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다 부활시키라(신)
2009-04-12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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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축복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감사합니다. 초대교회가 핍박가운데서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예수 다시 사셨다는 사실입니다. 새롭게 인사하겠습니다. “예수 다시 사셨습니다” 특별히 이번 한 주간 모든 현장에 부활의 축복이 임하는 축복된 역사 있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제목을 「모든 것을 다 부활시키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생각고자 합니다. 이 세상에는 희망과 소망을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 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죽음과 두려움이라는 것입니다. 죽음과 두려움에 지배당하고 있는 이 세상에서 참된 기쁜 소식이 있다면, 바로 생명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죽음과 두려움에 잡혀 있는 우리 인생들에게 생명을 주기 위한 부활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부활입니다. 이번 한 주간 모든 걸음마다 생명의 역사가 풍성히 나타나는 축복된 역사가 있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롬3:23에 보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해서 그 죄의 값으로 오게 된 것이 사망, 죽음이 이 땅에 왔다 했습니다. 그리고 히2:14에 보면, 사망과 죽음의 권세 잡은 자가 있는데, 바로 마귀라고 말하면서 모든 인생들이 죽기를 무서워함으로 일생을 메여서 종노릇한다고 기록된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이 죽음의 역사. 그 어떤 세상의 종교로도 해결 할 수 없는 것이고, 모든 종교의 근본에는 두려움이 자리 잡혀 있습니다. 두려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작이 바로 종교의 시작인 것을 보게 됩니다.
이런 죽음과 두려움의 역사에 사로잡힌 현장에 저주와 재앙가운데 붙잡힌 현장입니다. 그래서 창3:1-6에 하나님을 떠난 인생에게 저주가 선언되었는데, 창3:16-20에 보면, 여자는 해산의 수고와 고통, 남자는 죽도록 고생하며 땀을 흘려야 되는데 땅은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 놓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눈물과 고통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인생이고 실컷 고생하고 살다가 고생하는 만큼 축복을 가져다주느냐? 또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말씀하는데, 땅이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낸다는 말은 계속되는 저주와 재앙이 우리 가운데 일어나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고생하다가 결국 허무하게 흙으로 돌아가야 되는 것이 인생인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원죄 저주아래 완전히 망하게 된 것이 인생입니다. 하나님을 떠나게 된 결과가 도저히 빠져 나올 수 없는 원죄 가운데, 완전히 망하게 된 것이 우리 인생의 모습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런 인생이 당한 모든 저주를 한꺼번에 끝낸 사건이 있습니다. 모든 원죄의 저주들을 한꺼번에 끝낸 사건이 바로 부활사건인 것입니다.
고전15:3-4에 보면,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느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서 우리에게 그리스도 되셨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계시고,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무슨 말입니까? 모든 것을 끝내버리셨다는 사실. 실패할 수밖에 없는 지옥권세, 사망권세, 사단의 권세를 완전히 끝내버리셨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고린도 전서에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이야기한 것을 보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은 우리의 생명을 위해서 부활하신 것입니다. 죽음이 지배하는 종교에 묶이지 아니하고 참된 생명이 지배하는 복음 속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것입니다.
모든 인생이 종교에 빠져서 죽음에 두려움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거기에 묶이지 않고, 생명의 종교인 참된 복음 속으로 들어와서 참된 축복을 누리며 살게 하기 위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루신 사건이 바로 부활의 사건이라는 사실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왔습니다만 죽음이 끝이 아니라 부활과 구원이 우리에게 끝이며, 생명이 우리에게 끝이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혹여나 여기 앉아 있는 분 가운데, 지난날 과거의 상처들, 실패들, 불행한 부분들, 저주들을 가지고 있습니까? 모든 문제 해결하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전한 발판삼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창세기 3장의 모든 저주를 완전히 끝내버린 것이 부활사건이기 때문에 그 부활의 역사를 붙잡고 믿게 될 때, 어떤 과거도, 그 어떤 상처도 나를 실패 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삶속에서 부활의 신앙가지고 모든 것을 다 부활시키는 축복된 역사가 체험될 것입니다. 이 축복을 누리는 역사들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두 가지로 말씀을 생각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모든 것을 다 부활시키기 위해서는 부활의 의미와 내용들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로 그 부활의 역사를 어떻게 체험할 것인가? 이 두 가지를 가지고 말씀에 인도 받기를 원합니다.
먼저, 벧전1:3에 보면“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무슨 말입니까? 부활사건은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그의 많은 긍휼대로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 부활 사건을 만드셨습니까? 하나님이 그의 많은 긍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우리가 새 생명 얻는 것과 거듭남의 축복을 누리는 것은, 바로 죽음에서 다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새 생명과 거듭남의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을 말씀하시면서 거듭난 사람이 가지게 되는 결과는 산 소망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4절에 보면,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하나님께서 그 많은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거듭나게 하시고 거듭난 백성들에게 산 소망을 주시는데, 썩지 않고 더럽히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하늘의 기업들을 이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루신 작업이 바로 부활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이 부활 사건이 사실적으로 체험될 때, 거기서 거듭남의 축복과 더불어 아무리 암혹한 현장에 있다 할지라도, 칠흑 같은 현장에 있다 할지라도, 소망이 있게 되는 것이고 산 소망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쇠하지 않고 썩지 않고, 더렵혀지지 않는, 영원한 하늘의 기업들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자가? 바로 부활의 생명 가진 자가 받게 될 축복입니다.
그렇다면, 부활의 의미와 역사를 살펴보기 전에, 먼저 기억할 것은, 왜 하나님께서 그토록 수 천년동안 약속하신 메시야. 그 부분에 대한 설명을 하고 계시느냐? 수많은 양들을 죽여가면서, 수많은 왕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을 보내시면서 수천 년 동안 설명하시고 약속하신 것이 메시야를 보내실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메시야를 보내시고 어떻게, 어째서 메시야를 보내실 것인가? 거기에 대한 설명이 구약전체의 내용입니다.
구약은 오실 메시아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고, 신약은 오신 메시아 곧 그리스도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왜 그토록 약속하신 부분들이 수 천년동안 메시야에 대한 부분인가? 다른 이유가 아닙니다. 일반인들이 알지 못하는 영적인 존재들 때문이라는 사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땅에 열심히 살아갑니다만, 알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상상외로 악한 사단과 마귀의 존재들을 알지 못하고 살아가요. 성경에 보면, 이 사단과 마귀로 말미암아 그의 부리는 악령들, 귀신들의 역사로 모든 문화들이 장악되어지고 있는 것을 성경을 통해 보아지게 됩니다.
다시 말해 그의 부리는 악령들, 귀신의 활동으로 인해 문화들이 장악되어져가고 있다는 사실. 이 사실을 일반인들이 모르고 있고, 심지어 교회 다니는 사람도 모르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 악한 사단이 인생을 멸망시키고 실패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운명이란 것을 가지고 멸망가운데로 끌고 가는 것이 사단과 마귀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에서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른 어떤 것에서도 알려주지 않는데, 창세기부터 요한 계시록까지 오직 성경에서만 인간을 멸망시키는 사단과 마귀 그리고 그들이 부리는 악령과 귀신의 역사를 통해 문화가 장악된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악한 사단의 존재를 모른다면, 신앙생활에 있어 영적인 싸움을 싸우지 못하고 힘을 얻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단과 마귀의 정체를 모르고 살아가요. 심지어 교회에서 조차도. 그 증거가 무엇이냐? 여러분, 귀신의 역사들이 결국 모든 현장을 장악하면서 무당들이 문화를 주도하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교회가 이 사실에 눈을 열지 못하니까 현장의 무당들이 오히려 문화들을 정복하고 주도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모든 것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축복을 주셨는데, 이 사실을 알지 못하니까 귀신과 악령에게 잡힌 자들이 모든 문화권을 주도해 나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실제로 현장의 문제는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사단과 마귀와 귀신의 문제입니다.
지난 목요일이죠. 일일 전도캠프를 나가기 위해 차를 타는데 문자가 왔어요. “목사님 메일을 확인해보십시오”라는 문자 메시지가 왔어요. 연락처는 기록되어 있는지 누구인지를 몰라 급히 답장은“지금 캠프 나가는 중이라 메일을 확인할 수 없고 다녀와서 확인하겠다”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캠프 마치고 나서 메일 글의 내용을 보니 젊은 총각이 보냈는데, 정신병원에서 오랫동안 격리되어있던 친구였습니다. 실제로 정신병동에 있으면서, 상태가 괜찮은 사람들은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한 사람은 폐쇄병동에 가둬놓습니다. 이 분은 폐쇄병동에 있으면서 한주에 한번 예배 참석하며 말씀 받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지금은 병원에서 나온 지 꽤 되어서 약도 끊게 되고, 사회적응도 하면서 태권도 사범시험도 치르게 되었다며 하나님의 복음의 능력에 대해 설명해놓았더라고요. “하나님이 나 같은 사람을 도와주기 위해 나를 먼저 이런 쪽으로 인도하신 것 같다”며 간증형식으로 기록해 놓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용한 것은, 자신이 어떻게 정신병동에 들어가게 되고 폐쇄병동에 들어가게 되었는지를 기록하면서 귀신이 들어와서 영적으로, 육신적으로, 정신적으로 고통 중에 있다가 어떻게 할 수 없어서 결국 가족들이 정신병동에 집어넣은 것입니다.
여러분 정신병원에 들어가서 수용되고 약을 복용한다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어렵습니다. 괜찮다가도 어느 날 다시 병원에 들어오고 반복하게 됩니다. 이 분은 이미 약을 끊은 지가 3년 되었고 교회를 섬기고 있는데, 하나님의 은혜이며, 복음의 역사를 설명하면서 같이 하나님께 영광 돌렸습니다.
무엇을 말씀드리고 싶으냐? 상상외로 멀쩡한 것 같지만 많은 사람들이 사단과 마귀에게 시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엔 괜찮은 것 같지만 아닙니다. 이 사실에 대한 영적인 싸움을 싸울 수 있는 비밀을 모르고 또, 이 사실에 대한 영적인 싸움을 싸울 수 있는 비밀을 모르니 교회 다니면서도 실패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악한 사단마귀가 인생의 운명을 가지고 끝까지, 삼사 대(代)가 망하도록 대를 이어 실패하도록 만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어떻게 저 정도로 완전히 망했는가?”를 보게 될 정도입니다. 다른 이유가 아닙니다. 악한 사단의 역사에 걸려들어서 당대 뿐 아니라 자손들도 같은 문제로 실패하게 하는데, 이 모든 것은 바로 사단과 마귀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복음을 말씀하시면서 주신 것은 창3:15에“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그냥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말씀 주셨는데, 메시아이신 그리스도가 오셔서 뱀의 머리 곧 사단의 권세를 꺾을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왜 처음부터 사단 이야기 했습니까? 이것이 실제로 인생의 처음부터 붙잡혀 있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요일3:8에 보면,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죄를 범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어마 어마한 사건을 해결해야 하기에 하나님은 성경에 미리 약속하셨습니다. 메시야, 그리스도를 보내시사 모든 죄와 사단 권세를 깨트리시겠다 미리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 그 증거로 죽음으로서 대신하고 그리스도라는 증거로 부활하게 될 것이란 것이 중요한 약속입니다. 주된 약속이 이 땅의 모든 문제가 사단과 마귀로 말미암았기에 사단권세 끝내기 위해 누군가는 죽어야 하고 그리스도라는 증거로 반드시 부활하셔야 하며, 살아나셔야 한다는 증거가 성경전체의 약속입니다.
오늘 고전15:3-4에 보면,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성경대로 장사지낸바 되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이것은 보통 말이 아닙니다. 우리 죄를 위해 누군가는 죽어야 한다는 말이죠. 장사지낸바 되었다가 죽음에서 끝나지 않고 분명히 그리스도란 증거로 다시 살아나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 부활 사건은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만드신 사건입니다.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주신 사건이 바로 부활사건입니다.
다시 한 번 벧전1:3을 제가 읽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누가 하신 것입니까?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 많은 긍휼을 따라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산 소망 입게 하시기 위해 다시 살리신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부활은 하나님이 영원한 생명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여러분, 다른 종교에는 부활이 없습니다. 기독교에만 부활이 있습니다. 세상 모든 종교는 착하게 살고 바르게 살고 도덕적, 윤리적인 인간 만드는 것이 기준입니다. 그렇게 살다가 죽어서 끝난다고 생각하는 것이 종교입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는 생명 그 자체와 부활을 믿는 부활의 종교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이 다른 종교에는 없는 부활사건을 만들어 다른 종교와 차별시키느냐? 그 차원이 아닙니다. 부활에 대해 가면 갈수록 믿지도 않는데 굳이 설명하시려 하시느냐? 이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 이유는 인간의 근본문제, 창세기 3장 문제는 예수님이 대신 값을 지불하시지 않고 해결하시지 않으면 안되는 문제이기에 하나님이 부활사건을 만드시고 그렇게 하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왜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까?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으면 먼저 저와 여러분의 믿음이 헛된 것이 되고요,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죽음이 영원한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고,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죄와 저주와 재앙을 해결 받을 길이 없기에 하나님이 부활 사건을 만드시고 예수 그리스도가 죽으셔서 부활하셔야 하신 것입니다. 바로 이 축복이 저와 여러분이 받은 축복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하나님의 완벽한 계획이 무엇이냐? 부활의 계획입니다.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하나님의 완벽한 계획이 부활의 계획입니다. 모든 죄와 저주와 사망권세에서 건져내신 결정적인 증거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리스도란 증거로, 하나님이시라는 증거로 부활하신 것입니다. 이 부활사건은 하나님께서 모든 문제 해결했다는 완벽한 증거로 하나님이 만드신 것입니다 이 축복이 바로 저와 여러분에게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말미암아.
여러분, 부활에 대해 이런 저런 말들을 많이 합니다. 믿어지는 사람들, 믿어지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사에 보면 역사 속에 어떻게 하든지 부활의 역사를 막으려는 사단의 공격을 보게 됩니다. 교회사 속에서도 어떻게 하든지 부활의 역사를 안 믿으려는 것을 보게 되는데, 메시지 가운데도 들었습니다만, 도난설, 기절설, 환상설 등을 만들어 내서 어떻게든 안 믿게 하려는 사단의 장난입니다. 이것이 교회사 속에서 계속 진행되어 온 것을 보게 됩니다. 부활에 대해 말하면 “어떻게 21C를 살아가는 사람이 부활을 믿는가?” 고작 믿는 것이 정신적인 부활로 내세우는 것을 보게 됩니다. 실제로 얼마만큼 사단이 이 부활의 역사를 막고 있는지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실, 저는 부활주일 메시지를 준비하기 위해, 목회자 부부 수련회에 가서도 말씀을 받고 쉬는 시간임에도 평안하지 않았습니다. “부활주일인데 부활의 메시지를 해야 할 것인데, 어떤 메시지를 할 것인가?” 너무 힘들었어요. 쉬는 시간에 부부들과 보내는 시간에도 마음에 평안이 없고 쉼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제게 부활의 사실이 사실로 잡혀진다면, 제게 부활의 역사를 누리고 있다면, 부활의 메시지를 증거하는 것은 쉬운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게 안 되더라고요. 진짜 어렵게 메시지가 잡혀졌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주일날 저녁부터 다음 주일의 본문을 읽어가며 기도하며 준비하는데, 이번주간에는 금요일 저녁까지도 “어떻게, 어떤 맥락으로, 어떤 주제를 정할 것인가?”가 잡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힘든 가운데 제가 무엇을 느꼈냐 하면, “내게 부활의 사실이 사실로 안 누려지고 있구나! 그러니 메시지 준비가 이렇게 힘든 것이 아닌가?” 또 한 가지는, “어떻게든지 악한 사단은 부활의 역사만 믿으면 끝나기에 이 부활의 역사를 못 믿도록 만드는구나 그래서 성령의 충만함의 비밀 속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구나” 부활의 사건은 안 믿어지게 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사단이 막습니다. 이것만 믿으면 사단이 끝나버립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부활의 역사를 사단이 공격한 것을 보게 됩니다. 부활의 사건에 대해 믿어진다는 사람과 믿어지지 않는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믿어지는 것도 당연한 것이고, 믿어지지 않는 것도 당연한 것입니다. 둘 다 맞는 말입니다. 믿어진다는 말은, 정말 그리스도의 능력과 그리스도의 비밀이 어떤 것인 줄 안다면 부활은 당연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구원자로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들에 대해 말씀하고 있는데, 우리의 구원자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단권세를 이기신 권세가진 자여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의 몸을 입어야 하고 죄가 없어야 하며, 죄를 위해 죽어야 하며, 죽음에서 반드시 다시 살아나야 구원자로서의 자격입니다. 그리스도로서의 자격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라는 이 비밀과 능력이 깨달아지면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것은 당연한 말이죠. 문제는 부활이 안 믿어진다는 말은, 그리스도의 능력과 그 비밀을 모르고 못 누리고 있다는 말이죠. 그리고 부활이 안 믿어진다는 말은 당연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그 어느 누구도 부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역사 속에서 인간이 부활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믿든 안 믿든 성령으로 함께 계십니다. 분명히 주님께서는 죽음과 사망의 권세, 흑암의 권세를 깨트리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 증거로 지금 성령으로 저와 여러분이 함께하십니다.
여러분, 성경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산 소망이 주어져있습니다. 우리 또한 부활하게 될 것을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믿는 자에게는 동일한 부활의 축복을 주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사26:19입니다.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그들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누운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들을 내놓으리로다”할렐루야! 땅이 죽은 자를 내어 놓게 되는 것이 부활의 역사입니다.
어떤 분이 이런 말을 해요. “나는 죽으면 매장하면 했지, 화장은 하지 않을 것이다” 하는데 왜 인지 물었더니 하는 대답이, “불에 들어가면 뜨겁지 않는가?”였습니다. 여러분, 죽은 사람이 뜨거운지 안 뜨거운지 어떻게 압니까? 화장하나 매장하나 괜찮습니다. 오늘 여기에 보면, “티끌에 누운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티끌에 누운 자들이 모두 다 깨어나는, 그와 더불어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들을 내어 놓게 되어 있습니다. 분명히 죽은 자를 내어놓게 되어 있습니다. 부활의 역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엡5:14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아멘.
여기에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 일어나라” 했다.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부활의 첫 열매되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진 축복이, 이 땅에 발을 디디고 살지만, 이 땅이 전부가 아닙니다.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과 동일하게 완전하고 신령한 모습으로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이 부활의 산 소망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전서 4장에 보면, 주님이 이 땅에 심판주로, 만왕의 왕으로 오실 때들의 모습을 말씀하고 있는데, 천사장의 나팔소리와 함께 주님이 이 땅에 재림하실 때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살아남아 있는 자들도 함께 공중에 끌어올려져서 주와 함께 영원히 주를 섬기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부활의 산 소망이 있습니다. 이 소망이 있기에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그 어떤 어려움과 문제도 문제 되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마22:32입니다. 부활이 없다고 하는 사두개인들의 논쟁 앞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죠.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할렐루야!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말씀합니까? 이들이 죽었기에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죽은 것이 아니라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라 말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참된 소망은 부활의 소망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모든 저주인 죽음의 권세를 이기는 것은 부활의 역사입니다. 그 부활의 역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저와 여러분에게 주어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축복을 누리는 여러분 되길 축원합니다.
두 번째입니다. 이 부활의 주님을 어떻게 체험할 것인가? 부활의 결정적인 사건은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지금 성령으로 믿는 자들과 함께 하시는 사건입니다. 이것이 부활의 결정적인 사건입니다.
주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너희와 영원토록 함께 있겠다” 많은 분들이 신앙생활 하면서도 함께하시는 이 성령의 역사를 알지 못하기에 어려움을 당하고 실패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분명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약속이“또 다른 보혜사를 주사 너희와 영원토록 함께 있겠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나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다른 소리하신 것이 아니라, 행1:8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 받고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무슨 말씀입니까? 성령의 내주, 인도, 충만함 속에 들어가는 것이 부활의 주님을 체험하는 것이란 말씀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성령의 내주를 체험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것이 맞는다면 나를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하고 내 동기를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하고 내 계획과 심지어 내가 그렇게 원하는 기도제목 조차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진짜 성령으로 나와 함께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이 사실 이라면, 하나님이 역사하실 수 있도록 나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령의 내주의 체험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다 버리는 것입니다. 왜입니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나와 함께 하지 않는다면 나를 잡아야 하고 내 생각과 내 계획대로 살아야 하지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내 안에 나와 함께하시는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 모든 것을 내려놓는 만큼 성령의 내주를 체험하게 됩니다.
바울이 로마를 복음화 한 비밀 중 비밀은 갈2:20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완전히 자기 자신을 내려놓은 것입니다. 그 역사 속에 바울은 로마를 복음화 하는 축복된 사실을 누린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 안에 동기들, 우리 안의 생각들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저는 이번 주에 말씀을 포럼 하는 가운데, 저 자신도 놀랐습니다. 같이 말씀을 받았는데, 이 사람이 받은 것과 저의 생각이 달라요. 저도 모르게“아, 내안에 너무 동기가 많구나” 이 사실을 보았어요. 같은 말씀임에도 상대편은 전혀 그런 말씀으로 안 받아졌는데, 내게는 다르게 잡히면서 “내 안에 너무 다른 생각들과 동기들이 많이 자리 잡아 있구나” 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 안에 동기들로 인해 하나님이 함께 계시고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는 사실을 누리지 못하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전3:16에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진짜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면,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내 것 내려놓으시길 바랍니다. 이것이 성령의 내주를 체험하는 방법입니다.
두 번째로, 어떻게 성령의 인도를 체험하느냐? 세계복음화의 최고 축복된 응답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인도를 체험해야 하는데, 어떻게 체험하느냐? 여러분, 모든 것을 시작하고 진행하고 결론 맺을 때, 이것이 정말 하나님의 뜻이 맞는지 안 맞는지 고민해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성령인도 받는 방법입니다.
고후7:10에 보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세상 염려, 근심은 우리에게 사망을 가져 오지만, 그리스도 안에서의 고민은 생명과 구원을 가져 온다 했습니다. 문제와 사건 당할 때 그리스도 안에서 고민하세요. 그것이 성령인도 받는 길과 체험하는 길입니다. “정말 이 일을 시작하려는데, 하나님의 뜻이 맞느냐 안 맞느냐? 하나님의 인도가 맞느냐 안 맞느냐?” 이 일로 인한 결과를 놓고 결과를 생각하며 정말 하나님의 뜻이 맞는지를 무시기도 속에서 고민해보세요. 이것이 성령인도를 체험하는 길입니다.
세 번째로 성령의 충만함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성령의 충만함 속으로 들어가느냐? 다른 것이 아닙니다. 내 힘으로는 안 됩니다. 어떻게 세계를 복음화 합니까? 내 능력으로 안 됩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함의 시작은 다른 것이 아니라 나의 능력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인정하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만을 붙잡는 것을 성령 충만함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성령의 내주, 인도, 충만함 속에 들어갈 때, 이유 있는 인생이 되고, 성령의 내주, 인도, 충만함 속에 들어갈 때, 이유 있는 전도도 일어나고 말씀의 성취도 일어나며 영적인 역사와, 치유의 역사 일어납니다. 바울과 베드로를 보세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기 전에 만난 베드로, 그 이후의 베드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기 전의 바울의 사역 만난 이후의 베드로의 사역에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성령의 내주, 인도, 충만을 누리게 될 때는 모든 것이 바뀌어 진다는 사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살아갑니다. 그것도 중요합니다만, 그러나 그 배후에 역사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놓치고 살아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의 도움도 필요합니다만 정말 우리 배후에 역사하는 성령의 역사를 안다면, 모든 것 달라질 것입니다. 사업함에 있어서 사람을 의지하는 것도 중요합니다만, 믿는 자들 배후에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것과 모든 것을 인도해나가시는 사실을 안다면 달라지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어떻게 체험합니까? 성령의 내주, 인도, 역사하심을 체험하는 것이 바로 부활의 주님을 체험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모든 것을 다 부활시키라」 오늘 제목입니다.
여러분, 가정을 부활시키시고, 자녀들을 부활시키시고, 직장도, 건강도 부활시키시길 바랍니다. 부활시킬 수 있도록 하나님이 주신 선물은 성령의 내주, 인도, 충만함입니다. 죽음이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 생명이 지배하는 하나님의 역사 속으로 인도하라! 이것이 모든 것을 다 부활시키라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가정에, 건강에, 죽음이 지배하는데 생명이 지배하는 역사로 만들라는 것이 모든 것을 부활시키라는 것입니다. 이 일을 우리 힘으로 할 수 없기에 지금 성령으로 우리 안에 내주, 인도, 역사하시겠다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 약속 붙잡고 여러분의 모든 삶을 부활시키는 능력을 입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고전15:55~58에 보면, 하나님의 능력을 가지고 사는 전도자와 성도들에게 답이 되는 귀중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아무도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를 막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나를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는 환경도, 건강도, 질병도 이길 수 없어요. 그러나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우리에게 참된 승리의 축복을 주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언약 붙잡고 이번 한 주간 여러분이 가는 모든 현장을 변화시키는, 다시 말해 모든 현장을 부활시키는 사실들을 체험하는 한 주간되어지길 축원합니다.
서론: 세상에서 희망과 소망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지만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죽음과 두려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나님께서 죽음과 두려움에 붙잡혀 있는 인생들에게 참된 기쁜 소식인 생명을 주시기 위해 이루신 역사입니다. 성경은 모든 인생이 죄를 범했으며(롬3:23), 그 결과 죽음에 이르렀다고 말합니다(롬6:23). 그리고 이 죽음의 권세를 잡은 자가 마귀이며, 죽기를 무서워하는 인생이 마귀에게 매여 종노릇한다고 지적합니다(히2:14-15). 이렇듯 죽음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종교가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 떠나 죽음과 두려움에 사로잡힌 인생에게 저주가 선언되었고(창3:16-20), 고통 가운데 살아가며, 계속해서 저주와 재앙이 일어납니다. 결국 죽어서 허망하게 흙으로 돌아갑니다. 인생은 원죄를 해결하지 못해 완전히 망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저주를 한꺼번에 끝낸 사건이 부활의 사건입니다(고전15:3-4, 55). 성도에게는 죽음이 끝이 아니라 부활과 구원과 생명이 끝입니다. 그래서 모든 삶에서 부활의 신앙을 가지고 세상을 다 살려야 할 것입니다.
1. 부활의 의미와 내용
(1) 본문에 나타난 부활 사건
1) 하나님이 원죄에 빠진 인생을 긍휼히 여기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하게 하셨음(3절)
2) 거듭나는 복(새생명)은 죽음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게 됨(3절)
3) 거듭난 자들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썩지 않는 영원한 하늘의 기업을 누리게 됨(4절)
(2) 왜 수천 년간 메시아를 보내시겠다는 말씀을 해오셨는가?
1) 운명을 통해 인생을 멸망시키는 영적 존재인 사탄(마귀)에 대해 알리시기 위해서임
① 성도가 악한 사탄의 존재를 몰라서 세상 문화의 주도권을 귀신 들린 자들에게 빼앗김
② 영적싸움을 이해하지 못해서 교회 다니면서도 실패함
2) 사탄의 권세를 꺾기 위해 메시아(그리스도)를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심(창3:15, 요일3:8)
(3) 부활에 관한 내용: “부활은 인간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작품”
1) 인간의 근본문제는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죗값을 죽음으로 지불하시고 부활하셔야만 해결됨
2) 사탄은 부활의 역사를 믿지 못하도록 막고 있음(도난설, 기절설, 환상설)
3) 부활은 구원자의 자격조건(사단권세를 이긴 자라는 증거로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살아나야 함)
4) 모든 성도는 그리스도의 부활처럼 완전하고 신령한 모습으로 부활하게 될 것임(사26:19, 엡5:14, 살전4:13-17, 마22:32)
2. 어떻게 부활의 역사를 체험할 것인가?
(1) 부활의 결정적 사건은 성령으로 믿는 자들과 지금 함께 계신 것입니다.
1) 요14:16(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2) 행1:8(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2) 그래서 성령의 내주․인도․충만함을 체험하면 됩니다.
1) 나의 생각, 계획, 동기는 물론, 기도제목조차 내려놓아야 함(갈2:20 → 성령 내주)
2) 모든 일에 대해 시작, 진행, 결론 내릴 때 하나님의 뜻이 맞는지 고민해야 함(고후7:10 → 성령인도)
3) 내 능력으로 안 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된다는 사실을 붙잡아야 함(성령충만)
결론: 부활의 능력을 체험하셔서 모든 것을 다 부활시키십시오. 가정과 자녀와 직장과 건강도 부활시킬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 성령의 내주․인도․충만함입니다. 죽음이 지배하는 현장을 생명이 지배하는 현장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이 일을 위해 부활하신 주님께서 지금 성령으로 우리 안에 내주하시고 인도하시고 역사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참된 승리의 복을 주시기로 하셨습니다(고전15:55-58).
오늘 제목을 「모든 것을 다 부활시키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생각고자 합니다. 이 세상에는 희망과 소망을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 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죽음과 두려움이라는 것입니다. 죽음과 두려움에 지배당하고 있는 이 세상에서 참된 기쁜 소식이 있다면, 바로 생명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죽음과 두려움에 잡혀 있는 우리 인생들에게 생명을 주기 위한 부활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부활입니다. 이번 한 주간 모든 걸음마다 생명의 역사가 풍성히 나타나는 축복된 역사가 있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롬3:23에 보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해서 그 죄의 값으로 오게 된 것이 사망, 죽음이 이 땅에 왔다 했습니다. 그리고 히2:14에 보면, 사망과 죽음의 권세 잡은 자가 있는데, 바로 마귀라고 말하면서 모든 인생들이 죽기를 무서워함으로 일생을 메여서 종노릇한다고 기록된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이 죽음의 역사. 그 어떤 세상의 종교로도 해결 할 수 없는 것이고, 모든 종교의 근본에는 두려움이 자리 잡혀 있습니다. 두려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작이 바로 종교의 시작인 것을 보게 됩니다.
이런 죽음과 두려움의 역사에 사로잡힌 현장에 저주와 재앙가운데 붙잡힌 현장입니다. 그래서 창3:1-6에 하나님을 떠난 인생에게 저주가 선언되었는데, 창3:16-20에 보면, 여자는 해산의 수고와 고통, 남자는 죽도록 고생하며 땀을 흘려야 되는데 땅은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 놓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눈물과 고통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인생이고 실컷 고생하고 살다가 고생하는 만큼 축복을 가져다주느냐? 또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말씀하는데, 땅이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낸다는 말은 계속되는 저주와 재앙이 우리 가운데 일어나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고생하다가 결국 허무하게 흙으로 돌아가야 되는 것이 인생인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원죄 저주아래 완전히 망하게 된 것이 인생입니다. 하나님을 떠나게 된 결과가 도저히 빠져 나올 수 없는 원죄 가운데, 완전히 망하게 된 것이 우리 인생의 모습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런 인생이 당한 모든 저주를 한꺼번에 끝낸 사건이 있습니다. 모든 원죄의 저주들을 한꺼번에 끝낸 사건이 바로 부활사건인 것입니다.
고전15:3-4에 보면,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느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서 우리에게 그리스도 되셨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계시고,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무슨 말입니까? 모든 것을 끝내버리셨다는 사실. 실패할 수밖에 없는 지옥권세, 사망권세, 사단의 권세를 완전히 끝내버리셨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고린도 전서에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이야기한 것을 보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은 우리의 생명을 위해서 부활하신 것입니다. 죽음이 지배하는 종교에 묶이지 아니하고 참된 생명이 지배하는 복음 속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것입니다.
모든 인생이 종교에 빠져서 죽음에 두려움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거기에 묶이지 않고, 생명의 종교인 참된 복음 속으로 들어와서 참된 축복을 누리며 살게 하기 위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루신 사건이 바로 부활의 사건이라는 사실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왔습니다만 죽음이 끝이 아니라 부활과 구원이 우리에게 끝이며, 생명이 우리에게 끝이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혹여나 여기 앉아 있는 분 가운데, 지난날 과거의 상처들, 실패들, 불행한 부분들, 저주들을 가지고 있습니까? 모든 문제 해결하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전한 발판삼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창세기 3장의 모든 저주를 완전히 끝내버린 것이 부활사건이기 때문에 그 부활의 역사를 붙잡고 믿게 될 때, 어떤 과거도, 그 어떤 상처도 나를 실패 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삶속에서 부활의 신앙가지고 모든 것을 다 부활시키는 축복된 역사가 체험될 것입니다. 이 축복을 누리는 역사들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두 가지로 말씀을 생각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모든 것을 다 부활시키기 위해서는 부활의 의미와 내용들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로 그 부활의 역사를 어떻게 체험할 것인가? 이 두 가지를 가지고 말씀에 인도 받기를 원합니다.
먼저, 벧전1:3에 보면“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무슨 말입니까? 부활사건은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그의 많은 긍휼대로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 부활 사건을 만드셨습니까? 하나님이 그의 많은 긍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우리가 새 생명 얻는 것과 거듭남의 축복을 누리는 것은, 바로 죽음에서 다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새 생명과 거듭남의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을 말씀하시면서 거듭난 사람이 가지게 되는 결과는 산 소망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4절에 보면,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하나님께서 그 많은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거듭나게 하시고 거듭난 백성들에게 산 소망을 주시는데, 썩지 않고 더럽히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하늘의 기업들을 이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루신 작업이 바로 부활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이 부활 사건이 사실적으로 체험될 때, 거기서 거듭남의 축복과 더불어 아무리 암혹한 현장에 있다 할지라도, 칠흑 같은 현장에 있다 할지라도, 소망이 있게 되는 것이고 산 소망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쇠하지 않고 썩지 않고, 더렵혀지지 않는, 영원한 하늘의 기업들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자가? 바로 부활의 생명 가진 자가 받게 될 축복입니다.
그렇다면, 부활의 의미와 역사를 살펴보기 전에, 먼저 기억할 것은, 왜 하나님께서 그토록 수 천년동안 약속하신 메시야. 그 부분에 대한 설명을 하고 계시느냐? 수많은 양들을 죽여가면서, 수많은 왕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을 보내시면서 수천 년 동안 설명하시고 약속하신 것이 메시야를 보내실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메시야를 보내시고 어떻게, 어째서 메시야를 보내실 것인가? 거기에 대한 설명이 구약전체의 내용입니다.
구약은 오실 메시아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고, 신약은 오신 메시아 곧 그리스도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왜 그토록 약속하신 부분들이 수 천년동안 메시야에 대한 부분인가? 다른 이유가 아닙니다. 일반인들이 알지 못하는 영적인 존재들 때문이라는 사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땅에 열심히 살아갑니다만, 알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상상외로 악한 사단과 마귀의 존재들을 알지 못하고 살아가요. 성경에 보면, 이 사단과 마귀로 말미암아 그의 부리는 악령들, 귀신들의 역사로 모든 문화들이 장악되어지고 있는 것을 성경을 통해 보아지게 됩니다.
다시 말해 그의 부리는 악령들, 귀신의 활동으로 인해 문화들이 장악되어져가고 있다는 사실. 이 사실을 일반인들이 모르고 있고, 심지어 교회 다니는 사람도 모르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 악한 사단이 인생을 멸망시키고 실패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운명이란 것을 가지고 멸망가운데로 끌고 가는 것이 사단과 마귀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에서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른 어떤 것에서도 알려주지 않는데, 창세기부터 요한 계시록까지 오직 성경에서만 인간을 멸망시키는 사단과 마귀 그리고 그들이 부리는 악령과 귀신의 역사를 통해 문화가 장악된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악한 사단의 존재를 모른다면, 신앙생활에 있어 영적인 싸움을 싸우지 못하고 힘을 얻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단과 마귀의 정체를 모르고 살아가요. 심지어 교회에서 조차도. 그 증거가 무엇이냐? 여러분, 귀신의 역사들이 결국 모든 현장을 장악하면서 무당들이 문화를 주도하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교회가 이 사실에 눈을 열지 못하니까 현장의 무당들이 오히려 문화들을 정복하고 주도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모든 것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축복을 주셨는데, 이 사실을 알지 못하니까 귀신과 악령에게 잡힌 자들이 모든 문화권을 주도해 나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실제로 현장의 문제는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사단과 마귀와 귀신의 문제입니다.
지난 목요일이죠. 일일 전도캠프를 나가기 위해 차를 타는데 문자가 왔어요. “목사님 메일을 확인해보십시오”라는 문자 메시지가 왔어요. 연락처는 기록되어 있는지 누구인지를 몰라 급히 답장은“지금 캠프 나가는 중이라 메일을 확인할 수 없고 다녀와서 확인하겠다”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캠프 마치고 나서 메일 글의 내용을 보니 젊은 총각이 보냈는데, 정신병원에서 오랫동안 격리되어있던 친구였습니다. 실제로 정신병동에 있으면서, 상태가 괜찮은 사람들은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한 사람은 폐쇄병동에 가둬놓습니다. 이 분은 폐쇄병동에 있으면서 한주에 한번 예배 참석하며 말씀 받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지금은 병원에서 나온 지 꽤 되어서 약도 끊게 되고, 사회적응도 하면서 태권도 사범시험도 치르게 되었다며 하나님의 복음의 능력에 대해 설명해놓았더라고요. “하나님이 나 같은 사람을 도와주기 위해 나를 먼저 이런 쪽으로 인도하신 것 같다”며 간증형식으로 기록해 놓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용한 것은, 자신이 어떻게 정신병동에 들어가게 되고 폐쇄병동에 들어가게 되었는지를 기록하면서 귀신이 들어와서 영적으로, 육신적으로, 정신적으로 고통 중에 있다가 어떻게 할 수 없어서 결국 가족들이 정신병동에 집어넣은 것입니다.
여러분 정신병원에 들어가서 수용되고 약을 복용한다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어렵습니다. 괜찮다가도 어느 날 다시 병원에 들어오고 반복하게 됩니다. 이 분은 이미 약을 끊은 지가 3년 되었고 교회를 섬기고 있는데, 하나님의 은혜이며, 복음의 역사를 설명하면서 같이 하나님께 영광 돌렸습니다.
무엇을 말씀드리고 싶으냐? 상상외로 멀쩡한 것 같지만 많은 사람들이 사단과 마귀에게 시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엔 괜찮은 것 같지만 아닙니다. 이 사실에 대한 영적인 싸움을 싸울 수 있는 비밀을 모르고 또, 이 사실에 대한 영적인 싸움을 싸울 수 있는 비밀을 모르니 교회 다니면서도 실패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악한 사단마귀가 인생의 운명을 가지고 끝까지, 삼사 대(代)가 망하도록 대를 이어 실패하도록 만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어떻게 저 정도로 완전히 망했는가?”를 보게 될 정도입니다. 다른 이유가 아닙니다. 악한 사단의 역사에 걸려들어서 당대 뿐 아니라 자손들도 같은 문제로 실패하게 하는데, 이 모든 것은 바로 사단과 마귀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복음을 말씀하시면서 주신 것은 창3:15에“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그냥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말씀 주셨는데, 메시아이신 그리스도가 오셔서 뱀의 머리 곧 사단의 권세를 꺾을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왜 처음부터 사단 이야기 했습니까? 이것이 실제로 인생의 처음부터 붙잡혀 있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요일3:8에 보면,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죄를 범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어마 어마한 사건을 해결해야 하기에 하나님은 성경에 미리 약속하셨습니다. 메시야, 그리스도를 보내시사 모든 죄와 사단 권세를 깨트리시겠다 미리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 그 증거로 죽음으로서 대신하고 그리스도라는 증거로 부활하게 될 것이란 것이 중요한 약속입니다. 주된 약속이 이 땅의 모든 문제가 사단과 마귀로 말미암았기에 사단권세 끝내기 위해 누군가는 죽어야 하고 그리스도라는 증거로 반드시 부활하셔야 하며, 살아나셔야 한다는 증거가 성경전체의 약속입니다.
오늘 고전15:3-4에 보면,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성경대로 장사지낸바 되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이것은 보통 말이 아닙니다. 우리 죄를 위해 누군가는 죽어야 한다는 말이죠. 장사지낸바 되었다가 죽음에서 끝나지 않고 분명히 그리스도란 증거로 다시 살아나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 부활 사건은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만드신 사건입니다.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주신 사건이 바로 부활사건입니다.
다시 한 번 벧전1:3을 제가 읽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누가 하신 것입니까?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 많은 긍휼을 따라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산 소망 입게 하시기 위해 다시 살리신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부활은 하나님이 영원한 생명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여러분, 다른 종교에는 부활이 없습니다. 기독교에만 부활이 있습니다. 세상 모든 종교는 착하게 살고 바르게 살고 도덕적, 윤리적인 인간 만드는 것이 기준입니다. 그렇게 살다가 죽어서 끝난다고 생각하는 것이 종교입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는 생명 그 자체와 부활을 믿는 부활의 종교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이 다른 종교에는 없는 부활사건을 만들어 다른 종교와 차별시키느냐? 그 차원이 아닙니다. 부활에 대해 가면 갈수록 믿지도 않는데 굳이 설명하시려 하시느냐? 이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 이유는 인간의 근본문제, 창세기 3장 문제는 예수님이 대신 값을 지불하시지 않고 해결하시지 않으면 안되는 문제이기에 하나님이 부활사건을 만드시고 그렇게 하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왜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까?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으면 먼저 저와 여러분의 믿음이 헛된 것이 되고요,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죽음이 영원한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고,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죄와 저주와 재앙을 해결 받을 길이 없기에 하나님이 부활 사건을 만드시고 예수 그리스도가 죽으셔서 부활하셔야 하신 것입니다. 바로 이 축복이 저와 여러분이 받은 축복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하나님의 완벽한 계획이 무엇이냐? 부활의 계획입니다.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하나님의 완벽한 계획이 부활의 계획입니다. 모든 죄와 저주와 사망권세에서 건져내신 결정적인 증거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리스도란 증거로, 하나님이시라는 증거로 부활하신 것입니다. 이 부활사건은 하나님께서 모든 문제 해결했다는 완벽한 증거로 하나님이 만드신 것입니다 이 축복이 바로 저와 여러분에게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말미암아.
여러분, 부활에 대해 이런 저런 말들을 많이 합니다. 믿어지는 사람들, 믿어지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사에 보면 역사 속에 어떻게 하든지 부활의 역사를 막으려는 사단의 공격을 보게 됩니다. 교회사 속에서도 어떻게 하든지 부활의 역사를 안 믿으려는 것을 보게 되는데, 메시지 가운데도 들었습니다만, 도난설, 기절설, 환상설 등을 만들어 내서 어떻게든 안 믿게 하려는 사단의 장난입니다. 이것이 교회사 속에서 계속 진행되어 온 것을 보게 됩니다. 부활에 대해 말하면 “어떻게 21C를 살아가는 사람이 부활을 믿는가?” 고작 믿는 것이 정신적인 부활로 내세우는 것을 보게 됩니다. 실제로 얼마만큼 사단이 이 부활의 역사를 막고 있는지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실, 저는 부활주일 메시지를 준비하기 위해, 목회자 부부 수련회에 가서도 말씀을 받고 쉬는 시간임에도 평안하지 않았습니다. “부활주일인데 부활의 메시지를 해야 할 것인데, 어떤 메시지를 할 것인가?” 너무 힘들었어요. 쉬는 시간에 부부들과 보내는 시간에도 마음에 평안이 없고 쉼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제게 부활의 사실이 사실로 잡혀진다면, 제게 부활의 역사를 누리고 있다면, 부활의 메시지를 증거하는 것은 쉬운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게 안 되더라고요. 진짜 어렵게 메시지가 잡혀졌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주일날 저녁부터 다음 주일의 본문을 읽어가며 기도하며 준비하는데, 이번주간에는 금요일 저녁까지도 “어떻게, 어떤 맥락으로, 어떤 주제를 정할 것인가?”가 잡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힘든 가운데 제가 무엇을 느꼈냐 하면, “내게 부활의 사실이 사실로 안 누려지고 있구나! 그러니 메시지 준비가 이렇게 힘든 것이 아닌가?” 또 한 가지는, “어떻게든지 악한 사단은 부활의 역사만 믿으면 끝나기에 이 부활의 역사를 못 믿도록 만드는구나 그래서 성령의 충만함의 비밀 속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구나” 부활의 사건은 안 믿어지게 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사단이 막습니다. 이것만 믿으면 사단이 끝나버립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부활의 역사를 사단이 공격한 것을 보게 됩니다. 부활의 사건에 대해 믿어진다는 사람과 믿어지지 않는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믿어지는 것도 당연한 것이고, 믿어지지 않는 것도 당연한 것입니다. 둘 다 맞는 말입니다. 믿어진다는 말은, 정말 그리스도의 능력과 그리스도의 비밀이 어떤 것인 줄 안다면 부활은 당연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구원자로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들에 대해 말씀하고 있는데, 우리의 구원자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단권세를 이기신 권세가진 자여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의 몸을 입어야 하고 죄가 없어야 하며, 죄를 위해 죽어야 하며, 죽음에서 반드시 다시 살아나야 구원자로서의 자격입니다. 그리스도로서의 자격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라는 이 비밀과 능력이 깨달아지면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것은 당연한 말이죠. 문제는 부활이 안 믿어진다는 말은, 그리스도의 능력과 그 비밀을 모르고 못 누리고 있다는 말이죠. 그리고 부활이 안 믿어진다는 말은 당연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그 어느 누구도 부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역사 속에서 인간이 부활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믿든 안 믿든 성령으로 함께 계십니다. 분명히 주님께서는 죽음과 사망의 권세, 흑암의 권세를 깨트리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 증거로 지금 성령으로 저와 여러분이 함께하십니다.
여러분, 성경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산 소망이 주어져있습니다. 우리 또한 부활하게 될 것을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믿는 자에게는 동일한 부활의 축복을 주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사26:19입니다.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그들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누운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들을 내놓으리로다”할렐루야! 땅이 죽은 자를 내어 놓게 되는 것이 부활의 역사입니다.
어떤 분이 이런 말을 해요. “나는 죽으면 매장하면 했지, 화장은 하지 않을 것이다” 하는데 왜 인지 물었더니 하는 대답이, “불에 들어가면 뜨겁지 않는가?”였습니다. 여러분, 죽은 사람이 뜨거운지 안 뜨거운지 어떻게 압니까? 화장하나 매장하나 괜찮습니다. 오늘 여기에 보면, “티끌에 누운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티끌에 누운 자들이 모두 다 깨어나는, 그와 더불어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들을 내어 놓게 되어 있습니다. 분명히 죽은 자를 내어놓게 되어 있습니다. 부활의 역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엡5:14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아멘.
여기에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 일어나라” 했다.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부활의 첫 열매되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진 축복이, 이 땅에 발을 디디고 살지만, 이 땅이 전부가 아닙니다.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과 동일하게 완전하고 신령한 모습으로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이 부활의 산 소망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전서 4장에 보면, 주님이 이 땅에 심판주로, 만왕의 왕으로 오실 때들의 모습을 말씀하고 있는데, 천사장의 나팔소리와 함께 주님이 이 땅에 재림하실 때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살아남아 있는 자들도 함께 공중에 끌어올려져서 주와 함께 영원히 주를 섬기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부활의 산 소망이 있습니다. 이 소망이 있기에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그 어떤 어려움과 문제도 문제 되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마22:32입니다. 부활이 없다고 하는 사두개인들의 논쟁 앞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죠.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할렐루야!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말씀합니까? 이들이 죽었기에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죽은 것이 아니라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라 말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참된 소망은 부활의 소망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모든 저주인 죽음의 권세를 이기는 것은 부활의 역사입니다. 그 부활의 역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저와 여러분에게 주어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축복을 누리는 여러분 되길 축원합니다.
두 번째입니다. 이 부활의 주님을 어떻게 체험할 것인가? 부활의 결정적인 사건은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지금 성령으로 믿는 자들과 함께 하시는 사건입니다. 이것이 부활의 결정적인 사건입니다.
주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너희와 영원토록 함께 있겠다” 많은 분들이 신앙생활 하면서도 함께하시는 이 성령의 역사를 알지 못하기에 어려움을 당하고 실패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분명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약속이“또 다른 보혜사를 주사 너희와 영원토록 함께 있겠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나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다른 소리하신 것이 아니라, 행1:8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 받고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무슨 말씀입니까? 성령의 내주, 인도, 충만함 속에 들어가는 것이 부활의 주님을 체험하는 것이란 말씀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성령의 내주를 체험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것이 맞는다면 나를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하고 내 동기를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하고 내 계획과 심지어 내가 그렇게 원하는 기도제목 조차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진짜 성령으로 나와 함께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이 사실 이라면, 하나님이 역사하실 수 있도록 나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령의 내주의 체험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다 버리는 것입니다. 왜입니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나와 함께 하지 않는다면 나를 잡아야 하고 내 생각과 내 계획대로 살아야 하지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내 안에 나와 함께하시는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 모든 것을 내려놓는 만큼 성령의 내주를 체험하게 됩니다.
바울이 로마를 복음화 한 비밀 중 비밀은 갈2:20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완전히 자기 자신을 내려놓은 것입니다. 그 역사 속에 바울은 로마를 복음화 하는 축복된 사실을 누린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 안에 동기들, 우리 안의 생각들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저는 이번 주에 말씀을 포럼 하는 가운데, 저 자신도 놀랐습니다. 같이 말씀을 받았는데, 이 사람이 받은 것과 저의 생각이 달라요. 저도 모르게“아, 내안에 너무 동기가 많구나” 이 사실을 보았어요. 같은 말씀임에도 상대편은 전혀 그런 말씀으로 안 받아졌는데, 내게는 다르게 잡히면서 “내 안에 너무 다른 생각들과 동기들이 많이 자리 잡아 있구나” 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 안에 동기들로 인해 하나님이 함께 계시고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는 사실을 누리지 못하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전3:16에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진짜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면,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내 것 내려놓으시길 바랍니다. 이것이 성령의 내주를 체험하는 방법입니다.
두 번째로, 어떻게 성령의 인도를 체험하느냐? 세계복음화의 최고 축복된 응답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인도를 체험해야 하는데, 어떻게 체험하느냐? 여러분, 모든 것을 시작하고 진행하고 결론 맺을 때, 이것이 정말 하나님의 뜻이 맞는지 안 맞는지 고민해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성령인도 받는 방법입니다.
고후7:10에 보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세상 염려, 근심은 우리에게 사망을 가져 오지만, 그리스도 안에서의 고민은 생명과 구원을 가져 온다 했습니다. 문제와 사건 당할 때 그리스도 안에서 고민하세요. 그것이 성령인도 받는 길과 체험하는 길입니다. “정말 이 일을 시작하려는데, 하나님의 뜻이 맞느냐 안 맞느냐? 하나님의 인도가 맞느냐 안 맞느냐?” 이 일로 인한 결과를 놓고 결과를 생각하며 정말 하나님의 뜻이 맞는지를 무시기도 속에서 고민해보세요. 이것이 성령인도를 체험하는 길입니다.
세 번째로 성령의 충만함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성령의 충만함 속으로 들어가느냐? 다른 것이 아닙니다. 내 힘으로는 안 됩니다. 어떻게 세계를 복음화 합니까? 내 능력으로 안 됩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함의 시작은 다른 것이 아니라 나의 능력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인정하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만을 붙잡는 것을 성령 충만함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성령의 내주, 인도, 충만함 속에 들어갈 때, 이유 있는 인생이 되고, 성령의 내주, 인도, 충만함 속에 들어갈 때, 이유 있는 전도도 일어나고 말씀의 성취도 일어나며 영적인 역사와, 치유의 역사 일어납니다. 바울과 베드로를 보세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기 전에 만난 베드로, 그 이후의 베드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기 전의 바울의 사역 만난 이후의 베드로의 사역에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성령의 내주, 인도, 충만을 누리게 될 때는 모든 것이 바뀌어 진다는 사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살아갑니다. 그것도 중요합니다만, 그러나 그 배후에 역사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놓치고 살아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의 도움도 필요합니다만 정말 우리 배후에 역사하는 성령의 역사를 안다면, 모든 것 달라질 것입니다. 사업함에 있어서 사람을 의지하는 것도 중요합니다만, 믿는 자들 배후에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것과 모든 것을 인도해나가시는 사실을 안다면 달라지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어떻게 체험합니까? 성령의 내주, 인도, 역사하심을 체험하는 것이 바로 부활의 주님을 체험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모든 것을 다 부활시키라」 오늘 제목입니다.
여러분, 가정을 부활시키시고, 자녀들을 부활시키시고, 직장도, 건강도 부활시키시길 바랍니다. 부활시킬 수 있도록 하나님이 주신 선물은 성령의 내주, 인도, 충만함입니다. 죽음이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 생명이 지배하는 하나님의 역사 속으로 인도하라! 이것이 모든 것을 다 부활시키라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가정에, 건강에, 죽음이 지배하는데 생명이 지배하는 역사로 만들라는 것이 모든 것을 부활시키라는 것입니다. 이 일을 우리 힘으로 할 수 없기에 지금 성령으로 우리 안에 내주, 인도, 역사하시겠다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 약속 붙잡고 여러분의 모든 삶을 부활시키는 능력을 입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고전15:55~58에 보면, 하나님의 능력을 가지고 사는 전도자와 성도들에게 답이 되는 귀중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아무도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를 막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나를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는 환경도, 건강도, 질병도 이길 수 없어요. 그러나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우리에게 참된 승리의 축복을 주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언약 붙잡고 이번 한 주간 여러분이 가는 모든 현장을 변화시키는, 다시 말해 모든 현장을 부활시키는 사실들을 체험하는 한 주간되어지길 축원합니다.
서론: 세상에서 희망과 소망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지만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죽음과 두려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나님께서 죽음과 두려움에 붙잡혀 있는 인생들에게 참된 기쁜 소식인 생명을 주시기 위해 이루신 역사입니다. 성경은 모든 인생이 죄를 범했으며(롬3:23), 그 결과 죽음에 이르렀다고 말합니다(롬6:23). 그리고 이 죽음의 권세를 잡은 자가 마귀이며, 죽기를 무서워하는 인생이 마귀에게 매여 종노릇한다고 지적합니다(히2:14-15). 이렇듯 죽음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종교가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 떠나 죽음과 두려움에 사로잡힌 인생에게 저주가 선언되었고(창3:16-20), 고통 가운데 살아가며, 계속해서 저주와 재앙이 일어납니다. 결국 죽어서 허망하게 흙으로 돌아갑니다. 인생은 원죄를 해결하지 못해 완전히 망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저주를 한꺼번에 끝낸 사건이 부활의 사건입니다(고전15:3-4, 55). 성도에게는 죽음이 끝이 아니라 부활과 구원과 생명이 끝입니다. 그래서 모든 삶에서 부활의 신앙을 가지고 세상을 다 살려야 할 것입니다.
1. 부활의 의미와 내용
(1) 본문에 나타난 부활 사건
1) 하나님이 원죄에 빠진 인생을 긍휼히 여기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하게 하셨음(3절)
2) 거듭나는 복(새생명)은 죽음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게 됨(3절)
3) 거듭난 자들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썩지 않는 영원한 하늘의 기업을 누리게 됨(4절)
(2) 왜 수천 년간 메시아를 보내시겠다는 말씀을 해오셨는가?
1) 운명을 통해 인생을 멸망시키는 영적 존재인 사탄(마귀)에 대해 알리시기 위해서임
① 성도가 악한 사탄의 존재를 몰라서 세상 문화의 주도권을 귀신 들린 자들에게 빼앗김
② 영적싸움을 이해하지 못해서 교회 다니면서도 실패함
2) 사탄의 권세를 꺾기 위해 메시아(그리스도)를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심(창3:15, 요일3:8)
(3) 부활에 관한 내용: “부활은 인간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작품”
1) 인간의 근본문제는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죗값을 죽음으로 지불하시고 부활하셔야만 해결됨
2) 사탄은 부활의 역사를 믿지 못하도록 막고 있음(도난설, 기절설, 환상설)
3) 부활은 구원자의 자격조건(사단권세를 이긴 자라는 증거로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살아나야 함)
4) 모든 성도는 그리스도의 부활처럼 완전하고 신령한 모습으로 부활하게 될 것임(사26:19, 엡5:14, 살전4:13-17, 마22:32)
2. 어떻게 부활의 역사를 체험할 것인가?
(1) 부활의 결정적 사건은 성령으로 믿는 자들과 지금 함께 계신 것입니다.
1) 요14:16(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2) 행1:8(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2) 그래서 성령의 내주․인도․충만함을 체험하면 됩니다.
1) 나의 생각, 계획, 동기는 물론, 기도제목조차 내려놓아야 함(갈2:20 → 성령 내주)
2) 모든 일에 대해 시작, 진행, 결론 내릴 때 하나님의 뜻이 맞는지 고민해야 함(고후7:10 → 성령인도)
3) 내 능력으로 안 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된다는 사실을 붙잡아야 함(성령충만)
결론: 부활의 능력을 체험하셔서 모든 것을 다 부활시키십시오. 가정과 자녀와 직장과 건강도 부활시킬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 성령의 내주․인도․충만함입니다. 죽음이 지배하는 현장을 생명이 지배하는 현장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이 일을 위해 부활하신 주님께서 지금 성령으로 우리 안에 내주하시고 인도하시고 역사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참된 승리의 복을 주시기로 하셨습니다(고전15:55-58).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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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4 | 전환점을 이룬 안디옥 선교 | 행11:19-30 | 2025-04-27 | |
1483 | 우리에게 주시는 영원한 메시지 | 고전15:1-11 | 2025-04-20 | |
1482 | 새로운 싸움을 위하여 | 삿7:9-18 | 2025-04-13 | |
1481 | 날마다 영적싸움에 승리하라 | 삿7:1-8 | 2025-04-06 | |
1480 | 이 시대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해답 | 삿4:1-10 | 2025-03-30 | |
1479 | 하나님이 쓰시는 기준 | 삿3:12-23 | 2025-03-23 | |
1478 |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 삿3:7-11 | 2025-03-16 | |
1477 |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 삿2:6-10 | 2025-03-09 | |
1476 |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 삿1:1-7 | 2025-03-02 | |
1475 |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 단12:1-4 | 2025-02-23 | |
1474 |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 단11:28-39 | 2025-02-16 | |
1473 |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 단10:10-21 | 2025-02-09 | |
1472 |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 단9:20-24 | 2025-02-02 | |
1471 |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 단8:15-27 | 2025-01-26 | |
1470 |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 단7:9-14 | 2025-0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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