알도록 지음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개나 돼지 등의 금수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해도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알도록 지음 받은 영적인 존재로 창조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멸망 받지 않도록, 하나님을 알도록 우리를 지으셨습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합니다. 환경과 문제에 속으며, 환경과 사건에 속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속기위해 허락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을 바라보게 하시기 위해 허락하신 것인데 사탄에게 속는다 라는 사실입니다.
시편 81편 13~14절이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 백성이 나를 청총하기를 원하며 내 도 행하기를 원한다”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청종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하나님께서 손을 들어서 원수와 대적을 멸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정말 어려움이 있습니까? 어려움 가지고 몸부림치지 마시고 오랫동안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답을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당장에 이렇다, 저렇다 말하지 마시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답을 주시는 시간표를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시편 50편 15절에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환란 날에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시는 축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우리에게서 가장 큰 축복은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다 라는 사실입니다. 모세가 나이 80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그때부터 하나님의 새로운 응답들이 시작된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문제와 사건과 일들을 바라보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그것이 사탄의 속임수에 속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왜 문제를 허락하셨느냐? 문제 보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사인이며 빨리 답을 내라고 허락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이 땅의 모든 문제는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음으로 비롯된 것입니다. 호세아 4장 6절에는 “내 백성이 지식이 없음으로 망하는도다” 어떤 지식입니까? 하나님을 아는 영적인 지식 곧 창조주 하나님을 알아야 하는데 창조주 하나님을 아는 영적인 지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만날 길을 여셨는데 그 사실을 알지 못함으로 망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의 모든 어둠과 그릇된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비롯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영적인 지식을 가지고 알게 될 때, 참된 안식과 평안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지식적인 부분과 부와 명예들이 필요합니다. 이것들은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부와 명예와 지식이 여러분에게 참된 안식을 줄 수 있습니까? 결코 아닙니다.
매주 새로운 주제들로 글을 싣고 있는데 주보가 개편되면서 이러한 글들을 싣는 이유는 전도 자료로 활용하기 위함입니다. 연락처란에 전달자의 연락번호를 남기셔서 전도하는데 활용하시면 되겠습니다.
오늘 주보에 깊은 샘(중직자 편지)을 보시면 “하면된다, 하면 됩니까?” 라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로봇(공학)에 관심을 가졌던 아이가 로봇경연대회에 출전한 것만도 60여 차례였고 많은 상을 받았습니다. 고등학교는 인문계로 진학하게 되었는데, 본격적으로 로봇을 연구해야 하겠다 싶어 전학하여 실업계 고등학교로 옮겼습니다. 그곳에서 국제적인 수상도 하게 되어 한국 최고의 대학인 카이스트 대학에 합격을 한 후 1년을 공부하다가 그 학교에서 자살해버렸습니다. 부모에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자녀가 그렇게 중압감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다른 부분에서는 학점을 F학점(최고 낮은 성적)을 받으니 중압감을 느꼈던 것이고 결국 자살하게 되었는데 한국 교육의 현실적인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 내용인즉슨 우리가 열심히 하는 그것이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에게 지식, 돈이 필요합니다. 위치나 자리도 좋습니다. 그러나 과연 우리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느냐 입니다. 비록 조금 못한다 할지라도, 분명한 것은 영적으로 참된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되면 그 속에서 참된 행복과 만족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삼서 1장 2절에 보면 “네 영혼이 잘됨과 같이 범사에 잘되고…”먼저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영혼에 축복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모든 것들이 잘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영적인 힘을 잃어버리면 대부분 만사가 귀찮아집니다. 생활과 삶이 흐트러지며 뭔가 안됩니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 영적인 축복과 부요함을 누리면 참된 평안과 안식과 만족을 누리게 됩니다. 이 축복을 누리길 축원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하나님만 바라볼 수 있는가? 그 길을 하나님이 주셨는데 그 길은 바로 그리스도입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그 어떤 것으로도 하나님을 알 수 없고 바라볼 수 없는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만 바라보도록 길을 여셨고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만나는 길이십니다. 그리스도는 죄 문제에서 우리를 해방시키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사탄의 손에서 우리를 건지셨습니다. 한번 받아합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만나는 길이시다, 죄 문제에서 해방시키셨다, 사탄의 손에서 우리를 건지셨다” 아멘.
이 그리스도의 이름 붙잡고 나아가는 걸음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고 그리스도 이름으로 걷는 걸음마다 흑암이 무너지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 이름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한 사람은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망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버림받지도 않습니다. 어려움 당한다 할지라도 망하지 않습니다. “결단코 너희를 해할 자 없느니라” 말씀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죄와 저주에서 건지시고 사탄의 손에서 건지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이 땅에서 승리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축복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만 바라보면 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이사야43장1절)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의 자녀 삼으셨습니다. 양자의 영을 보내셔서 아바 아버지로 부르도록 하셨습니다. 결단코 망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4:8~10에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열왕기하 19장에 보면 앗수르 왕 산헤립이 침공했다는 소식에 히스기야 왕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다가 안 되니 결국 마지막에 그 편지를 하나님 앞에 두기 기도하며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18만 5천 앗수르 군대를 송장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은 옛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바라보는 순간에 하나님은 영적인 역사를 일으키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왜 어렵게 되는 줄 아십니까?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기 위함입니다. 여러분은 축복받을 사람인데,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으니 하나님만 바라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2. 하나님의 자녀된 축복을 회복하기 위해(출15:26)
두 번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축복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입니다.(26절)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만이 하나님의 목적이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받게 하시고 구원받은 저와 여러분을 통해서 하나님이 모든 현장을 살리기 원하십니다. 정복하고 다스리는 축복을 누리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 뭐냐? 신분과 권세를 주신 것입니다. 왜 자꾸 어려움을 주시느냐?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축복을 회복하라는 것인데 그것을 다른 말로 해서 진짜 참된 신분과 권세, 현장을 살리고도 남을 수 있는 그 신분과 권세를 회복케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믿는 저와 여러분에게 모든 현장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신분과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것을 누려야 합니다. 참된 응답의 시작이 어디서 나오느냐? 참된 신분과 권세를 누리면서 응답이 시작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성경을 한번 잘 읽어보십시오. 아브라함에게, 모세에게, 렘넌트 일곱 명이 하나같이 언제 하나님이 응답의 문들을 여셨느냐? 다른게 아닙니다. 신분 회복했을 때입니다.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신분 회복했을 때입니다. 창세기 14장에 연합군과의 전쟁에서 아브라함이 승리하고 돌아올 때 소돔왕이 나와서 이야기 했습니다. "모든 재산은 네가 가져가고 사람은 나를 달라" 그럴 때 아브라함이 이야기 했습니다. "아니다. 실 한 오라기 하나도 내가 가져가지 않겠다. 들메끈 한 가닥도 내가 가져가지 않겠다." 이 말은 나는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신분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엄청난 축복의 문을 여셨습니다.
창세기 30장에도 보면 야곱이 외삼촌 라반과의 관계 속에서 야곱이 이야기 했습니다. "외삼촌 당신이 나 때문에 복을 받았다"고 하니까 외삼촌 라반이 "맞다 너 때문에 내가 복을 받았다"고 인정을 했습니다(창세기 30장 25-27절). 야곱이 내가 가는 걸음걸음마다 하나님이 나를 통해 당신 집에 복을 내리셨다고 야곱이 인정하고, 야곱이 또 "내 살림은 언제 차릴까?" 하니까 외삼촌 라반이 "내가 너에게 뭘 줄까?"하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때 야곱은 필요 없다고 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사람이라는 신분에 대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창세기 34장에 야곱의 딸 디나가 강간을 당하게 됩니다. 그 어려움을 당했을 때 창세기 35장에 보면 "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신분을 회복하는 것이었습니다. 진짜 참된 응답은 어디서 오느냐? 여러분, 신분과 권세를 회복하는 거기서부터 모든 응답의 문들이 열려집니다.
저와 여러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어떤 신분과 권세를 주셨습니까?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그 성령께서 분명히 걸음걸음마다 인도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기도하는 곳에 역사 하고 계십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주신 신분입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여러분이 가는 곳마다 분명히 하나님이 내 안에 거하시기 때문에 흑암이 꺾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여 지고 하늘군대를 동원하셔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지키시게 되어 있습니다. 세계를 복음화 할 수 있도록 제자를 세우는 그런 축복된 역사들의 권세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신 신분과 권세입니다. 그것을 회복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건드리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8장 16-20절에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 잘 아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명령이라고 우리가 붙잡고 있습니다. 주님의 명령이면서도 우리에게 주신 신분에 대한 확인입니다. 다시 말해, 세상 모든 족속으로 제자 삼을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진 주님이 성령으로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시겠다 라는 신분에 대한 축복입니다. 여러분이 이 축복을 깨달아야 합니다. 신분에 대한 축복입니다.
정말 하나교회는 세계복음화를 위해 세우셨는데 주의 종으로서 주어진 축복, 또 중직자로서, 평신도로서, 렘넌트로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나를 이 자리에 세우셨는가? 이 신분에 대한 축복을 깨달을 때부터 교회를 통해서 제대로 된 응답들을 여러분 개개인이 누려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한 시대를 살리는 전도자의 삶 속에 저와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에 대한 신분입니다. 이 사실을 깨달음으로 참된 응답을 모든 현장에서 찾아내는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가나안 땅에 들어가 앞으로 할 일이 중요하기에
마지막 세 번째입니다. 지금 문제뿐만 아니라, 왜 문제를 주시느냐? 앞으로 남아 있는 더 큰 중요한 축복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광야 길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넉넉히 승리할 수 있도록 그릇을 준비하셨습니다. 당장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7족속 31왕이 대적으로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 사람들은 전부 다 우상숭배 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을 어떻게 이길 것입니까? 그것을 이길 수 있도록 믿음과 사명을 회복시킨 것이 광야 길의 걸음이었습니다.
앞으로 남아 있는 세계복음화의 축복된 역사를 위해서 그 그릇을 준비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때에 따라 어려움과 문제와 사건들을 주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문제와 사건에 속지 마십시오. 전부 다 그릇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어떤 분에게 전화가 와서 "목사님 예수 못 믿겠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가 예수 믿기로 작정하고 마음에 결단하고 좀 제대로 믿어보려고 하는데 주위에서 전부 나를 공격해 옵니다. 그래서 도저히 예수 못 믿겠습니다." 제가 그 말을 듣자마자 그분에게 말씀했습니다. "그게 응답입니다. 결국은 주위의 사람들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 바라보라는 싸인 아닙니까? 그것을 못 깨닫겠습니까?" 주위에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공격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당신이 예수그리스도 잘 믿어 하나님의 축복 받아가지고 안 믿는 가정과 가문 살리려는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하나님의 축복된 것이 안 보입니까?" 하니까 "맞네요" 했습니다. 그래도 "나는 내 그릇이 안 됩니다." 이야기하기에 "그릇은 당신이 키우고자 해서 커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키우시는 것입니다. 가정과 가문을 살릴 만큼, 세계를 살릴 만큼 하나님이 당신의 그릇을 키우실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문제를 주시는 것 아닙니까?" 하니까 "맞네요. 그러면 내가 믿어보겠습니다. 해보겠습니다." 대답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어떤 문제도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만 바라보면 됩니다. 신분회복 하도록 하시는 겁니다. 진짜 믿음회복하고, 사명회복 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는 자에게는 문제가 문제 아니라 축복이요, 응답입니다." 할렐루야! 속지마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참된 전도자의 삶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고, 신분회복 하는 것이고 믿음회복, 사명회복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하나님은 우리를 이끌어 가고 계시는 것입니다.
결론으로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본문 25절에 보면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하나님이 모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시고 그 나무를 꺾어 물에 던져 넣으니까 물을 먹게 되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어디에 관심이 있습니까? 아, 물을 먹게 된 이 기적, 이 응답 얼마나 엄청난 것인가!! 여러분 입 다 벌려서 자랑할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내게 이렇게 축복하셨다고 고백할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더 중요한 것이 창조주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킨 것보다도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이게 더 중요한 것입니다. 응답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정확하게 시간표에 따라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 또 기도의 비밀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입니다. 진짜 참된 축복의 역사들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기도해서 나타난 결과가 아니고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이 기도 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저와 여러분이 이 한해에 기도를 회복해야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창조주 하나님의 역사를 내 것으로 누리는 것이 기도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 그 사실을 나의 것으로 누리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분명히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기도하게 될 때 천국 창고를 열게 되어 있습니다. 하늘 보좌의 문들이 열려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이 이 한 해에 다른 것보다도 24시간 기도 속에 들어가고, 우리 성도들이 24시간 기도하는 팀들이 구성되어져서 기도하는 축복을 누려야 되겠습니다. 감사한 것은 오늘 주보에 광고가 나간 것처럼 우리 주일학교에서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수요 저녁예배 후에 교역자와 부장 장로님과 교사 분들이 모여서 교회의 중요한 기도제목들과 또 렘넌트와 주일학교를 위해 기도하겠다고 시작했습니다. 또 우리 권사님들도 이런 계획들을 세우고 있고 장립집사님들도 포럼 하면서 함께 인도받고자 하고 있고 장로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면에서 이런 부분들이 교회 안의 운영위원회에서 계획을 해서 전체가 어떻게 하면 24시 릴레이 기도로서 교회가 기도의 불을 끄지 않고 할 것인가?
이미 우리에게 완벽한 복음을 주셨습니다. 세상 살리는 성경적인 전도방법을 다 주었습니다. 사람 살릴 수 있는 말씀도 가졌습니다. 다 있습니다. 한 가지만 회복하면 됩니다. 기도만 하면 됩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러분, 성도의 기도는 하늘 보좌를 여는 축복의 문이 됩니다. 반면에 성도의 침묵은 하나님의 축복과 단절되게 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하늘보좌의 문을 열수 있도록 우리에게 열쇠를 주셨는데 "그리스도" 이름을 주셨습니다. 2011년 이 한 해 여러분 개개인이 "그리스도" 그 이름을 최고로 많이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현장에 "그리스도" 그 이름 사용하십시오. “그리스도 그 이름 부르시고”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최고기도 많이 하는 사람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역사 -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이 축복된 응답이 여러분의 것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전도자로 세우시고 마른 땅을 걸어가는 것 같고 원망하고 불평할 수밖에 없는 환경들인것 같지만, 그러나 그 속에서 기어코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도를 통해서 전도자의 삶을 사는 귀한 축복가운데로 인도하시고 결국은 '마라'를 지나서 '엘림'에 이르게 하시는 이 축복된 역사가 우리의 모든 현장 속에 주의 종들의 걸음 속에 나타날 줄로 믿습니다. 특별히 물 곁에 장막을 치는 귀중한 축복된 응답을 주의 종들이 누릴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이 일을 위해서 정말 온 교회가 함께 기도 속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24시간 기도 속에 들어가게 하시고 우리 개개인들이 정말 이 한해 그리스도 그 이름을 최고로 많이 부르고 최고로 많이 사용하는 그런 축복된 일꾼들 되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살아계신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2011년 2월 13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출15:22-27)
서론: 무엇을 하기 이전에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해야합니다. 이 응답이 없으면 불신앙하게 되고, 이 응답이 있으면 어떤 문제와 어려움이 있어도 그 속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찾아내게 됩니다.
늘 원망하고 불평하며 괴로움 밖에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은 열두 개의 오아시스와 일흔 그루의 종려나무가 있는 곳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우리 생애에 이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길 가는 동안 그들에게 허락된 어려움은 그들을 축복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시험입니다. 축복 주시기 위한 시험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려움과 시험을 허락하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1.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도록 하시기 위해(26절)(믿음 회복)
(1) 참된 복은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사40:31).
1) 인간은 하나님을 알도록 지음 받았음
2) 하나님을 바라볼 때 하나님께서 답을 주심(시50:13)
3) 이 땅의 모든 문제는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는데서 비롯됨
4) 참된 만족과 행복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데서 나옴(요삼1:2)
(2) 어떻게 하면 하나님만 바라볼 수 있는가? - 그 길은 바로 그리스도(요14:6)
1)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사람은 절대 망하지 않음(고후4:7-9)
2)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바라본 히스기야 왕에게 하나님은 영적인 역사를 일으키심(왕하19장)
2. 하나님의 자녀 된 축복을 깨닫게 하기 위해(26)(신분 회복)
(1) 하나님은 우리가 현장을 살리고도 남을 참된 신분과 권세를 회복하기를 원하십니다.
(2) 하나님이 주신 신분과 권세:
1) 성령내주 2) 성령인도 3) 기도응답 4) 흑암이 꺾임
5) 하늘군대를 동원해 하나님 백성을 지키심 6)응답은 참된 누림에서 시작됨
7) 세계를 복음화 할 제자를 세우게 됨
(3) 전도자의 삶을 살도록 부르신 것은 신분에 대한 축복입니다(마28:16-20).
3. 가나안 땅에 들어가 앞으로 할 일이 중요하기에 (사명회복)
(1)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7족속 31왕을 넉넉히 이기도록 하나님은 광야에서 그들의 믿음과 사명을 회복시키셨습니다.
(2) 남아있는 세계복음화의 축복을 위해 하나님은 우리의 그릇을 준비시키십니다.
결론: 광야에서 물을 먹게 된 기적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은 것입니다. 응답은 하나님의 시간표 따라 정확하게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 또 기도의 비밀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24시간 기도 속에 들어가고, 24시간 기도하는 팀이 구성되어야 합니다. 완벽한 복음, 세상 살릴 성경적 전도방법을 이미 받았기에, 이제 기도만 하면 됩니다. “그리스도”, 그 이름을 최고로 많이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출애굽기 15장 22~27절)
22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23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24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25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26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27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에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출15:22~27
■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의 박수를 돌려드립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전도자의 삶의 축복을 누리십시오! 우리는 주님을 떠나서 살 수 없습니다. 주 안에 있는 참된 기쁨을 이 한 날 회복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상에는 두 종료의 사람이 있습니다. 구원받은 사람과 구원받지 못한 사람,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겉으로 봐서는 표가 나지 않고 잘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성령께서 역사하신다는 것과 믿지 않는 자에게는 악령이 역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악령이 세상의 모든 어두움을 주관하면서 우리 인생을 실패로 멸망으로 끌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성공한 많은 사람들과 지식인들 그리고 유명인들이 왜 점술인과 무속인을 찾아가는지 아십니까? 사실 그 배후에 악령이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또, 많은 청소년들이 타락하며 마약에 중독되며 환락에 빠지느냐? 그 또한 배후에 악령이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그와 반대로 하나님의 자녀인 저와 여러분에게는 하나님의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바로 하나님의 자녀 곧 성령의 사람은 기도할 때 최고의 은혜가 성령의 충만함인데 우리는 이 힘을 얻고서 승리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사람은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할 때, 세상을 이기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불신자와 똑같이 어려움을 당하고 오히려 어떤 면에서 이중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날마다 확인하고 누려나가야 할 것입니다.
세상에 두 종류가 있다면 교회 안에도 두 종료의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냐? 기도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속해 있습니까? 어떤 사람에게는 문제가 문제가 안됩니다. 제가 문제라고 생각해서 말씀드렸는데 그 말을 전한 저 자신이 참 부끄럽구나 하는 사실을 느꼈습니다. 문제가 문제가 아닌 이유는 그 사람이 바로 기도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에게는 조그마한 불신앙의 틈도 허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반대로 문제를 당하지 않았는데도 미리 문제를 추측해서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단순히 원망하고 불평하는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배경에는 분명히 불신앙이 자리 잡고 있는 것입니다. 불신앙 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한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있다면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하고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하게 될 때에 그 어떤 문제와 사건과 어려움이 있어도 그 속에 하나님의 계획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된 응답들을 또 찾아내게 되어있습니다.
어느 초등학교 교사분이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세계복음화를 위해서 학교 현장인 내 현장에서 하나님이 나를 쓰고 계시다 라는 사실이 발견되어집니다” 그렇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아무리 전도문이 막혀진다 할지라도 걱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을 통해 이루실 또 다른 응답을 찾아낼 사람이기 때문에 상관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신약성경에 가장 큰 응답을 받은 사람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자마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 인생이 살아야 할 이유와 자기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9장 15절 말씀같이 임금들과 이방인과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을 위해 복음을 증거하기 위한 택한 그릇임을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바울은 붙잡았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19장에 에베소 지역에 하나님의 큰 응답이 일어났고 그 응답 이후에 또 하나님의 계획을 붙잡았는데 바로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는 하나님의 계획을 붙잡고 나가는 걸음 속에 어려움과 문제와 사건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심지어 죽이기 위해 공격해오는 어려움도 있었습니다만 그 어려움과 핍박과 문제들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전도의 문을 열기 위한 계획이었으며 전도의 문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응답을 가지게 되면 보고, 생각하고, 말하는 모든 것들이 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향하신 계획과 우리 교회를 향한 계획을 발견한다면 이런 저런 문제들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시는가 그 계획을 붙잡고 승리토록 되어 있는 것이 저와 여러분인 것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430년간 애굽에서 종살이했습니다. 그것 또한 자칫 실패라고 볼 수 있는 부분인데도 하나님의 계획 속에 보면 애굽 전역에 여호와의 살아계심을 증거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문제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그 능력을 가지고 보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실 원망하고 불평하는 내용들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안다면 원망과 불평이 사라질 것인데, 출애굽기 14장에서 살펴본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넜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계획을 알고 있었기에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너희는 가만히 서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여호와의 구원을 보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말할 수 있었고 그 반면에 하나님의 계획을 알지 못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라는 문제 앞에서 원망하고 불평 했던 사실을 보게 됩니다.
오늘 이 아침에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를 점검하고 진단할 수 있어야합니다. 먼저, “나는 구원받은 자인가? 그렇지 못한 자인가?”점검해보시기 바랍니다. 혹시 구원받지 못한 자가 이 자리에 앉아 계시다면 구원받아야 합니다. 우리 인생은 절대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문제요, 죄의 문제며, 사탄의 문제는 인생이 절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보내주시고 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십자가에서 우리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을 떠난 문제와 죄 문제와 사탄의 문제를 모두 해결하시고 그 사실을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되는 권세를 주신다 약속하셨고 구원받는다 했습니다. 그래서 먼저 “내가 구원받은 자인가 구원받지 못한 자인가?” 질문해보십시오. 미안하지만 구원받지 못한 자는 그 배후에 악한 사탄이 악령이 그 인생을 실패와 멸망으로 끌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피할 길이 없습니다. 거기서 빠져나와야 합니다. 구원받은 자라면 어디에 있습니까? 나는 하나님의 계획을 붙잡고 기도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인가? 우리 안에 있는 믿음은 분명히 역사가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반대로 원망하고 불평하는 불신앙도 어느 날 열매가 맺혀집니다. 믿음의 열매도 맺혀지는 반면에 반대로 불신앙의 열매도 맺혀지게 됩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기도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입니까? 오늘 이 자리에 참여한 여러분 모두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써 기도하는 축복된 응답을 누리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을 읽으며 지금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해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넌 그 기쁨과 감격을 인하여 하나님 앞에 찬송하였습니다. 찬송한 내용이 지난주 살펴보았던 내용입니다. 그런데 홍해를 건너 삼일 길쯤 걸었습니다. 그리고 마라 지역에 이르렀는데, 그 마라 지역에서 도착하여 갈증으로 인해 목이 마른데 물이 쓰기에 마시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또 원망하고 불평하게 된 것입니다. 원래 마라 지역의 물은 수질이 짜고 좋지 않은 것이어서 먹지 못하는 물입니다. 그래서 “마라” 라는 단어자체가 “쓴, 괴롭다” 란 의미입니다. 당시 근방의 모든 지역에서 가장 나쁜 물이 마라 지역의 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삼일 길을 걷고 난 후 물을 마시고자 했지만 물이 쓰기에 마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성이 드러남으로 지도자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고 불평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런데 결국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끄셔서 첫 번째 다다른 지역이 마라지역이며, 두 번째로 다다른 지역이 엘림지역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예비하심이라는 의미가 엘림인데, 그곳에는 물 샘 12곳이 있고 종려나무 70주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 곁에 장막을 쳤다 했습니다. 출15:27“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에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제가 이번주간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참 많은 은혜를 입은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영적으로 이와 같이 축복하시는 것 아닌가? 이것이 전도자의 삶이 아닌가?” 늘 원망하고, 불평하는 삶에서 괴로움밖에 없는 인생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시느냐하면, 12개 오아시스 70개 종려나무가 있는 곳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당시의 물은 곧 생명을 의미합니다.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을 이렇게 축복하실 것이다 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비록 원망하고, 불평하며 괴롭다며 쓰다 하지만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엘림의 축복을 주실 것이 아닌가?! 물 곁에 장막을 치게 되는 이 풍성함의 축복을 허락하실 것이 아닌가?!
여러분, 그렇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전도자의 삶 속에 들어가서 이 축복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붙잡고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때에 따라 하나님이 이 축복을 주시기 위해 어려움과 문제와 사건들을 주실 수 있습니다만 거기에 속지 마십시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우리 생애를 축복하셔서 기어코 엘림의 축복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엘림”이란 의미는 “나무”이지만 “안식처”입니다. 기어코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안식의 추복과 그 풍성함으로 인도하실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안식으로 인도 하실 것인데 그 과정 속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라는 사실이며 그 속에서 속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만 봐도 그렇습니다. 빠져나올 수 없는 애굽에서 빠져나오게 하시고 홍해를 지나게 하셨는데, 광야의 여정 없이 곧바로 가나안 땅에 들여놓으시면 될 것인데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광야길 가는 동안 죽을 고생하도록 허락 하시고 어떤 면에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시기 위한 시험인 것입니다. 여기에 속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출애굽기 15장 25절에 보면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 새…” 창세기 22장에도 아브라함에게 시험하셨습니다. 이 시험은 저와 여러분을 멸망시키기 위한 시험이 아니라 축복주시기 위한 시험인 것입니다. 믿습니까?
다시 말씀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으로 바로 들여놓으셔도 되는데 왜 광야 길로 가게 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에 왜 어려움 당하고 고난당하게 허락하셨느냐와 같은 말입니다. 어떤 때는 응답받지 못하다 보니 정말 하나님이 살아계시는가에 대한 부분이 의심되기도 합니다. 혹시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신지 의심되는 분이 있습니까? 분명한 것은 그 분은 구원받은 자입니다. 왜냐하면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그러한 의심조차 없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내 안에 임하시기 때문에 그러한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속을 수 있습니다. 또, 정말 나의 신앙생활이 늘 성령 충만 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고 믿음이 약해지며 낙심되고 의심되어질 때 우리의 연약함과 나약함 때문에 흔들릴 때에도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들을 해 나가시는데, 전도자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중요한 응답들을 그 때 준비해 나가신다는 사실입니다. 속지 말고 문제와 사건들,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의 응답들을 찾아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도록 하시기 위해(출15:26)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에게 어려움과 시험을 허락하십니까? 그 첫 번째 이유는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 이사야 40:31에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말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며 이런저런 많은 축복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참 복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 복입니다. 우리가 지식을 많이 가지는 이유가 있습니다. 지적인 눈이 열리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세상에는 못 배운 사람보다 배운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실, 지식뿐만 아니라 어떤 면에서는 영적인 부분들도 볼 수 있는 눈들이 열려져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세상 돌아가는 부분들 속에 육신적인 눈도 열려져야 합니다만 특히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아는 영적인 눈이 중요합니다. 이것을 바로 영적인 사실을 볼 수 있는 영안이라고 하죠. 지식적인 눈을 지안이라 하며 육신적인 눈을 육안이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아는 영안. 여러분, 이 사실에 대한 눈이 열려져야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은 인간이 하나님을 알도록 지음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개나 돼지 등의 금수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해도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알도록 지음 받은 영적인 존재로 창조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멸망 받지 않도록, 하나님을 알도록 우리를 지으셨습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합니다. 환경과 문제에 속으며, 환경과 사건에 속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속기위해 허락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을 바라보게 하시기 위해 허락하신 것인데 사탄에게 속는다 라는 사실입니다.
시편 81편 13~14절이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 백성이 나를 청총하기를 원하며 내 도 행하기를 원한다”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청종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하나님께서 손을 들어서 원수와 대적을 멸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정말 어려움이 있습니까? 어려움 가지고 몸부림치지 마시고 오랫동안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답을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당장에 이렇다, 저렇다 말하지 마시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답을 주시는 시간표를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시편 50편 15절에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환란 날에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시는 축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우리에게서 가장 큰 축복은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다 라는 사실입니다. 모세가 나이 80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그때부터 하나님의 새로운 응답들이 시작된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문제와 사건과 일들을 바라보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그것이 사탄의 속임수에 속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왜 문제를 허락하셨느냐? 문제 보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사인이며 빨리 답을 내라고 허락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이 땅의 모든 문제는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음으로 비롯된 것입니다. 호세아 4장 6절에는 “내 백성이 지식이 없음으로 망하는도다” 어떤 지식입니까? 하나님을 아는 영적인 지식 곧 창조주 하나님을 알아야 하는데 창조주 하나님을 아는 영적인 지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만날 길을 여셨는데 그 사실을 알지 못함으로 망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의 모든 어둠과 그릇된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비롯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영적인 지식을 가지고 알게 될 때, 참된 안식과 평안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지식적인 부분과 부와 명예들이 필요합니다. 이것들은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부와 명예와 지식이 여러분에게 참된 안식을 줄 수 있습니까? 결코 아닙니다.
매주 새로운 주제들로 글을 싣고 있는데 주보가 개편되면서 이러한 글들을 싣는 이유는 전도 자료로 활용하기 위함입니다. 연락처란에 전달자의 연락번호를 남기셔서 전도하는데 활용하시면 되겠습니다.
오늘 주보에 깊은 샘(중직자 편지)을 보시면 “하면된다, 하면 됩니까?” 라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로봇(공학)에 관심을 가졌던 아이가 로봇경연대회에 출전한 것만도 60여 차례였고 많은 상을 받았습니다. 고등학교는 인문계로 진학하게 되었는데, 본격적으로 로봇을 연구해야 하겠다 싶어 전학하여 실업계 고등학교로 옮겼습니다. 그곳에서 국제적인 수상도 하게 되어 한국 최고의 대학인 카이스트 대학에 합격을 한 후 1년을 공부하다가 그 학교에서 자살해버렸습니다. 부모에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자녀가 그렇게 중압감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다른 부분에서는 학점을 F학점(최고 낮은 성적)을 받으니 중압감을 느꼈던 것이고 결국 자살하게 되었는데 한국 교육의 현실적인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 내용인즉슨 우리가 열심히 하는 그것이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에게 지식, 돈이 필요합니다. 위치나 자리도 좋습니다. 그러나 과연 우리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느냐 입니다. 비록 조금 못한다 할지라도, 분명한 것은 영적으로 참된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되면 그 속에서 참된 행복과 만족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삼서 1장 2절에 보면 “네 영혼이 잘됨과 같이 범사에 잘되고…”먼저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영혼에 축복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모든 것들이 잘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영적인 힘을 잃어버리면 대부분 만사가 귀찮아집니다. 생활과 삶이 흐트러지며 뭔가 안됩니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 영적인 축복과 부요함을 누리면 참된 평안과 안식과 만족을 누리게 됩니다. 이 축복을 누리길 축원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하나님만 바라볼 수 있는가? 그 길을 하나님이 주셨는데 그 길은 바로 그리스도입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그 어떤 것으로도 하나님을 알 수 없고 바라볼 수 없는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만 바라보도록 길을 여셨고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만나는 길이십니다. 그리스도는 죄 문제에서 우리를 해방시키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사탄의 손에서 우리를 건지셨습니다. 한번 받아합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만나는 길이시다, 죄 문제에서 해방시키셨다, 사탄의 손에서 우리를 건지셨다” 아멘.
이 그리스도의 이름 붙잡고 나아가는 걸음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고 그리스도 이름으로 걷는 걸음마다 흑암이 무너지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 이름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한 사람은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망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버림받지도 않습니다. 어려움 당한다 할지라도 망하지 않습니다. “결단코 너희를 해할 자 없느니라” 말씀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죄와 저주에서 건지시고 사탄의 손에서 건지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이 땅에서 승리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축복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만 바라보면 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이사야43장1절)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의 자녀 삼으셨습니다. 양자의 영을 보내셔서 아바 아버지로 부르도록 하셨습니다. 결단코 망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4:8~10에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열왕기하 19장에 보면 앗수르 왕 산헤립이 침공했다는 소식에 히스기야 왕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다가 안 되니 결국 마지막에 그 편지를 하나님 앞에 두기 기도하며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18만 5천 앗수르 군대를 송장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은 옛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바라보는 순간에 하나님은 영적인 역사를 일으키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왜 어렵게 되는 줄 아십니까?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기 위함입니다. 여러분은 축복받을 사람인데,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으니 하나님만 바라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2. 하나님의 자녀된 축복을 회복하기 위해(출15:26)
두 번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축복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입니다.(26절)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만이 하나님의 목적이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받게 하시고 구원받은 저와 여러분을 통해서 하나님이 모든 현장을 살리기 원하십니다. 정복하고 다스리는 축복을 누리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 뭐냐? 신분과 권세를 주신 것입니다. 왜 자꾸 어려움을 주시느냐?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축복을 회복하라는 것인데 그것을 다른 말로 해서 진짜 참된 신분과 권세, 현장을 살리고도 남을 수 있는 그 신분과 권세를 회복케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믿는 저와 여러분에게 모든 현장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신분과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것을 누려야 합니다. 참된 응답의 시작이 어디서 나오느냐? 참된 신분과 권세를 누리면서 응답이 시작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성경을 한번 잘 읽어보십시오. 아브라함에게, 모세에게, 렘넌트 일곱 명이 하나같이 언제 하나님이 응답의 문들을 여셨느냐? 다른게 아닙니다. 신분 회복했을 때입니다.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신분 회복했을 때입니다. 창세기 14장에 연합군과의 전쟁에서 아브라함이 승리하고 돌아올 때 소돔왕이 나와서 이야기 했습니다. "모든 재산은 네가 가져가고 사람은 나를 달라" 그럴 때 아브라함이 이야기 했습니다. "아니다. 실 한 오라기 하나도 내가 가져가지 않겠다. 들메끈 한 가닥도 내가 가져가지 않겠다." 이 말은 나는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신분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엄청난 축복의 문을 여셨습니다.
창세기 30장에도 보면 야곱이 외삼촌 라반과의 관계 속에서 야곱이 이야기 했습니다. "외삼촌 당신이 나 때문에 복을 받았다"고 하니까 외삼촌 라반이 "맞다 너 때문에 내가 복을 받았다"고 인정을 했습니다(창세기 30장 25-27절). 야곱이 내가 가는 걸음걸음마다 하나님이 나를 통해 당신 집에 복을 내리셨다고 야곱이 인정하고, 야곱이 또 "내 살림은 언제 차릴까?" 하니까 외삼촌 라반이 "내가 너에게 뭘 줄까?"하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때 야곱은 필요 없다고 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사람이라는 신분에 대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창세기 34장에 야곱의 딸 디나가 강간을 당하게 됩니다. 그 어려움을 당했을 때 창세기 35장에 보면 "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신분을 회복하는 것이었습니다. 진짜 참된 응답은 어디서 오느냐? 여러분, 신분과 권세를 회복하는 거기서부터 모든 응답의 문들이 열려집니다.
저와 여러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어떤 신분과 권세를 주셨습니까?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그 성령께서 분명히 걸음걸음마다 인도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기도하는 곳에 역사 하고 계십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주신 신분입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여러분이 가는 곳마다 분명히 하나님이 내 안에 거하시기 때문에 흑암이 꺾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여 지고 하늘군대를 동원하셔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지키시게 되어 있습니다. 세계를 복음화 할 수 있도록 제자를 세우는 그런 축복된 역사들의 권세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신 신분과 권세입니다. 그것을 회복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건드리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8장 16-20절에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 잘 아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명령이라고 우리가 붙잡고 있습니다. 주님의 명령이면서도 우리에게 주신 신분에 대한 확인입니다. 다시 말해, 세상 모든 족속으로 제자 삼을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진 주님이 성령으로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시겠다 라는 신분에 대한 축복입니다. 여러분이 이 축복을 깨달아야 합니다. 신분에 대한 축복입니다.
정말 하나교회는 세계복음화를 위해 세우셨는데 주의 종으로서 주어진 축복, 또 중직자로서, 평신도로서, 렘넌트로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나를 이 자리에 세우셨는가? 이 신분에 대한 축복을 깨달을 때부터 교회를 통해서 제대로 된 응답들을 여러분 개개인이 누려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한 시대를 살리는 전도자의 삶 속에 저와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에 대한 신분입니다. 이 사실을 깨달음으로 참된 응답을 모든 현장에서 찾아내는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가나안 땅에 들어가 앞으로 할 일이 중요하기에
마지막 세 번째입니다. 지금 문제뿐만 아니라, 왜 문제를 주시느냐? 앞으로 남아 있는 더 큰 중요한 축복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광야 길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넉넉히 승리할 수 있도록 그릇을 준비하셨습니다. 당장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7족속 31왕이 대적으로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 사람들은 전부 다 우상숭배 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을 어떻게 이길 것입니까? 그것을 이길 수 있도록 믿음과 사명을 회복시킨 것이 광야 길의 걸음이었습니다.
앞으로 남아 있는 세계복음화의 축복된 역사를 위해서 그 그릇을 준비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때에 따라 어려움과 문제와 사건들을 주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문제와 사건에 속지 마십시오. 전부 다 그릇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어떤 분에게 전화가 와서 "목사님 예수 못 믿겠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가 예수 믿기로 작정하고 마음에 결단하고 좀 제대로 믿어보려고 하는데 주위에서 전부 나를 공격해 옵니다. 그래서 도저히 예수 못 믿겠습니다." 제가 그 말을 듣자마자 그분에게 말씀했습니다. "그게 응답입니다. 결국은 주위의 사람들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 바라보라는 싸인 아닙니까? 그것을 못 깨닫겠습니까?" 주위에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공격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당신이 예수그리스도 잘 믿어 하나님의 축복 받아가지고 안 믿는 가정과 가문 살리려는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하나님의 축복된 것이 안 보입니까?" 하니까 "맞네요" 했습니다. 그래도 "나는 내 그릇이 안 됩니다." 이야기하기에 "그릇은 당신이 키우고자 해서 커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키우시는 것입니다. 가정과 가문을 살릴 만큼, 세계를 살릴 만큼 하나님이 당신의 그릇을 키우실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문제를 주시는 것 아닙니까?" 하니까 "맞네요. 그러면 내가 믿어보겠습니다. 해보겠습니다." 대답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어떤 문제도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만 바라보면 됩니다. 신분회복 하도록 하시는 겁니다. 진짜 믿음회복하고, 사명회복 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는 자에게는 문제가 문제 아니라 축복이요, 응답입니다." 할렐루야! 속지마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참된 전도자의 삶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고, 신분회복 하는 것이고 믿음회복, 사명회복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하나님은 우리를 이끌어 가고 계시는 것입니다.
결론으로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본문 25절에 보면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하나님이 모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시고 그 나무를 꺾어 물에 던져 넣으니까 물을 먹게 되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어디에 관심이 있습니까? 아, 물을 먹게 된 이 기적, 이 응답 얼마나 엄청난 것인가!! 여러분 입 다 벌려서 자랑할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내게 이렇게 축복하셨다고 고백할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더 중요한 것이 창조주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킨 것보다도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이게 더 중요한 것입니다. 응답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정확하게 시간표에 따라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 또 기도의 비밀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입니다. 진짜 참된 축복의 역사들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기도해서 나타난 결과가 아니고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이 기도 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저와 여러분이 이 한해에 기도를 회복해야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창조주 하나님의 역사를 내 것으로 누리는 것이 기도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 그 사실을 나의 것으로 누리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분명히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기도하게 될 때 천국 창고를 열게 되어 있습니다. 하늘 보좌의 문들이 열려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이 이 한 해에 다른 것보다도 24시간 기도 속에 들어가고, 우리 성도들이 24시간 기도하는 팀들이 구성되어져서 기도하는 축복을 누려야 되겠습니다. 감사한 것은 오늘 주보에 광고가 나간 것처럼 우리 주일학교에서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수요 저녁예배 후에 교역자와 부장 장로님과 교사 분들이 모여서 교회의 중요한 기도제목들과 또 렘넌트와 주일학교를 위해 기도하겠다고 시작했습니다. 또 우리 권사님들도 이런 계획들을 세우고 있고 장립집사님들도 포럼 하면서 함께 인도받고자 하고 있고 장로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면에서 이런 부분들이 교회 안의 운영위원회에서 계획을 해서 전체가 어떻게 하면 24시 릴레이 기도로서 교회가 기도의 불을 끄지 않고 할 것인가?
이미 우리에게 완벽한 복음을 주셨습니다. 세상 살리는 성경적인 전도방법을 다 주었습니다. 사람 살릴 수 있는 말씀도 가졌습니다. 다 있습니다. 한 가지만 회복하면 됩니다. 기도만 하면 됩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러분, 성도의 기도는 하늘 보좌를 여는 축복의 문이 됩니다. 반면에 성도의 침묵은 하나님의 축복과 단절되게 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하늘보좌의 문을 열수 있도록 우리에게 열쇠를 주셨는데 "그리스도" 이름을 주셨습니다. 2011년 이 한 해 여러분 개개인이 "그리스도" 그 이름을 최고로 많이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현장에 "그리스도" 그 이름 사용하십시오. “그리스도 그 이름 부르시고”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최고기도 많이 하는 사람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역사 -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이 축복된 응답이 여러분의 것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전도자로 세우시고 마른 땅을 걸어가는 것 같고 원망하고 불평할 수밖에 없는 환경들인것 같지만, 그러나 그 속에서 기어코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도를 통해서 전도자의 삶을 사는 귀한 축복가운데로 인도하시고 결국은 '마라'를 지나서 '엘림'에 이르게 하시는 이 축복된 역사가 우리의 모든 현장 속에 주의 종들의 걸음 속에 나타날 줄로 믿습니다. 특별히 물 곁에 장막을 치는 귀중한 축복된 응답을 주의 종들이 누릴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이 일을 위해서 정말 온 교회가 함께 기도 속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24시간 기도 속에 들어가게 하시고 우리 개개인들이 정말 이 한해 그리스도 그 이름을 최고로 많이 부르고 최고로 많이 사용하는 그런 축복된 일꾼들 되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살아계신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2011년 2월 13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출15:22-27)
서론: 무엇을 하기 이전에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해야합니다. 이 응답이 없으면 불신앙하게 되고, 이 응답이 있으면 어떤 문제와 어려움이 있어도 그 속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찾아내게 됩니다.
늘 원망하고 불평하며 괴로움 밖에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은 열두 개의 오아시스와 일흔 그루의 종려나무가 있는 곳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우리 생애에 이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길 가는 동안 그들에게 허락된 어려움은 그들을 축복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시험입니다. 축복 주시기 위한 시험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려움과 시험을 허락하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1.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도록 하시기 위해(26절)(믿음 회복)
(1) 참된 복은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사40:31).
1) 인간은 하나님을 알도록 지음 받았음
2) 하나님을 바라볼 때 하나님께서 답을 주심(시50:13)
3) 이 땅의 모든 문제는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는데서 비롯됨
4) 참된 만족과 행복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데서 나옴(요삼1:2)
(2) 어떻게 하면 하나님만 바라볼 수 있는가? - 그 길은 바로 그리스도(요14:6)
1)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사람은 절대 망하지 않음(고후4:7-9)
2)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바라본 히스기야 왕에게 하나님은 영적인 역사를 일으키심(왕하19장)
2. 하나님의 자녀 된 축복을 깨닫게 하기 위해(26)(신분 회복)
(1) 하나님은 우리가 현장을 살리고도 남을 참된 신분과 권세를 회복하기를 원하십니다.
(2) 하나님이 주신 신분과 권세:
1) 성령내주 2) 성령인도 3) 기도응답 4) 흑암이 꺾임
5) 하늘군대를 동원해 하나님 백성을 지키심 6)응답은 참된 누림에서 시작됨
7) 세계를 복음화 할 제자를 세우게 됨
(3) 전도자의 삶을 살도록 부르신 것은 신분에 대한 축복입니다(마28:16-20).
3. 가나안 땅에 들어가 앞으로 할 일이 중요하기에 (사명회복)
(1)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7족속 31왕을 넉넉히 이기도록 하나님은 광야에서 그들의 믿음과 사명을 회복시키셨습니다.
(2) 남아있는 세계복음화의 축복을 위해 하나님은 우리의 그릇을 준비시키십니다.
결론: 광야에서 물을 먹게 된 기적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은 것입니다. 응답은 하나님의 시간표 따라 정확하게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 또 기도의 비밀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24시간 기도 속에 들어가고, 24시간 기도하는 팀이 구성되어야 합니다. 완벽한 복음, 세상 살릴 성경적 전도방법을 이미 받았기에, 이제 기도만 하면 됩니다. “그리스도”, 그 이름을 최고로 많이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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