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자의 헌신
2005-12-18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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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인사하겠습니다. 평강하십시오. 안녕하십시오. 당신은 세계살릴 선교사입니다.
오늘 잠깐 뒤에서 묵상하면서 기도하는 중에 교회를 옮긴지가 이제 1년입니다. 본격적으로 다음주가 막 1년이 됩니다. 송구영신예배때 여기에 왔습니다. 감회가 있다고 볼 정도가 아니라 진짜 감회가 많습니다. 일단 저 개인적인 경우에는 교회를 옮기는 과정 속에 사경을 헤맸던 것이 지난 한해입니다. 옮기면서 스타일을 바꿔서 하얀수건을 걸치고 목으로 투석을 하고 있던 상황에서 교회를 옮겼습니다. 옮기면서도 제가 너무 괴로워서 새교회로 옮긴다는것에 대한 기쁨조차도 모를 정도로 겨우 강단에 서기만 했던 시기였습니다. 우리 성가대 성탄송을 들으면서 새로운 감화를 느끼게 됩니다. 아마 저뿐만 아니라 여러분이 다 그럴 것입니다. 조장로님의 기도속에서도, 여러분들도 함께 제가 건강한 모습으로 말씀으로 전하게 된 것을 새삼스럽게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오늘 이시간에 있어서 우리 지난 한해를 돌아보면서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축복의 자리에 서있는가? 그러면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염려 근심을 조금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속에서 하나님 앞에 이 여자의 헌신이라는 제목으로 잠깐 말씀을 우리가 함께 묵상하고 또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원합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그렇게 오늘도 오래 따라다녔고 직접 말씀도 듣고 기적도 보고 예수님의 능력도 보았던 제자들입니다. 그런데 막상 문제에 부딪치니까 어디로 가느냐? 오직 복음이 안되면 옛날에 가지고 있던 율법, 신비 그런 것들로 빠져버리는 것이 오늘 본문의 중요한 내용입니다. 본문의 내용은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지금 시간입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임마누엘의 축복을 십자가에서 완성하는 그런 중요한 길에 있었던 사실입니다.
오늘 14장 3절에 보면 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리고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어떤 사람들이 분내어 서로 말하되 무슨 의사로 이 향유를 허비하였는가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가만 두어라 너희가 어찌하여 저를 괴롭게 하느냐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그랬습니다. 여기에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어서 예수님께 헌신을 했습니다. 그때에 옆에 있는 사람들이 분노를 했어요. 왜냐하면 향유값이 삼백데나리온이라고 했습니다. 삼백데나리온이라는 값진 향유를 예수님이 머리에 부어서 허비했다는 이론입니다. 우리도 얼른 보면 그렇게 돌아갑니다. 누가봐도 그렇게 돌아가고 있어요. 하지만 제자들이 예수님을 삼년동안 따라다니면서도 볼 것을 못 봤다는 말입니다. 무슨 말이냐하면 이 향유를 예수님께 머리에 부었다는 이야기는 어떤 일이기에 좋은 일이라고 예수님께서 친히 말하셨는가 하면 그리고 오늘 말씀을 읽지 않았는데 9절 말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 왜 이여자의 일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증거되느냐? 이 여자의 헌신이 복음입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부활에 역사에 참여했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의 장례에 필요한 향유를 머리에 발랐다는 것이고 이 부활을 보고 이 부활에 참여한 여자의 일이다 그래서 복음이 전파되는 어느 곳에든지 이 여자의 일도 헌신도 기념되리라 말씀했습니다. 바로 복음을 보고 복음을 통해서 이 여자의 헌신이 복음의 헌신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축복하셨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향유가 삼백데나리온이라고 했는데 한데나리온의 가치가 어느정도가 되는가 하면 그 당시에 노동자의 하루 분량입니다. 하루 금액이 한데나리온입니다. 오늘날 우리 돈이라고 치면 중간쯤해서 노동자의 하루 분량으로 해서 5만원정도입니다. 그러면 5X3=15 엄청난 축복의 돈입니다. 이 돈을 왜 허비하느냐 제자들이 그랬습니다. 그렇게 볼수가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그렇게 따라다녔지만 아직까지도 율법적인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아직까지 신비적이고 인본주의적인 배경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 여러분의 모습이요 저의 모습입니다.
다락방 역사를 위해서 제가 빠질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에 역사를 좀 말씀해 달라고 저에게 부탁이 들어왔습니다. 이것을 기록한다고 하면서 찾아오겠다고 하던데 제가 우리 부목사님께 교회사도 중요하지만 제 역사가 바로 교회의 역사이니까 한번 준비해봐라 이렇게 말씀을드려놓고 있습니다. 문제는 뭐냐고 하면 10년이상 15년 가까이 그렇게 따라 다녔습니다만은 아직도 이 여인의 헌신과 같은 축복이 그 축복의 계획에 참여하고 있다고 말은 하지만 사실은 아닙니다. 문제가 부닥치면 제자들의 눈으로 돌아갑니다. 어찌해서 율법적인 눈, 이 삼백데나리온이라는 거금을 허비하느냐.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준비했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입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이냐고 하면 지금 성탄절이 아닙니까? 여러분과 저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다. 임마누엘의 축복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셨다,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는 것은 엄청난 복입니다. 이 임마누엘의 사실이 복음입니다. 이 복음의 시각으로 무엇이든지 보는 것마다 모든 문제가 해결되게 되어있습니다. 근데 아직까지 우리는 복음을 본다고 말하고 누린다고 말하면서 임마누엘의 사실을 말하고 있지만 문제에 부딪치기만 하면 어찌해서 이 거금을 허탈한데 허비하느냐. 예수님께 향한 헌신이 아직까지 무엇인가 허비로 보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모르게 주일날이 아깝습니까? 돈 버는 사람들. 아마 여기에 오신 분들이 오늘 주일에 장사만 했다고 하면 훨씬 다른날보다 돈도 많이 벌텐데하는 시각으로 아직까지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까? 지금 제자들과 똑같아요. 우리 주님께 향한 헌신에 모든 것이 다 여기에 있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모든 것을 거하시리라. 할렐루야. 확실하게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아까워요. 주일날 헌신 이것이 얼마나 축복인데도 주일 헌신이 잘 안되요. 반쪽 헌신. 아직까지 체질과 정서가 안되었습니다. 여러분 주일에 모든 것이 다 있습니다. 이것이 아직까지 우리가 십년이상 따라다녔지만 내 정서가 바뀌지 않아요. 아직까지 내 체질이 안바뀌어요. 그래서 아직도 율법적 복음, 신비적 복음, 복음은 붙지만 복음적 복음은 되지 않고 앞에 아직 체질과 정서가 되지 않아서 본격적으로 문제에 부딪칠 때는 다른 것으로 빠집니다. 이것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모릅니다. 왜? 복음안에 모든 것이 있습니다. 이것을 그렇게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잘 안되고 있습니다. 우리 중직자들 특별히 오래 믿은 성도들, 여러분 복음안에 모든 것이 있습니다. 복음이 안되었다고 하면 말년에 너무 허탈한 것에 빠진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많이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사실이 안되고 있어요.
그래서 오늘 본문에 중요한 말씀을 했습니다. 이 눈만 열린다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입니다. 사도행전 8장 26절에 보면 주의 사자가 빌립더러 일러 가로되 일어나서 남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예수님께서 빌립에서 성령으로 말씀하시는데 광야로 가라 그랬습니다. 여러분 전도할려면 광야로 가는게 아니고 사람있는데로 가야되는데 광야는 무인도로 사람이 없는 곳입니다. 광야로 가라 그런데 또 어리숙하게도 성령의 말씀을 따라서 빌립이 광야로 또 갔어요. 갔는데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큰 권세가 있는 내시가 예배하러 왔다가 돌아가는 길입니다. 돌아가는데 병거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되 이 병거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는뇨. 광야로 가서보니 누가 있느냐? 에디오피아 내시, 큰 국고를 맡은 아주 거물입니다. 예루살렘에 왔다가 돌아가면서 글을 읽는데 아마 이 글은 구약에 있는 내용입니다 그러면서 그 글은 예수님이 죽으심에 대한 글을 읽습니다. 그러니까 빌립이 달려가서 이사야 선지자의 글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뇨. 도대체 모르겠다 그럽니다. 그러면서 옆에 앉으라 그러면서 내게 해석을 해달라고 그랬어요. 그러니까 빌립은 좋은 기회아닙니까? 그 옆에 앉아서 직접 복음을 확실하게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이때에 다른 얘기하고 철학 얘기하면 큰일납니다. 그것은 진짜 하나님한테 귀때기 맞아 죽습니다. 이건 보통일이 아닙니다. 여러분 중요한 배경입니다. 예수그리스도, 죽음과 부활, 부활을 통해서 지금도 성령이 임재하셔서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이 내용입니다. 여러분 빌립더러 성령이 말씀했습니다. 성령께서 빌립더러 광야로 가라그랬다가 내시 옆에 올라타라 그랬습니다. 성령이 오늘도 여러분과 제게 죽었다가 살아나신 예수님이 성령으로 여러분과 제게 임마누엘하셔서 직접 말씀하고 계신다. 이 말씀만 이해해도 놀라운 눈이 열립니다. 이 말만 순종해도 여러분 앞에 에디오피아 내시가 준비되어있다고 성경에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이 눈이 열리기만 하면은 여러분이 가는 곳에 참 축복과 은혜가 약속되어 있습니다. 이 사실을 성경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오늘 솔직히 경험했던 사실 아닙니까? 우리 주변에, 그리고 기존 교회에 미안합니다만은 여러분 만나서 정말 그들이 복음이 있느냐 한번 따져볼 때에 여러분 어떤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까? 물론 비슷한게 나와요. 비슷한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 비슷하냐고 하면 율법적 복음이라 그럽니다. 복음은 예수는 말하고 있어도 율법에 배경이 되있습니다. 신비적 복음이란 복음을 말해도 완전 신비적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가장 고치지 못한 부분입니다. 인본주의적 복음입니다. 복음을 말하고 예수를 말하는데 그 배경은 완전 인본주의입니다. 여러분 여기에 우리조차도 완전히 찌들어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이 나도 모르게 체질이 그렇게 되어 있어요. 나도 모르게 우리의 정서가 그렇게 되어 있어요. 복음은 말하지만 배경이 무엇이냐, 율법적인 정서입니다. 여기에서 탈피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직 예수그리스도 참된 복음의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이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예수그리스도 모든 문제가 해결됐습니다. 아니 영원의 문제까지 해결됐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그 역사를 위해서 하나님이 성령으로 여러분과 저와 함께 계셔서 여러분과 저를 인도하고 계십니다. 성령으로 성경으로 말씀하십니다. 이 사실을 붙들고 우리는 말씀 붙들고 기도합니다. 한 주간 메시지 속에서 제목을 잡고 기도합니다. 말씀이 성취되는 현장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배경이 여기에서 떠나지 못해요.
여러분 이 복음은 듣기만 해도 역사가 나온다 그 얘기를 우리가 듣기는 많이 들었지만 우리 자신도 모르게 이것이 안되고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판단합니다. 말씀을 하기만 하면 역사가 나옵니다. 로마서 10장 13절에 보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여러분 복음을 전하기만 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역사합니다. 왜냐하면 듣지 못해서 방황하는 자들이 전부 다입니다. 우리 주변에 수두룩하다는 정도가 아니라 전부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런 사람들 앞에서 복음을 못 전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말을 못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0장 14절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15절에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여러분 우리 주변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이 여러분을 통해서 아름다운 발걸음이다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이 복음을 가지고 말만해도 역사가 나왔습니다. 우리는 명절때는 기도하고 나갑니다. 왜냐하면 모인 우리 친척들 이 복음을 전할 기회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했다, 한 가문도 가정도 빠짐없이 얼마되지 않은 시간에 복음화 시켰습니다. 감격적인 고백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Oneness(원니스)라는 우리 교회 회보가 발간이 되었어요. 아마 전체발간이 되서 여러분 볼 수 있도록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만은 우선 간단하게 당회원들과 교역자들에게 보내져 왔는 것을 봤습니다. 거기에 보면 아마 우리 교회의 지난 시간에 일어났던 고백들, 간증들이 실려있습니다. 제가 보니깐 많이 광고가 안되가지고 조금밖에 안되있는데 앞으로 여러분들이 간증들을 많이 참여 하셔서 그 회보가 세계적으로 나갑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축복을 누린 여러분들을 보시기를 원합니다. 이래서 하나님이 인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마 지난 간증들 조금만해도 놀라운 간증들이 있습니다. 너무 이 제사문화에 찌들려 있던 가문속에 여러분 이 복음가지고 전했더니 이 가문에 모든 문화들이 바뀌어버렸습니다. 기독교의 문화가 아니고 복음의 문화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것은 이말을 하면 맞아 죽기 때문에 죽을 작정을 하고 갔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흑암을 꺾고 가니까 간담이 녹아버려 그 든든하던 세력들이 어디갔는지 흔적이 없어요. 복음을 말씀했더니 가문이 확 바뀌어 버렸어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 복음을 듣지 못해서 방황하고 있던 그들입니다. 복음을 말했더니 하나님이 엄청난 축복으로 임했던 사실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또 중요한 문제는 들어도 틀린 것을 듣고 있습니다. 우리가 옛날에 말했었습니다. 우리가 일본에 가서 복음전했던 일이 기억이 납니다. 가서 밤새도록 머리 누르고 방언했던 사실, 그래도 거기에서 복음의 냄새를 맡았느지 어땠는지 모르지만은 기뻐하며 즐거워했습니다. 그러나 한 20년이 지난 오늘날 느끼는 것은 얼마나 신비적인 복음, 예수를 말했지만 신비를 가지고 밤새도록 머리누르고 목이 다 쉬어서 우리 권사님들이 남자들이 되었어요. 우리 권사님들 뿐만아니라 여기있는 사람들 다 그랬어요. 나는 아예 변성되었어요. 요즘엔 그런 소리 잘 안나와요. 얼마나 목이 맑은 음성으로 말씀합니다. 여러분 우리 지난날에 그런일들, 복음을 들었지만 신비배경입니다. 복음을 들었다하지만은 율법배경입니다. 들었지만은 인본주의 배경입니다. 여러분 참 이것이 무섭습니다. 이 체질이요, 이 정서가 아직까지도 안바뀌어지고 있습니다.
순수한 복음, 복음이면 다입니다. 붙을 것 없어요, 다른정서 나올 것이 없어요. 복음만 말하면 됩니다. 순수한 복음, 복음이면 됩니다. 어떠한 사람이든 복음의 시각이면 됩니다. 왜?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에스겔 골짜기에 모든 해골들도 복음만 말하면 살아납니다. 이게 아직 우리 정서가 안 되어 있어요. 뭔가 저사람 될거다 안 될 거다 내가 판단하고 복음을 말할 려고 하면 저 사람 꼭 도둑 놈처럼 생겨가지고 내 말을 안 들을거다 자기가 판단하는데 그것은 아닙니다. 복음만 말하면 됩니다. 어떤 사람이든지 도적놈이든지 사기꾼이든지 복음만 말하면 살아납니다. 하나님이 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자신도 모르게 들어도 복음을 말해도 틀린 복음, 신비적 복음, 율법적 복음, 이걸 말해서 섞인 복음, 그건 비슷한 걸 말해도 그 비슷한 것 때문에 하나님이 은혜 주셨던 사실인데 완전 복음 말했다는 것은 말할 수 없어요. 지난 주에 참 중요한 건 완벽한 복음으로 시작하라. 복음으로 시작해야 여기에 하나님이 축복과 계획이 담겨 있다. 갈라디아서 1장 6절에 보면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복음의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복음의 뿌리 내리는 일들을 위해서 제가 계속 강조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훈련받아야 합니다. 정서가 안됐고 체질이 안 됐기 때문에 이걸 바꾸기 위해서 계속 해서 훈련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합숙훈련, 팀합숙, 전도합숙 그 다음에 1차 2차 70인 합숙 다 받으라 그랬습니다. 훈련받는동안에 내 속에 뿌리되어 있는 체질이 바꾸어지고 정서가 바꾸어집니다. 안 그러면 바꿔지지가 않더라구요. 그래 우리 교회에서도 합숙 훈련했었는데 요즘 좀 쉬고 있습니다. 합숙훈련말고 교회에서 단계별 훈련을 오후 2시부터 하고 있지 않습니까? 일단 참석해 보세요. 여러분 싫더라도 참석해 보세요. 참석하는 과정에서 뭐가 없냐? 정서가 바꾸어 집니다. 그 다음에 뭐가 바꾸어 지느냐? 생각 체질이 바꾸어집니다. 우리 초기에 얼마나 이 말씀에 미쳤는지 그게 미친거지 완전히 정신없이 말씀따라 다녔어요. 그때에 훈련에 안 따라다닌 사람보면 짐승같이 보였어요. 미안합니다만은 그렇게 정서가 되더라구요. 그렇게 초기에 토욜일날 모든 행사를 하지 말라고 그랬습니다. 결혼식도 하지마라, 토요일에 메시지 안 듣고 다른 행사하는 거는 완전히 그거는 보는 눈이 어떻게 보이느냐 그건 이상한 사람이다 싶었어요. 요즘엔 또 옛날 체질로 돌아가서 토요일날 행사하는 것도 여사로 여기고 핵심참여 안하는 사람들도 여사로 여기는데 그러면 안됩니다. 우리 교회 핵심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참석 안하는 사람 참 많습니다. 우리 10년전의 눈만 봐도 그들을 짐승으로 봤는데 요즘엔 또 그것을 보통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것을 또 옛날체질로 갔다 그렇게 되더라구요. 왜? 우리 정서가 우리 생각이 아직까지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진짜 중요합니다. 뭔 문제가 딱 당했다, 내가 체질이 정서가 안됐다, 나도 모르게 율법적 신비적 복음으로 들어갑니다. 나도 모르게 복음은 복음인데 섞여진 복음으로 들어갑니다.
여러분 그래도 희미한 것 붙잡고도. 보세요. 엄청난 변화가 여러분과 제게 일어났습니다. 쉽게 말해서 친구들 만나보세요. 기존교회 친구들 대화 한번 해보세요. 답답합니다. 말이 안 통합니다. 벌써 우리 정서와 우리 체질이 바뀌어졌습니다. 할렐루야. 많이 바뀌어졌습니다. 여러분 얼굴이 많이 달라졌어요. 깜짝 놀라고 희색을 발하고 이것만 해도 엄청난 변화입니다. 여러분과 제게 이 근본적인 복음의 역사가 내 안에 있습니다. 내 중심이 변했습니다. 생각도 마음도 바뀌어 지고 있습니다. 엄청난 변화가 십 여년간 나도 모르게 이루어졌습니다. 여덟팔자(八)가 다 펴졌습니다. 갈라디아서 1장 7절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우리도 모르게 이 배경이 우리 주변에 가득 찼습니다. 우리 복음을 변화하게 하려고 들었던 복음을 이상하게 여기게 하려고 별별 짓을 다 합니다. 갈라디아서 1장 8절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할렐루야. 이 복음 얼마나 귀한 복음이기에 바울이 우리가 전한 이 복음 외에 다른 것을 전하면 천사라도 저주를 받을 찌어다. 여러분 확실하게 이것만 이해가 되고 뿌리가 내리게 되면 가는 곳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축복의 대열에 세워놓았다 그 말입니다. 말세에 하나님께서 이 복음에 깊이 세워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과 저를 이 복음에 깊이 세워서 하나님이 축복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종말에 여러분과 저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마태복음 28장 16절~20절에 보면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 여러분과 제게 이 복음 주시고 명령하신 겁니다. 이 복음 주실 때에 그 약속이 무엇입니까?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을 것이다. 할렐루야. 그러기에 세계 끝까지 복음의 증인이 되라.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 마가복음 16장 15절~20절에 만민에게로 가거라 이 복음 가지고 가라. 사도행전 1장 8절에 땅 끝까지 내 증인으로 서라. 할렐루야. 이 복음 들고 가라 그랬습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과 저는 이 복음을 바로 붙잡게 되면 만남마다 하나님과의 화해의 축복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의 만남 축복의 만남입니다. 여러분 이웃의 만남 축복입니다. 여러분 당회원, 장로들의 만남 축복의 만남입니다. 여러분 복음가지고 만나서 축복으로 바꿔놓지 못했다는 것은 문제는 근본문제로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여러분 성도들 만나면 참 반갑고 희색을 발하고 깜짝 놀란다는 것은 그저 외부적으로 그런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 복음 들고 만나게 될 때에 여기에 하나님이 축복으로 바꿔놓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역사, 이것이 전도라고 하고 이 만남을 선교라고 합니다 .이렇게 복음가지고 만남 속에서 전도와 선교로 바꿔지게 될 때에 그를 가지고 제자라 그랬습니다. 제자라서 이마에 붙이고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이 같이 우리의 만남 속에서 우리의 만남을 축복으로 바꾸어 놓는 그래서 전도와 선교로 이어지게 하는 이 축복의 만남을 이루는 현장을 제자의 만남, 제자라 그러는 것입니다. 역사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바로 이 제자의 역사, 죽음과 예수님의 사랑하심과 지금 바로 성령께서 임하셔서 임마누엘하시고 임마누엘하신 이 축복의 헌신이 여러분과 저를 향해서 제자라 하는 것이 이 여자의 헌신입니다. 바로 여러분과 저를 향한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이 놀라운 언약 속에 있는 여러분과 저를 축복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 속에 서있는 여러분과 저를 오늘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정말 축복과 역사, 헌신, 복음가지고 주님 앞에 서기만 해도 만남과 사건 속에서 축복으로 이어가시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주의 종들에게 이 확신 가지고 한주간도 말씀 붙잡고 가는 곳곳마다 말씀이 성취되는 역사가 이루어지도록 은혜 입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오늘 잠깐 뒤에서 묵상하면서 기도하는 중에 교회를 옮긴지가 이제 1년입니다. 본격적으로 다음주가 막 1년이 됩니다. 송구영신예배때 여기에 왔습니다. 감회가 있다고 볼 정도가 아니라 진짜 감회가 많습니다. 일단 저 개인적인 경우에는 교회를 옮기는 과정 속에 사경을 헤맸던 것이 지난 한해입니다. 옮기면서 스타일을 바꿔서 하얀수건을 걸치고 목으로 투석을 하고 있던 상황에서 교회를 옮겼습니다. 옮기면서도 제가 너무 괴로워서 새교회로 옮긴다는것에 대한 기쁨조차도 모를 정도로 겨우 강단에 서기만 했던 시기였습니다. 우리 성가대 성탄송을 들으면서 새로운 감화를 느끼게 됩니다. 아마 저뿐만 아니라 여러분이 다 그럴 것입니다. 조장로님의 기도속에서도, 여러분들도 함께 제가 건강한 모습으로 말씀으로 전하게 된 것을 새삼스럽게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오늘 이시간에 있어서 우리 지난 한해를 돌아보면서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축복의 자리에 서있는가? 그러면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염려 근심을 조금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속에서 하나님 앞에 이 여자의 헌신이라는 제목으로 잠깐 말씀을 우리가 함께 묵상하고 또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원합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그렇게 오늘도 오래 따라다녔고 직접 말씀도 듣고 기적도 보고 예수님의 능력도 보았던 제자들입니다. 그런데 막상 문제에 부딪치니까 어디로 가느냐? 오직 복음이 안되면 옛날에 가지고 있던 율법, 신비 그런 것들로 빠져버리는 것이 오늘 본문의 중요한 내용입니다. 본문의 내용은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지금 시간입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임마누엘의 축복을 십자가에서 완성하는 그런 중요한 길에 있었던 사실입니다.
오늘 14장 3절에 보면 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리고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어떤 사람들이 분내어 서로 말하되 무슨 의사로 이 향유를 허비하였는가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가만 두어라 너희가 어찌하여 저를 괴롭게 하느냐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그랬습니다. 여기에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어서 예수님께 헌신을 했습니다. 그때에 옆에 있는 사람들이 분노를 했어요. 왜냐하면 향유값이 삼백데나리온이라고 했습니다. 삼백데나리온이라는 값진 향유를 예수님이 머리에 부어서 허비했다는 이론입니다. 우리도 얼른 보면 그렇게 돌아갑니다. 누가봐도 그렇게 돌아가고 있어요. 하지만 제자들이 예수님을 삼년동안 따라다니면서도 볼 것을 못 봤다는 말입니다. 무슨 말이냐하면 이 향유를 예수님께 머리에 부었다는 이야기는 어떤 일이기에 좋은 일이라고 예수님께서 친히 말하셨는가 하면 그리고 오늘 말씀을 읽지 않았는데 9절 말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 왜 이여자의 일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증거되느냐? 이 여자의 헌신이 복음입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부활에 역사에 참여했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의 장례에 필요한 향유를 머리에 발랐다는 것이고 이 부활을 보고 이 부활에 참여한 여자의 일이다 그래서 복음이 전파되는 어느 곳에든지 이 여자의 일도 헌신도 기념되리라 말씀했습니다. 바로 복음을 보고 복음을 통해서 이 여자의 헌신이 복음의 헌신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축복하셨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향유가 삼백데나리온이라고 했는데 한데나리온의 가치가 어느정도가 되는가 하면 그 당시에 노동자의 하루 분량입니다. 하루 금액이 한데나리온입니다. 오늘날 우리 돈이라고 치면 중간쯤해서 노동자의 하루 분량으로 해서 5만원정도입니다. 그러면 5X3=15 엄청난 축복의 돈입니다. 이 돈을 왜 허비하느냐 제자들이 그랬습니다. 그렇게 볼수가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그렇게 따라다녔지만 아직까지도 율법적인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아직까지 신비적이고 인본주의적인 배경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 여러분의 모습이요 저의 모습입니다.
다락방 역사를 위해서 제가 빠질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에 역사를 좀 말씀해 달라고 저에게 부탁이 들어왔습니다. 이것을 기록한다고 하면서 찾아오겠다고 하던데 제가 우리 부목사님께 교회사도 중요하지만 제 역사가 바로 교회의 역사이니까 한번 준비해봐라 이렇게 말씀을드려놓고 있습니다. 문제는 뭐냐고 하면 10년이상 15년 가까이 그렇게 따라 다녔습니다만은 아직도 이 여인의 헌신과 같은 축복이 그 축복의 계획에 참여하고 있다고 말은 하지만 사실은 아닙니다. 문제가 부닥치면 제자들의 눈으로 돌아갑니다. 어찌해서 율법적인 눈, 이 삼백데나리온이라는 거금을 허비하느냐.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준비했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입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이냐고 하면 지금 성탄절이 아닙니까? 여러분과 저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다. 임마누엘의 축복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셨다,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는 것은 엄청난 복입니다. 이 임마누엘의 사실이 복음입니다. 이 복음의 시각으로 무엇이든지 보는 것마다 모든 문제가 해결되게 되어있습니다. 근데 아직까지 우리는 복음을 본다고 말하고 누린다고 말하면서 임마누엘의 사실을 말하고 있지만 문제에 부딪치기만 하면 어찌해서 이 거금을 허탈한데 허비하느냐. 예수님께 향한 헌신이 아직까지 무엇인가 허비로 보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모르게 주일날이 아깝습니까? 돈 버는 사람들. 아마 여기에 오신 분들이 오늘 주일에 장사만 했다고 하면 훨씬 다른날보다 돈도 많이 벌텐데하는 시각으로 아직까지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까? 지금 제자들과 똑같아요. 우리 주님께 향한 헌신에 모든 것이 다 여기에 있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모든 것을 거하시리라. 할렐루야. 확실하게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아까워요. 주일날 헌신 이것이 얼마나 축복인데도 주일 헌신이 잘 안되요. 반쪽 헌신. 아직까지 체질과 정서가 안되었습니다. 여러분 주일에 모든 것이 다 있습니다. 이것이 아직까지 우리가 십년이상 따라다녔지만 내 정서가 바뀌지 않아요. 아직까지 내 체질이 안바뀌어요. 그래서 아직도 율법적 복음, 신비적 복음, 복음은 붙지만 복음적 복음은 되지 않고 앞에 아직 체질과 정서가 되지 않아서 본격적으로 문제에 부딪칠 때는 다른 것으로 빠집니다. 이것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모릅니다. 왜? 복음안에 모든 것이 있습니다. 이것을 그렇게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잘 안되고 있습니다. 우리 중직자들 특별히 오래 믿은 성도들, 여러분 복음안에 모든 것이 있습니다. 복음이 안되었다고 하면 말년에 너무 허탈한 것에 빠진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많이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사실이 안되고 있어요.
그래서 오늘 본문에 중요한 말씀을 했습니다. 이 눈만 열린다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입니다. 사도행전 8장 26절에 보면 주의 사자가 빌립더러 일러 가로되 일어나서 남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예수님께서 빌립에서 성령으로 말씀하시는데 광야로 가라 그랬습니다. 여러분 전도할려면 광야로 가는게 아니고 사람있는데로 가야되는데 광야는 무인도로 사람이 없는 곳입니다. 광야로 가라 그런데 또 어리숙하게도 성령의 말씀을 따라서 빌립이 광야로 또 갔어요. 갔는데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큰 권세가 있는 내시가 예배하러 왔다가 돌아가는 길입니다. 돌아가는데 병거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되 이 병거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는뇨. 광야로 가서보니 누가 있느냐? 에디오피아 내시, 큰 국고를 맡은 아주 거물입니다. 예루살렘에 왔다가 돌아가면서 글을 읽는데 아마 이 글은 구약에 있는 내용입니다 그러면서 그 글은 예수님이 죽으심에 대한 글을 읽습니다. 그러니까 빌립이 달려가서 이사야 선지자의 글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뇨. 도대체 모르겠다 그럽니다. 그러면서 옆에 앉으라 그러면서 내게 해석을 해달라고 그랬어요. 그러니까 빌립은 좋은 기회아닙니까? 그 옆에 앉아서 직접 복음을 확실하게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이때에 다른 얘기하고 철학 얘기하면 큰일납니다. 그것은 진짜 하나님한테 귀때기 맞아 죽습니다. 이건 보통일이 아닙니다. 여러분 중요한 배경입니다. 예수그리스도, 죽음과 부활, 부활을 통해서 지금도 성령이 임재하셔서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이 내용입니다. 여러분 빌립더러 성령이 말씀했습니다. 성령께서 빌립더러 광야로 가라그랬다가 내시 옆에 올라타라 그랬습니다. 성령이 오늘도 여러분과 제게 죽었다가 살아나신 예수님이 성령으로 여러분과 제게 임마누엘하셔서 직접 말씀하고 계신다. 이 말씀만 이해해도 놀라운 눈이 열립니다. 이 말만 순종해도 여러분 앞에 에디오피아 내시가 준비되어있다고 성경에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이 눈이 열리기만 하면은 여러분이 가는 곳에 참 축복과 은혜가 약속되어 있습니다. 이 사실을 성경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오늘 솔직히 경험했던 사실 아닙니까? 우리 주변에, 그리고 기존 교회에 미안합니다만은 여러분 만나서 정말 그들이 복음이 있느냐 한번 따져볼 때에 여러분 어떤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까? 물론 비슷한게 나와요. 비슷한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 비슷하냐고 하면 율법적 복음이라 그럽니다. 복음은 예수는 말하고 있어도 율법에 배경이 되있습니다. 신비적 복음이란 복음을 말해도 완전 신비적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가장 고치지 못한 부분입니다. 인본주의적 복음입니다. 복음을 말하고 예수를 말하는데 그 배경은 완전 인본주의입니다. 여러분 여기에 우리조차도 완전히 찌들어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이 나도 모르게 체질이 그렇게 되어 있어요. 나도 모르게 우리의 정서가 그렇게 되어 있어요. 복음은 말하지만 배경이 무엇이냐, 율법적인 정서입니다. 여기에서 탈피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직 예수그리스도 참된 복음의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이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예수그리스도 모든 문제가 해결됐습니다. 아니 영원의 문제까지 해결됐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그 역사를 위해서 하나님이 성령으로 여러분과 저와 함께 계셔서 여러분과 저를 인도하고 계십니다. 성령으로 성경으로 말씀하십니다. 이 사실을 붙들고 우리는 말씀 붙들고 기도합니다. 한 주간 메시지 속에서 제목을 잡고 기도합니다. 말씀이 성취되는 현장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배경이 여기에서 떠나지 못해요.
여러분 이 복음은 듣기만 해도 역사가 나온다 그 얘기를 우리가 듣기는 많이 들었지만 우리 자신도 모르게 이것이 안되고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판단합니다. 말씀을 하기만 하면 역사가 나옵니다. 로마서 10장 13절에 보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여러분 복음을 전하기만 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역사합니다. 왜냐하면 듣지 못해서 방황하는 자들이 전부 다입니다. 우리 주변에 수두룩하다는 정도가 아니라 전부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런 사람들 앞에서 복음을 못 전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말을 못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0장 14절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15절에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여러분 우리 주변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이 여러분을 통해서 아름다운 발걸음이다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이 복음을 가지고 말만해도 역사가 나왔습니다. 우리는 명절때는 기도하고 나갑니다. 왜냐하면 모인 우리 친척들 이 복음을 전할 기회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했다, 한 가문도 가정도 빠짐없이 얼마되지 않은 시간에 복음화 시켰습니다. 감격적인 고백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Oneness(원니스)라는 우리 교회 회보가 발간이 되었어요. 아마 전체발간이 되서 여러분 볼 수 있도록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만은 우선 간단하게 당회원들과 교역자들에게 보내져 왔는 것을 봤습니다. 거기에 보면 아마 우리 교회의 지난 시간에 일어났던 고백들, 간증들이 실려있습니다. 제가 보니깐 많이 광고가 안되가지고 조금밖에 안되있는데 앞으로 여러분들이 간증들을 많이 참여 하셔서 그 회보가 세계적으로 나갑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축복을 누린 여러분들을 보시기를 원합니다. 이래서 하나님이 인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마 지난 간증들 조금만해도 놀라운 간증들이 있습니다. 너무 이 제사문화에 찌들려 있던 가문속에 여러분 이 복음가지고 전했더니 이 가문에 모든 문화들이 바뀌어버렸습니다. 기독교의 문화가 아니고 복음의 문화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것은 이말을 하면 맞아 죽기 때문에 죽을 작정을 하고 갔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흑암을 꺾고 가니까 간담이 녹아버려 그 든든하던 세력들이 어디갔는지 흔적이 없어요. 복음을 말씀했더니 가문이 확 바뀌어 버렸어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 복음을 듣지 못해서 방황하고 있던 그들입니다. 복음을 말했더니 하나님이 엄청난 축복으로 임했던 사실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또 중요한 문제는 들어도 틀린 것을 듣고 있습니다. 우리가 옛날에 말했었습니다. 우리가 일본에 가서 복음전했던 일이 기억이 납니다. 가서 밤새도록 머리 누르고 방언했던 사실, 그래도 거기에서 복음의 냄새를 맡았느지 어땠는지 모르지만은 기뻐하며 즐거워했습니다. 그러나 한 20년이 지난 오늘날 느끼는 것은 얼마나 신비적인 복음, 예수를 말했지만 신비를 가지고 밤새도록 머리누르고 목이 다 쉬어서 우리 권사님들이 남자들이 되었어요. 우리 권사님들 뿐만아니라 여기있는 사람들 다 그랬어요. 나는 아예 변성되었어요. 요즘엔 그런 소리 잘 안나와요. 얼마나 목이 맑은 음성으로 말씀합니다. 여러분 우리 지난날에 그런일들, 복음을 들었지만 신비배경입니다. 복음을 들었다하지만은 율법배경입니다. 들었지만은 인본주의 배경입니다. 여러분 참 이것이 무섭습니다. 이 체질이요, 이 정서가 아직까지도 안바뀌어지고 있습니다.
순수한 복음, 복음이면 다입니다. 붙을 것 없어요, 다른정서 나올 것이 없어요. 복음만 말하면 됩니다. 순수한 복음, 복음이면 됩니다. 어떠한 사람이든 복음의 시각이면 됩니다. 왜?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에스겔 골짜기에 모든 해골들도 복음만 말하면 살아납니다. 이게 아직 우리 정서가 안 되어 있어요. 뭔가 저사람 될거다 안 될 거다 내가 판단하고 복음을 말할 려고 하면 저 사람 꼭 도둑 놈처럼 생겨가지고 내 말을 안 들을거다 자기가 판단하는데 그것은 아닙니다. 복음만 말하면 됩니다. 어떤 사람이든지 도적놈이든지 사기꾼이든지 복음만 말하면 살아납니다. 하나님이 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자신도 모르게 들어도 복음을 말해도 틀린 복음, 신비적 복음, 율법적 복음, 이걸 말해서 섞인 복음, 그건 비슷한 걸 말해도 그 비슷한 것 때문에 하나님이 은혜 주셨던 사실인데 완전 복음 말했다는 것은 말할 수 없어요. 지난 주에 참 중요한 건 완벽한 복음으로 시작하라. 복음으로 시작해야 여기에 하나님이 축복과 계획이 담겨 있다. 갈라디아서 1장 6절에 보면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복음의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복음의 뿌리 내리는 일들을 위해서 제가 계속 강조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훈련받아야 합니다. 정서가 안됐고 체질이 안 됐기 때문에 이걸 바꾸기 위해서 계속 해서 훈련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합숙훈련, 팀합숙, 전도합숙 그 다음에 1차 2차 70인 합숙 다 받으라 그랬습니다. 훈련받는동안에 내 속에 뿌리되어 있는 체질이 바꾸어지고 정서가 바꾸어집니다. 안 그러면 바꿔지지가 않더라구요. 그래 우리 교회에서도 합숙 훈련했었는데 요즘 좀 쉬고 있습니다. 합숙훈련말고 교회에서 단계별 훈련을 오후 2시부터 하고 있지 않습니까? 일단 참석해 보세요. 여러분 싫더라도 참석해 보세요. 참석하는 과정에서 뭐가 없냐? 정서가 바꾸어 집니다. 그 다음에 뭐가 바꾸어 지느냐? 생각 체질이 바꾸어집니다. 우리 초기에 얼마나 이 말씀에 미쳤는지 그게 미친거지 완전히 정신없이 말씀따라 다녔어요. 그때에 훈련에 안 따라다닌 사람보면 짐승같이 보였어요. 미안합니다만은 그렇게 정서가 되더라구요. 그렇게 초기에 토욜일날 모든 행사를 하지 말라고 그랬습니다. 결혼식도 하지마라, 토요일에 메시지 안 듣고 다른 행사하는 거는 완전히 그거는 보는 눈이 어떻게 보이느냐 그건 이상한 사람이다 싶었어요. 요즘엔 또 옛날 체질로 돌아가서 토요일날 행사하는 것도 여사로 여기고 핵심참여 안하는 사람들도 여사로 여기는데 그러면 안됩니다. 우리 교회 핵심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참석 안하는 사람 참 많습니다. 우리 10년전의 눈만 봐도 그들을 짐승으로 봤는데 요즘엔 또 그것을 보통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것을 또 옛날체질로 갔다 그렇게 되더라구요. 왜? 우리 정서가 우리 생각이 아직까지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진짜 중요합니다. 뭔 문제가 딱 당했다, 내가 체질이 정서가 안됐다, 나도 모르게 율법적 신비적 복음으로 들어갑니다. 나도 모르게 복음은 복음인데 섞여진 복음으로 들어갑니다.
여러분 그래도 희미한 것 붙잡고도. 보세요. 엄청난 변화가 여러분과 제게 일어났습니다. 쉽게 말해서 친구들 만나보세요. 기존교회 친구들 대화 한번 해보세요. 답답합니다. 말이 안 통합니다. 벌써 우리 정서와 우리 체질이 바뀌어졌습니다. 할렐루야. 많이 바뀌어졌습니다. 여러분 얼굴이 많이 달라졌어요. 깜짝 놀라고 희색을 발하고 이것만 해도 엄청난 변화입니다. 여러분과 제게 이 근본적인 복음의 역사가 내 안에 있습니다. 내 중심이 변했습니다. 생각도 마음도 바뀌어 지고 있습니다. 엄청난 변화가 십 여년간 나도 모르게 이루어졌습니다. 여덟팔자(八)가 다 펴졌습니다. 갈라디아서 1장 7절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우리도 모르게 이 배경이 우리 주변에 가득 찼습니다. 우리 복음을 변화하게 하려고 들었던 복음을 이상하게 여기게 하려고 별별 짓을 다 합니다. 갈라디아서 1장 8절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할렐루야. 이 복음 얼마나 귀한 복음이기에 바울이 우리가 전한 이 복음 외에 다른 것을 전하면 천사라도 저주를 받을 찌어다. 여러분 확실하게 이것만 이해가 되고 뿌리가 내리게 되면 가는 곳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축복의 대열에 세워놓았다 그 말입니다. 말세에 하나님께서 이 복음에 깊이 세워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과 저를 이 복음에 깊이 세워서 하나님이 축복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종말에 여러분과 저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마태복음 28장 16절~20절에 보면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 여러분과 제게 이 복음 주시고 명령하신 겁니다. 이 복음 주실 때에 그 약속이 무엇입니까?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을 것이다. 할렐루야. 그러기에 세계 끝까지 복음의 증인이 되라.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 마가복음 16장 15절~20절에 만민에게로 가거라 이 복음 가지고 가라. 사도행전 1장 8절에 땅 끝까지 내 증인으로 서라. 할렐루야. 이 복음 들고 가라 그랬습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과 저는 이 복음을 바로 붙잡게 되면 만남마다 하나님과의 화해의 축복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의 만남 축복의 만남입니다. 여러분 이웃의 만남 축복입니다. 여러분 당회원, 장로들의 만남 축복의 만남입니다. 여러분 복음가지고 만나서 축복으로 바꿔놓지 못했다는 것은 문제는 근본문제로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여러분 성도들 만나면 참 반갑고 희색을 발하고 깜짝 놀란다는 것은 그저 외부적으로 그런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 복음 들고 만나게 될 때에 여기에 하나님이 축복으로 바꿔놓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역사, 이것이 전도라고 하고 이 만남을 선교라고 합니다 .이렇게 복음가지고 만남 속에서 전도와 선교로 바꿔지게 될 때에 그를 가지고 제자라 그랬습니다. 제자라서 이마에 붙이고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이 같이 우리의 만남 속에서 우리의 만남을 축복으로 바꾸어 놓는 그래서 전도와 선교로 이어지게 하는 이 축복의 만남을 이루는 현장을 제자의 만남, 제자라 그러는 것입니다. 역사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바로 이 제자의 역사, 죽음과 예수님의 사랑하심과 지금 바로 성령께서 임하셔서 임마누엘하시고 임마누엘하신 이 축복의 헌신이 여러분과 저를 향해서 제자라 하는 것이 이 여자의 헌신입니다. 바로 여러분과 저를 향한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이 놀라운 언약 속에 있는 여러분과 저를 축복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 속에 서있는 여러분과 저를 오늘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정말 축복과 역사, 헌신, 복음가지고 주님 앞에 서기만 해도 만남과 사건 속에서 축복으로 이어가시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주의 종들에게 이 확신 가지고 한주간도 말씀 붙잡고 가는 곳곳마다 말씀이 성취되는 역사가 이루어지도록 은혜 입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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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4 | 전환점을 이룬 안디옥 선교 | 행11:19-30 | 2025-04-27 | |
1483 | 우리에게 주시는 영원한 메시지 | 고전15:1-11 | 2025-04-20 | |
1482 | 새로운 싸움을 위하여 | 삿7:9-18 | 2025-04-13 | |
1481 | 날마다 영적싸움에 승리하라 | 삿7:1-8 | 2025-04-06 | |
1480 | 이 시대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해답 | 삿4:1-10 | 2025-03-30 | |
1479 | 하나님이 쓰시는 기준 | 삿3:12-23 | 2025-03-23 | |
1478 |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 삿3:7-11 | 2025-03-16 | |
1477 |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 삿2:6-10 | 2025-03-09 | |
1476 |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 삿1:1-7 | 2025-03-02 | |
1475 |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 단12:1-4 | 2025-02-23 | |
1474 |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 단11:28-39 | 2025-02-16 | |
1473 |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 단10:10-21 | 2025-02-09 | |
1472 |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 단9:20-24 | 2025-02-02 | |
1471 |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 단8:15-27 | 2025-01-26 | |
1470 |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 단7:9-14 | 2025-0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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