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신)
2009-05-10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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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 할렐루야! 축복을 선언 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감사합니다.
지난 5월 5일에 우리 교회에서 의미 있는 시간들이 진행되었습니다. 영상을 보신 것과 같이 제 1회 가족초청 찬양전도캠프가 많은 기도와 참여로 새로운 가족들이 초청되어서 잘 마치게 되었습니다. 총 180여명, 식당에서 식사하시는 분은 200여명 참석이 되었고요. 많은 분들의 기도가 있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어떤 분은 “아쉽다 조금 더 길게 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말씀을 하시기도 했습니다. 처음에 문화기획에서 기획안이 올라왔을 때, 10가지 넘게 순서가 올라 왔길래 그대로 진행하려다가 가족 초청 찬양전도캠프는 찬양도 찬양이지만, 어렵게 교회로 첫 발걸음을 옮긴 분들 아닙니까? 이 분들에게 세상 삶과 다른 새로운 삶을 소개해야 하겠기에 순서를 대략 줄이기로 했는데, 문화모임에서 새롭게 준비한 순서가 아주 알차게 제대로 잘 인도 받아서 준비되었다고 보입니다.
혹시나 여러분 이 날의 성령의 감동을 재현하고자 하시면 하나교회 홈페이지를 들어가시면, 영상과 메시지가 업로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보며 제대로 성령인도를 받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구성을 보면 하나같이 성령의 인도 속에서 나온 것입니다. 관현악 팀의 “죄짐 맡은 우리 구주” 찬양을 통해 마음 문을 열고 40~50세의 중창단의 익은 목소리와 화려한 붉은 의상이 돋보였고 찬양 이후에 렘넌트들의 찬양으로 영광 돌리고 그 이후에 30~40 여자 중창단이 나와서 아름다운 목소리로 찬양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렸습니다. 그 마지막 곡이 “하나님의 은혜”란 곡이었습니다. 나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 나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 이란 내용의 찬양으로 은혜를 끼치고 그 다음에 메시지로 초청하는 시간과 메시지 후에 남성중창단의 “난 예수가 좋다오”란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축복된 시간을 보냈습니다. 너무 절묘한 찬양의 구성이었습니다.
식사를 하면서 보니까 많은 분들이 초청되어 오셨어요. 친구, 친지, 가족 등 많은 분들이 초청되었습니다. 제 마음에 한편으로 가슴 벅차게 기도가 된 것은 “하나님 저들의 걸음이 교회를 향한 첫 걸음인데 하나님께서 축복하여 주옵소서” 기도가 나오더라고요. 또, 찬양담당한 분이나 이름 없이 공휴일임에도 불구하고 반납하시고 식당봉사로 권사님들이 친히 수고해주셔서 모든 것이 합쳐져서 최고의 아름다운 시간이 된 사실을 보게 됩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특별히 여러분 통해 가정 복음화의 귀한 언약들을 응답으로 보게 되어서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 특별히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며 참 행복한 삶이 무엇일까? 생각해보셨습니까? 세상 사람들이 나름대로 열심히 성실하게 살아갑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이 사는 삶과는 전혀 다른 삶이 있다는 사실을 지난 5월 5일 가족초청 찬양전도캠프를 통해 소개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찬양하는 모든 분들과 메시지를 통해 그들이 분명히 보고 느꼈을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과 또 다른 삶이 있구나 하는 것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세상 모든 사람이 가고 있는 그길 말고 다른, 정말 축복된 행복한 삶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 사는 삶이 가장 복된 삶이 될 것이며, 가장 행복한 삶이 될 것입니까? 과연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가? 생각해보셨습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의 나름대로 살아온 삶을 점검해보면서 내가 어떻게 살아왔고 지금 어떤 시간표 속에 있으며 앞으로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인도하실 것인가에 대한 부분을 보면서 내가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며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일까?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무조건 열심히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은 압니다. 물론,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만 그것이 성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그렇게 많은 생을 살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성경을 보면서 또, 이 시대적 문제를 보면서 현장을 보는 눈이 조금 열려지면서 “정말 복음 아니고는 안 되는구나” 여기에 대한 확인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왜 복음을 주셨는가? 이 부분들을 확인했습니다. 지금 현장의 일들과 시대적인 문제들을 보면서 “아, 하나님이 이것 때문에 복음을 주신 것이구나” 하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위해 사는 삶이 가장 행복한 삶이구나 하는 것을 저는 확신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앞으로 어떤 삶을 살길 원하십니까? 모두가 한결같이 참된 행복한 삶을 살길 원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말 복음을 위한 삶이 되어지면, 그 속에 참된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참된 행복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성실히 살아갑니다. 생각해보세요. 세상 사람들의 살아가는 방법을 보면, 열심히, 최선을 다해 공부하고 성실하게 살아갑니다. 무엇 때문에? 좋은 곳에 취직하기 위해서입니다. 취직하고 나면 결혼하고, 결혼 후에는 돈을 모으고, 돈이 좀 모이면 집을 사고 명예와 성공을 위해 살다보면 한 평생이 다 지나가고 노인이 됩니다. 그 이후에 찾아오는 것은 “내가 이것을 위해 살았던가” 하는 허무함이 찾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열심히 살았는데, 노인이 되어 삶을 정리해볼 때, 아무것도 남긴 것 없고 허무함만이 찾아오는 입니다.
우리 교회등록하신 분 중에 이런 분이 있습니다. 제가 그 분을 보니 참 성실하고 본성적으로 열심히 있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고백이 “목사님, 제가 예수님을 몰랐을 때, 남들보다 한 시간 일찍 일어나고 남들보다 한 시간 늦게 잠자며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살아왔습니다. 자녀들을 성공시키는 것을 저의 목적을 삼고 열심히 돈 벌어서 자녀들 뒷바라지 하고 그것이 다인줄 알고 살아 왔습니다” 자녀들도 성공하여 박사학위까지 받았어요. 그런데 자녀들이 출가하게 되고 어느 날 찾아온 것은 “내가 이것 때문에 그렇게 애를 먹어 가며 일을 했던가?”하는 허무감이 찾아온 것입니다. 그때부터 주위에 있는 사람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남편이 가까이 오는 것도 귀찮고 모든 삶에 의욕이 없어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런 삶을 산다면, 실컷 인생을 살아 놓고 이런 결과가 온다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문제가 바로 이 문제입니다.
지난 가족초청 찬양전도캠프 때 말씀드렸습니다만, 대곡에서 58세쯤 되신 어느 남자 분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내가 성공은 했는데 지금은 죽고 싶다. 자살하고 싶다 그래서 사이트도 살펴보고 어떻게 자살 할 것인가를 알아보기도 했다. 정말 죽을 것 같은데 살 길이 없느냐?”며 장로님과 통화를 했습니다. 그래서 장로님이 말씀하길 “참 행복한 길이 있습니다” 며 대화 나누고 만남을 약속했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결국, 성실히 살아놓고 우리 인생에 “참 잘 살았다, 참 행복한 삶을 살았다”는 고백이 있어야 할 것인데 그 고백이 없다면 실패한 인생 아닙니까? 그렇다면 정말 무엇을 위해 사는 삶이 참 행복한 삶인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위해서 사는 삶이 가장 행복한 삶이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복음은 무엇입니까? 복음은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복음입니다. 어떻게 감히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까?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까?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이 땅에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이 복음입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이 땅을 살아가며 마지못해 살아간다고 합니다.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 해보면 “그냥 사니까 사는 것이지 죽지 못해서 삽니다” 하는 고백을 종종 듣습니다. 이것이 과연 우리의 인생입니까? 아닙니다. 고전3:21에 보면,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이 땅에 살아가며 모든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것이 복음입니다.
뿐만 아니라, 단순히 구원받고 이 땅에 고생하며 살다가 천국 가는 것이 복음이 아닙니다. 복음이란 완벽하게 우리 삶을 치유하고 완전한 곳으로 인도하시고 완전한 승리가 보장되어 있는 것입니다. 막3:13-5에 보면,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자들을 부르셔서 구원의 역사로 인해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나가서 전도도 하며 엄청난 말씀을 주셨는데, 귀신을 내어 쫓는 권세도 있게 하기 위함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완전히 우리를 인도하시고 완전한 치유와 더불어 완벽한 축복을 누리는 것이 복음입니다. 그리고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영원한 문제를 해결 받는 길이 복음입니다. 요5:24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영원한 문제 해결 받는 것이 복음이란 사실입니다.
그래서 지금 된다 안된다가 문제가 아니라 복음 그 자체가 능력이기에 되게 되어 있습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1:6) 할렐루야! 복음 안에 있으면 되게 되어 있습니다.
복음가진 자, 구원의 축복 받은 자는 모든 문제 해결하신 그리스도의 비밀을 날마다 누리게 되어 있고 그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의 축복을 누리게 되어있고, 그리스도 이름의 비밀을 가지고 나갈 때마다, 이 세상은 영적인 문제로 실패하기에 그 영적은 문제를 이길 수 있도록 성령 충만함을 약속했습니다.
어제 핵심집회에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초대교회 사도와 중직자가들이 누린 영원히 남을 축복은 바로 하나님의 방법이다 말씀했습니다. 그 방법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과 그리스도 이름으로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와 성령의 충만함 속에 들어갈 때 언약적인 축복이 시작된다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특별히 이 시대는 가면 갈수록 영적인 문제로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 당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영적인 문제를 이길 수 있도록 성령 충만을 약속하셨습니다. 지금 내게 당장 영적문제가 드러나지 않았다고 안심할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모르고 있다면 반드시 생애와 가정 속에서 영적인 문제가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약속한 것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 축복이 복음 속에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 축복을 바로 깨닫게 될 때 악한 흑암의 세력이 완전히 추방되게 되어 있고 이 축복의 비밀을 깨닫게 될 때 우리 개인과 가정과 사업과 학업에 하나님이 증거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정말 복음위해 사는 삶이 행복한 삶이구나 여기에 결론내리면 흑암세력이 완전히 추방되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이 모든 필요를 채우시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아갈 것인가? 그 이유를 복음을 위해 살아야 하겠다는 결론으로 가질 때, 하나님은 우리 모든 필요를 채워주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시간에 붙잡을 것은 복음을 위해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한 삶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세 가지를 문제들을 해결 받아야 하며 세 가지 비밀을 붙잡아야 합니다.
첫 번째로 복음을 위해 사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본문을 통해 확인하겠습니다.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이 늘 터져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위한 참된 삶을 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가정 먼저는 모든 일 이전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입니다. 오늘 다윗이 이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2절과 3절을 보세요.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 참된 복음을 위한 삶을 살기위해서는 가장먼저 내가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이 늘 우리 안에서 터져 나와야 한다는 사실. 봉사하기 전, 헌신하기 이전에 우리 마음속에 놓치지 말고 붙잡아야 할 것이 “나를 하나님이 어떤 자리에서 구원하셨느냐?” 여기에 대한 사실을 늘 확인하면서 참된 감사가 이 속에서 나와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사역의 시작과 우리의 모든 배경이, 참된 힘이 구원받은 감사와 감격 속에서 나와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의 지난날이 어떠했습니까? 다윗의 고백처럼 기가 막힐 수렁에 빠져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재앙의 현장 속에 있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과거입니다.
지금도 많은 인생들이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 속에 빠져 있습니다. 왜냐?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사단으로 인한 영적인 문제를 알지 못하니 눈에 보이지 않는 재앙가운데 실패하는 인생으로 살고 있습니다. 이것은 모른 척 한다고 지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모든 인생들 곧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불신앙으로 이한 죄 가운데 저주받게 되어 있고, 영적인 문제 속에 빠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모른 척 한다고 지나갈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결국 그 결과로 고난이 자꾸 오고 우상숭배하며 종교생활하고 사단이 그 사실을 붙잡고 있으니 정신과 마음에 고통이 계속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니잖아요. 정신과 마음을 사단이 잡고 있으니 고통이 일어날 뿐 아니라 결국 발전하는 것 같지만, 정신과 육신이 파괴되고 모든 것이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다가 결국 지옥가게 될 운명에 빠진 것이 인생입니다.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령에 빠진 것처럼 재앙의 현장 속에 빠진 것입니다.
어떤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분은 건축업을 하시는 분이고 건축업을 통해 많은 돈을 벌 수 있었습니다. 집안에 불상을 모셔놓고 빌 정도로 돈을 많이 벌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닥쳐오는 가정과 자녀들의 문제로 인해 자녀들이 이혼하게 되고 자녀들의 후손들이 어려움 당하게 되고 그러니 왜 이런 문제가 생겼는지 모르고 있다가 복음을 받고 복음 속에 들어온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이미 매스컴을 통해 보게 되잖아요. 전 대통령과 연결된 사업가, 그리고 집에 전속무속인 두 명을 두고 있었다는 보도를 듣게 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재앙가운데 모두 무너지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생입니다. 재물을 취하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고, 재물을 위해 몸부림친다 해도 그 재물이 내 것이 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이것이 불신자의 상태입니다. 그런 자 같이 되고 우리 인생이 헛된 일로 소란하고 재물을 취하나 누구의 것이 될지 모르는 것이 불신 상태의 인생입니다. 그런 가운데 우리도 있었고 오늘 본문에 다윗이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의 찬양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 모든 사역의 기준이 여기서 나와야 합니다. 물론 교회를 위한 봉사와 헌신이 중요합니다만 참된 구원에 대한 감사와 감격이 헌신하고 봉사 한다면 나중에 시험에 들고 그 시험으로 인해 여러분의 인생이 무너지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정말 구원받았다는 것은 엄청난 것입니다. 다윗의 감사는 다른 감사가 아니었습니다. “내 발을 반석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케 하셨도다” 이 축복이 여러분에게 회복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것은 영원히 사단의 저주에서 벗어난 것을 말합니다. “내 발을 반석위에 두사” 저주에서 완전히 끝나버린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영원히 하나님의 자녀된 것을 말합니다. “내 발을 반석위에 두사” 그것이 구원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늘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그리스도로 인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두 번째로 어떻게 하면 복음을 위한 삼과 참된 행복한 삶을 살 것인가?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을 누리고 있으면 가장 먼저 우리에게 말씀이 들려지고 말씀에 은혜를 입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다윗이 고백합니다. 6절을 보면, “주께서 내 귀를 통하여 내게 들려 주시기를” 말씀이 들려졌다는 말이죠. 7절에도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 성경 말씀에 대한 부분을 고백하면서 8절에는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하였나이다” 정말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이 회복될 때 그 속에서 말씀이 하나하나 내게 들려지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 6절을 직역하면 “당신이 내 귀를 뚫으셨나이다 ” 이 뜻입니다. 여러분 히브리인들의 풍습가운데 귀를 뚫는 풍습이 있습니다. 종으로서 상전된 자들에게 내가 평생 헌신하겠다는 의미로 종들이 문설주에 귀를 대고 송곳으로 귀를 뚫습니다. 그래서 여자분들 중 귀걸이 하시는 분들은 종으로 순종하겠다란 뜻을 가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을 칼뱅이 이야기하길, 하나님이 다윗에게 말씀의 은혜를 깨닫게 하셔서 귀가 뚫린 것이다. 즉 영적으로 열렸다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고 해석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영적으로 귀가 열려서 말씀이 들려진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신앙생활의 성공하는 중요한 비밀을 말씀하는 가운데 8절에 보세요.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끝난 것 아닙니까?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일하십니다. 그렇다면 그 말씀이 내 마음에 담겨졌다면, 모든 문제는 이미 끝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을 주시는데 그 말씀이 내 마음에 없다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 없다는 것입니다. 수천 년 동안 하나님은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 말씀이 내게 정리가 안 되었다는 말은 하나님의 축복과 상관없다는 말입니다.
말씀을 주신 것은 우리 인생이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인생의 나침반으로 주신 것입니다. 특별히 렘넌트들은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인도하시는데, 그 말씀의 인도함 없이는 어떻게 세상 문화와 현장에서 이길 수 있습니까? 말씀이 내 안에 담길 때 그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속에 말씀이 담겨진다는 것은 하나님은 창조의 말씀을 주셨고 성취하셨고 성취할 말씀을 주시기에 말씀을 붙잡은 자는 그 말씀이 이뤄지기 까지 절대 안 망합니다.
요셉을 보세요. 하나님은 요셉에게 언약 곧 말씀을 주셨습니다. 어떤 환경 속에서도 망하지 않았습니다. 왜냐? 그 중심에 하나님의 말씀과 계획, 약속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을 보십시오. “내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리라”,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나님의 언약이 주어졌습니다. 바울은 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기도 많이 하는 사람이 응답받는 것이 아니라, 언약 잡는 사람이 응답받게 됩니다. 계획을 철저히 세우는 자 보다 하나님의 계획을 붙잡은 자가 성공하게 되어 있습니다. 또, 노력하는 사람보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사람이 성공하게 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말씀이 마음에 담길 때 그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성령의 인도란 것은 말씀을 주시고 그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그 말씀대로 인도함 받는 것이 성령인도입니다.
여러분, 정말 말씀의 맛을 보면, 주일이 기다려집니다. 한 주간 현장에서 조금만 말씀잡고 기도하다보면 응답받게 되는데 그러면 주일이 기다려지게 됩니다. 그리고 말씀가지고 현장가면 현장의 두려움이 기대감으로 바뀝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역사를 일으키실 것인가?” 이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주일날 말씀에 은혜 받고 그 말씀 붙잡고 현장에 가니 현장에 하나님이 이루실 역사가 기대가 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그것이 반복되면서 신앙생활은 되는 응답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지난 5월 1일자 기도수첩에 우리 교회집사님이 간증을 실었습니다. 직장인으로써 지난날에는 두려움으로 직장생활에 임하고 가위 눌렸었는데, 복음을 알고 난 이후에는 직장 가는 것이 즐겁고 “오늘 이 복음 받을 사람이 누구일까?” 하는 기대감으로 간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당연한 것 아닙니까? 신자라면 당연히 받아야 할 응답입니다. 주일날 강단을 통해 말씀을 받고 그 말씀 가지고 현장에 가니까 하나님의 역사가 보이고 기대되어지고 그러면서 신앙생활은 되는 축복 속에 들어가게 되는데 이것이 정상입니다. 이런 축복 회복하는 여러분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저는 현장에서 성도님들 만나며 감사한 것은, 성도님들이 힘들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목사님, 말씀 붙잡고 인도받기 위해서 기도 하면서 인도받고 있습니다” 이런 고백을 해요. “말씀주셔서 그 말씀대로 인도받고 현장에서 힘을 얻게 되어 참 감사합니다” 그런 말씀을 들을 때마다, 한편으로는 제가 송구스럽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말씀을 주시는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생활의 참된 성공의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마음 중심에 말씀이 담겨야 하는 것입니다. 혹이나 어떻게 말씀을 잡을 것인가? 아직까지 잘 모르는 분들 계시면 우리 교회가 300지교회를 놓고 기도하고 있는 중 31곳 지교회가 진행되고 있는데, 지교회에 참석해보세요. 어떻게 강단 메시지를 잡고 현장에 들어가며 어떻게 인도 받고 있는 지를 보세요. 그래서 다윗은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고백했는데,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이 되어지는 만큼 말씀이 들려지고 깨달아 지게 됩니다.
세 번째입니다. 말씀이 들려지고 말씀에 은혜 받게 되면 모든 삶 속에 적은 부분 한 부분 한 부분 속에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기도가 되어지고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게 됩니다. 지난날에는 현장에 있으면서 현장의 응답을 다 놓치고 있었는데 말씀의 은혜를 받고나니까 일어나는 현장의 사건 그 자체가 다 응답이예요. 그리고 또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게 되어 있습니다.
제가 어떤 분과 말씀 나누는 가운데 저도 모르게 마음 한편에는 불신앙을 가지고 건넸는데 이 분은 그 말을 듣더니 전혀 다르게 생각하고 있더라고요.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아 내가 잘못 말했구나” 충분히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그분은 그 속에서 감사를 고백했었습니다.
여러분. 지금 현장에 한 부분 한 부분 속에 하나님의 은혜 체험한 사람은 어떤 문제와 사건 속에서도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참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주실 것을 아니까요. 입만 열면 불평과 불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살아오는 삶 속에서 응답 못 받으니까 입만 열면 불평과 불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하는 것은 순간순간 매일 매일 삶 속에서 작은 부분까지도 하나님이 간섭하시는 사실을 알기에 또 큰 문제가 되면 거기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은혜 받는 사람은 지금의 현장을 놓치지 않습니다. 이 자리에 렘넌트들 많이 참여했는데, 여러분 최고의 준비를 할 기회는 지금입니다. 도전하란 말씀을 받게 되면 뭔가 새로운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닙니다. 다윗은 목동으로 있을 때, 가장 최고의 것을 준비했습니다. 양을 지키는 일에서 자기를 지키는 기도와 왕궁의 악사로 불려갈 정도로 찬양에 대해서 최고의 것을 준비했다는 사실. 무슨 말입니까? 지금 있는 현장이 가장 큰 응답을 준비할 수 있는 기회라는 사실입니다. 은혜 받는 사람은 알게 되어 있습니다.
은혜 받는 사람이 위기에 처했다면, 복음의 능력 속으로 들어갈 기회로 삼고, 은혜 받는 사람이 병들었다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기회로 삼고 은혜 받는 사람이 어려움 당할 때, 그것을 축복의 발판으로 삼는 위기로 삼습니다. 왜냐? 한 사건 한 사건 속에 세밀히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오늘 다윗이 작은 부분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본문을 보세요. 12~13절에 “수많은 재앙이 나를 둘러싸고 나의 죄악이 나를 덮치므로 우러러볼 수도 없으며 죄가 나의 머리털보다 많으므로 내가 낙심하였음이니이다 여호와여 은총을 베푸사 나를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16~17에도 계속해서 보겠습니다. “주를 찾는 자는 다 주 안에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시며 주의 구원을 사랑하는 자는 항상 말하기를 여호와는 위대하시다 하게 하소서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나 주께서는 나를 생각하시오니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라 나의 하나님이여 지체하지 마소서”
모든 부분 속에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축복의 기도 속에 들어가는 것을 보게 되어집니다. 여러분 초대교회 성도들은 핍박가운데서도 원망, 불평하지 않았던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알고 있었기에 사도행전 4장에 보면, 오히려 예수 믿는 일로 인한 능욕 받는 일에 쓰임 받는 것을 감사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 때문에 핍박받던 자리에 선 것을 감사한 것이 초대교회 성도들이었습니다.
바울도 보십시오. 날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알았기에 감옥 안에 있어도 좋고, 감옥 밖에 있어도 좋다 그리고 내가 죽어도 좋고 살아도 좋다 이 고백을 한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오히려 복음의 진보가 됨이라 고백한 것을 보게 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 하나님의 은혜를 매 사건 속에서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여러분, 복음을 위해 사는 삶이 가장 행복한 삶입니다. 이를 위해 날마다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말씀이 들려지고 말씀의 은혜를 입게 됩니다. 말씀에 은혜를 입게 되면 우리 삶에 한 부분 한 부분 속에 주의 은혜가 나타납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보고 알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전도입니다. 가정복음화를 위해 기도하는 중에 가족들은 말하지 않아도 나를 보고 있습니다. 정말 그리스도의 사람인가 보고 있어요. 이 사람이 정말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복음가진 사람인지 언약가진 사람인지를 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전도와 선교라는 사실입니다. 굳이 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요셉은 노예로 갔지만 요셉이 가는 걸음 걸음 속에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실이 보였는데 그 고백을 보디발과 바로 왕이 했습니다. 총리로 세운 바로 왕이 고백 했잖아요. “내가 어떻게 이같이 하나님의 신이 감동된 자를 얻을 수 있느냐?” 그러면서 “내가 높은 것은 자리뿐이다 그러니 모든 것을 네 마음대로 하라”며 나라 전체를 다 맡겼습니다. 이것이 요셉이 받은 축복입니다. 보고 알게 됩니다.
여러분 다니엘이 받은 축복이 어떤 축복입니까? 다니엘이 사자굴 속에 있을 때에, 다리오 왕이 “네가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기에 능하셨느냐?” 그러면서 다니엘을 모함한 사람들을 오히려 사자 굴에 던져 넣으면서 조서에 기록한 말씀을 단6:25-27에서 확인해보겠습니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다니엘 뿐 아니라 다니엘과 같이 복음(언약)가진 자들에게 약속된 승리입니다. “이에 다리오 왕이 온 땅에 있는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조서를 내려 이르되 원하건대 너희에게 큰 평강이 있을지어다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라 내 나라 관할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 그는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하지 않으실 이시며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의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이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라 하였더라” 할렐루야!
복음가진 저와 여러분에게 보장된 승리의 선언입니다. 하나님은 기어코 우리를 요셉처럼 다니엘처럼 축복하시길 원하십니다. 있는 자리에서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을 가지고 말씀의 은혜를 받으며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나갈 때에 노예로 있다 할지라도, 포로로 있다할지라도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하나님의 계획을 선포하는 자리에 세우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내 발을 반석위에 두사” 그러면서 시40:3에 보면,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 이 복음의 역사 속에 서서 승리하는 축복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한번뿐인 우리 인생에 참된 복음의 가치를 알게 하시고 복음을 위해서 가장 멋진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가장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축복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이 늘 회복되게 하시고 말씀을 들을 때 마다 말씀이 들려지는 축복이 있게 하여 주시며 특별히, 말씀 속에서 현장에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들이 보여지고 나타나는 삶이 되도록 역사하여 주옵소서. 내 발을 반석위에 두사 걸음을 견고케 하셨도다. 기어코 승리의 축복으로 우리에게 임하실 역사를 바라보며 이번 한 주간에도 우리 모든 걸음 속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승리의 축복이 누려지도록 인도해 주옵소서.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서론: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가장 행복하겠습니까? 어떻게 살아야 가장 행복하겠습니까? 성도에게는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과는 다른 참 행복의 인생길이 있습니다. 나름대로 성실히 살아도 복음이 없으면 결국 누구든지 허무하게 됩니다. 그래서 복음을 위하여 사는 삶이 가장 행복한 삶입니다. 복음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요1:12). 그리고 하나님의 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고전3:21). 완벽히 삶이 치유되고 완전함으로 인도 받고 완전한 승리를 보장받은 것이며(마3:13-15), 영원한 문제를 해결 받는 것입니다(요5:24). 복음은 그 자체가 능력이기에 성도를 승리로 이끕니다(빌1:6). 이미 복음을 가진 여러분은 세상의 영적문제와 흑암세력을 이기기 위해 성령충만을 받으십시오.
복음을 위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본문 속에서 세 가지 비밀을 붙잡아야 합니다.
1.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이 우리 안에서 늘 터져 나와야 합니다.
(1) 다윗은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를 고백하였습니다(2-3절).
1) 우리의 과거는 다윗처럼 재앙의 현장 속에 있었음(2절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
2)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죄, 저주, 영적인 문제 속에 빠져 있음
3) 그 결과 고난이 오고, 우상숭배하며, 정신과 육체가 고통 받고, 결국 지옥에 가게 됨
4) 구원 받았다는 것은 영원히 사탄의 저주에서 벗어난 것을 말함(2절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2) 그리스도로 인해 구원 받은 사실을 늘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2. 말씀의 은혜를 입어야 합니다.
(1) 다윗은 영적인 귀가 열려 말씀을 들었으며 마음에 담았습니다(6-8절).
(2) 마음 중심에 말씀이 담길 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1) 말씀 인도 없이는 현장에서 세상 문화를 이길 수 없음
2) 말씀 붙잡은 자는 말씀이 성취되기까지 절대 망하지 않음(요셉, 바울)
3) 기도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라 언약 잡는 사람이 응답 받음
4) 기대 속에 강단 말씀을 받고 현장에서 성취를 누리는 것이 신앙생활임
(3) 구원의 은혜에 대해 감사하고 감격하는 만큼 말씀이 들려지고 깨달아집니다.
3. 삶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해야 합니다.
(1) 말씀으로 은혜 받게 되면 모든 삶에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납니다.
(2) 은혜 받는 사람은 지금의 현장을 놓치지 않습니다.
1) 최고의 준비를 할 기회는 지금임(목동으로 있을 때 기도와 찬양을 준비한 다윗)
2) 다윗은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함(12-13절, 16-17절)
3) 초대교회 성도들과 바울은 매 사건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함(행5:41, 빌1:12-20)
결론: 복음을 위한 삶이 가장 행복한 삶입니다. 자신이 처한 자리에서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을 가지고, 말씀의 은혜를 받으며,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때에 요셉과 다니엘처럼 노예나 포로로 있다 할지라도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며 소원입니다(단6:25-27). 하나님은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시고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도록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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