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누가 내 모친이냐?
2006-11-19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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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할렐루야! 인사하겠습니다. 평강하십시오. 안녕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오늘 추수감사절입니다. 도시 추수감사절은 별로 표가 안나는데 농촌에서는 사과도 무도 고추도 별 것을 다 갖다 놓는데 들어가면 풍성한 추수감사절 냄새가 납니다. 추수감사절을 맞아 하나님 앞에 음양으로 몸과 물질로 헌신하는 기회가 되고 있습니다. 추수감사절 찬양을 들으면서 저런 곡도 있었나 싶을 정도로 민요풍 곡에 어깨가 들썩였습니다. 가만히 청중들의 얼굴들을 보니 춤 잘 추는 권사님도 가만히 앉아계시더라고요. 오늘 너무 감사하고 찬송하는 기회가 된 것을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진짜 감사가 어디서 나올 것인지 본문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제목이 "누가 내 모친이냐?"입니다. 예수님께서 상당히 매정한 말씀으로 하셨습니다. 어떤 면에서 중대한 선언이며 위대한 교리가 숨겨져 있음을 봅니다. 적어도 구원 역사에서는 육신의 어머니이지만 예수님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육신의 모친과 형제들도 구원 받지 못하면 예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다시 말해 여러분이 교회에 다니며 복음을 듣고 구원의 축복을 받았습니다만 여러분 형제자매와 부모도 구원 받지 아니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형제자매와 부모가 될 수 없다는 선언입니다. 그래서 우리 기도 중 가장 큰 기도제목은 안 믿는 부모를 예수 믿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안 믿던 부모님이 믿고 돌아가셨다면 정말 이불 덮었고 웃고 싶은 생각이 나지 않습니까. 밖으로는 참 그러지 못해서 슬픈 척하지만 그 사람에게는 한없는 감사와 기쁨이 나옵니다. 그래서 제일 큰 효도가 부모님으로 예수 믿게 하는 것이며 가장 큰 형제간의 사랑이 내 형제가 예수 믿도록 하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 속에서 멀리서 예수님을 보고 싶지만 공생애 나간 예수님, 많은 무리에 옹위되어 있는 예수님을 육신의 친모친과 형제들도 싸늘하게 누가 내 모친이며 형제냐 여기 있는 구원 받는 내 백성, 하나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백성들이 내 모친과 형제라고 했습니다.
눅8:20-21에 "혹이 고하되 당신의 모친과 동생들이 당신을 보려고 밖에 섰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 모친과 내 동생들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라 하시니라" 구원 역사와 복음 속에 서지 아니하면 육신의 형제와 자매는 소용없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그렇게 정의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2:3에 보면 혼인 잔치에 참여한 예수님이 포도주가 모자란다는 예수님의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포도주가 모자란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구원 역사에 있어서는 친어머니 마리아도 관련되는 것이 아닙니다. 똑같은 여자고 피조물이며 인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 시간에 가장 의미있는 혼인잔치 예식 순간에 어머니의 청에 대해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고 확실히 대답하신 것을 봅니다.
이 땅에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는 수많은 이론들이 많이 나왔어요. 특히 옛날 구교회에서 인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제시한 방법 중에 마리아를 무죄인으로 만들고 마리아 승천설까지 만들어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께보다 마리아께 기도하는 게 훨씬 바르고 효과 있다고 합니다. 성당 가보면 마리아에게 기도하는 게 대부분이며 예수님께 기도하는 게 별로 없습니다. 가톨릭 병원에 입원해 있는 중에 그들이 참 정직하고 깨끗하였습니다. 그러나 전혀 예수를 믿지 않고 기도도 늘 마리아에게 합니다. 예수님이 효성이 지극한 사람이기에 어머니에게 부탁하면 절대 거절치 않고 들어주시기에 마리아에게 기도하는 것이 효과적이라 합니다. 참 어리석습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이 마리아와의 관계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구원 역사에서 당신은 일반 여인일 뿐이지 아무런 관계없습니다. 구원 역사에는 육신의 어머니와 형제는 상관없습니다. 다만 복음 속에 세워진 여러분과 저들을 향해 이들이 내 어머니와 형제들입니다"라고 했습니다. 할렐루야. 신나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낳지 않아도 피가 섞이지 않아도 좋습니다. 성령으로 잉태되었으니까. 예수님을 영접하고 내가 복음 속에 서는 순간에 예수님과 육신의 관계 이상으로 형제자매가 된다고 했습니다. 육신 관계를 가지고 구원 역사에 대입시키려 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천주교가 참 잘못된 부분이 이런 것입니다.
류목사님에게 누가 천주교에도 구원이 있느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거기에 대해 답하시길 "천주교 교리대로 믿으면 구원이 없습니다. 천주교 다니는 사람이 혹 실수해서 성경말씀을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라고 했답니다. 맞습니다. 예수님보다 마리아를 강조한 천주교 교리대로 믿으면 구원을 못 받습니다. 러시아 정교가 98% 정도가 다 예수 믿는 다는 교인이었는데 다 믿었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공산주의가 들어올 때 삽시간에 바뀌었으며 70여 년 동안 공산주의 하에서 완전히 피폐해졌습니다. 지금은 그렇게 핍박했던 기독교를 통해 조금씩 다시 일어나고 있습니다. 러시아 정교회 박물관에 들어갔더니 한결같이 예수님은 어린아이고 머리에 오로라가 조그마한데 마리아는 예수님을 안고 예수님의 배나 되는 오로라로 둘러져 있습니다. 러시아 정교는 복음으로 세워진 적이 없이 거의 마리아 배경입니다. 그러니까 러시아 정교 역시 구교인데 공산주의가 들어오자 복음이 바로 되어 있지 않아서 삽시간에 바뀌었습니다. 70여 년 동안 공산주의 세계에 있다가 완전히 망했습니다. 초기에 러시아에 들어가 보니 공중전화기는 하나도 쓸 게 없었습니다. 그 당시에 러시아의 경제수준에서는 그런 공중전화기 하나 고칠 수 없었습니다. 나가면서 차들이 나란히 주차되어 있는 것을 보았는데 들어오며 보니 타이어는 없고 휠만 남은 것을 보았습니다. 축도 다 빼가버리고 차량 뼈대만 남은 걸 본 기억이 납니다. 빵 하나를 얻기 위해 길게 줄을 서고 얻지 못해 굶고 죽어갔습니다. 요즘은 하나님의 때가 이르러 경제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천주교가 들어가는 곳곳마다 망합니다. 왜입니까? 복음이 아닌 교리가 그렇게 망하게 합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6․25사변이 있을 시기에 필리핀은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국민소득이 높았습니다. 그런데 천주교가 들어가 필리핀을 잡고 있는 동안 한국과 비교가 안될 만큼 완전히 경제가 피폐해졌습니다. 도시 외곽지역으로 나가면 우리나라 60년대 풍경이 펼쳐집니다. 그리고 경제가 성장하고 축복받을 시기였지만 더 못살게 되었습니다. 이런 일이 필리핀 뿐 아니라 남미에 많습니다. 남미에서 잘사는 나라인 칠레를 가보았지만 도시에서 조금만 외곽으로 나가니 우리나라 60․70년대와 같았습니다. 남미에서 제일 잘 산다는 칠레의 수도가 그 지경이며 그 나라의 배경, 남미의 배경이 천주교입니다. 하나님이 김철현 선교사님 통해 남미를 선교하려 하시는데 많은 나라에 복음이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천주교가 남미를 거의 장악하고 있습니다. 김선교사님 이야기로는 그래도 다른 나라보다 복음 전하기가 쉽다고 합니다. 예수 믿냐고 물으면 전부 믿는다하면서 누구냐고 물어보면 모른다고 하지만 전도하려 할 때 거부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천주교 배경에서 사람과 마리아를 우상화한 남미입니다.

어느 누구도, 어느 기묘한 방법으로도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문제 해결의 길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디를 가든지 이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잘 알듯이 유대인들이 율법으로 해결해보려고 노력했지만 자기들도 문제 해결이 안 되면서 이를 후손들에게 강조하는 것을 보며 예수님이 여지없이 책망하셨습니다. 중세에 신비주의로 해결 받지 못했습니다. 중세교회가 뭔가 자기들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산 중으로 들어가고 심지어는 주상(기둥 위)성자 시므온은 40자는 되는 기둥 위에서 수행하며 일생을 살았습니다. 그래도 그의 일생은 늘 문제와 사건에서 떠나지 못했음을 역사는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오늘날 많은 이들이 근본문제 해결해보려고 얼마나 노력하고 있습니까. 저는 뒤를 돌아보며 목회의 과정을 살펴보면 우습기도 하고 처량하고 처참하기도 한 것을 봅니다. 제가 가끔 집사람과 화원 들길을 다녀올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집사람이 광야 모래길을 걸으며 기도했던 걸 이야기합니다. 예전에 거기서 밤새도록 모래 뒤집어쓰며 기도하고 나오고 했습니다. 매주, 어떤 때는 매일 가기도 했습니다. 특히 집사람은 악착같이 따라다녔지만 그래도 문제는 여전히 있었습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복음을 받고 다락방 한 곳을 열고 며칠 가지 않아서 병이 나아버렸습니다. 얼마나 좋아하며 춤을 추던지요. 그렇게 밤낮을 설치며 모래를 덮어쓰고 기도하려 다녀도 안 나가던 병이 며칠 다락방을 하며 예수는 그리스도시라고 며칠 증거했는데 나았습니다. 자신도 놀라며 보니 18년을 괴롭히던 문제가 순식간에 달아나버렸습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시며 모든 문제의 해결자입니다. 금년 가을에도 보니 환절기에도 잘 지내더라고요.
그런데 괜한 걱정을 아직도 합니다. 가끔 밤에 잠못자는 일이 있곤 하는데 오늘도 괴로워하더라고요. 이 시간에도 잘 듣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왜 이 말을 하느냐 하면 사람들이 자꾸 예수님을 모든 문제의 해결자라고 말했음에도 자꾸 문제 속에 빠집니다. 사람들이 구원과 삶을 구별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이것이 구별되지 않으면 구원 받은 자들이 자꾸 다른 상태에 빠집니다. 왜냐하면 일반인들이 말하는 것처럼 예수 믿는 기독교를 종교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고 성도 가운데에도 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고 생명입니다. 종교는 사람의 행위가 기준인데 복음은 하나님의 구원이 기준입니다. 덕을 행하고 공을 세워야 구원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릴 어릴 때는 걸핏하면 지옥 간다고 많이 했습니다. 요즘은 그런 이야기가 통하지 않는 복음시대입니다. 나의 행위와 상태는 다릅니다. 내가 예수를 믿어도 내 행위가 고쳐지지 않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예수 믿고 조용히 사시는 분도 있겠지만, 워낙 성질이 더러우면 행위가 안 고쳐져서 늘 다른 길로, 문제로 빠지는 분도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문제의 해결은 행위가 아니고 상태를 말합니다. 내가 어느 상태에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그 상태에 있다고 행위까지 고쳐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행위와 삶을 혼동해서는 안됩니다. 반드시 성도들은 구원은 행위와는 상관없이 이루어지는 역사로 이해해야 합니다. 내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오는데 이 믿음조차도 하나님이 은혜로 주셔야 합니다. 그래서 엡2:8에 보면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할렐루야. 우리에게 은혜로 온 것입니다. 나의 의지, 생각과 상관없이 은혜 입습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지만 바꿔지지 못한 옛날 내 체질 때문에 내 행위는 옛날 그대로일 수 있습니다.
제가 교인들을 보며 느끼는 것은, 예수를 금방 믿었다고 행위까지 싹 바뀌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 정도 예수 믿는 사람으로 에수 믿는 인격을 기준을 하면 적어도 몇 년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세례 받고 삼 년을 지나야 집사 직분을 줍니다. 이런 기준은 적어도 내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자녀가 되어도 금방 행위가 따라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낳자말자 똥싸고 오줌싸고 하는데 금방 어른을 도와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 되자면 적어도 20-30년을 부모가 키워야 됩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들어가는 순간에 행위가 고쳐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기지로가 체질들이 남아있는데 이런 행위를 두고 노예근성, 광야근성이라고 합니다. 사단의 종 되었던 근성을 떠나지 못하는 때가 많은데 이스라엘이 축복 받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데 가장 큰 장애요소였습니다. 당장 홍해가 가로막히니 모세를 손가락질하며 애굽에서 죽을 장지가 없어 여기까지 데려왔냐고 하며 덤벼들었습니다. 이에 모세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보라"고 말하며 지팡이를 내밀 때에 문제가 확실히 해결되었습니다. 저는 동풍이 불고 바다 양가를 가르면서 바다 밑바닥까지 완전히 마르게 했다고 이해합니다. 지난번 권찰회에서 서해를 갔을 때 보니 물이 빠지면서 없던 육지가 나오는 걸 두고 사람들이 모세의 기적이라 하는데 썰물 때 육지가 드러나는 것뿐입니다. 진흙 때문에 장화를 신어야 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역사하시지 않으면 갈라진 홍해를 건너갈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 건너가자 금방 애굽 군인들이 마차를 타고 따라왔습니다. 따라오던 마차들이 바퀴가 빠져 있는데 물이 합쳐져 진멸된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역사하실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는 길이 육지처럼 단단하게 하시고 건너게 하셨습니다. 뒤따라오던 애굽 군인들은 은혜를 입지 못하였기에 바퀴가 해초에 빠지기도 하고 바퀴가 달아나기도 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 은혜로 된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더니 예수가 그리스도 되심을 고백하고 내 영적문제가 완전히 해결되고 하나님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내 삶의 체질, 노예근성, 광야의 근성들이 차츰 벗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광야는 오늘날 이 땅을 비유함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영적전쟁 하기 위해서는 노예근성, 광야근성으로는 안됩니다. 광야를 통과하며 다 치료했습니다. 아깝게도 여호수아와 갈렙 이외에는 20세 이상의 세대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다 죽었습니다. 죽으려고 작정하거든 노예근성 그대로 갖고 계십시오. (광야에서 죽은 세대는) 걸핏하면 모세에게 애굽이 더 좋았다고 말했습니다. 노예근성이 빠져나가지 않아서 (옛체질로) 그렇게 돌아갑니다. 아직까지 노예근성이 빠져나가지 않았다면 흑암의 손에 붙잡혀 있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빠져나왔다면 붙잡힐 이유가 없고 과거 생각과 체질로 돌아갈 이유가 없습니다. 수많은 교인들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받아들였지만 불신자처럼 똑같이 고생하고 저주와 수고와 고통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 메시지 듣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로 흑암 세력을 꺾고 승리하는 사실적인 현장의 축복을 누리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말하고 싶은 것은 구원 받지 못한 멸망의 상태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이해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멸망의 상태는 완전히 죽은 상태입니다. 이것이 이해되지 않아 신학자들도 오해하고 했습니다. 롬3:10에 보면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23절에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했습니다. 엡2:1에 보면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라고 했습니다. 죽을까 말까한 너희를 살리신 게 아닙니다.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습니다. 완전 부패입니다. 이것이 기초가 되고 바르게 이해되지 않으면 자꾸 다른 게 나옵니다. 내게 (선이) 조금 있다고 생각되니까 , 내가 구원 받는 데에는 하나님도 하시지만 사람도 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짓을 합니다. 여러분, 은혜 받고 구원 받는 일은 우리가 할 일이 전혀 없고 완전 타락했기에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를 무조건적 선택 속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추수감사절을 진짜 감사할 수 있는 길이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만약에 우리가 예수 믿었더니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얻었다하며 인간적인 감사를 찾다가는 사단의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오직 구원 속에 역사하신 하나님 은혜가 이해되어야 나 같은 죄인이 구원 받은 데에 감격하게 됩니다.
구원 받으면 모든 문제 해결입니다. 마6:33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31절에 보면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런 것은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무엇을 달라, 돈 주시옵소서 한다면 아직 구원 못 받은 사람이 구하는 겁니다. 이미 구원 받았다면 다 책임지십니다. 할렐루야. 공중 나는 새도 책임지시는 하나님이 구원 받은 당신의 백성을 책임지시는데 기준이 생명입니다. 생명 받은 자들은 하나님이 다 책임지십니다.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안다고 했습니다. 구하지 않아도 주실 것이며 필요에 따라 넘치게도 주실 것입니다. 이런 믿음이 안 되니 매일 내놓으라고 고함지르는 겁니다. 하나님이 나의 주권자시오 나를 책임지십니다. 여기에서 진정한 평안과 감사가 나올 수 있습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앞의 말씀들이 다 성취됩니다.
그리고 주님 앞에 정말 감사해야 합니다. 이 한해도 추수감사를 통해 우리에게 은혜 주신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명년 한 해도 하나님이 당신의 구원 받은 백성들을 책임져 주실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이 사실을 확실히 붙잡아야 합니다. 특히 하나교회를 대구와 세계복음화를 위해 세우셨습니다. 여러분은 보통 교인들과 다릅니다. 여러분은 세계복음화 할 귀한 렘넌트요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완전책임지실 것입니다.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뢸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 어려운 문제를 구체적으로 해결할 자는 단 한 분밖에 없습니다. 사단의 권세를 이길 힘을 가진 자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대적한 사단인데, 사단을 이길 수 있는 권세를 가진 분이어야만 꺾을 수 있습니다. 그분의 이름은 오직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인간의 모든 문제를 덮어쓰고 죽음과 저주와 재앙으로 끌고 가는 사단을 꺾기 위해 하나님이 직접 이땅에 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를 성육신이라 합니다. 이날을 기념하며 크리스마스를 제정했습니다. 오신 것으로 끝나지 않고 십자가를 지시고 공적으로 그리스도가 되셨습니다. 죽은 채로 있지 않으시고 성경대로 하나님이라는 증거로 다시 부활하셨습니다. 이 땅에 오셔서 인간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십자가에서 공적으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분을 그리스도라 합니다.
예수는 이름이고 십자가에서 공적으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분을 그리스도라 합니다. 여러분들이 예수 피를 강조하지 않아도 예수님은 그리스도시며 내게 오시옵소서 하고 영접하면 피채 오시는 겁니다. 그리고 이 사실이 현실로 증명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사도행전의 역사이고 성령의 인도를 받게 하시는 우리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요일3:8에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에 모든 승리가 약속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만 해도 흑암 세력이 떠나가며, 기도 않아도 우리가 들어가는 현장의 흑암세력이 끝납니다. 그리고 이 사실 아는 성도는 흑암 꺾는 기도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 주간 기도가 어떻게 나오는지 실제로 현장에서 체험해보십시오. 그러면 여기서부터 모든 흑암을 꺾고 사단의 세력을 이기고 승리하는 참된 현실 보는 순간 진짜 감사가 나옵니다. 잠깐 병이 떠나고 문제가 해결되는 정도가 아닙니다. 근본적으로 원죄에서 해결하시고 조상의 죄, 내가 받을 수밖에 없는 상처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 받았습니다. 이 사실로 추수감사절을 누리지 못하고 다른 것을 기뻐한다면 사단의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진짜 하나님 앞에 감사함으로 헌신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진짜 감사가 어디서 나옵니까?
1) 구원 받은 데서 나옵니다.
2) 구원 역사와 복음 속에 서지 않으면 육신의 형제와 자매는 소용없습니다.
3)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수많은 이론들이 있지만 복음이 아니기 때문에 소용없습니다.
2. 예수 그리스 외에는 문제 해결의 길이 전혀 없습니다.
1) 유대인들은 율법으로 해결해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2) 중세 시대에는 신비주의와 경건주의로 해결하려 했습니다.
3) 오늘날 우리도 근본문제를 나름대로 해결해보려고 노력합니다.
4) 예수님만이 모든 문제의 해결자입니다.
① 구원과 삶을 구별치 못하면 이 고백을 하면서도 자꾸 문제 속에 빠집니다.
② 종교는 사람의 행위가 기준인데 복음은 은혜로 주시는 하나님의 구원이 기준입니다(엡2:8).
③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은혜를 받으면 차츰 옛체질, 노예근성, 광야근성이 빠져나갑니다.
3. 구원 받지 못한 멸망의 상태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1) 멸망의 상태는 완전히 죽은 상태입니다(롬3:10, 엡2:1).
2)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를 무조건적 선택 속에서 구원하셨습니다. - 인간적인 감사는 사단의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3) 구원 받으면 모든 문제 해결입니다(마6:33).

요일3:8 말씀처럼 사단의 권세를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며 그 능력을 실제로 현장에서 체험해보십시오. 사단의 세력을 이기고 승리하는 참된 현실을 보는 순간 진짜 감사가 나옵니다. 근본문제에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구원하신 것을 인해 추수감사절의 누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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