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먼저된 자와 나중된 자
2007-07-08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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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할렐루야! 평강하십시오. 안녕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활짝 웃으면서 인사하십시오. 우리 생활이 늘 어려움에 시달리다보니까 웃는다는 게 찡그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되면 진짜 웃는 모습을 보게 될 겁니다. 시달리는 모습은 아무리 잘 웃고 싶어도 잘 안 됩니다. 주 안에서 활짝 웃으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신학교 다니는 동안 제게 아주 가까운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상당히 가난했으나 하나님 은혜로 교회를 통해 신학을 다 하게 되었습니다. 신학교 다니는 방향이 비슷해서 같이 다니기도 했습니다. 그 사람이 저보다 한 해 선배인데 신학교를 졸업할 때에 일등으로 졸업했습니다. 그러나 교계의 부정으로 다른 사람이 일등이 되고 이 사람은 총회신학교에 들어가지 못하고 일반대학에 편입해 들어갔습니다. 상당히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신학교 할 동안 이 사람은 개척을 해서 800명 교인까지 모이고 교회도 아름답게 지었더라고요. 신학교 다니는 동안에 이 사람이 내게 좋은 책을 하나 소개했습니다. "율법이냐 은혜냐"라는 책을 소개했습니다. 저도 단숨에 그 책을 읽고 지금까지 상당한 영향력을 받았습니다. 똑같이 책을 읽고 난 후에 이 사람은 어떤 영향을 받았느냐하면 타락이라고 하면 좀 이상하지만 너무 자유에 관점을 두어서 헌법과 율법을 다 내팽개치고 너무 자유롭게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합동측인데도 잘 맞지 않게 되었습니다. 요즘 같으면 주일날 주례한다고 나쁠 것은 없는데, (당시에) 주일날에도 주례를 하러 돌아다녔습니다. 그런 일들로 자연스럽게 당회와 사이가 멀어져서 당회가 그 목사를 쫓아냈습니다. 천 명 가까이 교인을 일으키고 자기 손으로 교회를 짓고서도 너무 교리가 안 맞으니까 당회의 배척을 받고 쫓겨났습니다. 이 사람하고는 계속 편지연락을 했는데 그 일 후에는 어디로 갔는지 지금까지 소식이 없습니다.
오늘 말씀을 전할 내용이,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될 수도 있다고 했는데, 신앙의 본질을 잃으면 아무리 노력하고 앞서가는 것 같아도 그것은 앞서가는 게 아닙니다. 교인 생활에도 말씀 따라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메시지 중심으로 나가야지 자기 생각과 중심으로 나가면 불신앙입니다. 지난주에도 말씀한 것처럼 불신앙은 언제 망해도 망합니다. 앞서 갈수가 없습니다. 제가 감사한 것은 어릴 때부터 장로교 교의에 완전히 찌들려 산 것입니다. 특히 어머니의 신앙교육은 철저했습니다. 그래서 참으로 복음에 대해 잘 설명한 "율법이냐 은혜냐"라는 책을 똑같이 읽었는데 한 사람은 타락해버리고 한 사람은 복음의 본질을 더 잡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장로교에서 자라고 겉으로라도 말씀 중심으로 자란 것, 장로교의 헌법 속에서 자란 것이 늘 감사했습니다. 우리 교단은 여러 교단에서 몰려온 분들로 모여 있는데 요즘 그 분들 중에서 교의신학 강의를 들을 때마다 굉장히 갈등하고 류목사님이 순수한 복음에 대해 말할 때도 쉽게 이해를 잘 못하는 것을 봅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속으로라야 어떻든 겉으로라도 말씀의 절대성,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 교리 속에서 자라고 그런 메시지를 받을 때 갈등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너무 감사합니다.
순수 복음을 가르칠 때 잘 이해를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어릴 때 받았던 메시지가 늘 우선이 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잘 아는 친구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이 사람은 감리교에서 자랐습니다. 「신인협동설」을 주장하는, 인간의 자유를 상당히 강조하는, 장로교와는 다른 교리 속에서 어릴 때에 자랐습니다. 신학교를 나오고 목사까지 되어도 "율법이냐 은혜냐"라는 책을 읽을 때 감동받는 동시에 어릴 때 받았던 자유신학으로 돌아갔습니다. 인간 자유를 강조하는 것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감리교가 좋다 나쁘다 말하는 게 아니고 장로교와 근본적으로 차이 나는 것이 인간 의지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구원에도 인간의지를 강조합니다. 학생들이 어릴 때부터 장로교 교의 속에 있다가 밖에 나가면 이런 논리에 부딪힙니다. 여러분은 장로교 교리에 젖어있는데 어릴 때는 상당히 이성적이고 합리성이 많기에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상당히 갈등하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구원론에 대해서 조금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장로교에서는 이라 합니다.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하나님의 확실한 인도를 받는 예정론입니다. 우리는 무조건 하나님이 불러주셨습니다. 우리 자신이 구원을 선택하고 하나님을 선택할 수 있는 기능이 전혀 없습니다. 입니다. 그런데 을 조금 자유롭게 해석하는 사람은 예정을 어떻게 설명하느냐하면 하나님이 잘 믿을 사람을 아시고 예정했다고 합니다. 이를 두고 이라 합니다. 우리는 미리 알 것도 없습니다. 인간은 똑같이 하나님을 떠났고 모릅니다. 전적으로 부패했습니다. 이것이 이해 안 되면 장로교의 근본이 이해가 안 됩니다. 합리성이 있는 이 들어오면 흔들립니다. 잘 믿을 사람은 원래 없습니다. 100% 완전 타락했습니다. 하나님도 모르고 못 느끼고 옳게 섬기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 의지와 됨됨이와 상관없이 무조건 하나님의 절대 주권 안에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지 우리가 하나님을 찾아가는 게 아닙니다. 찾아갈 힘이 없습니다. 엡2.. "죽었던 너희를"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미 죽었는데 하나님이 살렸습니다. 구원의 서정을 보면 하나님이 절대주권으로 먼저 불러내고, 그 다음에 중생시킵니다. 중생에 눈을 떠야 잘못되었는지 잘 되었는지 알지요. 회개케 하시고 믿음 주십니다.
성경에는 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고 쉽게 판단을 못합니다. 장로교에서 계속 자라온 제 경우는 교의를 반복해서 듣는 가운데 제 사상이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처음부터 장로교에서 자랐다면 별 갈등이 없을 겁니다. 요3:16에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믿는 자"는 하나님이 택하시고 계획한 "믿는 자"로 이해합니다. 아무나 "믿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일찍이 계획하신, 창세 전에 예정하신 그 사람을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를 주셔서 십자가의 피로 말미암아 정결케 하시고 구원 받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장로교의 교리입니다. 누구든지, 어떤 사람도 스스로 예수를 믿고 구원 받을 능력이 없습니다. 아무리 성품이 좋아도 예수 믿는 데는 똑같습니다. 하나님이 은혜 주셔서 선택하여 불러주시지 않으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여기에 앉으신 분들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아멘 할 수 있는 사람은 특별한 하나님의 계획의 성취이지 내 뜻대로 된 것이 아닙니다. 내 뜻대로 되면 참 좋겠는데 그렇게 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일찍 예정하시고 선택한 사람을 때가 되매 이미 부르신 그 뜻을 따라서 예수 믿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고 말씀 붙들게 하시고 구원 받게 하셨습니다.
조금 전에 설명한 것처럼 만인구원설은 쉽게 이야기하면 누구든지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조건이 없습니다. 장로교의 예정론은 반드시 하나님이 계획하신 자라야 선택 받았고 구원 받을 수 있음을 말합니다.
그런데 요즘 와서 이 두 가지 교리를 합쳐서 주장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바로 베뢰아입니다. 베뢰아에서 구약 시대는 완전히 선택이고, 신약 시대는 선택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고 그 외의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합니다. 만인구원설과 예정론을 합쳐서 교리를 만들어냈는데 자신들이 창조해낼 수는 없고 하니까 구약시대에는 완전선택, 신약시대에는 은혜와 선택이 합쳐서 구원 받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고후6:2에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라고 했는데 사실은 아무에게나 이게 된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택한 백성들에게 됩니다.
그러면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지금까지 말씀한 것처럼 우리 교회에서는 예정론이란 말은 안했지만 하나님이 예정하신 계획이 성취된 분들이 여기 앉아있습니다. 그냥 예정된 것이 아닙니다. 류목사님 표현처럼 펜대를 잘못 놀려서 우리 이름이 들어온 게 아니고 창세 전․영원 전부터 예정하신 겁니다. 여러분이 구원 받는다고 할 때 잃은 자로 비유했습니다. 드라크마 비유, 탕자 비유 속에서 돌아왔을 때 얼마나 하늘에서 기뻐했다고 합니까? 하나님이 계획이 있기에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하시려고 불가항력적으로 은혜를 주신 겁니다. 예수 안 믿고는 안 될 수밖에 없도록 하나님이 불가항력적 은혜를 주십니다. 어떤 이는 잘 돌아오는데 어떤 이는 잘 안 돌아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돌아왔습니다. 이게 드라크마 비유입니다. 하늘에서 그렇게 기뻐하시고 잔치를 베푸셨습니다. 여기 오신 분들은 하나님이 그렇게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다 돌아왔을 때 하늘에서 큰 잔치를 베푸신 분들입니다. 저도 제 과거를 생각해 보면 예수 믿고 돌아온 것이 기적입니다. 제게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은혜 주시고 계획한 자를 찾으시는 불가항력적 은혜 속에서 돌아온 것이지 내 힘으로 돌아온 것은 절대 아닙니다. 제가 마음이 좋아서 예수를 믿었다고 추호도 생각지 마십시오. 마음은 똑같습니다. 더럽고 추한 마음입니다. 올 수도, 깨달을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 속에서 택하시고 부르시고 예정하셔서 때가 되매 돌아왔습니다. 이게 우리의 신앙고백입니다.
돌아오기 전에는 혹시 합리적으로 따져 만인구원설로 생각할 수도 있으나, 돌아온 내 자신을 보면 절대로 아무나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게 됩니다. 개인적 체험으로 생각하면 하나님이 예정하셨고 절대주권 속에서 나를 돌이켜 주셔서 돌아왔습니다. 절대 내 힘과 내 생각으로 돌아온 것 아닙니다. 저는 장로의 아들이었지만 내 생각과 힘으로는 타락만 했지 돌아올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돌아오지 않으면 안 될 수밖에 없도록 돌이키셨습니다. 그리고 택한 백성은 돌아오고, 신앙생활 할 수 있기까지 보호하십니다. 복음 받고 구원 받아 천국 가는 것도 은혜로 됩니다.
만인구원설을 주장하는 교단은 감리교, 성결교, 순복음 교단입니다. 장단점이 있는데 이런 교단들은 굉장히 열심히 믿습니다. 내가 열심을 내어야 구원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 장로교인들은 구원은 이미 받았고 지금 죽어도 천당 가고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그래서 순복음과 장로교는 예배 분위기가 다릅니다. 특히 우리 교회는 더한 것 같습니다. 확신은 있는데 아멘소리도 잘 안 합니다. 예배 분위기가 조용합니다. 우리 교회 와서 메시지 전하고 가신 분들이 아멘 소리를 안 해줘서 메시지 전하기 참 어렵다고 합니다.
그러나 장로교는 문제에 부딪혔을 때는 못 말리는 사람이 됩니다. 교리 자체가 장로교는 떠들 필요가 없습니다. 순복음교단 등에는 감정적인 방향도 많습니다만 장로교는 강점이 감정보다도 성경중심입니다. 성경은 장로교식으로 받아야 성경해석도 정확하고 바로 됩니다. 이렇게 장단점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오늘날까지 나를 지탱한 것은 하나님의 주권이며 절대적인 예정론이지 다른 게 아닙니다. 저는 장로교 교단에서만 그 교리로 컸습니다. 장로교 교단의 메시지는 들어도 들어도 좋지 나쁜 게 없습니다. 그러나 다른 교단에서 온 분들의 모습을 보면서 참 어렵다는 생각을 가집니다.
특별히 민병완 목사님은 완전히 장로교식 구원론입니다. 완전한 예정과 선택 중심입니다. 그런데 그 분이 총신에서 강의하면 특히 감리교, 순복음 교단에서 오신 분들이 질문이 너무 많습니다. 예전에는 강의 시간에 손들고 질문을 많이 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자기들은 그런 내용을 처음 들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교단에서 자랐느냐에 따라 생각, 특히 신앙노선이 달라집니다. 우리 교회에서 계속 메시지 듣고 죽 자란 분들은 만인구원설에 관한 이야기를 다른 데서 듣는다면 전혀 그게 옳게 들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이야기를 계속 하느냐 하면 어린 아이들은 몸에 밴 게 아니기 때문에 만인구원설이 더 합리적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요3:16만 해도 ‘누구든지 믿으면 구원 받는다고 했지 계획된 사람들만 믿으라고 한 것이 아니지 않느냐?’ 하면 아이들은 이렇게 합리적인 쪽으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원래 말씀이란 것이 일반적인 합리성에 맞춰 나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과 연결되는 데는 장로교인들이 성경해석은 훨씬 앞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좀 알아야 될 것이 진짜 성경에 나타난 구원이 무엇인가입니다. 물론 제가 장로교에서 자랐지만 성경에 나타난 것에 체험이 되어야 영원히 흔들리지 않습니다. 어떤 말을 들어도 성경에서 체험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칼빈주의 5대 교리나 예정론을 말하면서 늘 성경 배경을 말씀했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밖에 나가서 훌륭한 사람이 합리성을 가지고 만인구원설을 말하면 넘어갈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성경에서 장로교 교의를 들었던 여러분들이 어릴 때부터 이것이 성경으로 확인되고 체험되면 흔들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나타난 구원을 조금 말씀하려 합니다.
성경 엡2:8에는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믿음만 가지고도 구원 받는 게 안 됩니다. 루터는 "만약 사람이 믿음 가지고 구원 받아야 한다면 구원 받을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믿을 수 있도록 하나님이 불가항력적 은혜를 주셔야 합니다. 내가 잘 믿으려고 해도 믿어지지 않으면 할 수 없습니다. 여기 앉아 있는 분들은 전부 은혜를 받았습니다. 1차적으로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내게 구원의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제가 지난날의 자살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어제까지 안 믿어지던 지옥이 강물에 뛰어내리려는 찰나에 믿어졌습니다. 도저히 죽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제까지 없다고 고함지르던 내가 지옥이 믿어지고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 믿어져야 믿는 것입니다. 제가 얼마나 칼빈교리를 열심히 받고 공부했습니다만 믿어지지 않으니까 소용이 없었습니다. 순간 믿어지니까 제 인생이 바뀌어졌습니다. 지금도 어떤 상황이든지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는 시간이 있습니다. 때가 되면 믿어집니다. 믿지 않고는 안 되도록 성령이 인도하십니다. 이를 가지고 불가항력적 은혜라고 합니다. 그 은혜로 여러분이 여기 앉아있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 은혜 입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기에 너무 귀중한 사람입니다. 지금은 이상한 것일지 몰라도 언젠가 복음에 바로 뿌리내리면 하나님은 엄청난 역사를 이루십니다. 열심 있다 없다가 문제 아니라 정말 순수한 복음이 들어가고 복음의 역사 속에 확실하게 서게 되면 열심은 저절로 나옵니다. 그것은 밖으로 튀는 열심이 아니고 속에서부터 샘물처럼 솟아나오는 열심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요즘 우리가 기도하며 훈련받고 있는데 성경에서 말하는 이 사실이 내게 체험되는 귀한 기회로 삼기 바랍니다. 그래서 훈련을 전혀 못 받는 사람은 이 체험이 잘 안되고 옛날 체질을 그대로 갖고 있기에 신앙이 잘 자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중직자를 비롯해서 앞장 선 사람은 누구든지 훈련을 굉장히 중요시하는 겁니다. 앞으로도 우리 교회에서 어떤 훈련이든 계속 되어야 체질이 바뀌어 집니다. 조용히 신앙이 뜨거워지게 됩니다. 이게 안 되면 항상 내가 갖고 있던 옛날 생각 때문에 진전이 잘 안됩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 받는데 그 믿음은 은혜 주셔야 합니다. 이것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 다음에 성령이 아니고는 예수를 진짜 주인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고전12:3에 보면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내 주인으로 받습니다하고 고백하는 사람은 그 속에 반드시 성령이 역사하셨습니다. 성령이 내 안에 있는지 없는지 알려면 간단합니다. "예수님이 나의 주인입니다"라는 믿음이 와 있다면 성령이 내게와 계시는 겁니다. 절대로 예수를 주라 할 수 없다면 곤란합니다. 가룟유다가 됩니다. 가룟유다는 예수를 주라 시인한 적이 없습니다. 예수가 주시라고 믿어지면, 시인되면 구원 받은 겁니다. 성령의 역사 없이는 그렇게 될 수가 없습니다. 나도 모르게 성령인도 받으려고 노력하기도 하는데 이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또 문제가 엡2:8-10말씀처럼 앞에 것이 다 인정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이 체험된다면 더욱 확실한 신앙으로 뿌리내리게 됩니다. 이 점이 간단한 것 같지만 하나님의 은혜라는 인식이 안 되면 감사가 안 나옵니다. 신앙생활에 감사가 없다면 은혜가 떠난 겁니다. 내가 어떤 상황에 있든지 구원의 기쁨과 감사는 은혜로 오는 겁니다. 그러면 거기서 모든 것이 다 나오게 됩니다. 직분에 대한 감사, 교인 된 것에 대한 감사, 구원 받은 감사가 다 거기서 나옵니다. 어떤 행동을 취하거나 열심히 해서가 감사가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조용히 내 안에 이 축복과 역사가 솟아오르면 생수가 되어 내 중심에서 감사가 강같이 솟아나옵니다. 금식을 한 경우에도 기쁨이 순간순간 옵니다. 그런데 그것을 안 해도 내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정말 중심에 은혜로 모셨다는 사실을 깨닫고 알면 생활 속에서 늘 감사가 나오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흔들리지 않습니다. 정말 구원에 대한 감사가 은혜로 주신 것임을 알게 되면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 때부터 뜨겁게 믿으라고 할 필요도 없습니다. 저절로 뜨거워집니다. 저절로 확신이 생기고 어느 문제에도 감사하고, 어떤 사건에도 기도하면 들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러면 흔들리지 않고 정말 믿음의 뿌리를 바로 내릴 수 있습니다. 특히 어린 학생들은 이 사실을 확인하는 만큼 다른 것이 들어와도 흔들지 못합니다. 확신과 믿음과 감사가 어우러져서 정말 그의 삶은 기쁨의 삶과 확실한 승리로 인도 받을 것입니다. 승리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부족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은혜를 주셔서 구원에 대한 감사와 기쁨으로 인도받게 하시고, 정말 하나님이 계획하신 것을 말씀을 통해서 확인하고 기뻐할 수 있는 눈을 열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어릴 때부터 말씀의 절대성과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 교리가 바르게 정리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틀린 교리임에도 불구하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것처럼 보일 때 갈등하게 됩니다.


1. 구원론에 대한 바른 이해 - 예정론과 만인구원론
1) 예정론
① 주장: 인간은 전적으로 부패했으나 무조건 하나님의 절대 주권 안에서 선택하여 부르셨다.
② 교단: 장로교
2) 만인구원론
① 주장: 누구든지 구원받을 수 있다.
② 교단: 감리교, 성결교, 순복음
③ 그러나 요3:16에서 "믿는 자"는 하나님이 일찍이 계획하신 자입니다.
3) 베뢰아는 이 두 가지 교리를 합쳐서 주장합니다(그러나 틀린 교리임).
4)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 속에서 택하시고 부르시고 예정하셔서 때가 되매 돌아왔습니다. 이것이 바른 신앙고백입니다.



2. 성경에 나타난 구원
1) 엡2:8 - 하나님의 불가항력적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이 생겨납니다.
2) 고전12:3 - 성령의 역사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主)시라 시인하고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3)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이 체험되면 더욱 확실한 신앙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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