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2006-07-09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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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오늘 본문을 통해서 제목을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라고 잡았습니다. 제가 오늘 준비를 하면서 지난 주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고 해왔는데, 이 말씀이 조금 준비되어지면 열이 붙어서 시간이 길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준비하다가 한 대지를 더 하려다가 생략하고 좀 더 짧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메시지가 전달될 줄로 믿습니다. 메시지에 재미를 봐야 교회 오고 싶고 아무리 중한 직분을 맡아도 메시지가 안 들리면 신앙생활이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면 처음 나와도 교회 나오는 게 기쁘고 즐겁고 감사합니다.
메시지를 전하다보면 메시지를 들으면서 감사하고 은혜 받는 사람의 얼굴표정은 밝습니다. 아무리 교회에 오래 다녀도 은혜 못 받는 사람은 얼굴표정이 어둡습니다. 말씀의 축복과 역사가 우리 중심에 와 닿고 말씀 속에 뿌리를 내리는 한 주간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이 안 들어가면 그 안에 불신앙이 잡히고 비판이 되어집니다. 오래 묵은 묵은디가 더 합니다. 메시지는 들었는데 메시지가 안 들어가게 되면 비판하게 되고, 내게 갈등이 오고 신앙생활에 어려움이 옵니다. 지난주에도 메시지를 통해서 말씀 드렸지만 말씀이 들어오면 내 신앙을 그 말씀 위에 깊이 뿌리를 내려야 신앙생활이 지속 되고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가 나타나게 됩니다. 이게 안 되면 불신앙이 나오게 됩니다.
오늘은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라고 했습니다. 유대인에게 예수님이 구시대에 있었던 율법을 다 버리라. 예수그리스도로 성취되는 것이기에 버리고, 새로운 체질을 만들어서 새 포도주 즉 율법적인 메시지가 아니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운 약속, 언약의 메시지로 받으라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 예수님의 말씀을 받은 레위는 세리로 있다가 자기의 모든 것, 직장까지 던졌습니다. 죽을 줄 알지만, 복음 속에 있으면 있을수록 축복이 됩니다. 레위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서 그 후에 참된 축복을 받게 됩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옛날 것, 율법적인 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던지고,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복음의 말씀을 새 부대에, 체질을 바꾸어가면서 결정하고 신앙의 역사로 준비된 새 부대에 담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새 부대입니다. 늙은 부대가 아니라 바꾸면 새 부대가 됩니다. 나는 새 부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면 되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역사하게 되어 있습니다.
재미있는 말씀이 5장 마지막 39절에 보면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것은 묵은 것이 좋다한다 했습니다. 율법주의자들이 율법을 강조하면서 율법의 은혜를 받다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습니다. 마음과 생각과 가치관이 묵은 것에 있는 겁니다. 우리도 모르게 오래 예수 믿은 사람이 여기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묵은 것이 좋다는 이 마음이 새 부대로 바꾸어져서 새것이 좋다, 체질이 바뀌어야합니다.
무엇이든지 복음으로 보는 눈이 열려야지, 그렇지 않으면 옛날 것이 좋다는, 구시대의 것이 좋다는 생각이 바뀌어 지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서 이 말씀이 우리교회에 절실한 메시지라 봅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운 복음의 역사가 임하고 있는데도 아직까지도 옛날이 좋습니다. 아직까지도 옛날설교가 좋습니다. 그래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이런 기도제목이 되어지면서 내 생각이 바뀌어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줘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여러분이 좋다는 옛날 것이 나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짜장면이나 짬봉 만드는 중국 음식점에서 다른 것은 안 시킵니다. 그러면 만드는 사람은 그것밖에 못 만듭니다. 다른 것을 시키면 되는데 그걸 안하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새 포도주, 우리가 비록 헌 것이지만 새것으로 체질변화 했습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새 포도주가 나옵니다. 그런데 묵은 것이 좋은데 하면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이것이 안 되면 세대가 어려워집니다. 복음의 역사가 예수님이 주인 되어지는, 새 포도주의 역사가 안나오면 묵은 것이 많아지면 교회는 점점 어려워지고 사회도 점점 어려워집니다.
오늘날 교회는 많습니다. 그런데 사회가 왜 악해집니까? 묵은 것이 좋다하니까, 그리스도의 눈으로 사회를 못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영향이 사회 전체에 미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시대가 어렵다면 교회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주님이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점점 어떤 어려움이 오느냐? 사람들이 어떻게 이렇게 악해져 가느냐를 느낄 수 있습니다. 서울 지역에서 연쇄살인범이 잡혔는데 재판받으면서 내가 나가면 또 살인하겠다는 겁니다. 인터넷을 통해서 뉴스를 살펴보면 너무 어처구니없는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남편의 폭행을 참다못한 부인이 남편을 살해하고, 그 인육을 자식들에게 태연하게 고기라고 내어주던 여자가 발각되어서 잡혔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평생 구금이 되는데 변호사를 통해서 재판을 신청했는데 “내가 너무 억울하다,” 죄의식이 없습니다. “내가 왜 그랬느냐? 남편의 폭행 때문에 참다못해 그랬는데 그것을 왜 정상 참작 안하느냐?”라면서 변호사를 통해서 항소했습니다. 입이 만개가 있어도 할말이 없는데 재판 형량이 너무 크니 다시 재판해달라는 겁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남편을 죽여서 그 인육을 아이들과 함께 먹고 발각이 되어서 잡혔는데도 남편의 폭행에 의해서 이랬는데 왜 나의 사정은 참조 안하느냐는 겁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복음의 공동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면 세상의 사람들이 같이 악의 영향을 받습니다. 세상을 보면서 그런 일이 일어날 때에 탄식할게 아니라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교회가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넣는 부분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이미 우리 교회에 왔습니다. 축복중의 축복임에 감사해야 합니다.
부산 사하구에서 쇠갈고리를 가지고 다니면서 저녁에 조용할 때에 여자들을 쇠갈고리로 걸어서 납치해가는 일당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나체로 성폭행 한 후에 2미터 깊이의 수로 도랑에 집어넣고 달아나는 겁니다. 경찰은 이들의 대담성과 잔혹함으로 인해 여죄가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는 겁니다.
삼보라는 격투기가 러시아에서 왔습니다. 권투에는 이미 흥미가 없어졌습니다. 이제는 이중격투기에 흥미를 가진 여자 팬들이 얼마나 모이는지 모릅니다. 가끔 TV를 보면서 권투보다도 러시아에서 온 삼보격투기가 들어왔는데 이게 들어왔다는 정도가 아니라 320명이라는 선수가 몰려서 격투기시합을 하는데 이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나도 모르게 세대를 따라서 사람들이 마음의 강팍하고 악해지는 겁니다. 피를 보지 않으면 만족이 없습니다. 이것이 오늘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옛날에 로마시대에도 똑같았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을 노예로 데려다 놓고 사자를 풀어 놓고 피 흘리는 모습을 보면서 박수치고 좋아했습니다. 그 로마를 250년간 기독교가 문화권을 바꾸었습니다.
류목사님이 리런 말씀을 했습니다. 어떤 곳에 가니까 사람들이 피켓을 들고 있는데 12월 25일은 예수님이 탄생한 날이 아니라고 바꾸자고 했답니다. 솔직히 12월 25일은 예수님이 탄생한 날이 아닙니다. 언제 나셨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12월 25일이 왜 성탄절이 되었는가? 원래 12월 25일은 로마의 태양신을 섬기는 축제날입니다. 그런데 이 로마가 복음화 되면서 콘스탄틴 황제가 복음을 받고는 지금부터는 기독교는 로마의 국교라고 하면서 해방을 선언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태양신을 섬기는 12월 25일은 예수님이 나신 날로 축하한다. 그래서 그 이후에 지금까지 로마의 영향을 받아서 태양신을 섬기던 그 날을 바꾸어서 예수님 탄생한 날로 정하고 섬기고 있습니다. 지금 와서 잘못되고 안 되고 할 것 없습니다. 로마나라가 모르고 태양신을 섬기는 절기를 복음 받고 너무 감사해서 예수님이 나신 날로 축하하자고 절기가 바뀌었습니다. 그 배경을 알고 나니까 이것을 바꾸어야 한다고 하는데 로마황제를 통해서 태양신을 섬기던 그 나라가, 전 국가가 기독교화 되면서 그 날을 예수님이 나신 날로 기념하자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성육신 하신 그날 역사 속에 한번 있었습니다. 그 날을 기념해야 합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도 기념해야 합니다. 우리를 위해서 이 땅에 함께 하기 위해서 오셨다 기념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안 되면 사람의 심성과 마음이 굳어져서 악해진다고 했습니다. 이런 악화된 심성이 굳어지기 전에 우리 렘넌트들 후대들을 복음을 집어넣어야 합니다. 그렇게 안하면 후세들이 얼마든지 악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이 성령 충만 받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후대들, 렘넌트들에 관심을 가지고 성령 충만 해야 합니다. 이게 앞으로 우리와 우리 후대들이 살 길입니다.
렘넌트들이 교회에서 자라다가 대학까지 나와서 사회에 나가면 학교에서 배운 것과 교회를 통해서 배운 것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가 오게 됩니다. 그리고 어른들은 교회에서 말씀을 듣는 것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회사와 직장에 접하게 됩니다. 그러면 문제가 생기는데 당황하게 됩니다.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과 전혀 다르니까 당황하고 갈등이 오게 됩니다. 내가 어떤 방향으로 나갈 것인가 흔들리게 됩니다. 본인이 바로 안 되면 부딪히면 흔들립니다.
교회에서는 창조론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사회에 나가니까 진화론을 강조하고 이야기 합니다. 아무리 지금까지 겪어봐도 원숭이가 변해서 사람 되는 중간매체가 없습니다. 한번도 들어본 일이 없습니다. 그게 안 되게 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이 종류대로 보내었습니다. 나귀와 말 사이에서 당나귀가 나옵니다. 그런데 당나귀는 새끼를 못 낳습니다. TV를 보니까 기러기와 오리가 서로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런데 그 오리와 기러기가 교미해서 낳은 알이 전부 무정란입니다. 거기에 생명이 없습니다. 알을 낳고 자꾸 키우려고 하니까 주인이 알을 꺼내고 밤을 집어넣었습니다. 그걸 보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종류대로 번식하고 성하게 되어 있다는 걸 깨닫습니다. 그걸 사람이 바꾸려고 하니까 안 되는 겁니다. 호랑이와 사자가 교접해서 라이거가 태어나지만 번성이 안 됩니다.나와 우리 후손들이 불신앙으로 헤매일 때에 무서운 악의 영향이 오게 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이 시대를 구체적으로 이기기 위해서, 사회에 나가서 흔들리지 않도록 모든 갈등과 문제를 기도 속으로 가지고 가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생각들이 기도 속에서 바꾸어지게 되어있습니다. 문제는 구시대에 살다가 구시대의 생각으로 행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 나가서 부딪히는 모든 문제를 기도 속으로 이끌어 가면 기도 속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생각과 마음으로 성령 인도받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이 되어지려면 무한한 능력이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으면 안 되는 겁니다. 총신에서 강의를 하라고 해서 강의할 때에 내가 한 가지 확실히 믿은 것은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문제생기면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데 보통 기도한 게 아니라 금식 기도했는데 기도하는 사건마다 하나님이 완전히 해결했습니다.
지금도 잊지 못할 것이 옛날에 전도사로 농촌목회를 하면서 그 교회의 장로님이 할아버지이신데 이분이 기세등등하여 저를 목회자로 인정하지 않는 겁니다. 그런데 그 일을 위해서 제가 열흘을 굶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할아버지가 이 젊은 목회자가 무슨 죄가 있어서 굶고 합니까? 울면서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그 다음부터 재직회도 제가 인도하게 하고, 그 다음에 금요일 교회에 갈 때마다 못에 있는 자라를 잡아서 자라탕해주는 겁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다 이것이 되면서 하나님을 바라봤는데 거기서 모든 것이 다 되는 겁니다. 저의 모든 목회의 배경이 하나님만 바라봤습니다. 하나님이면 다 됩니다. 이 믿음부터 갖추어야 합니다. 불신앙하면 안 됩니다. 그러기에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 기도하면 다 이루어진다는 생각이 인생 모든 영역에 영향을 주고 힘을 주고 삶을 바꾸어버립니다. 그래서 내게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기도로 바꾸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짜증나서 못살겠다.”하면 문제가 되지만 “짜증이 많이 납니다”라면 기도가 되는 겁니다. 무슨 문제이든지 현실을 그대로, 내게 당한 것을 기도로 연결해야 합니다. 어찌했던 모든 것을 기도로 연결해야 합니다. 그렇게 나가면 하나님이 내 모든 생각과 온 몸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주게 됩니다. 제가 말하는 것을 잘 기억해야 합니다. 생각만 바꾸는 게 아니라 그 생각을 통해서 기도가 나갈 때에 모든 몸에 영향을 주게 됩니다.
커피 한잔을 마시면 29군데의 몸에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성령 충만 받아서 내가 기도하고 하나님의 인도받으면 29군데만 영향을 받겠습니까? 커피 한잔만 먹어도 영향이 오는데 모든 사건을 기도로 하나님 앞에 나가면 29군데만이 아니라 전 인격에 영향이 옵니다. 나도 모를 정도의 축복의 역사가 나오는 겁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말씀을 들으면 말씀을 붙잡고 기도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이게 교인들이 안 되는 부분이고 이것을 하기 위해서 포럼을 합니다. 이것이 묵은디들이 안됩니다. 오늘 말씀을 붙잡고 그 말씀을 기도로, 이것을 포럼이라 합니다. 묵은디부터 노력을 해야 합니다. 장로님들 보면서 느끼는 것이 하도 많이 설교를 들어왔기에 설교 때에 메시지를 대충 듣습니다. 장로님들이 메시지 포럼이 제일 안 되고 오래 믿은 묵은디가 포럼이 안 됩니다. 오늘 각성하고 기록은 못하더라도 하나라도 잡고 기도제목으로 잡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때에 내 삶의 전체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내 인생 전체에 그것으로 통해서 말씀이 붙잡혀지고 기도 속으로 들어가면 한 주간 내 생각에 영향이 미치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축복과 역사가 자기도 모르게 무한대로 나오게 됩니다.
이것이 안 되면 신앙생활에 고민이 생깁니다. 메시지는 들었지만 듣고 메시지 정리도 안 되고, 기도도 안 되고 고민이 생깁니다. “강단에서 날 쳤다.” 생각하고 “누가 고자질을 했나?” 생각하고, “다른 사람이 들어야 하는데...” 그러면 메시지를 들으면서 고민이 생깁니다.
신앙인들에게 큰 문제는 메시지를 들으면서 고민이 생기는 겁니다. 이 고민이 생기게 되면 신앙인은 자기가 해결할 수 없는 갈등이 옵니다. 신앙생활에 갈등이 옵니다. 그러면 이 고민과 갈등이 오면 육신의 병이 옵니다. 이게 해결 안 됩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이 응답해 주신 것도 안보입니다. 그게 전부 하나님께서 메시지를 주었을 때에 기도로 들어가면 축복된 은혜와 능력으로 미치게 되는데 고민으로 잡게 되면 영적문제가 오게 됩니다. 영적문제라는 것은 신앙의 성장을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제일 어려운 문제가 사람사이에 시험, 목회자와 관계에서 시험, 중직자 와의 관계에서의 시험이 옵니다. 이게 그대로 놓아두면 엄청난 고통의 영향으로 파급됩니다. 해결해야 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것이 그냥 나오는 게 아니라 이런 고민과 갈등이 오면 이로 인해서 엄청난 불신앙의 영향이 나옵니다. 알렉시스 카펠은 「고민과 싸우는 법을 모르는 자는 단명한다.」고 했습니다. 복음의 시각으로 모든 만남과 사건을 보지 못하면 고민으로 인해서 단명하게 되는 겁니다. 그리스도의 시각으로 남편을 보고 아내를 보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모든 것을 기도 속으로 끌고 오면 성령이 임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생각과 뜻이 이상하게 변하게 됩니다. 고민에서 3일만 벗어나도 큰 역사가 나타납니다. 그런데 우리는 한번 고민이 들어오면 계속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 고민을 스스로 하지 말고 그걸 가지고 기도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사실이 됩니다. 자신조차도 이것이 해당됩니다. 나 자신을 보는 것도 복음으로 안보면 문제가 생깁니다.
요즘 새삼스럽게 바울의 고백을 마음에 새깁니다. 빌4:11에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건강이 안 좋으면서 부정적인 생각이 나오는 겁니다. 그때마다 바울이 말한 대로 일체의 비결을 배웠는데도 이게 안 되는 겁니다. 길거리에 나 앉으면 어떻게 하느냐?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몸이 약해서 아무것도 못하는데 뭘 하겠느냐 라는 좌절감이 옵니다. 그런데도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병자면 어떻고 투석하면 어떻고 어려우면 어떤가? 하나님이 내게 능력주시면 다 할 수 있다. 자기를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기도 속에 들어오면 됩니다.

마지막으로 붙잡을 것은 전도자, 복음의 눈으로 보는 사람들이 꼭 가져야 할 것이 있습니다. 문제를 안 당할 수 없습니다. 문제는 오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언약 붙잡은 자에게 문제는 축복으로 연결됩니다. 문제의 답이 복음입니다. 문제를 문제로 보면 평생 고생합니다. 그래서 모든 문제 해결하신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모든 문제는 축복으로 바뀝니다. 이것을 기도 속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현실은 늘 어렵습니다. 미래는 오지 않았고 과거는 갔습니다. 그러나 현실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그 현실 속에 하나님이 내게 허락하신 것이 있습니다.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것을 붙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미래는 우리에게 누리는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요셉이 노예로 들어가도 누리고, 감옥에 들어가고 누렸습니다. 이 눈이 열리면 미래는 하나님의 엄청난 축복과 역사로 약속되어있습니다. 현실을 누리게 되면 하나님이 미래는 축복하시기 위한 것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드리면서, 우리 장로님이 너무 걱정하는 것이 부채문제입니다. 괜히 쓸데없이 부채 이야기 합니다. 그런 불신앙의 소리를 무엇 때문에 합니까? 그러면 이상하게 불신앙의 마음이 번집니다. 큰일났구나하게 됩니다. 지난 송현 교회에 있을 때에 그때에 2,000만원이면 엄청난 돈입니다. 그때에 교인도 80명밖에 없을 때입니다. 그런데도 작정하고 건축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부채 때문에 여러모로 걱정이 많이 되었었지만 다른 사람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1년 정도 되니까 부채를 갚을 수 있는 능력이 교회에 생겼습니다. 그래서 이 건축재정을 제가 맡아 있다가 다른 집사님에게 맡기고 일반재정으로 넘겼습니다. 그 후로 1년 정도 지나고 나니까 완전히 해결되었습니다.
내 생각에 교회건축을 위해서 한사람이 내 가족 한 사람당 한달에 일 만원씩 하면 합니다. 그리고 자녀들의 이름을 넣어서 건축헌금 하도록 돈을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이루어지게 되면 천명만 낸다 해도 저절로 해결됩니다. 이것이 조금만 해결되면 하나교회를 통해서 엄청난 세계선교가 가능합니다. 이게 해결되어지고 1억을 선교헌금으로 한다 할 때에 하나님이 엄청나게 역사하실 것입니다.
안양동부교회의 목사님이 선교헌금을 하는데 인색하지 않고 수 천 만원을 내는데 하나님이 축복하셔서 얼마나 부흥하고 잘되는 겁니다. 우리교회가 시작부터 선교로 시작할 때에 하나님이 어떻게 축복하셨는가를 잘 봐야 합니다. 교회 부채문제는 전교인이 다 참여하면 좋겠습니다.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면 신앙생활이 즐겁습니다. 말씀의 축복과 은혜의 역사로 임해야 합니다.

1. 말씀이 안 들어가면 어떻게 됩니까?
(1) 불신앙하게 되고 비판만 하게 됩니다. 내게 갈등이 오게 되고 고민이 됩니다.
(2) 유대인에게 예수님이 구시대에 있던 율법을 다 버리라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성취되는 것이기에 버리고 새로운 체질을 만들어서 새 포도주, 새로운 약속, 언약의 메지시를 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 율법주의자들은 율법을 강조하면서 율법의 묶여 있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마음과 생각과 가치관이 옛 것에 묶여
있습니다.
(4) 새 포주의 역사가 안나오면 교회는 점점 어려워지고 사회는 점점 더 어려워집니다.

2. 무한한 능력이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1) 모든 갈등과 문제를 기도로 바꾸십시오. 그러면 우리의 생각이 바뀝니다.
(2) 말씀을 듣고, 말씀을 붙잡고 기도 속으로 들어가십시오. 그것을 포럼
하십시오. 내 생애 전반에 영향을 미칩니다(빌4:11-13).

3. 복음의 눈으로 보는 전도자들이 꼭 가져야 할 것이 있습니다.
(1) 언약 잡은 모든 자들에게 모든 문제는 축복으로 연결 됩니다.
(2) 현실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그 현실 속에 하나님이 내게 허락하신 계획을 발견해야
합니다.
(3) 미래는 우리에게 누리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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