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2009-07-19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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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한 번 더 축복하겠습니다. 당신이 전도기획의 주역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보니까 렘넌트들, 특별히 유년부, 소년부 렘넌트들이 많이 참석한 것 같아요. 렘넌트들에게 최고의 축복된 은혜의 시간되길 축원합니다.
오늘 제목을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이 말씀을 가지고 함께 은혜 받기를 원합니다. 우리 몸에 있어서 다른 곳이 모두 성하다 할지라도 목숨이 끊어지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죠. 결국 손발이 건강하다 할지라도 목숨이 끊어지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이 가진 것도 소용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병들어 죽게 될 때, 온 몸이 병들어 죽는 것 보다 한 군데 병들어서 죽게 되는 것입니다. 죽으면 다른 모든 것이 쓸데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있다면 목숨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 마16:26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목숨이란 것이죠. 우리가 하나를 잃어버리면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하나가 안 되면 모든 것이 안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모든 것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하나를 가지고 있으면 결국은 다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생명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는데 그 생명 붙잡은 사람을 보고 언약을 붙잡았다고 합니다. 아담이 언약을 붙잡고 시작했는데 이 언약을 놓쳐버린 사건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바로 이 언약을 확인 시켜 나가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창3:15에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여러분, 이 언약 붙잡고 아담은 응답받았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요셉 또한 이 언약잡고 응답받은 것입니다.
우리에게 다른 것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고 이 언약을 놓쳐버리면 필요가 없게 되고 이 언약 붙잡으면 하나님은 모든 것을 회복시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복잡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만 한 가지를 이야기 하고 있는데, 생명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생명이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말씀하시는 것이고, 그 생명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을 붙잡은 것을 가지고 언약 붙잡았다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요20:31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그리스도 그 이름 안에 있는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것을 언약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구약에서 이 언약에 대한 부분을 살펴보고 신약에서 이 언약에 대해서 살펴보고 지금, 우리는 이 언약의 역사를 어떻게 누려야할 것인가에 대한 부분들을 함께 말씀을 통해 붙잡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먼저 첫 번째입니다. 구약에서의 언약적 설명은, 구약은 예언적인 축복입니다. 다시 말하면, “메시야가 오실 것이다” 그 언약 잡은 사람이 반드시 승리했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 구약성경입니다. 그래서 구약은 오실 메시아의 관한 것이고 예언적 축복이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이 어떻게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까? 그 이유를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8:56에 보면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예수님이 유대인들 앞에 하신 말씀이죠. “너희 조상 아브라함이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고 그것을 통해 기뻐했다” 다른 말로 하면, 아브라함도 나를 보고 구원받았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유대인들이 “아니, 도대체 네가 나이가 몇인데 아브라함을 보았다 하느냐?” 유대인들이 화가 남으로 돌을 들어 예수님을 치려했습니다. 오늘 여기에서 말씀하고자 하는 것은, 사실 아브라함이 어떻게 해서 응답 받고 축복 받았느냐? 오실 메시야 잡고 응답받았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오실 메시야를 붙잡았는데 구원받았고 다시 말하면, 그림자만 붙잡았는데도 흑암 속에서 빠져나오고 저주 속에서 해방 받은 것입니다. 오실 메시야 붙잡은 아브라함이 언약 붙잡음으로 믿음의 조상의 축복을 누리게 된 사실을 성경을 통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죠. 다윗은 어떻게 엄청난 축복의 비밀을 누렸습니까? 마1:1에 보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은 무엇을 알았느냐? 다윗이 어떤 족보에 있었느냐? 라는 의미입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다윗조차도 오실 메시야 이것을 붙잡았는데 하나님은 어마 어마한 축복들을 쏟아 부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직 오지도 않았는데, 그림자만 보고도 “오실 것이다” 이 예언의 말씀을 잡고 기다렸는데 하나님은 다윗에게 그 시대의 최고가는 왕의 축복을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임하는 축복은 더 분명하고 더 확실한 축복인 것을 알아야 될 것입니다. 아니, 그림자만 보고도 축복받았다면 그 그림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우리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셔서 지금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안에 거하시는 것입니다. 응답받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지역과 민족과 세계 살리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응답 못 받는다면, 우리가 지역과 민족과 세계를 살릴 수 없다면, 그것만큼 억울한 일이 있을 수 없습니다. 아니, 오실 메시야 곧 그림자를 붙잡고도 응답받았다면 그분이 오셨고 지금 우리 안에 성령으로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는데 우리가 응답받지 못한다는 것만큼 비참한 일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분명한 것은 저와 여러분은 구약시대 보다 더 큰 축복의 자리에 서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오실 메시야를 바라보고 바로 왕을 꺾었는데 그것이 바로 유월절입니다. 오실 메시야를 기념해서 양의 피를 발랐는데, 군인들이 건너지 못한 홍해를 건너게 되었고 오실 메시야를 바라보고 양의 피를 발랐는데 절대 빠져나오지 못하는 바로 왕의 손에서 빠져나왔습니다. 이것이 유월절 사건입니다. 여러분, 홍해 건너는 것과 애굽 바로 왕에게서 벗어난 것이 전쟁을 통해서가 아닙니다, 모든 지식을 총동원해서 빠져나온 것이 아닙니다. 단지 양의 피를 발랐는데, 그 양의 피는 오실 메시야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 발랐는데, 저주에서 빠져나오고 군대가 홍해를 건너게 되고, 그 어떤 군대도 이기지 못했던 막강한 군대들을 이기는 역사가 어디서 나왔습니까? 양의 피를 발랐을 때, 오실 메시야 이 언약 잡았을 때 승리케 된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창3:15에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오실 메시야, 어떤 모습으로 오실 것인가에 대한 부분이죠. “여자의 후손으로 오실 것이다. 그 분이 오셔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완전히 사단을 끝내겠다는 말, 사단의 권세를 깨트려 버리겠다는 말이죠. 이 창3:15의 언약을 붙잡고 승리한 것입니다. 다른 것에서 응답받는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이 언약 잡고 응답받았고 이삭이 이 언약 붙잡았는데 모든 축복의 삶을 누리게 되었고 야곱과 요셉도 어려운 부분이 있었지만, 오실 메시야 이 언약 잡았는데, 여자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야의 언약을 붙잡았는데 승리케 된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길을 가는 가운데 절망가운데, 낙심가운데 빠졌습니다. 그런 가운데 또한 뱀이 나타나 이스라엘 백성들을 죽이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때 지도자 모세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셨죠. “지팡이 위에 놋 뱀을 만들어 높이 들라. 그 놋 뱀을 바라보는 자는 살 것이다.”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죠. 어떻게 놋 뱀을 바라본다고 해서 살아날 것인가? 이것이 바로 비밀이죠. 요3:13에 보면,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들려져야 할 부분들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죠. 광야 길을 걸어가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절체절명의 죽음의 위기 가운데서 “놋 뱀 쳐다본다고 사냐?” 했던 사람들은 뱀에 물려 모두 죽었지만, 놋 뱀을 바라 본 자들은 모두가 살게 된 사실을 보게 됩니다. 그 놋 뱀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곧 오실 메시아를 상징하는 것이죠. 그래서 구약은 완성된 것이 아니라 예언된 것인데 그것만 붙잡고도 축복받고 승리하며 응답받은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약은 어떻습니까? 신약시대에 와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예언된 것이 완성되어진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완성으로 그리스도가 이미 오셨고 이미 구약의 모든 사건과 일들과 문제를 통해 어떤 모습으로 그리스도가 오실 것인가를 예언하고 있는데 그 예언대로 오셨다는 것이 바로 신약입니다. 신약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심으로 예언된 부분들을 완성하신 것이죠. 그래서 “완성적인 축복이 신약이다”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죄 없으신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며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요19:30에 “다 이루었다” 말씀했습니다. 한번 받아합시다. “다 이루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로 모든 문제를 다 해결했다는 말입니다. “다 아루었다” 이 말씀은 “다 끝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이고, 해결해야 할 문지라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데 그 문제를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면서 선언한 내용이 “다 끝났다. 다 이루었다” 선언하셨습니다. 그 내용이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다시 말하면, 저와 여러분이 죄로 인한 저주 재앙을 받아야 하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받아야 할, 여러분이 받아야 할 저주와 재앙을 다 끝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막10:45에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 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자기의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기 위함이며 다시 말하면, 저와 여러분이 받아야 할 저주와 재앙을 대신 받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 선언이 바로 “다 이루었다” 라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죠. 요일3:8에 보면,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함이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다 이루었다는 그 축복은 창세기 3장사건 배후에 역사하는 사단의 세력이 완전히 꺾이어지는 역사가 바로 “다 이루었다” 선언하신 그 선언 속에 있는 것입니다. 또한 죄로 말미암아 사단의 속임수에 빠져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고 하나님과 관계없는 자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떠남으로 세상 속에 빠진 자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다 이루었다는 선언 속에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디에서요?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복음의 핵심 중 핵심은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의 능력 중 능력은 십자가입니다. 분명한 것은 저와 여러분의 죄로 인한 저주와 재앙의 문제들, 사단의 문제들,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이 모든 문제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모두 완전히 해결하신 것입니다. 지금 또한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든 지간에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바로 복음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실을 바울이 체험했고 알았기에 오늘 본문에 “내가 너희에게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더 이상 알기 아니하기로 작정하였다” 그냥 나온 말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더 이상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다 고백했습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 선언하신 그 축복의 역사들을 알고 체험한 바울의 고백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모든 문제를 해결 하셨다 그 정도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면서 이루신 구원의 역사는 이 땅에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종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신분 자체를 바꾸는 사역이었습니다.
여러분, 종은 아무리 수준이 높아도 종이고 아무리 고상해도 종은 종입니다. 그러나 자녀는 아무리 수준이 낮아도 자녀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응답받을 수 있는 근거는 바로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입니다. 악한 사단을 이길 결정적인 카드가 뭐냐?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며 우리 모든 저주를 끝내버리셨고 저와 여러분을 종으로 살아가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도록 신분자체를 바꾸신 것입니다. 롬8:12-15 중에 특별히 15절을 보면,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모든 세상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가지고 두려움과 무서움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점쟁이를 찾아가고 우상숭배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왜냐? 두렵고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주셨다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법적으로 저와 여러분을 자녀 삼으셨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일꾼으로 부르신 것이 아니라 법적으로 자녀 삼으신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죠. 자녀로 이 땅에 살아가며 승리할 권세를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이 권세는 실제적인 권세 롬8:15에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했습니다. 개역 개정 성경이 나오기 전의 성경에서는 “아바 아버지”라고 기록되어 있었는데 지금 성경에는 “아빠 아버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실제적인 권세가 주어 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노력하고 수고해서 얻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아버지의 권세를 위임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사용하라고. 이것을 권세라고 하는 것입니다. 나는 연약하고 부족하지만 그리스도는 강하십니다. 모든 만물이 그 이름 앞에 무릎 꿇는다 했습니다. 강하신 주님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그 권세를 사용할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 사실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자녀일 뿐 아니라, 우리 이름을 멸망록에 기록한 것이 아니라 생명록에 기록하신 것입니다. 요5:24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망할래야 망할 수 없는 생명록에 저와 여러분이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끝입니까? 아니죠.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축복된 역사를 증거 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주신 것이 있습니다. 고전2:12“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여러분, 은혜로 주신 것이 무엇입니까? 저와 여러분 속에 성령이 내주하시고, 인도하시고, 역사하고 계십니다. 믿습니까? 똑같이 불신자와 세상 속에서 살고 있지만 다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고 계시고 우리를 인도하시게 되어 있어요. 그와 더불어 우리에게 역사하시게 되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걸음걸음마다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하시기에 여기에 하늘 군대가 동원되게 되어있고, 흑암이 꺾이면서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에 하나님의 완벽한 보호하심을 받으며 세계를 정복하는 축복이 무엇이고 세계를 살릴 축복이 무엇이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 이루었다” 선언하신 그 축복 속에 서있는 것입니다. 이 엄청난 축복의 역사를 완성하신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입니다. 이것을 바울이 알았기에 “나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알지 않겠다”고백한 것을 보게 되어 집니다.
그렇다면, 지금 말세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은 어떤 축복을 받았느냐?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완성하신 그 구원의 역사와 그 구원 안에 있는 모든 축복의 역사들을 이 땅에 살아가며 성취하는 자리에 저와 여러분을 세우신 것입니다. 무엇으로? 지금 성령으로 나와 함께하시는 그 역사로 말미암아.
여러분, 우리는 우리 모든 걸음 속에 성령인도로 말미암아 말씀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성취되어지는 역사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죄와 싸워서 내가 죄를 안 짓겠다” 는 각오와 결단에서 죄를 안 짓는 것이 아니라 그 죄의 세력을 이길 수 있는 그 축복의 역사를 성취시키는 역사 속에 성령으로 서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신 구원과 구원 속에 있는 그 어마 어마한 축복의 역사들을 우리의 걸음을 통해서 성취시킬 수 있도록 성령으로 말세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과 함께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지막에 하신 말씀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땅 끝까지 하나님 말씀의 역사의 성취를 맛본다는 사실입니다. 그 자리에 저와 여러분이 서있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여러분, 이 축복은 어마 어마한 것입니다. 우리의 부족함과 연약함이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내 안에 거하셔서 우리의 모든 걸음 속에 주의 말씀을, 주의 능력을 성취시켜나간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2:12)” 말씀했습니다. 이 말은 “힘쓰고 애써서 구원을 받으라” 이 말이 아닙니다.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다 완성하신 그 축복이 성취의 축복으로 내게 있는데 그 축복을 하나하나 찾아 누리라는 말로써 구원을 이루라는 것입니다. 내가 노력해서 구원을 얻고, 열심을 내어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너희 구원을 이루라” 선언한 바울의 고백은 이미 우리에게 모든 구원의 축복과 그 안에 있는 비밀을 주셨으니 하나하나 찾아 누리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령의 역사로 인해 찾아 누리고 찾아 성취시켜 나가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 축복의 역사를 누릴 수 있습니까? 본문에 중요한 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전2:1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분명한 것은 죄에서 해방 받았고 사단의 손에서 건짐 받았습니다. 구원받았다는 것은 죄에서 해방 받음으로 심판에 이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단의 손에서 건짐 받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죄와 사단의 역사가 상관없느냐? 여러분, 우리의 신분은 죄에서 해방 받았고 사단의 역사 속에서 건짐 받았지만, 이 땅에 사는 날 동안에는 상관있게 되어 있습니다. 끝까지 저주의 역사로 악한 사단이 우리를 공격해 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언제까지냐? 마25:41에 보면, 예수님이 이 땅에 재림주로 오시기 전 까지 악한 사단이 계속 공격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될수록 더욱 더 발악하며 사단이 공격해 올 것입니다. 이런 사단의 역사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이 주신 어마 어마한 축복을 찾아 누리고 승리할 수 있습니까? 다른 것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의 축복의 비밀을 하나하나 찾아서 누리게 될 때, 죄와 사단과 이 사실에 대한 공격 속에서 우리는 승리의 응답의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본문 2:1에 보면, 다른 것 붙잡지 말고 엉뚱한 것을 붙잡지 말라는 말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여러분, 우리의 수준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인격으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방법으로도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면서 2:2에 보면,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세상 방법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로만 된다는 사실에 대한 답을 가진 것입니다.
오늘 이 본문에 대해서 어떤 신학자는 이런 주장을 합니다. 바울이 이런 말을 하게 된 배경은 사실, 고린도 이전의 사역이 아덴지역의 사역이었는데, 이 아덴은 어떤 도시였냐? 지식이 빨리 전파되고 풍부해서 아침에 일어나면 늘 새로운 소식들로 가득할 정도로 지식의 도시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아덴 지역에서 전도할 때, 자기의 지식으로 전달함으로 복음을 전했는데, 바울의 결론은 아덴지역에서의 사역은 실패였다 생각했기에 그 후속 지역으로 고린도에 와서 전할 때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고 자기의 지식으로 실패했던 아덴의 역사를 떠올리며 이 말을 했으며,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의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했다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그렇게 보지 학자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본문에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그리스도, 십자가 안에 모든 것 다 얻었다, 가졌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것만 붙잡으라는 것입니다. 세상 지식과 수준 붙잡지 말고, 세상 수준과 방법 붙잡지 말고, 그리스도 그 안에 모든 것이 있고 다 얻었으니 그것만 붙잡으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하신 것 예외는. 얼마나 바울이 확신 있는 답을 그리스도 십자가에서 얻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영원한 해답을 이 십자가에서 가졌다는 사실들을 오늘 본문을 통해서 보여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 그 십자가 안에 모든 것이 다 있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참된 응답은 여기서부터 나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모든 것 다 있습니다. 이 사실에 대한 해답을 얼마큼 여러분이 가지고 있느냐? 여기에 따라 사람 보는 눈, 사건 보는 눈, 일을 보는 눈이 열려지게 되어 있고 말도 달라지어 있습니다. 얼마만큼 바울이 체험한 것처럼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더 이상 말하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다는 사실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다면 그 교회는 되게 되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도와 선교의 역사도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전도와 선교의 역사가 우리의 전략을 잘 세움으로 인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계획을 잘 세워야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획대로 되는 것입니다. 모든 세상은 노력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만 그러나 아닙니다. 세상의 노력은 결국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하신 것 외에는” 얼마큼 여기에 가치를 알고 해답을 가지고 있느냐? 그만큼 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하면서 여기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지 않으니까 다른 것을 붙잡아요. 다른 것 붙잡는다고 되느냐? 안됩니다. 되면 다행인데 안 되게 되어 있어요. 되어도 미안하지만 참된 만족이 없어요. 그러니까 사실적은 응답을 놓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다른 것이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이 또, 교회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여기에 대한 답이 나와야 하는데, 답이 안 내려 지니까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 어제 핵심에서도 말씀했습니다. 렘넌트 7명과 그 주위에 있는 사람이 다른 이유와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렘넌트 7명은 여기에 대한 답을 자긴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주위에 있었던 사람들은 여기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다른 것 붙잡았습니다. 초대교회와 바리새인들, 여러분 바리새인들이 훨씬 더 훌륭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이 답이 안 내려지니까 바리새인들인 결국 많은 것을 붙잡고 있음에도, 좋고 훌륭한 것을 붙잡고 있음에도, 결국 실패한 것입니다. 오늘 날 한국교회의 문제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여기에 대한 해답과 가치를 모르니까 한국교회는 어려워지고 힘들어져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붙잡아야 할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여기에 대한 답이 내려진다면, 그때부터 모든 응답과 축복이 시작되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이 바울의 고백이 여러분의 고백으로 여러분의 해답으로 붙잡혀 지길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압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문제 해결자라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모든 지혜, 지식, 보화가 감추어 있다고 고백합니다. 그렇게 알고 있고 믿고 있습니다. 그렇게 알고 있기에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왜 예수가 그리스도시고 모든 문제 해결자라 하는데 내게는 문제가 여전히 있고 끝나지 않았는가?”다른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여기에 대한 해답을 가지고 있지 않기에, 구원은 받았는지 모르지만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면 복음을 가지고 있기에 망하지 않지만 그 현실에 속게 되고 사람에게 속게 되고 일에 속게 되는 것입니다. 어제 핵심에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일에 있어서 “맞나 안 맞나?” 사람에 있어서 “옳다 그르다” 이런 기준을 가지고 이면에 하나님의 계획을 보지 못하고 현실 속에 복음은 실종되어 버렸다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답으로 가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처럼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여기에 확실하고 영원한 해답으로 붙잡지 못했기에, 구원은 받았지만 현실적인 문제 속에서 복음이 실종되어버렸고 사라졌다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이 복음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의 해답으로 잡아야합니다. 행3:6에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앉은뱅이를 바라보며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여러분, 앉은뱅이를 일으킨 기적보다 더 큰 중요한 것이 있다면,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여기서부터 역사는 시작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학교와 또 여름 수련회 앞두고 있습니다. 여름 행사를 위해 기도해주시고 리더 수련회와 세계 렘넌트대회 모든 세계 대회들이 여름에 계획되어 있고 세계 선교대회 까지 준비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말씀증거하실 류광수 목사님을 위해 기도해주시고 또, 교회 안에 성경학교와 수련회에 말씀 감당할 교역자들과 교사들을 위해 기도해주셔야 합니다. 뿐만 아닙니다. 우리 후대들에게 어느 정도 역사 일어나느냐? 그것은 우리 교역자들과 교사들이 그리고 배후에서 기도하는 분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그 해답이 있는 만큼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할 부분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교역자들과 교사들이 정말 유일한 답을 가지고 우리 아이들에게 설 수 있도록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거짓말 하지 못합니다. 말로써 아이들을 이끌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그 답이 있는 만큼 그것이 전달되어지게 되어 있고 그것만큼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교사들을 위해 기도하는 부분에서도 성도님들이 여름 행사를 위해 기도할 것이 무엇인가를 답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헌금하는 것도 그냥하지 마시고 마음과 중심과 기도를 담아 헌금하시길 바랍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여기에 대한 해답을 가지고 세계를 정복하는 축복을 누렸습니다. 여러분, 정말 예“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여기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빨리 버릴 것은 빨리 버리시고 바꿀 것은 빨리 바꾸시고 기다리면 됩니다. 정말 여기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다면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는 모든 행정도, 인격도 여기서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영원한 축복과 연결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여기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다면 버릴 것은 버리고 바꿀 것을 바꾸고 기다리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 통해 그리스도 그 이름 하나 안에 모든 것 다 있다는 사실들의 증인 삼으실 것입니다. 이 복의 역사를 누리는 교회 되시고 이 축복의 증인되어지는 여러분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우리 개인의 문제를 바라보고 이 땅에 참된 문제가 무엇인가를 알면 알수록 바울이 고백했던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이 가치에 대한 눈들이 열려지게 되어 집니다. 이 축복의 눈을 열어주심을 감사드리고 우리 남은 생애에 정말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이 가치를 알고 이 가치를 현장에 전달함으로 현장 살리는 교회와 개인되어지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 해결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 안에 있는 축복의 비밀들을 누리는 자들로 세워지게 하시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게 성취되어지는 말씀으로 붙잡혀짐으로 이 한 시대를 살리는 귀한 증인된 삶을 살도록 역사하여 주옵소서. 이에 가정과 산업과 자녀손들을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고 이 이름들을 생명록에 기록하시고 걸음마다 하늘군대를 동원하시고 악한 원수 마귀 손대지 못하도록 완벽하게 지키시고 보호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우리 몸과 마음과 정성을 다해 주 앞에 예물 드렸습니다. 십의 일조 헌금으로, 선교헌금으로, 건축헌금으로, RUTC헌금으로, 감사헌금으로, 주일헌금으로, 제목 따라 드린 예물들 위에 하나님이 두 손 들어 축복하여 주시되 모든 현장에 죽어가는 생명 구원하는 일에 쓰임 받는 예물 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특별히 오늘 여름 행사를 앞두고 특별헌금에 참여합니다. 하나님의 소원 속에 있는 렘넌트들을 우리의 마음에 담을 수 있도록 축복하심을 감사함을 드립니다. 하나님이 렘넌트를 위해 시대를 바꿔가는 역사를 세우고 계시는데 이 일에 자그마한 물질이지만 마음과 정성을 담아 쓰임 받게 됨을 감사함을 드립니다. 이 물질 통해 우리 렘넌트들이 한 시대 살리는 렘넌트들로 준비되어지며 세워지는 귀한 축복이 있게 하여 주옵시고 특별히 이번 여름행사를 통해 나를 찾고 나의 것을 찾아 누리는 축복의 시간 시간들이 되도록 역사하여 주옵소서. 수고하시는 모든 교역자들과 교사 선생님들과 이 일에 이름 없이 기도함으로 헌신하는 주의 종들, 물질적인 역사를 통해 함께 후원하는 모든 종들, 육신의 봉사를 통해 함께 돕는 모든 주의 종들에게 동일한 은혜로 충만케 역사하여 주옵소서. 렘넌트들에게 우리의 미래가 있사오니, 이를 통해 미래에 하나님이 하실 일이 보이는 귀한 축복이 있게 하시고 이 일을 위해 예물 드리는 모든 손길들을 복되게 하여 주옵소서.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서론: 손발이 성하다 해도 목숨이 끊어지면 다른 모든 부분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목숨은 온 천하와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입니다(마16:26). 성경은 생명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생명이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이 사실을 붙잡은 것을 가지고 언약 붙잡았다고 합니다. 언약 놓치면 모든 것이 필요 없고, 언약 한 가지 붙잡으면 모든 것이 회복됩니다. 신구약에서 언약에 대한 부분을 살펴보고, 이 언약의 역사를 우리가 어떻게 누려야 할 것인가 살펴보려 합니다.
1. 신구약 성경에 나타난 언약
(1) 구약 - 오실 메시아에 대해 말함(예언적 축복)
1) 언약 붙잡고 승리한 성경의 인물들
① 아브라함, 야곱, 요셉(요8:56) ②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유월절, 요3:13) ③ 다윗(마1:1)
2) 이들은 완성되지 않은 예언만 붙잡고도 복을 받고 승리하며 응답 받았음
(2) 신약 - 예언대로 오신 그리스도를 말함(완성적 축복)
1) 죄 없으신 하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다 이루었다”고 선언하심(요19:30)
① 우리가 받을 저주와 재앙을 대속물 되셔서 대신 받으셨음(막10:45)
② 창세기 3장의 사건 배후에 역사하는 사탄의 세력을 완전히 꺾으심(요일3:8)
③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케 하심(요14:6)
2) 예수님의 구원 사역으로 인해 우리에게 주어진 축복과 권세
① 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 자체가 바꿔짐(롬8:12-15, 요1:12)
② 성령이 내주하시고 인도하시고 역사하심(고전2:12)
③ 하늘 군대가 동원되고, 흑암이 꺾이며, 이 땅 사는 동안 하나님의 완벽한 보호를 받으며, 세계를 정복함
3) 성령이 역사하셔서 구원과 그 속에 있는 축복된 역사들을 우리 걸음을 통해서 성취하도록 하심(행1:8, 빌2:12)
2. 언약의 역사를 어떻게 누릴 것인가?
(1)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의 축복의 비밀을 하나하나 찾아서 누리십시오(2:1-2).
1) 죄와 사탄의 손에서 건짐 받았으나 이 땅에 사는 동안 악한 사탄은 계속 우리를 공격해옴(마25:41)
2) 우리 수준, 인격, 방법 등 세상의 방법으로는 사탄의 역사를 이길 수 없음
3)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 역사 안에 모든 것이 다 있기에 그리스도로만 승리할 수 있음(2절)
(2) 그리스도가 완전한 해답이 될 때 응답과 축복이 시작됩니다.
1) 그리스도 안에 모든 것이 다 있다는 사실에 대한 답이 있으면 사람, 사건, 일을 보는 눈이 열림
2) 그리스도의 가치를 알고 그리스도에 답이 내려진 만큼 교회의 부흥과 전도·선교 역사도 일어남
3) 이 답이 있던 자들은 성공(7 렘넌트, 초대교회), 없던 자들은 결국 실패(7 렘넌트 주위의 사람들, 바리새인들)
(3) 그리스도 복음을 가지십시오(행3:6 베드로가 가진 복음).
- 바울의 고백(2절)을 나의 고백으로 붙잡지 못하면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힐 때 복음이 실종됨
결론: 바울은 그리스도에 대한 해답을 가지고 세계를 정복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여기에 대한 답을 정말 가지고 있습니까? 진짜 여기에 답을 가지고 있으면 행정, 인격, 일, 사역도 여기서 나와야 합니다. 내 안에서 버릴 것을 버리고, 바꿀 것을 바꾸고, 기다리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 그 이름 하나 안에 모든 것 다 있다는 사실의 증인으로 삼으실 것입니다.
오늘 제목을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이 말씀을 가지고 함께 은혜 받기를 원합니다. 우리 몸에 있어서 다른 곳이 모두 성하다 할지라도 목숨이 끊어지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죠. 결국 손발이 건강하다 할지라도 목숨이 끊어지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이 가진 것도 소용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병들어 죽게 될 때, 온 몸이 병들어 죽는 것 보다 한 군데 병들어서 죽게 되는 것입니다. 죽으면 다른 모든 것이 쓸데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있다면 목숨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 마16:26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목숨이란 것이죠. 우리가 하나를 잃어버리면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하나가 안 되면 모든 것이 안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모든 것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하나를 가지고 있으면 결국은 다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생명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는데 그 생명 붙잡은 사람을 보고 언약을 붙잡았다고 합니다. 아담이 언약을 붙잡고 시작했는데 이 언약을 놓쳐버린 사건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바로 이 언약을 확인 시켜 나가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창3:15에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여러분, 이 언약 붙잡고 아담은 응답받았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요셉 또한 이 언약잡고 응답받은 것입니다.
우리에게 다른 것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고 이 언약을 놓쳐버리면 필요가 없게 되고 이 언약 붙잡으면 하나님은 모든 것을 회복시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복잡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만 한 가지를 이야기 하고 있는데, 생명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생명이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말씀하시는 것이고, 그 생명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을 붙잡은 것을 가지고 언약 붙잡았다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요20:31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그리스도 그 이름 안에 있는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것을 언약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구약에서 이 언약에 대한 부분을 살펴보고 신약에서 이 언약에 대해서 살펴보고 지금, 우리는 이 언약의 역사를 어떻게 누려야할 것인가에 대한 부분들을 함께 말씀을 통해 붙잡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먼저 첫 번째입니다. 구약에서의 언약적 설명은, 구약은 예언적인 축복입니다. 다시 말하면, “메시야가 오실 것이다” 그 언약 잡은 사람이 반드시 승리했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 구약성경입니다. 그래서 구약은 오실 메시아의 관한 것이고 예언적 축복이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이 어떻게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까? 그 이유를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8:56에 보면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예수님이 유대인들 앞에 하신 말씀이죠. “너희 조상 아브라함이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고 그것을 통해 기뻐했다” 다른 말로 하면, 아브라함도 나를 보고 구원받았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유대인들이 “아니, 도대체 네가 나이가 몇인데 아브라함을 보았다 하느냐?” 유대인들이 화가 남으로 돌을 들어 예수님을 치려했습니다. 오늘 여기에서 말씀하고자 하는 것은, 사실 아브라함이 어떻게 해서 응답 받고 축복 받았느냐? 오실 메시야 잡고 응답받았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오실 메시야를 붙잡았는데 구원받았고 다시 말하면, 그림자만 붙잡았는데도 흑암 속에서 빠져나오고 저주 속에서 해방 받은 것입니다. 오실 메시야 붙잡은 아브라함이 언약 붙잡음으로 믿음의 조상의 축복을 누리게 된 사실을 성경을 통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죠. 다윗은 어떻게 엄청난 축복의 비밀을 누렸습니까? 마1:1에 보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은 무엇을 알았느냐? 다윗이 어떤 족보에 있었느냐? 라는 의미입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다윗조차도 오실 메시야 이것을 붙잡았는데 하나님은 어마 어마한 축복들을 쏟아 부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직 오지도 않았는데, 그림자만 보고도 “오실 것이다” 이 예언의 말씀을 잡고 기다렸는데 하나님은 다윗에게 그 시대의 최고가는 왕의 축복을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임하는 축복은 더 분명하고 더 확실한 축복인 것을 알아야 될 것입니다. 아니, 그림자만 보고도 축복받았다면 그 그림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우리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셔서 지금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안에 거하시는 것입니다. 응답받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지역과 민족과 세계 살리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응답 못 받는다면, 우리가 지역과 민족과 세계를 살릴 수 없다면, 그것만큼 억울한 일이 있을 수 없습니다. 아니, 오실 메시야 곧 그림자를 붙잡고도 응답받았다면 그분이 오셨고 지금 우리 안에 성령으로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는데 우리가 응답받지 못한다는 것만큼 비참한 일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분명한 것은 저와 여러분은 구약시대 보다 더 큰 축복의 자리에 서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오실 메시야를 바라보고 바로 왕을 꺾었는데 그것이 바로 유월절입니다. 오실 메시야를 기념해서 양의 피를 발랐는데, 군인들이 건너지 못한 홍해를 건너게 되었고 오실 메시야를 바라보고 양의 피를 발랐는데 절대 빠져나오지 못하는 바로 왕의 손에서 빠져나왔습니다. 이것이 유월절 사건입니다. 여러분, 홍해 건너는 것과 애굽 바로 왕에게서 벗어난 것이 전쟁을 통해서가 아닙니다, 모든 지식을 총동원해서 빠져나온 것이 아닙니다. 단지 양의 피를 발랐는데, 그 양의 피는 오실 메시야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 발랐는데, 저주에서 빠져나오고 군대가 홍해를 건너게 되고, 그 어떤 군대도 이기지 못했던 막강한 군대들을 이기는 역사가 어디서 나왔습니까? 양의 피를 발랐을 때, 오실 메시야 이 언약 잡았을 때 승리케 된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창3:15에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오실 메시야, 어떤 모습으로 오실 것인가에 대한 부분이죠. “여자의 후손으로 오실 것이다. 그 분이 오셔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완전히 사단을 끝내겠다는 말, 사단의 권세를 깨트려 버리겠다는 말이죠. 이 창3:15의 언약을 붙잡고 승리한 것입니다. 다른 것에서 응답받는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이 언약 잡고 응답받았고 이삭이 이 언약 붙잡았는데 모든 축복의 삶을 누리게 되었고 야곱과 요셉도 어려운 부분이 있었지만, 오실 메시야 이 언약 잡았는데, 여자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야의 언약을 붙잡았는데 승리케 된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길을 가는 가운데 절망가운데, 낙심가운데 빠졌습니다. 그런 가운데 또한 뱀이 나타나 이스라엘 백성들을 죽이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때 지도자 모세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셨죠. “지팡이 위에 놋 뱀을 만들어 높이 들라. 그 놋 뱀을 바라보는 자는 살 것이다.”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죠. 어떻게 놋 뱀을 바라본다고 해서 살아날 것인가? 이것이 바로 비밀이죠. 요3:13에 보면,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들려져야 할 부분들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죠. 광야 길을 걸어가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절체절명의 죽음의 위기 가운데서 “놋 뱀 쳐다본다고 사냐?” 했던 사람들은 뱀에 물려 모두 죽었지만, 놋 뱀을 바라 본 자들은 모두가 살게 된 사실을 보게 됩니다. 그 놋 뱀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곧 오실 메시아를 상징하는 것이죠. 그래서 구약은 완성된 것이 아니라 예언된 것인데 그것만 붙잡고도 축복받고 승리하며 응답받은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약은 어떻습니까? 신약시대에 와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예언된 것이 완성되어진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완성으로 그리스도가 이미 오셨고 이미 구약의 모든 사건과 일들과 문제를 통해 어떤 모습으로 그리스도가 오실 것인가를 예언하고 있는데 그 예언대로 오셨다는 것이 바로 신약입니다. 신약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심으로 예언된 부분들을 완성하신 것이죠. 그래서 “완성적인 축복이 신약이다”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죄 없으신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며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요19:30에 “다 이루었다” 말씀했습니다. 한번 받아합시다. “다 이루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로 모든 문제를 다 해결했다는 말입니다. “다 아루었다” 이 말씀은 “다 끝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이고, 해결해야 할 문지라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데 그 문제를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면서 선언한 내용이 “다 끝났다. 다 이루었다” 선언하셨습니다. 그 내용이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다시 말하면, 저와 여러분이 죄로 인한 저주 재앙을 받아야 하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받아야 할, 여러분이 받아야 할 저주와 재앙을 다 끝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막10:45에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 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자기의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기 위함이며 다시 말하면, 저와 여러분이 받아야 할 저주와 재앙을 대신 받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 선언이 바로 “다 이루었다” 라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죠. 요일3:8에 보면,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함이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다 이루었다는 그 축복은 창세기 3장사건 배후에 역사하는 사단의 세력이 완전히 꺾이어지는 역사가 바로 “다 이루었다” 선언하신 그 선언 속에 있는 것입니다. 또한 죄로 말미암아 사단의 속임수에 빠져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고 하나님과 관계없는 자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떠남으로 세상 속에 빠진 자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다 이루었다는 선언 속에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디에서요?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복음의 핵심 중 핵심은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의 능력 중 능력은 십자가입니다. 분명한 것은 저와 여러분의 죄로 인한 저주와 재앙의 문제들, 사단의 문제들,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이 모든 문제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모두 완전히 해결하신 것입니다. 지금 또한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든 지간에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바로 복음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실을 바울이 체험했고 알았기에 오늘 본문에 “내가 너희에게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더 이상 알기 아니하기로 작정하였다” 그냥 나온 말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더 이상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다 고백했습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 선언하신 그 축복의 역사들을 알고 체험한 바울의 고백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모든 문제를 해결 하셨다 그 정도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면서 이루신 구원의 역사는 이 땅에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종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신분 자체를 바꾸는 사역이었습니다.
여러분, 종은 아무리 수준이 높아도 종이고 아무리 고상해도 종은 종입니다. 그러나 자녀는 아무리 수준이 낮아도 자녀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응답받을 수 있는 근거는 바로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입니다. 악한 사단을 이길 결정적인 카드가 뭐냐?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며 우리 모든 저주를 끝내버리셨고 저와 여러분을 종으로 살아가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도록 신분자체를 바꾸신 것입니다. 롬8:12-15 중에 특별히 15절을 보면,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모든 세상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가지고 두려움과 무서움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점쟁이를 찾아가고 우상숭배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왜냐? 두렵고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주셨다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법적으로 저와 여러분을 자녀 삼으셨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일꾼으로 부르신 것이 아니라 법적으로 자녀 삼으신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죠. 자녀로 이 땅에 살아가며 승리할 권세를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이 권세는 실제적인 권세 롬8:15에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했습니다. 개역 개정 성경이 나오기 전의 성경에서는 “아바 아버지”라고 기록되어 있었는데 지금 성경에는 “아빠 아버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실제적인 권세가 주어 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노력하고 수고해서 얻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아버지의 권세를 위임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사용하라고. 이것을 권세라고 하는 것입니다. 나는 연약하고 부족하지만 그리스도는 강하십니다. 모든 만물이 그 이름 앞에 무릎 꿇는다 했습니다. 강하신 주님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그 권세를 사용할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 사실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자녀일 뿐 아니라, 우리 이름을 멸망록에 기록한 것이 아니라 생명록에 기록하신 것입니다. 요5:24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망할래야 망할 수 없는 생명록에 저와 여러분이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끝입니까? 아니죠.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축복된 역사를 증거 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주신 것이 있습니다. 고전2:12“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여러분, 은혜로 주신 것이 무엇입니까? 저와 여러분 속에 성령이 내주하시고, 인도하시고, 역사하고 계십니다. 믿습니까? 똑같이 불신자와 세상 속에서 살고 있지만 다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고 계시고 우리를 인도하시게 되어 있어요. 그와 더불어 우리에게 역사하시게 되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걸음걸음마다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하시기에 여기에 하늘 군대가 동원되게 되어있고, 흑암이 꺾이면서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에 하나님의 완벽한 보호하심을 받으며 세계를 정복하는 축복이 무엇이고 세계를 살릴 축복이 무엇이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 이루었다” 선언하신 그 축복 속에 서있는 것입니다. 이 엄청난 축복의 역사를 완성하신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입니다. 이것을 바울이 알았기에 “나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알지 않겠다”고백한 것을 보게 되어 집니다.
그렇다면, 지금 말세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은 어떤 축복을 받았느냐?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완성하신 그 구원의 역사와 그 구원 안에 있는 모든 축복의 역사들을 이 땅에 살아가며 성취하는 자리에 저와 여러분을 세우신 것입니다. 무엇으로? 지금 성령으로 나와 함께하시는 그 역사로 말미암아.
여러분, 우리는 우리 모든 걸음 속에 성령인도로 말미암아 말씀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성취되어지는 역사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죄와 싸워서 내가 죄를 안 짓겠다” 는 각오와 결단에서 죄를 안 짓는 것이 아니라 그 죄의 세력을 이길 수 있는 그 축복의 역사를 성취시키는 역사 속에 성령으로 서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신 구원과 구원 속에 있는 그 어마 어마한 축복의 역사들을 우리의 걸음을 통해서 성취시킬 수 있도록 성령으로 말세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과 함께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지막에 하신 말씀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땅 끝까지 하나님 말씀의 역사의 성취를 맛본다는 사실입니다. 그 자리에 저와 여러분이 서있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여러분, 이 축복은 어마 어마한 것입니다. 우리의 부족함과 연약함이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내 안에 거하셔서 우리의 모든 걸음 속에 주의 말씀을, 주의 능력을 성취시켜나간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2:12)” 말씀했습니다. 이 말은 “힘쓰고 애써서 구원을 받으라” 이 말이 아닙니다.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다 완성하신 그 축복이 성취의 축복으로 내게 있는데 그 축복을 하나하나 찾아 누리라는 말로써 구원을 이루라는 것입니다. 내가 노력해서 구원을 얻고, 열심을 내어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너희 구원을 이루라” 선언한 바울의 고백은 이미 우리에게 모든 구원의 축복과 그 안에 있는 비밀을 주셨으니 하나하나 찾아 누리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령의 역사로 인해 찾아 누리고 찾아 성취시켜 나가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 축복의 역사를 누릴 수 있습니까? 본문에 중요한 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전2:1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분명한 것은 죄에서 해방 받았고 사단의 손에서 건짐 받았습니다. 구원받았다는 것은 죄에서 해방 받음으로 심판에 이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단의 손에서 건짐 받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죄와 사단의 역사가 상관없느냐? 여러분, 우리의 신분은 죄에서 해방 받았고 사단의 역사 속에서 건짐 받았지만, 이 땅에 사는 날 동안에는 상관있게 되어 있습니다. 끝까지 저주의 역사로 악한 사단이 우리를 공격해 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언제까지냐? 마25:41에 보면, 예수님이 이 땅에 재림주로 오시기 전 까지 악한 사단이 계속 공격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될수록 더욱 더 발악하며 사단이 공격해 올 것입니다. 이런 사단의 역사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이 주신 어마 어마한 축복을 찾아 누리고 승리할 수 있습니까? 다른 것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의 축복의 비밀을 하나하나 찾아서 누리게 될 때, 죄와 사단과 이 사실에 대한 공격 속에서 우리는 승리의 응답의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본문 2:1에 보면, 다른 것 붙잡지 말고 엉뚱한 것을 붙잡지 말라는 말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여러분, 우리의 수준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인격으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방법으로도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면서 2:2에 보면,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세상 방법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로만 된다는 사실에 대한 답을 가진 것입니다.
오늘 이 본문에 대해서 어떤 신학자는 이런 주장을 합니다. 바울이 이런 말을 하게 된 배경은 사실, 고린도 이전의 사역이 아덴지역의 사역이었는데, 이 아덴은 어떤 도시였냐? 지식이 빨리 전파되고 풍부해서 아침에 일어나면 늘 새로운 소식들로 가득할 정도로 지식의 도시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아덴 지역에서 전도할 때, 자기의 지식으로 전달함으로 복음을 전했는데, 바울의 결론은 아덴지역에서의 사역은 실패였다 생각했기에 그 후속 지역으로 고린도에 와서 전할 때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고 자기의 지식으로 실패했던 아덴의 역사를 떠올리며 이 말을 했으며,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의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했다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그렇게 보지 학자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본문에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그리스도, 십자가 안에 모든 것 다 얻었다, 가졌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것만 붙잡으라는 것입니다. 세상 지식과 수준 붙잡지 말고, 세상 수준과 방법 붙잡지 말고, 그리스도 그 안에 모든 것이 있고 다 얻었으니 그것만 붙잡으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하신 것 예외는. 얼마나 바울이 확신 있는 답을 그리스도 십자가에서 얻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영원한 해답을 이 십자가에서 가졌다는 사실들을 오늘 본문을 통해서 보여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 그 십자가 안에 모든 것이 다 있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참된 응답은 여기서부터 나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모든 것 다 있습니다. 이 사실에 대한 해답을 얼마큼 여러분이 가지고 있느냐? 여기에 따라 사람 보는 눈, 사건 보는 눈, 일을 보는 눈이 열려지게 되어 있고 말도 달라지어 있습니다. 얼마만큼 바울이 체험한 것처럼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더 이상 말하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다는 사실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다면 그 교회는 되게 되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도와 선교의 역사도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전도와 선교의 역사가 우리의 전략을 잘 세움으로 인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계획을 잘 세워야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획대로 되는 것입니다. 모든 세상은 노력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만 그러나 아닙니다. 세상의 노력은 결국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하신 것 외에는” 얼마큼 여기에 가치를 알고 해답을 가지고 있느냐? 그만큼 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하면서 여기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지 않으니까 다른 것을 붙잡아요. 다른 것 붙잡는다고 되느냐? 안됩니다. 되면 다행인데 안 되게 되어 있어요. 되어도 미안하지만 참된 만족이 없어요. 그러니까 사실적은 응답을 놓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다른 것이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이 또, 교회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여기에 대한 답이 나와야 하는데, 답이 안 내려 지니까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 어제 핵심에서도 말씀했습니다. 렘넌트 7명과 그 주위에 있는 사람이 다른 이유와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렘넌트 7명은 여기에 대한 답을 자긴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주위에 있었던 사람들은 여기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다른 것 붙잡았습니다. 초대교회와 바리새인들, 여러분 바리새인들이 훨씬 더 훌륭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이 답이 안 내려지니까 바리새인들인 결국 많은 것을 붙잡고 있음에도, 좋고 훌륭한 것을 붙잡고 있음에도, 결국 실패한 것입니다. 오늘 날 한국교회의 문제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여기에 대한 해답과 가치를 모르니까 한국교회는 어려워지고 힘들어져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붙잡아야 할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여기에 대한 답이 내려진다면, 그때부터 모든 응답과 축복이 시작되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이 바울의 고백이 여러분의 고백으로 여러분의 해답으로 붙잡혀 지길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압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문제 해결자라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모든 지혜, 지식, 보화가 감추어 있다고 고백합니다. 그렇게 알고 있고 믿고 있습니다. 그렇게 알고 있기에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왜 예수가 그리스도시고 모든 문제 해결자라 하는데 내게는 문제가 여전히 있고 끝나지 않았는가?”다른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여기에 대한 해답을 가지고 있지 않기에, 구원은 받았는지 모르지만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면 복음을 가지고 있기에 망하지 않지만 그 현실에 속게 되고 사람에게 속게 되고 일에 속게 되는 것입니다. 어제 핵심에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일에 있어서 “맞나 안 맞나?” 사람에 있어서 “옳다 그르다” 이런 기준을 가지고 이면에 하나님의 계획을 보지 못하고 현실 속에 복음은 실종되어 버렸다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답으로 가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처럼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여기에 확실하고 영원한 해답으로 붙잡지 못했기에, 구원은 받았지만 현실적인 문제 속에서 복음이 실종되어버렸고 사라졌다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이 복음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의 해답으로 잡아야합니다. 행3:6에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앉은뱅이를 바라보며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여러분, 앉은뱅이를 일으킨 기적보다 더 큰 중요한 것이 있다면,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여기서부터 역사는 시작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학교와 또 여름 수련회 앞두고 있습니다. 여름 행사를 위해 기도해주시고 리더 수련회와 세계 렘넌트대회 모든 세계 대회들이 여름에 계획되어 있고 세계 선교대회 까지 준비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말씀증거하실 류광수 목사님을 위해 기도해주시고 또, 교회 안에 성경학교와 수련회에 말씀 감당할 교역자들과 교사들을 위해 기도해주셔야 합니다. 뿐만 아닙니다. 우리 후대들에게 어느 정도 역사 일어나느냐? 그것은 우리 교역자들과 교사들이 그리고 배후에서 기도하는 분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그 해답이 있는 만큼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할 부분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교역자들과 교사들이 정말 유일한 답을 가지고 우리 아이들에게 설 수 있도록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거짓말 하지 못합니다. 말로써 아이들을 이끌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그 답이 있는 만큼 그것이 전달되어지게 되어 있고 그것만큼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교사들을 위해 기도하는 부분에서도 성도님들이 여름 행사를 위해 기도할 것이 무엇인가를 답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헌금하는 것도 그냥하지 마시고 마음과 중심과 기도를 담아 헌금하시길 바랍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여기에 대한 해답을 가지고 세계를 정복하는 축복을 누렸습니다. 여러분, 정말 예“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여기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빨리 버릴 것은 빨리 버리시고 바꿀 것은 빨리 바꾸시고 기다리면 됩니다. 정말 여기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다면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는 모든 행정도, 인격도 여기서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영원한 축복과 연결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여기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다면 버릴 것은 버리고 바꿀 것을 바꾸고 기다리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 통해 그리스도 그 이름 하나 안에 모든 것 다 있다는 사실들의 증인 삼으실 것입니다. 이 복의 역사를 누리는 교회 되시고 이 축복의 증인되어지는 여러분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우리 개인의 문제를 바라보고 이 땅에 참된 문제가 무엇인가를 알면 알수록 바울이 고백했던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이 가치에 대한 눈들이 열려지게 되어 집니다. 이 축복의 눈을 열어주심을 감사드리고 우리 남은 생애에 정말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이 가치를 알고 이 가치를 현장에 전달함으로 현장 살리는 교회와 개인되어지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 해결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 안에 있는 축복의 비밀들을 누리는 자들로 세워지게 하시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게 성취되어지는 말씀으로 붙잡혀짐으로 이 한 시대를 살리는 귀한 증인된 삶을 살도록 역사하여 주옵소서. 이에 가정과 산업과 자녀손들을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고 이 이름들을 생명록에 기록하시고 걸음마다 하늘군대를 동원하시고 악한 원수 마귀 손대지 못하도록 완벽하게 지키시고 보호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우리 몸과 마음과 정성을 다해 주 앞에 예물 드렸습니다. 십의 일조 헌금으로, 선교헌금으로, 건축헌금으로, RUTC헌금으로, 감사헌금으로, 주일헌금으로, 제목 따라 드린 예물들 위에 하나님이 두 손 들어 축복하여 주시되 모든 현장에 죽어가는 생명 구원하는 일에 쓰임 받는 예물 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특별히 오늘 여름 행사를 앞두고 특별헌금에 참여합니다. 하나님의 소원 속에 있는 렘넌트들을 우리의 마음에 담을 수 있도록 축복하심을 감사함을 드립니다. 하나님이 렘넌트를 위해 시대를 바꿔가는 역사를 세우고 계시는데 이 일에 자그마한 물질이지만 마음과 정성을 담아 쓰임 받게 됨을 감사함을 드립니다. 이 물질 통해 우리 렘넌트들이 한 시대 살리는 렘넌트들로 준비되어지며 세워지는 귀한 축복이 있게 하여 주옵시고 특별히 이번 여름행사를 통해 나를 찾고 나의 것을 찾아 누리는 축복의 시간 시간들이 되도록 역사하여 주옵소서. 수고하시는 모든 교역자들과 교사 선생님들과 이 일에 이름 없이 기도함으로 헌신하는 주의 종들, 물질적인 역사를 통해 함께 후원하는 모든 종들, 육신의 봉사를 통해 함께 돕는 모든 주의 종들에게 동일한 은혜로 충만케 역사하여 주옵소서. 렘넌트들에게 우리의 미래가 있사오니, 이를 통해 미래에 하나님이 하실 일이 보이는 귀한 축복이 있게 하시고 이 일을 위해 예물 드리는 모든 손길들을 복되게 하여 주옵소서.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서론: 손발이 성하다 해도 목숨이 끊어지면 다른 모든 부분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목숨은 온 천하와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입니다(마16:26). 성경은 생명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생명이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이 사실을 붙잡은 것을 가지고 언약 붙잡았다고 합니다. 언약 놓치면 모든 것이 필요 없고, 언약 한 가지 붙잡으면 모든 것이 회복됩니다. 신구약에서 언약에 대한 부분을 살펴보고, 이 언약의 역사를 우리가 어떻게 누려야 할 것인가 살펴보려 합니다.
1. 신구약 성경에 나타난 언약
(1) 구약 - 오실 메시아에 대해 말함(예언적 축복)
1) 언약 붙잡고 승리한 성경의 인물들
① 아브라함, 야곱, 요셉(요8:56) ②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유월절, 요3:13) ③ 다윗(마1:1)
2) 이들은 완성되지 않은 예언만 붙잡고도 복을 받고 승리하며 응답 받았음
(2) 신약 - 예언대로 오신 그리스도를 말함(완성적 축복)
1) 죄 없으신 하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다 이루었다”고 선언하심(요19:30)
① 우리가 받을 저주와 재앙을 대속물 되셔서 대신 받으셨음(막10:45)
② 창세기 3장의 사건 배후에 역사하는 사탄의 세력을 완전히 꺾으심(요일3:8)
③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케 하심(요14:6)
2) 예수님의 구원 사역으로 인해 우리에게 주어진 축복과 권세
① 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 자체가 바꿔짐(롬8:12-15, 요1:12)
② 성령이 내주하시고 인도하시고 역사하심(고전2:12)
③ 하늘 군대가 동원되고, 흑암이 꺾이며, 이 땅 사는 동안 하나님의 완벽한 보호를 받으며, 세계를 정복함
3) 성령이 역사하셔서 구원과 그 속에 있는 축복된 역사들을 우리 걸음을 통해서 성취하도록 하심(행1:8, 빌2:12)
2. 언약의 역사를 어떻게 누릴 것인가?
(1)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의 축복의 비밀을 하나하나 찾아서 누리십시오(2:1-2).
1) 죄와 사탄의 손에서 건짐 받았으나 이 땅에 사는 동안 악한 사탄은 계속 우리를 공격해옴(마25:41)
2) 우리 수준, 인격, 방법 등 세상의 방법으로는 사탄의 역사를 이길 수 없음
3)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 역사 안에 모든 것이 다 있기에 그리스도로만 승리할 수 있음(2절)
(2) 그리스도가 완전한 해답이 될 때 응답과 축복이 시작됩니다.
1) 그리스도 안에 모든 것이 다 있다는 사실에 대한 답이 있으면 사람, 사건, 일을 보는 눈이 열림
2) 그리스도의 가치를 알고 그리스도에 답이 내려진 만큼 교회의 부흥과 전도·선교 역사도 일어남
3) 이 답이 있던 자들은 성공(7 렘넌트, 초대교회), 없던 자들은 결국 실패(7 렘넌트 주위의 사람들, 바리새인들)
(3) 그리스도 복음을 가지십시오(행3:6 베드로가 가진 복음).
- 바울의 고백(2절)을 나의 고백으로 붙잡지 못하면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힐 때 복음이 실종됨
결론: 바울은 그리스도에 대한 해답을 가지고 세계를 정복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여기에 대한 답을 정말 가지고 있습니까? 진짜 여기에 답을 가지고 있으면 행정, 인격, 일, 사역도 여기서 나와야 합니다. 내 안에서 버릴 것을 버리고, 바꿀 것을 바꾸고, 기다리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 그 이름 하나 안에 모든 것 다 있다는 사실의 증인으로 삼으실 것입니다.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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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4 | 전환점을 이룬 안디옥 선교 | 행11:19-30 | 2025-04-27 | |
1483 | 우리에게 주시는 영원한 메시지 | 고전15:1-11 | 2025-04-20 | |
1482 | 새로운 싸움을 위하여 | 삿7:9-18 | 2025-04-13 | |
1481 | 날마다 영적싸움에 승리하라 | 삿7:1-8 | 2025-04-06 | |
1480 | 이 시대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해답 | 삿4:1-10 | 2025-03-30 | |
1479 | 하나님이 쓰시는 기준 | 삿3:12-23 | 2025-03-23 | |
1478 |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 삿3:7-11 | 2025-03-16 | |
1477 |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 삿2:6-10 | 2025-03-09 | |
1476 |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 삿1:1-7 | 2025-03-02 | |
1475 |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 단12:1-4 | 2025-02-23 | |
1474 |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 단11:28-39 | 2025-02-16 | |
1473 |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 단10:10-21 | 2025-02-09 | |
1472 |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 단9:20-24 | 2025-02-02 | |
1471 |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 단8:15-27 | 2025-01-26 | |
1470 |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 단7:9-14 | 2025-0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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