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이 없으므로
2005-06-05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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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절 말씀을 보면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 떡이 없으므로 의논하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매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가는 도중에 떡가져오기를 잊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할때에 제자들은 ‘우리가 떡을 가져오지 않았기에 이렇게 말씀하시는가?’ 떡을 안가져 온 것에 대한 염려와 걱정으로 가득했습니다. 17절에 보면 예수께서 그 마음을 알고 ‘너희가 어찌 떡이 없으므로 의논하느냐?’ 쉽게 말해서 의식주 때문에 날마다 걱정하느냐? 먹고 사는 것 때문에 신앙생활 제쳐놓고 의식주로 매일 걱정하고 빠져나오지 못하느냐?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뛰어넘는 눈이 열리지 아니하면 신앙 생활은 어렵고 안되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거의 많은 경우가 여기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 신앙 수준의 실제요, 사실입니다. 오늘 이러한 사실에 빠져있는 제자들을 향해서 예수님은 18절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못하느냐? 또 기억하지 못하느냐?’ 평가하십니다. 너희들이 예수님의 기적을 보며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걱정하고 있구나. 여러분들이 은혜입지못하고 눈이 열리지 못하면 매일 기적으로 보아도 광야에서 불평과 염려하는 사람들과 똑같은 자리에 빠졌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날마다 순간마다 떡과 포도주로 인도하시는 순간속에 살면서도 무얼 먹을까? 무얼 마실까? 무얼 입을까? 이 염려로 가득합니다. 이것이 어떤 면에서 신앙 생활의 전부인 것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것을 자세히 보면 ‘주여 잘되게 하시고, 복되게 하시고, 잘 먹게하시고, 잘 살게하시고.. ’전부 이런 것입니다. 이런 것과 연결되어 ‘내 아들도 잘 되게 하시고, 내 손자도 잘 살게 하시고, 내 사위도 잘 살게 하시고...’ 거의 이런 것에 빠져있습니다. 기도 점검을 해 보세요. 이것을 가지고 종교생활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종교 생활하는 유대인의 지도자를 향해서 너희들이 돈을 사랑하느냐? 그러니까 예수 잘 믿어도 돈을 사랑하게 되어 돈을 잘 벌면 복받았다고 하고 돈 못 벌면 못받은 사람으로 유대인의 생각의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눅16:14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지라. 이 모든 것을 듣고도 비웃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설명을 하게 되니까 바리새인들에게는 돈이 축복이고 전부이기에, 이런 설명을 하는 예수님을 보고 비웃은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구체적인 비유로 설명을 하시는데 부자와 나사로의 설명을 해주십니다. 천국복음의 사실이 없으면 돈이 많아도 헛것이요. 불행 중의 불행입니다. 천국복음을 실제와 사실을 누리게 되면 그것이 진짜 행복입니다. 아무리 부자라도 복음이 없으면 가장 불행한 사람이 됩니다. 아무리 돈이 없고 가난하고 병들고 고통받는 자들이라도 구원의 축복을 누린 자는 행복자 중의 행복자입니다. 우리는 아무리 잘 믿어도 돈이 없으면 헛 믿은 줄 압니다. 잘 믿으면 돈이 생기고 부유가 따라와야되는 줄 압니다. 그러나 먼저 아실 것은 복음의 뿌리를 내리지 않고 사실이 없다면 불행한 사람입니다. 명예, 돈 있다 없다의 문제가 아닙니다. 명예와 돈으로 천국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제일 먼저 구원의 생명을 오늘도 확인해야 합니다. 여러분과 제가 이 사실이 실제적으로 증거가 되고 복음과 구원의 축복의 역사에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신앙 생활에서는 구원의 증거거리가 없으면 안됩니다. 이것이 안되면 전부 다른 것으로 나옵니다. 이 구원의 축복이 이루어진다는 말이 쉬운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은 엄청난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멸망과 죽음에서부터 해방받습니다. 이것이 근본적인 문제에 해결받는 것입니다. 지난 주에도 설명하였습니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신 하나님은 그 다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실 분이 아닙니다. 그 다음 문제를 완전히 책임져 주십니다.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서 근본문제의 해결은 원죄 해결이라고 하였습니다. 원죄는 여러분이 죄를 지어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사단의 문제가 이해되어야 합니다. 여러분과 저를 근본적으로 날 때부터 붙잡고 있는 사단의 역사. 그 속에 빠져서 죽음과 멸망으로 재앙 받는 역사. 이 사실을 원죄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해방받았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얻는 순간에 원죄와 사단과 재앙에서부터 완전히 해결받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그냥 지나가는 말이 아니라 내게 사실이 되어서 내가 이 사실에 대한 증거할 수 있는 간증거리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언제 예수 믿었는지 모르고, 언제 이 축복이 일어났는지도 모른다고 할 때에는 어떤 면에서 의심을 해 봐야 합니다. 엄청난 이 일에는 개개인의 역사속에 이 축복이 있었다는 사실에 대한 간증거리가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어디에 가던지 앉자마자 이 축복의 간증이 일어나야하고 이 간증을 전도라 합니다. 아프다 살아난 일을 설명할 때는 정말 실감납니다. 영원한 죽음과 멸망 속에서 살아난 사실이 있다고 하면 실감이 나야 합니다. 진심으로 감사, 찬송이 나와야 합니다. 그런데, 이 말이 이해가 되면 중요한 여러분의 전체 신앙 생활의 문제가 이해가 되기 시작합니다. 구원의 축복을 간증할 수 있는 수준이 되면 10가지 발판이라는 말이 믿어지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 역사가 믿어집니다. 그 전에는 아무리 예수 믿고 10가지 절대적인 주권에 대한 발판에 대해 말 하여도 신앙 생활이 안되게 되어있습니다 내 인생, 이땅과 이 세계를 절대적으로 주관, 인도하신다. 이것이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믿으려고 해도 믿어지지 않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자기 중심의 논리를 붙여 절대 주권을 부정합니다. 이것을 불신앙이라고 합니다. 인생에 사실적인 어려움이 왔을때에 절대주권을 믿고 하나님 앞에 엎드리게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가난을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릴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가난하라고 할때는 엎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머리를 발로 밟고 계시면 가만히 있으면 됩니다. 하나님의 시간표, 필요, 인도에 따라서 때가 되면 해결이 되게 되어있습니다. 왜 내가 예수 믿고 계속 가난에 빠져있느냐? 왜 가난하게 되느냐? 이런 모든 부분에도 하나님의 시간표를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하면 심령과 생각이 다 상하게 되어있습니다. 사람이 가난하면 자존심이 상하고 정신적인 문제도 오고 여러 가지 문제가 옵니다. 가난하거든 ‘하나님의 뜻이라면 따르겠습니다.’ 이러면 새삼없이 편합니다. 이런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이 왜 안 믿어지느냐? 10가지 발판이 안되면 주권의 역사가 안 믿어지게 되어있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정리를 해 보았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성부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입니다. 성자는 구원해 주시는 예수님. 지구의 중심이신 예수 그리스도. 성령은 구원받은 자들은 하나님이 성령으로 인도하십니다. 멀리 떨어져서 원격 조정이 아닌 여러분과 저에게 함께 하심으로 인도하십니다. 꿈이나 이상한 것으로 함께 하시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이 인정되고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지게 되면 인도받는 사실적인 역사로 말씀이 깨달아집니다. 어린이 노인할 것없이 말씀이 이해가 됩니다. 꿈을 통한 계시가 아니라 주일 강단을 통해서 한 주간 성취될 말씀으로 인도받게 됩니다 주일 예배 성공이 정말 중요합니다. 이 말씀을 보통으로 듣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직 무언가 희미한 사람입니다. 이럴때에 성부, 성자, 성령, 말씀. 이 말씀으로 인도받는 사람들을 교회라 합니다. 이 교회가 흩어지면 흩어지는 곳에서 교회가 이루어지고 모이게 되면 교회당이 되는 것입니다. 이 교회가 되어진 여러분이 흩어져서 살아가는 현장의 만남이 축복이 되게 되어있습니다. 이 만남 속에 교회 성도의 간증이 나오기 때문에 이것을 전도라 합니다. 이것이 되면 생사화복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다. 근심, 염려, 걱정이 다 사라집니다.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것, 잘 사는 것, 못 사는 것, 걱정합니까? 생사화복은 하나님이 주관하십니다. 이것을 절대로 안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자들을 향해서 관심과 축복의 대상으로 삼느냐? 이것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이렇게 살다가 오라고 하시면 오라는 순간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여러분들이 죽고 사는 것은 연세가 많다 적다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면 오늘이라도 가야 한다. 여러분과 저를 향해 부르실 계획을 세워 놓아 가장 합당한 때에 부르십니다. 형님이 새벽기도가시다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난 후에 자녀들이 너무나 갈등하고 고통하고 괴로움 당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장 조카는 효도를 못한 죄가 저에게 있습니다. 이러면서 얼마나 괴로워하는지 모릅니다. 친척이라서 직접적으로 이야기 했습니다. “교통사고로 당해서 하나님께 갔다 하여도 하나님이 부르셨고 가장 정확하고 가장 좋은 때에 부르셨다. 나는 개인적으로 너무나 축복받은 죽음이라고 생각한다. 외부적으로 교통사고라는 오명이 거슬리지만 개인적으로 아프다가 가는 것이 너무나 괴로운지 모른다. 아플 때에 얼마나 아파야 죽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병으로 고생하다가 가는 것 그만큼 괴로운 것이 없습니다. 형님처럼 새벽기도가시다가 순간에 쾅하고 눈을 떴다. 천국이다. 너무나 행복된 죽음이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니까 잘 안 믿어지나봐요. 그러면서 또 한번 말했습니다 부르시는 것은 하나님이 부르셔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병, 교통사고,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부릅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 잘 믿고 하늘 나라의 영광을 누리다가 부르신 현장이 가장 행복하다 그것이 교통사고던지 그것이 병이던지 순식간에 눈을 떴다. 하나님의 나라다. 그것은 축복중의 축복입니다. 우리 마음에 진실한 구원의 축복을 누린다는 사실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습니다. 사람이 제일 신앙 생활이 확실한 배경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질 때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따라오는 것이 내세입니다. 죽음 이후에는 영광스런 축복의 역사가 약속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안되면 어찌되었던 안 죽고 이땅에 살려고 합니다. 저도 막상 죽음이 선고되었을 때에 당황스러웠습니다. ‘하나님이 내가 이렇게 인생을 마쳐야 합니까?’ 하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고 그 영광이 있다면 이래마치던지 저래 마치던지 무슨 상관입니까? 빨리 하늘 나라 가는게 복이지.’ 그래도 소똥에 굴러도 세상이 좋지요. 안 가려고 합니다. 진짜 하늘의 영광을 알지 못하는 불신자들은 이를 갈면서 안가려고 합니다. 참 신앙인들은 죽음에 직면할 수록 마음에 여유가 생깁니다. 주여. 그렇게 기다리던 하나님의 나라. 이 세상 수고와 근심 다 버리고 주님께 갑니다. 이렇게 되면 스데반처럼 순교현장에서 주님이 서신 모습이 보여요. 천군천사로 마중나오는 상황이 보여 질때에 이 영광의 축복이 이해될 수록 죽음에 대한 문제가 별 문제 되지 않고 뛰어넘게 됩니다. 이렇게 될 때에 마지막으로 이 땅에 있는 동안에 죽음에 대한 준비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그 영광의 세계에 가기 위해서 찬 물 한 그릇을 제자위해서 주어도 상급이 있다고 하였는데, 주의 교회에 일하면서 적고 큰 충성 속에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제가 그 나라에 큰 상급으로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신앙 생활의 중심입니다 이 땅에 있을 때에 자녀, 주일학교, 성가대, 적고 큰 일에 충성하느냐? 충성의 배경이 절대로 헛되지 않습니다. 상급으로 하나님께서 준비해두셨습니다. 너무 영광스러워서 바울이 깜빡넘어가버렸습니다. 천국 영광에 참여하게 될 때에 이땅의 모든 행복과 자랑하던 것을 다 버리고 오직 복음 자랑으로 끝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께서 오늘 여러분들에게 이 말이 이해되는 사람들에게 주권이 이해가 됩니다. 이 말이 이해되면 걱정, 근심이 사라지고, 하나님이 관심이 갖게 되는 사람이 됩니다. 이 말이 이해되는 사람을 전도제자라 합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전도제자에게 있습니다. 이 배경이 안되면 구체적으로 여러분과 저를 완전히 하나님이 책임지셨다. 이 말이 이해가 안됩니다.
명예권사에 연연해 하지 마시고,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포인트가 되어야 합니다. 명예권사가 될 수 있는 사람도 무언가 규약을 만들어서 하나님이 축복하실 수 있는 그 포인트에 설 수 있는 자로 만들어져야 합니다. 다락방을 못하면 지역 다락방에 참여하시고 참 제자가 되도록 훈련받으세요. 중직자가 되었다 할 때에 하나님의 축복하시는 전도제자의 자리에 서십시오. 직분자가 되었기 때문에 축복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10가지 발판의 배경 속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완전히 믿게 되고 복음 전파의 자리가 되고 하나님의 축복하시는 자리가 되는 포인트에 서야합니다. 말만 하게 되면 교회가 복잡하고 어려움만 생기게 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이 은혜주시지 아니하시면 우리의 삶이 절대로 보장이 안됩니다. 이번 주에 사고를 당하신 가정이 생겼습니다. 이 사건을 당할때에 내 마음에 먼저 오는 것이 하나님이 불러가셔도 축복의 자리에 서 있는 자가 불리움을 받으면 복 중의 복입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엔 그 가정과 가문에 하나님이 축복하실 수 있는 복음의 자리게 되게 하옵소서. 저는 마음에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옛날 같으면 왜 그러시나?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은혜주셔야 살고 10가지 발판이 이해가 되고 믿어지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죽어도 안 믿어집니다.
10가지 발판을 설명했습니다. 사실은 경제가 삶의 이슈입니다. 삶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경제에 대한 의식주에 대한 걱정이 없으면 다른 것은 없습니다. 걱정의 90%가 여기에 해당됩니다. 이 걱정하는 일을 가지고 구약에 신앙생활의 삶을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 성수, 십일조 생활의 삶을 신앙 생활의 삶으로 가르쳐줬습니다. 구약 전체를 십일조로 컴퓨터에 쳐 보니까 구약 전체에 깔렸습니다. 다음에 우리 교회에서 말씀하시는 십이조. 믿음으로 하세요. 십삼조. 말하자면 절기헌금이라던가 이런 헌금들로. 전부 신앙생활이 구약에는 이것으로 깔려있습니다. 신약에는 신앙생활의 삶이라고 할 때에 약속하신 것은 이미 구원받았으니 구원의 참 증인으로 서라. 만남과 삶의 축복을 전도와 선교에 두었잖아요. 성도들의 가장 축복된 삶의 핵심은 주일날 말씀으로 생활의 십일조, 이 삶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삶의 바탕으로 전도와 선교가 저절로 되어지는 역사. 이것이 신앙 생활의 삶입니다. 구원과 축복의 역사가 안되는 경우는 십일조, 십이조가 이해가 안됩니다. 바울은 이 사실이 생명을 내어 걸고 이해가 된다는 정도가 아니기 때문에 전체입니다. 십일조를 내라. 이게 아니라 몸과 마음 생명까지 드리나이다. 그래서 신약에는 십일조란 부분이 별로 없습니다. 학자들이 말하기를 십일조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생명 전체다.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이 완전히 재정으로 책임져 주신다는 신앙의 고백입니다. 구약에는 십일조에 대해서 부와 축복을 쌓는 일에 구체적인 행동해야 할 사실로 말씀하셨습니다. 말라기 3:8절에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어찌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덕질하였나이까 이는 곧 십일조와 헌금이라. 신약에는 십일조 안내면 도적이라는 말은 안합니다. 구약에는 십일조를 내지 않으면 도적놈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까지 삶의 축복과 직결시켜놓은 것이 십일조입니다. 얼마나 실제적으로 적용되기를 원했느냐하면, 10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10가지 발판이 이해가 안되면 이것이 안됩니다. 이 생활이 될 때에 완전하게 내 삶과 먹고 마시는 것 내 모든 것 책임져 주셨다 이 믿음이 믿어져야 합니다. 생겨져야 합니다. 참 구원을 받았으면 하나님의 주권이 믿어집니다. 내 모든 삶,지구의 운행도 하나님이 하시는구나. 여러분과 저의 삶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전도제자의 삶으로 세운 여러분과 저의 삶을 하니님께서 절대적, 완전하게 책임지십니다. 받아합시다. 하나님은 나를 나의 가정을 책임지신다. 절대적으로 책임지신다. 믿습니까? 아멘. 이 사실을 두고 볼때에 그때부터 기도가 나옵니다. 흑암경제를, 안되게 하는 배경인 원수 사단에 대한 추방기도가 나오게 됩니다. 우리의 삶 깊은 속에서 늘 싸움이 악령과 성령의 인도에 눈을 뜨게 되는 영적인 삶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육신적으로 나오는 사건이 육신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그 배경에는 엄청난 영적 배경이 있다는 사실이 이해가 됩니다. 이때부터 이 사실은 내가 할 수 없어서 모든 문제 해결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흑암 권세 추방될지어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 시작하고 비로소 여기에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가 이루어집니다. 이렇게 될 때에 첫 번째 오는 것이 큰 평화입니다. 기쁨은 평화 속에서 따라오는 것입니다 평화가 있는 만큼 능력, 힘이 나가게 되어있습니다. 이것이 성도의 삶입니다. 아무리 환경이 어렵고 힘이 드는 문제가 부닥친다 할찌라도 여러분 화평, 평화가 있습니까? 여러분의 하는 일, 말, 사건 속에 능력이 나갈 것입니다. 승리가 여기에서 이루어지게 됩니다. 우리 속에 아무리 많은 은혜를 받았다 하더라도 화평이 깨졌다하면 능력이 나갈 수 없습니다. 모든 문제 하나님이 맡으셨다는 사실이 이해가 안되면 화평이 안됩니다. 10가지 발판이 자리잡고 구원의 감격과 기쁨을 누리고 살 때에 제일 먼저 오는 것이 어떤 문제를 당해도 당황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염려하지 않습니다. 모든 문제를 하나님이 하신다는 한마디면 끝입니다. 교회문제, 가정문제. 하나님이 하십니다. 이 믿음이 믿어지는 믿음으로 한 주간도 승리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은혜를 감사합니다. 오늘도 10가지 발판이 믿어지는 참 구원의 간증들이 준비되게 하시고, 이 사건들이 개인의 삶속에 가정 속에 체험되는 축복으로 인도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명예권사에 연연해 하지 마시고,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포인트가 되어야 합니다. 명예권사가 될 수 있는 사람도 무언가 규약을 만들어서 하나님이 축복하실 수 있는 그 포인트에 설 수 있는 자로 만들어져야 합니다. 다락방을 못하면 지역 다락방에 참여하시고 참 제자가 되도록 훈련받으세요. 중직자가 되었다 할 때에 하나님의 축복하시는 전도제자의 자리에 서십시오. 직분자가 되었기 때문에 축복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10가지 발판의 배경 속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완전히 믿게 되고 복음 전파의 자리가 되고 하나님의 축복하시는 자리가 되는 포인트에 서야합니다. 말만 하게 되면 교회가 복잡하고 어려움만 생기게 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이 은혜주시지 아니하시면 우리의 삶이 절대로 보장이 안됩니다. 이번 주에 사고를 당하신 가정이 생겼습니다. 이 사건을 당할때에 내 마음에 먼저 오는 것이 하나님이 불러가셔도 축복의 자리에 서 있는 자가 불리움을 받으면 복 중의 복입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엔 그 가정과 가문에 하나님이 축복하실 수 있는 복음의 자리게 되게 하옵소서. 저는 마음에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옛날 같으면 왜 그러시나?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은혜주셔야 살고 10가지 발판이 이해가 되고 믿어지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죽어도 안 믿어집니다.
10가지 발판을 설명했습니다. 사실은 경제가 삶의 이슈입니다. 삶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경제에 대한 의식주에 대한 걱정이 없으면 다른 것은 없습니다. 걱정의 90%가 여기에 해당됩니다. 이 걱정하는 일을 가지고 구약에 신앙생활의 삶을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 성수, 십일조 생활의 삶을 신앙 생활의 삶으로 가르쳐줬습니다. 구약 전체를 십일조로 컴퓨터에 쳐 보니까 구약 전체에 깔렸습니다. 다음에 우리 교회에서 말씀하시는 십이조. 믿음으로 하세요. 십삼조. 말하자면 절기헌금이라던가 이런 헌금들로. 전부 신앙생활이 구약에는 이것으로 깔려있습니다. 신약에는 신앙생활의 삶이라고 할 때에 약속하신 것은 이미 구원받았으니 구원의 참 증인으로 서라. 만남과 삶의 축복을 전도와 선교에 두었잖아요. 성도들의 가장 축복된 삶의 핵심은 주일날 말씀으로 생활의 십일조, 이 삶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삶의 바탕으로 전도와 선교가 저절로 되어지는 역사. 이것이 신앙 생활의 삶입니다. 구원과 축복의 역사가 안되는 경우는 십일조, 십이조가 이해가 안됩니다. 바울은 이 사실이 생명을 내어 걸고 이해가 된다는 정도가 아니기 때문에 전체입니다. 십일조를 내라. 이게 아니라 몸과 마음 생명까지 드리나이다. 그래서 신약에는 십일조란 부분이 별로 없습니다. 학자들이 말하기를 십일조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생명 전체다.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이 완전히 재정으로 책임져 주신다는 신앙의 고백입니다. 구약에는 십일조에 대해서 부와 축복을 쌓는 일에 구체적인 행동해야 할 사실로 말씀하셨습니다. 말라기 3:8절에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어찌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덕질하였나이까 이는 곧 십일조와 헌금이라. 신약에는 십일조 안내면 도적이라는 말은 안합니다. 구약에는 십일조를 내지 않으면 도적놈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까지 삶의 축복과 직결시켜놓은 것이 십일조입니다. 얼마나 실제적으로 적용되기를 원했느냐하면, 10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10가지 발판이 이해가 안되면 이것이 안됩니다. 이 생활이 될 때에 완전하게 내 삶과 먹고 마시는 것 내 모든 것 책임져 주셨다 이 믿음이 믿어져야 합니다. 생겨져야 합니다. 참 구원을 받았으면 하나님의 주권이 믿어집니다. 내 모든 삶,지구의 운행도 하나님이 하시는구나. 여러분과 저의 삶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전도제자의 삶으로 세운 여러분과 저의 삶을 하니님께서 절대적, 완전하게 책임지십니다. 받아합시다. 하나님은 나를 나의 가정을 책임지신다. 절대적으로 책임지신다. 믿습니까? 아멘. 이 사실을 두고 볼때에 그때부터 기도가 나옵니다. 흑암경제를, 안되게 하는 배경인 원수 사단에 대한 추방기도가 나오게 됩니다. 우리의 삶 깊은 속에서 늘 싸움이 악령과 성령의 인도에 눈을 뜨게 되는 영적인 삶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육신적으로 나오는 사건이 육신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그 배경에는 엄청난 영적 배경이 있다는 사실이 이해가 됩니다. 이때부터 이 사실은 내가 할 수 없어서 모든 문제 해결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흑암 권세 추방될지어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 시작하고 비로소 여기에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가 이루어집니다. 이렇게 될 때에 첫 번째 오는 것이 큰 평화입니다. 기쁨은 평화 속에서 따라오는 것입니다 평화가 있는 만큼 능력, 힘이 나가게 되어있습니다. 이것이 성도의 삶입니다. 아무리 환경이 어렵고 힘이 드는 문제가 부닥친다 할찌라도 여러분 화평, 평화가 있습니까? 여러분의 하는 일, 말, 사건 속에 능력이 나갈 것입니다. 승리가 여기에서 이루어지게 됩니다. 우리 속에 아무리 많은 은혜를 받았다 하더라도 화평이 깨졌다하면 능력이 나갈 수 없습니다. 모든 문제 하나님이 맡으셨다는 사실이 이해가 안되면 화평이 안됩니다. 10가지 발판이 자리잡고 구원의 감격과 기쁨을 누리고 살 때에 제일 먼저 오는 것이 어떤 문제를 당해도 당황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염려하지 않습니다. 모든 문제를 하나님이 하신다는 한마디면 끝입니다. 교회문제, 가정문제. 하나님이 하십니다. 이 믿음이 믿어지는 믿음으로 한 주간도 승리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은혜를 감사합니다. 오늘도 10가지 발판이 믿어지는 참 구원의 간증들이 준비되게 하시고, 이 사건들이 개인의 삶속에 가정 속에 체험되는 축복으로 인도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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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3 | 우리에게 주시는 영원한 메시지 | 고전15:1-11 | 2025-04-20 | |
1482 | 새로운 싸움을 위하여 | 삿7:9-18 | 2025-04-13 | |
1481 | 날마다 영적싸움에 승리하라 | 삿7:1-8 | 2025-04-06 | |
1480 | 이 시대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해답 | 삿4:1-10 | 2025-03-30 | |
1479 | 하나님이 쓰시는 기준 | 삿3:12-23 | 2025-03-23 | |
1478 |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 삿3:7-11 | 2025-03-16 | |
1477 |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 삿2:6-10 | 2025-03-09 | |
1476 |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 삿1:1-7 | 2025-03-02 | |
1475 |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 단12:1-4 | 2025-02-23 | |
1474 |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 단11:28-39 | 2025-02-16 | |
1473 |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 단10:10-21 | 2025-02-09 | |
1472 |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 단9:20-24 | 2025-02-02 | |
1471 |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 단8:15-27 | 2025-01-26 | |
1470 |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 단7:9-14 | 2025-0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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