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주권과 기도
2010-02-07 00:00:00
관리자
조회수 36
유튜브 저화질 다운 MP3 녹취 요약 |
■ 할렐루야! 축복을 선언합시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당신이 전도기획의 주역이십니다. “주권도 주께 속하였나니” 지난주 이 제목으로 하나님의 절대적인 부분들을 말씀 나누었습니다. 우리 신앙에 가장 중요한 발판 중에 발판이 있다면 또,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 할 때 무엇을 믿느냐 했을 때,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믿는 믿음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가장 큰 발판이죠.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믿는 믿음을 선택할 수도 있고 나의 지식과 나의 경험들을 믿을 수가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믿음을 선택할 수 있고 나의 경험과 체험들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삶이 정말 하나님의 축복가운데 있느냐 그렇지 않은가가 결정되게 되어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믿음 없이는 우리가 이 땅을 살아 가면서 우리의 삶이 안 되게 되어 있다 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 사실을 바울이 잘 알고 로마서 11장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장부터 11장까지는 교리에 대한 부분을 말씀하고 있고 12장부터 16장까지는 구원받은 성도의 삶에 대한 부분을 말씀하고 있으면서 결론지으며 하는 말씀이 롬11:36에 보면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그러면서 12장으로 넘어가며 “너희는 이 세대를 본 받지 말고…” 삶에 대한 부분을 말씀하고 있는 것을 성경을 통해 확인하게 됩니다.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서는 우리의 삶이 안된다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지난주에 이어서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기도」라는 제목으로 한주간 말씀의 은혜를 받고 인도 받기를 원합니다. 특별히 이번주간에는 설 명절이 시작되는 주간입니다. 토요일부터 연휴에 들어가서 월요일까지 명절이 진행되는데, 조금만 눈을 떠서 보면 믿음과 복음으로 하나되어 있는 환경은 참 축복입니다. 많은 분들이 복음으로 하나 되어지지 않는 부분 속에서 신앙생활에 힘들어 하는 부분들을 보게 됩니다. 우리 주위에 힘을 가지고 우리를 누르는 사람들이 있고 또, 우리 주변의 환경들 조차도 뭔가 모르게 우리를 누르는 것들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런 것들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체해야 할 것인가?
여러분, 설을 통해 만나게 되면 인간관계 속에서 응답을 누리는 사람이 있는 반면, 시험들고 상처가지고 교회로 돌아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인간관계나 주변의 환경들과 문제들을 넘어서면 우리가 참된 응답들을 현장에서 찾아 누리게 되는데 인간관계와 주변의 환경과 문제로 인해 다 놓치고 살아가게 되는 부분들을 봅니다만 성경에 보면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 일들을 넉넉히 감당해 나갔던 사실을 보게 됩니다.
특별히 오늘 말씀을 붙잡으시고 이번 한 주간 설 명절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문제와 사건 속에서 또 만남 속에서 하나님의 응답을 찾아내는 응답의 메시지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이런 부분들에 대해 우리가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주변의 환경들과 숨막힐 정도로 견디기 어려운 문제들이 우리에게는 늘 있습니다. 또, 사람관계를 통해 우리를 힘들게 하고 어렵게 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아 있고 이런 환경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응답들 찾아 누릴 것입니까?
먼저 첫 번째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는 믿음을 신뢰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저주에서 해방되고 지옥에서와 재앙문제에서 완전히 해방 받았습니다. 믿습니까? 이것을 구원받았다고 합니다. 구원받은 여기에서 모든 것들이 시작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구원받았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내셔서 하나님의 자녀 삼으셨다는 의미이며,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것들을 영원까지 가장 완전하게 책임지시는 축복가운데 들어 선 것을 구원받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고 그냥 내버려두신 것이 아니라 영원까지 가장 완전하게,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들을 책임지시는 축복가운데 저와 여러분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빌1:6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줄을 확신하노라” 말씀했습니다. 우리에게 착한 일 곧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신 그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날까지 하나님이 이루신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37:28에는 “여호와께서 정의를 사랑하시고 그의 성도를 버리지 아니하심이로다 그들은 영원히 보호를 받으나 악인의 자손은 끊어지리로다”주의 택한 백성들을 영원히 지키시리라 말씀했습니다. 악인의 자손은 끊어지고 망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택한 백성 곧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께서 싫어 버리지 아니하시고 영원히 지키신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능력과 상관 없습니다.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주신 은혜가 바로 구원의 은혜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구원받은 뒤에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는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구원은 받았지만 어디에서 차이가 나느냐? 바로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는 믿음이 있느냐 그렇지 않으냐? 여기에 차이가 나게 됨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부분이 확실치 않으니까 모든 사건을 보는 눈과 사람을 보는 눈이 다르게 되어 집니다. 하나니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믿는 믿음이 확실치 않으니까 작은 생활에서부터 큰 생활까지 여러분야와 모든 것이 달라지는 것들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우리가 가져야 할 분명한 신앙이 있다면 다른 것이 아니라 절대주권을 믿는 믿음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가장 최고로, 가장 먼저, 일평생에 가장 확실히 붙잡아야 할 것이 있다면 하나님이 절대적인 주권을 가지고 우리를 인도해나가신다는 이 믿음에 대한 역사인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을 보면, 교회와서 예배 드리고 은혜받을 때는 이것이 되는것 같지만, 현장에 들어가면 하나님의 주권은 어디가고 없습니다. 거기에서 실패합니다. 우리가 은혜 받을 때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만, 원로 목사님의 설교중에 한번씩 “문고리 잡고 나가면 하나님의 주권은 어디가고 없다” 하신 말씀같이 거기에서 성도들이 실패하는 부분들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오늘 이 자리 예배 참석한 모든 성도님들중에 “이제부터라도 내가 제대로 신앙생활을 해야 하겠다” 이런 분들은 오늘 꼭 말씀을 붙잡길 바랍니다. 그와 더불어 우리 렘넌트들도 어릴 때부터, 일찍부터 사상에 무엇이 들어가 있느냐가 인생을 좌우합니다. 어릴 때부터 분명히 체험하고 가져야 할 것은 내 방법과 내 열심히 사는 것 보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서 하나님의 주권가지고 사는 것이 훨씬 더 났다는 체험이 먼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한 때 우리 교회가 신비운동을 하면서 우리 아이들 조차 방언하기 위해 몸부림쳤었습니다. 단순히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그 사실만 알아도 신앙이 달라지더라고요. 그 사실에 대한 체험을 가지고 신앙생활 하라고 방언 받고 그 은사운동 속으로 인도받은 사실을 지난 날 교회사를 통해 보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제대로 신앙생활에 인도 받기 위해서는 또, 우리 렘넌트들이 일찍부터 사실적으로 체험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다른 것이 아니라 내 열심으로 살아가는 것, 내 노력으로 살아가는 것, 내 안에 그리스도가 인도하심에도 불구하고 은혜받을 때는 그것이 고백되어지지만 문제와 사건 왔을 때는 내가 살아 남는 것이 문제 아니었습니까? 제대로 신앙생활에 인도 받기 위해서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정말 내 노력과 내 열심보다, 내 방법으로 사는 것 보다, 하나님의 인도 속에 있는 것, “하나님의 주권으로 나를 인도하신다는 이 사실을 믿는 믿음이 먼저이구나!” 하는 것이 먼저 체험되어 져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사실이 확인된 요셉을 보십시오. 요셉이 당한 환경들이 얼마나 어렵고 힘들었습니까? 그 힘든 환경을 요셉이 잘 견뎌낸 것이 아니라, 요셉은 어떤 환경들 속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실제로 그 능력을 가지고 승리한 사실을 보게 됩니다. 다윗도 그러했고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 하나같이 그 중심의 사상이 무엇이었냐? 하나님이 절대적인 주권을 가지고 내 인생을 인도해 나가고 계신다는 이 믿임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섭리하고 계시기에 오늘부터라도 누가 여러분 주위에서 여러분에게 핍박주는 사람들 있습니까? 수근 수근 하면서 여러분을 어럽게 하는 사람들 있습니까? 그런 사람들을 대하게 될 때, 여러분 마음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일까?” 를 찾아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사람의 특징입니다.
여러분, 우리 주위에 우리를 모욕하고 핍박하고 있지도 않는 말을 만들어내서 우리를 어렵게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 앞에 서서 같이 싸울 수도 없는 것이고, 그들 앞에서 실망하고 낙심해서 주저 앉아 있을 것인가?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그 사람의 말속에서의 하나님의 뜻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이라 할 때, 좋은 일들 속에서만 하나님의 주권을 붙잡고 나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그러나 그렇지 않은 문제들 속에서도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주권을 붙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종살이를 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모세로 말미암아 출애굽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엄청난 기적이 일어남에도 불구하고 애굽의 바로왕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하지 않았습니다. 엄청난 재앙의 역사가 퍼부어지는 가운데서도 바로왕은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키지 않았습니다. 언제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하였습니까? 마지막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바를 때에 바로왕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하였습니다.
어떤 면에서 우리가 잘못보면, 왜 모세에게 하나님이 “나가라” 하셨다면 문을 열고 인도하셨어야 할 것인데 나가려 하니까 재앙을 당하면서도 왜 내보내지 않았는가? 이것은 맞지 않는 것 아닌가? 그러나 성경에 보면 거기에 대한 중요한 답을 말씀하고 있는데, “여호와께서 바로왕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더라” 했습니다.
여러분, 재앙을 그렇게 당하면서도 바로왕이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하지 않은 이유중 이유가 있다면 “여호와께서 바로왕의 마음을 강퍅케 하시므로…”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가장 큰 계획이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치 않은 그 계획 속에 있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로 말미암아 자자손손 양의 피언약을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와 더불어 그 속에는 이스라엘이 전 세계에 증거되어지는 일을 위해서 바로왕의 마음을 강퍅케 하셔서 해방치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양의 피를 바를 때 바로왕의 마음이 눈녹듯 녹아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케 되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좋은 일들 뿐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핍박을 통해, 바로왕의 강퍅한 마음을 통해 더 핍박이 임했던 그 속에서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계획을 이뤄가시고 진행하셨다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초대교회도 보십시오. 초대교회를 하나님께서 오직 전도만 하는 교회로 세우시기 위해서 바리새인들의 마음을 바꾸실 수 있었습니다만 바리새인들의 마음을 강퍅케 하고 유대인들의 마음을 악하게 해서 더욱 더 초대교회를 핍박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왜? 그렇게 한 줄 아십니까? 초대교회가 하나님만 바라보고 오직 복음만 전하는 교회로 하나님께서 세우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오늘부터 여러분의 주위에 일어난 모든 일들과 사건들 속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붙잡아야 하는데 혹여나 여러분을 어렵게 만들고 여러분에게 모함을 주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하나님이 이 사람을 통해 내가 어떤 음성 듣기를 원하셨는가?” 이것을 붙잡으면 됩니다. 여러분의 만남 속에서 좋은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우리를 어렵게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어려움과 핍박과 문제들 속에서 “왜 하나님이 이런 문제를 내게 주셨을까? 왜 이 사람을 내게 붙이셨고 이 사람을 통해서 어떤 하나님의 계획을 붙잡기를 원하시며 내가 어떤 음성 듣기를 원하시는 것일까?” 그 사실을 붙잡게 될 때, 그 속에서 실패하지 않고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 자신이 무너지지 않아요. 그렇지 않으면 지난주도 말씀드렸듯이 조금만 눈을 떠서 보면 연달아 우리의 믿음을 잃어버리게 하는 불신앙의 말들이 우리를 계속 공격해오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 현장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승리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까? 다른 것이 아닙니다. “모든 문제와 사건 속에서 하나님은 내가 어떤 음성을 듣기를 원하시는가?” 마치 삼하16장에 보면 다윗이 도망 길에 있을 때 시므이가 나타나 돌을 던지며 “이 피흘린 자여 피흘린 자여” 하며 모함을 했습니다. 그때 다윗왕과 함께 도망치며 다윗을 돕던 아비새 장군이 화가나서 “왕이여 내가 당장 저놈의 목을 베리이다” 이때 다윗이 아비새 장군에게 뭐라고 했니까? 삼하16:10~11에 “그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하고 또 다윗이 아비새와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되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 혹이나 그 어려움 당하는 것을 하나님이 아시고 선을 갚으실 줄 아느냐?
여러분, 시므이가 저주하는 그 어려움 앞에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시키셔서 내게 저주하는 것이 아니냐?” 그렇게 보았습니다. 그렇게 되어진다면 우리 신앙생활에서 시험들 일이 없는 것입니다. 이 축복의 눈이 열려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날마다 우리는 넘어져요. 순간 순간 불신앙 속에서 넘어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주권을 안 믿는다 할지라도, 나중에 가서야 인정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리, 일찍부터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믿음 회복하시고 믿음의 축복의 주역으로 승리하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죽음 직전에 가서야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누구나 우리 인생은 죽음 앞에 서면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시구나!”며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할 수 밖에 없게 되어 있습니다. 그때 가서 겨우 하나님의 주권 인정해서 손해 보는 그런 인생 되지 마시고 지금 내 모든 삶의 현장에 하나님은 완벽한 계획을 가지고 나를 인도하신다는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믿음으로 지금 누리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이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믿음을 미리 우리가 누릴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죽임 직전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돌아가십니다만 어떻게 우리는 미리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면서 그 축복을 지금 누릴 것인가? 거기에 가장 중요한 열쇠가 기도인 것입니다. 그래서 두 번째로 생각할 것은 주권과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사람은 기도합니다. 특별히 우리 신앙생활에서 구분하실 것이 있다면, 하나님의 주권을 말하면서도 이 신앙이 잘못되면 그저 체념적인 신앙으로 빠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열심히 자기마음대로 살아가다가 안되니까 “하나님의 주권” 이라면서 체념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없지않아 있어요. “하나님이 아시겠지” 라며 참 좋은 말 같고 대단한 믿음의 말 같지만 체념속에서 나오는 말들이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현장을 변화시키지 못하고 현장에 늘 눌리게 됩니다. 물론 하나님의 역사는 체험하기는 합니다만 현장속에 눌려서 신앙생활이 힘들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이야기는 하지만 기도로 누리지 못하는 그 차이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안다 할지라도 기도로 누리지 못하면 현장 속에서 눌리고 현장 속에서 정복당하고 늘 어렵게 신앙생활하게 되는 것입니다.
반면 우리가 하나님의 주권을 붙잡고 기도하면 두 가지가 보입니다. 지금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 보이고, 나를 어렵게 만들고 곤란하게 만드는 사람들과 문제들 배후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더 크게 보여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속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붙잡고 기도하게 될 때, 지금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 보일 뿐 아니라 나를 어렵게 만들고 문제를 통해 힘들게 하는 그런 곤란하게 부분들 배후에 역사하는 하나님의 손길이 더 크게 보여지게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을 예로 들까요? 아람나라 왕이 도단성을 공격해 왔습니다. 엘리사의 시종 게하시의 눈에는 자기들이 이제 끝났다, 죽게 되었다고 하는 탄식 섞인 원망의 소리를 하였지만, 그러나 주권을 붙잡고 기도하고 있는 엘리사에게는 그 배후에 불말과 불병거가 동원되어진 역사를 본 것입니다.
지난 주 살펴보았던 것처럼 역대상 29장에 보면 다윗왕이 하나님께 헌금하면서도 뭐라고 고백했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하나님께 드렸을 뿐입니다.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하나님의 역사를 봤습니다. 성공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리고 오늘 본문에 사무엘상 26장에 보면 다윗이 도망가는 그런 신세로 나옵니다. 사울왕이 군사 삼천 명을 동원해가지고 다윗을 잡기 위해 추격해 오고 있습니다. 그때 다윗이 십 광야 하길라 산에 있다 라는 이야기를 듣고 군사 삼천 명과 함께 사울왕이 다윗을 공격해 왔습니다.
그런데 잠시 사울왕이 그 머리 곁에 창을 꽂아 두고 잠을 자고 그 주위 둘레에는 사울왕을 섬기고 있는 아브넬 군대장관을 중심으로 해서 진 치고 거기에 잠이 들었어요. 그 모습을 다윗과 아비새가 보면서 다윗을 섬기고 있는 아비새가 중요한 말을 합니다. 삼상26:8절에 보세요. “아비새가 다윗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오늘 당신의 원수를 당신의 손에 넘기셨나이다 그러므로 청하오니 내가 창으로 그를 찔러서 단번에 땅에 꽂게 하소서 내가 그를 두 번 찌를 것이 없으리이다” 아비새가 딱 보고 “이건 한 칼에 죽일 수 있습니다. 이 기회는 두 번 다시 올 수 없는 절호의 기회이고, 하나님이 당신에게 붙이신 기회입니다. 당장 죽입시다!” 그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지 않은 것을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어요.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기도하는 사람이었던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장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붙잡고 기도하는 다윗의 모습입니다. 그 고백이 삼상26:10-11절에 나옵니다. “다윗이 또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그를 치시리니 혹은 죽을 날이 이르거나 또는 전장에 나가서 망하리라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는 것을 여호와께서 금하시나니 너는 그의 머리 곁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가자 하고…”보세요. 하나님이 왜 나에게 이런 기회를 주셨을까? 그 순간에 다윗은 기도했습니다. 그러면서 고백하는 내용이 뭐냐? 하나님이 죽이시면 죽일 수 있을 것인데 하나님의 기름 부으신 종을 내가 어찌할 수 없다 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치시던지, 전쟁에 보내 죽이시던지 하실 것이니까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믿음. 분명히 아비새는 절호의 기회라고 말했습니다. 누가봐도 기회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 다윗은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믿음으로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반면에 추격하는 사울왕은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는 사람이었어요. 특별히 여러분 세상을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세상이 그렇게 이야기 하고 있지요. 어떤 사상이 깔려져 있느냐면 ‘우리 인간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라는 것’, ‘하면 된다라는 것’ 이것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 렘넌트들이 기억하실 것은 세상의 가르침은 참 중요합니다. 틀린 것은 아닙니다만, 그러나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는 모든 것들이 창3장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 어떤 것도 결국은 망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멀리 내다보지 못하고 앞만 쳐다보고 있는데 그래서 잘되는 사람을 보면 뭔가 우리가 시험에 들 수도 있고요, 그러나 그게 아닙니다. 하나님을 떠난 자들에게 아무리 엄청난 일이 일어난다할지라도 그것은 결국 망하는 것이고요, 그와 반면에 어떤 사람이 승리하느냐?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어떤 일이 있어도 승리한 사실들을 보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믿음을 가져야 하느냐?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기도 속에 들어가야 합니다. 특별히 여러분 이제 앞으로 여러분에게 일어나는 모든 문제와 사건을 보게 될 때에 생각을 그렇게 시작해야 합니다. 아 하나님께서 이것을 허락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라면 하나님의 계획은 무엇일까? 이 사실을 찾아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어지느냐? 나를 괴롭히는 그 사람을 보면서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인데 그러면 “하나님의 계획은 무엇일까?” 이 상황가지고 보면 “그 사람이 참 불쌍하구나!” 그것이 보여지게 되어 있어요. 사람이 참 불쌍하구나! 거기서 사람을 살리는 참된 지혜가 나오게 되어 있는 것이죠.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기도할 때에 그 환경에 매이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기도에 그 실제가 보이는데 그래야 그 어려운 환경 속에 눌리지 않고 묶이지 않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요셉을 한번 볼까요? 요셉을 보면 특별히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 가장 잘 이야기 한 사람 중에 한 사람이 아닙니까?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늘 밤낮 요셉을 유혹하기 위해 보디발의 아내가 접근해 오는 그 가운데서도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가운데 창39:9에 보면 “내가 어찌 여호와 앞에서 득죄하리요” 또 바로왕의 꿈을 해석하기 위해 바로왕 앞에 불려 졌을 때에 요셉이 한 고백은 창41:16에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평안한 대답을 주시리이다”
어떤 환경과 문제속에서도 눌리지 않고 묶이지 않았던 사실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사람들이 기도하게 되면 그 어려운 환경, 이상한 사람이 옆에 있으면 하나님께서 두 가지로 일을 하시는데 첫 번째, 하나님께서 그 환경과 사람을 바꾸시던지 그렇지 않으면 나를 그 속에서 뽑아내시던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어려운 환경과 이상한 사람들 앞에서 우리가 언약 붙잡고 하나님의 주권을 붙잡고 기도하면 그 환경을 나 때문에 바꾸던지, 그렇지 않으면 나를 그 속에서 뽑아 내시던지…
다시 요셉을 한 번 보세요. 보디발의 집에 가서는 요셉 때문에 그 보디발의 집이 변화 되었습니다. 그 재산까지도 하나님의 복이 임한 사실을 보게 되지요. 보디발의 집에 가서는 요셉으로 말미암아 모든 환경들이 바뀌어 졌어요. 그런데 자기 집에서는 어떠했습니까? 바뀌어지지 않았어요. 형제들 열 명이 악질적인 형들이죠. 희한한 형들이었습니다. 요셉이란 동생을 팔아버렸습니다. 그런데 형들이 팔아버린 것이 아니라, 사실은 그 속에서는 세계복음화의 어마어마한 역사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집에서, 형들의 손에서 뽑아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나중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형들이 안 바뀌어 졌습니까? 형들까지도 다 바뀌어 졌습니다. 이게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기도하게 될 때 일어난 역사예요. 어떻든지 현장은 바뀌어 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주권을 붙잡고 기도 속에 들어가게 될 때에 응답이 오고 아니면, 해답이 나게 되어 있다 라는 사실입니다. 특히 사람관계 속에서 이상한 사람들이 있을 수 있잖아요. 그런데 그 사람들 때문에 상처 받지 마시고요 하나님의 음성, 하나님의 계획을 찾아내야 됩니다. 이상하고 싶어서 이상한것이 아니예요. 원래 악한 사람이 없어요. 원래 바보처럼 그렇게 살아갈 사람이 없어요. 그런데 왜 그렇게 악해 졌느냐? 왜 이상해 졌느냐? 그것을 보면서 이상한 사람과 악한 사람으로 그렇게 보지 마시고요, 얼마나 갈급했으면 그러냐? 이 사실을 가지고 봐야 됩니다. 얼마나 갈급하면 그러냐? 여러분 악한 일을 하고 좋아 할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나쁜 일을 하고 즐거워 할 사람, 행복해 할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원래 우리 인간은 하나님 형상 따라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 안에서 예배하고 은혜 받고 찬양할 때 그 때 행복하게 되어있습니다. 악한 일을 함으로 행복한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갈급하니까 그런 거예요. 그래서 우리에게 러브콜 하는 거예요. 도와 달라고 부르짖는 거예요. 이것이 언제 보여 져야 되느냐? 하나님의 주권을 붙잡고 기도하게 될 때 이 사실이 보여 지게 되어 있어요.
말씀을 맺겠습니다. 여러분,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믿는 믿음, 그 사실 붙잡고 기도 속에 들어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시고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승리케 하신다는 사실을 체험하는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려운 환경과 주변에 있는 사람을 탓하지 말고요, 우리 주변에 어려운 환경 때문에 늘 눌리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또 사람들 때문에 어려움 당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부터라도 이제는 그런 부분들을 탓하지 말고 하나님이 살아계신 산 증거를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믿는 믿음 가운데서 그 사실 붙잡고 기도함으로 변화 시키는 역사와 함께 또 그 증거를 통해서 분명히 승리하는 그런 축복된 한주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은혜와 사랑을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참된 승리할 수 있는 귀중한 자리로 우리를 인도해 주심을 감사함을 드립니다. 특별히 주의 사랑하는 교회 성도들 한분 한분이 이번 한 주간에 모든 만남과 사건과 일들 속에서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믿는 믿음 가지고 기도 속에 들어감으로 하나님이 그 배후에 역사하는 사실을 볼 수 있는 눈들이 열려지게 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문제와 사건속에 그 사실들을 통해서 탓할 것이 아니라, 그 속에 하나님의 역사를 증거할 수 있는 증인들이 되도록 주님이 축복해 주옵소서. 특별히 설 명절을 통해서 많이 오고가는 걸음이 있고 만남들이 이루어지고 또 전혀 믿지 않는 환경들 속에서 우리가 자칫 잘못하다보면 우리의 믿음조차도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믿음 가지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어떻게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가 그 역사를 체험하는 축복된 기간이 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옵소서.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서론: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가장 큰 발판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믿음 없이는 우리의 삶은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이 사실을 잘 알았던 바울은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롬11:36)라고 했습니다. 숨이 막힐 정도로 견디기 어려운 문제와 고통을 주는 사람이 우리에게는 늘 있습니다. 특히 설 명절을 앞두고, 이런 환경 속에서 어떻게 응답을 찾아 누릴 것입니까?
1.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는 믿음을 신뢰해야 합니다.
(1) 구원 받은 뒤에는 절대주권을 믿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1) 구원은 하나님이 저주와 지옥에서 나를 불러내셔서 자녀 삼으신 것을 말함
2) 하나님은 택한 백성을 영원토록 가장 완전하게 책임지심(빌1:6, 시37:28)
3) 절대주권을 믿지 않으면 현장에 들어갔을 때 실패하게 됨
(2) 주위에 일어나는 모든 일과 사건 속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붙잡으십시오.
1) 하나님의 계획(피 언약 전달, 전 세계에 이스라엘을 증거)을 위해 바로왕의 마음을 강퍅케 하심
2) 초대교회를 오직 전도만하는 교회로 세우시기 위해 유대인들의 마음을 악하게 해서 핍박받게 하심
3) 다윗은 자신에게 시므이가 저주하는 것을 두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라 인정함(삼하16:10-11)
(3) 하나님의 주권 믿는 믿음을 미리, 일찍부터 회복하고 누리십시오.
2. 하나님의 절대주권 믿는 믿음을 가지고 기도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주권과 기도).
(1)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기도로 미리 누릴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주권을 안다 하여도 기도로 누리지 못하면 현장 속에서 눌리게 됨(체념적인 신앙)
2) 주권 잡고 기도하면 두 가지가 보임
① 지금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 보이고
② 나를 곤란케 하는 문제와 사람의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손길이 보임
③ 이 응답을 누린 사람들: 엘리사(왕하6:14-17), 다윗(대상29:10-14, 삼상26:8-12)
3)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가운데 세상을 보아야 함
① 하나님을 떠난 자에게 아무리 엄청난 일이 일어나도 결국은 망하게 됨
②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어떤 일이 있어도 승리하게 됨
4) 모든 문제와 사건을 대할 때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지 찾아내야 함
(2) 주권 믿고 기도할 때에 환경에 매이지 않고 묶이지 않게 됩니다.
1) 요셉은 어떤 환경과 문제 속에서도 눌리지 않고 묶이지 않았음
① 보디발 아내의 유혹 이김(창39:9) ② 바로 왕에게 하나님의 평안을 선포함(창41:16)
2) 주권을 믿는 사람이 기도하면 어려운 환경과 이상한 사람에 대해 하나님은 두 가지로 일하심
① 환경과 사람을 바꾸시던지 ② 아니면 그곳에서 뽑아내심
③ 요셉의 집에서는 바꾸는 대신 그곳에서 뽑아내셨고, 보디발 집에서는 환경을 바꾸셨음(결국 형들도 다 바뀌었음. 어떻든지 현장은 바뀌게 됨)
결론: 일을 시작하기 전에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는 믿음 붙잡고, 기도 속으로 들어가십시오. 어려운 환경과 인간관계를 탓하지 마시고, 주권 붙잡고 기도함으로 그것들을 변화시키는 역사를 맛보십시오. 하나님이 살아계신 산 증거를 통해 승리를 체험하십시오.
특별히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가장 큰 발판이죠.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믿는 믿음을 선택할 수도 있고 나의 지식과 나의 경험들을 믿을 수가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믿음을 선택할 수 있고 나의 경험과 체험들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삶이 정말 하나님의 축복가운데 있느냐 그렇지 않은가가 결정되게 되어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믿음 없이는 우리가 이 땅을 살아 가면서 우리의 삶이 안 되게 되어 있다 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 사실을 바울이 잘 알고 로마서 11장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장부터 11장까지는 교리에 대한 부분을 말씀하고 있고 12장부터 16장까지는 구원받은 성도의 삶에 대한 부분을 말씀하고 있으면서 결론지으며 하는 말씀이 롬11:36에 보면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그러면서 12장으로 넘어가며 “너희는 이 세대를 본 받지 말고…” 삶에 대한 부분을 말씀하고 있는 것을 성경을 통해 확인하게 됩니다.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서는 우리의 삶이 안된다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지난주에 이어서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기도」라는 제목으로 한주간 말씀의 은혜를 받고 인도 받기를 원합니다. 특별히 이번주간에는 설 명절이 시작되는 주간입니다. 토요일부터 연휴에 들어가서 월요일까지 명절이 진행되는데, 조금만 눈을 떠서 보면 믿음과 복음으로 하나되어 있는 환경은 참 축복입니다. 많은 분들이 복음으로 하나 되어지지 않는 부분 속에서 신앙생활에 힘들어 하는 부분들을 보게 됩니다. 우리 주위에 힘을 가지고 우리를 누르는 사람들이 있고 또, 우리 주변의 환경들 조차도 뭔가 모르게 우리를 누르는 것들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런 것들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체해야 할 것인가?
여러분, 설을 통해 만나게 되면 인간관계 속에서 응답을 누리는 사람이 있는 반면, 시험들고 상처가지고 교회로 돌아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인간관계나 주변의 환경들과 문제들을 넘어서면 우리가 참된 응답들을 현장에서 찾아 누리게 되는데 인간관계와 주변의 환경과 문제로 인해 다 놓치고 살아가게 되는 부분들을 봅니다만 성경에 보면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 일들을 넉넉히 감당해 나갔던 사실을 보게 됩니다.
특별히 오늘 말씀을 붙잡으시고 이번 한 주간 설 명절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문제와 사건 속에서 또 만남 속에서 하나님의 응답을 찾아내는 응답의 메시지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이런 부분들에 대해 우리가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주변의 환경들과 숨막힐 정도로 견디기 어려운 문제들이 우리에게는 늘 있습니다. 또, 사람관계를 통해 우리를 힘들게 하고 어렵게 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아 있고 이런 환경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응답들 찾아 누릴 것입니까?
먼저 첫 번째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는 믿음을 신뢰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저주에서 해방되고 지옥에서와 재앙문제에서 완전히 해방 받았습니다. 믿습니까? 이것을 구원받았다고 합니다. 구원받은 여기에서 모든 것들이 시작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구원받았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내셔서 하나님의 자녀 삼으셨다는 의미이며,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것들을 영원까지 가장 완전하게 책임지시는 축복가운데 들어 선 것을 구원받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고 그냥 내버려두신 것이 아니라 영원까지 가장 완전하게,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들을 책임지시는 축복가운데 저와 여러분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빌1:6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줄을 확신하노라” 말씀했습니다. 우리에게 착한 일 곧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신 그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날까지 하나님이 이루신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37:28에는 “여호와께서 정의를 사랑하시고 그의 성도를 버리지 아니하심이로다 그들은 영원히 보호를 받으나 악인의 자손은 끊어지리로다”주의 택한 백성들을 영원히 지키시리라 말씀했습니다. 악인의 자손은 끊어지고 망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택한 백성 곧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께서 싫어 버리지 아니하시고 영원히 지키신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능력과 상관 없습니다.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주신 은혜가 바로 구원의 은혜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구원받은 뒤에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는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구원은 받았지만 어디에서 차이가 나느냐? 바로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는 믿음이 있느냐 그렇지 않으냐? 여기에 차이가 나게 됨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부분이 확실치 않으니까 모든 사건을 보는 눈과 사람을 보는 눈이 다르게 되어 집니다. 하나니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믿는 믿음이 확실치 않으니까 작은 생활에서부터 큰 생활까지 여러분야와 모든 것이 달라지는 것들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우리가 가져야 할 분명한 신앙이 있다면 다른 것이 아니라 절대주권을 믿는 믿음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가장 최고로, 가장 먼저, 일평생에 가장 확실히 붙잡아야 할 것이 있다면 하나님이 절대적인 주권을 가지고 우리를 인도해나가신다는 이 믿음에 대한 역사인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을 보면, 교회와서 예배 드리고 은혜받을 때는 이것이 되는것 같지만, 현장에 들어가면 하나님의 주권은 어디가고 없습니다. 거기에서 실패합니다. 우리가 은혜 받을 때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만, 원로 목사님의 설교중에 한번씩 “문고리 잡고 나가면 하나님의 주권은 어디가고 없다” 하신 말씀같이 거기에서 성도들이 실패하는 부분들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오늘 이 자리 예배 참석한 모든 성도님들중에 “이제부터라도 내가 제대로 신앙생활을 해야 하겠다” 이런 분들은 오늘 꼭 말씀을 붙잡길 바랍니다. 그와 더불어 우리 렘넌트들도 어릴 때부터, 일찍부터 사상에 무엇이 들어가 있느냐가 인생을 좌우합니다. 어릴 때부터 분명히 체험하고 가져야 할 것은 내 방법과 내 열심히 사는 것 보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서 하나님의 주권가지고 사는 것이 훨씬 더 났다는 체험이 먼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한 때 우리 교회가 신비운동을 하면서 우리 아이들 조차 방언하기 위해 몸부림쳤었습니다. 단순히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그 사실만 알아도 신앙이 달라지더라고요. 그 사실에 대한 체험을 가지고 신앙생활 하라고 방언 받고 그 은사운동 속으로 인도받은 사실을 지난 날 교회사를 통해 보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제대로 신앙생활에 인도 받기 위해서는 또, 우리 렘넌트들이 일찍부터 사실적으로 체험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다른 것이 아니라 내 열심으로 살아가는 것, 내 노력으로 살아가는 것, 내 안에 그리스도가 인도하심에도 불구하고 은혜받을 때는 그것이 고백되어지지만 문제와 사건 왔을 때는 내가 살아 남는 것이 문제 아니었습니까? 제대로 신앙생활에 인도 받기 위해서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정말 내 노력과 내 열심보다, 내 방법으로 사는 것 보다, 하나님의 인도 속에 있는 것, “하나님의 주권으로 나를 인도하신다는 이 사실을 믿는 믿음이 먼저이구나!” 하는 것이 먼저 체험되어 져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사실이 확인된 요셉을 보십시오. 요셉이 당한 환경들이 얼마나 어렵고 힘들었습니까? 그 힘든 환경을 요셉이 잘 견뎌낸 것이 아니라, 요셉은 어떤 환경들 속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실제로 그 능력을 가지고 승리한 사실을 보게 됩니다. 다윗도 그러했고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 하나같이 그 중심의 사상이 무엇이었냐? 하나님이 절대적인 주권을 가지고 내 인생을 인도해 나가고 계신다는 이 믿임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섭리하고 계시기에 오늘부터라도 누가 여러분 주위에서 여러분에게 핍박주는 사람들 있습니까? 수근 수근 하면서 여러분을 어럽게 하는 사람들 있습니까? 그런 사람들을 대하게 될 때, 여러분 마음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일까?” 를 찾아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사람의 특징입니다.
여러분, 우리 주위에 우리를 모욕하고 핍박하고 있지도 않는 말을 만들어내서 우리를 어렵게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 앞에 서서 같이 싸울 수도 없는 것이고, 그들 앞에서 실망하고 낙심해서 주저 앉아 있을 것인가?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그 사람의 말속에서의 하나님의 뜻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이라 할 때, 좋은 일들 속에서만 하나님의 주권을 붙잡고 나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그러나 그렇지 않은 문제들 속에서도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주권을 붙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종살이를 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모세로 말미암아 출애굽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엄청난 기적이 일어남에도 불구하고 애굽의 바로왕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하지 않았습니다. 엄청난 재앙의 역사가 퍼부어지는 가운데서도 바로왕은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키지 않았습니다. 언제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하였습니까? 마지막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바를 때에 바로왕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하였습니다.
어떤 면에서 우리가 잘못보면, 왜 모세에게 하나님이 “나가라” 하셨다면 문을 열고 인도하셨어야 할 것인데 나가려 하니까 재앙을 당하면서도 왜 내보내지 않았는가? 이것은 맞지 않는 것 아닌가? 그러나 성경에 보면 거기에 대한 중요한 답을 말씀하고 있는데, “여호와께서 바로왕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더라” 했습니다.
여러분, 재앙을 그렇게 당하면서도 바로왕이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하지 않은 이유중 이유가 있다면 “여호와께서 바로왕의 마음을 강퍅케 하시므로…”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가장 큰 계획이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치 않은 그 계획 속에 있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로 말미암아 자자손손 양의 피언약을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와 더불어 그 속에는 이스라엘이 전 세계에 증거되어지는 일을 위해서 바로왕의 마음을 강퍅케 하셔서 해방치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양의 피를 바를 때 바로왕의 마음이 눈녹듯 녹아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케 되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좋은 일들 뿐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핍박을 통해, 바로왕의 강퍅한 마음을 통해 더 핍박이 임했던 그 속에서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계획을 이뤄가시고 진행하셨다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초대교회도 보십시오. 초대교회를 하나님께서 오직 전도만 하는 교회로 세우시기 위해서 바리새인들의 마음을 바꾸실 수 있었습니다만 바리새인들의 마음을 강퍅케 하고 유대인들의 마음을 악하게 해서 더욱 더 초대교회를 핍박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왜? 그렇게 한 줄 아십니까? 초대교회가 하나님만 바라보고 오직 복음만 전하는 교회로 하나님께서 세우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오늘부터 여러분의 주위에 일어난 모든 일들과 사건들 속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붙잡아야 하는데 혹여나 여러분을 어렵게 만들고 여러분에게 모함을 주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하나님이 이 사람을 통해 내가 어떤 음성 듣기를 원하셨는가?” 이것을 붙잡으면 됩니다. 여러분의 만남 속에서 좋은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우리를 어렵게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어려움과 핍박과 문제들 속에서 “왜 하나님이 이런 문제를 내게 주셨을까? 왜 이 사람을 내게 붙이셨고 이 사람을 통해서 어떤 하나님의 계획을 붙잡기를 원하시며 내가 어떤 음성 듣기를 원하시는 것일까?” 그 사실을 붙잡게 될 때, 그 속에서 실패하지 않고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 자신이 무너지지 않아요. 그렇지 않으면 지난주도 말씀드렸듯이 조금만 눈을 떠서 보면 연달아 우리의 믿음을 잃어버리게 하는 불신앙의 말들이 우리를 계속 공격해오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 현장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승리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까? 다른 것이 아닙니다. “모든 문제와 사건 속에서 하나님은 내가 어떤 음성을 듣기를 원하시는가?” 마치 삼하16장에 보면 다윗이 도망 길에 있을 때 시므이가 나타나 돌을 던지며 “이 피흘린 자여 피흘린 자여” 하며 모함을 했습니다. 그때 다윗왕과 함께 도망치며 다윗을 돕던 아비새 장군이 화가나서 “왕이여 내가 당장 저놈의 목을 베리이다” 이때 다윗이 아비새 장군에게 뭐라고 했니까? 삼하16:10~11에 “그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하고 또 다윗이 아비새와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되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 혹이나 그 어려움 당하는 것을 하나님이 아시고 선을 갚으실 줄 아느냐?
여러분, 시므이가 저주하는 그 어려움 앞에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시키셔서 내게 저주하는 것이 아니냐?” 그렇게 보았습니다. 그렇게 되어진다면 우리 신앙생활에서 시험들 일이 없는 것입니다. 이 축복의 눈이 열려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날마다 우리는 넘어져요. 순간 순간 불신앙 속에서 넘어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주권을 안 믿는다 할지라도, 나중에 가서야 인정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리, 일찍부터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믿음 회복하시고 믿음의 축복의 주역으로 승리하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죽음 직전에 가서야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누구나 우리 인생은 죽음 앞에 서면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시구나!”며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할 수 밖에 없게 되어 있습니다. 그때 가서 겨우 하나님의 주권 인정해서 손해 보는 그런 인생 되지 마시고 지금 내 모든 삶의 현장에 하나님은 완벽한 계획을 가지고 나를 인도하신다는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믿음으로 지금 누리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이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믿음을 미리 우리가 누릴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죽임 직전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돌아가십니다만 어떻게 우리는 미리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면서 그 축복을 지금 누릴 것인가? 거기에 가장 중요한 열쇠가 기도인 것입니다. 그래서 두 번째로 생각할 것은 주권과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사람은 기도합니다. 특별히 우리 신앙생활에서 구분하실 것이 있다면, 하나님의 주권을 말하면서도 이 신앙이 잘못되면 그저 체념적인 신앙으로 빠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열심히 자기마음대로 살아가다가 안되니까 “하나님의 주권” 이라면서 체념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없지않아 있어요. “하나님이 아시겠지” 라며 참 좋은 말 같고 대단한 믿음의 말 같지만 체념속에서 나오는 말들이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현장을 변화시키지 못하고 현장에 늘 눌리게 됩니다. 물론 하나님의 역사는 체험하기는 합니다만 현장속에 눌려서 신앙생활이 힘들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이야기는 하지만 기도로 누리지 못하는 그 차이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안다 할지라도 기도로 누리지 못하면 현장 속에서 눌리고 현장 속에서 정복당하고 늘 어렵게 신앙생활하게 되는 것입니다.
반면 우리가 하나님의 주권을 붙잡고 기도하면 두 가지가 보입니다. 지금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 보이고, 나를 어렵게 만들고 곤란하게 만드는 사람들과 문제들 배후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더 크게 보여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속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붙잡고 기도하게 될 때, 지금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 보일 뿐 아니라 나를 어렵게 만들고 문제를 통해 힘들게 하는 그런 곤란하게 부분들 배후에 역사하는 하나님의 손길이 더 크게 보여지게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을 예로 들까요? 아람나라 왕이 도단성을 공격해 왔습니다. 엘리사의 시종 게하시의 눈에는 자기들이 이제 끝났다, 죽게 되었다고 하는 탄식 섞인 원망의 소리를 하였지만, 그러나 주권을 붙잡고 기도하고 있는 엘리사에게는 그 배후에 불말과 불병거가 동원되어진 역사를 본 것입니다.
지난 주 살펴보았던 것처럼 역대상 29장에 보면 다윗왕이 하나님께 헌금하면서도 뭐라고 고백했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하나님께 드렸을 뿐입니다.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하나님의 역사를 봤습니다. 성공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리고 오늘 본문에 사무엘상 26장에 보면 다윗이 도망가는 그런 신세로 나옵니다. 사울왕이 군사 삼천 명을 동원해가지고 다윗을 잡기 위해 추격해 오고 있습니다. 그때 다윗이 십 광야 하길라 산에 있다 라는 이야기를 듣고 군사 삼천 명과 함께 사울왕이 다윗을 공격해 왔습니다.
그런데 잠시 사울왕이 그 머리 곁에 창을 꽂아 두고 잠을 자고 그 주위 둘레에는 사울왕을 섬기고 있는 아브넬 군대장관을 중심으로 해서 진 치고 거기에 잠이 들었어요. 그 모습을 다윗과 아비새가 보면서 다윗을 섬기고 있는 아비새가 중요한 말을 합니다. 삼상26:8절에 보세요. “아비새가 다윗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오늘 당신의 원수를 당신의 손에 넘기셨나이다 그러므로 청하오니 내가 창으로 그를 찔러서 단번에 땅에 꽂게 하소서 내가 그를 두 번 찌를 것이 없으리이다” 아비새가 딱 보고 “이건 한 칼에 죽일 수 있습니다. 이 기회는 두 번 다시 올 수 없는 절호의 기회이고, 하나님이 당신에게 붙이신 기회입니다. 당장 죽입시다!” 그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지 않은 것을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어요.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기도하는 사람이었던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장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붙잡고 기도하는 다윗의 모습입니다. 그 고백이 삼상26:10-11절에 나옵니다. “다윗이 또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그를 치시리니 혹은 죽을 날이 이르거나 또는 전장에 나가서 망하리라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는 것을 여호와께서 금하시나니 너는 그의 머리 곁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가자 하고…”보세요. 하나님이 왜 나에게 이런 기회를 주셨을까? 그 순간에 다윗은 기도했습니다. 그러면서 고백하는 내용이 뭐냐? 하나님이 죽이시면 죽일 수 있을 것인데 하나님의 기름 부으신 종을 내가 어찌할 수 없다 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치시던지, 전쟁에 보내 죽이시던지 하실 것이니까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믿음. 분명히 아비새는 절호의 기회라고 말했습니다. 누가봐도 기회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 다윗은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믿음으로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반면에 추격하는 사울왕은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는 사람이었어요. 특별히 여러분 세상을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세상이 그렇게 이야기 하고 있지요. 어떤 사상이 깔려져 있느냐면 ‘우리 인간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라는 것’, ‘하면 된다라는 것’ 이것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 렘넌트들이 기억하실 것은 세상의 가르침은 참 중요합니다. 틀린 것은 아닙니다만, 그러나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는 모든 것들이 창3장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 어떤 것도 결국은 망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멀리 내다보지 못하고 앞만 쳐다보고 있는데 그래서 잘되는 사람을 보면 뭔가 우리가 시험에 들 수도 있고요, 그러나 그게 아닙니다. 하나님을 떠난 자들에게 아무리 엄청난 일이 일어난다할지라도 그것은 결국 망하는 것이고요, 그와 반면에 어떤 사람이 승리하느냐?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어떤 일이 있어도 승리한 사실들을 보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믿음을 가져야 하느냐?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기도 속에 들어가야 합니다. 특별히 여러분 이제 앞으로 여러분에게 일어나는 모든 문제와 사건을 보게 될 때에 생각을 그렇게 시작해야 합니다. 아 하나님께서 이것을 허락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라면 하나님의 계획은 무엇일까? 이 사실을 찾아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어지느냐? 나를 괴롭히는 그 사람을 보면서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인데 그러면 “하나님의 계획은 무엇일까?” 이 상황가지고 보면 “그 사람이 참 불쌍하구나!” 그것이 보여지게 되어 있어요. 사람이 참 불쌍하구나! 거기서 사람을 살리는 참된 지혜가 나오게 되어 있는 것이죠.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기도할 때에 그 환경에 매이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기도에 그 실제가 보이는데 그래야 그 어려운 환경 속에 눌리지 않고 묶이지 않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요셉을 한번 볼까요? 요셉을 보면 특별히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 가장 잘 이야기 한 사람 중에 한 사람이 아닙니까?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늘 밤낮 요셉을 유혹하기 위해 보디발의 아내가 접근해 오는 그 가운데서도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가운데 창39:9에 보면 “내가 어찌 여호와 앞에서 득죄하리요” 또 바로왕의 꿈을 해석하기 위해 바로왕 앞에 불려 졌을 때에 요셉이 한 고백은 창41:16에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평안한 대답을 주시리이다”
어떤 환경과 문제속에서도 눌리지 않고 묶이지 않았던 사실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사람들이 기도하게 되면 그 어려운 환경, 이상한 사람이 옆에 있으면 하나님께서 두 가지로 일을 하시는데 첫 번째, 하나님께서 그 환경과 사람을 바꾸시던지 그렇지 않으면 나를 그 속에서 뽑아내시던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어려운 환경과 이상한 사람들 앞에서 우리가 언약 붙잡고 하나님의 주권을 붙잡고 기도하면 그 환경을 나 때문에 바꾸던지, 그렇지 않으면 나를 그 속에서 뽑아 내시던지…
다시 요셉을 한 번 보세요. 보디발의 집에 가서는 요셉 때문에 그 보디발의 집이 변화 되었습니다. 그 재산까지도 하나님의 복이 임한 사실을 보게 되지요. 보디발의 집에 가서는 요셉으로 말미암아 모든 환경들이 바뀌어 졌어요. 그런데 자기 집에서는 어떠했습니까? 바뀌어지지 않았어요. 형제들 열 명이 악질적인 형들이죠. 희한한 형들이었습니다. 요셉이란 동생을 팔아버렸습니다. 그런데 형들이 팔아버린 것이 아니라, 사실은 그 속에서는 세계복음화의 어마어마한 역사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집에서, 형들의 손에서 뽑아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나중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형들이 안 바뀌어 졌습니까? 형들까지도 다 바뀌어 졌습니다. 이게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기도하게 될 때 일어난 역사예요. 어떻든지 현장은 바뀌어 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주권을 붙잡고 기도 속에 들어가게 될 때에 응답이 오고 아니면, 해답이 나게 되어 있다 라는 사실입니다. 특히 사람관계 속에서 이상한 사람들이 있을 수 있잖아요. 그런데 그 사람들 때문에 상처 받지 마시고요 하나님의 음성, 하나님의 계획을 찾아내야 됩니다. 이상하고 싶어서 이상한것이 아니예요. 원래 악한 사람이 없어요. 원래 바보처럼 그렇게 살아갈 사람이 없어요. 그런데 왜 그렇게 악해 졌느냐? 왜 이상해 졌느냐? 그것을 보면서 이상한 사람과 악한 사람으로 그렇게 보지 마시고요, 얼마나 갈급했으면 그러냐? 이 사실을 가지고 봐야 됩니다. 얼마나 갈급하면 그러냐? 여러분 악한 일을 하고 좋아 할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나쁜 일을 하고 즐거워 할 사람, 행복해 할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원래 우리 인간은 하나님 형상 따라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 안에서 예배하고 은혜 받고 찬양할 때 그 때 행복하게 되어있습니다. 악한 일을 함으로 행복한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갈급하니까 그런 거예요. 그래서 우리에게 러브콜 하는 거예요. 도와 달라고 부르짖는 거예요. 이것이 언제 보여 져야 되느냐? 하나님의 주권을 붙잡고 기도하게 될 때 이 사실이 보여 지게 되어 있어요.
말씀을 맺겠습니다. 여러분,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믿는 믿음, 그 사실 붙잡고 기도 속에 들어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시고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승리케 하신다는 사실을 체험하는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려운 환경과 주변에 있는 사람을 탓하지 말고요, 우리 주변에 어려운 환경 때문에 늘 눌리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또 사람들 때문에 어려움 당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부터라도 이제는 그런 부분들을 탓하지 말고 하나님이 살아계신 산 증거를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믿는 믿음 가운데서 그 사실 붙잡고 기도함으로 변화 시키는 역사와 함께 또 그 증거를 통해서 분명히 승리하는 그런 축복된 한주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은혜와 사랑을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참된 승리할 수 있는 귀중한 자리로 우리를 인도해 주심을 감사함을 드립니다. 특별히 주의 사랑하는 교회 성도들 한분 한분이 이번 한 주간에 모든 만남과 사건과 일들 속에서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믿는 믿음 가지고 기도 속에 들어감으로 하나님이 그 배후에 역사하는 사실을 볼 수 있는 눈들이 열려지게 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문제와 사건속에 그 사실들을 통해서 탓할 것이 아니라, 그 속에 하나님의 역사를 증거할 수 있는 증인들이 되도록 주님이 축복해 주옵소서. 특별히 설 명절을 통해서 많이 오고가는 걸음이 있고 만남들이 이루어지고 또 전혀 믿지 않는 환경들 속에서 우리가 자칫 잘못하다보면 우리의 믿음조차도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믿음 가지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어떻게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가 그 역사를 체험하는 축복된 기간이 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옵소서.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서론: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가장 큰 발판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믿음 없이는 우리의 삶은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이 사실을 잘 알았던 바울은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롬11:36)라고 했습니다. 숨이 막힐 정도로 견디기 어려운 문제와 고통을 주는 사람이 우리에게는 늘 있습니다. 특히 설 명절을 앞두고, 이런 환경 속에서 어떻게 응답을 찾아 누릴 것입니까?
1.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는 믿음을 신뢰해야 합니다.
(1) 구원 받은 뒤에는 절대주권을 믿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1) 구원은 하나님이 저주와 지옥에서 나를 불러내셔서 자녀 삼으신 것을 말함
2) 하나님은 택한 백성을 영원토록 가장 완전하게 책임지심(빌1:6, 시37:28)
3) 절대주권을 믿지 않으면 현장에 들어갔을 때 실패하게 됨
(2) 주위에 일어나는 모든 일과 사건 속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붙잡으십시오.
1) 하나님의 계획(피 언약 전달, 전 세계에 이스라엘을 증거)을 위해 바로왕의 마음을 강퍅케 하심
2) 초대교회를 오직 전도만하는 교회로 세우시기 위해 유대인들의 마음을 악하게 해서 핍박받게 하심
3) 다윗은 자신에게 시므이가 저주하는 것을 두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라 인정함(삼하16:10-11)
(3) 하나님의 주권 믿는 믿음을 미리, 일찍부터 회복하고 누리십시오.
2. 하나님의 절대주권 믿는 믿음을 가지고 기도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주권과 기도).
(1)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기도로 미리 누릴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주권을 안다 하여도 기도로 누리지 못하면 현장 속에서 눌리게 됨(체념적인 신앙)
2) 주권 잡고 기도하면 두 가지가 보임
① 지금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 보이고
② 나를 곤란케 하는 문제와 사람의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손길이 보임
③ 이 응답을 누린 사람들: 엘리사(왕하6:14-17), 다윗(대상29:10-14, 삼상26:8-12)
3)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가운데 세상을 보아야 함
① 하나님을 떠난 자에게 아무리 엄청난 일이 일어나도 결국은 망하게 됨
②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어떤 일이 있어도 승리하게 됨
4) 모든 문제와 사건을 대할 때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지 찾아내야 함
(2) 주권 믿고 기도할 때에 환경에 매이지 않고 묶이지 않게 됩니다.
1) 요셉은 어떤 환경과 문제 속에서도 눌리지 않고 묶이지 않았음
① 보디발 아내의 유혹 이김(창39:9) ② 바로 왕에게 하나님의 평안을 선포함(창41:16)
2) 주권을 믿는 사람이 기도하면 어려운 환경과 이상한 사람에 대해 하나님은 두 가지로 일하심
① 환경과 사람을 바꾸시던지 ② 아니면 그곳에서 뽑아내심
③ 요셉의 집에서는 바꾸는 대신 그곳에서 뽑아내셨고, 보디발 집에서는 환경을 바꾸셨음(결국 형들도 다 바뀌었음. 어떻든지 현장은 바뀌게 됨)
결론: 일을 시작하기 전에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는 믿음 붙잡고, 기도 속으로 들어가십시오. 어려운 환경과 인간관계를 탓하지 마시고, 주권 붙잡고 기도함으로 그것들을 변화시키는 역사를 맛보십시오. 하나님이 살아계신 산 증거를 통해 승리를 체험하십시오.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
1484 | 전환점을 이룬 안디옥 선교 | 행11:19-30 | 2025-04-27 | |
1483 | 우리에게 주시는 영원한 메시지 | 고전15:1-11 | 2025-04-20 | |
1482 | 새로운 싸움을 위하여 | 삿7:9-18 | 2025-04-13 | |
1481 | 날마다 영적싸움에 승리하라 | 삿7:1-8 | 2025-04-06 | |
1480 | 이 시대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해답 | 삿4:1-10 | 2025-03-30 | |
1479 | 하나님이 쓰시는 기준 | 삿3:12-23 | 2025-03-23 | |
1478 |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 삿3:7-11 | 2025-03-16 | |
1477 |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 삿2:6-10 | 2025-03-09 | |
1476 |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 삿1:1-7 | 2025-03-02 | |
1475 |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 단12:1-4 | 2025-02-23 | |
1474 |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 단11:28-39 | 2025-02-16 | |
1473 |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 단10:10-21 | 2025-02-09 | |
1472 |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 단9:20-24 | 2025-02-02 | |
1471 |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 단8:15-27 | 2025-01-26 | |
1470 |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 단7:9-14 | 2025-01-19 |
1
2
3
4
5
6
7
8
9
10
...
99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