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실이가 당신입니까?
2006-10-01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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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인사하겠습니다. 평강하십시오. 안녕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희색을 발하며 깜짝 놀라며, 마음에 새겨두시기 바랍니다.
오늘 찬양대 감사합니다. 갈보리를 불러서. 제가 갈보리 산이라는 찬양을 부르면서 옛날에 어린 교인들이 발음을 잘 못 들어서 가을보리인줄 알고 가을보리에 십자가가 서냐고 했는데 그게 아니라 옛날에 십자가가 섰던 산이 갈보리 산입니다. 오늘 갈보리 산 위에라고 하니까 우리나라 가을보리를 연상하는 분이 있을까봐 미리 이야기를 드립니다.
그 피가 마음속에 큰 증거가 됩니다라고 하는데 잘못 들으면 커피가 마음속에 큰 증거 됩니다 라고 하는데 찬송 부를 때에 의미를 알고 불러야 합니다. 그 피가 마음속에 라고 할 때에 그 피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흘리신 그 피입니다. 그 피가 우리의 참된 증거로 속죄에 대한 감격으로 불러야 합니다.
오늘 제목이 「오실 이가 당신입니까?」 라고 했습니다.
오늘 문제는 세례요한의 신앙적인 갈등에서 나온 말입니다. 눅7:15에 보면 「죽었던 자가 일어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 어미에게 주신대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아보셨다 하더라 예수께 대한 이 소문이 온 유대와 사방에 두루 퍼지니라」
이런 예수님의 소문을 전해 들은 세례요한의 반응입니다. 「눅7:17절에 요한의 제자들이 이 모든 일을 그에게 고하니 요한이 그 제자 중 둘을 불러 주께 보내어 가로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라 하매」 상당히 중요한 내용이 숨겨져 있습니다.
세례요한에게 숨겨진 갈등이 있었습니다.
적지만 큰 문제로 각 교회와 교인마다 숨겨진 내용들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참 복을 받고, 축복을 주신 것을 볼 수 있고 붙잡을 수 있어야 하는데 숨겨진 갈등 때문에 붙잡지 못하는 문제되는 사건들이 교회에 많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원래 교회 안에서 나오는 숨겨진 갈등들이 해결 안 되면, 치유가 안 되면 축복을 받아놓고도 못 봅니다. 축복을 볼 수 있는데도 못 보는 어리석음에 빠지게 됨을 말씀합니다.
이것은 원래 가지고 있는 체질과 전통과 문화에서 나오는 문제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세례요한이 고질적인 이스라엘의 백성으로부터 내려오는 체질과 전통이 치유되지 못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세례요한의 메시야관은 지금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메시야로 보는 것보다도, 오신 메시야를 불신앙하게 된 배경이 이스라엘의 전통과 이스라엘의 체질이 이 땅에 선민을 위한 세계를 다스릴 왕이 오실 것이라는 것이 세례요한 속에 있었습니다.
메시야가 이 땅에 오셨고 이 땅에 왕 중의 왕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지만 세례요한의 의심이 나옵니다. 그 배경이 눅7:16에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아보셨다 하더라」 이 소리를 들은 뒤에 즉각 자기 제자를 둘을 보내서, 우리가 메시야를 당신으로 알아야 하냐고 말합니다.
눅7:21에 「마침 그 시에 예수께서 질병과 고통과 및 악귀 들린 자를 많이 고치시며 또 많은 소경을 보게 하신지라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복음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시면서 메시야의 역사를 설명했습니다.
이 설명을 바로 알아듣지 못한 게 세례요한의 갈등입니다. 체질 때문이요 전통 때문입니다. 이게 오늘날 교회의 숨겨진 문제입니다.
교회의 숨겨진 전통과 체질이 무엇입니까?
눈에 보이는 게 아닙니다. 누구든지 표출 안되고 잠재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 때문에 눈에 안 보이는 축복을 놓칩니다.
전통적인 교회내의 불신앙의 배경이, 교인들의 싸움이 믿음과 행함이라는 문제입니다.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고 약속했습니다. 그 믿음으로 구원 얻음도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와 상관없이 왔기에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엡2:8에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역사 속에서 믿음이 있다면 행함을 보이라는 문제로 교회 안에서, 그리고 실제로 교권으로 싸우고 다툰 일이 기독교의 역사 속에 수백 년간 있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믿음만 있다고 하면 무슨 소용인가 행함이 있어야지 하는 생각이 초대교회도 있었고 이게 주로 바리새파를 통해서 내려온 신앙의 문제입니다. 이 갈등이 해소 안 되니 불신앙이 오고 복음으로부터 떠나기도 하는 것입니다.
제가 초기에 전도학교를 나갔는데, 열 가지 발판을 이야기하면서 하나님의 주권을 이야기하면서 전적인 부패가 믿어져야 하나님의 주권이 믿어진다고 했습니다. 모든 인간은 완전타락해서 스스로 구원 얻을 자격도 힘도 없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죄인이라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다. 이 문제조차 이해 안 됩니다. 인간 전적부패와 인간타락에 대한 이해가 안 되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전적 주권으로 인도해 나가신다는 것이 이해 안 됩니다. 왜? 그 교단은 신인협동설을 믿었습니다. 사람도 구원에 일조한다는 것입니다. 이게 천주교교리입니다. 이것을 많은 사람이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갈등 때문에 순수복음이 이해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그 교단의 목회자들이 하나둘 다 떠났습니다.
이 말씀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신인협동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 속에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이 불가항력적인 은혜를 주시지 않으시면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제대로 하나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말은 불신앙이 그 마음에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 잘 알아야 합니다. 복음이 율법과 신비 위에 강조되지 않으면 다 떠나가고 믿어도 종교에 빠집니다. 그래서 우리가 계속 말합니다. 정말 축복된 자리에 앉아있는 줄 알아야 합니다. 복음이 강조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이 종교에 다 빠졌습니다. 이게 현실의 모든 교단의 문제입니다.
이 문제가 역사 속에서 계속 내려왔습니다. 복음과 율법의 갈등도 똑같이 내려온 문제입니다. 여기에도 계속 말씀드리지만 율법보다도 복음이 강조되어야 축복이 됩니다. 그래야 흑암세력이 꺾이게 됩니다. 그게 안 되면 종교로 빠지고 저주와 재앙 속에서 헤어 나올 수 없습니다.
더 큰 문제는 목회자와 중직 자와의 관계입니다. 이걸 잘 이해해야 합니다. 앞으로 중직자도 많이 뽑아야 하는데, 이 말은 장로교에 해당되는 말입니다. 장로교가 이런 문제 때문에 골치아파하지만 부흥이 되니까 침례교와 감리교에도 장로가 생깁니다. 원래 침례교는 장로가 없습니다. 감리교도 장로교의 약점 때문에 생긴 교단인데 요즘은 장로를 세웁니다.
옛날에는 교회가 있다면 사제라는 것이 있습니다. 요즘 말하면 천주교 신부와 같습니다. 그런데 옛날에는 사제중심의 교회입니다. 사제가 거의 마음대로 했습니다. 이해시키자면 목사마음대로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때에 칼빈이라는 사람이 사제의 마음대로 하는 것을 제제할 수 있는 세력을 만들어야 되겠다고 해서 대의원제도를 써서 장로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이 장로가 세워지면서 어떤 문제가 오게 되었는가하면 사제를 제재하는 권력으로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그게 내려오면서 오늘날 교회에 그대로 적용이 되었습니다.
옛날에 사제가 독재하는 것도 잘못이지만 오늘날 장로가 목사를 제재하기 위한 세력으로 안다면 큰 잘못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게 목사와 장로 사이의 숨은 갈등이 이것입니다. 일반성도는 보이지 않지만 긴장되어 있습니다. 당회에 가보면 이런 문제가 옵니다.
중직자를 왜 세웁니까? 동역자요 친척이요 보호자입니다. 이런 수준으로 세워져야 할 일이 성경과 다른 것으로 세워지기 때문에 교회마다 싸움이 일어나고 당회에서 큰 소리가 나고 제직회에서 문제가 생깁니다. 목사를 바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숨겨진 문제 때문에 목사를 대적하고 장로를 대적하고 평신도도 장로를 대적하고, 이게 많은 축복을 다 놓쳤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남북장로교회가 다 무너졌습니다. 우리나라에 처음 선교사를 파송했던 교회가 이슬람에 팔렸습니다. 숨은 문제 때문에 불신앙 때문에 축복 놓치고 저주가 운데 있다가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미국 장로교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의 문제입니다.
장로가 많이 세워진다할 때에 견제세력으로 세워지는 게 아니라 식주인, 동역자, 보호자로 세워져야 합니다. 각 지역에서 평신도와 교제하고 세운 목회자를 귀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기도하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될 것이 목회자를 위해서 기도 많이 해야 합니다. 장로를 위해서 기도 많이 해야 합니다. 이런 숨은 불신앙의 역사가 계속되면 우리교회도 다른 교회와 마찬가지로 무너지게 됩니다.
그래서 원로목사님이 젊은 목회자들이 열심히 일하는 것을 보고 “통시가 다른걸. 봤나?” 똑같이 교회가 다른 교회가 없이 똑같다는 말을 했습니다. 이 말을 새로운 말로 바꾸어야 합니다. 교회는 반드시 다른 교회가 있다. 왜? 하나님이 복음공동체로 모아주셨습니다. 하나교회 다릅니다. 메시지도 다르고 하나님의 은혜도 다릅니다. 여기서 잘 알아야 합니다. 평신도가 보는 중직자와 중직자가 보는 평신도 잘 이해해야 합니다. 평신도가 보는 목사, 목사가 보는 평신도 이것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이게 이해 안 되면 저절로 인간관계가 실패합니다.
당회 속에서 이 숨은 문제가 어떤 면에서 불신앙이 오기에 장로와 장로사이에서 인간관계가 바로 안 됩니다. 당회를 해 보면 이상한 이야기로 자기 성질대로 나옵니다. 말하자면 생긴 대로 나옵니다. 어떤 경우에는 연세가 많으면 우울증이 오는 사람이 있는데 우울증으로 들어옵니다. 인간관계가 제대로 되겠습니까? 교회의 많은 짐을 지고 있다면 정신장애가 올 수 있습니다. 그러면 평신도와 나 사이가 안되는 게 아니라 당회 안에서 너와 나 사이의 인간관계가 실패합니다. 이 말을 하는 저도 마찬가지로 정신적인 장애가 있다고 말하면 오늘부터 박목사님 정신문제 있다고 돌아다니면서 말할지 몰라도, 저도 지난날의 과거를 통해서 많이 설명했지만 독실한 신앙생활하시는 어머니와 너무 현실적인 그런 아버지와의 신앙갈등에서 자랐습니다. 그런 신앙갈등이 심각한 중에 자랐습니다. 심지어는 옛날 같으면 둥그런 판에다 온 가족이 식사하고 했는데 아버지는 절대로 둥근 판에 안 옵니다. 개인 판을 차리고 사랑채에서 아버지 혼자 드시라고 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안방에 잘 건너오지도 않으시고, 어머니도 사랑방에 가시는 적을 못 봤습니다. 아버지가 식사를 다하시고 기침하시면 물을 들고 가시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 성격이 묘합니다. 정신치유의 메시지도 그런 배경에서 잘 걸러서 말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정신치유 총국장 된 게 우연한 게 아닙니다.
오늘 우리 모든 사람이 거의 성격장애로 자랍니다. 과거의 배경으로 인해서 그렇습니다. 부모의 사랑을 못 받고, 한쪽만 받고 못 받은 문제, 자라면서 혹독한 교육을 받은 것으로 상처받고 남아서 정신적인 장애가 많습니다. 이걸 인정을 안 합니다. 그러니까 모였을 때에 이 숨겨진 문제들이 노출이 되면 화합이 안 되고 분쟁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어려운 문제는 이 문제입니다. 교회가 클수록, 교회일수록 정신적인 장애자들이 많이 옵니다. 교회는 영적인 치유의 본당이기에 와서 조금만 치유가 되면 인정받으면서 집사와 장로로 금방 올라갑니다. 그들이 모여서 아직까지도 숨겨진 문제가 있는데 자기는 모르고 자기성질대로 내뱉습니다. 그래서 당회와 제직회가 화합이 안 됩니다. 이 말이 저 사람에게 상처를 어떻게 줄지, 이런 말을 하면 어떤 관계로 이루어질지, 인간관계가 안 됩니다. 인간관계가 깨어지고 있습니다. 이게 숨은 문제입니다. 이게 모든 성도에게 불신앙을 주는 문제입니다. 이걸 조금만 알면 흑암세력이 들어오는 통로가 꺾이게 됩니다. 그래서 치유 가라고 하지 않습니까? 가야 지적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말씀들을 때에 잘 듣고, 말씀이 마음에 있으면 흑암이 들어오지 못합니다. 초기에 류목사님이 사단세력을 400번을 꺾었다고 합니다. 너무 숨겨진 문제가 많고 이것이 우리도 모르게 나타나고 우리도 모르게 불신앙에 빠지게 되고 불평하고 감사를 잃어버립니다. 회복해야 합니다.
렘넌트 7명의 특징이 있습니다.
요셉을 보면 압니다. 요셉을 만나는 사람마다 축복을 받게 됩니다. 요셉이 노예로 갈 때에 하나님의 은혜로 주인 보디발과의 관계가 축복된 관계입니다. 이런 관 계속에서 주인의 아내가 너무 좋아해서 문제가 되었는데, 그 누명으로 인해 감옥에 가도 보디발의 아내를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혼자 더 누명 덮어쓰고 감옥에 갔습니다. 감옥에 간수장과도 축복관계였습니다. 이게 여러분과 제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여러분이 만나는 장소마다 만나는 어떤 누구도 축복관계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그곳에는 흑암이 꺾여야 할 자리요, 복음이 없으면 안 된다는 것이 눈에 보여야 합니다. 그래야 흑암이 꺾입니다. 왜 그런가? 이 땅에 어떤 장소든지 어떤 누구든지 복음 없이는 살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만나는 자마다 너무 복음이 없습니다. 복음이 없으니 신비와 율법으로 다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웃하는 모든 교회와 대화를 보시기 바랍니다. 종교로 기복신앙으로 빠집니다. 만사형통집회 이런 것으로 빠집니다. 만사형통이 안 되어도 복음을 받아야 합니다. 만사형통이 안 되어도 생명이 살아야 합니다. 생명살고 만사형통도 오는 것이지 이게 반대가 되면 망합니다.
인간관계에 실패하는 배경이 숨은 문제입니다. 숨은 내 정신적인 자질문제입니다. 나도 모르게 인간관계속에서 축복된 관계로 맺어야 할 부분에 원수 맺고 담을 쌓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관계가 실패한다면 심각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인간관계가 안 되면 사회생활도 안 되게 되어있습니다. 사람들이 떠납니다. 그래서 교인들이 인간관계가 안되는 게 참 많습니다. 믿음만 생각하고 내 안에 숨겨진 잘못된 생각과 불신앙에 대해서 생각안합니다. 그런 사람일수록 신비에 빠질 수 있습니다. 믿는다는 것 가지고 인간관계를 안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일수록 이런 식으로 빠질 수 있습니다.
숨은 불신앙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축복된 관계가 회복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가는 곳마다 이단이라고 하던데 사람을 자세히 보니 너무 귀하다고 합니다.
이번 추석 때에 더러운 인간이라는 소리 듣지 마시고 인간관계 바로 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면서 흑암세력 꺾고, 복음의 필요성을 깨닫고, 복음전파의 절대성을 깨닫고, 이런 게 복음을 전하게 될 때에 당연하게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쯤은 예수님은 그리스도시다. 모든 문제 해결자시다. 자기마음대로 하라는 것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의 인격이 내 안에 있어야 하고 이 인격이 전파될 때에 보는 사람마다 변화되게 되고 축복이 현장에 임하게 됩니다.
축복받은 것은 언약을 잡은 것입니다. 불가항력적인 은혜라는 것은 언약을 잡았다는 것입니다. 가나안으로 들어가라는 하나님의 언약을 잡았기에 홍해, 요단강이 갈라지고 여리고가 무너졌습니다. 뭘 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가나안의 언약을 붙잡고 가니까 그들이 가는 길에 그들이 뭘 해서 줄게 아니라 물도 음식도 다 주신 것입니다. 가나안의 언약을 잡았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의 언약을 분명히 잡았습니다. 언약선포를 복음의 역사를 통해서 삶 속에서 이루었습니다. 행11장에 문제가 나옵니다. 배경이 숨은 불신앙입니다. 그 배경이 베드로가 고넬료 집에 가서 복음을 전했을 때에 고넬료 집의 모든 사람이 복음을 받았습니다. 행11:14에 보면 「그가 너와 네 온 집의 구원 얻을 말씀을 네게 이르리라 함을 보았다 하거늘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저희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 주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 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노라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저희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관대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
이 말이 왜 나왔는가하면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가서 이런 역사가 나와서 우리가 처음 믿을 때와 같은 역사가 나왔는데 어떻게 내가 막겠는가? 그래서 세례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방인의 집에서 어떻게 먹고 마시느냐고 시비를 걸었습니다.
율법적인 눈으로 보고 시비를 걸 수 있습니다. 왜 이단 누명을 덮어 섰느냐? 누명쓴 이단입니다. 이것이 역사 속에 참 복음을 전하려고 나선 단체마다 이단누명을 안 쓴 단체가 없었습니다.
우리가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은 하나교회 다릅니다. 정말 복음입니다. 이단누명을 덮어쓴 이단이지 이단이 아닙니다. 이 사실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모든 문제에 있어서 어느 자리에 있던지 복음 강조해야 합니다. 이게 사라지면 금방 율법과 신비가 금방 자라 올라옵니다. 어디에 서든지 복음을 강조해야 합니다. 모든 곳에서 복음을 강조안하면 사단의 통로가 금방 올라옵니다. 다른 것이 들어오면 즉시 사단에게 붙잡히고 사단이 내 인생을 붙잡으면 운명 속에 빠지고 저주와 재앙이 끊어지지 않습니다. 이것도 모르면서 숨은 문제 속에서 잡힙니다. 내 숨은 성격적인 장애가 무엇이며, 불신앙의 내용이 뭔지를 알아야 합니다.
나와 같이 있는 교인들이 귀하고, 말씀전하는 목사님이 귀하고, 선두주자에 선 장로님들이 귀하고, 인간관계가 너무 귀하다. 그래서 성경의 가이오처럼, 또 롬16장의 인물들처럼 식주인, 동역자, 친척, 보호자, 이것이 교역자와 중직자와 평신도와의 관계였습니다.
어디 가서든지 복음이 강조되어야 합니다. 복음이 강조되지 않을 때에 오는 흑암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릅니다. 공허와 흑암과 저주로 나오게 됩니다. 이것이 보여 질 때에 이 흑암세력을 꺾는 능력의 기도가 나오게 됩니다. 흑암 꺾을 때에 흑암세력은 꺾여지고 추방되어집니다. 이 땅의 문제 속에서 축복이 보이게 됩니다. 숨은 문제 때문에 숨은 축복을 못보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흑암세력을 꺾는 순간에 우리에게 이미 임한 축복이 보여지게 됩니다. 이때에 주의 손이 임하고 능력이 임하고 숨은 제자가 일어나고 숨은 경제도 살아나게 됩니다.
그래서 이 숨은 문제가 해결되는 길이 오직 복음강조를 통해서 해결되어야 합니다.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어지는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찬양대 감사합니다. 갈보리를 불러서. 제가 갈보리 산이라는 찬양을 부르면서 옛날에 어린 교인들이 발음을 잘 못 들어서 가을보리인줄 알고 가을보리에 십자가가 서냐고 했는데 그게 아니라 옛날에 십자가가 섰던 산이 갈보리 산입니다. 오늘 갈보리 산 위에라고 하니까 우리나라 가을보리를 연상하는 분이 있을까봐 미리 이야기를 드립니다.
그 피가 마음속에 큰 증거가 됩니다라고 하는데 잘못 들으면 커피가 마음속에 큰 증거 됩니다 라고 하는데 찬송 부를 때에 의미를 알고 불러야 합니다. 그 피가 마음속에 라고 할 때에 그 피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흘리신 그 피입니다. 그 피가 우리의 참된 증거로 속죄에 대한 감격으로 불러야 합니다.
오늘 제목이 「오실 이가 당신입니까?」 라고 했습니다.
오늘 문제는 세례요한의 신앙적인 갈등에서 나온 말입니다. 눅7:15에 보면 「죽었던 자가 일어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 어미에게 주신대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아보셨다 하더라 예수께 대한 이 소문이 온 유대와 사방에 두루 퍼지니라」
이런 예수님의 소문을 전해 들은 세례요한의 반응입니다. 「눅7:17절에 요한의 제자들이 이 모든 일을 그에게 고하니 요한이 그 제자 중 둘을 불러 주께 보내어 가로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라 하매」 상당히 중요한 내용이 숨겨져 있습니다.
세례요한에게 숨겨진 갈등이 있었습니다.
적지만 큰 문제로 각 교회와 교인마다 숨겨진 내용들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참 복을 받고, 축복을 주신 것을 볼 수 있고 붙잡을 수 있어야 하는데 숨겨진 갈등 때문에 붙잡지 못하는 문제되는 사건들이 교회에 많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원래 교회 안에서 나오는 숨겨진 갈등들이 해결 안 되면, 치유가 안 되면 축복을 받아놓고도 못 봅니다. 축복을 볼 수 있는데도 못 보는 어리석음에 빠지게 됨을 말씀합니다.
이것은 원래 가지고 있는 체질과 전통과 문화에서 나오는 문제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세례요한이 고질적인 이스라엘의 백성으로부터 내려오는 체질과 전통이 치유되지 못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세례요한의 메시야관은 지금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메시야로 보는 것보다도, 오신 메시야를 불신앙하게 된 배경이 이스라엘의 전통과 이스라엘의 체질이 이 땅에 선민을 위한 세계를 다스릴 왕이 오실 것이라는 것이 세례요한 속에 있었습니다.
메시야가 이 땅에 오셨고 이 땅에 왕 중의 왕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지만 세례요한의 의심이 나옵니다. 그 배경이 눅7:16에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아보셨다 하더라」 이 소리를 들은 뒤에 즉각 자기 제자를 둘을 보내서, 우리가 메시야를 당신으로 알아야 하냐고 말합니다.
눅7:21에 「마침 그 시에 예수께서 질병과 고통과 및 악귀 들린 자를 많이 고치시며 또 많은 소경을 보게 하신지라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복음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시면서 메시야의 역사를 설명했습니다.
이 설명을 바로 알아듣지 못한 게 세례요한의 갈등입니다. 체질 때문이요 전통 때문입니다. 이게 오늘날 교회의 숨겨진 문제입니다.
교회의 숨겨진 전통과 체질이 무엇입니까?
눈에 보이는 게 아닙니다. 누구든지 표출 안되고 잠재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 때문에 눈에 안 보이는 축복을 놓칩니다.
전통적인 교회내의 불신앙의 배경이, 교인들의 싸움이 믿음과 행함이라는 문제입니다.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고 약속했습니다. 그 믿음으로 구원 얻음도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와 상관없이 왔기에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엡2:8에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역사 속에서 믿음이 있다면 행함을 보이라는 문제로 교회 안에서, 그리고 실제로 교권으로 싸우고 다툰 일이 기독교의 역사 속에 수백 년간 있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믿음만 있다고 하면 무슨 소용인가 행함이 있어야지 하는 생각이 초대교회도 있었고 이게 주로 바리새파를 통해서 내려온 신앙의 문제입니다. 이 갈등이 해소 안 되니 불신앙이 오고 복음으로부터 떠나기도 하는 것입니다.
제가 초기에 전도학교를 나갔는데, 열 가지 발판을 이야기하면서 하나님의 주권을 이야기하면서 전적인 부패가 믿어져야 하나님의 주권이 믿어진다고 했습니다. 모든 인간은 완전타락해서 스스로 구원 얻을 자격도 힘도 없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죄인이라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다. 이 문제조차 이해 안 됩니다. 인간 전적부패와 인간타락에 대한 이해가 안 되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전적 주권으로 인도해 나가신다는 것이 이해 안 됩니다. 왜? 그 교단은 신인협동설을 믿었습니다. 사람도 구원에 일조한다는 것입니다. 이게 천주교교리입니다. 이것을 많은 사람이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갈등 때문에 순수복음이 이해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그 교단의 목회자들이 하나둘 다 떠났습니다.
이 말씀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신인협동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 속에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이 불가항력적인 은혜를 주시지 않으시면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제대로 하나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말은 불신앙이 그 마음에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 잘 알아야 합니다. 복음이 율법과 신비 위에 강조되지 않으면 다 떠나가고 믿어도 종교에 빠집니다. 그래서 우리가 계속 말합니다. 정말 축복된 자리에 앉아있는 줄 알아야 합니다. 복음이 강조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이 종교에 다 빠졌습니다. 이게 현실의 모든 교단의 문제입니다.
이 문제가 역사 속에서 계속 내려왔습니다. 복음과 율법의 갈등도 똑같이 내려온 문제입니다. 여기에도 계속 말씀드리지만 율법보다도 복음이 강조되어야 축복이 됩니다. 그래야 흑암세력이 꺾이게 됩니다. 그게 안 되면 종교로 빠지고 저주와 재앙 속에서 헤어 나올 수 없습니다.
더 큰 문제는 목회자와 중직 자와의 관계입니다. 이걸 잘 이해해야 합니다. 앞으로 중직자도 많이 뽑아야 하는데, 이 말은 장로교에 해당되는 말입니다. 장로교가 이런 문제 때문에 골치아파하지만 부흥이 되니까 침례교와 감리교에도 장로가 생깁니다. 원래 침례교는 장로가 없습니다. 감리교도 장로교의 약점 때문에 생긴 교단인데 요즘은 장로를 세웁니다.
옛날에는 교회가 있다면 사제라는 것이 있습니다. 요즘 말하면 천주교 신부와 같습니다. 그런데 옛날에는 사제중심의 교회입니다. 사제가 거의 마음대로 했습니다. 이해시키자면 목사마음대로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때에 칼빈이라는 사람이 사제의 마음대로 하는 것을 제제할 수 있는 세력을 만들어야 되겠다고 해서 대의원제도를 써서 장로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이 장로가 세워지면서 어떤 문제가 오게 되었는가하면 사제를 제재하는 권력으로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그게 내려오면서 오늘날 교회에 그대로 적용이 되었습니다.
옛날에 사제가 독재하는 것도 잘못이지만 오늘날 장로가 목사를 제재하기 위한 세력으로 안다면 큰 잘못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게 목사와 장로 사이의 숨은 갈등이 이것입니다. 일반성도는 보이지 않지만 긴장되어 있습니다. 당회에 가보면 이런 문제가 옵니다.
중직자를 왜 세웁니까? 동역자요 친척이요 보호자입니다. 이런 수준으로 세워져야 할 일이 성경과 다른 것으로 세워지기 때문에 교회마다 싸움이 일어나고 당회에서 큰 소리가 나고 제직회에서 문제가 생깁니다. 목사를 바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숨겨진 문제 때문에 목사를 대적하고 장로를 대적하고 평신도도 장로를 대적하고, 이게 많은 축복을 다 놓쳤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남북장로교회가 다 무너졌습니다. 우리나라에 처음 선교사를 파송했던 교회가 이슬람에 팔렸습니다. 숨은 문제 때문에 불신앙 때문에 축복 놓치고 저주가 운데 있다가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미국 장로교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의 문제입니다.
장로가 많이 세워진다할 때에 견제세력으로 세워지는 게 아니라 식주인, 동역자, 보호자로 세워져야 합니다. 각 지역에서 평신도와 교제하고 세운 목회자를 귀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기도하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될 것이 목회자를 위해서 기도 많이 해야 합니다. 장로를 위해서 기도 많이 해야 합니다. 이런 숨은 불신앙의 역사가 계속되면 우리교회도 다른 교회와 마찬가지로 무너지게 됩니다.
그래서 원로목사님이 젊은 목회자들이 열심히 일하는 것을 보고 “통시가 다른걸. 봤나?” 똑같이 교회가 다른 교회가 없이 똑같다는 말을 했습니다. 이 말을 새로운 말로 바꾸어야 합니다. 교회는 반드시 다른 교회가 있다. 왜? 하나님이 복음공동체로 모아주셨습니다. 하나교회 다릅니다. 메시지도 다르고 하나님의 은혜도 다릅니다. 여기서 잘 알아야 합니다. 평신도가 보는 중직자와 중직자가 보는 평신도 잘 이해해야 합니다. 평신도가 보는 목사, 목사가 보는 평신도 이것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이게 이해 안 되면 저절로 인간관계가 실패합니다.
당회 속에서 이 숨은 문제가 어떤 면에서 불신앙이 오기에 장로와 장로사이에서 인간관계가 바로 안 됩니다. 당회를 해 보면 이상한 이야기로 자기 성질대로 나옵니다. 말하자면 생긴 대로 나옵니다. 어떤 경우에는 연세가 많으면 우울증이 오는 사람이 있는데 우울증으로 들어옵니다. 인간관계가 제대로 되겠습니까? 교회의 많은 짐을 지고 있다면 정신장애가 올 수 있습니다. 그러면 평신도와 나 사이가 안되는 게 아니라 당회 안에서 너와 나 사이의 인간관계가 실패합니다. 이 말을 하는 저도 마찬가지로 정신적인 장애가 있다고 말하면 오늘부터 박목사님 정신문제 있다고 돌아다니면서 말할지 몰라도, 저도 지난날의 과거를 통해서 많이 설명했지만 독실한 신앙생활하시는 어머니와 너무 현실적인 그런 아버지와의 신앙갈등에서 자랐습니다. 그런 신앙갈등이 심각한 중에 자랐습니다. 심지어는 옛날 같으면 둥그런 판에다 온 가족이 식사하고 했는데 아버지는 절대로 둥근 판에 안 옵니다. 개인 판을 차리고 사랑채에서 아버지 혼자 드시라고 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안방에 잘 건너오지도 않으시고, 어머니도 사랑방에 가시는 적을 못 봤습니다. 아버지가 식사를 다하시고 기침하시면 물을 들고 가시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 성격이 묘합니다. 정신치유의 메시지도 그런 배경에서 잘 걸러서 말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정신치유 총국장 된 게 우연한 게 아닙니다.
오늘 우리 모든 사람이 거의 성격장애로 자랍니다. 과거의 배경으로 인해서 그렇습니다. 부모의 사랑을 못 받고, 한쪽만 받고 못 받은 문제, 자라면서 혹독한 교육을 받은 것으로 상처받고 남아서 정신적인 장애가 많습니다. 이걸 인정을 안 합니다. 그러니까 모였을 때에 이 숨겨진 문제들이 노출이 되면 화합이 안 되고 분쟁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어려운 문제는 이 문제입니다. 교회가 클수록, 교회일수록 정신적인 장애자들이 많이 옵니다. 교회는 영적인 치유의 본당이기에 와서 조금만 치유가 되면 인정받으면서 집사와 장로로 금방 올라갑니다. 그들이 모여서 아직까지도 숨겨진 문제가 있는데 자기는 모르고 자기성질대로 내뱉습니다. 그래서 당회와 제직회가 화합이 안 됩니다. 이 말이 저 사람에게 상처를 어떻게 줄지, 이런 말을 하면 어떤 관계로 이루어질지, 인간관계가 안 됩니다. 인간관계가 깨어지고 있습니다. 이게 숨은 문제입니다. 이게 모든 성도에게 불신앙을 주는 문제입니다. 이걸 조금만 알면 흑암세력이 들어오는 통로가 꺾이게 됩니다. 그래서 치유 가라고 하지 않습니까? 가야 지적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말씀들을 때에 잘 듣고, 말씀이 마음에 있으면 흑암이 들어오지 못합니다. 초기에 류목사님이 사단세력을 400번을 꺾었다고 합니다. 너무 숨겨진 문제가 많고 이것이 우리도 모르게 나타나고 우리도 모르게 불신앙에 빠지게 되고 불평하고 감사를 잃어버립니다. 회복해야 합니다.
렘넌트 7명의 특징이 있습니다.
요셉을 보면 압니다. 요셉을 만나는 사람마다 축복을 받게 됩니다. 요셉이 노예로 갈 때에 하나님의 은혜로 주인 보디발과의 관계가 축복된 관계입니다. 이런 관 계속에서 주인의 아내가 너무 좋아해서 문제가 되었는데, 그 누명으로 인해 감옥에 가도 보디발의 아내를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혼자 더 누명 덮어쓰고 감옥에 갔습니다. 감옥에 간수장과도 축복관계였습니다. 이게 여러분과 제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여러분이 만나는 장소마다 만나는 어떤 누구도 축복관계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그곳에는 흑암이 꺾여야 할 자리요, 복음이 없으면 안 된다는 것이 눈에 보여야 합니다. 그래야 흑암이 꺾입니다. 왜 그런가? 이 땅에 어떤 장소든지 어떤 누구든지 복음 없이는 살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만나는 자마다 너무 복음이 없습니다. 복음이 없으니 신비와 율법으로 다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웃하는 모든 교회와 대화를 보시기 바랍니다. 종교로 기복신앙으로 빠집니다. 만사형통집회 이런 것으로 빠집니다. 만사형통이 안 되어도 복음을 받아야 합니다. 만사형통이 안 되어도 생명이 살아야 합니다. 생명살고 만사형통도 오는 것이지 이게 반대가 되면 망합니다.
인간관계에 실패하는 배경이 숨은 문제입니다. 숨은 내 정신적인 자질문제입니다. 나도 모르게 인간관계속에서 축복된 관계로 맺어야 할 부분에 원수 맺고 담을 쌓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관계가 실패한다면 심각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인간관계가 안 되면 사회생활도 안 되게 되어있습니다. 사람들이 떠납니다. 그래서 교인들이 인간관계가 안되는 게 참 많습니다. 믿음만 생각하고 내 안에 숨겨진 잘못된 생각과 불신앙에 대해서 생각안합니다. 그런 사람일수록 신비에 빠질 수 있습니다. 믿는다는 것 가지고 인간관계를 안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일수록 이런 식으로 빠질 수 있습니다.
숨은 불신앙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축복된 관계가 회복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가는 곳마다 이단이라고 하던데 사람을 자세히 보니 너무 귀하다고 합니다.
이번 추석 때에 더러운 인간이라는 소리 듣지 마시고 인간관계 바로 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면서 흑암세력 꺾고, 복음의 필요성을 깨닫고, 복음전파의 절대성을 깨닫고, 이런 게 복음을 전하게 될 때에 당연하게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쯤은 예수님은 그리스도시다. 모든 문제 해결자시다. 자기마음대로 하라는 것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의 인격이 내 안에 있어야 하고 이 인격이 전파될 때에 보는 사람마다 변화되게 되고 축복이 현장에 임하게 됩니다.
축복받은 것은 언약을 잡은 것입니다. 불가항력적인 은혜라는 것은 언약을 잡았다는 것입니다. 가나안으로 들어가라는 하나님의 언약을 잡았기에 홍해, 요단강이 갈라지고 여리고가 무너졌습니다. 뭘 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가나안의 언약을 붙잡고 가니까 그들이 가는 길에 그들이 뭘 해서 줄게 아니라 물도 음식도 다 주신 것입니다. 가나안의 언약을 잡았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의 언약을 분명히 잡았습니다. 언약선포를 복음의 역사를 통해서 삶 속에서 이루었습니다. 행11장에 문제가 나옵니다. 배경이 숨은 불신앙입니다. 그 배경이 베드로가 고넬료 집에 가서 복음을 전했을 때에 고넬료 집의 모든 사람이 복음을 받았습니다. 행11:14에 보면 「그가 너와 네 온 집의 구원 얻을 말씀을 네게 이르리라 함을 보았다 하거늘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저희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 주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 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노라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저희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관대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
이 말이 왜 나왔는가하면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가서 이런 역사가 나와서 우리가 처음 믿을 때와 같은 역사가 나왔는데 어떻게 내가 막겠는가? 그래서 세례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방인의 집에서 어떻게 먹고 마시느냐고 시비를 걸었습니다.
율법적인 눈으로 보고 시비를 걸 수 있습니다. 왜 이단 누명을 덮어 섰느냐? 누명쓴 이단입니다. 이것이 역사 속에 참 복음을 전하려고 나선 단체마다 이단누명을 안 쓴 단체가 없었습니다.
우리가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은 하나교회 다릅니다. 정말 복음입니다. 이단누명을 덮어쓴 이단이지 이단이 아닙니다. 이 사실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모든 문제에 있어서 어느 자리에 있던지 복음 강조해야 합니다. 이게 사라지면 금방 율법과 신비가 금방 자라 올라옵니다. 어디에 서든지 복음을 강조해야 합니다. 모든 곳에서 복음을 강조안하면 사단의 통로가 금방 올라옵니다. 다른 것이 들어오면 즉시 사단에게 붙잡히고 사단이 내 인생을 붙잡으면 운명 속에 빠지고 저주와 재앙이 끊어지지 않습니다. 이것도 모르면서 숨은 문제 속에서 잡힙니다. 내 숨은 성격적인 장애가 무엇이며, 불신앙의 내용이 뭔지를 알아야 합니다.
나와 같이 있는 교인들이 귀하고, 말씀전하는 목사님이 귀하고, 선두주자에 선 장로님들이 귀하고, 인간관계가 너무 귀하다. 그래서 성경의 가이오처럼, 또 롬16장의 인물들처럼 식주인, 동역자, 친척, 보호자, 이것이 교역자와 중직자와 평신도와의 관계였습니다.
어디 가서든지 복음이 강조되어야 합니다. 복음이 강조되지 않을 때에 오는 흑암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릅니다. 공허와 흑암과 저주로 나오게 됩니다. 이것이 보여 질 때에 이 흑암세력을 꺾는 능력의 기도가 나오게 됩니다. 흑암 꺾을 때에 흑암세력은 꺾여지고 추방되어집니다. 이 땅의 문제 속에서 축복이 보이게 됩니다. 숨은 문제 때문에 숨은 축복을 못보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흑암세력을 꺾는 순간에 우리에게 이미 임한 축복이 보여지게 됩니다. 이때에 주의 손이 임하고 능력이 임하고 숨은 제자가 일어나고 숨은 경제도 살아나게 됩니다.
그래서 이 숨은 문제가 해결되는 길이 오직 복음강조를 통해서 해결되어야 합니다.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어지는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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