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큰 계명
2005-11-13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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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제일 큰 계명이 뭐냐? 첫 번째 계명이 있고, 두 번째 제일 큰 계명이 주님이 친히 말씀하신 계명이 나옵니다. 그 첫 번째가 29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에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하신 주시니라’ 생명의 주님. 유일하신 주님. 정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을 받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 두 번째 계명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문제 해결 다 되었구나. 확실한 답을 붙잡을 때에 따라오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이 없는 사랑을 억지로 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주님의 생명받는 자들이 정말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입술에 감사와 찬송이 없는 것은 첫 번째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아서입니다. 교회 생활속에서 불평이 나오면 내게 가장 중요한 첫 번째 계명을 내가 모르고 잊고 있었구나 하는 사실을 이해하면 됩니다. 다윗이 시편 37편 1절에 행악자로 인하여 불평하여 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어라.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이 잘되고 잘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저 사람들은 잘 되는데 왜 나는 못됩니까? 이런 좁은 소견으로 불평할 때가 많습니다. 절대로 투기하지도 말고 불평하지도 말라고 다윗이 고백했습니다. 다윗은 실제로 이 사실을 너무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시편 37편 2절에 보면 저희는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며 푸른 채소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악한 자들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7절에 보면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을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들을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잠시만 기다리면 결과가 옵니다. 이 믿음이 안되니까 기다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8절에 보면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니라. 다윗처럼 불평할 수 밖에 없는 일이 있는 이런 고통을 당한 자가 없습니다. 악한 자들 때문에 쫓겨다녔던 일들이 40여년입니다. 엄청난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리며 참았습니다 이것은 다윗의 자기 고백입니다. 37편 9절에 보면 대저 행악한 자는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리로다. 이것은 다윗의 진짜 고백입니다. 너무 어려울 때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굴 속에 피해다니고 너무 어려움 속에 처해있는 다윗이 이렇게 고백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우리는 바울을 봅니다. 바울을 보면서 전혀 성경 어느 한 구절도 행악자들 때문에 자기를 핍박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여 고백한 일이 한번도 없습니다. 바울의 롬6장 1절 고백을 보면,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2절에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불평과 불만이 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가장 큰 적이 나를 핍박하고 괴롭히는 그 사람이 아니라 나 자신입니다. 나를 못 이겨 넘어지고 불평하고 사단에게 속는 것입니다 절대로 속지 마십시오. 내게서 불평이 나온다는 것은 나를 못 이겨서 그렇습니다. 갈2:20절이 근본 안되어서 그렇습니다. 여러분과 저를 선택하고 세우셔서 주님께서는 화목의 직분이라고 하였습니다 중요한 내용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3-14절을 보면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만일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 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우리 주님의 은혜를 깨닫고 하나님의 사랑에 강권함을 받는 것이 우리의 직분입니다. 화목의 직분이요. 사랑의 직분입니다. 우리 기독교를 사랑의 종교라고 하는데 앞의 부분을 빼고 사랑의 종교라고하면 율법이 됩니다. 구체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것에서 나오는 것이 이웃사랑입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이웃은 이웃집 사람이 아닙니다. 옆을 보세요. 잘나도 못나도 이웃입니다. 받아합시다. 당신은 나의 이웃입니다. 우리 교인들이 다 이웃입니다. 한 직분자들이 이웃입니다. 집사 직분이 아주 가까운 이웃입니다. 장로 직분이 아주 가까운 이웃입니다. 이웃을 사랑하지 못한다. 화목하지 못한다고 하면 궁극적으로 따져가면 구원이 안되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무서운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서로 화목하지 못하고 이것이 안되면 조용히 ‘대적은 나구나’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못 느끼고 내가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강권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랑의 강권을 동기, 욕심에 충만하여 받지 못하기 때문에 내가 강권을 받으니까 이웃이 미워지고 나를 조금만 반대한다 싶으면 미워지는 것입니다. 반대하는 사람을 너무나 귀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나의 약하고 연약한 부분에 반대를 받습니다. 옳은 부분에는 반대를 하지 않습니다. 저 사람이 나의 무엇을 반대하는지 이해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모르면 진짜 교인이 아닙니다. 성도라면 이것이 이해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제직회, 전도회가 모여서 이야기할 때에 상대방이 나에게 반박해오면 빨리 ‘내가 무언가 잘못하고 있구나.’캐치해야합니다. 그것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려야 합니다. 이것을 못 보면 불평이 나옵니다. 정말 그 사람이 악한 사람이면 조용히 기다리면 다 망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고 역사가 아니면 망하게 되어있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잠잠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 기다리라’ 그래서 참 성도라면 우리에게 연약한 부분이 있으면 불평하지 말고 조용히 기다리면 정말 그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지 못한 사람이라면 하나님이 손을 볼 것이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사람이면 내게 놀라운 조언을 해주는 진짜 친구요. 이웃입니다. 우린 이웃을 원수처럼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복음이 안되어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강권함을 받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꼭 붙들어야 합니다. 교회 생활에 이것이 되지 않으면 자기도 모르게 아무개 집사 어떻고 이런게 나옵니다. 율법적이 아니라도 율법이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강권함을 받으십시오. 그 사람을 볼때에 동기가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보면 다 해결이 되는 것입니다. 나 또한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인 것처럼 저 사람도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야. 하나님의 사랑에 강권하심을 받으십시오. 동기에 강권함을 받으면 안됩니다. 거의 자기의 동기와 욕심에 강권함을 받아서 별짓을 다하고 눈을 부라립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 갔을 때에 눈 부라린 사진을 찍어서 다 내어놓으면 웃기는 일이 될 것입니다. 조금만 지나면 내가 이것 때문에 눈을 부라렸는가? 오해가 되고 정말 잘못되었구나. 이해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5장 12절에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에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13절에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하나님의 사람들을 귀히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목사님들을 귀히 여긴다는 말은 귀가 아프도록 들었기 때문에 간단한데, 장로님들을 귀히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장로들끼리도 귀히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본인들이 귀히 여길줄 모르면 누가 귀히 여깁니까? 정말 이것이 바로 되어야 합니다. 집사냐? 성도냐? 진짜 귀히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이래야 만날때마다 희색을 발하고 깜짝 놀라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구원받았냐? 구원받은 자들이 이렇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됩니까? 여러분과 이런 자리에 놓아주셨기 때문에 저절로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먼저 귀히 여길 수 있도록 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근간이 무엇입니까? 여러분과 저에게 구원의 근간입니다. 구원이 이해가 되지 않고선 이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모든 종교에는 체험이 있습니다. 남묘호랭개교도 체험이 있습니다. 깊이 들어가면 거의 모든 종교가 방언체험이 있습니다. 불교도 방언체험이 있고 신기한 것을 간증합니다. 그런데 여러분과 제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받은 구원은 체험으로 말미암아 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오는 것입니다. 모든 종교가 체험이 있습니다. 그 체험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공자, 석가를 따라가면 체험을 받을 수는 있지만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말 구원의 종교가 무엇이냐? 구원의 생명이 어디서만 나오느냐?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 보면 영접하는 자 곧 그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그곳에만 근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근본 문제가 무엇입니까? 죄입니다. 죄라고 할 때에 도덕적인 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힘, 우리의 힘, 어떤 종교의 힘으로도 벗어날 수 없는 근본문제가 영적인 문제, 바로 사단의 문제입니다. 죄라고 하면 사단에 붙잡혔고 운명에 붙잡혔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획 속으로 들어오도록 운명에서 나오기 전의 운명이 무엇입니까? 영적인 문제,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우상숭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구원을 받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이 우상숭배입니다. 여기서 오는 것이 정신문제입니다. 왜 우상숭배가 정신문제냐? 아무리 잘 봐주려고 해도 잘 봐 줄 수 없는 것입니다. 돼지 목을 잘라놓고 그것도 껍데기를 벗겨놓고 제사상 앞에 세워놓고 콧구멍과 입에다가 돈을 꼽아놓고 절을 합니다. 이것이 정신 빠진 일이지 맨정신으로 이렇게 할 수 있습니까? 간단하지만 예를 들자면 그렇습니다. 우상에 대해서 성경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손재주 있는 사람들이 나무를 깍아서 사람의 형상과 이상한 형상을 만들어서 절을 합니다. 자기 발로 걸어다닐 수도 없고 사람이 갖다 놓으면 그 자리에서 꼼짝도 못하고 말도 못하고 숨을 쉴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다가 복을 달라고 절합니다. 정신빠진 것입니다. 조상에게 제사를 지낸다고 합니다. 조상이 오지 않고 사단이 오는 것입니다. 성경은 조상이 온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제사를 지낼 때에 밥을 갖다 놓고 부모들이 온다고 하여 정성스럽게 절을 합니다. 부모들이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귀신들이 오게 되어있습니다. 제사를 많이 지내는 종가집이 안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귀신들을 많이 초청하고 많이 오니까 망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저희 아버님이 이야기하신 것을 어떤 목사님 한 분이 오해를 하신 것 같습니다. 제가 어릴 때 들은 이야기입니다. 유교를 열심히 믿는 영감이 부지런히 우리 집에 찾아오셔서 아버님과 대화를 많이 하셨습니다. 화백 영감님이 ‘이보게 양동이 어른, 내가 보니 개울강아지를 따먹으면 어떤 한 무리가 올라오는데 얼굴이 뚱뚱 부어서 올라와서 당신들은 어떻게 해서 이렇게 올라옵니까? 물으니, 우리는 박씨 아무개집 조상인데 제사를 아예 안드리면 죽었을텐데 추석에 한번 드리고 설에 한번 드리고 해서 죽지도 못하고 살아서 맨날 먹는 것도 아니라서 겨우 생명만 유지해서 뚱뚱 부어서 개울 강아지를 따먹는다’ 우리 집 아버지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 집 조상 다 죽어버렸다. 개울 강아지 따 먹을 것도 없다. 어쩌다 한번씩 제사를 드려서 당신네 조상들이 뚱뚱부어서 개울강아지 따 먹고 있더라.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여러분 내 조상이 정말 지내던 안 지내던 내 아버지와 어머니가 온다고 하면 제사를 지내지 않아도 내 자식이 이상한 짓을 하고 맨날 욕하고 다녀도 나는 축복할 것입니다. 축복을 주되 욕하는 아들 세계적인 갑부로 만들 것입니다. 갑부 만들면 욕하지 않을 것 아닙니까? 잘 못사니까 맨날 불평하겠죠. 조상 잘못 섬겼다고 벌내리지 않습니다. 못된 귀신들의 역사입니다. 그것이 어떻게 부모들이 합니까? 조상 묘를 잘못 썼다고 3개가 망하면 그것이 어떻게 부모입니까? 못된 귀신들입니다. 그런 부모는 세상에 없습니다. 성경에는 이 땅에 있을 동안에 이 관계를 가지고 죽으면 영원한 천국에 갑니다. 내려 올 수도 없고 갈 수도 없습니다. 귀신이 될 수도 없습니다. 악한 귀신이 부모를 따라 다니다가 부모 흉내내면서 오는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이 이해가 안된다는 것은 정신 병자요. 정신이 간 것입니다. 우리 부모가 악한 귀신을 만들어 놓는 것이 우상 숭배, 제사지내는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의 부모는 그렇게 악한 조상이 될지 모르지만, 믿는 부모의 조상은 아닙니다. 만약에 할 수 만 있다면 여러분과 저를 축복하시기 위한 조상입니다. 다 복을 받는다면 여기에 전부다 거부가 다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 나라 사람처럼 조상에게 절 잘하는 사람이 어디있습니까? 한 사람도 거부가 나오지 않습니다. 거부는 예수 안 믿고 제사 안지내는 서양 사람들이 다 했습니다. 여러분 거부는 제사 지내지 않는 유럽과 미국이 다 차지하고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이해가 된다면 어리석은 이 짓을 하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과 제가 다른 것을 치워놓고 우상 숭배한다. 영적 문제다. 정신문제 온다. 육적문제 온다. 다 치워놓고. 우선 구원에 놓고 확실히 알면 이 문제 해결됩니다. 여러분과 저는 구원받았다고 하면 모든 것을 다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운명과 저주의 장에서부터 건짐을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분만이 사단의 손에서 우리를 건져내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만이 건져내실 수 있는데 하나님이 여러분과 건져내시기 위해서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성탄절입니다. 여러분 성탄절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그런데 이 역사와 사실을 여러분과 제게 성취시킨 말씀이 무엇입니까? 성령이십니다. 성령의 내용을 모르면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역사가 성령께서 지금 나와 함께 계신다. 할렐루야! 확실합니다.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역사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할 때에 이 사실이 우리에게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때부터 기도응답이 나옵니다. 분명히 되지 않으면 기도응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기도응답이 나오지 않으면 신앙 생활에 갈등이 오게 되어있습니다. 기도응답이 오래 안나오면 낙심하게 되어있습니다. 오래 참는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딱 하나만 가지고 ‘아버지 내가 왔습니다. 나 알아보겠어요?’ 양심에 물어보세요. 그러면 하나님이 무어라고 합니까? 구원의 확신이 분명히 있으면 확실하게 양심에 대답합니다. ‘그래 알아본다.’ 그러면 다 된 것 아닙니까? 그러면 다 된 것 아닙니까? 그러면 이것이 필요합니다. 이 사건이 필요합니다. 이 일이 필요합니다. 간단하게 한마디만 하세요. 이것을 가지고 철야하고 금식하게 하는 못된 하나님이 아닙니다. 우리가 옛날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류목사님께서 핵심에서 말한 것처럼 ‘금식해서 창자가 비틀어져야 응답하시는 못된 하나님으로 만들지 말라. 우리 하나님은 선하시다.’ 인간의 아버지도 줄 수 있는 능력이 되면 전능 하신 하나님이 여러분과 제가 구하는 것을 왜 못 주시겠느냐? 왜 성령충만을 주시지 않겠느냐? 강조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 자녀의 역사가 확실하다면 하나님께서 확실히 응답하십니다. 왜?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아저씨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이 기도를 할때에 하나님 소리만 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이렇게 붙였으면 좋겠어요. 하나님 아버지 아닙니까? 기도할 때마다 확인하면 됩니다. 하나님이 주십니다. 떠들어도 주시고 안떠들어도 줍니다. 성격대로 떠드는 사람은 어떻게 합니까? 어쩔 수 없죠. 밤새도록 아버지 아버지 주십시오. 그러면 됐다 가라. 이미 주었다 이럴겁니다. 하나님은 이미 주었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받아서 누리지 못하기 때문에 오는 문제입니다. 불평도 불만도 모든 것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것이 이해가 되면 모든 면에 하나님 아버지 주십시오 하려다가 하나님 아버지 주신 것 감사합니다. 누리면 되게 되어있습니다. 이 사실. 왜? 요한복음 16장 24절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라고 했습니다. 기쁨이 충만한데 불평으로 충만합니까? 그러면 많이 달라집니다. 기쁨이 충만하면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너희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니라. 뜻이니라. 왜? 워낙 안기뻐하니까. 준 것이 많은데도 다 받아놓고도 불평이 가득하고. 이건 말이 안되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얼굴부터 바꿔라. 불평부터 하지마라. 감사해라. 성경전체가 그렇습니다.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어라.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의 평안이 마음과 생각을 바꿔놓습니다. 지키시리라 그랬습니다. 여러분 우리 이웃이 귀합니다. 사랑의 대상입니다. 우리 직분자들이 귀합니다. 사랑의 대상입니다. 진짜 축복의 관계가 무엇입니까? 목사와 성도의 관계입니다. 축복의 관계가 무엇입니까? 집사와 집사의 관계입니다. 장로와 장로의 관계입니다. 이 축복의 관계를 화로 바꾸었다 불화로 바꾸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 구원의 역사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정말 복음이 되었다면 이럴 수 없습니다. 이것이 되면 저절로 우리는 깜짝 놀라는 것이 얼굴로 하는 것이 아니라 중심이 되어서 희색을 발할 수 있는 이런 축복의 역사가 나오도록 되어있다. 이것이 내가 하자가 아닙니다. 하자고 하면 율법이 됩니다.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저 사람도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이구나. 그래서 교회에 왔구나. 내가 온것처럼 저 사람도 하나님이 불러서 왔구나 이것이 이해가 되어지면 저인간이라고 하다가 하나님이 사랑하는 인간. 그럼 나도 사랑해야죠. 하나님도 사랑하는데.
여러분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 앞에 담대할 수 있는 것은 응답받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응답받게 되었을때 반드시 여러분과 저의 삶에 능력이 나타나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어려울수록 기다리십시오. 어려울수록 기다리십시오. 어려울수록 다른데로 가지 마시고 근본문제로 돌아가세요. 늘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직장이 어려우냐, 사업이 어렵느냐, 다 놔두고 복음으로 돌아가세요. 그래서 늘 이 복음을 확인하는 것이 예배입니다. 우리가 예식이 안되면 예배가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누구보다도 일찍 오셔서 이 시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듣게 하시고 보게 하시고 깨닫게 하옵소서. 예배에 승리하게 하옵소서. 말씀이 내 귀에 들어오게 하소서. 여러분 승리하도록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주일날 거룩한날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맨날 입으로 거룩한 날이라고 하면서도 주일날 온갖 불평 다하고 온갖 것이 다한다고 하면 그러면 안되죠. 그러면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려지지 않습니다. 어려울수록 로마서 8장 26절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7절에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28절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성령께서 지금 여러분과 저와 함께 하십니다. 그 분이 하나님 뜻을 알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 여러분과 저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내가 못 깨달을 때에 성령께서는 내가 못깨닫는 날을 위해서 기도하십니다. 눈물로 기도하실 것입니다. 여기에 약간 인간의 감정을 붙였습니다만 정말 간절하게 기도하십니다. 그래서 여러분과 제게 이루어지는 모든 사건은 된다 안된다 상관없습니다. 모든 사건이 합력해서 하나님의 역사와 축복을 이루신다 그말입니다. 뭔일을 당해도 관계없어요. 뭔사건을 당해도 관계없어요. 우리가 어떤 사건을 당했을때 기다리면 되는 겁니다. 하나님이 응답하십니다. 왜?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왜? 구원받았기 때문에. 이 축복과 역사가 나와 우리에게 현재적으로 성령으로 함께하기 때문에. 이루어집니다. 이루어질 수 밖에 없는 자리에 있다는 것을 여러분 확인하셔야 합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여러분과 저는 반드시 죽습니다. 그러나 죽기 전에 여러분이 늘 하는 것, 교제할 수 있는 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알고 구원을 아는 증거는 내 안에 예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어려울수록 내가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축복해야 합니다. 내가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축복해야 합니다. 어려울수록. 왜? 그래야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대상이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대상임을 확인하여 나갑니다.
조금만 이상한 소리를 하면 온갖 율법적인 눈으로 바라보고 복음, 복음. 참 어려워요. 그래서 옛날에는 율법으로 눌렸는데 요즘 복음으로 눌려요. 율법으로 눌린 것보다 복음으로 눌리면 그것은 피해나갈 도리가 없어요. 복음이라고 하면서 눌리는데 어떻게 합니까? 여러분 정말 복음이라고 하면 그렇게 할 수 없어요. 그래서 우리 성도들이 진짜 복음잡고 하나님 앞에 서세요. 하나님의 축복이 구체적으로 역사하실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길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도의 대적이 누구인가가 이해가 됩니다.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 십자가에 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속죄를 받았다 구원받았다고 하면 여러분과 저의 대적이 누구인가가가 이해가 됩니다. 바로 알지 못하는 내가 가장 무서운 대적입니다. 바로 이해를 하셔야합니다. 요한일서 3장 8절에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내게 이런 어려움과 어려운 사건을 주는 배경은 마귀입니다. 그것을 누구를 통해서 오느냐밖에 우리는 보지 못합니다. 남편도 아닙니다. 자식도 아닙니다. 환경도 아닙니다. 남편이 웬수지라고 하는데 자기가 웬수지 남편이 웬수가 아닙니다. 왜? 나를 대적해 오는 사단을 못보기 때문에 자꾸 그럽니다. 자식이 웬수가 아닙니다. 자식이 왜 웬수입니까? 그래서 저주안합니까? 혀가 빠져 죽으라고. 경상도에서 제일 목매어 죽은 자살자가 많다고 합니다. 붙인건지는 모르지만 저주까지 안합니까? 아닙니다. 내 자식은 축복받은 렘넌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우리 후손을 일으키고 문화를 바꾸어야할 렘넌트입니다. 축복하십시오. 율법으로 보지 마시고 정말 축복의 눈으로 자식을 보십시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저는 우리집 아이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요 좋은 눈으로 보니까 별것이 다 예쁜가봐요. 전 별로 예쁘지도 않은데. 인터넷으로 들으면 약간 섭섭해할지도 모르지만 별로 예쁘지 않아요. 왜? 저를 안닮아서. 그런데 보고 있는 것도 예쁘고 우는 것도 예쁘고 그런가봐요. 한 생명. 참 하나님의 생명을 붙잡으면 내가 예쁘냐? 내가 귀하냐? 똑같이 귀합니다. 더군다나 우리 후손들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조금만 눈을 뜨고 보면 저애가 저래뵈도 세계를 살릴 하나님의 렘넌트야. 이것이 이해가 되면 축복이 저절로 나오게 됩니다. 빌어먹을자식, 말도 안듣고. 이러면 우리가 속는 겁니다. 우리 후손들 마음껏 축복하세요. 왜 하나님이 약속이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3장 8절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옛날에 함께 하신 주님께서 오늘도 성령으로 함께하십니다. 언제까지? 영원까지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약속을 잡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약속한 것을 이것도 놓치고 혼자있는 것 처럼 하나님 아버지 어디갔습니까? 어디에있기는요 바로 내 안에 있죠. 이게 안되니까 자꾸 다른 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확실히 바로 가져야합니다. 이것이 이해가 안되니까요 요한복음 14장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라. 할렐루야. 함께 있습니다. 근데 이것이 이해가 안되면요 자꾸 다른데 인도를 받아요. 자기가 자기를 인도하는 줄로 압니다. 사단이 인도하는 줄도 모르고. 어떻게 여러분이 자신을 인도합니까? 잠언서 14장 12절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참 저 사람 진짜 잘한다 그러나 얼마안가서 끝납니다. 영원한 죽음과 멸망으로 끝나버립니다. 안가려고 바득바득 이를 갈다갑니다. 그래서 뻣뻣해서 잘 움직이지도 못하고. 사람이 죽으면 뻣뻣해지잖아요. 교인들은 당장 그렇게 안뻣뻣해집니다. 한참 가도 안뻣뻣해지더라고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백성이 뭐 일찍 안죽을려고 발버둥쳐야 뻣뻣해지지 조용히 감사함으로 갔는데 뻣뻣해질 여가가 없죠. 그렇다고 혹시 뻣뻣해졌다고 큰일났구나 구원을 못받았구나. 또 이렇게 오해를 할까 싶어서 미리 말합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괜찮습니다.
히브리서 13장 8절에 보면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여러분과 저를 성령으로 인도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는 것에도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요한복음 14장 16절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다른 보혜사가 누구입니까? 성령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주시겠다 약속하셨습니다. 부활승천하심으로 이것이 사실이 되었습니다. 성령으로 여러분과 제게 지금 오셨습니다. 영접하는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자녀가 되는 권세를 성령으로 주셨다. 그 얘기입니다. 이 사실이 확실히 붙잡혀야 합니다. 사람이 사람을 인도하면 이상하게 됩니다. 누가복음 6장 33절에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소경이 소경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다 어디에 빠져요? 구덩이에 빠져버립니다.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을 인도한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습니다. 다 죽습니다. 여러분 구원의 생명을 받았느냐 영원한 길을 보느냐? 길을 인도해야지. 로마서 8장 28절에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면 엄청난 축복의 역사로 인도받습니다. 왜? 성령의 인도. 하나님의 인도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루리라. 축복의 역사를 이루어나가신다. 이것을 알고 말씀 앞에 순종하는 자, 지금 성령으로 인도하시는구나 순종하는 자에게 불평하고 염려하고 근심하는자가 아니라 순종하는 자에게. 잠언서 3장 5절에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네 길을 인도하시리라. 이때부터 여러분 만남이 복이 되는 것이 아닙니까? 왜? 사랑의 배경을 가지고 만나니까. 이때부터 만남을 축복관계로 바꿀 수 있습니다. 원수와의 만남도 축복관계로 바꿀 수 있습니다. 이것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때부터 만남과 사건 속에서 어떤 악조건과 악한 사건이라도 축복관계로 바꿀수 있습니다. 제일 먼저 축복관계가 목사와 교인의 만남입니다. 브리스가 부부가 바울을 만났을 때에 희대의 축복관계가 이루어졌습니다. 영육간에 큰 복을 주었습니다. 로마서 16장에 모든 성도들이 바울을 만남과 동시에 영육간에 위대한 축복을 받았고 로마를 바꾼 인물들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다른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배경이 안되고 만났다면 축복관계보다도 인간이기 때문에 원망과 불평이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여러분 보세요. 내가 예수 믿었다고 하지만, 나의 옛날 체질이 완전히 없어졌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복음이 되고 구원받는 것이지 내가 완전히 선한 사람으로 바꾸어졌다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나를 볼 때에 바꾸어지기 시작했지만 옛날 그대로입니다. 그래서 우리 집에 가서는 바꾸어졌다는 소리 안합니다. 바꾸어졌다고 하면 금방 들통이 납니다. 쓸모없는 사람같다고 할 정도였으니까, 바꾸어졌겠습니까? 다만 복음으로 보면 영이 바꾸어진 것처럼 차츰차츰 바꾸어질 것입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복음으로 나를 보세요. 바꾸어 질 것입니다. 여러분 이웃, 내 가족, 가정을 볼 때에 축복관계이지 저주 관계가 아닙니다. 복음관계지 흑암의 권세를 꺾고 들어가면 사단과의 관계가 끊어집니다. 해결이 되도록 되어있습니다. 기도하십시오. 참고 기다리십시오. 안됩니까? 또 참고 기다려보십시오. 됩니다. 복음이 들어갔다면 됩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됩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기 때문에 그 사람도 성령의 인도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루실 것입니다. 승리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여. 정말로 감사를 드립니다. 복음 속에서 우리의 모든 안목이 열리고 하나님의 계획과 축복이 나타나게 되고 이루어지게 될 줄로 믿습니다. 보지못한 주의 종들에게 사단의 역사를 보게 하시고 정말 원수는 사단의 역사를 보지 못하는 나라는 사실을 알게 하시고 나때문에 넘어지고 쓰러지는 사실을 보도록 눈을 열어주시옵소서. 이제는 만남이 축복관계가 되게 하시고 이제는 모든 만남이 원수의 만남도 축복이 되도록 은혜입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올리옵나이다. 아멘.
여러분 내 조상이 정말 지내던 안 지내던 내 아버지와 어머니가 온다고 하면 제사를 지내지 않아도 내 자식이 이상한 짓을 하고 맨날 욕하고 다녀도 나는 축복할 것입니다. 축복을 주되 욕하는 아들 세계적인 갑부로 만들 것입니다. 갑부 만들면 욕하지 않을 것 아닙니까? 잘 못사니까 맨날 불평하겠죠. 조상 잘못 섬겼다고 벌내리지 않습니다. 못된 귀신들의 역사입니다. 그것이 어떻게 부모들이 합니까? 조상 묘를 잘못 썼다고 3개가 망하면 그것이 어떻게 부모입니까? 못된 귀신들입니다. 그런 부모는 세상에 없습니다. 성경에는 이 땅에 있을 동안에 이 관계를 가지고 죽으면 영원한 천국에 갑니다. 내려 올 수도 없고 갈 수도 없습니다. 귀신이 될 수도 없습니다. 악한 귀신이 부모를 따라 다니다가 부모 흉내내면서 오는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이 이해가 안된다는 것은 정신 병자요. 정신이 간 것입니다. 우리 부모가 악한 귀신을 만들어 놓는 것이 우상 숭배, 제사지내는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의 부모는 그렇게 악한 조상이 될지 모르지만, 믿는 부모의 조상은 아닙니다. 만약에 할 수 만 있다면 여러분과 저를 축복하시기 위한 조상입니다. 다 복을 받는다면 여기에 전부다 거부가 다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 나라 사람처럼 조상에게 절 잘하는 사람이 어디있습니까? 한 사람도 거부가 나오지 않습니다. 거부는 예수 안 믿고 제사 안지내는 서양 사람들이 다 했습니다. 여러분 거부는 제사 지내지 않는 유럽과 미국이 다 차지하고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이해가 된다면 어리석은 이 짓을 하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과 제가 다른 것을 치워놓고 우상 숭배한다. 영적 문제다. 정신문제 온다. 육적문제 온다. 다 치워놓고. 우선 구원에 놓고 확실히 알면 이 문제 해결됩니다. 여러분과 저는 구원받았다고 하면 모든 것을 다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운명과 저주의 장에서부터 건짐을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분만이 사단의 손에서 우리를 건져내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만이 건져내실 수 있는데 하나님이 여러분과 건져내시기 위해서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성탄절입니다. 여러분 성탄절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그런데 이 역사와 사실을 여러분과 제게 성취시킨 말씀이 무엇입니까? 성령이십니다. 성령의 내용을 모르면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역사가 성령께서 지금 나와 함께 계신다. 할렐루야! 확실합니다.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역사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할 때에 이 사실이 우리에게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때부터 기도응답이 나옵니다. 분명히 되지 않으면 기도응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기도응답이 나오지 않으면 신앙 생활에 갈등이 오게 되어있습니다. 기도응답이 오래 안나오면 낙심하게 되어있습니다. 오래 참는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딱 하나만 가지고 ‘아버지 내가 왔습니다. 나 알아보겠어요?’ 양심에 물어보세요. 그러면 하나님이 무어라고 합니까? 구원의 확신이 분명히 있으면 확실하게 양심에 대답합니다. ‘그래 알아본다.’ 그러면 다 된 것 아닙니까? 그러면 다 된 것 아닙니까? 그러면 이것이 필요합니다. 이 사건이 필요합니다. 이 일이 필요합니다. 간단하게 한마디만 하세요. 이것을 가지고 철야하고 금식하게 하는 못된 하나님이 아닙니다. 우리가 옛날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류목사님께서 핵심에서 말한 것처럼 ‘금식해서 창자가 비틀어져야 응답하시는 못된 하나님으로 만들지 말라. 우리 하나님은 선하시다.’ 인간의 아버지도 줄 수 있는 능력이 되면 전능 하신 하나님이 여러분과 제가 구하는 것을 왜 못 주시겠느냐? 왜 성령충만을 주시지 않겠느냐? 강조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 자녀의 역사가 확실하다면 하나님께서 확실히 응답하십니다. 왜?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아저씨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이 기도를 할때에 하나님 소리만 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이렇게 붙였으면 좋겠어요. 하나님 아버지 아닙니까? 기도할 때마다 확인하면 됩니다. 하나님이 주십니다. 떠들어도 주시고 안떠들어도 줍니다. 성격대로 떠드는 사람은 어떻게 합니까? 어쩔 수 없죠. 밤새도록 아버지 아버지 주십시오. 그러면 됐다 가라. 이미 주었다 이럴겁니다. 하나님은 이미 주었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받아서 누리지 못하기 때문에 오는 문제입니다. 불평도 불만도 모든 것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것이 이해가 되면 모든 면에 하나님 아버지 주십시오 하려다가 하나님 아버지 주신 것 감사합니다. 누리면 되게 되어있습니다. 이 사실. 왜? 요한복음 16장 24절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라고 했습니다. 기쁨이 충만한데 불평으로 충만합니까? 그러면 많이 달라집니다. 기쁨이 충만하면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너희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니라. 뜻이니라. 왜? 워낙 안기뻐하니까. 준 것이 많은데도 다 받아놓고도 불평이 가득하고. 이건 말이 안되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얼굴부터 바꿔라. 불평부터 하지마라. 감사해라. 성경전체가 그렇습니다.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어라.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의 평안이 마음과 생각을 바꿔놓습니다. 지키시리라 그랬습니다. 여러분 우리 이웃이 귀합니다. 사랑의 대상입니다. 우리 직분자들이 귀합니다. 사랑의 대상입니다. 진짜 축복의 관계가 무엇입니까? 목사와 성도의 관계입니다. 축복의 관계가 무엇입니까? 집사와 집사의 관계입니다. 장로와 장로의 관계입니다. 이 축복의 관계를 화로 바꾸었다 불화로 바꾸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 구원의 역사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정말 복음이 되었다면 이럴 수 없습니다. 이것이 되면 저절로 우리는 깜짝 놀라는 것이 얼굴로 하는 것이 아니라 중심이 되어서 희색을 발할 수 있는 이런 축복의 역사가 나오도록 되어있다. 이것이 내가 하자가 아닙니다. 하자고 하면 율법이 됩니다.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저 사람도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이구나. 그래서 교회에 왔구나. 내가 온것처럼 저 사람도 하나님이 불러서 왔구나 이것이 이해가 되어지면 저인간이라고 하다가 하나님이 사랑하는 인간. 그럼 나도 사랑해야죠. 하나님도 사랑하는데.
여러분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 앞에 담대할 수 있는 것은 응답받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응답받게 되었을때 반드시 여러분과 저의 삶에 능력이 나타나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어려울수록 기다리십시오. 어려울수록 기다리십시오. 어려울수록 다른데로 가지 마시고 근본문제로 돌아가세요. 늘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직장이 어려우냐, 사업이 어렵느냐, 다 놔두고 복음으로 돌아가세요. 그래서 늘 이 복음을 확인하는 것이 예배입니다. 우리가 예식이 안되면 예배가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누구보다도 일찍 오셔서 이 시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듣게 하시고 보게 하시고 깨닫게 하옵소서. 예배에 승리하게 하옵소서. 말씀이 내 귀에 들어오게 하소서. 여러분 승리하도록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주일날 거룩한날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맨날 입으로 거룩한 날이라고 하면서도 주일날 온갖 불평 다하고 온갖 것이 다한다고 하면 그러면 안되죠. 그러면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려지지 않습니다. 어려울수록 로마서 8장 26절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7절에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28절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성령께서 지금 여러분과 저와 함께 하십니다. 그 분이 하나님 뜻을 알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 여러분과 저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내가 못 깨달을 때에 성령께서는 내가 못깨닫는 날을 위해서 기도하십니다. 눈물로 기도하실 것입니다. 여기에 약간 인간의 감정을 붙였습니다만 정말 간절하게 기도하십니다. 그래서 여러분과 제게 이루어지는 모든 사건은 된다 안된다 상관없습니다. 모든 사건이 합력해서 하나님의 역사와 축복을 이루신다 그말입니다. 뭔일을 당해도 관계없어요. 뭔사건을 당해도 관계없어요. 우리가 어떤 사건을 당했을때 기다리면 되는 겁니다. 하나님이 응답하십니다. 왜?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왜? 구원받았기 때문에. 이 축복과 역사가 나와 우리에게 현재적으로 성령으로 함께하기 때문에. 이루어집니다. 이루어질 수 밖에 없는 자리에 있다는 것을 여러분 확인하셔야 합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여러분과 저는 반드시 죽습니다. 그러나 죽기 전에 여러분이 늘 하는 것, 교제할 수 있는 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알고 구원을 아는 증거는 내 안에 예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어려울수록 내가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축복해야 합니다. 내가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축복해야 합니다. 어려울수록. 왜? 그래야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대상이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대상임을 확인하여 나갑니다.
조금만 이상한 소리를 하면 온갖 율법적인 눈으로 바라보고 복음, 복음. 참 어려워요. 그래서 옛날에는 율법으로 눌렸는데 요즘 복음으로 눌려요. 율법으로 눌린 것보다 복음으로 눌리면 그것은 피해나갈 도리가 없어요. 복음이라고 하면서 눌리는데 어떻게 합니까? 여러분 정말 복음이라고 하면 그렇게 할 수 없어요. 그래서 우리 성도들이 진짜 복음잡고 하나님 앞에 서세요. 하나님의 축복이 구체적으로 역사하실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길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도의 대적이 누구인가가 이해가 됩니다.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 십자가에 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속죄를 받았다 구원받았다고 하면 여러분과 저의 대적이 누구인가가가 이해가 됩니다. 바로 알지 못하는 내가 가장 무서운 대적입니다. 바로 이해를 하셔야합니다. 요한일서 3장 8절에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내게 이런 어려움과 어려운 사건을 주는 배경은 마귀입니다. 그것을 누구를 통해서 오느냐밖에 우리는 보지 못합니다. 남편도 아닙니다. 자식도 아닙니다. 환경도 아닙니다. 남편이 웬수지라고 하는데 자기가 웬수지 남편이 웬수가 아닙니다. 왜? 나를 대적해 오는 사단을 못보기 때문에 자꾸 그럽니다. 자식이 웬수가 아닙니다. 자식이 왜 웬수입니까? 그래서 저주안합니까? 혀가 빠져 죽으라고. 경상도에서 제일 목매어 죽은 자살자가 많다고 합니다. 붙인건지는 모르지만 저주까지 안합니까? 아닙니다. 내 자식은 축복받은 렘넌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우리 후손을 일으키고 문화를 바꾸어야할 렘넌트입니다. 축복하십시오. 율법으로 보지 마시고 정말 축복의 눈으로 자식을 보십시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저는 우리집 아이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요 좋은 눈으로 보니까 별것이 다 예쁜가봐요. 전 별로 예쁘지도 않은데. 인터넷으로 들으면 약간 섭섭해할지도 모르지만 별로 예쁘지 않아요. 왜? 저를 안닮아서. 그런데 보고 있는 것도 예쁘고 우는 것도 예쁘고 그런가봐요. 한 생명. 참 하나님의 생명을 붙잡으면 내가 예쁘냐? 내가 귀하냐? 똑같이 귀합니다. 더군다나 우리 후손들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조금만 눈을 뜨고 보면 저애가 저래뵈도 세계를 살릴 하나님의 렘넌트야. 이것이 이해가 되면 축복이 저절로 나오게 됩니다. 빌어먹을자식, 말도 안듣고. 이러면 우리가 속는 겁니다. 우리 후손들 마음껏 축복하세요. 왜 하나님이 약속이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3장 8절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옛날에 함께 하신 주님께서 오늘도 성령으로 함께하십니다. 언제까지? 영원까지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약속을 잡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약속한 것을 이것도 놓치고 혼자있는 것 처럼 하나님 아버지 어디갔습니까? 어디에있기는요 바로 내 안에 있죠. 이게 안되니까 자꾸 다른 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확실히 바로 가져야합니다. 이것이 이해가 안되니까요 요한복음 14장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라. 할렐루야. 함께 있습니다. 근데 이것이 이해가 안되면요 자꾸 다른데 인도를 받아요. 자기가 자기를 인도하는 줄로 압니다. 사단이 인도하는 줄도 모르고. 어떻게 여러분이 자신을 인도합니까? 잠언서 14장 12절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참 저 사람 진짜 잘한다 그러나 얼마안가서 끝납니다. 영원한 죽음과 멸망으로 끝나버립니다. 안가려고 바득바득 이를 갈다갑니다. 그래서 뻣뻣해서 잘 움직이지도 못하고. 사람이 죽으면 뻣뻣해지잖아요. 교인들은 당장 그렇게 안뻣뻣해집니다. 한참 가도 안뻣뻣해지더라고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백성이 뭐 일찍 안죽을려고 발버둥쳐야 뻣뻣해지지 조용히 감사함으로 갔는데 뻣뻣해질 여가가 없죠. 그렇다고 혹시 뻣뻣해졌다고 큰일났구나 구원을 못받았구나. 또 이렇게 오해를 할까 싶어서 미리 말합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괜찮습니다.
히브리서 13장 8절에 보면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여러분과 저를 성령으로 인도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는 것에도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요한복음 14장 16절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다른 보혜사가 누구입니까? 성령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주시겠다 약속하셨습니다. 부활승천하심으로 이것이 사실이 되었습니다. 성령으로 여러분과 제게 지금 오셨습니다. 영접하는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자녀가 되는 권세를 성령으로 주셨다. 그 얘기입니다. 이 사실이 확실히 붙잡혀야 합니다. 사람이 사람을 인도하면 이상하게 됩니다. 누가복음 6장 33절에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소경이 소경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다 어디에 빠져요? 구덩이에 빠져버립니다.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을 인도한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습니다. 다 죽습니다. 여러분 구원의 생명을 받았느냐 영원한 길을 보느냐? 길을 인도해야지. 로마서 8장 28절에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면 엄청난 축복의 역사로 인도받습니다. 왜? 성령의 인도. 하나님의 인도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루리라. 축복의 역사를 이루어나가신다. 이것을 알고 말씀 앞에 순종하는 자, 지금 성령으로 인도하시는구나 순종하는 자에게 불평하고 염려하고 근심하는자가 아니라 순종하는 자에게. 잠언서 3장 5절에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네 길을 인도하시리라. 이때부터 여러분 만남이 복이 되는 것이 아닙니까? 왜? 사랑의 배경을 가지고 만나니까. 이때부터 만남을 축복관계로 바꿀 수 있습니다. 원수와의 만남도 축복관계로 바꿀 수 있습니다. 이것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때부터 만남과 사건 속에서 어떤 악조건과 악한 사건이라도 축복관계로 바꿀수 있습니다. 제일 먼저 축복관계가 목사와 교인의 만남입니다. 브리스가 부부가 바울을 만났을 때에 희대의 축복관계가 이루어졌습니다. 영육간에 큰 복을 주었습니다. 로마서 16장에 모든 성도들이 바울을 만남과 동시에 영육간에 위대한 축복을 받았고 로마를 바꾼 인물들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다른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배경이 안되고 만났다면 축복관계보다도 인간이기 때문에 원망과 불평이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여러분 보세요. 내가 예수 믿었다고 하지만, 나의 옛날 체질이 완전히 없어졌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복음이 되고 구원받는 것이지 내가 완전히 선한 사람으로 바꾸어졌다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나를 볼 때에 바꾸어지기 시작했지만 옛날 그대로입니다. 그래서 우리 집에 가서는 바꾸어졌다는 소리 안합니다. 바꾸어졌다고 하면 금방 들통이 납니다. 쓸모없는 사람같다고 할 정도였으니까, 바꾸어졌겠습니까? 다만 복음으로 보면 영이 바꾸어진 것처럼 차츰차츰 바꾸어질 것입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복음으로 나를 보세요. 바꾸어 질 것입니다. 여러분 이웃, 내 가족, 가정을 볼 때에 축복관계이지 저주 관계가 아닙니다. 복음관계지 흑암의 권세를 꺾고 들어가면 사단과의 관계가 끊어집니다. 해결이 되도록 되어있습니다. 기도하십시오. 참고 기다리십시오. 안됩니까? 또 참고 기다려보십시오. 됩니다. 복음이 들어갔다면 됩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됩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기 때문에 그 사람도 성령의 인도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루실 것입니다. 승리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여. 정말로 감사를 드립니다. 복음 속에서 우리의 모든 안목이 열리고 하나님의 계획과 축복이 나타나게 되고 이루어지게 될 줄로 믿습니다. 보지못한 주의 종들에게 사단의 역사를 보게 하시고 정말 원수는 사단의 역사를 보지 못하는 나라는 사실을 알게 하시고 나때문에 넘어지고 쓰러지는 사실을 보도록 눈을 열어주시옵소서. 이제는 만남이 축복관계가 되게 하시고 이제는 모든 만남이 원수의 만남도 축복이 되도록 은혜입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올리옵나이다. 아멘.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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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4 | 전환점을 이룬 안디옥 선교 | 행11:19-30 | 2025-04-27 | |
1483 | 우리에게 주시는 영원한 메시지 | 고전15:1-11 | 2025-04-20 | |
1482 | 새로운 싸움을 위하여 | 삿7:9-18 | 2025-04-13 | |
1481 | 날마다 영적싸움에 승리하라 | 삿7:1-8 | 2025-04-06 | |
1480 | 이 시대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해답 | 삿4:1-10 | 2025-03-30 | |
1479 | 하나님이 쓰시는 기준 | 삿3:12-23 | 2025-03-23 | |
1478 |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 삿3:7-11 | 2025-03-16 | |
1477 |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 삿2:6-10 | 2025-03-09 | |
1476 |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 삿1:1-7 | 2025-03-02 | |
1475 |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 단12:1-4 | 2025-02-23 | |
1474 |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 단11:28-39 | 2025-02-16 | |
1473 |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 단10:10-21 | 2025-02-09 | |
1472 |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 단9:20-24 | 2025-02-02 | |
1471 |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 단8:15-27 | 2025-01-26 | |
1470 |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 단7:9-14 | 2025-0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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