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2008-05-18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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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사하겠습니다. 평강하십시오. 안녕하십시오. 감사합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라는 제목으로 함께 한 주간 말씀의 은혜를 누리길 원합니다.
지난 주 5월 12일 월요일에는 하나교회 한마음 체육대회가 있었습니다. 700명이 넘는 인원들이 참여하여 복음의 공동체됨을 확인하는 자리였습니다. 제가 생각해보니 23년 만에 전교인 체육대회는 처음 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고등부 학생 때, 전교인 체육대회를 송현동 경원고등학교에서 했었는데, 가족대항으로 저희 가족 세 사람이 계주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저희 가족이 등수 안에 들어서 고무 바게스를 상품으로 받은 기억이 납니다.
렘넌트 체육대회가 작년까지 진행되었는데 전교인이 참여하고 하나 되어진 체육대회는 20년이 지나 처음 개최하는 것 같습니다. 체육대회 때 가족 중에 교회에 안 나오시는 얼굴들도 보여지고 교제를 나눌 수 있었고 또, 출석은 하고 계시지만 교회 공동체 속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분들도 이번 기회를 통해 가까이 사귐이 있었고 인사를 나눌 수 있었던 중요한 기회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이를 위해서 많은 기도와 물질로 후원해주셔서 체육대회가 더욱 빛나는 그런 자리였습니다. 특별히 장로님들이 많은 후원을 해주셨고 구역장님들과 권찰님들도 헌신적으로 봉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날따라 날씨도 좋았고 비 온다는 일기예보가 있었지만 바람이 조금 분 것 외에는 날씨가 체육대회 하기에 적합한 날씨였습니다. 모든 조건이 어우러져서 좋았던 체육대회였음을 보게 됩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립니다.
특별히 체육대회를 진행 하면서, 목사님께서 2005년에 하나교회로 입당하시고 『원니스 창간호』에 글을 내신 부분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하나교회 그 이름 자체가 응답이다” 하셨습니다. 뜻인즉슨, “하나님과 하나 된 우리가 복음 안에서 뿌리를 내림으로 가정이 하나 되어지고 교회가 하나 되어지는 응답을 받고 그 응답을 가지고 현장을 살려야 하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교회의 뜻은 하나님과 하나 된 우리가 가정이 하나 되어지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교회가 하나 되어져서 그 응답을 가지고 현장을 살리자는 것이 하나교회 이름 안에 있는 중요한 의미입니다.
특별히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음으로 준비 시켜주셨고 또 복음 안에서 가정들이 회복되는 과정들을 확인케 되었고 또 복음 안에서 교회가 복음의 공동체를 이루고 나가 것을 보면서 이제는 ‘이 응답을 가지고 현장에 나가야 하겠다, 현장을 살려야 하겠다’ 이 축복된 응답이 여러분 개개인에게 이뤄지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요한복음 13장에 세상 살리는 중요한 열쇠 두 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가 지난 주 살펴본 세족식 사건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3장은 예수님께서 로마 군인들에게 잡히시기 하루 전날에 일어난 일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과 십자가에 못 박히실 것을 아시고 중요한 의미를 두고 유언적 메시지를 담고 친히 제자들에의 발을 씻기신 사건이 세족식 사건입니다. 주와 선생으로서 종의 모습을 가지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세족식 사건이 세계를 살리고 정복하는 방법 중에 한가지입니다. 다시 말하면 복음을 가지고 복음의 손으로 섬기는 것이 현장정복의 열쇠입니다. 우리의 남편·아내·자녀들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 여러분, 복음을 가지고 복음의 손으로 섬기면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난 주 살펴본 내용이었습니다.
오늘 두 번째로 세상을 살리는 비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예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습니까? 요13:1에 보면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느니라” 하셨습니다.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라 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영원히 변함없이 끝까지 사랑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사랑 때문에 저와 여러분이 오늘, 이 자리에 앉게 된 것이고 이 땅에 사는 날 동안에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끝까지 사랑하시는 주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자기 백성과 자기사람을 사랑하시는 그 사랑 때문입니다.
여러분, 세상은 자기사람을 사랑을 할 줄 몰라서 개인과 사회와 세상이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말씀 하셨습니다. 자기 사람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고 했습니다. 어느 정도로 사랑하셨는가? 또, 그 내용이 무엇이냐? 바로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성육신 사건이 바로 그 사랑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을 떠나서 하나님을 만나야 하기에 사람의 모습을 입고 낮고 천한 이 땅에 인간의 모습으로 하나님이 오셨다는 것이 사랑하시는 증거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은 요한복음 13장에 나오는 것처럼 섬김의 사랑으로 우리에게 사랑을 보이셨습니다. 그와 더불어 하나님의 사랑은 대속의 제물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내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 물로 주기 위함이라”(막10:45)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 뿐만 아니라 대속함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도 성령으로 저와 여러분 안에 거하고 계십니다. 왜냐? 이 현장 속에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은 한 순간도 하나님의 인도 없이는 살아 갈 수 없기 때문에 그냥 고아처럼 내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친히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지금도 우리 삶을 인도하시고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 한다고 하지만 그렇고 그렇게 신앙생활 하지만 망하지 않는 이유는 뭡니까? 여러분, 기도 안 해도 오늘날까지 잘 살아 왔습니다. 기도 안 해도 잘 살아온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성령이 내 안에 거하셔서 나를 위해 대신 기도하시기 때문입니다. 롬8:26에 “우리가 하나님께 연약해서 나갈 수 없을 때에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대신 탄식함으로 간구 하시느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기도하지 않아도 오늘날까지 은혜 속에서 살아온 이유가 있다면 하나님의 성령께서 지금 우리 안에서 기도하고 계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오늘, 이 사랑을 받은 자들이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에 대한 중요한 답을 생각해보겠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여러분,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했습니다. 여기서 먼저 이해할 부분이 있다면 옛 계명에 대한 이해입니다. 옛 언약에 대한 이해입니다. 옛 계명을 가지고는 인간이 절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의 문제를 옛 계명으로는 절대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 옛 계명과 옛 언약은 율법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수님이 오시기 전, 율법을 먼저 주셨는데 그 목적은, 그 율법을 지키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율법을 주신 목적은, “하나님의 완전한 의의 표준과 완전한 법이 무엇인가?” 를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면 지키지도 못할 율법을 왜 주셨는가? 그 율법을 통해서 우리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우리 자신이 구원받아야 할 백성임을 알고 창세기 3장의 저주와 재앙가운데 있는 저와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바라보기 위해서 죄의 문제 해결하실 메시야를 바라보게 하시 위해서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 율법을 가지고 사단이 율법주의로 인간을 실패시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율법을 통해 죄인임을 알고 하나님 만나야 함을 알아야 하는데 사단의 역사 속에서 내 의로, 내 기준으로, 내 노력으로, 내 열심으로 뭔가를 하려고 하는 것이 바로 율법을 잘 못 깨달은 율법주의에 빠진 것입니다. 사단의 전략 속에 속은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구원받는 길은 우리의 노력·열심·의(義)로 안 됩니다. 그러나 내 열심과 노력과 의로 된다는 생각과 사상이 율법적인 바리새인들의 사상입니다. 그리고 그 내용은 “우리만 선택된 선민이고 다른 사람은 저주받은 백성이다” 하는 것이 유대·바리새 사상입니다. 율법을 잘 못 깨달은 바리새·유대사상입니다. 결국은 주님의 관심과 전혀 상관없는 세계 복음화에 역행하는 사상이 유대사상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개인과 교회에서도 사단이 속이는 부분이 이 부분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말씀하셨는데 너무 좋은 율법을 율법주의로 만들어서 뭔가 내가 하려는 내 열심과 내 노력으로 신앙생활 하는데 있어서 시간 지날수록 참된 자유함을 놓쳐버리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잘못 깨달아서 그렇습니다. 여러분, 마11:28에 보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그 당시에 불신자에게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복음을 가졌지만 종교생활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갑니까? 잘못 깨달아서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 개인과 교회 속에도 이 율법의 귀중한 사실을 잘 못 깨달으면 “신앙생활 하면 할 수 록 예수 믿는데 왜 이런 문제가 있을 수 있는가?” 하는 원망과 불평이 나옵니다. 잘못 깨달아서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 속에서 십계명을 지킴으로 구원받습니까?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 십계명을 지킬 수 있습니까? 대답해보십시오. 십계명을 지켜야 한다고 하는 사람은 지금도 사형 받아야 합니다. 지키지 못하면 사망입니다. 그것은 죄의 삯이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십계명을 지키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사람이 아니라 율법과 십계명을 완성하신 예수를 믿게 될 때에 지킬 뿐만 아니라 지킬 수 있는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헌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의 신앙생활 모든 부분이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십일조해서 복 받는다?” 맞는 소리이지만 틀린 소리입니다. “십일조 안했더니 하나님이 내 사업을 부도나게 하셨다. 나를 치셨다. 주일 성수 안했더니 이런 저런 문제를 생기게 하셨다” 모두 틀린 말들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악랄한 하나님으로 만들지 말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정말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얻어 구원 받고 보니 그 은혜가 감사해서 내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인데, 십 분의 일조를 드릴 수도 있는 것이고, 십의 이조와 삼조 또, 구조까지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십일조의 축복입니다. “내가 주일에 교회 안가고 낚시·등산 갔더니 이런 사고를 당했다” 는 생각은 천만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못 된 하나님이 아니시라는 사실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열어놓으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그리스도 복음을 누리게 될 때, 그 속에서 오는 힘으로 신앙생활 하는 것이고 감사함으로 드리는 것이고 십의 일조뿐 아니라 십의 구조까지 드릴 수 있는 것이 바른 십일조의 축복이라는 사실입니다.
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사단의 궤계에 빠져서 율법주의에 빠져서 참된 자유와 참된 축복을 놓치고 살아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 와서 말씀 듣는 것이 부담되고, 신앙생활 한다는 것이 부담되고, 교회 공동체가 된다는 것이 부담 됩니다. 그래서 교회와도 조용히 신앙생활 하려고 하고 교회 공동체 속에 들어와도 있는 듯 없는 듯 그냥 교회 와서 예배만 드리고 가는데, 자꾸 알려지고 교회 공동체 속에 들어오니 부담이 되니까 그런다고 하는데. 잘못 깨달은 것입니다. 교회란 곳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한 몸 된 공동체들이 모여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 교회입니다. 그 안에 축복이 엄청난 것인데 다 놓치고 살아간다는 사실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에게 주신 율법을 잘 못 깨달아서 그렇게 된 사실입니다.
율법은 하나님을 만나는 길이 그리스도라는 사실로 인도하는 것이 율법입니다. 우리로서는 우리 가운데 있는 죄로 인한 저주와 재앙에서 근본적으로 빠져 나올 수 없다는 사실을 근본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율법입니다. 결국은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신 그리스도를 붙잡도록 하는 것이 율법이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교통법규가 왜 있습니까? 법규가 있어야 위반했는지 그렇지 않은지의 여부를 알 수 있습니다. 법규가 있어야 위반사항에 따라 인도받는 것 아닙니까? 거울이 있어야 거울을 보며 내 얼굴에 뭍은 것을 볼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율법을 주신 것은 지키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그 율법을 통해서 우리 인생의 문제를 해결한 그리스도를 붙잡으라고 주신 것입니다. 이 사실을 모르니 유대인들이 실패했고 성도들이 실패하고 있는 것입니다. 율법은 나쁘거나 잘 못된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로 저와 여러분을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율법을 가지고 옛 계명·옛 언약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옛 계명과 옛 언약 속에 속해 있는 저와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새 계명을 주셨는데, 그 새 계명이 옛 계명과 옛 언약에서 예표하는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가 새 계명입니다. 예수께서 하신 일이 새 계명이며 그리스도의 일입니다. 그래서 새 계명을 가진 저와 여러분은 옛 계명과 율법 속에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곳에서 빠져 나왔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이 바로 그리스도의 일인데, 그 일이 바로 새 계명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의 일을 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을 떠난 문제를 해결했다는 말입니다. 죄로 인한 저주와 재앙의 문제와 사단으로 말미암은 영적인 문제를 해결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왕·제사장·선지자로서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이 무엇이냐? 새 계명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여러분, 새 계명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는 율법이 폐하여 진 것이 아니라 율법이 완성되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요19:30에 “다 이루었다” 하셨습니다. 모든 율법을 십자가에 못 박히시며 완성했다는 말입니다. 분명히 기억하실 것은 폐한 것이 아니라 모든 율법을 완성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우리는 율법을 완성하신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힘으로 율법이 지켜질 수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율법을 완성하신 예수님께서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여기서 말하는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은 귀신 들린 사람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방종교인들도 사랑합니다. 교회들도 많은 사랑을 부르짖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랑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무슨 말입니까? 창세기 3장의 근본문제와 저주·재앙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가지고 예수님의 사랑 곧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사랑을 이루시기 위해서 친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 사건이 바로 예수가 그리스도 되신다는 사건입니다. 그 사랑을 보여주셨는데 그 사랑이 저와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창세기 3장의 문제와 근본문제, 저주와 재앙의 문제를 해결하는 예수님의 사랑을 하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가 사로 사랑하라”
여러분,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며 당한 우리의 인생의 문제가 무엇인지 안다면 서로를 사랑하라는 말씀의 깊은 뜻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이 이 땅을 살아가면서 당하는 문제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떠나서 저주와 재앙가운데 있고 사주·팔자·운명가운데 붙잡혀 있는 것이 우리 인생의 문제입니다. 그 영혼의 소속은 어디에 있습니까? 요8:44에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 났으니” 영혼의 소속이 마귀와 사단의 소속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죄가 있는데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원죄 사건으로 말미암아 이 땅 모든 인생들이 실패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은 무엇이냐? 이 원죄를 해결하는 것이 복음입니다. 이 영혼의 신분을 바꾸는 것이 복음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저주와 재앙 가운데 있는 인생이 하나님을 만나고 누리는 것이 복음입니다. 이 사실을 알지 못해서 인생들이 결국, 원죄와 사단의 손과 하나님 떠난 문제로 인해 계속적 저주·재앙을 받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소속이 마귀에 소속되었기에 하나님을 섬기고 경배해야 하는데 하나님을 찾을 수 없어서 우상숭배하고 있습니다. 우상숭배의 문제점은 그 배후에 귀신이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우상숭배 할수록 마음과 육신에 고통당하고 이상한 일이 터지고 정리될 듯하면 또 사고가 터지는 등, 일이 안된다고 하는 분도 있는데 그렇습니다. 잊어버릴만 하면 또 사건이 터집니다. 당연합니다. 후손들에게 물려주게 되어 있는데 이것을 해결하는 길이 복음입니다. 우리가 이 속에 있었고 지금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속에서 빠져나왔지만, 이 속에서 빠져나오는 창세기 3장의 근본문제인 저주와 재앙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전달하고 가르치는 것이 “서로 사랑하라” 이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를 바로 알고 누리면서 그 그리스도 복음을 전하는 것이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세상에는 이 사랑이 없어서 문제가 옵니다. 가정의 문제도 이 사랑이 없어서 부모와 자식 간의 문제도 이 사랑이 없어서 문제가 옵니다. 애석하게 교회 안에서도 이 사랑이 없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창세기 3장에서 빠져나오는 답과 비밀을 몰라서 이 땅에 모든 현장에 문제가 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이 사랑을 회복하시길 원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세 가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번 화요일 창원지역집회 때 나온 메시지였습니다.
여러분, 먼저 다른 사람을 살리기 전에 복음 앞에 나 자신을 세우고 나 자신을 살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디서 전도할 것인가? 그 이전에 나를 전도하면 다른 사람이 전도 되게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저와 여러분이 완전 복음 앞에 무릎 꿇으면, 그때부터 하나님께서 문들을 열어 가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자신을 살리는 인생캠프. 자신을 살리는 비밀, 무엇보다 시급한 것이 이 부분입니다. 우리 가정은 남편·아내·자녀만 되면 된다고 하는데 천만에요. 시급한 것이 나 자신만 되면 됩니다.
창1:2에 보면 흑암과 혼돈과 공허함 속에 “빛이 있으라” 했습니다. 그 빛은 요1:11에 보면 그리스도라 했습니다. 예수 안에 생명이 있었고 각 사람에 비취는 빛이라 했습니다. 그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했습니다. “빛이 되라” 하시지 않았습니다. 저와 여러분을 살리는 것입니다. 나를 살리는 것이 인생캠프입니다. 벧전2:9에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했습니다.
바로 나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나를 복음 안에서 나를 세우는 것이 인생캠프입니다. 문제와 사건과 어려움이 있습니까? 불신자는 하나님을 바라 볼 수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복음을 주셨기에 하나님 바라보면 하나님이 손을 들어 원수와 대적을 멸하시겠다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마음과 생각과 영혼 속에 복음으로 가득차게 하옵소서” 이것이 인생캠프입니다. “나의 기도와 인격 속에 복음으로 가득 채워지게 하옵소서” 누가 뭐라해도 우리 자신이 먼저 복음 앞에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안에 복음이 아닌 다른 것으로 가득 채워져 있으니 모든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가정의 싸움도 다른 것으로 가득 차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기도도 오직 복음을 누리는 기도, 다른 것을 아무리 많이 누려도 흑암의 세력은 안 꺾입니다. 오직 복음을 누리는 기도만이 흑암의 세력을 꺾을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나의 인격 속에 복음으로 가득 채워 질 수 있도록. 그렇게 되면 나 자신을 살리는 인생캠프가 되어지고 그렇게 되면 따라오는 것이 다른 사람을 살리는 전도캠프의 축복이 누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다른 사람과 지역과 전체가 보입니다. 전체 속에서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것과 내가 들어갈 현장과 전체 속에서 다른 사람의 시간표가 보여집니다. 거기에 답을 줄 수 있습니다. 그 속에 제자가 따라오게 되어있고 제자를 통해 시스템이 확립되게 되어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오는 응답이 지교회의 응답이 오게 됩니다. 이것은 결과로 오는 것입니다.
나를 살리고 현장을 보고 제자를 보고 다른 사람에게 답을 주면 거기에 따라 오는 지교회의 응답을 주십니다. 그다음 중요한 것은, 인생캠프 보다 더 중요한 캠프, “더 큰 캠프”가 있습니다. 나 혼자 있을 때, 정말 복음을 누리는 것입니다. 혼자 있을 때 말씀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캠프 중에 캠프입니다. 그리고 비밀리에 여러분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비밀리에 하고 있는 그것에 만족이 있습니까? 행복과 기쁨이 있습니까? 비밀리에 하는 그것을 하나님이 보셔도 괜찮은 것입니까? 비밀리에 하는 그것에 참 행복이 복음이고 그리스도 때문이라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새 계명이 너희에게 주노니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그러면서 35절에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그렇다면 오늘 34절에 서로 사랑하란 사랑이 어떤 사랑인가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전도와 선교와 복음 전파로 열매 맺어지는 사랑. 그것이 바로 참된 사랑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사랑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먼저, 여러분 자신들을 살리기를 바랍니다. 인생캠프의 축복이 되어지면 다른 사람을 살리는 전도캠프의 축복이 이뤄질 것입니다. 그리고 더 큰 캠프의 축복인 혼자서 비밀리에 복음을 누리고 복음 때문에 행복하게 됩니다. 여기에 모든 재앙과 흑암이 물라나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기도 안 해도 되어지는 응답들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이것이 바로 세계를 변화시킬 비밀입니다. 모든 현장을 변화시킬 비밀입니다. 그 사랑이 창세기 3장의 근본문제인 저주와 재앙의 문제를 해결하는 사랑인 것입니다. 이 사랑이 없어서 현장이 방황하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조차 이 사랑이 없어서 방황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이 답을 주셨습니다. 이 답을 가지고 모든 현장을 살리는 축복된 한 주간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옛 계명 옛 언약 속에 있지 아니하고 새 계명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참된 구원의 축복 가운데 있게 됨을 감사함을 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주시는 참된 생명 얻는 사랑, 오늘 이 자리에 앉은 주의 종들을 통해서 이 생명 있는 사랑이 모든 현장에 증거되어 짐으로 현장을 정복하는 역사가 있게 하여 주옵소서.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서로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우리 인생에 근본문제·저주와 재앙의 창세기 3장의 문제를 해결한 이 사랑이 우리에게 필요함을 깨닫게 하시고 이 사랑이 현장에 필요함을 알게 하시고 이 사랑 가지고 현장 나가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옵소서.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서론 : 하나님과 하나 된 우리가 복음으로 가정이, 교회가 하나 되어지는 응답 가지고 현장을 살리는 축복이 개개인에게 이뤄지기를 축원합니다. 요13장에는 세상 살리는 중요한 비밀 2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가 ‘세족식 사건’으로 복음 가지고 복음의 손으로 섬기는 것이 현장 정복의 열쇠입니다. 두 번째로, ‘서로 사랑하라.’입니다. 성육신하시기까지 섬김과 대속의 죽으심(막10:45)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대속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우리 안에 살아 계시고, 인도하시며, 역사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대신 탄식함으로 간구하고 계시는 것(롬8:26)이 세상 살리는 비밀입니다.
1. 옛 언약(계명)에 대한 이해
1) 옛 계명(율법)을 가지고 인간의 문제 해결할 수 없습니다.
2)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목적은 지키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완전한 의의 표준과 완전한 법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3) 율법 통해 죄인인 것과, 우리가 구원받을 백성임을 알고 그리스도 바라보도록 율법을 주셨습니다.
4) 율법이 나쁜 것은 아니나, 사단이 율법주의를 가지고 인간을 실패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5) 여기서 주님의 관심인 세계 복음화와 역행하는 선민의식, 유대, 바리새 사상이 나왔습니다.
6) 율법을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될 때, 율법을 지킬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7) 사단의 궤계와 율법주의에 빠져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부담으로 느끼며 고통당합니다.
8) 하나님을 만나는 길이 그리스도임을 인정하고 보여줌으로 모든 문제 해결자 되신 그리스도를 붙잡게 하는 것이 바로 율법입니다.
2. 새 계명은 곧 예수 그리스도
1) 예수께서 하신 일이 그리스도의 일인데 이것이 새 계명입니다.
2) 그리스도의 일이란, 하나님 떠난 문제와, 죄로 인한 저주의 문제, 사단으로 인한 영적 문제를 해결하신 왕, 제사장, 선지자가 되신 것을 의미합니다.
3) 새 계명되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율법이 폐하여진 것이 아니라, 율법이 완성되었고, 모든 인생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4) ‘서로 사랑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창3장의 근본 문제와 저주의 문제에서 빠져나오게 하라는 것입니다.
5) 그리스도의 복음을 바로 알고 누리면서, 그것을 전하는 것이 바로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3. 이 사랑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1) 다른 사람 살리기 전에 복음 앞에 나를 세우고 나 자신을 살려야 합니다. - 인생캠프
(1) 흑암, 혼돈, 공허(창1:2) 가운데 있는 내게 먼저 빛이 임해야 합니다.(창1:3, 요1:11, 마5:14 벧전2:9)
(2) 문제와 사건 앞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3) 마음과, 생각, 기도, 인격 속에 복음이 가득 차는 것입니다.
2) 나 자신이 살아나면 다른 사람을 살리는 전도 캠프의 축복이 누려집니다.
(1) 다른 사람과 지역과 전체가 보입니다.
(2) 다른 사람의 시간표가 보여집니다. - 그것에 답을 주고 제자를 세움.
(3) 그 결과, 지교회의 응답이 오게 됩니다.
3) 더 큰 캠프가 있습니다.
(1) 나 혼자 있을 때, 정말 복음을 누리고, 말씀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2) 비밀리에 무엇을 합니까? 비밀리에도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참 행복이 복음, 그리스도, 하나님 때문이라면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35절)’ - 전도와 선교, 복음 전파로 열매 맺는 사랑. 이것이 참된 사랑입니다.
결론 :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이것이 바로 세계 변화시키고, 모든 현장을 변화시키는 비밀입니다. 창3장의 근본문제를 해결하는 것, 이 사랑을 통해 방황하고 죽어가는 모든 현장 살리는 축복된 한 주간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지난 주 5월 12일 월요일에는 하나교회 한마음 체육대회가 있었습니다. 700명이 넘는 인원들이 참여하여 복음의 공동체됨을 확인하는 자리였습니다. 제가 생각해보니 23년 만에 전교인 체육대회는 처음 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고등부 학생 때, 전교인 체육대회를 송현동 경원고등학교에서 했었는데, 가족대항으로 저희 가족 세 사람이 계주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저희 가족이 등수 안에 들어서 고무 바게스를 상품으로 받은 기억이 납니다.
렘넌트 체육대회가 작년까지 진행되었는데 전교인이 참여하고 하나 되어진 체육대회는 20년이 지나 처음 개최하는 것 같습니다. 체육대회 때 가족 중에 교회에 안 나오시는 얼굴들도 보여지고 교제를 나눌 수 있었고 또, 출석은 하고 계시지만 교회 공동체 속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분들도 이번 기회를 통해 가까이 사귐이 있었고 인사를 나눌 수 있었던 중요한 기회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이를 위해서 많은 기도와 물질로 후원해주셔서 체육대회가 더욱 빛나는 그런 자리였습니다. 특별히 장로님들이 많은 후원을 해주셨고 구역장님들과 권찰님들도 헌신적으로 봉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날따라 날씨도 좋았고 비 온다는 일기예보가 있었지만 바람이 조금 분 것 외에는 날씨가 체육대회 하기에 적합한 날씨였습니다. 모든 조건이 어우러져서 좋았던 체육대회였음을 보게 됩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립니다.
특별히 체육대회를 진행 하면서, 목사님께서 2005년에 하나교회로 입당하시고 『원니스 창간호』에 글을 내신 부분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하나교회 그 이름 자체가 응답이다” 하셨습니다. 뜻인즉슨, “하나님과 하나 된 우리가 복음 안에서 뿌리를 내림으로 가정이 하나 되어지고 교회가 하나 되어지는 응답을 받고 그 응답을 가지고 현장을 살려야 하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교회의 뜻은 하나님과 하나 된 우리가 가정이 하나 되어지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교회가 하나 되어져서 그 응답을 가지고 현장을 살리자는 것이 하나교회 이름 안에 있는 중요한 의미입니다.
특별히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음으로 준비 시켜주셨고 또 복음 안에서 가정들이 회복되는 과정들을 확인케 되었고 또 복음 안에서 교회가 복음의 공동체를 이루고 나가 것을 보면서 이제는 ‘이 응답을 가지고 현장에 나가야 하겠다, 현장을 살려야 하겠다’ 이 축복된 응답이 여러분 개개인에게 이뤄지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요한복음 13장에 세상 살리는 중요한 열쇠 두 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가 지난 주 살펴본 세족식 사건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3장은 예수님께서 로마 군인들에게 잡히시기 하루 전날에 일어난 일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과 십자가에 못 박히실 것을 아시고 중요한 의미를 두고 유언적 메시지를 담고 친히 제자들에의 발을 씻기신 사건이 세족식 사건입니다. 주와 선생으로서 종의 모습을 가지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세족식 사건이 세계를 살리고 정복하는 방법 중에 한가지입니다. 다시 말하면 복음을 가지고 복음의 손으로 섬기는 것이 현장정복의 열쇠입니다. 우리의 남편·아내·자녀들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 여러분, 복음을 가지고 복음의 손으로 섬기면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난 주 살펴본 내용이었습니다.
오늘 두 번째로 세상을 살리는 비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예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습니까? 요13:1에 보면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느니라” 하셨습니다.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라 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영원히 변함없이 끝까지 사랑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사랑 때문에 저와 여러분이 오늘, 이 자리에 앉게 된 것이고 이 땅에 사는 날 동안에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끝까지 사랑하시는 주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자기 백성과 자기사람을 사랑하시는 그 사랑 때문입니다.
여러분, 세상은 자기사람을 사랑을 할 줄 몰라서 개인과 사회와 세상이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말씀 하셨습니다. 자기 사람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고 했습니다. 어느 정도로 사랑하셨는가? 또, 그 내용이 무엇이냐? 바로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성육신 사건이 바로 그 사랑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을 떠나서 하나님을 만나야 하기에 사람의 모습을 입고 낮고 천한 이 땅에 인간의 모습으로 하나님이 오셨다는 것이 사랑하시는 증거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은 요한복음 13장에 나오는 것처럼 섬김의 사랑으로 우리에게 사랑을 보이셨습니다. 그와 더불어 하나님의 사랑은 대속의 제물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내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 물로 주기 위함이라”(막10:45)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 뿐만 아니라 대속함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도 성령으로 저와 여러분 안에 거하고 계십니다. 왜냐? 이 현장 속에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은 한 순간도 하나님의 인도 없이는 살아 갈 수 없기 때문에 그냥 고아처럼 내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친히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지금도 우리 삶을 인도하시고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 한다고 하지만 그렇고 그렇게 신앙생활 하지만 망하지 않는 이유는 뭡니까? 여러분, 기도 안 해도 오늘날까지 잘 살아 왔습니다. 기도 안 해도 잘 살아온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성령이 내 안에 거하셔서 나를 위해 대신 기도하시기 때문입니다. 롬8:26에 “우리가 하나님께 연약해서 나갈 수 없을 때에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대신 탄식함으로 간구 하시느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기도하지 않아도 오늘날까지 은혜 속에서 살아온 이유가 있다면 하나님의 성령께서 지금 우리 안에서 기도하고 계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오늘, 이 사랑을 받은 자들이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에 대한 중요한 답을 생각해보겠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여러분,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했습니다. 여기서 먼저 이해할 부분이 있다면 옛 계명에 대한 이해입니다. 옛 언약에 대한 이해입니다. 옛 계명을 가지고는 인간이 절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의 문제를 옛 계명으로는 절대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 옛 계명과 옛 언약은 율법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수님이 오시기 전, 율법을 먼저 주셨는데 그 목적은, 그 율법을 지키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율법을 주신 목적은, “하나님의 완전한 의의 표준과 완전한 법이 무엇인가?” 를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면 지키지도 못할 율법을 왜 주셨는가? 그 율법을 통해서 우리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우리 자신이 구원받아야 할 백성임을 알고 창세기 3장의 저주와 재앙가운데 있는 저와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바라보기 위해서 죄의 문제 해결하실 메시야를 바라보게 하시 위해서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 율법을 가지고 사단이 율법주의로 인간을 실패시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율법을 통해 죄인임을 알고 하나님 만나야 함을 알아야 하는데 사단의 역사 속에서 내 의로, 내 기준으로, 내 노력으로, 내 열심으로 뭔가를 하려고 하는 것이 바로 율법을 잘 못 깨달은 율법주의에 빠진 것입니다. 사단의 전략 속에 속은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구원받는 길은 우리의 노력·열심·의(義)로 안 됩니다. 그러나 내 열심과 노력과 의로 된다는 생각과 사상이 율법적인 바리새인들의 사상입니다. 그리고 그 내용은 “우리만 선택된 선민이고 다른 사람은 저주받은 백성이다” 하는 것이 유대·바리새 사상입니다. 율법을 잘 못 깨달은 바리새·유대사상입니다. 결국은 주님의 관심과 전혀 상관없는 세계 복음화에 역행하는 사상이 유대사상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개인과 교회에서도 사단이 속이는 부분이 이 부분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말씀하셨는데 너무 좋은 율법을 율법주의로 만들어서 뭔가 내가 하려는 내 열심과 내 노력으로 신앙생활 하는데 있어서 시간 지날수록 참된 자유함을 놓쳐버리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잘못 깨달아서 그렇습니다. 여러분, 마11:28에 보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그 당시에 불신자에게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복음을 가졌지만 종교생활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갑니까? 잘못 깨달아서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 개인과 교회 속에도 이 율법의 귀중한 사실을 잘 못 깨달으면 “신앙생활 하면 할 수 록 예수 믿는데 왜 이런 문제가 있을 수 있는가?” 하는 원망과 불평이 나옵니다. 잘못 깨달아서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 속에서 십계명을 지킴으로 구원받습니까?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 십계명을 지킬 수 있습니까? 대답해보십시오. 십계명을 지켜야 한다고 하는 사람은 지금도 사형 받아야 합니다. 지키지 못하면 사망입니다. 그것은 죄의 삯이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십계명을 지키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사람이 아니라 율법과 십계명을 완성하신 예수를 믿게 될 때에 지킬 뿐만 아니라 지킬 수 있는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헌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의 신앙생활 모든 부분이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십일조해서 복 받는다?” 맞는 소리이지만 틀린 소리입니다. “십일조 안했더니 하나님이 내 사업을 부도나게 하셨다. 나를 치셨다. 주일 성수 안했더니 이런 저런 문제를 생기게 하셨다” 모두 틀린 말들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악랄한 하나님으로 만들지 말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정말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얻어 구원 받고 보니 그 은혜가 감사해서 내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인데, 십 분의 일조를 드릴 수도 있는 것이고, 십의 이조와 삼조 또, 구조까지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십일조의 축복입니다. “내가 주일에 교회 안가고 낚시·등산 갔더니 이런 사고를 당했다” 는 생각은 천만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못 된 하나님이 아니시라는 사실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열어놓으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그리스도 복음을 누리게 될 때, 그 속에서 오는 힘으로 신앙생활 하는 것이고 감사함으로 드리는 것이고 십의 일조뿐 아니라 십의 구조까지 드릴 수 있는 것이 바른 십일조의 축복이라는 사실입니다.
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사단의 궤계에 빠져서 율법주의에 빠져서 참된 자유와 참된 축복을 놓치고 살아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 와서 말씀 듣는 것이 부담되고, 신앙생활 한다는 것이 부담되고, 교회 공동체가 된다는 것이 부담 됩니다. 그래서 교회와도 조용히 신앙생활 하려고 하고 교회 공동체 속에 들어와도 있는 듯 없는 듯 그냥 교회 와서 예배만 드리고 가는데, 자꾸 알려지고 교회 공동체 속에 들어오니 부담이 되니까 그런다고 하는데. 잘못 깨달은 것입니다. 교회란 곳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한 몸 된 공동체들이 모여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 교회입니다. 그 안에 축복이 엄청난 것인데 다 놓치고 살아간다는 사실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에게 주신 율법을 잘 못 깨달아서 그렇게 된 사실입니다.
율법은 하나님을 만나는 길이 그리스도라는 사실로 인도하는 것이 율법입니다. 우리로서는 우리 가운데 있는 죄로 인한 저주와 재앙에서 근본적으로 빠져 나올 수 없다는 사실을 근본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율법입니다. 결국은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신 그리스도를 붙잡도록 하는 것이 율법이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교통법규가 왜 있습니까? 법규가 있어야 위반했는지 그렇지 않은지의 여부를 알 수 있습니다. 법규가 있어야 위반사항에 따라 인도받는 것 아닙니까? 거울이 있어야 거울을 보며 내 얼굴에 뭍은 것을 볼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율법을 주신 것은 지키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그 율법을 통해서 우리 인생의 문제를 해결한 그리스도를 붙잡으라고 주신 것입니다. 이 사실을 모르니 유대인들이 실패했고 성도들이 실패하고 있는 것입니다. 율법은 나쁘거나 잘 못된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로 저와 여러분을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율법을 가지고 옛 계명·옛 언약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옛 계명과 옛 언약 속에 속해 있는 저와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새 계명을 주셨는데, 그 새 계명이 옛 계명과 옛 언약에서 예표하는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가 새 계명입니다. 예수께서 하신 일이 새 계명이며 그리스도의 일입니다. 그래서 새 계명을 가진 저와 여러분은 옛 계명과 율법 속에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곳에서 빠져 나왔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이 바로 그리스도의 일인데, 그 일이 바로 새 계명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의 일을 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을 떠난 문제를 해결했다는 말입니다. 죄로 인한 저주와 재앙의 문제와 사단으로 말미암은 영적인 문제를 해결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왕·제사장·선지자로서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이 무엇이냐? 새 계명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여러분, 새 계명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는 율법이 폐하여 진 것이 아니라 율법이 완성되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요19:30에 “다 이루었다” 하셨습니다. 모든 율법을 십자가에 못 박히시며 완성했다는 말입니다. 분명히 기억하실 것은 폐한 것이 아니라 모든 율법을 완성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우리는 율법을 완성하신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힘으로 율법이 지켜질 수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율법을 완성하신 예수님께서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여기서 말하는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은 귀신 들린 사람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방종교인들도 사랑합니다. 교회들도 많은 사랑을 부르짖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랑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무슨 말입니까? 창세기 3장의 근본문제와 저주·재앙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가지고 예수님의 사랑 곧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사랑을 이루시기 위해서 친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 사건이 바로 예수가 그리스도 되신다는 사건입니다. 그 사랑을 보여주셨는데 그 사랑이 저와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창세기 3장의 문제와 근본문제, 저주와 재앙의 문제를 해결하는 예수님의 사랑을 하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가 사로 사랑하라”
여러분,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며 당한 우리의 인생의 문제가 무엇인지 안다면 서로를 사랑하라는 말씀의 깊은 뜻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이 이 땅을 살아가면서 당하는 문제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떠나서 저주와 재앙가운데 있고 사주·팔자·운명가운데 붙잡혀 있는 것이 우리 인생의 문제입니다. 그 영혼의 소속은 어디에 있습니까? 요8:44에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 났으니” 영혼의 소속이 마귀와 사단의 소속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죄가 있는데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원죄 사건으로 말미암아 이 땅 모든 인생들이 실패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은 무엇이냐? 이 원죄를 해결하는 것이 복음입니다. 이 영혼의 신분을 바꾸는 것이 복음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저주와 재앙 가운데 있는 인생이 하나님을 만나고 누리는 것이 복음입니다. 이 사실을 알지 못해서 인생들이 결국, 원죄와 사단의 손과 하나님 떠난 문제로 인해 계속적 저주·재앙을 받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소속이 마귀에 소속되었기에 하나님을 섬기고 경배해야 하는데 하나님을 찾을 수 없어서 우상숭배하고 있습니다. 우상숭배의 문제점은 그 배후에 귀신이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우상숭배 할수록 마음과 육신에 고통당하고 이상한 일이 터지고 정리될 듯하면 또 사고가 터지는 등, 일이 안된다고 하는 분도 있는데 그렇습니다. 잊어버릴만 하면 또 사건이 터집니다. 당연합니다. 후손들에게 물려주게 되어 있는데 이것을 해결하는 길이 복음입니다. 우리가 이 속에 있었고 지금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속에서 빠져나왔지만, 이 속에서 빠져나오는 창세기 3장의 근본문제인 저주와 재앙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전달하고 가르치는 것이 “서로 사랑하라” 이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를 바로 알고 누리면서 그 그리스도 복음을 전하는 것이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세상에는 이 사랑이 없어서 문제가 옵니다. 가정의 문제도 이 사랑이 없어서 부모와 자식 간의 문제도 이 사랑이 없어서 문제가 옵니다. 애석하게 교회 안에서도 이 사랑이 없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창세기 3장에서 빠져나오는 답과 비밀을 몰라서 이 땅에 모든 현장에 문제가 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이 사랑을 회복하시길 원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세 가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번 화요일 창원지역집회 때 나온 메시지였습니다.
여러분, 먼저 다른 사람을 살리기 전에 복음 앞에 나 자신을 세우고 나 자신을 살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디서 전도할 것인가? 그 이전에 나를 전도하면 다른 사람이 전도 되게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저와 여러분이 완전 복음 앞에 무릎 꿇으면, 그때부터 하나님께서 문들을 열어 가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자신을 살리는 인생캠프. 자신을 살리는 비밀, 무엇보다 시급한 것이 이 부분입니다. 우리 가정은 남편·아내·자녀만 되면 된다고 하는데 천만에요. 시급한 것이 나 자신만 되면 됩니다.
창1:2에 보면 흑암과 혼돈과 공허함 속에 “빛이 있으라” 했습니다. 그 빛은 요1:11에 보면 그리스도라 했습니다. 예수 안에 생명이 있었고 각 사람에 비취는 빛이라 했습니다. 그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했습니다. “빛이 되라” 하시지 않았습니다. 저와 여러분을 살리는 것입니다. 나를 살리는 것이 인생캠프입니다. 벧전2:9에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했습니다.
바로 나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나를 복음 안에서 나를 세우는 것이 인생캠프입니다. 문제와 사건과 어려움이 있습니까? 불신자는 하나님을 바라 볼 수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복음을 주셨기에 하나님 바라보면 하나님이 손을 들어 원수와 대적을 멸하시겠다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마음과 생각과 영혼 속에 복음으로 가득차게 하옵소서” 이것이 인생캠프입니다. “나의 기도와 인격 속에 복음으로 가득 채워지게 하옵소서” 누가 뭐라해도 우리 자신이 먼저 복음 앞에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안에 복음이 아닌 다른 것으로 가득 채워져 있으니 모든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가정의 싸움도 다른 것으로 가득 차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기도도 오직 복음을 누리는 기도, 다른 것을 아무리 많이 누려도 흑암의 세력은 안 꺾입니다. 오직 복음을 누리는 기도만이 흑암의 세력을 꺾을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나의 인격 속에 복음으로 가득 채워 질 수 있도록. 그렇게 되면 나 자신을 살리는 인생캠프가 되어지고 그렇게 되면 따라오는 것이 다른 사람을 살리는 전도캠프의 축복이 누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다른 사람과 지역과 전체가 보입니다. 전체 속에서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것과 내가 들어갈 현장과 전체 속에서 다른 사람의 시간표가 보여집니다. 거기에 답을 줄 수 있습니다. 그 속에 제자가 따라오게 되어있고 제자를 통해 시스템이 확립되게 되어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오는 응답이 지교회의 응답이 오게 됩니다. 이것은 결과로 오는 것입니다.
나를 살리고 현장을 보고 제자를 보고 다른 사람에게 답을 주면 거기에 따라 오는 지교회의 응답을 주십니다. 그다음 중요한 것은, 인생캠프 보다 더 중요한 캠프, “더 큰 캠프”가 있습니다. 나 혼자 있을 때, 정말 복음을 누리는 것입니다. 혼자 있을 때 말씀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캠프 중에 캠프입니다. 그리고 비밀리에 여러분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비밀리에 하고 있는 그것에 만족이 있습니까? 행복과 기쁨이 있습니까? 비밀리에 하는 그것을 하나님이 보셔도 괜찮은 것입니까? 비밀리에 하는 그것에 참 행복이 복음이고 그리스도 때문이라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새 계명이 너희에게 주노니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그러면서 35절에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그렇다면 오늘 34절에 서로 사랑하란 사랑이 어떤 사랑인가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전도와 선교와 복음 전파로 열매 맺어지는 사랑. 그것이 바로 참된 사랑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사랑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먼저, 여러분 자신들을 살리기를 바랍니다. 인생캠프의 축복이 되어지면 다른 사람을 살리는 전도캠프의 축복이 이뤄질 것입니다. 그리고 더 큰 캠프의 축복인 혼자서 비밀리에 복음을 누리고 복음 때문에 행복하게 됩니다. 여기에 모든 재앙과 흑암이 물라나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기도 안 해도 되어지는 응답들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이것이 바로 세계를 변화시킬 비밀입니다. 모든 현장을 변화시킬 비밀입니다. 그 사랑이 창세기 3장의 근본문제인 저주와 재앙의 문제를 해결하는 사랑인 것입니다. 이 사랑이 없어서 현장이 방황하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조차 이 사랑이 없어서 방황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이 답을 주셨습니다. 이 답을 가지고 모든 현장을 살리는 축복된 한 주간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옛 계명 옛 언약 속에 있지 아니하고 새 계명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참된 구원의 축복 가운데 있게 됨을 감사함을 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주시는 참된 생명 얻는 사랑, 오늘 이 자리에 앉은 주의 종들을 통해서 이 생명 있는 사랑이 모든 현장에 증거되어 짐으로 현장을 정복하는 역사가 있게 하여 주옵소서.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서로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우리 인생에 근본문제·저주와 재앙의 창세기 3장의 문제를 해결한 이 사랑이 우리에게 필요함을 깨닫게 하시고 이 사랑이 현장에 필요함을 알게 하시고 이 사랑 가지고 현장 나가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옵소서.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서론 : 하나님과 하나 된 우리가 복음으로 가정이, 교회가 하나 되어지는 응답 가지고 현장을 살리는 축복이 개개인에게 이뤄지기를 축원합니다. 요13장에는 세상 살리는 중요한 비밀 2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가 ‘세족식 사건’으로 복음 가지고 복음의 손으로 섬기는 것이 현장 정복의 열쇠입니다. 두 번째로, ‘서로 사랑하라.’입니다. 성육신하시기까지 섬김과 대속의 죽으심(막10:45)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대속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우리 안에 살아 계시고, 인도하시며, 역사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대신 탄식함으로 간구하고 계시는 것(롬8:26)이 세상 살리는 비밀입니다.
1. 옛 언약(계명)에 대한 이해
1) 옛 계명(율법)을 가지고 인간의 문제 해결할 수 없습니다.
2)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목적은 지키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완전한 의의 표준과 완전한 법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3) 율법 통해 죄인인 것과, 우리가 구원받을 백성임을 알고 그리스도 바라보도록 율법을 주셨습니다.
4) 율법이 나쁜 것은 아니나, 사단이 율법주의를 가지고 인간을 실패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5) 여기서 주님의 관심인 세계 복음화와 역행하는 선민의식, 유대, 바리새 사상이 나왔습니다.
6) 율법을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될 때, 율법을 지킬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7) 사단의 궤계와 율법주의에 빠져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부담으로 느끼며 고통당합니다.
8) 하나님을 만나는 길이 그리스도임을 인정하고 보여줌으로 모든 문제 해결자 되신 그리스도를 붙잡게 하는 것이 바로 율법입니다.
2. 새 계명은 곧 예수 그리스도
1) 예수께서 하신 일이 그리스도의 일인데 이것이 새 계명입니다.
2) 그리스도의 일이란, 하나님 떠난 문제와, 죄로 인한 저주의 문제, 사단으로 인한 영적 문제를 해결하신 왕, 제사장, 선지자가 되신 것을 의미합니다.
3) 새 계명되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율법이 폐하여진 것이 아니라, 율법이 완성되었고, 모든 인생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4) ‘서로 사랑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창3장의 근본 문제와 저주의 문제에서 빠져나오게 하라는 것입니다.
5) 그리스도의 복음을 바로 알고 누리면서, 그것을 전하는 것이 바로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3. 이 사랑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1) 다른 사람 살리기 전에 복음 앞에 나를 세우고 나 자신을 살려야 합니다. - 인생캠프
(1) 흑암, 혼돈, 공허(창1:2) 가운데 있는 내게 먼저 빛이 임해야 합니다.(창1:3, 요1:11, 마5:14 벧전2:9)
(2) 문제와 사건 앞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3) 마음과, 생각, 기도, 인격 속에 복음이 가득 차는 것입니다.
2) 나 자신이 살아나면 다른 사람을 살리는 전도 캠프의 축복이 누려집니다.
(1) 다른 사람과 지역과 전체가 보입니다.
(2) 다른 사람의 시간표가 보여집니다. - 그것에 답을 주고 제자를 세움.
(3) 그 결과, 지교회의 응답이 오게 됩니다.
3) 더 큰 캠프가 있습니다.
(1) 나 혼자 있을 때, 정말 복음을 누리고, 말씀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2) 비밀리에 무엇을 합니까? 비밀리에도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참 행복이 복음, 그리스도, 하나님 때문이라면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35절)’ - 전도와 선교, 복음 전파로 열매 맺는 사랑. 이것이 참된 사랑입니다.
결론 :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이것이 바로 세계 변화시키고, 모든 현장을 변화시키는 비밀입니다. 창3장의 근본문제를 해결하는 것, 이 사랑을 통해 방황하고 죽어가는 모든 현장 살리는 축복된 한 주간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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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3 | 우리에게 주시는 영원한 메시지 | 고전15:1-11 | 2025-04-2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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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1 | 날마다 영적싸움에 승리하라 | 삿7:1-8 | 2025-04-0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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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6 |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 삿1:1-7 | 2025-03-0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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